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8일 오늘도 날씨는 좋다. 사람들은 어제의 피로를 지우고 언제 걸었냐는듯 하루를 준비했다. 하지만 다소 무리한 행보였든가. 내 발에도 물집이 두 개 잡혔다. 그런 사람이 제법이었지만 친자매 같은 박경애씨와 박영선씨가 일일이 참가자들의 근육을 풀어주고, 물집을 조치하는 등 부산했다. 덕분에 일행은 새 걸음을 걸을 수 있게 됐다. 오늘은 18.7km 어제보다 훨씬 가벼운 거리다. 천천히 즐기며 걸어 보리라
구분 |
내용 |
날짜 |
2010. 10. 18(월) |
컨셉 |
회동수원지길 : 부산소리에 꽃을 달다 |
코스 |
아르피나~나루공원~수영강변~회동수원지길~스포원 |
일정 |
08:00~09:00 아침식사 09:00~12:00 아르피나~회동수원지 입구 12:00~13:00 점심식사(장소: 회동수원지 입구 *숲생태 해설) 13:00~15:00 회동수원지 입구~오륜동 데크 15:00~15:30 판소리 공연(장소: 오륜동 데크) 15:30~18:00 오륜동 데크~스포원 18:00~19:00 저녁식사 19:00~21:00 자연교실 21:00~ 휴식 |
이야기 거리 |
갈맷길에서 가을 숲을 읽다 장소: 회동수원지 입구 / 강사: 이성근 (사)걷고싶은부산 사무처장 판소리 공연 장소: 오륲동 데크 / 소리꾼: 강은미 |
자연교실 |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환경문제에 대한 어떤 한 생각 강사: 구자상 (시민공익환경기업 에너지 나투라 대표) 장소: 스포원파크 어린이극장 |
회동수원지 사색길 (노포역~나루공원) |
강과 호수와 숲이 스토리가 되고 자연과 사람이 공존을 꿈꾸는 길이며, 금정구의 역사와 문화와 천혜의 자연경관(회동수원지, 윤산숲길, 수영강)을 체험하며 삭막한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사색의 길이다. 수영강~회동수원지 코스에는 부산시민의 식수원이자 휴양처인 회동수원지, 7월이면 백련과 홍련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는 두구동 연꽃소류지, 도시속 자연학습 체험관인 윤산생태숲, 놀거리 ․ 볼거리 ․ 즐길거리 가득한 금정체육공원(스포원파크), 도심속 농촌풍경 두구동 화훼단지, 당근 재배지 등이 있다. (18.7km) |
몸풀기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어떤 운동을 하더라도 운동 전에는 워밍업(준비 운동)이 필요한 것처럼 워킹 전에도 워밍업이 대단히 중요하다.
워밍업이란 '체온을 올린다'는 의미다. 워밍업을 하면 특히 겨울철에는 몸이 따뜻해진다. 동시에 중추 신경에 자극을 주어 지금부터 사용하려고 하는 근육을 깨운다.
따라서 최소 10분 정도는 워밍업을 해야 한다. 스트레칭은 몸을 따뜻하게 하거나 부드럽게 만들어 근육을 늘리는 게 목적이다.
스트레칭을 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안전에 유의한다.
① 릴랙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푼다.
② 반동을 주지 않는다.→ 근육을 천천히 늘리고 천천히 되돌린다.
③ 계속 늘린다.→ 10~30초 동안 근육을 늘린 상태를 유지한다.
④ 호흡을 멈추지 않는다.→ 근육을 늘리는 동안 계속 숨을 내쉬고, 되돌릴 때 들이쉰다.
⑤ 아프지 않을 정도로 한다.→ 아픈 것은 몸에 좋지 않다.
⑥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한다.→ 유연성이나 몸이 움직이는 범위는 개인차가 있으므로 다른 사람처럼 할 수 없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 두 가지를 기억하자
걷기 전에 따로해주는 것만이 준비운동이 아니다.
준비운동에는 두 가지가 있다.
① 관절을 풀어주는 운동
② 천천히 걷기
일단 걷기 시작하면 속도를 마구 올리기 쉽다.
하지만, 초기에는 가볍게 그리고 느린속도로 걷기를 시작하자.
처음에 가벼운 속도로 걸으면 체온을 조금씩 올려주고, 근육과 힘줄에 운동에 적응할 시간을 주게된다.
이 준비운동의 단계는 건강한 사람이라면 5분이면 충분하고, 오랫동안 운동하지 않았던 사람은 10분에서 15분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한편 마무리 운동 역시 마찮가지다.
마무리운동은 모든 걷기활동 중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서서히 심장박동률과 호흡을 늦추며 근육이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스트레칭을 해주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혈액은 운동중인 근육으로부터 다시 내장으로 보내진다.
그러면 체온이 떨어지고 호흡이 가라앉는다.
▶ 두 가지를 기억하자
준비운동과 마찬가지로 마무리시에도 두 가지를 해주면 된다.
① 천천히 속도줄여 걷기
② 스트레칭하기
그날그날의 걷기에는 자신이 정한 할당량이나 거리가 있다.
대부분 마지막부분에 피치를 올리는데 피치 올리는 시점을 5~10분 정도 좀더 앞당기자.
최대치로 걷고 나서 5분 내지 10분 정도는 속도를 늦춰 천천히 걷는 습관을 들이면 아주 좋다.
▶ 마지막으로...
자신이 해야할 운동량을 자신의 체력과 목표점을 맞춰 주고 걷기에 앞서 준비운동을, 끝나고는 마무리 운동을 하는 습관을 들이자.
번거롭고 귀찮은듯 싶지만 일단 습관을 들여놓으면 걷기의 일부가 되어 자연스럽게 운동에 포함된다.
이것만으로도 부상을 막고 걷기로 인한 몸의 피로를 누적시키지 않고 그때그때 풀어주는데에 아주 효과적이다.
몸의 피로를 풀지 않으면 다음 걷기가 싫어지고 귀찮아진다.
가벼운 스트레칭과 준비, 마무리운동은 상쾌한 기분으로 다음날의 걷기를 시작할 수 잇는 비결이다.
자료출처: 다음 까페 부산 서구보건소 워킹동호회
수영교 직전 APEC나루공원 입구 가덕도로 부터 건너 온 4백년 수령 팽나무 두 그루가 사포2백 참가자들과 만나고 있다. 원래 이 두 나무는 가덕도 천가동 율리에 터를 잡고 살았자만 항만배후부지 공사로 생사의 기로에 있다 해운대 누리마루로 이사 왔다. 높이가 10~12m, 밑동의 지름이 1.3~1.4m 크키다. 율리마을을 출발해 해운대 우동항까지 60㎞에 달하는 뱃길 운송과 1㎞의 육상운송을 통해 나루공원에 이식됐다. 썩 마음이 편치 못하다.
관련된 두 분의 글을 옮겨 본다.
가덕도 율리 팽나무 1
이 옥 진
파도를 친구 삼아 한 천 년쯤 살려했는데
먼 길 걸어온 산들 하나 둘 쓰러져 눞고
바다는 충혈된 눈으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물비늘 반짝반짝 속살대던 나의 바다는
굉음과 흙먼지에 귀 잃고 눈 먼 짐승
더 이상 춤추지 않고 노래마저 잃어버렸다
베이든 뽑혀나가든 이제 나도 떠날 시간
수의 같은 옷을 입고 생목숨 휘청대던 날
한순간 마취도 없이 발끝마저 잘렸다
가는 곳은 어디일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아이 노인 병든 대지 상처처럼 보듬어 안고
끝없이 투명한 초록을 퍼 올리는 그 일을.
다음 블로그 느티나무 그늘님은 가덕 율리 팽나무의 넋두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가덕도 팽나무다. ... 내 머리맡을 질주하는 차량의 소음과 경적소리, 매케한 매연이 나를 움츠러 들게 한다. 휘황한 도심의 불빛은 나를 밤새 뒤척이게 하며 편안한 잠자리를 방해한다. 빌딩 숲 사이로 파고드는 햇살은 차갑고 대교를 달려온 바람은 습기를 잃었다. 삽상한 바람결 속에 맞이하던 섬의 아침은 이제 기억으로만 존재할 따름이다. 저녁무렵 녹산바다 파랑위로 반짝이던 석양도 이곳에서는 빌딩창에 박제처럼 걸려 무너져 내린다. 그나마 어지로운 잠에서 깨어나는 아침 갈매기 울음소리마저 없다면 나는 절망으로 질식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나는 고향에서 쫒겨난 사람들의 심정을 온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개발 바람에 쓸려 물속으로 고향을 수장시키고 누대에 걸친 문전옥답을 산업단지로 내놓은 채 쫒겨난 이들의 뿌리 뽑히는 아픔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가덕도 개발로 순환도로가 내 영지를 침탈하면서 고향에서 쫒겨난 몸이다. 내 땅에서 나를 쫒아낸 사람들은 죽음의 수렁에서 나를 건져냈다고 공치사를 한다. 하기사 무지막지한 개발의 광풍에 목숨만이라도 부지한 것은 천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 세월 나와 서로 의지하고 소통했던 사람들의 공동체가 무너져 내리는 마당에 늙은 몸뚱아리 하나 건사한 것만도 다행 아닌가 .
그러나 인간에 대한 나의 심사는 한껏 틀어져 배신감과 괘심한 마음을 억누를 길 없다. 순환도로가 약간만 비켜가도 되지 않았을까 . 그것도 아니라면 나를 햇살바른 가덕동의 또 다른 언덕바지로 옮겨 심을 수는 없었을까. 원망스럽다. 안동 임하댐에 있는 700살 난 용계리 은행나무가 갑자기 부러워 졌다. 댐이 생겨나면서 은행나무가 물 속에 잠길 처지가 되자 사람들은 무려 3년 동안 20억원을 들여 땅을 15m나 돋구고 은행나무를 그 위에 모셨다 . ... 요즘 나는 이 낯선 곳에서 인간들의 세상을 좀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인간 세상을 들여보자면 부화가 치밀어 오지만 그들이 쌓는 욕망의 바벨탑을 보면 오히려 염려가 앞선다. 시멘트 거탑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은 곡예처럼 아슬아슬하다. 스스로 높은 벽을 세우고 가슴을 닫은 무수한 인간 군상의 자폐적 자기포기를 보면서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오로지 물적 욕망에 몸을 던지는 무모함이 불나방이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 같다. 안타깝다 못해 처연한 느낌마저 든다, 어른들은 공존의 지혜를 잃어버린 채 갈증에 시달리고 아이들은 밤새 아토피로 칭얼거린다. 그들의 창을 통해서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은 생명이 거세된 신기루 일 뿐이다.
온갖 상념이떠 오른다. 깁스를 한 채 삭막한 세상에 던져진 내 신세가 한심하기도 하고 야만적인 문명 속에 연명해나갈 것이 저으기 걱정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뿌리내리며 안착할 수 밖에 없다. ..."
이식된 팽나무를 마주할 때 마다 그 아픔을 생각했지만 깊이 생각하지는 못했다. 느티나무그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사포2백 참가자 대부분이 이식된 팽나무에 대해 측은한 마음 내지 안타까움을 표했다.
수영강을 따라 오르다 깜짝 놀랐다. 낚시대를 드리운 사람이기에 의례 숭어나 잡겠구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민물장어였다. 수영강하구가 모독적으로 침훼 당했지만 다행 물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한강, 섬진강을 빼고는 큰강의 하구가 둑이 들어서고 난 이후 회유성 어족들은 길을 잃은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몹시나 반가웠다.
장어는 몸이 뱀처럼 긴 물고기를 뜻하며, 분류학적으로는 뱀장어목(Order Anguilliformes)에 속하는 모든 종류가 포함된다. 일반인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장어는 뱀장어 뿐 아니라, 먹장어(꼼장어), 붕장어(아나고), 갯장어 등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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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강의 수질이 좋아지고 있다고 표현하기엔 이르지만 반갑고 대견한 일이다.
수영하수처리장 최종방류구 앞 강을 가로지르는 전선 위에 왜가리 한 마리 앉았다. 드문 일이다. 그 아래 강 가운데 솟아 있는 바위에는 민물가마우지와 쇠백로, 갈매기들이 쉬고 있었다. 백로류는 제법 개체수가 된다. 먹이기 있기 때문이다.
원동교를 앞두고 온천천이 수영강과 만나는 지점이다. 수영강 수변길은 좌우로 보행이 가능해졌다. 걷다보면 가끔씩 숭어가 물 위로 솟구쳐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익숙한 풍경이 되었지만 이 강에 고기배 오가던 시절, 강은 자연스러웠고 풍요로웠다. 사람들은 강을 살리기 위해 무진 애를 쓰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강 역시 도시화된 시스템으로 편입했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이 수영교로부터 약 5km 세월교를 건너 동대교로 향하고있다.
늘 걸음이 느린 박정애 시인을 챙기기 위해 두명의 스텝이 붙었다.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 징금다리를 건너고 있다. 그런데 징금다리 치고는 넘 투박하다. 하폭이 인공적으로 조절되다 보니 완만한 흐름을 유지하기 힘들고, 수변 가장자리도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원래 징금다리란 때로 물에 잠겨 있기도 한 법이거늘 홍수때가 아니면 징금다리가 물에 잠기는 법이 없다. 어쨌든 징금다리 참 고운 말이다. 그런데 징금다리는 없다. 징검다리가 있다. ( stepping-stone : 개천이나 물이 많이 괸 곳에 디디고 건너도록 드문드문 띄어 놓은 돌덩이나 뗏장을 말한다. 보통 다리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비교적 얕은 물 위에 만들며 다리 대신에 쓴다)
적색길은 자전거길이고 짙은 초록길은 사람의 보행통로다. 문득 이런 길이 깔리기 전에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궁금해진다. 본시 강변에 난 길이란 강둑길이 대부분이다. 나머지는 둔치부 에서 수변까지 자갈이나 모래가 섞인 점토질의 흙에 습지식물들이 드문드문 키를 세우거나 바닥을 기면서 자리를 잡는 형국이다. 흐름이 있는 물가라면 수변 가장자리에는 달뿌리풀이나 갈대 억새가 우점할 것이고 사람의 간섭이 있는 둔치부 제방쪽으로는 여귀나 미꾸리낚시를 비롯하여 골풀이며, 사초과나 벼과 식물들이 자리잡을 것이다. 그리고 물웅덩이가 있는 곳이라면 창포나 부들, 줄, 매자기에 더하여 부레옥잠이나 노랑어리연꽃, 자라풀, 물질경이, 택사, 가래나 생이가래 등으로 채워질 것이다. 거기 사람의 길은 오솔길처럼 외줄기로 뻗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사람이 도로로 인해 길을 잃은 뒤 다시 찾아내고 발굴한 길이란 것이 사실은 다른 생물의 터전을 빼앗으며 강탈한 길에 다름 아니다.
예전에는 너구리며, 족제비, 수달을 비롯 네 발 달린 젖먹이 동물들과 유혈묵이며, 무자치 더불어 허다한 개구리가 강수풀 속에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다. 사람은 그 수풀 헤치고 나가 강기슭 물가에서 논.밭에서 묻은 흙을 씻어내거나 강태공이라면 수양버들 아래 낚시대 하나 드리우고 있을 법이다.
아마도 이런 풍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개간할 수 있는 자투리땅이라도 있다면 일구어 대부분의 하천변은 알곡을 머금은 나락들이 출렁일 것이다.
비교적 온전히 보전된 둔치 사이로 뻗어 있는 사람의 길이 그런대로 어울린다.
쑥부쟁이들이 만발했다.
배번 110 김숙자님과 115번 동길산 시인이 친구처럼 명장정수사업소 입구로 들어서고 있다.
현재 명장정수사업소 안에는 걷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기존의 사택을 화장실과 쉼터로 조성중에 있다. 부산상수도사업본부 소속으로 덕산과 화명정수사업소 등이 있다. 명장정수사업소의 경우 하루 280천톤/일 생산하는 가운데 120천톤/일을 낙동강에 의존하고 있다. 수질보호를 위해 출입이 금지된 곳이지만 45년 만인 올해 초 공식 개방됐다.
때마침 점심시간 사포2백 팀은 맛나게 점심을 나누고 있다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에 맞추어 앞 뒤 사람의 어깨를 주무르며 오후 걷기에 대비하고 있다. 그리고 숲에 대한 짧은 강의가 있었다
갈맷길에서 가을 숲을 읽다
이성근 사)걷고싶은부산 사무처장
바람이 분다. 바람 끝에 잎이 탄다. 시나브로 소슬바람이 부는 거리에 은행이며, 플라타너스 잎이 노랗게 물들고 있다. 마치 가을을 마중하듯 노란손수건을 흔들 듯 그러다 일제히 나부끼는 황금의 축제가 시작되려 한다.
일반적으로 산을 물들이는 가을색은 북으로 부터 남하하여 봄이 오는 순서와는 정반대로 산 정상부부터 계곡을 따라 진행된다. 잎새들의 비행을 위한 점프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은 새잎이 돋아날 것이라는 약속이다. 그것은 죽음인 동시에 재생이다.
가을이 오면 봄빛 진달래, 철쭉 붉은 산천과 다른 또 하나의 그리움 타는 산이 있다. 발갛게 물든 단풍이며 붉나무, 벚나무에 생강나무, 상수리 나뭇잎이 노랗게 우수수 지는 그 길에는 수 천년 풍상에 깍이어 협곡처럼 조성된 적벽이 세월가도 변치 않을 시퍼런 이끼를 머금은 채 병풍처럼 늘어서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이름도 잊었지만 한 때 그 길을 같이 거닐던 그 여자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스무살 적 헤어진 그녀를 못 잊어 많이도 가슴 아파하며 혼자서 배회하던 숲이 거기였다.
사람아, 헤진 사람아 / 너는 램프를 밝히고 / 책을 읽다가 / 무득 燈皮에서 만나는 얼굴 / 근심스레 숙여진 보오얀 이마/ 도톰한 귓밥
사람아, 헤진 사람아 / 너와 나는 같은 세상에 /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가고 있음만을 / 感思, 감사하는 이 시간 / 네게서 출발해서 / 숨결 불어오드키 하는 / 푸르른 바람 한 줄기 속의 이 약속. (나태주 시집 : 대숲 아래서 중 헤진 사람아 에서)
그때의 상수리나무는 그 자리에 여전하지만 상수리가 떨어뜨린 숫한 잎새와 열매로 하여 그 숲은 더욱 무성하다. 머잖아 한 차례 가을비 내리고 말간 하늘이고서 숲은 춤을 추리라. 천연의 옷으로 갈아 잎은 가을나무들이 삼바춤의 현란하고도 화려한 몸짓보다 더 원색적인 나부낌으로 춤추리라.
바람에 머리카락이 나부끼듯 단풍으로 물든 잎새들은 마침내 비행을 한다. 비행은 신세계다. 단풍드는 일은 미래를 가지는 일이다. 그것은 안녕이다. 생사의 구분이라든지 갈림길이 없는 윤회와 순환의 지속을 확인하는 안녕이다.
그런데 단풍은 왜드는 것일까. 한마디로 엽록소를 손실하여 호홉곤란을 일어키는 나무의 잎들이 해마다 마주하는 일종의 계절병인 셈이다. 그리고 낙엽은 식물의 배설작업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동물은 체내에 축적된 불필요한 물질을 배설하는 기관이 있다. 그러나 식물에게는 배설기관이 없다.
생성된 것들 중에 버려지는 것은 산소, 이산화탄소,, 수증기 등의 기체뿐이다. 아침녘 산안개의 주인은 이 나무들이다. 그밖에 불필요한 물질 혹은 성장에 방해가 되는 쓸모없는 물질은 모두 잎의 세포 속에 저장되어 졌다가 일년에 한 번 낙엽이 질 때 같이 버려지는 것이다.
또 식물이 살아가려면 대기 중의 산소를 빨아들여 일단 광합성 된 녹말이나 그 밖의 탄소화물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얻는다. 이때 발생된 찌꺼기나 해로운 물질이 많이 모이면 식물은 더 이상 자랄 수 없다. 이같이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이 낙엽현상이다.
그러나 낙엽은 쓰레기가 아니다. 귀중한 자원이다. 미래를 위한 저축이다. 그러기에 나무는 잎을 떨구더라도 멀리 보내지 않는다. 한 그루의 나무가 가지를 뻗는 공간만큼 낙엽은 떨어진다. 떨어진 낙엽은 나무주변을 덮어 흙을 보호하고 물을 저장한다. 또 더불어 사는 생명의 먹이로서 썩어 문드러져 분해될 때 까지 봉사한다.
낙엽이 썩는다는 것은 낙엽 아래 기거하거나 찾아드는 생명들, 예컨데 각종의 세균과 곰팡이와 버섯과 노래기, 지렁이같은 생물들이 살 수 있는 자양분이 되는 동시에 먹이사슬의 기초를 만들어 낸다. 그 기초가 되는 흙빛은 검고 부드러우면서도 상큼한 냄새가 난다.
미숙한 흙에는 생명을 기르는 힘이 없다. 어쩌면 생명은 낙엽속에, 보다 앞서 황금빛 축제 속에 예약되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미련없는 낙엽의 가르침을 나무로부터 읽어야 한다. 세상을 향한 아낌없는 절대적인 봉사이면서도 사실은 스스로에게 너무도 충실한 나무들의 생존방식은 더불어 삶의 극치에 다름아니다.
아무리 큰 나무라 할지라도 가을이면 재산을 땅으로 돌려보내면서 나무는 공동의 숲을 만드는데 기여한다. 진실로 더불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나누고 도우며, 때로 도움받기도 하며 사는 일이지 않는가.
산림학자 죤 무어는 “숲으로 가는 것은 고향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숲에서 왔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실제 숲은 그 모든 것을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었다. 우리의 출발 역시 숲으로부터 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하여 이 가을 문명으로부터, 자동차로부터, 편리로부터 멀어져 느린 걸음으로 낙엽지는 숲으로 가자.
회동수원지는 1946년 회동댐 축조 이후 1964년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1942년 일제 때 선동과 두구동과 양산군의 여락, 송정, 임기 주변의 산인 철마산, 공덕산에서 흘러내린 수원의 아래 지역인 회동에 댐을 건설하여 상수도 수원지를 조성하자 오륜동을 형성하고 있던 다섯 마을 중 네 마을의 논과 밭을 비롯 집이 물에 잠기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는 수몰지역에 대한 그 어떤 보상도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이에 농민들이 봉기하여 시위를 벌이자 경찰을 동원 , 탄압하면서 수원지 축제를 강제 집행하였다. 현재의 회동수원지는 당시 오륜동에 있던 냇가와 산기슭 마을과 논밭 자리에 물이 찬 것이다,
안대영(73·) 동래고 역사관 관장은 "회동수원지에는 조선 농민의 탄식과 울분이 서려 있어요. 일제 강점기인 1942년 회동에 댐을 건설하고 상수원 저수지를 조성할 당시 오륜동을 형성하고 있던 다섯 마을 중 4곳이 수몰 되었지요. 보상은 커녕 어떤 생계 대책도 없었어요. 참다못한 농민들은 봉기를 하기도 했다"며 1942년 1차 준공식 당시 경상남도 도지사였던 오오노 대야가 축사를 하고 준공 테이프를 끊을 때 어느 수몰민이 던진 피맺힌 말 한마디를 전했습니다. " 오색 테이프를 자르는 저 가위는 우리들 창자를 자르는 가위며, 수원지에 저수된 저기 저 물은 우리들의 피눈물이다. "
두 번째 '안 오신듯 다녀가소서' 펼침막을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번영로 오륜터널 구간 수원지 철책에 걸고 있다. 이 역시 흔적이라 가능한 크기를 작게했다. 이정도는 안 봐주겠냐며
사포2백팀들이 들고 나는 수변길을 맛있게 걷고 있다. 모두들 흡족한 표정이다.
제대로 된 수변 숲길은 사람을 편하게 한다.
대밭을 지나 부엉산으로 향한다. 해발 175m에 불과하지만 숨이 찬다.
부엉산 정상이다.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정상은 늘 방대한 전망터를 제공 한다. 멀리 상현마을 뒤로 제2 숙박지 스포원(약 6km)이 보인다. 보이는 거리만큼 더 가야 한다. 목표의 확인이다.
그리고 걸어온 길이 보인다. 멀리 장산 자락이 부옇게 병풍처럼 서 있고 계좌산과 윤산이 수원지를 가운데 두고 도열해 있다. 돋아난 땀을 지우고 지그재그로 부엉산을 내려 선다. 내려가며 산 이름의 유래를 생각했다.
당연 부엉이가 살았으니 부엉산이라 했을 것이고, 아마도 필시 수리부엉이(천연기념물 제 324호)겠지 싶다. 동요속 '부엉 부엉새가 우는 밤, 부엉 춥다고서 우는 밤' 이란 노래에 등장하는 새가 수리부엉이다. 우리와는 아주 친근새로 그 소리 기억에 선명하다. 수리부엉이는 해가 지면 활동을 시작해 해가 뜨면 잠자리에 들어가는 전형적인 야행성 맹금류로서 날개를 펼치면 최대 2m, 몸무게는 4kg에 달한다. 이 육중한 몸으로도 수리부엉이는 뛰어난 시각과 청각을 이용해 먹잇감을 소리 없이 낚아챈다. 주로 토끼, 꿩, 소형포유류(고라니새끼) 등을 주로 먹고 사는데, 매가 시속 300km에 달하는 ‘속도의 사냥예술’을 구사한다면, 수리부엉이의 사냥속도는 시속 약 20km로. ‘느림의 사냥예술’을 펼친다. 그리고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 함께 살아가는 텃새로서 암벽의 바위 선반처럼 생긴 곳이나 바위벽 사이의 틈을 이용하여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다. 오륜대 절벽은 이들이 둥지를 틀고살았음직한 곳임을 읽을 수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탐문해보았지만 더이상 수리부엉이는 이곳에서 둥지를 틀지 않는 것 같다. 새들이 살 수 없는 환경은 사람살이의 미래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하긴 먹이감이라고 온전할 리가 없다. 게다가 어떻게 된 노릇인지 산토끼 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암튼 수리부엉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는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슬픈일이다.
오륜대크에서 소리꾼 강영미 양의 소리를 듣습니다. 20대 후반의 어린 나이지만 청(음색)이 제법이다. 부산 바닥에서는 처음 대면하는지라 자뭇 궁금했다. 전북대에서 소리를 전공했다는데 능청스럽게 전라도 사투리를 풀어 놓는다.
고수 역시 어리지만, 또 조금의 실수가 보이기도 했지만 그런대로 넘어 간다. 사포4백 참가자들이 소리에 얼쑤, 잘한다를 넣으며 장단을 맞추고, 또소리 요청에는 민요 진도아리랑 등이 나오자 흥을 내어 어깨춤도 거들었다. 참 호강이다. 옛날 선비들이 세상 유람하거나 산천경계 좋은 자리에서 이렇게 놀지는 않았을까 ? 오륜대의 풍광은 소리에 절묘하게 어울리는 그림이다.
소리 한 자락에 이어 기장문인협회 소속의 허모종 시인이 참깨꽃을 낭송했다.
참깨꽃 보면 오래 묵은 범종 같다
당목撞木으로 두드리면 부처님 말씀이 서 말 하고도 한 닷 되쯤은 쏟아질 것 같다
저기 저 한 뙈기도 안 되는 비탈밭 가득 참깨꽃 피었다
범종이 무릇 일만 송이는 된다
쳐라, 바람아
부처님 설법을 깨알 같은 필체로 옮겨 적어 마침내 팔만대장경을 일구리라
-문신 '참깨꽃' 전문(시집 '물가죽 북', 2008, 애지)
시인 유홍준은 이 시에 이렇게 평했다. "기독교인들도 이 시에 관하여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 교외로 나가면 가장 흔히 보이는 게 참깨꽃이다. '한 뙈기도 안 되는 비탈밭 가득' 연보라 빛으로 피어 있는 참깨꽃. 관점에 따라 누구는 그것을 범종으로 보고 누구는 그걸 차임벨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모든 시는 깨소금처럼 고소하고 맛있으면 좋겠다는 것. 그러고 보니 '깨알 같은 필체'로 무엇을 또박또박 써 본지도 꽤 오래되었다. 돌아오는 휴일엔 고향에 가서 어머니의 참깨밭머리나 슬슬 서성거리다가 올 일이다."
그렇다. 하마 참깨꽃은 이미 진지 오래이다만 갈맷길에서 참깨꽃 같은 시 한번 써 볼일이다.
다시 걸어 온 길을 뒤돌아 본다. 오륜대와 부엉산이 한폭의 그림으로 남는다
상현마을을 관통한 다음 어느 재벌가의 별장 울타리를 지난다. 가이즈까 향나무로 울을 쳤는데, 여간 정성도 아니거니와 그 정성이 깃든 만큼 보기에도 그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골목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사람을 머물게 하는 곳이다.
김태광님과 동길산시인 등이 이 시간을 기념하기 위해 한 컷 했다.
스포원으로 가는 모퉁이
갈맷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지난 여름 안내판이며 이정표를 설치하기 위해 몇 번을 걸었던 길이기에 내심 뿌듯함이 몰려 왔다. 노선을 긋기 위해 답사를 하고 이정표를 설치하기 위해 걸었던 길에 흘린 땀방울이 그립다.
구 신천교 다리 한 가운데 이정표를 세웠다. 이쯤에서 수영강을 조망하면서 거리를 가늠하라고
늘 느끼는 바지만 저 나무 한 그루가 이 길을 살려주고 있는 것 같다. 저 나무가 없다면 ...
앞 선 참가자들은 이미 스포원에 도착 했다. 단체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늦다고 성화다. 자봉들의 걸음이 무겁다. 이렇게 걷는 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발에 무리가 온 것이다. 그들을 독려하며 수영강을 거슬러 오른다
마침내 도착했다. 스포원 측에서 내건 환영 현수막이 반갑다.
마무리 몸 풀이를 하고 숙소로 향한다.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다.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환경문제에 대한 어떤 한 생각)
걷기는 일종의 신비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시민공익환경기업 에너지 나투라
사단법인 기후 에너지 대안 센타
대표 구 자 상.
1. 박경리 선생님.
평소 둔하고 독서에 그리 열중하지 못하는 성격에 그 분의 작품과 사상 그리고 그의 세상에 대한 감상의 뿌리를 깊이 있게 자기화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간간히 접한 그녀의 몇몇의 작품과 글들에서나마 생명에의 근원적인 각성을 요원하는 무겁고 굵은 염원을 보는 것은 큰 얻음이다. 역사학자 강만길 등과 동행한 수 년 전의 중국기행의 흔적을 남긴 작은 기행문 ‘북경기행’에서 그녀는 백두산 천지를 등정하는 날, 천지가 지척인 어느 초대소에서 일행들의 강력한 권유에도 결국 천지와의 조우를 뒤로 미룬 채 홀로이 여관을 지키게 된다. 그녀는 백두산 천지 바로 아래에서 신령하고 궁궁한 산의 정수리를 감히 마주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그것은 상상과 신비로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아직 우리에게 상상과 신비는 피폐하고 팍팍한 현실을 딛고 가야할 힘이어야 하는 것이었다.
농촌 중국인들의 물건을 사용하는 주도면밀함과 비닐주머니하나도 헤질 때까지 재사용하는 습성들을 지적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날 중국의 정부의 안내원이 묻는 중국여행 감상에서 선생님은 “공해가 심하다”고 답하였다.
몇 년 전에 “토지”를 읽다가 중단을 하고 말았다. 텔레비전에서 접했던 극화된 장면들이 고유의 상상을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5년이란 긴 시간을 쓰셨던 그 작품을 하는 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하동’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한다. ‘상상의 힘은 굉장하구나 그리고 참 지독한 분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였었다.
선생께서는 ‘토지’ 완간 이후 어떤 인터뷰에서 “이제 앞으로 어떤 글을 쓰시겠느냐”는 질문에 “일본문제”라고 하였다. 또 그는 일본 문학에 대한 비평에서 일본이 세계적인 대문호라고 하는 “나츠메 쇼세키”(그는 천 엔 일본 지폐의 인물인데 ,얼마 전 사라졌다.)를 “표절작가다”라고 하였다. 물론 그것은 서구의 표절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박경리 선생은 생전에 원주에 감나무가 되는 것을 보고 불길한 징조라고 하였다. 그런 감이 벌써 북한의 청진 나진까지 북상하였다.
2. 북극항로 와 ‘칼 융’
북극 빙하의 이동속도가 8배 빨라졌다고 한다. 툰드라 동토대의 가옥들이 지반의 침하로 부숴지고 있다. 시베리아지역의 이누이트족의 남하시기인 본격적인 겨울의 시점이 한 달 정도 늦어지고 있다. 이 지대의 땅들은 항상 얼음으로 응결되어 고단위의 메탄을 농축하고 있다. 툰드라의 일시적 해빙은 메탄의 대기상의 농도를 임계단위로 만들 것이라는 것이다. 빙산의 붕괴속도는 급격히 빨라지면서 세계 곳곳의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건조지대에서 엄청난 홍수가 발생하고 한발과 기상이변이 이 시대의 특징이 되고 있다. 다양한 기후와 환경변화의 예측과 현실들 중에는 참으로 사태의 위중함을 비웃는 논리들도 쏟아지고 있다. 부산에서는 단연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 북극항로가 개방되고 따라서 유럽과의 물류의 획기적인 변화가 와서 부산경제에 득이 될 것이라는 일종의 기대를 간간이 듣게 되었다. 이른바 북극항로의 스토리이다.
북극의 온도가 전반적으로 2도정도 상승했다는 그래서 위성으로 보여 지는 얼음이 없는 북극의 모습에서 어쩌면 그러한 경제주의의 상상력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구생태계의 변화는 총체적이고 전일적이고 인간의 선의의 계획과는 관계없이 진행되고 진화해 왔다는 아주 별스럽지 않은 진실 앞에 그러한 북극항로에 대한 스토리는 나에게는 일종의 심리적 자기 방어정도로 이해되는 것이다.
‘ 칼 융’은 어떤 중독현상들에 대해 '자신이 감당해야 할 정당한 고통을 회피한 결과'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우리의 현대가 석유와 화석에너지에 중독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석유와 화석의 과다하고 맹렬한 소비가 가공할 환경변화의 원죄라는 사실을 소위 현대의 과학이란 것들이 낱낱이 고하고 있다. 그러한 결론에 기반한 새로운 발전의 방식과 문명에 대한 전혀 새로운 발상이 어떤 대안으로 실험되고 있고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석유중독과 경제적 물질주의는 한국에서는 거의 집단적인 자기 확인의 한 방식이 되고 있다.
세계적인 기후변화에 대한 근원적인 반성과 기본적인 발전의 해체적인 새로운 방식의 근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좋은 의미로 시작된 저탄소녹색성장의 제대로 된 의미는 많은 미스언드스투드와 혼란에 빠져 버린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이한 현상은 대규모의 토목사업에 대한 이해의 격렬한 상충에서도 쉽게 보여진다.
새로운 발전의 방식, 그것은 석유에서 프리리한 지속가능한 문명에 대한 그림과 탄소가 적게 배출되는 그래서 에너지의 사용효율을 극대화하는 삶의 새로운 그림이다. 지난 300년간 정도 추구해왔던 산업혁명이후의 사회 발전의 방식에 대한 집단적인 반성과 재기획을 뜻하는 것이다.
북극항로에 대한 스토리는 진실을 거부해야 하는 ‘회피의 심리’의 하나의 유형으로 보인다. 이러한 심리는 현실의 판단을 스스로의 이해에만 맞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이에 대한 치유는 문제를 직시하고 고통속에 진실을 보려고 하는 그래서 현상을 회피가 아닌 현실로 받아들일 때 만 치유될 수 있다. 그래서 기후변화의 도저한 시대의 한계 앞에 아주 조그맣고 경쾌한 탈석유의 꿈이라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섬처럼 되어버린 한국의 기후변화 석유중독사회의 가공할 현실에 대한 집단적이고 개별적인 “회피의 심리”가 어디에서 직시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인가.
3. 세상을 바꾸는 무수한 상상과 현실.
이대로 가면 생태적 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주류들의 판단이다. 그래서 유럽을 중심으로 탈 화석에너지의 발전의 경로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이 되고 있다.
2050년까지 이제 거의 80%이상의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막아야 하고 그렇게 할수 있다는 것이 유럽연합의 판단이 되;어가고 있다.
우선 유럽연합은 이미 지난 2009년 유럽의회의 결의로‘2020계획’ 즉 2020년까지 유럽 전체의 에너지 소비량 중에서 일차에너지의 20%를 재생가능 즉 태양과 바람의 힘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망은 우리의 현실에서 보면 가히 혁명적인 결단과 계획으로 생각된다. 유럽의 기준으로 보면 아직도 우리의 재생가능에너지 비율은 1%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2030년까지 11%라는 장기 목표를 내세우고 있으나 그 내용적인 구성을 보면 재생가능에너지가 아닌 것도 상당하게 포함되어 의미 있는 계획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안의 에너지 레이스는 가속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2050년에 100% 석유 프리를 선언하고, 지난주에 ‘오바마’는 백악관에 태양광 발전모듈을 설치하라고 하였다. 이미 로마 교황청은 수년전 교황청의 옥상에 대규모의 태양전지를 설치한 바 있다.
태양에너지에 대한 보조금제도를 없앤 한국과 달리 많은 나라들에서는 더욱 적극적인 에너지 전환의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의 결정적인 사례는 발트해의 섬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지역의 섬 즉 삼소섬, 에뢰섬, 고틀란드등의 실례는 인류가 얼마든지 석유에서 해방되고 새로운 에너지로 자급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대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 섬에서는 지난 10여년의 일치된 노력으로 이제 에너지사용의 100%를 풍력, 태양광, 태양열, 바이오매스로 충당하고 여분의 전기를 본토인 덴마크로 수출하고 있다. 항구에 덩그러한 석유탱크는 이제 더 이상 사용되지 않으며, 세계의 대안을 열망하는 자들에게 이러한 성취는 큰 치유와 안도의 사례가 된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많은 지방도시 지중해의 섬들에서도 100%에너지 자립의 프로그램을 과감하게 도입하고 있다.
4, 다시 감나무,
박경리 선생님이 지적한 원주의 감나무이야기는 이제 보편적인 사실처럼 생각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크고 작은 변화는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나 많은 것이 되어 버렸다.
식물들은 미세한 온도의 변화에 자기 세계의 전부인 꽃들을 피우기도 하고 지우기도 한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로 세세한 기온의 변화가 본격적인 생육의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하하여 그들은 어떤 폐기물도 남기지 않고, 실업도 잉여도 없는 정교한 생명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제 도도한 인간만이 지구생태계에서 쓰레기만 남긴 채 일종의 집단적인 광인이 되어가고 있다. 생명계의 윤리와 진실을 삶과 문화의 기본적인 척도로 삼았던 우리의 인문적인 전통이 거추장한 언사들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뛰지 말고 천천히 걸으면서 ‘회피의 심리’를 치유하는 집단적인 어떤 움직임 같은 것이 인간의 작지만 큰 본연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 까 상상한다. 그래서 이성의 힘이 신비한 것들이 삶의 힘이 되는 그러한 문명의 그림도 상상한다.
간만에 만난 선배다. 20년 넘도록 한솥밥을 먹었지만 썩 친하게 어울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별로 변한 것이 없는 듯한 그에게 내가 표현했던 마음은 신천교 다리 끝까지 배웅을 해 준것이 다 였다. 그렇게 밤이 깊었다.
hide away...
출처: 다음 블로그 홍이 아뜨리애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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