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세종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살아가는 이응인 시인은 1987년 부산에서 나오던 시 잡지 '전망'으로 등단한 중견 시인이다. 굳이 구분을 해야 한다면, 그는 시를 삶의 거울로 삼는 쪽이다. 시가 유행가처럼 작정을 하고 사람들 마음 속 감정의 스트링(string)을 건드리겠다고 덤비거나 근사한 외양으로 자신을 꾸미지 않더라도 그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삶이 있으니 시가 있고, 시가 있어 삶을 닦을 수 있으니 그걸로 됐다'는 목소리가 묻어나오기 때문이다.(국제신문)
이응인 1962 경남 거창 출생‘ 1987년 무크지 ’전망 5집 ‘ 작품활동시작 시집 ’투명한 얼음장‘, ’따뜻한 곳‘ , ’천천히 오는 기다림‘ , ’어린꽃다지를 위하여‘, 솔직히 나는 흔들리고 있다’
봄 우체부
저녁 7시 차
다만
불쌍한 우리 배추
마당에 국화 가득
혁명은 이래야 한다.
새들이 돌아오는 대밭
나도 그랬다
금요 시 읽기 모임
다행이다
고마운 버스
동생 이응용
시가 쌀알처럼 빛날 때
소나기
어떤 무승부
시가 아니었으면
우선순위
퇴로리 하루
텃밭에서
밀양에는 사람 대신 송전탑이 산다- 765kV 송전탑 움막 강제 철거
밀양 송전탑 받아쓰기 3- 단장면 용회마을 101번 철탑 움막
밀양 송전탑 받아쓰기-단장면 용회마을 고준길 어른
별이 총총한 밤에
배추벌레도
밀양 2012 여름
오빠
유월
밥통
765 송전탑 막지 못하면
평밭 할매의 시
이런 대통령 하나
내가 마음 둔 것들
7월 아침
본포 다리를 건너다가
내 손만 빼고.
그 아이
왼손
잘 있다
모래밥
이렇게 달라집니다-2009 희망 프로젝트 4대강 살리기
수박끼리
빙곡 어른과 전화1
빙곡 어른과 전화2
커피를 기다리며
대항리
터미널반점
봄 우체부
저 산길 어린 바람
어딜 가길래
저리 종종거리나
담장 밑 냉이꽃 옆
잠깐 쉬는 바람은
봄 우체부구나
낼 모레쯤 우리 동네
봄 편지 쌓이겠다
정월 대보름
머얼고 머언데
별이 되어 가는구나
달집 뜨겁던 자리
감나무 가지 끝
달은 앉아
혼자 밝고
개 짖는 소리마저
고요하다
저녁 7시 차
-오랜만에 기만이 어머니를 만났다.(2018.4.17.)
샘예, 우리 기마이 장가갔어예. 서른일곱 먹었을 때는, 이걸 우짜노 걱정이 돼 죽겄더만. 지 친구 동차이는 아들이 초등학교 갈 나이가 됐는데, 인자 늦어뿐 거 아이가 싶더만요. 지난 추석에 와서는 만나는 아가씨가 있다 카는 기라요. 예, 밀양 아가씨. 그래 지난 일월에 서른아홉인데 서른다섯 아가씨하고 결혼했어예. 뭐 샘한테까지 연락을, 집안 가까븐 사람들만 연락했어예. 인자는 기마이나 샘이나 비슷하게 늙어간다 아입니까. 평생 지던 등짐을 벗은 것 같구만요. 내일 모레 칠십인데, 그 동안 초등학교 동기들 버스 대절해 야유회 가는데 한 번도 못갔어요. 인자는 갈 낍니더. 시원합니다. 기마이 그놈도, 예, 지금 구미 사는데, 좋아 죽습니다.
다만
나는 모른다
개불알풀 그 작은 입으로
무슨 말을 해서
꿀벌을 불러모으는지,
벚꽃은 떨어져도
왜 바람으로 몰려다니며,
봄비는 무슨 재주로
늙은 느티나무 가슴의 연둣빛을
불러내는지,
모른다.
다만
모르는 것 가득한 화음에
빠져 있을 뿐.
사과 한 쪽
집에 오니
문 앞에 사과 한 상자가
기다리고 있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아직
사과를 받을 만큼 익지 않았다고
말하려는데
동생도 사과를 주고 받는 게 익숙하지 않은지
연결이 안 된다.
좀 있다 들어온 아내가
사과 하나를 씻어 탁 쪼개더니
내게 건넨다.
사과가 입안으로 떨어지는 순간
이런 소리가 들렸다
"사과 안 받을래?"
불쌍한 우리 배추
진딧물 가득 찼다는 안주인 타박에
11월 서늘한 농약 뒤집어쓴 우리 배추.
주인 잘 못 만나
영양가 있는 비료 한 끼 배부르게 못 얻어먹은
불쌍한 우리 배추.
영하의 시베라아 바람 몰려온다고
거적을 덮어줄 때까진 좋았는데
잊어먹길 밥 먹듯 하는 주인이
제 가방은 꼭 챙겨 출근하면서
몇 날 며칠 거적 한번 안 걷어주네.
키울 능력 안 되면 씨나 뿌리지 말든지
불쌍한 우리 배추.
어떤 이는 김치가 되어
사람 입에 들어가 복을 짓기도 한다더만
거적 신세 못 면한 우리 배추
불쌍타 불쌍타
마당에 국화 가득
봄 여름 바랭이 풀 설치고
영산홍 수국 노랑붓꽃이 다녀가고
분꽃 씨앗 까맣게 떨어질 때
손끝에 수돗물 차가울 때
자잘한 국화꽃 세상이 왔다.
노랗다 해도 얼굴은 제 각각
하야스름해도 표정은 다 다르고
짙고 옅은 보랏빛 너나 없이
모두 벌들에게 꿀을 나누고
마당 가득 향기를 전한다.
혁명은 이래야 한다.
봄 여름 자라며
새순 짓밟히고 가지 부러진 채
상처 아물며 자라나
고구마 순을 주저앉히는 상강에
세상을 확 뒤집는구나.
제가 얻은 것 모두
벌 나비와 나누어
온통 황홀한 꽃밭으로 만드는구나.
혁명은 이래야 한다,
다 얻고 다 내놓는 것
[새들이 돌아오는 대밭
어둑발 드는 골목에 흩어지는 아이들 소리
니 밥 없다 부르는 엄마 목소리
재 너머 돌아오는 절렁절렁 풍경소리
밥상이 들썩이는 아버지 꾸중소리
마당에 바둑이만 대꾸하는 소리
아직도 골목 밖에서 끊어지지 않는 저 소리
어둠이 등을 두드리는
산그림자 먼저 지나가고
새소리도 잦아들어
마을로 내려서는 길이 흐릿해지자
어둠은 성큼성큼 다가가
농부의 등을 두드리며
호미를 거두어 들인다.
둘이 서로 그런 사이인 듯
농부도 그만 허리를 편다.
복숭아나무 정류장
담장 옆 복숭아나무에
후투티 두 마리 내려앉았어.
나를 보더니 아는 체
댕기머리를 끄덕이고는
하얀 줄 숨겨 둔 날개
부채처럼 펼치며
도랑 건너 덕걸로 날아갔어.
우리 집 복숭아나무가
후투티의 정류장이란 거
너만 알고 있어
나도 그랬다
십 년도 넘었다.
작가의 작품집 발간지원 사업으로
문예진흥기금에서
3백만 원에서 5백만 원을 주었다.
나도 돈을 받아 보겠다고
작품과 신청서를 만들어 내었다.
기금을 받아 책을 내고
여행을 다니는 이들이 속으로 부러웠다.
한번은 대구에서 박영희가 와
둘이 술을 먹는데
글 써서 입에 풀칠하는 놈들 두고
다달이 월급 빵빵하게 받는 선생들까지
창작지원금을 신청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글을 써서 딸아이 학비를 마련하고 있었다.
술기운에 덮쳐
등짝을 얻어맞은 듯 전신이 후끈거렸다.
그 뒤로 나는 기금 신청을 그만두었다.
- 김용락의 시 <누가 거지고?>를 읽고 생각이 나서 쓰다.
금요 시 읽기 모임
어느 술 취한 남자가 지나가다 한 마디 툭 던졌다.
시인들이신 모양인데, 요즘 시라는 게 죄다
지 속에 갇혀 어린양부리는 거잖아요.
머리끝이 희끗희끗한 중늙은이 하나 일어서더니
막걸리 내음 푹푹 솟는 남자의 손을
한참이나 붙잡아 주었다.
다행이다
문인들 스스로 고르고 골랐다는
자선 대표 시선집을 받아
차례부터 하나하나 펼쳐 보는데
이상하다
내가 마음 둔 시인들은
그 이름조차 올리지 않았네
시를 쓴다
아버지 산밭에서 미끌어져
허리 삐끗한 줄도 모르고
시를 쓴다.
객토문학 이규석 형님
3월부터 소사장 이름표 떼고
거래처 공장 노동자로 출근하는 것도 모르고
시를 쓴다.
배재운 형님, 남해해물탕 10년
식당 접고 빚 갚으니
남은 게 없는 세월도 모르고
나는 시를 쓴다.
명문대 갔다고 플래카드 내걸리던 아이들
일자리 구하지 못해
고향으로 고개도 돌리지 못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나는 시를 쓴다.
마을 버스 정류장에
함께 내리는 아이들 얼굴도 모르고
밤새 논들에 공장이 들어서는 줄도 모르고
마을 앞에 산처럼 솟아오른
도로가 생기는 것도 모르고
그냥 시를 쓴다.
여의도에
광화문 앞에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포처럼
거대한 돌기둥이
넘을 수 없는 벽이
세워지는 줄도 모르고
그냥 시를 쓴다.
잘도 쓴다.
고마운 버스
늦게 집에 가는
나 데려다 주려고
털 털 털 털
어둠 속으로 나서는 버스.
들길 걸어가면
다리 아프거든
씽씽 굴러가는 버스.
산 모퉁이 돌아갈 때
무서우니까
불 환하게 켜고 가는 버스.
마을 앞 가로등 곁에다
덜컹내려 주더니
씩익 씩 씩익 씩
한 동안 숨 고르다가
부라라랑
엉덩이로 기름 방구 내지르며
돌아가는
고마운 버스.
동생 이응용
나보다 두 해 늦게 나와
동생이 된 그는
달리기를 해도 나보다 빨랐고
나뭇짐을 져도 나보다 무거웠다.
심부름 잘하고 싹싹해
마을 어른들이 자주 불렀다.
약하디 약한 나는
공부를 핑계로 도회지로 나오고
그는 마을 대소사 바라지하며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대학을 졸업한 나는
시골 학교 선생이 되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그는
철강 회사로 세탁소로
부산으로 용인으로
다녔다.
벌초 때면
동생인 그는 먼저 내려와
어탕을 끓여 놓고 숯불을 준비하고
형인 나는
늦은 밤에 도착해 밥 먹고 술 먹고
쓰러져 잤다.
누가 결혼하고, 누가 죽고
집안 소식도, 친구들 소식도
멀리 있는 그가
먼저 알려 주었다.
명절이면 달려와
부모님 사시는 집
전등을 갈고 출입문을 손본다.
나이 서른 이짝 저짝
등치 큰 조카들 앉혀 놓고
집안 일, 자식 도리 하나씩 짚는다.
그는 고등학교를 나와
세상에서 배워 조카들을 가르치고
나는 대학을 나와
나만 아는 겉똑똑이가 되었다.
그는 나보다 두 해 늦게 나와
동생이 되었지만
大學之道
세상에서 바로 배워
몸으로 쓰고 있다.
시가 쌀알처럼 빛날 때
-철원의 정춘근 시인께
철원 오대쌀 10키로 한 부대
우체국 집배원 아저씨 오토바이
휘청휘청 택배로 왔다.
내 못난 시 한 편
<철원문학>에 슬쩍 넣었다고
보내온 원고료다.
지도에도 반쪽만 나오는
철원평야
거름 넣어 삭힐 때 섞여 들어간
농부의 땀방울이
털털털털 다 털고 하나 되고 싶은
경운기에 실려 동신미곡처리장으로 가선
껍질을 벗고 빛나는 알몸이 되었다.
신철원리 농협 매장이나
동네 마트 어디에서
정춘근 형을 만났으리라.
오대쌀 한 부대 어깨에 얹고
씩씩하게 우체국으로 달려가는
저 철원의 시인 정춘근을 보라.
칠천오백 원에 천리 길을 달려온
위대한 쌀, 철원 오대쌀이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우리 집 현관에서 빛나고 있다.
비실비실한 남쪽의 시인더러
총알도 대포알도 지뢰도 다 먹고 자란
오대쌀 먹고 힘내라고
오대쌀 먹고 잠시라도 떠올려 보라고
오대쌀 먹고 하나 되는 시 쓰라고
숨 고르며 이야기하고 있다.
천리 길 헉헉거림
쌀 부대에 새긴 손자국, 땀 내음
그 너머 전쟁, 눈물, 원한이 익혀낸
시를 읽는다.
보아라, 못난 시도 간혹은
쌀알 곁에서 빛날 때가 있는 것이다.
소나기
폭염특보 발효중!
중1 아이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야들아, 더운데 나다니지 말고, 컴퓨터 열 식히고, 숙제도 챙겨보고, 잘 지내!
일초나 지났나
네, 네넹, 냅, 예, 넵ㅋㅋㅋㅋ...
소나기 쏟아진다.
어떤 무승부
시비는 늘 그렇습니다.
장날, 그것도 반술이나 된 할배가
버스를 탈 때입니다.
중늙은이 기사님 소리 지릅니다.
“표 내고 들어가소.”
“나는 표 냈다.”
이렇게 맞받고
“내가 똑똑히 봤는데 뭔 소리.”
“더럽구로 차비 천 원 안 냈을까봐.”
또 받아 칩니다.
본 시합에 들어갈 때는
“와 말 놓고 하는데.”
“몇 살 처먹었노!”
꼭 나옵니다.
“기사 주제에 손님한테.”
할배가 드세게 반격하면
“내가 그런 주디 몇 개 찢었는 줄 아나?”
기사님도 만만찮습니다.
“그래 찢어봐라!”
앞뒤에서 벌떡 일어나
버스 한가운데서 배를 마주 내밉니다.
출발 시간은 그 새 지나고
할매 한 분이
“마 그만 하소.”
한 마디에
버스표 한 장도, 찢어야할 주디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기사님은 돌아가 시동 걸고
할배는 자리에 앉습니다.
둘 다 잠시 식식대지만
버스는 부르릉대며
곧장 들판을 향해 달립니다.
시가 아니었으면
목을 죄던 교복 벗고 대학 배지 달았지만 금세 시들해지고, 어쩌다 같은 과 여학생들과 폼 잡고 커피점에도 가고 재수 삼수파들과 함께 고등어 안주에 막걸리를 퍼 넣고 비틀거렸지만 늘 혼자였다. 김현태랑 단짝이 되어 문학 동인들 시를 뜯어며 교정을 휩쓸고 다녀도, 문학회 두 군데나 적을 두고 들쑤셔도 늘 혼자였다.
아무한테나 쉬 기대어도 퍽퍽 주저앉던, 네 살이나 많은 조형에게 죽으라 편지나 써 대던, 돌아갈 수 없는 곳에 늘 마음이 가 있던, 시가 아니었으면 콱 죽고 말았을,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울컥 터져버릴 것 같은, 내 스무 살 문학청년 시절
우선순위
누가 월급 주는 것도 아닌데
농부인 정홍 형님은
몸에 좋으니 먹어 보라고
당근을 가득 넣어 줍니다.
환자복 벗고 나와
일은 꿈도 못 꾸는 영규 형님도
멀리서 찾아왔다고 고마워합니다.
다달이 월급 받아 걱정 없는
나 같은 걸
돈에 매여 끌려다니는 나 같은 걸
사람이라고
후배라고
끔찍이도 챙겨 줍니다.
김장하는 저녁
집에서 밥 먹는 일 별로 없어
김장도 몇 포기 안 하는데
그래도 김장을 해야 되는 이유를 알았다며
아내가 하는 말.
"이웃과 나눠먹기 위해서라도
김장을 해야겠네."
그 말을 듣고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이웃 가산신흥상회에 가
막걸리 두 통을 샀다.
초저녁인데 할배는 주무시고
할매가 거스름돈 200원을 챙겨 주셨다.
퇴로리 하루
통 통 통통통
부북할배 경운기
안개 바다에 거름 부리면
거기부터 밭둑이 일어서고
사철나무 아장아장
골목으로 다가온다.
이랑이랑
배불리 먹인 뒤
흙 묻은 손 털며
밭을 다독이고 돌아나온
부북할배
고물 오토바이에 손을 얹자
엎드려 있던 배추밭이 벌떡 일어나
꽁무니에 매달리고
다시 어둠만 눅눅해오는
바다 한가운데다.
저자의 동의
-이 책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이용하려면 저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여기 실린 시들은
대지가 꿈꾸고
들꽃이 노래하고
마른 잎 구르는 숨결입니다.
햇살에 그을린 이웃들이 땅에다 새기고
하늘이 기꺼이 뿌려준 것들입니다.
나는 그걸
슬쩍 넘겨다보고
받아적었을 뿐.
동의를 받으려면
그들에게 물어야 할 걸요.
텃밭에서
며칠 비 온 뒤
집 주인이 바뀌었다.
고추와 토마토
오이와 가지
바랭이와 상춧대
앞앞이 인사를 올린다.
저도 이웃에 살아요.
잘 봐 주세요.
밀양에는 사람 대신 송전탑이 산다
- 765kV 송전탑 움막 강제 철거
6월 10일, 밀양시 부북면
화악산 아래 마을을 경찰이 포위했다.
주민들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2천명의 경찰이 산을 둘러싸고
11일 새벽, 작전을 개시했다.
76만5천 볼트 고압 송전탑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세운 움막 철거 작전.
장동 움막에서
129번 움막에서
127번 움막에서
쇠사슬에 제 몸을 묶은
팔순의 할머니가 병원으로 실려 가고
칠순의 할아버지가 나무토막처럼 끌려나오고
마을 아저씨는 현행범으로 체포되었고
수녀님들이 울부짖었다.
경찰과 공무원과 한전 직원이
하나가 되어
제 할머니를 포위하고
제 할아버지를 개처럼 끌어내고
제 어머니를 욕되게 했다.
돈, 필요없다.
그냥 이대로 살게 놔 두라.
고향 산천에 뼈를 묻게 건드리지 말라.
그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765kV 송전탑으로 전기를 보내겠다는
신고리 3호기는 위조 부품 비리로
건설이 지연되고
원전 사고는 그칠 날이 없는데
제발 사람 사는 마을은 피해가자고 부탁했는데
초전도와 지중화 기술을 활용하자고 당부했는데
정부와 한전
지난 10년 동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송전탑 막다
이치우 어르신 돌아가시고
유한숙 어르신은 아직 장례도 못 치렀는데
그들이 원하는 건 단 하나.
사람의 목숨도, 주민 생존도 아니다.
후손들이 살아갈 땅을 망가뜨려서라도
원전 건설과 송전으로 생기는 돈
그것 뿐이다.
이제 화악산을 화악산이라 부르지 말라.
이제 할머니를 할머니라라 부르지 말라.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지도 말라.
여기는 대한민국이 아니다.
여기는 사람 사는 땅이 아니다.
사람 대신
76만 5천 볼트 송전탑이
번쩍이며 사는 곳이다.
밀양 송전탑 받아쓰기 3
- 단장면 용회마을 101번 철탑 움막
101번 움막에는 전기가 없습니다.
전기 없으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온몸이 상쾌해져요.
101번 움막에는
물도 없어요.
물을 지고 한 삼십 분 등산하면
알맞게 운동이 되는
멋진 코스입니다.
땀이 살짝 흐를 때
움막에 도착하면
김치만 놓아도
밥은 꿀맛입니다.
스트레스 잔뜩 쌓이면
101번을 권합니다.
맞은 편 100번 현장
막 공사를 시작했거든요.
거기를 향해
떼지어 욕을 합니다.
정말 시원합니다.
한데
송전탑 공사하는 놈들
우리가 너무 즐겁게 보내는 걸
눈치챘나봐요.
4월 13일까지 철거하라고
경고문을 몰래 붙이고 갔어요.
이제 전쟁입니다.
밀양 송전탑 받아쓰기
-단장면 용회마을 고준길 어른
이웃 마을에 송전탑이 들어서고
우리 마을 철탑만 남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마을 전체 회의를 해서
모두 한 마디씩 하기로 했습니다.
그 동안 앞장서 싸운 젊은 분들은
이제 지친 기색이 뚜렸했습니다.
그런데 뒤따라 다니던 어른들이
끝까지 싸우자는 겁니다.
자식들 보기도 부끄럽고
그 동안 연대해 주신 분들에게 미안하고
우리 자신한테도 용납이 안 된다.
칼을 뺐으면 썩은 호박이라도 찔러야 된다.
그래서 101번 철탑 자리에 움막을 짓고
1시간이나 걸리던 산길
새로 길을 내어 30분으로 단축시켰습니다.
밤낮으로 5명씩 움막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산에 못 올라가는 어른들이
마을 앞을 지키겠다고 했어요.
지난 주에는 경찰 넷이 조를 짜서
철탑 자리에 두번 올라왔어요.
아마 다음 주나 그 다음 주가 디데이다 싶어요.
밤에 산에 있어 보니까
세 사람이 있을 때보다 넷이 있으면 좀더 낫더라고요.
다섯이면 좀 든든하고요.
단 한 사람이라도 도와 주이소.
이 말을 전하면서
목이 잠겨 몇 번이나 말을 멈추었다.
밀양에는
백두대간 태백산에서 몰운대로 달려가는
낙동정맥
주왕산 단석산 가지산 뻗어
운문산 백운산 능동산 재약산 어깨동무하고
화악산에 기댄
밀양에는
아름다운 것만 있어야 한다.
동창천 청도천 손 잡고 오다
단장천 만나 굽어도는
밀양에는
부드러운 것만 있어야 한다.
산밭에 대추 밤 농사 지어
이웃과 나누는 이들.
가족이 함께 고구마를 캐는 들판.
부부가 배추밭에 얼굴을 묻은 산자락.
얼굴 발그레한 반시가 반겨주는 마을.
밀양에는
그것만 있어야 한다.
산의 허리에다 철탑을 꽂고
강이 가슴에다 비수를 찌르는
그런 일은
밀양에는 없어야 한다.
국책사업.
핵발전.
송전탑.
공권력.
협박.
구속.
눈물.
고통.
부드럽고 곱고 아름다운
밀양에서는
황금빛 머리칼 쓸어넘기는 들판과
저 할배 이마의 주름살 같은 산자락과
할매 손등에 펼쳐진 강물 말고는
없어야 한다.
나를 키워낸 산과 강, 들판 잊고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 모든 것들
밀양에는 없어야 한다!
별이 총총한 밤에
10월 3일 밤, 126번 송전탑 현장으로 가는
부북면 도방동 임도 입구.
산에 올라갈 이불과 물을 실은 차가 도착했다.
경찰이 겹겹이 막아섰다.
낮 동안 126번 송전탑 현장에 있다 내려온다는 젊은 아낙.
우리가 너무 인간적으로 했네.
경찰 도시락 가져 온 걸 할매들이 막으라 했는데
경찰도 밥은 먹어야지 하고 보내줬는데.
천막은 걷어가 밟아서 못 쓰게 만들고
컵라면 먹으려고 불 피우자
소화기를 컵라면에까지 뿌리고.
우리 할매들은 하루 종일 굶었는데.
어떻게 물 한 방울 안 올려줘.
배추벌레도
배추벌레는
배춧잎에 붙어 자고
배춧잎 갉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배 부르면 배추 그늘에 쉬고
위험이 닥치면 떼구루 굴러
속잎에 숨거나
땅에 떨어졌다
비틀비틀
집을 찾아 긴다.
배추벌레는
배추벌레끼리
배춧잎으로 마주해 죽고 못살기도 하고
남은 잎 두고
잡아먹을 듯 다투기도 한다.
그러다
밥이요 집이요 길인 배춧잎에서
짧은 문자 메시지만 부고로 남기고
배추벌레도
모든 게 끝이 난다.
3일 장도 없다.
밀양 2012 여름
팔순의 할매는 수은주가 37도를 넘긴 대낮에 산을 기어 오릅니다. 핵발전소에서 먼 도시로 초고압 전기를 공급할 송전탑 자리. 아름드리 서어나무 쓰러지자, 할매는 전기톱을 끌어안았습니다. 어둑발이 들 무렵에야 할매는 엉금엉금 기어서 산 밑 오두막으로 돌아왔습니다. 할매는 저녁밥도 생략하고 안방 문도 열어 놓은 채, 귀신이 물어가도 모를 잠 속으로 곯아 떨어졌습니다. 꿈속에서도 할매는 슈퍼우먼, 송전선 가닥가닥 걷어내고 있었습니다.
아랫마을 젊은 것들, 핵발전소에서 가져온 전선 한 가닥 텔레비전에 연결했습니다. 런던에서 안방까지 메달이 달려왔습니다. 또 한 가닥을 당겨 컴퓨터에다 이었습니다. 피서지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화면을 가득 메웠습니다. 또 한 가닥을 가져와 전자레인지를 돌리기 시작합니다. 선풍기론 안 되겠어. 문이란 문을 죄다 닫아 걸고는 마지막 전선을 끌어와 에어컨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선은 수명을 다한 고리 1호기에서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잠결에도 슈퍼우먼 할매는 온몸을 비틀며 전선 가닥을 걷어내었지만 끝이 없었습니다
오빠
도서관으로 문자가 왔다.
"오빠, 어디야? 전화번호 좀."
야사시한 것들이 내 번호는 어찌 알았을까?
삭제 버턴을 누르려다
눈을 크게 뜨니
부산 사는 동생이다.
그래, 나한테도
'오빠' 하고 불러 줄 누이가 있지.
유월
저녁밥 먹자
잠들었네.
달빛 찰람찰람한 무논
개구리 울음으로
떠다녔네.
밀양 화악산에 웬 풍선?
저기 밀양의 진산 화악산에
웬 풍선이 솟았네.
아리랑대축제 애드벌룬 산에다 띄웠나?
아제요, 그게 아니라요.
화악산으로 76만5천 볼트
송전탑 지나간다고 안 캅디까.
그 송전탑 높이만큼 풍선을 띄워
직접 한번 보라고 한 거라요.
이 먼 데서 보일 정도로
저만큼 높이 오른단 말이지?
백 미터가 훨씬 넘는 것도 있다던데요.
저리 높은 송전탑 들어서면
밀양 시내서도 훤히 보이는데
저걸 우짜노 큰일났다.
제 집 앞으로 안 지나간다고
불구경하던 사람들도
아이쿠나 하겠지요.
이 사람아, 무슨 말이 그렇노.
저걸 그냥 두고 있어야 되겄나?
이미 들어선 것도 뽑아야 될 판인데.
저 밀양의 진산 화악산에
풍선 하나 높이 떴네.
거기가 129번 송전탑 자리.
눈 있으면 직접 보라고
축제 마당에 띄우는 애드벌룬 하나
하늘 높이 올렸네.
단장, 산외, 상동, 부북, 청도면
송전탑 69개
들어서는 자리마다 풍선 띄워 올리면
밀양이 온통 축제 마당 되겠네.
새봄
시멘트 심장을 찢고
포크레인 목을 조르며
그대 오소서.
밥통
바닥이 냉돌이다.
어머니는
큰방 전기장판에 담요 덥고
내복에 겨울 조끼까지 껴입었다.
보일러 안 돌리지요?
괜찮애.
전기장판 틀어 노마 하나도 안 춥어.
기름 무섭다고 보일러 안 틀다
감기 걸리면 어째요?
세수는 어찌하고
머리는 어찌 감아요?
조놈 있제?
니 동생이 버린 전기밥통
저기다 물 가득 담아 보온 눌러 놓으면
아침이면 엄청 뜨거워.
거기 찬물 타서 씻고 그러지.
고놈 참 신통하다
고놈 참 신통하다
몇 번이나 그러는데
내 귀에는
니놈 참 답답하다
니놈 참 한심하다
이렇게 울렸다.
765 송전탑 막지 못하면
전기 주전자로 커피를 끓이면서
텔레비전 켜 놓고 낄낄대면서
냉장고 문 열고 과일을 꺼내면서도
몰랐습니다.
우리 이웃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전기 때문에, 송전탑 때문에
영하의 추위에 떨며
산에서 먹고 산에서 자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밀양땅 골짝골짝
765 송전탑 예순아홉 개나 서면
불 보듯 뻔한 전자파 위험 알면서도
내 집 앞으로 지나가지 않는다고
못 본 척했습니다.
바쁜 척했습니다.
새벽부터 밀고 들어오는
손자 같은 용역들
자식 같은 공사 인부들에게
70, 80 어른들 짓밟히고 욕을 먹고
지옥 같은 전쟁이 벌어지는 줄 모르고
이쯤에서 해결이 되었겟지
뒷짐만 지고 있었습니다.
손톱 발톱 다 닳도록
평생 일구어온 논밭이
늙은 몸뚱이 기댈 집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무슨 대책이 있겠지 하며
남의 일 보듯 했습니다.
이치우 어르신 소식 듣고서야
이미 엎질러진 기름인데
아이쿠나 큰일이구나 했습니다.
산에 움막을 짓기 전부터
2005년 얼렁뚱땅 주민 설명회 때부터
2007년 12월 도지사의 우편물 받을 때부터
큰일은 이미 터졌던 것입니다.
새파랗게 젊은 것들이
살 날이 창창한 것들이
먼산 보듯 할 때
시장이 국회의원이 관리들이
답을 찾지 못할 때
단장면, 산외면, 상동면, 부북면
70, 80 어르신들이
밀양을 지켰습니다.
765 송전탑 세워 놓고
어디가서
아름다운 밀양, 돌아오는 밀양
내세우겠습니까?
살기 좋은 밀양, 맑고 깨끗한 밀양
자랑하겠습니까?
765 송전탑 막지 못하면
먼저 가신 어르신의 원한은
어찌하겠습니까?
가족들 찢어지는 가슴은
또 어찌하겠습니까?
마을 어르신들의 새까맣게 타버린 속은
누가 달래겠습니까?
765 송전탑 막지 못하면
어디 가서
밀양에 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누구에게
밀양을 사랑한다고
다짐할 수 있겠습니까?
765 송전탑 막지 못하면.
* 대책위 출범식에서 낭송한 시
평밭 할매의 시
-밀양 부북면 평밭
문예지 겨울호 특집을 펴 봐도
문학상으로 빛나는 시를
소리 내어 읽어 봐도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는
시인의 시를 몇 번이나 뇌어도
동유럽을 여행한 원로 시인의 시를
읊어 봐도
시가 없다.
새벽밥 한 술 뜨는 둥 마는 둥
부리나케 산으로 달려가는
평밭 할매.
아름드리 서어나무 끌어안고
“미안하데이.”
“정말 미안하데이.”
중얼대며 떨고 섰다.
번득이는 톱날이 다가와
“할매, 다쳐도 책임 못 져요.”
위협하면
“그래 이놈아! 내 다리부터 끊어라.”
대거리한다.
나무와 몸을 맞대고
영하의 체온을 나누던
평밭 할매.
톱날이 점심 먹으러 간 사이
절룩이며 비닐 천막에 내려와
몸을 데우고 요기를 한다.
새로 지은 원자력 발전소
76만5천 볼트 고압 전기를
먼 도시로 보내기 위해
아파트 40층 높이
송전탑이 들어설 자리.
나무를 베어내고
산을 깎아 뭉갠다.
톱날이 몰려오는 소리
지싯골 할배도
도방동 할매도
뚝뚝 분질러지는 관절을 이어
허리 굽은 조선솔 끌어안는다.
굴참나무 앞을 막아선다.
화악산 너머
해가 꼴깍 넘어갈 때까지
평밭 할매는
서어나무 붙들고 몸을 비비며
시를 왼다.
“정신 차리레이.”
“정신 차리레이.”
“그래야 니도 살고
나도 산다.”
문예지를 아무리 뒤적여도
평밭 할매
나의 몸에 심은
그런 시는 없다.
이런 대통령 하나
이 땅에
무능한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어.
국민들 돈 벌게 해 주겠다고
다들 부자 만들어 주겠다고
큰소리치는 그런 대단한 대통령 말고
강을 파서 건설재벌에게 돈을 퍽퍽 안기는
그런 간 큰 대통령 말고.
저는 능력이 없어
국민 여러분들에게
특히나 부자들에게
세금을 줄여 줄 수도 없고
큰돈을 벌게 해 줄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대통령 말이야.
아이들 학비 때문에, 과외비 때문에
속 태우는 엄마들 마음이나 다독이는
몸 아프면 병원비가 더 걱정인
할아버지 아픈 허리나 헤아리는
그런 무능한 대통령 나왔으면 좋겠어.
공장에 나가는 아들이
정리해고의 벼랑에 서지 않고
농사짓는 아버지가
농약병을 입에 대지 않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
아들 일하는 공장에 가서
함께 크레인에 올라 보고
시골 마을 깻잎밭을 지나갈 때
막걸리나 맥주 한잔 하고 가는
그런 대통령 나왔으면 좋겠어.
이 나라 강과 산과 들이 보물인데
그 보물 파헤쳐 금덩일 찾고
그 산 깨트려 공장 세우고
그 보물 메워 공항 만들 순 없잖아요.
그런 돈 안 되는 대통령 말이야.
제대로 아는 게 없어서
‘제가 뭘 몰라서 그런데요.’ 하며
뭐든지 가서 물어보는
공장 일은 공장에 가서 묻고
농사일은 논밭에 가서 물어보는
그런 멍청한 대통령 하나
이 땅에 꼭 나왔으면 좋겠어.
내가 마음 둔 것들
-2010, 가을, 퇴로리
버스에서 내리면 맨 먼저 아는 체하고
택배라도 오는 날이면
손 흔들어 골목길 일러 주는
은행나무.
나보다 삼사십은 더 먹었을
마을 입구 도랑 가 은행나무.
거기 내 마음 점 찍어 둔 걸 어찌 알고
싹 도려내었을까.
그 자리
돌을 쌓고 시멘트 부었을까.
도랑 따라 골목으로 들어서면
아내와 오르내릴 때마다
우리 집에 데려가고 싶다고
불러 보던 모과나무.
주먹보다 큰 모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가
그냥 지나치면
도랑에다 제 마음 쿵 떨구어 버리던 모과나무.
나보다 한 열 살은 더 먹었을
내가 동무하자고 반말 비슷이 해도
군소리 없이 꽃과 잎을 함께 내밀던
모과나무.
발걸음 저절로 머물던 그 자리
어찌 알고
깨끗이 지워버렸을까.
허허로움 달래려 돛대산 올랐더니
새로 산책로 내고 정자를 세웠는데
그 아래 열일곱 아이들처럼 쑥쑥 자라
내 키 대여섯 배나 커버린 굴참나무,
햇살 아래 눈웃음 반짝이던 그 아이들
정자 아래 뒹굴고 있다.
앞을 가린다고
무참히 잘라 버렸다.
멍한 눈길
누르스름해지는 들판에 두는데
큰길 가 은행나무 가로수도
이가 다 빠졌다.
어찌 알고
내가 마음 둔 것들만 골라
이렇게 끝을 내고 마는가.
7월 아침
이노무 손아
텃밭에 못생긴 오이를 봐라
천방지축 나대는 고구마 순을 봐라
너 보다 낫다
마당 감나무 잎에 맺힌 이슬 봐라
뒷밭 산딸기 까만 눈을 봐라
어데 너 같은 놈이 있더노
도랑에 나가 엉머구리한테 물어봐라
세상천지에 이적지 눈꼽 달고 있는 건
너 하나뿐이다.
본포 다리를 건너다가
본포 다리를 건너다가
나는 멍청해졌네.
모래 먼지 자욱한
중동의 사막 한가운데
건설 공사 현장에 내가 서 있었네.
여기 있어야 할
아름다운 모래섬
사라지고 말았네.
"준설토 운반차량"
"낙동강살리기 17공구 공사현장"
큼지막한 이름표를 앞에 단
거대한 트럭 SCANIA가 줄지어 달리고 있었네.
나는 그 모래먼지 속에서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
도시를 세워 영화를 꿈꾸다
빚만 뒤집어 쓴 두바이를 떠올렸네.
본포 다리를 건너다가
나는 보고 말았네.
이름도 선명한 VOLVO 굴삭기들이
강 한가운데를 파내고 있었네.
수억의 세월 동안
강이 만들어낸
모래와 자갈이 만들어낸
쉼 없는 흐름이, 숨결이 만들어낸
역사를 지우고 있었네.
낙동강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둔
금덩이를 꼭 찾고야 말겠다는
찾아 제 주머니에 넣고야 말겠다는
미치광이 왕이 떠올랐네.
강을 살리기 위해
강의 심장을 파헤치는 현장을
본포 다리를 건너다가 보고야 말았네.
우리 곁에 펼쳐진 사막을
내 눈으로 보고야 말았네.
명함을 내밀 때' 전문
'마을 총무인 앞집 아저씨와
집 짓는 일 나가는 영한 씨가
우리 집에 와
신김치에 소주 한잔 하는데
이장님도 오셨다.
소주잔 쥐는 손마다 갈라터진
검은 빗살무늬가 가득하다
내 손만 빼고.
우리 동네서 찍은 영화 오구에
술 취한 사람으로 나온 게 이장님 맞느냐고 물었다.
그냥은 아무래도 안 돼서 한잔 취해 찍었는데
영화만 떴으면 농사도 치웠을 거라며 너스레를 놓는다
총무 아저씨가 건네는 잔 속에/찰랑찰랑 맑은 햇살 빗살져 넘친다
이장님 논흙 내음 묻은
장화 소리 저벅저벅 내게로 온다.
영한 씨 빗살무늬 속에도
톱밥에 실려온 솔향기 가득하다.
빗살무늬 자꾸만 내미는
그 검고 선명한 성자들의 명함을
대책없이 받아 챙기며
나는 술이 올랐다.
그 아이
내가 좋아한 아이들은
시내 인문계 고등학교에는 가지도 못하고
변두리 공고나 정보고로 떠났다.
간혹 도서실에서 함께 읽던 그림책을 볼 때면
잠시 그 아이들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젯밤 술 한잔 하려고 들어간
간이주점 투다리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벨이 울리면 달려가 주문을 받고
술과 안주를 나르고
테이블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그 아이.
복도에서 다른 아이들 놀림감이 되던 녀석
쉬는 시간 운동장 한켠에서 혼자 서성이던 아이
보육원에서 또래 사이에 대접 못 받는 아이
국어 부진반에 들어
함께 도서실에서 그림책 읽는 아이,
그 아이가 내 앞에 섰다.
시골 학교로 몰려난 그 아이가
우리가 변두리로 보내버린 그 아이가
제 살던 곳으로 돌아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다
내 앞에 서서
당당히 묻는다.
선생님, 뭘 좀 드실랍니까?
나는 뭘 먹기도 전에 그만
가슴이 먹먹하고
눈앞이 흐려졌다.
왼손
버스에서 내려 골목으로 들어서다 보니
가방이 왼손에 들려 있다.
미안해.
얼른 오른손에게 넘겨 준다.
저녁에 간식으로 고구마 삶았다.
냄비 바닥에 눌러붙은 고구마
수세미로 박- 박- 박- 문지른다.
아, 손목부터 어깨까지 뻣뻣해온다.
그러고 보니 또 왼손이다.
미안해.
얼른 오른손에게 수세미를 건넨다.
오른손이 무안한듯 냄비 바닥을 서너 번 문지르는가 했더니
어느새 수세미는 왼손에 있다.
무슨 마술 같다.
단 한 번도
악수를 받아 본 적이 없는 왼손
단 한 번도 도장을 찍어 본 적이 없는
단 한 번도 상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단 한 번도 중심이 되어 본 적이 없는
왼손.
오른손에 조명이 터지고 있는 동안
오른손이 명함을 돌리고 있는 동안
모두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동안
돈독이 올라 오른손에 지갑이 쥐어진 동안
밥솥에 뜸이 들고
보일러가 돌아가고
지하철이 움직이고
무가 자라고
김치가 익는다.
세상은 여전히
왼손이 아프다.
잘 있다
응, 잘 있다.
바쁜데 집에 오지 마라.
왔다갔다 차비 아껴
애들 과일이라도 사 먹여라.
에미는 잘 있으니 걱정 마라.
오냐, 내 새끼들!
그래 그래, 공부들 잘 하지?
할미는 건강하지.
방학 하거든 한번 오너라.
(집에 오지 마라.
강변 비닐하우스는
4대강인가 뭔 강인가 다 파디비고
십원짜리 하나 나올 데도 없는데
니 아부지는 술만 묵고 들누었다.
올 집도 없다.)
저 강은
저 강은
무슨 군사 작전 수행하듯
모래 먼지 일으키며
강으로 강으로 달리는 트럭들.
거기 미다스의 손 있어
닥치는 대로 퍼 담는 거대한 포크레인.
저 강은
산골의 조그만 샘에서 시작되었다지요.
샘물 쫄쫄쫄 흘러가자
하늘은 비를 내려 주고
땅과 바위와 돌배나무는
품고 있던 물을 나누었다지요.
바위 틈 소나무도 물가 왕버드나무도
제 몸의 일부를 내어 주었다지요.
샘물은 바위 벼랑을 타고
계곡을 미끄러져 내려
산 굽이 수 없이 돌고 돌아
시내가 되었다지요.
강으로 가는 먼먼 길에
칭얼대면
산이 돌아앉아 젖을 주었다지요.
그 힘으로
논들을 적셔 황금들판을 만들고
그 빛을 녹여
금모래를 씻었다지요.
그러니까 강은
수만 골짝의 샘물이,
나무와 바위와 흙덩이가,
돌멩이와 억새, 갈대와 모래가 만나
억조창생이 이룬 거대한 역사인 것이지요.
천지창조인 것이지요.
그러니
지금 포크레인으로 심장을 들어내는
저 강은
트럭에다 마구잡이로 실어내는
저 강은
누구의 것인지요?
모래밥
4대강 파는데 22조 원.
그 돈이면
초중고 아이들 7년간 무상급식이 가능한데.
내년 4대강 예산 8조 원.
교육예산은 줄었습니다.
굶는 아이들의 밥상에
모래밥이 오릅니다.
일제고사
눈먼 자가 권력을 쥐었다.
앞을 보지 못하니
온 나라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웠다.
나무를 키우던 아이도
줄을 섰다.
새를 기르던 아이도
옷감을 물들이던 아이도
자연의 음악을 연주하던 아이도
모두 그만두고
줄을 섰다.
그러자 세상이
일제히 말라 죽어갔다.
이렇게 달라집니다
-2009 희망 프로젝트 4대강 살리기
국토해양부가 만든 ‘4대강 살리기’ 홈페이지.
‘이렇게 달라집니다’
어떻게 달라지나 싶어 ‘한강’을 꾹 눌렀다.
‘사업 전 한강’과 ‘사업 후 한강’ 사진이 위 아래로 나란히 보인다. 완전히 다르다.
‘사업 전 한강(용교지구)’ 사진은 겨울이다. 강변에 누렇게 마른 억새와 덤불이 보이고 둑길엔 마른 풀과 자갈이 깔려 있다.
그 아래 ‘사업 후 한강(용교지구)’ 사진은 봄이다. 그새 봄이 와 삘기가 올라오고 무꽃 같은 게 한창 싱그런 사월이나 오월이다. 자갈이 깔려 있던 강둑길엔 시멘트가 덮였다.
‘목행지구’도 마찬가지다. ‘사업 전 한강’은 누렇다 못해 검은 빛이 도는 늦가을이나 겨울 사진이고, ‘사업 후 한강’은 강둑이 한껏 푸른 봄이다. 사업 전에 없던 시멘트 자국이 선명하다.
그러니까 희망 프로젝트란 게
겨울 강둑에 풀 마르고 칙칙할 때 공사를 시작해서
봄이 되어 풀빛 가득한 둑에 뽀얀 시멘트 자국을 남기는 일이구나.
내가 사는 낙동강은 어떻게 바뀌나.
‘사업 전 낙동강’ 사진은 오랜 세월 탈색이 된 듯 흐릿하다.
‘사업 후 낙동강’은 선명한 푸른 빛이다. 천지창조다.
자세히 보니 물살이 만들어낸 물거품이며 주차장에 세워둔 차량의 대수까지 둘 다 똑 같다.
사업 전 사진에 보이던 비닐하우스와 너른 들판이 사라지고, 공원과 콘크리트 구조물이 들어섰다.
강가 모래사장 몇 군데를 흔적도 없이 파먹었고, 도로에 시멘트가 허옇게 덮였다.
그러니까 강을 살린다는 게
강가에서 먹고사는 농사꾼들을 몰아내고, 공원을 만들고, 시멘트를 붓는 일이구나.
아니, 책상에 앉아 어둡고 흐릿한 사진에다 녹색성장 푸른 물감을 꾹꾹 눌러붙이는 황당한 일이구나.
수박끼리
수박이 왔어요 달고 맛있는 수박
김씨 아저씨 1톤 트럭 짐칸에 실린 수박
저들끼리 하는 말
형님아 밑에 있으이 무겁제, 미안하다. 괘안타, 그나저나 제값에 팔리야 될낀데. 내사 똥값에 팔리는 거 싫타. 내 벌건 속 알아주는 사람 있을끼다 그자. 그래도 형님아 헤어지마 보고 싶을끼다. 간지럽다 코 좀 고만 문대라. 그래 우리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다시 태어나는 기라.
털털거리며 저들끼리 얼굴을 부비는 수박들.
-이응인 시집 <따뜻한 곳>(내일을 여는 책, 1998)
빙곡 어른과 전화1
밀양 얼음골에서 흘러내리는 계곡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소설 쓰는 빙곡 어른과 수필 쓰는 회령 오 여사님이 살고 있습니다. 하루는 빙곡 어른이 퍽이나 심심했던지 회령 오선생님 댁에 건너가볼 모양으로 전화를 넣었는데, 갑작스레 무슨 장난기가 일었는지 시심이 동했는지 전화에다 대고 이렇게 시를 한 수 읊었답니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그러는데 그게 무슨 싯구절인지 뭔지 생각해 볼 틈도 없이 저쪽에서는 장난전환 줄 알고 “야이 미친놈아.”하고 응수해 오더랍니다. 다시 전화를 걸어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했더니 아까보다 더한 욕을 바가지로 퍼붓더랍니다.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으면서도 빙곡 어른은 재미있어 죽겠더래요.
빙곡 어른과 전화2
이노무 핸드폰으로 전화가 딱 왔어. 여보세요 하고 받으마 아무 말을 안해. 여보세요 한참 그러면 저쪽에서 죄송함다 저음으로 딱 한 마디 하고는 끊어. 좀 있다가 또 전화가 와서 받으면 아까처럼 그래. 성질 나나 안 나나. 좀 있으이 또 와. 이번에는 내가 아무 말 안 하고 있어 봤지. 저쪽에서도 아무 말을 안 하고 끊어. 인자 나도 방법이 있어. 핸드폰 울려서 그 번호가 뜨면 척 켜가지고 저만치 놔 두고는 볼 일 보는 거야. 지놈 전화요금 팍팍 오르라고 그냥 켜 두고 보는 거지 뭐.
* 햇수로 5년 지났다. 2004년 오월 어느 날이었는데, 선생님이 우스개삼아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킥킥대며 웃다가, 이럴 게 아니다 싶어 적어 두었다. 그러고는 또 마냥 잊어버렸는데, 오늘 낮에 아이들 시낭송대회에 적당한 시를 고른다고 파일을 뒤적이다가 이 메모를 찾았다. 읽어 보니 참, 빙곡 선생님답고 재미 있어 그대로 시가 될 듯해 옮겨 적었다.(오리나무,2008.10.6.)
커피를 기다리며
스무 해 동안
입에도 대지 않던 커피,
하루나 이틀에 한두 잔쯤
마신다.
이십대에
커피 속에 녹아 있는
희고 사악한 제국의 손을 보아버린 뒤
커피는 목구멍에 걸렸다.
케냐의 열한 살짜리 아이가
일당 오백 원을 받고 따낸 커피.
커피값의 0.5%만 우간다 농민의 손에 떨어져
허리를 휘게 만드는 커피.
이십년 뒤 어느 날
아름다운 커피 가게에서
고향 일가 아저씨 같은
히말라야의 구릿빛 손을 만났다.
거기에는 탈색한 백설탕 같은
제국의 흰 손이 없었다.
히말라야 해발 이천미터에서
커피나무를 키운
그 주름진 손이
내게 검은 커피를 건네 주었다.
무뚝뚝하고 따스했다.
오늘은 아름다운 커피 가게에 들러
네팔 굴미협동조합 커피를 부탁한다.
히말라야의 산골 마을에서
내게 오는 동안의 기다림을,
그 텁텁한 맛을
나는 즐거이 누릴 것이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언젠가 내게 그 산골 마을에 가는
호사가 주어진다면
두 그루 커피나무를 키운다는
아차야 씨네 식구들 만나
커피를 따낸 그 구릿빛 손에다
입을 맞출 참이다. (2007. 9. 8.)
대항리
버스가 아랫대항을 지날 때
부북초등 오학년인 명진이가
마른 나무토막을 포대에 담아
산에서 끌어내리는 게 보였다.
중절모 어른 둘을 내려주고
윗대항을 돌아나올 때
포대는 이미 리어카에 실려
명진이가 끌고 어머니가 뒤를 따른다.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호리호리한 명진이
우리집 작은애 말로는 개그맨이 꿈이라며
그렇게 동무들을 잘 웃긴다는데
일요일날 놀러오라고 하면
집안일 끝내야 된다며 못 오기도 하는 명진이
오늘은 퇴근길에 보니
연푸른 붓자국 덜 마른 얼룩덜룩한 산이
명진이가 끄는 리어카를 따라
마을로 들어가고 있다. (2007.5.8.)
터미널반점
세울이랑 자장면 먹으러 간
터미널 반점
치우지 않은 상 위에
빈 그릇 하나
소주 한 병
소주 한 병
거뜬히 비우고 일어서게 만든
저 검은 자장면이여.
여기요,
자장면 둘!
It Never Rains In Southern California
(1972) - Albert Hammo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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