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초 지금은 고 2가 된 큰 아들과 갈맷길 6-2 백양산 둘레길을 걸었다. 지난 1년 아들은 또 또 훌쩍 컷다. 왠지 나만 작아진 느낌이다. 시간이 되면 그때 심었던 나무도 잘 자라고 있는지 살필겸 다시 걸어 보고 싶다. 걷고싶은부산을 그만 둔 뒤로 걸을 일이 없어졌다. 아무튼
갈맷길 6-2 코스 소개글은 부산은행 행보 에 연재 중인 '부산의 길로 대체 한다. 지난 2009년부터 연재를 하고 있다. 이번 갈은 아들과 같이 걸었다. 사실 아들과의 동행도 6-2 탐방도 연재중인 글을 위해 겸사겸사 나섰던 걸음이다.
갈맷길 6-2코스는 백양산 임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구포역과 성지곡수원지를 기종점으로 한다. 이번 나들이는 고등학생 아들과 함께 걸었다. 코스는 진구쪽 백양산을 택했다. 아들은 요즘 피곤하다. 학교가 학기초부터 아이들을 옥죄고 있다. 그래서 휴일이 끝나는 일요일 저녁부터 짐짓 피곤해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도 제도로 먹지 못하고 학교 갔다 밤 열시를 넘어 귀가 한다. 아비로서 어떻게 해 줄 수가 없어 안타깝다. 봄이 익어가면서 그 압박은 더 심해지리라 보고 격려도 할 겸 같이 걸어 볼 것을 권했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마다하고 선뜻 따라 나서 준 것이 고맙다. 길의 시작은 성지곡 입구에서부터 였다.
지세는 수원지를 중심으로 서쪽은 백양산 자락이 동쪽은 새미산(금정봉), 북쪽은 함박고개로 큰 골을 이루고 있다. 성지곡 초입은 가시나무와 전나무를 비롯 삼나무, 편백이 숲을 이루고 있어 시민이 즐겨 찾는다. 이 숲의 나이는 백년쯤 됐다. 하여 부산백년숲이라 소개하는데 수원지가 완공될 당시 비탈 토사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심었던 나무들이다. 부산에는 구덕수원지를 비롯하여 백년 된 숲이 몇 곳 있다. 아무튼 100년만 잘 가꾸면 그 숲 하나가 수많은 사람을 치유하는 병원이 된다.
지난 2010년 부산시설관리공단에서 데크로드 녹담길 510m를 거미줄처럼 촘촘히 깔았다. 녹담대는 하부댐 수변을 가로지르는 곳에 있다. 부산직할시 시절 문양이 울타리쳐 진 길을 따라 지그재그로 오른다. 길바닥 재질은 황토공굴이다. 배트민트장을 지나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지댐이 있다.
성지곡수원지의 경우 1907년 일본인들의 필요에 의해 착공되어 1909년 (대한제국 융희(隆熙3) 완공된 철골콘크리트 중력식 댐이다. 부산상수도의 효시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상수도원의 수원지로 27m의 제방높이를 기록하고 있다. 댐마루 이동통로에 영문 초석이 있다. 공사기간을 포함 일본인 자문, 감독, 주재, 실행엔지니어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성지교를 건너면 순환도로와 연결된다.
수변길을 돌아 숲체험센터에서 삼림욕장방향으로 비스듬히 오른다. 지난 비에 불어난 계곡의 물소리가 귀를 세우게 한다. 1차 갈림길인 삼림욕장 입구에서 잠시 본길에서 비켜나 물소리를 따라가니 폭포 하나 가슴을 관통한다. 동천이 발원하는 원류인 셈이다. 지금 그 동천은 물길을 잃어버리고 범내골에서 겨우 이름을 건지고 있다. 동천의 복원이 거론된 지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물길이 살아 날 조짐은 요원하다.
다시 1차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만남의 광장쪽으로 향한다. 오르막길 바닥은 콘크리트가 깔려 있다. 삼림욕장 입구 갈림길은 바람고개와 만덕고개로 방향으로 나뉜다.
석천약수를 지나 만수정약수터 앞에서 왼쪽으로 90도 꺽어 편백숲 계단을 오른다. 숲바닥이 벌겋다. 식물이 뿌리내릴 틈이 없다. 드러난 뿌리가 걸음을 조심스럽게 한다. 5분 남짓 비탈을 오르자 만남의 숲에서 오는 길과 합류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한낮인데도 어둑하다. 쭉쭉벋어 올린 편백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노폭이 넓어졌다. 좌우로 도열한 편백숲은 사철 푸른 기운을 품고 있다. 돌탑을 지나자 수원지를 조망하는 백양대가 열려 있다. 황령산과 금련산이 병풍을 치고 있다. 우리들의 도시가 그 사이에 초고층 건물들의 키를 높이며 자리잡고 있다. 이미 수영만 쪽 마린시티는 주변 산들과 어깨를 견주고 있다. 백양산과 황령산이 없었다면 해 본다. 끔찍한 상상이다.
잠시 다리쉼에 목을 축이며 아들에게 말을 건넨다.
“요즘 힘 들제”, “아니 괜찮아”, “니 한테 그동안 화만 낸 것 같다. 미안하다”, “괜찮다”, “아버지 이해하나”, “응”...아직은 서툴기만 한 이 짧은 대화 몇 마디가 그날 나누었던 이야기의 전부다. 그렇게 앞서거니 뒷서거니 우리 부자는 그렇게 걸었다.
청설모 한 마리 민첩하게 나무 사이를 건너 뛰며 시선을 끈다.
한 몸이 된 소나무와 산벚나무 연리목
백양전망대에서 바람고개로 가는 길은 불태령과 백양산 사이 계곡을 끼고 걷는 오솔길이다. 계곡을 앞두고 첫 번째 갈림길이 나오면 윗길로 직진한다. 두 번째 계곡에서 만남의 숲 이정표가 서 있는 삼거리에서 상수원 보호용 철책을 지나 암반지대를 통과한다. 굴참나무와 상수리 등의 참나무류가 많은 곳이다. 노폭은 등산길 수준이다. 골짜기가 돌출되는 지점, 조망점이 있고 그 위에 무덤1기가 있다. 불태령(616봉) 자락이 비스듬히 내려서고 새미산 줄기가 포개어 지면서 그 너머 만덕고개로 이어지는 백양산의 북쪽 산줄기가 펼쳐졌다. 불태령(佛態領)은 만덕에서 초읍으로 넘어가던 고개이다. 조선시대 서면(西面)에 속했던 만덕리(萬德里)에서 부산장(釜山場: 진시장)에 장을 보러 갈 때 넘던 고개였다. 다른 이름으로는 함박고개 혹은 성지고개라고도 부른다.
다시 바람고개로 걸음을 옮긴다. 내리막길이지만 반대편에서 올 때는 꽤나 숨을 헐떡이는 이는 지점을 지나 마른 계곡을 굽이돈다. 진행방향에서 세 번째 갈림길 역시 윗길을 택해야 한다. 키 큰 굴참나무 두 그루가 이정표 역할을 한다. 임도에서는 맛 볼 수 없는 조붓한 숲길이 사행하는 구간이다. 조만간 신록에 파묻히면 길은 더욱 빛날 것이다. 네 번째 다섯 줄기 서어나무 갈림길에서는 아랫길로 하여 임도로 내려 선다. 작은 너들이 형성되어 있다. 임도 합류지점에서 바람고개까지는 약 230m, 여기까지가 출발지로부터 5.6km 지점이다. 백양산 능선 쪽에 백악기 후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오리부리공룡류(Hadrosauri )의 발자국이 있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이들이 초연중학교 빠지는 길목이기도 하다. 1km 전방 선암사가 지척이다. 임도가 크게 한번 휘어 감는다.
갈맷길 새 리본, 재질에 문제가 있다.
선암사를 200여 미터 앞 둔 지점
선암사 후문에서 만난 때까치와 동박새
길은 선암사 후문과 연결되어 있지만 사찰 측은 수행의 방해를 들어 아랫길을 이용해 줄 것을 부탁하는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 계단을 통해 일주문을 들어선다. 선암사는 산의 비탈진 지형을 이용해서 각 전각들의 영역을 구분하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대웅전이고 관음전과 요사체인 방사 (坊舍)가 이웃해 있다. 대웅전 주련은 이 절의 창건주 원효대사의 오도송이라고 한다.
청산첩첩미타굴 (靑山疊疊彌陀窟: 첩첩산 청산은 미타의 굴이요)
창해망망적멸궁 (蒼海茫茫寂滅宮: 망망한 푸른바다는 적멸의 궁전이로다)
물물염래무가애 (物物염來無가碍: 사물과 사물의 가고 옴에 거리낌이 없는데,)
기간송정학두홍 (畿看松亭鶴頭紅: 몇 번이나 소나무 정자에 학의 머리 붉음을 보았던고)
대웅전 뒤쪽 산쪽으로 이동하면 용왕단이 있고 다시 계단을 오르면 극락전 , 칠성각, 산신각이 연해 있다. 선암사는 범어사의 말사로 천년 고찰이다. 창건당시에는 견강사(見江寺)라 불렀다. 절 딋편 절벽 바위에서 화랑들이 무술을 연마하면서 선암사로 개명했다.
1483년(조선 성종14)에 중창했고 1568년(선조1) 신연(信衍), 1718년(숙종44) 선오(禪悟)가 각각 중수했고, 근세들어 1918년 동운(東雲)이 1955년 혜수(慧修)가 재차 중수 한 바 있다. 방문자의 시선을 끄는 그림은 선암바위 사이로 가차 없이 쏟아지는 선암폭포다. 그 시원스러움은 번뇌, 망상을 씻어내는 청정수다.
두 번째 그림은 극락전 앞마당에서 내려다보는 백양골 전망이다. 언젠가 사찰 앞 아파트 건설문제로 한동안 이 절집을 출입한 적이 있었다. 봄밤이 깊었던 그때, 개구리가 지천에서 합창하는 간간이 울던 소쩍새 울음에 마음을 빼앗겼다. 발아래 도시의 불빛이 흥근하고 모였던 사람들은 자꾸만 침탈당하는 자연의 영역에 대해 걱정과 우려의 안타까움을 나누기도 했다. 이후 그 안타까움은 현실이 되긴 했지만 이런 경계를 이 도시 또 어디서 만난단 말인가.
근세 선지식인으로 당대를 깨우쳤던 헤월선사가 한 말씀 하신다면 “그대로 뒤라” 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돌아서 나오는 길 대웅전 뒤편 130년 전 심었다는 동백숲이 마지막으로 선암사를 기억하게 한다.
범종루와 명부전을 거쳐 돌아서면 휴휴정(休休亭) 넘어 한 무리 솔이 웅성웅성 서 있다. 그들을 뒤로 하고 임도를 따라 백선약수터로 향한다. 벚꽃이 꽃망울을 틔울 채비를 하고 있다. 올해는 기온변동이 심해 진해 군항제도 벚꽃없이 시작했다는데 백양산의 벚꽃은 조만간 절정에 이를 듯싶다. 다섯 번째 갈림길에서 아랫길로 직전한다.
휴흉정 앞 이정표
윗길은 지그재그로 백양산으로 향하는 임도다. 얼마쯤 내리막을 향해 가면 백선약수터다. 지나온 길에 만난 약수터들을 떠 올려 본다. 석천, 찬물샘, 학수천...헤아려 보니 참 많다. 그러고 보면 백양산은 물을 품은 산이다. 뿜어 내는 물길 보다 지하로 스며들어 목마른 이 도시민의 갈증을 해소시켜주고 있다. 거의 1km 간격으로 약수터가 있다. 시방은 오행약수터다. 쉼터 정자가 있고 시인 이호우의 살구꽃 핀 마을 시비가 있다.
임도는 오르고 내리며 비포장 포장을 번갈아 가며 연결된다. 구청양묘장을 지나면서 숲머리에 가리어 보이지 않던 백양산 능선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등나무약수터 주변도 새롭게 정비했다. 전에 없던 테크전망대도 설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기점에서 10km지점이다.
양묘장을 돌아서면 백양산 줄기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면 백양산은 사리진다.
백양산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엄광산 자락과 멀리 구덕산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목적지 개림초등학교를 앞두고 아들과 도시락을 나누어 먹는다. 또 이런 시간을 나눌 수 있을까. 어릴 때는 이곳저곳 많이 데리고 다녔는데, 시나브로 도끼눈으로 아들을 대했던 것 같다. 이생에서 아버지와 아들로 연을 맺어 살면서 얼마나 같이 살 것인가. 아들은 훌쩍 커버렸고 머잖아 제 세상을 살 것이다. 그래 지금부터라도 라며 마음을 챙겨 본다.
백양산 둘레길 걷기는 통상 신라대와 개금 예비군교장 갈림길인 10.6km 지점에서 계속되거나 다음을 기약하게 된다.
우리 부자는 후자를 택했다. 기약할 수 있는 내일이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 길에서 만난 노랑제비꽃
엄광산 아래 눈에 띄는 그림 하나, 앞 뒤로 일반주택이 가득 들어선 가운데 아파트 단지가 입지했다. 당연히 아파트는 뒤에 들어 왔을 것이다. 한마디로 횡포다. 그동안 무으로 제공 받던 전망, 일조, 바람이 사라진 것이다. 저런 식의 아파트 건설은 이제는 없어져야 한다. 저기다 건축허가외 승인을 했던 행정도 문제다.
고개를 돌려 운수사 방향으로 이어지는 둘레길 그 첩첩의 그림을 본다. 앞 뒤 막힘이 있어도 눈이 편함은 뭔가.
아무튼 여기가 갈림길이다.
계곡 식생대는 사스레피와 소나무 등이 주류를 이룬다.
옹달샘 같은 곳
선형의 생물체, 귀가 후 아들과 인터넷을 뒤적이며 정체를 확인하고자 했지만 ....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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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4.23 한국환경생태기술연구소 김맹기 박사가 이 놈의 정체를 다음과 같이 일러 주었다
개림초등학교 방향 출구이자 들머리
횡단보도를 건너 주례 큰 길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이동하던 중
이 마을을 발견하다.
철둑 옆 담벼락 길
그리고 좁다란 골목
주례2동 희망마을이다.
주요한 길 자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머지 백양산 둘레길을 길을 기약하며 ,,,,
I Love You Love Me-Arirang Singers 올드 팝 매니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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