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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는 이야기

어머니 병원에 입원하다

by 이성근 2015. 10. 23.

 

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본가를 찾았다. 사위가 밴드에 올린 글을 보고 형제들이며 삼촌 내외기 힌 마디씩 거들었다.  허수로이 볼 일이 아니라고 당장 병원에 가야 한다며 입방아를  찧었다.   당신께서는 역정을 내셨다. 나 역시 어머니의 고집도 웬만하다는 것을 안다.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기에   내쳐 둘 일이 아니라 판단하고  사무실을 나와 본가를 찾았던 것이다.

 

배 부른 데도 배 고픈척 밥 돌라 하니 급히 나물을 무쳐 주셨다.  그 밥 어릴때 처럼 먹고서 어머니를 종용했다.  

입원해야 합니다. 하지만  완강히 거부하셨다. 내 몸 내가 안다고 ...이런 저런 경우의 수로 입원의 필요성을 이야기 했지만 설득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터벅터벅 산길을 걸어 집 근처 숲 언저리휘황한 불빛 보며 한참을 울다 귀가했다.  눈물을 훔친 것은 평소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 못했기 때문이다.  이마도 나는 이런 눈물을 처가집에 가서도 흘릴 것이다.   

그랬던 어머니가  아침에 전화를 주셔 아들의 마음을 헤아린다

그래 병원에 가자  삼촌이며 형제들은 역시 큰 아들이라고 했지만  ㅡㅡ

낮에 업무보고 저녁에 병원을 찾았다.  작년에는 아버지가  올해는 어머니가 이 병원에 입원했다.  행사 마치고 남은 꽃 한송이 챙겨 어머니께 전해 드렸다. 

어머니 병문안 왔다가 다시 사무실로 거거나 혹은 집으로 갈 때  일부러 백운포가 보이는  신선대 산복도로를  우회해서 걸었다

간만에 보는 바다로부터 위안을 얻기 위해서 였다. 

가슴 아픈 내가 스스로를 치료하기 위해 돌어서 걷는 길이다.

때로는 역으로 동명대에서 고개를 넘어 올때도 있다.

 

 

 

 

 

어머니 병원에 모신 뒤 틈 날 때 마다 간다 . 어떤날은 장미 한송이, 또 어 떤날은 길가 에 핀 쑥부쟁이를 어머니 께 받친다. 그러면 당신은 소녀처럼 웃는다.

늘 부족한 자식이지만 그렇게 모자는 마음을 나눈다. 늦은 밤 병실에 불을 꺼고 집으로 올 때면 또 미안하여 새벽같이 병원으로 간다,

그러니 어머니 농담삼아 왈 내가 가끔 아파야겠구나 하신다. 워낙 찾아 뵙는 일을 게을리 해서다

 

병원을 찾게 된 이유가 아픈 데 없이 갑자기 다리가 퉁 퉁 부어서 였다.  그때가 20일 이었다. 

 

아들, 딸, 며느리에 사위에 삼촌의 걱정이 병원 문안 방문으로 이어졌다.

어머니 병원에 계신고로 아버지 생신 앞당겨 병원에서 멀지 아니한 곳에서  형제들 중심으로 케익을 자르고 식사를 했다.

환자들 잠자리에 들때 집으로 향한다.

이때쯤 성서방이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온다.  고맙기 그지 없는 일이다.  메제의 행동을 보며 가끔  나는 어머니에게 있어 어떤 아들인가  자문한다.  만약에 장모가 이렇듯 병원에 입원 한다면 나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밤이 깊다.

 

 

 

 

 

 


Doris Day (Les Brown & his Orchestra) -- You Won`t Be Satisfied (Until You Break My He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