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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미래가 불타고 있다

by 이성근 2021. 8. 22.

미래가 불타고 있다나오미 클라인 지음,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 2021.03

 

나오미 클라인

캐나다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활동가이자 실천하는 사상가다. 미국 조지아주 러트거스 대학에서 미디어, 문화, 여성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미국 비영리 미디어 의 수석 기자이자 <뉴욕타임스> <가디언> <하퍼스> <네이션> 등 유수의 매체에 활발히 글을 기고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어머니와 물리학자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디즈니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하던 할아버지는 파업에 가담한 것이 문제가 되어 해고되었다. 그녀의 부모는 베트남전에 반대하기 위해 캐나다로 이주했다. 전형적인 히피 가정에서 코뮤니즘과 페미니즘의 수혜를 입고 자랐지만 정작 자신은 쇼핑몰에 집착하던 십대 시절을 보냈노라고 회고한다. 토론토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지만 학교에서 일어난 시위를 진압하는 현실에서 깨달음을 얻은 그녀는 토론토에 있는 신문사에서 일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었다.

 

1999년 글로벌 기업들의 실상을 파헤친 <노 로고>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슈퍼 브랜드들이 자신들을 쿨하고 대안적인 것인 양 마케팅 하지만 실상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면서 엄청난 부를 얻고 있는 기업의 이면을 밝혀내 2016년 영국 <가디언>과 미국 <타임>에서 역대 최고의 100대 논픽션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쇼크 독트린>)는 밀턴 프리드먼이 이끄는 시카고 학파 신자유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탐사비평이다. 지난 50년 동안 자유시장을 전파한다는 미명 하에 전세계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짓밟혔는지 촘촘하게 밝혀냈다. 자연재해, 쿠데타, 전쟁, 경제 위기 등 자본주의가 어떻게 재난을 먹고 자라는지 이라크, 칠레, 미국, 남아프리카, 러시아, 중국 그리고 한국에 이르기까지, 가히 '재난으로 본 세계사'라 할 만하다. 2007년 전세계 25개 언어로 출간되었으며, 그해 <뉴욕타임즈> 비평가가 선정한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에 의해 짧은 영상으로 각색되어 베니스 비엔날레,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공식초정작으로 선정되었다. 이후 마이클 윈터바텀에 의해 장편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2010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기후 재앙 대 그린 뉴딜>(2014)"<침묵의 봄> 이후에 가장 중대하고 논쟁적인 환경서"라는 찬사와 함께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그해 논픽션 베스트셀러에 선정되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지구의 미래에 대한 논쟁을 새롭게 구성했다. "이 책은 탄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본주의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실패한 경제 시스템을 다시 짜야한다. 이 경제 모델은 우리 지구와 정확히 전쟁을 벌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스스로 꿈만 꾸는 낙관주의자라고 말하길 거부하지만 팬데믹이 지구를 뒤덮은 비관적인 순간에도 특유의 긍정성을 잃지 않는다. "기후변화가 재난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기회이자 알람이고, 촉매제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집권하자 충격을 받은 다음 해에는 <노로는 충분하지 않다>를 출간했다. 캐나다 풀뿌리 시민운동 'The leap'에 참여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린 뉴딜을 지지하며 버니 샌더스 선거운동을 적극 도왔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엘리자베스 워렌 등 진보적 정치인들을 지지하며 시민 불복종 뿐만 아니라 투표를 통해 우리가 만들 세상에 적극 가담해야 한다고 외친다.

 

그녀는 지금 무한경쟁에 떠밀려 각자도생만을 외치던 경주에서 빠져나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순간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라고 말한다. 우리가 미래로 가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지구를 뒤덮던 순간을 떠올린다면, 어쩌면 지금이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다고 회상할지도 모르겠다. 책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믿는 그녀는 지금도 코로나를 이용해 극단적인 부를 축적하는 기업들을 비판하고, 이에 기대 자신의 정치력을 무한히 확장하려는 정치인들을 경계한다. 새로운 대안을 건설하기 위해 거리에 서고, 온라인으로 시위를 독려하며,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부지런히 함께한다. 남편 아비 루이스와 함께 정치/환경 다큐멘터리를 공동 작업하고 있다. 아들 토마에게 물려줄 세상이 존재하길 바라며 그레타 툰베리와 함께 기후 변화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우리는 들불이다

 

1 구멍이 뚫린 세계

2 자본주의 대 기후

3 지구공학 시험대에 오른 바다

4 정치 혁명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과학이 말할 때

5 기후의 시간과 영원한 현재

6 혼자 힘으로 세계를 구하겠다는 생각은 버려라

7 과격해진 교황청

8 온난화 세계에서 자행되는 타자화의 폭력

9 도약의 시대: 무한의 이야기를 끝내자

10 벼락치기로 쓴 뜨거운 지구 이야기

11 연무의 계절

12 생존과 파멸을 가르는 역사적인 순간

13 문제는 인간 본성이 아니라 자본주의다

14 푸에르토리코 재앙의 원인은 자연이 아니다

15 그린 뉴딜의 성패는 운동의 힘에 달렸다

16 그린 뉴딜의 예술

 

에필로그 그린 뉴딜의 골자

 

감사의 말

출판 크레디트

찾아보기

옮긴이의 말

 

출판사 서평

비상사태는 비상사태처럼 다루어야 한다

이 책은 인류 최악의 재앙인 기후 변화를 인류 최대의 기회로 전환시키기 위해 결집하고 있는 사람들과 운동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거대 산호초의 죽음과 꺼지지 않는 산불, 태평양 연안을 뒤덮은 연무와 초대형 허리케인 습격 등 기후 변화로 인한 생태계 재앙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장을 생생히 담았다.

 

서문에는 스웨덴의 열여섯 살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의 걸음을 따라 [등교 거부]를 벌이는 학생들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레타는 몇 가지 점에서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전 세대가 만든 기후 재앙의 대가를 몸소 치르게 될지 모를 미래 세대이자, 그가 앓는 자폐증으로 인해 오히려 기후 위기를 [진짜 위기]로 바라볼 수 있었던 인물이다. 그레타는 자신이 [지구의 위기에 관해 배운 것과 가족의 생활 방식 사이의 인지부조화]를 견딜 수 없었고, 더 나아가 [정상적인 생활이 곧바로 재앙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모든 게 정상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이런 비상사태를 반영하는 행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렇게 시작한 등교 거부 운동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클라인은 우리가 모든 면에서 그레타를 닮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비상사태를 비상사태처럼 다루어야 한다].

 

본문에서는 기후 운동의 새로운 흐름이 소개된다. 정치권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선라이즈 무브먼트의 의사당 연좌 농성, 기후 변화를 핵심적 의제로 다루는 스물아홉 살의 새내기 하원 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그린 뉴딜이라는 핵심적인 요구의 부상을 통해 서서히 결집하고 있는 시민운동과 그들이 건설하려는 새로운 미래를 다룬다. 또한 BP사의 기름 유출 사건, 키스톤 XL 송유관과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반대 시위, 그리고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산불 등 지난 10년간 기후 변화 논의에서 기념비적인 전환이 되었던 사건들을 꼼꼼히 녹여 낸다. 이 모든 것은 기후 변화와 관련하여 근본적인 변화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인식을 보여 주며, 새로운 변화가 밑에서부터 꿈틀대고 있음을 알려 준다.

 

진짜 그린 뉴딜을 이야기할 때

이 책에서 클라인은 지난 십여 년의 기후 운동을 비롯한 사회 운동이 이뤄 낸 결실을 [그린 뉴딜]로 종합하고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기후 위기와 불평등을 동시에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 왔고, 그 고민을 [그린 뉴딜] 비전에 담아 제안해 온 선구자 중 하나이다. 그린 뉴딜로 요약되는 그의 정치·경제 변혁 모델은 이제 수많은 정책 입안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 책 역시 제러미 리프킨의 글로벌 그린 뉴딜과 함께 그린 뉴딜 논의의 가장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클라인이 요구하는 그린 뉴딜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재생에너지 전환, 에너지 효율 향상, 청정 운송 수단에 대대적인 투자를 실시해야 한다. 둘째, 녹색 산업으로 이직하는 노동자들에게 적정한 임금과 복지 혜택을 보장하고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보장한다. 셋째, 오염 산업이 배출하는 독성 물질 때문에 피해를 입은 지역 사회에게 전환 과정에서 혜택을 제공하고, 지역 차원에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전환 과정을 입안할 수 있도록 돕는다. 넷째, 무상 의료, 무상 보육, 무상 대학 교육을 보장한다. 클라인에 따르면 그린 뉴딜은 [정부의 정책 목록에 추가하면 되는 일개 정책이 결코 아니다.] [맹렬히 타오르는 불에 물총 쏘기 훈련이나 시키는 단편적인 접근법]이 아니라, [확실하게 불을 끌 수 있는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계획이다].

 

[그린 뉴딜]은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도 낯선 단어가 아니다. [기후 악당]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20181인당 탄소 배출량 세계 4) 역시 2020년부터 한국판 그린 뉴딜을 야심차게 진행 중이다. 그러나 클라인의 그린 뉴딜의 비전과 취지에 비추어 보면 한국판 그린 뉴딜은 핵심이 숭숭 빠져 있다. 온실가스의 감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고, 화석연료에 기반한 경제 산업 구조를 탈탄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여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목표도 보이지 않는다. 반면 클라인이 제안하는 그린 뉴딜은 녹색 외피를 두른 단순한 경기 부양책이 아니다. 우리 경제 모델에 대한 전면적인 변혁이자 더 많은 일자리, 더 공정한 세상으로 가는 로드맵이다. 전 세계가 연대해 인류 최악의 재앙을 최고의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기회, 모두를 비상사태 대응의 길에 올려 세우는 중대한 결단이다. 이제 진짜 그린 뉴딜을 이야기할 때이다.

 

혼자서 끌 수 있는 불이 아니다

자연이, 그리고 전 세계 기후 과학자들이 경보음을 쏟아 내고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은 이제 대중 속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의 역사가 증명하듯, 이 불은 혼자서 끌 수 있는 불이 아니다.

 

클라인은 한 대학 졸업식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한다. 기후 위기에 개인적으로 기여하고 싶은 바람을 내비치는 사람들이 그에게 묻곤 한다.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클라인은 민망하게 대답한다. 아무것도 없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원자화한 개인의 입장에서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안정화시키거나 세계 경제를 변화시키는 데 막중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객관적으로 볼 때 생판 터무니없는 생각이다(본문 181).

 

그러나 클라인은 북극 시추를 막기 위해 망망대해에서 홀로 투쟁하는 한 과학도를 언급하며, 우리는 원자화된 개인이 아니라 새로운 변혁 운동의 일부로서 싸우고 있음을 인식하라고 주문한다. 여러분은 운동의 일부다. 이 운동은 유엔에서도 진행되고 있고, 공직자 선거와도 연결되어 있고, 여러 학교들의 투자 철회 운동과도 연결되어 있고, 의회와 법정에서 벌어지는 북극 시추 저지 활동과도 연결되어 있다. 또한 저 망망대해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본문 185~186)

 

클라인은 말한다. [우리는 들불이다.] [거짓 약속과 미래의 편익에 대한 경시, 희생자들 위에 세워져 어차피 처음부터 무너지게끔 설계된] 지금의 집 위에 [공정한고 건강한] 새로운 집을 짓자. 모두를 위한 그린 뉴딜을 다시 이야기해 보자. [생명의 미래가 경각에 달려 있는 이때, 우리가 해내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책속으로

그레타는 이런 의문을 품었다. [아무도 미래를 구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지 않아 얼마 안 있어 미래가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어째서 우리는 그런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해야 할까? 정치인들과 사회가 학교 시스템의 최상에 있는 과학자들이 확인해 주는 가장 중요한 사실들을 무시하는 마당에, 그런 학교 시스템 안에서 사실들을 배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pp.19,20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기후 위기를 비상사태로 규정해야 한다. 이 위기를 비상사태로 규정해야만, 비상사태에 마땅히 갖춰야 할 준비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p.23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걱정하지 말라고, 과장이라고, 더 중요한 문제들이 무수히 많다고, 관심을 기울여야 할 좋은 일들이 무수히 많다고, 무슨 수를 써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속삭임에 넘어간다. 우리가 도파민을 분출시킬 새로운 경험을 찾아 디지털 세계 속을 쉴 새 없이 돌아다니게 만들 기발한 도구를 찾는 일에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들이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는 판에, 평범한 사람들이 문명의 위기를 헤쳐 가보자고 애를 쓰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속삭임에 넘어간다.---pp.24,25

 

집에 불이 번져 가는데도 우리 사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집은 틀림없이 무너지고 만다. 집에 큰불이 나면 갈수록 불길의 온도가 치솟고, 결코 복원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골조부가 완전히 불타 재로 변한다. 그러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다.---p.29

 

IPCC 보고서가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킨 요란스러운 화재 경보였다면, 그린 뉴딜은 화재 안전 및 예방 계획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이제껏 맹렬히 타오르는 불에 물총 쏘기 훈련이나 시키는 식의 단편적인 접근법을 숱하게 보아 왔지만, 그린 뉴딜은 확실하게 불을 끌 수 있는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계획이다.---p.45

 

우리의 집이 불타고 있다.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의 집은 거짓 약속과 미래의 편익에 대한 경시, 그리고 희생자들 위에 세워져 어차피 처음부터 무너지게끔 설계되어 있었다. (……) 예전만큼 화려하진 않더라도, 안식처와 돌봄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모두가 들어갈 수 있는 집을 짓자.---pp.74,75

 

우리는 해저에 뚫린 이 구멍이 단순히 공학기술적 실수나 기계 고장으로 인한 사고를 넘어서는 함의를 품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이 구멍은 지구라는 살아 있는 유기체의 몸에 난 끔찍한 상처다.---p.91

 

이제껏 기후 변화 부정 운동 뒤에 은신해 있던 인종 차별주의가 다시금 맹위를 떨치면, 세계는 더욱더 냉혹한 곳이 될 것이다.---p.133

 

기후 변화 문제는 우리가 과거 몇 세대에 걸쳐 벌여 놓은 행위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여러 세대들에게 어떤 식으로 불가피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다. 이런 시간의 범주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망각 속에 묻힌 언어다.

---p.173

 

여러분 앞 세대들은 여러분 몫이 되어야 할 대기 공간보다 훨씬 큰 대기 공간을 탕진해 버렸다. 우리는 여러분 몫으로 남겨 둬야 할 대실패의 기회 역시 다 써버렸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세대 간 불평등인지도 모른다.---p.177

 

민망한 답변이지만,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라는 질문에 나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대답한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원자화한 개인의 입장에서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안정화시키거나 세계 경제를 변화시키는 데 막중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객관적으로 볼 때 생판 터무니없는 생각이다.---p.181

 

유색인들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문화, 그들이 파도 밑으로 사라지건 수용소에 갇혀서 분신을 하건 모른 체하는 문화라면 유색인들의 나라가 통째로 바다 밑에 가라앉건 가뭄과 폭염에 파탄이 나건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p.222

 

그린 뉴딜이건 대전환이건 지구를 위한 마셜 플랜이건, 어떤 이름을 붙여도 상관없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명심해야 한다. 이건 정부의 정책 목록에 추가하면 되는 일개 정책이 결코 아니다. 또한 지구는 특별한 이익집단의 소원을 이뤄 주는 방편도 아니다.---p.241

 

6년 전에 반다나 시바가 이 상을 받으러 왔을 때 말했듯이, 지금의 위기를 초래한 근원은 [생태계의 한계와 윤리적 한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제]에 있다.---p.266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이 대형 산불이 뿜어 낸 연기는 약 180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지역을 뒤덮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을 합친 것보다 더 넓은 면적이다.

---p.297

 

인간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것은 결코 필연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우리 인간 종이 걸어온 집단적 역사 속에 등장한 아주 작은 깜박임일 뿐이다.

---p.341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는 딱 두 가지다. 만인이 최대의 편익을 누릴 수 있도록 변화를 이끌어 나가느냐, 아니면 수동적으로 기다리다가 기후 재앙과 물자 부족, 그리고 [타자]에 대한 공포감에 떠밀려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하느냐, 이 두 가지뿐이다.---p.362

 

자신이 과거에도 미래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채 시간 속을 부유하고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완전히 방향 감각을 잃는다. 우리가 어떤 과거에 뿌리내리고 있고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파악하고 있을 때에만, 우리는 위태롭게 흔들리지 않고 발을 디딜 수 있는 견고한 토대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p.381

 

그린 뉴딜은 우리 모두를 비상사태 대응의 길에 올려 세운다. ---p.389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사방이 시뻘겋다 -미래가 불타고 있다

한성원 그림

 

덥다. 여름이니까 당연하지 하고 넘기지만 가끔은 견디기 힘들다. 자다 깨어 창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시원한 바람 대신 이웃집 에어컨 소리와 열기만 가득하다. 한밤에도 이렇게들 에어컨을 돌려대니 대기가 식을 틈이 있나, 부아가 난다. 갈수록 나빠지는 지구 환경은 아랑곳 않고 대체 어쩔 셈이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다. “불이야!” 외치고 싶다. 불이야, 불났어요! 정신 차려요.

 

과장이 아니라 실제 지구는 불타고 있다. 금광 개발과 목초지 확보를 위해 매일 수백 군데에 불을 지르는 아마존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그리스 심지어 시베리아에서도 해마다 초대형 산불이 일어난다.

 

지구를 찍은 위성사진은 사방이 시뻘겋다. 그러니 캐나다 출신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이 집이 불타고 있다(on fire)’라는 제목으로 책을 쓴 것도 이해가 간다. 그게 사실이니까. 한국어판은 미래가 불타고 있다인데, 수백 명의 과학자와 정책 입안자들이 모여 최초로 온실가스 감축을 논의했고 유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조직됐던 1988년이라면 몰라도 지금으로선 좀 한가한 느낌이다. 불탈 미래조차 장담할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심각하니 말이다. 하지만 책은 기후위기의 급박함만이 아니라 해결 방법도 얘기하므로 미래가 불타고 있다는 맞춤한 제목이기도 하다.

 

나오미 클라인은 글로벌 기업들의 이면을 파헤친 노 로고를 시작으로, 재난을 이용해 부익부를 심화시킨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 ‘기후 운동의 바이블로 평가받는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등을 펴낸,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기후 행동가, 요즘 보기 드문 비판적 지식인이다. 2019년에 출간된 미래가 불타고 있다는 그가 지난 10년간 써온 기후변화에 관한 기사와 논평, 강연 원고를 모은 것인데, ‘기후 재앙 대 그린 뉴딜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기후위기의 원인과 실상, 결과는 물론 그린 뉴딜이라는 대응책까지 제시한 책이다.

 

소비하는 삶이 아니라 책임지는 삶

처음엔 그린 뉴딜이란 말이 걸려서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그린 뉴딜을 내세운 한국 정부가 온실가스 제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는 대신 뉴딜 펀드 운운하며 (IPCC가 정한 최종 기한인) 2050년까지 감축하겠다는 말만 하기 때문이다.

 

경제의 토대를 바꾸는 데 30년은 결코 길지 않다 하겠지만, 일반적으론 그 말이 맞지만, 지금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며 그래서 뉴딜이란 말이 나온 것이니 정부의 그린 뉴딜은 과거의 녹색성장과 똑같은 수사일 뿐이다. 아무튼 나는 이 책에 선입견을 갖고 흰 눈으로 프롤로그를 훑어봤는데 그러다 빠져들고 말았다. 이렇게 감동적이고 일목요연하고 명쾌한 프롤로그라니! 너무 바빠 책 읽을 시간이 없다면 프롤로그만이라도 꼭 읽기를.

 

시작은 그레타 툰베리다. 여덟 살 때 기후변화에 대해 공부한 툰베리는 열한 살 무렵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지구의 상태는 빠르게 악화되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공포와 절망을 느꼈던 탓이다. 다행히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대신 함께 육식과 비행기 타기를 포기한 부모의 지지 덕분에 그는 우울증 환자로 머물지 않고 기후 행동가로 나섰다. 2018년 그는 홀로 등교 거부 시위를 시작했다. 누구는 철없다 했고 누구는 자폐아의 병증이라 했다. 그는 자폐증을 앓는 우리가 정상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비정상이라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 다보스 포럼에 모인 부자와 권력자들이 희망을 주었다고 하자, “제가 원하는 건 여러분의 희망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이 극한 공포에 빠지길 원합니다. 제가 날마다 느끼는 공포감을 여러분도 느끼길 원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자기 집에 불이 났을 때처럼 행동하길 원합니다라고 일갈했다. 그의 분노에 전 세계 청소년이 함께했고, 유럽연합(EU)이 온실가스 제로를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오미 클라인은 툰베리만 기억하진 않는다. 그는 툰베리 이전에 필리핀, 마셜제도, 남수단의 유색인들이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음을 상기시킨다. 기후위기에서도 인종과 계급, 빈국과 부국의 차별은 유지되며 오히려 심해진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2011년 노르웨이 여름캠프를 공격한 총기 난사범, 2019년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 학살범이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환경 파시스트를 자임하며 혐오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생태위기는 증오와 폭력을 부추기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하여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탈탄소 정책을 넘어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일이며 모든 차별적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그래서 극히 보수적인 IPCC가 보고서 들머리에 사회 모든 측면에서의 신속하고 광범위하고 전례 없는 변화를 촉구한 것이며, 클라인이 일시적 경기부양책이 아닌 근본적 변혁으로서 그린 뉴딜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그린 뉴딜은 재생에너지 사용, 녹색산업 투자, 돌봄노동을 포함한 일자리 창출, 공공부문 강화, 기업 규제, 부유세 신설 같은 세제 개혁, 참여민주주의, 무상의료·무상보육 등 사회 전 부문을 포괄한다.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고 시장도 한몫하지만 주역은 민중이다’. 소비하는 삶이 아니라 책임지고 행동하는 삶을 택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이끄는 그린 뉴딜은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인 빈곤층과 개도국을 지원하고, 난민과 이민자의 권리를 자선이 아닌 의무로써 옹호한다. 역사를 바꾸고 미래를 여는 비전을 제안하며 클라인은 간곡히 당부한다.

 

우리 앞에 놓인 가장 큰 장벽은 너무 늦었다는 식의 무력감이다. 빈주먹으로 시작해야 한다면 이 생각이 옳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수십 년간 그린 뉴딜 같은 돌파구를 준비해온 수만 명의 사람과 조직이 있다. 비전은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사회구조를 이룬다고 선언한다. 생명의 미래가 경각에 달린 이때, 우리가 해내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수정 인용).”

 

김이경 (작가)/ 시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