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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아픈 건 개인 탓?…불평등 사회의 책임을 묻다

by 이성근 2018. 2. 3.

아픈 건 개인 탓?불평등 사회의 책임을 묻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의과대학 학생 시절, 경기 마석가구공단의 외국인 노동자 진료소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당시 내 역할은 진료를 기다리는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디가 아파서 왔는지 기록하는 일이었다. 네팔이나 방글라데시에서 온 젊은 그들이 주로 호소했던 증상은 기침과 가래였다. 목재를 손질할 때 먼지가 흩날리는데, 제대로 된 개인보호장비는 물론이고 환풍기 시설조차 없는 공장이 많았다. 언젠가 진료소에서 약을 받아 돌아가는 그들을 보며 선배에게 물었다. “, 저 사람들 일하는 환경이 그대로인데, 우리가 처방한 약을 먹고 건강해질 수 있을까요?” 선배는 말이 없었다.

 

1960년대 호주 시드니 의과대학의 학생으로 정신과 외래 진료를 참관하던 마이클 마멋에게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폭력적인 남편에게 매일같이 시달리다 우울증에 걸린 환자를 진료하는 자리였다. 의사는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 환자에게 다른 약을 처방하고 한 달 뒤 진료 약속을 다시 잡았다. 그 장면을 보며 그는 질문했다. ‘이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고 우울증을 만들어낸 폭력적인 환경으로 돌려보내는 게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인가?’ 마멋은 결국 임상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긴 여정을 떠난다.

 

<건강격차>(동녘)는 그 결과물이다. 책에는 미국 UC 버클리 박사과정 학생시절부터 세계보건기구(WHO)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프로젝트총책임자로 일했던 40년의 경험이 오롯이 담겨 있다. 건강불평등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인 마멋이 쓴 책인 만큼 학술적 근거와 논리적 엄밀성은 기대한 바와 다르지 않았다. 내가 놀랐던 부분은 그가 자신의 고민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책에서 마멋은 인간이 왜 병들고 아프게 되는지, 건강불평등은 어떻게 생겨나는지, 공동체는 그 구성원의 건강을 얼마만큼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인용하며 우리가 매일같이 사용하는 일상 언어로 설명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학술적인 깊이를 놓치지 않는다. 얼마나 고민하고 단련하면 이런 언어로 학자가 대중과 소통할 수 있을까.

 

마멋의 책이 영어권에서 출판되기 한 해 전인 2014, 건강불평등을 또 다른 측면에서 일생 동안 연구한 과학자의 책이 출판되었다. 캐나다 퀘벡대학 생물학과 교수인 캐런 메싱이 쓴 <보이지 않는 고통>(동녘)이다.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이 책에서 가장 섬뜩한 구절은 본문이 아니라, ‘한국의 독자들에게라는 제목으로 쓴 편지 글에 있다. “저는 약 140편이 되는 꽤 많은 학술 논문을 출판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많은 연구 결과가 노동자들의 삶을 실제로 더 낫게 만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메싱은 이 책에서 하등 유기체의 분자유전학이라는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던 자신이 노동자 건강문제를 연구한 이유에 대해, 제련 공장 노동자의 손상된 염색체 사진은 욕심내면서도 그들의 건강에는 무관심했던 학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은 위험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가장 약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병들고 있는데, 왜 학계와 국가는 이토록 무심한가?’라고 반복해서 묻는다. 그리고 그 비참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분투했던 시간을, 특히 여성 노동자의 상처를 보이지 않는것으로 취급하는 학계에서 그들의 고통을 가시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겪었던 좌절을 정직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멋과 메싱의 글에서 국가와 공동체는 반복적으로 소환된다. 개인이 앓는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기 때문이다. 의사와 유전학자가 다뤘던 이 주제를 사회학이나 경제학의 방법론으로 접근하면 조금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영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윌킨슨은 1992년 영국의학저널을 통해 소득불평등과 평균수명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다. 이 연구는 가난이 사람을 아프고 병들게 한다는 내용이 아니다. 그는 개인이 똑같은 소득을 가지고 있더라도, 지니계수(Gini Index) 등으로 소득불평등을 측정했을 때 불평등이 높은 사회에 사는 사람이 더 많이 아프고 더 빨리 죽을 수 있다는 연구 가설을 제시했다. , 개인의 소득 수준과 별개로 소득불평등이 구성원의 건강을 해친다는 것이다.

 

<평등해야 건강하다>(후마니타스)는 사회학자의 시선에서 건강불평등을 논하고 있다. 소득불평등이 심각한 사회에서는 사회적 신뢰와 유대감이 떨어지고 지위를 둘러싼 경쟁이 심화되어, 구성원들이 받게 되는 사회심리적 스트레스가 증가한다. 그리고 이는 당뇨, 우울증과 같은 여러 만성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 발전을 이룬 공동체에서 불평등은 사회적 관계의 질을 악화시켜 건강불평등을 유발하는 핵심요인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소득불평등과 건강에 대한 연구 가설은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널리 인용되고 있지만, 학계에서는 종종 그와 상반되는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2002년 영국의학저널은 덴마크, 일본 등에서 공동체의 소득불평등 수준과 그 구성원의 건강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연관성이 없다고 보고한 4편의 연구를 모아 함께 출판했다. 윌킨슨의 소득불평등 가설이 어떤 공동체에서는 통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윌킨슨이 공동체의 사회적 관계 악화에 초점을 맞춘다면,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스터클러는 국가의 경제정책이 인간의 몸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탐구한다. 지난 10년 동안 그의 연구팀은 세계적인 학술지에 거의 매달 새로운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것들은 한결같이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가 내과 의사인 동료 산제이 바수와 함께 쓴 책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까치)도 그러하다.

 

저자는 대불황의 시기 국가가 시행한 경제정책에 따라 결핵, 음주,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등으로 측정된 국민의 건강 상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검토했다. 긴축정책을 시행했던 러시아, 태국, 그리스의 경험을 분석하고, 그들과 달리 경기부양의 길을 선택했던 미국, 아이슬란드, 벨라루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의 결론은 명확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자문기구인 국제통화기금(IMF)에서는 불황 시기에 긴축을 추진하면서 사회안전망을 축소하라고 권고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레 질문하게 된다. 1997년 국가부도의 위기에서 시작된 IMF 구제금융과 그 요구사항을 이행하는 과정은 한국인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1997년은 한국의 자살률이 급증하기 시작한 해이다. 199710만명당 13.1명이었던 자살률은 201610만명당 25.6명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현재 한국은 10세부터 39세까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인 나라다. 보건학자로서 질문해본다. 2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한국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더 나은 길이 있었을까?

 

<대한민국 건강불평등 보고서>(나눔의집)는 소득에 따라 죽음과 질병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생생하고 엄밀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인 김기태 기자는 쪽방촌과 응급실을 취재하고 호스피스 병원에서 일하며 만난 여러 사연에 기대어 건강불평등이라는 추상어를 개개인의 구체적 삶 속에서 풀어낸다. 특히 책의 후반부에서 1953년생인 두 당뇨 환자의 건강사를 담담하게 서술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왼쪽은 쪽방촌에 거주하며 자신의 몸을 관리할 수 없는 환경에서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이상호씨의 삶이 서술되고, 오른쪽은 정기검진을 받으며 꾸준히 운동을 하고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고영각씨의 시간이 펼쳐진다. 이 글을 읽고 나서도 당신이 아픈 것은 당신의 잘못이다라는 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책은 동시에 한국 건강불평등 연구의 중요한 성과들을 요약한다. 소득 수준에 따른 암 사망위험비, 건강보험 가입자와 의료급여 대상자의 응급실 방문 횟수 비교와 같은 학술연구의 숫자를 인용해 현실을 구성하는 사회적 구조를 설명한다. 책을 읽고 나면 저자가 기자일을 그만두고 건강불평등 공부를 하기 위해 영국으로 떠난 것이 놀랍지 않다.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마음속에 있었을 테니까. 2017년 김기태 박사는 한국에서 아픈 노동자는 왜 가난해지는가라는 논문을 출판했다.

 

 

스스로를 기록노동자라 부르는

희정이 쓴 <노동자 쓰러지다>(오월의봄)를 읽고서 나는 오랫동안 기다린 누군가를 만난 것 같았다. 대학에 입학한 첫해 5, 일하다 손가락과 청력을 잃은 산재 노동자를 처음 만난 이후 나는 오랫동안 누군가 이런 책을 써주길 기다렸다. 매일 6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다치고 병드는 이 거대한 비극 앞에서 사람들은 너무나 무심했으니까. 현장 노동자의 상처를 차분한 문장으로 묘사하며 제도적 문제점을 함께 드러내는 글이 나오면 사람들이 이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책에는 2011129일 인천공항철도에서 선로 동파 방지작업을 하던 노동자 5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본래 주간 작업조인 그들은 막차 시간을 알지 못했다. 야간 작업복도, 야간 공사 중이라고 알리는 알림판도, 옆에서 열차가 오는지 감시하는 관리 감독자도 없었다.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로 시끄러웠던 작업장에 갑자기 환한 불빛이 달려왔다. 그렇게 5명의 생명이 사라졌다. 철도공사는 유족과 합의를 했다. 자사 선로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었지만, 자신들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기에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가장 약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다치게 만드는 위험의 외주화를 이보다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을까. 그 비극은 2016년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20대 노동자와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19세 노동자의 비극으로 반복되었다.

 

언젠가 저자에게 왜 이 좋은 책이 더 많이 읽히지 않는지 물었을 때, 희정은 답했다. “노동자들은 막상 이런 이야기를 잘 읽지 않아요. 자기 입장에서는 다 아는 이야기이고 읽으면 비참하고 속상한데, 바뀔 가능성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위험한 작업장과 산업재해는 케케묵은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한국 사회에 비극적이고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우리 모두는 노동자이거나 노동자의 가족이다. 노동자가 다치고 병드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건강할 수 없다. 이 단단하고 아픈 책이 더 많이 읽히길 바란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창비)에서 세월호 참사가 지겹다고 말하는 몇몇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을 때 앞서 말한 희정 작가와 비슷한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계속 이야기해봐야 딱히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우리 사회가 변할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괴롭게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느냐는 거였어요.” 정혜신은 말한다. “세월호 사건이 지겨운 것이 아니라, 결국 큰 고통과 불행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아야만 하는 무기력한 우리 자신을 못 견디는 것이니까요.”

       

이 책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고문 피해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세월호 유가족을 상담해온 정혜신이 진은영 시인과 이야기를 나눈 대담집이다. 만약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싶어도, 그 이야기라면 무엇이건 마음이 아파 멀리 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권한다. 정혜신은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한 진은영의 여러 질문에 세월호 유가족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던 자신의 경험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저자가 인간의 구체적인 상처를 만나고 어루만지며 길어 올린 성찰은 아득하게 깊다. 이 책은 이해할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상처 속에서 살아가는 타인을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지침서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아픈 몸 더 아픈 차별>(뜨인돌)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는 저자 김민아는 아파서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HIV 감염인은 치과 진료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감염 사실을 솔직히 말하고 쫓겨난 후, ‘치통보다 더 아픈 온몸이 찔리는 것 같은 극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그 이후 다시는 병원에서 자신의 감염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어떤 이는 초등학교 시절 교장 선생님이 공개된 장소에서 이 아이들은 B형 간염이니까 같이 밥 먹지 말라고 말할 때 느꼈던 모욕감을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한다. 어머니가 과거 조현병 병력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던 한 젊은이는 모 대학 항공운항학과에 지원해 서류심사에서 합격하지만 신체검사에서 탈락한다. 유전적 요인이 큰 병이라는 이유였다. 한국 사회에서 아픈 사람은 위험하거나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저자는 냉정한 법적 사리다툼이 필요해 보이는 주제를 인권전문가의 시선으로 따뜻하게 묘사한다. 그 뒤에는 질병과 삶을 강제로 분리시키지 않는, 질병을 갖고 살아가는 타인의 삶을 당사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해 온 시간이 있다. 그런 글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 이가 있다면, 책의 서문인 차별 바이러스는 어떻게 퍼지는가를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작년에 첫 책을 내면서 배운 게 있다. ‘혼자 살아가는 삶이 없듯이, 혼자 쓰는 글이란 없구나.’ 내 이름으로 출판된 책이지만, 그 글들은 내가 공부하며 만났던 여러 동료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타인에게 빚지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8권의 책은 내 공부의 냉철하고 따뜻한, 좋은 친구들이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그랬으면 한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 / 경향신문 18.2.2



 

건강 격차 평등한 사회에서는 가난해도 병들지 않는다 저자 마이클 마멋|역자 김승진|동녘 |2017.09

 

원제 Health Gap

저자 마이클 마멋(MICHAEL MARMOT)은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역학 및 공중보건학 교수. 사람들이 건강해지는데 도움이 되고 싶어서 의사가 됐다. 그런데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요인, 건강하게 살 수 없게 방해하는 요인이 한 사람이 나고 자라고 살아가고 일하고 나이 들어가는 환경과 여건에 영향을 받으며, 그 환경과 여건은 다시 그 사회에 존재하는 권력, , 자원의 불평등한 분포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회적 여건이 건강과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2005~2008년 세계보건기구의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 위원회위원장, 2010~2011년 영국의사협회장, 2015~2016년 세계의사협회장을 지냈고,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건강 불평등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2013년 세계보건기구 유럽사무소에서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과 건강 격차에 대한 유럽 리뷰팀을 이끌어 보고서를 발간했고, 보고서를 통해 제안한 내용들은 세계보건총회에서 승인되어 많은 나라의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 국내에 번역된 저서로 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등이 있다.

 

역자 김승진은 서울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에서 경제부와 국제부 기자로 일했다. 이후 환경 불평등과 국제 거버넌스를 주제로 시카고 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낭비와 욕망, 물건 이야기, 플라스틱 사회, 가짜 여명,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 문제적 과학책, 숨길 수 있는 권리, 꼭두각시의 영혼등이 있으며, 함께 옮긴 책으로 헝그리 플래닛, 칼로리 플래닛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1장 비참함을 조직하는 사회

글래스고판 두 도시 이야기

사회계층적 경사면? 부유한 사람들에게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부유한 나라는 건강하다?

, 중요한가 아닌가?

사회여, 소득만이 문제가 아니라오!

빈곤, 절대빈곤이냐 상대빈곤이냐

빈곤? 불평등? 역량강화? 질병의 원인과 원인의 원인

 

2장 누구의 책임인가

식품 파시스트의 거짓말?

누가 진짜 거짓말쟁이인가?

합리적 비만?

건강 불평등과 생활습관

비만의 원인, 유전자냐 교육이냐?

음주, 단지 개인의 책임일까?

누구의 책임인가?

가난하면 의료 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해서 아프다고?

 

3장 공정한 사회, 건강한 삶

사회정의와 피할 수 있는 건강 격차, 즉 건강 비형평

후생 극대화

자유 증진

기여에 따른 보상

이데올로기와 실증근거

 

4장 출발선에서의 평등

영유아기의 경험은 성인기의 건강, 아니 범죄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사회계층적 경사면은 일찍 시작된다

부모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부모는 정말 중요한가, 아니면 단지 지켜보는 사람인가?

사회계층적 경사면은 어떻게 신체에 각인되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기회의 평등?

 

5장 교육과 역량강화

교육은 아동생존율에 좋다

출산율을 낮추는 데도 좋다

당신의 건강에도 좋다

당신을 보호하는 데도 좋다

나라의 발전에도 좋다

핀란드의 교훈, 불평등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빈곤은 숙명이 아니다

교육은 성평등에도 좋다

교육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6장 삶을 위한 노동

앨런이 안쓰럽다면

일과 건강

일터로 들어온 권력··자원의 불평등: 노동은 어떻게 건강을 해치는가

고용 여건과 건강

고용 권리를 쟁취해 노동 상황 개선하기

일자리를 없애는 게 아니라 창출하는 정책 추구하기

 

7장 우아한 노년

선진국의 노년, 개도국의 청년?

국가 간 수명 불평등

국가 내 수명 불평등

삶의 질에서의 불평등

노년기 건강 형평성 달성하기

물질적?심리사회적?정치적 차원의 역량강화

 

8장 회복력 강한 지역공동체

사회적으로 더 살기 좋은 지역공동체 만들기

지속가능하고 회복력 강한 지역공동체 만들기

물리적 환경 개선하기

노인친화적인 도시 만들기

주거 환경 개선하기

 

9장 공정한 사회

우파와 좌파

북유럽 국가들이 주는 교훈

, 그리고 그 밖의 중요한 것들

세습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돈은 왜 중요한가?

계층 분화와 건강은 소득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건강도 소득만의 문제가 아니다

 

10장 공정한 세계

공정한 금융

사회적 보호 최저선

공정한 투자

공정한 무역

부채와 원조

명예로운 식량

 

11장 희망을 조직하는 사회

산을 움직이는 삼각형

최고의 시간, 최악의 시간

앞으로 나아가기

지구 모양의 구멍

잘사는 나라든, 못 사는 나라든

 

감사의 말

자료 출처

 

출판사서평

사람들은 흔히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의료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낙후된 지역에 살고 아파도 치료비를 낼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잘사는 나라 사람들보다 건강하지 못하고 빨리 죽을 거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한 나라 내에서도 부유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고 오래 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책의 저자 마이클 마멋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 통념은 옳긴 하되 제한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 통념대로라면 미국 사람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고 오래 살아야 한다. 하지만 마멋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15세 소년이 6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스웨덴이나 영국의 확률보다 낮다. 아니, 그런 선진국들은 고사하고 코스타리카, 쿠바, 칠레, 페루, 슬로베니아보다 낮다. 최고 부자 나라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코스타리카보다 훨씬 훌륭한미국의 의료시스템은 왜 15세 소년의 생존을 보장해주지 못하는가?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며 건강에 관한 우리의 오랜 통념을 깬다. 사람들이 아픈 이유는 가난해서, 그래서 의료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모든 이가 양질의 의료 시스템을 접할 수 있게 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사회 전반을 건강하게 만들 수는 없다. “세계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갖춘 미국에서 15세 소년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이유는 의료 시스템 부족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을 병에 걸리게 만드는 사회 여건 때문이다. 의료 시스템은 병에 걸리고 난 다음에 치료를 받을 때 필요한 것이다. 아스피린 결핍이 두통의 원인이 아니듯, 의료 접근성 부족은 질병의 원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환자들 가운데서 의사는 무엇을 치료해야 하는가? 사람들을 병에 걸리게 만드는 사회 여건이 질병의 원인이라면 의사는 누구에게 무엇을 처방해야 하는가?

 

우리에게 아직 조금 생소하지만, 이렇게 질병을 일으키는 사회 여건을 탐구하고 어떻게 하면 그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 있다. 바로 역학(epidemiologist)이다. 역학 분야에서는 의사, 통계학자, 인류학자가 협업해 생활 장소와 양태 등에 따라 인구집단의 건강 상태가 어떻게 다른지, 왜 서로 다른 발병률을 보이는지를 연구한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마멋은 이 분야 세계 최고의 권위자로, 의과대학 재학 당시 이런 분야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질병의 원인을 탐구하고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의 대신 질병의 원인의 원인을 탐구하고 사회를 개선하는 역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 책은 그가 역학자로서 이뤄낸 수많은 연구 성과의 보고(寶庫). 그의 숱한 실증 자료들이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 여건을 변화시키면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이 그의 연구를 근거로 보건 의료 정책을 변경하고 있으며, 바뀐 정책들이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책에는 그가 제시한 여러 낙관적 정책들의 실효성과 성과가 집대성되어 있다.

 

가난이 아니라 불평등이 원인이다

평등한 사회에서는 가난이 병을 만들지 않는다

 

마멋은 건강에 중요한 것은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보다는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다라고 이야기한다. 즉 건강과 건강 형평성의 문제는 국가의 부와 개인의 빈부 격차,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평등 정도에 따라 바뀐다는 것이다. 가령 국민소득은 높지 않지만 건강이 좋은 국가도 있고, 미국처럼 국민소득은 높지만 건강은 그에 비해 안 좋은 나라도 있다. 쿠바, 코스타리카, 칠레는 국민소득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높은 수준의 건강을 달성한 나라들이다. 코스타리카와 칠레는 소득 불평등이 큰데도 건강 수준이 높다. 그 원인을 조사해 본 결과 코스타리카와 칠레에는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을 사회 주류에 통합시키는 것을 목표로 빈곤층의 권리와 사회적 혜택을 보장하는 사회 복지 프로그램이 있었고 국가가 학교 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이 굉장히 컸다. 이런 사례를 근거로 그는 건강과 의료의 문제는 개별 행위자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제껏 건강 불평등 문제는 의료 접근성이나 금연, 금주, 식단 조절 등 질병 예방을 위한 개인의 행동 교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되어 왔지만, 그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으며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더 큰 차원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출발선에서의 평등이 보장될 수 있도록 영유아기 성장 발달을 지원하는 사회(4),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개인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 있게 돕는 사회(5), 양호한 노동 여건과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는 사회(6), 노년의 우아한 생활 여건을 보장하는 사회(7), 사회적으로 살기 좋은 지역공동체가 유지되는 사회(8)에서 비로소 개인의 건강과 사회의 건강 형평성이 달성될 수 있다. 아직 하나도 갖추지 못한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나, 그는 여러 사례를 통해 어떤 사회에서든 이 여건이 모두 갖추어질 수 있음을 증명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회정치적 문제이기도 한 공공 차원의 의료를 고민하는 이들과 오랜 건강 불평등 문제의 원인을 알고 싶어 하는 이들, 나아가 사회정의의 문제를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더불어 정책을 만들고 국가 예산의 지출 계획을 세우는 이들에게도 이 책의 저자, 마이클 마멋의 의미 있는 시도와 낙관적인 전망이 전달되기를 기대한다.

 

책속으로

의사는 병을 고치는 사람이다. 물론 병은 고쳐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활습관과 건강이 사회적 여건과 관련된다면, 그 여건을 향상시키는 것은 누구의 일이어야 하는가? 나는 사람들이 건강해지게 돕고 싶어서 의사가 됐다. 그런데 병에 걸리고 난 다음에 그 병을 고치는 것이 일시적인 해법밖에 될 수 없다면, 병을 일으킨 여건을 고치는 일에도 의사가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 p.18

 

나는 미국이 세계 최고의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는 미국인을 셀 수 없이 많이 보았다. 그 말이 맞다고 치자. 그런데 왜 미국 젊은이가 60세까지 생존할 확률이 스웨덴이나 영국은 고사하고 코스타리카, 쿠바, 슬로베니아보다도 낮은가? () 의료 서비스만이 문제라면 미국은 세계에서 모성사망률이 가장 낮아야 한다. 미국은 의료비 지출이 세계에서 가장 많고, (논란이 있을 수는 있으나)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산과 진료가 가능한 나라다. 그런데도 미국의 모성사망률은 그리 낮지 않다. 미국의 15세 소녀들은 1,800명당 1명꼴로 일생 중에 임신·출산 관련 요인으로 숨진다. 21명당 1명꼴인 시에라리온보다는 훨씬 양호하지만 17,100명당 1명꼴인 이탈리아보다는 훨씬 열악하다. --- p.56~59

 

빈곤은 신의 뜻도 아니고 전적으로 사람에게 달린 것도 아니다. 한 사회에서 아동빈곤의 수준은 정치 시스템에 크게 좌우된다. 정치 시스템은 아동빈곤을 얼마만큼 허용할지 선택할 수 있다. () 스페인과 프랑스는 세전 아동빈곤율이 모두 19퍼센트다. 하지만 세후 빈곤율은 스페인이 17퍼센트고 프랑스는 9퍼센트다. 슬로베니아는 부유한 나라가 아닌데도 아동빈곤율은 스페인과 프랑스보다 낮은 6퍼센트다. 재무부 장관은 아동빈곤 수준을 결정함으로써 보건부 장관보다 아동기 성장 발달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p.186

 

불평등은 모든 사회에 존재한다. 그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불평등의 정도와 규모, 또 불평등이 발생하는 이유와 그것이 위계의 아래쪽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건강과 사회정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더 잘 할 수 있다. 수많은 증거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 p.370

 

이 책을 쓰는 이유는 사회가 건강에, 그리고 건강의 불공정한 분포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이며 그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알려 주는 지식과 정보를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서다. 영국의 어느 보수당 원로 정치인이 내 어젠다가 보수당보다는 사회민주당에 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정치 이념이 아니라 증거에 기반해 이야기하기 위해 늘 노력한다. 피할 수 있는데도 존재하는 건강 불평등은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불의다. --- p.436

 

 

평등해야 건강하다 불평등은 어떻게 사회를 병들게 하는가,The Impact of Inequality

저자 리처드 윌킨슨|역자 김홍수영|후마니타스 |2008.03

 

윌킨슨은 건강불평등과 건강 상태를 결정하는 사회적 요인들을 연구하는 사회역학 분야에서 선구적인 학자이다. 그는 소득불평등이 낮은 사회일수록 전체 국민의 건강수준이 높은 경향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왔다. 현재 그는 영국 노팅엄 대학교의 사회역학 분야 교수다. 그가 친애하는 데이비드 에널스에게”(Dear David Ennals)라는 이름으로 19761216??신 사회??(New Society)에 기고한 두 쪽짜리 논문은 영국 정부가 건강불평등에 대한 블랙 리포트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블랙 리포트란 더글라스 블랙 경(Sir Doublas Black)이 위원장을 맡은 건강불평등에 대한 연구위원회에 의해 작성된 보고서로 영국의 건강과 사회보장부(The Department of Health and Society Security: 현재는 Department of Health)에 의해 1980년 출판되었다. 이 보고서는 복지국가가 확립되어 건강의 종합적인 수준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강불평등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최초의 연구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건강불평등의 원인을 경제적 불평등에서 찾고, 이러한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 상류층과 하류층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1976년 데이비드 에널스(David Ennals)에게 보내는 리처드 윌킨슨의 문제제기에서 시작되었다. 블랙 리포트는 데이비드 에널스에 의해 1977년 처음 시작되었으나, 그 내용 때문에 보수당 정부에 의해 1980년까지 출판되지 못하다가 이후 260부의 저가인쇄로 출판되었을 뿐이다. 이 보고서는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높은 계급의 사람들보다 두 배 높은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 차이는 예상과 달리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블랙 리포트는 최초로 건강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한 보고서로 이후 1987년에 출판된 화이트헤드 보고서(Whitehead Report)1998년에 출판된 애치슨 보고서(Acheson Report)도 블랙 리포트와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최근에는 “SOCIAL DETERMINANTS OF HEALTH”라는 WTO의 보고서에 마이클 마멋과 공동 편집자로 활동하는 등, ??평등해야 건강하다??에서 언급된 세부적인 이슈들, 인종문제와 건강불평등, 청소년 출산율, 살인율과 소득불평등, 비만과 소득불평등, 열등하게 살아간다는 의미, 거주 지역 분리, 소득, 그리고 사망률의 관계 등에 대해 활발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문

 

1장 풍요로운 사회 · 불질적 성공과 사회적 실패

2장 불평등 · 더 적대적이고 덜 친화적인 사회

3장 불안과 불안정 · 타인의 시선

4장 건강과 불평등 · 수명은 짧고 스트레스는 많은 삶

5장 폭력과 불평등 · 지위, 치욕, 그리고 존중

6장 협력이냐, 갈등이냐 · 평등이 이 문제를 결정한다

7장 젠더, 인종, 불평등 · 아랫사람에게 발길질하기

8장 사회적 전략의 진화 · 호혜성과 지배

9장 자유, 평등, 우애 · 경제적 민주주의

 

옮긴이후기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망률이 높다

한 사회에서 건강 수준은 보통 사회계층이 높을수록 좋아진다. 기대 수명이나 장애, 사망률을 살펴보면 소득·교육·직업을 기준으로 한 사회적 피라미드에서 상층으로 갈수록 건강 수준이 높게 나타나고 하층으로 내려올수록 낮다.

 

그러나 이 책은 GNP 등으로 계산되는 사회 전체의 소득 수준이나 재산의 절대적 수준이 높으냐 낮으냐가 아니라, 상대적 소득 격차가 핵심이라고 말한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살고 보건의료비로 엄청난 돈을 쓰고 있지만 불평등이 심한 미국은, GDP 수준이 미국의 절반에 해당하는 그리스보다 평균 기대수명이 더 낮으며 세계 25위에 불과하다. 심지어 미국의 극빈지역(뉴욕의 할렘이나 시카고의 남부 등)에 사는 사람들의 사망률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방글라데시에 사는 사람들보다 높다.

 

중동부 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19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이들보다 훨씬 잘사는 몇몇 서유럽 국가들보다도 높았지만, 그 이후 소련식 자본주의적 경제개혁을 도입하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탈공산주의적 전환기에 소득불평등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기대수명이 재앙에 가까울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

 

윌킨슨은 절대적 빈곤선을 지나온 국가들의 경우 문제는 상대적 소득격차이며 그것이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는 심리사회적 효과에 주목한다. 따라서 건강불평등은 단순히 빈곤층이나 하위 20%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건강을 위협하는 심리사회적 요소

지위가 낮다고 생각하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유는 낡은 자동차나 누추한 집이 불편해서가 아니다. 열등한 물건을 사용해 근근이 버텨야 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낙인이기 때문이다. 질 낮은 물건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2류 인생을 사는 2류 사람임을 의미한다.

 

사회적 불안, 수치심, 우울, 폭력이라는 감정들은 모두 사회적 비교에서 생기는 감정이다. 이런 감정들은 자신이 열등하다거나 실패했다고 느낄 때(낮은 사회적 지위), 여기에 자기 나름대로 대응하면서 갖게 되는 감정이다. 또한 사회적 인간관계는 사람들에게 거부당했다/인정받는다거나, 자신이 매력적/매력적이지 못하거나, 존중받고 있다/존중받고 있지 못한다고 느끼는 데 영향을 미친다. 마지막으로 어린 시절 애착관계의 결핍이나 불안정도 그 이후 경험하게 되는 사회적 불안에 취약하게 만든다.

 

이 세 가지 심리사회적 요인들은 불안감을 일으켜,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노화를 가져오는 만성스트레스를 초래한다. 예컨대 백인 밀집 지역에 거주하는 부유한 흑인의 건강 수준이, 흑인 밀집 지역에 사는 흑인들보다 나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며, 이 때문에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산다. 이를 집단밀집효과라고 하는데, 이는 인간이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평가하는 성찰적 존재이며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주변을 관찰하며 자신이 미련하거나 못생겼거나 열등하거나 지루한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한다. 이런 사회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은 곧 수치심(사회적 불안)으로 이 때문에 사람들이 권위에 복종하고 순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모든 사람이 잘못된 답을 말했을 때 실험 대상자는 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전체 집단의 의견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실험(Solomon Asch의 실험)은 이를 잘 보여 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 수치심은 치욕 ·경멸 ·체면손상에 분노하거나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불평등에 상처받는 사람들: 폭력, 범죄, 살인, 10대 임신

미국 50개 주와 캐나다 10개 주를 대상으로 소득불평등과 살인율을 비교한 바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에 따라 살인율은 최소한 10배가 차이 났다. 불평등과 폭력의 관계를 말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상적 폭력인데, 대부분의 도시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은 빈곤지역이다. 윌킨슨이 재인용한 교도소 수감자와의 인터뷰를 보자. “내가 만난 교도소 수감자들은 왜 다른 사람을 공격했는가라고 질문하면 언제나 나를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불평등과 낮은 사회적 지위에 시달리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느낀다. 폭력 사건은 창피를 당하거나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발생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남아 있는 …… 한 가닥 자존감이라도 부여잡거나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가 가장 강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불평등과 낮은 사회적 지위가 우리의 존엄성과 자존심에 얼마나 큰 상처를 입히는지를 보여 준다.

 

불평등과 사회적 편견·차별

불평등은 인종, 종교, 젠더 가운데 어떤 기준으로 나누든 간에 취약 집단을 향한 사람들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평등한 사회에서 어떤 차이들은 전혀 편견이나 분열을 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적 격차가 우월과 열등이라는 기준에 따라 각 사회 집단의 관계를 주도하게 될 때, 이런 차이는 심각한 공격과 차별의 표적이 된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우월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면, 자신이 업신여길 수 있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직접 폭력을 휘두르거나 차별적인 언행을 퍼붓기도 한다. 이는 자기의 우월성을 주장해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린치같이 너무나 지독한 차별 행위로 이어지는 과정이, 사회 상층의 온건하고 은근한 사회적 배제나 거만함과 함께 출발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배전략 vs. 친화전략, 그리고 건강

인간이 경험하게 되는 사회적 관계의 유형은 지배의 관계친화의 관계로 나눌 수 있다. 지배의 관계는 서로 경쟁자가 되어 강자가 약자를 약탈하고 위계질서 속에서 상대를 갈취하는 관계다. 반대로 친화의 관계는 서로가 원조 ·우정 ·협력의 대상이 되는 관계를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히 개인 차원을 넘어서 한 사회가 평등한지 불평등한지에 따라 그 사회 구성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전략이 전반적으로 달라진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불평등은 더 이기적이고, 덜 친화적이며, 반사회적이고, 스트레스를 더 받게 하고, 폭력 수준을 높이며, 공동체적 결속을 약화시키고, 건강을 악화시키는 사회 전략들을 부추긴다. 한편 평등한 사회는 친화적이며, 덜 폭력적이고, 상호 지지적이며, 포용적이고, 좀 더 나은 건강 상태를 가능하게 한다.

 

결론: 평등해야 건강하다

한 개인이 아무리 요가나 명상을 하고, 유기농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병든 사회를 완치시키지는 못한다. 중산층을 겨냥하고 있는 이런 웰빙 상품은 스트레스의 근원인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을 오히려 악화시킬 뿐 결코 해소시켜 주지는 못한다. 웰빙 상품은 어떤 면에서는 건강과 소비를 연결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 뿐이다. 그러나 반대로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 서비스를 확충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인 것도 아니다. 물론 무상 의료 서비스가 부족한 한국의 상황에서 이를 확충하는 일은 분명히 의미가 있고 필요한 일이지만, 윌킨슨은 그것이 사후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더욱이 이런 전략은 가난한 사람의 건강이 나쁘다는 좁은 의미의 건강 불평등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건강 불평등을 미처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지 못하는 다른 계층의 지지를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윌킨슨은 건강 불평등을 해결하는 가장 빠르고 적극적인 방식은 전체 사회의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일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그가 말하는 평등이 현실을 완전히 뒤집는 유토피아적인 평등이나 반자본주의적 질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스웨덴의 사례, 인도와 스페인의 협동조합, 기업의 종업원 지주제처럼, 그는 현실 속에서 좀 더 많은 사람이 수긍할 수 있고, 좀 더 많은 사람이 건강해질 수 있는 대안들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생활 속에서 작은 평등을 이루어 가는 방식들은 이것 외에도 무궁무진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대안들을 재발견하고 실천하려는 의지와 노력이다.

 

이 책의 관점

인간이 가진 사회성의 진화론적 뿌리를 탐구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진화했다는 관점이다. 원시 수렵 ·채집 사회는 다른 영장류의 진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규모의 협력 ·공유 ·평등주의를 보여 준다. 윌킨슨은 인류가 줄곧 희소자원을 둘러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홉스적 투쟁의 가능성속에서 살아왔지만, 이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서로 선물을 주고받고 식량을 공유함으로써 스스로 사회적 계약을 만들어 내어 경쟁을 폐기했다고 말한다. 좀 더 구체적인 진화의 증거를 살펴보면, 보통 집단의 규모가 클수록 뇌의 크기가 커지는데, 인간의 경우 뇌가 커진 이유는 사회적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다른 영장류들이 사회적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털 고르기대신, 인간은 집단의 구성원이 많아지자 같은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시간을 훨씬 절약해 주는 방법으로 말하기전략을 사용하게 되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는 영장류 가운데 눈동자에 흰자위가 있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다른 영장류들의 생존전략과 달리 인간은 서로에게 시선을 노출해 서로 이해받고 협력하는 전략을 선택했음을 보여 준다는 이야기다.

 

책속으로

기대수명의 격차는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결국 근대 시장민주주의의 병폐인 심각한 사회적 불의social injustice를 보여 준다. 우리는 사람들이 재판도 없이 구속당하고 고문당하며 실종되는 인권침해의 사례들에 대해서는 쉽게 분개한다. 하지만 건강불평등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희생자를 낳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만약 어떤 무자비한 정권이 건강불평등 때문에 줄어든 빈공층의 수명만큼 가난한 사람들을 강제로 감금한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쩌면 빈곤층의 높은 사망률은 감금보다 더 심한 사형집행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불평등을, 매년 정부가 아무런 명분 없이 상당수의 국민을 사형시키는 것과 같은 수준의 인권침해로 취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1장 풍요로운 사회' 중에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자신이 섬세하고 지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더욱 세련되고 심미적인 감수성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자신을 본래부터 고상한 사람으로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류층의 '고급'취향이 사회적으로 구성될 때,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하류층의 심미적 취향은 고급 취향의 반대 개념을 제공해 주기 위해 '싸구려' 취향으로 전락해야 했다.

 

가난하지만 유식하고 유쾌하며 관대하게 보이고 싶다면, 자신을 무식하고 투박하고 눈치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부유하고 학벌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좋다. 부자들 앞에서 주눅이 들지 않으려면 행동이나 옷차림에서 드러나는 차이를 줄여야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계급이 아니라 불평등이다. 달리 말하면, 근대적 계급 체계가 가지고 있던 문제의 핵심은 불평등과 그것의 문화적 표식이다. 소득 격차가 클수록 지위 격차가 커지고, 분업이 확대되며, 편견과 차별, '우리''그들'의 구분, 우월감과 열등감이 심화된다.

 

불평등이 계급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은, 왜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회적 관계가 열악해지는지, 그리고 소득 불평등을 줄이려면 왜 계급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근대적 계급분화를 만들어 낸 불평등을 살펴봐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숙고하게 만든다. ('6장 협력이냐, 갈등이냐 : 평등이 이 문제를 결정한다' 중에서)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 가난한 이들은 쉽게 아팠고 쉽게 다쳤고 쉽게 죽었다

저자 김기태|나눔의집 |2012.06

 

프롤로그

 

1 가난한 이들은 어떻게 죽음을 맞는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환자들 이야기

가난한 죽음 속으로 들어가다

마음이 먼저 죽는 사람들

마음의 독까지 벗겨줄 수 있을까

암은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다

가난한 암환자에 대한 가난한 대책

 

2 가난한 이들이 잘 부러지고 찢긴다: 한국의 응급실에서 더 많은 환자들이 사망하는 이유

이 사람, 살려만 달라외침에도 가난이 묻었다

해마다 9245명 더 살릴 수 있었다

6000억원 권역외상센터 건립안은 끝내 물거품

교통사고 사망률도 유전되는 더러운 세상

응급실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

이름 없이 죽어간 김왕규

응급전선 이상 많다

빨간불 켜진 구급차 시스템

 

3 삶의 격차가 몸의 격차로: 당신의 몸은 안녕하십니까?

얼룩덜룩대한민국 건강지도

건강 양극화 꼭짓점에 현미경을 들이대다

동갑내기 두 남자의 극과 극

학력과 소득이 낮은 곳으로 임하는 질병들

죽음의 도약대로 내몰리는 노동자들

자살에도 어른거리는 가난의 그림자

구사일생 민국씨의 인생

한국판 블랙리포트를 살리자

 

4 골고루 건강하게 사는 길: 일본 사람들이 미국인보다 오래 사는 이유

평등해야 부자도 오래산다

한국의 건강시계는 거꾸로 흐른다

함께 건강한 사회, 우리의 과제

 

에필로그

추천사

 

출판사 서평

한국 사회는 모든 계층이 골고루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이 죽는길로 걸어가고 있다.

 

어릴 적 가난의 그림자는 시간의 문지방을 넘어 노년기에까지 길게 드리워졌다.

암도 가난을 차별했다.

응급실 현장에는 보이지 않는 문턱이 있었다.

그 앞에서 가난한 이들은 때로 주저앉고, 외면당했다.

질병들도 학력과 소득에 따라 낮은 곳으로 임했다.

각자의 사회경제적 위치는 그 사람이 다쳐서 사망에 이르는 확률도 바꿔놓았다.

어른들의 건강에 금이 간 사회에서 아이들의 사망도 잦았다.

가난한 이들은 보이지 않는 건강 불평등의 장벽에 매일 부닥치고 있었다.

 

한국 사회의 건강 불평등을 증언하는 또 하나의 기록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은 지난 201012월부터 석 달 동안 생명OTL-빈곤과 죽음의 이중나선을 연재했다. 이 책은 모두 여덟 번에 걸친 기획을 갈무리하고 새롭게 정리한 결과다. 김 기자는 기획 취재를 위해 한 달 동안 무료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또 아주대학교 중증외상특성화센터와 국립의료원 응급실에서 밤을 새우면서 곡절 많은 죽음의 사연들을 취재했다. 현장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은, 건강 불평등을 증언하는 국내외 학계의 연구 성과와 조응했다. 질병과 사고, 죽음을 개인의 드센 팔자 혹은 운명의 탓으로만 돌릴 문제가 아니었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내재한 건강 불평등을 증언하는 또 하나의 기록이다.

 

"불평등 자체를 줄이지 않고 사회문제를 줄이려는 시도는 마치 사회/경제적 불이익과 그로 인해 생기는 결과를 단절하려는 (어리석은)시도다."라고 <평등해야 건강하다> 저자 리처드 윌킨슨은 말했다.

사람의 목숨 값이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변화하고, 쉽게 오르내리는 현실. 목숨 값이 싼 노동자는 계속해서 다치고, 깨지고 죽어간다. ‘돈이 되는의료행위로만 치중하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싼 목숨들은 깊이 앓고, 다친 곳을 낫게 하지 못하고, 쉽게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최고의 의료 인프라를 갖춘 도시를 만들겠다고 계속해서 외쳐왔던 대구는 2011년 뇌출혈 환자가 이곳저곳을 전전해야했고, 혼수상태에 이르렀다. 응급의료지수가 높은 편인 대구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은 어떨까?

 

정의로운 사회에서 건강 불평등은 최소화되고 각 인구 집단의 건강 수준은 향상될 것이다. 한마디로 사회 정의는 우리의 건강에 좋다(노먼 대니얼).”

 

https://www.ted.com/talks/richard_wilkinson?language=ko

 

노동자, 쓰러지다 르포, 한 해 2000명이 일하다 죽는 사회를 기록하다 저자 희정|오월의봄 |2014.06

저자 희정은 기록노동자. 노동에 관한 르포르타주와 소설을 쓰고 있다. 대학 내 청소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힘든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으며, 그 기록을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발표한 것이 기록노동의 시작이었다. 그 후 반도체 직업병 노동자들을 만났고, 일하다 다치고 병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12년 가을, 산업 전반의 산업재해 문제를 다룬 글을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연재했으며, 이를 정리 보충한 책이 노동자, 쓰러지다이다. 집필한 책으로는 직업병에 시달리는 삼성반도체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 있으며 공저로는 송전탑을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구술집 밀양을 살다와 섬처럼 외로이 오랜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르포집 섬과 섬을 잇다가 있다.

 

기획 : 노동자 건강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

 

노동자 건강권 실현과 산재보험 개혁을 위해 노동조합과 건강권 단체들이 모여 더 안전하고 더 쾌적하고 더 건강한 조건에서 일할 권리를 외치고 있다. 기업살인법(가칭) 제정과 산재 발생 시 원청과 사용자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활동 등을 하고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일과건강, 노동건강연대, 건강한노동세상,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이 참여한다.

 

목차

추천사 |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마세요 _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6

프롤로그 | 이상한 일, 안타까운 일, 무서운 일 20

 

1부 위험한 일터

사람이 일하다 왜 죽나요? - 위험의 외주화 현장 조선소 29

+ 다른 이야기 -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감수성’ 57

 

압착, 추락, 절단매년 700명이 죽는 곳 - 죽음이 반복되는 건설 현장 59

+ 다른 이야기 - 최악의 살인기업은? 80

 

2부 구조조정이 부른 죽음

외주화를 향해 달리는 죽음의 열차 - 철도 민영화 현장 코레일 89

+ 다른 이야기 - 기관사의 공황장애 114

 

공룡과 노동자 - 죽음의 기업 KT 119

+ 다른 이야기 - 노동자의 배를 가르고 꺼낸 황금알 143

 

3부 시간에 쫓겨 달리다

누구를 위한 고객만족도 1위인가? - 미담을 강요하는 일터, 우체국 149

+ 다른 이야기 - 대한민국, 산재사망률 1175

더 많이, 더 빠르게 달리다 - 택배, 퀵서비스, 청소년 알바의 위험한 질주 179

+ 다른 이야기 - 시간을 도둑맞은 노동자들 203

 

4부 우리는 왜 오래 일하는가

열심히 일한 노동자, 열심히 죽다 - 장시간 근무 노동자들 209

+ 다른 이야기 - 회장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할 수 있는 권리 236

 

그들의 오래되고 긴 노동 - 전자·자동차산업 노동자들 239

+ 다른 이야기 - 최저임금으로 살아보기, 이것이 지옥일까? 265

 

5부 우리 안의 발암물질

일하다 병들지 않을 권리 - 공장 안 유해물질에 노출된 노동자들 273

+ 다른 이야기 - 작업환경을 측정하자 301

 

6부 더 낮은 곳의 직업병

고객님은 항상 옳은가요? - 행복할 수 없는 감정노동자 307

+ 다른 이야기 - 대학 청소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 321

 

아무도 모르게 일하다 죽다 -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동하는 사람들 326

+ 다른 이야기 - 영세업체의 근로기준법 340

 

에필로그 | 아프도록 일하는 사회 - 다르고 남은 이야기 342

 

출판사서평

 

노동자의 목숨값은 얼마인가요?”

 

하루에 7명씩 죽어가는 노동자들

안전의 민영화, 위험의 외주화,

탐욕에 눈먼 자본이 부른 재난을 어떻게 멈출 것인가

 

놀라운 책을 만났다. 이 책은 안전의 자리에 이윤이 들어선 우리 사회의 민낯을 샅샅이 밝히고 있다.”

- 송경동, 시인

 

사람이 일을 하다가 왜 죽나요?”

 

산업재해 현장을 취재하던 중에 저자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스웨덴 사람에게 스웨덴에서는 사람이 일하다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아니, 사람이 일하다가 왜 죽느냐?”고 의아해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지구상 어딘가에 사람이 일하다 죽지 않는 나라가 있다면, 한국에서도 사람이 일하다 죽을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책을 쓰는 사이 300여 명이 탄 배가 바다로 가라앉았다. 송경동 시인은 추천사에서 우리 사회 전체가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세월호였다고 했다.

 

정규직이라는 최소한의 삶의 평형이 허물어진 자리에 900만 명의 비정규직 승객들이 구명정 하나 없이 살아야만 하는 사회. 모든 안전 업무, 평화 업무, 평등 업무가 외주화된 사회의 밑바닥에서 세월호 이전부터 가만히 있다가 개별적으로 서서히 침몰해왔던 작은 세월호들의 사연이 아프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 구조의 맨 밑바닥에서 그간 하루 7명이 산재라는 이름으로 침몰해갔다. - 추천사 중에서

 

사람의 목숨이 돈으로 계산되는 사회, 안전에 대한 투자가 손익계산서 앞에서 무력해지는 사회, 더 가난하고 더 힘없는 사람들에게 위험이 전가되는 사회에서 저자는 왜 사람들이 일하다 다치고 병들고 죽고, 그럼에도 계속 죽도록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품고 현장을 파고들었다. 조선소와 건설 현장, 코레일과 KT, 우체국과 택배, 퀵서비스와 배달, 자동차 공장과 중소영세업체,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산업 전반의 현장에서 산업재해 문제를 취재했다. 한 해 2,000명씩 일하다 죽는 사회의 구석구석을 들추고 있는 아픈 기록이자 안전의 자리에 이윤이 들어선 한국 사회, 탐욕의 재난이 덮친 한국 사회의 이면을 샅샅이 들추는 분노의 기록은 그렇게 책으로 묶였다.

 

취재를 하던 중 저자는 한 노동안전보건 단체를 찾아가 사람이 일하다 죽지 않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감수성이었다. 인간이 일하다 죽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감수성, 타인의 아픔에 같이 아파하는 공감 능력.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사회보다 더 큰 문제는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였다. 결국 그런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불렀고 대한민국은 깊은 슬픔에 빠져들었다.

 

산재는 은폐하고 위험은 외주화하는 기업들

 

한국은 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 1, 10만 명당 21명이 일하다 죽는 산재공화국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산재사망률이 아닌 산재율은 외국에 비해 매우 낮다. 2009년 미국의 노동자 중 2.5퍼센트가 일하다 다친 반면 한국은 고작 0.7퍼센트가 다쳤다. 그런데 왜 산재사망률은 미국이 10만 명당 4명인데 한국은 21명이나 될까? 덜 다치지만 많이 죽는 이 이상한 현상은 한국에서 많은 수의 산재가 은폐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신고된 산재가 전체 산재의 91.1퍼센트나 된다는 충격적인 결과도 있다.

 

이렇게 산재를 은폐하여 기업들이 얻은 이익은 어마어마하다. 국회 환경노동위 은수미 의원에 의하면 현대중공업이 산재를 개인질병으로 처리하는 등의 방법으로 최근 5년간 산재보험료 955억 원을 할인받았다. 삼성물산 622, 현대자동차 540, 롯데건설 410. 5년 동안 노동자는 평균 하루에 7, 한 해 2,000명씩 죽어갔다.

 

대부분의 산재 사망 사고는 중소영세업체에서 일어난다. 20101,000명 이상의 직원을 둔 기업에서 125명이 죽는 동안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534명이 죽었다. 그해 2,11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는데 그 중 60퍼센트가 넘는 죽음이 중소영세사업장에 몰려있다. 결국 힘없는 노동자가 더 힘든 일, 위험한 일을 하며 더 많이 죽는다. 다단계 하도급으로 악명이 높은 건설 현장에서 산재율이 가장 높다는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 공사기간 단축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내는 과정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한다고 해도 발주처나 원청은 아예 처벌을 받지 않거나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산재, 모든 참사는 탐욕에 눈먼 자본이 불러온 예고된 재난인 것이다.

 

몸도 마음도 병들어가는 노동자들

 

현장 노동자들은 육체만 다치는 것은 아니다. 여수 지역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을 조사한 결과 96.2퍼센트가 고용 불안 등의 이유로 잠재적 스트레스 고위험군에 속했다. 공기업에서 민영화되며 구조조정의 바람이 휘몰아친 KT에서는 20131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6년간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가 23명에 달했다. 15년 연속 고객 만족도 연속 1위라는 우체국의 집배원도, 좋은 의료서비스를 위해 환자가 아닌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간호사도 엄청난 감정노동을 요구받는다. 대표적 감정노동으로 분류되는 콜센터 직원이나 백화점, 마트 판매원의 자살은 더 이상 큰 뉴스가 되지 못하는 현실이다. 웃으면서 죽어간다는 감정노동은 당사자만이 아니라 주변의 인간관계까지도 파괴하지만 기업들은 그들을 단순한 서비스업 종사자로만 치부하며 어떤 비용도 들이지 않고 고객 서비스를 높여 상품을 팔 생각만 하고 있다.

 

안전에 투자해야 살아남는다

 

노동자들의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가는 사이, 기업들은 더 많은 이득을 위해 사람이 죽는 것에 눈을 감는 사이 산재가 터지면 사회는 안전 불감증이라며 잠깐 분노하지만 곧 잊어버린다. 그러니 공감만으로는 부족하다. OECD의 많은 국가들은 산재를 구조적 살인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산재 문제에서 위법 행위자뿐만 아니라 업무 주체까지도 함께 처벌하는 기업살인처벌법을 만들었다. 이 법으로 첫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에서 기업에 부과된 벌금은 우리 돈으로 7억 원, 판사는 판결문에서 벌금 때문에 회사가 파산한다 해도 이것은 불행하지만 필연적인 결과라는 말을 덧붙였다.

 

기업살인처벌법을 만드는 것 외에도 안전에 투자할 것, 비용 절감을 위한 무리한 인력 감축이나 외주화를 하지 말 것, 노동시간을 단축할 것, 사고의 실질적인 책임을 엄중하게 물을 것 등등은 이미 수차례 노동계에서 요구해온 것들이다.

 

투자하면 위험이 감소한다는 것을 알면서 안전 불감증운운하는 것은 범죄에 동조하고 범죄를 눈감아주는 것이다. 안전에 투자해야 안전해진다. 모든 것이 비용의 문제라면, ‘안전을 지키지 않을 시의 비용을 높여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 이득을 얻은 기업이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는 기업이 노동자의 목숨을 책임질 수 있는 법안과 지원책을 내야 한다.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을 배치하고 예산을 세워야 한다. 경쟁적이고 소모적인 방식의 노동을 지양해야 한다. 산업재해 수치가 제대로 반영되도록 사고 은폐 행위를 멈춰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죽지 않는다. -에필로그 중에서

 

원청-하청, 위험을 외주화하다

 

1위험한 일터는 위험이 외주화되는 현장인 조선소와 한 해 700명이 죽어나가는 건설 현장을 다룬다. 조선소 곳곳에는 안전제일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고 그 옆에는 무리하지 말자, 서두르지 말자, 대충하지 말자라는 3(三不) 표어가 있다. 조선소 노동자들은 이 3불 표어를 가리켜 현장에서 불가능한 3가지라고 부른다. 원청회사의 납기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기한 내에 일을 해야 마쳐야 한다. 당연히 안전은 뒷전이다. 그러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구역의 작업이 중지되고 납기일에 차질이 생긴다. 안전은 뒷전이지만 현장은 무재해여야 하는 상황.

 

원청에게 안전하게 일한다는 것은 비효율성이 증가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 꺼려하고 그러다보니 산재를 막는 데 한계가 생기는 거지요.”

그 한계를 원청회사는 산재 은폐, 벌어진 산재를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으로 넘어선다. 산업재해로 기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장이 파열되고 머리가 깨진 사람을 앰뷸런스가 아닌 트럭에 싣고 공장 밖으로 보내는 것이다.

 

산재의 위험은 하청업체로 갈수록 더욱 높다. 힘든 일, 어려운 일일수록 하청 노동자에게 맡겨지기 때문이다. 각기 흩어져 있는 개별 업체 소속이니 사망 사고가 나도 누가 죽었는지도 모른다. 원청회사 직원도 아니니 여전히 그곳은 무재해 사업장이자 자율안전관리 기업으로 남은 채로 말이다.

 

정부 당국과 관계 기관의 방조도 한몫을 한다. 2011년 근로복지공단은 1조 원가량의 흑자를 냈다. 우스운 이야기로, 조선소 지역에서 산업재해를 밝혀내는 유일한 국가기관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라고 한다. 산업재해를 당해놓고도 산재보험이 아닌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이들이 많아, 적자에 시달리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런 환자들을 찾아내어 산재신청을 종용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위험에 내모는 것은 바로 다단계 하도급 형태의 수주 방식과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이다. 공사 수주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공사 자금은 줄어든다. 수익이 나려면 공사 기간을 단축해서 인건비, 장비 대여비 등을 줄여야 한다. 안전 비용을 축소하고 전문 기술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옵션이다. 공사장 밖에는 항상 광범위한 실업군이 존재하니 노동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일하다 다쳤지만 감히공상처리를 하지 않고 산재 신청을 했다면 그는 다시 현장에 발붙이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안전에 돈을 쓰지 않으려는 기업들과 방조하는 정부

 

2011129일 새벽 공항철도 열차가 선로 근로자를 덮쳐 5명이 사망한 사고가 났다. 사망한 이들은 코레일테크 산하의 협력업체 직원들이었다. 열차를 운행한 기관사는 선로 공사 이야기를 듣지도 못했다. 철도공사 현장 직원은 관내에서 외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어도 어느 업체 직원인지, 언제 어디서 일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어쩌면 사고는 필연적이었다. 2구조조정이 부른 죽음에서는 철도 민영화 현장인 코레일과 민영화된 기업 KT를 다룬다.

 

사람들은 사고를 접하고 흔히 안전 불감증이 문제라고 한다. 이 안전 불감증을 고치는 특효약은 바로 돈이다. 2005년 철도공사로 전환된 후 공무원 신분을 탈피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고 시간외근무수당도 따라 오르자 사고를 발생시키는 무리한 잔업, 야간근무를 줄였다. 이렇게 안전 불감증은 돈이 들어야 고쳐지는데 하청업체는 사고가 나도 철도공사의 돈이 안 들어가니 결국 외주화가 늘고, 민영화에 눈길이 가고, 덩달아 사고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죽음의 기업이라고 불리는 KT는 민영화가 어떻게 일하는 사람을 위협하고 죽음으로 내모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201311명의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악명 높은 구조조정의 바람이 지나간 뒤 6년 동안 23명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유는 하나같다. 퇴직을 하거나 퇴직 압박에 시달렸던 것. 그럼에도 10년간 13,000여 명을 퇴출시킨 KT는 여전히 비상경영중이다.

 

우체국과 택배, 퀵서비스, 청소년 배달 알바노동을 다룬 3시간에 쫓겨 달리다는 누가 가장 위험한가를 뽑는 경연장을 보는 듯하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16시간인 집배원들은 집에서 9시 뉴스를 보는 것이 소원이다. 그렇지만 8,000여 명의 비정규직 위탁 택배원에 비하면 이들의 소망은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택배 물품 하나에 남는 돈이 970원인데 여기에 택배 차량 할부에 유류비, 정비 비용, 점심 값까지 다 뽑아야 하니 위험한 질주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위험한 질주는 역시 퀵서비스다. 몇 명이 종사하는지 집계조차 어려우니 퀵서비스 노동자의 산재율은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20135월에서야 특수고용직에 제한적으로 산재보험이 적용되었지만 실제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퀵서비스 노동자는 한줌도 되지 않는다. 산재보험에 들려면 업주와 반반씩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데 업주는 자신들의 부담금을 사납금을 올리는 것으로 메우려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잘못하다 죽는 일로 꼽히는 배달대행업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퀵서비스 노동자들을 보며 저 나아에도 오토바이를 몰고 산다면, 차라리 차에 받혀서 죽어버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더 많이 아프고 다치는 사회

 

잘 알려졌다시피 우리나라는 가장 오래 일하는 나라이다. 오래 일하는 이유는 일이 재미있다거나 보람이 커서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서. 4우리는 왜 오래 일하는가는 이렇게 먹고살기 위해서 밥 먹을 시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는 버스 노동자, 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 노동자, 청소 노동자 등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이들을 취재했다. 낮밤이 바뀌고 생체 리듬이 무시되니 많은 이들이 병에 걸리고 아프다. 그렇지만 병가는 꿈도 못 꾼다. 참고 일하다 더는 못 참겠으면 조용히 일터를 떠나야 한다. 전자 산업과 자동차 산업에서의 장시간 노동도 악명이 높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하다 과로로 숨진 31세의 청년은 일주일에 80시간을 일했다. 12시간 맞교대 근무, 법정 근로시간의 두 배를 일하고 그가 받은 돈은 80만 원 월급의 두 배였다. 간혹 귀족이라고 일컬어지는 자동차 산업의 노동자들도 오래 일한다. “특근을 안 하면 임금의 30퍼센트가 줄고 그러면 애들 학원에 보낼 수 없기에”, “특근 물량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돈 때문에이들은 일을 멈출 수 없다. 결국 이 모든 근원에는 월급제가 아닌 시급제, 오래 일해야만 겨우 먹고살 만해지기 때문인 것이다.

 

5우리 안의 발암물질에서는 유해물질에 노출된 노동자들을 다룬다. 2012년 구미에서 5명이 숨진 불산 누출 사고 4개월 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다시 불산이 누출되었다. 두 달 뒤인 20133월 또다시 구미에서 염소가스가 누출됐다. 하루에 세 건의 비슷한 사고가 터지기도 했다. 요사이 왜 이렇게 누출 사고가 잦은지 시민들은 불안해했다. 그러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달리 말한다. 원래 누출사고는 잦았다. 다만 그동안 숨겨진 것이었다. 기업은 이윤 때문에, 관제기관은 책임을 면하기 위해, 주민들은 땅값 걱정에 쉬쉬하던 것이 구미 불산 누출 사건 이후 더는 숨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사이에 노동자들은 다치고 병들고 죽어간다.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일수록 더 많이 다치고 더 빨리 병든다.

 

6더 낮은 곳의 직업병에서는 감정노동자와 산재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웃으면서 죽어간다는 감정노동은 당사자만이 아니라 주변의 인간관계까지도 파괴한다.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는 그들을 단순한 서비스업 종사자로만 치부하며 어떤 비용도 들이지 않고 고객 서비스를 높여 상품을 팔 생각만 하고 있다. 직원이 많고 그래서 노동조합도 있는 곳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그런데 30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전체의 85퍼센트, 산업재해의 80퍼센트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된다. 전단지를 돌리는 청소년들,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하는, 해야 하는 이주노동자들, 노동이 아니라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위험한 현장에 내몰리는 실습생들……. “교통사고는 사고 다발지역이라는 표지판이라도 붙지, 일하는 사람의 죽음에는 그조차도 없다.”

 

책속으로

이 책을 읽은 당신은 깜짝 놀랄지도 모릅니다. () 마음이 약한 독자들은 도중에 콧등이 시큰해질 수도 있습니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독자들은 화가 많이 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책을 편 손에 힘을 빼지 마세요. 더 많은 불평등과 더 많은 차별 이야기를 모으는 것이 변화의 한 걸음이 될 테니까요. -추천사 중에서

 

회사가 유해한 물질을 쓰는지 몰랐을까요?”

딸을 잃은 황유미의 아버지는 말했다.

회사가 알고도 그냥 둔 것이라면, 이거는 살인이에요. 살인.”

사고가 아니다. 죽지 않아도 될 목숨이 죽은 것은 살인이다. 안전펜스가 있었다면 죽지 않았을 사람들, 앰뷸런스를 서둘러 불렀다면 살았을 목숨들, 유독물질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암에 걸리지 않았을 이들. 모질게 말하자면, 그들은 살해당했다. 더 이상 누구도 살해당하지 않기 위하여, 죽어간 이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문 중에서

 

2011년 근로복지공단은 1조 원가량의 흑자를 냈다. 우스운 이야기로, 조선소 지역에서 산업재해를 밝혀내는 유일한 국가기관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라고 한다. 산업재해를 당해놓고도 산재보험이 아닌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이들이 많아, 적자에 시달리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런 환자들을 찾아내어 산재신청을 종용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이런 아이러니는 산재를 은폐하는 기업과 이를 방조하는 국가 덕분이다. ---본문 중에서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하여

저자 정혜신, 진은영|창비 |2015.04

 

정혜신-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08년부터 고문피해자를 돕기 위해 만든 재단 진실의 힘에서 고문치유모임의 집단상담을 이끌었고, 2011년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집단상담을 시작하며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만들었다. 진료실에 머무는 의사가 아닌, 거리의 의사가 꿈인 정혜신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에 거주하며 치유공간 이웃의 이웃 치유자로 살아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남자 vs 남자』 『사람 vs 사람』 『홀가분』 『당신으로 충분하다등이 있다. |||1970년 대전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 계간 문학과사회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3편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및 인문상담학 교수이며 시와 정치의 접점을 고민하는 시인으로서 문학을 통한 사회적 실천을 이어오고 있다.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2003), 우리는 매일매일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2004), 니체, 영원회귀로와 차이의 철학(2007) 등의 철학하기와 관련한 저서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사랑하라, 희망 없이

 

1. 세월호의 아픔을 보듬는 이웃

치유공간 이웃을 찾아서 ·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어야 쓰러지지 않아요 · 아이에 대한 사랑을 완료할 수 있는 시간을 · 다양한 피해자들에 대한 섬세한 이해와 배려

 

2. 아픈 만큼 파괴되는 것이 트라우마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 줄어들지 않는 내면의 사투 · 치유되지 않으면 상처는 번져나갑니다 · 트라우마에 대한 오해

 

3. 진상규명은 치유의 전제

치유적 관점에서 진상규명이 가장 중요합니다 · 치유받아야 잘 싸울 수 있습니다 · 당장의 치료보다 더 중요한 것 ·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사회

4. 거리의 의사

상담실에서 거리로 · 와락, 사회적 상처를 껴안다 · 모두 다르지만 같은 고통들 · 지속 가능한 구조 만들기

 

5. 이웃, 치유의 공동체

치유는 공기와 같은 것 · 인간은 스스로 온전한 존재입니다 · 이웃 치유자의 힘 ·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일

 

6. 예술과 치유

아이들의 목소리로 쓴 시 · 치유는 관념이 아닙니다 · 예술은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것 · 치유의 도구로서의 기록 · 정신의학의 테두리

 

7. 간절한 마음이 사람을 움직입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 ·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 · 상처 입은 이들의 연대 · 성찰 없는 마음이 폭력이 됩니다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맺음말

 

출판사 서평

사회적 재난과 폭력에 상처 입은 우리와 이웃을 위한 치유의 메시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며칠 뒤, 정신과의사 정혜신은 무작정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가 생존자와 유가족들을 만났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하던 일을 모두 접고 안산에 치유공간 이웃을 마련해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을 돌보고 있다. 이전부터 고문피해자들을 도와 고문치유모임의 집단상담을 이끌어왔으며,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만들기도 했던 정혜신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어른으로서 죗값을 치르기 위해안산으로 왔다고 말한다.

 

주목받는 시인이자 최근 문학계를 뜨겁게 달군 문학과 정치논의를 이끈 장본인이기도 한 진은영 시인은 그간 용산 참사와 4대강, 한진중공업 현장 등에서 문학을 통한 사회적 실천에 앞장서왔으며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기억하는 ‘304 낭독회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또한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교수로서 예술을 통한 치유적 활동에도 남다른 관심을 지니고 있다.

2014년 가을 안산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만남은 계절을 바꾸어가며 계속 이어졌다. 세월호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 이 대화는 만남을 거듭하면서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빈발하는 갖가지 사회적 트라우마의 양상과 그 치유의 필요성, 치유의 근본적인 메커니즘, 나아가 치유의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실천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발전되어갔다. 정혜신은 고통의 현장에서 접하는 여러 색깔의 고통들을 생생하게 전하는 동시에 치유의 메커니즘을 사회적으로 확산하기 위한 기획들을 제시하고, 진은영은 정혜신의 뜨거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는 같이 눈물을 지으면서 대화에 다양한 맥락과 함의를 더해 논의의 결을 더욱 풍성하게 이끌어간다.

 

사회적 트라우마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연이은 사회적 재난과 폭력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어느새 트라우마또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같은 정신의학적 용어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이해는 그리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정혜신 진은영 두 사람은 트라우마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 고통받는 이들에게 다가가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트라우마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가 피해자들에게는 또다른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혜신은 세월호 트라우마로 인해 피해자 가족들이 겪는 다양한 고통의 양상을 자세하게 전하면서, 이것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재앙이고 세월이 지나도 절대 줄어들지 않는 압도적인 고통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이들이 겪는 고통의 양상과 층위가 복잡다단하다는 점을 세심하게 헤아리려는 노력이 그들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일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이 더이상의 상처 없이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치유의 가장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것은 트라우마를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분리해서 다루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나 쌍용차 사태 등과 같이 사회적인 맥락에서 발생한 트라우마는 개인의 내면적인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결코 치유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혜신은 명확한 진상규명이야말로 트라우마 치유의 전제라고 단언하면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이해와 고려 없이 개인의 내면만을 문제 삼는 접근은 오히려 피해자들을 고립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들의 싸움은 곧 스스로를 치유하려는 몸부림이며, 그 싸움을 위해서도 치유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정혜신은 이를 잘 싸우려면 치유가 되어야 하고, 치유되어야 잘 싸울 수 있다는 말로 표현한다. 사회적인 문제의식과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 어느 쪽도 놓치지 않는 이러한 접근만이 사회적 맥락에서 상처를 입은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에 온전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별적인 한 인간의 마음에 집중하고 개인의 존재를 존중하는 일이 사회적 치유의 실마리이자 사회적 소통과 민주주의의 기초라는 두 사람의 지적은 경청할 만하다. 비판과 논쟁과 계몽에만 익숙하고 정작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지금의 우리 사회가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트라우마를 확산시키는 토대가 되어왔다는 지적이다. 사회적 트라우마가 개인의 특수한 질환이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임을 우리가 거듭 새겨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치유의 공동체를 향하여

 

그렇다면 마음을 나누기는커녕 오히려 상처를 퍼뜨리고만 있는 이 사회에서 사회적 치유란 어떻게 가능할까. 두 사람은 사회적 트라우마는 일부의 전문가들만이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나서야 하는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 정혜신이 강조하는 것이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는 개념이다. 상처를 입은 적이 있고 그 상처를 치유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치유자가 될 수 있고, 그런 사람이 곧 최고의 치유자라는 것. 정혜신은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두가 서로에게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곧 사람은 누구나 본래 온전한 존재이며 스스로 치유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치유의 핵심은 스스로 자신의 치유적인 힘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으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복잡한 기법이나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일상의 근본적인 요소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치유적 공기와 자극이라는 것. 그런 치유의 핵심을 공유하고 치유적 공기가 번져나가게 하는 일이 우리 사회를 좀더 건강하게 만들어가는 길이라고 두 사람은 말한다.

 

정혜신의 지적처럼,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우리 사회가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지금껏 우리가 확인한 것은 우리에게는 사회적 치유를 위한 바탕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뼈아픈 사실뿐인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사회적 치유의 첫걸음은 우리 자신의 마음의 문제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도록 서로 돕는 이웃이 되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이웃집 천사가 되는 일일 것이다. 두 사람의 말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상처 입은 마음에 우리의 마음을 포개는 일이 그 시작일 것이다.

 

간절히 바라고 눈물을 흘려주는 것과 같은 아주 사소한 행동도 타인에게는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치유는 아주 소박한 것입니다. 사람 마음을 어떤 순간에 살짝 만지는 것, 별것 아닌데 사람이 휘청하는 것, 그냥 울컥하는 것, 기우뚱하는 어떤 순간. 그것이 바로 치유의 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치유자가 될 수 있어요. 더구나 지금과 같은 때는 더 그렇죠. _정혜신

 

정혜신 선생님의 이웃 치유자는 감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처받은 이들의 상황을 잘 관찰하고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치밀하게 헤아리는 기민한 정신의 결과물이다. 그녀는 사랑의 과학자다. () 그녀는 이웃집 천사가 되기 위해 위대한 사랑이 필요하다고 강변하지 않았다. 다만 부서지기 쉬운 존재들이라서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다가가고 사랑하는 일에도 배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_진은영

 

아픈 몸 더 아픈 차별 대한민국에서 질병과 장애는 어떻게 죄가 되는가

저자 김민아|뜨인돌출판사 |2016.02

저자 김민아는 사람을 좋아해서 이야기 듣기를 몹시 즐기지만 그러고 나면 오래 끙끙댄다. 한 번 마주쳤을 뿐인데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듯, 아픈 사람의 처지와 형편에 자꾸만 눈길이 가는 통에 도리 없이 이 책을 쓰게 됐다. ‘슬픔은 간이역에 코스모스로 피고라고 가수가 노래하면 과연 어떤 정경일까 궁금해서 노랫말을 곱씹어 보는 버릇이 있다. 관심 어린 따스한 눈빛만으로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고 믿으며, 평평하게 골라진 땅 위에서 모두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세상을 꿈꾼다.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상담과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2003년부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상담과 교육 업무를 거쳐 지금은 정책교육국에서 인권영화를 기획한다. 지은 책으로는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 엄마, 없다, 영화, 사회복지를 만나다(공저), 별별차별(공저)이 있다.

 

목차

여는 글 | ‘차별 바이러스는 어떻게 퍼지는가

 

[1] 아프다는 것

 

어느 날, 병이 왔다.

둘러보니 흔한 게 병

긍정과 부정 사이

 

[2] 몸 하나에 별별 시선

 

덥석 잡히는 몸

모욕당하는 몸

간섭받는 몸

더럽혀진 몸

배제되는 몸

 

[3] ()에 따른 별별 차별

 

입사 거부

진료와 수술 거부

사생활 보호 거부

입소 거부

가입 거부

()가 거부

 

[4] 인권으로서의 건강

 

의료전문가와 건강권

권리로서의 건강

 

맺는 글 | 페스트와 메르스 그리고 국가

 

출판사 서평

아픈 사람을 위한 나라는 없다!

병들과 불편한 몸을 향한 수많은 편견과 낙인과 차별

질병과 장애가 죄가 되는 대한민국을 누가, 어떻게 바꿀 것인가?

 

차별이라고 하면 대부분 성차별, 학력차별, 지역차별 같은 익숙한단어들을 떠올리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명백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또 하나의 차별이 있다. (또는 병력)에 따른 차별, 늙거나 불편해진 몸뚱이에 대한 차별, ‘규격에서 벗어난 신체에 대한 차별. 당사자들을 아득한 절망으로 몰아넣는 그 차별의 대상은 다름 아닌 이다.

 

국가인권위 활동가인 글쓴이는 바로 이 몸에 깃든 차별에 주목한다. 아프다는 이유로, 아팠다는 이유로, 훗날 아플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부모의 병력 때문에!) 입학과 취업에서 배제되고 심지어 진료와 수술마저도 거부당하는 사람들. 아픈 몸보다 더 아픈 이 비인간적 차별의 밑바탕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이 있다. 또한 법 앞에 평등이라는 헌법적 권리를 외면하는 국가의 무책임이 있다.

 

사회의 외면과 당사자들의 체념 속에 깊이 묻혀 있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면서 글쓴이는 새삼스레 하나의 사실을 환기시켜 준다. 아픈 사람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리고 묻는다. 아픈 게 죄가 되는 이 나라를 누가, 어떻게 바꿀 것이냐고.

 

편견을 먹고 자라는 차별 바이러스

 

첫머리에서 글쓴이는 병이라는 게 결코 사람을 가려서 찾아오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1, 어느 날 갑자기 병이 왔다). 공황장애를 앓는 50대 직장인, HIV에 감염된 60대 요리사, 당뇨에 걸린 40대 남자, B형간염에 걸린 30대 남자, 재생불량성빈혈에 시달리는 20대 여자. 발병 이전까지만 해도 평범하고 성실한 사회인이었던 이들의 삶은 발병 이후 극단적으로 바뀌었다. 이제 이들에겐 그 어떤 사회적 권리도 허용되지 않는다. 오로지 은둔과 자기혐오의 자유만이 허락될 뿐이다. 진단서에 적힌 병명은 사회로부터의 추방을 선고하는 선명한 낙인에 다름 아니었다.

 

병을 앓는 모든 사람들이 그 선고에 순순히 응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 봐야 돌아오는 건 단호한 배제와 씻을 수 없는 모멸감뿐이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당장 사직서를 내시오.” “야근이 잦은데 일할 수 있겠어요?” “몸이 수술 이전과 같겠어요?” “그 병을 가지고는 출입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정신병이니 당신도 정신병이겠지” “그런 몸은 가입 안 돼요등등. 직장생활에 지장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서도, 취업 거부나 입학 거부를 취소하라는 국가인권위의 권고도 바윗덩어리 같은 편견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글쓴이는 이렇게 말한다.

 

아파서, 장애가 있어서, 몸의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집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동그마니 혼자 남겨진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몸뚱이를 괴롭히는 조건도 무섭지만 더 두려운 것은 병, 장애, 노화보다 오래 살아남아 아무 때나 괴롭히는 차별 바이러스라고 말합니다. 이 바이러스는 사람들의 편견을 먹고 자라서 그토록 질긴 것일까요.” (여는 글, 차별 바이러스는 어떻게 퍼지는가)

 

몸에 등급이 매겨진 사람들

 

몸을 향한 차별은 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종종 통증과 질병을 동반하는 장애도, 사회적 규격에 미치지 못하는 비정상적신체도 죄다 차별 대상이다. 청각장애가 있는 어느 대학 강사는 의사소통이 안 되고 인화(人和)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달리 덩치가 큰 어느 청년은 자기관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해고당한다. 공동체가 지향하는 인화가 특정인을 공동체에서 내치는 사유가 되고, ‘비만은 질병이라는 의학 상식이 과체중 직원을 자르는 명분으로 둔갑을 하는 곳이 바로 이곳, 대한민국이다.

 

차마 읽어 내려가기 힘든 여러 사례들 속에서 간간이 느껴지던 글쓴이의 안타까움과 분노는 고() 송국현 씨 이야기에서 절정에 달한다.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를 등급별로분류하는 장애등급제 철폐 운동에 앞장서다가 2014년 불의의 화재로 목숨을 잃어야 했던 고인의 아픔과 고통을 글쓴이는 당사자의 시점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불이 났습니다. 불길이 덮쳐 오는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20미터도 안 되는 저 출입문 쪽으로 일어나 걷질 못합니다. 나는 결국 죽겠지요. () 장애인단체에서 일하는 제 동료들은 제가 죽고 난 뒤 저를 얼른 땅에 묻지도 못했습니다. 동료들은 제가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았다면 불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인데 그걸 안 해 줘서 이리 죽었으니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라고, 공무원 선생님들이 잘 쓰시는 표현인 를 썼습니다. 저야 뭐, 상관없었습니다. 어차피 죽은 목숨 아닙니까. 살아서 잘 쓰이지 못한 육신, 죽어서 발언의 도구가 된다면 고마운 일이지요.” (안녕하세요, 저는 몸에 등급이 매겨진 송국현입니다)

 

고인이 보내온 편지 형식의 이 글은 여러분은 저를 잊지 않고 기억하실 수 있겠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끝난다. 이는 부디 그를 기억해 달라는 부탁이나 당부가 아니다. 이 부당한 차별과 불평등을 과연 언제까지 묵인하며 살 것이냐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향한 준엄한 질문이다.

 

인권으로서의 건강과 국가의 의무

 

차별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당연히 사회구성원들의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 글쓴이가 병이 아니라 병이 깃든 사람을 구해 내려면 한 사회, 그리고 개인의 인권의식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강조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모든 사회문제들이 그렇듯, 개개인의 의식 변화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개인의 각성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건 종종 사회와 국가의 책임을 은폐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십 년 넘게 인권문제의 현장에서 활동해 온 글쓴이는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소나무 재선충을 소나무 에이즈로 표현하는 한 국가기관의 사례를 거론하며 글쓴이는 이렇게 쓴다.

 

국가기관이 만들어 배포하는 정보는 때로 가장 해로운 바이러스처럼 보입니다. () 언론은 이를 받아쓰기 바빴습니다. 이른바 주홍 글씨가 새겨진 사람들을 다루는 미디어의 방식은 주홍 글씨를 옅게 만들거나 불식시키는 게 아니라 당사자를 혐오하고 추방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국가기관이 나서서 혐오를 부추기고 언론은 의심과 고민 없이 실어 나르는 상황이었기에, 당사자들은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습니다. 이렇게 생산된 정보는 폭력 그 자체입니다.” (본문 중)

 

차별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고착시키고 확대재생산하는 국가는 스스로에게 주어진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글쓴이는 잘라 말한다. “국민이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을 향유하게 하는 주체는 당연히 국가입니다. 국가는 국민의 건강을 보호할 책무가 있습니다. ()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국가는 민주주의의 핵심이 결국 인권을 증진하는 일임을 압니다. 한 나라의 국민이 얼마만큼 건강한가는 그 사회가 건강을 단순히 임상의학이 아닌 기본권의 영역으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라는 게 인권활동가로서 그의 신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2015년의 메르스 사태에서 익히 확인되었듯이.

 

“2015년 메르스는 2014년 세월호의 다른 이름이며, 국가는 무엇이고 국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묻는 거대한 의문부호였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물음을 외면하면 국민은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본문 중)

 

책의 말미엔 메르스 사태 당시 정부가 보여준 무능력과 무책임을 카뮈의 페스트에 빗대어 살펴 본 흥미로운 에필로그가 실려 있다. 소설 속 도시 오랑2015년 대만한국 사이의 소름 끼치는 유사성은 우리의 현실이 70여 년 전 카뮈의 눈에 비친 부조리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씁쓸하게 확인시켜 준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이 부조리를 뚫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소설 속 시민들이 그랬듯, 새로운 출발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므로.

책속으로

 

처음엔 말 그대로의 아픈 사람만 보였는데 그들을 만나러 다니다 보니 아프다는 원은 자꾸만 크고 넓어졌습니다. 지금 아프거나 과거에 아팠던 사람은 대개는 유약한 몸, 손상된 몸, 취약한 몸, 노화하는 몸, 병약한 몸의 교집합이거나 그 길로 가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 p.9

 

이 책에는 아파서, 장애가 있어서, 몸의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집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동그마니 혼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몸뚱이를 괴롭히는 조건도 무섭지만 더 두려운 것은 병, 장애, 노화보다 오래 살아남아 아무 때나 괴롭히는 차별 바이러스라고 말합니다. 이 바이러스는 사람들의 편견을 먹고 자라서 그토록 질긴 것일까요. --- p.12

 

속도가 최상의 가치인 사회에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능력 없는 자는 차별받아도 별수 없고, 이런 문화권에서는 피해자 스스로 나는 차별받아 마땅하다고 여깁니다. 차별받는 원인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내재된 차별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럴 만하다고 동의가 되는 상태로의 전락! 이것이 장애, 노화, 병보다 더 무서운 순응입니다. 우리가 진짜 경계해야 할 것은 이건 차별 아니냐고 따지고픈 마음을 놓아 버리고 싶은 지독한 허무감인지도 모릅니다. --- p.55

 

처음 본 시설생활인들에게 다짜고짜 다가가 덥석 손을 잡고, 껴안고 안부를 묻는다면 그들이 고마워할 거라는 그의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렇게 하는 사람은 필시 사회적 소수자에게 아무런 편견 없이 열려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겠지만, 인사를 받는 이도 같은 느낌을 받을까요. --- p.59

 

매일 거울 앞에서 치장하고, 힘써 노동하고, 먹고, 잠자리에 드는 몸이 개별적이듯 우리 몸의 조건, 성격, 기질, 취향, 식성, 몸의 리듬은 저마다 다릅니다. 단 한 개의 호리병에 담아 표준규격으로 찍어 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표준규격의 몸에만 찬사를 던지는 문화에서는 장애가 있는 몸, 노화되어 가는 몸, 호리병 기준에 맞추지 못하는 몸들은 거처를 잃습니다. --- p.86

 

중증 장애인 후배는 교복을 입고 싶어 했습니다. 또래 아이들이 그토록 벗어던져 버리고 싶어 하는 그 규격화된 옷을 말입니다. 같은 원 안에 속하고 싶은 간절함을 지켜 주는 사회. 그런 사회는 한 개인 이 자존감을 지키면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애쓰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이런 사회라야 인간이 인간다움을 고민하고, 나누고,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 p.96

 

국가기관이 만들어 배포하는 정보는 때로 가장 해로운 바이러스처럼 보입니다. 두어 해 전 산림청에서는 소나무가 말라 비틀어져 죽어 가는 소나무 재선충의 심각성을 알린다며 소나무의 상태를 에이즈 환자에 빗대어 소나무 에이즈라고 홍보했습니다. 솔잎이 적갈색으로 변하는 소나무 재선충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건 아마도 에이즈 하면 떠오르는 붉은 반점 때문일 것입니다. 언론은 이를 받아쓰기 바빴습니다.

이른바 주홍 글씨가 새겨진 사람들을 다루는 미디어의 방식은 주홍 글씨를 옅게 만들거나 불식시키는 게 아니라 당사자를 혐오하고 추방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언론에 당사자들을 자주 노출시켜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노출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국가기관이 나서서 혐오를 부추기고 언론은 의심과 고민 없이 실어 나르는 상황이었기에, 당사자들은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습니다. 이렇게 생산된 정보는 폭력 그 자체입니다. --- p.137

 

자신과 다른 이를 분리, 구분, 배제하려는 행위는 누구도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는 인권의 정신에 위배됨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머리에서 알고 있는 사실을 가슴 이 느껴 두 기관이 조화를 이루어야 병에 다트를 던지는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병이 아니라 병이 깃든 사람을 구해 내려면 한 사회, 그리고 개인의 인권의식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수밖에 없습니 다. --- p.142

 

장애인은 수명이 짧을 테니 생명보험은 안 되고, 불이 나면 빠져나오기 힘들 테니 화재보험도 안 되고, 질병에 취약할 테니 의료실비보험도 안 된다는 교육을 받고 나서야 보험의 문제점과 실상을 알게 되었다는 한 상담원은, 보험료가 없어서 보험을 들지 못하는 것 외에 다른 이유는 상상해 보지 못했는데 자신을 비롯한 비장애인들은 보험 가입 때문에 애를 먹은 적이 그다지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고 합니다. --- p.174

 

건강과 사회적 불평등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고 가난과 질병은 한집에 사는 불편한 동거이기에, 영국에는 가난이 당신을 처참하게 만든다는 것은 나쁜 소식이지만, 그런 상태로 오래 생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라는 잔인한 농담이 있을 정돕니다. --- p.186

 

세계보건기구 헌장 서문에도 모든 사람이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을 향유하는 것은 인종이나 종교 혹은 정치적 신념과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여건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권 중의 하나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국민이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을 향유하게 하는 주체는 당연히 국가입니다. 국가는 국민의 건강을 보호할 책무가 있습니다. 책무는 상시적인 임무로서 일시적인 관용이나 자선 행위일 수 없습니다. --- p.216

 

2015년 메르스는 2014년 세월호의 다른 이름이며, 국가는 무엇이고 국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묻는 거대한 의문부호였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물음을 외면하면 국민은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 p.234

 

국가가 지켜 내야 하는 것들 중 국민의 존엄을 보장하는 일보다 더한 가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국가는 민주주의의 핵심이 결국 인권을 증진하는 일임을 압니다. 한 나라의 국민이 얼마만큼 건강한가는 그 사회가 건강을 단순히 임상의학이 아닌 기본권의 영역으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p.241


Aquarius Let The Sunshine In - The 5th dimen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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