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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칼럼 기고

물금을 지나며

by 이성근 2013. 6. 17.

 

환경산책-물금을 지나며

 

1908년 육당 최남선은 부산으로 오는 길에 기차가 왜관에 이르자 장탄식을 했다. 15년 뒤 춘원 역시 그 기차를 타고 오다 동일한 아픔을 토로했다. 일제에 의해 무차별적인 산림의 남벌로 인해 토사가 유출된 강의 황폐화 때문이었다. 그리고 ‘강(江)’이란 시(詩)로서 국토와 민중의 수난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동시적이며 하나임을 말하려 했다. 

 

그 낙동강의 수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30년간 강변되어 온 성장과 개발이데올로기 때문이었다. 댐과 하구둑에 의해 흐름이 차단되었고 공단은 무분별하게 들어섰다. 회유성 어족을 비롯한 수많은 담수어종이 사라지면서 생태계는 파괴되기 시작했고 수질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그리하여 1996년 오늘 낙동강의 수질은 법적 취수 한계인 6ppm을 넘어선지 오래다. 학계와 시민단체, 시민들이 이구동성으로 대책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당국은 묵묵부답이거나 동문서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녹조만 해도 그렇다. 연례화 되고 있을 뿐 아니라 더욱 독성이강력해지고 광역화 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계절적 요인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과 수질관리의 기본원칙이 지켜지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된 인위적 재앙이자 미래에 대한 경고인 것이다.

 

이러한 경고는 늘 무시되고 있다. 물속에 중금속이 들어있든, 녹조가 발생하든 어찌되건 간에 물만 많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위천공단을 비롯한 상수원 상류에 공단이 들어섬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음인지도 모른다. 다분히 70년대식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물문제가 발생하면 요란스레 어디에다 무엇을 얼마나 들여 만들겠다며 할 일 다한 것처럼 행세해 왔다.

 

이제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근본적으로 강을 살리겠다는 정책의 변화 없이는 ‘녹색환경의 나라건설’이라는 정부의 호언은 마치 쿠테타와 학살로 정권을 찬탈한 모리배들이 ‘정의사회구현’이라고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예부터 일러 치산치수(治山治水)는 정치 제일의 덕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폐산폐수로 인해 온 국토가 신음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인 5개 분야 ‘위험인지도’ 설문조사에 의하면 국민 대다수가 ‘먹는 물 오염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이땅에서 물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또 얼마나 절실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 절실함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1996.8.30 부산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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