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대로라면 옛소리의 대북공연이 끝난 직후일 거다. 걷고싶은부산의 공동이사장인 부산은행 이장호 행장의 출발 신호가 이어지고 달빛걷기 참가자들이 행열을 이루어 금융단지를 빠져나갈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문현동 금융단지는 전국 최초의 토양오염 복원지역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희망전자 재활용센터가 있다.
직전(단비3길)하여 성동빌라 앞에서 좌측으로 언덕길을 지그재그로 오른다. 예전에 웃농막 마을이라 불렸던 곳, 1985년 산사태의 아픈 사연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도회의 불빛은 이미 점점이 번지고 가로등이 길을 재촉한다. 오르막길이 끝나고 마을로 연결되는 곳에 목화그린피아 빌라가 있고 부성정보고 교문이 보인다. 교문 옆으로 가이즈까향나무와 사철나무가 식재된 학교 담길을 따라 돌산공원으로 향한다. 이즈음부터 도시는 거대한 화덕이 되어 곳곳에서 불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해지고 어둑살 내린지 오래건만 전포동 돌산공원과 이웃한 문현동 벽화마을 속의 아이들은 그네를 타고 숨박꼭질에 열중이다. 불현듯 유년의 한때가 스친다. 한때 무덤마을로 도심 속의 오지처럼 버려진 마을이지만 지난 2008년 봄 ‘따뜻한 사람들의 벽화이야기’라는 프로젝트에 의해 일약 전국의 명소로 거듭났다.
긴가민가 하던 주민들도 초기의 경계심을 풀고 앞장서 마을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노력들의 하나가 외지 방문객을 위해 배려한 흔적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벽화마을 내부를 잘 조망하라고 담벼락 옆에다 블록으로 계단을 만들기도 했다. 가난하기에 더는 숨길 것도 없는 사람들이 그들의 좁다란 골목과 지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마을을 관통하는 주 통로인 돌산길을 따라 약 300m 직진하여 진남로 횡단보도를 건너 공동묘지로 향한다. 황령산 산행 들머리다. 병풍처럼 들어선 황령산이 음 구월 열이틀 이지러진 달빛에 어깨를 보이고 망자들이 억새풀로 춤을 춘다. 50m 앞 뭔가 움직이는 물체에 순간 긴장한다. 고라니들이다. 그제사 후레쉬를 꺼내어 숲을 뒤졌지만 이미 종적을 감춘 다음 이었다. 묘한 설레임이 전해왔다. 달빛 걷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산모퉁이를 돌아 코굴 앞을 지나며 코구멍 속을 들여다 보았다. 예전에는 누군가 치성(致誠)을 드리느라 밤마다 촛불 두 세 개 언제나 켜져 있었지만 산불방지를 위해 일체의 무속 행위가 통제됨으로 인해 불빛은 사라진지 오래다. 산모퉁이에서 약 500m 정도 오면 혜성학교와 문현 현대2차아파트 방면으로 빠지는 갈림길이 있다. 바람고개까지 계단을 통해 바로 갈 수도 있고 갈짓자로 돌아갈 수도 있다. 갈짓자 길을 택한다. 가슴팍에 잠시 땀방울이 맺혔다. 금융단지에서 바람고개까지 약 2.28km, 잠시 다리쉼을 하며 휴식을 취한다. 바람이 땀방울을 걷어 가는 사이 이정표를 살핀다.
바람고개에서 봉수대로 향하는 길은 사자바위로 올라 능선을 따라 가는 길과 편백숲으로 들어가 황탑쉼터로 하여 봉수대로 오르는 길이 있는데 황탑 쉼터 방면으로 간다.
멀리서 날아 온 도시의 소음이 숲지붕에서 사그라진다. 방음장치다. 봉수대 옆 반짝이는 송신탑을 이정표 삼아 편백숲으로 들었다. 곧게 선 편백들 사이로 가던 길 멈추고 숲과 나무와 대화한다. 베짱이류와 귀뚜라미류가 노래를 보탠다. 순간 정적이 감돌고, 언제 이런 고요와 만난 적이 있는지, 호사가 아닐 수 없다.
너들을 지날 즈음 트인 숲 자리 넘어 대남 로타리를 휘감아 도는 차량의 불빛이 뱀처럼 산속으로 기어 온다. 서둘러 황탑 쉼터로 오른다. 돌계단을 밟고 오른 순간 황탑산우회가 조성한 아늑하고도 풍광 좋은 터(약 150㎡ 정도)가 방문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금련산 자락 끝에 광안대교가 빛을 발한다. 누구인들 쉬어 가지 않을까. 그들의 노고를 기린다.
350m 만 전진하면 봉수대다. 뒤돌아보니 북항의 야경이 비탈에서 잠시 보인다. 이윽고 봉수대, 소문대로 부산의 야경을 담기 위한 꾼들이 포진한 채 부산의 밤을 담고 있다. 절로 탄성이 인다. 사방을 돌아본다. 영도를 배경으로 한 북항 내 허치슨 부두와 중앙로를 경계로 원도심과 가까운 문현동과 범일동 일원 , 수정산과 엄광산 자락의 수정동, 좌천동,범천동, 가야까지 한눈에 들어 왔다. 카메라에 다 담을 수 없다.
서면을 중심으로 좌측 엄광산과 우측의 백양산 사이 번화가의 불야성이 멀리 낙동강으로부터 이어진 도시고속도로를 따라 학장 주례, 개금, 가야까지 뻗어 있다. 그리고 연지동 일원의 말 모양의 하야리아 시민공원이 사직동을 넘으려 한다. 봉수대 아래로는 전포동과 양정동의 불빛이 황령산을 에워싸고 있다. 모두들 탄성을 자아낸다.
걸음을 옮겨 송신탑 앞 테크로 향한다. 봉수대쪽에서 송신탑에 가려 보이지 않던 연제구와 동래구, 금정구가 물만골로부터 시작하여 재송지역까지의 야경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광안대교와 남구지역 그 넘어 영도 해양대가 파노라마처럼 전개되어 있다. 흠잡을 데 없는 야경이다. 이즈음 11월 13일 이곳에서는 밤하늘의 트럼펫이 울려 질 예정이다. 달빛걷기의 클라이막스다. 별들은 총총 떨어진다.
문득 불빛의 차이를 발견한다. 그것은 아파트단지들이 만들어 내는 불빛과 원도심이 만들어 내는 불빛의 차이랄까. 원도심의 불빛은 점점이 흩어져 있지만 가슴과 눈에서 느껴지는 바는 확실히 보다 정적이고 따뜻함이다. 아쉽게도 그 따신 불빛들이 점차 지워지고 있음이다. 그 불빛들은 역설적이게도 길이 앗아가고 있다. 반듯하고 곧게 뻗은 길일 수록 불빛은 뭉텅이로 무리 짓지만 차갑다. 먼 길 나갔다 귀가하는 들녘에서 점점이 피어 있는 혹은 마을어귀 가로등 같은 한점 불빛이 그리워진다.
금련산 쪽으로 향한다. 뭉툭뭉툭 불거져 나온 능선의 바위길을 지나 곰솔이 아치를 이루었다. 새삼 운치 있다. 순환도로로 내려섰지만 그 길을 포기하고 좁지만 콘크리트가 아닌 산길을 택한다. 순환도로를 걷기위해선 인내를 필요로 한다. 달리 사랑을 나눌 장소를 찾지 못한 아베크족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아니 그런 시절이 없던 나로서는 잘 노는데 은근 방해라도 하고 싶은 심술이 날까봐서다. 어쨌든 서로가 불편할까봐 떡갈나무와 곰솔이 가득 찬 숲길로 들어섰다. 내리막길이지만 아름드리 소나무들을 껴안고 내딛는 걸음이라 또 다른 재미다. 골짜기를 돌 때 마다 미쳐 보여주지 못한 동해가 오징어잡이 배 몇 척을 띄워 몰려 왔다.
숲길은 이제 어른 세명 정도가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걸을 정도의 폭으로 하산길을 안내 한다. 호젓한 길이다. 벚나무의 은빛 수피가 후레쉬 불빛에 번뜩이고, 낙엽이 푸석푸석 소리를 내며 밟힌다. 돌아보니 바람고개 좌측 갈미봉과 사자봉 자락이 북항의 야경을 등에 지고, 골안에 아파트들을 품었다.
그 불빛들이 이웃한 동광골프연습장 조명과 더하여 산속으로 날아들었다. 숲이 불면증에 걸렸다. 갈미봉 자락을 파고 든 경성대의 불빛도 못마땅하다. 그만큼 숲이 파편화 됐다는 것이다. 도로는 그 첨병이다. 지겨운 것, 산길이 끝나는 지점이다. 순환도로를 피해서 걸었지만 결국 그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슬그머니 성이 났다. 아무리 순환도로라고 하지만 여긴 엄연히 산이 아닌가. 그런데 보행자를 위한 배려는 이 순간부터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순환도로가 말 그대로 도심 교통의 흐름에 크게 기여하는 바도 아니고, 고작 해봐야 심야 테이트족 여관 노릇 밖에 하지 못함을 감안한다면,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곰곰 생각해 보았다. 2000년대 초 한창 하천복원운동을 벌일 때, 부산의 대표적 하천이라고 할 수 있는 온천천을 살리기 위한 몸짓으로 콘크리트 라이닝을 깨뜨리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어 함마로 깨뜨린 일이 기억났다. 그때도 잡아갈테면 잡아가라는 각오로 벌인 일인데 , 산속을 관통하는 이 도로를 사람을 위한 길로 만들자면 한번 일을 벌이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될 일이 아닌가 싶다.
이제 막바지다. 발바닥과 무릎관절에 오는 정나미 없는 아스팔트의 딱딱함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런 길이다. 지면을 빌어 관계당국에 인도를 요구한다. 이따금씩 자동차 전조등이 다리를 할키고 지나갔다. 청소년수련원에서 승용차들이 오르내리는 길을 도로를 2km 정도 따라 내려와 좌두철한의원 앞에서 금련산 역 4길을 따라 남천중앙길로 접어 들었다.
바다내음이 골목으로 밀려들었다. 광안리다.
광안대교가 불을 밝혀 어둠을 가르고 있다. 그 바다에도 파도는 쉴 사이 없이 몰려오고, 해변에는 연인들의 사랑이 뜨겁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근거주 주민이 게를 잡고 있었다. 한 가득이다. 잡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그럴 법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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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를 마무리 하고 약간 허기진 배, 더하기 술 한 잔이 생각나 빅마마(624-2070) 란 곳을 찾았다. 올케 시누이가 마음 맞추어 가계를 열었는데 종가집 며느리같이 후덕하다. 이곳 토박이인 그들과 어울려 이런저런 이야기로서 황령산 달빛걷기를 마무리한다. 간만에 부산의 밤을 보았다.
후기
2009년 11월13일, 전야행사로 살정된 달빛걷기는 취소되었다. 비가 왔기 떄문이다. 이 글은 제1회 부산걷기축제를 앞두고 국제신문에 실렸던 글이다. 14일 개막식은 '항도부산, 600년을 걷는다' 를 비롯하여 폐막식 '부산해안100리 걷기대회'가 있었다. 폐막식에는 걷고싶은부산 시민선언문이 발표되었다.
걷고싶은부산 시민선언문
태초에 길이 있어 문명이 시작되었고 역사가 되었다. 산과 강, 해안의 길을 따라 만남과 진보가 이루어 졌다. 길을 통해 자연을 존중하고 생명을 품었다. 마을 어귀 정자나무 지나 골목길을 통해 공동체의 안녕을 도모했다. 길은 우리들의 일상이었고 통학과 출.퇴근 길이었으며, 사계를 읽고 자연을 배우는 현장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는 사람을 길에서 몰아내고 자동차를 길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사람이 걷지 않는 길은 사람으로부터 멀어졌다.
길의 주인은 사람이다. 우리는 잃어버린 길을 되찾기 위해 걸어야 한다. 안전하고 쾌적한, 걷고 싶은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정녕 그 길을 통해 느림의 철학으로 이 도시가 다시 태어나게 해야 한다.
길은 도시경영의 새로운 마인드이자 비젼이다. 길 걷기는 부산의 재발견인 동시에 재생의 모드로서 지속가능한 세상을 추구하는 출구이어야 한다. 나아가 길 걷기는 오늘의 지구 위기에 답하는 일이며,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다. 막힘과 단절의 배타적 공간에서 소통과 어울림의 장소로서 길은 열려야 한다.
그렇다. 길은 부산에서 시작된다. 백두대간 낙동정맥 길게 뻗어 내린 이 땅의 시작이자 끝인 부산에서, 낙동강 1300리 굽이친 사연 남해나 동해 살 섞어 큰 바다로 가는 길목의 땅 부산에서 길이 만든 교류의 꽃을 피워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신념을 가지고 길에 가치를 부여하고 의지를 가시화시켜야 한다. 건강하고 안전한 길로서 삶의 질이 고양되고 더불어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어야 한다. 사람다움이어야 하고 정다움이 묻어나야 한다. 부산이기 때문이다. 다 같이 매진하자. 2009년 11월 15일
2009 부산 걷기축제위원회
파도 - 키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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