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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칼럼 기고

다대만덕지구 개발이익 챙긴 몸통은?

by 이성근 2013. 6. 17.

 

월간  환경운동 1999.1 

다대만덕지구 개발이익 챙긴 몸통은?

 

다대만덕지구 택지전환 특혜의혹과 관련한 국정감사가 끝나고 감사원의 감사도 끝났다. 뭔가 떠들석 하니 터질 것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식이었다. 대신 그토록 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검찰의 표리부동한 자세가 더욱 수상하게 보였을 뿐이다. 이러던 차에 국민회의 추미애 의원이 국회 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부산 다대만덕택지전환 특혜의혹의 배후에 삼성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삼성이 ‘몸통’이라는 것이다.


“난 해주고 싶어서 했나”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다대만덕의 문제는 자연녹지가 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된 그 자체와 그 과정에서 파생된 의혹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가지는 매우 복잡하게 뻗어 있다. 동방주택의 이영복은 부산시 도시재정비계획안이 착수되기 전인 1991년부터 부산시 북구 만덕동 188-1번지 임야 7만 여평을, 1993년 다대지역 임야 14만5천여평을 집중적으로 매수하였다. 그런데 두 지역은 부산시 도시기본계획상 주거지역으로 예정하였던 곳으로 도시개발공사가 택지개발예정지구지정을 신청하였던 곳이다. 부산시는 1993년 6월 21일 산림양호, 해안가시권 보호 등을 이유로 택지개발예정 후보지를 해제하여 공영개발도 거절하면서까지 보존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랬던 부산시가 1994년 4월23일 두 지역을 용도지역 변경지역에 포함시켜 부산시 재정비공람안을 확정하였고 1995년 5월6일 용도지역변경을 결정고시하였다. 공람과정에서는 이영복의 형 이차복씨 명의로 된 진정서 한 장으로 인해 만덕지역은 원래 보다 3배나 늘어난 녹지가 주거지역으로 변경됐다. 이에 대해 부산시와 이영복은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의 시각은 180도 다르다. 그게 특혜가 아니고 무엇이냐? 권력이 없으면 어떻게 저런 곳에 허가가 날수 있냐고 반문 한다.

 

KBS의 ‘추적 60분’은 이와 관련 전임 김기재시장과 정문화시장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당시 용도변경안 확정에 싸인을 했던 김기재 전 시장은 “공람과정에서 부산시 주택국과 사하구청, 지역주민들이 산림이 양호한 지역이므로 원형보호해야 한다 는 개발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묵살당한 채 도시계획위원회에 넘겨졌다. 도시계획위원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지 않고 통과시켰다”며 이미 자기 손을 떠난 일이었다며 만약 ‘부정’이 있었다면 ‘그때’ 있었을 것라고 무관함을 주장했다. 반면 용도변경 공람안을 실시한 정문화 전 시장은 인텨뷰를 거부했다. 대신 그의 보좌관이 “김기재 시장이 ‘난 해주고 싶어서 했나’, ‘누가 해주라는 압력을 넣었기 때문에 해줬다’는 식으로 분명히 말했어요. 이건 엄청난 일이죠. 자기가 돈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특정업체에 엄청난 이득이 가는 일을 뭐하러 하냐고” 화살을 다시 김기재 전시장에게 돌렸다. 그렇다면 압력을 행사한 사람은 누구인가. 압력의 흔적은 또 있다.

 

부산시는 다대·만덕 두 지역에 아파트건설사업계획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지침을 어기거나 변경하면서까지 동방의 아파트사업이 가능하도록 철저히 배려했다. 특히 해발 1백48m의 다대 아미산의 경우 2차 심의시 최종심의 4일 전 높이제한 규정을 인근지역에 기준 이상의 높은 건축물이 있을 경우 예외적으로 16층 이상을 허용할 수 있도록 조항을 추가 개정하여 최고 20층까지 가능하도록 해 주었었다. 이 과정에서 문정수 전 시장은 김운환 의원과 멱살잡이(월간 환경운동 98년.11월호 참조)를 하기까지 했다고 전하고 있다.


주택공제조합 왜 참여하게 되었나

이영복은 부산시에 아파트건축허가 신청을 낸 다음 96년 2월16일 주택공제조합(이하: 공제조합)과 주택공동사업계약을 체결하게 되는데 공제조합의 등장은 새로운 커넥션을 형성하게 된다. 당초 공제조합의 설립목적은 영세건설업체를 보증하고 문제 발생시 입주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그리고 주택건설사업에는 참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공제조합은 왜 참여하게 되었을까. 공제조합 실무 관계자는 “동방주택에서 제의가 들어와 이사회에서 하라고 해서 시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제조합은 이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95년 4월17일 정관까지 개정한다. 그리고 1년 반 후인 96년12월23일 택지사업부가 폐지될 때까지 7백34억 여원을 동방주택에 사업명목비로 지급했다. 이 사업을 공제조합에 소개한 사람은 허진석이었고 당시 그는 김운환 의원의 후원회장이었다. 당시 공제조합 실무진들이 현지 조사 후 이사회에 보고한 검토보고서에 의하면 한마디로 사업의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공제조합에 대한 96년 감사원의 감사보고서는 96년 1월 공제조합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인 허진석이 제의했던 이사업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 정관52조에 규정된 조합의 사업범위에 위배되고  ▷자금난이 극심한 상태에서 대규모 신규투자여력이 없고  ▷당시 조함의 임원진 퇴진이 기정사실화 돼 대규모 신규투자사업을 결정하기 어려운 시점었음에도 허진석이 사업을 조속히 시행할 것을 권유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수익성이 불투명해 사업 검토 과정에 참여한 조합실무자들이 반대를 했음에도 허진석 소유업체(동성종합건설) 직원이 임의 작성한 자료만을 근거로 아무런 권한도 없는 이사회에 부의하여 사업시행을 결정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공제조합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 운영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건설교통부장관에게 보고하는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96년2월부터 98년3월까지 이영복에게 7백34억 원을 지급(98년 6.4 지방선거 국민회의 하일민 부산시장 후보측 자료)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영복은 이 돈의 일부인 1백10억 원 허진석에게 전달하기도 했으며 또 1백10억원은 동 사업과는 무관하게 이영복 자신의 업체인 동방주택의 운영자금으로 사용하는 등 약정대로 계약이행을 하지 않았음이 감사원 감사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6백24억 원은 어디로 간 것일까. 동방주택의 이영복은 ‘빚을 갚는데’ 사용했다고 하지만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끝까지 침묵하는 검찰

97년 11월 추미애 의원은 국회 예결위에서 부산의 동방주택 수백억 원 중 일부는 경선자금으로 신당자금 유입설을 주장했다. 나흘 뒤 11월 10일 국민신당은 여의도 당사에서 창당자금 내역공개 기자회견을 가졌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구체적인 내역은 이인제 전 경기지사가 극구 부인해오던 항목이 있는가 하면, 그동안 쓰임새가 확인된 항목들이 누락되는 등 곳곳에 아귀가 안 맞아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돈의 출처’에 대해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었다. 당시 박범진 국민신당 사무총장은 “창당준비위원과 발기인, 당원들이 십시일반 모금했다”고 밝혔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국민신당은 한 번도 공개적인 모금행사나 내부 모금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정권의 교체가 있었고 국민신당의 창당 핵심멤버들은 대부분 국민회의로 당적을 옮겼다. 97년, 98년 연이은 국정감사가 이 문제에 대해 전방위로 다루었지만 핵심은 빠져나갔다. 빠져나갔다기 보다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국민회의와 한나라당의 양해에 의한 의도적 회피였다. 지난 10월 감사원에 대한 법사위의 감사가 끝난 직후 한승헌 감사원장은 “사업승인과 인허가과정에서 상당한 부정 내지 위법이 있었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것은 수사권은 발동할 사안이지 수사권이 없는 감사원은 배후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할 힘이 없다”고 밝히며 결국 검찰의 몫임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검찰 내부의 움직임은 신기할 정도로 조용하다. 놀라운 사실은 부산지검에 대한 법사위의 국정감사에서 김수장 부산지검장은 “다대만덕 특혜의혹과 관련한 사건은 신문을 통해서 알았다”고 할 정도로 천연덕스러웠다.  정말 몰랐을까? 보도에 의하면 부산지검의 오세경 검사가 97년 이사건의 특혜의혹 등에 대해 내사를 벌이다 외압에 의해 중단했으며, 특히 98년 10월 초 갑자기 중국연수를 갔다는 것은 또 다른 의혹과 압력이 존재함을 시사했다. 여기에 더하여 한 검찰의 관계자는 “이씨가 문민정부 실세들과 친분이 두텁기 때문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우려, 조사를 중도에 털어버린 것”으로 안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김태정 검찰총장은 “사우나는 몇 번 같이(이영복과) 간적은 있으나 돈과 향응을 제공 받았다는 것은 턱도 없는 소리”라며 검사들을 안심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미 의혹의 눈길에 익은 국민들은 수긍하지 않는 시선이다.


왜, 못 건드리나

이제 삼성과의 관계를 따져 보자. 다대지역에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는 약 30m 이상의 산정상을 깎아내야 된다. 이 과정에서 1차 사업부지 2만평의 경우 15톤 트럭 33 만대분의 흙이 발생된다. 여기에 8만여 평으로 늘어난  2차 사업부지를 합할 경우 33만대분의 4배 이상이 흙이 나오게 된다. 삼성은 이 흙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파트가 있어야 했다.

 

1994년 삼성의 자동차 사업진출은 기존 6개 업체와 상공부의 반대로 인해 잠시 표류하게 된다. 즉각적인 삼성자동차 부산유치운동이 범시민운동으로 전개됐다. 정치인과 상공인 시민단체가 이때만큼 혼연일체를 이룬 적도 드물 만큼 조직적이었다. 부산경제회복이란 지역정서에 편성한 삼성의 자동차사업 진출은 12월3일 사업진출허가에 이어 12월7일 기술도입신고서를 수리 받게 됨으로써 확정적이었다. 부지조성과 부대시설, 도로연계 등이 모색되었다. 삼성이 공장을 세우기로 한 곳은 원래 예정했던 당진, 평택보다 몇 배나 비싼 신호공단이었다. 신호공단은 연약지반으로 지반을 다지기 위해 상당량의 흙이 있어야 했다. 당시 부산에는 대규모 흙이 나올만한 공사현장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삼성은 동방주택의 다대부지에서 발생되는 흙을 사용하고자 했다. 들어설 아파트 역시 삼성의 사원주택으로 건설하려고 했다는 것은 지역민들에 익히 알려진 대로다.

 

삼성이 동방주택과의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이영복이 매입했던 다대동 113-1번지 일대가 형질변경되기 전인 94년 7월6일로써 민주계의 한 관계자는 “ 이영복이 토지매입자금을 구하기 위해 일부 토지를 삼성에 근저당 잡히고 2백억 원을 빌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또한 “이영복이 삼성에 넘기는 것을 조건으로 아파트 건축허가를 따내려 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삼성과 이영복의 이해가 우연히 맞아 떨어졌다기보다 사전에 계획된 시나리오에 근거한 커넥션이라는 것이다. 곧 삼자는 형질변경과 아파트 건축허가에 따른 개발 이익을 나눈다는 모종의 협정에 따라 동방의 이씨가 앞서 추진하며 길을 트게 되면 공제조합의 허씨가 공제조합의 자금을 동원해 이씨에게 그 대가를 나누어 주고 삼성이 이를 나중에 인수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내 최대의 재벌그릅이 시공능력도 없는 영세주택건설업체인 동방주택에게 돈을 빌려 줄리는 만무한 것이다. 삼성이나 이영복 두 측 다 사업적으로 남는 것이 있다는 판단에서 접근했음은 두말 할 나위없다.

 

여기에 대두되는 장애물은 정치권에서 제거하거나 짐을 들어주는 방식이 채택되었을 것이다. 이 추론을 뒷받침하는 한 근거로써 98년 3월 들어 삼성은 이영복의 다대 땅에 대한 근저당을 해지했고 공제조합은 이씨에게 지급보증이란 편법으로 2백억 원의 토지대금이 지급된 것에서 알 수 있다. 정리자면 300억 원의 근저당이 설정된 94년 7월은 삼성이 자동차사업진출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동방주택 이영복은 다대·만덕 일대의 땅을 집중 매수하던 시점이다. 또 94년 12월은 삼성의 자동차사업진출이 허용된 직후로 이 시기는 이영복이 매입한 다대만덕 지역이 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 최종안이 결정되던 시점이었다. 그리고 삼성의 신호공단 부지조성 착공 1달 전인 95년 5 월은 부산시 도시계획변경 용도변경 결정이 고시되던 때였다.

 

이상에서 볼 때 ‘엄청난 파급효과를 우려, 조사를 중도에서 털어 버렸던 것’으로 밝혔던 검찰 관계자의 말이 새롭게 감지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가 정리되거나 해소되지 않고 유야무야 된다면 더 큰 의혹으로 남아 더 큰 파급효과를 가져 올 뿐이다.  KBS '추적'팀이 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누구나 생각한 것으로 관련자들의 계좌추적이다. 관련하여 전 신한국당 관계자는 “이 ○○<인제>의 탈당을 막기 위해 청와대의 사정반이 이○○ 주변에 목조르기를 시도한 적이 있다. 그때 배○○<재욱> 사정비서관이 주도하는 사직동 특명반이라고 청와대 차원에서 특수한 일을 할 때 계좌추적을 하는데 거든요. 그팀에서 김○○<운환>의원의 계좌 추적을 하였습니다. 어느 부분이 나왔어요. 일부분이...., 이영복씨와 동방주택 부분도 나오고, 그 자료 본 적이 있는데 계좌추적을 하다가 중단했거든요. 그래서 계좌추적만 하면 그 의혹은 쉽게 풀릴 것입니다” 결국 당시에도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쉬운 문제를 왜 검찰은 손대지 않는 것일까?

 


                                                                                                                       05.3.9

 

Gracias a la vida (삶에 감사드려요 )- Mercedes So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