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도시철도 3호선 종착역인 호포에서 아침을 맞아한다. 습관처럼 BTC 아카데미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 주변을 살핀다. 사포지향 갈맷길 2백리의 마지막 여정이 낙동강을 따라 펼쳐져 있다. 김해 대동 월촌리의 들이 신어산 자락을 병풍삼아 누워 있다. 그리고 낙동강살리기구호가 붉은 깃발 속 유령처럼 서 있다. 예전에 이 길을 따라 물금으로 들어가서 1022번 지방도를 타고 원동 배내로 가던 길이다. 35번 국도는 양산 동면을 지나 언양, 울주, 경주까지 뻗어가는 옛 길이다. 아마도 황오동 사거리에서 끝을 맺으리라.
이제 도시철도는 양산 국철로 이어진다.
심창신팀장이 박경애씨로부터 조치를 받고 있다. 욕 본 사람들이다.
4포2백팀들은 BTC아카데미에서의 일박이 마지막 밤이라고 막걸리와 소주에 통닭과 족발, 포도를 곁들여 잔을 돌리며 정을 나누었다. 김태광님의 찬조가 있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면서 하나가 된다는 것 신기한 일이다. 사람들 사이에 벽이 없었다. 그냥 좋은 모습만 담아가기 때문일까. 그런 점에서 본다면 3박4일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극히 짧은 시간이다. 아무튼 이곳에서의 잠자리를 제공한 부산교통공사(사장: 안준태)에 고마움을 전한다. 요즘 교통공사는 저탄소 친환경 녹색교통 수단의 표본으로 도시철도의 안전성과 정시성,쾌적성,경제성, 건강상을 널리 홍보하고 있다.
구분 |
내용 |
날짜 |
2010. 10. 20(수) |
컨셉 |
낙동강하구길 : 요산 김정한 사람답게 살아라 |
코스 |
화명역~화명둔치~구포역~삼락둔치~을숙도 |
일정 |
08:00~09:00 아침식사 09:00~09:30 *화명역까지 전철로 이동 09:30~10:30 화명역~화명둔치~제2낙동대교 10:30~11:00 낙동강 하구 해설 11:00~12:00 제2낙동대교~삼락공원 입구 12:00~13:00 점심식사(장소: 삼락공원 *요산 김정한 해설) 13:00~17:00 삼락공원 입구~을숙도 17:00~17:30 도착식 및 완보증 수여 17:30 해산 |
이야기 거리 |
낙동강 하구 장소: 제2낙동대교 / 강사: 구영기 부산카톨릭대 교수 낙동강과 을숙도, 그리고 요산 김정한 장소: 삼락공원 / 강사: 이상섭 소설가 |
도착식 |
장소: 을숙도 내용: 완보증 전달, 문화공연, 폐막선언 |
낙동강 하구길 (구포역~을숙도) |
접근하기 편한 국철 및 지하철 구포역이 있다. 낙동강 제방을 따라 걷는 길이다. 출발지에서 2km쯤 가면 작달막한 표지석이 구포~삼락 중간쯤에 서있다. ‘천연기념물 제179호 낙동강 하류 철새도래지’라 적혀 있다. 철새도래지 구역이 생각보다 넓다. 1km정도를 더 가면 국내 최대의 자연형 둔치인 삼락강변공원이다. 대부분 습지여서 기후 변화의 천연보루라 할 수 있다. 강쪽으로 가면 둔치 습지를 만난다. 이곳에 걷기 좋은 오솔길 3km가 숨어 있다. 중앙부는 기존 농로를 다듬었고 강변부는 자연지형을 살리는 방식으로 폭 1.5m의 오솔길이 생겼다. 막히거나 끊긴 부분은 목재 테크을 달아냈다. 흩어진 길들을 남-북과 좌-우로 소통시키다 보니 전체가 모세혈관처럼 이어졌다. 삼락둔치를 빠져나오면 사하구로 이어지는 강변대로 인도다. 그 끝자락에 을숙도가 자리잡고 있다. (18.5km) |
섬김의 길 걷기, 나눔의 길 걷기를 위해 오늘은 서로가 서로에게 큰절로서 시작한다. 첫날 108배 행사이후 달라진 모습이다. 호포역을 향해 이동한다. 호포역에서 화명역까지 지하철을 이용한 다음 화명역에서 내려 대천천하류에서 오늘의 일정이 시작된다.
화명둔치 속으로 4포2백팀들이 들어가고 있다.
멀리 제2낙동대교가 지난다.
낙동강 하구
강과 바다가 만나 이룬 놀라운 생태계 구영기 부산카톨릭대 교수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 중 낙동강 유역
태백 황지 못에서 발원하여 경상도 지방을 두루 훑으며 장장 525km를 흘러내린 낙동강 물은 북구 금곡동 자락을 지남으로써 비로소 부산의 품에 들어오게 되고, 여기서 더 내려가 비로소 남해 바다와 만난다. 낙동강 하구 쪽에서는 바닷물이 밀물 때는 밀려들어오고 썰물 때는 밀려나가기 때문에 이 강의 마지막 줄기가 어디에서 끝난다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얼추 을숙도 남쪽 끝까지를 강의 하구로 본다면 이 강은 부산광역시 경계선 안에서 23.5km쯤을, 옛날 이수로 따지면 육십리가 채 안 되는 길이로 흐른다.
그러나 이 길이는 정확하지 않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낙동강 물줄기가 바뀌고 강 옆의 땅과 강 안의 삼각주도 덩달아 끝없이 넓어졌다 줄어들었다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낙동강 하구의 땅이 오랜 기간 동안 솟았다 꺼졌다 했음이 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그래서 낙동강 하구를 살아 꿈틀대는 땅이라고 까지 이른다.
살아 꿈틀대는 땅
몇 년 사이에 새로운 모래톱이 솟구쳐 오르거나 갑자기 줄어들어 아예 없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계속 커져 다른 모래톱에 이어지기도 한다. 쉼 없이 살아 꿈틀대는 땅, 낙동강 하구가 바로 그런 곳이다.
1960년대 낙동강 하구의 돛배
명호도와 을숙도 등 위쪽의 삼각주는 뭍으로 안정된 반면에, 아래쪽은 정확한 지도를 그리는 일이 불가능할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뉘어 있던 도요등이 동서 양편으로 자라나 서쪽에 있던 갈매기등과 연결되어 하나의 섬이 만들어졌다.
낙동강 삼각주도 강물에 실려 온 진흙과 모래가 쌓여 만들어졌다. 진우도, 장자도, 대마등이 만들어진 때는 1910년대이며, 신자도(새등)는 1970년, 맹금머리등은 1986년쯤, 도요등, 다대등은 1989년쯤부터 각각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들이다.
역사학자들은 삼국 시대까지만 해도 강서구 대저동과 강동동, 명지동 삼각주는 물속에 잠겨 있었을 것이고, 강의 동편은 오늘에 남아 있는 금곡동 조개무지를 비롯해서 모라동, 학장동, 하단동, 괴정동, 신평동, 다대포의 조개무지를 잇는, 그러니까 지금보다 좀 더 뭍으로 들어간 곳에 경계선이 이루어져 있었으며, 강의 서쪽 경계선은 지금의 김해군 대동면 예안리 옛 무덤, 김해시 회현동 조개무지, 북구 강동동 조개무지, 김해군 장유면 수가리 조개무지로 이어져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강의 남쪽에는 퇴적된 흙모래로 이루어진 크고 작은 섬들이 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강 흐름 모양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1916년부터 1926년 사이, 강서구 녹산동에 녹산수문을 만들어 강물을 막기 전까지만 해도 서낙동강이 본줄기였고 지금의 낙동강은 지류에 지나지 않았었다. 강줄기를 이렇게 돌리고 난 뒤 낙동강 하구 모양은 많이 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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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갈대밭 위에 내리는 새
낙동강 하구는 온 세계에 알려진 철새들의 보금자리이다. 부산광역시 서낙동강 선암다리에서 낙동교를 잇는 국도의 남쪽과 금곡동에서 화명동, 구포동, 모라동, 삼덕동, 학장동, 엄궁동을 죽 거쳐서 사하구 다대동에 이르는 낙동강 하류 일대에는 몇만 마리인지 이루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새들이 사시사철 날아든다. 이곳은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이어서 물에 떠 사는 작은 생물이 푸지고, 물풀과 물고기, 조개, 가재, 곤충 따위가 넉넉하여 새들에게 좋은 먹이가 되며 강가에는 모래와 갈대가 많아 새들이 알을 낳고 새끼를 치기가 좋아서 온갖 새들이 날아드는 것이다.
이곳에 모여드는 새들을 사는 버릇에 따라 나누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사는 새로는 제비, 꾀꼬리, 뜸부기처럼 여름에 이곳에 와서 새끼를 치고 살다가 가을이면 따뜻한 동남아시아로 날아가 겨울을 나는 여름새와 기러기, 메추라기처럼 북녘에서 여름 동안에 새끼를 치고 살다가 이곳에 와서 겨울을 나는 겨울새가 있다. 또 새들 중에는 번식지에서 겨울을 날 곳으로 옮겨가는 길에 잠깐 들렀다가 가는 나그네새, 옮겨가는 길에 폭풍을 만나거나 해서 길을 잃어버린 떠돌이새도 있는데, 이런 새들을 한꺼번에 일러 철새라고 한다. 이곳에는 참새나 백로류처럼 늘 머물러 사는 새도 많지만, 특히 철새가 많이 모여들므로 나라에서는 이곳을 ‘낙동강 하류 철새 도래지’라 하여 천연 기념물 179호로 정했다.
새 중에, 다리가 짧고 몸 뒤쪽에 달려 있으며 발가락 사이에는 물갈퀴가 있고 눈은 머리 조금 뒷전에 붙어 있고 꼬리에 기름샘이 있어서 날개에 물이 묻지 않도록 입으로 이 기름을 찍어 바르는 놈들은 주로 물위를 헤엄쳐 다니며 물 속 작은 동물을 잡아먹고 산다. 또 다리와 목과 부리가 긴 놈들은 물이 얕은 곳을 뚜벅뚜벅 걸어다니면서 물고기와 개구리 따위를 잡아먹고 산다. 1956년에서 1964년까지 조류학계에서 조사한 것에 따르면, 이곳에 날아드는 철새는 아비과 1종, 오리과 22종, 갈매기과 4종, 바다오리과 2종, 백로과 1종, 뜸부기과 1종, 두루미과 1종, 도요과 11종, 칼새과 2종, 휘파람새과 1종으로, 모두 10과 46종에 이르렀다. 지금은 날아드는 철새의 종류가 많이 줄어들었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이곳은 그들의 천국이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새들이 끼룩끼룩, 꽤액꽤액 소리를 내며 먹이를 쫓거나 무언가에 놀라서 한꺼번에 푸드득 물을 박차고 날아오를 때는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는데, 문학평론가 김열규씨 같은 이는 이를 보고 ‘군무하는 자유, 무리져 흩어지는 해방’이라 하며 감탄했다.
낙동강 하구의 아름다움에 철새 못지않게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 몇십만평에 이르는 갈대밭이다. 예전까지만 해도 일웅도, 을숙도에서 사상에 이르는 강가에는 백만평이 넘는 모래밭에 갈대가 무성했었는데, 이제는 사상의 갈대는 완전히 없어져 버렸고 을숙도에 오십몇만평, 일웅도에 이십이만평의 갈대밭이 있다. 봄에 싹이 나기 시작해서 여름이면 사람 키를 훨씬 넘게 자란 갈대가 눈 가는 데까지 끝없이 연두빛 물결을 이룬다. 가을이면 또 이 갈대밭에는 갈꽃이 활짝 피어 해질녘 이 일대는 온통 은빛 바다가 된다.
이 무성한 갈대 위로 새들이 무리지어 내려앉는 광경은 낙동강 하구에서만 볼 수 있던 절경이다. 1987년에 완공한 낙동강 하구언이나 낙동강 하구 공업단지 조성사업을 반대해 온 사람들이 주장했던 것의 하나가 그런 개발로 새떼와 갈대밭이 이루는 아름다움이 망가진다는 것이었다. 하구 개발을 해서 돈을 아무리 많이 번다고 해도 이 개발 때문에 새들이 쫓겨 가고 갈대가 죽어 낙동강 하구가 황폐해진다면 그때에는 개발로 번 돈의 몇 곱절을 들여도 그런 풍광을 다시 만들 수 없으리라던 염려를 되새겨야 한다.
아미산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하구
아미산에 올라 낙동강 하구를 내려다보는 이들은 누구나 탄성을 내지른다. 외국의 습지 전문가들도 하나같이 “원더풀”을 외치며, “이런 대자연을 도심에 가진 당신들이 부럽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을숙도에서 멀리 가덕도로 이어지는 낙동강 하구의 광활한 갯벌과 남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까지 흘러가는 낙동강의 탁 트인 풍광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아미산 일대는 낙동강 하구에서도 솔개를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겨울철, 하루 활동을 끝낸 민물가마우지가 가덕도까지 길게 한 줄로 늘어서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또 하나, 이곳에서 바라다보는 해지는 광경과 바다에 뜬 뭍별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낙동강과 을숙도, 그리고 요산 김정한
소설가 이상섭
낙동강과 바다가 얼싸안고 만든 새들의 낙원 을숙도. 을숙도는 새들의 공화국, 새들의 유토피아다. 흐르는 바람의 등에 탄 철새를 먼저 유혹한 것은 갈대의 농염한 허리춤과 손사래였을 것이다. 갈대는 삼각주 지하 깊숙이 저장된 퇴적층을 자양분 삼아 단체로 허리를 세운다. 원형으로 퍼져 나가는 갈대의 뿌리는 새들의 먹이가 되고 숲은 은신처와 둥지를 틀 보금자리 구실을 한다. 그러니 갈대숲은 새들에겐 기막힌 이상향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을숙도의 갈대를 베어내며 모래톱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들에게 추방명령이 내려졌다.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삶이 지금처럼 무자비하거나 폭력적이진 않았다. 일제의 강요에 의해 시작된 ‘근대의 삽날’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갈대는 처참하게 ‘살해’되기 시작했다. 대대적인 수문공사를 시작으로 모래톱을 슬쩍 ‘동척’의 땅으로 둔갑시킨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땅의 주인이 바뀐다.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요산 선생이 다시 붓을 들게 한 단편소설 「모래톱 이야기」는 그런 이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가슴 아린 이야기다. 요산이 없었다면 그 작디작은 모래톱 이야기는 갈대와 함께 수몰되었을 것이다. 아니 영영 잊혀졌을 것이다.
낙동강 가까이서 자라고 낙동강 가 농민들의 슬픈 생활의 내력을 알기 시작한 나는, 낙동강 물을 마시고 낙동강 가 땅에 목을 매달고 살아온 민중을 잊을 수가 없었다. 민족에 관계되는 일을 생각하고, 글을 쓰고 싶을 때는 늘 이 강과 이 강가 사람들의 일이 머리에 떠올랐다. 내가 학업을 중단하던 해는 양산 농민사건이 터졌던 때고, 조선일보에 발표됐던 「사하촌」을 쓰던 해는 김해 대저면 소작인 오백여 명이 끔찍스런 소작쟁의를 벌였을 무렵이었다. 이때도 낙동강 가 양산, 김해 농민들은 비웃1)처럼 줄줄이 포승에 묶여 부산까막소로 끌려갔다. <중략> 낙동강에 관련된 이러한 내력을 잘 알고 있는 나는 해방 후에도 이에 대한 관심을 안 가질 도리가 없었다. 일인이 떠나고 국유재산이 된 낙동강 유역의 많은 땅들이 소작인 이외의 소위 유력자들의 이름으로 넘어갔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사실 그런 예가 없지 않았다. 그리고 일제 때 그들의 앞잡이가 되어 독립지사들과 민중을 괴롭히던 사람들이 버젓이 국회의원도 되고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중략> 나는 꿈같은 생각만으로써 글을 쓰는 버릇을 배우지 못했다. 발로써 쓰고 싶다. 낙동강 물이 공장폐수로 시커멓게 변해가고 있는 것을 보고서도 입 딱 닫고 있어라 해도 검은 것은 검다고 해야 직성이 풀린다. <중략> 내가 쓴 「모래톱 이야기」는 바로 이곳 사람들이 겪은 지나간 이야기였고, ‘황폐한 모래톱 - 조마이섬을 군대가 정지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는 구절이 작품의 끝이었다. 오늘의 이 낙동강변 이야기는 누가 어떻게, 써 줄는지…….
―김정한 ‘낙동강의 넋두리’ 「사람답게 살아가라」 43쪽
「모래톱 이야기」의 서두에서 요산 선생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십 년이 넘도록 내처 붓을 꺾어 오던 내가 새삼 이런 글을 끼적거리게 된 건 별안간 무슨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서가 아니다. 오랫동안 교원 노릇을 해오던 탓으로 우연히 알게 된 한 소년과, 그의 젊은 홀어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그들이 살아오던 낙동강 하류의 어떤 외진 모래톱―이들에 관한 그 기막힌 사연들조차, 마치 지나가는 남의 땅 이야기나, 아득한 옛날 이야기처럼 세상에서 버려져 있는 데 대해서까지는 차마 묵묵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소설 속 공간, 조마이섬은 그런 의미에서 ‘저항의 진지’다. 더군다나 주머니를 닮아 붙여졌다는 이름의 유래와 맹지면(鳴旨面)이란 지명과 건우가 학교에 오가기 위해 탔던 하단 나루터 등 지명까지 고스란히 나타나므로 선생은 분명 이곳, 을숙도를 배경으로 「모래톱 이야기」를 썼다. 다만 이름을 조마이섬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건우 가족은 선비 집안으로 이 섬에 흘러와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왔다. 소설 속 화자인 ‘나’(선생이자 시인)는 ‘나릿배 통학생’인 건우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섬 얘기>라는 짧은 글 때문이었다. 건우의 글은 곧 조마이섬의 역사였다. 당신이 ‘모래톱 이야기’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사실 그건 우리 일제시대부터 60년대까지의 을숙도의 숨겨진 역사를 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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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산선생은 낙동강변 사람들의 삶을 ‘찰가난’이라 명명한 적이 있다. 일찍부터 낙동강 강가에서 자랐고 성장하였으므로 총독부에서 실시한 ‘조선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갯밭과 갈밭이 동양척식주식회사 또는 일본인의 땅이 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땅을 빼앗기고 울며불며 두만강을 건너 간도로 떠나는 사람들도 보았으리라. 그랬으니 응당 당신의 마음 중심에는 낙동강 강줄기가 차지하였을 것이고 강을 기반으로 살아간 민중들의 삶과 애환을 작품으로 형상화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사라졌지만 700리 강물은 여전히 살아 흐르고 있다. 하지만 낙동강 가의 애환은 사라진 것일까. 아니다. 강가 사람들의 삶은 더 힘들어지는 중이다. 일본인보다, 전쟁보다 더 무서운 ‘개발 광풍’이 여전히 불고 있기 때문이다.
무자비한 개발은 을숙도를 더 이상 ‘동양 최대의 철새공화국’으로 부르지 못하게 했다. 찾아오는 새들의 숫자도 줄었고, 갈대숲도 훼손되었다. 터전을 잡고 살던 사람들도 이젠 없다. 대신 살고 있는 것은 시멘트 건물뿐이다. 그 무뚝뚝한 건물 중 방패 역할을 자청한 놈이 하구언 둑이다. 1983년 4월 23일에 기공하여 기어이 87년 11월 16일 완공된 대형 시멘트말뚝! 아니, 시멘트 바리케이트! 개발과 보존이라는 무려 13년간의 치열한 공방이 있었지만 허사였다. 아마 중동사막에서 돌아온 건설장비를 놀릴 수는 없었으리라. 부산시민의 식수원인 물금양수장까지 밀려오는 바닷물의 역류 방지와 농작물의 염해를 막자는 명분을 갖다붙인 중앙중심적 ‘악개발’ 논리는 결국 부산시민의 숙원사업이라는 가면을 쓴 채 ‘낙동강 항문 막기 공사’를 강행했다. 그리고 끝내 ‘물의 감옥’을 만들었고, ‘강의 죽음’을 야기했다.
물빛은 오염의 정도를 나타내기 마련이다. 보라, 물빛이 얼마나 탁한가. 개발을 정당화하며 쭝얼거리던 ‘새와 갈대가 밥 먹여주냐?’는 말. 그런데 순천만을 보시라. 정말 새와 갈대가 밥을 먹여주고 있잖은가. 그런데도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새들의 서울인 을숙도를 파괴하다니. 새와 갈대,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땅은 인간도 살지 못한다. 강과 물은 ‘한 몸’이다. 그런데 강과 물을 생이별을 시켜놓았으니 어찌 되겠는가. 죽은 조개를 먹은 새가 연쇄적 죽음을 맞이하고, 죽음의 강물을 마신 물고기마저 기형이 되거나 폐사하면서 인간도 죽음의 물살에 휩쓸리지 않겠는가. 하여 을숙도는 ‘죽음의 땅’, 아니 ‘죽임의 땅’이 되었다. 10개의 수문을 갖춘 하구언은 개방을 가장하고 있지만 이제 이곳은 물의 자유로운 흐름을 통제하는 공동묘지로 전락해 ‘낙동호수’가 되었다. 더군다나 물의 흐름은 자연 수로 내의 모래 퇴적층을 만들어 사상 등지를 상습침수지대라는 누명까지 덮어썼다. 신장환자가 피 투석으로 연명하듯, 낙동강은 끊임없이 강바닥을 준설해야 하는 겨우 목숨을 유지하는 운명이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 위로 한창 건설중인 명지대교 교각까지 ‘괴물허수아비’로 합세해,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철새까지 쫓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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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낙동강의 역사를 살펴보자. 일제시대에 들어오면서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낙동강 일대의 침수지대를 제방을 쌓고 수문까지 단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1931~1935년에 완공된 서낙동강의 대동(대저)수문과 녹산수문. 이 두 수문으로 인해 낙동강 물줄기는 확, 휘고 만다. 서낙동강이 넘치면서 동낙동강으로 흘러들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동낙동강 하류지역에 천태만상의 하중도와 모래톱이 다시 형성된다. 그런 와중에도 낙동강은 우리의 삶을 지키는 보루 역할을 포기하지 않았다. 알잖은가.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은 낙동강방어전투2)라는 말에서 보듯 자유 수호의 최후전선이었다는 것을. ‘자유’를 지켜준 우리의 일등영웅 ‘낙동강 하사’. 하지만 강이 지켜준 자유민주주의는 어떠했는가. 무자비한 자본의 힘 앞에 배신을 당하고 이전보다 더 큰 수난을 직면해 있다. 강은 지금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낙동강의 ‘푸른 진주’ 을숙도도 자본의 모진 바람 앞에서는 예외일 수 없었다. 1970년대 분뇨처리장이 들어서 일대는 구린내 진동하게 되었고, 하구언 공사와 쓰레기 매립장까지 건립되면서 또한번 오염의 땅으로 둔갑하고 만다. 그러고도 모자라 유채꽃단지, 골프연습장, 영화촬영소가 들어서면서 위락단지로 ‘역진화’ 중이다. 에코센터는 그야말로 이 모든 음모를 가리기 위한 위장용일지 모른다. 어쨌거나 동낙동강마저 하구언에 의해 막혀 변비환자가 되면서 을숙도를 찾는 새의 수도 현격히 감소해버렸다. 10년 사이에 1/10로 줄었고, 철새들은 이제 급히 서해안의 천수만과 아산만, 금강, 만경강과 천수만 등으로 비상 유턴을 감행 중이다. 뿐만 아니다. 을숙도에는 이외에도 하구언을 관리하는 수자원공사 건물과 물문화관, 조수치료센터, 을숙도 문화회관, 만남의 광장 등의 건물도 들어서 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중병 신세라도 완전히 죽진 않았다. 하여 우리는 을숙도의 얼굴을 살펴야 한다. 그래야 처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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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요산을 알지 못하는 부산 시민들이 많다. 그러니 이곳을 배경으로 쓰여진 「모래톱 이야기」를 알겠는가. 「모래톱 이야기」는 요산 선생의 문학정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유력자의 횡포 앞에 땅을 빼앗기고, 더욱이 건우 할아버지의 투옥으로 귀결되는 비극적 구성이지만, 이 이야기를 서술하는 건우의 담임 선생 ‘나’는 “언젠가는 이 땅이 너희들의 것이 될 거야.” 하고 말함으로써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소외 지대 인간의 비참한 삶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정신을 갈밭새 영감을 통해 보여준다. 갈밭새 영감은 가난하고, 우직하고, 기교를 모르며, 무뚝뚝하고, 힘세고, 정의롭다. 그는 삶을 위해 목숨을 바쳐 성실함의 자세를 사수하며, 남에게 의존할 줄 모르고, 가난을 숙명으로 알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섬사람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갈밭새 영감은 작가의 분신이며 갈밭새 영감의 목소리는 곧 작가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말이 아닌 행동 문학의 속성. 이게 또 하나의 요산 선생의 작가정신이다. 「모래톱 이야기」의 절정은 당연히 갈밭새 영감이 유력자의 하수인을 강에 집어던진 대목이다. 모래톱을 휩쓴 홍수의 와중에서 그 섬을 구해 내기 위하여 유력자가 만든 엉터리 둑을 파헤치는 행동, 이는 갈밭새 영감이 부당하게 수탈당하고 억울하게 짓눌린 삶을 되찾으려는 행위로서 ‘자기희생을 통한 자유’인 행동성을 드러낸 것이다. □
얼마전까지만 해도 길이 있었지만 4대강사업 낙동강살리기로 삼락둔치의 중요지점들이 이렇듯 파헤쳐지고 있다. 그것도 강바닥에서 퍼낸 모래를 쌓아두기 위해서다. 기가 찰 노릇이다. 최근 경남도와 국토부가 낙동강구간 사업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지만, 애시 당초 잘못된 발상이다.
박창근교수(관동대학교 토목공학과 /운하반대교수모임) 는 MB정권의 4대강 사업에 대해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최근 국토해양부가 발간한 홍보책자를 보면 4대강 사업은 1석7조의 다목적 사업이라고 한다. 물 확보, 홍수 방어, 생태 복원, 수질 개선, 일자리 창출, 녹색성장, 친수(親水) 여가 활성화가 그것이다. 세상에는 그런 공짜 사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러하다면 그렇게 좋은 사업을 예전에는 몰랐을까? 그리고 이제야 시작하겠는가? 갑자기 신출귀몰한 하천 관련 이론이 개발되어 4대강 사업이 마치 도깨비 방망이가 된 형국이다. 본래 논리가 부족하면 말이 길어지고 모호해지는 법이다. 4대강 사업의 대표적 프로젝트는 4대강 본류에 보를 건설하고 대규모 준설을 하는 것인데, 예산이 약 7조원에 이른다. 이를 통해 물 확보, 홍수 방어 그리고 수질개선을 하겠다고 주장한다. 13억t의 물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만 있지, 개발될 물을 어디에 사용할지에 대한 계획은 어디에도 없다.
홍수기 동안 공사 자제 바람직
한국방재협회에 따르면 국가하천에서 발생하는 홍수피해액은 전체의 3.6%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의 홍수피해는 지류에서 발생한다. 정부의 논리는 본류에서 홍수 수위를 낮추면 지류에서도 홍수 방어가 된다는 것이지만, 이러한 치수방법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논리고 공학적으로 잘못된 주장이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급조된 궤변에 불과하다. 4대강 사업으로 하천 바닥에서 모래를 걷어내고 보를 건설해 물을 확보하면 수질이 개선된다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는데, 황당하다. 모래는 수질 정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래를 걷어내는 것은 수질 개선에 역행하고, 보는 콘크리트 구조물이기 때문에 수질 개선 기능이 없다. 고인 물이 썩듯이 오히려 물의 흐름을 느리게 해 수질을 악화시킨다.
이렇듯 4대강 사업의 주요 목적은 계획단계에서 타당성을 상실했다. 4대강의 주요 사업인 보 건설과 대규모 준설은 또한 대운하의 핵심사업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4대강 사업은 운하가 아니다’라는 논리를 개발하다보니 ‘억지춘향’을 만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이 현재 진행 중인 4대강 사업이 대운하의 전단계 사업으로 의심받는 이유다. 정부 주장대로 4대강 사업이 대운하의 전단계가 아니라면, 보 건설과 대규모 준설을 폐기하거나 대폭 줄이는 진정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외국 전문가들의 입장은 싸늘하다. ‘사이언스’는 지난 3월26일 ‘복원인가 파괴인가?’라는 제목으로 4대강 사업 특집기사를 다뤘다. 이 기사에서는 한국의 논란거리인 4대강 사업이 생태계를 변경시키며 녹색뉴딜의 상징으로서 빛을 잃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4대강 사업은 선진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하천관리 방식이 아니고, 사업을 위해 자료를 왜곡해 쓸데없는 대규모 건설사업을 정당화시키고 있다고 판단했다. 4대강 사업의 목적이 비록 공공적 가치를 갖고 있다 해도 효율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환경적으로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면, 그리고 사회적 합의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면 사업은 그 타당성을 상실할 것이다.
우려의 목소리 외면하지 말아야
불행히도 현재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은 효율성도 없고 대규모 환경파괴를 일으키며 약 80%의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사업인데도, 정부는 24시간 밤잠도 안 자고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이고 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판단되는데, 이렇게 무리하게 진행하는 것 자체가 4대강 사업이 그만큼 타당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법정 홍수기는 매년 6월21일부터 9월20일까지다. 홍수기 동안에는 하천 내에서 공사를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기간만이라도 공사를 중지하고 사업의 타당성부터 출구전략까지 논의해야 한다. 백년대계의 사업이라면, 그만큼 타당성이 있는 사업이라면 왜 소통의 공간을 닫고 우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가?
2010 나고야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CBD COP10)에 참가(10.18~29)한 환경운동연합 후배들이 10월25일 아침, 국제회의장 앞에서 4대강 사업이 일으키는 생명파괴의 참상을 알리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캠페인에는 일본 람사르네트워크 회원들도 동참했다고 한다. "Let the Rivers Flow!" 한편 회의장 안에서는 NGO회의인 생물다양성연대(CBD Aliance)회의를 통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활동가들은 줄리아 마르통 르페브르 IUCN사무총장에게 한국의 상황을 알리는 보고서가 전달했다고 한다. 어처구니없게도 지난 8월24일 생물다양성협약 사무국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공로상을 수여했다. 그리고 그에 반박하는 피켓팅을 벌이기도 했다.
"한국의 불도저인 이명박에게 생물다양성 공로상을 수여한 것은 수치다" Shme on CBD Award to a South Korwan Bulldozer Mr Lee Myung-bak
지구의 어머니는 파는 상품이 아니랍니다!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는 1992년 리우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작되었지만 기후변화협약과 같은 강제조항이 없는 이유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거나 달성하기는 어려운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인류의 무분별한 개발산업과 가속화된 기후변화로 인해 생물의 멸종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지금, 이제 더 이상 인류는 지구의 생물들은 우리의 이용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이 되었고 이번 10차 총회는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를 의정서에 명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한편 부스를 찾은 많은 이들이 4대강의 현장 사진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축제가 벌어지는 기간 국정감사에 들었던 국회에서 쏟아진 발언들도 어처구니 없다.
먼저 4대강 사업 양심선언을 했던 건설연구원 김이태연구원에 대한 조직적 보복 을 민주당 강창일 의원이 지적했다. 강창일 의원이 국감 중 공개한 이메일에 따르면 건설환경연구실장인 김영석씨는 김이태 연구원에게 외부접촉 상황에 대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김영석 실장은 연구하는 실원들이 불편해 한다는 이유로 사직 권고,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번복하도록 글을 쓰도록 유도, 조직적 따돌림으로 복직 이후 현재까지 수행한 연구 건수가 2건으로 2년 연속 최하등급을 맞아 한 번 더 최하등급을 맞을 경우 해고될 상황에 놓여있다고 ...
둘째, 감사원(장)의 4대강 감사를 고의적으로 지연한 부분에 대해 민주당 박지원, 박영선, 박우순, 이춘석 의원, 희망연대 노철래 의원이 지적했다. 예컨데 감사원이 올해 초 4대강 사업의 편법공사 발주 등의 문제점을 발견하고도 시정 요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고, 낙동강 사업 2팀에 대한 감사를 통해 공사 발주와 계약 적정성에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도 아무런 시정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감사 결과 발표에 대해서도 군사적으로 민감한 천안함의 경우에는 중간 발표를 했지만 지난 2월에 현지 감사가 끝난 4대강 사업 감사에 대해 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으며, 문제가 되었던 은진수 감사위원(이명박 대통령 대선 후보 경선캠프 법률지원단장) 교체 또한 시간 벌기이며, 지금 발표하면 내년도 예산이 삭감될 수 있어 늦추자는 음모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김황식 전 감사원장이 재직 중 대통령에게 수시보고 한 건수가 61건이며, 노무현 정부 당시 24건에 비해 대폭 증가 했다. 특히 감사가 종료되기 전 수시보고한 것은 8건으로 공적자금 관리실태 등 국민적 관심과 민감한 사안이 주류였고, 이는 감사위원회 사전 의결을 거치지 않은 감사원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셋째, 조달청의 4대강 사업 담합 의혹 봐주기, 불량자재사용에 대해 민주당 이용섭, 김성곤 의원,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의원에 제기했다.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 방식으로 발주한 4대강 사업 17건 중 9건이 담합 의혹이 있지만 ·은 단 1건만 공정거래위원회에 담합 의혹 조사를 의뢰했다. 조달청의 들쭉날쭉한 담합 의혹 조사 의뢰가 명확한 세부 기준없이 입찰집행관의 직관적인 판단을 통해 담당 국장 전결만으로 담합 의혹 조사 의뢰가 이뤄지는 탓이라고 밝혔다. 특히 조달청이 ‘일괄입찰 등의 공사입찰특별유의서’ 제35조 제2항에서 담합 의혹 등 불공정행위에 대해 공정위에 조사를 의뢰할 수 있음에도 담합 의혹이 명확한 사업들을 조사의뢰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조달청 품질관리단이 제출한 국감 자료를 인용해 4대강 사업 주요 자재 불량률이 23%에 달한다고 밝혀냈습니다. 공사장에서 많이 쓰이는 자재 중 인조잔디 80% 탄성포장재 52% 미끄럼 방지도로포장재 13.6% 콘크리트 블록 10.5% 등의 불량률을 보였다. 전체 규격미달율도 23%에 이르러 4대 강사업의 공사품질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넷째, 4대강 사업에 투입된 육군 청강부대에 대해 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신성한 국토방위 의무에 맞지 않는 점, 민간사업에 군이 투입하는 것에 대한 법과 명분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다섯째, 민주당 김영록의원이 4대강 사업으로 농어민 예산이 깍였다고 주장했다. "국책 사업을 먼저 추진하다보니, 많은 예산이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홍문표 농어촌공사 사장의 답변이었다. 실제 농업생산기반조성사업은 4924억 원이 줄어들었고, 농로포장 사업은 639억 전액 삭감, 수리시설개보수사업/다목적 농촌용수 개발사업은 1600억/570억이 줄어든 반면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 내년 예산은 4664억이 늘어났다.
여섯째, 민주당 박지원의원은 총체적으로 경제활성화 실패를 지적했다. "4대강 사업으로 34만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19조 4000억 원이 투입 된 지금은 1222개의 일자리만 창출되었다고 합니다. 산술적으로 11만 72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어야 하는데요."
그리고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4대강 사업 중 낙동강살리기 사업의 정부 발주액은 2조 9754억원입니다. 하지만 이중 대구지역에 본사를 둔 업체가 계약한 금액은 1238억원에 불과하다고 밝혀냈습니다. 조달청과 계약한 대구업체 또한 10개 업체라고 밝히고, 골재 채취 업자는 4대강 사업 이전 54개 업체에서 4대강 사업 이후 44개 업체가 골재 채취 허가 중단 되었고, 경영이 악화된 준설업체 대표는 자살까지 할 상황이라고 합니다. 4대강 사업으로 지역건설업체의 지형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생태계 교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 라고 했다.
일곱째 예산과 전용에 대해 민주당 강기정, 이춘석의원, 장세환 의원,박기춘 의원이 지적했다. 물이용 부담금은 상수원 상류 주민들을 지원하고 수질개선을 위해 쓰이는 환경세입니다. 4대강 사업에 의한 수질악화를 뒷수습하기 위한 기금이 아니며 국민이 직접 납부하는 물 이용 부담금을 4대강 사업비로 쓰는 것은 국민적 합의 절차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4대강 사업 토지 보상이 60% 정도 진행 되었는데 예산은 90%가 집행되었다. 앞으로 1조원 이상 예산이 추가 편성되어야 보상이 완료된다. 지난 11일 강기정 의원은 토지보상비가 당초 1조 5천 482억원에서 두배 늘어난 3조 2천억원에 달한다고 밝혀 큰 파장이 일었었고, 이런 토지매입비를 충당하기 위해 4대강 사업의 건설비를 전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009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전체 사업의 3%를 대상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한 결과, 예산이 20% 늘었다고 합니다. 4대강 사업 총사업비가 당초 예상(22조2천억 원)보다 크게 늘어 30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여덟째, 민주당 김영환 의원,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이 수징오염총량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낙동강에 8개의 댐을 세우면 물이 상류에서부터 하류까지 130일이 걸려 흐른다. 시화호의 경우 수질오염을 못 막아서 방류했는데 수질오염을 막을 수 있는 기술이 있냐고 물었고. 또한 4대강 사업의 수질개선 계획이 수질오염 총량관리제에 반영되지 않아 제도 자체가 파행 위기에 놓였다고 주장했다. 4대강 마스터 플랜을 발표했지만 9월 낙동강 수질오염총량의 목표수질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2015년 수질오염총량제 목표 수질이 4대강사업 사전환경성 검토서에서 예측한 2012년 목표수질보다 낮아야함에도 수치가 더 높다며 수질을 개선시키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신뢰할 수 없는 증거라고 밝혔다.
아홉째, 민주당 김재윤 의원은 정부가 4대강 사업에 투입하기로 한 로봇 물고기에 대해서도 기술확보가 된 것이 하나도 없는 점, 실제 사용가능한 유속과 수심을 파악해 보니 연 중 6개월 이상 최대 11개월, 작동 할 수 없는 점을 들어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선전도구’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민주당 김재윤, 이미경, 이찬열, 홍영표 의원이 제기한 것으로 낙동강 쓰레기 매립토 문제에 대해서 전문기관에 의회해 분석한 결과 토양오염도가 기준치의 4대를 초과, 카드뮴과 비소, 수은이 검출돼 영남지역 취수원이 위협받고 있다고 질타했다. 또한 “환경부는 전면 실태조사를 실시한 뒤 관련자 문책과 4대강 사업의 공사 중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요구하며 관할 지차제, 국투관리청 및 환경부의 책임 떠 넘기기를 비판했다. 불법폐기물은 지난 9월30일 낙동강 8~10공구 15공구에서 발견된 이 후 이달 6일 17~19공구에서 다시 매립이 발견되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장광근 의원은 "4대강 사업은 여성으로 따지면 임신 5개월 이상 지난 것"이라면서 “시어머니가 며느리 임신 못하게 하다가 지금은 낙태하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날 낙동강을 걸으며 썬그라스를 꼈다. 찢겨진 강을 바라보기에는 눈이 아팟기 때문이다. 내 나름의 저항이자 거부의사 표시였다. 어쨌든 낙동강은 그렇게 깨어지거 있었고, 사람들은 탄식을 하면서도 걸을 뿐이다.
Rock And Roll Music - Beach B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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