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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칼럼 기고

선암사에서

by 이성근 2013. 6. 17.

 

환경산책-선암사에서

 

부산의 대표적 산 하나가 또 위기에 처했다. 대동여지도에 의해 선암산이라 불렸던 백양산이 대규모 고층아파트 단지 건설계획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식물학자들은 이 지역의 식생조사가 금정산 보다 힘들다고 한다. 산이 가파르고 골이 많아서이다.  접근이 어려운 만큼 숲의 보전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아름들이 적송들이 사찰 주위를 에워싸고 있을 뿐 아니라 경관 또한 뛰어난 곳이다.  그래서 원효대사 이후 조선말 경허선사의 수제자 혜월스님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수행도량으로 또 지역민에게는 정서적 위안처로의 기능을 담당해 왔다. 어찌 이뿐이었을까

 

이 산이 지난 92년 건설교통부의 택지개발 예정지로 고시된 이후 부산시의 허가에 의해 1천3백년 고찰인 선암사까지 존폐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단견이 아닐 수 없다. 무모하고도 허망한 일이다. 그것이 앞뒤 없이 일방적이고도 폭력적일 때는 참을 수 없는 분노마저 치솟는다.

 

도대체 미분양 아파트가 양산되고 있는 지금 왜 이런 일들이, 또 누구를 위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지난주 선암사에서는 부산의 자연환경을 수호하기 위한 포럼이 열렸다. 포럼이 진행되는 온 밤을 소쩍새가 울었다. 계곡의 개구리떼와 매미가 울음을 더했다.  참가자들은 한동안 그 울음에 귀를 열어 놓고 있었다.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누가 이 소리를 지우고자 하는 것일까.

 

21세기를 앞두고 세계는 환경의 질적 향상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하고 18세기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누적된 환경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각국 도시들은 보다 친환경적인 도시 만들기를 위해 경쟁적이기까지 하다.

 

삶의 질에 대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이제야 터득했기 때문일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들이 경험하고 폐기했던 부정적인 면을 기어코 답습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오로지 성장과 개발만이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굳게 믿고 있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일찍이 원효스님은 원융회통(圓融會通)이라 했다. 상호의존적인 연관구조속에 균형이 깨어져 어느 하나가 쇠퇴하고 다른 하나가 특화되면 부분마저도 존립이 위태롭게 되어 전체 생명의 죽음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지방의 산 하나가 또 절단 날 지경에 이르렀다. 그 말씀 깊이 헤아려 따져 볼 일이다.    

 

 1996.8.16 부산매일신문


If You Go Away / Dusty Springfie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