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침이 왔다. 수영강 상류의 아침이 보고 싶어 식전에 산책 삼아 일대를 걸었다. 송전탑이 눈에 걸린다. 우리네 전원 풍경을 훼손한 대표적 주범이 전봇대 혹은 송전선, 그리고 비닐하우스, 시멘트 내지 콘크리트다. 새로운 것과 옛 것에 대한 고려가 없었던 시절의 유물이다. 실제로 저 전선줄만 없다면 이 아침은 훨씬 달라보였을 것이다.
해가 솟아오르고 있다. 오늘도 힘찬 하루라고 읊조려 본다
아침밥이 달다. 이번 사포2백에서 도시락은 큰 호응을 얻었다. (본가 도시락이다. 050-5588-4444) 모든 반찬은 당일 아침에 만들어지고 한번 반출된 반찬은 재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쨌든 매 끼니마다 주문된 도시락은 따끈따끈 했다.
비교적 나이 든 축에 속했던 유용배님, 다른 참가자들과는 달리 늘 무거운 베낭을 메고 걸었다. 발바닥에 물집에 생겨 처방을 받고 있다. 국제신문에 기사가 났다. 좀은 섭했다. 동행취재가 아니었고, 먼저 기사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기자 한 사람에게 요구되는 취재량이 많다보니 빚어지는 일이다. 이해는 하면서도 이해가 안되는 일이었다.
사포지향(四抱之鄕) 4일간 80㎞ '걷기 마니아들' 도전
갈맷길 축제 일환 50여 명 참가
20일까지 4개 구간 나눠 진행
미션수행·스토리텔링 등 호평
2010 부산갈맷길축제의 백미인 '부산, 사포지향(四抱之鄕) 갈맷길 200리 걷기' 행사 둘째 날인 18일 오후 전국에서 몰려온 '뚜벅이' 50여 명이 참가한 걷기행렬이 회동수원지에 다다랐다. 높은 하늘과 신선한 바람으로 무장한(?) 회동수원지의 '가을'은 참가자의 탄성을 절로 자아냈다. 회동수원지는 참가자에게 땀을 닦고 발을 안마할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은 채 연방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게 만들었다. 참가자의 표정엔 50리 길을 걸어온 피로를 찾을 수 없었다. 대신 행복한 웃음이 넘쳐났다. 이들은 전체 200리(80㎞) 구간을 4개로 나눠 걷는다. 첫날인 지난 17일엔 기장군청을 시작으로 동해안을 따라 해운대 미포로 이어지는 삼포길(25.3㎞)을, 이튿날인 이날은 수영강을 거슬러 회동수원지를 지나 금정구 스포원으로 이어지는 22.1㎞ 구간을 걸었다. 19일엔 금정산길(21.3㎞)을, 20일엔 낙동강을 따라 을숙도까지 이어지는 낙동강 하구길(11.3㎞)을 걷는다. 특히 이번 걷기 행사에 경기도 등 부산 외 지역 걷기 단체(모임) 관계자 10여 명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걷기연맹에 가입돼 있다는 손귀자(여·57·경기도 양주시) 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부산에 천혜의 절경을 걸을 수 있는 코스가 개발됐다는 사실을 알고 단숨에 부산으로 내려왔다"며 "걷는 것만 해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자연환경 속에서 걸으니 더욱 값지고, 노후를 부산에서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라고 극찬했다. '200리 걷기 행사'는 사포지향이라 불리는 부산의 산과 강, 바다, 호수(또는 온천)를 몸으로 부대끼며 부산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걷기 행사다. 얼핏 보면 철인경기를 연상케 하는 장거리 코스이지만 부산의 자랑거리인 '사포'를 확인하며 걷는 데다 중간 중간 미션을 수행케 하고 구간별로 길 안내자가 동행해 해당 지역 및 인물에 얽힌 스토리텔링까지 해 주는 맞춤행사여서 참가자의 반응이 뜨겁다. 이성근 '(사)걷고싶은부산' 사무처장은 "사포지향 걷기는 기본적으로 다른 지역의 장거리 도보 이벤트와는 차원이 다른 생태·문화적 콘셉트로 각 구간의 특성을 최대한 반영한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이라면서 "이번 행사를 통해 일회성이 아닌 전국 길 걷기를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밝혔다. | |
|
구분 |
내용 |
날짜 |
2010. 10. 19(화) |
컨셉 |
금정산성길 : 의상대사, 화엄의 바다 건너다 |
코스 |
스포원~범어사~금정산성 북문~동문~남문~1망루~만덕역 |
일정 |
08:00~09:00 아침식사 09:00~10:30 스포원~범어사 10:30~11:00 범어사 문화유산 해설 11:00~12:00 범어사~금정산성 북문 12:00~13:00 점심식사(장소: 북문 *금정산성 해설) 13:00~15:00 금정산성 북문~금정산성 동문 15:00~17:00 금정산성 동문~만덕지하철역 17:00~18:00 *전철로 만덕역~BTC아카데미(호포역) 이동 18:00~19:00 저녁식사 19:00~20:00 작은음악회 20:00~22:00 자체평가회 22:00~ 휴식 |
스토리텔링 |
범어사와 금정산성 장소: 범어사, 금정산성 북문 / 강사: 나동욱 근대역사관 관장 |
작은음악회 |
해설이 있는 작은음악회 공연팀: 예타래 공연내용: 퓨전시나위, 섹소폰 연주 등 장소 : BTC아카데미 대강당 |
금정산길 (범어사역~남문~만덕역) |
금정산 길의 출발점은 범어사역에서 시작하면 된다. 범어사 옛길과 향토순례코스로 금정산성을 비롯한 3개의 성문을 거치며 주능선을 답사할 수 있는 부산의 대표적인 산길이다. 원효봉에서 의상봉, 동문에 이르는 금정산성 둘레길을 걸으면 부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도심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범어사 옛길에는 금어동천(金魚東天)이라고 바위에 음각된 글씨가 있다. 그만큼 경치가 좋다는 뜻이다. (15.9km) |
햇살이 스포원(경륜공단) 마당에 환하다. 모두들 손을 잡고 출발의식을 가지고 있다.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안전한 걷기와 더불어 스스로를 뒤돌아 보는 행보이기를 서로에게 빌어주며
미국인 엘리엇씨가 참가 했다. 통역없이 우리말로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한국어에 익숙했다. 그의 출현으로 사포2백팀에 새로운 분위기가 돌았다.
언제나처럼 몸풀기 체조가 있었다. 둥굴게 원을 그리고 다같이 몸을 푼다는 참 좋은 일이다.
스포원 내부는 인근 지역민에게 좋은 걷기 코스를 제공하고 있다. 왠지 이동네 사람들이 부러워 졌다. 그 길을 따라 본격 금정산 길에 나선다.
스포원 SPO1 입구다. 부산시 산하 공기업으로 종합스포츠공원으로 2003년 7월 설립되었고, ' 모든 생활스포츠를 한곳에서 즐길 수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기존의 금정체육공원의 별칭이다.
참가자들이 금정산 옛길을 따라 오른뒤 범어사 일주문으로 향하고 있다.
범어사(梵魚寺)와 금정산성(金井山城)
나동욱(부산근대역사관장)
1. 범어사(梵魚寺)
계명암에서 본 범어사 전경
신라 화엄종(華嚴宗) 10찰(刹)의 하나이며, 일제강점기에는 31교구 본산의 하나였다. 『삼국유사』에서 신라의 화엄십찰을 열거하는 중에 「금정범어(金井梵魚)」 즉 금정산 범어사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범어사는 삼국시대부터 존재하던 사찰로 추정된다. 『동국여지승람』권 23 동래현 산천조에는 「동래현 북쪽 20리 금정산 산마루에는 3장(丈) 높이의 돌이 있는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황금빛을 띤 우물이 항상 가득 차 있으며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그 속에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고 하여 산 이름을 '금샘(金井)'이라고 하였다. 인하여 절을 짓고 범어사(梵魚寺)라 하였다.
『범어사창건사적(創建事蹟)』에는 당(唐) 문종(827~835) 태화(太和) 19년 을묘(태화 9(835)년에 해당)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삼국유사』의 678년(문무왕 18)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범어사창건사적(創建事蹟)』에 범어사의 가람(伽藍) 배치는 미륵전 ·대장전(大藏殿) ·비로전(毘盧殿) ·천주신전(天主神殿) ·유성전(流星殿) ·종루(鍾樓) ·강전(講殿) ·식당 ·목욕원 ·철당(鐵幢) 등이 별처럼 늘어서고 360 요사(寮舍)가 양쪽 계곡에 꽉 찼으며, 사원에 딸린 토지가 360결(結)이고 소속된 노비(奴婢)가 100여 호에 이르는 대명찰(大名刹)이라 하였다.
범어사는 창건 이후 고려와 조선 중엽에 이르기까지 그 면모를 유지해 오다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버려 폐허로 있던 것을 1602년(선조 35) 관(觀) 선사가 중건하였으나 화재를 당하였고, 1613년(광해군 5) 묘전(妙全)스님 등 여러 고승들의 협력으로 중창하여 대웅전, 용화전, 관음전, 나한전, 일주문, 심검당(현 원주실)을 건립하였다. 1700년에는 명학 화상이 팔상전, 종루, 불이문, 보제루, 천왕문을 건립하였다. 이후에도 사세의 확장에 따라 크고 작은 개수 및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근세의 고승인 경허 스님은 1900년에 범어사에 선원을 개설하였다. 그의 영향을 받은 범어사 주지 성월 스님은 1899년 범어사 금강암에 선원을 세우고 대웅전 내 정면 수미단 위에 석가모니불, 연등불, 미륵불의 삼세불(三世佛)이 봉안되었다.
현재 보물 제434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3층석탑(보물 250호), 당간지주(幢竿支柱), 일주문(一柱門), 석등(石燈), 동 ·서 3층석탑 등의 지방문화재가 있으며 이 밖에 많은 전각(殿閣) ·요사 ·암자(庵子) ·누(樓) ·문 등이 있다. 옛날부터 많은 고승들이 이 곳을 거쳤으며, 중요한 인물만도 의상을 비롯하여 그의 고제(高弟) 표훈(表訓) ·낙안(樂安) ·영원(靈源) 등이 있다. 《선찰대본산 범어사안내(禪刹大本山梵魚寺案內)》에는 역대 주지(住持) ·승통(僧統) ·총섭(摠攝) ·섭리(攝理) 등으로 구분하여 수백 명이 기록되어 있다.
2. 금정산성(金井山城, 사적 제215호)
김해방면에서 본 금정산성(왼쪽이 고당봉, 오른쪽이 상계봉)
금정산 내의 주봉인 고당봉(801.5m), 상계봉(638m), 원효봉(687m), 의상봉(620m), 파리봉, 미륵봉, 대륙봉 등 해발 600m 내외의 봉우리들을 연결하여 축조한 것으로 총면적은 약 1,300여만평에 이르고 있다. 성벽의 길이가 18.845(기존 17,337)km로서 국내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산성으로 동쪽 제 4망루(해발615m)에서 서문 쪽으로는 길이 약 1.8km의 중성(中城)이 축조되어 성내를 남북으로 양분하고 있다. 성벽의 잔존 높이는 대략 1.4~2.6m이며, 1971년 2월 9일 사적 제215호로 지정되었다.
금정산에 산성을 축조하자는 논의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 국방에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대두되었다. 1655년(효종 6년)에 동래부사 임의백(任義伯)은 동래부를 금정산으로 옮겨 축성하고 기장과 양산을 합하여 거진(巨鎭)을 만들 것을 주청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667년(현종 8년)에는 현종이 통제사 이지형(李枝馨)을 불러 왜구방수계책을 논의하는 가운데 금정산성은 형세가 절승하며 기지가 완연하여 이제 만약 완전히 보수하기만 한다면
보장이 될 수 있는 터전이 되겠습니다.라는 기사가 보이고 있어 1703년 이전에 금정산성이 축조되었을 것으로 보는 설의 전거(典據)가 되고 있다.
금정산성진지도(1872년경)
1675년(숙종 원년)에는 허적(許積)이 임금과 독대(獨對)하는 자리에 승지 권대재의 견해를 빌려 금정산성의 축조를 건의하였다. 여기에서 동래에서 불과 15리 떨어진 곳에 왜관이 있고, 거기에는 왜인이 천여명 적어야 오․륙백명이 늘 있는데, 동래부의 속오(束伍)는 겨우 오초(五哨)이고 별무사, 군관을 합친대야 육․칠백명에 불과하니 그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하겠으며, 현재로서는 방비가 심히 소홀하니 부(府) 뒤에 있는 금정산과 산 뒤에 있는 범어사를 합쳐 축성하면 좋겠습니다. 라는 기사가 보인다. 이와 함께 숙종이 경상감사와 병사로 하여금 살펴보게 하여 축성함이 마땅하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축성이 곧 시작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1701년(숙종 27년) 11월 경상감사 조태동(趙泰東)이 청하기를 동래는 해방의 중요한 고장이며 왜적이 처음 발 딛는 곳이다. 그럼에도 한 조각의 성도 없이 심히 소홀한 지경이니 금정산에 축성하기를 청하자, 숙종이 윤허하여 축성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1703년(숙종 29년)에 준공되었다. 그러나 축성 시작일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금정산성의 축성역의 소요된 재원은 경상감사 조태동이 조정의 도움 없이 동래부가 주체가 되어 경상감영과 협의, 포 100동, 미곡 1천석을 마련하여 고리대의 밑천을 삼아 물력을 조달하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부는 경상도에서 선혜청에 바쳐야할 대동목(大同木)을 갖다 쓴 뒤 추후에 갚아 보내는 방식으로 조달하였다.
한편, 17세기 이후 여러 산성의 축성에서 보듯이 금정산성의 축성역에도 승군(僧軍)이 동원되었다. 축성역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금정산에는 국청사(1703년)와 해월사(1708년)가 조성되었고 여기에 승장과 승군이 편제되었다 성역(城役)을 착수할 당시 부사는 박태항(朴泰恒) 이었으나 교체되어 그 뒤에 부임한 부사 이번(李樊)이 계승하고, 감사 조태동도 역시 성역이 끝나기 전에 자리를 옮겼다. 그 때 완공된 성은 둘레 9,011보, 높이 15척에 동․서․남․북의 4개 성문을 둔 방대한 규모의 산성이다. 그러나 이 성은 성첩이 낮고 허름할 뿐 아니라 재력만 낭비하였다는 비난이 일고, 1707년(숙종 33년)에는 성이 너무 광대하여 관리가 곤란하다는 이유로 당시의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다시 둘레 5,646보(步)의 중성(中城)을 쌓고 부속시설을 배치하였다.
그 후 1806년(순조 6년)에 부사 오한원(吳翰原)이 그간 관리가 소홀하여 퇴폐하였다 하여 조정에 알리고, 이듬해 음력 9월에 역사(役事)를 일으켜 10월에 동문을 신축하고, 이어서 서․남․북의 3문을 1808년 음력 정월에 시행하여 5월중에 완공되었다. 당시 성의 길이는 32리로 동래부민이 동문과 성첩 수리를 맡았으며, 나머지는 경상감영에서 각 군으로 차역케 한 민정으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 소요된 경비는 삼색곡(三色穀) 만석과 경상감영의 별비전(別備錢)을 년 2,000민(緡)씩 20년으로 공사비용과 산성의 수비예산을 잡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 잔존하는 성문과 성벽은 이 때 축조 및 수리된 성이다.
조선 전기의 내지(內地)관방은 다수의 산성을 이용하여 왜적을 방어하는 체제로 산성에 유사시 이웃 고을의 입보(入堡)를 겸하여 군창(軍倉)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경상도 동래의 경우는 양산, 기장, 울산, 언양의 군민과 함께 성황당산성에 입보하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내지 요충의 방어시설과 산성, 읍성을 비롯한 성곽들의 방어능력이 향상되는 진(獨鎭)의 경영과 산성 축조가 거의 마무리되었는데, 이들 조선 후기 성곽들은 관방의 변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鰌
고당봉에서 본 금정산성 북벽
대구지방의 가산산성, 금오산성, 독용산성을 묶어 내삼각형을, 경상도 전체에 있어 3개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남로의 즉, 해로인 금정산성, 북로 즉, 호서로 하여 경기도로 가는 제 1요로를 지나는 조령, 서쪽으로 나가는 요충인 진주에 촉석산성 등이 외삼각형을 이루는 곳에 배치하는 기각지세(掎角之勢)에 의해 적변에 대처하고자 하였다. 또한, 영조 때에는 독진(獨鎭)의 경영과 산성 축조가 거의 마무리되었는데, 이들 조선 후기 성곽들은 관방의 변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금정산성의 경우 숙종 29년(1703)년에는 9,011보의 단곽(單郭)의 석축산성이 축조되었으나, 숙종 33년(1707)에 이르러 중성(中城)이 축조되었다. 조선후기 성곽의 축조에 있어서 가장 큰 특징은 남한산성(南漢山城), 북한산성(北漢山城), 성주 독용산성(禿用山城) 등의 둘레 1만척이 넘는 산성이 축조되는 등 금정산성과 함께 산성의 대형화(大型化)가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경상도의 문경 조령산성(鳥嶺山城), 선산 금오산성(金烏山城), 칠곡 가산산성(架山山城)의 경우처럼 중성 또는 외성이 축조되는 등 성곽의 중곽화(重郭化)가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들 조선후기 산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이 18,509보의 조령산성(鳥嶺山城)이나 이는 자연 절벽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그러나 인공을 가하여 쌓은 성벽 중 가장 큰 규모로 축조된 것이 바로 금정산성(68,908척)이다.
「금정산성진지도」를 통해 본 성벽과 관련시설 배치도
천년 고찰 범어사 대웅전 앞에서 나동욱박사의 범어사 이야기가 들려지고 있다.
북문을 향해 오르는 길
평지만 걷다 힘이 든다. 쉬는 짬짬 나 박사는 금정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북문 앞, 인원을 헤아려 보니 보이지 않는 분이 몇 있다. 아픈 다리로 전체 대오에 방해를 줄까봐 지난 밤 병원 갔다 바로 댁으로 간 김숙자님을 비롯 인대가 늘어나 병원에 간 박영선 님 등이다.
금정산 능선길은 성곽길이다. 능선 좌우로 부산의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다. 우측 북구 쪽으로는 낙동강이 바다를 향해 마지막 걸음을 걷고 있고 좌측은 경부고속도로가 북상하는 들머리다. 범어사 지하철 역에서 북문까지 5.2km 동문까지는 4.2km 남았다.
조익래 선생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 - Al 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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