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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왜 그 아이들은 한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나

by 이성근 2019. 6. 8.




왜 그 아이들은 한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나 저자 아리사 H. |역자 이은진|뿌리의집 |2019.05.

 

목차

한국어판 서문

감사의 말

들어가는 말: 전쟁의 유산

1부 제국의 아이들

2부 기독교의 사역과 사회복지사업

3부 세계적 입양 산업의 창출

나가는 말: 국제 입양의 한국적 기원

참고문헌

찾아보기

편집인의 글

 

 

해외입양의 숨은 열쇳말, 가부장제와 인종주의

<왜 그 아이들은 한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나>

"인종 간의 해외입양은 점령군이었던 미군의 장기 주둔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군사정책에 의해 이뤄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이 주둔했던 독일과 일본은 각각 1974년과 1972년까지 미국에 해외입양을 가장 많이 보낸 5대 국가 중 하나였다."

 

<왜 그 아이들은 한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나>(아라사 H. 오 지음, 이은진 옮김, 뿌리의 집 펴냄)은 해외입양의 숨겨진 역사를 되짚어보는 책이다. 저자 아라사 H. 오는 미국 보스턴 칼리지 역사학과 부교수로 인종, 성별, 혈연에 기반한 미국의 이민사를 연구하고 가르친다. 타인의 자녀를 품는 가장 이타주의적 행위로 여겨지는 해외입양이 가장 거리가 먼 것 같은 전쟁, 경제개발,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 이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종교 등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들여다보는 일은 한국전쟁 이후 현재까지 20만 명의 아동을 해외입양 보낸 한국에서 해외입양의 중단이 왜 이토록 지난한 일인지 깨닫게 한다. 동시에 해외입양을 중단하고 이제는 성인이 된 입양인들의 상처를 보듬는 일의 중요성과 시급성도 절감하게 한다.

 

독일과 일본 VS. 한국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에서도 미군 병사와 현지 여성들 사이에서 'GI 베이비'들이 태어났다. 독일과 일본에서 전쟁의 패배와 굴욕을 상징하는 'GI 베이비'들의 존재에 대해 두 나라는 처음에는 미국인들이 나서서 '자기네 동족'을 입양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친생모들과 민족주의에 기반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해외입양이 중단됐다.

 

"일본 정부는 이 아동들을 인정하는 차별 금지 정책을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일본에서 혼혈아를 키우는 미혼모들이 한국에서 혼혈아를 키우는 미혼모들보다 정부와 비정부기구로부터 사회적.재정적 지원을 더 많이 받았다."

 

전쟁 직후 독일과 일본에서 발생했다가 사회적 안정을 되찾은 뒤 중단된 해외입양이 한국에서는 왜 2019년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부분적으로 답하자면, 오리건주 출신의 벌목꾼이자 농부였던 해리 홀트 같은 지도자가 한국에만 있었기 때문이다...한국 정부는 입양과 이민 관련 법을 개정하고 입양 기관을 설립하여 홀트의 노력에 힘을 실어주었다. 홀트양자회(현 홀트아동복지회)는 곧 한국 아동 입양 사업을 좌우했고, 지금은 세계 유수의 국제 입양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어떤 의미에서 해리 홀트는 해외입양 산업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위대함을 알리는 수단, 해외입양

해리 홀트는 '대리입양'(입양 부모들이 아동의 출신국을 찾아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입양기관 등 대리인이 입양절차를 대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입양)'전세 비행기'(100명이 넘는 입양아동을 한 번에 이동시키기 위해 동원됐다)를 고안해냈고,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해외입양을 산업화시킬 수 있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한국 아동 입양은 곧 해외입양을 의미하게 되었고, 이 관행이 전 세계 다른 송출국과 수령국에 퍼지면서 오늘날 수십억 달러 규모의 세계적 산업이 탄생했다."

 

하지만 입양은 상품을 돈과 맞바꾸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입양을 추동하는 힘은 ''만이 아니다. 따라서 저자는 현재 해외입양은 서로 연결된 구조와 이념의 집합, '해외입양 복합체'로 이뤄져 있다고 지적한다. 입양기관, 이민 법률, 사회복지 절차 등은 구조에 속한다. 해외입양 복합체의 '이념'에는 인종 논리에 기반한 민족주의, 인도주의, 반공주의, 종교적 신념 등이 담겨 있다. 저자는 "기독교 이념을 신봉하는 미국인들에게 해외입양은 인종차별과 공산주의를 박멸하고 미국의 위대함을 널리 알릴 기회였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해외입양은 국가가 주도한 산업이었다

"박정희의 군사독재 아래서 한국은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 중 하나로 부상했고, 그와 동시에 해외입양은 국가 산업이자 한국 아동복지 정책의 영구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혼혈 아동의 탈출구로 출발했던 입양 사업은 박정희 정권 아래서 장애 아동, 가난한 집 자식, 미혼모 자식 등 한국이 돌볼 수 없거나 돌볼 생각이 없는 아동을 외국으로 치우는 통로로 바뀌었다...해외입양 산업은 한국의 '경제 기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외화를 벌어들였고, 힘 있는 서구 동맹들과의 우호를 증진했고, 과잉 인구를 조절하는 안전밸브 기능을 했고, 토착 사회복지 기관들을 개발해야 하는 정부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주었다."

 

한국이 해외입양을 통해 '경제적 이득'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해외입양을 강력하게 추동시킨 힘은 가부장적 민족주의였다. 전쟁 직후 혼혈 아동은 '아버지의 나라'로 돌려보낸다는 명분으로 내보내졌다. 입양은 미혼모와 그 자녀의 존재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수단이었다. "국가와 사회가 미혼모와 그들의 자녀를 지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해외입양이 그 틈을 메웠다." 2019년 현재도 입양아동의 90% 이상이 미혼모의 자녀다. 한국은 미혼모와 그 자녀에 대한 차별이 사법 제도, 사회 제도, 문화 체계 내에 여전히 강고하게 존재한다.

 

"1960년대부터 한국 입양 산업은 대규모 근대화 사업과 더불어 효율적인 사업으로 발전했다. 1980년대에는 투명성, 속도, 전문성, 덕분에 해외입양의 최적 표준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 기적이 사실은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이뤄졌듯이, 높은 평가를 받은 해외입양 산업 역시 가장 취약한 사회 구성원들이 값비싼 대가를 치른 결과였다. 이는 가난한 이는 가난한 가정, 미혼모, 외국에 입양된 아동들 얘기다." 전홍기혜 기자 /프레시안

 

가난했던 조국, 비행기에 실려간 아이들

한반도 허리에 휴전선이 그어진 뒤 한동안 대한민국 창공에는 희한한 비행기가 날아다녔다. 사람들은 그것을 아기 비행기라고 불렀다. 이유는 그 비행기가 한국 입양 아동을 미국으로 실어 나른 전세기였기 때문이다. 195612월부터 6112월까지 홀트양자회(현 홀트아동복지회) 주도로 아기 비행기에 실려 미국으로 건너간 아기는 약 2000명에 달한다.

 

당시 아기들은 두꺼운 흰색 마분지로 만든 상자에 누워 이역만리 떨어진 미국으로 향했다. 전세기는 2700m 이상은 날 수 없는 기종이어서 자주 낮은 고도로 비행해야 했다. 난기류를 만날 때가 많았다. 아기들은 멀미를 했다. 비행 도중 숨을 거둔 아기도 있었다. 573월 전세기에 동승한 누군가는 이런 증언을 남겼다. “(당시의 비행은) 귀청이 터질 것 같은 울음소리, 귀통증, 메스꺼움, 구토, 설사, 더러워진 옷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사랑과 정치가 만난 자리

전세기를 이용해 입양될 아기를 단체로 미국으로 옮긴 것, 바로 이 풍경은 해외 아동 입양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이런 방법을 고안해 한국 아동 입양의 끌차 역할을 했던 주인공은 홀트양자회를 세운 미국인 해리 홀트(1905~1964). 농부였던 그가 입양에 뛰어든 건 55년 한국의 혼혈아 12명을 미국으로 데려가면서부터였다. 그의 활동은 순식간에 미국에 알려졌다. 홀트는 이듬해 한국 아동 211명을 미국인 가정에 입양시켰다. 그에게 이 일은 선교 사역이었다. 홀트가 남긴 이런 기도문만 봐도 알 수 있다.

 

주님이 직접 이 일을 시작하셨고, 이 일을 완수하고 계신 분도 주님이시다. 사람들은 우리가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시편 11823절을 인용할 뿐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홀트가 입양 분야에서 거둔 중요한 혁신은 두 가지다. 첫째는 전세기 활용이며 둘째는 대리입양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전세기 활용은 대규모 입양 사업을 가능케 만들었다. 미국에 있는 예비 양부모는 대리입양을 통해 한국에 오지 않고도 아기를 입양할 수 있게 됐다. 지금으로 따지면 구매 대행 서비스 비슷한 걸 입양 분야에 도입했다고 할 수 있겠다.

 

미국의 아동 입양 역사에서 한국은 가장 중요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국가다. 미국에서 해외 아동 입양이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은 건 한국전쟁 이후부터였다. 전쟁 이후 한국이 외국에 보낸 아동 15만명 가운데 3분의 2는 미국인이 입양했다. 95년까지 한국은 미국에 아동을 가장 많이 입양 보낸 나라였다. 그렇다면 왜 미국인들은 한국 아이를 원했던 걸까.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 미국인이 가장 입양하고자 했던 아기는 금발의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이런 아이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출생률이 떨어지고, 낙태가 이뤄지고, 피임 기구 사용이 늘고, 미혼모가 직접 아이를 키우는 일이 많아지면서 아기 가뭄은 심각해졌다. 75년 자료를 보면 미국인이 백인 영아를 입양하는 데 걸린 시간은 3~7년이었다.

 

하지만 한국 아이는 달랐다. 쉽고 편하고 빠른 입양이 가능했다. 일단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런 것일 게다. 한국 아동을 원하는 미국인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초기 입양 부모들의 특징은 이랬다.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나이는 중년인 경우가 많았다. 한마디로 백인 보수주의자였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피부색이 다른 아이를 입양하려고 한 건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왜 그 아이들은 한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나의 저자는 그 이유로 기독교적 미국주의를 꼽는다. 기독교적 미국주의는 거칠게 요약하자면 기독교 정신+광범위한 책임 의식+가족이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정리할 수 있다. 냉전 시기에 미국 언론은 한국전쟁을 기독교인(남한)과 공산주의자(북한)의 싸움으로 소개했다. 미국 백인 보수주의자에게 남한 아동을 자식으로 끌어안는 일은 기독교적 민주주의의 대의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반공활동이었다.

 

아울러 그것은 아시아의 충성을 얻는 하나의 방법이었으며 미국 백인의 인종적 관대함을 입증하는 일이었다. 동시에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십자군 운동이자 선교 사역이었다. 입양 관련 시설이나 언론은 입양을 가없는 인류에 대한 미국인의 사랑으로 포장하기 위해 부모가 있는 한국 아동을 천애고아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입양의 낭만적 서사를 완성시키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그 시절 한국 고아가 미국에서 최고의 이민자였다고 말한다. “체제 전복의 위험이 있는 성인 난민이나 성적으로 위험한 전쟁신부와 달리, 장래가 촉망되는 한국 아동은 핵가족과 미국이라는 국가 가족의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이민자였다.”

서울올림픽이 막을 내린 뒤인 881214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값싼 자동차와 텔레비전으로 유명해지기 전, 한국은 고아들로 유명했다.”

 

얼마간 과장된 보도일 거라 여기겠지만 저 보도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한국 독자로서는 대한민국이 왜 그렇게 많은 아기를 미국으로 보냈을까 궁금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동 입양은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요술봉과도 같았다. 해외 입양은 한국 정부로서는 돌볼 수 없거나 돌볼 생각이 없는 아동을 외국으로 치우는 통로나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해외 입양은 한국 근대화의 중요한 요소였다남아돌고 원치 않는 아동을 외국으로 빼돌린 덕분에 한국은 자원 대부분을 국가 안보와 경제 발전에 쏟아부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입양을 남아도는 한국 아동을 해외로 내보내는 압력 밸브로 규정하거나, “허술한 사회복지 정책과 아동복지 정책의 보충제라고 표현한 대목도 만날 수 있다.

 

실제로 산업화 시절 한국의 아동 복지는 형편없었다. 아동 유기도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60년대엔 매년 4000명 넘는 아기가 버려졌고, 64년에는 그 숫자가 11000여명까지 치솟았다. “빈곤층 가정보다는 고아원이 더 부유했기 때문에빚어진 일이었다.

 

한국의 아동 입양 시스템은 현재 세계 곳곳에 자리 잡았다. 이른바 해외 입양 복합체선한 의도로 이 일에 임하고 있지만 문제점도 적지 않다. 저자는 “(현재의 입양 시장은) 아동을 상품화하고 공급하고 꾸러미처럼 외국으로 실어 나르는 장터가 되었다고 적어놓았다.

 

그렇다고 해외 아동 입양을 무조건 비판하는 내용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이 문제를 더 깊숙하게 들여다보고, 세세하게 분석하고, 가감 없이 그 역사를 알려야 한다는 데 있다. 이 밖에도 이 작품엔 흥미로우면서도 각별한 의미를 띠는 이야기와 통렬한 메시지가 수두룩하게 실려 있다. 번역도 훌륭하다. ‘왜 그 아이들은를 읽은 독자라면 올해 연말 이 작품을 올해의 책가운데 한 권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게 만들고 입양 시스템의 이면을 확인케 해준다. 뜨겁고 단단한 책이다. /국민일보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BS 잊혀진 대한민국 2- 해외입양 2005. 11. 21

 

미국에서 한국의 혼혈 아동을 입양하는 법적 근거는 난민구호법이었다. 이 법은 입양할 부모가 직접 아이를 보지 않고 기관에 권한을 위임하여 입양하는 대리 입양을 인정했고, 10세 이하의 아동 입양만 가능했다. 한국은 정부가 혼혈아의 입양에 대한 제도나 법령을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단체가 해외 입양을 주선했다. 한국 고아들을 처음 미국으로 입양시킨 사람은 해리 홀트(Harry Holt)였다. 그는 195510월에 8명의 고아를 입양시키고 홀트씨해외양자회를 설립하여 입양 사업을 시작했다.

196011고아입양특례법아동복지법이 공포됐어. 이 법을 근거로 입양 기관들이 해외 입양 절차를 맡게 됐다. [네이버 지식백과] ‘혼혈아와 해외 입양 (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 2014. 11. 13., 이임하)

 

Susan Brink's Arirang , 수잔브링크의아리랑-국외입양으로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한 여인의 일대기를 담은 장길수 감독의 1991넌 작품. 1989MBC TV 인간 시대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통해 소개된 수잔의 이야기를 영화화했다.

 

베이비 박스 저자 박선희|자음과모음 |2018.01

박선희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숙명여대 교육학과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했다. 소설가가 되기 전까지 기간제 교사, 출판사 편집자, NGO 활동가, 소극장 기획자 등 다양한 직업을 즐겁게 옮겨 다녔다. 특히 NGO 활동가로 일하면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이며 결코 그것을 다스릴 권리가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소극장 기획자로 대학로에서 일할 때는 가난하면서도 열정적이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웠다. 직장 생활 내내 재미로 소설을 습작하다가 2002문학사상에 단편소설 美美가 당선되어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인생은 흥미진진한 모험이라는 생각으로 유목민적 정신세계를 꿋꿋이 유지해 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상투적인 어른이 되는 게 싫어 영원히 철들지 않기로 결심했다. 북한산과 도봉산과 수락산이 바라보이는 11층 주사위만 한 작업실에서 작은 화분 네 개와 평화로운 동거 생활을 하고 있다.

 

모든 아동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알고 부모에 의해 양육 받을 권리가 있다.’ 이는 UN 아동권리 협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아동의 권리이다. 하지만 그 권리를 출생과 동시에 빼앗기는 아이들이 있다. 부모에게 처음 응애하고 건넨 인사가 이별의 울음이 되는 아이들, 바로 입양아다. 양육 포기각서와 입양동의서, 이 두 개의 서류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 것으로 부모는 간단하게 리사의 권리를 빼앗았다. 반면 리사가 이 권리를 되찾는 데는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친부모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연락처 등 친부모를 찾는 데 가장 필요한 정보들이 입양아특례법에 의해 친부모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공개할 수 없게 보호되고 있기 때문이다. ‘입양아특례법이라더니 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지 알 수 없다. 그 법 앞에서 리사는 또다시 버림받을 뿐이다. 리사에겐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전쟁을 치르지만 희생자는 언제나 버려진 아기, 리사일 뿐이다. 리사가 엄마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해외입양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

 

책속으로

안녕하세요. 제 미국 이름은 리사 밀러, 한국 이름은 언노운입니다.”

프로듀서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나에게 물었다.

성이 언이고 이름이 노운이라고요?”

내 한국 이름의 뜻입니다. u, n, k, n, o, w, n, 언노운. 한국어로 하면 미지,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매우 정직한 이름이지요? 풀 네임은 윤미지입니다.”

프로듀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중략)

미국 부모님이 리사를 잘 키워 주셨나 봐요.”

그런 말이 얼마나 불편한지 프로듀서 아저씨가 알 리 없었다. 이제 폭탄을 터뜨릴 차롄가?

미국 아빠는 최고였지만 죽었어요. 강도에게 총 맞았습니다. 그리고 미국 엄마는 저를 집에서 나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혼자가 되었습니다.” --- p.10~11

 

미지의 뜻은 진이 알려 주었다. 공항에서 만나 집으로 올 때 내가 물어보았다. ‘어떤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함.’ 나는 좀 충격을 받았다. 왜 그런 이름을 지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축복받지 못한 운명을 평생 광고하고 다니도록 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진은 내 이름이 신비한 느낌을 준다고 했지만 나에겐 오직 한 가지 의미로만 다가왔다. ‘내가 누군지 알 수 없음.’ --- p.24

 

시간이 지나면서 지칠 만도 했지만 그 애들은 멈추지 않았다. “네 얼굴은 똥 같고 네 눈은 단춧구멍 같아라는 말과 함께 수도 없이 옐로 칭크, 옐로 국크 하며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놀림을 받고 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을 밀어 버리거나 뺨을 때려 울릴 때가 많았다. 아이들은 나를 슬프게 하기보다는 분노하게 만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내가 아이들을 때려 양아빠 마이클과 양엄마 데이나는 몇 번이나 유치원 원장과 면담을 해야 했다. 아빠는 언제나 내 편을 들었다. (중략)

리사, 세상에 가장 중요한 진실이 하나 있어. 그게 뭔 줄 아니? 너는 틀림없는 미국인이며 내 딸이라는 거야.”

아빠는 피부색이 다른 미국인 딸을 위해 최대한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나는 아빠의 손에 키스했다. 그때 내가 바라본 것은 그의 부드러운 갈색 곱슬머리와 초록 눈동자, 하얀 뺨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들여다보았을 때, 새까만 머리카락에 까만 눈동자, 노란 얼굴을 한 계집아이가 성난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 p.47~49

 

아이비는 성장기 내내 받아야 했던 놀림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건 한 가지 질문이었다고 했다. ‘나는 누구인가.’ 껍데기는 한국인, 알맹이는 미국인. 그것까지는 인정하게 되었는데,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며 혼란스러워했다. 나는 아이비에게 분명히 말했다.

난 내가 미국인이란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어.”

자신 있게 한 말이었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였다. 아빠가 그렇다고 일러주었으니까. --- p.112

 

어느 날 아이비가 그로서리로 나를 찾아왔다. 두 뺨이 붉게 상기된 그 애는 나에게 보여 줄 게 있다고 했다. 태블릿 컴퓨터로 찾아낸 것은 LA 타임스2년 전 기사였다. 해외 입양에 관한 기사를 검색하다가 발견했다고 아이비는 말했다. 기사는 두 면으로 나뉘어 크게 실려 있었다. 첫 번째 기사의 제목은 버려진 아기들을 돌보는 남한의 목사였다. 기사의 첫 문장을 읽었다.

베이비 박스는 허름한 동네의 어느 집 한쪽 귀퉁이에 설치되어 있다.”

베이비 박스라는 말이 내 눈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기사를 계속해 읽었다.

베이비 박스에는 담요와 벨이 설치되어 박스의 문이 열리면 벨이 울린다. 이 박스는 버려지는 책들이 아니라 버려지는 아기들을 위한 것이다. 이들은 부모들이 원치 않아 버림을 받은 아기들이다……. (중략)”

기사를 읽는 동안 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이비도 같이 울었다. 베이비 박스를 만들어 버려진 아기들을 돌보는 공동체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기도 전에, 기사의 첫 단락을 읽는 순간 이미 나는 베이비 박스에 들어가 있었다. 베이비 박스. 무시무시한 비밀을 담은 두 단어가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네 고향은 바로 거기였어, 베이비 박스. --- p.121~122

 

   

한국 해외 입양 초국가적 아동 양육 실험과 분투하는 입양 서사 50년저자 캐슬린 자숙 버퀴스트|뿌리의집 |2015.05.11

원제 International Korean Adoption

 

추천의 말 . 6

한국어판 발간에 즈음하여 . 11

서문 . 13

 

1부 사회·역사적 배경 17

1장 한국인의 시각에서 본 국제 입양_김동수 . 19

2장 국제 입양의 기관화: 미국 내 한국인 입양의 역사적 기원_캐서린 시니저 초이 . 45

 

2부 새로운 가족의 형성 69

3장 청소년기 인종 간 입양아동에 대한 장기 추적 조사_윌리엄 피켈먼 . 71

4장 한국을 선택하기: 까다로운 입양부모에게 다문화주의를 팔다_크리스티 브라이언 . 89

5장 한국인 입양인의 민족적 정체감 형성_허남순 . 113

6장 자녀 양육에서 인종 및 문화가 지니는 중요성에 대한 인종 간 입양부모들의 생각_M. 엘리자베

스 봉크|윤성현|박완수|리처드 R. 마사티 . 139

 

3부 한국인 입양에 대한 성찰 159

7장 상실에 대한 기억: 해외로 입양된 한국인들의 한국인 됨_김 엘리나 . 161

8장 아이를 키우지 못한 엄마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생모들_김호수 . 181

9장 인종, 정체성, 아시아인 입양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_지앤빈 리 샤오|미아 투앤 . 209

10장 침묵의 수의(壽衣) 걷어 올리기: 진리, 적법성, 정의를 찾는 한국인 입양인들_레베커 허디스 . 229

 

4부 출생국의 관점 249

11장 한국의 아동복지와 입양의 최근 추세: 도전과 앞으로의 방향_이봉주 . 251

12장 해외 입양이 한국 내 입양과 아동복지에 미친 긍정적 영향_배태순 . 273

13장 한국인 입양 문제와 한국 대중문화에 재현된 입양인_토비아스 휘비네트 . 289

 

5부 전 세계적 전망 305

14장 정체성과 국제 입양아: 호주의 베트남 입양인과 한국 입양인 비교_킴 그레이 . 307

15장 네덜란드 한국 입양인에 대한 추적 연구: 유아기에서 중간 유년기까지_페미 유퍼|마리누스 반 이

젠도른 . 341

 

6부 실천을 위한 함의 359

16장 한국인 입양아의 심리적 행복을 예측하기 위한 구조방정식모형의 활용_윤동필 . 361

17장 아동 관련 문헌이 아시아 입양인의 입양을 어떻게 맥락화하는가_캐슬린 자숙 버퀴스트 . 381

18장 미국 내 한국 입양인의 사회심리적 세계의 재건: 새로운 의미를 찾아서_대니얼 B. (이부덕) .

405

 

7부 참고 자료 433

19장 한국인 국제 입양 관련 참고문헌_재닛 현주 클라크 . 435

결론_M. 엘리자베스 봉크|캐슬린 자숙 버퀴스트 . 479

 

부록 . 483

옮기고 나서. 493

 

출판사 서평

20155월에, 그것도 입양의 날을 맞아 이 책을 낸다.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이름했던가. 5월 또한 어떤 누군가에게는 잔인하지 않은 달이 아니거늘. 이 땅의 5월은 언제나 그렇듯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말하는 바, ‘긍정 과잉으로 가득하다. ‘어린이날어버이날에 이어 입양의 날등 날들의 깃발이 펄럭이는 긍정의 파노라마 아래에서, 정작 고통하고 있는 이들은, 자기 낳은 아이를 자기 품에서 키워내지 못한 수치와 실패를 가슴 가장 깊은 곳에 꽁꽁 묻고 애통하는 엄마들과, 가족과 사회라고 하는 성장의모판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강제 교체 당한 채 낯선 하늘 아래에서 자신의 존재의 정당성을 구축하기 위해 분투하는 해외입양인들이다.

 

5월 한 달 동안에도, 50여명의 아동들이 낯선 이들의 품에 어색하게 혹은 어리고 어린 나이에 불현 듯 감지한 생존의 본능에 따라 그 어색함 조차도 감춘 채 인천공항의 좁다란 검색대를 통과하고 있음을 우리는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자비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강제 격리의 광경에 다름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이 한 사회로부터 내뱉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종당에는 알아차리고 말 것이다. 성장모판의 강제 교체로부터 흘러나오는 이질감의 극복을 위한 분투는 일생의 과업이 되고 말 것이다. 자신의 존재와 삶의 자리의 정당성에 대한 석명을 날마다 요구받는 인간을 양산하는 이 괴이한 아동 양육시스템을 60년 동안 당당하게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영광스러워하는 이들과 함께 땅을 디디고 살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아니 잔인하다.

 

뿌리의집이 이 책 한국 해외 입양을 번역 출간하는 까닭은 바로 이런 잔인을 조금이나마 감경시켜갈 수 있을까 해서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해외입양인 권익옹호와 친생가족 중심의 양육시스템의 우선적 구축이라고 하는 시민단체로서의 뿌리의집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지지해주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상당한 수준에서 입양이 후과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에 더 집중하고 있는 책이고, 그런 점에서 국제간의 입양이 지니는 부정성에 대한 본격적 성찰을 다루고 있는 부분에는 그다지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한국사회의 해외입양담론의 새로운 전개를 촉발하기를 바라고 이 책을 낸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는 화려하게 성공한 해외 입양인에 대한 낭만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그들의 삶이 깊은 실패와 우울의 경로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준열하게 지적해 왔다. 이러한 대립은 해외입양인들을 타자화하고 우리 사회의 합리적 아동 양육시스템 구성에 관한 합리적 토론을 교란했다. 그러나 한국 해외 입양은 이런 감상적인 전제들에 대한 높은 수준의 절제력을 보여준다. 이 책은 한국계 해외 입양인들의 삶의 여정을 찬찬히 살펴보는 정교한 리서치의 결과물들과 함께 한국 해외 입양의 역사와 정책과 실천을 심도 있게 조명한 수준 높은 논문들을 묶어놓았다. 이 책은 합리적인 방식으로 한국 사회가 해외 입양의 역사를 수습하고자 할 때 진정한 영감과 깨우침을 얻도록 해주는 책이다.

 

캐슬린 자숙 버퀴스트 박사로 대표되는 한국 해외 입양의 편집자들은 서문에서 한국의 입양 담론 부재를 적확하게 지적한다. 담론의 부재는 자기 갱신 불능을 부른다. 한국의 해외입양은 한국 현대사에서 이미 환원이 불가능한 패배로 각인되었다. 자국 아동의 양육을 선진국의 신사숙녀들에게 부탁해온 이 괴이한 초국가적 아동 양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숙고와 논쟁적 담론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성찰과 논쟁 없이 사안을 수습하고 교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스물네 분의 연구자 가운데 단 세 분만 국내에서 활동하는 연구자라는 점이 다소 아쉽. 그만큼 우리가 게으르다.

 

해외 입양이라는 초국가적 아동 양육 시스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인류사의 지평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은 이 초국가적 아동 양육 시스템에서 최대의 아동 공급 국가라는 명예롭지 못한 지위를 대부분의 기간 동안 점유해왔다. 전대미문의 초국가적 아동 양육이라는 사회적 실험의 핵심 행위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 사안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며 책임감 있게 해결하려는 의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해외 입양 정책과 실천의영역에서 한국은 반세기를 훌쩍 넘기는 동안 서구적 입양 관념과 담론 나아가 물적 공세 앞에서 거세된 애완견처럼 순종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 사회가 재생산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지 모른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없다. 자녀를 출산한 여성에게 자녀 양육의 위기를 돌파할 지지 체계를 마련해주는 대신, 결별의 영원한 트라우마를 남기는 해외 입양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구미 국가들이 주인 노릇하는 초국가적 아동 양육 시스템에 선의와 찬사를 봉헌해온 질펀한 낭만은 급기야 초저출산 국가라는역진 불능의 막다른 절벽으로 우리 사회를 내몰고 있다.

 

이 책의 편집자 역시 서문에서 책의 내용을 불가피하게 구성하고 있는 출생국의 관점을 드러내어 주는 문헌들로부터 의미 있는 가르침을 얻기 어렵다는 점을 토로한다. 기껏해야 해외입양 실천의 관행에서 서구가 마련한 체계에 대해서 순응적인 문헌들뿐이라는 것이다. 편집자는 출생국에서 나온 문헌들은 입양을 아동복지의 실천 및 공공의 양심에 통합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는 매우 독특하게 보인다고 꼬집는다. 이런 점잖은 언급을 통해서 편집자는 입양 아동의 출생국인 한국에서의 담론 부재와 빈곤을 지적하는 동시에 출생국 연구자들의 입양에 관한 논의와 성찰이 깊이가 없고 그다지 존중할 만하지 못하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먼저 국가 간 아동 입양의 세계에 뛰어든핵심 국가이다. 비록 입양 송출 국가로서의 비극적 역할이긴 했으나, 핵심 행위 국가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은 모든 입양 수령 국가들과 입양 송출 국가들로 부터 송출 시스템의 선진성으로 상찬을 받았고 추종의 목표가 되었던 모델 국가였다. 국제간 의 아동입양의 선진성 여부는 입양수령국가의 입양의 안전성과 용이성을 담보하고 있느냐에달린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동과 모성의 비극적 분리 시스템이 정교하게 (사실은 가혹하게) 발달해 있는 나라였고, 입양 수령 국가의 입양부모들이 주저 없이 입양을 결심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위생과 의료적 과정을 입양 송출 시스템 내부에 갖춘 나라였다. 거기다가 입양부모는 입양기관이 보내준 아동 추천서와 사진만을 보고 입양을 결심해도 되었고 번거롭게 한국을 오가지 않아도 되었다. 서구인들은 인격적 접촉 없이 사진만으로도 얼마든지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깃털처럼 가볍고 어처구니없는 그런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친절하게도 해외 유학생을 비롯한 여행객을 아동 호송인으로 붙여서 현지의 공항에서 아동을 입양부모에게 인도했다. 이는 사실상 카탈로그를 보고 상품을 구매하는 시스템과 다를 바 없었다.

 

2012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의해서 입양부모들이 한국에 와서 아동과의 대면 접촉에 근거한 입양 판결을 받아 아동을 직접 데리고 가도록 하는 혁신적인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까지 거의 60년 동안 우편 주문 배송 아동을 공급하는 국가라는 비난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그러나 이 방면에 종사하는 이들은 우편 주문 방식의 간편성과 더불어 과도한 친절인 동시에 아동 인권 훼손적일 수도 있는 호송 시스템을 스스로 혁신하고자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명예롭게 여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나드는 선진국이자 경제대국이 된 지금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선진국이 되고 경제대국이 되었다는 말은 지구촌 공동체가 도처에서 직면하고 있는 곤경에 대해 책임을 기꺼이 분담하는 성숙한 나라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나라는 그 반대의 길에 서 있음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여전히 자국 아동의 양육을 구미 각국의 신사숙녀들에게 사사로이 부탁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종종 그 정당성을 옹호하기까지 한다. 물론 이런 근거 없이 펼치는 정당성 옹호는 학대나 파양이나 사사로운 재입양 심지어 폭행과 사망이라는 잔혹하고 비극적인 사건들을 통해 종종 배반당하지만, 오리엔탈리즘에 젖은 눈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선진국의 입양을 실천한 아름다운 신사숙녀가그럴 리는 없다고 믿는 몽매를 통해서 부인되곤 한다. 친생가족과 결별케 하고 피부와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세상으로 이송해서아동의 의사를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이는 사실상 강제 이주이다아동 성장의 모판을 일거에 바꿔치기하는 이 괴이한 시스템에 대한 성찰과 그에 따르는정책과 실천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기껏해야 1년에 열 혹은 스물의 영아를 송출하기 위해겨우 세 개에 불과한 국내의 해외 입양기관들이 구미 각국에 흩어진 해외 입양 사업자들과맺는 협약에 대해 정부는 손을 놓고 있고, 해외 입양기관들은 그것을 자발적으로 포기할 생

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연구자들 중 일부는 이런 기관들을 위해 이론적 지지

의 토대를 기꺼이 제공하고 있는 것이 오늘 이 땅의 현실이다.

 

 

해외 입양과 한국 민족주의 저자 이삼돌|역자 뿌리의 집|소나무 |2008.08

한국 대중문화에 나타난 해외 입양과 입양 한국인의 모습

 

토비아스 휘비네트(한국이름 이삼돌)는 여수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가 전라도 어디를 지나던 19719, 생후 1개월의 나이로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 19723월 스웨덴으로 입양되어 모탈라라는 도시에서 자랐다. 그후 웁살라대학을 졸업하고 스톡홀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책은 그의 스톡홀름대학 동양어과 한국학 박사논문을 번역한 것이다. 한국의 입양문제와 한국 미디어 및 대중문화에 나타난 입양 한국인의 모습을 분석하면서, 그는 한국 민족주의의 진면목을 가차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는 현재 스웨덴 봇키르카의 다문화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스웨덴의 인종간 입양인의 인종주의와 차별, 초인종성문제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해외입양 및 학제간 한국입양연구, 비판적 입양연구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포괄적인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다.

 

목차

1장 해외 입양의 문화적?정치적 의미

관련 및 비교 연구

인종주의적·탈식민주의적 민족주의

탈식민주의적 관점과 과정

동시대 문화 텍스트 읽기

 

2장 한국 입양의 역사

한국의 입양

초기의 사례

전쟁의 아이들

입양 산업

새로운 방향

인구학적 개요

 

3장 한국의 해외 입양 문제

고아를 수출하는 나라

미디어 속의 입양 한국인

김대중 정부와 입양 문제

한국 대중문화 속의 입양

 

4장 국가는 여성이다

혈통의 모계화

한국의 시련과 치욕

한국 민족주의의 개입

 

5장 한국인다움과 백인다움을 넘어

입양인의 고통스러운 삶

패싱Passing이라는 위험한 행위

3 영역의 존재

 

6장 흩어진 가족

가족 분단의 표상

버려진abjected 한국 아이들

분열된 국가의 치유

 

7장 세계 속의 코리아타운을 그리다

세계화의 한국적 경험

해외의 형제자매들을 방문하다

초국적 한국인 공동체

 

8장 버림받은 자가 버린 이를 위로하는 틈새의 공간

한국의 해외 입양과 입양문제

한국 대중문화에 비친 입양 한국인의 모습

과거와의 화해와 미래에 대한 상상 사이에서

 

역자 후기

참고문헌

부록: 해외 입양 통계

1. 한국의 국제 입양 통계(1953-2004)

2. 입양 국가와 입양 숫자(1953-2004)

3. 입양 한국인의 가족배경 및 사유(1958-2004)

4. 입양 한국인의 유형(1958~2004)

 

출판사 서평

민족을 확장된 가족으로 이야기하면서도, 그토록 많은 자기 아기들을 해외에 내보내는 국가가 지니는 함의는 무엇인가?

 

삼돌이가 돌아왔다!

그는 우리 사회가 수치 속에 잉태하고 어둠 속에 버린 아기였다. 집안을 깨끗이 하기 위해 못쓰는 것들을 청소하듯이, 부끄럽고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던 삼돌이는 바다 건너 머나먼 스웨덴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잊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 혼자 돌아온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해외에 방기한 156천의 명의 목소리와 함께 혼령처럼 동아온 것이다. 세계 일류 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이 저지른 악행을 거침없이 고발하는 박사학위 논문과 함께. 문제는 그 부끄러운 짓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잘못을 고백하고, 통회하고, 있을 수 없는 그 악행의 고리를 끊기 전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삼돌이는 단언한다.

 

이삼돌(스웨덴 이름 토비아스 휘비네트)2004년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동양어학부에 박사학위 신청논문으로 제출한 이 텍스트는 다음해 같은 대학에서 영문(Comforting an Orphaned Nation)으로 출간되었고, 구미에서 입양인과 디아스포라 문제는 논할 때 빠지지 않고 인용하는 텍스트가 되었다. 현재는 독일어판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이 텍스트의 가치에 대해 같은 입양인이자 ??피의 언어The Language of Blood??의 저자인 제인 정 트렌카Jane Jeong Trenka는 다음과 같은 평을 했다.

 

이 책의 영어판은 영어권 독자에게 한국 해외입양 사업의 역사적.정치적 진상을 제공했다. …… 이 책이 출판된 후 영어 사용권에서는 입양에 관련된 거의 모든 연구에서 인용되고 있다. 이 책이 서구의 학계는 물론, 입양 문제를 다루는 운동과 예술 창작에 끼친 영향이 지나치다고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 휘비네트의 이 작업은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입양 한국인이 추방자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국을 수치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조국의 고난과 아픔을 대변하는 축소판의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입양인과 생부모, 나아가 입양 한국인과 디아스포라 한국인, 남북한의 한국인과 입양 한국인 사이의 화해를 요청하고 초국가적 연대를 보장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피력하고 있다.”

 

제인 정 트렌카의 이러한 평은 과장이 아니다. 이삼돌박사의 영문판은 인터넷에서 2008815일 현재 34,499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15년간 스웨덴대학이 산출한 학술논문 가운데 가장 조회건수가 높은 것이다. 이러한 높은 관심의 배경으로 유럽 선진 각국에 많은 수의 해외 입양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선 거론할 수 있다. 또 현재 세계 학계의 동향이 민족성, 계급성, 성적 정체성을 벗어나는 제3의 존재들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해외 입양을 바라본 기존의 복지적, 오리엔탈리즘적, 구원자적 입장을 비판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그 문제를 바라볼 것을 촉구한 이삼돌박사의 독창성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곧 이삼돌은 입양 한국인이 엘리트 백인 가정에 입양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감사해야만 하거나 특권을 누리는 존재가 될 수 없다고 자리매김한다. 그는 매우 이질적이고, 탈영토화되어 있으며, 부모가 없다는 유일무이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입양 한국인이라는 종족의 발생ethnogenesis에 주목하라고 요구한다. 이 새로운 종족은 입양을 보낸 한국의 민족주의와 그들을 받아들인 서구의 오리엔탈리즘 모두를 뛰어넘는 제3의 영역을 개척하는 종족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한국 민족주의의 집요한 소유욕

한국 사회가 입양인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이삼돌은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이 연구는 내가 성인 입양인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한 1996년 여름 시작되었다. 나는 스웨덴 주재 한국대사관으로부터 정중하게 초청을 받아 준정부 행사인 세계 한민족 축전에 참가했던 것이다. 수백 명의 재외 한국인이 참석했는데, 그 가운데는 노르웨이.덴마크.스위스.미국 등에서 온 20명 정도의 입양인도 있었다. 사실 그것은 잔치라기보다 진정한 한국인이 되기 위한 속성 과정에 가까웠다. 취재기자들은 축전 기간 내내 나를 포함한 입양인들을 따라 다녔다. 그들은 입양인들의 드라마틱한 개인사를 거듭거듭 캐묻고, 한국 부모와의 눈물겨운 재회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에게 한복을 차려 입히기도 하고, 젓가락을 사용해 한국 음식을 먹도록 부탁하거나, 한국의 전통 승무를 배우는 장면을 억지로 연출시켜 사진들을 찍어댔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사적인 질문들로 인해 불쾌하기가 그지없었던 한편,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주최 측이 우리가 무엇을 느끼기를 바라는지, 기자들이 우리에게 듣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입양 국가와 가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피상적인 차원에서만 서양인일 뿐 본질적으로는 다른 어떤 나라 사람도 아닌 바로 한국인이라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우리는 마침내 모국의 집으로 돌아온 존재였으며, 갑자기 한국 문화에 대해 눈이 뜨이기 시작했고, 오매불망 그리워한 것처럼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했다. 또한 항상 한국의 친척들을, 그 누구보다도 한국의 엄마를 찾아서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묘사하고 싶어 했다.”

 

이러한 증상을 이삼돌은 염치도 없이 해외 입양인에 대해 재한국인화를 도모하는 한국 민족주의의 거대한 식성으로 진단한다. 이삼돌이 수많은 참고문헌과 까다로우면서도 복합적인 서술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의의로 단순하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문제 해결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혈연과 동질성에 바탕을 둔 한국 민족주의의 도식적 상상력을 버리지 않는 한, 입양인의 진상에 접근할 수도, 그 해결책을 산출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보다 포괄적이고 역동적인 제3 영역의 아이덴티티 생성을 요청한다. 곧 납북한의 한국인, 지구촌 곳곳에 포진한 한국인 디아스포라, 그리고 정신대 할머니와 입양 한국인이 진정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사고와 행동의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책속으로

서양 국가에서 한국 아이들의 수요가 증가한 이유는 서양 입양 시장에서 백인 아동이 급속도로 부족해진 데에도 있었다. 낙태의 합법화와 피임 기구 사용의 증가, 독신모에 대한 사회복지 혜택과 이에 따른 사회적 관용이 늘어나 입양 대상 아동이 감소했던 것이다. 또한 1970년대 중반부터 일어난 식민지 토착민이나 소수민족 아동의 인종 간 입양에 대한 "도덕적" 금기시 경향도 일조했다. 해외 입양의 경우 생모가 마음을 바꿔 다시 자녀를 원하거나 연락하고자 할 위험성이 적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1968년 혁명 이후 주요 공헌 세력으로서 여성의 권리가 전반적으로 강화되었다는 점 등이 한국에서 오는 입양이 인기를 얻은 또 다른 원인이었다(Farrar, 1999; Solonger, 1992 ; Zelizer, 1985).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에서의 입양은 해외 입양과 거의 동일시되었으며, 한국과 서양 국가 사이의 우호 관계를 발전시키는 연계 정책으로 이용되었다. 1973년 홀트아동복지회의 잭 테이스Jack Theis 부장은 "해외로 입양된 한국 고아들은 국가 최고의 친선 대사가 되었다"고 말했다. (95, '2장 한국 입양의 역사' 중에서)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 이식된 삶에 대한 당사자들의 목소리 저자 토비아스 휘비네트, 수나, 제니 라이트, 킴 딜, 마크 해글런드|역자 뿌리의집|뿌리의집 |2012.05

원제 Outsiders within : writing on transracial adoption

 

-저자 토비아스 휘비네트(TOBIAS H?BINETTE, 한국명 이삼돌)는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동양언어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톡홀름 근교 봇키르카(BOTKYRKA)에 위치한 다문화센터(MULTICULURE CENTER)의 연구원이며, 쇠데르테른 대학교(SODERTORN UNIVERSITY)의 강사이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 COMFORTING AN ORPHANED NATION해외입양과 한국민족주의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도 출판되었다. 한국의 해외입양에 관련한 자료를 망라한 아카이브를 운영하고 있으며, 트랙(TRUTH AND RECONCILIATION FOR THE ADOPTION COMMUNITY OF KOREA)의 회원이기도 하다.

 

-저자 수나(SOO NA)는 미국 버지니아로 입양되기 전 한국에서 6년 동안 살았다. 햄프셔 대학에서 학사를 받았으며 현재는 워싱턴에서 살고 있다.

 

-저자 제니 라이트(JENI C. WRIGHT)는 폴란드/독일/아프리칸 아메리칸 혼혈 여성으로, 뉴잉글랜드의 백인 가정에 생후 7개월 때 입양되었다. 그녀가 9살이던 해 입양된 다른 혼혈 자매, 베트남계 입양인 오빠, 입양되지 않은 백인 자매와 함께 자랐다.

 

-저자 킴 딜(KIM DIEHL)은 마이애미 플로리다에 입양되어 줄곧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녀는 사람들을 가두고 통제하는 것이 우리를 안전하게 만든다는 믿음에 도전함으로써 감옥산업복합체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국제적 운동 단체의 조직 구성원이다.

 

-저자 마크 해글런드(MARK HAGLAND)1960년 한국에서 태어나 위스콘신 밀워키에서 자랐다.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교에서 영어 학사를 받고 1982년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저널리즘 석사를 취득했다. 현재 시카고에서 살며 의료 정책, 비즈니스 등의 분야에 글을 쓰는 전문기자이다. 남성 동성애자로서 20여 년 넘게 그의 배우자와 살고 있으며 혼혈인 딸을 입양하여 키우고 있다.

 

-도로시 로버츠(DOROTHY ROBERTS)는 노스웨스턴 법대 교수이며 사회학, 아프리칸 아메리칸학, 정책 연구원, 빈곤연구 공동센터에 임용되어 있다. 예일대학에서 학사를 받았으며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생식과 모성애, 아동복지에 관한 법적 문제 내의 젠더, 인종, 계층의 상호작용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 및 강의를 진행해왔다. SHATTERED BONDSKILLING THE BLACK BODY 등의 저서로 상을 받기도 했다

 

-킴벌리 파디(KIMBERLY R. FARDY)는 오클랜드의 저소득/우범지대의 젊은 유색인종 여성들의 자기 동기부여와 자기 결정권을 위한 사회경제정의 조직인 YOUNG WOMEN UNITED FOR OAKLAND의 임원이다.

 

-엘렌 배리(ELLEN M. BARRY)아이를 가진 수감자를 위한 법률 서비스의 설립 이사이며 수감 여성을 위한 전미 네트워크의 공동 회장이다. 수감 여성을 위해 일한 공로로 소로스 시니어 저스티스(SOROS SENIOR JUSTICE) 펠로십과 맥아더 지니어스 지원금(MACARTHUR “GENIUS” GRANT)을 받았다. 2005년에는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라갔다.

 

-로라 브릭스(LAURA BRIGGS)는 입양부모이며, 여성학 부교수이면서 역사학, 인류학, 라틴아메리칸학 쪽에도 연관되어 있다. REPRODUCING EMPIRE: RACE, SEX, SCIENCE, AND U.S. IMPERIALISM IN PUERTO RICO의 저자이며 관심 연구 분야는 교육, 테크놀로지, 우생학, 재생기술이다.

 

-김 박 넬슨(KIM PARK NELSON)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미네소타 세인트폴의 백인 가정에 입양되었다. 미네소타 대학 미국학 박사 논문에서 그녀는 한국계 입양인들을 냉전시대 이후 한미 지정학 관계의 상징으로, 입양에 관한 인종적?문화적 담론을 통제하도록 조직된 동기를 부여받은 배우들로 보았다.

 

-패트릭 맥더모트(PATRICK MCDERMOTT)는 매사추세츠 살렘 주립대에서 라틴아메리카학과 라티노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하버드 록펠러 센터에서 열린 라티노학회에서 엘살바도르 이민자에 관한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엘살바도르의 무장 갈등 탓에 흩어진 가족들을 연결해주는 NGOPRO-BUSQUEDA에서 일했고, 여타 중미 이민 조직 활동에 활발히 참여해왔다.

 

-샨드라 스피어스(SHANDRA SPEARS)는 배우이자 가수이며 작가로서 북미 전반에 걸쳐 공연하고 작품이 읽혀졌다. 연극과 커뮤니케이션학 학사를 받았으며 조지 브라운대학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과 아동을 위한 상담과 지지 프로그램에서 강사를 맡고 있다. 미국 인디언 오지브웨이 부족 출신인 그녀는 온타리오의 채텀에서 자랐으며 현재는 토론토에 살고 있다.

 

-하이디 키웨틴피네식 스타크(HEIDI KIIWETINEPINESIIK STARK)는 미네소타 대학에서 미국인디언학으로 학사를 받았다. 포드 재단(FORD FOUNDATION) 펠로십을 받고 미네소타 대학의 미국학 박사 과정에 있다.

 

-케켁 키웨틴피네식 스타크(KEKEK JASON TODD STARK)는 부시 리더십(BUSH LEADERSHIP) 펠로십을 받았으며 햄라인 법대에 다니고 있다. 미니애폴리스 아메리칸인디언 센터에서 인디언 아동복지법 법원 모니터 일을 하였다.

 

-재란 김(JAE RAN KIM)은 한국에서 태어나 1971년에 미네소타로 입양되었다. 그녀가 김치를 처음 먹은 것은 서른 살 때였다. 2005년에 한국으로의 두 번째 여행을 마치고 나서 그녀는 법적으로 그녀의 원래 한국 이름으로 개명했다. 미네소타 대학 사회복지 분과의 TITLE IV-E 아동복지 학자이며, 그곳에서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녀의 시와 소설, 에세이는 KOREAN QUARTERLY, KOREAN JOURNAL, MINNESOTA MONTHLY, 그리고 STAR TRIBUNE지에 실린 바 있다. 두 아이, 배우자와 함께 미니애폴리스에서 살고 있다.

 

-섀넌 기브니(SHANNON GIBNEY)는 미국 내에서 백인 가정으로 입양된 혼혈 흑인 여성이다. 다수의 지면에 소설과 비소설, 시를 기고했고 단편집으로 2002년 허스턴 작가상(HURSTON WRIGHT AWARD)를 수상하였다. 2005년 부시 아티스트(BUSH ARTIST) 펠로십을 받았으며 인디애나 대학의 MFA프로그램에서 소설을 전공한 후 INDIANA REVIEW의 편집자로 활동하였다. 최근엔 소설 HANK AARON’S DAUGHTER를 펴냈다.

 

-베스 경 로(BETH KYONG LO)는 서울에서 태어나 1975년에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아이들로 가득찬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지 않거나 임상심리학 박사 과정 작업을 하지 않을 때 그녀는 소설을 쓰거나 창작 비소설을 쓰며 시간을 보낸다. 그녀의 글은 SEEDS FROM A SILENT TREE, A VIEW FROM THE LOFT 등의 책과 COLORS MAGAZINE, PAJ NTAUB VOICE, ASIAN AMERICAN RENAISSANCE JOURNAL등에서 볼 수 있다.

 

-브라이언 타오 워라(BRYAN THAO WORRA)19731월 라오스의 비엔티엔에서 출생했으며 미국인 비행사에게 입양되었고 현재 미네소타의 세인트폴에 거주하고 있다. 가장 많이 책을 낸 라오스인 작가로서 THE OTHER SIDE OF THE EYE, TOUCHING DETONATIONS, WINTER INK, BARROW AND THE TUK TUK DIARIES: MY DINNER WITH CLUSTER BOMB 등의 저서가 있다. 미국 정부가 수여하는 예술 기금 중 문학 분야에서 라오스계 미국 작가로선 처음으로 수여자가 되었다. 2009년에는 미네소타 주에서 수여하는 아시안 퍼시픽 리더십(ASIAN PACIFIC LEADERSHIP) 상을 받았다.

 

-존 레이블(JOHN RAIBLE)은 흑인 혈통과 영국/아일랜드/프랑스/노르웨이계의 혼혈 입양인이다. 흑인 입양 부모와 여러 해를 산 뒤 1962년에 입양되었다. 다문화교육에 관한 석사를 가지고 있으며 매사추세츠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무리하고 있다. JOHN RAIBLE onLINE이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인종간 입양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NYSCCC 웹사이트의 전문가에게 물어보세요페이지에 올라온 질문에 답변을 달기도 한다. 흑인 아이 두 명을 입양한 입양 부모이기도 하다.

 

-(RON M.)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1961년에 태어나 생후 6개월에 스코틀랜드의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고 가족 전체가 1970년에 호주로 이민갔다. 서른 살에 스코틀랜드 생모를 찾았고 이후 카슈미르 출신의 생부를 찾았다. 호주 인권과 평등 기회 커미션에서 일하고 있으며 20대 초반의 딸을 둔 아버지이다. 다른 나라에서 온 아이들의 입양을 앞두고 있는 부모들을 위한 워크숍에 정기적으로 강연자로 서고 있다.

 

-하이디 린 아델스만(HEIDI LYNN ADELSMAN)은 미네소타 대학을 졸업했으며 미니애폴리스의 역사적 건물들, 학교의 인종분리, 환경정의에 대해 연구하고 미네소타 지역의 다양한 지면에 글을 쓰고 있다. 인종간 입양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1960년대의 미네소타 인종간 입양의 선봉에 있던 자신의 가족이 겪은 일들에서 비롯했다. 유색인종인 남동생은 그녀의 어머니가 일했던 기관을 통해 1966년에 입양되었다.

 

-레이첼 키 콜리어(RACHEL QUY COLLIER)1974년 베트남에서 태어나 이듬해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이후 그녀는 모국과 입양국 둘 다에서 글을 쓰고, 편집하고, 강의하고, 사회복지 운동을 했다. 현재는 캘리포니아에서 배우자와 함께 살고 있다.

 

-그레고리 폴 최(GREGORY PAUL CHOY)는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에서 6년간 거주하며 미네소타 대학에서 인문학을, 세인트토마스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가르쳤다.

       

-캐서린 세니자 최(CATHERINE CENIZA CHOY)UC BERKELEY의 민족학부 부교수로서 아시안 아메리칸 문학을 가르치며, 2003년에는 아시안 국제 입양의 역사를 조명한 EMPIRE OF CARE: NURSING AND MIGRATION IN FILIPINO AMERICAN HISTORY를 저술하였다. 2007년에는 INTERNATIONAL KOREAN ADOPTION: A FIFTY-YEAR HISTORY OF POLICY AND PRACTICE 중에서 INSTITUTIONALIZING INTERNATIONAL ADOPTION: THE HISTORICAL ORIGINS OF KOREAN ADOPTION IN THE UNITED STATES를 집필하였다. 두 사람의 공동 저작물로는 2003년 출간된 THE AMERICAN CHILD, EDS. CAROLINE LEVANDER AND CAROL SINGLEY에 수록된 TRANSFORMATIVE TERRAINS: KOREAN AMERICAN ADOPTEES AND THE SOCIAL CONSTRUCTIONS OF AN AMERICAN CHILDHOOD가 있다.

 

-에이미 인자 나프즈거(AMI INJA NAFZGER, 한국명 진인자)1975년 한국의 전주에서 4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입양되어 위스콘신에서 자랐다. 미네소타 오스버그 칼리지에서 사회복지, 사회학, 미국 인디언학을 전공했다. 1996년에 한국으로 이주하여 1998GOAL을 공동 설립했다. 2007년에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 시에 소재한 비영리 단체 어답소스(ADOPSOURCE)를 창설했고 2012년 미네소타 주정부의 입양 문제를 다루는 부서의 최고책임자가 되었다.

 

-커스틴 후미 슬로트(KIRSTEN HOO-MI SLOTH)1973년에 한국에서 태어나 생후 9개월쯤에 덴마크로 입양되었다. 정치학 석사이며 코펜하겐의 시장조사 회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1999년 이후로는 덴마크의 한국계 입양인 연합인 코리아클럽(KOREA KLUBBEN)의 이사회 구성원으로 있다.

 

-인디고 윌리엄스 윌링(INDIGO WILLIAMS WILLING)는 베트남 사이공에서 호주 시드니로 1972년에 입양되었다. 베트남 국제입양인 모임(ADOPTED VIETNAMESE INTERNATIONAL)을 세웠으며 시드니 기술대학의 연구생으로서 MIT와 예일대에서 2002년에 작업을 발표했다. THE REVIEW OF VIETNAMESE STUDIES와 베트남 호주 작가들의 단편집인 PHOENIX에서 그녀의 글을 볼 수 있다.

 

-페를리타 해리스(PERLITA HARRIS)는 인도 태생의 40대 여성으로 5세 이전에 입양되었으며 친생가족 모두와 재회했다. 인종간 입양에 관한 책들을 편집했고 영국 브리스톨 대학의 정치학 분과에서 사회복지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서니 조(SUNNY JO)30대의 한국계 입양인 작가이자 활동가이다. 그녀는 납치되어 18개월에 노르웨이로 입양되었고 현재는 스웨덴에 살고 있다. 한국에서 친생가족을 다시 만났으며 2000년에는 미국으로 입양된 친동생과 만났다. 그녀는 한국계 입양인에 관한 온라인 토론장이자 정보포럼인 K@W의 개설자이다.

 

-샌드라 화이트 호크(SANDRA WHITE HAWK)는 로즈버드 인디언 보호구역에 있는 시칸구 라코타 부족 출신의 입양인이다. 현재 자녀 셋과 손자 셋이 있다. FNOA의 공동설립자이자 임원으로서 미국과 캐나다의 집회에 참여하곤 하는 그녀는 입양과 위탁양육 제도가 미국 원주민에게 끼치는 영향력에 관한 대변인이고 전통 무예가이기도 하다.

 

저자 (엮음) : 제인 정 트렌카(JANE JEONG TRENKA)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TRACK)의 대표. 1972년 서울 출생. 생후 6개월 만에 친언니와 함께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1995년 한국으로 돌아와 친가족과 만났다. 그녀는 생모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생모가 그녀를 찾았기 때문이다. 피의 언어(THE LANGUAGE OF BLOOD)(한국어판은 와이갤리에서 출간), 덧없는 환영(FUGITIVE VISIONS)(한국어판은 2012창비에서 출간 예정)의 저자이며 2003년 가을 반즈앤노블이 정한 신인작가로 선정되고, 2004년 미네소타 북어워드 자서전’, ‘새로운 목소리부문의 상을 받았다. 현재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인터뷰 문의: 02-3210-2451(뿌리의 집) 010-5444-2451(김도현 목사))

 

저자 (엮음) : 줄리아 치니에르 오패러(JULIA CHINYERE OPARAH)

1967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영국의 백인 가정에 입양되었다. 생부의 혈통에 따라 나이지리아 오웨리의 우모초케족 구성원으로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여성교양대학인 밀스칼리지의 인종학 교수인 그녀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인종간 입양인을 지원하는 그룹인 산코파(SANKOFA)의 공동설립자다. 저서로 OTHER KINDS OF DREAMS가 있으며 COLOR OF VIOLENCE, GLOBAL LOCKDOWN, ACTIVIST SCHOLARSHIP 등 감옥폐지운동, 비폭력운동, 인종차별 반대, 페미니즘, 사회 변혁을 촉구하는 책들을 편집했다.

 

저자 (엮음) : 선영 신(SUN YUNG SHIN)

1974년 서울 출생. 홀트아동복지회의 기록에 의하면 파출소 앞에 유기되었다. 1975년 미국 시카고의 백인 가정에 입양되고 1978년에 미국 시민이 되었다. 그녀의 이름과 사진은 미국 고등학교 교과서의 이민란에 실렸다. 2004년 한글과 영어로 씌어진 동화집 쿠퍼의 레슨(COOPER’S LESSON), 2012년에는 시집 ROUGH, AND SAVAGE를 펴냈다. 시집 순 검정 치마(SKIRT FULL OF BLACK)2008년 제11회 아시안아메리칸 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가 되었다.

 

한국 사회에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던 해외입양의 면모.

휴머니즘으로 포장된 인종주의에 대해 말한다.

 

해외입양 문제의 해결을 모색하는 사단법인 뿌리의 집> 산하의 출판사 뿌리의 집>에서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Outsiders Within)을 출간하였다. 인종간 입양이란 입양가정의 인종과 입양아동의 인종이 다른 경우를 지칭한다. 이 책은 인종간 입양에 대해, 입양인 당사자들이 그들의 경험을 직접 술회하고 사회적 분석을 내린 글들을 엮은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는 그동안 성공한 해외입양인의 금의환향 사례에 가려 조명 받지 못했던 대다수 해외입양인들의 면면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입양인 당사자가 아닌 입양기관과 입양부모들이 주도해온 입양 담론의 역사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입양에 대해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가장 논쟁적인 핵심 저서이다. 입양이 입양삼자(친생부모, 입양부모, 입양인)를 뛰어넘은 거대한 사회 권력이 낳은 현상이고 그로 인한 고통을 입양인 자신들 외에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성인이 된 입양인의 저술과 예술작품을 통해 표출했기 때문이다.

 

입양이 선한 것인가 악한 것인가를 둘러싼 오래된 논쟁에서, 보다 사회적으로 권력이 있고 부유한 층에 속하며 강력한 축을 이루는 입양부모나 예비 입양부모들 중 일부는 여전히 이 책의 필진이 출발한 지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적응에 실패한 자들의 불만을 모아 놓은 것으로 폄하하며 배신감 속에서 방어적으로 접근한다. 그러나 이 책의 필진은 사회부적응자도 아니고 실패한 사람들도 아니다. 또한 입양부모에 대해 개인적인 원망과 불만을 토로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삶에 대해 털어놓고 입양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한 자신의 행동이 자칫 그들이 사랑하는 입양부모에 대한 배신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나온 결과물이 이 책이다. 필진은 거듭 당부하고 있다. 입양 문제를 개인적인 사랑과 수고의 문제로 이해하려고만 하는 것이 바로 입양인들이 삶에서 겪어온 고통의 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에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점점 산업화되어가는 인종간 입양 관행을 폐기하기 위해서, 이 책은 인간 존재로서의 출생권은 교환의 대상물이 아니라는 인식의 확산을 강조하고, 자본주의의 거대한 권력에서 벗어나 유색인과 제3세계, 가난한 여성들이 자신이 낳은 아이를 떠나보내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전지구적 변화를 촉구한다.

 

인종간 입양의 의미

이제까지 인종간 입양은 미국 국내 입양 중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인종이 다른 경우를 지칭해왔다. 그리고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은 입양에 대해서는 국제입양, 해외입양 등의 말로 구분해 왔다. 하지만 이 책에선 입양가정과 입양아동의 인종이 다른 경우를 모두 통틀어 인종간 입양이라 칭함으로써 이와 같은 아동 재배치가 입양아동에게 야기하는 문제의 공통 맥락을 짚어낸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경우에도 대부분 유색인 아동이 백인 가정에 입양되었으며 그 역방향, 즉 백인 아동이 유색인 가정에 입양되는 경우는 극소수로서 대체로 극렬한 사회적 반대에 부딪혔다.

 

이 책은 이렇게 인종간 입양의 대부분을 이루는 방향성, 즉 유색인 가정(사회/국가)에서 태어난 아동이 백인 가정(사회/국가)으로 재배치되는 흐름에 주목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여, 전지구적으로 관철되어 온 백인 우월주의, 식민주의 사상, 신자유주의적 경제 권력을 거시적 원인으로 지목한다. 동시에 그 결과로서 유색인종과 가난한 여성의 모성이 훼손되어 왔고 그들의 자녀인 인종간 입양인이, 백인 부모의 사랑의 깊이와 상관없이 겪은 사회적 실종의 고통과 상처를 당사자의 술회를 통해 보여준다.

 

한국의 경우에는 해외로 입양된 아동 대다수가 백인 가정으로 이동되었으며 한국 내에서 한국인종이 아닌 아이를 한국 가정에 입양한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인종간 입양인해외입양인과 거의 같다. 그러나 이제 인종간 입양이란 용어를 통해, 전쟁과 분단 이후 이어진 급격한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시작된 거대한 아동 이주 현상-소위 아동 수출이 한국 내에서의 인종 차별뿐 아니라 전지구적 인종주의에 충실한 현상이었음이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당사자의 권위에 기초한 최초의 입양 담론서

-입양에 대해 말할 최적의 위치에 있는 자는 입양인 자신이다.

 

오늘날까지 입양에 관한 이야기와 해석은 이른바 입양전문가와 입양부모의 입을 통해 알려져 왔다. 인종간 입양의 경우엔 입양 대상 아동이 본래 속한 사회가 입양부모의 사회보다 대부분 사회적으로 취약했다. “힘의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그 자신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의 이미지나 이야기 또는 경험을 변론, 정의, 묘사, 혹은 사용할 때, 우리는 도용(appropriation)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경험에 대해 전문가가 되어 그 사람의 정체성에 대해 더 잘 아는 것처럼 여겨지는 현상도 도용에 해당한다.”(본문 521) 예를 들어 KAD(한국계 입양인) 모임에서는 그들이 입양기관 및 입양 관련 연구자들과 인터뷰하고 원고를 낸 이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용되어 경험담이 쓰인 사례를 가리켜 KAD 도용이라 한다.

 

입양기관에 연루된 사회복지사들과 대학의 연구자들은 인종간 입양의 주요 대상이 되어온 유색인종 아동,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동, 비 기독교 가정의 아동을 구원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북미와 유럽, 호주의 백인 가정에, 그 밖의 대륙과 유색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이동시키는 것은 자비로운 선행이었다. 아이들은 그들의 연구에서 입양을 통해 행복을 찾은 존재로 결론지어졌다.

 

입양부모의 발화를 통해 완성한 연구도 마찬가지였다. 나아가 입양인 당사자의 이야기를 놓고 해석한 결과물들도 결국은 이와 같이 백인 가정에 배치된 아동들이 결과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었으며 그들이 처한 현실에 감사하고 행복해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현재까지도 입양기관에 연루된 전문가들의 지배적 공론은 인종간 입양이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불쌍한 아동을 위해 최고의 가정을 찾아주는 최선책이라는 것이다. 특히 사랑은 피부색을 보지 않는다.”라는 개념을 강조함으로써 유색인 아동에 대한 백인 부모의 권리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그 역방향에 대해선 백인 아동에 대한 문화적 배려를 이유로 그들이 유색인 가정에 편입되어선 안 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이 책의 원 편집자 3인은 물론 30편의 글 중 25편의 필자들은 인종간 입양인 당사자로서 피부색에 따른 서열화 때문에 종종 폄하에 직면하면서 살아온 것과 살아오면서 내내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 줄 곳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말한다. 필진들은 북미의 인디언 가정 혹은 흑인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내 백인 가정으로 입양되었거나, 한국이나 베트남 혹은 나이지리아, 과테말라에서 출생했지만, 북미와 유럽과 호주의 백인 가정에 편입되어 성장했다. 사회의 인종차별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인종간 입양인으로서 사회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정신적 능력을 입양가정 내에서 키울 수 없었다는 점이다. 또한 그들의 인종적 고민에 대해 입양부모의 이해와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것, 그들과 같은 신체적 표지를 지닌 집단에 대해 관심을 표할 때 입양부모가 무척 인종주의적이거나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존의 담론과 연구가 이들의 이러한 입장을 담아내어 입양부모와 함께 극복하도록 돕기보다는, 인종간 입양인들이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겪는 공통 문제를 외면하고, 경험담을 왜곡하고 도용하여 사용해 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간은 생태체계적 존재이고 인종간 입양은 한 아동이 새로운 가정을 찾는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본래 태어난 곳과는 완전히 다른 사회문화적 배경으로 떨어지는 일이다. 이처럼 다른 나라, 다른 사회, 다른 계급, 다른 생태체계로의 이식이라는 점에서 거부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이 반응을 인식하는 것이 치유의 시작임에도 계속 축소되거나 은폐되어 왔다. 이 책의 몇몇 장들은 학문적 접근을 통해, 위와 같은 진실이 반영되지 못한 아동복지 정책에 힘입어 인종간 입양 산업이 번창하게 된 역사적 사실들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계 입양인이 말하는 인종간 입양

한국은 국제적인 입양시장에서 주요한 아동 공급 국가들 중 하나로서 특별한 성격을 띠고 있다. 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과는 달리 이른바 경제 대국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아동을 해외로 내보내는 국가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필진의 35%에 해당하는(31인의 집필진 중 11) 한국계 입양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종간 입양에 접근하고 있다. 서문>한국어 판에 부치는 말>, 본문 중 10개 장에서 한국계 필진들은 시와 시각 예술, 개인적 회고, 비판적 고찰 및 분석 등으로 인종간 입양의 역사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치와 그런 위치에 이르게 된 원인, 문제점, 대안을 말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의 입양 산업은 물론 한국의 전체 산업까지도 결과적으로는 국제적인 입양대상 아동 공급처가 되어 버린 저임금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지속함으로써 성장했다고 역설하는 점이다. 또한 국제적 입양산업이 직접적으로는 한국에 1년에 15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안겨주었으며 간접적으로는 한국 정부의 사회복지 비용을 절감시켜 경제적 이득을 안겨주었음을 상기시킨다.

 

이 책을 접한 많은 독자들이 충격을 받은 부분 중 하나는 재란 김의 글이다. ‘해리 홀트의 입양기관을 필두로 등장한 사립 입양기관이 아이들을 위해 가족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아이들을 찾았다는 것이다. 같은 글에서 재란 김은 미국이 한국계 입양아동을 대거 흡수한 입양 번성기에 구호 작업으로 시작된 해외입양 역사에서 홀트로 대표될 수 있는 기독교 신앙 중심의 기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여주고 그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 구원적 행위로 포장된 입양 뒤에 숨은 식민주의적 체계를 밝힌다.

 

한국과 입양 국가의 입양 사후 지원에 대한 제안들도 있다. 해외로 입양되었다가 성인이 되어 모국을 방문한 해외입양인들이 한국에 돌아왔을 때 부딪혔던 문제들과 한국계 입양인 단체의 설립 과정을 기술하면서 한국 정부가 이제 마련해야 할 장치를 요청한다. 몇몇 한국계 입양인은 그들이 입양된 국가에서 정체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해외입양인이 겪는 문제와 그 해결을 위해 노력한 과정들에 대해 정리하여 기술함으로써 변화의 방향을 제시한다.

 

17장 한국인의 심리>는 글쓴이인 베스 경 로 자신이 임상심리 전문가로서 본인의 개인사적인 정신병리 문제와 그 치료 과정을 고찰하면서 입양부모의 사랑의 깊이와 상관없이 입양 자체가 크나큰 상실의 경험이며 입양인에게 다양한 정신질환 병명을 달게 하는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에 주목한다. 그녀는 한국의 한(), 화병(火病) 개념을 한국에 국한되지 않은 보편적인 정신장애 개념으로 읽고, 서양식 진단명을 줄줄이 안고 살아가는 한국계 입양인들의 초문화적 심리치료에, 나아가 다른 인종간 입양인의 상실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이 개념을 이용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의 평범한 독자들에게 가장 불편한 글은 첫 장인 수 나의 글일 것이다. 6살까지 한국에서 살았던 그녀는 자신의 친생모에게 바치는 글을 통해, 인종 문제에 대한 자신의 초연함은 입양부모로부터 주입된 사이비 초월이며 백인 우월주의는 없다고 말하는 북미의 백인 부모 슬하에서 자란 자신이 자신의 기원을 망각하도록 부추김 받았고, 결국 백인 부모의 시각을 벗어나 한국에 대한 폄하를 극복할 수 없음을 아프게 고백한다.

 

이 보잘것없는 한국인들은 비단 옷을 입고 있으며, 차를 많이 마시며, 마늘 냄새가 납니다. 한국인들은 음식을 땅에 묻습니다. (예전에 내가 북미의 엄마, 버지니아에게 누가 김치를 발명했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아마, 실수였을 거야. 누군가 땅에 묻었다가 잊어버리고 있다가 한참 뒤에 꺼내게 되었고 그것을 먹기로 결정한 거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한국 사람들은 일하기를 좋아해서 임금도 안 받는 사람들이랍니다. 음 그리고 아! 한국 엄마들은 자식들을 학대받도록 내버려두고, 어떻게 하는 것이 자녀들에게 더 좋은지 모르는 사람들이지요. 이 사람들은 강간해달라고 부탁한답니다! 그 여자들의 어머니 세대 또한 자녀들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1마늘과 소금> 중에서)

 

이 책은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상봉에 가려진 해외입양인에 대한 고통 어린 증언이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에서 조선 여성이 절대 다수였던 것처럼, 한국의 현대사는 국제입양산업에서 한국계 입양인이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실린 불편한 진실은 한국 현대사의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이다. 소중한 아기를 입양으로 떠나보낸 어미와 아비들의 트라우마, 분단과 급격한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입양이란 이름의 사회적 실종을 기획하고 은폐한 한국사회,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해외입양과 미혼모에 대한 편견은 이들의 이야기가 한국 현대사가 잃어버렸던 바로 그 퍼즐 한 조각임을 아프게 증명한다. -한홍구(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책속으로

만약 우리가 저소득층 부모들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적절한 경제적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마약중독 여성은 치료받을 권리, 어머니 역할을 계속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거나,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자신을 떠나 감옥에 갇히지 않게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나의 소원은...(중략) 우리 집은 인종차별이 없을지라도 바깥세상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인종차별에 대해서 슬퍼할 수도 있고 분노해도 좋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복지 제도를 폐지하려는 신보수주의적 노력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미국 하원의장 뉴트 깅리치는 생활보조금을 받는 어머니의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내자는 정책대안을 제시하였다...(중략)...싱글맘의 아들로 자랐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를 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주간 라디오연설에서 이 의견은 아이들을 사랑 가득한 가정에서 빼앗아 오자는 것이라 반박했다.

 

첫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시행한 1962년 이후 30년 동안, 한국의 개발독재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지독히 효율적으로 한국을 농경사회에서 현대 공업국가로 변모시켰다. 인구과잉이 감지되자 인구를 줄이기 위해 이행된 주요한 2개 조치가 바로 가족계획과 해외이주였다. ‘해외입양은 그 둘을 섞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리하여 1961년부터 1979년까지 박정희 대통령 독재시대와 1981년부터 1987년까지의 전두환 대통령의 독재시대에 해외입양이 그 절정에 달했다. 전체 해외입양 건의 4분의 3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반세기가 넘도록 국제입양은 입양기관들에게 경제적으로 이익이 남는 사업이었고, 한국 정부에게는 사회복지비용 지출을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출구였으며, 무엇보다 총체적으로 한국사회의 강고한 가부장제를 지탱하기 위한 잔혹한 방법이었다. 바꿔 말해, 국제입양은 한국 현대화 프로젝트 중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권력 장치의 하나로서, 순결하지 않고 매각 가능한 유기된 계층을 사회공학과 우생학의 이름으로 숙청하면서 나라를 정결하게 하는 데 이용됐다.

 

나에 관한 모든 설명들, 모든 거짓들을 보고 쓴 웃음을 짓는다. 입양제도 자체의 부도덕성 때문일까, 아니면 진실을 거부하는 사회복지사 개인의 문제일까? ...(중략)... 이 기록은 적개심, 분노, 폭력을 자극한다. 이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인식해야만 개인적인 용서와 일보 전진이 가능해진다. 불행하게도, 지금껏 어떤 심리치료사도 내가 모국 땅과 문화, 그리고 모국 동포를 상실한 것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으며, 또한 혼혈일 거라는 추측만으로 버림받고 무시된 개인사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그 임상가들 중 누구도 내가 인종간 입양인이라는 것에 어떻게 적응할지 사려 깊게 고려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껏 스토킹을 당하다 살해되는 악몽에 시달리며, 자궁 밖에서의 존재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위통에 시달린다. ---본문 중에서

       

(나는) 모국으로 돌아가 만일 입양되지 않았다면내가 처했을 가난과 불행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감사해야 한다는 말을 수시로 들었다. 한 입양인의 말을 빌자면, 입양은 마치 가족이 다 죽고 새 가족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족이 다 죽었는데 새 가족이 생겼으니 얼마나 행운이냐는 말을 듣는 것이다.(본문 391. 22장 위장> 중에서)

 

에이버리의 입양모들은 그녀를 사랑하고 헌신적이며 교육 수준도 높고...(중략) 에이버리가 친모를 찾는 걸 도와주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백인 지역에 사는 흑인 소녀의 아픔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은 흑인 문화에 전혀 가치를 두고 있지 않고 에이버리가 흑인 문화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에는 오히려 위협까지 느끼는 듯 보인다. 그들은 입양부모가 입양자녀를 얼마나 지극히 사랑하는가 혹은 얼마나 신체적으로 안전한 가정을 제공하는가 등에는 상관없이 입양 그 자체가 외상후증후군의 조건이라는 점은 전혀 알지 못한다...(중략)....우리 중 많은 이들은 입양으로 만난 가족과 친족들에게 좋은 대우를 받았지만 또 많은 이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방치, 관계 단절, 성적 학대, 신체적 폭력, 시설 감금, 유기……. 물론 입양인들이 동질적인 사람들인 것은 아니다.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입양이 우리에게 복합적이고 심원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본문 569. 한국어 판에 부치는 말> 중에서)

 

한국, 경제대국? 세계 1'아동수출대국'!

[해외입양, 그 잊혀진 역사]"한국은 왜 포기 못하나"

1953년부터 2007년에 이르기까지 해외입양을 통해 한국을 떠난 사람은 약 16만 명에 이른다. 한국은 해외입양인들의 누적 숫자로 치면 압도적인 1위 국가다. 세계 경제규모 11위인 '경제대국' 한국은 지금도 중국, 러시아, 과테말라에 이어 4번째로 많은 자국 아동들을 해외로 내보내는 '아동수출대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해외입양은 철저히 '잊혀진 역사'. 해외입양인은 자신을 길러줄 양부모를 갖게 된 '수혜자'로 여겨지고, 아이를 입양 보낸 생모는 자기 자식을 버린 '죄인'이라고 낙인 찍힘으로써 결국 직접 해외입양에 관계되는 이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돼 왔다. 이런 가운데 국내의 입양기관과 한국 등 외국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백인 부모들의 입을 통해 해외 입양은 인도적으로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선행'으로 찬양돼 온 것이 현실이다


저출산 문제로 고민하는 한국, 매년 2000명 해외입양?

유엔에 따르면 지난 2006년 한국의 출산율은 1.19. 홍콩, 우크라이나, 슬로바키아에 이어 4번째로 낮은 출산율이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될 경우 2050년에는 한국 인구가 지금보다 13% 감소한 4230만 명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처럼 저출산과 인구감소를 고민하는 한국이 20042258, 20052101, 20061899명 등 매년 2000명 안팎의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냈다는 점은 일종의 모순이다.



연도별 국내외 입양 현황 (보건복지부 통계). 프레시안

 

이들 해외입양아동은 생모의 99%가 비혼모(非婚母. 결혼한 상태가 아닌 어머니). 2006년에 입양된 아동 중에서는 9(기아 4, 결손가정 5)을 제외한 1890명이 비혼모가 낳은 아동이다. 2004년에는 2258명의 아동 중 단 1명을 제외한 전원이 비혼모의 자녀로서 해외로 내보내졌다.



발생유형별, 아동상태별 해외입양 현황(보건복지부 통계). 프레시안

 

해외입양인들을 위한 비영리 민간단체인 '뿌리의 집'(KoRoot. http://www.koroot.org)을 운영하고 있는 김도현 목사는 "한국의 가부장제가 해외입양 문제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결혼 ''의 관계에서 낳은 아이를 사회의 '정상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차별할 뿐 아니라, 비혼모들이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이 전혀 없는 한국사회에서 이들이 선택하는 대안이 결국 해외입양이라는 것.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서 비혼모 문제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심각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은 1년에 4000여 명의 비혼모가 아이를 낳아 OECD 가입국 중 가장 낮은 비혼모 발생률을 보이고 있다. 이들 비혼모가 낳은 아이들 중 75%가량이 국내나 국외로 입양된다. 반면 미국은 2005년 한 해에 약 150만 명의 아이들을 비혼모가 낳았다. 이중 1%의 아이들만이 입양됐다.


그러나 문제는 비혼모가 낳은 아이들 중 절반에 가까운 2000명 안팎의 아이들이 해외로 내보내지면서 한국에서 이들 비혼모와 그 자녀들의 존재는 '없던 일'이 돼 버리고 만다는 데에 있다. 한국의 강고한 가부장제의 결과로 발생한 해외입양은 가부장제를 위협하는 요소를 이 사회로부터 원천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이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장우선주의의 가부장적 순혈주의 국가 '한국'

또 정부 입장에서 해외입양은 비혼모와 그 자녀들을 돌보는 데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수단이 된다. 한국 사회는 지난 50년간 해외입양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복지 비용을 아낀 셈이다. 더 나아가 미국 등 한국의 아이를 받아들인 나라들로부터 매년 수천만 달러의 입양수수료를 벌어들였다.


비혼모 10명 중 4"경제적 지원만 있다면"

한국 정부가 비혼모와 그 아이들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정책은 거의 전무한 수준이다. 비혼모를 위한 보호시설 운영과 양육비 지원 등이 시행되고 있을 뿐이다. 현재 정부는 2인 가족의 경우 월 소득 95만 원, 3인 가족 126만 원, 4인 가족 157만 원 이하 등 가족수별 소득기준을 정해 모()자가정 보호대상을 선정하는데, 6세 미만 아동에 대해 월 양육비 5만 원, 고교생 자녀 입학금수업료 지원이 고작이다.


현실적으로 비혼모들이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여성가족부가 지난 20059월 보호시설에 입소한 비혼모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비혼모 10명 중 4명이 경제적 지원이 있다면 아이를 양육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비혼모들에게 입양은 '강요된 선택'인 측면이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스웨덴, 덴마크, 미국 등은 비혼모와 그 자녀를 위한 다양한 복지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스웨덴은 비혼모수당, 육아수당과 아파트 보조금 등을 지급해 비혼모들이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덴마크는 혼인 외 자녀라도 아버지를 확인하면 비혼부에게 자녀에 대한 법적 부양 책임을 지운다.

-독일은 비혼모와 비혼부의 책임을 법적으로 규제하여 자녀양육비와 생활비 등 모든 경제적 책임을 일차적으로 비혼부에게 부과하고 아기양육 지원을 위한 복지서비스를 실시한다.

-미국은 AFDC(Aid to Families with Dependent Children)라는 프로그램를 통해 비혼모에게 식품, 의료보호, 주거개조 등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해외입양은 초기에 주로 미군을 포함한 연합군과 한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동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도 한국의 '순혈주의적' 가부장제를 재생산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했다. 한국은 혼혈아동들을 '아버지의 국가'로 돌려보낸다는 미명 하에 내보냈다. 이를 통해 한국은 '단일민족국가'라는 자긍심을 지킬 수 있었고, 엄존하는 인종차별 문제를 '존재하지 않는 일'로 만들었다.

 

한 입양기관에서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아동들. 연합뉴스

 

해외입양은 소위 개발독재 시대에 가장 '전성기'를 누렸다. 박정희 정권은 1961'고아입양특례법'을 제정해 해외입양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했다. 1970년대 중반엔 한 해 5000명이 넘는 아동을 해외로 내보냈다. 해외입양아 수는 전두환 정권 들어 더 늘어나 1986년 아시안게임을 치르기 직전인 1985년엔 8837명으로 그야말로 '호황'을 이뤘다. 이 시기 해외입양은 농업사회에서 근대 산업국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가족계획사업과 마찬가지로 인구를 줄이고, 자기 아이를 키우기 힘든 형편인 비혼모나 극빈층 가정의 아이를 내보내 복지 지출을 대폭 줄이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한국계 입양인 출신으로서 스웨덴의 한국학 학자인 토비아스 후비네트 씨는 '해외입양 : 식민주의와 근대주의 사이'라는 논문에서 "해외입양은 정부에게는 사회복지 비용 지출을 피할 수 있는 편한 도피처였으며, 한국 사회에게는 가부장적, 인종주의적 규범을 지킬 수 있는 잔인한 자기 규율이었다"고 지적했다. 김도현 목사는 이런 의미에서 "해외입양인들은 자신의 생모에게서 버림을 받은 게 아니라 국가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라고 부연했다.


정부 "국내입양으로 충분할 때까지 어쩔 수 없이"

물론 지난 50년간 해외입양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같은 비판은 아이를 떠나보낸 생모나 입양인들이 경험할 고통이나 해외입양을 통해 드러나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입양이 국가적, 민족적 자긍심을 저해한다'는 민족주의적 시각에 기반한 것이었다. 따라서 일회적인 문제제기로 그칠 뿐 실질적인 해결책 모색에는 이르지 못했다. 한국의 해외입양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은 북한이다. 1970년대 초 북한은 한국의 해외입양에 대해 "이윤을 목적으로 서양인들에게 한국 아동을 팔아 넘기고 있다"고 강도높게 비난했었다. 그러자 국내에서도 해외입양에 대한 반대 여론이 일었었다.


이어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올림픽을 전후해서는 서구 언론들이 한국의 해외입양의 실태를 다루면서 올림픽을 유치할 정도로 경제성장한 한국이 여전히 해외입양을 보내는 모순에 대해 주목했었다. 그러자 국내 언론에서도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해외입양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제기됐다. 이로 인해 한때 정부가 해외입양 중단 정책을 검토해 1996년까지 단계적으로 해외입양을 폐지한다는 목표를 세우게 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1994년 들어 해외입양 폐지 목표를 2015년으로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 초 해외입양이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 다뤄질 주요 사안 중 하나라고 천명하는 등 해외 입양에 대해 가장 전향적인 시각을 보여줬다. 김 전 대통령은 199810월 해외입양인 23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16만 명의 해외입양인들에게 공식사과하기도 했다. 영부인인 이희호 여사도 해외입양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기존 해외입양제도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005년 국정감사에서 "앞으로 4-5년 후 해외입양을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의 뒤를 이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0068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앞으로 10년 안에 해외입양아를 '0'으로 만들겠다"고 말을 바꿨다.

해외입양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보건복지부 아동복지과 관계자의 입장은 더 신중했다. 이 관계자는 7"국내입양 활성화를 통해 국외입양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간다는 입장"이라면서 "국민들이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정부가 노력하고 입양단체를 통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꺼번에 확 바뀌리라고 생각은 안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2015년 폐지한다고 말하기 힘든 게 국외입양을 안 할 경우 그 애들이 다 어디로 갈 것이냐"면서 "고아원 등 시설로 갈 경우 아동의 미래를 봐서 (국외입양에 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궁극적으로 '자기가 낳은 아이를 자기가 키울 수 있는 사회' 되어야

최근 들어 정부도 해외입양의 문제를 인식하면서 대안으로 국내입양을 지원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아 왔다. 올해부터 정부가 국내입양 수수료(220만 원) 전액을 지원해주고, 입양가정에 매달 10만 원의 양육비를 지원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식이 아니라고 입양인들은 얘기한다. 정부가 국내입양을 지원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은 데에는 양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이 소위 '정상가족'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이들은 보고 있다. 현 시점에서 해외입양을 낳는 가장 큰 원인인 비혼모와 그 아이에 대한 차별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것.

입양인들은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법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자기가 키울 수 있는 사회'로 가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따라서 비혼모 아동에 대한 지원이 정책의 주안점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앞의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경제적 지원'이 있을 경우 40%의 비혼모가 아이를 직접 기르겠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비혼모가 자신의 아이를 직접 기를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이 국내입양 촉진정책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지적인 것이다. /전홍기혜 기자 프레시안 2007.05.09


해외입양 16만명 중 10만명이 미국으로, ?

[해외입양, 그 잊혀진 역사]"입양은 평생 풀어야 할 숙제"

"우리는 화난(angry) 입양인들이 아닙니다."

 

한국의 해외입양제도 폐지를 목표로 활동하고 있는 국외입양인연대(Adoptee Solidarity Korea. ASK) 회원인 제니 나 씨. 그는 지난 2003년에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어" 한국을 찾아 지금까지 한국에서 살고 있다.

 

몸을 제외한 모든 것이 '백인'으로 새로 태어나는 운명

제니 씨는 "정부나 입양기관은 이런 활동을 하는 입양인들이 불행한 입양을 경험한 특별한 케이스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일부 '화난 입양인'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양부모와의 관계에 대해 "때로는 좋고, 때로는 나쁘기도 했다는 점에서 아주 평범했다"고 밝혔다.

 

제니 씨는 양부모와 관계가 어떠했는가와 별개로 입양인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입양'이라는 문제에 대해 한국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입양인들은 태어난 지 6개월이 됐든 10년이 됐든 상관없이 해외입양과 동시에 자신의 이름, , 가족관계 등 모든 '한국'적인 것은 버려지고 새로운 이름, 언어, 가족관계에 적응해야만 한다. 자신의 몸을 뺀 모든 것이 입양된 부모와 그 나라의 품 안에서 '백인'으로 새롭게 태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ASK(www.adopteesolidarity.org)

2004년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6명의 해외입양인들이 만든 모임. 기존 단체들이 친가족 찾기, 한국어 강의 등 해외입양인들을 위한 서비스 위주의 활동을 주로 해 왔다면, ASK는 입양인들만으로 구성된 일종의 연구모임이자 정치모임이다. 이들은 해외입양에 대한 시각을 공유하기 위해 매주 모임을 갖고 해외입양과 관련된 글을 읽는 활동 등을 하고 있다. 현재 회원은 30명 정도이며, 해외에 거주하는 입양인이거나 입양인은 아니지만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한국인을 포함한 준회원(allies)70여 명이다.

 

입양인 예술가들이 직접 참여한 사진 작품. 입양인들이 직면하는 정체성 문제를 보여주는 작품. 프레시안

 

ASK는 또 KAAN(주미 입양인 입양가족 네트워크) 등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계 입양인 단체들과 함께 행사를 마련하기도 한다. 또 이들은 IKAA(세계한인입양인회)7월 말부터 8월 초에 걸쳐 서울에서 개최하는 '다함께2007'를 준비하는 일에도 동참하고 있다. 이 행사에는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입양인 700~800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들은 또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해외입양 폐지를 촉구하는 엽서보내기 운동,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 등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정치인들과 면담 등 해외입양 정책을 바꾸기 위한 직접 행동도 하고 있다.

 

이민자들과는 다른 정체성입양은 평생 풀어야 할 숙제

제니 씨는 또 해외입양인들에게 입양의 경험은 평생 동안 풀어야 할 '숙제'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해외입양을 떠나보내는 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스위스 출신의 한국계 입양인인 김대원 해외입양인연대(G.O.A.L) 사무총장도 한국이 입양인 문제에 대해서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입양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은 '입양아'. 입양인은 성인이 아닌 어린아이로 여겨지며, 입양의 문제는 당연히 '아동'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인이 된 입양인들도 입양으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한국계 입양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 입양인은 "낯선 사람들이 끊임없이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나'는 질문을 할 때마다 자신을 미국인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입양된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가야 하지만 정작 그 사회에서는 인종차별, 입양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 등으로 자신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 설문조사에서 입양인들은 자랄 때는 스스로 '미국인/유럽인/백인'이라고 생각했다는 응답(58%)이 가장 많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자신을 '한국계 미국인/한국계 유럽인'으로 인식한다는 응답(64%)이 가장 많았다.

 

한국계 입양인이자 스웨덴의 한국학 학자인 토비어스 후비네트 씨는 지난 2003년 열린 '해외입양인연대 창립 5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발표한 글에서 입양인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는 우리가 공격적이고 거만한 서양문화에 좌초되어 있다고 느낀다. 우리는 서양세계에서 철저히 배척된, 상처입기 쉬운 포로들이다. 우리는 이민자들이 갖고 있는 그런 피난처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과 고국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이민자들은 바로 그 고국이 그들의 힘이 되어 준다. '내가 스웨덴인인가, 아니면 한국인인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비주류로서 어떻게 스웨덴에서 살아남을 것인가'하는 것이 문제다. 입양된 한국인이 된다는 것은 두 나라의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 그 누구도 우리를 스웨덴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지도 못한다."

 

해외입양인연대(G.O.A.'L. http://goal.or.kr)

 

1998년 한국에 체류 중인 해외입양인들이 만든 단체. 1999년부터 '재외동포특례법'에 근거해 2년의 장기 체류비자(F4)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입양인들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3개월 기간의 체류비자를 받는 등 모국인 한국으로부터 또 한번의 '냉대'를 경험해야만 했다. 그래서 입양인들이 직접 만든 단체가 해외입양인연대다. 이들은 한국을 방문하는 입양인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입양인들의 친부모 찾기, 한국어 강의, 친부모와 입양인 사이의 편지 교환을 돕기 위한 통번역, 입양인들을 위한 상담 등 활동을 하고 있다.

 

단체 설립 초기 담당부서인 보건복지부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외국인들이 하는 단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했으나, 지난 2002NGO(비정부기구)로 정식 등록을 하는 등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주로 입양인들과 관심있는 일부 한국인들의 자원봉사와 후원으로 단체를 꾸려가고 있어 재정이 넉넉하지는 않은 형편이다.

 

해외입양인연대의 김대원 사무총장에 따르면, 매년 5000명 가량의 입양인이 한국을 방문하며, 한국에 장기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입양인들의 수도 200여 명에 이른다.

 

해외입양이 아동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해외입양이 당시로서는 아동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입양인들의 아픔을 소재로한 문희준의 노래 'Alone' 앨범 사진. 아시아인이 서양아이를 입양하는 '전복'은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프레시안

 

입양인들은 '아동의 이익'을 위해 해외입양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후비네트 씨는 "아이의 최고의 이익을 위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형제들끼리 갈라져서 입양을 보내는 일이 일어날 수 있냐"면서 "해외입양에서 우선시 되는 것은 아동이 아니라 양부모들의 요구"라고 주장했다. 친가족과 입양가족 간에 서로 모르고 연결이 단절되며, 양부모에 의해 아이에게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이 부여되는 현 해외입양은 인류학적으로 볼 때 매우 '비정상적'이다.

 

제니 씨는 "지금의 해외입양에는 백인이 제3세계의 아동들을 구원한다는 개념이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헐리우드 스타인 안젤리나 졸리가 에티오피아, 캄보디아, 베트남 아이를 연달아 입양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에서 인종이 다른 아이의 입양은 그들의 지위와 의식 수준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한국인 부부가 백인아이를 입양하거나 한국 아동이 아프리카로 입양되는 일은 현실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후비네트 씨는 "양부모들이 입양하기를 선호하는 나라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겉으로는 인종차별에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여전히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아시아의 한국,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남미의 콜롬비아 아이들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볼 때 좀 더 쉽게 백인 사회로 '통과'된다"고 주장했다.

 

해체된 가족의 파편으로 살아가는 아픔을 아시나요?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뿌리의 집'(www.koroot.org)은 한국을 찾은 해외입양인들이 묵을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모국이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낯선 땅인 한국에 찾은 입양인들이 머무르면서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다. 이 집은 지난 1992년부터 9년간 스위스에서 목회활동을 했던 김도현 목사가 운영하고 있다. 김 목사는 스위스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돼 한국계 입양인 소녀가 라인강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사건을 접하면서 해외입양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뿌리의 집은 또 해외입양인들을 대상으로 상담사업과 취업지원사업 등도 하고 있다. 해외입양과 관련된 책 출판 등 연구사업도 진행 중이며, 작년부터는 생모에 관한 다큐멘터리 '회복'(Resilience. www.resiliencefilm.com)도 제작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태미 추 씨는 미국으로 입양됐던 한국계 입양인. 그는 "가부장적 한국사회에서 지금까지 생모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말할 기회가 없었다"면서 "이 영화가 다른 생모들에게도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어머니들의 개인적 역사 속에는 한국의 역사가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태미 씨는 지난 1996년 자신이 친가족을 찾는 과정을 통해 입양인들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 고향찾기(Searching for Go-Hyang)을 만들기도 했다.



태미 추의 다큐멘타리 '고향 찾기'. 이 작품은 미국 공영방송인 PBS에서도 방영됐다. 프레시안

 

'뿌리의 집'은 해외입양인연대와 함께 입양의 날인 오는 11일 오후 이 다큐멘타리의 후원금을 모금하기 위한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이들은 이 행사 초대장에서 "해외입양에 대한 모범답안은 국내입양이 아니라 가족해체가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가꾸는 일"이라면서 "해체된 가족의 파편들로 살아가는 일의 버거움을 몸으로 알기에 입양의 날을 기념하는 일은 결국 해체된 가족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일"이라고 밝혔다.

 

16만 명 중 10만 명이 미국으로 입양미국은 해외입양에서 어떤 역할?



'뿌리의 집' 전경. 프레시안

 

또 지난 50여 년간 한국에서 해외입양 보낸 16만여 명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10만여 명이 미국으로 입양됐다는 사실도 해외입양이 양부모들의 '수요'에 기반한 것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58년부터 2005년까지 106221명의 아동이 미국으로 입양됐다. 프랑스(11143), 덴마크(8660), 스웨덴(9141), 노르웨이(6230)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다.

 

후비네트 씨는 "국제점 관점에서 한국전쟁은 냉전의 시작이며 미국의 세계지배의 시발점이 됐다"면서 "한국은 해외입양의 하나의 표준 사례가 돼 베트남이나 태국 같은 국가에서도 미국 침입의 결과로 입양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서구와 미국으로 아이를 공급하는 주된 국가들이 미국의 영향을 받았거나 미군의 개입이나 주둔, 점령을 경험한 국가라는 것. 그는 "해외입양은 미국의 대외정책과 미국 제국의 형성에 한 부분이 돼 정치관계를 활성화하고 평범한 미국인에게도 냉전에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수단을 제공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입양인들이 입양인들의 시각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은 한국사회에 많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내쳐진 사람들에 대해 뒤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한국사회는 지난 50여년 간 애써 이 문제를 외면해 왔다. 하지만 어린아이에서 성인으로 자란 입양인들은 이제 자신들을 버린 '모국'에 그 책임을 묻고 있다.

 

게다가 그간 해외입양 문제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도 '국가 이미지 실추' 등 국가주의적 시각에 그쳤다. 정작 해외입양이라는 제도를 통해 이별한 생모와 입양인들이 겪어야만 했던 '고통'에 대해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세계 경제규모 11위인 경제대국이 된 이후에도 한국은 아무런 반성없이 여전히 매년 2000명 안팎의 아동을 해외로 입양보내고 있다.

 

"한국이 해외입양을 금지해야 한다"는 요구는 다른 이들의 것이 아니다. 한국이 외면했던 해외입양인들, 바로 그들 자신이 그런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들의 요구를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입양수수료가 해외입양 중단 못하는 비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산정한 국외 입양수수료는 아동 1인당 9616000.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근거해 홀트아동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 등 4개 국외입양기관은 9616000원 한도 내에서 아이를 입양한 부모로부터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실제 이들 기관은 아이 한 명을 외국에 입양보낼 때마다 4000-7000달러의 수수료를 받고 있다.

 

정부로부터 별도의 보조금을 받지 않는 이들 기관은 입양수수료를 인건비를 포함한 단체운영비용, 분유, , 이불 등 입양아동을 일시적으로 맡아 기르는 과정에서 드는 소모품 비용, 출국용품이나 출국서류를 작성하는 데 드는 비용, 여비 등으로 쓰고 있다.

 

이들 기관이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4개 입양기관이 받는 국외입양수수료는 연간 1300만 달러가 넘는다. 매년 100억 원 이상의 돈을 해외입양을 통해 버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내 입양에 비해 비싼 입양수수료가 해외입양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국내 입양수수료는 220만 원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국내입양을 늘리기 위해 입양수수료를 지원해주고 있다. /전홍기혜 기자

 

"한국은 여전히 '미개한 나라'일지도 모른다"

[해외입양, 그 잊혀진 역사]"해외입양의 굴레 끊을수 있나"

한국사회의 주의력 결핍 행동장애(ADD)

한국에서는 1960년대 말 이후 '해외입양은 불명예'라는 취지의 사설이 간간이 신문에 실리곤 한다. 이 문제가 부침을 겪는 동안, 우연인지 아닌지 일본군 '성 노예'로 끌려간 사람들과 같은 숫자인 20만 명 가까운 아이들이 한국가족들과 헤어져 서구, 특히 미국으로 입양 보내졌다.

 

한국사회는 스스로 질문해 왔다. "왜 한국은 자기 아이들을 먼저 돌보지 못하는가? 국내에서 우리들의 아이들을 보살필 수는 없는가?" 이에 대해 한국 언론은 미국인들이 사심 없고 인도주의적인 이유로 한국의 아이들을 입양한다는 '오해'에 기반해 그들이 한국인들보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더 크다는 언급을 하기도 한다.

 

민족주의적 자긍심과 국제적인 체면이 깎일 것을 두려워 하는 논의들도 있다. 사실 이디오피아, 과테말라 등 해외 입양을 보내는 다른 나라들이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크게 뒤쳐져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해외입양 때문에 한국이 얼마나 체면을 잃는지, 서구 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얼마나 왜곡되는지는 상상하기 그리 힘들지 않다.

 

입양으로 내보낸 자국의 아동 수만 보면 한국에 어떤 나라도 범접할 수 없다. 평균 6명의 아이들이 매일 해외로 입양되고 있다. 2004년 한해 동안 한국에서 2258건의 해외 입양이 있었다. 거의 대부분이 비혼모의 아이들이었다.

 

지난 2월 방한해 생부를 찾은 미국 스키 선수인 한국계 입양인 토비 도슨. 그러나 그의 생모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뉴시스

 

한국전쟁 종전 이래 어림잡아 20만 명의 아이들이 내보내졌다. 이는 입양인들이 한국 땅을 떠나는데 거쳤던 경기도 김포시의 전체 인구를 조금 웃도는 숫자다. 입양인들과 그들 부모의 수는 거의 경기도 안양시의 인구에 달한다. 양가 조부모와 형제 한 명을 포함해 계산하면, 한국에서 해외입양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사람들의 수는 광주광역시의 인구에 맞먹는 140만에 이른다. 여기에는 한 명 이상의 형제나 친척 등의 숫자는 더해지지 않은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많은 자국민들을 고통받게 하고, 그들이 고통을 조용히 감내하게 했다는 것은 실로 놀랄만한 일이다.

 

많은 한국 정부 공무원들이 외국에서 한국을 방문한 입양인들을 위한 행사에서 사과를 표명해 왔지만, 솔직히 그 진실성은 의심스럽다.

 

? 그들은 여전히 입양인들을 내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아이들을 내보낼 핑계를 계속해서 만들어 왔다. 우리 입양인들은 매번 다른 이유로 어머니와 조국으로부터 '조직적'으로 추방당해 왔다. 인종차별적인 사회에서 혼혈로 태어났다는 불운 때문에, 가족이 한국의 빠른 산업화로 가난해졌기 때문에, IMF 위기 동안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들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셨거나 돌아가셨거나 혹은 그 둘 다이기 때문에, 우리의 어머니들이 미혼이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들과 조부모들이 현재 우리를 책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내보내졌다.

 

지난해 한나라당의 고경화 의원은 해외입양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려 했다. 그녀의 움직임이 (아동에 관한) -미 무역협정을 유지하기 위한 미국인들의 편지 보내기 운동을 촉발시켰던 것 같다. '행복한' 입양에 관한 많은 편지들을 받은 고경화 의원은 조용히 그 프로젝트를 접고 대신 불법 체류 노동자, 결혼 이민자와 그들의 아이들의 편에서 입법 초안을 마련하는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과거 입양 중단을 위한 여론을 일궈냈던 많은 기사나 노력들이 종결되면서 결국 보다 많은 입양이 이뤄졌던 것처럼, 그녀의 시도는 모호한 상태로 남아버렸다.

 

몇 년간의 입양 논쟁을 되짚어본 후 나는 한국사회가 오랜 시간 동안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할 수 없는 병인 '주의력 결핍 장애'(ADD)에 걸린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싫어, 나가버려! 사랑해, 돌아와!

미국에서 일궈낸 성과들로 인해 토비 도슨(입양인), 다니엘 헤니(입양인의 아들), 하인스 워드(혼혈이기 때문에 좋은 입양후보자였던)는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비 도슨의 엄마가 한국 사회의 질타가 두려워 '자신의 아들'이라고 나서서 말하지 못하는 현실은 얼마나 슬픈가.

 

왜 한국은 다니엘 헤니 어머니의 해외입양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하려 하지 않는가. 왜 그녀는 이 나라에서 내보내졌는가? 무엇이 다니엘 헤니의 할머니에게 아이를 포기하게 만들었는가.

 

나는 하인스 워드의 어머니가 자신과 아들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대했었는지 공개적으로 얘기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 그녀가 입양을 보내기 쉬운 조건에 있었던 아들을 키우는 길을 선택한 것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국에서 추방당하고 쫒겨난 아이들이 이제는 한국의 명예홍보대사로 초대된다는 사실은 몹시도 아이러니하다.

 

좀 더 세련된 페미니즘

혼혈아들을 낳은 하인스 워드의 어머니, 재혼을 한 토비 도슨의 어머니, 또는 아이를 떠나 보내야 했던 다니엘 헤니의 할머니와 같은 여성에게 따라다니는 도덕적인 오명은 한국이 가진 스스로에 대한 지속적 믿음에 비춰볼 때 참으로 위선적이다.

 

한국이 미군의 주둔이 필요하다 믿는다면, 기지촌이 존재하고 외국 병사와 한국여성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난다는 사실에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 그 여성들과 아이들을 비난하고 추방하는 대신, 그런 처지에 그들을 몰아 넣은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 다니엘 헤니와 영어 배우기에 열광하는 한국 젊은이들은 다니엘 헤니가 영어를 쓰는 이유, 나아가 그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의 외할머니가 딸을 한국에서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최근 고소득과 사회적 성공을 위해 결혼을 보류하는 이른바 '콘트라섹슈얼' 여성을 지향하는 것이 주류 페미니즘적 흐름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남편에게 기대는 것보다는 개인의 삶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보다 애정어린 페미니즘은 타인에 관심을 두며 자신의 특권과 능력을 사용해 자신의 상황을 개선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은 타인을 돕는다.

 

한국의 보다 도덕적인 페미니즘은 가난한 여성, 비혼모, 이혼한 여성, 혼혈아와 그의 어머니, 농촌의 외국인 신부들, 고아원에서 키워진 사람들, 장애인 등 사회의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 주장해야 한다. 페미니즘에서는 여성 개인을 마녀화시키지 않고, 가난이나, 교육 불평등, 인종적 편견, 군국주의, 가부장제, 체면을 지키려는 한국인의 두 얼굴 등과 같이 사람들의 삶을 괴롭히는 구조적인 원인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한국계 입양인이 어머니인 다니엘 헤니. 그는 최근 친아버지를 찾으려고 주한미군으로 자원한 입양인이 주인공인 영화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는 올 하반기 개봉될 예정이다. 뉴시스

 

아메리칸 드림 대 아메리카의 현실

미국의 모든 것이 훌륭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의 현실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사실 한국이 미국보다 나은 점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존재한다. 일례로 미국은 국가 의료보험이 없다. 65세 이하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8200만 명이 2003~2004년 중 특정 기간을 의료보험 없이 생활했다. 한국에서는 매년 약 4000명의 아기가 비혼모에게서 태어난다고 보고되지만, 미국에서는 2004년 태어난 아이들의 3분의 1정도인 150만 명이 비혼모의 자녀다.

 

미국에서도 입양을 기다리는 114000명의 아이들이 있고, 513000명은 위탁 양육되며, 94650명은 그룹 홈이나 보호시설에 수용돼 있다. 한국으로부터의 입양은 한국사람에게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미국사회가 자신들의 문제를 잊게 만든다는 점에서 미국 어린이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이 아이들을 보내는 동안, 자기 이웃의 문제를 잊어버리려 하는 미국은 한국과 같은 '미개한 나라'에서 한 아이를 '구출'해오며 뿌듯해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미국의 비공식적 식민지

그러나 한국은 미개한 나라가 아니다. 다만 열등의식은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고, 그것이 한국을 대단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하다. 그 배경으로는 한국이 알맞게 식민지화돼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영어를 배우고자 하고,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큰 돈을 쏟아 붓고 있다. 그래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 한국말을 못하는 해외입양인들의 주요한 직업이 된다.

 

미국 식당 체인점은 서울 곳곳에 있고, 미국에서 파는 대부분의 것들을 구할 수 있다. 가게가 아니라면 개인업자에게서라도 구할 수 있다. 용산에 있는 사람들은 몇 년 안에 미군기지가 평택 근처로 이동하면서 함께 이동할 것이고, 우리는 그들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조차 잊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국과 미국의 새로운 FTA, 우리는 서울 밖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는 외면하면서 미국 쇠고기와 오렌지를 원하는 만큼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식민지시대 일본에게 이름과 말을 빼앗긴 쓰디쓴 원한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한국 정부는 입양인들에게 일어나는 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왜 입양인들이 한국말을 못하고 한국이름을 발음하지 못하는 것이 극단적인 형태의 식민화라 여기지 않는가?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한국은 아베 신조 일본 수상이 과거 한국 여성의 납치 및 일본 군인들에 대한 성노동 강요를 부정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미국 양부모에게 아이를 강제로 보내야만 하는 여성들의 현실적이고 동시대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것이 놀라운가? 식민지배국가가 아이와 여성들을 취하는 것은 항상 있어 온 일이 아니던가? 그리고 피해의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항상 자기에게 잘못을 저지른 이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생각해 오지 않았나? 현재 자기가 저지르는 과오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고 말이다.

 

협력자는 누구인가?

일본인들이 50년 전에 한 일을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쉽고 이 세계의 경제 대국을 비난하는 것은 어렵다. 또 협력자보다는 피해자 역할을 하는 것이 더 쉽다. 물론 한국에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본에 협력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혔던 이들도 있기는 하다.

 

한국사회는 전후 사회시스템을 구축하느라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50년이 넘는 동안 가장 약자에 속하는 국민들과 그들의 어머니를 무시해 왔다. 정부의 첫째 임무는 자국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계속해서 우리는 미개해서 유교의 전통을 바꿀 능력이 없다고 믿으며 우리 아이들의 해외입양을 정당화한다면, 우리는 그저 근대사회를 흉내내고 있는 것뿐이다. 어쩌면 실제로 우리는 미국 입양부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개한지도 모르겠다.

 

생모에게서 아이를 빼앗는 것이 그들을 돕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믿음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비록 생모를 아이들로부터 떼어내는 것이 좋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해도, 장기적으로 어린 비혼모를 아이들과 분리하는 것이 한국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사회 내 많은 수의 사람들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거나 주류 사회로부터 밀어내는 이런 사회는 세계 무대에서 선진사회나 근대화된 사회로 여겨질 수 없을 것이다.

 

노예제는 세계 무대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형태의 인권 침해로 비난 받아 왔다. 이의 근대적 형태는 부채 상환을 위해 노예처럼 일하는 것이다. 어린 비혼모의 병원비는 아이를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입양기관이 지불한다. 그 이후에 마음이 바뀐다 해도 비혼모는 아이를 되찾을 수 없다. 이것이 채무 상환 노동이나 노예제와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미국의 수요-공급 원리 관점에서 볼 때 해외입양 문제에 대한 한국의 조치는 50년 전과 똑같기 때문에 미국의 예비 입양 부모들이 여전히 한국을 전쟁으로 황폐하고 가난한 나라로 인식하는 것이 과연 이상한가?

 

비혼모와 이혼녀 등에 대한 굴레는 분명한 한국의 현실이다. 한국사회에 의심할 여지 없이 존재하는 가부장제의 명백한 표현이다. 한국사회가 변해 비혼모에 대한 오명이 사그러든다 해도, 자국에서 아이들을 내보내는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미국 입양기관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한국은 또 다른 이유를 찾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 이유가 남북의 통일이 될지도 모른다. 북의 가난한 아이들을 얼마나 거둬들일지를 상상해보라.

 

이미 무너진 '아메리카 드림'의 중개인이 될 필요 없다

'행복'하거나 '불행'한 입양은 성숙한 입양 논쟁의 초점이 아니다. 그 초점은 인권, 즉 친자식을 양육할 수 있는 권리, 친가족 내에서 성장할 권리, 모국어에 대한 권리, 자신의 이름에 대한 권리, 차별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한 사회에서 살 권리, 어머니가 적절한 사회적 서비스를 받고 아이를 교육하고 양육할 수 있는 권리에 있어야 한다. 비록 서류는 중개인과 구매자의 양심이 무뎌지고 듣기 좋게 '입양' 서류라고 불리지만, 아이들은 2000만 원에 서구 국가로 팔려가지 않을 권리를 가져야 한다.

 

사회의 하위층을 위해 한국을 향상시키는 것은 진실된 대화, 사설단체와 정부의 제도적인 기억과 일관성, 그리고 국가 차원의 합의되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전환기마다 아이들을 내보내는 새로운 핑계를 만들 수 없다.

 

현재 한국은 미군과 함께 이라크, 레바논,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으로 군인들을 파병할 만큼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이 정말 사회복지를 위해 쓸 충분한 돈이 없다면, 우선은 가난한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사회 프로그램에 쓰여져야 한다. 입양인들이 아이로서, 혹은 성인으로서 충분하고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문제이나, 진정한 문제는 우선 우리가 존재한다는 데에 있다. 입양인으로서 자기 혐오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저 아이들은 외국인들에게 입양 보내지는 것보다 그들의 어머니와 지내는 것이 낫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만일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부양할 수 없다면 정부가 도와야 한다. 날 때부터 입양인은 없다. 우리는 문서작업과정을 통해서, 편리한 현대 여행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현재의 풍요로움을 고려할 때 한국 정부는 우리들을 나라 밖으로 수출해 더 많은 해외 입양인들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국보 53호로 지정된 진돗개의 수출조차 한국 정부에 의해 엄격히 금지된다. 왜 가난한 비혼모의 아이들인 우리는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한국의 입양은 전후 임시 해결책으로서 시작됐다. 이제는 그것을 중단하고 자신의 문제를 풀기 위한 영구적인 해결책을 실천해야 할 때다. 이미 무너진 '아메리칸 드림'의 중개인이 되어 도움을 구할 필요가 없다. 상처 받기 쉬운 여성들과 가족들을 위한 한국 정부의 지원이 보다 절실하다. 이런 자애로운 정치와 사람에 대한 배려가 진정한 유교적 가치가 아니던가?

 

하인스 워드는 지난해 5월 방한해 한국의 혼혈아동들을 돕기 위한 재단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잃어버린 유물이 아니라 사람을 찾아야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곧 대구에서 열릴 것이고 토비 도슨이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동계올림픽도 평창에서 열리게 될지 모른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중요한 대회를 우리나라에서 주최하게 된 것을 자랑스러워 해야 하고, 토비 도슨의 성취에 즐거워하고, 그가 아버지와 형제를 다시 만난 것에 함께 기뻐할 수 있다. 스포트라이트는 토비에게 가겠지만, 예상대로 그의 미국인다움에 대한 변명들이 만들어 질 것이고, 그가 한국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자막처리를 하게 될 것이다.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여전히 편협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그가 정확히 얼마만큼 한국인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김치 먹을 수 있어요""한국 여성을 좋아하나요"와 같은 외국인에게 무례하고 깊이 없는 질문들을 토비에게 영어로 하게 될 것이다. 이 곤란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을 통해 우리는 토비를 내보냈을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아이들을 최근까지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는 세계적인 입양 산업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한국이 지금 토비를 한국 '민족'의 일부로 부르는 특권을 주장하고 싶다면, 우리는 그를 입양 보낸 사실을 무엇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지, 그의 생모가 수십 년 동안 그 '비밀'로 얼마나 고통 받았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내 어머니는 나를 비밀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조금은 다른 경우다. 첫 남편이 군대에서 죽고, 첫 번째 아들도 가난으로 잃었다. 그 뒤 재혼한 내 아버지인 알코올 중독자 폭력 남편과도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비록 두 딸을 해외입양 보냈지만, 내 여동생들을 열심히 키웠다. 내 여동생들은 모두 잘 자라 결혼을 했다. 비록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나는 한국에서 어머니와 함께 했던 그 짧은 시간을 어느 것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어머니의 딸인 것이 자랑스럽다.

 

한국사회가 외면하는 여성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한국의 최근 경제적 성공에 그들이 일조했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이 전쟁 이후 그렇게 빨리 발전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이 사회적 약자를 포괄하는 적절한 사회제도 확립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에 가장 크고 비싼 대가를 치른 사람들이 아이들을 떠나 보내야 했던 여성들이다.

 

궁극적으로 일반인들의 복지에 대한 책임은 한국 정부에 있다. 한국 정부는 1년 내에 해외입양을 영구적으로 중단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지원을 확대하고 대기업에 대한 지원을 축소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부유층들에게 면책을 부여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고,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 대신 외규장각의 의궤와 같은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회수하는 이미지 형성 사업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동시대의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의 행위를 통해 이 사회를 변화시킬 책임을 맡아야 한다. 만약 사회의 특정 사람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굴레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그르다는 생각만 갖지 말고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는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실질적인 일들을 할 수 있다. 공동육아에 참여해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는 어머니들이 학업을 그만두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 또 사회적 연계를 통해 젊은 아버지들이 직업을 구하고 직업 능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다. 부모들은 청소년기 이전이나 그 시기에 자녀들과 성과 피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원하지 않는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정말 가정에서 원하지 않는 아이들은 한국 내에서 입양돼야 한다.

 

민족주의적 자존심에 입각한 피상적 계획보다, 모든 한국인들의 현실에 보다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상의 자상함과 너그러움을 우리 함께 진지하게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가장 연약한 사람들의 편에서 '한 가족의 마음'으로 무언가를 시작해보자.

 

제인 정 트렌카(Jane Jeong Trenka, 정경아)<The Language of Blood>의 저자이자 <Outsiders Within: Writing on Transracial Adoption>의 공동 편집자다. 이 두 작품은 모두 미국에서 출판됐다. <The Language of Blood>로 그는 2003년 가을 '반즈 앤 노블'이 선정한 신인작가군에 오르고, 2004년도 미네소타 북 어워드에서 '자서선/회고록' 부문과 '새로운 목소리'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이 책은 20059월 국내에 <피의 언어>(와이겔리 펴냄)로 번역 출판돼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선정하는 '이달의 문학작품'으로 선정됐다. 친가족을 찾은 그녀는 2004년 이후 한국에 살고 있다.

 

그가 기고한 이 글은 원래 영어로 쓰여진 것이나, '해외입양인연대'(G.O.A.'L)에서 한글로 번역했다. /제인 정 트렌카 작가

 

해외입양은 아동복지인가, 아동학대인가?

[해외입양, 그 잊혀진 역사④ㆍ]"아동에 대한 국가 폭력"

필자는 지난 해 11월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한 해외입양 사후사업 관련 세미나에서 "해외입양은 아동복지(child welfare)이기보다는 아동학대(child abuse)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던졌다. 이 말은 그 모임에 참석했던 해외입양기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간 듯 했다. 회의가 끝나고 나서 몇 분이 내게 와서 항의와 분노를 표했다. 부모와 가정이 필요한 요보호 아동에게 인종과 문화를 초월해서 가정을 찾아 주는 해외입양사업의 고결성을 그렇게 폄훼해도 되냐는 것이었다.


누가 내보내졌는가"인종청소에 버금갈 만한 일"

우리나라가 해외입양을 시작한 것은 6·25전쟁 직후였다. 반세기를 넘어서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진입하고 있고 세계경제 10위권을 넘보는 경제대국이 된 오늘에도 우리나라는 자기 땅에 태어난 어린이를 해외로 내보내는, 지구상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나라가 되었다. 해외입양아동 수는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의하면 1953년부터 2005년까지 총 158703명이었다. 이 중 혼혈 어린이는 1955년부터 1973년까지 내보내졌고, 5546명이었다. 정부의 또다른 통계에 따르면, 1958년부터 지금까지 입양 보낸 아동 중 비혼모아동은 98178, 결손가정아동이 28823, 버려진 아동이 29950명이었으며 전체 숫자 가운데 장애아동은 37216명이었다.

 

이 통계는 우리 사회가 해외입양을 통해 주로 혼혈아동·장애아동·비혼모출산 아동· 결손가정 아동· 기아들을 우리 사회 외부로 대거 격출(隔出)시킨 사실을 보여준다. 그 근원적 성격에 있어서 인종청소(Genocide)에 버금갈 만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이 일에 대해서는 성장과 교육의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주는 혜택을 입은 필자 스스로도 공범의 혐의를 벗을 길이 없다는 전제를 가지고 하는 말이다.


해외입양이 아동복지가 아니라 아동학대일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를 대기 전에 한 가지 점을 전제하고 싶다. 해외입양은 미시적 차원에서는 아동복지적 성격을 충분히 담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보호 아동을 따뜻하게 돌보는 사랑의 수고에 대해서 필자 역시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가지고 있다. 요보호 아동이 최초로 출현하는 장소인 길가와 골목, 시청 사회복지과와 파출소, 조산원이나 산부인과, 아동일시보호소와 입양기관의 아동보호시설과 부설병원 등에서 일해 온 입양기관 설립자들과 그 종사자들, 사회복지사들과 위탁모들의 눈물겨운 사랑과 수고는 충분히 아동복지에 헌신한 명예로운 이름을 얻어 마땅하다. 더구나 인종과 혈통이 다른 아이들을 가족의 성원으로 받아들여 차별 없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입양부모의 '자애로운 사랑(philanthropic love)'에 대해서는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필자는 가지고 있다. 필자가 문제 삼는 것은 이렇게 해외입양의 미시적 차원이 아닌 거시적 차원, 즉 우리 시대의 사회적 현상과 정교한 국제 사회적 체계의 한 부분으로서의 해외입양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1)생태체계론적 관점에 비춰 볼 때 해외입양은 아동을 향한 국가폭력이라는 점 2)해외입양이 한국 사회의 경제개발전략의 일환이었을 개연성이 높고 그런 점에서 해외입양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자들의 부와 번영을 위한 희생이었다는 점 3)해외입양은 결국 서구사회의 유럽중심주의 혹은 백인 우월의 인종차별주의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는 일이라는 점 4)우리 사회에서 태어나는 아동을 사회의 성원으로 자라갈 수 있도록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대신 해외입양을 중단하는 것이 마치 아동의 행복권을 침해하는 일일 수 있다고 간주하는 단순한 관찰자적 의식의 수준 등에 대한 비판적 고찰 등을 다루고자 한다.


해외입양은 강제 격출 행위

생태체계론적(eco-systems theory) 관점에 기초해서 볼 때, 해외입양은 아동이 자기가 미래에 살기로 하고 태어난 사회로부터 강제 격출을 당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아동을 향한 사회적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생태체계론적 관점은 미국의 학자들에 의해서 소위 '개방입양(open adoption)'의 이론적 근거로 제시된 것이다. 생태체계이론이란 개인은 하나의 커다란 생태체계의 한 부분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에서 출발한다. 어린아이의 출생은 생태체계로의 출생이라는 것이다. 이 생태체계는 유전적, 가족적, 그리고 사회적 경제적 그물망이며 그 어린아이를 받아들이게 될 생물적 사회적 환경체계 전체를 일컫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그는 자기가 미래에 귀속될 가족과 사회에 어울리는 유전적 사회적 코드를 지니고 태어난다고 할 수 있다.


'개방입양(open adoption)'에서는 바로 이 생태체계이론에 기초해서 볼 때, 타고난 생부모 생태체계는 말살되거나 부인될 수 없는 것이므로, 성장과정을 통해 생부모 생태체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고 상호교류의 기회까지 주고 입양어린이가 통합적 자기정체감을 형성해가도록 도와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했다.

이 생태체계이론에 비추어 볼 때, 해외입양이란 어린아이를 그가 자연스럽게 귀속될 생태체계로부터 강제로 격리하는 일인 동시에 아이가 지니고 태어난 유전적 사회적 체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른 생태체계에 강제로 접합하는 일이다. 이 강제격리와 강제접합의 상흔은 입양아동과 생부모 가족, 입양부모 가족 전반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해외입양은 백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한국 사이에 정교하게 제도화된 장치에 의해 아동이 원래 귀속될 생태체계로부터 격출돼 귀속이 쉽지 않은 사회로 진입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이러한 완전히 상이한 생태체계로의 '강제적' 입양은 체계적 학대 또는 제도적 폭력으로 볼 수 있다.

 

부와 번영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아동 격출



한국을 방문한 해외입양인들을 위한 민간비영리단체인 '뿌리의 집' 전경. 프레시안

 

또 한국의 해외입양이 경제성장제일주의 혹은 경제개발 전략과 암암리에 연루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해외입양은 아동학대로 해석될 수 있다. 자기 사회 내부에서 출현한 아동을 해외로 격출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사회의 부와 번영이 암암리에 추구됐다고 한다면, 이를 어떻게 아동복지로 이름할 수 있겠는가?


해외입양에 관한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해외입양은 70년대와 80년대 20년 동안 최고조에 달했다. 1953년부터 1968년까지는 매해 1000명에 훨씬 못 미치는 어린아이들을 해외로 입양보냈다. 그러나 19691192, 19701932, 19712725명 등 그 숫자가 가파르게 상승해 1985년에는 8837명에 이르기까지 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해외입양이 국제적으로 강력한 비판에 부딪히게 되고 1991년부터 해외입양은 매해 2000명을 약간 웃도는 숫자로 조정될 때까지 강력한 추동력을 가지고 실천된 것이다. 70년대와 80년대에 내보내진 숫자는 113568명으로 지난 54년 동안 나간 해외입양아 중 3분의 2가 넘는 다수가 이 20년 동안 보내진 것이다.


70년대와 80년대는 우리 사회에서 경제개발의 이데올로기가 가장 지배적으로 작동하던 시대였다. 그런 점에서 경제 이데올로그의 전횡은 심지어 아동복지조차 경제발전의 하위 수단으로 동원했다. 1988년 미국 <프로그레시브(The Progressive)> 지의 기자 매튜 로스차일드(Matthew Rothschild)는 한국의 해외입양에 관한 르포기사에서 한 아이가 해외로 입양되는 댓가로 입양기관에 유입되는 돈이 5000달러라고 썼다. 2005년 방영된 KBS <추적 60>에서는 2000년대에 이르러 이 금액이 약 1만 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로스차일드 기자의 보도를 감안해 추정해보면 70년대와 80년대에 우리나라는 해외 아동입양으로 매년 2000-4000만 달러가 유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100만 달러 수출을 달성한 기업에게 정부 차원에서 포상과 명예를 줘 수출산업을 전방위적으로 독려하던 시대, 달러가 몹시 요긴하던 시절에, 부가가치가 순수하게 국내에서 만들어진 연간 2000-4000만 달러는 정부 입장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국을 방문하는 입양인들이 들고 오는 입양관련 서류뭉치 속에는 70년대 유럽 국가들에 주재하고 있던 한국대사들이 입양부모에게 보낸 감사편지가 발견되곤 한다. 일국의 대사가 한 아이를 입양한 가정에 감사편지를 보내는 일은 외교적 관행으로 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필자는 이를 우리나라가 70년대에 해외입양을 국가적 시책으로 드라이브했던 흔적으로 해석하고 싶다.


16만 명에 이르는 아동들을 위한 복지와 교육을 국내에서 감당하려고 했을 때 필요했을 정부 예산의 절감효과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결국 해외입양은 이 땅의 정부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양의 달러의 유입과 국내 사회복지 및 교육비용절감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국가는 해외입양을 제도화하고 보호대상 아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아동을 경제개발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요보호 아동에 대한 제도적 폭력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창출된 재원은 이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오늘 우리의 부와 번영은 간접적인 형태로나마, 해외입양을 가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고난에 찬 삶을 살고 있는 많은 입양인들에게 빚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해외입양은 물질적 보상 대가로 정체성 훼손하는 제도

해외입양은 한국 어린이에게는 미국과 유럽의 주류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백인 가정으로의 입양을 의미한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의 백인 주류 사회는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의 피식민지 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필자가 만난 대부분의 입양인들은 입양으로 인해 입양국가의 백인가족의 성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식량과 의료와 교육을 보장받는 대신, 백인 중심의 인종차별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성장해야 했다. 이는 불가피하게 아시아인으로서의 자기 열등성을 내면화해 자기 존엄을 무너뜨리고 내면의 깊은 상흔을 안고 살아가도록 했다. 이는 결국 해외입양이 물질적 보상을 대가로 아동의 내면적이고 근원적인 가치 혹은 정체성의 훼손을 허락하는 제도일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스웨덴에서 이뤄진 사회인구학적 연구는 한국계 입양인들이 백인 가정의 자녀들에 비해 자기존엄성 수준에 있어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자살과 자살시도, 정신적 장애와 알콜 오남용 및 마약 오남용, 그리고 중범죄율에 있어 입양인들의 노출 정도가 다른 이들에 비해 높았다.


이 지점에서 해외입양기관들이 종종 해외입양 중단의 목소리에 반대해 주장하는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게 가정을 찾아주는 일만큼 소중한 일이 어디에 있냐'는 주장에 대해 '아동은 가정으로만 입양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도 입양이 되는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 사회가 아동의 성장에 있어서 공격적이고 해악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회라고 했을 때 해외입양을 쉽게 아동복지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박하고 싶다.


한국계 입양인으로서 스웨덴의 한국학 학자 토비아스 휘비네트(Tobias Huebinette/한국명 이삼돌)는 그의 책 <고아의 나라를 위로하라(Comforting Orphaned Nation)>에서 해외입양을 "식민지시대의 현대적 프로젝트"라고 주장하면서 해외입양과 식민지시대의 노예제도 사이의 충격적 유사성을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1) 노예무역과 해외입양은 둘 다 소비자(서구인)의 수요, 사적 시장의 관심, 씁쓸하기 그지없는 이익 창출, 건강한 노예가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었던 것처럼 어리고 건강한 아동일수록 비싼 가격 체계에 기반하고 있으며,

2) 노예무역이나 해외입양이 공히 출생국 출신의부르조아 중개인 혹은 전문인에 의존하고 있는 사업이자 효과적인 선박해운 혹은 항공해운에 의존하고 있는 사업이라는 점,

3) 노예와 입양아동, 두 경우 모두에게 부모와 형제와 친족 혹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람들과 분리가 일어나며, 원래의 문화와 언어의 박탈이 일어나며, 도착하는 나라의 항구와 공항에서 재출생하며, 기독교화되며, 그 주인의 이름을 따라 세례를 받으며, 오직 마지막에 남는 것은 인종차별주의에 노출되는 비백인의 몸, 그것도 케이스 넘버로서의 번호가 매겨진 몸뿐이라는 점,

4) 노예나 입양아동이나 다 같이 주인의 가정에 영원히 그리고 법적으로 귀속되며 그들의 가구와 가정의 일원이 된다는 점,

5) 두 경우 모두 그 가정으로 들어서는 순간 물질적 상황이 엄청나게 좋아진다는 얄팍한 주장에 의해서 이 일이 정당화된다는 점,

6) 마지막으로 두 경우 모두 '선한' 구매자나 주인의 필요와 요구와 욕망을 기쁘게 충족시키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점 등이 노예제도와 해외입양의 유사점들이다.


휘비네트의 이 같은 주장은 입양부모와의 긍정적인 관계 가운데 있는 입양인들에게는 커다란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지만, 그 묘사된 특질의 기본적 성격마저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미시적 관점에서 해외입양이 아동복지의 차원을 담지하고 있음에도 거시적 관점에서 해외입양은 리콜(recall)돼야 할 제도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결함 있는 자동차와 부작용이 나타나는 약품의 리콜이 당연하다면 30% 이상의 당사자들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하고 자기 존엄에 심각한 훼손을 가하는 해외입양의 아동학대(child abuse)적 성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해외입양제도의 중단을 주장하는 것이 너무 지나친 일일까?


해외입양이 아동의 '행복추구권'이라고?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의 동태적이고 변혁적인 관점에서 해외입양이 아동복지인지, 아동학대인지를 판별해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싶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 아이들이 그렇게 해외입양을 갔으니까 선진국으로 가서 혜택을 누리며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들이 만약 국내에서 자랐다면 고아나 국내입양아로서 더 큰 차별과 냉대를 받으면서 자라고 그래서 더 불행한 삶을 살게 되지 않았을까요?'라고 묻는다. 이 같은 생각을 기초로 사람들은 해외입양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해외입양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부모의 돌봄이 제공되지 않은 채로 이 땅에 태어나는 아이들의 미래의 행복을 가로막고 나서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사회의 이런 차원의 변혁을 가져올 수 없다는 무책임한 의식에 기반한 것이다. 변혁을 추구하는 참여자로서가 아니라 관찰자로서만 바라보는 것이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우리나라는 혼혈어린이들을 해외로 입양보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인종차별이 너무 심한 나라이니까 혼혈어린이들은 입양을 간 것이 아이들 자신들에게 참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들 말했다. 그러나 혼혈어린이들이 우리사회의 새 생명으로 태어났을 때, 우리사회가 그들의 삶에 대해 공격적이고 해악을 끼치는 인종차별주의에 젖어 있었다면, 보다 올바른 선택은 우리의 인종차별주의를 치유하고 혼혈어린이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부모인 내가 악하니까 너는 다른 집에 가서 사는 것이 낫다'는 말과 다름이 없는 생각이다. 인종차별주의를 정리하고 혼혈어린이에게도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했을 우리의 의무는 방기한 채로 그들을 해외입양 보낸 일이 옳았다고만 말하고 있는 것은 관찰자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도 이 일은 반복되고 있다. 비혼모의 자식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삶이겠는가, 차별과 소외와 물질적 결핍을 겪는 대신 차라리 해외로 입양을 가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주장을 도처에서 듣는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우리사회가 비혼모의 자식들도 따뜻하게 받아들여서 우리사회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편견없는 사회'로 바꿔나가 해외입양도 중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해외입양 가서 선진국의 좋은 가정 만나서 좋은 교육 받고 영어도 잘 할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좋으냐?'는 질문을 받았던 한 입양인이 '그러면 당신 아이를 해외입양 보내지 그랬느냐?'고 맞받아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는 우리사회를 가꾸어서 아이가 해외입양 가지 않아도 될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지, 해외입양 가면 더 행복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해외입양을 지속해야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는 어린아이들을 향한 가해자적 차원에서 계속 서게 되는 것이며, 바로 그런 점에서 해외입양은 아동학대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떠나야 했던 아이들

생태체계이론적 관점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경제성장제일주의 혹은 경제개발전략의 일환으로서의 해외입양이 실천되었을 개연성이 높다고 하는 점에서, 그리고 해외입양인들이 유럽중심주의의 가치규범에 의해서 끊임없이 상처와 훼손에 내어 몰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나아가 우리 사회가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어린이들을 따뜻하게 키워가려고 하는 노력을 외면하는 관찰자적 관점에 붙들린 채로 해외입양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해외입양은 어린이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모토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해외입양을 허용하고 능동적으로 추진했던 모든 사람들의 이익추구의 과정에 불과했을 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해외입양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존엄성을 지닌 주체로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기보다는 이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복리를 위한 객체로 끊임없이 대상화됐을 뿐인 것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길에 버려졌다가 미국으로 입양 가서 현재 워싱턴 디시에 살면서 통신원으로 일하고 있는 입양인 나비야(Nabiya)가 쓴 한 편의 시를 덧붙임으로 이 글의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는 현대의 노예들


세금감면과 정부교부금을 위해 고아원으로 수집된

자동차들이나 컴퓨터 칩처럼 세계 시장으로 팔려 나온

우리가 더 이상 고향이라 부를 수 없는 나라의 GDP를 위해

우리는 내 동족의 손으로 팔아넘겨진 일용품

서양인의 면전으로 서양인들의 가치체계에로

우리는 우편으로 주문된 상품

우리는 귀여워야만 하고 이국적이어야 하고 기분을 좋게 해야 한다

우리는 주인인 서양인들의 인형놀이감들로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백인들 세상의 장식품

그들의 부요와 관용의 전시물들

우리는 백인 남성들의 무거운 짐의 표지

우리의 이주는 그들의 자비를 표상

그들의 세계적 차원의 삶을 그들의 가족들과 친구들에 드러내는 것

우리의 언어는 제거되었고

우리의 찢어진 눈과 둥근 얼굴 모양은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이 운반을 통해서 우리의 정체성은 말소되었다

마치 우리의 한국인됨이 문드러져 없어지고 말았듯이

그리고 우리 안에서 작은 백인 아이가 다시 태어난 것이다

김도현 '뿌리의 집' 목사

 

"그는 입양인의 존재를 처음 인정한 정치인이었다"

[DJ를 기억하며] 국경을 뛰어넘는 화해

해외입양인들에게 모국인 한국은 참으로 아픈 나라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이지만 자신을 내친 나라이기도 하다. 해외입양을 통해 그들은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강탈당했다. 이들은 자라면서 자신의 친부모가 있는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찾은 한국은 낯선 땅이다. 입양인에 대한 작은 배려나 미안함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한국에서 해외입양은 '잊혀진 역사'였다.

 

이런 입양인들의 아픔에 일찍부터 알아준 정치인이 있다. 그가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 82년 이희호 여사에게 보낸 옥중편지에서 해외입양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89년 야당 총재 시절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 "나는 한국의 고아입니다한국은 돈을 받고 나를 팔아먹었습니다경제사정이 좋아진 지금도 아이들을 팔아먹고 있습니다한국의 정치지도자로서 어떻게 생각합니까"라는 직설적인 질문을 던졌던 입양인 레나 킴과의 만남도 그에게 영향을 끼쳤다. 김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레니 킴 씨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집권한 뒤 해외입양 문제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고, 그와 이희호 여사는 해외입양인들을 여러 차례 청와대에 초청했다. 안타깝게도 김 전 대통령 재임시 해외입양이 중단되지는 않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관심으로 '잊혀진 역사'인 해외입양 문제가 공론화된 것도 사실이다. 해외입양인들이 김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며 조문을 보내왔다. <편집자>

 

한국 입양인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경의를 표하며

27년 전 감옥에서 아내에게 쓴 한 유명한 옥중편지에서 김대중은 한국 사회의 해외입양에 관한 이슈를 제기했다. 경제적 성장과 국가적 번영의 시대 한 가운데서 해외입양의 도덕적 문제들을 숙려하던 중, 김대중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입양인들의 존재를 위한 투쟁에 감명을 받았고 또한 자기 나라에 태어난 아들들과 딸들을 국가적으로 유기하는 일에 대해 수치스러워했다.

 

야당 지도자로 살았던 기간과 고국을 떠난 망명자로 살았던 수년의 세월 동안, 김대중과 그의 아내는 수많은 개인은 물론 공동체를 대표하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그는 여행 중에 만난 수많은 한국 입양인들에 대해 충격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989년 스웨덴의 스톡홀롬을 방문해서 청중 앞에서 연설을 하는 동안 입양의 이슈가 그를 사로잡았고, 그 후 여러 해 동안 입양 문제에 대한 김대중의 이해는 깊이를 더해 갔다.

 

민주적 선거에 의해 당선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김대중은 19981023일 특별 초청을 받아 8개국으로부터 온 29명의 입양인들에게 국가의 이름으로 공식 사과했다. 이것은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이 20만 명의 한국인 입양인들의 존재를 비로소 그리고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누구보다 해외입양문제에 관심을 표했던 정치인 중 한 사람이다. 연합

 

그 다음 해에 김대중은 친생가족을 찾아 돌아오는 입양인들을 위한 지원사업을 제공하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준정부적 성격의 글로벌 입양 정보 사후서비스 센터가 설립되었다. (나중에 입양정보센터가 되었고, 20097월부터 중앙입양정보원으로 바뀌었다.) 그로 하여금 저명하게 만들었던 화해의 정신 안에서, 이 기구는 한국 입양인과 한국의 친생가족 사이의 재회를 가능케 하는 단계들을 관장하여 그것을 매우 용이하도록 계획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년 남짓 동안, 친생가족을 찾는 요청이 9만 건을 넘어섰다. 이것은 해외입양인의 절반 가량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그러나 이들 중 2.7%에 못 미치는 이들만이 성공적으로 친생가족을 재회할 수 있었다.

 

현재 서울에는 한국 입양인들의 독특한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대략 500-1000명 정도되는 입양인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장기거주자들로 살고 있고, 해마다 방문하는 입양인들이 수천 명을 넘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차이나타운이나 미국과 유럽의 도시들에 산재한 코리아타운과 비슷한 입양인타운이 서울에 형성되고 있다. 비록 아직 작긴 하지만 성장하는 모습으로.

 

우리가 고 김대중 대통령께 경의를 표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국제적으로 입양된 한국인 커뮤니티인 우리에게 있어서, 그는 상호 인정의 가치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 불의에 대한 비타협적 투쟁이라고 하는 점에 있어서 한국에서 그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최고의 상징적 존재이다.

 

그러나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김대중은 입양인의 존재와 고통, 그리고 우리의 망명을 끝내고자 하는 일생의 투쟁을 공식적으로 인식한 바로 그 최초의 대표적 한국인이라는 데에 있다. 그는 우리가 존재했으며 존재하고 있고 미래에 한국인으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첫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큰 존경을 가지고 우리의 전임 대통령과 그의 국경을 뛰어넘는 화해의 비전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한분영, 덴마크/한국 (숭실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석사 과정)

Kim Su Rasmussen (서길승), 덴마크(서울대학교 강사, 철학 박사)

Tobias Huebinette(이삼돌) 스웨덴 (다문화연구소, 한국학 박사)

Kelsey Hye-Sun March(김혜선) 미국/한국 (국외입양인연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인턴)

Nicole Sheppard(김영은), 한국/미국(법무법인 화우, 상표부 국제협력)

Malena Swanson, 스웨덴 (환경부, 법학 박사)

Hanna Sofia Jung Johansson, 스웨덴 (과학과 테크놀로지 박사, Korean @doptees Worldwide 서기)

제인 정 트렌카 (정경아), 미국/한국 (작가, TRACK-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 모임 회장)

Heidi Borg Jørgensen, 덴마크 (덴마크교통부, 통제자)

Lena Kim Arctaedius, 스웨덴 (AKF - association korean adoptees in Sweden의 설립자)

마야 이 랑와드 , 덴마크/한국 (작가)

Jan Lee Hoejmark-Jensen, 덴마그/한국

Denis SungHo Janssens, 벨기에/한국 (클래식 기타리스트)

Maya Weimer, 미국, 서울/뉴욕 (미술가 & 영화 제작자)

박정수, 덴마크/한국 (한국 영춘 협회, 원장)

신주애, 미국/한국(영어강사)

Christiane Baudraz, 스위스 (Kimchi association 회장)

Lars Liebing, 덴마크/한국 (G.O.A'L-해외입양인연대, 영어강사)

Eli Park Sørensen 덴마크/한국 (경희대학교 영문학, 교수, 비교문학박사)

Nadine Allemann, 스위스(주부)

Mads Jung Nielsen, 덴마크/한국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박사과정)

제니퍼 권 돕스, 미국, (St. Olaf College, 교수, 시인)

Ross Lee Schreck (김준원), 미국/한국 (Vore Studios, Design Manager)

Valérie Burnet, 스위스 (Kimchi Association, Asamco Association)

United Adoptees International (UAI) Netherlands

한분영 외 24인 입양인 2009.08.24 /프레시안


입양의 그늘미혼부모는 입 다물라?

입양에서 배제되는 친부모"입양기관과 미혼모 시설 분리 운영돼야"

이혼숙려제. 자녀가 있는 부모들이 섣불리 이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협의 이혼 전에 3개월의 숙려 기간을 반드시 거치게 돼 있다. 국가가 급증하는 이혼을 줄이기 위해 지난 20086월부터 도입한 제도다.

 

이혼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작 부모와 자녀들의 삶에 이혼보다 몇십배 더 큰 상처와 영향을 미치는 입양에 대해선 '숙려'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 입양 보내는 부모는 한국사회에서 소위 '죄인'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입양은 친부모 가정에서 키워지기 어려운 아이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게 아니다.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혼혈아, 미혼모의 자녀 등의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차원에서 해외 입양이 먼저 발생했고, 입양기관이 생겼다. 그러다보니 입양을 보내는 친부모와 입양아동들에게 입양이 어떤 경험인지는 정작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아 왔다.

 

몇년 전부터 정부가 '아동수출대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내 입양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나서면서 입양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입양부모에 대한 얘기만 전면에 나온다. 입양 보내는 친부모의 경험은 철저히 드러나지 않는다.

 

출산도 하기 전에 친권포기각서부터

지난해 513일 생후 2개월 된 아이를 입양 보낸 박모(25) . 그는 입양 결정을 내린 직후부터 남편 문모(27) 씨와 함께 지금까지 아이를 되찾아 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이를 맡겼던 입양기관인 동방사회복지회에 도움을 청하기도 했고, 서울시청과 보건복지부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각종 공공기관과 법률사무소 등을 전전하면서 자신의 사연을 얘기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절차상 문제가 없어 도와줄 수 없다"는 것. 이들 부부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박 씨가 입양기관을 찾게 된 것은 지난해 33. 출산을 한달 정도 앞둔 상태였다. 당시 미혼 상태였던 그는 임신 사실을 알고 낙태를 하려 했으나 시기를 놓쳤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했지만 출산일이 다가오면서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 넉넉지 않은 형편인데다 혼전 임신이라는 부담이 있었다. 또 아이 아빠인 문 씨도 양육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2월경 인터넷을 통해 입양기관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전화로 상담을 의뢰했다. 전화를 받은 복지사는 방문을 요청하고 입양에 필요한 서류를 지참하라고 얘기했다. 그는 친구와 함께 동방사회복지회를 찾았다. 그날 복지사는 입양동의서와 친권포기각서 등 서류 작성을 권했다. 박 씨는 입양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듣지 못했고, 상담 첫날부터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 서류에 사인을 하지 않았다.

 

복지사는 박 씨가 입양기관에서 운영하는 미혼모의 집 입소를 거절하자, 혼자 집에 있다가 진통이 오면 위험할 수 있으니 자신들이 지정해주는 산부인과에서 분만 촉진제를 맞고 지정된 날짜에 아이를 낳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출산 비용과 입원비는 입양기관에서 부담하겠다고 덧붙였다.

 

박 씨는 당시 출산을 앞두고 아이가 기다려지면서도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 아이 양육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 아이 아빠와의 불확실한 관계, 부모에 대한 죄책감, 날이 갈수록 무거워지는 몸 등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혼자 아이를 낳는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컸다. 어느 것 하나 정해진 게 없고, 누구 하나 기댈 사람이 없는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에서 입양기관의 상담 내용이 그에게 큰 위안이 됐다고 한다.

 

그는 입양기관이 정해준 병원에서 촉진제를 맞고 예정일보다 앞당겨 분만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출산 당일인 319일 아침 입양기관에 들러 입양동의서와 친권포기각서를 썼고, 이날 오후 늦게 건강한 여아를 낳았다. 아이도 낳기 전에 친권포기각서를 쓴 것이다. 복지사는 서류에 사인하기 힘들어하는 그에게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하라면서 안심시켰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양부모가 키우는 게 더 행복할까

복지사의 말과 달리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번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복지사는 이튿날 바로 병원에 찾아와 아이를 데려갔다. 병원에 와 있던 아이 아빠에게도 입양동의서와 친권포기각서에 사인하게 했다. 문 씨는 "서류를 제대로 읽어볼 시간도 안 주고 아이 엄마가 입양을 원하니 사인만 하면 된다면서 사인을 받아갔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퇴원하고 3일 뒤인 24일 아이를 보러 입양기관을 찾았을 때부터 입양결정을 번복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복지사는 이미 서류 작성이 끝난 일이므로 안 된다고 거절했다. 박 씨는 27일에도 입양기관에 들러 다시 입양 결정을 번복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으나 거절당했다.

 

박 씨는 복지사가 지속적으로 입양 중심의 상담을 했다고 주장했다. 아이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그가 서울시립아동상담소 등 아이를 맡길 기관을 알아보자 복지사는 그런 기관은 주로 장애아동을 보호하는 곳이므로 그런 기관에 맡기면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할 것 같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또 복지사는 문 씨에게 아이 아빠가 아이 엄마를 설득해서 빨리 입양을 보낼 수 있도록 하라고 말했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416일 양부모가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박 씨는 문 씨와 함께 다음날 입양기관을 찾아 아이를 돌려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복지사는 두 사람과 양부모의 경제력과 양육여건을 비교하면서 어느 가정에서 아이가 자라는 게 낫겠느냐며 입양을 권유했다. 또 복지사는 아이의 입양을 계속 미루면 '고아 호적'이 생긴다면서 서둘러 결정을 내리라고 종용했다.

 

박 씨가 주저하고 있는 사이에 아이를 입양하려던 양부모에게는 다른 아이가 입양을 가게 됐고, 복지사의 태도는 점점 더 강압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51일 박 씨가 입양기관에 들러 아이를 데려가겠다는 뜻을 거듭 밝히자 복지사는 출산 및 입원비용과 그동안 아이의 위탁비용(하루 2만 원씩)을 지불하고 아이를 데려가라고 말했다. 복지사는 아이를 데려가려면 아이 아빠인 문 씨와 관계를 확실히 하고 양가 부모님을 모셔 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 박 씨로서는 하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박 씨는 결국 입양에 최종 동의하고 일주일만인 513일 아이는 양부모에게 보내졌다.

 

 

동방사회복지회 "양육 관련 정보 제공위탁 비용 청구 과하다 생각지 않아"

동방사회복지회 관계자는 박 씨 부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들도 여러 차례 양육을 권유했으며, 박 씨 부부가 계속 혼란스런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복지회가 위탁 비용을 요구한 사실에 대해 시인하면서 "하루에 2만 원이라는 비용이 결코 과도한 요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복지회가 위탁모에게 지불하는 비용만 한 달에 48만 원이며 분유, 기저귀 등 다른 소모품도 모두 부담한다""이에 대한 국가 지원도 작년에 와서야 지급됐다"고 말했다. 박 씨의 아이는 위탁가정이 아닌 복지회의 일시보호시설에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이 관계자는 "시설에 있는 경우가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아이를 찾아가려는 다른 생모들에게도 위탁 비용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입양의 경우 입양아동들의 위탁 비용은 정부가 입양기관에 지불한다. 입양을 기다리는 아동은 위탁 기간 동안 기초수급자로 지정돼 기초 생계비를 지원받는다. 아이가 입양되면 정부는 입양기관에 1인당 입양수수료 220만 원 중 위탁 비용으로 지급된 비용을 뺀 나머지 비용을 지원한다. 해외입양의 경우, 입양기관들은 1인당 4000-7000달러 정도의 입양수수료를 양부모에게 받고 있다.

 

이 관계자는 양부모에게 박 씨 부부가 아이를 되찾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렸다고 밝혔다. 그는 "복지부에서 원해서 양부모에게 사실을 알렸다. 우리에게는 친모도 중요하지만 양부모도 똑같이 고객으로 중요하다. 양부모들이 너무 충격을 받아 곤혹스러웠다. 양부모들이 박 씨 부부를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 복지회 입장에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입양'에서 배제되는 친부모의 경험

아이를 입양 보낸 직후 박 씨는 인터넷에서 아이를 입양 보낸 이들이 모인 카페를 접하게 됐고, 여기서 자신이 몰랐던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됐다. 한 미혼모 복지시설에서는 출산 후 일년이 지나도록 입양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미혼모를 위해 입양을 보류하고 있다는 사연, 미혼모자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일시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복지시설이 있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됐다. 복지사가 말한 '고아 호적'도 사실이 아니고, 자신만이 아니라 입양기관을 찾은 미혼모들 중 상당수가 입양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정보와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서둘러 결정을 내려야 했다는 사실도 접하게 됐다.

 

이즈음 문 씨도 양육 결심을 굳히게 됐다. 입양 보낸 뒤 아이와 박 씨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떠나지 않았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되찾아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718일 동방사회복지회를 찾아 아이를 되찾아올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문의했다. 그리고 앞서 밝혔듯이 아이를 되찾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입양기관의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절차상 아무런 하자가 없고, 양부모에 대한 정보는 입양기관으로서 비밀 준수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전달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면서 지난 2007년까지도 중국, 러시아, 과테말라에 이어 4번째로 해외 입양을 많이 보내는 '아동수출대국'이다. 1953년 이래로 해외에 입양된 아동은 16만 명으로 압도적인 세계 1위다. 이런 오명을 씻기 위해 정부는 지난 2006년부터 매년 511일을 '입양의 날'로 정하고 국내 입양을 권장하고 있다. 배우 신애라-차인표 부부, 배우 윤석화 씨 등 아이를 입양한 연예인들이 홍보대사로 나서 입양의 '고귀함''아름다움'에 대해 강조하기도 한다. 이런 노력으로 2008년 처음으로 국내입양(1388)이 해외입양(1264)보다 늘었다.

 

이런 입양 담론에서 아이를 입양 보내는 친부모는 철저히 배제돼 있다. 입양이 이들에게 어떤 경험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이들에게는 입양과 양육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공개 입양하는 경우보다는 입양 사실을 주위에 알리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입양 부모들은 갓난 아이를 선호하고, 입양이 '실적'인 입양기관에서는 생모들에게 빨리 결정을 내리라고 재촉하게 된다. 그리고 입양을 보내는 과정에서 생모는 아이와 철저히 분리된다. 대다수가 양부모에 대한 정보를 전혀 제공받지 못한다.

 

어려운 경제적 형편 등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환경, 미혼모일 경우 아이 아빠와 출산과 양육을 둘러싼 갈등, 사회의 미혼모에 대한 편견 등 극한 상황에 몰려 입양을 고민하게 됐지만, 생모에게 입양은 결코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자신과 아이의 평생이 달린 문제다. 또 아이를 낳기 전과 막상 아이를 낳은 후 입양에 대한 생각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

 

미혼모 복지시설 애란원의 강영실 사무국장은 "생모들이 대부분 준비되지 않은 임신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감정적으로 불안한 상태일 수밖에 없다""입양과 양육 의사를 계속 번복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생모들은 입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드는 상실감과 자괴감으로 몹시 불안정한 심리 상태인 '친권포기증후군'을 겪는다고 강 국장은 말했다.

 

헤이그협약 : 입양 동의는 아동 출생 후 이뤄져야

입양기관에서는 정작 생모들의 이런 불안정한 상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강 국장은 "우리나라에서 입양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입양 상담의 질이 변한 게 아니다""입양기관의 상담원들은 생모들이 입양을 결정하고 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보자마자 입양상담을 시작하고 입양서류 작성을 요구하며 아이를 낳기도 전에 친권포기각서를 쓰라고 한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 씨의 사례와 관련해 강 국장은 "입양특례법에 따르면 입양기관은 입양보다 부모에 의한 양육이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양육에 대한 정보, 사회적응 서비스 등을 제공해야만 한다""박 씨의 경우 아이를 직접 양육하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입양기관은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거짓 정보를 줬다"고 지적했다. 또 아이를 찾아가려면 비용을 지불하라는 요구를 한 것에 대해서도 "입양기관에 아동이 머무르는 동안 생계비 등에 대해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국장은 박 씨가 출산하기 전에 친권포기각서를 쓴 것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입양에 대한 국제협약인 '헤이그 협약'에 따르면 입양 동의는 그 동의가 아동의 출생 후에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협약은 국제입양의 요건에 대한 것이지만, 아동과 생모의 권리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는 국내입양에서도 적용돼야 한다는 것.

 

해외입양인들을 위한 비영리 민간단체인 '뿌리의 집'(KoRoot) 김도현 목사는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입양 아동의 98%가 미혼모의 자녀"이라면서 "미혼모의 아동이 대부분 입양 보내지는 것은 미혼모가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체계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은 OECD국가 중 미혼모 발생률이 가장 낮지만, 미혼모의 자녀들이 입양되는 비율은 가장 높다.

 

김 목사는 미혼모들에게 충분한 상담과 시간만 주어진다면, 입양을 결정하는 비율이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혼모 상담과 출산.양육 지원을 하는 애란원의 경우 양육 결심을 하는 비율이 82%나 되지만, 입양기관에서 운영하는 시설에서 출산한 미혼모들 중에서 양육 결심을 하는 비율은 37%로 큰 차이가 있다는 것. 김 목사는 그래서 '입양 숙려제'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혼모 복지시설과 입양기관 분리해야

박 씨와 같은 불행한 사례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미혼모에 대한 복지시설과 입양기관을 함께 운영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영실 국장은 주장했다.

 

그는 "입양아동이 줄어들면서 지난 2003년 이후 입양기관들이 앞 다퉈 미혼모자시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입양기관이 직접 미혼모를 상담하는 시스템이 확대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미혼모 복지시설 현황



미혼모자시설 : 임신한 어머니, 출산한 어머니들이 머무르는 시설.

미혼모자 공동생활가정 : 양육을 결정한 어머니들이 공동생활 하는 시설.

미혼모 공동생활가정 : 입양 보낸 어머니들이 공동생활 하는 시설.

 

입양기관들의 경우 입양 아동을 확보할 수 있는 미혼모자시설 위주로 운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입양과 양육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접하기 힘들다는 점도 문제다. 강 국장은 "입양기관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들이 인터넷 공간을 선점하고 있다""입양기관들이 포털에 유료 광고까지 내고 있기 때문에 네이버, 다음, 엠파스 등에서 '미혼모'를 검색어로 치면 입양기관들이 운영하는 미혼모 시설이 뜬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미혼모들이 인터넷을 통해 입양기관을 찾아가 상담하게 된다는 것이다.


네이버에서 미혼모를 검색어로 검색했을 때 화면. 입양기관에서 운영하는 시설 위주로 검색이 된다. 애란원, 모성원 등 미혼모 복지시설만 운영하고 있는 곳은 검색 결과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음이나 엠파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레시안

 

"저희가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우리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양부모님들에게도 죄송스럽습니다. 하지만 입양기관은 저희만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아이 입장을 생각하라고 하는데, 입양기관이 아이를 생각했다면 입양이 보내지기 전에 친부모가 키우겠다고 했는데 그때는 왜 막았습니까? 그분들에겐 잠시 괴롭고 힘든 일일 수 있지만 저희 부부와 아이에겐 평생이 달린 문제입니다. 저희와 같은 미혼부모들에게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게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주셨으면 합니다."

 

박씨 부부는 자신들과 똑같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미혼부모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얼마 전 미혼부모들을 위한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복지부 "미혼모 대책 강화돼야 이런 일 없을 것"

박 씨 부부는 복지부에도 민원을 제기해 복지부 담당자도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다. 박찬수 아동복지과 사무관은 "국내 입양과 관련해 입양기관이 신고만 하도록 돼 있다. 법원이나 복지부, 시군구의 허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상담 과정에서 부적절한 사례가 있더라도 일일이 파악하기는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박 사무관은 "박 씨 부부가 민원을 제기해 동방사회복지회를 통해 상담 기록 등을 받아왔다. 규정된 절차에서 하자가 있다는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복지부에서 관리감독의 책임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이런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시할 권한은 없다"고 밝혔다.

 

박 사무관은 입양기관에서 미혼모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문제에 대해 "미혼모 시설을 입양기관에서 많이 운영하는 게 사실이고 미혼모 시설마다 특징이 다르다""애란원 등 미혼모 위주의 시설은 양육을 주로 하게 되지만 입양기관은 양육보다는 입양으로 연결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미혼모 시설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복지부에서도 강화하기 위해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단계적으로 미혼모 대책이 강화되고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전홍기혜 기자 2009.02.26

 

 

"스웨덴으로 보낸 '불법 입양아', 송환해야 한다"

[기고] 한나 요한슨 박사의 글에 덧붙여

 

스웨덴한국입양인네트워크(SKAN)의 코디네이너 한나 요한슨 박사는 최근 프레시안에 보낸 기고문(스웨덴 아기 수출, ()도 법()도 없다)을 통해서, 한국의 보건복지부는 대한사회복지회(SWS)가 스웨덴으로 아동을 입양 보낼 수 있도록 허가한 사업허가증 취소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요한슨 박사의 글은 몇 가지 적절한 질문들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는 입양에 관련된 법이 준수되고 있지 못한 문제, 감독기관으로서의 정부의 책임에 관한 문제, 국제입양에 관련한 국제조약의 유용성에 관한 것 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슨 박사의 글은 몇 가지 점에서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국내법과 국제법이 법제화의 수준에서 드러내고 있는 차이, 즉 그 법률들이 가지고 있는 제약과 법의 효과가 미치는 영역에 관한 명확한 구분이 없다. 또 자유재량으로부터 나온 제약과 법률로 규정된 의무 사이의 차이를 무시하고 있다. 나아가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적 참여 의도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요한슨 박사의 글이 핵심적인 질문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41명의 아이들이 불법으로 입양되었다고 했는데, 이들에게 일어난 일들은 무엇인가? 이들이 입양되는 과정을 보면 한국에서 공식적 입양이라는 최종단계에 이르기 위해서 밟아야 할 법적 절차의 일부, , 입양숙려제와 국내입양우선추진제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이 아이들에 대한 한국에서의 입양결정은 법률적으로 무효이며 사실상 불법입양이다. 한국에서의 법적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이 아이들이 보내졌으므로, 이 아이들에 대한 스웨덴에서의 입양 역시 법적으로 유효하지 않고, 한국에서 이 아이들이 합법적으로 그 친생부모와의 단절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므로 입양된 아동들은 고아들이 아니다.

 

물론 대한사회복지회는 한국에서의 행위들에 대해서는 비난 받을 수 있지만, 스웨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사회복지회는 스웨덴의 어답션센트룸을 파트너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대한사회복지회와 어답션센트룸 간의 협약은 스웨덴 정부의 중앙입양위원회(MIA)의 승인을 받았다.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비회원국과의 입양사업을 할 것인지 하지 말 것인지는 스웨덴 당국과 기관들이 결정할 문제다. 대한사회복지회와 어답션센트룸 간의 계약서 안에 명시된 입양가정방문과 같은 조항을 실행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이는 대한사회복지회가 비난 받아야 할 일이라기보다는, 이를 이행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계약을 체결한 어답션센트룸이 비난 받아야 할 일이다.

 

대한민국은 2013524일에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에 서명함으로써 해외입양에 대한 국제기준을 따르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표명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이 협약이 비준되지 않은 한, 입양기관들과 입양관련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을 준수하는 일은 도덕적 의무일 수는 있어도 법적 구속력을 갖는 의무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41건의 불법 입양이 있었고, 대한사회복지회가 한국의 법, 즉 입양특례법을 여겼고 보건복지부로부터 합당한 질책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여기서 불확실하게 남아있는 점은 대한사회복지회가 친생부모들의 입양동의 날짜를 조작하여 다른 날짜를 기재해 넣음으로써 가정법원을 기만했는가의 여부이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대한사회복지회는 위조죄와 사문서위조행사에 관한 형법에 따라 유죄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 대한사회복지회가 친생부모의 입양동의서를 조작하지 않고 가정법원에 제출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럴 경우라면 이는 판사들이 제출된 서류를 확인할 때 그들의 책임을 올바르게 수행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또한 보건복지부가 이 아동들에게 해외이주허가를 내어 줄 때 이런 변칙을 인지하는 일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간에 이 입양은 법적으로 유효하지 않다. 핵심적인 조건인 부모의 동의요건을 법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입양은 다시 절차를 밟아서 한국의 가정법원으로부터 승인되어야만 한다. 이 경우 만일 친생부모가 결정을 번복하게 되면, 입양동의를 얻어낼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사안에 관한 법적인 논란에는 2013년에 있었던 두켓(Duquets) 부부가 입양을 목적으로 한국과 미국 양국 정부 모르게 미국으로 몰래 데리고 들어간 7개월 된 아이 김세화 양의 경우(바로보기)와 비슷한 문제가 될 것이다.

 

이 아이들은 스웨덴에서 1-2년 째 살아오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한국의 친생모의 자녀들이다. 이 아이들은 아무 것도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복합적 상황의 피해자들이다. 이 경우 과연 무엇이 아동들의 최선의 이익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이 아이들은 그들의 "불법" 입양부모들과 함께 스웨덴에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국으로 송환되어 그들의 친생모와 재결합되도록 해야 하는 것일까? 이는 스웨덴 중앙입양위원회(MIA)와 한국의 보건복지부가 제공할 답변에 달려 있다.

 

20128월 입양특례법 시행 이후, 대한사회복지회 뿐 아니라 홀트아동복지회(33)와 동방사회복지회(10)도 입양동의의 법적 의무요건인 7일간의 입양숙려제를 어겼다. 보건복지부는 또한 이 사안에 대한 조사를 통해서 이 불법입양들이 어떤 경로로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입양기관들이 이 불법적 행위들을 어떻게 시정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법치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는 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법이 존중되도록 확실하게 하는 일과 법이 실행되도록 하는 일은 정부의 책임이다. 직접적으로는 정부의 부처들을 통해서 해야 하고 간접적으로는 경찰을 통해서 하거나 재정에 관련된 문제라면 금융감독원을 통해서 해야 할 것이다. 결국 궁극적 차원에서는, 사회의 가장 연약한 존재들을 보호할 책임은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 모두에게 있다.

마크 샴포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 2015.11.17 프레시안

 

스웨덴 아기 수출, ()도 법()도 없다

[기고] "대한사회복지회, 입양특례법 어기고 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자국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낸 나라다. 거의 20만 명을 보냈다. 주목할 점은 상당수가 대한사회복지회를 통해 나갔다는 점이다. 2014년에는 535명을 내보냈는데, 그중 161명이 대한사회복지회를 통해 나갔다. 그보다 한 해 전인 2013년에는 236명을 보냈고, 대한사회복지회가 알선한 아동은 90명이었다.

 

한국 보건복지부는 대한사회복지회를 비롯한 입양 기관들이 입양특례법을 준수하고 있는지를 지도하고 감독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한국 아동 입양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스웨덴이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거의 1만 명에 이르는 한국 아동들이 스웨덴으로 보내졌다. 이들은 이제 한국과 스웨덴의 가장 강력한 연결고리가 되었다.

 

1980년부터 스웨덴으로의 한국 아동 입양은 한국의 대한사회복지회와 스웨덴의 입양 알선 기관 AC(Adoptionscentrum) 사이의 협약에 기초해서 실천되고 있다. AC는 사설 기관이다. 따라서 스웨덴 정부의 중앙 입양 당국인 MIA(Swedish Intercountry Adoptions Authority)의 지도와 감독을 받고 있다.

 

MIA는 사설 입양 기관들이 스웨덴의 법과 입양에 관련한 국제 협약을 지키고 있는지 확인할 책임이 있다. 또한 MIA는 사설 입양 기관들의 해외 입양 사업 허가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AC2년마다 사업 계속의 여부를 허가받아야만 한다. 사업 계속 허가를 받지 못하면 AC와 대한사회복지회 간의 협약은 20151231일 자로 종료된다.

 

MIA'스웨덴 한국 입양인 네트워크(SKAN)'의 코디네이터인 나에게 AC의 한국 아동 입양 사업 연장 허가 여부를 두고 논평을 해달라고 요청을 해왔다.

 

나는 AC와 대한사회복지회 간의 현존하는 계약서, 한국의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대한사회복지회에 대한 감사 보고서(2014), 그리고 MIA의 한국 해외 입양 보고서(2014) 등에 근거해서 논평을 작성했다. 이 문서들에 따르면 대한사회복지회는 명백하게 한국의 입양특례법과 '헤이그 국제 아동 입양 협약'을 지키지 않았다. 한국은 '헤이그 국제 아동 입양 협약'의 서명국일 뿐 아니라 조만간 비준할 예정으로 알려졌음에도 말이다.

 

대한사회복지회와 AC 간의 계약에 따른 문제점들

이 두 사설 기관 사이의 계약에서 핵심적인 문제점은 대한사회복지회가 AC가 한국의 입양특례법이 스웨덴에서 실현되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계약서상에 규정된 대부분 조건은 사설 기관인 AC로서는 실행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 조항들에 대한 책임은 스웨덴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사항이다. 비록 계약서에 명시된 조건 중 일부는 분명 스웨덴 법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사설 기관인 AC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계약서에 따르면, AC는 입양 아동의 발달 상황에 대해 4차례에 걸쳐 사후 보고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보고서들은 입양 가정을 방문한 후 작성되어야만 한다고 되어 있다. 스웨덴의 사회복지법은 입양 가정 방문과 같은 입양 사후 서비스는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으로 명시하고 있다. AC와 같은 사설 기관은 입양 가정 방문을 실행할 법적 근거가 없다.

 

또한 이 계약서에 따르면, 대한사회복지회는 AC에 한국 입양 아동에게 특화된 입양 사후 서비스를 제공할 책임을 요구했다. 스웨덴 법에 따르면 AC는 입양 사후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 설사 AC가 입양 사후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하더라도, AC는 아이들이 이 서비스를 받도록 입양 부모들을 강제할 수는 없다.

 

더 나아가 이 계약서에 의하면, AC는 입양 부모들이 한국의 문화와 언어에 대한 배경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회복지사들로부터 한국의 문화와 언어에 관한 입양 사전 교육을 받는 것을 보장해야만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스웨덴의 경우, 독일 또는 미국과 같은 나라들과는 달리 한국 이민자들의 인구가 극소수에 불과하고, 한국의 문화와 언어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회복지사들을 찾아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뿐만 아니라 스웨덴 법에는 예비 입양 부모들이 입양 사전 교육을 필수로 받아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긴 하지만, 입양 사전 교육을 지도할 강사가 한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대한사회복지회는 또한 AC가 입양 부모들에게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훈련 과정을 제공하고, 나아가 한국 아동 입양 가족과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때때로 AC는 한국 아이를 입양한 부모들을 위한 만남의 기회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AC는 입양 가족이 한국에 대해 배우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서 입양 가족들에게 이런 모임에 참석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 또한 입양 부모들이 이러한 모임이나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싶어도 사는 곳이 너무 멀어 실제로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대한사회복지회는 AC에게 입양 아동이 만 2세가 넘어 입양되는 경우 아이들에게 한국어 교육 지원을 해주도록 요구했다. 스웨덴에는 한국어를 할 줄 하는 사람 수가 1000명에 못 미치는 바, 입양 가족이 입양 아동을 데리고 한국어 수업을 받도록 할 기회는 극히 미미하다. 더구나 AC는 한국 아동이 한국어 수업에 참석하도록 입양 부모들을 강제할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다. 한국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대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사는 경우라면 아이들을 한국어 수업에 아이들을 보낼 기회는 더더욱 없다. 스웨덴의 법은 아동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그때야 비로소 지방자치단체가 해외 입양 아동을 포함한 이민자의 자녀들에게 모국어 교육을 제공하도록 규율하고 있을 뿐이다.

 

대한사회복지회는 파트너 입양기관인 AC가 계약서의 내용대로 이행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증하지 않은 채로 이와 같은 책임들을 위임했을 뿐이다.

 

대한사회복지회는 입양특례법을 어기고 있다

한국의 보건복지부는 2014년 대한사회복지회를 포함한 모든 해외 입양 기관에 대한 감사를 진행했다.

 

감사 보고서에 의하면 2013~2014년에 걸쳐서 대한사회복지회가 국내 입양 우선 원칙을 109건 위반한 것으로 적시되어 있다. 이 원칙은 한국의 입양특례법에만 포함된 것이 아니라, '헤이그 국제아동 입양 협약'의 핵심 원칙이다. 대한사회복지회는 이 기간에 319건의 해외 입양을 알선했다. 그중에 국내 입양 우선 원칙을 어긴 탈법적 해외 입양이 109건이고, 이는 대한사회복지회가 알선한 전체 해외 입양 건수의 34%에 이른다.

 

스웨덴 정부의 입양 중앙 당국인 MIA도 대한사회복지회가 국내 입양 우선 원칙을 심각한 수준에서 훼손한 사안을 인지하고 있다. MIA는 한국에서 아동의 해외 입양 적합성 혹은 불가피성 여부에 대한 공식적인 결정이 정부기구나 법원에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원칙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불확실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MIA는 이런 결정 과정에 대한 명확성의 결핍이 입양 기관이 아동을 해외 입양에 적합한 아동으로 배치하기 전에 국내 입양 우선 추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법적 책임을 유기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보건복지부의 감사는 대한사회복지회가 41건의 입양숙려제를 위반했다는 사실을 적발했다. 어머니는 아이를 출산한 후 1주일이 지나야만 입양 동의를 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대한사회복지회는 이 법 조항을 어기고 아이가 태어난 지 1주일도 되기 전에 어머니들이 입양 서류에 서명하도록 했다. MIA 보고서는 미혼모들이 편견 없이 대한사회복지회로부터 상담을 받았는지 또는 너무 쉽게 입양을 선택하도록 상담을 받은 건 아닌지 확실하지 않다고 언급하고 있다. 아동은 가능한 한 자신들의 부모에 의해 양육 받을 권리가 있다는 원칙은 유엔아동권리협약 7조에서도 명시되어 있다.

 

대한사회복지회의 입양 사업은 문제 있다

해외 입양에서 핵심 원칙은 아동이 친생부모에 의해 양육될 수 없고 출생국에서 적절한 가정을 찾을 수 없을 때 비로소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내야 한다는 보충성의 원칙(subsidiarity principle)이다.

 

대한사회복지회의 입양 사업은 문제가 있다. 대한사회복지회는 AC와 체결한 계약을 AC가 이행하도록 보장하지 못한다. 이 결과로 대한사회복지회는 한국의 입양특례법의 21(입양 기관의 의무)25(사후 서비스 제공)를 위반하고 있다. 또한 보건복지부의 감사 결과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대한사회복지회는 입양특례법 7(국내 입양 우선 추진)13(입양 숙려제)를 위반하고 있는 탈법적 기관이다.

 

'스웨덴 한국 입양인 네트워크(SKAN)'는 스웨덴 중앙 입양 당국 MIA의 한국 입양 보고서의 아래와 같은 결론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이 해외 입양 과정에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어려움과 모호성에 대해서 나쁜 방식으로 타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대한사회복지회와 AC 간의 계약서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다.

 

"이 계약은 충분하지 않은 가정 방문이나 가정 조사 그리고 입양 사후 서비스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경우 이 계약은 깨끗하게 폐기되어야 한다."

 

바로 이 계약 조문에 기초해서, 그리고 대한사회복지회가 한국의 입양특례법을 어기고 있다는 점에 기초해서, '스웨덴 한국 입양인 네트워크'는 한국의 보건복지부에 스웨덴과 맺고 있는 대한사회복지회의 입양 사업 허가를 제고하는 일을 고려해보도록 권고한 바 있다. 한 입양 기관이 타국 파트너 기관과 맺은 계약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한국의 보건복지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한나 소피아 정 요한슨 스웨덴 한국입양인 네트워크 코디네이터 2015.10.11

 

 

(이 글과 관련해 대한사회복지회에서 이견이 있을 경우, <프레시안>에서는 반론을 실을 예정입니다. kakiru@pressian.com으로 보내주시면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해외 입양 문제로 사회의 천박한 영혼 직면"

 

20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시상식에서 '한국 해외입양 65' 기획으로 언론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전홍기혜 <프레시안> 기자(오른쪽), 제인 정 트렌카 대표(왼쪽), 이경은 교수(가운데). 프레시안(최형락)

 

'한국 해외입양 65' 기획 기사로 국제앰네스티 언론상을 받은 전홍기혜 <프레시안> 기자가 "입양 문제는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아동을 보호하고 책임질 공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뜻이며, 때문에 또 다른 형태의 아동 인권 침해가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1950년대 우리 사회가 어머니와 살고 있는 혼혈 아동을 아버지의 나라로 보내야 한다며 어떻게 생이별시켰는지, 1970~1980년대 길 잃은 아이까지 고아로 둔갑시켜 가면서 입양을 보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이른바 사회 정화 사업에 해외입양은 어떤 방식으로 활용됐는지 등을 추적했다", "우리 사회는 프랑스 장관이 된 입양인 소식에 환호하고 양부모에게 학대당하며 어렵게 살다 추방당한 입양인은 자살로 내모는 '가난하고 천박하기 짝이 없는 영혼'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기사를 쓰는 게 다른 매체였다면 가능했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프레시안> 조합원과 동료 기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전홍기혜 기자와 함께 '한국 해외입양 65'을 기획한 이경은 고려대학교 인권센터 연구교수, 제인 정 트렌카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 모임 대표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교수는 "올해 2월까지 공무원으로 일했던 저는 문명국의 공무원인줄 알았다. 그런데 50~60년 묵은 정책들을 살펴보며 문명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정책 중 하나가 해외입양 문제였다"고 했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도 다 그렇게 살아'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국만 이렇다""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공론화가 될지 고민이 많았지만 앰네스티에서 응답해준 것 같아 기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한국의 해외입양, 65년의 '적폐'

[심층 취재-한국 해외입양 65] 에필로그

지난 21일 경남 김해에서 노르웨이 국적의 40대 남성이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8살이던 1980년에 노르웨이로 해외입양된 Y 씨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5년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는 결국 친부모를 만나지 못했고, '타국'과도 같은 '고국'에서 혼자 외로이 죽음을 맞았습니다. 10여일 전부터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건물 관리인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이미 숨진 지 한참 지난 Y씨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관련기사 바로보기)

 

지난 5월에도 미국에서 추방 당한 입양인 필립 클레이 씨가 경기도 일산의 한 아파트 14층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의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을 찾은 입양인들에게, 또 그의 추도식을 찾은 아이를 입양 보낸 한 친생모에게 필립의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아동을 해외입양 보낸 국가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지난 65년간 태어나자마자 이별할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와 아이의 '고통''그리움'에 눈 닫고, 귀 닫았습니다. 혼혈아동이라는 이유로, 미혼모의 자녀라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한국 사회는 이들을 사실상 내쫓았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의 안전을 최소한 담보할 수 있는 법과 제도마저도 제대로 갖춰 놓지 않았습니다. 양부모에게 맞아 죽은 아이, 국제 미아가 된 아이, 입양된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입양인 등 한국사회가 외면해온 숱한 '현재 진행형'인 문제가 쌓여왔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은 세계 98개국이 비준하거나 가입한 '헤이그국제입양협약'25년째 가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은 지난 6개월 동안 한국 사회의 또 하나의 '적폐'라고 할 수 있는 해외입양 문제에 대해 심층 취재해 보도했습니다. 그동안 다른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입양 관련 법과 제도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헤쳤고, 결코 기쁘지만은 않은 '단독 기사'도 여러 건 보도했습니다.

 

<프레시안>을 비롯해 <세계일보>, <한겨레>, <중앙일보>, SBS 등 해외입양 문제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면서 행정자치부가 입양기관들의 개인정보 관리 실태에 대한 현장 점검을 실시하고, 헤이그협약 가입을 위한 입법 활동 등 작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이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홍기혜 기자 2017.12.28.

 

"베이비박스 선동 기사, 이젠 그만 씁시다"

'싱글맘의 날' 토론회..."아동의 친부모 알권리 보장해야"

한국의 혼외 출생율은 전체 출생의 2%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OECD 평균 혼외 출산율은 39.9%에 이른다(OECD 통계, 2014).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9회 싱글맘의 날 국제 컨퍼런스'에서 이 같은 통계 수치는 "혼외 출생 자녀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이 어느 정도 강고한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지난 10여년간의 미혼모, 성인이 되어 귀환한 해외입양인들의 운동을 통해 미혼모()의 양육 보장과 관련된 인식과 제도에 큰 변화가 있었다. 과거에는 입양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원가정 보호와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 정부 정책 방향으로 인정되고 있다. 정부가 올해부터 매년 510일을 '한부모가족의 날'로 제정, 기념하기로 한 것은 이런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다수의 미혼모()가 정서적으로는 고립되고, 경제적으로는 빈곤한 상황에서 출산을 경험한다. 2018년 국내외 입양 아동의 90% 이상이 미혼모 아동이다. 또 상황이 크게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앞날에 대한 걱정이 더 큰 상태에서 아이를 양육해야 한다. 미혼모()의 자녀 양육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며, 지원.전달 체계가 복잡해 실수요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보다 미혼모()와 입양인 당사자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여전한 사회적 편견과 자신들의 상황에 대한 몰이해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아동 유기와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논란이다.

 

소라미 서울대 법학대학원 임상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2011년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아동유기가 증가했고, 특히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동이 증가했다는 주장이 십년 가까이 되풀이 되어 왔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아동 이익 최우선의 원칙'에 부합하도록 어렵게 개선한 현실을 과거로 회귀하기 위한 선동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입양특례법 때문에 아동 유기가 증가했다'는 요지의 기사는 매년 입양의 날 전후로 끊이지 않고 재생산되고 있다.

 

소 교수는 "이 주장은 2011년 입양특례법 개정으로 입양을 위해서는 반드시 출생신고를 하도록 강제가 되었고, 그 결과 출생신고를 기피하는 미혼모들이 입양 대신 아동유기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단계의 주장을 거친다""하지만 2011년 입양특례법의 개정으로 출생신고가 강제된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입양특례법 개정과 무관하게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은 친생부모에게 자녀에 대한 출생신고 의무를 부여하고 있었지만, 입양기관과 부모의 편의와 선호 때문에 입양 대상 아동은 출생 신고를 하지 않는 '불법'을 저질러왔고, 정부는 이를 묵인해왔다는 것이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에는 모든 아동이 출생 등록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출생등록은 아동에게는 부모를 알 권리와 동시에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 교수는 또 "2009년 가족관계 등록법의 개정으로 일부 증명제도가 도입되어 혼인외 출산 사실이 현출되지 않을 수 있게 됐으며, 다시 2016년 법 개정으로 일반.특정.상세 증명서 제도가 도입되어 일반 가족관계 증명서에는 현재 혼인관계 이외 관계에서 출생한 자녀는 현출되지 않도록 되었다. 이와 같은 제도적 보완 노력들을 통해 아동의 출생신고될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친모의 사생활보호의 균형점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출생신고를 하면 가족관계증명서를 뗄 때마다 혼인 외 자녀의 존재가 드러난다'며 출생신고가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소 교수는 "입양절차가 까다로워지고 출생신고를 기피한 미혼모들이 입양 대신 아동유기를 선택했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비약적 주장"이라며 "이때 논거로 제시되는 통계가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동이 증가했다는 것이지만 전국의 영아 유기 총합적인 통계에는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언론의 주목으로 전국의 유기 아동이 특정 지역의 베이비박스로 몰리는 형국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201712월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입양특례법의 입법영향분석'(김준 사회조사심의관)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동은 20104, 201137, 201279, 2013252, 2014280명 등 가파르게 증가한 반면, 기아 아동 숫자는 2010191, 2011218, 2012235, 2013285, 2014282명 등(경찰청 통계) 완만히 증가했다.

 

때문에 보고서는 "2013년 이후 대부분의 기아가 베이비박스를 통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난다""이러한 현상은 베이비박스가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인지도가 높아지고, 이에 따라 영아를 안전하게 유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베이비박스가 급부상한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해석했다.

 

보고서는 아동 유기, 불법 입양 증가 등 입양특례법 개정의 부작용으로 지적되는 일들에 대해 "과장된 것"이라며 본 반면, "아동의 보호 및 권리의 차원에서도 모든 아동이 출생 직후 등록되어야 한다는 것은 타협하기 어려운 원칙"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요구하고 있는 보편적 출생신고제가 도입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유엔아동권리위원회로부터 지속적으로 개선 권고를 받아왔고, 유럽처럼 출생신고를 의료기관과 부모 공동의 의무로 규정하는 방안 검토하되, 동시에 사생활 보호 등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등은 '싱글맘의 날' 성명서를 통해 "정부와 지방자지단체는 베이비박스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원가족이 아동을 양육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하고 아동이 친부모를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전홍기혜 기자 2019.05.09.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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