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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Know It All Society

by 이성근 2021. 8. 16.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 똑똑한 사람들은 왜 민주주의에 해로운가

저자 마이클 린치|역자 성원|메디치미디어 |2020.06

 

 

Michael Patrick Lynch 코네티컷 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자 코네티컷 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소장, 뉴잉글랜드 인문 컨소시엄 소장을 맡고 있다. 인식론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다원주의 진리론의 옹호자로 널리 알려진 그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으로서 이성과 합리성을 강조하는 저서를 꾸준히 발표하여 코네티컷 대학교에서 우수연구메달을 받았으며, 미국 국립 인문학 재단, 템플턴 재단 등에서 연구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사실적인: 왜 진리가 중요한가True to Life》 《맥락 속의 진리Truth in Context》 《이성 예찬In Praise of Reason》 《인간 인터넷Internet of US등 많은 저서가 한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었고, 인간 이성과 합리성의 실용적 가치와 철학적 의미를 재조명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중에서 사실적인뉴욕타임스선데이 북 리뷰에서 진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열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2005년 철학 분야 최고의 책, 뉴욕타임스편집자의 선택에 선정되었다. 또한 맥락 속의 진리는 철학 분야의 우수 저작물에 수여하는 초이스 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빅데이터 시대에 민주주의와 공공 담론에 필요한 진리에 대한 태도, 기술의 윤리 문제에 천착하며 활발한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목차

서문

가짜 뉴스의 시대, 믿음과 확신에 던지는 질문

 

1장 몽테뉴의 경고

인간보다 더 형편없는 존재는 없다

우리는 이 세상을 감성으로 더럽힌다

오만한 사람들의 치명적인 사회성

 

2장 분노 공장

구글은 다 안다

호두 껍질 밑에 동전이 있을까?

확신을 양성하는 신병 훈련소

 

3장 삽이 휘는 곳

마음 깊은 곳의 기반암

확신은 자아상을 반영한다

믿음은 어떻게 확신이 되는가

 

4장 오만함이라는 이데올로기

진실에 적개심을 품은 사람들

트럼프는 있는 그대로 말한다

백인의 지위가 위협받고 있다

오만함과 무지 그리고 경멸

 

5장 자유주의와 정체성의 정치

오만한 자유주의자

정체성의 정치에 대한 오해

자유주의자는 보수주의자보다 똑똑한가?

경멸의 정치학

 

6장 민주주의와 확신의 문제

소크라테스의 교훈

오만에서 자유로워지는 법

철인왕과 이성의 공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실

 

감사의 말

주석

참고 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무엇이 사실의 문제를 확신의 문제로 바꿔버리는가?

현대 정치의 일부가 되어버린 오만의 문제를 탐사하다

영어에는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고 잘난 척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노잇올(know-it-all)’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주변의 한두 사람쯤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책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는 명절 때마다 정치 이야기에 핏대 올리는 술 취한 삼촌이나 커피 마시는 것 하나까지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는 피곤한 친구에 관한 일화를 넘어서 우리의 정치적 풍경의 일부가 되어버린, 더 나아가 문제의 핵심이 자리하게 된 노잇올’, 즉 도덕적이고 지적인 오만함의 문제를 탐사한다.

 

정치가 좌파와 우파 사이의, 여당과 야당 사이의 줄다리기 싸움처럼 보이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둘 사이의 거리는, 우리가 촛불과 태극기 사이에서 거대한 심연을 느끼듯 그 어느 때보다 멀어 보인다. 둘 사이에 공통분모는 갈수록 적어지고 심지어 가장 하찮은 사안마저 논쟁과 의심의 대상이 된다. ‘가짜 뉴스는 그저 내 맘에 들지 않는 뉴스를 일컫는 표현이 되었다. 그리하여 기후변화와 백신, 그리고 선거 결과 같은 사실의 문제까지 흔들리고 있다. 저자는 탈진실의 시대에 인간의 조건이 되어버린 오만함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깊숙이 탐사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과 확신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경멸과 우월감으로 무장한 채 파벌주의의 덫에 빠져버린 민주주의에 확실한 경종을 울린다.

 

진실의 경계가 무너져 내린 가짜 뉴스의 시대 내가 믿는 것이 곧 이다

201612월 에드거 웰치라는 남자가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워싱턴 DC의 한 피자 가게에 들어섰다. 인터넷 커뮤니티 포챈4chan을 중심으로 힐러리 클린턴과 다른 민주당 정치인들이 가게 지하에서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한다는 뉴스가 떠돌고 있었다. 웰치는 이를 자체 수사하기 위해 그곳에 간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 정보는 사실이 아니었다. 지하에 아동 성매매 조직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 건물에는 지하실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웰치의 행동이 터무니없고 멍청하다고 생각하는가? 저자는 가짜 뉴스의 시대에 정보가 오염되고, 오염된 정보가 기이한 자기 확신이 되어가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을 웰치의 사례에서 발견한다.

 

이를테면 우리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하는 인터넷 기사 중 최소 60퍼센트가 그것을 공유한 사람마저 읽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리는 특정 의견에 동의하거나 혹은 그것을 비판하기 위해 기사를 공유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감정적 태도를 전달하기 위해, 특히 자신의 분노를 드러내고 다른 사람의 분노를 끌어내기 위해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이때 소셜미디어는 바로 여기에 분노를 느껴라라고 지시함으로써 파벌주의를 강화하고, 결국 확신을 양성하는 신병 훈련소가 되어버린다.

 

확신은 자신이 바라는 자아상과 관련이 있다. 확신은 그저 확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삶에서 권위를 갖는다. 그것을 뒤흔들 증거가 눈앞에 있어도 사실이나 논리 자체를 거스르면서까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확신을 방어하는 것은 정체성 자체를 방어하는 것과 비슷하다. 웰치의 우스꽝스러운 작전을 지켜본 극우 미디어는 그가 민주당에 의해 고용된 배우라는 주장을 유포하며 자신들의 세계관을 지켰다. 이런 상황은 여전히 기이하지만 조금도 낯설지 않다.

 

트럼프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유주의자는 보수주의자보다 똑똑하다

저자는 가짜 뉴스와 음모론에 불을 지피는 이 파벌적인 자기 확신의 진짜 문제는 거짓을 진실로, 혹은 진실을 거짓으로 대체하는 데 있다고 보지 않는다. 진실이 무엇인지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양산하는 데 있다. 세상에는 트럼프의 트위터를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공장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트럼프가 있는 그대로 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후자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주류 미디어에서는 좀처럼 다루지 않는 사안을 트럼프가 기꺼이 입에 올린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들을 매료시키는 것은 트럼프가 무엇을 말하는지가 아니라 그것을 말할 때 분노, 억울함, 극도의 자신감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트럼프를 통해 그동안 무시당해온 감정과 과소평가된 경험들, 이를테면 기후변화는 사기라거나 이민자가 미국을 장악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비로소 재평가받는다.

 

우파의 확신이 기이하다면 좌파의 확신은 확실히 오만하다. 우파 사이에 대안적 위키피디아로 불리는 콘서버피디아에는 아예 자유주의자의 오만함liberal arrogance’이라는 항목이 있다. “근거 없는 자만심에 가득 차서 건방지게 넘겨짚는 자유주의자들의 성향으로 정의된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실을 알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공감하고 배려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인종주의자나 성차별주의자가 아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다……. 이런 가정하에서 많은 좌파는 마치 모든 보수주의자가 잘못된 가치를 좇을 뿐 아니라 멍청하거나 속임수에 넘어간 게 틀림없다는 듯 행동한다. 자신만이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우월감만큼이나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는 오만함을 강화시키는 것은 없다.

 

오만함의 덫에 빠진 민주주의,무너진 공공 담론을 어떻게 바로세울 것인가?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세계관은 그저 우리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옳으며, 더 이상 서로에게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좌우 양쪽의 스펙트럼을 넓게 조망하며 우리는 틀릴 수 없다라는 오만이 정치를 어떤 위기에 빠뜨렸는지를 탐사한다. 파벌적인 확신과 오만함은 진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결정지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에도 해롭다. 타인에 대한 경멸과 우월감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자기 관점이 우월하다는 주장에 그치지 않고 인간으로서도 우월하다는 확신으로 이어진다. 오만한 사람들은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백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라고 쏘아붙인다. 혹은 멍청한 사람들이 정치를 수렁에 빠뜨린다고 비난한다.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는 이처럼 집요한 오해와 의도적인 경멸이 일상이 된 풍경 속에서 무너진 공공 담론을 회복할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한다.

 

소크라테스는 정치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고 보았다. 저자는 이 질문을 바꿔 이제는 우리는 어떻게 믿는가?’를 물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무언가가 사실이라는 이유로 무작정 믿지 않듯, 우리가 믿는다고 그것이 사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과연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동시에 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 한 가지 흥미로운 사고실험을 제안한다. 사람들이 당신의 정치적 관점을 믿게 만들 수 있는 약이 있다. 우리는 그 약을 인종주의자나 성차별주의자, 국회의원에게 주거나 상수원에 풀 수도 있다. 당신은 그 약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극단적인 종교적 대립 상황에 진저리치며 스스로를 탑에 유폐시킨 몽테뉴, 전체주의 시대 진리와 정치의 문제를 끈질기게 파고든 한나 아렌트를 경유해 다시 처음의 소크라테스 문답으로 돌아오는 여정 속에 저자의 답이 숨어 있다.

 

책속으로

좌파와 우파의 서사 사이에는 갈수록 공통분모가 적어지고, 심지어 가장 하찮은 사실들마저 논쟁과 의심의 대상이며, ‘가짜 뉴스는 그저 내 맘에 들지 않는 뉴스를 일컫는 표현이 되었다.--- p.9

 

정치적 적수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점점 극단을 달리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가치나 사실뿐 아니라, 사실의 출처에 대한 신뢰성마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의 공적 담론은 짓뭉개져버렸다.--- p.25

 

지적 오만함은 파벌적일 때 가장 치명적이다. 그들은 공화당원이거나 민주당원이거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거나 이민자이거나 무신론자이거나 종교인일 수 있다. 우리는 알지만 그들은 모른다. 우리는 그들에게 배울 게 없고 우리의 인지 능력은 우월하며 더 선진적이고 정교하다.--- p.42

 

노잇올의 핵심적 특징은 명백하게 사회적이다. ‘노잇올들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울 게 전혀 없다고, 자신의 세계관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 기울임으로써 더 나아질 게 없다고 생각한다.--- p.37

 

인터넷의 인격화는 마음에 드는 신발을 찾을 때는 훌륭하지만 사실을 찾을 때는 끔찍해진다. 당신이 접하는 유일한 사실이 당신의 편견에 맞춰 재단된 것일 때, 당신은 조작하기 좋은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p.54

 

소셜미디어는 확신을 양성하는 신병 훈련소와 비슷하다. 자신감을 북돋고,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신뢰를 증대하고, 적을 증오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조작의 유혹에 취약해지고 노잇올로 치닫기 쉬운 태생적인 성향이 양분을 공급받는다.--- p.73

 

확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여기는지 또는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를 알려주고, 그 자아상을 반영한다. 실제로 그렇든 아니든 확신이 우리에게 분명함이라는 기분을 안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p.84

 

이런 사실들은 어째서 확신에 열린 태도를 갖기가 그렇게 힘든지, 확신에 대한 도전이 우리의 생활 방식을 향한공격처럼 느껴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자신의 확신을 방어하는 것은 정체성 자체를 방어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기 때문이다.--- p.94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오만함에 끌린다. 오만함은 워낙 단순하기 때문에 강력한 마약과도 같다. 그것은 실제 권력이 없어도 권력이 있다는 기분을, 실제 지식이 없어도 뭔가를 알고 있다는 기분을 안긴다.--- p.116

 

오만함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불안한 자, 방어적인 자의 이데올로기이다. 사실 앞에서 말라 죽을까 봐 겁이 나서 진실에 적개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이데올로기이다.--- p.118

 

나는 보수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들이 지닌 무언가에 반응했다고 생각한다. 그 무언가란 자유주의자가 가장 잘 안다라는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177

 

오크숏은 자유주의자의 태도가 위험할 정도로 순진하다고 보았다. 문제는 전통을 넘어서면서 편견과 선입견을 넘어설 수 있다는 암묵적인 가정이었다. 하지만 오크숏이 보기에 그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앎이란 항상 전통, 관습, 생활양식이라는 맥락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 p.179

 

당신에게 사람들이 당신의 정치적 관점을 믿게 만들 수 있는 약이 있다. 당신은 그걸로 뭘 할 것인가? 인종주의자 삼촌에게 줄 것인가? 지역 국회의원에게 보낼 것인가? 상수원에 넣을 것인가?--- p.191

 

차가운 경멸은 그와 사촌 관계인 뜨거운 분노와 마찬가지로 멋진 기분이고, 때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경멸이 정책에 스밀 경우 그런 정책은 우리와 적대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기본적인 존중조차 받을 자격도 없는 존재로 취급한다.--- p.193

 

우리가 사는 곳, 모는 차, 먹는 음식, 다니는 학교와 교회, 즐기는 취미와 스포츠, 읽는 책,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입는 옷, 이 모든 것들이 점점 파벌적인 의미를 띤다. 만물이 의미로, 깊은 의미로 가득 찼고, 소셜미디어를 수치심과 모욕감을 유발하는 수단으로 삼는 자유주의자들은 분명 여기에 기여했다. --- p.194

 

우리가 맞고 너희는 틀리다

 

김수상

 

이장님은 마을 방송으로 말했다

경찰들은 들어라, 소성리는 사드가 들어온 426일 이후로는 법이 없어진 동네다

맞는 말이다

시원한 말이다

법을 지키고 국민을 보호해야할 국가가 무력경찰을 동원해

소성리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양들을 보호해야할 양치기 개가 양들을 뜯어먹고 있다

그런 개는 이제 필요 없다

 

할매들이 말했다

마을회관 앞 도로의 탁자 하나를 지키려고

유월 땡볕에 속이 새까맣게 타버린

할매들이 말했다

이제는 밥 차도 들여보내지 말거라!”

나만 보면 맨날 밥 먹고 가라던 금연 할매가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저놈들에게는 밥도 주지마라고 할까

탁자 하나가 도로교통법을 위반했다면

국가는 21만평에 이르는 금쪽같은 우리 땅을

불법으로 미국에게 양도했다

양도한 것도 모자라서 불법으로 폭력으로

사드를 기습 전개했다

누구의 죄가 더 막중한가

미군들의 군홧발에 짓밟히고 있는

롯데골프장의 잔디도 알고 있다

 

하루 종일을 탁자 하나 때문에 경찰들과 싸운 것도 억울한데

길바닥에서 저녁 한 끼를 때우려는데

이건 또 어디에서 나타난 미국의 개들인가

소성리 길가에 성조기를 흔들며

서북청년단이 나타났다

마을 어른들에게 삿대질을 해대며

거침없이 빨갱이 새끼!”라고 했고

길바닥에서 늦은 저녁을 드시는 할매들을 보고

놀고 자빠졌네!”라고 했다

정말 서북쪽에서 왔는지

아니면 어느 정신없는 우주에서 왔는지 모를

그들의 한심한 사과를 결국 받아내긴 했지만

말은 화살처럼 우리들의 가슴에 박혔다

 

억울하고 억울하다

우리도 엑스밴더 레이더처럼 웅웅 울고 싶다

우리의 땅과 하늘과 바람과 별을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우리의 논밭으로 가는 길을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빨갱이 새끼, 라니

놀고 자빠졌네, 라니

정권이 바뀌면 우리를 좀 안아줄 것 같았는데,

정신없는 나라를 대신해 싸워준 우리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건넬 줄 알았는데,

겨우 하는 짓이 탁자 하나 파라솔 하나를 철거하겠다고

소성리를 에워싸고

야윈 할매들을 염천의 길가로 내몰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서북청년단들은

여기가 어디라고

성조기를 성주 땅에 흔들며 돌아다니겠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우리를 믿어야 한다

믿을 건 마을회관의 밥솥과 국밥과 컵라면이다

힘내서 우리는 우리의 빼앗긴 땅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

우리의 빼앗긴 봄을 찾아와야만 한다

할매들의 반팔 만세가 옳았고

할매들이 길가에 누워 길을 막는 자세가 옳았다

달마산 산길에 자꾸 새겨지는 우리들의 발자국이 옳았다

사드 때문에 속에 천불이 나는 날이면

달마산 꼭대기에 올라 골프장을 향해

소리라도 질러야 한다

그래야 맞다

그래야 이긴다

 

고철 사드의 아가리에 평화의 깃발을 꽂아주어야 한다

고철 사드의 아가리에 평등의 깃발을 꽂아주어야 한다

고철 사드의 아가리에 소성리 논둑에 핀 꽃들을 꽂아주어야 한다

 

우리가 골프장을 접수해서 골프공처럼 날려 보내자

저들의 거짓과

저들의 폭력과

저들의 전쟁과

저들의 야만을

우아한 평화의 자세로 태평양 건너 미국 땅까지 날려 보내자

 

우리가 맞고 너희는 틀리다

사드는 가고 평화여 오라!

전쟁은 가고 평화는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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