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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괜찮은 詩

사랑은 아무때나 오는 기 아니다

by 이성근 2020. 12. 12.

저녁에김광섭

저녁노을이박이도

편지이동식

안개밭에서임지현

절망의 양식임성숙

그리움윤채한

진정 꽃을 피울 수 있겠습니까홍광일

즐거운 편지황동규

이병률

네가 힘들 때조성용

서로 그립다는 것은조병화

미안하다 /정호승

걸음이 / 김경철

11월의 노래/ 김용택

목마른 갈증 / 한유경

비 그친 새벽 산에서- 황지우

-황인숙

막막- 홍해리

오십 미터-허연

-최덕순

모른다- 정호승

눈부처- 정호승

우리가 어느 별에서-정호승

-정일근

별 물-정윤천

 

저녁에김광섭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저녁노을이박이도

 

그리움을 숨기면 고독이 되고

슬픔을 숨기면 눈물이 되네

 

날마다 서산마루에 걸리는

저녁노을이

내 그리움 내 슬프인 것을

 

바람결에 들리는 새소리

어둠 속에서 사라지는 황톳길

저녁노을은

빛과 그늘이 한 속이 되는 시간

 

내 고독은 깊어지네

 

 

 

편지이동식

 

있던 길도

오가는 발길 없으면

금방 잡초가 자라

어느날엔가

길이 아닙니다

 

생겨난 사랑도

오가는 마음 없으면

혼자만 사랑하다

어느 날엔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사랑도

꽃 피고 별 뜨는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안개밭에서임지현

 

누가 뭐라 해도

조용히 묻히기로 했어

후미진 길모퉁이

너도 돌아가고

찢긴 바람되어

너 잃은 서러움

함께 묻기로 했어

매운 겨울 속

맨발로 걸으며

허망한 날의 누더기도

벗어버린 지금

구름인지 안개인지

에워싸인 침침한 이 길

가는 데 까지 가기로 했어

 

 

 

절망의 양식임성숙

 

어둠에 내가 먹히듯

너에게 실망하는

나에게 절망한다

 

밥먹듯 물마시듯

되풀이한 절망이다

 

어둠을 먹고 사는 올빼미마냥

밤마다 어둠에서 퍼덕이는 날개짓

그것은 어느날

내가 부활하기 위한

막다른 절망의 절정

흔적없이 산화하는 연습이다

나의 꿈이다

 

오늘도 절망의 양식을

씹고 또 씹는다

 

 

 

그리움윤채한

 

잊으려 해서

잊히는 것이 아니다

 

가슴 저 깊은 곳

함초로이 피어나는

꽃이었다가.

 

먼 먼 메아리로 스미는

접동새

울음이었다가

 

이제는

안개 낀 밤

달빛으로 남아서

눈썹에 머무는

그리움

 

그리움은

끝나지 않은

사랑이다.

 

 

진정 꽃을 피울 수 있겠습니까홍광일

 

그냥 지나는 바람처럼 생각한다면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그것으로 진정 꽃을 피울 수 있겠습니까

 

그냥 흐르는 나날처럼 보낸다면

가슴이야 후련하겠지만

그것으로 진정 별을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대 마음 하늘에 두고

한걸음 한걸음 어둠과 맞서는 발걸음 된다면

그때부터 별은 빛을 발하기 시작할 겁니다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도

앞으로 앞으로 내짓는 몸짓 하나만으로

그대가 그별빛을 본다면

꽃은 벌써 피고 있을 겁니다.

 

 

즐거운 편지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붓기 시작했다.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이병률

 

자면서 누구나

하루에 몇 번을 뒤척입니다

 

내가 뒤척일 적마다

누군가는 내 뒤척이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지구의 저 가장 안쪽 중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자면서 여러번 뒤척일 일이 생겼습니다

자다가도 가슴에서 자꾸 새가 푸드득거리는 바람에

가슴팍이 벌어지는 것 같아

벌떡 일어나 앉아야 죽지를 않겠습니다

 

어제는 오늘은 맨밥을 먹는데 입이 썼습니다

 

흐르는 것에 이유 없고

스미는 것에 어쩔 수 없어서

이렇게 나는 생겨먹었습니다

 

신에게도 신이 있다면 그 신에게 묻겠습니다

 

지구도 새로 하여금 뒤척입니까

 

자다가도 몇 번을

당신을 생각해야

이 마음에서 놓여날 수 있습니까

 

 

 

네가 힘들 때조성용

 

네가 힘들 때 곁에 있어줬던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봐

갈피를 못잡고 헤맨 때

고민 들어달라고 해놓고 펑펑 울기만 할 때

 

속 보이는 위로의 말 말고

아무런 의미 없이 "힘내"라고 하는 말 말고

 

진심으로 너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준 그 사람

절대 놓치면 안 돼.

 

그런 사람은

10년에 한 번 올까말까

아니,평생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한 사람이야

 

 

서로 그립다는 것은조병화

 

살아갈수록 당신이 나의 그리움이 되듯이

나도 그렇게 당신의 그리움이 되었으면

 

달이가고 해가 가고 세월이 가고

당신이 내게 따뜻한 그리움이 되듯이

나도 당신의 아늑한 그리움이 되었으면

 

그리움이 그리움으로 엉겨 꿈이 되어서

외로워도 외롭지 않은 긴 인생이 되듯이

 

인간사

나의 그리움 당신의 그리움이 서로 엉겨서

늙을 줄 모르는 달이 되고 해가 되고

쓸쓸해도 쓸쓸하지 않는 세월이 되었으면

 

,서로 그립다는 것은 이러한 것을.

 

 

 

미안하다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걸음이 / 김경철

 

내리는 비에

아무 생각 없이

거리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다시 찾아온

아픔을 잊기 위해

술 한 잔에 의지하고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간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마음 한구석에서

여전히

꿈틀거리는 아픔에

밤잠을 설친다

 

오늘은 잊을까

내일은 잊을까

오늘은 지워질까

내일은 지워질까

 

네온사인이 켜진 거리를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함께

속도도 없고

리듬도 없이

 

푹 숙인 고개

한 번 들지 않은 채

그저 앞으로

터벅터벅 소리 내며

거칠게 걸어간다

 

악보는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음악이 되어

세상 끝까지 울려 퍼진다

 

 

11월의 노래/ 김용택

 

해 넘어가면 당신이 더 그리워집니다

잎을 떨구며 피를 말리며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이 그리워 마을 앞에 나와

산그늘 내린 동구길 하염없이 바라보다

산그늘도 가버린 강물을 건넙니다

 

내 키를 넘는 마른 풀밭들을 헤치고

강을 건너 강가에 앉아

헌옷에 붙은 풀씨들을 떼어내며

당신 그리워 눈물납니다

못 견디겠어요

아무도 닿지 못할 세상의 외로움이

마른 풀잎 끝처럼 뼈에 스칩니다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에게 가 닿고 싶은

내 마음은 저문 강물처럼 바삐 흐르지만

나는 물 가버린 물소리처럼 허망하게

빈 산에 남아 억새꽃만 허옇게 흔듭니다

해 지고 가을은 가고 당신도 가지만

서리 녹던 내 마음의 당신 자리는

식지 않고 김납니다

 

 

 

목마른 갈증 / 한유경

 

뭔가 항상 부족해

말하면 속물이고

늘 거북등처럼 갈라진 논밭처럼

 

하고 싶은 거

해 보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곳

하는 사람은 행복할까?

더 이상의 욕망은 없어질까?

 

사랑한다는 감정의 밑바닥엔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불륜도 로맨스도 사랑이거늘

왜 양심이란 윤리적 도덕 앞에

세워두고 돌아서며 손가락질할까

 

어설픈 로맨스라도 꿈꾸어 보지만

 

가장 뜨거운 40대의 여자와

장작더미 40대의 남자는

새벽닭이 울 때까지

사랑을 나눈다 온 몸으로

손가락 마디마디

발가락 하나까지 전해져 오는 전율

 

 

 

비 그친 새벽 산에서- 황지우

 

비 그친 새벽 산에서

나는 아직 그리운 사람이 있고

산은 또 저만치서 등성이를 웅크린 채

창꽂힌 짐승처럼 더운 김을 뿜는다

이제는 그대를 잊으려하지도 않으리

산을 내려오면

산은 하늘에 두고 섬이었다

날기 위해 절벽으로 달려가는 새처럼

내 희망의 한 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황인숙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 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막막- 홍해리

 

나의 말이 너무 작아

너를 그리는 마음 다 실을 수 없어

빈 말 소리없이 너를 향해 가는 길

눈이 석 자나 쌓였다.

 

 

오십 미터-허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 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 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 하듯, 한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 가득 피어 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최덕순

 

암만 흔들어봐라

열어주나

 

모질게 갔으면 그만이지

왜 다시 와서 지랄여

 

꽃 피면 넌가 했던 거

바람 불면 넌가 했던 거

이젠 아녀

 

그려 왔으면

실컷

울다나 가라 그만

 

 

 

모른다- 정호승

 

사람들은 사랑이 끝난 뒤에도 사랑을 모른다

사랑이 다 끝난 뒤에도 끝난 줄을 모른다

창 밖에 내리던 누더기눈도

내리다 지치면 숨을 죽이고

새들도 지치면 돌아갈 줄 아는데

사람들은 누더기가 되어서도 돌아갈 줄 모른다

 

 

 

눈부처- 정호승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 되리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그대는 이 세상

그 누구도 곁에도 있지 못하고

오늘도 마음의 길을 걸으며 슬퍼하노니

그대 눈동자 어두운 골목

바람이 불고 저녁별 뜰 때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 눈부처 :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 瞳人.

 

 

 

우리가 어느 별에서-정호승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정일근

- 경주 남산

 

마음이 길을 만드네

그리움의 마음 없다면

누가 길을 만들고

그 길 지도 위에 새겨놓으리

보름달 뜨는 저녁

마음의 눈도 함께 떠

경주 남산 냉골 암봉 바윗길 따라

돌 속에 숨은 내 사랑 찾아가노라면

산이 사람들에게 풀어놓은 실타래 같은 길은

달빛 아니라도 환한 길

눈을 감고서도 찾아갈 수 있는 길

사랑아, 너는 어디에 숨어 나를 부르는지

마음이 앞서서 길을 만드네

그 길 따라 내가 가네.

 

 

 

별 물-정윤천

 

너 때문에 목이 말라서 마실 물 한 잔 따랐는데, 그릇 안에 별 모양 같은 게 떠서 어른거린다. 무슨 수로도 건져내지 못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다.

 

마른 목 속으로 천천히 별 물을 들이켜고 말았다. 그때부터 손바닥에도 스치는 손자국 위에도, 틈만 나면 묻어나오던 별의 기척을 어쩌냐. 너 든 가슴은 또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