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과 어울리기/서평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

by 이성근 2018. 1. 10.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박철수 지음 집 펴냄 2017.11

 

박철수: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주거건축과 문화’, ‘도시공간과 사회 환경등의 주제를 엮어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주택연구소에서의 오랜 연구생활과 주택=아파트라는 오늘날의 집단적 기억 덕에 '아파트 전문가'라는 캠퍼스 밖 별칭을 얻었다. 아파트로 표준화된 일상 역시 다른 문화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능성 중에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아파트를 벗어나 건강한 단독주택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엮은 아파트와 바꾼 집(공저)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표준적이고 균질적이고 자폐적이고 냉소적인 단지형 사회에서 서로 다름의 차이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소통하는 열린 공간으로 사회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다. 아파트의 문제를 아파트로 해결하려는 태도가 바른 진단이나 처방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아파트와 바꾼 살구나무집이 갖는 의미를 부풀리고 싶다. 아파트의 문화사』『소설 속 공간산책 1,2,3』『도시집합주택의 계획 11+44』『한국공동주택계획의 역사등 공동주택의 역사와 계획, 문화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목차

 

작사도방이면 삼년불성이라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의 원형, 상가주택

50회 국무회의남대문로 현장 시찰공병단을 동원한 시범상가주택 건설상가주택 건설구역과 상가주택 건설 요강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상가주택초고층주상복합아파트의 원형, 상가주택사라지는 상가주택

 

매물 정보: 주택. 공항동 소재 미니 불란서식 2, 가격 450만 원

실체와는 거리가 먼 유혹의 형용사, ‘불란서식주택

미니 2이라 불리는 양옥집1970년대 양식왜 불란서식인가왜 미니 2층인가붉은 벽돌 2층 양옥

불란서식 주택의 원형, 문화주택마음속에 그린 집의 귀결

 

흡사 구름다리처럼 생긴 집

오래되어서 귀한 것을 오래되었다고 버리는 시대의 착잡함, 제주 이시돌 목장 테쉬폰

제주 이시돌 목장의 테쉬폰수유리 시험주택 B형과 구로동 공영주택삼안식이라니

그리스-이라크-아일랜드-제주로 이어진 건축술의 여정오래되어서 귀한 것을 오래되었다고 버리는 시대

 

이름에 투사된 정치적 희구와 현실

역사의 현재성9평의 꿈과 재건데이트부흥주택과 즐거운 문화촌

 

쥐가 목욕한 간장도 그대로 퍼먹어야 하니 위생상 좋지 않습니다

애물단지, 장독대 수난의 역사

김현옥 서울시장의 장독대 없애기 운동샘이나 샘표문화생활의 표본, 아파트에서의 장독대 논란1970년의 풍경여의도시범아파트의 묘안쌀독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이 사라진 시대

 

가난하게 자란, 볼품없는 계집애가 갈 수 있는 곳은 연줄로 선이 닿는 식모살이뿐

반세기 만에 고시원의 1.5평으로 다시 등장한 0.6평 식모방

1960년대의 기억1, 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체제 전환식모방의 출현중산층 아파트와 식모방직렬형 이중 계단실식모방의 소멸과 다른 이름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키친에서 직접 던질 수 있는 쓰레기통”, 더스트 슈트 존망사

아아, 아파트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전용 더스트 슈트와 공용 더스트 슈트

더스트 슈트 설치는 선의였을까, 아니면 강제되었을까잠깐의 논란 뒤 유물로 남은 더스트 슈트

 

다용도실 소멸의 생활문화사

0.7평의 공간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부엌 보조공간으로서의 다용도실중층아파트와 고층아파트의 다용도실

 

국가와 시장이 강제한 개인의 취향과 기호

단지의 자랑 야외수영장과 구보의 영어 일기에 등장한 방과 후 정구

1970년대 중반의 아파트 거실과 옥외수영장주택건설촉진법-특정지구개발에관한임시조치법-아파트지구 신설-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경성제국대학의 풀장과 테니스장맨션급 아파트단지의 자랑, 옥외수영장문화생활의 교양, 테니스장

 

잔뜩 발기한 것처럼 여기저기 솟아 있는 거대한 난수표

선룸과 테라스가 확장형 발코니로 변질된 사연

모델하우스의 진풍경테라스와 선룸, 변화의 궤적발코니와 노대전용공간 확보에 치중한 몰염치와 공적 냉소

 

사내는 여전히 자신에게 방이 있었으면 한다

복덕방에서 직방으로, 다시 직칸의 시대를 맞을 것인가

이태준의 복덕방과 박태원의 골목 안〉|가쾌와 집주릅, 그리고 복덕방복덕방에서 부동산으로떴다방과 직방

 

서울 요새화와 싸우면서 건설하자

북악 스카이웨이 건설과 남산터널한강변 고층아파트의 총안서울 요새화 계획이 낳은 엉뚱한 일들

 

끝없는 직각과 직선의 세계, 도시 속의 완벽한 요새

단지공화국에 갇힌 도시와 일상

단지의 유래아파트단지 공화국정책적 과업의 탈출구, 단지 만들기 전략1960년대 초에 채택된 국가 주도의 단지 만들기 전략

단지의 구조화, 일상화, 고착화

 

맨션에 문패를 다는 일이야말로 하이힐 신고 댕기꼬랑이 맨 꼴

비루하고 헛헛한 삶을 일거에 해방시켜 줄 것만 같은 욕망! 맨션아파트

맨션과 맨션아파트맨션, 비난과 유혹 사이에서맨션의 빛과 그림자사각형 굴뚝과 맨션 회색그리고 견본주택맨션아파트단지 삼각편대

 

조선 사람 많이 모여서 문화생활을 하고 있는 소위 문화촌은 어디냐

보고 배운 것이라곤 없는 징상스런 인간들이 사는 곳, 아파트촌

구별짓기 수단으로 붙인 별칭 비탄의 디아스포라 신한촌 그리고 한센인촌과 전략촌

동경으로 만들어진 문화촌과 난민부락인 해방촌보고 배운 것 없는 인간들이 사는 곳, 아파트촌

도어에 잇달아 바로 리빙 룸이 나타나는 외인촌의 외인주택아파트촌에 가려진 쪽방촌과 자취촌

 

단어에 담긴 허구와 과잉

몰염치와 천박함 결핍과 허영 껍데기는 가라

 

아빠, 빠이빠이

국토건설을 향한 국가의 욕망과 폭력적 국민동원

1회 신인예술상 사진 전시회5.16 주도세력의 국토건설단 설치국토건설본부처무규정과 국토건설단설치법시행령: 문민통치와 군부통치의 간극5.16 군사정변 전후에 벌어진 일들근로재건대, 청소년건설단, 새서울건설단, 갱생건설단, 근로보국대국가라는 이름을 빌어 자행된 폭력

 

송파는 강남 바로 턱밑, 분당은 미니 강남, 강동도 진군중

인생 성공의 바로미터, 강남과 아파트에 관한 잡설

욕망의 용광로, 강남사랑의 거리강남 멋쟁이말죽거리 신화와 아파트지구, 강남 최초의 아파트

현대아파트와 성수교 아파트강남의 원조는 동작구 상도동“30평형은 두 개를 합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1+1 상품판매 전략, 복층형 아파트3대 가족형 아파트로 발전한 복층형 아파트

 

그곳은 축제의 날처럼 붐볐다

모델하우스 학습 효과와 영화 트루먼 쇼

조선 최초의 모델하우스아파트 견본주택의 등장평면 확장, 층고 확대를 수반한 견본주택 규모 증가

가설건축물과 상설건축물로서의 견본주택새로운 건축유형으로 거침없이 진화견본주택 관람의 학습효과와 트루먼 쇼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는 아파트 주민들의 걱정

곤돌라에 매달려 비를 맞을 내 초라한 이삿짐 이사 풍경의 돌변 유물로 남은 곤돌라

 

출판사 서평

우리 주거문화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는 1970년 서울에 있는 7가지의 서로 다른 대표적인 아파트를 유형별로 나눠 각 50세대씩 골라 장독의 숫자와 보관 장소, 세탁 장소와 세탁물 건조 장소를 조사했다. 장독의 경우 아파트 유형에 상관없이 평균 9개 이상의 독을 가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세탁물 건조 장소는 발코니가 압도적으로 많고 옥상, 부엌, 방 등으로 나타났다(98~99). 와우시민아파트가 붕괴되었을 때 붕괴의 주원인이 장독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다.

 

한신 부동산이니 강남 부동산이니가 바로 복덕방을 의미한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아무리 내부를 기웃대도 복덕방 영감 비슷한 늙은이도 눈에 안 띄었다.” 박완서의 단편 서글픈 순방에 나오는 것처럼(200) 동네의 터줏대감으로 동네 사람들과 지리를 꿰뚫고 있는 노인이 집이나 방을 찾는 사람들의 안내자 역할을 하던 복덕방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언제부턴가 부동산중개업소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2016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정봉과 정환, 덕선이가 살던 집을 부르는 불란서식 미니2에서 주택 이름에 불란서식미니가 붙은 이유를 따져보았는가 하면, 최초의 중산층아파트로 탤런트 강부자 씨가 최초의 입주자였던 한강맨션아파트를 포함한 맨션아파트의 탄생 배경과 맨션아파트를 향한 사람들의 욕망을 파헤치기도 했다. 제주의 핫 플레이스이시돌 목장에 남아 있는 테쉬폰이 수유리와 구로동에 국민주택의 여러 유형 중 하나로 지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오래되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강남의 50평 아파트에 살면 나름 성공한 인생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생 성공의 바로미터로서 강남과 아파트, 선납입주의 필수 코스가 된 모델하우스의 유래와 학습 효과 등을 분석하기도 했다.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는 우리 주거문화의 거의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장독대, 더스트 슈트, 곤돌라처럼 흔적만 남은 주거공간의 사소한 부분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상가주택, 불란서식 2, 맨션아파트처럼 주거 유형의 변천사와 단지 공화국, 국토건설단, 서울 요새화 계획처럼 법령과 제도에 의해 형성된 거주문화 등 오랜 시간 관심 두고 연구한 연구자가 아니라면 놓치거나 너무 광범위해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들을 담았다.

 

이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가 바로 한강변 고층아파트 계단실에 만들어진 일종의 군사시설인 총안이다. 몸을 숨긴 채 적을 향해 총을 내쏠 수 있게 보루?성벽 등에 뚫어 놓은 구멍을 말하는 총안은 포안과 더불어 아주 소극적인 방어용 시설이지만 그것이 한강변에 새롭게 들어서는 고층아파트에 설치되었다니 의아스런 일이다. _211쪽에서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쳤건만 문화촌은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그것인양 동경과 욕망의 대상이었다. 서울 불광동이나 우이동과 같은 교외주택지에 새로 들어서는 집들은 소위 개량온돌과 함께 변소나 욕탕 등을 따로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판유리와 색깔 입힌 기와, 방수페인트 등을 사용해 문화촌의 중요한 판단기준을 만들었다. 당연히 문화촌은 상품이 되었고, 아파트에는 문화촌과 함께 문화생활을 누리는 곳이라는 이름이 붙어 다녔다._270쪽에서

 

집을 구할 때도 마치 신도시 외곽의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하듯 칸칸이 나뉜 가짜 집을 들락날락한다. 장화를 신고 아무것도 지어지지 않은 허허벌판을 헤매던 촌스런 시절을 거쳐 깔끔한 주차장과 호화로운 외관을 가진 휘황찬란한 가짜 집을 찾고 그 안에서의 현란한 중산층 생활을 구경하는 시대로 세상은 달라졌다. _355쪽에서

 

사소한 것에도 존재 이유와 나름의 이야기가 있다

지금 우리를 만든 힘의 원천이 무언가를 찾아낸다는 것이 책을 꾸리게 된 이유였지만 속 시원한 답을 내지는 못하고 말았다. 개인의 취향과 기호가 과연 나로부터 잉태된 것인가, 혹시라도 누군가가 몰래 던져놓은 덫에 걸려들고 만 것은 아닌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따지려들었다. 그래서 확인한 것이 무력하게도 시장은 곧 우리의 운명이라는 것이었지만 법령과 제도가 개인을 규정하고 말았다는 회의도 더불어 확인했다. 애석하고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벗어날 수 없는 욕망과 힘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꾸려야만 하는 무기력을 탓하기도 했으며 사라졌다고 믿었던 야만이 모양을 바꾼 채 다시 눈앞에 버티고 있다는 점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매일 만나는 사소한 장면에도 녹록치 않은 존재 이유와 얘기가 담겼음을 엿볼 수 있었고, 질시와 배제가 만연한 공간 환경이며 도시를 만나기도 했다. _369쪽에서

 

이 책은 장 구분을 하기보다는 서로 연관 있는 주제를 네 개씩 다섯 꾸러미로 묶었다. 각 꾸러미 별로 앞선 세 꼭지는 이야기하는 주제의 인과관계, 변화 과정을 신문, 잡지, 국가기록원을 포함한 공공기관의 기록 자료 등을 바탕으로 집요하게 추적하고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그만큼 많은 각주도 달렸다. 뒤이은 한 꼭지는 각주 없이 짧은 글로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상가주택, 불란서식 주택, 테쉬폰을 묶은 첫 번째 꾸러미는 이름에 투사된 정치적 희구와 현실이라는 꼭지로 갈무리를 했다. 장독대, 식모방, 더스트 슈트를 주제로 한 두 번째 꾸러미에는 다용도실 소멸의 생활문화사를 덧붙였다. 세 번째 꾸러미에서는 야외 수영장이나 테니스장과 같은 아파트단지의 운동시설, 선룸이나 테라스가 확장형 발코니로 변질된 사연, 복덕방의 변천사를 이야기하고 한강변 고층아파트에서 볼 수 있는 총안을 비롯한 서울 요새화 계획에 관한 이야기를 더했다. 단지의 유래부터 고착화되기까지 과정과 전략, 맨션아파트를 향한 욕망, 구별짓기 수단으로 붙인 을 이야기한 네 번째 꾸러미에서는 단어에 담긴 허구와 과잉을 덧붙여 사회의 몰염치와 천박함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마지막 꾸러미는 폭력적 국민동원이었던 국토건설단, 인생 성공의 바로미터로서 본 강남과 아파트, 조선 최초의 모델하우스와 새로운 유형으로 진화하고 있는 모델하우스를 이야기하고 유물로 남은 곤돌라 이야기를 더했다.

 

참고문헌 중 소설을 빼놓을 수 없다. 1930년대의 이태준의 복덕방과 박태원의 골목 안부터 2017년 제11회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황정은의 웃는 남자까지 50편 이상의 소설을 참고하고 인용했다. 소설은 당시 우리 도시, 우리 삶의 공간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좋은 참고서이다. 저자는 소설이 없었더라면 생각의 지평을 넓히거나 고개를 주억거릴 일이 적었을 것이다.”라는 말로 소설이 큰 도움이 되었음을 밝혔다.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

맨션아파트라니, 생각해보면 이상한 조합이다. 저택을 말하는 맨션이 집합 주거인 아파트의 수식어라니, 맨션은 어떻게 아파트의 이름이 되었을까. 1978년 프랑스 대사관이 나서서 프랑스 주택과 다르다고 해명해야 했던 불란서식 2층 주택의 표현은 어디서 시작된 말일까.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는 사물과 현상을 관찰해 기록하는 박물지라는 표현대로, 집의 호칭에서 출발해 주거와 관련된 사소한 것들의 존재 이유와 내력을 추적하고, 이면에 담긴 한국의 주거 문화와 사회적 의미를 읽어낸다. 기억 속에 남아 있거나 흔적으로 남은 대상들로 우리의 생활 세계를 재구성하고자 한 저자는 건축학과 주거학의 언저리에 놓인, 주로 제도와 법령으로 만들어지고 시장의 전략에 의해 교묘하게 이어진 집과 도시의 흔적 및 기록을 추적해간다.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생성되고 소멸되는 기록을 탐색하기도 한다. 아파트 복도에 마련된 장독대의 흔적과 다용도실, 0.6평 식모방, 더스트 슈트와 곤돌라 등 삶의 변화를 반영하며 등장했다 사라지는 일상의 사물들을 유적처럼 발굴해 그 배경을 밝힌다. 구하기 힘든 도면과 광고 사진, 그리고 김현과 박완서 소설의 인용은 이를 풍부하게 뒷받침한다. 무엇보다 서양식 문화생활을 표방해 설치했던 선룸과 테라스가 법 개정을 통해 확장형 발코니로 변질되는 과정을 적으며, 필자는 주택 선택의 우선 고려 사항이 오로지 사적인 전용 공간의 확장으로 귀결하는 중요한 변화를 지적한다. 도시를 단지 중심으로 개발하고 주거는 상품으로 전락해 오로지 내 집의 공간만 확장하면 되는 공간적 절연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이 배타적인 공간 환경은 공적인 영역에 무심한 사회적 절연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여기에 모델하우스가 어떻게 우리를 내적 공간에만 적응시켜왔는가에 대해 읽다 보면, 삶에 대한 고려보다 상품 가치가 우선이 되어온 우리 주거 문화의 실체를 마주한다. 집에 대한 취향과 기호가 과연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가, 라고 묻는 필자는 씁쓸하지만 시장이 우리의 운명을 만들고 법령과 제도가 개인을 규정하고 말았다고 결론 내린다.

 

불란서식 주택의 기원을 추적해가다 보면 양옥에 대한 판타지가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듯, 지금 삶의 풍경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 근원과 기원을 살피다보면 우리의 감춰진 욕망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삶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집은, 우리의 도시는 무엇으로 작동되고 어떤 욕망을 드러내고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주거의 실체와 도시의 풍경이 만들어진 계기와 배경을 이해하고 나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떠올릴 수 있을까.

시사인 제537호 임진영 (건축 전문 기자)

 

권력과 욕망이 뒤섞인 주거의 풍경과 기억

 

한국 최초의 맨션인 한강맨션아파트는 한강변의 건물이 눈에 잘 띄어야 한다는 박정희의 주장에 따라 외부를 주공 회색으로 칠하고, 옥상에 사각형 굴뚝을 올렸다. 대한주택공사, <대한주택공사주택단지총람 1971~1977>, 1978.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한강맨션아파트. 한강변을 끼고 줄지어 있는 이 5층짜리 아파트는 인근의 초고층 건물과 비교하면 낡고 초라해보인다. 하지만 19709월 준공 당시에는 한국 최초의 맨션으로 각광을 받았다. ‘신중산층을 타깃으로 한 27평형부터 최대 규모인 55평형까지 공급한 대한주택공사는 최초로 실물 크기의 견본주택까지 지으면서 분양에 나섰다. 탤런트 강부자와 가수 패티김 등이 입주하면서 한강맨션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한강맨션이 정부가 주도한 첫 아파트 개발은 아니다. 한국전쟁의 화마가 휩쓸고 간 이후, 이승만 정권은 수시로 서울시내를 시찰하며 도시 미화와 주택 공급에 박차를 가했다. 서울에서는 상가와 주거공간이 결합된 4~5층짜리 상가주택이 1958년부터 3년간 170여동이나 건설됐다. 현재 서울역과 시청을 잇는 간선 도로변인 남대문로에 빛바랜 유물처럼 남아있는 건물들, 건축가 황두진이 무지개떡 건축으로 새롭게 주목한 그것이다.

 

195711월 이승만 대통령(오른쪽) 일행이 연립형 2층 부흥주택을 시찰하고 있다. ‘부흥주택은 한국전쟁 이후 등장한 희망’ ‘재건’ ‘후생주택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당시 시대상과 정치적 선전선동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국가기록원 소장 자료.

 

1960년 이승만은 대형아파트 건설을 지시했다. 이승만의 계획은 4·195·16 군사쿠데타로 실현되지 않았지만, 곧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승만과 박정희의 구상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고 건축학자 박철수는 지적한다. 이승만이 공공 자금으로 건설하려고 한 반면, 박정희는 국가의 재정 부담 없이 입주민들로부터 선납금을 받아 건설 비용을 충당한 것이다. 철저히 시장 중심적인 접근이다.

 

한강맨션을 기점으로 아파트는 공공주택이던 것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로 변모했다. 1971년 여의도 시범아파트, 반포주공1단지가 차례로 건설되면서 맨션아파트는 중산층의 상징이자 구별짓기의 기제로 자리 잡았다.

 

이 사실은 정치권력이 얼마나 촘촘하게 우리의 생활세계를 지배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권력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진 법령이나 제도도 짐작 이상으로 우리의 주거 방식을 규정한다.

 

대한주택공사가 19676월 펴낸 기관지 주택의 표지는 마당보다 조금 높게 설치된 테라스에서 엄마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담았다. 테라스와 선룸은 서구식 생활을 상징하는 시설로 동경을 받았다. 집 제공

.

신축아파트의 필수 옵션처럼 되어버린 발코니 확장을 보자. 1950~1960년대부터 단독주택에는 서구적 삶의 양식을 응축한 테라스와 선룸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세기가 흐른 후, ‘베란다라고도 불리는 발코니를 하나로 터서 내부공간을 늘리는 일이 보편화됐다. 200510월에는 아파트 발코니 구조 변경 합법화조치가 발표됐다. 저자는 정부의 옹색한 합법화 논리를 조목조목 비판하며, 건설사나 소비자나 전용면적을 더 넓히는 일에 매몰된 세태를 꼬집는다.

 

발코니 확장과 더불어 아파트 매매의 기준이 되고 있는 대단위단지도 기실 지배층의 치밀한 전략의 소산으로 읽어낼 수 있다. 고도산업화 시기를 지나며 시민들의 주거환경 개선 욕구가 커졌다. 하지만 정부는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높이는 방향 대신 장기융자 제도 등을 통해 아파트를 집단화한 단지 만들기를 지원했다. 그 결과 조성된 아파트 단지는 도시 속의 완벽한 요새”(김채원 <푸른 미로>), “빗장을 걸어 잠근 이익결사체로 기능하게 됐다.

 

우리의 주거문화는 권력과 제도의 산물인 동시에 욕망의 산물이다. 지난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정봉, 정환, 덕선이가 살던 집은 1970년대 유행한 불란서식 미니 2양옥에 해당한다.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허명에 불과했지만, ‘불란서식집은 서구에 대한 동경 및 외제 선호와 맞물리면서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프랑스대사관은 아파트 광고에까지 등장한 불란서식이라는 문구에 대해 실제 프랑스의 주택과 다르다는 해명글을 내기도 했다.

 

지금은 부동산중개업소로 간판을 바꿔 단 복덕방의 역사도 부동산 불패 신화의 욕망과 궤를 같이한다. 불란서식 주택의 뿌리가 일제강점기 조선에 소개된 문화주택으로 거슬러올라가듯이, 복덕방 역시 일제 시기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살림집을 알선, 중개해주는 역할을 하던 복덕방은 1970년대 이후 강남 개발 광풍이 불어닥치자 개발 열기에 편승한 아귀다툼의 현장으로 변질된다. 박완서는 1975년 쓴 서글픈 순방에서 부동산 투기가 만연한 풍경을 세밀하게 그려보인다.

 

욕망을 더욱 추동한 것은 시장이었다. 시장은 떠다니는 욕망을 영리하게 이용하면서, 더 부풀어오르게 만들었다. 때로는 속삭임으로, 때로는 꾸짖음으로 지금보다 더 크고 넓은 집을 소비하도록 이끈다. 문학평론가 김현이 1978년 한 잡지에 알고 보니 아파트는 살 데가 아니더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이다. “스물두 평에 처음 발을 디딜 때는 그렇게 적어 보이지 않던 공간이 서른두 평에 다녀온 뒤로는 그렇게 비좁을 수가 없었다.”

 

주거문화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멸하거나, 다른 모습으로 변이되어 살아남았다. 장독대는 불도저김현옥 서울시장이 1969쥐가 목욕한 간장도 그대로 퍼먹어야 하니 위생상 좋지 않습니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오는 홍보영화를 만들고, 와우아파트 붕괴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온갖 수난을 겪었지만, 결국 식생활 변화와 김치냉장고 보급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문화적생활을 위해 도입된 전용 쓰레기 투입구 더스트슈트도 비슷한 길을 밟았다.

 

식모방1960년대 후반 주문주택이나 민영주택뿐 아니라 30평형대 중산층 아파트에서도 본격 등장했다가, 1980년대 들어서 경제수준과 인건비가 동반 상승하면서 자취를 감춘다.   저자는 그러나 식모와 식모방은 고시원의 1.5평에서 희망 없는 일상을 묵묵히 견디는 청년들의 다른 이름이거나 변기 뚜껑 위에 라면 냄비를 얹어놓고 식은 밥을 말아먹을 수밖에 없는 아르바이트 청년들의 원룸이 되었다고 통찰한다.

 

이런 분석은 저자가 지향하는 고현학(考現學·modernology)’과 맞닿아 있다. 고고학과 달리 고현학은 당대의 도시풍속과 세태를 꼼꼼하고 깊게 탐구하는 학문이다. 현재의 풍경이 어디에서 기원하는지를 따져묻는 책을 읽는 사이, 1990년대 초반 지어진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에 몇 년간 살았던 1970년대산 아파트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책은 박물지라는 제목에 걸맞게 우리 주거문화의 거의 모든 것을 담고자 했다. 각각을 나열하는 대신 서로 연관된 주제를 네 개씩 다섯 꾸러미로 묶어 책의 밀도를 높였다. 일간지 연재물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연재 분량을 훨씬 넘어서는 분량을 새로 썼다. 관공서 기록물부터 신문기사, 광고, 항공사진 , 설계 도면 등 다양한 자료를 담아냈다. 특히 건축학자의 눈으로 도시와 삶의 공간을 묘사하는 한국 근·현대소설을 불러들이는 솜씨가 탁월하다. 저자가 서문에서 준비 중이라고 밝힌 <한국주택 유전자>가 벌써 기대되는 이유다. 171117 경향 김유진


식모방, 더스트 슈트를 아십니까... 쉽고 재밌는 건축책 열풍

   

197011월 준공한 한강외인아파트 단지의 옥외수영장. 1976년 대한주택공사가 홍보용으로 발간한 화보집 주택 건설에 실린 사진이다. 도서출판 집 제공


식모방이 처음 등장한 건 언제일까. 현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전신인 대한주택영단이 판매용 주택에 식모방을 만든 건 1956년 서울 이태원 35(115,7) 외인주택에서다.

 

정부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직접 달러를 벌기 위해 만든 외인주택과 외인아파트는 내국인 출입금지라는 애초의 원칙을 깨고 자금 마련을 위해 국내 부유층들에 문을 열었다. 이들이 옥외수영장과 테니스장, 식모방을 보며 선진 문화의 풍요로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당시 부잣집뿐 아니라 판잡짓에서도 앞다퉈 식모를 두는 세태를 비판하는 한 잡지의 기사는, 건축이 어떻게 한국인의 욕망을 추동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의 책 거주 박물지’(도서출판 집)에 나오는 내용이다. 지난달 출간된 이 책은 그 달 마지막 주, 교보문고 기술공학 분야 부동의 1위인 운전면허 시험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최근 서점가에 대중을 위한 쉽고 재미있는 건축서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박태근 인문MD종수도 확실히 늘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인문사회적 시선으로 도시와 건물을 읽는 건축서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라며 기존의 건축도서가 건축공학 혹은 예술서로 분류됐다면 최근 이중 하나에 넣기 애매한 책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1976년 대한주택공사 주택건설에 실린 아파트 거실 모습. 이국적인 소파 뒤로 윌슨이라고 쓰인 테니스채가 눈에 띈다. 도서출판 집 제공

 

애매한 책들이란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건축, 특히 주거용 건물을 문제적으로 돌아보는 책들이다. 판에 박은 듯한 아파트와 빌라에 집중함으로써 건축의 양적 팽창에만 집중했던 시대와 빈약한 건축문화를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역사서나 사회학서라고 하기엔 쉽고, 에세이라 하기엔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한 이 책들을, 도서출판 집의 이상희 대표는 건축 교양서라고 불렀다.

 

2005년 한 중견 출판사에서 건축 편집자로 일하다가 2014년 독립한 이 대표에 따르면 당시 건축서는 시장이 거의 없었다. “교양인문 편집자들과 원고를 돌려 읽었는데 늘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독자들을 생각해 전문 학술서와 교양서를 분리했지만 미술처럼 고급 교양서가 될 수 밖에 없었죠. 당시 출판사 주간이 건축 쪽에 대중적인 이야기꾼이 없다며 그런 사람을 발굴하라고 주문한 기억이 납니다.”

 

고급 교양이었던 건축이 대중 교양으로 자리잡을 낌새를 보인 건 2010년대 들어서다.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고 땅콩집열풍이 불면서 단독주택에 대한 로망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박정현 도서출판 마티 편집장은 사람들이 아파트가 더 이상 재산증식의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다른 주거형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예전엔 일반인들이 건축이란 말을 입에 담을 일이 거의 없었어요. 그러나 본인이 건축주가 되면 얘기가 달라지죠. 마침 젊은 건축가들이 과거보다 일찍 독립해 단독주택 시장에 뛰어들면서 건축서 분야에 독자와 저자가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1980년대 건축가 김석철이 설계한 대구의 상가아파트 한양가든테라스. 아파트에서도 널찍한 마당을 사용할 수 있었다. 민음사 제공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의 피어선 아파트. 1970년대 지어진 아파트로 최고급 주상복합건축의 원조라 불린다. 민음사 제공

 

19761018일 동아일보에 실린 미주 아파트 분양광고. 주택과 아파트에서 소위 불란서식이 크게 유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서출판 집 제공

 

2011년 출간된 박인석 서울시립대 교수의 집 짓기 경험담 아파트와 바꾼 집’(동녁)은 건축서로는 이례적인 6쇄를 찍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같은 해 이현욱 건축가와 구본준 건축전문기자가 함께 쓴 두 남자의 집 짓기’(마티)도 흐름을 타고 비슷한 판매고를 올렸다. 새로운 주거에 대한 대중적 각성은 아파트에 대한 비판과 도시를 보는 인문학적 시각으로 이어져, 박해천 동양대 교수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2011자음과모음), ‘아파트 게임’ (2013휴머니스트), 박철수 교수의 아파트’(2013마티), 유현준 건축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을유문화사) 등이 잇달아 나왔다.

 

올해 나온 책들은 그 바통을 받아 어느 때보다 대중 교양서로의 성격이 강화됐다. ‘거주 박물지는 식모방 외에도 사라진 더스트 슈트’(1층으로 쓰레기를 떨어뜨리는 통로)의 행방을 묻는 등 아파트 세대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흥미를 끌었다. 10월에 나온 황두진 건축가의 가장 도시적인 삶’(반비)60년대 말~70년대 초에 유행했던 상가아파트를 통해 도시 주거의 미래를 조망한다. 모든 사람이 단독주택을 짓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살만한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한때 쏟아졌던 아파트 비판서들에 대한 가장 최신의 답변이기도 하다. 민음사 계열사인 반비가 건축과 도시를 다룬 책의 비중을 늘리는 것도 향후 건축서의 시장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상희 대표는 건축서가 시각적지적 욕망을 모두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전망이 밝을 것으로 내다봤다. “집 얘기는 늘 재밌으니까요. 최근엔 골목 부활, 도시재생에 대한 담론이 활발해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자신이 사는 건물을 넘어 도시 전체로 확대되고 있어요.” 171227 한국

 

그 시대 욕망을 고스란히 담다'대한민국 주거'

문학평론가 김현이 처음 문패를 단 집을 가진 건 연희동이었다. 마흔 평 남짓한 땅을 사서 스무 평짜리 집을 지었다. 1년이 지나자마자 주위에 이른바 '미니 2'이라 불리는 양옥집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좌우 사방으로 이층집 사이에 갇힌 가련한 난쟁이 집에 햇볕이 들지 않자 그는 집을 팔고 여의도 아파트로 떠나고 말았다.

그가 '뿌리 깊은 나무'에 이런 글을 쓴 건 1978. 당시 서울은 미니 이층집으로의 '성형'이 유행했다. 1975년 도시학자 강병기가 신문에 쓴 칼럼은 이 '불란서식 주택'의 난립을 "실체와는 먼 유혹의 형용사에 불과하다"고 타박한다. "왜 불란서 주택이어야 하는가는 알 길 없으나 아마 이것이 가장 고급이고 우아하게 느껴지는 형용사였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것이 외제라면 사족을 못 쓰는 우리의 소비행위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이 정체불명의 유행이 일제강점기에서 비롯됐다는 가설을 내놓는다. 일본의 경우 1912~1926년께 미국 서부의 주택을 닮은 문화주택이 선풍적 인기몰이를 했는데, 일제강점기에 이 주택 양식이 한국으로 건너왔다는 것. 이후 서구의 직접 세례를 받으면서 불란서식 주택이란 한국식 변종이 탄생했다는 설명이다.

 

미니 2층이란 용어도 재미있는 이유로 탄생했다.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었던 1970년대, 집을 짓는 이들은 반지하에 세를 들이고 주인집은 지상층에 사는 게 보편적이었다. 마침 '미니스커트'가 크게 유행했고, '반지하+1'이 결합된 주택에 '미니 2'이란 이름이 붙었다.

 

'응답하라 1988'에서 정환이와 덕선이의 집이 바로 이 양식이다. 불란서 주택은 1980년대 이후 고밀도 빌라로 하나둘 몸집을 불리면서 곧 옛 유산이 되고 말았다.

 

한국 주택의 얼굴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박 교수는 우리 주거문화의 거의 모든 이야기를 담은 박물지(博物誌)를 펴냈다. 장독대, 아파트 야외수영장, 더스트 슈트, 곤돌라처럼 흔적만 남은 주거공간의 사소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상가주택, 불란서식 2, 맨션아파트처럼 주거 유형의 변천사도 짚어보며 단지 공화국, 국토건설단, 서울 요새화 계획처럼 법령과 제도에 의해 형성된 거주문화의 연원도 전문연구자답게 충실히 설명해준다.

 

사진설명1980년대 촬영한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 제공 = 현대산업개발]

 

한국의 주택문화는 근대화와 함께 많은 것을 사라지게 만드느라 애를 쓰기도 했다. 대표적인 게 장독대다. 1969'장독대를 없애자'는 홍보영화가 탄생했다. 당대 유명 배우가 동원된 이 영화에는 "때로는 쥐가 목욕한 간장도 그대로 퍼 먹어야 하니 위생상에도 좋지 않습니다"라는 성우의 해설이 들어갔다.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도시 미화를 위해 군사적으로 시민아파트 건립을 밀어붙였다. 아파트를 많이 지어 도시 미관에 악영향을 미치는 판잣집을 가리겠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아파트 발코니를 장독대로 삼아 집에서 장을 담가 먹었다.

 

국내 최초의 대단위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아파트 사례를 보자. 장독을 둘 공간이 넓지 않자 입주자들은 궁여지책을 강구했다. 발코니 창살 밖으로 철제 난간을 매달고 옹기와 항아리를 내놓았다. 이 시기에 등장한 게 여의도 시범아파트다. 승강기를 갖춘 이 고급 아파트는 심지어 복도에 울타리를 두르고 장독대를 외부에 보이지 않게 두도록 했다. 이토록 끈질기게 살아남은 장독대 문화는 집에서 장을 담그는 일이 드물어진 생활방식 변화와 함께 자연스레 사라졌다.

 

1960년대 주거문화의 또 다른 특징은 '식모방'이다. 1960년대 20평대 민영주택에도 어김없이 식모방이 들어가 있었는데, 넓이가 평균 0.6평에 불과했다. 손창섭의 소설 '인간교실'에는 구체적 실상이 묘사된다. 흑석동 주택에 사는 식모 보순이가 1963년 연재 당시 받은 수입은 600원으로, 가장의 월급인 15450원의 3.88%에 불과했다. 중산층 아파트에 식모방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68. 한강맨션, 반포주공, 잠실주공5단지 등 30평대에는 어김없이 식모방이 들어섰다. 목동 신시가지와 아시아선수촌아파트를 조성하던 무렵부터 식모방은 홀연히 사라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 몸값이 전과는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아파트 문화의 역사는 욕망의 용광로, '강남'의 역사와도 동의어다. 영등포 동쪽이라는 뜻의 '영동'으로 불리던 지역이 급속도로 발전한 건 1975년 구자춘 서울시장의 3핵 도시 구상으로 인해서다. 1975년 강남구가 신설됐고 고속터미널과 도심의 명문학교가 차례로 이전했다. 광복 전후까지 청계천 일대를 지칭했던 '강남'15년 만에 자연적 경계가 급속도로 남하한 것이다.

 

저자는 강남이 부동산 투기 전쟁터가 된 배경으로 아파트지구 지정을 꼽는다. 반포·서초동 일대는 강변도로보다 지대가 낮아 홍수에 약한 침수지역이었다. 당시 서울시장은 저지대 지역을 모두 3층 이상으로 집을 짓게 하는 고육지책을 내놓았다. 이리하여 유례없이 아파트만 지을 수 있는 아파트지구가 강남에 탄생한 것이다.

 

흔히 최초로 회사 이름을 붙인 아파트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꼽는다. 저자는 1975년 완공된 서빙고 현대아파트가 처음이라고 밝히며, 강남이 아닌 한수 이북에 브랜드 아파트가 처음 등장했음을 짚는다. 심지어 1979년 현대아파트는 분양 광고에서 '성수교 아파트'라는 말을 썼다. 한강의 11번째 교량인 성수교 개통을 한 달 앞두고 분양하면서 서울 중심인 강북과 연결되는 아파트임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겨우 한 세기 남짓한 주거 문화사를 훑어보면서도 숱하게 많은 주거 양식이 명멸하듯 사라졌음을 발견하게 됐다. "오래되어서 귀한 것을 오래되었다고 버리는 시대,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의 착잡한 실상"이라고 저자는 소설 속 문구를 인용해 한탄한다.

 

한국의 도시가 겪어온 급속한 변화는 이처럼 깊은 주름살을 남겼다. 그 주름살이야말로 지난 세기 우리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알려주는 증언일 것이다. 1117 매일경제 김슬기


Wonderful Tonight - Eric Clapton



'세상과 어울리기 >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외   (0) 2018.01.13
烈女의 탄생 外  (0) 2018.01.10
민주주의의 정원  (0) 2018.01.04
위장 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  (0) 2018.01.03
세계풍속사 外  (0) 2017.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