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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칼럼 기고

【이 한권의 책】이은성「소설 동의보감」

by 이성근 2013. 6. 16.

【이 한권의 책】이은성「소설 동의보감」


발문을 쓴 사람이 `미완의 걸작'이라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쉽게 동의하기는 했지만 `소설 동의보감'을 처음 접했던 것은 이 책이 무려 31쇄나 발행된후였다. 자자한 소문이 틀리지 않았다. 상.중.하권을 연달아 밤새워 읽었다.


그리고 마음 새겨 둘 글밑으로 붉은 줄을 그어가며 다시 읽었다. 세 번째로 줄친 글들을 공책에 옮겨 적으며 `동의보감'을 읽었다. 실로 감동 그 자체였다.


서설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조선 중엽의 두꺼운 신분차별 속에서 천첩의 자식이라는 신분적 굴레에도 불구하고 정일품 보국숭록대부에 양평군이라는 작호까지 받았던 인물로서 무덤 속으로부터 생명을 끌어내고 이 나라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까지 사랑했던 허준의 일대기다.


페놀사태가 터지고 부정한 시국에 항의하는 꽃다운 젊은이들의 자살과 분신이 끝이 없는 양 이어지던 시절, `소설 동의보감'은 집회와 가투에서 매캐한 최루가스로 찌들린 심신을 술로 씻어내던 뒤풀이에서 언제나 등장하리만큼 많은 것들을 깨우쳐 주었다.


소설은 허준이 스승 유의태에게 제자로 입문하여 배움하는 마당에서부터 시작된다. 7년의 산생활에서 터득되는 도라지 한 뿌리에 대한 외경과 정성, 그리고 서른 세가지나 되는 물의 가지 수를 열거하며 물의 소중함을 질타하는 유의태의 차분한 언질은 BOD니 COD가 어떻고 PPM이 어떻니 따위로 환경운동을 한답시고 설치고 다니던 내게 생명에 대해 새로운 개안을 하게끔 했다. 탄식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맛본 대목이었다.


어찌 이뿐이겠는가. 스승 유의태를 대신하여 창녕 성대감집 반신불구의 노마님을 온전하게 되돌려 놓기까지의 그 팽팽한 패기와 신심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삶의 가치와 덕목에 대해 준열한 가르침을 줬다.


그리하여 의원이 의원이고자 하는 그 심지와 품성을 `소설 동의보감'은 오늘에 되비쳐 말하고 있다. 곧 사람이면 사람답게 살아 라는 천.지.인 합일의 뜻을 깨쳐 있는 자리를 되돌아 보게 한다.


또 그것은 간살 떨며 교묘히 살아가는 인간사의 너저분한 욕망에 대해서도 경계한다.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옳은 일에 대한 결연한 자세와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되묻고 있다. 의원으로서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손목이 시퍼런 작두날 아래서도 태연했던 것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믿음과 정신 때문이었고, 그러한 정신들은 고통받는 민초들에 대한 헌신에서도 드러난다.

<1997.4.15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