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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칼럼 기고

다시 저무는 여름에

by 이성근 2013. 6. 17.

 

환경산책- 다시 저무는 여름에  

 

  

지겹도록 무더운 여름이었다. 많은 도시인들이 산과 바다를 찾아 떠났다. 그 행열은 가히 탈출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해수욕장과 산간 계곡을 향하는 차량 행열이 끝없이 줄을 이었다. 사람들은 계곡마다 스며들었고 고기 굽는 연기가 자욱했다.

해수욕장도 예외일 수 없었다. 온갖 쓰레기가 널 부러진 백사장에 일광욕 기름, 그 단내가 진동했다. 사람들은 벌거벗은 몸으로 오로지 먹고 마시고 버림으로써 폭염에 항거하는 듯 했다.

 

왜 왔을까.  실로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 삶의 터전인 도시가 그렇게 살기 좋은 곳이었다면 무엇 하러 돈들이고 시간 소비하며 벗어나고자 했을까. 늘 접할 수 있는 휴식공간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하여 산과 바다, 계곡을 찾아 떠났던 그들이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비로소 가슴 트이는 살만하다, 머물고 싶다는 것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 살만함을 불러 일어 키는 아늑함과 편안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건강한 자연 덕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건강하다는 것은 자연생태가 제대로 순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순환은 생명 있는 모든 것을 더불어 건강하게 한다.

 

지금 그 질서를 우리는 교란하다 못해 깨고 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숲을 지키고 산을 살리기보다 분재와 화초 가꾸기에 열중한다. 오염된 강을 살리기보다 이른 새벽 물통을 들고 산으로 향한다. 터널을 지날 때면 차창을 꼭 닫으면서도 자동차로 인한 대기오염은 외면하고 있다.

 

그리하여 숲은 사라지고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산자락과 해안을 대신할 때도 그 숲의 노래를 실어 나르던 맑은 물 대신에 우리들의 이기와 무관심이 오수와 섞여 흐를 때, 그것을 고스란히 보고 자라는 다음 세대의 심성이며 정서는 어떻게 될까. 두렵고도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흔히 입버릇처럼 백년대계를 운운하며 2세들의 교육에 온갖 정성을 부여한다. 부질없는 짓이다. 산과 강, 바다가 죽어 자연의 정기가 사러져 버린 터에 무엇이 올바르게 되겠는가.  옛말에 쑥밭에 삼은 쑥처럼 자라고 삼밭에 쑥은 삼대처럼 자란다고 했다.

 

청소년들의 비행과 폭력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들을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 오늘의 우리 환경이 뒤틀려 있기 때문이다. 환경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이며 내일의문제가 아니라 오늘 당장의 문제인 것이다. 

 

 1996.8.23 부산매일신문

 

먼산- 법능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