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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이전 흔적

영남알프스 둘레길 1 통도사에서 언양 작천정까지(11.4.4)

by 이성근 2017. 4. 9.

영남알프스는 영남 동부지역에 위치한 해발 1,000m 이상의 산악군을 유럽의 알프스 산맥에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백두대간의 낙동정맥  남쪽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으며, 낙동강과 평행을 이루며 형성되어 있다. 경상북도 경주와 청도, 울산광역시, 경상남도 밀양과 양산의 5개 시군에 걸쳐 형성되어 있다.이 일대는 높은 봉우리들과 산줄기는 수려한 경관으로 인하여 인기있는 등산코스가 많으며, 일부는 가지산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주요 봉우리는  가지산(迦智山), 1240m  신불산(神佛山), 1209m  천황산(天皇山), 1189m  운문산(雲門山), 1188m 재약산(載藥山), 1108m  간월산(肝月山), 1083.1m  취서산(鷲捿山), 1059m  고헌산(高獻山), 1032.8m 등이며, 그 산자락에 통도사를 비롯 석남사와 운문사 등의 고찰이 있다.


영남알프스 둘레길(350km)은 이 산자락 마을과 마을을 도는 길이다.  그런데 이길을 두고 국제신문과 부산일보가 동시 다발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국제신문은 "지난 18년간 영남알프스 거의 모든 봉우리와 능선 계곡을 가지 않은 곳이 없지만, 수직걷기로서 보다 멀찌기서 바라 볼 필요성에 대한 자성의 일환으로 1년 전 부터 준비를 시작하여 올초부터 기획"  했다고 한다.  아울러 영남알프스 내에 숨어 있는 역사와 문화유산, 자연생태, 지역주민의 삶을 조명하고 스토리텔링화 하여 녹색관광의 길을 제시하고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겠다고 했다. 아무튼 국제신문은 1구간을 통도사에서 언양 작천천 14.5km 했고, 부산일보는 비슷한 구간인데 2구간으로 하여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삼성SDI 정문까지 12.8km로 설정했다. 왜들 그러는지. 마음이 불편하다.  기실 길은 누구의 것도 아닌데, 마치 주인처럼 규정지으려 할 때가 있다.   선점한다고 ?  

 



통도사는 한국 3대 사찰의 하나로,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있어 불보(佛寶)사찰이라고도 한다. 사찰의 기록에 따르면 통도사라 한 것은, 이 절이 위치한 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의 모습과 통하므로 통도사라 이름했고(此山之形通於印度靈鷲山形), 또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이 계단(戒壇)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했으며(爲僧者通而度之), 모든 진리를 회통(會通)하여 일체중생을 제도(濟道)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 절의 창건 유래에 대한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신라의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돌아와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이 되어 왕명에 따라 통도사를 창건하고 승려의 규범을 관장, 법식(法式)을 가르치는 등 불법을 널리 전한 데서 비롯된다. 이때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고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쌓아, 승려가 되고자 원하는 많은 사람들을 득도케 하였다

 통도사 주차장에서 간단한 소개외 몸풀기를 한 다음 주차장 옆으로 난 나무데크를 따라 통도환타지아 방향으로 가다 지산마을 앞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간다

90명에 가까운 참가자도 막상 풀어놓으니 제법 대열을 이룬다.  길에 화색이 돈다.

통도환타지아 주차장 앞을 지나고 있다. 여기까지는 양산땅이다.

 

 (글을 옮겨오며 길 주변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2011년과 2017년  6년이 경과 했다. 들 가운데 듬성 듬성 들어섰던 빌라들이 무리짓고 길은 아스팔트로 마무리 됐다)



다시 2011년 4월로 돌아가서

지산마을 앞에서 바라 본 통도사 뒷쪽   봄이 익을 때면 또 다른 얼굴일 것이다.  양산시지에 따르면 중국 진시황의 신하 서복(徐福)이 불로초를 구하러 왔다가 이곳에서 영지(靈芝)를 구해 '지산마을'로 불렀다고 한다.

 지산마을 400년 당산나무 

울산시 울주군 삼남면 방기마을로 들어 선다. 방기는 우리 말로 방터, 또는 방대라 하는 마을이다. 이곳에 방씨(方氏)가 많이 살았던 곳임으로 방터 또는 방대라 부른다. 통도사와는 등 하나 사이에 두고 있다. 4월 초파일이 되면 절에서는 방이 모자라 방을 빌려주는 곳이라 하여 방터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

 현재  상방과 방기마을은 방기 제1지구, 제2지구 토지구획정리지구로 지정되어, 주거지역으로 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일대의 토지이용이 주거지역이 아닌  자연공원지역으로 하여 수목원 등의 시설이 입지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럴 경우 이웃한 통도사와 연계한  또 다른 명소로서 지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지 않았겠나 싶었다.   하지만 이미 삽질은 시작되었다.  거기다 울산시는 가천리·방기리 일대 297만 5천㎡ 땅에 '울산 하이테크 밸리'를 조성 중이다.

조계종 소속의 보광사 앞을 지나  방기천을 따라 걷는다.   이 방기천 ? 은 태화강 지류의 한 축이다.  영축산에서 발원하여 통도 IC를 지나며  보은천이 됐다가 > 삼동면 하일리와  금곡리를 지나며 보양천이 되고  > 하잠리에서 보온천이 되고  > 보문천 으로 변하면서  대암호로 흘러 들었다가  태화강 물줄기를 이루어 울산만 화암추에서 동해와 만난다. 유로연장 47km 정도 인데  재미있는 사실은  대암댐 전까지 모두 '보'자를 시작으로 하천명이 지어졌다는 것이다.  한번 별도로 추적해 볼일이다.   

아무튼 방기리는 취서산(鷲栖山) 단조봉(丹鳥峯) 아래 있는 마을이다. 산지로부터 흘러내린 지향은 분지형 들을 발달시켜 옛부터 농업이 성했다.  하방과 상방으로구분되는 데   상방의 경우 비록 큰 산 밑에 있으나 한건하여 금강골에 옛부터 사자보를 막고 못을 막아 무늘등(청룡등)을 잘라 수로를 내어 농사를 짓고 있다. 이들 사지보와 사지못은 그 소재지와 몽리구역이 다름으로 사자평의 경작자와 방기들의 경작자간에 물싸움이 자주 일어 났다고했다.  반면  하들(하방기)은 저지대라 상부에 있는 넓은 사자평지대의 물이 모이는 곳임으로 비교적 수리가 안전하여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살았으며, 선사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고, 하들에서 천석지기가 난 곳이다

현재 일대의 마을이 가진 옛 모습은 그림과 같았을 것이나  서서히 허물어지고 사라지고 있다.  당연한 현상으로 보기에는 안타까운 노릇이다.   옛마을의  경관을 유지하면서  잘 살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   농어촌 경관에 대한 개념이나 그 역사성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의 오래된 마을이나 고도를 부러워 하면서도 정작 터 잡고사는 곳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한다.  

 선사시대부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민간신앙 성격의 기도처로 알려져 있는 '방기리 알바위' 유적지

알바위는 알(卵) 모양의 구멍들이 있는 바위라는 뜻이다. 이 구멍들은 작은 돌로 문질러서 둥글고 오목하게 파인 것인데, 성혈(性穴)이라고도 한다. 성혈은 지석묘의 덮개돌에 많이 나타나는데, 여성 성기의 상징으로 풍요와 다산(多産)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고,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인들이 작은 돌로 성혈을 열심히 문질러서 그 돌이 바위에 붙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널리 전하고 있다.
이곳 알바위는 자연 그대로의 여러 개 바위에 성혈이 새겨진 것이 특징이다. 동심원(同心圓) 모양으로 둥글게 성혈을 배치한 것도 있고, 성혈들을 선(線)으로 이은 것도 있는데, 이런 것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다. 하나의 바위에 보통 10개 이상이 새겨져 있고, 50여 개 이상이 새겨진 것도 있는데, 크기는 다양하다.
이미 발굴된 방기리와 신평의 청동기시대 마을 유적들과 함께 생각해 볼 때, 이곳은 당시 사람들의 제전(祭奠)이 이루어졌던 성스러운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알바위 안내판에서  방기 구판장에서 다시 보광사 방향으로 이동한다.  구판장(購販場)  참 오랫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흔히 농협 구판장  또는 축협 구판장 등으로 이름을 달았는데 여기서는 '방기 구판장'이었다.   불어로 coopérative 인데 협동조합의 뜻인데 우리네 구판장은 구멍가계 보다 격상된 형태의 사고 파는 곳이다. 그래도 대형마트나 편의점이 대세인 요즘의 시류에 비추어 보면 그리운 낱말이다.  점방(店房)도 있었다. 


사사문(思思門) 앞에서 우회전 한다.  

 '사사문' 담장을 따라 우측으로  꺽어 돈다. 골목 축사에는  구제역 파동에도 살아 남은 소들이 낯선 객들의  행보에 술렁거렸다.

뒷쪽에서 바라본 사사문. 어떤 내력을 지녔을까   궁금증이 일어 울주문화원 홈페에도 들어 가 보았지만  풀 수 가 없었다.  

재실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거기서 바라보는 영축 신붕산 자락이 연출하는 매일의 풍광이 상상된다.  부러운 일이다.  그동안 난 뭘 했든고 ?  주식도  모르고 증권도 모르고, 하물며 부동산 투기 따위와는 담 쌓고 지낸 세월 속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돈을 벌어 이곳 저곳 땅을 사두거나 주식을 통해 시세차익으로  편케 산다.  그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때론 못마땅할 때도 있다.   

삼성 SDI로 가기 위해  이 산 모퉁이를 돌아 오른다.

누군가 양지바른 곳에 묘를 섰다.  그아래 또 그댁의 누군가가 자리할 여분의 땅에 솔씨들이 날아와 먼저 터 잡았다.

 

 방기뒷산의 산불초소에서 조망하는 영축산과 신불산 능선

올해 처음으로 본 노랑제비꽃

영축산을 경계로 서쪽사면과 우측 사면이 구분된다.  우측 사면은과 아래부분은 밤나무와 참나무류 숲이다. 

 미국자리공이 빽빽하다 .  아래쪽은 예비군 훈련장이다.  사격도 이루어 지는듯 하다.

 주위는 죄다 밤나무 밭이다.  

 예비군 교장에서 점심을 먹고  국제신문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장 이창우씨가 영남 일프스 둘레길에 대한 개괄적 이야기를 풀고 있다.   

그는 산꾼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영남알프스 주변의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샛길을 따라 마실가듯 일대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할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소풍길 까페 동아리  소풍길 소속의 김미옥씨와 박경애 그리고 박정애 시인의 표정이 진지하다.  날씨탓도 있었다.  

 동아대 강영조 교수와 부산발전연구원 이동현 연구위원 

 걷고싶은부산 행사에 늘 참석하는  인도행 사람들 

근경의 억새밭과 대숲에서  느티나무숲의 붉은 기운 그리고 원경의 짙은 녹색 소나무림으로 옮가가는 4월초의 봄빛이 인상적이다.  

지난해 12월 보건의료전문가, 법조계, 학계, 노동, 인권, 여성, 시민사회단체 등 사회인사 534人은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사회인사 선언’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이들은 “삼성반도체, 삼성전자 LCD, 삼성 SDI 등 삼성전자 계열사에서 백혈병, 뇌종양, 난소암, 루게릭병 등 희귀질환 피해제보가 104명에 달했고, 35명이 사망했다”면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진상규명과 산업재해 인정을 끊임없이 요구해왔지만, 책임을 져야할 삼성과 정부는 발뺌으로 일관하며 피해자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건의료 단체에 의하면  " 삼성전자 반도체, LCD, 삼성 SDI, 삼성전기의 직업병 피해자 숫자만 해도 6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삼성은 전혀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개인 질병이라 우기며 피해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겨왔다"는 것이다.  "수십 가지 화학물질과 방사선에 노출되면서도, 삼성 노동자들은 그 이름조차 듣지 못했다. 안전장치와 보호구가 있어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교육을 받거나 보호구를 챙기기에는 너무 바빴고, ‘초일류 기업’인 삼성이 알아서 잘 해줄 거라 믿었다. 이들의 피땀으로 삼성전자는 2010년 2분기에 5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두었고 이건희 회장은 1년에 874억원의 주식 배당금을 챙겨갔지만, 회사를 믿고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은 그 대가로 이삼십 대의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야 했다.

이들의 병은 현장에서 사용해온 발암 물질들과 야간 노동, 과로, 스트레스 때문이다. 이들의 죽음은 저 수많은 유해요인들로부터 노동자의 몸과 삶을 보호하지 않은 삼성의 직무유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실을 규명해야 할 산업안전보건공단과 치료와 생존을 보장해야 할 근로복지공단의 직무유기 때문에,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은 정당한 보상과 위로는커녕 정신적인 고통과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삼성은 산업재해 심사 과정과 행정소송에 개입하여 산재로 인정받기 위한 피해자들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작업환경에 관련된 중요 자료들은 영업비밀이라며 깊숙이 감추고, 유해 화학물질들에 노출되었다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반박하기 위해 사측 증인을 찾아 내세운다. 또 한편으로는 직업병 피해자들을 찾아가 ‘위로금’을 제시하면서, 그 대가로 산재보상 청구를 포기하고 언론이나 민주노총, 반올림 등과 접촉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주변 지인들을 동원하여 산재 포기를 종용하기도 한다.

삼성이 주장해왔듯 이들의 병이 삼성과 무관한 개인 질병이라면, 도대체 삼성은 무엇이 두려워서 돈으로 피해자들의 입을 막으려 하는가? 어째서 소송이나 공개 조사를 통해 진상을 가리기도 전에, 피해자들을 비밀리에 접촉하여 산재 신청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가? 도대체 삼성은 무엇을 감추기 위해 이토록 치졸한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는가? " 라고 항변하고 있다.  관련한 글을 브로그 카테고리 만평 세상보기 26에 실어두었다.  아무튼  삼성의 행태는 결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치졸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길은 이런 아픈 사연도 전한다.   



근처 물엉덩이에 어지롭게 찍힌 발자국들의 주인을 유추해 본다.  너구리 ?

삼성 SDI 뒷편 초지에 소나무들이 들어왔다.  이 장소를 숲 천이를 공부하는 곳으로 쓰면 좋겠다.

느티나무 조림지다.  이렇게 군락으로 무리지어있는 느티나무 숲을 또 어디서 보았든가. 기억이 희미하다.  이 숲에 여름잎 무성할 때면 참 볼 만하겠다.

삼성 SDI 후문을 빠져 나가는 참가자들,  이날 참가자들은 버스 두대에 나뉘어 통도사까지 와서 걷기 시작했는데  일반인이 얼추 75명에 각계 전문가와 스텝 포함 20명 정도로 모두 90여 명이 참여 했다. 

중간 관리용 도로인듯 한데 일반인의 출입은 통제되고 있다.   이런 길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리기다소나무와 은행나무 가로수길이다.  아스팔트지만 뜸한 챠량 운행에 가로수가 걷고싶게 한다.

삼남면 가천리 느티나무 노거수다.  수령은 100~150년로 강당마을에소 관리한다.   옆에는 당집인듯 싶다  뒷쪽은 저수지다.  

성황당을 지나며 직업병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지워 질 수 있도록 기원 한다.

가천리 안락국사 앞  절은 지은 지 얼마되지 않은 듯 했다.  그렇지만 그 치장은 신생절이 대게 그러하듯 금불상을 세우는 등 요란했다.   마을길에서 본 금터샘, 예전에 이곳에서는 빨래방망이 소리 들리며 서방욕에 동네 소문이 교환되었을 커뮤니케이션의 장이었을 것이다.  허나 그런 시절은 더이상 이 마을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위에 배밭이 많다. 울주배는 옛부터 알아 주었다.   

가천마을 회관에서    쯤 도로를 따라 오르면  길은 세갈래로 나뉜다.  전봇대 옆으로 내려가다 우측으로 꺽어지면서 밤나무 숲길을 간다

마음에 드는 구간이다.  그런데 이 길이 가을에도 열릴까 의문이다.  지금은 밤나무 밭 주인이 신경 쓸 일이 없겠지만 한창 밤이 익어갈 철 제풀에 못이겨 떨어진 밤송이를 무심히 지나갈 수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설령 전혀 손되지 않고  걷는다고 해도 밤나무밭 주인의 생각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천저수지가 코 앞이다.

밀양박씨 재실 '아롱당(啞聾堂)'이다.  뒷편은 은진송씨의 재실이라고도 하는데  들리는 말로는  구한말 고종 황제의 시종원부경(요즘의 비서)을 지낸 송태관이 지은 별장 겸 재실이었다고 한다.

소가천마을로 들어서는 다리

정성껏(?) 만든 출입금지  안내판  마을사람들의 단호한 의지가 묻어나는 듯 하다.   이름난 둘레길에서 들려오는 안 좋은 소문을 여기선 사전에 차단하고자 함이인지 ... 씁쓸하다 .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행사 전날  참여 입장을 번복했던 박재철  성은진 부부,  표정이 밝다.   

 

 밀양박씨 부원군 파문회 재실-아롱당

 산으로 오르는 곳에  배밭이 있다

언양 자수정 동굴로 가는 초입  배밭 뒷편 비탈에서 곧잘 보이는 서어나무들과 노각나무

사람들이 버리고 간 비양심이 낙엽 속에 묻혀 있다. 

올해 처음으로 본 개별꽃  혹시나 싶어 얼레지, 바람꽃, 노루귀 등이 있을 둣하여  주변 숲을 뒤졌지만  보이지 않았다.  대신 산괴불주머니와 현혹색은 지천에 가득했다. 지대가 낮아서일까 .  코스가 다 끝나도록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웠다. 

자수정동굴나라로 오르는 길 . 산은 곳곳이 파허쳐 져 볼상 사나왔다.  그래도 이골짝을 찾는 사람은 많은 편이다. 

자수정 동굴나라 뒷쪽 능선을 타고 가다 백암산 정상부를 기점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부도가 난 채 방치되고 있는 아파트 건물

산을 내려 서니 작천정이다.  다 왔다.

 

참가자들은 누가 먼저라고도 할 것 없이 신발과 양말을 훌러덩 벗어 던지고는 작천전 물에 발을 담구었다.  쳐다 보고 계시는 분이 한번 담구어 보라고 권한다.   

암반지역 윗편

좌측에 보이는 두분은 크리스챤인데 좀은 유별나다 싶었다.  같이 어울리지 않고 거기서 예배를 보며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한동안 그들을 지켜 보았다.  

물소리에 실려 보낸다.  오늘 보았던 안좋은 것과 몇 몇 이기적 사람들의 행태를

 영남알프스라는 지명을 최초로 불렀다는 곽수웅씨 그는 한국인 최초로 등정했던  고상돈씨의  에베레스트산  정복(?) 때 부산사람으로서는 유일하게 동참했던 팀원이라고 했다. 

 

국제신문의 영남알프스 둘레길 답사단이다.  개인적으로는 영남 알프스 란 이름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물론 그만큼 아름답고 뭐 하기 때문에 그에 버금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는 있겠지만,  아무튼      

아래부터는 참가자들이다.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 사진만 실었다.  저 중에 박창희 부국장의 부인도 있는데 잘 모르겠다.  정유정, 최형화씨 든가 ?

앞 줄부터  우측으로 김태광, 박경애, 김미옥, 원승학 씨등

그린워킹 마니아 분들

김해몽 류은주 내외

진해에서 오셨다는  두분 , 흰 수염이 인상적이다. 32차 가덕도 걷기에서는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눈길을 모았던 분들이다.  

박정애시인과 오현지씨 박창희부국장 그리고 강양호씨 

지난 가을 갈맷길 축제 사포지향 2백리 때 맨발의 투혼을 보였던 유용배씨

나도 한 컷 해 보았다.

타고갈 버스가 대기 중이다.  참가자 중 6명이 불참했다. 아니 지각을 했는지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출발 시간을 지나 10분 정도 기다렸다 모습을 보이지 않아 그대로 출발했다.  스텝중 누군가는 더 기다려 줘야 하지 않느냐 며 확인 전화라도 해 보자 했지만... 버스가 아니고 기차였다면 어땠을까 .   아쉬운 일이다. 또 하나 하늘이 청명했더라면 해 본다.  걷기에는 수월했다만 ...  

No woman no c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