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환경운동 99년 7월호
코스타리카 람사회의 참관기
지난 5월 10일부터 8일간 중남미의 작은 나라 코스타리카 산호세에서는 람사협약 제7차 당사국 총회가 열렸다. 총 1백14개국의 정부와 NGO그룹 등 1천5백여명 이상이 참가한 이번 총회에 한국정부는 환경부, 외교통상부, 해양수산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11명을 파견했으며, 한국 NGO는 전국습지보전연대회의를 주축으로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이 각 회의에 참가했다.
이번 총회가 열렸던 산호세의 헤라두라 호텔은 개회 적지 여부를 두고 NGO들의 비난이 쏟아졌던 곳이다. 이 호텔은 다국적기업인 멜리아의 체인점으로 이들의 주요사업이 습지를 파괴해 호텔 등을 전문적으로 짓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적 생수회사인 에비앙이 공식지원하고 있으며, 개최국 코스타리카 역시 이번 총회를 철저히 상업적으로 이용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번 총회에서 중요하고도 특이할 만한 일은 총회 개막 3일전 사전 NGO회의 및 생물다양성 협약 회의가 열렸다는 점이다. 총 34개국 2백여명이 참석한 이 사전 NGO회의는 ‘인간과 습지 : 생명의 연결’이라는 대주제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각국 NGO의 활동상과 관련한 주제발표로 이루어졌다.
발표에 나선 코스타리카를 포함한 중미지역 네트워크 그룹은, 지역 원주민의 전통적 삶의 현장이자 그들의 권리인 습지를 지역주민의 지적 재산권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그들은 습지에 대한 원주민의 권리를 법제화하는데 노력해왔는데,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로 ‘중앙아메리카 주민 권리’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주민은 법개정의 주체였으며 농민운동가, NGO 등이 함께 결합되었다. 이들은 ‘지적 재산권 되찾기 운동’이 보다 널리 보급되고 내용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아시아 지역이 분발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이러한 워크샵을 통해 각 그룹별로 <아시아, 오세아니아, 중미, 남미, 유럽> NGO는 다음과 같은 공동의 사안을 제안했다. 먼저 람사협약 당사국 회의에 NGO 참여가 보장되어야 할 것, 정부와 원주민, NGO, 기업, 전문가 그룹이 협의체를 구성할 것, 그리고 이를 법제화시킬 것 등이었다.
한편 이날 오전회의가 종료될 즈음 콜롬비아 NGO가 긴급 호소를 제안해 장내 분위기를 일순 얼어붙게 만들었다. 지난 5월 6일, 콜롬비아 ‘원주민 네트워크 협회’ 사무총장이 사살되었고 2주 전에는 8명이 살해되었다. 그들이 댐 건설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더욱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 그럼에도 이 나라의 정부는 그 어떤 것도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왜 이러한 폭력이 우리를 향해 일어나는지 모른다. 그들(개발업자)에 의하면 ‘너희들은 경제의 적이기 때문에 죽어야 한다’고 전해들었을 뿐이다”라며 국제적 관심을 호소해 눈길을 끌었다.
많은 사례를 통해 증명되고 확인되는 것은 습지 개발을 통한 기대이익 또는 효과가 전통적 또는 지속가능한 이용에 비해 지극히 단기적이고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더구나 개발 자체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공평하게 제공하지도, 할 수도 없다는 것. 그러나 불행히도 람사협약은 이러한 개발에 대해 특별한 구속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조항이 ‘고려되도록 할 것’이나 ‘권장할 것’, ‘적용되도록 할 것’ 등의 표현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집단이 협약을 무시하는 경향까지 만들고 있다. 많은 NGO들이 협약의 이러한 맹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써 지역주민과 NGO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내용은 NGO 결의안으로 만들어져 당사국 총회가 시작된 5월 10일, 람사회의 본회의장에서 코스타리카 ‘지구의 벗’에 의해 발표됐다.
7차 람사협약 당사국 총회는 19일 종료되었다. 9일 동안 많은 의제들을 다루었고, 대부분 원안이 통과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개최된 사전 NGO회의는 습지의 보존과 현명한 이용이라는 지구적 공동 관심사에 대한 NGO의 역할과 위치, 기능을 확인한 자리였다. 각국 NGO의 감시와 견제, 적극적 참여는 많은 당사국들이 협약의 이행과정에서 내용적으로 보강되는 계기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실제 아열대지역의 경우 그동안 습지의 파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호주 브리스번에서의 6차 람사협약 이후 전체 지역의 1/3 지역이 습지관리 계획을 수립했다. 유럽의 경우는 보다 다양한 접목, 예컨대 생물다양성협약이나 삼림계획, 환경법 등과 연계, 통합관리 시스템으로 습지관리를 추구하고 있음이 보고되었다. 북미의 경우 환경영향평가의 광범위한 적용이 강조되었다. 또 ‘북미지역 철새보호 협약’을 통해 민간의 습지보존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이 상당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람사협약의 이행을 위해 미국의 ‘정수법’과 같은 잠재성 있는 모델이 적극 권장되기를 희망했다. 덧붙여 미국은 2005년까지 습지의 확대를 목표로 하는 ‘클린워터 법령’을 준비중에 있으며 ‘북미 물새관리 계획법’ 등이 정부나 NGO의 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고했다. 나흘간 열린 기술분과 위원회에서는 여러 주제들이 다루어 졌다. 이중 ‘람사와 물’에 대한 여러 사례와 주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중국의 경우 98년 양쯔강 대홍수 이후 습지의 복원과 보존을 목표로 하는 국가전략을 수립했는데 ‘국가생태환경건설계획’으로 발표된 이 정책의 주요목표는 ‘파괴된 습지를 복원하고, 2002년까지 습지관련 행정수준 개선을 통해 20개의 람사습지를 추가로 지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습지가 있는 지역의 개발을 금지하고, 산림파괴를 금지하는 법제정도 추진중에 있다. 중국은 98년 대홍수의 원인이 습지의 파괴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이로인해 3천4명이 사망하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고 했다. 덴마크 정부도 향후 5년간 매년 3천ha 이상의 습지를 복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가규모에 비해 엄청난 넓이가 아닐 수 없는데 관련하여 한국정부의 정책과 비교해 보자.
총회 시작 이틀째인 11일 오후 1시, 한국습지보전연대회의와 일본의 습지보전네트워크 ‘JAWAN’에 의해 개최된 제안서 채택을 위한 비공식 워크샵 - 갯벌의 보존과 현명한 이용을 촉구하는 결의안 - 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엄대우 이사장은 매우 주목할 만한 입장을 발표, 한국 NGO들을 흥분케했다.
완전히 확정(관련부서와 협의중)된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동강, 새만금, 순천만, 가로림만, 강화지역을 새로운 국립공원으로 지정, 생태적 보존과 현명한 이용을 모색하겠다는 것. 이들 다섯지역 중 순천만과 강화갯벌은 환경부 공원과에 의해 검토가 진행중에 있으며 나머지 지역 또한 지자체와 지역주민의 입장에 대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발표는 전날 한 일 NGO주최로 열린 ‘제안서 채택을 위한 비공식 워크샵’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발표한 내용의 하나다.
그러나 한국정부 대표단은 12일 발표 후 혼란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은 한국정부의 발표에 앞서 환경운동연합이 국내 언론에 유포했고, 이 과정에서 환경부와 외교통상부 당국자가 환경운동연합에 항의하는 소동이 있었던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정부의 발표내용에 대해 신뢰성을 의심케 하는 부분이다. 실제 한국정부의 발표내용은 구체적이기보다 두리뭉실한 표현으로, 해석하기에 따라 오해의 소지가 많을 뿐 아니라 한국 전체 갯벌상황을 고려할 경우 상당히 전술적 차원에서 발표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강화도 지역 갯벌이 가지는 특징 때문이다. 다시말해 한국의 해안선, 남서해의 구조를 보면 그나마 정부가 선택하기 쉬운 곳이라는 것이다. 이 지역은 과거부터 도요 물떼새의 중간기착지인 동시에 서울과 가깝다는 사실, 그리고 휴전선과 가까이 하고 있어 어로행위나 경제행위가 제한된 곳이라는 사실이다. 즉 다른 갯벌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부의 부담이 적은 곳이다.
따라서 한국정부의 발표가 종래의 습지정책과 관련 획기적이고 진일보한 면이 다소 있지만 사실은 대단히 형식적이라는 풀이까지 가능한 것이다. 실제 한국정부가 습지 갯벌의 보전에 대한 의지가 높다면 보다 중요한 지역, 위기지역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함에도 아예 언급됨이 없이 국내외 NGO의 압력과 여론에 밀려 어중간한 태도를 취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 하나의 문제. 이번에 참가한 다른 나라 공무원의 경우 대부분 10년, 20년의 경력소유자들이다.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 강화와 대외경쟁력, 정보의 우위를 견지하기 위해서라도 담당 공무원의 잦은 교체는 국가적으로나 갯벌보전을 위해서나 손실이다. 지난 1996년 호주 브리스번의 경험이 코스타리카에서 결합되지 못한 것이 그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그것은 NGO와의 협력에도 지장을 초래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되고 있다.
이번 코스타리카에서의 NGO 활동의 큰 성과는 정부도 준비하지 못했던 한국내 습지목록의 작성 및 보고서, 포스터의 배포로 국제사회에 한국의 습지를 이해시키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과 일본 NGO의 공동협력 연대활동이 국제협력의 모범사례로 인정 받은 것, 그리고 NGO의 힘으로 만들어진 조간대(갯벌) 습지보전을 위한 결의안이 한국정부의 적극적 지지로 통과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국제협약과 관련 회의에서 처음 있는 사례로서 향후 습지 보전 활동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상과 어울리기 > 칼럼 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동강하구를 람사지구로 (0) | 2013.06.17 |
---|---|
신호리에서 보는 낙동강 하구 (0) | 2013.06.17 |
일본 이사하야 (諫早) 갯벌, 농게와 짱뚱어의 생존권 소송 (0) | 2013.06.17 |
다대만덕지구 개발이익 챙긴 몸통은? (0) | 2013.06.17 |
자연녹지 훼손과 정경유착 - 다대·만덕 택지 특혜비리를 말한다 (0) | 2013.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