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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더불어 살기

민물조개는 각시붕어의 ‘자궁’, 6개에 하나꼴 산란

by 이성근 2019. 5. 24.

민물조개는 각시붕어의 자궁’, 6개에 하나꼴 산란

아가미 틈에 최고 22개 산란, 한 달 뒤 헤엄쳐 나와

 

각시붕어 수컷이 민물조개를 영역으로 확보하고 다른 수컷의 접근을 견제하고 있다. 최승호,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작고 납작한 납자루 무리의 민물고기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번식한다. 번식기인 5월이 되면 화려한 혼인색으로 물든 수컷은 적당한 민물조개를 찾아 자기 영역으로 확보한다. 암컷은 자기 몸보다 긴 산란관을 내어 조개의 아가미 틈에 알을 낳는다. 수컷은 재빨리 조개가 물을 빨아들이는 관에 방정해 알을 수정시킨다.

 

조개 몸속에서 깨어난 물고기 유생은 배에 달린 노른자를 모두 흡수해 독립할 수 있을 만큼 자랐을 때 조개 밖으로 헤엄쳐 나온다. 가장 취약한 산란 뒤 약 한 달 동안을 안전한 조개껍데기 속에서 조개를 자궁처럼 이용하는 셈이다. 이런 번식전략을 펴는 납자루 아과 물고기는 세계에 약 40종 있지만, 동아시아가 분포의 중심지로 우리나라에는 14종이 산다.

 

산란관을 낸 각시붕어 암컷. 민물조개의 출수공을 통해 아가미 틈에 산란한다. 최희규 제공.

   

이처럼 기발한 번식전략을 펴지만, 납자루 아과 물고기 사이에서 조개 확보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더 크고 널찍한 조개를 차지하려는 신경전이 벌어지고, 어떤 종은 경쟁을 피해 아예 번식기를 가을로 옮기기도 했다. 유전학적 기법을 이용해 이런 납자루 아과 물고기의 번식행동을 정교하게 연구한 결과가 나왔다.

 

최희규 상지대 생명과학과 연구원 등은 한강 상류인 강원도 홍천 내촌 천과 덕치 천, 정선의 골지천과 조양강에 서식하는 묵납자루, 각시붕어, 줄납자루 등 3종의 납자루 아과 물고기가 작은말조개에 산란하는 양상을 연구했다.

 

4개 하천에서 모두 982개의 민물조개를 조사했는데, 이 가운데 16.6%163개에서 납자루 아과 물고기의 알이나 유생이 발견됐다. 작은말조개 6개에 1개꼴로 물고기의 산란장으로 쓰인 셈이다. 연구대상 하천의 조개 서식밀도는 19마리로 다양했다.

 

작은말조개 속에 납자루 아과 물고기들이 산란한 알들 모습. 최희규 제공.

 

자연 상태의 작은말조개 모습. 최희규 제공.

 

예상대로 물고기들은 상대적으로 큰 민물조개를 산란장으로 선호했다. 함께 서식하는 납자루 무리가 많을수록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교신저자인 이혁제 상지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조개가 클수록 물고기 알과 유생의 생존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크고 건강한 조개에는 물고기들이 앞다퉈 산란하려 한다. 조개 하나에 낳은 알의 수는 각시붕어 평균 9, 묵납자루 3, 줄납자루는 23개로 나타났다. 각시붕어는 조개 하나에 최대 22개의 알을 낳기도 했다. 묵납자루와 줄납자루가 같은 조개에 알을 낳은 사례도 4건이었다. 이 교수는 묵납자루와 줄납자루가 여러 조개에 분산해 산란하는 반면 각시붕어는 선택한 소수의 조개에 집중적으로 산란하는 전략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짙은 혼인색으로 물든 번식기의 묵납자루 수컷의 모습.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는 물고기이다. 최희규 제공.

 

아가미 틈에 물고기가 알을 낳는 민물조개는 무슨 이득을 볼까. 이제까지 정설은 조개가 산란기에 접근하는 물고기한테 자신의 유생을 아가미나 지느러미에 붙여 널리 퍼뜨리는 효과를 거두기 때문에 공생관계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를 기생 관계로 봐야 한다는 가설이 제기됐다. 이 교수는 조개가 납자루 아과 물고기의 알을 배출하려는 행동을 보이고 납자루 아과보다 다른 물고기에 조개 유생이 더 많이 부착된 것이 그런 주장의 근거라며 조개가 얻는 분산 이득이 미미하고, 조개 아가미에 물고기 알이 많아지면 물순환이 막혀 호흡에 지장을 받기 때문에 물고기가 조개에 기생한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물조개의 서식밀도를 조사하는 연구진. 최희규 제공.

 

납자루 아과 어류는 번식을 민물조개에 전적으로 의지하는데, 수질오염과 하천개수로 조개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 번식장소를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묵납자루, 한강납줄개, 임실납자루, 큰줄납자루 등 4종이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돼 있다.

이제까지 납자루 아과의 번식행동을 연구하려면 민물조개에 낳은 알의 형태를 현미경으로 관찰해 어떤 종의 물고기 알인지 구분했다. 그러나 물고기 알은 같은 종이라도 조개의 크기와 산란 시기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고 발생단계에 따라서도 다르기 때문에 동정이 쉽지 않았다.

 

산란기의 줄납자루 수컷. 최희규 제공.

 

이번 연구에서 연구진은 지난해 개발한 묵납자루, 각시붕어, 줄납자루 등 3종의 분자 마커를 이용해 조개 속 알을 정확하게 동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한국환경생태학회지최근호에 실렸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최희규·이혁제, 납자루 아과(Pisces: Acheilognathinae) 담수어류 3종의 숙주 조개(작은말조개; Unio douglasiae sinuolatus) 크기에 대한 산란 양상, 한국환경생태학회지 33(2): 202-215, 2019, https://doi.org/10.13047/KJEE.2019.33.2.20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다윈 역설의 해답, 난쟁이 망둥어에게 있었다

저서 은신 어류’, 빨리 자라고 일찍 잡아먹혀 산호초에 연료공급

 

지구에서 가장 작은 해양 척추동물의 하나인 난쟁이 망둥어가 산호초 위에 앉아 있다. 이들 작은 물고기가 산호초 생태계를 지탱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테인 싱크레어-테일러 제공.

 

찰스 다윈은 약 200년 전 영양분 결핍 상태인 대양의 산호초가 수많은 물고기로 북적이는 이유를 궁금해했다. 산호초는 세계 어류의 3분의 1이 고향이고 수백만 명이 그곳 물고기를 잡아 살아가지만, 육지의 영양분이 거의 미치지 못하는 바다 사막에 위치한다. 그가 처음 제기한 이 문제를 다윈 역설라고 부른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이 역설을 풀기 위해 산호초 자체의 형태나 해면 등 무척추동물에서 해법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산호초 생태계에 연료를 공급하는 주인공이 척추동물로 눈에 잘 띄지 않는 수많은 작은 물고기라는 주장이 나왔다.

 

흔히 산호초 하면 이런 포식 어류가 가득한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들을 먹여 살리는 소형 은신 어류가 종의 절반을 차지하고 먹이의 60% 가까이 제공한다. 테인 싱크레어-테일러 제공.

 

사이먼 브랜들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대 박사 등 국제 연구진은 24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바다 밑바닥에 숨어 사는 엄청난 수의 물고기가 급속한 성장과 극단적 사망률로 산호 물고기 먹이의 60% 가까이 댄다고 밝혔다. 그는 이 조그맣고 거들떠보지 않던 물고기들이 실제로는 산호 물고기 공동체의 초석이라는 사실이 놀랍다고 스미스소니언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기존 연구결과와 현장 자료, 개체군 모델링 등을 통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이 주목한 작은 물고기는 산호 바닥에 서식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다 자라도 5미만인 물고기로 망둥어, 베도라치, 열동가리돔 등 17개 과에 속한다.

연구자들은 해양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작은 이들을 저서 은신 어류라고 불렀는데, 현재까지 2800종 이상이 발견됐으며 해마다 30종씩 새로운 종이 보고되고 있다. 산호에 서식하는 물고기 종의 절반 가까이가 이들 소형 어류이다.

 

은신처에서 상체를 내밀어 주변을 살피는 대보초 베도라치. 테인 싱크레어-테일러 제공.

 

놀랍게도 이들은 개체수가 많은 데다 빨리 자라 순식간에 잡아먹히는 특징이 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마치 곤충과 같은 속성이다. 예를 들어 난쟁이 망둥이의 수명은 두 달 정도로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짧은 편이다.

 

브랜들은 사실상 산호의 작은 물고기 대부분은 출현한 첫 몇 주 사이에 모두 잡아먹힌다라고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그는 이들 물고기는 마치 사탕을 한 알 먹으면 바로 새 사탕이 보충되는 사탕 봉지 같다산호에서 소비되는 물고기의 거의 60%를 공급하는 컨베이어 벨트 구실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포식자는 산호의 일반적인 물고기를 비롯해 새우, , 연체동물 등 다양하다.

 

다 자라도 2가 안 되는 붉은 눈 망둥어가 산호 위에 앉아 있다. 보호색으로 산호의 화려한 색을 채용한 종이다. 테인 싱크레어-테일러 제공.

 

태어나자 대부분이 곧 잡아먹히면서 어떻게 개체군이 유지될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소형 물고기들의 높은 번식률과 새끼의 뛰어난 생존능력이 비결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연중 번식하는데, 난쟁이 망둥어는 한 해에 7번까지 알을 낳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산호 물고기가 해류에 알을 흘려보내 번식 성공률이 미미하지만, 이들은 산호 근처에 머물며 어미가 극진하게 돌보는 경우가 많아 새끼의 생존율도 높다.

 

공동 연구자인 캐럴 볼드윈 스미스소니언 국립 자연사박물관 학예사는 알에서 깬 저서 은신 어류의 유생이 산호 주변 유생 집단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면서, 먹이로 소모되는 소형 물고기의 새로운 세대를 끊임없이 공급한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이를 생산 즉시 소비되는 숨겨진 생산성이라고 논문에 적었다.

 

푸른 배 베도라치가 구멍에 숨은 채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가슴의 화려한 위장 색이 눈길을 끈다. 테인 싱크레어-테일러 제공.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imon J. Brandl et al, Demographic dynamics of the smallest marine vertebrates fuel coral-reef ecosystem functioning, Science

10.1126/science.aav3384 (201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