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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바벨탑 공화국 - 욕망이 들끓는 한국 사회의 민낯

by 이성근 2021. 8. 22.

바벨탑 공화국 - 욕망이 들끓는 한국 사회의 민낯 강준만 (지은이)인물과사상사2019-02-

 

 

목차

머리말 : 왜 한국은 바벨탑 공화국인가?

누구에겐 천국이지만 누구에겐 지옥인 한국 · 4 | 아파트서울은 성역이 되었나? · 7 | 욕망의 충족에 미쳐 있는 바벨의 시민들 · 9 |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한 각자도생 투쟁 · 11 | ‘의자 뺏기 게임희망 고문’ · 13 | 6·25는 끝난 전쟁이 아니다 · 15 | 서울 초집중화와 서열 사회는 분리할 수 없다 · 18 | ‘바벨탑 멘털리티의 두 얼굴 · 19

 

1장 왜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가? : 초집중화

서울은 위대한 혁신의 집합소’ · 29 | “강남 재건축은 복마전” · 31 |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하는 고시원의 삶” · 33 | 왜 고시원의 80퍼센트가 수도권에 몰려 있을까? · 36 | 서울을 한국으로 간주한 서울만의 신도시 잔치’ · 38 | 쳇바퀴 돌리는 다람쥐보다 못한 정부 · 41 | “서울이 곧 한국이다” · 43 | 한국 사회를 집어삼킨 소용돌이 · 45 | 서울 초집중화의 빨대로 악용되는 대학 · 48 | 지역 서열을 당연시하는 기회균등 사기극’ · 49 | 군사독재 정권의 광기를 증폭시킨 민주화 세력 · 52 | 왜 정치는 늘 부유한 유권자들을 대변하는가? · 55 | 선거제도를 통한 승자독식주의 체험 학습’ · 57 | “당신은 단추를 누를 때 이를 악물지 않는다” · 59

 

2장 왜 지주들의 소작농 수탈은 여전히 건재한가? : 부드러운 약탈

폭력을 써서 빼앗는 것만 약탈이 아니다 · 65 | 불로소득 부자를 양산한 약탈 체제 · 67 | 0.1퍼센트 강남이 전체 땅값의 10퍼센트를 차지한 나라 · 70 | 부동산 약탈을 외면하는 구조적 기억상실증’ · 71 | 상위 20퍼센트 아파트값이 하위 20퍼센트의 6· 74 | ‘미친 아파트값의 비밀’ · 76 | 한국 엘리트의 필수 조건은 부동산 재테크 · 79 |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는 바벨탑 멘털리티’ · 82

 

3장 왜 조물주위에 건물주가 있다고 하는가? : 젠트리피케이션

배신당한 제인 제이컵스의 꿈 · 87 | 젠트리피케이션은 구조적 폭력’ · 89 | ‘조물주 위에 건물주는 비아냥이 아니다 · 91 | ‘불로소득은 성공한 투자, 자본주의의 꽃’ · 92 | “땅이 빈곤 문제의 핵심이다” · 94 | 헨리 조지마저 빨갱이로 모는 한국의 지주계급 · 96 | 시세를 따르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고 느끼는 심리 · 99

 

4장 왜 사회는 없고 내 집만 있는가? : 게이티드 커뮤니티

공동체는 돈을 주고 사는 것이 되었다” · 105 | “‘에 점령당했다” · 108 | “‘아파트가 문제가 아니라아파트 단지가 문제다” · 110 | 속전속결이라는 알고리즘의 참담한 결과 · 112 | “공공 공간은 좁게, 사적 공간은 넓게” · 114 | 왜 한국인은 세계 최고의 노마드족이 되었는가? · 116 | 초고층 아파트와 대비되는 고공 농성’ · 119 | “분리와 배제는 도시 전체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 · 122

 

5장 왜 휴거라는 말이 생겨났는가? : 소셜 믹스

임대아파트 애들이랑은 놀지 마라” · 127 | “여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야. 만지지 마” · 129 | “임대 단지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싫다” · 131 | 분양동과 임대동 사이에 쳐진 1.5미터 높이의 철조망 · 133 | 소셜 믹스는 실현 불가능한 꿈인가? · 135 | 강남에 집중되는 공공 인프라 건설 사업 · 138 | ‘뒤섞임에 대한 공포증에 사로잡힌 선량한 시민들 · 141 | 하향평준화를 두려워하는 진보 좌파 · 143 | 하향평준화라는 프레임의 함정 · 145 | 서울 초집중화가 지방의 희생 없이 이루어졌나? · 148

 

6장 왜 한국은 야비하고 잔인한 갑질 공화국이 되었나? : 전위된 공격

한국 사회는 거대한 모욕의 피라미드’ · 153 | 지방대학은 헬조선행 설국열차’ 5번째 칸인가? · 155 | 원숭이와 같은 영장류보다 못한 인간 · 157 | “수많은 의 눈물로 가득 찬 갑질민국’” · 159 | ‘월급은 한 달 동안 모멸을 견딘 대가’ · 161 | ‘개천에서 용 나는모델이 만든 서울 공화국’ · 163 | ‘불온서적취급을 받은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165 | “내가 누군지 알아멘털리티의 폭력 · 167

 

7장 왜 무릎 꿇리기라는 엽기 만행이 유행하는가? : 학습된 무력감

우리 사회가 미쳐가는가 봅니다” · 173 | ‘갑질에 대해 언제까지 구조 탓만 해야 하는가? · 175 | 가정·학교·직장에서 이루어지는 억울하면 출세하라교육 · 177 | “정규직 안 해도 좋다. 더이상 죽지만 않게 해달라” · 179 | “차라리 몇 명 죽는 게 더 싸게 먹힌다” · 182 |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잠든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 · 184 | 서울 초집중화 체제에서 교육개혁은 불가능하다 · 186 | “약자를 짓누르는 힘은 사실상 무한하다” · 189 | ‘서울=대한민국을 당연시하는 학습된 무력감’ · 191 | 지방을 지배하는 인서울이데올로기 · 194

 

8장 왜 지방민은 지방의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가? : 소용돌이 정치

모든 선거는 서울이 지방을 빨아들이는 소용돌이 선거’ · 199 | ‘예산 확보 전쟁으로 전락한 지방자치 · 202 | 서울 초집중화 문제가 선거 이슈가 되지 않는 이유 · 204 | “나 서울에 줄 있다고 뻐기는 정치인들 · 206 | ‘내부 식민지줄서기 문화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 · 208 | 서울 미디어가 증폭시키는 소용돌이 정치’ · 210 | 서울 초집중화가 키우는 제로섬게임내로남불’ · 213

 

9장 왜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의 파멸인가? : 지방 소멸론

지방의 소멸’, ‘국가의 파멸이 임박했다 · 219 | 서울로만 몰려드는 전국의 청년들 · 221 | 마강래의 압축도시전략 · 224 | 선이 없다면 차악이라도 택하는 게 옳다 · 226 | 왜 지방은 도심 공동화 자해를 저지르나? · 228 | 전주에서 벌어진 대형 쇼핑몰 찬반 논쟁 · 230 | 왜 대형마트가 들어선 지역의 투표율은 하락하나? · 232 | 정치인들의 거대건축 콤플렉스’ · 235 | 대학은 교육 산업이라기보다는 부동산 산업 · 237 | 지방자치단체들의 거대 청사 짓기 운동 · 240 | 지방이 지방을 죽이는 구성의 오류’ · 242

 

10장 왜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치는가? : 지방분권의 함정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발 · 249 | 서울 강남구민의 강남구 독립시위 사건 · 251 | 중앙 권력이 저지른 지방분권 사기극’ · 253 | “헤비급과 라이트급 선수가 대결하는 상황” · 255 | ‘5+2 행정구역 개편안의 현실성 · 257 | 재앙이 닥쳤을 때 뒤늦게 허둥댈 건가? · 260

 

· 263

출판사 서평

부동산 공화국의 민낯

한국은 부동산이 주요 재산 축적 수단이 되어온 부동산 공화국이며, 이는 지방을 희생으로 한 사실상의 약탈이었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사람들은 수도권 유주택자인 반면,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은 지방에서 올라간 수도권 무주택자였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에 분노하는 사람들마저 미소를 짓는 사람들의 행태를 고스란히 흉내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이 비극은 바벨탑 공화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건 필연인데, 그로 인한 재앙을 유예하기 위해 거품을 지속시킨다고 붕괴를 피할 수 있을까? 한국의 엘리트 계급이 사적 삶에서 발휘하는 탁월한 시장 감각을 공적 정책에서도 발휘해 성공 확률을 높여주면 좋겠건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는 없고 오직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는 바벨탑 멘털리티에 근본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상생을 거부하는 탐욕을 건전한 상식으로 만든 사회, 그 상식을 지키지 않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되는 사회, 이것이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바벨탑 공화국의 시민들은 선량할망정 자신의 서열과 그에 따른 이익을 지키려는 데는 악착같고 집요하다는 것을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부자가 아닌 사람들마저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작은 바벨탑을 세우려고 하기 때문에 그것을 동력 삼아 바벨탑 공화국이 건재한 동시에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게 아닐까? 이 바벨탑 공화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학습된 무력감을 가져야만 무난하게 살 수 있다는 신념을 요구한다.

 

왜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가?

한양대학교 교수 함인선은 타워팰리스의 3.3제곱미터당 월세는 116,000원이고 고시원은 136,000원이라고 했다. 그는 고시원의 존재 이유이자 경쟁력의 원천을 이렇게 설명한다. “일자리, 정보, 문화, 교류에서 소외되지 않고 짧은 출퇴근 시간이 보장된다면 개인 공간이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에 있음은 문제가 아니다. 좋은 입지는 강남만큼 희소하고 저성장 및 12인 가구 증가로 경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기에 고시원은 당분간 시장지배자일 것이다.”

 

고시원이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건 최장집이 말한 ()집중화(hyper-centralization)’의 문제를 실감나게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초집중화란 정치적 권력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자원들이 지리적·공간적으로 서울이라고 하는 단일 공간 내로 집중됨을 의미한다. 이런 중앙 집중은 집중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중첩되면서 집적되는 형태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서울 초집중화의 문제는 청년들의 주거환경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서울의 12034세 청년가구 중 주거 빈곤 가구(지옥고)의 비율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고시원의 80퍼센트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가? 수도권의 일자리 집중도와 비슷하다는 게 우연일까?

 

국세청의 연말정산 통계현황에 따르면 2013년 억대 연봉자 70퍼센트는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으며, 취업 포털사이트 잡코리아가 2015년 자사 사이트에 등록된 기업들의 신규 채용공고 6509,703건을 근무 지역별로 분석한 결과, 전체 채용 공고의 73.3퍼센트가 수도권 지역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의 경제 집중을 해소하지 않고 그런 신주거난민의 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서울 초집중화와 서열 사회는 분리할 수 없다

서울 초집중화 승자 독식 사회(Winner-Take-All Society)’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부와 권력이 서울에 몰려 있는 체제에서 그곳에 진입할 수 있느냐가 인생의 성공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부분이 전체와 비슷한 구조로 되풀이되는 구조를 가리키는 프랙털(fractal)’의 원리에 따라 서울 내부에서도 똑같은 승자독식의 게임이 벌어진다. 당연히 서울 초집중화와 서열 사회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서울은 사람들이 건너편에 펼쳐진 광범위한 기회에 도달하기 위해 통과해야만 하는 비좁은 지점, 기회구조의 병목(bottleneck of opportunity structure)’이다. 이 병목을 유지하고 악화시키면서 외치는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슬로건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모순이다.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서울 초집중화는 지방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임박한 지방도시의 소멸이라는 재앙이 닥칠 경우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무사할 수 없는데, 서울의 존속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지방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지방 돈이 서울로 몰려 서울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부추긴다는 건 이미 수없이 입증되어왔다. 입시전쟁과 취업난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최악의 주거 실태(고시원, 쪽방 등)와 교통지옥의 문제는 어떤가?

 

이런 문제들의 상당 부분은 기존의 수직지향적 삶을 수평지향적 삶으로 바꾸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확 바꾸자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바꿔도 달라진다. 서울 초집중화의 문제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강하게 우리의 일상적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누구에겐 천국이지만 누구에겐 지옥인 한국

한국은 음식 배달의 지상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그런데 입장을 조금만 바꿔 생각해보면 천국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하고 만다. 2011~201623곳의 병원 응급실에서 집계한 교통사고는 총 26만 여 건인데, 이 중 배달 오토바이 사고 건수가 4,500건에 이르며 15~19세 사고자가 15퍼센트에 달한다. 또 싼 전기료의 뒤엔 최소한의 안전 대책도 없었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하청 노동자 김용균이 있었다. 그거야 각자 알아서 조심할 일이며 그런 노동은 누가 강요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청해서 한 일인데, 소비자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써야 하느냐고 반문해야 할까?

 

우리가 세계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 밖의 모든 것이 그 이면을 살펴보면 거의 예외 없이 누군가의 희생 또는 시장논리에 의한 사실상의 수탈이 숨어 있다. 우리는 한류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지만, 이름 없는 영상 스태프 노동자들은 문자 그대로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다. 우리는 최종 생산물의 화려한 영상에만 취하고 다른 나라의 사람들까지 취해주는 것에 대해 뿌듯하게 생각하지만, 그 영상 뒤의 어두운 곳엔 애써 고개를 돌린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한국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감정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한 사회임을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이렇듯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은 쉽게 뒤바뀐다. 이제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주요 경계선은 일자리다. ‘삼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에 이어 사포(삼포+취업 준비로 인한 인간관계 포기) 세대’, ‘오포(사포+내 집 마련 포기) 세대라는 말까지 유행할 정도로 청년들의 삶은 어려워지고 있으며, 절망을 향해 치닫고 있다. 5가지를 모두 누리는 사람에게 한국은 천국일 수 있어도, 삼포·사포·오포 세대에게 한국은 얼마든지 헬조선일 수 있는 것이다.

 

왜 한국은 야비하고 잔인한 갑질 공화국이 되었나?

우리는 사람들의 좋지 못한 의도와 행위들의 결과로 갑질이 창궐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그건 결코 진실이 아니다. 갑질은 우리가 옳거니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들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의해 생겨난다. 좋지 못한 의도와 행위들도 그런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산물일 뿐이다. 이게 바로 갑질 공화국의 비밀이다. 그 비밀의 열쇠가 바로 서울 초집중화이며, 그 슬로건 중의 하나는 개천에서 용 난다이다.

 

우리는 개천에서 난 용을 보면서 열광하는 동시에 꿈과 희망을 품는다.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보면서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확신마저 갖는다. 그런 확신은 충분한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국제사회에선 개천에서 난 용이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대표선수 기업들은 세계 무대에서 선두를 달리며 맹활약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내부적으로도 수많은 용을 배출했고, 내 집안은 아닐망정 한두 다리만 건너면 개천에서 난 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고성장의 시대가 끝나면서 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거의 나오지 않을뿐더러 문제는 개천에서 용 나는모델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세계 무대의 선두에서 맹활약하는 재벌 기업들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혼자 잘 나서 그렇게 된 건 아니다. 그들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으며, 지금도 중소기업을 희생으로 한 각종 특혜를 누리고 있다. 용의 반열에 속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 좋은 직장에 다니는 보통 사람들의 고연봉도 다른 사람들의 저임금이라는 희생 위에서 가능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게다가 개천에서 난 용은 자신을 배출한 개천을 돌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 데에 앞장선다. 개천에 사는 미꾸라지들이 아니라 자신이 어울리는 용들의 문법에 충실해야만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한민국 건국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과 대부분의 주요 정책 결정자가 지방 출신임에도 지방을 희생으로 서울 공화국이 탄생한 것을 어찌 설명할 수 있으랴.

 

책속으로

2015730일 손석희는 이런 앵커 브리핑을 했다. “작가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란 단편을 펼쳐봤습니다. ‘그것은 방이라고 하기보다는 관이라고 불러야 할 크기의 공간……그 좁고 외롭고……정숙해야만 하는 방 안에서 나는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했고…….’ 비좁은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젊은 청춘의 모습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손석희는 앵커 브리핑을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한 것에 대한 보상은 있는 것인가라는 말로 끝맺었다. 고시원 거주자의 희망은 고시원 탈출이겠지만, 누군가는 또 고시원을 찾는 끝없는 행렬이 이어질 것이다. 고시원과 쪽방, 만화방이나 찜질방 등 다중 이용업소와 같은 집 아닌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많게는 228만 가구로 추정하지만, 그 수가 많건 적건 이는 우리 사회가 외면해선 안 될 인권 문제로 보는 게 옳다. 1장 왜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가?--- p.36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어떠한가? 서구의 젠트리피케이션에 비해 악성이다. 서구의 젠트리피케이션은 거주민을 저소득층에서 중상류층으로 대체하는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인 반면,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주민들의 생존권과 주거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도시의 미래 성장 동력과 지속가능성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형이 서구형에 비해 더 잔인하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2009년 용산 참사 이후 널리 쓰이는 말이 되었다. 한겨레(20171117)에 따르면, “곳곳에서 쫓겨나는 세입자들의 비명이 끊이질 않고, 최근 5년간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책과 논문, 기사가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고 있으며, 국립국어원도 둥지 내몰림이라는 대체어를 내놓을 만큼 젠트리피케이션은 일상이 되었다”. 3장 왜 조물주위에 건물주가 있다고 하는가?--- p.89

 

1920년대 초, 미국에서 빈곤으로 인해 심화되는 사회문제의 치유책으로 시작되어 조닝(zoning) 규제를 적용시킨 소셜 믹스가 등장했다. 혼합 단지 아파트가 국내에 도입된 것은 1990년대 초였으며, 2005425일 건설교통부 주도로 시행된 지속가능한 신도시 계획 기준을 통해 소셜 믹스를 위한 본격적인 관련 제도가 도입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소셜 믹스에 거는 기대는 크다. 사회적으로 혼합된 거주 지역은 사회집단 사이의 문화적 상호 교류를 통해 지적·문화적 진보를 촉진할 것이고, 이는 점차 더 큰 관용으로 이어질 것이며, 더 나아가 사회적 인프라 시설의 효율,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을 낳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에선 그 기대가 완전히 배신당한 것으로 보인다. 5장 왜 휴거라는 말이 생겨났는가?--- pp.129-130

 

국가가 공모한 약탈 체제이니 하청 노동자들로선 체념할 수밖에 없다.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하종강이 노동조건이 매우 열악한 어느 주물공장을 방문했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내하는 직원에게 여기 환경 측정 실시했습니까라고 물어보았더니 하청입니다라고 답한다. ‘이 사람 특수건강진단은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하청이라니까요라고 익숙하게 답하는데, 그 대답을 지금까지 여러 번 해봤다는 듯 매우 예사로운 말씨다.” 하청 노동자는 인간이 아닌가? 2018911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PD수첩]22,900볼트의 살아 있는 전선 아래에서 목숨을 내걸고 아슬아슬하게 일하는 한국전력 하청 노동자들의 현장을 담은 한국전력의 일회용 인간들을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을 본 사람이라면 하청 노동자는 일회용 인간으로서 인간과는 좀 거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7장 왜 무릎 끓리기라는 엽기 만행이 유행하는가?--- p.183

 

당위와 현실의 간극이 너무 클 땐 차선, 아니 선이 없다면 차악이라도 택하는 게 옳다. 우리는 이미 지긋지긋할 정도로 투표를 할 때에 차악을 선택해오지 않았던가. 지방 소멸이 초래할 국가적 재정 위기는 마스다의 선의의 과장법을 원용해 대한민국의 파멸로 불러도 무방하리라. 그 파멸을 목전에 두고서 당위 레토릭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균형과 상생이라는 당위가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지역적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놓고 비교한다면, 후자가 차악이다. 전자의 교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난 반세기 이상 충분히 입증된 이상 후자를 택하는 게 옳지 않을까? 나는 생각을 그쪽으로 바꾸고 싶지만, 문제는 마강래의 대안도 험난한 장애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9장 왜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의 파멸인가?--- p.227

 

 

수도권에 아파트를 계속 지으면 우리의 삶은 나아질까? 대선주자들이 답을 해야 한다.

대선주자에게 묻습니다, 아파트를 더 지으면 삶이 나아집니까?

[서평] 대선의 화두로 떠오른 부동산 문제... 다시 꺼내 읽는 책 '바벨탑 공화국'

지난 22일 안양시 동안구 일대 아파트단지 모습.연합뉴스

 

대선주자들의 부동산 공약

여전히 문제는 부동산이다. 여야 대선 후보들의 경쟁이 격화되는 요즘, 각 캠프는 부동산과 관련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재보궐 선거의 결과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동산은 현재 국민들의 자산격차를 극단적으로 벌리고 있는 주범이기도 하다.

 

정권을 잡기 위해서라도 꼭 해결해야 하는 부동산 문제. 그러나 대선주자들의 부동산 정책은 여야에 따라 극과 극이다. 여당 후보들은 대게 더 센 조세 정책이나 더 높은 규제를 통해 공공성을 강화하려고 하는 한편, 야당 후보들은 조세 완화와 규제 완화를 통해 부동산의 시장성을 강화하려 한다.

 

여당 후보들은 토지공개념을 기반으로 지대개혁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반면, 야당 후보들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기조부터 비판하고 있다. 너무 많은 규제가 오히려 집값 폭등을 일으키고 있는 바, 오히려 부동산을 시장 논리에 맡겨둬야 한다는 것이다.

 

여야에 따라 매우 다른 부동산에 대한 시선과 정책들. 그런데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야 대선 후보 모두 비슷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내 신축 아파트 공급이다.

 

"임기 내 기본주택 100만 채 포함 250만 채 공급" - 이재명 후보

"서울 공항 이전 후 스마트시티 3만 채 등 수도권 7만 채 공급" - 이낙연 후보

"반값 아파트법 부활시켜 서울 강북에 시세 4분의 1 값 주택 공급" - 홍준표 후보

"수도권 민간주택 100만 호 공급" - 유승민 후보

 

논리는 아주 간단하다. 수도권 아파트 값이 오르는 것은 결국 아파트가 모자라서 그런 것이니 어떻게든 아파트를 지으면 된다는 것. 다만 대체로 여당은 공공에서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고, 야당은 민간시장에 이를 맡겨야 된다고 주장한다.

 

과연 이렇게 수도권에 아파트를 대규모로 공급하면 집값은 떨어질까? 국민들의 자산 격차는 줄어들고 우리의 삶은 더 나아질까? 이와 관련하여 강준만 교수는 그의 저서 <바벨탑 공화국>에서 일갈한다. 말도 안 되는 발상이라고.

 

수도권 아파트 값의 비밀

 

강준만 저, <바벨탑 공화국>인물과사상사

 

강준만 교수는 수도권에 아파트를 대규모로 지어도 아파트는 계속 모자를 거라고 단정한다. 문제는 아파트 공급량이 아니라 지방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계속 올라올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지방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올라오는 이유는 명약관화하다. 수도권에 일자리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통계를 보면 제2의 도시라는 부산을 비롯해서 지방의 인구는 감소하고 수도권의 인구는 계속해서 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정부의 국토 균형 발전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지표이다.

 

인구의 수도권 집중 현상. 결국 수도권 아파트 값이 떨어지지 않는 건 지방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사람들 때문이다. 정부가 아무리 수도권에 아파트를 많이 짓고 교통망을 확충하면 무엇하나. 오히려 수도권에 집중된 인프라 구축이 더욱 많은 사람들을 수도권으로 몰리게 만들고, 주택은 계속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수도권 집중의 결과

결국 이런 수도권, 서울 초집중화 현상은 우리 모두를 힘들게 만든다. 단순히 물리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수도권에 살아야만 평균 이상의 삶을 살 수 있고, 어디 가서 떳떳하게 '서울 사람'임을 자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최장집 교수의 말을 빌려 수도권 초집중이 우리의 일상을 '전쟁 같은 삶'으로 만든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서열 사회'를 내장하고 있는 서울 초집중화가 상대를 눌러야만 내가 이기는 '제로섬게임'을 기반으로 하는 승자독식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초집중화는 사회를 위계적으로 피라미드적으로 엘리트적으로 분획적으로 조직하는 구조를 재생산하기 쉽다. 이것은 향리적, 특수주의적 연줄 사회와 후원자-고객 관계를 강화시킨다. ...초집중화는 사회 각 부문에서 그리고 사회의 여러 수준에서 '엘리트 되기의 문턱'을 넘어서는 경쟁의 치열함과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의 가혹화를 부추김으로써 한국인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든다. - p.45

 

그리고 그 전쟁 같은 삶의 끝은 참혹하다. 그것은 내가 단순히 수도권에 아파트 한 채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를 넘어 사회 전체에 대한 증오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도 잘 살 가능성이 없는 사회. 현재 0으로 수렴하고 있는 출산율과 지방소멸론은 바로 그와 같은 절망에 대한 대답이다.

 

한 청년은 '싹 다 망하는 것'만이 이 사회에서 꿈꿀 수 있는 유일한 '공평함'이라면서 "차라리 전쟁이 났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무섭지만 나만 죽나요, 다 죽잖아요." 공평에 대한 욕구는 공포를 이긴다 . - p.6

 

그래서 정치권의 선택은?

얼핏 생각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수도권 초집중화의 문제점. 그런데 왜 정치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비겁함 때문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수도권에서의 삶을 욕망하고, 자신도 수도권에 살면서 온갖 특혜를 누리는 이상 굳이 나서서 바른 말을 하며 악역을 맡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는 보수와 진보 할 것 없이 똑같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수도를 옮기려고 했으나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5년짜리 정권 안보 차원에서 국가의 미래야 어찌되건 말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나 끄고 보자는 심리, 그리고 반발이 가장 적은 쪽을 택해 정책을 펴자는 속칭 '안전빵' 심리가 정권 엘리트들의 머리와 가슴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p.223

 

바벨탑 멘털리티는 고성장 시대에 '더 높은 곳을 향하여' 경쟁하면서 갖게 된 서열주의 이데올로기로, 낙오자에 배려가 없는 심성이다. 진보는 입으로는 낙오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한다는 점에선 보수와 다르긴 하지만 행동은 크게 다를 게 없어 오히려 '희망 고문'을 함으로써 '열망과 환멸의 사이클'을 반복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 p.15

 

저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를 '서울공화국'이라고 비판해 왔다. 서울이 지방을 착취하고 있고, 지방은 서울의 식민지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는 그의 문제의식. 혹자들은 그의 주장이 너무 과격하다고 비판하지만, 계속해서 심각해져가는 국토 불균형 발전에 대해서 이제는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될 시점이다.

 

수도권에 아파트를 계속 지으면 우리의 삶은 나아질까? 대선주자들이 답을 해야 한다.

대선주자에게 묻습니다, 아파트를 더 지으면 삶이 나아집니까?

이희동(all31)/ 오마이뉴스

 

부동산 약탈 국가 아파트는 어떻게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이 되었는가?저자 강준만|인물과사상사 |2020.08.

 

목차

머리말 : ‘폭력적 약탈보다 나쁜 합법적 약탈’·5

 

01 부동산 약탈을 외면하는 진보좌파는 가짜다·15

02 프랑스혁명과 노예해방 혁명보다 위대한 혁명·18

03 “인육을 먹었다는 소문까지 떠돌 정도로”·21

04 철거민을 쓰레기차에 실어 내다버린 재개발 정책·27

05 서민의 환한 기쁨을 박탈하는 악의 평범성’·31

06 정부가 주도한 부동산 대사기극·34

07 “차라리 공산주의 세상이 더 나은 게 아닌가?”·38

08 허공으로 날아간 토지공개념·42

09 “시골 고향에서 살아갈 수만 있었다면”·46

10 전셋값이 한 달 새 3배나 뛴 부동산 투기 광풍·51

11 중산층의 이기주의와 허위의식·55

12 아파트가 인간의 품격을 말해주는 시대·59

13 “친북좌파보다 못한 일부 강남 부자들”·62

14 “우리 집이 무너지게 생겼다고 경축하는 요지경 세상”·67

15 부자의 80퍼센트 이상이 부동산으로 부자가 된 나라·71

16 부동산 문제에선 진보는 수구 세력’·74

17 서울은 부동산 약탈 도시’·77

18 “투기 방조당, 투기 조장당, 투기 무관심당”·80

19 왜 진보는 부동산 약탈에 무관심할까?·83

20 진보 지식인의 부동산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86

21 한국의 대표 미녀들을 앞세운 아파트 광고·89

22 나는 현대에 살고, 너는 삼성에 사는 나라·92

23 한국의 6개 주택 계급·95

24 ‘부동산 계급사회투기 테러리즘’·99

25 대학 입시도 부동산이 결정한다·102

26 “부산에 남으면 희망이 없다”·105

27 부동산 투기 삼각동맹’·108

28 재개발 조합-폭력 조직-재벌 건설사-구청의 사각동맹’·111

29 “정부는 누구 하나 죽어야만 귀를 기울여요”·114

30 자기 못난 탓을 하는 무주택자들·117

31 매년 인구의 19퍼센트가 이사를 다니는 나라·120

32 황족-왕족-귀족-호족-중인-평민-노비-가축·123

33 “초원에서 초식동물로 살아가야 하는 비애”·126

34 강남 땅값이 전체 땅값의 10퍼센트·129

35 고위 관료들은 누구를 위해 일할까?·132

36 부동산은 블랙홀이다·135

37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138

38 땅 투기는 정치자금의 젖줄이다·141

39 연간 수십조 원의 집세 약탈·144

40 “모든 정치는 부동산에 관한 것이다”·147

41 서점에서 책을 살 수 없는 이유·150

42 시세를 따르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고 믿는 사회·153

43 유전결혼, 무전비혼·157

44 상위 10퍼센트가 50년간 땅값 상승분 83퍼센트 챙겼다·162

45 ‘용역 깡패가 없는 구조적 폭력’·166

46 “왜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가?”·169

47 ‘의제설정의 왜곡을 넘어서·172

48 서울 서촌 궁중족발의 비극’·175

49 부동산은 코리안 드림이다·179

50 지방 사람들의 허탈감과 박탈감·183

51 시장에 대한 무지와 위선·186

52 ‘천국에 사는 사람들·190

53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한다”·193

54 ‘부동산 대박에 미친 사회·196

55 부동산 투자가 무슨 죄인가?·199

56 아파트 로또 분양의 배신·203

57 “구직 청년에겐 서울 사는 것도 스펙이다”·207

58 ‘지방당창당 선언문·211

59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215

60 “문재인, 정말 고맙다!”고 외치는 강남좌파와 우파들·218

61 손가락을 자르고 싶은 심정의 사람들·221

62 ‘금의환향에서 귀향으로·224

63 지방 엘리트는 식민지 경영을 위해 파견된 총독·228

64 민주당의 다주택 매각 서약서사기극·232

65 문재인의 부동산 인식은 정확한가?·235

66 “부동산 부자한테 왜 권력까지 줘야 하나?”·238

67 운동권도 사랑하는 부동산·241

68 이 나라의 주인은 투기꾼인가?·246

69 부동산 약탈은 다수결의 폭력인가?·249

70 “잘 가라 기회주의자여”·252

71 “집을 파느니 승진을 포기하겠다”·255

72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게임을 할 건가?·258

73 ‘벼락치기 공부로는 안 된다·261

74 “집값이 떨어지면 더 큰 난리가 날 것이다”·264

75 “나는 내 자식을 위해 무엇을 준비했나?”·267

76 누구를 위한 그린벨트인가?·270

77 ‘행정수도 이전국면전환용 꼼수인가?·276

 

맺는말 : ‘부동산 약탈코리안 드림이 된 나라

부자들의 부모 역할을 하는 정부의 교육 정책·285 부동산 약탈의 근본 원인은 서울 집중이다·287 아파트와 교육은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할 수 없다·289 문재인 정부의 학벌 엘리트가 외치는 서울의 찬가’·291 지방도 공범으로 적극 가담한 사기극·293 잘 가라 기회주의자여

 

출판사 서평

부동산 가격 폭등은 합법적 약탈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정부의 부동산 대사기극에 당하고만 살 건가?”

 

부동산 불로소득이 예외가 아니라 주요 사회적 흐름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면 그것은 약탈이다. 합법적 약탈은 시스템의 문제다. 그 시스템의 관리 책임자인 정부가 약탈의 주범일 수도 있겠지만, 정부를 처벌할 수 있는 상한선은 무능하다는 비판뿐이다. 그런데 무능해질 대로 무능해진 정부는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리지는 못할망정 무슨 권능이나 있는 것처럼 폼만 잡고 위선이나 떨어대는 걸까? 도대체 역대 정권들은 무슨 심보로 부동산 투기 근절운운하는 엉터리 잡소리들을 남발해왔는가?

 

한국은 진보-보수 정권이 번갈아 가면서 발전시켜온 약탈 체제다. 한국의 정치판과 고위공직은 약탈 체제의 수혜자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약탈의 피해자들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다. 고위층이나 고위 관료들은 약탈의 수혜자들 중에서도 알찬 수혜자들이 아니던가? 언제까지 서민들의 삶을 짓밟고 내 집 마련의 꿈을 빼앗을 것인가?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분노와 저항뿐이다. 부동산 약탈 체제를 방치하거나 강화하면서 외치는 개혁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부동산 약탈 국가의 파렴치한 사기극을 끝장낼 수 있다.

 

부동산 약탈 국가는 지난 5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역대 정권들이 부동산을 통해 어떻게 합법적 약탈 체제를 만들어왔는지를 살펴본다. 합법적 약탈은 내 집 마련해보겠다고 뼈 빠지게 일해 저축한 사람들, 전세·월세 값이 뛰어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된 사람들의 처지에서 보면 폭력으로 빼앗아가는 약탈보다 나쁜 약탈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들에게는 투기의 천국이었지만, 그로 인해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에게는 투기의 지옥이었다. 피를 토하고 죽어도 시원치 않을 서민들의 억울함과 고통은 민주화가 된 지금의 세상에서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약탈의 기득권자들이 스스로 약탈을 중단하는 법은 없다. 그래서 부동산 약탈은 우리가 가장 경계하고 분노해야 할 악()인지도 모른다. 이제 반세기 넘게 한국을 지배해온 부동산 약탈 체제를 끝장낼 수 있도록 분노와 행동을 보여야 할 때다.

 

쓰레기처럼 버려진 사람들

서울시는 판자촌과 도시 빈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도 광주를 개발해 빈민들을 이주시키는 정책을 세웠다. 그리하여 19695월부터 경기도 광주로 강제 이주시켰는데, 그 수는 145,00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서울시는 쓰레기 내버리듯 그들을 내팽개쳤을 뿐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지 않았다. 황무지였던 그곳에서 빈민들은 천막을 치고 살았는데, 그들은 일감이 없어 굶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굶주리다 못해 말하기조차 끔찍하게 인육을 먹었다는 소문까지 떠돌 정도로그들의 굶주림은 심각했다. 결국 주민들은 투쟁위원회를 만들어 1971810일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배가 고파 못 살겠다’, ‘토지 불하 가격을 인하해달라’, ‘일자리를 달라는 내용이 적힌 피켓과 플래카드도 준비했다. 이 사건으로 주민과 경찰 100여 명이 부상했고 주민 23명이 구속되었다. 이 사건은 학생이 아닌 일반인 시위로는 사상 유례없는 사건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광주 대단지의 비참한 실상이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1963년부터 1965년 사이에 서울 후암동, 대방동, 이촌동 등지에서 철거민들을 쓰레기차에 싣고 와 갈대밭에 버린 일이 있었는데,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윤치영이 철거민들을 향해 이곳만은 손대지 않을 테니 재주껏 살아보시오라고 말했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그곳에서 갈대를 뽑고 땅을 고르고 천막을 쳐서 갈대 대신 사람이 뿌리를 내린 곳이 바로 목동이었다. 1970년대에는 아현동 등에서 쫓겨난 빈민들도 목동에 내버려졌다. 그러나 10~20년 넘게 삶을 꾸려가던 빈민들은 1983412일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서울시가 토지공영개발 방식을 시도해 신정동과 목동에 신시가지를 조성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한 번 쫓겨나 간신히 목동에 정착했던 빈민들을 또 한 번 내쫓길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정부의 재개발 정책은 늘 빈민들에게 가장 먼저, 가장 큰 불이익을 안겨다주었다. 당국은 빈민들을 자꾸 도시 외곽으로만 내몰았던 것이다.

 

서울로 밀려들던 지방 사람들은 서울이 좋아서 이주해온 한 게 아니었다. 고향에서는 먹고살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살던 판자촌은 강제 철거 대상이었다. 철거민들을 쓰레기 내버리듯 서울 밖의 지역으로 내팽개치는 일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그 덕분에 서울은 천박할망정 겉보기에는 점점 아름다운 도시가 되어갔다. 어디 그뿐인가? 역대 정권들은 주거 빈민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드는 분산 정책을 통해 이들이 집단행동을 일으킬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약속이나 한 듯이 이들을 투명 인간으로 취급했다. 물론 그 덕분에 부동산 가격 폭등을 통해 무주택자들의 지갑을 터는 부동산 약탈 체제도 평화롭게 지속될 수 있었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과거보다는 한결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주택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달라진 게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고성장 시대가 끝나면서 고통은 더욱 커졌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부자는 자기가 원하는 곳에 살고, 가난한 사람은 자신이 살아야 하는 곳에 산다는 말이 있지만, ‘살아야 하는 곳에서마저 내쫓길 위기에 처한다면 과연 어찌해야 하는 걸까?

 

부동산 대박에 미친 한국 사회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롯데건설의 롯데캐슬아파트 광고다. 2001년부터 시작된 이 광고 슬로건은 이후 큰 인기를 누리면서 아파트가 곧 인간의 정체성을 대변해주는 아파트 정체성의 시대를 활짝 열어젖혔다. 더욱이 아파트라고 해서 다 같은 아파트가 아니기 때문에 아파트를 향한 꿈은 늘 더 높은 곳을 향해 나래를 펴고, 그 꿈을 인도하기 위해 한국의 대표 미녀들이 총출동했다. 고현정 아파트, 김남주 아파트, 최지우 아파트, 채시라 아파트, 송혜교 아파트, 김희애 아파트, 한가인 아파트……. 아파트가 인간의 품격을 말해주는 시대라거나 나는 현대에 살고, 너는 삼성에 사는 나라라는 말은 부동산에 미쳐 돌아가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아파트 반상회와 부녀회는 1980년대 후반 민주화와 더불어 아파트의 보급으로 쇠퇴하다가 2002년 부동산 광풍 이후 집값 담합 등 이익 집단화의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부흥기를 맞아 무서운 반상회로 거듭났다. 반상회에서는 통장의 주도 아래 주민들이 담합해 아파트값을 올려야 한다는 결의가 이루어지고, 좋은 일 하자며 아파트를 싼 가격에 거래되도록 주선한 경비원은 개인 재산권 침해라는 이유로 해고당하기도 했다. 20083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한 아파트 입구에는 우리 아파트는 평당 1,600만 원이 적정 가격입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또 광교 신도시 건설 인근 지역인 수원 매탄동의 한 아파트에는 한 집이라도 건설교통부의 실거래가보다 낮게 내놓으면 우리 모두는 망한다는 벽보가 나붙었다. 급기야는 서울 강남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는 경축, ??아파트, 안전진단 통과!!-21세기형 주거공간이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우리 집이 무너지게 생겼다고 경축하는 요지경 세상이다.

 

건축가 정기용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이 어디 사냐고 물으면 나는 현대에 살고, 너는 삼성에 살며, 그 친구는 대우에 살며, 저 친구는 우성에 산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네가 아니라 대기업체의 이름 속에 당당하게 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기보다는 (집이라는) 상품을 소비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개탄했다. 같은 지역, 같은 평형이라도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 값이 2배까지 차이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에는 6개 주택 계급이 존재한다. 1계급은 집을 2채 이상 가진 자, 2계급은 1가구 1주택자, 3계급은 자기 집은 세를 주고 남의 집을 옮겨다니는 자, 4계급은 전세나 월세 보증금이 5,000만 원이 넘는 집에 사는 무주택자, 5계급은 사글세·보증금 없는 월세·보증금이 5,000만 원 이하인 집에 사는 무주택자, 6계급은 지하방, 옥탑방, 판잣집, 비닐집, 움막, 업소 내 잠만 자는 방, 건설 현장 임시 막사 등에 사는 주거 극빈층이다.

 

집단적으로 부동산 대박에 미친 사회에서는 개인이 아무리 도덕적이라 하더라도 집단적 광기의 문법을 거스르기가 어렵다. 라인홀드 니부어는 집단의 도덕이 개인의 도덕에 비해 열등한 이유를 오직 개인들의 이기적 충동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적 충동과 자연적 충동을 억제할 만큼 강력한 합리적 사회 세력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에서 찾았다. 개인들의 이기적 충동은 개별적으로 나타날 때보다는 하나의 공통된 충동으로 결합되어 나타날 때 더욱 생생하게 누적되어 표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동산 약탈에 반대할 강력한 합리적 사회 세력을 만들기 어렵게 한 주범이 역대 정권들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문재인 정부가 주도한 부동산 대사기극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대책이 22차례나 발표되었지만, 부동산 가격은 오히려 폭등했다. 최근의 ‘8·4 대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후 그 어떤 고강도 대책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집값을 잡기는커녕 오히려 다급해서 급조해낸 탓에 부작용만 양산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꿈꾼 새로운 세상은 부동산 약탈을 키우는 것으로 나타나고 말았다. 2020716일 제21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문재인은 부동산 투기를 통해서는 더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문재인은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20191119),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202017), “집값이 급등한 일부 지역은 집값이 원상 복귀돼야 한다”(2020114) 등의 결연한 의지를 공언했다. 그러나 부동산 약탈은 계속 일어났고 문재인의 장담은 헛말이었다는 게 분명해졌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2020623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서울 아파트 중위값은 한 채당 31,400만 원(지난 정권 대비 52퍼센트) 폭등했다. 박근혜 정부(20132~20173) 시절에는 13,400만 원 상승했고, 이명박 정부(200812~20132) 때는 오히려 1,500만 원 하락했다. 이명박이 누군가? 조세를 통해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정책을 한사코 반대했던 그는 2007년 대선 당시 서울 강남에는 종합부동산세폐지를, 강북에는 뉴타운 개발을 통한 자산 증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당선 후 이를 밀어붙인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부동산 약탈을 막는 데에 진보 정권보다 나은 점도 있었다니,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무리 국정 농단 덕분에 집권했을망정 문재인 정권이 로또 정권은 아닐진대, 어쩌자고 그렇게 로또 광기를 부추기는 데에 앞장섰을까? 과도한 집값 상승을 막으려는 분양 가격 통제라고 하는 선의에서 비롯된 결과일망정, 무슨 일이 터져야만 반응해 임시변통의 해법을 내놓기에만 바쁜 정권의 본질적인 무능이 근본 이유임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문재인에게는 부동산 투기와 같은 불로소득은 용납할 수 없다는 신념이 있었을지라도, 행동으로는 사실상 불로소득을 장려하는 정책을 써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2019년 발표한 ‘3기 수도권 신도시건설은 국가균형발전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었다. 2년 전에는 국가균형발전 비전 선포식에서 지역이 강한 나라, 균형 잡힌 대한민국을 외쳤는데 말이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는 발전의 균형이 아니라 투기의 균형을 이루었는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솔직하게 국가균형발전은 없으니 헛꿈 꾸지 말라고 말해주는 게 훨씬 더 나은 게 아닐까? 그렇다면 국가균형발전은 과연 우리의 주요한 국가적 목표인가, 아니면 적당히 국민을 속이려는 사기극인가? 또 국가균형발전을 외치면서 인구 집중의 강력한 유인(誘因)인 교육 정책은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은 사기극이다. 사기극으로 전락한 국가균형발전은 차라리 쓰레기통에 내던지는 게 집단적 위선과 기만을 넘어설 수 있다.

 

부동산 약탈을 외면하는 진보좌파는 가짜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헨리 조지는 땅 한 조각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어떻게 그의 국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그는 부의 근본이 토지이므로 토지세를 통해서 정부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토지가 공동의 소유로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개인 소유 형태에는 손을 대지 않고 지대만 세금으로 거둬 국가 재원으로 사용하는 한편, 다른 형태의 세금은 폐지하는 방법으로 사회적으로 부를 공유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내내 좌우를 막론하고 노동과 자본에만 집착하느라 그의 메시지는 외면당했다.

 

그런 현상은 불행히도 21세기 한국에서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의 진보는 수구 세력노릇을 하고 있다. 부동산 약탈 체제의 수혜자나 적어도 피해자가 아닌 사람이 진정한 진보의 가치에 충실하는 게 매우 어렵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약탈을 외면하는 진보좌파는 가짜다. 다시 말해 부동산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서민들의 삶을 외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헌동은 진보 지식인들은 주택이나 부동산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알지 못하며 깊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진보 지식인의 무지와 무관심은 거대담론 증후군때문이었을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진보 지식인이 부동산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다. 사회적 차원에서만 무지하거나 무관심할 뿐 그들 중에는 자신의 똘똘한 한 채를 챙기는 데엔 대단히 똘똘한 사람이 많으니까 말이다. 다시 말해 고위공직자들 가운데 자기 가족을 위한 부동산 투자나 투기를 하는 데엔 천재가 많을지 몰라도 서민들의 민생을 돌보는 데엔 둔재에 가깝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정파적 이유에서 이런 비정상을 유지·강화해온 정권이 부동산 약탈 체제를 끝장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 우리는 정부의 부동산 대사기극에 당하고만 살 건가? 진보의 사기극에 이제는 질릴 대로 질렸다. 진보의 사기극이 중단되어야 부동산 약탈 근절을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저지르고 보자는 과격파는 안 된다. 총체적이고 정교한 비전·전략·전술을 갖춘, 실력 있는 세력이어야 한다. 맹목적이고 무지막지한 진영 논리를 앞세워 권력에 맹종하면서 권력의 단물에 기생하려는 기회주의자들과 결별해야만 한다.

 

책속으로

한국에서는 헨리 조지를 거론하면 사회주의라거나 심지어 빨갱이운운해대는 사람들마저 있는데, 그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부동산으로 인한 불로소득, 그것도 전부도 아닌 일부만 세금으로 받겠다는 것인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경제학자 이정전은 기본적으로 헨리 조지는 시장의 원리를 신봉하는 보수 성향의 인물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러니 헨리 조지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반세기 넘게 한국을 지배해온 부동산 약탈을 끝장낼 수 있는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해보도록 하자.---프랑스혁명과 노예해방 혁명보다 위대한 혁명중에서

 

57기업이 생산 활동보다 부동산 투기를 통해 이익을 챙기는 풍조를 뿌리 뽑겠다는 요지의 대통령 특별담화에 이어 58일 정부의 부동산 규제 조치가 나왔다. 그러나 이미 재벌에 길들여진 관료 사회는 잘 움직이지 않았다. 이를 폭로하고 나선 이가 바로 감사원 감사관 이문옥이었다. 이문옥의 제보를 받은 한겨레신문511~12일에 23개 대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취득 실태가 업계 로비에 밀려 감사가 중단되었으며, 이들 재벌 계열사의 비업무용 부동산이 전체 보유 부동산의 43.3퍼센트로 추정되어 은행감독원의 공식 발표 수치인 1.2퍼센트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515일 대검 중앙수사부는 이문옥을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구속했다.---전셋값이 한 달 새 3배나 뛴 부동산 투기 광풍중에서

 

지금과 같은 서울 초집중화로 인한 문제와 부작용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조차 짜증이 날 정도니 그건 접어두자. 지방민을 문화적으로 모멸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것 하나로 충분하다. 온라인에 들어가보라. ‘지방충이라는 말이 널리 쓰는 상용어가 된 지 오래다. ‘지방충들만 당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과 같은 서울 초집중화를 그대로 두고선 “(서울에) 모인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살 방법이 없으며,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기존 부동산 약탈 체제의 수혜자들뿐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시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이런 오해나 착각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앞으론 서울을 거대 도시라고 부를 게 아니라 전형적인 부동산 약탈 도시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서울은 부동산 약탈 도시중에서

 

이런 추세는 날이 갈수록 굳어지고 있다. 일반 가정 대비 고소득층의 서울대학교 입학 비율은 1985년에는 1.3배에 그쳤지만, 2000년에는 16.8배로 확대되었다. 고소득 직군 아버지의 자녀가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비율은 다른 그룹보다 20배가 넘었다. 건강보험 납부액을 바탕으로 2007년 서울대학교 신입생들의 가구 소득 수준을 조사한 결과, 소득 수준 상위 10퍼센트에 해당하는 신입생은 전체의 39.8퍼센트였고, 20퍼센트에 속하는 학생은 전체의 61.4퍼센트였다.---대학 입시도 부동산이 결정한다중에서

 

이런 기막힌 현실에 대해 주택 개발 정책 대안 시민단체인 주거복지연대이사장 남상오는 “1960~1980년대 도시 개발 이후 땅 있는 사람 위주로 사회가 돌아가면서 집 없는 사람들은 이사 비용 몇 푼 받고 쫓겨나는 행태가 수십 년간 반복됐다집은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이 됐다고 했다. 아니다. 말은 바로 하자. 집이 괴물이 된 게 아니다. 그런 현실을 외면하는 정부와 고위공직자들이 괴물이 된 것이다. 한국에선 정치 안에서 향유하는 자들이 정치 안팎의 몫을 주장하고 약탈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 되고 말았다.---연간 수십조 원의 집세 약탈중에서

 

시청자들마다 나름의 판단을 내렸겠지만, ‘미친 아파트값의 비밀은 정부와 관료들의 무능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을 것 같다. 국회의원의 41.5퍼센트가 2채 이상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거나 보수 언론이 세금 폭탄운운하면서 강력한 투기 대책에 대한 저항을 선동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을 게다. 나는 좀 엉뚱하게도 시장에 대한 우리의 이중 기준과 위선을 떠올렸다. ‘신격화된 시장’, ‘무한 경쟁의 시장 논리’, ‘잔인한 시장 논리등과 같은 표현들이 시사하듯이, 진보적인 사람들은 시장을 매우 부정적인 개념으로 사용한다. 당연하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 격차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이 국가가 관리해온 것을 모두 시장과 경쟁의 원리에 내맡기자는 것이니, 어찌 시장을 곱게 볼 수 있겠는가.---시장에 대한 무지와 위선중에서

 

금의환향은 출세한 용들만 갖고 있는 꿈이 아니라 모든 출향민의 꿈이다. 이들이 출향을 할 때 가졌던 굳은 각오와 이를 실천하기 위해 쏟은 , 눈물, 가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음을 어찌 부인할 수 있겠는가? 모두가 다 좋은 뜻으로 한 일이지만,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로 인해 지방 소멸과 그로 인한 국가 파탄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리 모두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금의환향이 사라지고 소박한 귀향이 우리 주변의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 잡기를 소망한다. 부동산 약탈 체제를 끝장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금의환향에서 귀향으로중에서

 

그린벨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건 국민 다수의 믿음이다. 그린벨트 논란이 일던 시점에서 이루어진 리얼미터 조사에서 그린벨트 해제 반대(60.4퍼센트)가 찬성(26.5퍼센트)2배가 넘었다. 그렇다. 그린벨트는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린벨트의 선택적 수호론이다.……그린벨트의 선택적 수호론엔 위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강남의 그린벨트는 결사적으로 지켜야 할 것인 반면, 같은 서울에서도 강북의 그린벨트는 좀 훼손해도 괜찮고, 서울 외의 수도권 그린벨트는 마구 훼손해도 괜찮고, 비수도권은 아예 고려할 가치조차 없다는 게 이 희한한 위계의 핵심이다. 이런 위계가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위안을 찾아야 할까? ---누구를 위한 그린벨트인가?중에서

 

 

부족국가 대한민국 부족주의의 노예가 된 정치  저자 강준만|인물과사상사 |2021.04

 

대한민국은 부족국가다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강할수록 폭력적이고 적대적이다

캐나다 출신의 역사학자 마이클 이그나티에프는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강할수록, 이방인에 대한 감정은 더 폭력적이고 적대적이다. 폭력 없이 강렬한 소속감을 유지하기는 힘들다. 강렬한 소속감은 개인의 양심을 주형(鑄型)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영국 정치학자 몬트세라트 귀베르나우도 소속감은 소외와 고독감에 가장 강한 해독제를 제공한다. 현대의 일부 개인들은 소속되고 싶다는 충동 때문에 중독, 지도자에 대한 복종, 강박적 순응 등 새로운 형태의 의존에 빠져든다고 말했다.

 

이처럼 집단에 대한 소속감은 개인의 성정과 가치관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 오죽했으면, “집단에 대한 충성도가 이데올로기보다 두 배 더 중요하고, 리더십보다 여섯 배 더 중요하다는 말까지 있겠는가? 또 미국 사회복지학자 브레네 브라운은 험담하기와 괴롭히기 등 고통스러운 따돌림이 생겨나는 이유는 증오나 사악함 때문이 아니다. 바로 소속감의 욕구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니 소속감의 마력(魔力)에 취해 정신이 외출한 사람들은 소속감이나 유대감의 욕구 때문에 누군가에게 부당한 고통을 주는 행위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는 부족주의는 경험적으로 어떤 장소에 대한 소속감, 그리고 어떤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부족주의는 내로남불을 밥 먹듯이 저지르는 정치적 이념이다. 나름의 노선과 원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치적 부족이나 패거리의 이익이다. 부족주의는 부족의 이익을 도모하는 이익 투쟁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자신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부족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이들은 자신들이 선한 권력이라고 착각한다. 개혁을 위해서는 내로남불과 유체이탈은 불가피하며 때로는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부족주의에는 이런 집단 정서를 뒷받침하는 열성 지지자들의 강철 같은 신념과 행동이 도사리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부족에 대한 유불리를 따져서 판단하는 부족주의의 전사가 되었다. 모든 기준은 오직 자기 부족의 이해관계다. 자기 부족에 유리하면 극찬하고, 불리하면 탄압한다. 무조건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이 진보임을 자처한다면, 그것은 부족의, 부족에 의한, 부족을 위한 진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보가 아니다. ‘밥그릇 공동체에 가까운 가짜 진보.

 

강준만의 부족국가 대한민국은 문재인 정권의 독선과 오만과 위선과 무능을 비판한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 이어 세 번째의 진보 정권인 문재인 정권의 사전에는 성찰이 없다. 성찰이 없는 진보는 진보일 수 없다. 모든 잘못된 것은 보수의 탓이라는 적반하장(賊反荷杖)과 후안무치(厚顔無恥)로 일관한다. 문재인 정권은 기껏해야 보수 응징세력이지 진보가 아니다. 적폐 청산이라는 문재인 정권의 대표 슬로건이 말해주듯이, 보수 응징 이외에 이렇다 할 진보의 비전이 없다. 문재인 정권은 자기들 잘나서 정권을 잡은 것처럼 싸가지 없는 진보의 길로만 나아가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 기간 내내 보수의 악마화를 노린 증오 마케팅으로 일관했다. 자신의 반대편은 무조건 악마화하는 이들은 수십 년 전 운동권 시절의 멘털리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이들에게 자기 집단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투쟁의 대상이다. 아무리 프로이트가 집단은 그 자체가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집단...(하략)

 

 

저자 :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해왔다.

 

2005년에 제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하고, 2011년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국의 저자 300’, 2014년에 경향신문올해의 저자에 선정되었다. 저널룩 인물과사상(33)2007한국일보우리 시대의 명저 50에 선정되었고, 미국사 산책(17)2012년 한국출판인회의 백책백강(百冊百講)’ 도서에 선정되었다.

 

2013년에 증오 상업주의갑과 을의 나라’, 2014년에 싸가지 없는 진보’, 2015년에 청년 정치론’, 2016년에 정치를 종교로 만든 진보주의자권력 중독’, 2017년에 손석희 저널리즘약탈 정치’, 2018년에 평온의 기술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2019년에 바벨탑 공화국강남 좌파’, 2020년에 싸가지 없는 정치부동산 약탈 국가등 대한민국의 민낯을 비판하면서 한국 사회의 이슈를 예리한 시각으로 분석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싸가지 없는 정치,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강남 좌파 2, 한국 언론사, 바벨탑 공화국,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평온의 기술, 넛지 사용법, 약탈 정치(공저), 손석희 현상, 박근혜의 권력 중독, 힐러리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 전쟁이 만든 나라, 미국,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싸가지 없는 진보, 감정 독재,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갑과 을의 나라, 증오 상업주의,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책(23), 한국 근대사 산책(10), 미국사 산책(17) 외 다수가 있다.

 

목차

머리말 : 아침에 진실했던 것이 저녁에는 거짓이 된다 _5

 

1장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투쟁의 대상이다

왜 보수 언론 좋아할 글만 쓰는가? _17

정신적 대통령’, 김어준의 비극 _24

부동산 문제마저 우리 이니가 옳은가? _33

박노자의 이중 기준 _38

진보 세력이 가루가 되도록 갈리는 이유 _45

검찰의 의인화개인화가 증오를 키운다 _52

평등을 희생으로 한 적폐 청산’ _61

 

2장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강할수록 폭력적이고 적대적이다

우주 최강 미남 문재인과 호남인 _69

문재인의 가부장제 페미니즘’ _78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재인의 마음 _86

문재인 정권의 컨트롤 타워가 된 문빠 _92

문빠가 아산의 반찬가게 주인을 괴롭힌 이유 _102

팬덤 민주주의를 넘어서 _107

 

3장 집단에 대한 충성도가 리더십보다 중요하다

부족국가 대한민국 _115

부족의, 부족에 의한, 부족을 위한 진보 _123

부족주의엔 역지사지가 없다 _129

변창흠의 부족주의 _134

밥그릇을 나누어 먹지 않는 통합은 불가능하다 ?139

 

4장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

윤석열이 악마이길 비는 사람들 ?149

윤석열 악마화김명수 천사화’ _160

검찰 개혁, 목욕물 버리려다 애까지 버린다 _167

공무원의 영혼, 꼭 죽여야 하는가? ?174

왜 잘못을 잘못이라고 하지 못할까? _181

공익 신고 탄압당으로 변신한 민주당 _190

 

5장 독선과 아집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협치를 하면 나라가 망하는가? _197

언제까지 토착왜구로 먹고살 생각인가? _202

금태섭의 이중 구속에 돌을 던질 수 있는가? _208

정치 근육의 저주 _215

정치를 최소화하면 안 되는가? _220

 

6장 위선은 공정성을 잠식한다

위선은 진보의 특권이 아니다 _227

당위와 위선 사이에서 _232

빈곤 문제를 외면하는 가짜 진보 _237

사람이 먼저다는 허황된 슬로건을 폐기하라 _241

민생을 돌보는 데에 증오는 필요 없다 _248

죽창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_253

 

7장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

더불어지역당 창당 선언문 _261

국가균형발전을 이런 식으로 팔아먹는가? _266

공사 구분을 완강히 거부하는 사람들 _279

한국을 움직여온 금의환향 이데올로기’ _284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_289

세습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교육 _293

 

8장 우리도 틀릴 수 있다

해장국만 찾지 말고 술을 좀 줄이자 _301

나의 참언론은 누군가에겐 기레기_305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해보자 _311

서로 가르침을 주고받으면 안 되는가? _315

전문가는 결코 죽지 않는다 _319

경청과 소통이 먼저다 _323

 

출판사 서평

부족주의의 노예가 된 문재인 정권

한국에서 부족주의는 이념의 좌우를 초월하는 최상위 개념이다. 부족주의는 인간의 본능에 가깝기 때문에 완전히 극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국이 노골적인 부족국가로 퇴행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미국 예일대학 로스쿨 교수 에이미 추아는 부족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집단이 헌신하는 목표에 유리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만들어서 현실을 대대적으로 왜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시시대의 부족사회에서는 연고를 따질 필요가 없었다. 부족이 연고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한 부족이 다른 부족들과의 전쟁이나 갈등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족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필요했다. 세상이 발달하면서 부족사회나 부족국가는 사라졌지만, 그런 부족 본능은 살아남았다.

 

한국의 부족주의에 좌우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이해관계 충실도 수준이다. 보수가 비교적 이해관계에 더 민감하다. 보수 부족주의의 전성시대는 박근혜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친박의 정도를 따지며 온갖 유형의 부족이 난무했던 2015년이다. 결국 보수는 제 무덤을 팠고,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진보는 좀 다른 유형인 우리 편과 반대편의 경계를 선명하게 나누는 선악 이분법에 빠져들었다. 문재인 정권의 주체이자 핵심 세력은 민주화 운동가들이다. 이들은 국정 운영을 반독재 투쟁하듯이 하면서 운동권 부족주의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때는 바야흐로 진보 부족주의의 전성시대다. 다만 보수 부족주의의 전성시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명분과 당위의 포장을 더 앞세우고 더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부족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반독재 투쟁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군에 대한 충성이다. 민주화 투쟁 당시 집단에 대한 충성은 아름다운 미덕이었겠지만, 민주화된 세상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민주화 투쟁은 거대한 적을 무너뜨려야 하는 투쟁이었기에 진보는 거대 담론과 총론에는 능하고 강하지만, 민생과 각론에는 무능하고 약하다. 더구나 이들은 민생을 소홀히 한 채 기득권과 정의를 동시에 독점하려고 하기까지 한다. 진보 부족주의의 스캔들은 아주 많았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윤미향 사건과 박원순 사건이었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은 부족국가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적 부족주의는 친문 지지자들에게서 시작되어 이제는 그들의 눈에 들려고 애쓰는 여당 정치인들도 덩달아 외치는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또 문재인의 인사는 부족주의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은 민주당 의원 황희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임명함으로써 야당의 동의 없이 장관급 인사 임명을 강행한, 29번째 야당 패싱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문재인 정권이 정치적 부족주의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국정 운영을 부족주의 정서로 할 수 있는가? 이제 부족주의는 문재인 정권의 대표적인 특징처럼 되어버린 내로남불과 동전의 양면 관계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런 부족주의에 진보와 개혁이라는 포장을 씌우는 데에 있다. 결국 한국의 정치는 부족주의의 노예로 전락했다.

 

문재인 정권의 부족주의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것은 검찰의 악마화다. 문재인 정권은 목숨을 걸다시피 검찰 개혁을 외쳐댔다. 그 과정에서 무리한 윤석열 죽이기를 하면서 자신들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위선과 기만을 저질렀다. 그런데 검찰 개혁을 뜨겁게 지지하는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 검찰의 부족주의가 아니었던가? 검찰 내부의 비리는 부족주의로 덮어버리고, 일부 검사들이 검찰 안팎에 각자 자기 나름의 부족을 만들어 그 부족의 이익을 도모하는 짓을 해왔던 것이 검찰 개혁 당위성의 주요 근거였다. 그런데 검찰의 그런 부족주의 못지않은 부족주의에 찌든 문재인 정권이 검찰을 향해 그런 부족주의를 깨야 한다고 호통을 친다면, 이것이야말로 내로남불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부족주의는 역지사지 능력을 죽여버린다. 오직 자신의 부족에 유리한지 불리한지만을 따져서 사납게 반응할 뿐이다. 이들에게 나름의 이론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들은 선()이요 정의(正義)이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집단적 자기기만이다. 사실 부족주의라고 했지만, 진짜 부족주의도 아니다. 이익공동체 성격이 두드러져 상황이 바뀌면 분열과 배신이 대규모로 일어날 기회주의적 부족주의다. 지금 이 순간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일시적 부족주의다.

 

더불어민주당은 더불어부족당이다

민주당 소속 공직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궐선거가 치러질 경우 후보를 추천하지 않는다.” 이는 민주당 당헌 962항으로, 문재인이 2015년 당 대표 시절 정치 개혁을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20201031일부터 111일까지 전 당원 투표를 실시해 그 개혁 조치를 뒤집어버렸다. ‘박원순·오거돈 성추행 사건으로 서울과 부산에서 치러질 20214·7 재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보내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철판 정당인가? 아니면 정치의 본질은 뒤집기에 있다고 믿는 걸까?

 

민주당은 2019년 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밀어붙여 법까지 개정해놓고 손해가 예상되자 약속을 어기고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었다. 2020년 말 공수처법을 강행 처리하며 야당에 거부권을 주었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마저 가볍게 뒤집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야당은 그럴 때마다 비난을 퍼부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런 프리 패스권의 가공할 폐해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 사건에서도 철판의 힘은 유감없이 과시되었다. 가덕도 신공항은 박근혜 정권 때인 2016년 사업성이 없는 것으로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이었지만, 민주당은 그 불씨를 되살려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주장하며 20212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문재인은 대선 후보 시절 경기 부양을 위한 토목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정권을 잡은 후 예타 면제의 수호신으로 바뀌었다.

 

2018년 말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신재민이 기획재정부의 KT&G 사장 인사 개입 의혹과 4조 원 적자 국채(國債) 발행 문제를 폭로했다. 20209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 휴가 미복귀의혹을 당직 사병이 폭로했다. 20211월 전 법무부 차관 김학의의 불법 출금 및 은폐의혹이 폭로되었다. 민주당이 야당일 때는 공익신고자보호법 개정안 27건을 발의했을 정도로 공익 신고를 정의와 개혁의 주요 수단으로 여겼다. 그런데 민주당은 집권 후 공익 신고 탄압당으로 변신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제보를 하면 의인이고 불리한 제보를 하면 도박꾼이나 사기꾼으로 몰아갔다. 더구나 문재인 정권은 공익 신고자 보호를 100대 국정 과제로 내세웠다.

 

문재인 정권은 진보 정권이 아니라 수도권 정권이다. ‘더불어민주당더불어수도권당으로 당명을 바꿔야 한다. 아니 더불어부족당으로 당명을 바꿔야 한다. 입으로는 국가균형발전을 외치면서 인구 집중의 강력한 유인인 교육정책은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은 명백한 사기극이다. 문재인 정권은 20195‘3기 수도권 신도시건설을 발표한 데 이어, 5개월 후인 1031수도권 광역교통비전 2030’을 발표했다. 이 사기극은 수도권 인구 집중을 가속화하며, 수도권 신도시·교통 시설 건설은 끝없이 반복된다. 수도권 인구 집중으로 지방 소멸의 위기가 임박했건만, 5년짜리 수도권 정권은 오늘만 있을 뿐 내일은 없었다. 이런 식으로 균형발전을 팔아먹어도 되는가?

 

이것이 바로 민주당의 민낯이다. 아무래도 민주당은 팔색조 정당이 되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자신들이 야당일 때는 어떠했는지 도무지 기억을 더듬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영악한 밀어붙이기에 내심 흡족해했을 것이 틀림없다. 선거에 이기는 것만이 정의라면 그들의 흡족함에 박수를 보내도 좋겠지만, 후대에 죄를 짓는 행위가 농후하기 때문에 결코 그럴 수 없다. 더구나 민주당 내에서 쓴소리를 했던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는 모진 박해를 받았고, 상당수는 스스로 정당이라는 집단 부족의 꼭두각시가 되기를 자청했다. 그것이 바로 부족주의의 힘이다. 독일 작가 프리드리히 실러는 어떤 사람이든 혼자 있을 때 보면 상당히 현명하고 통찰력이 있지만, 집단 속에 들어가면 당장 바보가 되어버린다고 했는데, 민주당 국회의원에 대해 이보다 현명하고 통찰력 있는 말이 있을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

데카르트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고 말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는 변명이 늘면서 사실을 왜곡하게 되고,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이 코로나 백신 접종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권의 공방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K방역 자화자찬 마인드에 중독된 탓인지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은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고 빡빡 우겼다. 자신들을 둘러싼 적의 실체와 규모를 과장하면서 조금이라도 틈을 주면 큰일 난다약자 코스프레완벽주의자 코스프레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들은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크게, 계속 밀린다는 이상한 이론을 앞세워 무오류의 존재를 자처했다. 자신들을 무오류의 존재로 간주하거나 우기는 독선과 오만에 사로잡혀 도무지 현실을 인정하는 법이 없었다.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없던 적도 만들어내고 아군마저 적군으로 돌리는 뺄셈의 정치를 기가 막히게 잘한다. 더구나 부동산 정책을 비롯해 잘못을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아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을 일로 키운 게 한두 번인가?

문재인 정권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최저임금제, 52시간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시간강사법 등 일련의 정책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아름답고 훌륭한 정책이었다. 하지만 정책 시행 시 일어날 수 있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나 부작용에 대한 대처 방안이 제대로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이 충분히 드러났다. 이 또한 진보가 선호하는 추상적 당위의 함정이다. 이는 결과적 위선으로 지탄받기 마련이다. 문재인 정권은 억울하겠지만, 위선은 관리의 대상임을 인식하고 말을 앞세우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적어도 정책 영역에서는 현실을 당위적 수사에 종속시키지 말고, 실천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책임 윤리를 가져야 한다. 위선은 진보의 특권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은 낮은 곳의 시대정신을 외면했다. 부동산 정책의 참사로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큰 고통을 가했으며, 중대재해법처럼 스스로 내걸었던 사람이 먼저다는 슬로건을 허황되게 만들었다. 문재인 정권의 민생 실패는 구체와 디테일을 무시하는 진보의 오랜 습속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치밀함과 영악함을 정권 안보에만 탕진함으로써 지지율을 까먹고 말았다. 앞으로 진보 세력이 진짜 가루가 되도록 갈릴 수도 있는 터전을 스스로 만들어준 것이다. 또 적폐 청산을 내걸면서 민주화의 완성에 심혈을 기울였다지만, 평등 문제에서는 보수와 비슷하거나 더 못한 점도 있는 무능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러니 정치와 선거는 밥그릇 쟁취를 위한 사생결단의 전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속으로

김어준의 문제점을 아무리 지적해도 지지자들, 아니 신도들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건 물론이고 오히려 김어준에 대한 열정만 더 강해진다. 그들에겐 그럴 만한 나름의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너 감옥 갔다 왔어?”라는 말을 아시는가? 상대방이 갔다 왔다고 그러면 그다음 질문은 얼마 살았어?”. 운동권 출신들 중에선 감옥 다녀온 것이 훈장이며, 수감 기간이 길수록 훈장의 등급도 높아진다. 지금 나는 이걸 비웃는 게 아니다. 공정 의식이 강한 한국인들은 텍스트(말과 글) 자체보다는 텍스트 생산자의 과거를 따지는 걸 좋아한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너 감옥 갔다 왔어?” 멘털리티가 민주화 이후에 태어난 문빠들에게도 그대로 이식되었다.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면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게 너 이명박근혜 땐 뭐 했어?”. “이명박근혜를 불러들인 주범이 누구며, 어떤 책임을 졌어?”라고 묻는 법은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어준과 그 일행은 독보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정신적 대통령’, 김어준의 비극중에서

 

왜 이런 유치한 내로남불을 저질러야 하는가? 야당이 반대하는 공수처법 통과를 위한 입법 카드로 써먹겠다는 생각이었다면, 그건 더욱 유치하거니와 부도덕하지 않은가? 아니면 정말 특별감찰관이 있으면 비리를 저지르기 힘들고, 자칫 외부에 폭로될 수 있기 때문이었을까? 차마 그 말은 할 수 없어서 공수처법 핑계를 대면서 특별관찰관을 무력화한 건가? 문재인 정권은 힘으로 밀어붙여 20211월 드디어 공수처를 탄생시켰지만, 여전히 특별감찰관을 외면한 걸 보면 달리 생각하기가 어려워진다. 20212월 중순에 터진 청와대 민정수석 신현수의 사표 사건시에도 특별감찰관 문제가 등장했다. 신현수가 문재인에게 특별감찰관을 빨리 지명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도무지 알 수 없는 문재인의 마음중에서

 

부족주의는 습관이나 체질로 굳어지는가? 3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변창흠의 부족주의는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상황에서 그는 “LH 직원들은 신도시 개발이 안 될 줄 알고 샀을 겁니다라고 옹호성 발언을 함으로써 여당에서도 질책을 받았다. 그의 LH 사장 시절 직원들의 비위가 급증했음에도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왜 교수 출신이 비리에 그렇게 너그러운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교수 출신 고위 공직자가 지속적으로 지식인처럼 행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느 정도 이상론을 접고 현실과의 타협이 필요하다.---변창흠의 부족주의중에서

 

나는 반독재 투쟁 시 기승을 부린 이른바 조직 보위론의 망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편에 문제가 있더라도 그걸 알리거나 비판하는 건 군사독재 정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니, 절대 그런 짓을 해선 안 된다. 이게 바로 조직 보위론이다. 이 조직 보위론은 독재 정권 시절 진보 진영 내부에서 일어난 성폭력을 은폐하고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그게 아직까지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비극적인 건 조직 보위론 DNA’를 갖고 있는 운동가 출신의 정치인들이 독재 정권을 겪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이 DNA를 전파했다는 점이다. ‘조직 보위론의 상처는 아직도 문재인 정권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살아 있다.---왜 잘못을 잘못이라고 하지 못할까?중에서

 

윤미향 사건 직전에 치러진 20204·15 총선도 다를 게 없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민생 파탄 투표로 막아주세요라는 미래통합당 지지자들의 피켓 문구 사용을 불허한 반면 ‘100년 친일 청산 투표로 심판하자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투표 독려 문구는 사용을 허용해 편파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실 민주당의 죄악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젊은 세대의 의식까지 친일·반일프레임이 자리 잡도록 집요한 선전·선동을 한 데에 있다고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문빠들의 댓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게 바로 이 프레임이자 토착왜구와 같은 비난이라는 건 그들의 선전·선동이 효과를 보았다는 걸 말해주니, 축하를 해주어야 하는가? 그래서 유니클로 입는 검찰총장은 친일파라고 주장하는 문빠들의 지극한 애국애족 정신에 감동의 눈물을 흘려야 할까?---언제까지 토착왜구로 먹고살 생각인가?중에서

 

중대재해법 원안에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당신들이 계속 미친 척하는 상황에서 이래도 답이 없고 저래도 답이 없다면 차선이라도 택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경제, 정말 중요하다. 정치가 수렁에 처박혀도 나라가 그럭저럭 돌아가는 건 경제 덕분일 게다. 모든 경제인께 깊이 감사하다. 그러나 사람 죽이는 경제는 이제 안 된다.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해보시라. 민생과 무관해도 정략적으로 이익이 될 일엔 눈이 충혈되지만, 민생 그 자체라 할 일일지라도 정략적 이익이 없으면 나 몰라라 하는 게 민주당의 기본자세임은 익히 잘 알고 있기에 놀랄 일도 없다. 최근 국회의원 이해충돌방지법을 놓고 미적대는 걸 보라. 자기들 밥그릇 건드릴 수 있는 건 한사코 마다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 사기는 치지 말고 살아가자. 문재인 정권에 사람이 먼저다는 허황된 슬로건을 공식 절차를 걸쳐 폐기할 것을 요구한다.

---사람이 먼저다는 허황된 슬로건을 폐기하라중에서

 

새만금이 선거용으로 출발했듯이, 가덕도 신공항도 선거용이라는 전철을 밟고 있다. 선거와 무관하게 평소 전반적인 국가균형발전을 추진할 수는 없는가? 문재인 정권엔 그럴 뜻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나의 평소 지론이지만, 문재인 정권은 인구 집중의 폐해로 수도권 주민들에게도 큰 피해를 주는 수도권 정권이기 때문이다. 부산이 인천의 추격에 2의 도시라는 타이틀마저 내주어야 할 위기 상황에 내몰린 것도 바로 그런 이유와 무관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가덕도 신공항이 새만금 못지않게 문제가 많은 사기극일 수 있다고 의심할지라도 지지할 수밖에 없는 부산 시민이 많을 게다. 가덕도 신공항에 대해 비판적인 성결대학교 교수 우석훈은 차라리 부산 시민들이 스스로 다른 경제적 대안을 만들 수 있게끔 10조 원 정도의 예산을 쓸 수 있게 하는 대타협 특별법을 제안했다.--국가균형발전을 이런 식으로 팔아먹는가?중에서

 

대화는 논쟁이나 토론이 아니다. 상대를 압도해야 할 필요가 없다. 물론 말싸움을 벌일 필요도 없다. 왜 상대편이 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어리석거나 나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모든 문제에 대해 다 아는 척할 필요도 없고, 내가 옳다고 강변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는 자세를 잠시 유보하고, “우리도 틀릴 수 있고 너희도 맞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주기만 하면 된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모루아는 “‘모르겠는데요라는 말만 계속 반복해도 대화는 엄청나게 향상될 것이다고 했다. 오늘날 소셜미디어로 대변되는 자기과시의 시대엔 시대착오적인 주문처럼 여겨질 게 틀림없다. 표현의 자유가 만개한 시대에 내 생각도 말하지 못하느냐고 항변할 사람도 많을 게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해보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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