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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괜찮은 詩

이연주의 시

by 이성근 2021. 1. 13.

 

 

(멋진 그녀를 추억하다) 자살한 시인 이연주

이연주는 죽음으로 말하고싶어했다,아니 말하고 싶었으나 말하지못했음을 말하고싶어했다.

 

치열성과 정직함의 시인 이연주

 

1991년에 시인이 됨. 1992년 자살로 생을 마감함. 시집 두 권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속죄양, 유다>(유고시집). 기지촌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지켜보았던 매춘여성들의 삶에적극적으로 동화된 태도로 글을 써나갔던 시인 이연주를 시인 김정란 교수가 추억한다. 자신의 여성적 정체성을 분명하게 자각했던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치열성과 정직함으로 인하여 저절로 여성적 정체성의 추구라는 문을 향해 걸어갔던 여자. 죽음에 이르도록 간절하게 시인 이연주가 말하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일까?

 

나는 시인 이연주를 만나본 적이 없다, 아니, 있다. 어쩌면, 어떤 종류의 질서 안에서는 현실보다도 더 현실적으로. 그녀가 나를 불렀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녀를 불렀던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아마도, 아주 먼 갤럭시, 시간 속에서 자유로워질 다른 갤럭시 안에서는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혜가 내 머리를 꽃처럼 장식할 어떤 다른 갤럭시에서는. 짧은 두 번의 만남. 현실 속의 만남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 두 번의 만남을 감히 아무런수식어 없이 만남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나는 그녀를 정말로 만났다고 느낀다.

 

언젠가, 그녀의 시에 대한 아주 짧은 리뷰를 쓴 적이 있다. 부글부글 끓는 에너지의 덩어리같다는 생각, 그러나 그것이 매우 부정적인 양식으로만 표출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대충그런 막연한 기억밖에는 그 원고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는 그 원고에 대해 내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내가 이연주가 사용했던아주 이상한 쉼표 하나를 매우 불안해하며 언급했었다는 사실이다.

 

그 쉼표는 적절한 맥락을 찾지 못하고, 맥락을 끊어먹거나, 맥락들 위에 위태하게 걸터앉아서 마치, 호흡곤란을 호소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 쉼표가 내 마음에 의문부호처럼걸린다, 라고 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슨 연유에서인지 모르지만, 그 글과 함께 고호의 그림 구두가 동시에 어김없이 떠오른다.

 

그 그림이 삽화로 사용되었었나? 그러나 그 문학지 편집에 삽화나 이미지가 들어갔던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허공을 향해, 호흡이 곤란하다는 듯, 입을 떡 벌리고 있던 그 쉼표와, 고호의 피곤에 지쳐 너덜너덜 떨어진 구두 두 짝이 이연주를 생각할 때마다 내 가슴에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그 글이 발표되고 나서 얼마 있다가 이연주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쉼표가 갈고리처럼 내 몸 어디엔가에 박혔다.

 

그리고 또 한번의 만남. 어느 날이었던가. 나는 낮에 깜빡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낮에 깜빡 잠들었다가, 꿈에서 죽은 이연주를 보았다. 그녀 생전에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데도. 세계사 시집 표지에 난 사진 그대로였지만, 통통하고 밝아보였다. 행복한 新婦 같았다.머리에 커다란 진주 나비 장식을 달고 있었다. 그녀가 안녕? 하고 인사했다. 내가 안녕!하고인사했다. 그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선생님, 내 가슴 속에 철사로 된 빽빽한 말 다발이 들어 있었어요. 그걸 풀어내야 했어요. 그게 날 죽였어요.-김정란, <낮꿈>, 부분

 

 

죽은 이연주가 내 꿈 속에서 철사로 된 빽빽한 말다발이라고 말하던 모습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꿈 속에서 내가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해. 반드시 기억해야 해라고 생각했던 것도 기억난다.

꿈에서 깨어나 나는 한참 동안 가슴을 누르고 있어야 했다.

마치, 그 철사 말다발이 정말로 내 몸을 안으로부터 쿡쿡 찔러대는 것 같았다. 명치끝이오랫동안 찌르듯이 아팠었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울었다.

내 울음이 저승까지 이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너를 위해서 내가 잘 말할 수 있을까?

허공에 목을 매달아 버린 네 잘린 말 대신?

죽음 안으로 몸을 던진 네 철사 말다발의 절망을 내가 이윽고 가닥가닥 한 올씩 풀어내어 나뭇잎처럼 순하고 아름다운 말의 희망으로 바꾸어 낼 수 있을까?

내 몸 속으로 들어온 네 저승의 전언을 내가 세상 사람들의 귓바퀴 가까이 가져갈 수 있을까? 절망은 여전히 내 가슴을 뻑뻑하게 짓누른다. 세상은 여전히 완강하고 나는 여전히 무력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명치끝은찌르듯이 아프다.

이연주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1953년생. 수간호사.

1991년에 시인이 됨. 1992년 자살로 생을 마감함.

시집 두 권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 <속죄양,

유다> (유고시집).

 

그리고 여성문인들을 따라다니는 심술궂은 소문들.

남성문인들은 물론이고 여성문인들까지 나서서 입을 쫑끗대며 큰일이나 났다는 듯이, 자신들은 모든 궂은 일과는 무관한 왕자마마 공주마마라는 듯이, 새삼스럽게 엄숙한 표정을 짓고, 죽은 자마저도 마음놓고 씹어제끼며 스캔들을 만들어내는 그 가공할 우아한 무책임한 이빨들. 속물들의 말잔치. 그것이 전부다.

나는 그들의 말을 한 마디도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 그 말들에는 최소한의 애정도 삶에 대한 진지한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이연주가 1991년 첫 시집을 출판한 다음해인 1992년에 느닷없이 자살한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육체에 스스로 죽음을 집행한 자 말고 누가 그 죽음의 이유에 대해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심지어 죽은 자 자신도 진정한 이유는 모를지도 모른다.

모든 죽음은 미스터리이다. 100살 넘어 자연사한 사람의 죽음도 본질적으로는 미스터리이다.

나는 다만 이연주가 죽음으로 말하고싶어했다는 것을 마음에 접어둘 뿐이다, 아니다,

말하고 싶었으나 말하지 못했음을 말하고싶어했다는 것을 짚어둘 뿐이다, 죽음에 이르도록 간절하게.

 

그녀의 시세계는 어둡고 눅눅하다.

그곳에는 좀벌레가 들끓고, 악몽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무엇 때문에 사는지 알 수 없는 매음녀들의 너덜너덜 해어진 육체들이 있다. 이연주 시의 이러한 부정적 특성에 대해 한 평론가는 위악적이라는 표지를 붙였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단순한 위악을 넘어선다.

그것은 차라리 치열성의 증거이다. 그녀의 시는 일체의 낭만적 환상을 거부한 채, 가부장제적/자본주의적 위선의 복판을 겨눈다. ‘위악위선에 대한 소극적/냉소적 뒤집기에 불과하다. 아니, 이연주는 위악적이지 않다.

그녀는 그녀가 기지촌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지켜보았던 매춘여성들의 삶에 진짜로 정말로적극적으로 동화된 태도로 글을 써나갔기 때문이다. 이연주는 단순히 그녀들을 동정하거나, ‘그녀들의 비참을 보고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녀는 정말로 그녀들이 된다. 아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 그녀는 그녀들의 육체들이 된다.

얻어맞고 착취당하고 파먹히고 그리고 피를 빨린 뒤에 도시의 하수구에 내던져지는 혼이 없는 살주머니. 그 육체들은 욕망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일 뿐이다. 이연주는 그 육체들에 완전히

동화되어 있었다. 그녀의 시적 자아는 스스로 매음녀가 되어 생의 바닥을 지렁이처럼 기어간다.

그녀들그녀들의 육체를 치료하는 간호사 사이에는 아무런 거리도 없다. 이연주는 그녀들의 육체와 함께, ‘그녀들의 육체 안에서 분노하고 절규한다.

남성들의 욕망의 쓰레기통, 야금야금 파먹힌 뒤에 썩어서 검은 간장처럼 되어 버리는 수동적 객체. 가부장제의 허울좋은 일부일처제가 만들어놓은 제도의 허깨비들. 기생하면서 기생당하는 두겹의 소외. 이연주는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한꺼번에 잡아먹으라고 절규한다.

 

 

차라리 내 간을 빼어 먹어요그렇게 야금야금 살점 뜯어먹고

새살 나기 기다리고 아이, 그렇게 말고 단숨에 큭, 심장 할켜버려요

쿨럭쿨럭 솟구치는 피를 다 빨리 마셔 치워줘요

- 백치여인의 노래, 부분

 

흡혈귀들은 무자비하고 잔인하다.

가부장적 흡혈귀들 앞에 던져진 매음녀들, 자본의

시장에 내걸린 고깃덩어리들은 매일 세계의 벼랑으로

떠밀린다. 삶은, 아무, 의미도 없다.

한번의 잠자리 끝에 이렇게 살 바엔왜 살아야 하는지

그녀도 모른다. 쥐새끼들이 천장을 갉아댄다.

바퀴벌레들과 옴벌레들이 옷가지들 속에서 자유롭게

죽어 가거나 알을 깐다. 흐트러진 이부자리를 들추고

그녀는 매일 아침 자신의 시신을 내다버린다,

무서울 것이 없어져 버린 세상. 철근 뒤에 숨어사는

날짐승들이 그 시신을 먹는다.

- 매음녀 1, 부분

 

이연주의 독창성은 그녀가 여성적 소외의 극한점으로 존재하는 매음녀들의 조건이 도시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적/가부장적 문명의 숨겨진 잔인한 얼굴이라는 것을 파악했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매음녀는 도시의, ‘철근 뒤시장과 함께 떠올려진다.

그녀의 비참은 상품화된, 사물화된 육체의 비참이다.

그 비참의 근원에는 아버지 -페니스의 무한정한 욕망의 추구가 있다. 페니스의 질주하는 욕망의 바퀴 아래에서 매음녀들의 존재는 단지 성기에 불과한 것으로 축소된다.

세모 여자’. 물질화한 아프로디테의 印章. ‘비인칭의 엔트로피’.

이연주는 기지촌 여성들의 육체로 부터 말을 끌어내어, 말의 빛으로 그녀들을 구원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그녀는 문학의 문을 두들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문학을 하기 위해서 거쳐야 했던, 이른바, 세계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등단이라는 이상한 제도는 그녀를 더더욱 절망시켰던 것 같다.

 

문단이라는 신성한 성채는 그녀를 들여놓아 주고 동시에 쫓아낸다. 몇 명의 왕들과 그들의 주위를 맴도는 궁인들과 궁녀들. 왕들의 눈에 들기 위한 보이지 않는 기묘한 암투들.

위선의 도시. 그곳에서 이연주는 자신의 처지가 매음녀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말 그릇을 든 동냥 거지.

남성권력자들 앞에서 비루하게 상징성의 성은을 기다려야 하는 비참한 처지. 그녀의 문학은 매음녀들처럼 존재의 일차적 조건 안에 못박혀 있었을 뿐이다. 그녀는 자신의 문학을 의미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상징 기제들 안에 진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의 문학은 육체처럼 단지 존재할 뿐,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그 처지에 깊이 절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연주가 자신의 여성적 정체성을 분명하게 자각했던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치열성과 정직함으로 인하여 저절로 여성적 정체성의 추구라는 문을 향해 걸어갔던 모습을 확인한다. 좀더 버텼더라면, 그녀는 힘찬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그녀의 죽은 몸- 잘린 혀 위에서 출발한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아주 잘 말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녀의 시집을 아기처럼 토닥인다.

죽음 너머까지 내 사랑이 이를 것을 나는 믿는다.

/ 김정란 시인 2006.8.8

 

매음녀 4

 

함박눈 내린다.

소요산 기슭 하얀 벽돌집으로

그녀는 관공서 지프에 실려서 간다.

 

달아오른 한대의 석유난로를 지나

진찰대 옆에서 익숙하게 아랫도리를 벗는다

양 다리가 벌려지고

고름 섞인 누런 체액이 면봉에 둘둘 감겨

유리관 속에 담아진다.

꽝꽝 얼어붙은 창 바깥에서

흠뻑 눈을 뒤집어쓴 나무 잔 가지들이 키들키들

그녀를 웃는다.

 

반쯤 부서진 문짝을 박살내고 아버지가 집을 나가던 날

그날도 함박눈 내렸다.

검진실, 이층 계단을 오르며

그녀의 마르고 주린 손가락들은 호주머니 속에서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찾아 꼬물거린다.

한때는 검은 머리칼 찰지던 그녀,

몇 번의 마른기침 뒤 뱉어내는

된가래에 추억들이 엉겨 붙는다.

지독한 삶의 냄새로부터

쉬고 싶다.

 

원하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함박눈 내린다.

 

 

 

매음녀 6

 

어머니, 날 낳으시고 젖이 없어 울으셨다.

어머니 숨 거두시며

마음 착한 남자, 등짝 맞대 살으라 이르셨다.

나는 부둣가에서

선술집 문짝에 내걸린 초라한 등불 곁에서

매발톱 손톱을 키워 도회지로 흘러왔다.

눈 붙이면 꿈 속에서 어머니

이 버러지 같은 년아,

아침까지 흑흑 느껴 우신다.

내 심장 차가운 핏톨, 썩은 물 흐르는 소리.

나는 살 속 깊은 데서 손톱을 꺼내

무덤을 더 깊이 판다.

하나의 몫을 치르기 위해 삶이 있다면

맨몸으로 던지는 돌 앞에 서서 사는

이 몫의 삶은.......

희미한 전등불 꺼질 듯 끄물거린다.

 

 

종신(終身) / 이연주

 

이마에 재 뿌리고

쑥향과 빈 촛대 들고

들판으로 갔다.

 

나는 밀기울 껍데기로

홑껍데기로

주여,

용서하소서.

 

어두움 실핏줄이 터져

못 이길 두려움에

혼절할 듯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주여, 용납하소서.

 

바람이 죽은 날들을 닦았다.

나는 혼신을 다해

촛대 위로 올랐다.

 

불을 그어다오.

 

 

 

 

고물상에서의 한때

 

비 맞은 개 한 마리 고물상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서둘러 셔터문을 내린 상점들, 한 차례 벼락이 때리고

간혹, 어떤 집에서는 정원수가 뽑혀 나자빠지기도

험한 날 저녁 무렵

그 검은 물체, 무엇을 발로 긁어보기도

주둥이를 대고 깔짝거려 보기도 한다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채 우뚝 서 있는 냉장고

몇 묶음의 박스 쪼가리들

지붕을 굴러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빈 깡통 하나를 이리저리 굴린다

지상의 문이 열린 곳이라고는 여기밖에 없으니...

그는 냉장고 뒷켠을 돌아 눅눅한 허접대기 위에 쪼그리고 앉는다

살아 있는 쪽보다는 죽은 것에 보다 가까운 곳,

주인집을 떠나온 이래 그 수모와 발길질을 기억하며, 그러나

정육점의 흥정가치가 될 수는 없는 일이야

그는 비스듬히 자리에 눕는다

관조의 눈빛이란 때로 모든 것을 거부할 때에도 가능하지

그런 눈을 껌뻑거리면서...

 

 

발작

 

, 정말 아무짓도 하지 않았어요

여자가 흑흑 흐느꼈다.

공장 근처에도 가지 않았어요

이상한 집회에도 가본 적이 없다구요

여자가 소리쳤다.

누가 분신을 하고 죽고

누가, ,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리는지 관심도 없었다니까요

여자가 제 머리털을 쥐어뜯어 울부짖었다.

나는, 그저,

짐승처럼 앉아 있었을 뿐인데요

누가 나를 여기 데려왔죠? 왜 가두는 거예요

내 자궁은

썩은 쇳조각,

분신할 아들도 파업할 딸년도 낳을 수가 없는데요

여자가 바닥을 박박 기어대며 몸부림쳤다.

의사가 말없이 다녀갔다.

간호사가 와서 근육주사 한 대를 놓고

돌아갔다. 철커덕 문이 닫겼다.

, 정말 아무짓도 하지 않았는데요

정신병동 철문을 붙들고

여자가 희멀겋게 중얼거렸다.

 

 

 

죽음을 소재로 한 두 가지의 개성 1

 

시립병원 철책 너머 어둠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3병동 복도를 걸어 중환자실 앞에서 김간호사는 쿡, 쿡 찌르는 어깨의 통증을 다시 느낀다. 요즈음의 흔해빠진 스트레스성 질환, 그녀는 종양의 말기 증세를 보이는 암환자가 마시고 있는 산소의 양을 체크한다. 주검의 목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무분별한 공기의 흐름, 사면 벽들은 냉엄하다, 책임을 버린 환자의 남편과 그 딸들은 때로 눈물을 뿌리거나 병실 밖 나무의자에 주저앉는다. 아무도 삶과 죽음을 묻지는 않는다. 김간호사는 검게 어둠을 반사하는 창 앞으로 다가간다. 얼음 같은 고요를 붙들고 늘어지는 저 신음소리, 삶을 애걸하는 뜻은 아니리, 노오란 황달기의 흰자위, 눈이 스르르 감긴다. 그녀는 생각한다. 저 산소마스크를 떼어야 한다. 저 인공 소변줄을, 고단위 단백질과 수분을 주입하는 저 링거바늘을 뽑아야 한다. 창밖은 이미 어둠의 이끼로 덮여 있다.

 

어떤 때에 히포크라테스의 눈빛, 형벌이 되기...도 한다.

 

 

 

 

긴다리거미의 주검

 

간단한 일이었다

허공을 향해 헛발길질 몇 번

볼품없이 긴, 그것을 다리라고 할 수 있었을까, 발이라고...

, 뻗어 누웠다

그랬다

스프레이 에프킬라 한 방으로

죽였다

 

숨이 다 끊어지는 동안 아주 짧은 몇 초

흉한 것을 곁눈질로 보듯

시큼한 토사물 곁을 못 본 척 비켜가듯

죽음을 맞는 그놈에 대한

내가 차린 예우였다

 

에미의 생식낭에서 부화하고나와

허망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단순한 종교적 삶

절망을 유물로 남기지 않는다, 하찮은 거미 한 마리의 주검엔

그래서인지

그놈에게선 부패의 냄새가 없다

 

나는 두루마리화장지를 조금 풀었다

머리카락 한 올을 집어내듯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그게 끝이다

삶과 죽음 사이가 실은

이토록 쉽고 간단한 것을...

 

 

 

사람의 고향

 

폐 속엔 포도알 같은 허파꽈리들이 수없이 많답니다.

자극을 받거나 날씨가 나쁠 땐 기침이 나기도 하죠.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단순한지

둥근 뼈의 집을 헤엄쳐다니는 안개의 숨소리,

핏줄들은 힘차게 팔딱거린다.

소금에 절은 바람도 거기선

비틀린 사랑을 배우며 살아온 어느 골방의 불규칙한 안식도

거기 도착하면 흐릿해진 알전구를 바꿔 끼게 된다.

이렇게 저렇게 인생은 여러 번 바뀌어도

사람의 고향이 몸 속에 있었다니......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기침이 나죠?

종이꽃잎들이 폐 속을 가득 채우고 있나봐.

 

 

 

풀어진 길

 

구급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질주해갔다.

사이렌 소리가 공기 속으로 파고들었다.

내 몸에서 어떤 핏톨들이 튀어올랐다.

나는 음습한 구석으로 가서

담벼락을 향해 오줌줄기를 뿌리며

무지개, 무지개…… 그렇게 중얼거린다.

구급차가 남긴 경적을 마신 공기들은

더욱 차갑고 쓸쓸하다.

모든 별들이 하늘 뒤에 숨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참으로 세상의 많은 것을 움직인다.

나는 다만 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기쁨조차 갖고 있지를 않으나

벌써 오래 전부터 일이다, 한꺼번에 많은 것들이

한 실체에서 다른 실체로 변형을 이루며 살아간다.

나는 외투를 추켜올린다.

내 앞을 걸어가던 사내 하나가

어두운 골목길 저쪽으로 사라진다.

어깨에 쌓인 슬픔의 무거운 짐을

저 사내도 감추며 살아가는 걸까.

또 한 대의 구급차가 지나간다. 경적소리는 남는다.

무지개, 무지개…… 내가 중얼거린다.

의미 없는 낱말들이 차바퀴를 쫓아가 달라붙는다.

치유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나도 가고 싶다.

그러나 먼저, 유배지로 가는 내 방문의 열쇠를

누가 받아 간직해 주겠는가.

모든 별들은 하늘 뒤에서 빛난다.

나는 밤의 둥근 공기들을 육모, 팔모로 깎는다.

, 킥 웃음소리를 내며 모가 난 공기들이 나를 찌른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끝없는 날의 사벽

 

잊어버렸다.

아니다 잊어버릴 수가 없다.

아버지, 아버

때에 절은 스치로프 사벽

창문이 덜컹거린다.

영원히머지않아 기계로 바꿔지고 말

손의 끝없는

흔들리는 15촉의 전깃불

끝없는 날들

신이인간

사랑하

 

 

 

즐거운 일기

 

내가 죽어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되어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주부의 손끝에서

비늘 벗겨져

내가 도마에 오른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되어서

 

등빛을 등에 달고 펄펄 끓는 솥에 들어가

살에 매운 고춧가루 박고

 

아이들과 그 아버지의 한때

즐거움이 되어서

그들의 잠자리에 내가 함께

내가 죽어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되어서

 

 

 

 

가보라 하더구만, 끊어진 길 어귀에서

그래,

내 갔지.

어허, 어둡고

천지 사방 막혀

갈퀴진 기르 벌건 살 뻐드러진 험한

내 갔던 길.

 

그래,

떠 갔지.

 

어디 골대를 겨냥해서 잘 차 넣은

공처럼

적중.....

적중의

 

길이 있었던가? 절벽길

또 가야 한다면

삶의, 어디

사람이 별처럼 모여 반짝이는

마을 앞에 세게 될지, 글쎄

아니라 해도.....

 

 

 

익명의 사랑 - 위험한 시절의 진료실 1

 

정말 꽃이 되고 싶어, 또는 구름

아홉 배는 내가 더 당신을 사랑할 걸 - 그런 꽃,

새털 옷을 입고

당신 고향 가는 길 앞질러 따라가는

그런 구름.

 

석간신문이 배달됐지만 의미가 없네.

죽은 고양이도 쥐떼들의 혼령도

이제 더는 문간 근처를 얼쩡거릴 수가 없어.

꽃의 사랑, 혹은 구름.

 

정부 쪽에선 비밀에 부치겠지?

군중심리란 게

사랑에 오염된다면 전략은 힘들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공기는 느끼지.

바람은 느끼고 말고.

내가 당신, 하며

 

꽃가루를 공중에 뿌려주면 공기들은 명렁해질 게네.

 

새털 옷은 하늘을 얼마나 기쁘게 할까,

사랑인데.

 

 

 

 

최근 남다른 노력과 소신 없이는 나오기 힘든 귀한 책이 나왔다. <이연주 시전집>(최측의 농간 펴냄)이다.

 

시인 이연주(1953~1992). 시인으로 짧게 살았다. 1991년에 등단해 1992년에 삶을 마감했다. 그래서 지인 또는 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나 기억될 시인이다. 시인은 특히 '매음녀' 연작시로 유명하다. 제일 먼저 찾아 읽었다.

 

한번의 잠자리 끝에/ 이렇게 살 바엔, 너는 왜 사느냐고 물었던/ 사내도 있었다./ 이렇게 살 바엔/ 왜 살아야 하는지 그녀도 모른다. - '매음녀·1' 부분.

 

이연주 시인을 대표하는 매음녀 연작시 중 가장 '유명한 매음녀 3' 전문.

최측의 농간

 

그런데 당혹스러웠다. 특히 '매음녀·3''오늘밤에도 가랑이를 열댓번 벌렸다'와 같은 부분은 더욱 그랬다. 이런 표현이 맞는가 모르겠는데, 무언가 '낭자한' 느낌이기도 했다.

 

몇 번의 마른기침 뒤 뱉어내는/ 된 가래에 추억들이 엉겨 붙는다./ 지독한 삶의 냄새로부터/ 쉬고 싶다.// 원하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함박눈 내린다.-'매음녀·4' 부분.

 

그러나 '매음녀·4'란 시는 제목을 빼고 보면, 독자들은 우리 누군가, 가진 것 없는 누군가의 삶의 비애를 이야기하는 시로도 받아들이지 않을까. 이런 부분들 때문일 것이다. 매음녀 연작시들을 다시 읽자 당혹스러운 첫 느낌과 달리, 거대한 자본과 욕망에 희생된 우리 누군가의 이야기로 와 닿았던 것이.

 

이것 봐, 총과 칼로써 네 몸을 무장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 문제는 맨몸으로 기도문 한 구절 없이 버티는 용기와 저항의 힘이란다. 기도문이란 다만 죽은 자들을 위한 문장일 뿐이니까() 제발 잊지 말아, 저 전깃불이 얼마나 큰 어둠을 감추고 있는지. - '신생아실 노트' 부분.

 

이 시는 특히 더 강한 인상으로 와 닿았다. 25년 전 시인의 말하고 싶었던 것들과 달라진 것 없는, 2016년에도 여전한 우리에게 드리운 참담한 어둠 때문이리라.

 

시집 발표 당시 문단과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는 것이 조금이나마 이해됐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노출 범위까지 규제하던 1990년대 초 누구든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매음녀를 소재로 쓴 시라 가십거리 쪽으로 더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것 아닐까?란 추측도 무너졌다. 출판사 측이 밝힌 이연주 시인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한국문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시인입니다. 시에 관심을 두다보면 당연히 만나게 되는 시인인데, 일반인들은 잘 모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일반인들이 공감할 그런 시들이 많아요. 매음녀란 시로 특히 유명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시들이 조명 받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우리 사회 억눌리고,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이야기한 시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이를테면 '신생아실 노트'란 시에 '제발 잊지 말아, 저 전깃불이 얼마나 큰 어둠을 감추고 있는지'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전깃불 대신에 '자본'이나 '권력'과 같은 것들을 넣어 음미하면 시인이 말하는 어둠이 무엇이며, 시인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이해가 쉽죠."(최측의 농간)

 

내가 이연주 시들을 만난 느낌은 뭐랄까. '내 안에서 뭔가가, 쉽게 그리고 간단하게 표현 못할 비정하며 불편한 뭔가가 몇 차례 뭉턱뭉턱 떨어지는 슬픔과 충격'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으려나.

 

유족이 디자인한 <이연주 시전집>

<이연주 시전집> 책표지. 최측의 농간

 

출판사 측에 복간 이유를 물었더니 "처음엔 남성으로서 여성의 심리 그런 것들을 좀 알고 싶기도 해서 관심 가졌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그로 인한 어둠에 관한 너무 강한 시들이어서 오래 걸리더라도 반드시 원형에 가깝게 복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시집을 낸 출판사 최측의 농간은 나오기 힘든 책들을 주로 복간한다. 이렇다보니 단 한 권의 책을 내기까지 많은 발품과 수많은 수소문을 필요로 한다. 그 과정에서 특별한 사연도 생겨나고, 숨어있던 사연들이나 미발표 작품들이 발굴되기도 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 다른 책보다 좀 더 특별한 사연으로 복간됐다고 한다.

 

"남동생 이용주씨(북 디자이너)에 의하면 시인이 고전음악에 조예가 깊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작품들을 음악적인 형식과 구성을 차용하여 교열, 배치하고자 고심이 많았다고 해요. 그래서 복간 과정에서 발굴해 수록한 시극 '끝없는 날의 사벽'이 가장 온전하게 보전되어 있는 시인의 작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등단 직후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세계사)을 출간해 문학계의 주목과 기대를 받았던 시인은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그래서 화제의 시인인데도 그간 재출판이 힘들었다고 한다. 유족을 찾을 수 없어 출판연장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인 스스로 작정하고 자신의 모든 흔적을 지운 후 자살했다. 그래서 유족 찾기가 더 힘들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실오라기 같은 연결이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파고, 또 파고들다가 고인이 활발하게 활동했다는 풀빛 동인들과 연결됐고, 유족까지 연결 되었단다.

 

책에는 시인 생전에 낸 시집의 시들과 유고집(<속죄양, 유다>(1993.세계사)의 시들이 초판 그대로 실려 있다. 그리고 등단 이전 동인지에 발표되었으나 시인 스스로 첫 시집에 수록하지 않아 사실상 미발표작에 가까운 24편의 시와 시극 1(끝없는 날의 사벽)편이 실려 있다.

 

"검정색 표지부터 속표지까지, 그리고 페이지 시 제목 배치 등 책 전반을 유족인 남동생 이용주씨가 디자인했습니다. 시인의 시 가장 큰 특징인 어둠과 어둠 속으로 너무나 빨리 사라진 시인의 삶에 맞춰 표지색도, 글씨 배치로 인한 여백도 의도적으로 이렇게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전집 제목 글씨색이나 글씨크기, 생몰년도, 출판사 이름 넣는 공간배치도 모두 유족의 뜻이구요. 속지와 시 제목 배치도 모두 유족의 뜻에 따랐습니다."

 

파독간호사였으며, 귀국 후 의정부 기지촌 인근 병원에서 수간호사로 일했던 시인 이연주에 대한 동생의 말이나 풀밭 동인들의 시인에 대한 추억, 시평 등도 들어갈 법하건만 수록하지 않았다.

 

고인 스스로 자신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려 그 흔한 사진도 없는 터, 지인들이 사사로이 간직하고 있는 사진 몇 장이나, 두 권의 시집 초판본 표지 사진이라도 들어가면 더욱 좋았을 것을. 어렵게 복간된 과정이나 유족의 책 복간 참여 사연의 편집노트, 뒷표지 속에 흔히 들어가는 근간이나 목록을 넣으면 좋았을 것 같지만, 역시 모두 생략됐다.

 

"유족에 의하면 시집을 발표한 이후 "시인이 매음녀라더라", "사생활이 지저분하고 복잡하다더라"와 같은, 사실과 다르고 근거 없는 수많은 몹쓸 소문들로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이란 시집 제목을 그리 유쾌하지 않게 받아들였다고요. 이런 이유도 있고, 시인의 시를 오로지 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과 복간 과정에 발굴된 작품까지 모든 작품을 수록한 의미를 담아 <이연주 시전집>이란 제목으로 출간했습니다."

 

까만 뒷표지에도 바코드만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앞서 말한 이유로 유족과 합의한 것이라고 한다. 고인과 유족에 대한 당연한 예의로 말이다. 두루두루 남다른 <이연주 시전집>이다.

 

김현자(ananhj) / 오마이뉴스 16.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