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닭 가축화 기원, 30년 논쟁
열대우림의 붉은야생닭이 야생 원조라는 데는 의문 여지 없어
다윈 “4천년 전 인더스 계곡이 기원 서아시아·중동 거쳐 8세기 유럽으로”
영·중 고생물학자 ‘북방 경로’ 주장 “동남아 가축 닭 중국 북부서 길러
무역로 비단길 따라 유럽으로 전파”
‘남방 가설’쪽 반격
“유적에서 나온 뼈 닭뼈인지 의문 중국 북부 기후도 닭치기에 부적합”
이후도 DNA 분석 등으로 티격태격
한반도 기록은 삼한시대부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거치며 사라져
가축유전자원센터 5개 품종 복원 지자체·민간 복원 포함하면 20여 종
» 현재 기르는 모든 닭의 조상은 기본적으로 동남아와 인도에 걸친 열대우림에 사는 붉은야생닭(적색야계)을 개량한 것이다. 이 야생닭 수컷(위)은 볏이 크고 광택이 있는 화려한 깃털을 지녔으며 번식기에 큰 소리로 운다. 봄철에 알을 낳는 암컷 야생닭(아래)은 수수한 보호색을 띤다. 한반도에는 2천년 전 가축화한 닭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재래닭은 그들의 후손이다. 제이슨 톰슨, 위키미디어 코먼스(위), 제이 해리슨, 위키미디어 코먼스(아래) 제공
세계 인구 8억명이 굶주리고 있다. 그러나 닭은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려 떼죽음할지언정 굶어 죽는 개체는 거의 없다. 세계에서 가축으로 기르는 닭은 210억 마리로 인류보다 3배나 많다. 우리나라에서 이번 조류인플루엔자 감염 사태로 17일까지 닭 2712만 마리가 도살 처분됐지만 국내에서 기르는 닭만도 1억5천만 마리에 이른다. 개체 수로만 보면, 닭은 지구에서 가장 성공한 척추동물의 하나다. 닭고기와 달걀은 인류의 가장 중요한 단백질원 중 하나이고, 대량생산되기 이전에도 종교, 의식, 문화에 중요한 동물이었다. 그렇다면 닭은 어떤 경로로 세계를 ‘정복’하게 됐을까.
» 지난해 12월 13일 오전 ‘국내 1호’ 동물복지농장인 충북 음성군 대소면 한 농장에서 살처분이 끝난 텅 빈 계사에 살처분을 피해 숨어 있던 닭 한마리가 계사 안에서 먹을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물을 마시고 있다. 바닥에는 닭의 털과 깨진 달걀 등이 널려 있다. 음성군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지역 반경 3킬로미터 안 위험 지역이라고 판단해 이 농장 닭 3만여마리를 살처분했다. 음성/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닭의 야생 원종은 붉은야생닭(적색야계)이다. 붉은야생닭은 인도 동부, 중국 남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열대우림에 서식한다. 큰 볏과 광택 있는 화려한 모습의 수컷은 번식기에 ‘꼬끼오’ 하고 울어 짝을 찾고 봄에 산란하는 암컷은 환경 속에 녹아드는 수수한 빛깔이고 볏도 작다. 가축 닭은 붉은야생닭을 기본으로 하고 다리 피부의 노란색을 물려준 인도 남부의 잿빛야생닭 등 다른 야생닭에서 기원했다. 닭이 선호하는 홰(횃대)에 오르기, 외진 둥지에 알 낳기, 모래목욕하기 등은 아직 남은 야생닭의 흔적이다.
»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 도리의 ‘바보숲 명상농원’에서 자연농법으로 토종닭을 기르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닭이 열대 정글의 야생닭에서 기원했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언제 어디서 가축화가 이뤄졌는지는 30년째 학계의 뜨거운 논란거리다. 찰스 다윈은 일찍이 닭이 4천년 전 인더스 계곡에서 붉은야생닭으로부터 기원했다고 설명했다. 인도에서 가축화한 닭을 서아시아와 중동을 거쳐 페니키아인이 기원전 8세기에 유럽으로 전파했다는 가설이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다.
게놈 분석 통해 복잡한 양상 확인
그러나 영국과 중국의 고생물학자는 1988년 방대한 고고학 자료를 바탕으로 “닭은 북쪽으로 갔나”라는 논문을 <고고학 저널>에 발표해 학계를 발칵 뒤집었다. 여기서 연구자들은 동남아에서 가축화한 닭을 중국 북부에서 대규모로 기른 뒤 주변 지역으로 퍼뜨렸다는 ‘북방 경로 가설’을 주장했다. 논문은 “기원전 6천년께 중국에서 확립된 닭은 나중에 한반도를 거쳐 기원전 300~기원후 300년 무렵 일본으로 전파됐다. 인도에서의 가축화는 기원전 2000년께 독립적으로 이뤄졌다”고 적었다. 연구자들은 또 닭의 확산 경로도 남쪽이 아닌 중앙아시아의 무역로인 비단길을 따라 유럽으로 전파됐다고 주장했다.
닭의 유전자를 분석해 닭의 분포와 확산에 관한 훨씬 해상도 높은 연구가 이어지면서 이제까지 알던 것보다 닭의 가축화가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띠었음도 분명해졌다. 2013년 먀오융왕 중국 윈난대 생물학자 등 중국 연구자들은 세계의 닭과 야생닭의 미토콘드리아 게놈을 자세히 분석해 과학저널 <유전>에 발표했는데, 닭의 가축화가 남아시아, 중국 남서부, 동남아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일어났음을 밝혔다.
그러나 북방가설에 대해서는 고고학적 증거인 뼈가 과연 닭 뼈인지 야생조류 뼈인지 의심스럽고 당시의 기후가 닭을 치기엔 적합지 않았다는 반론이 쏟아졌다. 비판에 두들겨 맞던 북방가설을 살려준 것은 2014년 권위 있는 미국 국립학술원 회보(PNAS)에 실린 샹하이 중국농업대 연구자 등 중국 학자들이 주도한 논문이었다. 이들은 허베이성 난좡터우 유적지 등에서 발굴된 ‘닭 뼈’ 39개에서 디엔에이를 추출해 분석한 결과 중국 북부에서 약 1만년 전 닭의 가축화가 이뤄졌다는 결론을 얻었다. 연구자들은 당시 북중국은 돼지와 개를 가축화한 곳인데다 기장 농사도 지어 닭을 가축으로 기르는 ‘복합영농’ 조건이 갖춰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북중국이 남아시아, 동남아와 함께 닭 가축화의 기원지이지만 확산은 독립적으로 이뤄졌다고 보았다.
“큰 강들 건너 이동 불가능” 논문도
인도 서부에서 중국 남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에 분포하는 붉은야생닭은 열대우림 숲속에 살며 좀처럼 먼거리를 이동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닭의 가축화가 황하 유역에서 기원했다는 북방가설은 최근 맹렬한 반격을 받고 있다. 에다 마사키 일본 홋카이도대 고고학자 등 일본과 중국 연구자들은 지난해 <고고학 저널>에 실린 논문에서 중국 신석기와 청동기 유적에서 다량 쏟아져 나온 닭 뼈는 형태적으로 꿩 뼈이며 심지어 개 뼈까지 들어 있는데 종 식별을 잘못한 ‘오동정’이었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고대 유전자 분석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 야생닭에서 멀리 변화했지만 아직 옛 형질은 남아 있는 재래닭. 위키미디어 코먼스
열대우림에 적응해 진화한 붉은야생닭이 중국 북부에서 살 수 있냐는 의문은 북방가설의 최대 취약점이다. 가설 주창자들은 홀로세 들어 기후가 온난해 유적지에서 열대 식물과 동물의 화석이 함께 출토된다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가 축적돼 홀로세 고기후의 양상이 드러나자 비판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요리스 페터스 독일 뮌헨대 동물학자 등은 <제4기학 리뷰> 최근호에서 “홀로세 중반 온난기에도 차고 건조한 날씨가 교대로 나타나 열대 야생닭은 살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글에 사는 야생닭은 이동능력이 매우 떨어진다. 논문은 강폭이 600m 정도인 타이 메콩강을 야생닭이 건너려 높은 나무에서 활공을 시도했지만 상당수가 익사하고 말았다는 1921년 보고도 소개했다. 이렇게 볼 때 “동남아에서 중국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 강들을 건너 중국 북부까지 야생닭이 이동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논문은 밝혔다.
연구자들은 닭과 농업의 결합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렇게 효과적인 복합영농이 5천년 뒤에야 인근 한반도로 전파됐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에 대해 북방가설 쪽의 뚜렷한 반론은 아직 없다. 그렇지만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과학은 그렇게 발전한다.
“종자 개발 국가사업 상업화 치중”
한반도에서 닭을 길렀다는 기록은 청동기 시대인 삼한시대부터 나타난다. <후한서> 동이열전에는 한반도의 특산물을 열거하면서 “꼬리가 5척이나 되는 닭이 있다”고 했고 <삼국지> 동이전에도 비슷한 언급이 있다.(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천마총에서 발굴된 단지에는 달걀 수십 개가 들어 있었고 신라의 여러 고분에서 닭 뼈가 나오기도 했다.
»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에 위치한 한 양계장의 닭. 이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정부가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 낸 동물유전자원 국가보고서를 보면, 닭은 약 2천년 전 동남아로부터 또는 중국 남부나 북부를 거쳐 전파되었다. 이런 추정은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학교 전북대 동물생명공학과 교수 등이 과학저널 <플로스원>에 실은 논문에서 재래닭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체를 해독한 결과 중국 이외의 경로를 포함한 다양한 모계 기원을 지니고 있음이 드러났다. 일본의 재래닭에 대한 유전자 연구에서도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도입됐음이 입증됐다.
그러나 이런 오랜 기원을 지닌 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사라졌고 이후 신품종으로 대체됐다. 1990년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재래닭 복원이 이뤄졌다. 연성흠 국립축산과학원 가축유전자원센터 소장은 “깃털 색깔을 기준으로 적갈색, 황갈색, 회색, 흑색 등 5가지 품종을 복원해 혈통을 유지하고 있다”며 “각 지자체와 민간이 복원한 것까지 포함하면 긴꼬리닭 등 모두 20여 품종에 이른다”고 말했다.
» 하림 닭 공장. 정용일 기자
닭은 정부가 2012년부터 10년 동안 4911억원을 들여 추진하고 있는 종자 개발 국가사업인 ‘골든 시드 프로젝트’에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런 연구가 지나치게 실용화·상업화에 치중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학교 교수는 “진화와 분류 등 기초연구도 필요한데 연구자와 당국의 이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예컨대, 기원을 알아야 예상되는 질병을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17. 1.18 한겨레 조홍섭 물바람숲
별일 없이 산다 한겨레21 1146호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치킨 시킬까? 퇴근길, 같이 사는 사람에게 저녁을 건너뛰어 출출하다고 하니 익숙한 듯 답변이 왔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퍼진 세계에서 나뉜 세계를 본다. 떼죽음을 당하는 한쪽과 별일 없이 돌아가는 대부분의 세계가 있다. 사상 최악의 AI 사태, 부끄럽게도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달걀 가격이 전에 없이 올라 조금 불편해졌다는 것 빼고는. 지금 이 순간 닭들은 영문도 모르고 숨이 붙은 채 거대한 구덩이 속에 던져지겠지만, 우리는 평소처럼 전화 한 통에 저렴한 가격으로 뜨끈하게 튀긴 닭을 얻을 수 있다.
분리된 지옥
그들의 지옥과 우리의 일상은 분리돼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중순 AI 위기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상향 조정했지만, AI는 꺾일 기세 없이 제주까지 번졌다. 살처분된 가금류는 3천만 마리를 넘어섰다. 예방적 차원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죽음을 당한 닭도 수백만 마리다.
끔찍한 지옥이 반복되는 가운데 인간의 세계는 평온하다. 농장의 닭들이 포대에 담겨 꺽꺽거리며 땅속에 묻히는 장면은 TV 채널만 돌리면 언제든 보지 않을 수 있다. 전화 한 통으로 치킨을 시켜 먹고, 마트 진열대에 깔끔하게 놓인 고기를 집어들면서 이들의 생산과정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도시인에게 축산 농가와 공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득히 먼 세계의 것만 같다. AI 원인으로 지적되는 공장식 축산의 잔혹성도 이 과정에서 함께 외면된다.
그러다보니 이 아비규환 속에 질문은 이런 것일 수밖에 없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AI’ ‘치킨’이라고 치면 ‘AI, 치킨 먹어도 되나요’라는 문장이 자동 완성되고, ‘굽네치킨 지금 시키려고 하는데요, AI 괜찮아요? 급해요’. 식욕의 간절함과 공포의 급박함이 뒤섞인 질문이 둥둥 떠다닌다.
정부의 대안은 어떤가. 올겨울 최악의 사태를 마주한 정부가 제시한 유일하고 새로웠던 대안은 해외에서 달걀을 수입해 오는 거였다. 값싸고 영양가 높은 식재료 공급 벨트의 차질을 줄이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렇게 한숨 돌리고 나면 더 잔인한 지옥이 다시 반복될 것이다. 유례없는 전파 속도로 타격을 입은 피해 농가는 내년에도 위기에 노출될 수 있고, 인체 감염 공포에 떨었던 시민들은 똑같은 걱정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국고도 한정 없이 샌다. 이번 AI 사태에 투입된 세금이 2조원이라고 했는데, 이 지옥에 우리는 또 얼마를 퍼부어야 할까.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그의 첫 논픽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일관된 태도를 “탐욕과 지배”라고 지적했다. 최소한의 예의와 윤리 없이 생명을 상품으로 대하는 태도는 우리가 그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그런 거대한 탐욕의 트랙을 벗어나는 실험을 한 이가 있었다. 미국의 요리평론가 매니 하워드는 도시 한가운데 자신의 집 뒷마당을 갈아엎어 밭을 일구고 가축을 길렀다. 고기를 먹으려면 집 뒷마당에서 키우는 것을 직접 도축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러자 반짝이는 세계에 가려져 있던 비릿한 시간이 드러났다. 닭의 목을 비틀며 마지막 비명을 들어야 했고, 동물을 잡기 위해 칼을 갈면서 번뇌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는 이 시간을 통해 농·축산이 산업화·대형화하면서 발생한 ‘가려진 세계’의 거대한 막을 걷어치우는 과정을 경험했다.
그들은 물건이 아니다
AI 사태를 맞아 농·축산의 대형화를 비판하며, 미국의 괴짜 요리평론가가 그랬듯 먹고 사는 일을 각자도생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조각난 고기가 만들어지는 분절된 노동의 세계, 가려진 시스템은 우리가 근본적 질문을 던지지 못하도록 한다. 동물을 포대에 담아 던져버리는 정부의 대처도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거기엔 병든 동물은 폐기해야 할 ‘물건’이라는 시선이 자연스레 녹아 있다.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공생의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시작은 그들을 물건으로 보지 않는 데서 출발할 것이다
암컷이어서 슬픈 동물들…한국은 두고만 볼 건가?
평생 ‘A4 한장의 케이지’ 살면서 날개 한번 펴보지 않은 닭들
세계적 기업은 ‘케이지 프리' 선언하는데, 한국 기업은 뭐하나
공장식 밀집 닭장인 ‘배터리 케이지’에서 사육되는 산란계들. 세계적 식품기업은 ‘케이지 프리’를 선언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처음 농장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머리카락이 거꾸로 서는 듯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충격을 받았다. 일렬로 칸칸이 늘어선 철제 틀은 암퇘지의 몸만 겨우 들어갈 수 있게 만든 맞춤형 박스였고, 그 안에 갇혀 극단의 무료함만 허용된 암퇘지들은 살아있는 자체가 정교하게 세팅된 ‘기계적 작동’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충격은 암퇘지에서 끝나지 않았다. 암퇘지가 한 마리당 한 칸의 영역을 부여받은 것은 그나마 축복이었다. 알을 낳는 암탉은 그보다 더했다. A4 용지 한 장도 채 되지 않는 비좁은 케이지에 감금된 채 동료 암탉과 면적 차지를 위한 생존 투쟁을 하며 살고 있었다. 날개 있는 동물이건만 시원하게 날개를 펴본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그런 가운데 알 낳는 소임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암컷으로 태어난 원죄라는 표현보다 더 적절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부당함에 대항할 능력을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존재들이었다.
‘인간 동물’ 사회는 물리적, 정신적 억압과 침해를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기초적인 도덕룰이다. 즉 ‘느끼는 능력이 있는 존재’에 대한 당연한 권리다. 그런데 느끼는 능력이 있는 존재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그동안은 우리 인간 동물만이 가지는 가치라고 생각해왔다. 아니, 사실 생각이랄 것도 없이 인간 동물이 아닌 ‘비인간 동물’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니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도 허락지 않는 공간에 가두어놓고 새끼나 알을 찍어 내놓는 기계로 취급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런 사실들을 알게 된 인간 동물의 마음은 편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인간 동물의 생명 감수성은 느끼는 존재 모두에 대한 자각을 요구한다. 또한 생산성 지향의 산업은 그에 상응하는 병폐가 생긴다. 인수공통 전염병의 발생, 식품안전을 위협하는 요인 등 인간 동물에게 위협이 다가왔다. 우리도 조류 인플루엔자, 구제역, 살충제 달걀 파동 등 그 경험을 하는 중이다. 자성의 요구가 발생한다. 서구사회가 동물복지를 일찍이 수용한 이유 중 하나다. 중요한 것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이다.
케이지 프리를 선언한 미국 기업들.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체코 프라하에서 ‘오픈 윙 얼라이언스’(Open Wing Alliance) 연례회의가 개최됐다. 올해 39개국에서 온 40여개 단체가 모인 이 회의는 암탉의 케이지 사육 종식을 위한 국제연대체다. 가입 단체들은 각 나라의 사회 특성을 고려하여 운동방식을 기획하며 실패를 공유하고 성공을 위한 목표를 설정해 서로의 역량 강화와 연대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전략을 논의했다.
배터리 케이지(공장식 밀집 닭장) 사육 중단을 고민하고 있는 우리와 달리 서구의 단체들은 ‘엔리치트 케이지’(Enriched cage)를 포함한 모든 케이지 종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은 배터리 케이지가 금지돼 있으나 엔리치트 케이지 사육이 남아 있다. 이 케이지는 닭 고유의 본능인 횃대 오르기 등을 충족시킬 수 있어 배터리 케이지보다 개선된 것이다. 그러나 닭의 움직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케이지 특성상 그 조차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까지 갔고, 독일은 케이지 자체가 거의 없다.
유럽연합이 규정으로써 배터리 케이지를 금지한 것과 달리 미국의 기업들은 자사의 영업과 마케팅 차원에서 ‘케이지 프리’를 선택했다. 코스트코, 맥도날드 등 300여개의 유통업체와 외식업체, 생산업체들은 2016년에서 2025년을 목표로 케이지 달걀을 판매하지 않거나 음식에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이런 국제적 흐름을 한국 기업들은 언제까지 강 건너 불 보듯 할 것인지 개탄스럽다. 우여곡절 끝에 올 8월부터 달걀의 난각에 사육환경 표시제가 시행된다. 난각 표시만으로는 부족하니 포장재에 표시해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2017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조사한 국민인식 조사에서는 국민의 85.3%가 농장동물 복지 향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70.1%는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 축산물을 직접 구입할 의향까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2년(36.4%)에서 5년 사이 무려 33.7%포인트가 상승한 것이다.
여론조사와 장바구니의 현실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런 꾸준한 인식 변화는 장바구니의 변화도 예고하는 것이다. 유통 또는 식품 기업들이 국제적 동향을 남의 일로만 여기지 않고 향후 소비자의 변화를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인지 기업 철학과 운영에 반영해야 할 때다./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한겨레 16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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