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5일 정기총화 개최 후 맞이한 주말, 모처럼 식구들과 황령산 산책에 나섰다. 식구라고 해 보았자 달랑 4명인데, 명절 본가와 처가집 가는 일 말고는 4식구가 시간을 보낸 적이 더물다. 올해 대학에 들어간 큰아들이 간밤 술자리에서 과음을 했음에도 기꺼이 동참해 준것이 고마웠다. 집을 나서자 먼저 와서 기다리던 봄꽃이 반겼다.
산책은 집뒤 통일동산을 경유하여 갈미봉 자락과 황령산 자락 허리길에서 전포동과 문현동의 경계인 뱍화마을과 돌산공원을을 거쳐 버스정류소까지 약 4.5km의 짧은 거라였다.
숲은 아직은 겨울빛이 짙었다. 억새들이 초록 어린잎을 겨울 내밀고 있었다.
산책의 배경은 아내의 건강을 도모하자는 차원도 있었다. 큰아들과 막내가 익숙한 통일동산 산책길을 지나 다시 차도를 건너 부산혜성학교 담벼락과 마주한 대연6동 산동네 골목 오르막길을 올랐다. 뒤처지는 막내에게 큰아들이 저질체력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렇게 등성이에 올라 뒤돌아 보니 짧지만 걸온 길이 내려다 보였다.
도심 소나무의 존재나 입지가 문현동과 경계한 대연6동 산동네처럼 하나 둘 늘어난 무허가 집들이 숲 속으로 들어가면서 베어냊 못한 나무들이 마을 나무로 살아 남는 경우가 많다. 이 터를 유심히 지켜 보았다. 올해 준비중인 한평 녹색골목 조상지로 적합할 듯 해서다.
건너편 대연6지구 재개발 현장이 한눈에 들어 온다. 철거와 정지작업도이 상당히 진행되었다. 저기에 새로운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 선다. 분양이 성공적으로 이루어 졌다고 알려졌지만, 정작 터 잡고 살던 원주민의 입주는 얼마나 될까. 분양권을 받지 못했거나 포기한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 개발의 여파가 이곳까지 넘보지는 않을련지... 투기세력과 그에 빌붙어 세세차익을 생각하는 시민이 있는 한, 이 도시는 이방인의 도시일 뿐이다.
어쩌면 내가 시대에 뒤쳐진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너무도 당연시 되는 재테크의 한 방법을 여전히 마음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다로 재테크도 노동인가. 때로는 경멸에 가까운 시선을 보내지만 때로 불특정 다수의 그들에게 후원과 동참을 말하기도 하니 참 역겹다.
숲이 마침내 겨울옷을 벗고 봄옷을 입고 있다. 봄 나들이가 주는 보너스다.
더불어 부자른히 먹이 활동을 하는 새들의 나래도 눈을 즐겁게 한다. 나무를 쪼는 쇠딱다구리며 청딱다구리를 비롯하여 박새며 딱새, 풀숲의 참새와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조잘거림과 인기척에 갑자기 날아 오르는 꿩들은 식구들 모두를 즐겁게 했다.
황령산 임도에는 아이들이 모습들이 새겨져 있다.
앞으로 어떤 모습이 이 길에 담겨질 지는 모른다. 고마운 일이다.
2004, 7.25 2007. 8.6
2008.1.24 2008.4.20
2014. 4,9 2014.5.6
아들 둘 다 이제 아내보다 큰 키로 자랐다.
봄꽃은 아직 이른 계절이다.
봄맞이꽃/ 김윤현
추운 겨울이 있어 꽃은 더 아름답게 피고
줄기가 솔잎처럼 가늘어도 꽃을 피울 수 있다며
작은 꽃을 나지막하게라도 피우면
세상은 또 별처럼 반짝거릴 것이라며
많다고 가치 있는 것이 아니며
높다고 귀한 것은 더욱 아닐 것이라며
나로 인하여 누군가 한 사람이
봄을 화사하게 맞이할 수 있다면
어디에서고 사는 보람이 아니겠느냐고
귀여운 꽃으로 말하는 봄맞이꽃
고독해도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며
풍부한 삶을 바라기보다
풍요를 누리는 봄맞이꽃처럼 살고 싶다
- 시집『들꽃을 엿듣다』(시와 에세이,2007)
개암나무의 꽃이다. 수꽃의 비늘이 벌어지기 시작 했지만 아직 수분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수꽃의 형성은 열매가 맺힐 때부터 이루어진다.
말미잘처럼 생긴 암꽃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작다. 잎이나기 전에 꽃을 피우는 전략은 풍매화로서 수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고 수꽃은 한번에 약 5백만개의 씨를 바람에 날린다.
사방오리나무는 좀체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나무다. 암수가 따로 꽃을 피우는 자웅이화로서 암꽃은 강아지 꼬리처럼 달린다. 근래들어 수종교체를 한답시고 쉽게 벌목이 이루어지는 대상목이다. 허나 도시숲에서 오리나무는 그 나름의 역할이 있다. 베어진 나무들을 보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코굴을 지난다. 오래전 세 모자가 사진을 찍은적이 있다. 십년전 쯤 벚꽃이 바람에 눈처럼 날리던 봄날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이다. 앞으로 매년 이 자리에서 기념사진을 찍어 볼 작정이다.
황령산 중턱에 자리잡은 공동묘지를 지나 벽화마을로 들어선다.
마을입구 무화과나무 한 그루 고된 세월을 지나왔던 것 같다
철재 아시바를 아예 물어 버렸다. 무게에 짓눌리고 밀리면서 아예 나무의 일부처럼 되어 버렸다.
벽화마을을 관통하면 돌산공원이다.. 예전에 일대가 주거지로 들어서기 전 내 이십대의 한때가 보였다. 온통 무덤이었다.
찌르레기 한마리 발견했다. 여름새다. 일부지역에서는 텃새로 살지만 이 계절에 찌르레기를 본다는 것이 썩 즐겁지는 않다
돌산공원을 지나 문현동 안동네를 내려볼 수 있는곳에서 지나온 황령산 골안을 둘러 본다. 오른쪽 통일동산에서 완쪽으로 골안을 원을 그리듯 걸었다, 만족한 산책이었다. 이런 시간 올해는 많이 만들어야 겠다.
본가로 향한다.
눈여겨 봊 못했던 곰솔도 다시금 챙겨 본다. 수령 100년은 되어 보인다. 일대에서 가장 덩치가 큰 소나무다. 지난해 마을 터줏대간나무 조사때 누락됐다.
막내 여동생네가 영화를 보자고 했다, 사무실에서 스크린이며 빔을 실어와 설치를하는 동안 아버지 텃밭을 가 3월 봄 오후를 즐겼다.
매화꽃이 흐드러졌다. 매실 따는 날을 떠 올린다. 한창 바빠질터인데 거들손이 될려나 모르겠다.
님아 ,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았다.
영화는 강원도 횡성에 사는 89세의 강계열 할머니와 98세의 조병만 할아버지가 부부연을 맺어 살아 오면서 막바지인 늘그막을 담았다. 어딜 가든 고운 빛깔의 커플 한복을 입고 두 손을 꼭 잡고 걷는 금슬 좋은 부부였다. 76년을 그렇게 살았다고 했다. 신혼부부도 그렇게 살가울 수 없으리라.
기르던 강아지의 죽음 후 할아버지의 죽음에 이르기 까지 담담이 그려내었다. 부부는 12남매를 낳았지만 여섯 아이만 키워냈고 나머지는 잃어버렸다고 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병세가 심상치 않자 먼저 보낸 여섯 아이들의 내복을 사서 저승길에 갔다 주라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고, 할머니는 주저앉아 통곡했다.
가족들 모두가 눈물을 훔쳤다. 어머니가 한 말씀했다. “평소에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해줬기 때문에 죽을 때 까지 저런 모습을 보인다”며 ...문득 먼 훗날 아내와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려 본다. 그리고 내 아버지 , 어머니의 마지막은
저녁은 아버지 어머니가 텃밭에서 거둔 봄나물 비빔밥으로 간만에 배불리 먹었다. 고기가 없어도 배 부른 저녁이었다. 가족의 무탈을 기원한다. 사랑한다. 물질적 풍요와 거리가 먼 내가 원없이 베풀 수있는 기원이다.
Mama Told Me Not To Come - Three Dog Night(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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