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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길에서

부산은행 부울경 대학생 국토종주 5일차 함안,아라가야를 찾아

by 이성근 2013. 6. 9.

 

 

종주 5일차 7월16일(토) 국토종주단에게 주말은 없다. 마산~함안 

마산대학을 나와  1004번 지방도를 따라 간다.  비교적 짧은 구간이지만  불볕더위로 대원들이 지친 하루였다.

 

잠시 군도로 들어 선다. 산인자동차학원을 지나  산인농공단지로 향한다.

등꽃이 만개했다.

이때만 해도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아 팔팔하다.

무궁화가 한창이다.  나라곷 무궁화 언제부턴가  좀 지저분해 그저 그런 꽃으로 여겼다.  또 언젠제부터인가 살펴보니  그 질김과 단아한 낙화가  마음에 들어 제대로 대접하고 있는 중이다.   인도가 원산인 무궁화는  구당서 신라전(新羅傳)에는 신라를 '근화향'(槿花鄕, '무궁화의 나라'라는 뜻)으로 소개하고 있다. 산해경에서 언급된 '군자국'(君子國)에 관한 설명에 따르면, 무궁화는 '아침에 꽃이 피고 저녁에 꽃이 지는 훈화'로 소개되었다. '무궁화'로 불린 것은 조선시대 이후로, 그 이전에는 '목근(木槿)' 또는 '근화(槿花)', '순(舜)' 등으로 불렀다.  무궁화는 가지만 꺽어 심어도 뿌리를 내리는 생명력이 강한 나무다.  그래서 옛날 시골에서는 울타리 대용으로 많이들 심었다.  꽃도 무지 많이 핀다. 7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10월까지 꽃을 달고 있다. 학명은 히비커스(Hibicus)로 이집트의 히비스 여신을 닮았다는 뜻으로 아름답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명 Rose of sharon은 '신에게 받치고 싶은 꽃'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어릴 적 숨박꼭질 할때  술래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외쳤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친근한 꽃이다.  일제는 이 꽃을 싫어해 마구 베어냈다나

참깨밭을 지난다.  시인 김준태의 '참깨를 털면서' 란 시 가 생각났다.  아마도 참깨밭 가운데 있는 무덤을 보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종주가 끝난 다음 글을 입히며  찬찬이 읽으며 다시 마음에 담아 본다.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 참깨를 털어내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년을 가자이 살아본 나로선 / 기가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 / 할머니의 가엾어 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입곡삼거리를 앞두고 짧은 터널을 지난다.

 

입곡군립공원 이다.  누워있는 저수지는 일제시대에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하여 협곡을 가로막은 저수지로서 둘레가 약4Km나 되며 폭은 부르면 대답할 수 있는 거리이지만 길이는 뱀처럼 생겨 끝과 끝을 볼 수 없는 함안에서 제일 큰 저수지이다. 저수지 왼편을 따라 깍아지른 절벽에는 송림이 우거져 있다.  늘 지나다녔건만 이번 국토종주를 통해 그 실체를 확인했다.   

 

그런데 완전무장한 저놈이 누구이든가 ?  이번 종주를 통해 새롭게 알게된 사실 하나, 머시마들도 화장한다는 것  둘째, 피부관리에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인데 ,  남자대원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놈들이 몇 된다.  검은 복면의 저 스탭도 그 중에 한놈인듯 하다.    아무튼 이 연두빛 다리에서 한바탕 구호가 울려 퍼졌다. 

다리를 기준으로 하여 입곡의  숲은 우측이 송림 중심인 반면 좌측은 잡목림이다.  그늘이 짙어 한동안 쉬었다.  

그 길에서 자귀나무 꽃을 꼴똘히 보았다.

점심을 먹고도 시간이 남아 휴식시간을 듬뿍 주었던 입곡군립공원. 입곡마을을 경유하여 땡볕길을 걷는다. 

길가 담장 너머 감나무가 유난히 반짝였다.  그 반짝임은 유년시절 고향집 감나무에 대한 그리움인지도 모른다. 가을을 읽는다.  

덥다 더워 !

입곡으로 부터 7km 남짓한 거리에 있는 함안면 괴산리 이수정. 고개를 넘고  정동교를 건너  만난 제대로 된 그늘이다.  이수정은 조선 명종 22년(1567)에 무진(無盡) 조삼(趙參)선생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세우고, 선생의 호를 따서 무진정(無盡亭)이라고 하였다.  조삼은 생육신의 한사람인 어계 조려선생의 손자로 중종때 문신으로 보내다 후진양성을 위해 낙향한 곳으로 자손들이 그의 덕목을 기리고자 건립한 정자다. 조삼선생의 호를 따 무진정이라 이름하였다. 잘 모르는 사람은 이수정과 무잔정이 하나인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이수정은 연못안 정자를 말한다.  원래는 세개의 수정이 있었지만 신작로를 만들면서 1.3 수정이 없어졌다고 한다.  무진정은 이수정 뒷편 작그마한 언덕에 있다.  

반월형으로 석축을 쌓아 만든 연못주변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며 왕버드나무들이 우람하게 가지를 뻗고 서있다. 연못에는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섬을 띄워놓고 다리를 놓아 건널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수정은 조선시대 정원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연못은 땅으로 음(陰)을 상징하고 둥근섬은 하늘인 양(陽)을 상징하는 기법이다.

                                                                                                                                                                                           출처: 다음까페 양초산악회

                                                                                                                                                                               출처: 다음 까페 한국민속의 이해 민,하,옥 

이곳 이수정에서는 사월 초팔일 낙화놀이가 개최된다. 조선 중엽 한강 정구 선생이 군민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열리지 못하다가 1985년부터 재현하고 있다. 연등과 연등 사이에 숯가루를 넣은주머니를 매달고 불을 붙여 터뜨리는 일종의 불꽃놀이이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적인 행사였으며 낙화희라고 했다.

대원들은 그런 사연에 대해 알아볼 여력이 없다.  그냥 쉬고 싶은 거다.  말해줘도 귀에 들어오지 않응 것이라 싶어  ...

이수정에서  함안읍 가는 길은 이른 봄, 은행잎이 막 부채살을 펼 즈음이 좋다. 그길에 자운영 만발하고 들녘 넘어 산빛은 연녹색으로 물들어  참 좋다. 

함안군청을 지나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에  더위를 쫒는 사람들  한마디씩 했다.  "이 복더우에 뭔 청승이냐"고 

대원들은 틈만나면 그늘이면 드러 누웠다. 이놈들 박물관 들여보냈더니 에어컨바람 나오는 곳에 오골오골 모여 잡담이다.

하지만 일부는 또 하나라도 더 듣기 위해 해설사의 설명에 귀 귀울이고 있다.

 

 

KNN의 카메라 맨도 잠시 여유를 가지는 시간 조불고 있다.  그는 장정에 중간투입되었는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에베레스트 근처를 맴돌다 왔다든가.

함안 가야초등학교 교정,  숙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눈빛이 초롱하다.

아이스크림을 준다는 말에 환호작약하는 여우들

원래는 10조에게 상으로 줄 아이스크림이었지만  여성대원들에게 주어졌다.

그 달콤한 맛 ?

본격적인 텐트생활이 시작되었다.  대원들은 마산과 창원, 진해에서의 밤을 그리워 하기 시작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즐거운 밥 시간

외부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문을 지키고 앉은 스탭

여름해가 참 길기도 히다.

 

We'll Sing In The  Sunshine

(1964)



- Gale Garnet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