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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칼럼 기고

뭉개구름 피는 뜻은

by 이성근 2013. 6. 17.

 

환경산책-뭉개구름 피는 뜻은

 

모처럼 뭉개구름을 보았다. 반가웠다. 새삼스러운 아련함마저 들었다.  유년의 고향 마을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매미울음 소리가 해 저물도록 쩌렁쩌렁 메아리쳤고 아이들은 그늘을 찾아 하릴없이 하늘을 보거나 먼 산을 보곤 했다. 그럴 때면 항시 뭉개구름이 뭉개뭉개 피어 오르고 있었고 그 구름들은 갖가지 상상력을 자극시켜 가슴을 부풀게 했다. 거기에 하루 한번 빨간 띠를 두른 듯한 완행버스가 먼지를 일으키고 지나갈 때면 우리들은 곧장 도시로 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곤 했다. 그 충동은 항상 뭉개구름이 부추겼다.

 

그런데 이제 그 뭉개구름을 보기가 힘들어 졌다. 열대우림을 비롯하여 지구상 곳곳의 삼림이 난폭하게 벗겨지면서 공기 중의 습기형성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대신 보기 흉한 줄무늬 구름만 많아지고 있다.  나무가 없어지고 숲이 사라지고 그 간간인 산이 허물어져 내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래서 길을 가다 이 도시에서 매미소리라도 들을라치면 그게 신기하기 까지한 것이다. 뭔가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경제제일주의와 성장의 환상 속에 살고 있다. 지지체실시 이후에는 더욱 이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일찍이 아프리카의 스위스로 불린 르완다는 녹색의 삼림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나라였지만 이제 그 비율은 7%에도 못 미치고 있다.  소말리아에서는 삼림소실과 과잉방목으로 인하여 지난 20년 동안의 짧은 시기에 전 국토가 사막으로 변하였다.  기아와 혼란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는 이디오피아에서는 인구와 가축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지난 30년간 전체 삼림의 90%가 사라졌다.  금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울창한 삼림의 나라였던 아이티는 불과 0.8%의 삼림 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생태계 붕괴는 세계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하여 숲을 베어내고 산지를 허무는 것이 개발과 성장의 이름으로 미화되는 한 우리의 미래 또한 예외일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식물생태학자들은 향후 30년 안에 이땅에서도 무수화(無樹化)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따라서 사막화는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사라져 가는 뭉개구름은 그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1996. 8.9 부산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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