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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칼럼 기고

새만금 말머리를 돌려야 산다

by 이성근 2013. 6. 16.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환경연합 박종학

새만금 말머리를 돌려야 산다

 

며칠전 새만금 현장으로 환경운동연합 전국 54개 조직의 임원과 활동가들이 모였다. 가는 길에 개그맨 김형곤씨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을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들었다. 사인은 심근경색이고 응급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십중팔구 사망한다고 했다. 비대해진 육체가 야기하는 위험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고인은 부단히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그랬다. 부산을 출발하여 남해고속국도와 호남고속국도를 이용하여 숙박지 부안에 도착하는 동안 차창으로 보았던 남도의 갯가와 내륙의 산야는 몸살을 넘어 중병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그 길은 눈길을 사로잡던 아름답기 그지없던 경관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제 모습을 온전히 간직한 곳이 없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사나운 몰골로 만신창이가 된 모습을 우리는 잘사는 것에 대한 지표로 생각하고 있다. 가슴 조이는 압박이 아닐 수 없다. 국토의 심근경색이다. 지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을 우리는 목도할 수밖에 없다. 그 적나라한 현장이 새만금이다. 그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든가. 명백한 거짓과 터무니없는 억지, 뻔뻔스러운 말 바꾸기가 식은 죽 먹듯 진행되면서 새만금은 시나브로 죽임을 당해왔다. 국내외의 저항과 반대가 있었지만 철저히 무시당했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진실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래서 용서 못할 일이 있다.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이다. 다시말해  앞에서 저질러 놓은 일이고, 이미 많은 돈이 들어갔기에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이다. 무릇 모든 일이란 것이 설령 앞에서 잘못 판단하고 그르친 일일지라도 뒤에서는 바로잡고 고치는 것이 역사가 아니든가. 그런데 바로잡지는 못할망정 한술 더 떠 아예 숨통을 끊어버리고자 작심한 것이 참여를 내건 노무현정부였다.

 

슬픈 일은 사법부의 처신이요 언론의 이중성이다. 법의 목적은 객관적 사실과 과학적 근거를 기초로 한 진리와 정의의 실현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국토 개발광풍에 ‘저울’을 잃어버리고 헛짚고 있다. 약속이나 한 듯 대부분의 환경사안에 대한 판결이 기각으로 점철되었다.

 

그중에는 고속철도 금정산 관통에 따른 두 번 째 공사중지 가처분 소송도 기각 당했다. 일주일 전이었다. 재판부는 터널관통으로 수맥이 차단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또 대책이 있다는 개발집단의 말에 의거, 기각의 사유를 밝혔다. 참으로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정말 물길이 사라져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면 재판부는 판결을 되돌릴 것인가. 흐르던 것이 졸지에 막혀 버리면 죽는다는 것이 상식이다. 대법원 재판부는 그 막힘을 염두해 두지 않았다. 그로 인해 야기될 결과는 일본의 이사하야를 비롯 시화호와 화옹호. 낙동강, 영산강, 금강이 웅변해주고 있음에도 고려되지 못했다.

 

그런점에서 본다면 재판부가 의지한 판결의 토대는 설득력이 없는 편향된 억지란 것이다. 오히려 대법원은 사업을 중단해야 할 명백한 잘못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기막힌 사실은 대부분의 환경소송이 비슷비슷한 과정과 결론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대세론의 함정이다. 정부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투입된 시간과 재원이 얼마고, 몇 퍼센트의 공정이 진척되어, 되돌리기엔 너무 출혈이 심하다는 것이다.

 

이제 단지 시작일 뿐인데, 그래서 얼마든지 바꿀 여지가 있고 모두가 살 수 있는 방안이 있음에도 마치 마지막 마무리를 환경단체들이 다리를 건다는 식으로 매도하고 있다, 그리하여 환경단체가 성장의 적인양 한통속이 되어 이구동성으로 역설하는 개발집단의 이해는 구역질날 정도로 노골적이다. 그들의 이해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유포된 거짓들을, 재판부와 언론은 검증한 적이 없다. 대신 그들 역시 결과적으로 새만금과 금정산을 죽이는데 일익을 담당했을 뿐이다.

 

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살기 위해서는 지금 말머리를 돌려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다만 이대로가 지속되고 고착화된다면 우리는 말(馬)조차 잃을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오늘의 이 판결과 동조의 무책임한 말(言)을 무엇이라 규정할 것인가, 어쩔 수 없었다고 할 것인가. 그런 시대였다고 얼버무릴 것인가. 군부독재 시절,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벗는 대신 이제 자본의 충실한 대변인으로 전락한 이 땅의 언론과 사법부의 처신이 훗날 수치로 기억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새만금과 금정산은 이 사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기억 할 것이다  06.3.18


 

노래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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