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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괜찮은 詩

난무하는 문학상, 영예의 이름인가 검은 수렁인가

by 이성근 2020. 12. 9.

이육사·김동인 기리는 문학상, 친일과 민족의 자존 사이 고민해야

 

미당문학상기획칼럼] 12장 미당 서정주 그는 을마나 진실한 시인이었나

친일문인기념상논란 제32, 순수의 정체

야비한 자연주의, 그 친일논리의 허약한 본질 - 김동인의 경우.

결실의 가을이 저물어가고 있다. 농부들은 한해의 결실을 들에서 과수원에서 거둬들이고, 강가에 선 은행나무들은 샛노란 결실을 길손들에게 나눠주며 긴 겨울을 넘길 채비를 하고 있다. 시를 쓰는 사람들 역시 한해의 결실에 바쁜 모습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잡지사 우편함에 쌓이는 시집들을 보면, 제아무리 코로나19가 음험한 병마로 위협한다 하더라도 시인들의 살아있는 정신을 억누를 수는 없는 모양이다.

 

시인, 소설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펴내는 작품집과 함께 문단의 큰 결실 가운데 하나는 가을 들어 곳곳에서 들려오는 각종 문학상 수상 소식일 것이다. 축하하는 마음과 부러움이 뒤섞인 반응들이 SNS 등을 통하여 퍼지는 걸 보면, 새삼 한 해가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인다.

 

그런데 올해에는 각종 문학상 주변을 놓고 설왕설래하는 걸 보면서 왠지 축하와 부러움에 머물러서는 안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들어서는 지방자치단체들이 각종 문학상 만들기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상이 그 본질과는 관계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문학상을 만들어 시행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우선 이를 통해 해당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고 문학상 제정의 원점이 되는 문인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보려는 의도가 깃들어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들 문학상의 제정 시행이 손쉽고도 비용이 적게 드는 지역 홍보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문학상 급증 촉발한 지자체들

요즈음은 지자체마다 도서관 등을 건립하는 데 수백억 원씩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정작 거기에 비치할 도서 구입 예산은 조족지혈로 편성하여 문제가 되고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심지어 우수문학 도서의 경우에도, 지역 도서관들에서 수준 높은 이론서나 어려운 시집보다 누구나 읽기 쉬운 수필류의 책을 선호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리고 출판사마다 각지의 도서관에서 도서 기증을 요청하는 편지들이 쇄도하기도 한다는데, 다 본말이 전도된 일이다.

 

지자체들이 문학상 제정을 손쉽게 생각하고 그 시행에 신중을 기하지 않는 것도 이 같은 잘못된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게 아닌가 한다. 실제로 남쪽의 한 지방자치 단체에서는 그 지역 출신의 모 시인이 생전에 그를 내세운 문학상을 제정 시행하더니, 불과 3회째 시상을 한 후 지역 문인들로부터 각종 민원이 끊이지 않자 급기야 상을 폐지하기도 하였다. 이에는 그 지자체의 섣부른 행정도 문제지만, 해당 지역 출신 문인들이 자신들에게는 상이 돌아오지 않고 외지인들에게만 돌아간다며 민원을 제기한 것이 큰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문인들의 속 좁은 처신도 문학상의 건전한 발전에 한 저해 요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면 한국 문학이 수백 개의 문학상을 제정하여 시행할 만큼 질적으로 우수하며, 그 기반이 탄탄한가 자문해 보면 그렇지 못하다는 답이 훨씬 더 많을 것은 자명하다. 상은 그것이 표방하는 바와 내용이 얼마나 일치하는가가 가장 큰 기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970년대 모 출판사에서 제정한 '만해 문학상'의 첫 수상자 배출 경위는 눈여겨볼 만하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아마 1974년인가 이 상이 제정되었는데, 당시 박정희 유신정권 아래에서 이 상에 값할 만한 수상자들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제정 이후 몇 년 동안 수상자를 내지 못한 걸로 알고 있다. 엄혹한 시절 만해의 정신에 부끄럽지 않게 문학 행위를 하고 있는 문인을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의 경우지만, 1964년 장 폴 사르트르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 그는 1964년 수상자로 선정되자 모든 공적인 훈장과 명예를 거부한다는 원칙을 밝히며 수상을 거절했다. 작가는 어떤 기관이나 제도에 편입되면 안 된다는 소신을 지킨 것이었다. 아울러 "이런 상은 억압받는 이들의 아픔을 함께해 온 파블로 네루다나 러시아의 솔로호프에게 먼저 돌아가야 한다"라고 천명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문학적 명성이 전 지구촌에 퍼짐은 물론 요즘 화폐 가치로 13억 원에 달하는 상금이 걸린 상을 거부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는 당시 스웨덴의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 상태에서 노벨상은 객관적으로 서방 블럭 작가나 동방의 반역자들을 위한 영예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노벨상이 중남미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의 한 사람인 '파블르 네루다'나 충분한 자격이 있는 '루이 아라공'에게 주어지지 않음이 그 예다. 또 노벨문학상이 솔로호프에게 수여되기 전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에게 수여되었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소련 작품으로서 노벨상을 탄 것은 단지 해외에서 출판되고 소련에서는 금지된 작품인 <닥터 지바고>뿐이었는데 이는 균형이 잡히지 못한 시상 방법이었다."

 

모름지기 깨어 있는 작가라면, 모든 종교적 인종적 편견을 멀리할뿐더러 자신 말고도 더 문학적 사명과 작품의 진정성에 충만한 사람을 돌아보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이 이만한 기개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표리부동한 문학상의 속출

모두에 밝힌 대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문학상은 수백 개에 달한다. 이 같은 상을 주관하는 측은 하나같이 때로는 숭고하고 거창한 상의 제정 취지를 내걸고 있지만, 문제는 그 제정 취지와 어긋나는 상이 적지 않다는 데 있다. 이런 양상은 상의 제정에 따르는 재정 여건이 열악한 문학 전문지 등이 제정한 문학상보다 예산 여건이 충분한 지자체나 대형 언론사에서 제정한 상들 쪽에서 빈번하게 드러나고 있다.

 

올해 들어 문단 내외에서 적잖은 물의를 일으킨 '이육사 시문학상'은 일그러진 문학상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에서 나온 성명서에 따르면 '2020년 제17회 이육사 시문학상은 친일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인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한 문학평론가가 심사위원이었고, 대표적인 친일문학상인 미당문학상 후보를 두 차례나 수락했을 뿐만 아니라 전두환 취임 때 찬양시를 쓴 시인을 기리는 편운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 수상자로 선정'되어 수상하였다. 주최 측은 좋은 시를 쓴 시인을 선정하여 시상한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과연 그 같은 반응은 변명인가 아니면 괴변인가.

 

이 상 제정의 정신적 근간이 되고 있는 이육사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일제 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이 아닌가. 경북 안동(安東) 출생인 그는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대구 교남(嶠南)학교에서 수학하였지만, 일제의 폭압 정치로 고향에서 살 수 없어 중국 본토와 만주 등지를 떠돌며 독립운동을 벌이다 절명한 사람이다. 그는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고, 1927년 귀국했으나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때의 수인번호 2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출옥 후 1937년 윤곤강(尹崑崗김광균(金光均)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子午線)>을 발간, 그 무렵 유명한 <청포도(靑葡萄)>를 비롯하여 <교목(喬木)>, <절정(絶頂)>, <광야(曠野)> 등을 발표했다. 1943년 중국으로 갔다가 귀국, 이해 6월에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한 일제하 가장 실천적인 삶을 꾸린 지사가 아닌가. 그런 분을 기리는 문학상에 친일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사람들이 심사위원을 하고, 미당문학상 후보에 여러 번 이름을 올린 사람이 기왕의 여러 차례 수상에 이어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아 또다시 상을 타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육사 시문학상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이 불거지자, "'이육사 문학관' 측은 '이육사 시문학상' 운영의 주체가 아니다. 상의 운영은 '이육사 시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주관하며, 1회부터 제17회에 이르는 지금까지, 이 위원회는 '이육사시문학상' 시행 기관인 'TBC문화재단'에서 독자적으로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이육사 시문학상'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그에 따라 문학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것은 이 운영위원회와 심사위원회의 고유한 권한이다"라고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항일 투사 시인 이육사의 정신을 기리는 이육사 문학관이 시상식 공간을 제공하고, 상의 운영에 대하여 바른말을 아꼈다고 해서 책임을 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성명서는 "그동안 일부 '이육사 시문학상' 수상자나 심사자들의 면면을 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들의 상당수가 미당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등 친일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을 수상하였거나 심사자였다. 친일문학상 후보자도 상당했고, 박정희를 찬양한 시인도 있었다. 그 이름을 일일이 거명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매우 심각하기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친일문학상 수상자나 심사자가 '이육사 시문학상'뿐만 아니라 이육사문학관에서 시행하는 각종 행사에도 대거 초대되었다. 학술토론회, 낭독회, 문학학교, 문학강연회 등의 행사에 초대되어 어린 학생을 비롯해 수많은 독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상을 제정한 지방의 유력 언론사에만 책임을 돌릴 게 아니라, 작게는 한국 문단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 전체가 '이육사'라는 거대한 정신의 거봉을 앞에 내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이다.

 

친일과 민족의 자존 사이에서

최근 언론에 두 문학상의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두 문학상의 수상자는 놀랍게도 같은 사람이다. 보도에 따르면, 김숨 작가는 장편소설 <떠도는 땅>으로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제51회 동인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데 이어 <부산일보>가 선정하는 제37회 요산 김정한문학상 수상자에도 이름을 올려 문단 내외에 물의를 일으켰다.

 

김동인은 일제가 패망하던 날 아침에도 조선총독부를 찾아가 '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 구성을 자신에게 일임해 주면, 일왕에게 백배의 충성할 것을 맹세했다고 한다. 그는 일제 기관지 매일신보에 내선일체와 황민화를 주장하는 글을 여러 차례 기고했고 일제의 징병에 조선 청년들이 자원할 것을 독려하는 글도 실었다. 그는 창씨개명과 함께 '황군 위문 작가단' 활동도 한 대표적인 훼절 친일지식인이다. 반면에 요산 김정한 선생은 일제 치하에서도 일체 친일 행위를 하지 않았음은 물론 이승만에서 박정희의 유신 독재에 이르는 시절 불굴의 정신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부산을 올곧게 지킨 지사형 작가가 아닌가. 특히 김정한 선생의 작품들 곳곳에는 일제에 항거한 기층 민중의 뼈아픈 삶이 아로새겨져 있는데, 친일의 거두를 기리는 상을 받은 사람이 다시 비교도 하기 어려운 상을 수상하다니 문인 정신이라곤 털끝도 찾아볼 수 없는 치졸한 처신이다.

 

두 상의 수상자 소설가 김숨은 여성을 유린한 반인륜적 범죄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작품화한 보기 드문 작가라는 점에서 납득이 어렵다. 김숨은 <조선일보> 수상 인터뷰에서 <떠도는 땅>의 집필 동기에 대해 "역사에 대한 특별한 의무감 때문이라기보다는 작가로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위안부 할머니나 강제이주열차를 탄 우리 동포 모두 일제의 가증스러운 탄압으로 떠도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었다. 피나는 역사를 놓치지 않는 김 작가의 주목에 놀라면서도, 그가 그 작품으로 친일문인을 기리는 문학상 수상을 수락했다는 점에 우리는 더욱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동인 문학상은 보수 진영에 선 대표적인 언론사인 <조선일보>가 시상하는 상이면서, 거액의 상금을 내 거는 등 자칭 가장 권위 있는 상임을 자부한다고 한다. 일제 하 <조선일보>가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연재하고 민족지의 역할을 한 것을 생각하면, 이 신문사는 하루 빨리 친일의 거두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 폐지에 나서야 할 것이다. 문인들 또한 언론의 영향력과 상금의 유혹에서 벗어나 올곧은 비판 정신을 되찾아야 마땅하다.

 

몇 해 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의 현현을 내건 '5.18문학상'에 그 정신과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 시작 활동을 해온 시인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가, 문단은 물론 사회 각계에서 비판 여론이 크게 인 적이 있다. 당시에는 수상자로 선정된 사람이 망설임 없이 수상을 포기하면서 겨우 봉합된 적이 있다. 이 상의 경우에는 그 뒤에도 뚜렷한 궤적을 긋지 못한 채 작품성을 평가받은 이들이 수상자로 선정 시상되고 있다. 하지만 모두에 밝혔듯 만해나 5.18의 경우에는 그 이름에 값하는 문학 행위를 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따라서 지자체나 유력 단체 및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상을 만들고 뚜렷한 궤적을 그리지 못한 채 실망을 안겨주기보다, 지금부터라도 진지하게 그 취지를 살리는 길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1960년대부터 박정희 군사정권의 독재에 온몸으로 저항해온 대표적인 시인 가운데 하나인 조태일 선생을 기리는 문학상의 경우에도, 상의 취지와 어긋나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최근 우리 문단에서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고 있는 문인들을 두고도 뜻있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어떤 문인은 불과 몇 년 사이에 10여 개의 문학상을 거머쥐는 등 양식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 적지 않다. 특히 수상자로 선정된 상 사이에 제정 취지나 정신의 공통성을 찾기 어려운 마당에, 이른바 유명세에 편승하여 특정 문인들에게 상이 계속 주어지고 있고 해당 문인들 또한 아무런 자기 정제나 작품성의 향상 없이 상을 연거푸 받는 풍토는 매우 큰 문제이다.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한국 문학이 국제 무대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가히 전성시대라 할 만큼 범람하고 있는 문학상의 남발도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차제에 한 문학상을 수상한 이들이 다음 상에 도전하려면 객관적으로 인정할 만한 작품성의 향상 등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묵시적 약속도 필요하리라 본다. 나아가 제도적으로 문학상을 탄 문인들에게는 적어도 5년 이내에 다른 상을 수여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약속도 필요한 시점이다.

 

아무튼 문학상이 개인의 영예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한국 문단 전체에 신선한 자극을 선사하면서 우리 문학을 한 단계 비약시키는 지렛대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정 취지에 맞게 문학상이 운영됨은 물론, 작품성과 공정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문인 정신이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박몽구 시인, 순천향대 객원교수 프레시안

 

이육사 시문학상, “친일문인기념상 수상자가 심사 부적절문학계 성명서 발표

- 조국 해방을 노래한 이육사 시인을 기리는 상, 친일문인기념 문학상 수상자 연루 논란

-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연구회,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함께해

올해로 17년을 맞이한 이육사 시문학상이 때아닌 친일논란에 휩싸였다. ‘광야로 알려진 이육사 시인은 일제강점기 17번이나 투옥되며 조국 해방을 위해 애써온 시인이지만, 반대로 심사자나 수상자는 친일문인기념상에 이름을 올린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이육사 시문학상 심사위원 중 하나(구모룡 평론가)는 친일문인을 기리는 팔봉비평문학상을 받았으며 당해 이육사 문학상 수상자(이재무 시인)는 친일문인 서정주를 기리는 미당문학상 후보를 두 차례나 수락한 이력이 있다. 미당문학상 후보의 경우 사전에 작가의 동의를 얻고 발표된다.

 

심사위원을 맡은 구모룡 평론가는 뉴스페이퍼와의 통화에서 국내 비평문학상은 몇 되지 않으며 그중 팔봉비평문학상은 단단한 입지를 보유한 상이다.”라는 말과 함께 일방적인 집회나 성명이 아닌 학문적인 논의의 장에서 이야기한다면 언제든 응할 용의가 있다. 문제를 제기한 단체에서 정말 시인이나 평론가인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라며"이러한 행위는 태극기 부대와 다를게 없다"는 말을 전했다. 올해 이육사 시문학상 수상자인 이재무 시인은 관련해 할 말이 없다.”고 일축했다.

 

문제가 된 팔봉비평문학상, 미당문학상은 동인문학상과 함께 대표적인 친일문인기념상이다. 팔봉 김기진과 미당 서정주의 경우 친일반민족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올라있을 만큼 노골적인 친일 행보를 이어왔다.

 

이에 문학계에서는 이육사의 시 정신을 기리는 이육사 시문학상에 적합하지 않은 심사위원 위촉과 수상자 선정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옥고를 치르며 일제에 저항한 이육사 시인의 민족정신과 부합하는 운영 방향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연구회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매해 이육사 시문학상 수상자 및 심사위원 중 친일문인기념상과 관련한 인물이 상당수 존재해 이같은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실태다. 상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는 이육사 문학축전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두 자료의 친일문학상 심사 및 수상 관련 자료는 이육사문학관 인터넷 홈페이지 및 신문 기사를 근거로 했으며 미당상은 친일문인 서정주를 기리는 미당문학상(중앙일보 주최), 팔봉상은 친일문인 김기진을 기리는 팔봉비평문학상(한국일보 주최)을 줄여서 표현한 것이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연구회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의 자료에 의하면 전두환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며 찬양시를 쓴 조병화 시인을 기리는 <편운문학상>, 민정당 창당 발기인이자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전두환 퇴임 때 찬양시를 쓴 김춘수 시인을 기리는 <김춘수문학상>, 여순사건 시찰단에 합류해 새벽의 처형장(동아일보1948.11.14)절망(동아일보1948.11.16.)을 발표하는 등 이승만 정권의 이데올로기 생산에 앞장선 김영랑 시인을 기리는 <영랑시문학상> 수상자 및 심사자도 상당하다.

 

성명서를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연구회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관련한 내용을 지적하며 이육사문학관 측의 운영에 문제를 제기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나아가 그동안 이육사 시문학상 수상자나 심사자들의 상당수가 미당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등 친일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을 수상하였거나 심사했다.”그 이름을 일일이 거명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알렸다.

 

아래는 성명서 전문이다.

 

성명서

민족시인 이육사의 고귀한 혼을 더 이상 더럽히지 마라!

이육사문학관 관계자들은 국민 앞에 사죄하고 물러나라!

 

2020년 제17<이육사 시문학상> 발표를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함과 부끄러움을 갖는다. 친일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인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한 문학평론가가 심사위원이었고, 대표적인 친일문학상인 미당문학상 후보를 두 차례나 수락했을 뿐만 아니라 전두환 취임 때 찬양시를 쓴 시인을 기리는 편운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 수상자였다.

 

<이육사 시문학상>을 운영하는 관계자들에게 묻는다. 이와 같은 결과가 과연 이육사 시인의 민족정신과 문학정신에 부합하는가.

 

그동안 일부 <이육사 시문학상> 수상자나 심사자들의 면면을 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들의 상당수가 미당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등 친일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을 수상하였거나 심사자였다. 친일문학상 후보자도 상당했고, 박정희를 찬양한 시인도 있었다. 그 이름을 일일이 거명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매우 심각하기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친일문학상 수상자나 심사자가 <이육사 시문학상>뿐만 아니라 이육사문학관에서 시행하는 각종 행사에도 대거 초대되었다. 학술토론회, 낭독회, 문학학교, 문학강연회 등의 행사에 초대되어 어린 학생을 비롯해 수많은 독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와 같은 문학관의 운영 실태를 보며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육사문학관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이육사문학관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육사 시인이 어떤 분인지 새삼스럽게 소개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조국 독립을 위해 분투하다가 열일곱 차례나 옥고를 치르고 끝내 일제의 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당해 순국한 이육사 시인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자랑일 뿐이다. 이육사문학관의 반역사적이고 몰상식한 행동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이육사 시인의 민족정신을 왜곡시키고 오염시키는 이육사문학관의 행위를 철저히 규명해 올바른 대한민국의 역사를 이루는 데 거울로 삼을 것이다.

 

민족시인 이육사의 고귀한 혼을 더 이상 더럽히지 마라!

이육사문학관 관계자들은 국민 앞에 사죄하고 물러나라!

 

2020720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연구회 /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뉴스페이퍼 김보관 기자2020.07.22

 

총성 없는 한일 경제 전쟁 속에 계속되는 친일 문학' 동인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미당문학상

3.1 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 광복절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한일 관계는 총성 없는 경제 전쟁 중인 상황이다. 한국 대법원이 강제 징용 배상에 대해 확정판결을 하면서 일본은 이에 대해 경제 보복을 가해왔다. 일본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되면서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는 점점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우리나라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며 응수했으며, 국민들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한 달째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뉴스페이퍼에서는 우리 나라 대표 친일 문학상에 대해 조명해봤다.

 

조선일보 주최 동인문학상

김동인

출생-1900102

사망-195115

직업-소설가, 친일반민족행위자

대표작=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붉은 산, 김연실전, 젊은 그들, 대수양, 운현궁의 봄, 목숨, 정희, 시골 황서방, 송동이, 반역자, 여인, 왕부의 낙조

 

김동인문학상은 한국 사회에서 친일문인을 기리는 첫 번째 문학상으로 소설가 김동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문학상이다. 1955사상계가 제정한 동인문학상은 1967년 중단됐으나, 1979년 동서문화사가 이 상을 부활시켜 1985년까지 시상했으며, 1896년 시상을 거른 뒤 1987년부터 현재까지 조선일보사가 주관하고 있다.

 

201810월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동인문학상 폐지 관련 세미나를 주최하였었으며, 11월에는 조선일보에서 주관하는 동인문학상 시상식장 앞에서 민족문제연구소,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역사정의실천연대, 인천 민예총 등 시민단체들이 모여 동인문학상 폐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역대 수상자로는 최인훈, 조세희, 박완서, 김영하, 김애란 등 우리나라 대표 소설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김영하 소설가가 2004검은 꽃이라는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소설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는 부조화가 있었다.

 

올해는 김세희, 박상영, 조해진 등 인기 작가들이 본심에 올라 주목을 끌고 있다.

 

김동인은 1939년 조선총독부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지방에 주둔한 황군을 위문할 것을 스스로 제안하고, ‘북지황군위문문단사절로 활동했다. 떠나기 전 조선 민중에게 성전(聖戰)의 참의의와 병사들의 노고를 보고하여 조선 민중의 몽매함을 깨닫게 할 중대한 사명과 의무가 우리들 조선문사에게 있다고 했다.

 

또한, 조선총독부의 외곽단체인 조선문인협회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백제 의자왕이 항복하자 일본이 구원하러 온다는 내용으로 내선일체의 역사적 연원을 끌어내는 장편소설 백마강을 지었다. 김동인은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친일활동을 한 것이다.

 

1944년에는 조선인 학병이 첫 영입을 하게되자 매일신보에 반도민중의 황민화 징병제 실시 수감을 연재하면서 조선에도 드디어 징병제가 실시됐다. 병역은 의무이자 특권이다. 국가의 우수한 병사가 되기를 명하는 바이다. 내 몸은 이제부터 내것이 아니요, 가족의 것도 아니요, 황공하옵게도 폐하의 것이며, 자율 지원의 학병제로 일본인적 애국심의 강도를 다루는 저울이다라며, 참전을 권유했다.

 

또 지원병제, 징병제, 학병제 등 이 모든 행사가 일시 뇌동적 흥분이 아니고 진정한 황민화의 고양인 점을 천하에 알리는 동시에 후계자의 육손을 효과있게 부르기에는 문학의 선동력과 흥분력의 힘을 빌 필요가 많다고 본다. 이러한 의미로 우리 반도의 문학인의 책무는 크고 또 중하다.”라고 했으며, “우리의 기분을 명랑케 하기 위해서는 물자의 배급을 자주하여 주었으면 가장 첩경일 것이다. 그러나 배급도 너무 가지면 역시 긴장미와 희열감이 적어지고 평범화하여 버릴 것이다. 여기 비로소 예술의 필요성이 두드러져 오르는 것이다. 무슨 위안의 연극, 무슨 위안의 음악 등 통속예술이 등장을 하여 가열한 시국의 중압에 허덜이는 국민에게 마음의 유도리를 생기게 하여주는 것이라며 전쟁 막바지까지 문학이 전쟁을 선전하고 선동하는 일에 쓰여야 한다고 문인들에게 주장했다.

 

한국일보 주최 팔봉비평문학상

김기진

출생-충북 청원, 1903. 6. 29

사망-1985. 5. 8, 서울

경력-조선일보 사회부장, 매일신보 사회부장, 조선언론보국회이사. 육군종군작가단 부단장, 경향신문 주필, 민원옹호투쟁위원회 부위원장, 재건국민운동중앙회 회장·고문

직업-시인, 평론가

대표작-애련모사, 비오는 날, 붉은쥐, 젊은 이상주의자의 사(), 통일천하, 군옹, 청년 김옥균, 해조음, 김팔봉문학전집 등

 

팔봉비평문학상은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인 팔봉 김기진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문학상이다.

 

지난 6월 제30회 팔봉비평문학상 시상식 앞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가 친일 문학상 폐지 집회를 주최했으며, 19년 수상자는 김진수 강릉원주대 미술학과 겸임교수였다.

 

김기진은 김동인과 같이 1939년 조선총독부 외곽단체인 조선문인협회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44년에는 대동아전쟁은 제3년으로 돌입하고 처창가열한 결전의 양상은 일부일 심각화한다. ...... 이 격동하는 시대와 엄혹한 환경 가운데서 조선의 문학은 과거의 온갖 잡연한 사념을 청산하고 국민문학의 순일한 개념에로 전환되어 현재 일본적 도의의 실천을 통하여서의 자기연성의 단계에 처하고 있다. 전쟁에의 진충, 신질서 건설에의 협력, 세계문화에의 신지향은 금일의 문단인들의 태도요 결의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매일신보에 기재하여 전쟁을 미화하도록 문인들을 선동했다.

 

또한 다수의 글을 통해 징병과 학병을 선전하여, 친일 협력 수위가 높았다.

 

가라! 아들아, 군기 아래로!

신국일본의 황민이 되었거든

동아 190억의 전위(前衛)가 아니냐.

불발(不拔)의 의기, 필승의 신념이 네 것이로다.

대동아전쟁은 침략의 전쟁이 아니다.

 

국민정부와 체결한 일화(日華) 기본조약 같은 것이 과거의 어느 전사(戰史)에 일찍이 있었던 일이냐.

 

(중략)

 

길은 한 가지, 구원히 사는 길은 궁극 한 가지이니/가라! 아들아, 군기 아래로 활발히 나가라!

가라, 군기 아래로, 어버이들을 대신해서중에서

 

군산시 주최 채만식문학상

채만식

출생-1902617, 전북 군산시

사망-1950611(향년 47)

학력=와세다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중퇴

데뷔=1925년 단편소설 '새길로'경력1932.~ 개벽사 기자

<탁류>, <태평천하>

채만식 문학상은 전라북도 군산시와 채만식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소설가 채만식의 작가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2년 제정되었다.

 

채만식은 1942년 조선문인협회가 주관한, 징병제 선전을 위한 순국영령방문단의 일원으로 전라북도에 파견되었다. 특히 조선인 최초의 전사자로서 일본 육군 항공병 지인태 대위의 유가족을 취재 후 지인태 대위 유족 방문기 반도 최초로 진 군국의 꽃이라는 글을 썼다. 그 글에서 조선 청년들도 그를 본받아 제국군인이 되어 천황폐하를 위해 온몸을 바치라고 선동했다.

 

또한, 전사자의 아버지도 선전의 도구로 활용하며, ”지 대위를 제국군인으로 길러내고 제국군인으로서 부끄럽지 아니한 전사를 하여 국가를 위하여 힘겨운 주춧돌이 되었으며, 그 이름이 야스쿠니의 신역에서 천추에 빛나도록 한 데는 대위의 선친 지동선 노인의 감화와 힘이 컸음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매일신보에 쓰며, 전쟁을 미화했다.

 

또한 침략전쟁에 문학이 어떻게 봉사해야 하는가에 대한 전쟁문학론을 1941년에 집중되어 발표했다. ’자유주의를 청소라는 글에서는 문학 그 중에서도 소설문학은 많이 자유주의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만큼 작가에게는 저도 모르게 그러한 낡은 이데올로기가 육체의 구석구석에 아직도 남아있는 모양인데, 이러한 자유주의적인 이데올로기의 잔재를 완전히 숙청하고, 문학 역시 신체제에 참여해야 할 것이니신체제하에서 자신의 문학활동 방침도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19438월부터 징병제가 시행되어 침략전쟁에 조선인이 강제동원되자 매일신보에 발표한 홍대하옵신 성은에서 이로써 조선 땅 2400만의 백성도 누구나가 다 총을 잡고 전선에 나아가 나라를 지키는 방패가 될 자격이 생겨진 것이다. 조선 동포에서 내리옵신 일시동인의 성은 홍대무변 하오심을 오직 황공하여 마지아니할 따름이다. 2400만 누구 감읍치 아니할 자 있으리요라며 강제 징병을 찬양했다.

 

2017년에는 일제강점기 하시마섬 강제징용과 나가사키 피폭의 문제를 다룬 한수산 소설가의 장편 소설 군함도가 수상하며 아이러니를 낳기도 했다.

 

동서문화사 주최 육당학술상, 춘원문학상

육당학술상과 춘원문학상의 역사는 다른 친일 문학상에 비해 그 역사가 짧다. 201612월 두 상이 제정되었다. 제정에 앞서 민주진보단체들은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를 기리는 문학상은 사실상 이완용을 기리는 상을 제정하는 것과 똑같다" 기자회견을 열고 문학상 제정 즉각 철폐를 촉구한 적이 있다.

 

최남선

출생-1890(고종 27). 4. 26, 서울

사망-1957. 10. 10, 서울

3·1 독립 선언서" 작성 국사학자 신문학 운동의 개척자

중추원 참의. 만주국 건국대학교수

육당 최남선은 1943년 일본에 유학 중인 조선인 학생들의 학병지원을 권유하는 학도병일본권설대로 활동했다. 또한, 매일신보에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 : 보람있게 죽자를 기고해 오늘날 대동아인으로서 이 성전에 참가함은 대운 중에 대운임이 다시 의심없다. 어떻게든지 참가하고야 마는 최고 명령을 받고 있다면서 원광법사의 임전무퇴 사자까지를 진두의 청년학도에게 선물하고 싶다.“면서 학병 지원을 독려했다. ’나가자 청년학도야에서는 대동아의 전장에 그 특별지원병으로서의 용맹한 출전을 해서 일본 국민으로서의 충성과 조선 남아의 의기를 바로 하여 부여된 광영의 이 기회에 분발 용약하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출전할 것을 촉구했다.

 

이광수

가야마 미쓰로, 香山光郞

출생-1892, 평북 정주

사망-1950. 10. 25, 자강도 강계

소설가문학평론가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

무정, 유정, , 검둥이의 설움, 소년의 비애, 개척자, 허생전, 재생

춘원 이광수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극단적으로 호응하고, 조선인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일본인보다 더 천황에 충성해야한다는 논리의 평론, 논설뿐만 아니라 시와 소설을 비롯한 문학 작품을 통해서도 적극 제시되었다.

 

또한 소설 그들의 사랑에서는 조선인과 일본인은 서로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함께 천황의 뜻을 받들어 새로운 인류의 역사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특히 우리는 순순히 일본 국민의 길을 걸어 나아가야 할 것이오. ....여러분은 날더러 반역자라 하시거니와, 지금의 태도를 고치지 아니하시면 여러분이야말로 용서할 수 없는 반역자요, 죄인이요. 그리고 조선 민족을 죽이는 자들이오라고 주장했다.

 

또 전쟁터로 끌려가는 조선 청년들을 격려하고 천황의 군인으로 충성을 다할 것을 역설하기도했다.

 

만세 불러 그대를 보내는 이날

임금님의 군사로 떠나가는 길

우리나라 일본을 지키랍시는

황송합신 뜻 받어 가는 지원병

- ’지원병 장행가중 일부

 

 

중앙일보 주최 미당문학상

서정주

 

미당 문학상은 미당 서정주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1년 중앙일보에서 제정한 문학상이다.

 

서정주의 친일 행적으로 인해 지난 17년 송경동 시인이 미당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를 공개적으로 거부한 이래 친일문인기념문학상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활발해졌으며 현재 폐지된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정확히는 2017년 이후 일시 중단된 상태이다.

 

또한 한국작가회의는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으나, 작가회의는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정주는 일제강점기에 가미카제(자살특공대)에 참전하는 것을 선동하는 반인륜적 시를 남겼다.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 ’마쓰이 오장 송가일부

 

마쓰이 오장 송가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언덕도
산도
뵈이지 않는
구름만이 둥둥둥 떠서 다니는
? 천 길의 바다런가

아아 레이테만은
여기서 ?만 리련가......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우리의 젊은 아우와 아들들이
그 속에서 잠자는 아득한 파도소리......

얼굴에 붉은 홍조를 띄우고
"갔다오겠읍니다"
웃으며 가드니
새와 같은 비행기가 날아서 가드니
아우야 너는 다시 돌아오진 않는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사람
인씨(印氏)의 둘째아들 스물 한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
정국대원

정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서 우리게로 왔느니
우리 숨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 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져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伍長)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 천 길의 바다런가

귀 기울이면
여기서도, 역력히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레이테만의 파도소리......

-마쓰이 오장은 조선인 출신 소년 비행병으로 가미카제 특공대로 필리핀 레이테만에서 전사한 인재웅이다. 마쓰이 히데오(松井秀雄)는 인재웅의 창씨명이었다. )           

동인문학상 폐지 시위를 벌이는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 [사진 = 뉴스페이퍼]

 

2018년 친일 문학상 관련 세미나에서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동인 문학상에 대해 구 식민지, 제국주의 체제를 소설과 논설을 통해 적극적으로 옹호했을 뿐만 아니라 침략전쟁을 예찬한 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을 수여하는 제도가 거대언론사에 의해 시행된다는 것은 넌센스라며, 지속되는 식민주의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명원 교수는 동인문학상 폐지가 가장 명료한 해법이라며, “문인들이 친일문인 문학상의 심사나 수상을 거부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또한, 친일 문학상 폐지 운동을 벌여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유용주 위원장은 2017년 미당문학상 후보에 오른 명망 있는 시인들이 미당문학상 후보를 공개적으로 거절했고, 미당문학상 제정 17년 만에 비로소 미당 서정주를 기념하는 미당문학상의 권위가 깨어졌던 일을 예로 들며 미당 서정주 등 친일문학인을 단죄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과를 정직하게 기록하자,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동인문학상, 미당문학상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지난 11일 아베 규탄 촛불문화제에는 폭염 속에서도 주최 측 추산 15000여명이 참여했으며, 오는 광복절에도 광화문에서 촛불 집회가 계속될 예정이다. 또한, 친일문인 시비를 철거 등 지자체가 일제 잔재 청산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시국에 국가 공통의 가치관, 공통의 언어를 나르는 문인들의 자성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뉴스페이퍼 김지현 기자|2019.08.14

 

 

미당문학상기획칼럼] 12장 미당 서정주 그는 을마나 진실한 시인이었나

병든 시인과 괴물엘리트들의 세계현실

 

11

해방 이후, 여운형이 건준을 꾸리고 조선공산당이 뭉치자 이에 대응하고자 자신의 대부와도 같은 김성수가 1945916일 한국민주당을 창당한다-한민당의 주요 멤버는 김성수, 송진우 등이 이끄는 지주, 기업가, 언론인의 연합체였다. 이 호남그룹은 지주식 기업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브루스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 청사). 그는 이듬해 44일 좌익의 조선문학가동맹에 대응하기 위해 김동리 등과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조직하였다. 미당, 그는 일찍부터 김성수의 시종侍從으로 자처하고 나선 우파 이데올로그 시인이었던 것이다.

 

김성수가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미당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다시 동아일보의 문화부장, 편집국장이 되고 권력에 들어서는 길...이건 노예의 길로 들어선 것이지 시인의 길이 아니었다. 한국적 정실주의 표본, 근친상간이 여기서 비롯되고, 화간비평, 갈보비평이 여기서 비롯되었으며 전체주의의 괴물이 바로 여기서 탄생할 수 있는 토양이 형성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우파의 뮤즈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눈을 흐리게 하고,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데는 또한 언론과의 공모가, 권언유착의 카르텔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미당에게서 본다. 그런 그가 [이승만 박사전]을 쓴 게 어찌 우연이었겠으며, 그런 그가 독재 시절 마치 저 영국의 계관시인처럼 권력의 충실한 개로서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등 최고의 요직을 독점하며 정권 수호의 뮤즈 여신이었다는 것이 또한 어찌 우연이었겠는가. 뮤즈라니 사실 이건 괴물을 달리 말하는 비유다. 사전적 의미에서 괴상하고 이상한 사람을 괴물이라고 비유해서 말하고자 함이니 이상할 것도 없는 말이다.

 

전두환 예찬시

-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처음으로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 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우리 좋은 문화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

이 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

이 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

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이 힘으로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가지고

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믿게 되었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홍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쉬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보라, 헤시오도스의 제우스신 찬가, [신통기]와 너무 닮아 있지 않은가. 정말 놀랍고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 나는 사실 솟아나오는 격분을 참기가 쉽지 않음을 느낀다. 이런 사실들이 언론통제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고 있으니 미당은 저 구름에 가려진 영봉처럼 계속해서 신화적 미망의 대상이 되어 왔던 것이다.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하고 실망시키고 있는 것은 따로 있다. 미당, 금개구리 같은 그가 낳은 수많은 올챙이들이 이제 또 개구리가 되어서는 수많은 미당 신화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미당의 추천을 받아 문단을 형성한 그들이 시인부락의 주인 행세를 하면서 역시 고위직을 차고 앉아 호의호식하면서 개굴개굴! 울어대고 있는 것이다. 미당은 시인부락의 족장이라고, 아니 그는 하나의 정부라고, 아니 한 술 더 떠서 이제는 종교가 되었노라고. 그의 유작은 다만 유작이 아니라 하나의 경전이 되어 신화화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매우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될 하나의 분명한 현실로서 우리는 여기서 우리 문화가 처한 그 갈보적성격을 보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 창녀기자가 창궐하고, 유곽언론이 득세하며, 괴물 엘리트들이 활보하고 다니는 이 야만적 현실이 낯설지 않은, 이젠 물질적 상품만이 아니라 영혼으로 빚은 것마저 팔아넘기지 않고서는 삶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잔혹서사로서의 현실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빛나는 전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저 놋그릇보다도 더 쨍쨍했던 빛나는 추억이 있다. 시인 김수영은 말했다. 시는 사회적 공기이자 꿈이라고. 여기, ‘사회적이라는 말은 결코 입에 발린 수사가 아니다. 시의 성격을 제한하고 있는 그만의 신념, 하나의 크레도스credos. 즉 시는 하나의 도덕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고, 따라서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이며, 그리하여 이를 또 어떻게 표현 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적 고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시가 왜 독재 치하의 어두운 현실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리하여 그가 왜 시는 불온한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하고 있는지, 그리하여 그의 시적 메시지가 왜 그런 현실을 까발리기 위해,, 산문적 개진이 필요해졌고, 그리하여 단순한 리얼리즘을 넘어 형식주의를 넘어,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생활 서사시로서의 위상을 지니게 되었는지, 그리하여 하나의 일상어가 그대로 시꽃으로 기능하고 있는 그의 시라는 것이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이자 태도 표명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눈부신 사례임을 우리는 안다. ‘거대한 뿌리’, ‘..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을 한다.

 

나는 발산한 형상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이태리어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生理)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 김수영, ‘공자의 생활난’, 1949

 

1949년에 썼다는 연대기적 지표는 이 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즉 해방전후사가 잘 말해주듯이, 이때야말로 해방은 맞이했지만 가치관이 극심하게 혼란이 일던 시기였다. 이런 사실은 여전히 가치관이 혼란하고 살기가 갈수록 어렵다는 이 시대, 그의 시가 아직도 기념비적이고 현재적인지, 김수영과 그의 시대가 아니라 김수영과 이 시대인지를 해명하는데 중요한 열쇠임을 말해준다.

 

좌우의 이념 갈등은 물론이고 당시는 가난이라는 천형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국민 대다수의 숙제였다.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에서 시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도 실 가닥 같은가난에 시달린 시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식인이었다. 지식인이란 존재는 무엇인가. 지식인이란 무엇보다 진실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식인은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에 천형 같은 가난 속에서도 삶의 방향을 주체적으로 선택해야만 하는 외로운 존재다. 이에 지식인은 크게 도구적 지식인과 비판적 지식인으로 나누어진다.

 

이 시에서 나는 화자이고, 너는 타자다. 다시 너는 도구적 지식인이고, 나는 비판적 지식인이다. 그래서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줄넘기 작란을하는 너는 바로 도구적 지식인이자 일제에, 권력에 붙어먹은 부일배다. 다시 말해 꽃이 열매의 상부에 필 수 없는 것이 원칙인데 그렇다는 것은 뭔가 가치가 전도된 상황을 암시한다. 이럴 때 줄넘기 작란을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몰가치적 행위에 대한 시적 단죄의 성격을 지닌다. 이와 다르게 나는 먹고 살기 위해 나름대로 발산한 형상을 구하였으나/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고 한 것은 부도덕하고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나름 재주를 피워보려고 했으나, 그것은 도덕적 배반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작전처럼 어려웠을 것이라 토로하고 있다.

 

국수, 가난을 상징하는 국수를 로 상징되는 도구적 지식인들은 그 영혼을 바친 대가로 값비싼 마카로니로 바꾸어 먹는다. 그러니 갑자기 밸이 틀어진 것일까.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일까하고 그는 갑자기 부아가 났나보다. 이런 슬픔과 분노, 노여움이 교차되는 어느 순간, 그러나 그에게는 도덕에 대한 지고의 가치가, 프로메테우스 신이 그를 지켜주고 있던 것일까. 그리하여 정의의 불칼이 내려지고 외로운 고검이 빛을 발하는 순간, 정의는 실로 외로운 자의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事物)과 사물의 생리(生理)

사물의 수량(數量)과 한도(限度)

사물의 우매(愚昧)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라며, 위기에서 자신을 되찾고 새로운 의미의 세계지평을 여는 순간을 맞이한다. 이 대목이 바로 김수영의 시적 운명을 내건 일대 명제의 탄생 순간이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동굴에 갇혀 있지 않고 동무여라고 외적 환기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화시키며 즉자적 주관을 벗어나 대자적 지평으로 넘어가는 변환transition의 언어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 나는 바로 보마라며 과거와는 단절된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 김수영이 던지고 있는 토포스, 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진리에 대한 애타는 추구이다. 공자가 [논어]에서 아침에 도를, 진리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했던 것처럼, 그 진리는 애타는 것이고, 절실한 것이기에 나는 죽을 것이다라고 감연히 외칠 수 있는 성질의 그 무엇이었다. 시인은 오랜 사제priest로서, 진리의 담당자 아니었던가. 한국시단의 야생 사자같았던 그, 그는 무엇보다 이렇게 불타는 진리의 파수병이었다.

 

, 그렇다면 우리의 시인 미당은 어떤가.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었다.

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나 꼭하나만 먹고 싶다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아들.

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 않는다하는 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눈이 나를 닮었다한다.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눈에서 罪人을 읽고가고

어떤이는 내입에서 天痴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오는 어느아침에도

이마우에 언친 의 이슬에는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꺼있어

볓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숫개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此一篇昭和十二年丁丑歲仲秋作. 作者時年二十三也.

- 서정주, ‘自畵像전문

 

여기, 자화상도 그렇고 후기에 한자를 부기한 것을 통해, 우리는 그가 매우 높은 자존의식을 지닌 시인임을 엿볼 수 있다. ‘목아지가 가느다란 李太白이처럼/우리는 어찌서 兩班이어야 했드냐’(葉書-東里에게)가 또한 그러했듯이...이렇게 드높은 자존감을 지니고 있는 시인에게 아버지가(*오해마라, 여기 애비는 전라도 구어다. 시는 구어이고 개인어이니 표준어가 아니라고 시비를 걸 필요는 없다) ‘이었다는 것은 전도가 양양한 젊은 시인에게 매우 굴욕적이고 모욕적인 것이었음에 틀림없었으리라. 그런 아버지가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는 것은 자유롭지 못하고 매인 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기서 마치 시인의 운명을 예고라도 하는 듯이, 시의 첫출발을 예고하는 그의 시 모두에서 종놈에 사로잡힌slave-obsessed' 작가의 내면을 마주한다. 이것은 김현(김윤식, 김현의 [한국문학사], 민음사)의 말대로라면,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를 보편적인 것으로 환치시키는 어려운 작업을 예술적으로 극히 높은 차원에서 성공시키고 있는데, 그의 신분 문제 역시 그는 그것을 일제 치하에, 일본이라는 대지주 밑에서 종살이 하는 한국민 전체의 그것으로 폭넓게 일반화함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벗어난다라고 극찬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독이다. 이것이야말로 주례사 비평이자 하나의 화간비평이다.

 

자화상에는 미당의 노예도덕이 철저히 드러나 있다. 우선,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는 것은 늙어버린 영혼의 이미지다. 23세를 맞이한 그가 중추에 갑자기 감회가 돌아서인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병든 수캐처럼 헐떡거리며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런 그의 삶의 의식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은 가난과 저주, 불행, 죄인이라는 의식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결코 자신의 부끄러운삶을 반성하지 않겠다는 강고한 태도이다. 이것은 단순히 가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여기, ‘바람은 기회주의적인 삶의 태도를 암시하는 시적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다. 자신 스스로 아버지에 대한 강한 거부를 느끼고 시적으로 이를 의식하면서도 아버지를 극복하지 모하고 결국 그 또한 아버지를 내면화하고 있다는 거, 바로 여기에 서정주의 비극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인간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존재였음을 본다. 대체 성숙이란 무엇인가. 성숙은 무엇보다 미숙한 단계를 벗어나는 존재의 내적, 질적 변화를 말한다. 이런 성숙의 과정에는 반드시 번데기가 스스로 허물을 벗들이 미숙한 껍질을 벗어던져야 하는데, 이 껍질 속엔 칸트가 말하는 바, ‘게으름비겁이 들어 있다. 따라서 성숙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하여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엄숙한 판단과 이성적 사고에 바탕하여 나를 둘러싸고 있는 구속의 끈을 과감하게 끊을 줄 아는 결단용기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과연 어떤가. ‘병든 수캐처럼 헐떡거리며살아온 생,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하고 자신의 허물을 벗지 못하고 번데기에 갇히고 만다.

 

그리하여 역사적 동력을 얻지 모한 그의 시가 내면으로 기어들어가고(서정시), 과거로 회귀하며([신라초]), 기교로 춤을 추(탐미주의)게 된 소이가 다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 시정의 절정을 이루게 된 것이 친일시이고 독재자 찬양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분명하게 서정주의 독자가 결코 대중이 아니라 최고 권력자였다는 점을 확인한다.

 

돌아보건대, 시는 거저 쓰는 게 아니다. 시는 다만 언어가 아니다. 언어의 뿌리가 삶에 기반하고 있으니, 삶을 떠난 언어는 진실을 노래할 수 없다

 

서정주, 그는 말했다. “가난은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무등을 보며’)...가난은 뭐 별 거 아니라는 거다. 과연 그럴까. 그는 현실을 너무 모르는 거다. 그러니 약자의 현실을 모르니, 그들을 사랑할 줄도 모르는 거 아닌가. 시인 신경림의 노래를 보자. 가난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가난한 사랑노래'). 가난하기 때문에 외로움도, 두려움도, 그리움도, 심지어는 사랑도 버려야만 한다는 것을,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이 모든 삶의 양식들을 버려야 한다는 놀라운 시적 진실을 전하고 있다. 이런 현실주의 서정시인 신경림에 대해 서정주의 시종 이남호는 뭐 이런 작품이 왜 교과서에 실려야 되느냐며 딴지를 걸고 악의적인 비평의 날을 세우고 있다(이남호,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현대문학).

 

이렇게 현실도 모르고 정조까지 내다버린 시인을 모셔다 추모하고, 주례사 비평에 찬사까지 늘어놓고 있는 이남호, 이영광은 괴물 엘리트의 표본이라 아니할 수 없다 김성수의 마름이었던 아버지를 두었던 서정주나 김성수가 세운 고려대의 엘리트들이 그런 서정주를 두둔하기에 바쁜 정실비평의 후예들이라니...뿐인가. 이를 대문짝만하게 실어 독자들의 눈을 멀게 하고 정신을 흐리게 하여 자신들의 지배적 이익을 영원히 이어가겠다는, 권력의 재생산, 유포, 확산에 기여하고 있는 주류언론들, 이들이 한 무더기가 되어 서정주 신화를 재생산하며 한국의 유곽언론과 창녀기자, 괴물엘리트군단을 형성하고 있다. 독자여, 바로 여기, 대중의 눈을 멀게 하고 정신을 흐리게 하는, 신화적 미망이 풍미하는 곳에 전체주의의 유령이 어슬렁거리고 있지 않은가.

 

정치계에만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이인화 같은 괴물 엘리트들이 있는 게 아니다. 미당 서정주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기회주의자이자 병든 시인이다. 이렇게 배울 것도 없고 건강하지도 못한 누더기처럼 너절한 시인을 뭐가 좋다고 추앙하는가, 괴물 엘리트들이여! 시인 김남주는 이 가을에 나는에서 노래했다.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라고...시인이 시대의 모순을 끌어안은 빛나는 전사가 되지는 못할망정 기회주의자였다니...그것도 권력의 사타구니를 끼고 피를 빨아 댄 기생충 같은 위인이었다니...나는 무엇보다 예술가들이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시종이었다는 니체의 명제를 확인해야 하는 오늘의 현실이 참으로 찢어지게 슬프다.

에고...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2017.10.06.

 

미당 서정주 논란 제22,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은 과연 별개인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중략......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시인 김수영...

한국시단의 거칠 것 없는 야생사자 같았던 그... 그는 과연 사자였다. 그는 한 마리 토끼라도 최선을 다해 질주할 줄 아는 시의 바람이었다. 일상과 시는 그에게로 와서 한 이 되었다. 그는 또한 양심의 사제였다. 그리하여 여기,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보자. 그러면 우리는 예의 그 청교도적인 자세로 자신을 심하게 채찍질하고 있는 그를 본다. 자신이 점점 소시민이, 프티 부르주아가 되어가고 있다고 자학하고... 자신이 점점 옹졸하게 소심해지고 있다고 반성하고...또 자신이 좀스런 이기심에 젖어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고 자신을 극단으로 내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자신을 치열하게 반성하고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지만 기실 부당한 권력에 대한 채찍에 더 가깝다. 그러니 이건 참 아이러니 아닌가. 그리하여 여기,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

 

하는 대목은 통쾌한 자유 펀치에 다름 아니다. 비록 저 왕궁 대신에, 저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마는 소시민이 되었지만, 그리하여 한번 정정당당하게 부당하고 비민주적인 환경에 저항하지 못하고 이기적이고 소시민적인 태도로 분개하고, 증오하고, 반항할 뿐이지만, 또한 그러한 태도가 부당하고 비민주적인 권력을, 저 왕궁을, 저 왕궁의 음탕을 유지시켜주는 분위기에 알게 모르게 일조하는 줄을 알지만...다시 말해 그 역시 소극적인 성찰에 그치고 자기연민이나 탄식, 불평에 머물고 말지만...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아가지는 못하지만...

 

탁류가 하수도처럼 역류하던 60년대,

그는 이렇게 소시민 의식을 지닌 시인이었다. 그러나 비록 소시민의식을 지닌 미소한 시인이었지만, 거리의 투사는 아니었지만 그는 시적 정의poetic justice로서의 양심을 지닌 시인이었다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다시 말해 시를 쓴다는 것은 언어의 윤리 이전에 가치와의 일대 격투를 벌이는 일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줬다는데 큰 가치가 있다. 나는 그렇게 본다.

 

김수영을 보라, 시를 쓴다는 것은 가치와의 일대 격투를 벌이는 일이다

 

, 보라. 그러니 어찌 생애와 작품을 뚝 떼어서 볼 수 있단 말인가. 작품은 정신의 분비물인 것을, 생애와 작품을 뚝 떼어서 보기 시작하는, 다시 말해 작품에서 작가가 떨어져나가고 도덕의 궤도를 일탈하는 노트럴neutral한 순간, 거기 잔인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오해 마라, 여기 작가가 만들어낸 창작의 고유성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삶을 떠난 언어의 희롱이 거기서 시작되고, 본능적으로 권력과의 유착이 거기서 새끼를 치고, 그 새끼가 죽던 말던 내 알바 아니라는 무서운 냉소가 거기서 또아리를 튼다.

 

과연 그럴까. ,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그들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두르고 있는 별개의 논리적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른바 '문학의 자율성'이론이다. 문학은 그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아니하고 문학 고유의 상상력이라는 재료에 의해 창조되는 예술의 세계라는 거다. 그러니까 자율성, 고유성을 내세우는 이 문학의 논리는 '미적 근대'라 일컫는 근대 부르주아의 문학적 인식의 하나다.

 

What matters,

중요한 것은 예술가와 작품이 서로 다르다는 이러한 사고와 논리가 왜 저들에게 그렇게 금과옥조maxim 같은 명제가 되고 있는가 라는 점이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런 사고와 논리가 그들의 현실적 이익에 일치하기 때문이다. , 예술가와 작품이 '별개'라면 작품이 문제가 될 경우 그 문제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고, '결부'되어 있다고 보면 그 문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가. 매우 영리한 논리이지 않은가.

 

예술가와 작품이 별개라는 논리는 교묘한 호신책에 불과하다

좀 어려운 얘기이니,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민음사)을 통해서 보자. 그러면 우리는 반드시 저 참을 수 없는 매력을 지닌 바람둥이 의사 토마스를 만나게 된다. , 여기 바람둥이 의사 토마스(예술가)가 그동안 수십 명의 여자들과 바람(작품)을 피우먼서 스스로 도덕의 하등 구애를 받지 않고 떳떳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별거 아니다. 그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사랑과 섹스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다. 루비나 또한 마찬가지다.

 

토마스는 사랑과 성 행위는 별개의 두 세계라는 생각을 그녀에게 이해시키려고 무척 애썼다.”(165)

 

이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모두 말의 포로가 되기 십상이다. 여기, 사랑과 섹스에서 무한정 자유롭고 싶어하는 우리들은, 이 가벼움의 논리가 물에 불은 콩처럼 잔뜩 근대 의식이 주입된 우리들로서는 너무 그럴듯하게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던지는바 그대로 가벼움lightness은 사비나처럼 끝없는 배신과 미국적 공허감만 체험하게 할 뿐이다. 토마스는 다행히 테레사를 만나 사랑을 깨닫게 되면서, '시적 기억'을 지닌 그녀와의 섹스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행복의 향기를 지닌 아름다운 행위임을 알게 되면서 가벼움에서 구원되기 시작한다. 즉 토마스의 구원은 사랑과 섹스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도둑씹, 번개씹에도 정이 든다”(조정래, [태백산맥])는 것처럼, 사랑과 연애는 결코 100% 분리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둘이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사실과 가치가 분리되어 있는 듯이 생각하기 쉽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정서의 밑바닥에는 기본적으로 사실과 가치는 '형태소morpheme'처럼 고정되어 있어서 인식 가능한 하나의 실체substance로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고정되어 있다고 보는 사고는 끝내 변화를, 역사를 부정하는 성채에 닿고 만다는 사실을 염두 해 보면, 변화와 발전을 두려워하는 그들의 사고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는 예측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사고는 도덕불감증을 양산하는데 기여한다. 그리하여 사랑과 섹스가 서로 다르고, 사실과 가치 또한 서로 다르다는 논리는 예술가와 작품은 서로 다르다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사랑과 섹스가 서로 다르다는 논리가 비도덕적이고 사실과 가치가 서로 다르다는 논리가 비윤리적인 것처럼, 예술가와 작품은 서로 다르다는 논리 또한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다. 무책임하기 때문이다

 

서정주를 비롯, 김동리 등 이른바 권력의 사타구니에 붙어먹던 이들이 매우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허튼수작들을 저지르고도 아무려면 어때 하고 자신의 행위를 뭉개고 그들의 맹목적인 도제들이 이들을 추종하고 있는 바의 근거는 이렇게 비도덕적이라는 모럴의 문제에 다름 아니다. 도대체가 개념이, 죄의식이 없으니 개차반이 되는 거다.

 

그러나 '문체는 사람Style is the man'이라는 말이 있거니와 작품과 예술가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하나의 문학 작품이 있기 위해서는 언어라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 이 언어는 작가의식의 대체물substitution이다. 즉 언어가 하나의 대체물로서 작가 자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가를 떠나 제 홀로 있는 것은 아니다. 문체가 작가마다 제각각인 이유가 여기에 있고, 그 문체 속에 깃든 사상이 또한 제각각인 소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헤겔의 말대로 철학이 시대의 딸인 것처럼, 작품은 작가가 낳은 딸인 것이다. 다시 말해 부모가 자식에 대해 부양책임을 지듯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작가적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다.

 

진실이 이러하거늘, 아무런 개념도 없이 가벼운시로써 무지몽매한 대중들을 아무것도 모른 채 죽음의 전선으로 내 몬 것은 누구요, 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라는 스트롱 맨들에게 정조를 내다 바치고 얻은 해우채로 높은 의자를 타고 앉아 호의호식하먼서, 그 돈으로 잡지를 만들고 후학들에게 술을 사먹이면서 이 땅의 예술을 흐리게 하고 문학의 강물을 오염시킨 이는 대체 그 누구란 말인가.

 

이 걸레 보다 못한, 아니 그의 시어로 말하자면 떠돌이 창녀시인 황진이의 슬픈 사타구니 같은(‘격포우중’)” 시인에게 눈 먼 대중은 그렇다 치고,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문학예술계의 두 눈이 멀쩡한 지식인들이 그를 시인부락의 촌장으로 받드는 것도 모자라 그를 신전에 세우려고 하고 있으니 이들이 곧 괴물 엘리트들이 아니면 그 무엇이고 신화 공모자들이 아니라면 또 무엇이란 말인가.

 

미당 없는 문학사 상상하기 어렵다...

어두운 시대라고 시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밤하늘에 별이 더 밝게 빛나듯 어두운 시대에 오히려 시인은 더 빛났다. 아니, 어두울수록 시의 은하계는 더욱 찬란했다. 백석은 무론 이육사, 윤동주, 한용운, 오장환, 임화, 이용악도 있다. 오롯하게 우리의 풍속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 시인이 있었고, 북쪽 툰드라 찬 새벽 속에서도 눈 속 깊이 꽃맹아리 옴작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며 시대의 어둠에 저항한 시인이 있었으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참으로 고결했던 시인이 있었는가 하면,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다고 외친 시대의 의인도 있었다.

 

뿐인가. 서정주와 같은 시인부락동인이지만 강도 일제에 굴하지 않고 병든 시대를 노래한 탁류의 시인이 있었고, 골방을 뛰쳐나와 순이를 호명한 감상적이지만 혁명적이었던 네거리의 시인이 또한 있었고, 서정적 이야기로 빚어낸 슬픈 조선의 시인도 있었다.

 

뭐 좋다. 그들은 보통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인들이라고 치자. 그러나 어두운 시대에 어두우면 어두운대로 그것을 노래하면 될 것을... 저 동료시인 오장환 같은 탁류의 시는 왜 본받지 못하는 건지, 아니 그보다도 당신이 그렇게도 추종했다던 보들레르 발끝이라도 좀 따라잡던지, 상징주의는 어쨌거나 좌절의 산물이 아닌가. 시는 보들레르처럼 망가져야 시꽃을 피울 수 있다는데, 시는 패이승敗而勝하는 거라는데, 이런 정신이라도 좀 제대로 배워 물고 늘어졌더라면 달라졌을 것을...뱀이 꽃처럼 아름답다니, ‘화사花蛇라니...이건 뭐 극도의 유미주의, 탐미주의 아닌가. 아니, 사실 이건 뭐 파시즘의, 죽음의 노래 아닌가. ‘원통히 물어뜯으라니’, 잔인한 시절, 대중은 너나없이 굶주리고 국경을 넘는 판에 뱀이 어찌 꽃처럼 아름다워야 했더란 말인가. 이게 어디 인생파의 작품인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무서운 시인 아닌가.

 

그러나 어쩌랴. 인간은 먹고 살아야 하는 생물인 것을...그러니 어찌 달콤한 권력에 불나방처럼 투신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여기, 권력이 저 누아르의 세계처럼 자신의 보전을 위해 못할 짓이 없는 세계이고, 문학이 진실을 위해서는 때로 목숨조차 버려야 하는 세계이거늘...그러나 저쪽 건달의 세계에서도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의리가 있고 양아치 세계에도 건드리지 말아야 할 금기가 있다하거늘...그는 시의 진실도 알기 전에 권력의 계단에 올라 선 도구 시인이 되고 말았으니 자신의 보전을 위해 무슨 짓인들 못하랴. 하물며 걸레만도 못한 진실이랴.

 

무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슨 고리끼 같은 혁명적인 작품들에 점수를 주자는 건 아니다 그들의 작품은 너무 청교도적이고 교조적이다. 난 차라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악의 꽃]처럼, 거기 부정하기 힘든 비근한 일상의 나를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더 호감이 간다. 거기에는 무거운 일상에서 가벼운 연애로 살고 싶은 대중들의 달콤한 로망이 있고, 그러나 그런 달콤한 로망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진실이 은칼, 금칼처럼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의 꽃]은 또 어떤가. 우리가 이 시집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은 혁명의 좌절이라는 악의 현실에서 상징의 꽃을 피워 올린 이 세기적 시집을 통해 '검은 담즙'과도 같이 어두운 저 깊은 곳에서 다시 나를 길어 올리는 창조적 우물을 발견하는 기쁨 때문이 아닌가.

 

자연은 하나의 신전, 거기 살아있는 기둥들에서

이따금씩 어렴풋한 말소리 새어나오고;

인간이 그곳 상징의 숲을 지나가면

숲은 정다운 시선으로 그를 지켜본다

- 보들레르, ‘교감

 

그리고 작품에서 발견하는 것은 비단 이것들만은 아니다.

 

"''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적이고 도덕적인 일정한 내용이 필요하다."(안토니오 그람시, [대중문학론], 책세상). 여기 그람시의 말대로, 우리는 이런 명작들에서 하나의 미이자 하나의 계몽이자 하나의 모럴이 뒤범벅이 된 깨달음의 쇠망치를 뚜드려 맞으면서 인생의 그 어떤 북극성과도 같은 가치를 발견하기 때문이 아닐까.

 

과연 그렇지 않을까...

 

이와는 다르게 예술가와 작품은 별개라는 논리에 도덕이 결여되어 있다는 거, 즉 모럴 부재로서의 근대 문학, 이게 바로 저 [마담 보바리]처럼 '야비한' 문학을 낳은 정신적 배경이 아닌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이 과연 별개인가.

 

靜菴 趙光祖가 갓 젊은 나그넷길에서 어느 집에 한동안 묵으려 했을 때, 그 집 시악씨가 한눈에 반해 홰를 치고 바짝거려 오고 있었던 걸로 보면 趙光祖는 생김새도 아주 잘생긴 美男子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光祖는 그 여인의 秋波를 받아들이질 않고, 냉큼 딴 집을 찾아 옮겨 가려고만 하고 있었다.

여자가 마지막 작정으로 그 머리에 꽂은 비녀를 빼 光祖에게 주었을때, 光祖는 그걸 위선 받아 가지고 가긴 했지만, 이내 되돌아와서 그 비녀를 그 여자의 집 한쪽 벽 틈에다 꽂아 놓고 물러가 버렸다.

어땠을까?

光祖가 그 때 그 여자의 秋波를 받아들여 한때 히히덕거리며 즐길 수도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그의 서른 여덟 살 때의 그 飮毒死刑 같은 건 면할 수도 있지 안 했을까? 적당히 그때그때를 끌끌끌끌 히히덕거리면서 父母妻子 안 울리고 살아남아 있었을 것이다.

- 서정주, ‘靜菴 趙光祖論

 

여기, 정암 조광조는 참 어리석은 숙맥이라면서 자신의 기회주의적 인생론(“적당히 그때그때를 끌끌끌끌 히히덕거리면서”)을 후안무치하게 늘어놓고 있는 이 작품을 우리는 서정주의 작품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가.

 

작가와 작품을 분리해서 보는 시각은 노예의 수사학이자 종놈의 신화다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이 별개라는 논리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결국 현실 부정의 모럴이다. 즉 현실과 매개되어 있지 않은,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현실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그들의 논리는 비역사적이고 비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이다. 즉 형이상학적인 관념의 세계를 즐기는 말의 사기사님네’(신동엽, [꽃같이 그대 쓰러진], 실천문학사])의 시에는 구체적인 삶으로서의 서사적narrative 요소가 차단되어 있다. 삶이, 이야기가, 서사가 결여된 시는 부르주아가 노동에서 멀어져 있듯이, 현실에서 한 발 비켜서 있다.

 

여기서, 서정주 등 재래의 서정시인들과 다르게 당대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많은 시인들의 작품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이 서사라는 것은 큰 암시를 준다. 임화의 단편서사시, 백석의 리얼리즘시, 김수영의 생활시, 신동엽의 서사시, 오장환의 탁류의 시, 한용운의 산문시, 김남주의 민족시, 박노해의 노동시 등의 공통 특징은 이들이 고통스런 삶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고,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외화外化시키고, 즉 대상에 대한 일정한 '미적 거리두기aesthetic distancing'라는 서사전략을 통해 얻어 낸 대자적 현실인식으로 동화同化에 대한 유혹을 견딜 수 있었다는 점, 이런 점들이 하나의 단서가 되어 자신이 처한 현실을 다시 재형성해remaking나갈 수 있는 하나의 역사적 변곡점the point of historical curve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한 발 비켜서 있는 예술가의 태생적 조건이 예술작품을 삶과 격리시키는 조건이 되게 만들고-중세시대 궁정시인들의 봉급은 귀족에게서 나왔다-바로 여기에 지식인을 비롯한 예술 일반의 기생적寄生的 요소가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역사는 우리들에게 신전, 성당, 학교, 미디어가 각각 고대와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의 강자의 신화를 대변해온 국가이데올로기장치였음을 적시하고 있다. 역사는 또한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대부분의 시인, 사제, 교사, 기자들이 이런 강자의 신화를 무비판적으로 재생산해 온 이데올로그로 기능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전체주의라는 기본 신념이 지배적으로 작동하고 있던 식민제국주의사회에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국가독재사회에서, 그리하여 개인적인 삶의 뿌리가 근본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서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은 별개라며 현실을 떠난 시를 시의 본령이라 여기는 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교묘한 호신책이라 아니할 수 없고, 또 그런 태도가 일시적으로 대중의 눈을 멀게 하고 정신을 흐리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근본적으로 영혼 없는 몽롱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나는 단언컨대, 전체주의와 국가독재를 옹호하는데 기여하고 마는 기회주의 시인과 괴물엘리트들의 위와 같은 그악한 논리는 노예의 수사학이자 종놈의 신화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2017.10.24.

 

친일문인기념상논란 제32, 순수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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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란 별다른 것이 아니다. 모든 비문학적인 야심과 정치와 책모를 떠나 오로지 빛나는 문학정신만을 옹호하려는 의연한 태도를 두고 말함이다.”

 

그 또한 친일 부역자의 한 사람으로 발언하고 있는 이 말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이미 순수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순수란기지정보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순수는 모든 비문학적인 야심과 정치와 책모를 떠난 매우 문학적성격을 띤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말을 역으로 보면 순수라는 개념은 당시 식자들의 머리를 어지럽게 할 만한 매우 정치적인 현실에 대한 반응으로 나온 것으로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둔 미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 그렇다면 순수가 당시 식자들의 머리를 어지럽게 할 만한 정치적 현실에 대한 안티-테제로 나온 개념이라면, 그런 정치적 현실은 대체 무엇일까?

 

익히 알다시피, 1939년은 일제가 대륙침략을 노골화하고 전체주의가 그 최후의 단말마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무렵이다. 다시 말해, 이때는 민족 모순과 계급모순이 점점 첨예화되고 민족구성원의 삶이 도탄에 빠지고 양심적인 문화인, 지식인들의 활동이 급격하게 위축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신간회가 해체되고(1931), 카프 해산(1925~1934)으로 민족주의 운동, 사회주의 활동이 원천 봉쇄되던 시점에 문학사에서 주목되고 있는 것은 <시문학詩文學1931>, <구인회九人會1933>, <시원詩苑1935>, <시인부락詩人部落1936>등의 이른바 모더니즘 계열의 순수문학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순수문학단체들의 등장 배경에는 어떤 정치역학이 자리하고 있을까. 당시 <시인부락>을 이끌었던 서정주는 그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931년으로부터 1942년 일정에 의한 우리 어문 말살의 때까지에 있었던 순수문학이나 순수시의 뜻은 다분히 반사회주의적인 열성에서 생겨 나온 것이다.”

-서정주, [한국의 현대시](일지사)

 

이런 사실은 우리들로 하여금 과연 순수문학이라는 게 결코 순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즉 순수문학 또한 자기방어적이고 나아가 공격적이라는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순수문학도 사실은 매우 정치적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what matters,

중요한 것은 순수문학 진영의 논리가 상대를 전제로 해서 나온 부차적이고 대응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은 곧 순수문학 진영의 논리가 삶의 본질을 비켜갈 수 있다는 점이고, 따라서 민족모순, 계급모순 등 사회적 갈등과 이 갈등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당대의 비극적 현실에 눈을 감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브레히트),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는 것은 현실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세계의 모순적 현실보다는 시인들이 자아의 번데기칩에 갇히거나, 과거로 망명하거나, 또는 정당하지 못한 권력에 빌붙어 그들에게 순응하고 마는 노예적 삶에 만족하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더욱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는 것은 이들이 단순히 순수문학을 한다는 구실로 소극적인 작품 활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권력에 빌붙어 기생하면서 그들을 위해 할 짓 못 할 짓 다해가면서 국민의 삶을 더욱 도탄에 빠지게 하는데 일조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이는 이미 마쓰이 오장 송가, [이승만 박사전], ‘베트남 파병시’, 그리고 전두환 찬양시등을 통해서 본 바 있다-더 나아가 사회적 언론 매체를 동원하여 자신들의 망령된 주장을 늘어놓고, 이런 담론들을 끊임없이 재생산, 유포, 확산시키면서 수많은 대중들로 하여금 이런 것들이 사실이고 실체인양 오인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자신들이 마치 '선의 축axis of the good' 인양 인식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미당, 그는 뛰어난 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문제적problematic’ 논객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정주가 4,19 이후에 발표(1963. ‘세대10월호)한 놀라운 주장을 마주한다.

 

한국의 현대문학사에 정통한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사회참여와 순수라는 두 개의 개념은 한국 현대문학사에 있어서는 사회주의 사상이라는 것과 밀접한 관계 하에서 맨처음 성립한 것이다.

사회참여라는 생각이 우리 현대문학 사상에서 맨처음으로 주장되고 논의된 것은 1920년대 전반기에 사회주의 경향파라는 것이 우리 문학에 대두되면서부터였고, 순수문학이란 한 문학적 수세가 생긴 것은 사회주의 문학 10여년의 번잡과 무가치에 대한 반발로부터였던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잘 알고 있는 일이다.

 

......중략......

 

이와 같은 문학주의’ ‘예술주의를 거부하는 사회주의적 사회참여정신은 또 그 필연적으로 민족주의까지를 적으로 삼았다. 그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노예정책에서 약소한 우리 민족이 해방되어야 할 것을 주장하긴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 민족의 계급혁명정신과 일치하는 한도에서만 그렇게 주장해야지 계급혁명을 거부하는 민족주의는 안 될 일이라 하여, 순민족주의적인 모든 운동과는 정면으로 대립하였다.”

-서정주, ‘사회참여와 순수개념중에서

 

, 여기서 우리는 과연 문제적 논객으로서의 서정주를 본다. 보다시피, 그가 이념적으로 서 있는 지점은 매우 분명하거니와 중요한 것은 그가 펼쳐 보이고 있는 논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이다. 대중 독자들은 그가 펼치고 있는 민족우선의 논리에 동화되기 쉽다. 그만큼 계급보다 민족을 더 우선해야 한다는 그의 논리를 일반적인 대중의 감정으로 볼 때 부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매우 모순이지 않을 수 없다. 즉 우리는 앞에서 보았다시피 서정주가 하나의 시인이자 지식인으로서, 그가 정말 양심을 지닌 식민지 치하의 식자층이었다면 어떻게 마쓰이 오장 송가등 그렇게나 많은 친일작품(11)을 쓸 수 있었으며, 이것이 과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한 일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가 그렇게 주장해대는 민족주의는 다만 사회주의자들을 부정하기 위한 말짱 허구에 불과한 명분이 아니었는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민족주의 타령은-김동리 또한 마찬가지다. 그 또한 김동석과의 뜨거운 논쟁에서 순수문학은 민족문학이라 말하고 있다-자기 스스로 조작해낸 허튼 수작이자 거짓말이며, 이는 그대로 그가 얼마나 부실한 논리의 모래기둥에 자신을 의지하고 있는지, 그 스스로가 양심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엉터리 시인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가 후안무치하게 친일작품을 마구 써 대고, 요구하지도 않은 [이승만 박사전]을 써서 퇴짜 맞고, 5.16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선덕여왕 말씀을 서두로 하는 [신라초]를 갖다 바치고, 전두환을 마치 헤시오도스가 제우스신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듯이 찬송을 갖다 바친 위인이라니, 나는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그의 시의 독자는 독재자였을 뿐이지 결코 일반 대중들이 아니었다. 이런 그가 순수시니, 순수문학이니, 민족문학이니 듣기 좋은 말로 떠들고 있는 것을 통해 우리는 언어에 대한 회의가 듦과 동시에 이게 모두 다 그 예전부터 전해오던 노예수사학의 현재적 모습이려니 생각하면 그 슬픔은 다 이기지 못할 정도로 크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이건 분명 하나의 내력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쓰고 있는 시를 무당 넋두리([한국의 현대시], 일지사)에 비유하고 있거니와, 이를 보면 분명 그는 타고난 노예적 본성을 지니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동리와 서정주, 그들의 순수문학, 민족문학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사실 기껏해야 고대의 노예사제, 무녀들이 춤추는 전근대적 시공간이자 예속의 정신세계이지 않던가.

 

이 글을 마치며......

나는 이제야 비로소 이 무거운 주제를 마치게 되면서 분명하게 느끼게 된 점을 말하려니와, 민족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문학적 순수주의는 하나의 국뽕신화에 불과한 매우 순응적인 성격을 지닌 불순한 이데올로기임을 천명하고자 한다. 여기, 국뽕이 무엇인가. 국뽕은 국가히로뽕의 준말로, 이는 과도한 애국주의를 비틀어 댈 때 쓰는 이 시대의 건강한 은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국뽕 신화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우리의 시인 서정주라는 거, 그러나 그가 반민족적인 시인이었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그가 진정으로 원하고자 했던 것은 과연 민족의 이익이 아니라 민족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려는 데에 급급했던 가장 야비한 기회주의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순수는 어려웠던 시기, 자신만이 살고자 했던 교묘한 호신책이자 건강한 민족 정신을 흐리게 하는 데 일조한 불순한 국뽕 신화였다는 진실 말이다

 

......

이런 인사를 기리는 상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고 문학적 위광을 드러내고 있다니..., 대한민국은 참으로 술푸게도 영광스러운(?) 나라가 아닐 수 없다.

 

다시 그의 대표작, ‘자화상을 감상하면서 그가 과연 얼마나 일찍부터 노예근성에 찌들어 있고, 야비했으며 기회주의적인 인사였는지 좀 꼬나보먼서 마치기로 하자.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 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나 꼭하나만 먹고 싶다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 않는다하는 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를 닮었다 한다.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눈에서 罪人을 읽고가고

어떤이는 내입에서 天痴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오는 어느아침에도

이마우에 언친 의 이슬에는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꺼있어

볓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숫개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此一篇昭和十二年丁丑歲仲秋作. 作者時年二十三也.

 

부록; reproduction, 재생산은 왜 위험한가

 

대체 교과서는 누구에 의해서 왜,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아이들이 큰 소리로 책을 읽는다

나는 물끄러미 그 소리를 듣고 있다

한 아이가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면

딴 아이도 따라서 책을 읽는다

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

"아니다 아니다!" 하고 읽으니

"아니다 아니다!" 따라서 읽는다

"그렇다 그렇다!" 하고 읽으니

"그렇다 그렇다!" 따라서 읽는다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 대로 따라 읽는다

 

이 봄날 쓸쓸한 우리들의 책 읽기여

우리나라 아이들의 목청들이여

- 김명수, ‘하급반 교과서’, 1983

 

한 아이가 어떤 것을, 그것도 국가에서 만든state-penned 교과서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큰 소리로읽는다는 것에서부터 이 시는 매우 씁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정경을 물끄러미바라볼 수밖에 없는 화자의 절망적 태도에서 왜 화자가 아이러니하게 비꼬는(‘하급반’, ‘쓸쓸한’)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여기, ‘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 ‘따라서읽는 현실은 우리가 어떤 교육 현실에 처해 있는지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눈 먼' 독서 교육의 현실이다. 마치 맹인이 상대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상대가 시키는 일을 그대로 따라 해야 하는 기막힌 현실 앞에서 우리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아니다 아니다!” 하고 읽으니

아니다 아니다!” 따라서 읽는다

그렇다 그렇다!” 하고 읽으니

그렇다 그렇다!” 따라서 읽는다

 

중요한 것은 과연자신의 의견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주체적으로 재구하면서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자기 결정적 삶으로서의 자기의 공간이 없다는 거, 이거야말로 박제 된 아이들을 양산하는 노예적 기제가, 반인간적 매커니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떤 사람이나 일이 공정한지 아닌지, 시비를 가리고, 미추를 따지는 주의 깊은 심미적, 비판적 태도는 인간 형성의 기본 요소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보다시피 현실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그리하여 여기, 공정과 시비와 미추를 따지는 투명한 활동이 철벽처럼 가로막힌 사회를 우리는 닫힌 사회'라 부르고자 한다. 닫힌 사회는 무엇보다 진실이 은폐된 사회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진실이 은폐된 사회에서는 거짓 신화가 판을 치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잘 살게 해 주겠다는 거짓신화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동물농장]의 복서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 거짓 신화에 속아 결국 비극적 삶을 마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기만적인 거짓 신화에 속아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끝없는 고통과 말 못할 억울함을 당하면서도

 

“(독재자) 나폴레옹은 항상 옳다

이중 사고a double thought’에 길들여지게 된다. 거짓 신화를 조장하는 근대의 경전, 교과서는 이렇게 자신들의 이익을 지배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 누군가는 대체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나폴레옹과 그 일당, 돼지들과 그들의 나팔수, 스퀼러들이다.

김상천 문예비평가|2017.11.28

 

 

야비한 자연주의, 그 친일논리의 허약한 본질 - 김동인의 경우. 1부 김상천 평론

 

김상천 평론 "야비한 자연주의, 그 친일논리의 허약한 본질 - 김동인의 경우".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1. 문제제기

한국 문단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동인문학상 수상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 가타부타 사회적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 나는 일개 비평가로서 어려운 판관의 위치에 서 있거니와, 왜냐하면 판관을 상징하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한 작가와 그의 작품의 논란에 대한 비평 행위가 일종의 심판 행위로서 그 내용이 공정해야 함은 물론이고 그 결정 또한 가차 없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사회적 논란에 대해 명쾌한(?) 판결을 내리기 전에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시공간에서 친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문인들과 그들을 기리는 문학상 수상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이 관습적 행위에 대해 심한 자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거니와 그것은 머 우리가 마치 중풍이 든 환자처럼 마비된 의식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으며, 그것은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수립된 지 1세기가 다가오는데도 우리는 아직 저 근대라는 정신의 독립이 이에 미치지 모하고 있다는 뼈아픈 자성이 나의 흐린 눈을 따갑게 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얼마 전에 <뉴스페이퍼>의 청탁으로 일제의 만행을 미화하고 독재자를 찬양한 미당의 노예적 삶으로 일관한 행적에 대해 가차 없는 칼을 휘둘렀거니와, 즉 그가 순수문학을 옹호하고 민족문학 운운했지만 사실은 순수를 가장하여 정치적 시녀 노릇을 자임하고 민족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는데 급급했던 가장 야비한 기회주의자였음을 좀 신랄하게 논파한 바 있다.

 

, 그렇다먼 소설가김동인은 어떤가. 그는 한국문학사에서 근대 소설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되어 왔다. 좌파 계열의 임화조차 조선 현대소설은 진정하게는 김동인에게서 시작한다”(‘소설문학의 20’, [문학사], 소명출판)라고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문학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문인과 그를 기리는 상에 대해 이견이 멈추지 않고 있는가. 이런 사실은 앞의 얘기대로 문학사적 평가를 받고 있는 문인과 그를 기리는 상에 대해 이견이 있다먼 다음과 같은 문제가 하나의 사실관계로서 검증되어야 함을 문제제기한다.

 

, 그는 과연 근대 소설의 진정한 선구자였나

 

, 그는 과연 전범이 될 만한 모범적인 작가였나

 

만약 가, 나가 사실이라먼 논란의 의미가 없을 테고, , 나가 사실이 아니라먼 한국문학사는 다시 써야 하고, 그를 기리는 문학상은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잘못된 평가에 기초해서 상을 주고 기리는 것은 사회적 신뢰성과 논리적 정당성에 반하는 것으로 사회의 기초질서를 훼손하는 매우 몰가치하고 심각한 비도덕적 처사이기 때문이다.

 

2, 그는 과연 근대 소설의 진정한 선구자였나

소설가 김동인이 과연 한국 근대 소설의 진정한 선구자였는지를 검토하려먼 우선, 근대가 무엇인지부터 소명되어야 하고 이것과 소설의 관계가 규명되어야 하며, 그런 다음 김동인이 이와 관련하여 과연 어떤 선구적인 역할을, 즉 다른 사람에 앞서서 어떤 일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그 일을 진실하게 실행하였는지를 좀 주의깊게closely’ 검토해야 한다.

 

먼저, 근대의 개념부터 보자. 근대는 머 고대, 중세, 근대, 현대 할 때처럼 쓰이는 역사적인 시간의 개념으로 여기서 말하는 근대modern는 현대와 가까운 시대라는 함의를 지니고는 있지만 본래 모던이라는 단어는 모데르누스Modernus’라는 라틴어의 형태로 5세기 말엽 로마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기독교가 공인되었던 당시와 그 이전 이교도였던 로마의 과거를 구별짓기위한 목적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이후 모던의 의미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것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거니와 그것은 특히, 근대 과학에 의해 고무되어진 지식의 무한한 발전과 사회와 도덕의 개선을 향한 무한한 진보에의 신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러니까 근대의 모던이라는 개념 일반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과거와는 다른 차이와 구별과 진보라는 개념이고, 이런 차이와 구별과 진보에의 신념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로 우리는 저 유명한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생각한다는 뜻의 라틴어) 명제를 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생각할 수 있는데, 역사는 명제들의 다툼의 역사라는 말을 적용해본다먼 이 데카르트의 명제야말로 실로 역사적인 명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 여기 데카르트의 명제-머 사실은 주관적 관념론이기는 하지만-가 근대를 축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때, 여기서 말하는 근대의 핵심은 바로 생각한다는 것이고, 이 생각하는 주체가 곧 신이 아니고 인간인 라는 사실이다. 이는 그대로 근대 이전의 세계에서는 내가 아닌 외부 집단의 모럴이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도덕률로서 기능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고, 이 외부 집단의 모럴을 상징하는 게 바로 신으로 상징되는 비가시적 실체였었다. 이 신을 모셔둔 가시적 실체가 세속의 신전, 성당이었다. 즉 고중세는 거대하고 신성한 건축이라는 공간이 지배하는 세계질서가 온존했던 사회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신을 중심에 모시고 있던 고중세적 건축 공간이 갑자기 무너진 것은 구텐베르크의 인쇄 혁명에 따른 책에 의해서였다. “이것이 저것을 죽이리라”(빅토르 위고, [파리의 노트르담]) , 이것은 문맥상 이것()이 저것(건물)을 죽일 것이라는 수수께끼처럼 무시무시하고 알쏭달쏭한 말이거니와 사실은 신의 말씀으로 상징되는 고중세의 구술문화가 종언을 고하고 인간의 지식으로 상징되는 근대의 문자문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노트르담 성당 신부의 경탄과 두려움 섞인 말로 표현한 것이다. 즉 근대의 주체는 바로 출판인쇄를 통해 독서문화를 주도한 계몽적 지식인들이고, 이들이 당시의 일상어romance’를 중심으로 맞춤법을 제정하다보니 근대의 맞춤법은 자연 독서문화에 맞게 형태소를 중심으로 한 자의적인 말 꼴form세우기였고, 그것은 또한 그것대로 지방어를 매개로 한 하나의 나라세우기nation-building과정으로서 상상된 공동체’(베네딕트 앤더슨)라는 민족국가 형성의 근대적 과제와 물리는 부분이었다. 즉 근대는 '인쇄자본주의print capitalism'라고 불릴 수 있는 문자문화의, 독서문화의, 지식인들의 세계였다고 볼 수 있다.

 

, 여기! 근대 지식인의 멘탈리티를 잘 보여주는 게 바로 노트럴한 중립성이고 개별성이지 않은가. 중립성은 대상과의 심미적 거리를, 개별성 또한 집단에 대한 심리적 거부를 요구한다. 이는 그대로 문자문화를 주도한 지식 계몽들이 자신들을 하나의 근대적 자아, 독립적 주체, 합리적 이성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말한다. 루카치 식으로 말해서 근대는 선험적 고향transcendental home’이라는 신과의 유대가 끊어진 시대임을 암시하는 것이고, 이는 또 그대로 근대의 개인이 신을 상실함으로써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의 새로운 신을, 즉 도덕을, 가치를, 형식을 세워나가지 않으먼 안 되었던 시대를 맞았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여기서 이성적 인식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새로운 형식으로서의 근대의 소설의 탄생을 생각해 볼 수 있고, 근대를 대표하는 이 소설에 시간이 요청되는 이유를 상정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신으로 상징되는 고향과의 유대가 끊어졌다는 것은 이른바 문제적 개인이 이제 새로운 신을 찾아 출발을 해야 할 현재를 각성시키고, 이는 그대로 과거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주입시키고, 대상에 대한 미적 거리두기라는 형식을 요청하게 됨을 예측하게 된다. 즉 서사시가 고대의 신정론이라먼, 소설은 근대의 형이상학이다.

 

여기서 우리는 근대 지식인의 노트럴한 중성적 멘탈리티를 반영한 소설에서 왜 '객관적 묘사'가 요청되고 서사시와 비극이 공간의 지배를 받는 현재형의 문학인데 반해, 소설이 왜 시간의 지배를 받는 과거형의 문학인지를 예측해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문어체에서 구어체로, 이니’, ‘해서에서 한다, ‘로 어형의 중성적 변화를 겪게 되고, “근대문학의 내러티브는 라는 과거형에 의해 완성된다([가라카니 고진, [일본근대문학의 기원])명제가 가능했던 것이다.

 

, 여기 근대라는 것이 하나의 자아에 대한 인식이고, 이를 나타내기 위해 하나의 차이의 형식으로서 소설이라는 새로운 형식이 요청되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과거형이 필요했다먼 김동인은 과연 그 어떤 방법을 가지고 한국 근대 소설의 선구자가 되었나 보자.

 

근대가 민족국가로서의 나라세우기 과정이고, 근대문학이 소설의 탄생 과정이라먼 한국의 근대화 과정은 김동인의 근대문학 형성 과정과 일단함께했다고 볼 수 있다. 1919년 삼일독립운동의 힘으로 나라세우기가 일어난 그 해에 김동인 또한 조선의 소설을 탄생시키는데 주춧돌을 놓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좀 구체적으로 보자. 김동인은 3.1 운동이 일어나기 전, 그러니까 191928동경 유학생 독립선언문의 발표가 있던 날 불놀이의 시인 주요한 등 몇몇 동인들과 한국 최초의 순문예지 [창조]를 창간했다. 이는 역사적 사실로 부정할 수 없다. 더구나 그가 한국 최초의 순문예지 [창조]를 창간하먼서 가졌던 의식은 그대로 근대 의식을 대변하는 것이어서, 즉 그는 창간호에 실린 [약한 자의 슬픔]이라는 최초의 단편 소설을 통해 구어체를 확립하고, 3인칭 를 처음으로 썼으며, 특히 과거형을 과감하게 구사했다는 점을 볼 때, 그가 한국 근대소설의 선구자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즉 그는 한국 근대소설의 피오닐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 하다고 볼 수 있다.

 

what matters,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무슨 소린가. 그의 소설 작품이 비록 근대적인 산문이 요구하는 여러 형식적 요건을 갖추었다고는 하나 더욱 중요한 것은 내용이고, 그 내용 속에 드러난 삶의 태도이다. 왜냐하면 태도야말로 궁극적으로 작가적 인식을 드러내고 지향 가치를 엿볼 수 있는 세계관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 그렇다먼 그가 그토록 호언하는 [약한 자의 슬픔]을 보자. 이 작품의 내용은 주인공 강 엘리자베트가 K남작과 불의의 관계를 맺은 후 쫓겨나 소송을 제기하나 재판에 지고, 유산한 후에 자살을 꾀하나 이 역시 실패하고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참사랑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도입을 보자.

 

가정교사 강 엘리자베트는 가르침을 끝낸 다음에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돌아오기는 하였지만 이제껏 쾌활한 아이들과 마주 유쾌히 지낸 그는 찜찜하고 갑갑한 자기 방에 돌아와서는 무한한 적막을 깨달았다.

......”

 

자 이것은 오늘 현시점에서 읽어 보아도 그 모던한 감각을 느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국적인 이름의 설정과 단정한 문체, 자신의 내면을 분석하는 심리적 자아의 등장 등...무엇보다 당시로서는 처음 시도되었던 구어체 문장과 3인칭 대명사 의 사용, 그리고 과거형의 과감한 도입, 이것은 과연 김동인이 형식적으로 근대적 멘탈리티를 드러내기 위해서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확연히 알 수 있는 근대 소설사의 한 쾌거임에 틀림없다. 그는 이런 자신의 작업에 대해

 

 

“‘한다’ ‘이라’ ‘-인다등의 현재법 서사체는 근대인의 날카로운 심리와 정서를 표현할 수 없는 바를 깨달았다. 현재법을 사용하면 주와 객체의 구별의 명료치 못함을 깨달았다. 우리는 감연히 이들을 척하였다.”

 

- 김동인, ‘조선근대소설고

 

 

라고 할 정도로 그가 근대적의식(구별의 명료함)의 소설적 문법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그렇다먼 이건 그대로 김동인의 것일까. 즉 김동인은 어떻게 이렇게 형식에 대한 명료한 근대적 지식을 터득하게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김동인이 소설을 배우게 된 것은 전혀 일본 내지內地에 유학하게 되먼서다. 그는 미술을 배우려다 그만두고 어떤 계기로 소설을 배우게 되었는데, 당시는 일본의 근대문학이 형성되던 무렵이었다. 그런데 당시의 일본근대문학이 메이지 유신의 군국주의, 제국주의화 과정에 놓이게 되먼서 정치적 좌절을 내면화시키는 과정에 놓여있(가라타니 고진, [일본근대문학의 기원])던 결과, 김동인이 받아들인 일본근대문학은 매우 자연주의적인 것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근대적인 민권의식이 좌절되먼서 나타난 일본의 자연주의가 마치 프랑스의 그것([마담 보바리])처럼 가령, 루카치는 [역사소설론]에서 플로베르의 자연주의적 성취를 두고 감정의 야비화라고 힐난하먼서 말하기를, 보바리의 환상과 환멸에는 1789년에서 1848년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부르주아 혁명이 광범한 대중의 현실적 열망을 채워주지 모함으로써 초래된 민중의 원한과 분노가 극히 말초적인 신경으로 은유화되었다고 했는데, 이는 그대로 일본의 근대소설이 정치적 좌절과 연계되먼서 내면의식에 기울고, 사소설화私小說化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는 이유와 그 본질상 다르지 않다. 그는 당시 명치학원의 대선배로 자연주의 소설가로 이름이 높았던 시마자키 도손에게 큰 영향을 받았(김동인, ‘문단 30년의 자취’)는데, 김동인이 이렇게 일본의 근대문학을 대변하는 자연주의 문학을 이식받는 과정은 곧 조선의 주권이 좌절되먼서 나타난 허무의식과 다르지 않고, 이는 그대로 [약한 자의 슬픔]의 주인공이 황폐한 세계의 무게에 짓밟혀 패배당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즉 작가가 현실을 바라보는 인식은 매우 회의적이고 비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작품의 결말을 인위적으로 재생의 결의와 사랑의 깨달음으로 끝맺음으로써 비관적 현실과 타협하는 순응주의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 여기 현실에 대해 순응주의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는 자연주의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문학으로부터 전체적(역사적, 사회적) 관심이 수축하고 개성의 자율이란 것이 당면의 과제가 된 시대의 양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근대적 인식과 쌍을 이루는 것이었다. 즉 자연주의는 사회를 떠나 개인을 우선에 두고 있는 근대적 망탈리테와 통하는 그것으로 정치한 묘사의 기술을 보여주고 있는 이런 경향을 추수하고 있는 것은 그것대로 한 장점일 것이다. 그러나 양지가 음지를 낳듯이, 장점이 그대로 단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니 그것은 과연 개인을 전체의 관점에서 보는 고차적인 입장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즉 자연주의는 비관주의의 소산이다. 가난과 술에 절어 비참한 죽음을 맞는 제르베즈(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의 여주인공)를 상기해 보자.

 

김동인의 현실순응주의적 자연주의관을 잘 나타낸 작품으로 그의 대표작이라는 [감자]를 들 수 있다. , 여기! 극심한 가난으로 인한 주인공의 도덕적 타락과 비극적 죽음을 보여주고 있는 [감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가난이라는 환경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거다. 이는 그대로 자연환경결정론이다. 즉 인간의 도덕적 의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 작가를 작품과 분리시킬 수는 없으니, 즉 작품도 하나의 작가의식인 뇌분비의 산물이니 이를 그대로 대입해 보자. 그러먼 우리는 가난이라는 환경을 일제시대의 식민현실로, 주인공의 운명을 김동인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먼 가난은 그대로 객체이고, 주인공은 주체다. 이런 사실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객체가 주체보다 앞선다는 거다. 즉 김동인의 작가적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주요 작품을 가로지르는 작품의 경향이 자연주의이고, 이 자연주의가 현실에 대한 비관적인 인식을 드러내는 문학 사조라먼 이를 두고 근대적이라 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김동인의 문학사적 평가는 그 형식에 대한 모던적 인식에서 나온 것이지 그의 작품 내용에 기반한 실체적인 평가라고 볼 수는 없다.

 

이렇게 현실에 대한 순응적이고 비관적 태도를 드러내는 작품들이 암울한bleak 현실이 제기하는 본질적인 모순에서 벗어나 트리비얼trivial한 이야기에 빠지고 사소설적 경향을 지니며, 더구나 김동인의 경우처럼 색정문학에 가까운 타락을 면치 못하는 것은 그만큼 작가의 사상과 세계관이 투철하지 모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이는 그만큼 근대적 자아의식이 확고하지 못하다는 반증에 다름 아니다.

 

이와는 달리 한때 김동인과 한 소설을 두고 격론을 벌였던 염상섭의 경우는 어떤가. 그는 김동인과 달리 조선의 암울한 현실을 그대로 묘파하고 식민 치하의 조선의 현실을 무덤([만세전의 원래 이름]’으로 보았지 않은가. 바로 여기에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의 분기점이 놓인다.

 

3, 그는 과연 전범이 될 만한 모범적 작가였나

, 여기 한 작가의 업적을 기려 그의 이름을 딴 상을 수여하기 위한 전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머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가 타인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적인 행위를 했느냐 라는 객관적 사실의 문제다.

 

, 그렇다먼 식민지라는 암울한 시대 현실에서 작가는 무엇으로 타인의 모범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머 화가가 선과 색, 명암으로 명화를 낳아 모범이 되듯이, 작가는 어쩔 수 없이 붓을 들고 명작을 낳아 모범이 되는 것이다. , 여기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어떤 대상을 보고 참을 수 없는 예술적 충동을, 화의畵意를 느끼듯이, 꼭 그렇게 작가 또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참을 수 없는 예술적 충동을, 작의作意라고 부를 수 있을 구체적인 동기를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한 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격한 감정의 발로이자 강한 의지의 발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예술행위 일반을 놓고 볼 때,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기호는 항상 그 누군가를 또는 그 무언가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 무엇을 위한 도구적 예술(리얼리즘)이든, 아니먼 예술 그 자체를 위한 자율적 예술(모더니즘)이든 예술적 생산물도 결국은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그런데 작가가 생산한 예술품이 민족의 지향하는 목적과 배치된다먼 어떨까...

 

여기서 우리는 다시, 김동인의 단편예술작품과는 다른 성격의 글을 보게 되는데, 그는 어느 순간부터 그 많던 재산을 기생과의 외입질과 사업 실패로 다 날리고 즉 삶이 파탄나고 생이 곤궁해지기 시작하먼서 마치 가난이 극도로 심각해지자 몸을 팔기 시작하는 복녀처럼 그토록 아끼던 매문행위를 서슴치 않는 그를 볼 수 있다. 예술에 대해 청교도 같은 결백을 지닌 그였다. 그동안 예술성을 지닌 덴시티density한 단편 중심으로 그나마 상당한 수작의 예술작품을 건져 올린 김동인이 당대의 생활상과 사회상을 가미한 상업성을 지닌 티크thick한 신문 연재 장편소설에 손을 대고 타락하기 시작한 것은 머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치자. 머 그도 7곱 식구를 거느린 가장으로서 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적인 인간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장편을 쓰다 모해 친일 작품을 쓰기 시작하먼서 그의 자아정체성은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우리는 복녀의 가난과 도덕적 타락을 복녀 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 없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당시의 명망있는 작가가 먹고 살기 위해 친일을 했다고 그에게만 책임을 씌울 수는 없다. 그것은 폭력적 현실과 타락한 사회가 복녀의 운명을 망쳐놓았듯이, 꼭 그렇게 김동인 또한 일제라는 폭력적 현실과 빌어먹을 타락할 대로 타락한 현실이 그를 망쳐놓았다고 볼 수도 있다. 자료를 보건대, 친일문학이 한국에서는 1940년을 중심으로 시작하였다(임종국, [친일문학론]). 이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 한반도를 집어삼킨 일제가 그 제국주의적 야심을 품고 만주사변(1931)을 일으키고 이른바 대동아전쟁(1941)을 일으키먼서 전시체제로 몰아갔던 조선반도의 폭력적 현실이 근본적인 악의 발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과연 악은 일제였지 김동인이 아니었다.

 

, 그렇다고 해서 가난을 핑계로 도덕적 타락을 일삼고 왕서방을 살인까지-미수에 그치고 그가 오히려 죽고 말았지만- 했던 복녀를 용서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시대를 핑계로 친일 행위를 일삼고 반역자-[반역자]는 외배 이광수의 친일을 옹호하고 두둔한 단편소설이다. 그는 소설로만이 아니라 해방 이후 반민족처벌법 시행 당시 이광수를 적극 변호하였다-를 두둔했던 김동인을 묵인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는 소극적인 친일행위를 한 작가와는 그 유가 다르다.

 

 

우리 문단인이 시국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내선일체內鮮一體로 국민의식을 높여가게 된 것은 만주사변 이후다. 만주사변滿洲事變만주국이 탄생하고 만주국 성립의 감정이 지나사변支那事變으로 부화되자 조선에선 내선일체의 부르짖음이 높이 울리고 내선일체의 대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다시 대동아전쟁이 발발되자 이제는 내선일체도 문제거리가 안 되었다. 지금은 다만 일본신민日本臣民일 따름이다.

한 천황폐하의 아래서 생사를 같이하고 영고榮枯를 함께할 한 백성일 뿐이다. ‘내지內地조선의 구별적 존재를 허락지 않는 한 민족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종족種族을 캐자면 다를지 모르나 일본인과 조선인은 지금은 합체合體된 단일민족이다.”

 

-김동인, ‘감격과 긴장’ [친일문학작품선집], 실천문학사

 

 

, 여기 암울한 시대현실에서 조선과 일제의 민족 모순에 대한 본질적 인식을 뒤로 한 채 두 나라가 내선일체를 넘어 일본신민일 따름이고, 더 나아가 일본인과 조선인은 합체된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점층적 기법으로 강조하고 있는 그의 문재도 문재려니와 우리가 확인하는 사실은 무엇인가. 네이키드naked하다니, 머 아주 노골적이지 않은가...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에게서 그 어떤 일말의 작가적 자존심과 고민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조선의 천재 이광수가 현실적으로 조선 민족은 일본의 굴레를 도저히 벗을 수 없다고 독립무용론을 펼치며 차라리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반역자])는 자조自嘲 섞인 모순적 논리를 드러내고 있다먼, 김동인은 이와도 달랐다. 그만큼 그는 철저한through’ 친일작가였다. 이것 이외에도 [백마강], [성엄의 길], ‘총동원 태세로’, ‘일장기의 물결’, ‘반도 민중의 황민화등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그가 어느 작가보다 많은 친일 작품을 낳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 자신의 말대로 어떤 기생과 사괴게 되어 한번 쏠리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성격’(‘문단 30년의 자최’)의 일면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학이 하나의 삶의 수단이 되었을 때 나타나는 극단적인 사례를 본다. 다시 말해 문학이 그 무엇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기능하고 도덕이라는 가치를 상실하였을 때 볼 수 있는 잔인의 극을 보게 된다. 즉 우리는 결국 문학이 자신의 삶의 태도를 스스로 형성하고 결정하는 주체적인 삶의 방식이 되지 모하고 그 무엇인가를 위해 맹목적으로 기능할 때 어떤 참혹스런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본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김동인, 그는 과연 한국 근대 소설의 선구자 아니었나. 다시 말해 그는 그 누가 뭐래도 삶의 태도를 스스로 형성하고 결정하는 주체적 삶의 방식의 주인공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 이런 자가 외부의 힘에 쉽게 무너져 복녀처럼 타락하고 말았는가.

 

 

이게 다 운명 탓이지요.”

-귀스타프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이게 바로 그 빌어먹을 자연주의 망탈리테 아닌가.

 

나는 여기서 그 본질적 의미에서의 근대적 자각이 철저하지 모하먼 쉽게 무너지고 마는 나약한 지식인의 초상을 본다. 참 허약한 자연주의라니...

 

그러나 한국 근대의 소설 문학은 김동인 이외에도 이광수를 비롯 염상섭, 현진건, 나도향과 최서해, 한설야를 거치면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거듭, 드디어 민촌 이기영에 이르러 거대한 리얼리즘의 강물을 이루먼서 조선 소설의 일대 장관을 이루었으니, 이런 소설적 성취는 무엇보다 조선의 모순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진실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기영의 [고향], 이것은 과연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성을 폭로하먼서 당대 조선인의 실상을 진실한 화폭으로 놀랄 만큼 생동감 있게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런데 그나마 자연주의에서 색정문학으로 기울다 못해 아예 친일문학으로 타락한 김동인을 한국 소설의 우두머리로 삼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불성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다시 말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은 친일행위로 민족문학의 발전에 해를 끼치고 민족의 이익에 누를 끼친 그를 기리는 상을 제정해 이 악업을 떨치지 못하다니... 이것은 참으로 부끄러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통념과 관행이라는 개가죽을 벗겨내지 모한 채 비성숙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정신적 후진국의 세태가 아닌가.

 

그렇다먼 대체 성숙成熟이란 무엇인가. 성숙이란 머 미숙한 단계를 벗어나는 존재의 내적, 질적 변화를 의미한다. 이것은 마치 애벌레가 번데기를 지나 나비로 성장하듯이, 어린이가 청소년기의 미숙한 단계를 지나 어른이 되는 과정과 유사한 것이다. , 이런 성숙의 과정에는 반드시 번데기가 스스로 허물을 벗듯이, 스스로 미숙한 껍질을 벗어던져야 하는데, 이 껍질 속에는 칸트([계몽이란 무엇인가])가 말하는 바의 게으름비겁이 들어 있다. 따라서 성숙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하여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엄숙한 판단과 이성적 사고에 바탕하여 나를 둘러싸고 있는 구속의 굴레를 과감하게 끊어낼 줄 아는 결단용기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근대정신이고 독립정신이 아닌가.

 

4, 결어,

김동인이 타락한 것은 그가 정신의 북극성을 갖지 모했기 때문이다. 그가 배워 이식한 자연주의는 가장 대표적으로 [마담 보바리]를 통해 볼 수 있듯이, 본래 프랑스의 정치적 좌절에서 나온 원한과 분노가 말초신경적으로 형상화 되었던 것이고, 이것은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로 치닫고 있던 일본의 정치적 좌절에서 그대로 재현되었거니와 김동인은 당시의 문학 사조를 조선적 현실에 아니, 자신의 운명에 걸었던 것이니 그의 자연주의적 좌절과 타락은 머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김동인이 근대적 의식을 형식을 통해 보여줬던 과감한 실험정신과 도전정신은 문학사에 값진 유산으로 남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형식에서의 성공과는 별도로 근대적인 이념을 작품으로 제시하는 데는 실패했다. 따라서 그를 근대 소설의 진정한 선구자라 하기에 주저치 않을 수 없다. 말하건대, 김동인은 근대 소설 형식의진정한 개척자다.

 

또한 김동인은 그 어느 친일작가 못지않게 적극적인 친일활동을 하고 많은 친일작품을 남긴 철저한 친일작가였다. 이런 그의 반민족적인 궤적을 두고 문학사의 전범이라고 할 수는 없다. 즉 그는 외려 민족의 이름으로 벌을 받을 사람이지 결단코 기릴 작가가 아니다.

 

이와 같이 김동인은 한국 근대 소설의 진정한 선구자도 아니었고, 전범이 될 만한 모범적인 작가는 더욱 아니었다. 따라서 한국 근대 소설사 기술은 일부수정이 불가피하고,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 수상 또한 폐지가 마땅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

 

나는 그렇게 본다.

 

김상천 문예비평가|2018.11.14. 뉴스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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