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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문명의 운명 -금융자본주의인가 산업자본주의인가

by 이성근 2023. 9. 17.

문명의 운명 -금융자본주의인가 산업자본주의인가 |저자마이클 허드슨   출판아카넷  2023.08

 

Michael Hudson

고전학파 계보를 잇는 경제학자로서 대출, 모기지, 이자, 대외부채 등 부채 관련 연구에 집중해왔다. 경제학 교과서에 없는 답을 찾기 위해 수십 년간 월스트리트에서 직접 일해온 현장 경험과 서양 경제사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바탕으로 현실에 대응하는 경제 이론을 펼친다. 특히 경제적 지대는 가치 없는 가격이라는, 따라서 경제적으로 필수적인 생산 비용이 없는 소득이라는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개념을 되살려 2008년 미국 내 악성 주택담보대출 위기와 금융 붕괴를 경고하고, 그 여파로 부채 인플레이션이 오는 금융 과잉 현상을 예측해 주목받았다.

 

시카고대학교와 뉴욕대학교를 졸업하고 체이스맨해튼은행에서 국제수지 경영학자로 근무했다. 뉴스쿨 오브 소셜 리서치의 경제학 조교수로 있었으며, 각종 정부 기관 및 비정부 기관에서 경제 컨설턴트로 일했다. 현재 미국 미주리-캔자스시티대학교 경제학 명예 교수, 레비경제연구소 바트칼리지 연구원이며, 역사 잡지 래팜스 쿼털리Lapham’s Quarterly의 편집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버드대학교의 피바디 고고학·민족학 박물관과 공동으로 청동기 시대의 근동의 경제사를 창안했고, 지난 5000년에 걸쳐 정치적·사회적 배경 속에서 발생한 여러 경제의 변화를 추적하는 장기경제동향연구소의 설립자이며, 지금은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중국 우한 화중과학기술대학교의 명예교수이며 베이징대학교 마르크스연구소의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블로그 네이키드 캐피털리즘Naked Capitalism’, 온라인 잡지 카운터펀치Counterpunch의 정기 기고자이며, 주간 경제 및 금융 뉴스 팟캐스트인 LEFT OUT에서 허드슨 보고서코너를 운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금본위제 폐지가 어떻게 미국의 해외 군비 지출 능력을 오히려 강화시켰는지 처음으로 설명한 슈퍼 제국주의, 미국 제국의 경제 전략Super Imperialism: The Economic Strategy of American Empire, 국제 무역 이론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무역, 개발, 외채Trade, Development and Foreign Debt, 금융에 기생하는 이들과 부채 속박이 세계 경제를 파괴하는 현상을 고발하는 숙주를 죽이다Killing the Host등이 있다.

 

그의 대표작 문명의 운명은 민주주의 정치가 결국 어떻게 임금생활자 전체의 이익이 아닌 지대 수취자 계급에 합류하려는 중간계급의 이익을 조장하는지 설명한다. 과두집단은 중간계급의 열망에 편승해 지대 수취자의 부동산 소득과 금융 소득에 과세하거나 이를 제한하려는 정책에 반대하면서 자신들의 경제력을 이용해 사회민주당과 노동당을 정치적 동맹자로 끌어들인다. 그 결과, 경제 계획과 조세 정책은 정부의 손을 떠나 월스트리트와 런던 등의 금융 중심지로 이전 및 집중되고, 다른 나라들을 미국 등 서구의 경제적 위성국가로 전락시킨다.

 

인류는 현재 두 가지 갈림길에 놓여 있다. 1퍼센트 부자들만을 위한 금융자본주의의 길을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99퍼센트 시민들의 삶 향상을 위한 산업자본주의로 나아갈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에 따라 인류의 경제적 삶의 미래는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 글로벌 경제를 진단하고 향후 전망에 대해 논의한 저자의 강연을 도서화한 것이다. 중국 전구대학교全球大學校의 요청으로 시작된 10회 강연은 첫 회부터 19만 명이 시청했으며, 회당 평균 3만 명이 시청했다.

 

 

목차

머리말_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금융의 작동 원리

서문_부와 경제는 어디로 가는가

 

PART 01_경제적 양극화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01_왜 억만장자는 끊임없이 등장하는데 낙수효과는 없는가

02_지대 추구와 지대 수취자의 세금 회피를 조장하는 금융자본주의

03_금융자본의 민주주의적 제국주의

04_경제적 지대, 가치 없는 가격

05_지대의 금융화와 부채 디플레이션

06_보호무역,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

07_식량과 석유, 광업, 천연자원의 지대

 

PART 02_지대 수취자의 반혁명

08_그들은 어떻게 정치를 사회주의로부터 멀어지게 했나

09_금융 엘리트들이 만든 왜곡된 역사와 경제학

10_달러 헤게모니, ‘종이 금을 만드는 특권

11_화폐와 토지를 공공재 취급하는 나라를 겨냥한 전쟁

 

PART 03_대안은 있다

12_가치와 지대, 의제자본의 고전적 개념 부활

13_과두집단을 제어할 만큼 강한 정부와의 전쟁

 

옮긴이의 말_문명의 미래를 결정할 새로운 대결

주석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부채는 상환될 수 없고, 상환되지 않을 것이다

상환될 수 없는 부채라면 말소되어야 한다

 

마이클 허드슨은 지난 반백 년간 가장 혁신적인 경제사가이자 가장 중요한 경제사가(데이비드 그레이버,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의 공동조직자)”, “현대 자본주의의 강점과 약점을 해박하고 정확하고 설득력 있게 분석한 인물(스티브 킨, 경제학자, 웨스턴시드니대학교 교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유일한 경제학자(폴 크레이그 로버츠, 전 미국 재무부 차관)” 등의 평가를 받는 세계적인 경제학자다. 특히 2006년에 이미 2008년 미국 내 악성 주택담보 대출 위기를 예견했을 뿐 아니라, 이 사태가 미국 주식시장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며 그 여파로 부채 인플레이션을 남기는, 이른바 금융 과잉 현상을 경고한 소수의 경제학자로 주목받았다.

허드슨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교재에서 비롯된 대학 교수들의 세계관과 달리 그는 직접 현장에서 쌓아올린 경험을 토대로 이론을 정립했기 때문이다. 현실 경제에 대한 답이 경제학 교과서에 없음을 깨닫고 직접 월스트리트로 뛰어들어 금융 경제의 원리를 체감하고 이해했다. 세이빙스뱅크트러스트에서 3년간 통계분석가로, 체이스맨해튼은행에서 다년간 국제수지 전문가로 일한 덕분에 은행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체득했다. 이러한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과 전 세계 지대를 추구하는 금융화한 현대 경제의 작동을 꿰뚫어보았다. 또한 화폐와 회계의 기원뿐 아니라 노동의 기원과 노동의 대가가 지불되는 방식, 토지 보유와 과세의 기원, 부채의 기원과 역사를 탐구해 이론도 폭넓게 정립했다. 그 분석의 결과는 한마디로 정리된다. “부채는 상환될 수 없고, 상환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상환될 수 없는 부채라면 말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동산도, 학자금 대출도, 개인 신용도 부채가 기본값인 세상에서 이를 말소시키면 경제가 붕괴되지 않을까? 언뜻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이 주장에 대해 허드슨은 이 책에서 경제적 붕괴를 초래하지 않고도 부채를 말소시킬 방법이 있다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그의 주장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가 2006년 도래할 금융위기를 경고했음에도 이를 간과해 길고 긴 침체기를 겪었듯이, 세계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상위 1퍼센트의 금융 약탈에서 벗어나

올바른 경제적 삶으로 나아갈 유일한 방법

 

국내총생산GDP과 국민총소득GNI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어째서 내 주머니는 자꾸만 얄팍해지는가? 빚을 져서 빚을 갚게 만드는, ‘부채의 늪에 빠진 오늘날 세상은 과연 경제적으로 안전한가? 부채를 떠안지 않으면 내 집 마련을 할 수 없는 부동산 현실, 취직하자마자 빚에 시달리게 만드는 학자금 융자, ‘내일의 나에 의존하며 긁어대는 신용카드, 빚을 져서 빚을 갚게 만드는 은행 등. 약탈적 금융이 난무하는 오늘날 세상에서는 누구도 경제적으로 안전할 수 없다. 심화되는 불평등과 경기 침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불로소득 계급의 부 획득 방식을 알아야만 한다. 그들은 어떻게 부자가 되었나? 왜 금융자산과 부동산은 국민총소득보다 훨씬 더 빨리 증가하는가?

사회는 노력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 책은 이 명제가 사실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노동으로 얻는 수익보다 불로소득(이자, 부동산 임대료, 주식 배당금 등)으로 얻는 수익이 더 큰 세계에서는 결국 소수의 부유층들에게 모든 부가 빨려 들어가게 작동되어 있다. 우리는 이것이 과연 정의로운지 질문해야만 한다.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을 직시하고, 소수의 계급이 부를 독점하는 세계를 깨부수어 경제적 양극화를 막아야 한다는 허드슨의 주장은 모두가 부자 되기를 바라는 세상에 낯설지만 꼭 필요한 조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제 경제를 반영하는 진짜 경제 이론이다!

 

오늘날 대학의 교과 과정이 실제 경제를 반영하지 않는, ‘의도적인 왜곡도 큰 문제다. 저자는 오늘날 주류 경제 이론이 영국과 미국의 성공 경로와, 어떻게 중국이 지난 40년간 많은 서구 산업을 추월하는 데 성공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또 미국 등 서구 내 불평등과 경기 침체가 점차 심화되는 진짜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미국은 보호무역주의 정책(국가자본주의, 산업사회주의)으로 성장했으나 그 성공 비법을 타국에 알려주지 않는다. 미국은 공공 투자와 공공 서비스에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생산성과 생활수준을 향상시켰음에도 서구 경제학에서는 이 방식이 시장을 왜곡한다는 이유로 실수라고 가르친다. 이로써 실제 무역과 투자가 이루어지는 과정과 대학에서 가르치는 경제학 이론 사이에 거대한 간극이 생겼다. 지금 대학의 교육 과정 속 경제학 이론으로는 국영 기업이 생산의 3분의 1을 담당하는 중국 경제가 번영하는 이유를 해석할 방법이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구를 양극화와 내핍으로 괴롭히는 문제들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설명해주는 경제 이론이다. 이 책은 대학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실제 경제가 움직이는 현상을 보여준다. 경기 침체는 미국과 서구를 대표하는 금융자본주의의 주된 작동 원리다. 이 책의 목적은 오늘날 금융화한 지대 추구 경제의 공통분모를 살피고, 양극화를 초래하는 금융의 작동 원리가 어떻게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위협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미국 경제가 대체로 노동과 산업의 부채 디플레이션이 두드러진 만성적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데 반해 중국은 왜 그토록 번영하는지 설명해줄 것이다.

 

99퍼센트를 위한 경제인가, 1퍼센트를 위한 돈인가

문명의 갈림길 앞에서 인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책은 오늘날 글로벌 경제를 진단하고 향후 전망에 대해 논의한 저자의 강연을 도서화한 것이다. 중국 전구대학교全球大學校의 요청으로 시작된 10회 강연은 첫 회부터 19만 명이 시청했으며, 회당 평균 3만 명이 시청하는 등 많은 이의 호응을 받았다. 그가 중국에서 제안한 이 강의를 수락한 까닭은, 고전적인 산업 정책을 추구하는 중국식 혼합 경제 체제가 미국의 신자유주의 병폐를 가장 성공적으로 피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허드슨은 미중 갈등이 단순히 두 산업국가가 시장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으로만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서로 다른 정치-경제 체제 간의 더 폭넓은 싸움이다. 오늘날 신냉전의 본질은 미국이 때로 폭력이 동반된 적극적인 외교 정책으로 타국에 부채와 무역 의존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중국의 사례에 주목하고, 어떻게 미국의 이데올로기적, 외교적 압력의 먹이가 되지 않을지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이 과거의 경제적 동력을 상실한 현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책에서 허드슨은 소수의 지대 수취자 계급이 서구의 경제 통제권을 장악하고, 빚에 시달리는 노동자와 고비용에 허덕이는 산업으로부터 소득을 빼앗아감으로써 새로운 실세가 되었다고 말한다. 미국의 병폐는 금융화한 독점 자본주의 체제에서 지대 수취자 계급이 경제적 지대를 가져간 탓에 산업 생산 비용에 거품이 생기면서 초래된 결과다. 금융화한 체제는 서구 경제를 양극화함으로써 몰락을 재촉하고 있다.

허드슨은 세계적 부채 디플레이션과 신냉전 제국주의를 피하기 위한 대안으로 탈달러화탈사영화(탈민영화)’를 제시한다. 바로 세습 지주 계급과 약탈적인 고리대금으로부터 경제를 해방하려던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역사적 과제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는 19세기에 마르크스와 다른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분석한 산업자본주의가 어떻게 부채와 지대 수취에 입각한 금융자본주의로 변했는지 설명한다.

인류는 현재 두 가지 갈림길에 놓여 있다. 1퍼센트의 부자들만을 위한 금융자본주의의 길을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99퍼센트 시민들의 삶 향상을 위한 산업자본주의로 나아갈 것인가. 인류의 문명이 파멸이라는 운명을 모면하려면, 인류가 미래를 잃지 않으려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분명하다.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금융의 작동 원리에 관하여

 

1장에서는 지대 추구 세력으로부터 경제를 해방한다는 19세기 산업자본주의의 목표가 실현되지 못하고 금융자본주의가 대신 출현한 과정을 설명한다.

2장은 금융자본주의가 고전경제학과 자유시장 개념을 뒷받침하는 도덕철학을 어떻게 뒤집었는지 살핀다. 그 결과 주류 경제 이데올로기는 금융자본의 경제적, 정치적 지배를 종식시키기는커녕 지대 수취자를 보호하고 있다.

3장은 이러한 반혁명이 어떻게 국제화하여 세계적 금융 과두지배 체제를 확립했는지 추적한다. 전 지구를 부채와 무역 의존에 빠뜨리는 것이 그 집단의 목표다.

4장은 불로소득이자 특혜의 결과라는 고전적인 경제적 지대 개념을 고찰한다.

5장은 봉건제 소멸 이후 유럽을 지배한 지주귀족이 어떻게 오늘날 금융 과두집단으로 변신했는지 설명한다. 그들의 소득과 부의 토대는 여전히 지대다. 지대를 낳는 자산은 이자를 납부해야 하는 부채로 유지된다. 결과적으로 지대는 끝없는 이자 지불로 바뀌었다.

6장은 이러한 동력을 국제적인 배경 속에서 살핀다. 자유무역은 정부의 자국 산업 보호와 노동자의 지위 및 복지 향상에 반대한다.

7장은 정부가 사회적, 환경적 파괴로부터 경제를 보호하지 못하게 방해하려는 최악의 시도를 설명한다.

8장은 안정을 해치고 양극화를 초래하는 이 경제적 동력이 어떻게 정치화했는지 검토한다. 개혁 입법을 단행하려는 민주주의 정치가 경제 민주주의 창출을 방해하는 정당 정치의 반대에 부딪친 과정을 기술한다.

9장은 지대 수취자 집단이 민주주의 체제에서 어떻게 정부를 장악하여 통제력을 공고히 했는지 설명한다.

10장은 미국이 외교 정책으로 다른 나라들의 중앙은행에 예치된 자금을 미국 재무부에 융자하게 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그로써 미국은 국제수지 적자와 재정 적자의 주된 원인인 해외 주둔 군대의 비용을 마련한다.

11장은 미국 신자유주의자들의 조언이 어떻게 구소련의 탈산업화를 초래했는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공기업과 공익사업을 지대를 낳는 금융수단으로 바꿔놓았는지 고찰한다.

12장은 고전적인 가치 개념과 지대 개념을 검토한다.

13장은 금융화한 경제, 사영화한 경제가 왜 경제 성장과 대다수 주민의 번영과 양립할 수 없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산업자본주의의 경제 계획과 사회주의로 갈 것 같았던 그 발전 방향을, 1980년대 이후에 나타나 추진력을 얻어 상위 1퍼센트가 경제 성장의 과실을 독점하게 하고 나머지의 상위 5퍼센트가 치어리더이자 봉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소소한 기회를 부여받는 금융자본주의와 대비시킨다.

 

 

책 속으로

미국의 외교 정책은 신자유주의적인 지대 수취자의 계획을 세계 전역으로 확산시키며, 그곳에서 얻은 이익은 주로 월스트리트와 런던, 프랑크푸르트, 파리 증권거래소, 기타 금융 중심지로 돌아간다. 그러한 정책이 오늘날의 세계적 균열의 핵심에 있다. 그로 인한 금융화와 부채 디플레이션은 양극화를 초래하며, 그 자체로 산업적 번영의 확산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_머리말.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금융의 작동 원리, 5~6

 

달러 본위제와 그 배후의 금융자본주의 동력을 거부하려면 경제적 지대의 사유화와 약탈적 금융을 피할 수 있는 대안적 경제를 조직해야 한다. 근로소득(임금과 이윤)과 불로소득(경제적 지대) 사이의 차이점 인식이 출발점이 될 것이다. 또한 금융자본주의가 어떻게 산업자본주의를 지배했는지도 알아야 한다. 미국의 금융자본주의는 전 세계로 뻗어나가려 한다. 금융화한 미국 경제가 이끄는 오늘날의 신냉전은 지대 수취자 기반의 금융자본주의를 전 세계에 강요하려는 싸움이다. 그러려면 미국은 외국의 경제 개혁을 막아야 한다.

_서문. 부와 경제는 어디로 가는가, 19

 

국민소득통계와 경제 이론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면 많은 서구의 금융화한 경제가 고통받는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억만장자들이 끊임없이 배출되는데도 왜 더 많은 사람은 내핍 생활을 해야 하는가? 왜 소득은 낙수효과를 내지 못하고 경제 피라미드의 최상층으로 빨려 들어가는가? 현실을 반영하는 경제 이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왜 많은 사람이 대체로 더 부유해지지 않고 더 가난해지는지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줄 것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역전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교과 과정이 오늘날의 가장 큰 특징을 다루지 않는 데 있다. 경제적 지대라는 개념을 외부요인이라며 배제한 것이 가장 나쁘다. 앞서 언급했지만 경제적 지대는 정치적, 법률적 특혜에서, 공적 규제와 과세의 해체에서 생기는 불로소득이다.

_01. 왜 억만장자는 끊임없이 등장하는데 낙수효과는 없는가, 35~36

 

산업자본주의의 독특한 특징은 임금노동자를 고용하여 생산한 상품을 이윤을 남기고 판매하는 것이다. 금융자본은 노동자뿐 아니라 산업과 정부도 착취한다. 우선 이자를 청구해서, 그리고 독점 지대와 천연자원 지대를 통해 간접적으로, 또 부동산 임대료와 사영화한 기간시설의 사용료를 올려서, 뒤이어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의 부동산과 기타 재산을 채권자에게 이전하고 빚진 정부들의 재산을 (종종 외국의) 채권 보유자들에게 이전하여 착취한다. 마르크스와 그와 동시대를 살아간 대다수의 사람들은 산업자본주의가 평화적으로든 다른 방식으로든 사회주의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융자본주의의 목적은 바로 이를 피하는 것이다. 금융자본주의는 주된 착취의 원천이 지대 추구임을 알아냈다. 토지와 천연자원에서 지대를 뽑아냈을 뿐 아니라 차츰 공적 기간시설의 투자를 사영화하고 새로운 독점을 창출하여 지대를 추출했다. 그로써 경제에 높은 비용을 떠넘겼다. 이 때문에 산업가들은 지대와 부채에 덜 얽매인 경제의 경쟁자들보다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할 수 없다. 중국 같은 혼합경제는 민주주의적 공공 부문이 강하지 못한 나라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_02. 지대 추구와 지대 수취자의 세금 회피를 조장하는 금융자본주의, 75

 

미국의 정책은 라틴아메리카와 여타 대륙의 토지와 천연자원, 기간시설의 소유권을 빼앗는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토지 개혁을 방해했고, 기본적인 기간시설을 사영화하는 대신 계속 공적 영역에 남겨두려는 현지의 시도는 물론 농업의 자급자족에도 반대했다. 미국에게 힘이란 타국의 정치에 관여하여 금융과 무역, 군사 부문에서 자신들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막을 특권을 의미한다. 그 결과는 일종의 세계화, 다시 말해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있다면 어떤 나라든 그 공업과 농업의 자급자족과 성장을 방해하여 굴복시키려는 세계화다.

_03. 금융자본의 민주주의적 제국주의, 103

 

부는 중독성이 있으며 탐욕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만족할 줄 모르고 타자에게 손해를 끼친다. 금융자본주의는 강박적으로 마지막 한 푼까지 수익을 추구하기에 한계를 모른다. 천연자원과 기간 시설 독점사업을 사영화로 탈취한 자들은 자신들의 지대 추구가 사회적으로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생산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지대는 노동자의 소득을 빨아들이며 산업의 이윤도 빨아들인다. 이는 궁극적으로 로마가 속주의 자산을 약탈하고 그 주민들을 노예로 삼아 경제의 암흑기만 남겼을 때처럼 파괴적이다. 오늘날 그리스부터 라트비아까지, 미국의 러스트 벨트부터 텍사스까지 부채를 떠안은 가난한 사람들은 굶주림과 질병, 금융상의 걱정거리 때문에 조기에 사망하는데, 이들은 그것이 전부 자기 책임이라는 말을 듣는다. 워싱턴 합의가 뒷받침한 금융화한 사영화 경제의 희생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_03. 금융자본의 민주주의적 제국주의, 106

 

서구의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주류 경제 이론은 중국의 성공을 설명할 수 없을뿐더러 미국의 산업 실패도 설명할 수 없다. 서구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맹점을 피하려면 폭넓은 시각의 접근법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지대, 은행의 신용과 화폐 창출, 보건, 교육, 기타 기본적 서비스의 사영화를 경제가 부유해지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사영화의 결과는 공기업을 구매할 대출시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공기업이 사영화하자마자 소비자는 독점 지대를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기본적 서비스를 받으려면 부채를 질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급등하는 주택 가격과 학자금 융자 때문에 사람들은 소득의 큰 몫을 대출금 상환에 써야 하고, 자동차 할부금과 신용카드 사용액이 추가로 소득을 빼내간다. 이렇게 개인의 소득에서 채권자들과 그들과 연합한 금융 부문에 지불되는 액수는 점점 더 커진다.

_04. 경제적 지대, 가치 없는 가격, 114

 

금융 붕괴가 불가피한데도, 금융자본에 돌아가는 수익은 산업의 이윤율보다 높다. 재산을 모으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산업과 부동산, 임금생활자, 정부에 부채를 떠안겨 이자와 기타 금융 비용, 상여금으로 경제적 잉여를 빨아들이고 산업 회사의 경영을 금융화하여 그 주식과 채권의 가격을 부풀리는 것이다. 유권자는 빚을 져서 자본소득을 추구하는 것이 부자가 되는 길임을, 신용으로 부동산과 기타 자산을 구입하는 것이 가장 쉽게 자본소득을 얻는 길임을 믿으라고 부추겨진다. 자산 가격이 이자율보다 빠른 속도로 상승하는 한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이 과정이 조만간 금융 순환의 폰지 사기 국면에 접어든다는 데 있다.

_05. 지대의 금융화와 부채 디플레이션, 157~158

 

18세기 영국 중상주의 정책과 19세기 말 고전파 정치경제학과 미국 보호무역주의 정책의 본질은 교육과 식품, 생활수준에 대한 공적 투자로써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독점 착취는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었다. 국가자본주의라고, 나아가 산업사회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정책은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의 학생들은 이에 관해 배우지 않는다. 주류 무역 이론은 영국과 미국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중국이 지난 40년간 어떻게 많은 서구 산업을 추월하는 데 성공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교재에 제시된 모델들은 공공 투자와 공공 서비스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생산성과 생활수준의 향상이 목적일지라도 시장을 왜곡하기 때문에 실수라고 가르친다.

_06. 보호무역,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 179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는 전 세계적 균열은 금융화한 미국과 문명의 가장 기본적인 조직 원리 간의 싸움이 되고 있다. 역사상 성공한 사회는 전부 혼합경제였다. 법치라면 모름지기 법을 집행할 권한을 지닌 정부를 필요로 한다. 어떤 사회든 생존하고 번영하려면 사적 이익 추구를 장기적인 공적 목적에 종속시켜야 한다. 미국의 외교는 그러한 원리에 맞서 싸우고 있다. 금융화한 탈산업경제가 붕괴를 모면하기 위해 해외 지대 추출과 달러 외교에 점점 더 크게 의존하면서 그 싸움은 더욱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 지구의 모습은 탄광과 구리 광산이 분화구처럼 변하고 지표면의 식생과 표토가 소실되면서 거의 달의 경관처럼 바뀔 운명에 처했다. 이제 법을 제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것은 선거로 구성한 정부가 아니라 군벌 같은 기업들이다. 정부는 그것에 부속된 행정기구가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사회주의와 야만 사이의 투쟁이다.

_07. 식량과 석유, 광업, 천연자원의 지대, 244

 

모든 소득을 다 생산적으로 벌어들인 것이라는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의 국민소득생산계정을 만들어낸 지대 수취자에게 우호적인 경제학의 창설 신화다. 불로소득으로서의 경제적 지대 개념을 무시한다면 착취를 측정할 방법이 사라진다. 따라서 고전경제학이 옹호한 개혁의 필요성도 사라진다. 금융 부문과 지대 수취자가 생산에 관여한다는 주장은 기본적인 생산 기술과 융합된다. 클라크와 그를 뒤이은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에게, ‘시장은 이미 존재하는 현재 상태다. 부와 재산권의 분포는 아무리 불공정해도 경제적 본질의 일부로 당연시된다. 수입을 가져오는 자산은 그것이 비록 지대 수취자의 특권일지라도 자본으로 여겨진다.

_08. 그들은 어떻게 정치를 사회주의로부터 멀어지게 했나, 272

 

미국은 타국에게 자신들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주장하지만, 미국 외교관들은 자신들이 예외적 국가로서 타국의 정책을 좌우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선거로 합법적으로 선출된 자라도 미국의 신냉전 목적에 보탬이 되지 않는 정치적, 경제적 정책을 옹호하는 지도자는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어떤 무역협정에서든 순이익을 거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예외적이다(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주 당당하게 밝혔다). 이러한 단극적 세계 지배의 요구는 공정과 균형이라는 전통적인 규범을 거부하며, 더욱 다극적인 세계 경제를 원하는 반발을 자극했다.

_10. 달러 헤게모니, ‘종이 금을 만드는 특권, 327~328

 

국민경제는 일견 영원할 듯한 이러한 경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키 큰 양귀비를 전부 잘라내 모두 동등하게 하라고 조언하는 자는 거의 없다. 누구나 생산적인 경제적 역할로써 부를 획득할 수 있는 시장 구조를 만들어 지대 추구를 통한 타인의 착취를 피하고 공동체 전체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혁신가들이 필수적인 생산비, 즉 노동자와 기계, 물자에 들어가는 비용(비용 가격)을 토대로 이윤을 내는 것이 고전경제학의 이상이다. 금융상의 대출이나 압류로써, 또는 지주제나 채권자와 독점의 권력으로써 기본적인 가치를 초과하는 가격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다.

_11. 화폐와 토지를 공공재 취급하는 나라를 겨냥한 전쟁, 361

 

 

과두집단은 어떻게 사회를 약탈하는가?

신자유주의와 미국의 일방적 외교정책에 대해 비판해 온 저명한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의 책 <문명의 운명>(마이클 허드슨 지음 조행복 옮김, 아카넷 펴냄)이 한국어로 출간되었다. 재무부차관 출신 논객 폴 크레이그 로버츠는 허드슨을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수많은 담론이 국소적 정당성만을 주장하며 각축하는 공론장에서 허드슨의 책은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과 관련해 많은 영감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이 백가쟁명의 담론장에서 교상판석을 위한 지침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하면서 책을 읽었다.

 

허드슨의 주장은 단순하다. 현재의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이며 소수 지대수취자계급만을 위한 건강하지 못한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그는 나름의 건강성을 가졌던 산업자본주의의 역사를 다시 살피자고 말한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특징인 금융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알던 자본주의가 아니다. 금융자본주의는 실물과 유리된 파이어부문(금융 finance, 보험 insurance, 부동산 real estate)을 이용해 지대수취자들이 개인과 기업의 소득을 편취하는 새로운 유형의 자본주의다. 즉 지대수취자들만을 위해 작동하는 자본주의란 의미다. 금융자본주의는 새로운 현상이지만 지대수취자는 자본주의 초기부터 존재해왔다. 자본주의는 지주계급이란 전통적 착취계급으로부터 해방됨으로써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런 해방의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이 리카도를 위시한 고전경제학자들이었다. 리카도는 영국이 경쟁국들보다 낮은 가격에 상품을 판매해서 세계적 산업강국이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1820년을 전후해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식량가격이었다. 낮은 식량가격은 노동자의 낮은 생계비지출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산업경쟁력이 되었다. 산업가들은 식량을 수입하려했고 지주계급은 높은 곡물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곡물법을 요구했다. 곡물법 폐지는 20여 년이나 지체되었다. 떠들썩했던 곡물법 논쟁은 경제학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허드슨의 설명이다.

 

"프랑스 중농주의자들, 애덤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마르크스와 그 추종자들은 세습 지주와 채권자, 독점자가 지대를 부과하고 상응하는 생산비가 없는 가격을 강요하는 지대수취자의 특권으로부터, 즉 봉건제의 유산으로부터 사회를 해방하는 것이 산업자본주의의 역사적 역할이라고 보았다. 18세기와 19세기에 산업자본주의의 옹호자들이 주도한 세제개혁운동에서 탄생한 고전경제학의 원리는 지대수취와 면세의 상속권에 기생하는 유럽 귀족의 특권을 폐지하려 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었다. 노동가치론은 지대와 독점가격, 이자, 기타 수수료에는 실질적인 비용가격이나 생산적 사업활동이 따르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대수입 대신 생산활동에 기반한 산업화를 옹호하는 지식인들의 투쟁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곡물법 폐지 이후 이들은 국가보조금을 이용해 저비용의 보건, 교육, 교통통신 등의 기간시설에 대한 공적 투자를 주장했다. 공적 투자를 통해 다양한 서비스가 낮은 비용으로 제공되면 국민의 생활수준개선과 함께 낮은 생계비용으로 산업생산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영국 보수당과 미국 공화당이 이런 흐름을 주도했다. 공중보건법, 식량약물판매법, 교육법이 잇따라 제정되었다. 국민을 위한 서비스의 공적제공은 산업자가들에게도 이익이었다. 1차세계대전까지 이어진 이 흐름은 국가 경제활동에서 특권과 지대수취로부터 경제를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이윽고 반전상황을 맞게된다.

 

중간계급이 급성장하는 노동계급에 등을 돌린 것이다. 1차세계대전을 계기로 밀어닥친 국수적 민족주의의 물결이 노동자들을 휘감았다. 허드슨의 말이다.

 

"중간계급은 대부분 재산권과 부에 대한 사회주의적 위협을 두려워했기에 노동자와 공동의 목표를 세우기를 주저했고, 급진적 개혁을 위협이자 침해로 보았다."

 

이런 추세를 가속화한 것은 19세기말 오스트리아학파의 경제학이었다. 이들은 국가의 계획과 규제에 반대했고 지주계급의 권력을 제한하고자 했던 정부를 공격했다. 이들의 생각은 이후 국가권력을 개인적 자유의 반정립으로 악마화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 발전했다. 이들의 이론적 공세는 거침없었다. 이들은 정부의 생산적 역할을 부정했다. 제임스 M 뷰캐넌의 '공공선택이론'이 하나의 예시가 될 것이다. 공공선택이론은 정치인, 고위관료들도 개개인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허드슨은 이 이론이 가지는 함의에 대해 몹시 분노한다.

 

"정부 관료들이 행하는 것, 즉 정부 관료들이 민간부문에 손해를 끼치며 권력과 부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지대 추구의 의미를 바꾼 것이다."

 

정부의 정책결정자 역시 이익집단에 불과하다란 주장으로부터 정부의 역할은 제한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이들은 또한 모든 소득은 생산적 활동의 산출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지대' 개념 자체를 삭제하고자 한다. 이런 흐름을 대표하는 경제학자 존 베이츠 클라크는 책 <부의 분배>에서 모든 소득은 수취자가 생산기여분에 비례하여 번 것이라 주장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지대수취자계급의 지대는 정당한 소득이 된다. 주류경제학에서는 금융부문의 지대가 생산활동으로 분류돼 GDP에 포함된다. 그래서 지대가 증가하는 것뿐임에도 경제성장이 일어나고 있다는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경제가 성장하는데 서민은 가난해지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개혁과 반개혁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80년대 레이건, 대처가 대표하는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완전히 기울게 된다. 공적 서비스를 민간에 옮김으로써 신자유주의는 미국 시민의 실질구매력을 하락시켰다. 실질구매력이 줄어드니 부채를 발생시켜 가공의 구매력을 만들어낸다. 부채로 간신히 유지되는 경제는 결국 부채디플레이션을 촉발한다. 부채는 주로 부동산에 집중된다. 허드슨의 정책 아이디어는 결국 하나다. 부동산에 과세해 이것을 서민의 복지에 활용하는 것이다. 이재명의 기본소득 아이디어와 흡사하다. 부채의 압력 때문에 여타 물품에 소비할 여력이 줄어든다. 소비가 없으니 생산활동도 부진해진다. 제조업의 공동화로 미국 산업의 국제경쟁력은 더욱 하강한다. 남은 것은 달러패권뿐이었다. 금태환폐지 이후에도 무역흑자국은 달러를 처리하기 위해 미국의 채권을 살수 밖에 없었다. 막대한 해외 생산품을 공짜로 구매하기 위해 미국은 달러를 마구 찍어냈다. 달러패권 유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산업국가로서의 경쟁력약화를 상쇄하고 달러패권의 달콤함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군사적 개입주의를 더욱 강화하게 된다. 1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군사비는 외국에 넘기는 종이로부터 나온다.

 

미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 것일까? 마키아벨리가 힌트를 준다. 마키아벨리는 전쟁 승자가 패배국가를 통치하는 방법에 대해 한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그의 아이디어는 "자신들의 법에 따라 살게하면서 조공을 받고 우호적인 과두지배체제를 세우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종속국가(vassal)에 외세의존적인 지대수취자계급을 권력자로 만드는 일이다. 종속국의 지대수취자계급과 미국 금융자본은 이해를 같이 한다. 국내의 천연자원, 기간시설을 미국 금융자본에게 내어주고 한몫을 챙긴다. 친서방적이고 반공산주의적인 푸틴이 악마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정확히 옐친이 외국 금융자본에 내어놓은 먹이감을 푸틴이 거두어들이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공적 자원을 강탈한 올리가르히의 일원이자 러시아 최대 부호였던 미하일 호도르콥스키가 자신의 석유회사 유코스를 엑슨에 매각하려던 시도를 푸틴이 막아낸다. 푸틴은 이후 독재자 타이틀을 달게 된다. 집단서방 이외 지역에서 독재자 칭호는 대체로 외국 금융자본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려는 민족주의적, 민중주의적 열망을 가진 지도자들에 부여된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 더불어 이란과 베네수엘라에 대해 집요하게 적의를 품고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갈등은 단순한 국가 간 무역경쟁보다 더 심하다. 화폐와 신용, 토지, 천연자원, 독점사업이 사영화(옮긴이는 민영화를 사영화로 번역-필자주)되어 지대수취자 과두집단의 수중에 집중될 것인지 아니면 전체적인 번영과 성장의 촉진에 쓰일 것인지가 근저에 놓인 문제다. 이는 기본적으로 경제체제로서의 금융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간의 싸움이다."

 

허드슨은 인간 사회가 과두지배체제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그는 과두체제를 극복하고 민중주의체제를 성취하기란 어렵다고 본다. 이것은 5천년간의 중근동 역사, 유럽사를 부채의 측면에서 일관한 연구의 결론이다. 얼마전 출간된 <고대의 붕괴>(the collapse of antiquity-한국 번역본 미출간)가 그 연구의 성과물이다. 허드슨에 따르면 지난 수천년 문명사에서 고대가 오히려 친민중적이었다. 저자의 설명이다.

 

"기원전 3000년 수메르부터 기원전 1000년대 신아시리아 제국과 신바빌로니아 제국, 이집트 제국까지 통치자들은 원상회복선언(clean slates)으로 부채를 말소하고 채무노예를 해방하고 채권자에게 땅을 빼앗긴 채무자들에게 자급할 수 있도록 토지를 돌려주어 주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를 거치면서 서양문명은 이런 근동의 민중주의 정신을 상실하고 과두지배체제로 굳어졌다. 민중파 지도자들은 '참주'라는 오명을 쓰고 제거되었다. 개혁을 강력히 진행하면 '왕이 되려한다'는 의심을 받고 암살되었다. 개혁 지도자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는 42퍼센트의 고리대를 받던 인물이었다. 이 사건은 미국의 정치학자 마이클 파렌티의 책 <카이사르의 죽음>(마이클 파렌티 지음, 이종인 옮김, 무우수 펴냄)이 자세히 다루고 있다. 로마의 창설자 그라쿠스형제조차도 마찬가지 운명이었다.

 

20세기 후반이 되자 미국민 99퍼센트가 채무자가 된다. 주거비, 의료비 등 최소생활비만으로 가구소득의 70퍼센트가 빠져나간다. 금융부문의 불로소득이 정당한 소득으로 취급되기에 통계상으로는 호황이다. 미국금융과두집단은 국내만이 아니라 외부를 향해서도 덫을 설치한다. 달러헤게모니다. 미국의 핵심 목표는 금융지대수취자 과두세력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체제를 세계에 확산시키는 것이다. 산업선진국에 종이에 불과한 달러를 넘기고 그 돈을 이용해 글로벌사우스를 채무자로 만든다. 미국은 빌린 돈으로 채권자가 되어 글로벌사우스의 자원과 부를 착취한다. 이것을 거부하는 개혁적 민중파 지도자는 독재자가 되어 제거대상이 된다. 신자유주의가 세계적 흐름이 되었지만 중국은 동참하지 않았다. 중국의 성공은 중국이 실천한 혼합경제 덕분이었다. 글로벌사우스 국가가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순혈자본주의도 순정사회주의도 아닌 중국식 혼합경제를 따라가야 한다. 국가가 금융을 위시한 공적 서비스부문을 확실히 틀어쥐면서 시장의 역동성을 결합하는 혼합경제만이 성공할 수 있다.

 

허드슨의 책은 금융자본 과두집단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탁월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을 따라서 실천 로드맵을 그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고백인 듯한 글을 덧붙인다.

 

"민주적 혁명으로 출발한 경제개혁 운동은 서구에서 실패했다. (중략)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서구는 민주적 개혁을 되살려 과거의 진보적 경로로 되돌아갈 수 있는가? 아니면 그 최종적인 개혁에는 혁명이 필요한가? 혁명은 확실히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서구 경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저자는 일국만의 급진적 사회개혁이 성공할 가능성을 극히 낮게 본다. 한 국가만의 급진적 구조개혁이 불가능하다면 결국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세계적 수준에서의 미국 주도 신자유주의의 퇴조뿐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누가 뭐라고 해도 중국과 러시아다.

 

사회개혁을 위해서는 개혁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권력을 새롭게 이해하는 일이다. 허드슨의 말이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금융화한 과두지배체제로 변질되는 경향에 그다지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다. 그러한 운명을 피하려면 유산 금융계급에 장악되지 않는 강력한 중앙권력이 필요하다. 역사를 통해 보건대 그러한 권력은 청동기 시대 근동의 왕궁지배자나 오늘날의 사회주의 경제에서만 출현했다" "바빌로니아와 비잔티움 제국의 통치자들이나 20세기 사회주의 정부처럼 강력한 통치 세력만이 금융집단과 기타 지대수취자집단을 억제할 수 있었다" 조선이 몰락하게 된 원인의 하나인 세도정치도 왕권이란 절대권력의 형해화에 기인한 바가 크다. 강력한 권력중앙이 없으면 필연적으로 지대수취 과두집단이 권력을 탈취한다. 철학자 김용옥의 "왕정이냐 민주냐"는 그런 의미에서 권력의 역사를 잘못 집었다. 경제학자 허드슨만이 아니라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도 책 <정치질서의 기원>(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함규진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서 비슷한 논리를 전개했다.

 

"인정(人情)에 치우쳐 자기 가족과 친지들에게 특혜를 주려하는 성향(그것을 '가산제 patrimonialism'라고 한다)은 그런 성향을 억누르는 강력한 인센티브가 없는 한 계속해서 불거져 나온다."

 

공적 관계가 중요해지는 국가 성립 이후에도 후쿠야마는 공적 영역을 사유화하려는 친족 가산그룹 또는 가산그룹보다 좀 더 넓은 외연인 부족집단의 등장을 '재가산제화', '재부족화'라며 국가 붕괴의 핵심요인이라고 말한다. 허드슨이 말하는 과두집단은 후쿠야마의 가산집단과 흡사하다. 한국처럼 언론, 정치, 경제계가 혼맥으로 얽혀있는 경우는 재부족화를 더욱 악화시킨다.

 

필자가 사이토 고헤이의 책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서평에서 철학자 한병철의 권력론을 거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는 서평에서 이렇게 적었다.

 

"한병철은 <권력이란 무엇인가>(한병철 지음 김남시 옮김, 문학과 지성사 펴냄)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는 권력의 시대로부터 급속하게 멀어지고 있다. 권력은 단 하나의 목소리에 절대적 타당성을 부여할 때 가장 빛난다' 필자는 탈성장 코뮤니즘이 설렁설렁 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환경재앙, 자본주의의 위기가 맞물려 미증유의 혼란이 도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시스템을 포함한 상부구조 전체의 변화가 필요하다. 상부구조 개혁에 있어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 권력의 개념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권력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지 않으면 외세종속적인 지대수취자계급을 넘어서기란 불가능하다는 허드슨의 생각에 필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중국, 러시아는 금융과두집단이 주도하는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집단서방 주류언론(MSM)의 프로파간다가 웬만한 지식인조차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문제에 있어서 스콧 리터, 더글러스 맥그리거 등 독립적인 군사전문가들을 찾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중국이 집단서방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소프트파워라는 일상의 매력만이 아닌 이념적 매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결국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이념을 제시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자신들의 부족함에 대해서는 중국 지식인들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중국연구자 백지운의 논문 <일대일로와 제국의 정치학>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들은(윈톄쥔, 황더싱-중국의 저명한 학자들 필자주) '일대일로'가 내세운 '평화발전' 슬로건에 영혼이 없다고 질책하면서, 이 기획의 성패는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에 도전할 문화적·사상적 힘을 담은 자생적 사회정의 담론을 창출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격변의 시대에 대한민국은 곤고하다. 이념의 단층선 최전선에 대한민국은 위치한다. 집단서방의 온전한 일원이 되지도 못하고 글로벌사우스에 주체적으로 동참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위태로워진다. 그 위태로움은 조만간 실존적 차원에서 전개될 것이다. 이 책은 사회주의 성향의 독자에게는 임노동과 자본의 갈등이 빠져있기에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자유주의성향의 독자에게는 혼합경제에 대한 찬사와 중국에 대한 편애가 마음 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극우화가 진행되는 전세계적 정치환경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혼합경제가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진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부동산 과세와 기본소득을 생각하는 정치집단에게는 필독의 책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책을 덮는다.

김창훈 칼럼니스트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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