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성과의 대화]①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 Hodge)
- 대량 생산 앞세워 거대해진 경제 구조…생산 압박에 전례 없는 ‘시간 가난’
세계적 석학으로 지역경제 운동의 선구자·환경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우리 모두에게는 무지를 벗어나 현실 경제의 진실을 알아채는 ‘경제적 소양(economic literate)’이 시급하게 필요하다”며 국제적인 경제 불평등 심화의 대안으로 지역(로컬)경제의 활성화를 강조한다. ⓒ황채영
‘불평등’이란 말이 흔해진 나머지 현실의 ‘불평등’이 가져올 위기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사는 애초부터 불평등했다’라는 냉소마저 퍼진다. 어쩌면 이는 무기력증 내지 좌절일지 모른다. 구조는 바뀔 듯 뒤틀다 더 견고하게 틀을 여미는 듯하다. 다들 경제를 말하면서 변화에 대한 제안에는 오래된 논리로 변화 그 자체를 틀어막고 있다. 현상은 복잡한데 주류 논쟁은 여전히 10년 전이나 다르지 않다.
경제에 대한 논의의 폭을 넓히고자 ‘보살핌의 경제로-세계 지성과의 대화’를 기획했다. 지구를 가르며 공통되게 드러난 현상을 돌파하고자 나온 정책들을 소개할 것이며, 다각도로 보는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 인터뷰이는 지역경제 전문가이자 활동가이며 <오래된 미래> 저자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다. 스페인 이비사섬에서 2018년 11월21일 만났다.
안희경 = 새해를 맞이하던 기억으로부터 출발하고자 합니다. 떠오르는 추억이 있나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이하 노르베리 호지) = 저는 스웨덴에서 자랐어요. 1월10일이 제 생일이고요. 제게 새해를 맞는 겨울 기억은 스웨덴 명절인 12월13일부터 생일까지입니다. 성 루치아 축일에 우리는 하얀 가운을 입고 촛불을 밝히며 합창을 했어요. 길고 어두운 스웨덴 겨울밤으로 빛을 모셔오는 날이죠. 빵 굽는 냄새가 온 동네에 가득했고, 생강빵으로 만든 집을 초콜릿과 사탕, 구운 쿠키로 장식했습니다. 뜨개질로 트리 장식을 만들고 향나무 가지를 엮어 집에 들어오는 문에 에둘렀어요. 지금은 다 바뀌었습니다. 축하하는 기간도 짧아졌고, 상업적인 시스템이 됐죠.
안희경 = 왜 우리는 추억도 놓치고 기분마저 시들해졌을까요.
-노르베리 호지 = 저는 외부와 연결되어 있던 감각이 닫혔다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애써 마음 쓰지 않으면 집착하게 되고, 탐욕이 생기고, 타인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게 돼요. 자신이 존재하는 이 순간의 느낌과 삶이 흘러가는 상황에 대한 감각을 잃을 때, 사랑은 어디론가 새어나가 버리죠. 현대 경제 시스템 속에서 뭉텅 증발했어요.
안희경 = 돌아보면 홀리듯 매료되어 현대화에 몰두했습니다. 답이 하나였죠.
-노르베리 호지 = 그 전 과정을 라다크에서 보았어요. ‘아! 이는 심리적이며 정신적으로 작동되는 시스템이구나! 물질적인 단계만이 아니구나.’ 눈을 활짝 뜨게 됐습니다. 현대 시스템은 심리 단계에서 먼저 상상과 개념으로 작동해요. 학교 또한 그 체제를 완벽하게 생산하는 동력이고요. 사람들이 점점 더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동물의 고통과 식물로부터 단절되어 갑니다. 가족관계도 협소해지죠. 현대 경제체제 이전에는 인간도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했어요. 내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이 꼭 필요했습니다. 오늘의 제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 현대인이라면 당신은 그 누구에게도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안희경 = 제가 어렸을 적, 1980년대에는 어머니가 저녁 준비를 하면서 심부름을 자주 시켰어요. 요즘 같은 겨울에는 생미역을 사오라 하셨고, 두부가 떨어지면 그 즉시 골목을 내달려야 했죠. 물론 주인 아주머니에게 돈을 내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어머니께서 갚을 걸 아니까요. 동네의 상권이 얼굴을 맞대는 관계로 얽혀 있었습니다. 지금은 대형마트에서 일주일치 식료품 가게를 집 안에 차립니다.
-노르베리 호지 = 현대 경제가 만든 또 하나의 개념이 시간입니다. 우리는 전에 없던 시간 가난을 겪어요. 일하고 뭔가를 생산해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 때문입니다. 이 압박이 자신을 위한 시간을 자발적으로 삭제하게 만듭니다. 요리할 시간, 쉴 시간, 얼굴 보며 맺어나갈 관계들을 차단하죠.
현재의 생산방식은
기후변화 부르고 비효율적
나를 위한 시간 없애고
사람들 관계 차단시켜
안희경 = 생활을 꾸려가려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죠. 기업이나 노동자나 생산성을 높여야 경쟁력이 있잖아요.
-노르베리 호지 = 현대의 생산방식이죠. 하지만 여기엔 억지가 있습니다. 모든 생산활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생산은 식량 생산입니다. 현대 경제는 우리가 먹는 음식을 점점 더 멀리 떨어뜨리고 있어요. 지리적으로 엄청나게 비효율적입니다. 생산면적은 점점 더 커지면서 단일 경작으로 바뀌었죠. 단일 경작에서 나오는 생산량은 땅 1에이커당 훨씬 적습니다. 단위면적당 물도 더 줘야 하고요. 넓으니 기계가 들어가게 되고 배기가스를 배출합니다. 기후변화를 부르고, 공기오염을 낳습니다. 현대 경제는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농부들을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압박했습니다.
안희경 = 농촌에도 돈이 필요합니다. 아이를 키우며 소비자로서 살아가려면요. 세계적으로 60% 이상이 도시에 거주합니다. 도시의 소비자들 역시 보다 싼 가격을 원하고요. 이는 서로 맞물려 있죠.
-노르베리 호지 = 하지만 한발 물러나서 본다면요. 사람들이 싼 음식을 좋아하면서도 보다 건강한 음식을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를 충족하는 경제정책은 지역 농산물 생산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지역 사람들의 요구에 맞게, 더 신선한 음식을 가질 수 있고, 더 쉽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는 구조요. 다양한 작물을 키워내는 작은 규모의 농사는 단위면적당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합니다. 경제적이죠. 그래서 더 많이 훨씬 낮은 가격으로 농작물을 가꿔낼 수 있어요. 하지만 다수는 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경제적 소양(economic literate)’이 다급합니다.
먹고 입고 쓰는 데 필요한 것들
이를 생산·소비하는 과정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
안희경 = 모든 사람을 위한 ‘경제적 소양’을 현실 경제에 대한 인식이라고 해석해도 될까요.
-노르베리 호지 = 실제 이 사회가 돌아가는 경제의 진실을 간파하는 것이죠. 다들 기업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의 대부분을 만드는 본체라고 믿죠. 그리고 다국적 회사가 그중에서도 핵심이라고요. 하지만 진실은 이래요. 음식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는 동의할 겁니다. 집도 아주 중요하죠. 옷도 그래요. 이는 좀 더 괜찮게, 좀 더 효율적으로 생산되고 필요한 사람들과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대량으로 수입하고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요. 여기에 우리가 쓰는 텔레비전 스크린과 하이테크 상품들이 있습니다. 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도 다국적기업까지 필요하진 않아요. 우리는 모두 결정할 수 있고, 정부에 일을 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술 분야에 대해서도 할 수 있어요. 민주주의가 작동해 어떤 종류의 사업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결정한다면, 우리는 세상이 좀 더 나은 곳이 되도록 결정해낼 수 있습니다. 그 사업체가 어디에 있어야 한다고도 정할 수 있죠.
FTA는 체계적으로
사람들을 무력화시켰고
다국적기업을 지원하며
개별 국가들은 더 가난해졌다
안희경 =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량을 짚어봐야 하는데요.
-노르베리 호지 = 지금 국가는 점점 더 허약해지고 있습니다. 거대 기업들이 로봇을 선호하며 인간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국가를 이용하니까요. 국가는 인공지능 산업을 지원하고 지구적 규모의 기업을 지원합니다. 기업은 늘 새로운 시장을 찾아가 그곳에 있는 소비자에게 팔고 싶어 합니다. 그 땅에는 규제가 있죠. 그래서 글로벌 기업들이 지역의 규제를 해체하는 겁니다. 기업 할 자유를 얻어요. 반면에 지역의 사업들은 점점 더 불필요한 요식과 규제에 묶입니다. 지역 기업은 돈 벌기가 더 어려워지고, 더 큰 비용을 써야 하죠. 늘 글로벌 기업이 승자가 됩니다. 경제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소농과 소상공인들은 불만에 차오르고 규제에 대해 분노하고 국가와 정부에 대한 원성을 높입니다. 그들은 정부가 작아지길 바라요. (작은 정부, 규제 해체를 30년 넘게 주장해온) 우익을 선호합니다. 이들은 규제 해체가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되고, 왜 지역과 국가 차원에서는 규제가 작동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글로벌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 기업들을 규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지역 운동장에서 활동하는 로컬 비즈니스들이 더 많은 일자리와 지역 사람들이 의미 있는 노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재정립해야 하고요. 지역에 발판을 둔 사업들이 에너지와 자원을 아끼며 생산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자긍심을 지키는 일자리를 갖도록 방향을 틀어야죠. 진실이 밝게 드러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안희경 = 한국 남서쪽에 있는 도시, 군산에는 제너럴모터스(GM) 생산공장이 있었습니다. 그 도시의 다수가 GM 노동자였고, GM과 연관되어 형성된 시장이었죠. 문을 닫을 당시 모두가 믿기를 GM이 구조조정을 하면 도시는 망할 거라고 했어요.
-노르베리 호지 = 진실은 우리가 마을과 사회를 들여다볼 때, 그 안에는 많은 작은 회사들이 있다는 겁니다. 사회가 조성해 놓은 비즈니스가 있죠. 비즈니스에 의해 좌우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기업 활동을 움직이도록 해야 합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먼저 눈을 돌리는 거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관계하는 사회가 훨씬 건강한 환경을 갖고 안정된 일자리가 더 많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우리는 큰 그림을 보아야 합니다.
안희경 = 큰 그림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노르베리 호지 = 큰 그림은 지구를 가로지르며 이 행성의 자원을 갉아먹고 생명력을 파괴하는 힘의 방향과 이 힘을 바로잡을 주체가 누구인지 인식하는 겁니다. 지구적으로 일자리가, 민주주의가, 이를 둘러싼 환경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만든 시스템입니다. 자연발생적인 것도 아니고, 진화 과정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변화시키기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우리들 생각 속에 있어요. ‘이 시스템은 바꾸기에 너무 거대해’라는 생각이 변화를 막고 있습니다.
안희경 = 일단 거대 기업에서 구조조정을 하기 시작하면 몇 달 뒤 지역 상점까지 문을 닫습니다. 제조업이 단가에 따라 국경을 넘나들 때마다 일어난 현상입니다. 그러나 이 조정권은 지역이 아니라 너무도 먼 곳에 있어요. 월스트리트일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 지역 경제부터 살피니 생산·소비구조 변화…세계 도시청년들이 지역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노르베리 호지 = 이 모든 것을 자세히 볼 때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어요. 바로 정부가 결국엔 (국제적으로 움직이는) 금융과 기업을 키워왔다는 겁니다. 이 금융과 기업들은 어떤 한 나라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국적 없는 경제체제로 지구적인 규모에서 지원을 받아왔습니다. 그 사기업들이 성장해온 것과 비교하면 개별 국가들의 상태는 가난해졌고요. 국가들은 자체의 돈줄을 말려온 것이죠. 국가가 자기 손에 있던 권력을 지구를 가로질러 뛰는 선수들에게 넘긴 겁니다.
안희경 = 저는 경제 시스템이 우리의 마음마저 바꿨다고 생각합니다. 10여년 전에 수많은 활동가, 농부들이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며 맞섰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맺어졌죠. 시간이 흘러 도널드 트럼프가 FTA를 폐지하겠다 하니 모순적인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반대하던 진보진영에서조차 ‘FTA 없이 한국 경제는 큰일난다’는 겁니다. 신자유주의 질서가 경제를 넘어 문화가 되었다고 봅니다.
-노르베리 호지 = 그래요. 바로 무지입니다. 사람들은 FTA와 같은 것들이 어떻게 우리를 체계적으로 무력하게 했는지 보려 하지 않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집세를 내기 위해 더 오래 일하고 있어요. 슬프게도 이런 종류의 경제적 성장이 우리를 도울 거라고 믿고, 경제성장을 약속하는 우파 지도자들에게 표를 주는 한 더욱 분투해야 할 거예요. 하지만 우파 지도자들은 그 일을 할 수 없을 겁니다. 이 시스템은 태생적으로 낭비적이며 파괴적입니다.
안희경 = 당신의 해법은 무엇인가요.
-노르베리 호지 = 라다크는 제게 실제 사람들이 어울리는 규모의 사회가 우리에게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얼마나 이로운지 확신을 갖도록 해주었습니다. 더 작은 규모일 때 사람들은 타인과 자연에 대해 스스로의 활동이 미치는 영향을 더 잘 이해합니다. 그들은 더 지성적이 됩니다. 지금 우리가 많이 차단된 이유는 사는 구조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에요. 이 구조를 다 볼 수가 없습니다. 이 구조가 움직이고 이동하는 것을 이해하기가 어렵죠.
안희경 = 당신이 정의하는 로컬의 규모가 궁금한데요. 지난 10여년 동안 캘리포니아에서는 로컬 식품, 로컬 상품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들의 로컬 개념은 캘리포니아주에서 나온 농산물, 혹은 북부에 살면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나온 식품 정도로 한정합니다. 이 구분을 캘리포니아 면적의 3분의 1인 한국에 대입하면 한국산 농산물은 모두 로컬푸드 아닐까요? 그렇지만, 한국은 국가 차원에서 여러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로컬의 정의가 뭘까요.
-노르베리 호지 = 만약에 한국이 소고기를 미국에서 사오는 대신 한국산을 소비한다면, 이는 개선될 겁니다. 우리는 점점 더 가까운 거리 안에서 소비하는 방식으로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어요. 이는 다양한 작물을 키우는 농부에게 힘을 주죠. 왜냐하면 수출을 위해 특화된 농사가 100여년 동안 진흥되어왔고 이 속에서 무력, 식민주의 노예, 전쟁 등으로 생산 지역들이 자립하는 것을 막아왔어요. 그래서 밤새 달려오는 농산물이 아니라 지역에서 생산한 것을 먹자는 대안이 나온 겁니다.
안희경 = 한 시간 거리면 좋은가요. 너무 도식적으로 물어서 죄송합니다.
-노르베리 호지 = 완벽한 로컬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산다면 신선한 지역 채소를 갖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지역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더 많이 알아차리는 인식의 확산과 맞물려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자원부터 살펴서 그 자원의 잠재력을 깨우고, 생산과 소비 구조를 변화시켜 나가는 겁니다. 그 속에서 자연스레 농약, 오염, 화석연료 없이 건강을 키워내는 인식이 자리 잡겠죠. 실질적으로 생산과 유통 소비 구조를 바꾸고 내가 사는 지역의 일은 내 손으로 결정하는 민주주의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지역화는 작은 마을로
퇴각하는 것 아냐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알리고
자연과 연결되게 해
안희경 = 하지만 이미 청년은 농촌을 떠났어요. 지역의 도시들 역시 생산인구를 대도시로 배출하는 교육현장으로 존재하는 경향입니다.
-노르베리 호지 = 청년들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신농부 운동이 청년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그들 가운데 다수가 도시에서 컴퓨터로 작업하던 이들입니다. 이곳 스페인 이비사도 유럽과 미국의 대도시에서 이주해 와 농사를 지으며 각자의 프로젝트를 하는 청년들로 가득합니다. 세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영국에는 ‘토지 노동자들의 연맹(Landworker’s Alliance)’이 등장했습니다. 퍼머컬처(permaculture·영속 농업) 운동 속에서 싹터 수백만 청년들이 함께합니다.
지역의 일 내손으로 결정
민주주의로 가는 길
토지 노동자 연맹·퍼머 컬처 등
땅 살려내며 공동체 만들어
안희경 = 퍼머컬처라면 숲이 식물을 길러내듯 다양성을 살려 작물을 심음으로써 최소한의 인간 노동으로 수확하는 자연농법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위 수확량이 많아 깜짝 놀랐던 경험이 있어요.
-노르베리 호지 = 네. 이들은 땅을 살려내며 더 많은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고 있죠. 그리고 놀라운 점은 거대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데도 이 운동이 퍼져가고 있다는 겁니다.
안희경 = 다른 지역 풀뿌리 운동 공동체들과요?
-노르베리 호지 = 단지 풀뿌리 운동 조직만의 활동으로는 어렵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정보에 어둡다는 것에 충격을 받곤 하는데요. 예를 들어 제 일은 세계를 대상으로 진행됩니다. 식량과 농업, 세계화 문제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을 만나는데요. 그들의 90%가 비아캄페시나(Via Campesina, 농민의 길·세계무역기구와 우루과이라운드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1993년 설립된 국제농민단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비아캄페시나는 지구에서 가장 큰 사회운동 조직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듣지 못했다니요.
안희경 = 저도 2012년에야 알았습니다.
-노르베리 호지 = 왜들 모르냐면요. 81개국에 사는 3억명 가까운 농부들이 모여서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입니다. 거대 언론 또한 기업 시스템 속에 있기에 농부들의 목소리를 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모를 수밖에요.
안희경 = 지금 우리의 경제는 금융자본주의라고 불립니다. 그만큼 금융권력이 핵심인데요. 금융자본도 지역화 속에서 변화할 수 있을까요.
-노르베리 호지 = 금융 자체가 지역화되고 있어요. 지역 사람들이 지역사회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대기업에만 대출해주는 거대 은행과 달리 소기업에도 낮은 금리의 대출이 이뤄지죠. 풀뿌리 조직들이 자체 공동체은행을 설립하는 도시들이 나오고 있고요. 지역 농부들에게 자금을 조달(융자)합니다. 어떤 경우는 무이자 융자로, 어떤 경우는 매우 낮은 이자로 장기융자를 하죠. 여기에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ment·투자 수익을 창출하면서 사회나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투자방식) 형식이 번지고 있는데요. 공공의 이익을 염두에 두는 투자를 합니다. 포르마 퓨처 인베스트가 발표하길, 고객의 투자를 재생에너지 기업에 장기적으로 유도해서 기업이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장기 투자 속에서 수익도 안정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요. 저는 자신의 돈을 투자해 지역의 땅을 살려내고 비즈니스를 활성화하려는 사람들을 숱하게 만났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국가가, 거대 조직이 이 땅의 미래를 살리지 않겠다면 내가 그 일을 하겠다!’ 야생의 힘을 살려내는 일들은 실제 벌어지고 있습니다.
안희경 = 서로 연결되어 지탱하는 자연의 상호 연결성을 경쟁적이며 배타적인 오늘날의 경제 시스템 안에서 되찾을 수 있을까요.
-노르베리 호지 = 지역화는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연과 연결돼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이 바로 타인의 손길 속에 연결돼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고요. 맨해튼 빌딩 속에서 사는 누군가도 지역 식량체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농장에 가서 채소를 고르고 그걸 키운 농부와 만나고, 그런 다음 맛있게 먹고 그걸 기른 이의 손길을 인식할 수 있죠. 이는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어냅니다. 그 사람이 자기와 거래하는 농부가 홍수 피해를 당했다는 걸 안다면 아마 그 주에 채소를 사러 갔을 때는 조금이라도 더 값을 쳐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거예요. 이것이 우리가 진화해온 방식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안희경 = 마음이 진화해온 방식이죠. 보다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이뤄온 삶의 안전요.
-노르베리 호지 = 우리는 상호 의존적이고 상호 연결되는 방식 속에서 진화해왔습니다. 근대 이후의 경제체제는 우리 인간을 너무나도 극적으로 낱낱이 갈라놓고 있어요.
안희경 = 제게 꿈이 있는데요. 전 국토의 유기농업입니다. 비록 최저임금을 올리기는 힘들다 해도 모든 농산물이 유기농이라면 가난한 사람과 부자 할 것 없이 건강한 밥상을 누리겠다고 생각하거든요. ‘밥상의 불평등 줄이기’라고나 할까요.
-노르베리 호지 = 이 또한 신중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날 오로지 유기농만을 말하는데 그 문제는 점점 더 산업화된 단일 재배 유기농화로 갈 수 있다는 겁니다. 좀 더 큰 그림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유기농 시스템이 갖는 방향을 더욱 짧은 거리, 더 다양한 유기농 작물로요. 지역 소비자가 농부들을 모니터링할 수 있고, 농부와 소비자가 만나는 장터도 전국적으로 퍼지도록요. 아마 전환 초기에는 농부가 이렇게 말해도 소비자들은 괜찮다고 할 거예요. “3개월 전에 살충제로 유황을 조금 뿌렸습니다. 과일에는 안 쳤고요. 땅에 줬어요.” 농부들은 소비자의 지원과 도움에 힘입어 좀 더 쉽게 더 많은 전환을 이룰 수 있겠죠. 이는 지속 가능한 경제를 만드는 길입니다. 유기농이 단지 또 다른 기업의 상표가 붙어서 나오는 산업화를 막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
비즈니스에 좌우되지 말고
사회가 기업활동 움직이게
사람 중심 운동 필요
안희경 = 한국인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면요?
-노르베리 호지 = 세상은 위기 속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위태롭고, 환경은 다급한 처지고요. 게다가 불행하게도 경제는 계속해서 성장해 나갈 겁니다, 마지막 한 그루의 나무가 쓰러질 때까지, 기후변화가 모든 것을 초토화할 때까지. 그래서 우리는 경제구조를 이해해야 합니다. 2008년과 같은 경제위기가 또 올 겁니다. 몇몇 사람은 큰 성공을 거머쥐고, 다수의 사람은 좌절에 또 꺾일 수 있어요. 지역화는 우리가 모두 어떤 작은 마을로 퇴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계약서도 없고 외부와 협력하지 않는 것이 아니에요. 이와 정반대의 길입니다. 거대한 운동이 있어야 해요. 사람 중심의 운동이 필요하고, 국제적인 협력을 추구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어떤 대안적인 변화가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지 탐구하며 연대해 나가길 바랍니다.
샌프란시스코 공원에서 다섯 살 아이가 이파리가 길게 덜렁거리는 당근을 쥐고 먹는 걸 보았다. 낯설었다. 나의 눈빛을 읽었는지, 아이 엄마가 설명했다. 자신이 즐겨 찾는 파머스마켓에 나오는 농부들의 당근은 늘 이렇다며. 아이는 땅의 기운을 씹는 듯 보였다. 덕분에 나는 당근이 막 떠나왔을 붉은 대지를 떠올리고 흙냄새를 맡았다. 모든 경제구조는 우리 각자를 통과하여 구축되고 있다.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72)는
행복의 경제학 역설…책 ‘오래된 미래’ 유명
40년 동안 전 세계에 행복의 경제학을 전파하고 있는 로컬경제운동의 선구자. 글로벌 경제와 국제 개발이 지역사회와 경제, 개인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 분석해왔다. 세계를 가로지르며 불거지는 경제 불평등에 대한 대안으로 ‘지역화’를 주장해왔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고이 평화상을 수상했다. 저서 <오래된 미래>는 영화와 더불어 40개국 이상에서 번역됐으며, 다큐멘터리 영화 <행복의 경제학>의 제작자·공동감독이다.
1975년부터 ‘작은 티베트’라고 부르는 라다크 사람들과 함께 자국의 문화와 생태의 가치를 굳건히 지키면서도 현대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해법을 실현해왔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제2의 노벨상’이라는 바른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을 수상했다. 미국과 유럽, 호주 등에서 지역경제를 전환하는 활동을 이끌었으며, 국제미래식량농업위원회·국제세계화포럼·글로벌에코빌리지네트워크 창립에 앞장섰다. 국제 조직인 로컬퓨처(Local Futures)와 국제지역화연합(IAL)을 설립했고 현재 대표를 맡고 있다. 한국 전주에서 해마다 열리는 ‘행복의 경제학 국제회의’에도 함께하며 공동체와 로컬경제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알려왔다. ‘어스 저널(Earth Journal)’이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환경운동가 10인’ 중 한 명이다. 최근 지구적 위기에 대한 해법을 다룬 저서 <로컬의 미래>를 출간했다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재미 저널리스트다. 2002년 미국으로 이주, 서구의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 모색 등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세계적 마음 전문가들의 인터뷰집 <사피엔스의 마음>, 레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화를 엮은 <어크로스 페미니즘>,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 지성 11명과의 대담집 <문명 그 길을 묻다>, 놈 촘스키 등 세계 석학 7인과의 대담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윌리엄 켄트리지 등을 인터뷰한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등의 저서와 다수의 번역서를 펴냈다. 경향 19.1.1
세계 지성과의 대화 ②]불황·불평등·외국인 혐오, 1930년대와 판박이 “‘트럼프 장벽’과 브렉시트는 해법이 아닙니다”
보살핌의 경제로--카를로타 페레스(Carlota Perez)
기술혁명에 따른 경제·사회 변화상 연구의 권위자이자 세계적 경제학자인 카를로타 페레스는 “자본주의의 정당성은 소수의 부를 만드는 활동이 실질적으로 다수의 이익을 가져올 때 생긴다”며 “‘스마트 그린 성장’을 위한 정부의 혁신 의지를 보여주는 것은 강력한 도구인 세제 개편”이라고 밝혔다. 황채영 사진작가
온 세계가 경제를 부르짖는다. 언제나 그래 왔지만, 유독 간절하다. 혁신을 외친다. 여기에 몇몇 아주 부자 나라들은 영광마저 되찾겠다며 장벽을 올리고, 울타리 문을 나서고 있다. 누구를 위한 영광이며 어디를 향한 혁신인가. 18세기 말 초기 자본주의부터 있은 다섯 번의 기술적 혁명이 확산되는 과정을 연구한 경제학자 카를로타 페레스를 만났다. 산업혁명 초기 설치기에 나타난 거품과 번영의 그림자에 대한 그의 이론은 여러 경제학자에 의해 재생산되어왔다. 페레스는 혁신에 있어 권위자로 평가받는다. 각국 정부뿐 아니라 주요 기업에서 그에게 자문을 구한다. 카를로타 페레스와의 대화는 2018년 11월19일 영국 루이스 그의 자택에서 이뤄졌고, 인터뷰는 숙고한 내용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페레스의 요청에 의해 서면으로 다시 조정되었다.
안희경 =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경제 상황에 대한 진단을 듣고 싶습니다.
카를로타 페레스(이하 페레스) = 기술혁명이 확산되는 초기는 격동의 시기입니다. 경제에 거품이 부풀고, 대규모 붕괴가 일어나죠.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라고 불렀습니다. 찬란한 거품으로 피어나는 산업혁명의 번영 저 밑바닥에는 밝지 않은 현실이 숨어 있어요. 산업혁명이 진행해 나가는 성질인데, 2000년과 2008년에 닥쳤던 재앙도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상황을 1930년대와 같다고 규정합니다. 구조적 실업, 불평등, 카지노 금융, 저투자, 저성장, 사회불안, 외국인 혐오, 거기에 국가 안에서 혹은 국경을 넘어서는 필사적인 경제적 탈주 현상이 일고 있죠. 경기 불황, 지속적인 침체까지 닮았습니다. 걱정이 깊어요. 마치 구세주인 양 구는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이 대중에게 환호받고 있어 더 그럽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영국에서는 브렉시트의 반이민 선전이 과거의 영광으로 돌아가자며 민심을 흔들어요. 하지만 그런 해법은 영광을 불러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바로 1930년대 공황 이후에 나왔던 복지정책을 가지고 전진할 수 있습니다.
안희경 = 혁신이란 말이 곳곳에서 달리기 구령처럼 쏟아집니다. 당신의 혁신은 무엇이죠?
페레스 = 저는 시스템을 관할하는 정책방향으로 ‘스마트 그린 성장’을 제안해왔습니다. 세제를 정비해야 하는데, 과소비되는 에너지와 물질, 운송을 자제하도록 서비스와 고용에 인센티브를 주는 겁니다.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에 대여하도록 유도하면서요. 바로 내구성 있는 제품들은 수명이 다할 때, 제조회사가 직접 처리하도록 하는 겁니다. 순환경제로, 그리고 대규모 임대, 보수산업으로 지구를 무작정 소비하는 현재의 경제를 급격히 바꿔낼 수 있습니다.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데는 정책을 개선하고 물류수송 거리를 줄이는 방법도 모색해야 하는데요. 그러려면 생활습관도 바꿔 나가야죠. 이 모든 것을 추진할 때 시민에게 죄책감이나 두려움을 심어주기보다는 하고 싶고 가치를 느끼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2차 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
소득 90%를 하위 99%와 공유
기술혁명 과정서 이 구조 붕괴
안희경 = 열망과 욕망을 자극하기에는 현재의 분배 불평등이 너무 큽니다. 우려는 스마트 그린 혁명에서 다시 성장의 열매를 몇몇 금융과 거대 기업이 독점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점인데요.
페레스 = 1920년대와 1930년대 미국 전체 소득의 25%가 상위 1%에게 갔고, 199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다시 같은 비율로 이어져옵니다. 그런데요,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 황금기까지 그 비율은 10%대였어요. 전체 소득의 90%가 나머지 99%에게 돌아가면서 노동자들이 중산층 생활을 할 수 있었죠. 교외에 집을 사고 전자제품을 구비하며 집 앞에 자동차를 세워둘 수 있었습니다. 자본주의 최고의 모습이었죠. 불행하게도 이 구조는 이어진 기술혁명과 전복의 과정에서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불평등이 거품 붕괴 이후 다시 전방위로 시작됐잖아요. ‘사회주의’라 불리던 체제도 그들이 내놓은 약속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이들 국가는 새로운 형식의 불평등을 건설했어요. 부자 대신 빈자에게 가도록요. ‘21세기 사회주의’라 불렸던 베네수엘라의 비극을 보면 100만%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습니다. 빈곤층 200만명이 국경을 넘어 탈출해야 했고, 교육받은 중산층 200만명이 조국을 등져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정권 최고위층은 수억달러를 스위스, 안도라, 파나마, 미국 은행에 숨겼습니다. 소련의 붕괴 역시 빈곤의 민낯과 차마 상상하기 어려운 차원의 부패행위를 세상에 드러냈죠. 저는 현재의 사회민주주의 정당 리더들이 부끄럽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들은 긴축정책을 옹호합니다. 2차 세계대전 후에 복지국가를 가져왔던 성공적인 정책들을 저버립니다.
임시직 선호하는 ‘긱 이코노미’
‘우버형 일자리’ 보호하려면
기본소득 등 별도의 정책 필요
안희경 = 불평등을 설명하는 하나의 큰 축이 소득인데요. 대량생산 시스템 속에서 희생을 치르며 만들어온 노동조건들은 노동유연화 정책 속에서 약화했습니다. 상위소득과 하위소득 차이뿐 아니라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소득도 격차가 큽니다.
페레스 = 그래요. 각각의 혁명은 다르고 사회정책 역시 모두의 이익을 위해 다르게 다듬어져야 합니다. 현재의 평생직장에 맞는 대량생산 조건과 단기실업에 맞게 구성된 옛 실업보험 시스템이 예가 될 겁니다. 이는 임시직 선호경제(긱 이코노미·gig-economy)라고 불리는 체제에는 맞지 않아요. 그러니까 우버형 일자리, 0시간 계약, 자영업이 점차 더 많아지는 경제죠. 이런 일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고용된 것도 아니고 실업도 아닙니다. 별도의 정책으로 이들을 보호해야만 합니다. 현재 논의되는 정책 가운데 하나가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UBI)’입니다. 매달 소득을 지급하고 충분한 식량과 교통, 보금자리를 확보해주는 거죠. 개인의 통장으로 자동입금되고 현금인출기로 뽑아 쓰도록 합니다. 부정기적이거나 소득이 없을 때 보호작용을 하는 완충소득으로 제공하는 거예요. 물론 기존의 복지체계를 흔들지 않는 상황에서요.
안희경 = 2015년 스위스 주민투표에서 기본소득이 부결된 이유가 기존 혜택보다 오히려 적은 액수라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과연 국가예산을 그렇게 퍼주기로 써도 되느냐 하는 정서적 저항감이 더 크다고 봅니다.
페레스 = 누군가 가족 구성원이 받는 기본소득 액수보다 더 벌면 받았던 기본소득을 세금으로 돌려내는 겁니다. 자동으로 소득이 확인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죠. 기본소득으로 지급되는 액수는 인구 비례에 따라 자금을 확보하는 건데요. 이는 현재 실업보험에 쓰는 비용으로도 가능할 겁니다. 현재는 직원들 임금과 지역 사무소 유지 비용이 들어가잖아요. 시스템만 구축되면 관료행위를 거둬내는 방식에서도 비용 절감이 크죠. 게다가 빈곤으로 인해 일어나던 범죄, 여러 건강 문제들, 억울함과 다른 사회병폐에 대해 지불해야 했던 비용까지 절감할 수 있으니까요. 이는 또 청년들이 미래를 준비하도록 도울 수 있고 공부하며 안전하게 음악가나 예술가, 창업가로 자신들의 경험을 쌓아가도록 밀어줄 수 있어요. 기본소득으로 불평등을 없애지는 못할 테지만, 모든 시민들이 최소한의 인격을 지키며 살도록 최저를 올릴 수는 있습니다.
안희경 = 게으른 사람도 있긴 합니다.
페레스 = 19세기 초 영국의 구빈원에서 선호하던 논쟁이에요. 일터의 조건이 말할 수 없이 처참했음에도 같은 논리를 폈죠. 그때나 지금이나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속에는 게으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으른 부자를 막는 정책에 대해서는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안희경 = 최근에 한국에서는 택시 노동자들이 대규모 시위를 했습니다. IT 거대 기업이 우버처럼 제공하겠다고 하는 카풀 앱 서비스에 반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시스템은 공동체를 해체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봅니다.
페레스 = 새로운 방식이 나오면 그에 따라 자연도태, 자연폐기가 일어나죠. 그럼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새로운 방식에 이전에 있어온 노동자 보호장치를 적용하는 겁니다. 풀타임 고용, 유급휴일 인정, 건강보험, 연금 등을 어떻게 맞춰나가야 할지 모색해야죠. 그리고 혁신을 해야 합니다. 노동자와 그들의 자산을 보호할 공정한 새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도록요. 현재의 택시 운전자들이 자신이 소유하는 우버와 같은 시스템을 장착하는 겁니다. 새로운 환경을 다룰 수 있도록 새로운 협력 형태를 개발할 필요가 있어요. 기술에 저항하는 것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위로 뛰는 것과 같습니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기술이 사용되도록 앞서가야죠. 사회정치적인 결정을 통해서요. 선진국에서 ‘중류층의 일자리였던 우리의 제조업을 아시아에 빼앗겼다’고 말합니다. 글쎄요. 아시아로 가자마자 그 일터는 저임금 일자리가 됐습니다. 왜냐하면 일자리가 알아서 적절한 수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일자리의 가치를 결정하는 주체는 사회와 정치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선진세계에서 받는 높은 임금은 사회정치적 결정이었습니다.
안희경 = 지금 AI 기술, 공유경제를 표방하며 등장하는 거대 IT 기업의 행보를 보면 과연 이 성장은 또 어떤 소수를 위해 귀결될까 미심쩍어집니다.
페레스 = 모든 혁명은 거대한 전환의 잠재력을 가져왔고, 황금시대로 가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조건이 붙어요. 많은 이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때만 가능합니다. 히틀러, 스탈린 체제하에 있었던 성장과 케인스주의적 민주주의하에서 일어난 성장은 모두 똑같은 조건 아래 있었습니다. 대량생산 혁명을 일으키는 기술들이 세트를 이뤘죠. 하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하나는 순식간에 꺼졌고,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구조 속에서 다수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번영은 국가가 각각의 기술혁명을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달린 겁니다. 그리고 덫이 있어요. 각각의 혁명 시기, 기술혁신이 장착되는 몇십년은 금융에 의해서 지배됩니다. 이때 백만장자들의 세계가 탄생하는데, 관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혁명 성공 조건은 다수의 이익
금융이 자사주식 되사들이는
‘금융 카지노 행위’ 차단해야
안희경 = 금융위기 시절,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졌습니다. 그 속에서 중산층은 몰락했고요. 금융권력은 위험하게 움직입니다.
페레스 = 그랬죠. 설치기였던 1920년대와 1990년대 역시 불평등이 심화했고, 경제권력이 금융으로 넘어갔습니다. 보통, 붕괴가 오면 국가는 규제를 강화해 문제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장기적인 투자로 이끌어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규제만 하고 넘어가요. 엔론사태(2000년 미국 엔론사가 벌인 대규모 회계조작) 후 만들어진 사베인즈옥슬리 법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금융은 다시 구출됐어요. 전체 시스템에 위기가 와서 그렇다며 국가는 금융의 손실을 거의 보상해줬습니다. 사실은 금융의 실패였어요.
■ 소유 대신 공유, 임대·재생산업 고용 확대…자원 덜 쓰는 ‘스마트 그린 혁명’이 필요하죠
자산을 소유한 기간에 따라
자본증식 세금 다르게 내게 해야
예컨대, 하루에 만든 수익엔 90%
8년 뒤에는 3%만 부과하는 식
장기투자가 더 많은 이익 만들어
안희경 = 2008년에도 오바마 정부는 월스트리트 회생 지원을 선택했습니다. 위기를 자초한 기업과 금융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일은 한국에도 반복되는 관성입니다.
페레스 = 우리는 그동안 글로벌 금융 카지노가 자리 잡는 과정을 목격해왔습니다. 금융이 금융 속에 투자하고 거대 기업들이 실제 생산경제와 서비스, 기술과 연구·개발에 투자하기보다 자기네 주식을 되사들이는 일들요. 이로써 ‘격차 인플레이션’이 창조됐습니다. 임금의 가치와는 비교될 수 없이 자산가치가 증가했어요. 부자는 더 부자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산을 소유하고 있으니까요. 쟁점은 새로운 산업혁명 시기에 들어맞게 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겁니다. 대량생산 황금기에는 정부가 대중이 주택을 소유하고 대량구매하도록 바랐습니다. 미국 정부는 ‘연방저당권협회’를 만들어 은행이 임금노동자들에게 정부보조를 받는 주택대출을 하도록 허용했습니다. 또한 법적으로 투자은행으로부터 저축을 분리시켰죠. 이는 금융권이 정부가 보호하는 저축에 카지노 행위를 하지 못하게 차단한 거죠. 이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제 우리는 자산을 소유한 기간에 따라 자본증식 세금을 다르게 내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 금융은 빈번한 거래 속에서 추측성 투자가 무수히 이뤄지고 있어요. 24시간 단위 안에서 초를 다투며 팔고 삽니다. 이를 억제해야만 해요. 예를 들면 하루에 만들어낸 수익에는 자본증가에 따른 세금을 90% 부과하고, 점차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거죠. 5년 뒤에는 세금을 15%, 8년 뒤에는 3%만 부과하면 장기투자로 경제를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습니다. 장기투자가 보다 많은 이익을 만들어냅니다.
안희경 = 기득권을 가진 대부분의 보수세력은 시장에 국가가 관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페레스 = 매우 전형적인 태도죠. 금융이 조장하는 거품과 번영을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번영은 오직 실제 생산물과 생산성만이 만들어낼 수 있어요. 자본주의의 정당성은 소수의 부를 만드는 활동이 실질적으로 다수의 이익을 가져올 때 생깁니다. 시장은 혼자서 다수의 이익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비즈니스와 사회가 함께 번성할 수 있는 포지티브 섬 게임을 창조해야 하는 겁니다. 만약에 불황이 오고 노동자들이 일터를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달이 돌아오는 대출금을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차를 돌려줘야 하고 냉장고도 텔레비전도 심지어 집 열쇠까지 뺏기겠죠. 대혼돈이 몰아칠 겁니다. 사회구조가 작동하지 못해요. 이는 대량생산 사업가들뿐 아니라 은행과 개발업자들에게도 위협이죠. 이때 국가가 만든 실업보험이 바로 양쪽의 생명줄이 됩니다. 과세율 높은 세금도 마찬가지예요. 세계대전 이후 미국 공화당 아이젠하워 정부에서는 최상위층에 90% 세율을 부과했습니다.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과 부자들도 이 장치가 결국엔 자기들에게 혜택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덕에 대량소비와 노동계층의 주택구매가 증가할 거라는 걸요. 오늘날의 국가가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해야 할 일도 바로 이겁니다.
안희경 = 지구화된 경제 흐름 속에서 자본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국경을 넘어 다닙니다. 한국에서 최저임금 인상 요구가 나올 때면, 제조업은 보따리를 쌀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 반복됩니다. 물론 미국에서도 같은 논쟁 구도이고요.
페레스 = 제가 50여년 동안 경제사를 연구하면서 발견하지 못한 한 가지가 있는데요. 바로 강력한 국가적 중재 없이 앞선 나라를 따라잡거나 뚜렷하게 앞질러 나간 나라입니다. 일본의 통산성, 한국과 ‘아시아 세 호랑이’, 중국의 경우도 분명히 아니고요. 미국과 독일이 영국을 제치고 나갔을 때도 국가가 뒷받침했습니다. 강력한 세계 무역이 있던 3차 혁명 때에도 자국의 신생 산업들과 농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멈춘 정부는 없었습니다. 오직 영국에서, 지도자가 자유시장을 유지했어요. 그들의 제국적 금융권력에 의존해서요. 그리고 영국은 멈추지 못하는 추락으로 돌입했습니다. 지구화는 오늘날의 경제 흐름입니다. 주요 기업들은 실제로 지구적이죠. 하지만 각각의 나라나 지역은 보호가 필요하다면 반드시 그 요구에 부응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단, 반드시 피해야 할 점은 구태의 산업을 지키는 데 드는 모든 비용입니다. 지금 미국이 석탄산업에 들이는 비용 같은 것이죠.
현재 경제 상황에서 필요한 건
녹색산업 연구개발 투자와
지속 가능 건축·쓰레기 제로 순환
또 더 많은 권력을 지자체에 줘야
안희경 = 한국인들이 고려해야 할 정책 제안을 한다면요?
페레스 =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대부분의 나라가 고려해볼 수 있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가장 분명한 하나는 ‘녹색(산업)’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공적 목표를 세우거나 공공부문과 사부문이 어우러지도록 ‘작전’을 짜는 겁니다. 배터리부터 재생자원까지, 그리고 지속 가능한 건축부터 쓰레기 제로 순환 생산 과정까지요. 일반적인 정책으로는 더 많은 권력을 도시와 군, 읍 단위 지방자치단체에 주는 겁니다. 그들이 자원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까지 포함해서요. 지역적인 혜택뿐 아니라 외국 기업에 대해 조절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겁니다.
안희경 = ICT혁명의 중심은 수평적 소통 시스템에 있지 않나 여깁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가 보장돼야 변화를 주도할 수 있지 않을까요?
페레스 = 대량생산 속에서 사용되던 방식으로 강요하면 안됩니다. 중국은 위에서 결정해 전달하는 방식으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중국 중앙정부는 모호한 지시를 주면서 지역 정부들이 각기 다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도록 열어놨습니다. 민주주의를 통해 정부와 비즈니스, 또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제도적 혁신이 따라야겠죠. 지속 가능하고 적절한 주택이 자리 잡도록 정책을 추진할 필요도 있습니다. 청년들이 살 곳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운 시절입니다. 노년 세대에게도 쉽지 않죠. 호텔과 같은 작은 개인공간에 공유 부엌이나 공유 거실, 공유 회합장소를 결합한 주택을 공급하는 겁니다. 공공자산으로 혹은 개인소유로 임대할 수 있겠죠. 이제 더는 같은 도시, 나라에서 평생직업을 갖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유동성은 더 중요해질 거고요.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설비 또한 공유하는 겁니다. 대량생산 시대는 ‘계획적인 구닥다리 만들기’를 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소비자가 살아가는 동안 같은 제품을 여러 번 사게 했죠. 의도적으로 내구성 있는 제품에 내구성이 없도록 생산했습니다. 이제는 자원을 덜 쓰는 성장모델이 필요한데요. 없앴던 내구성을 다시 갖추고, 유지보수로 방향을 바꾸는 겁니다. 제품에 사용량과 사용처를 기록하는 칩을 장착하고, 필요한 부품은 3D프린터로 대체할 수 있도록요. 이러한 체제는 유지와 설치를 하는 일자리를 만들며 자원소비를 줄여낼 겁니다. 물품구매에 대해 간접소비세를 올리고 대여에 대해서는 줄이거나 면세를 할 수도 있어요. 어떤 것이나 더 쓸 수 있는 물건은 지자체 쓰레기 처리장에 못 버리도록 하고 판매자나 제조자가 이를 수거해 가도록 할 수 있습니다. 쓸모가 연장되도록요. EU는 이미 일정 비율의 전기와 전자제품에 대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 정책들은 모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 정보와 소통이 강해지도록 연결할 거예요.
안희경 = 개인의 열망이 일어 전환이 탄력받도록 하려면, 마음을 움직이도록 하는 너지(Nudge)정책 아이디어가 많아야겠는데요. 가장 강력한 당근은 역시 세금일까요?
페레스 = 정부의 혁신 의지를 보여주는 실질적인 표현은 세제개편이죠. 기술, 혁신, 투자와 소비 형식을 잡는 데 아마도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될 겁니다. 고용을 더 많이 하도록 또는 적어도 줄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페이롤 텍스(고용세)를 없애는 것도 방법입니다. 대신 로봇에 세금을 부과하는 거죠. 더불어 자사 주식 되사기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는 로봇을 피하자는 아이디어가 아니에요. AI 또는 다른 생산성 강화 기술들이 부를 더 많이 창출할수록 더 나은 재분배 가능성이 향상됩니다. 기술을 멈추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어요. 대신 부의 분배를 살펴야 합니다. 분배는 보통 세제에 기초하고 있죠. 국가와 지구 전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세금은 부가가치나 판매 대신 에너지, 원자재와 물류에 부과하는 겁니다. 서비스에 혁신을 북돋우고, 에너지와 자원 낭비를 줄이도록 할 겁니다. 생산품과 소비부문 모두에서 일어나고, 수입품 대신 내수 제품에 대한 간접적인 이익률을 불러올 거예요. 물류에서도 에너지 사용이 줄게 되고, 반면에 국내 고용은 늘겠죠. 수입에 대해서도 이성적으로 되고요.
안희경 = 세계화 질서에서 벗어나 생산과 소비 거리가 지역으로 다시 좁혀지면, 개별화된 개인들의 마음에도 공동체의 정이 흐를 수 있겠네요.
페레스 = 국가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리고 담대한 혁신자가 되어야 해요. 충분한 사회적 참여를 하도록요. 기동력 있는 조직을 바란다면 옛 관료주의 방식을 폐기해야 하죠. 더 많은 권력을 도시와 지자체들이 갖도록 개발하고, 웹 베이스 네트워크를 통해 대중과 호흡하는 겁니다. 그리고 시장은 다수의 이익을 위하는 테크놀로지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합시다. 오직 국가만이 할 수 있고 반드시 국가는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안희경 = 희망도 학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정보를 얻으니 좀 더 모색해보려는 의지가 나오는데요.
페레스 = 기본적으로 저는 당신이 만날 수 있는 가장 비관적인 낙관주의자일 겁니다. 저는 낙관적이에요. 왜냐하면 우리가 지속 가능한 황금시대를 가져올 수 있다는 확신이 있거든요. 우리가 최근의 기술적 잠재력을 이해하고 가꾸어낸다면요. 역사가 보여줬어요. 우리는 1930년대 경제대공황의 수렁에서 나와 전후 호황의 대대적인 안정을 만들었습니다. 이미 아주 많은 적절한 테크놀로지 실험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운용함에 있어서 긍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낼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비관적입니다. 왜냐하면 정치 지도자들이 지금까지 사회를 실패로 몰고 왔기 때문이에요. 정직하게 말하면 다수를 위한 실험들을 확대하고 ICT 황금기의 잠재력을 현실로 가져오는 데 필요한 위상과 투지를 지닌 어떠한 지도자도 제게 보이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의무제를 시행하려 할 때, 미국은 대대적인 논쟁이 일었다. 밥이고 학교고, 아이는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지금은 공기처럼 자리 잡은 제도가 상상이 구체화될 때 우리는 여건을 살피기도 전에 몸부림치며 거부했다. 지금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돈을 내고 학교에 다니는 것에 대해 미국인들은 의아해할 테지만,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국가 의료보험이 생기면 나라가 망한다며 의료보험과의 전쟁을 선포하겠다고 외치고 있다. 세계 제1의 부자 나라가 그러하다. 스리랑카는 대학까지 무상이다. 병원 또한. 정책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우리는 곰곰이 살펴야 한다.
■ 카를로타 페레스는…기술혁명 연구 권위자, 국제기구·정부에 자문
카를로타 페레스(80)는 베네수엘라계 영국 경제학자다. 기술혁명과 패러다임 전환으로부터 일어나는 변화와 기회에 대한 연구에 있어 세계적 권위자다. 학제 간 연구로도 유명하다. 현재도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며, 런던정경대학 방문교수, UCL런던대학교 공공성과 혁신을 위한 연구소 명예교수, 영국 서섹스대학교 SPRU과학기술정책연구소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또 에스토니아 탈린공과대학 기술개발과 교수를 겸한다.
페레스는 1980년대 초부터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있고, 현재까지 학계와 언론에서 빈번하게 재인용된다. 특히 저서 <기술 혁명과 금융 자본: 거품의 역동성과 황금기>는 한국은 물론 스페인어·러시아어·중국어 등으로 번역돼 오늘날의 기술과 제도적 변화 사이의 관계, 금융과 기술의 확산, 기술과 경제개발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공헌한다. 기술혁명의 여러 단계에 대한 그녀의 역사적 고찰은 미래 경향을 규정해 내는 강력한 렌즈로 이용되고 있다.
그는 지금도 주요 학계, 정부, 기업이 주도하는 포럼 및 심포지엄에 기조 연설자로 자주 초청받는다. 유럽연합(EU), 경제협렵개발기구(OECD), 세계은행,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등 많은 국제기구와 함께 일해왔으며, 국제적 경제단체나 여러 나라의 정부, 기업들에 다양한 자문을 해오고 있다. 조국인 베네수엘라에서 산업부 소속 기술개발 감독에 임명돼 1980년대 베네수엘라 첫 국가 벤처자본기금을 창조하기도 했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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