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 도쿄의 거리에서 - 1923년 간토대지진 대량학살의 잔향 | 카이로스 총서 37
가토 나오키 (지은이),서울리다리티 (옮긴이) 갈무리 2015-09-01
원제 : 九月, 東京の路上で (2013년)
가토 나오키 (加藤直樹)
1967년 도쿄 도 출생. 호세이(法政) 대학을 중퇴하고 출판사에서 근무하였다. 현재 프리랜서 작가이며 가시마 주이치(鹿島拾市)라는 필명으로 『사회신보』를 비롯하여 여러 매체에 글을 썼다. 쑨원과 연대하여 신해혁명에서 세계혁명을 꿈 꾼 ‘미야자키 도텐’, 1950년대 도쿄 빈민 생활협동조합 운동 <개미의 모임>에 대한 기록문학을 쓴 ‘마쓰이 도로’, 조선인 여성비행사 ‘박경원’ 등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글을 썼다. 『9월, 도쿄의 거리에서』(갈무리, 2015)는 그의 첫 저서이다.
90여 년 전, 간토대지진 직후인 1923년 9월의 도쿄 거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수천 명의 조선인을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평범한' 일본인들이 살해하였다. 이 책은 그 순간을 수많은 민족들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 도쿄의 기억으로 되살려 내며 그 사건을 얼굴을 가진 사람들의 현장으로 재현한다.
프리랜서 작가이자 활동가인 가토 나오키가 관동대지진으로부터 90년을 맞이하는 2013년에, 학살이 일어났던 현장을 답사하며 찍은 사진과 당시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관련 증언이나 기록을 바탕으로 엮은 책이다. 저자는 관동대지진이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의 테두리를 만드는 인종주의(민족주의)와 직결되어 있으며 이는 미래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90년 전의 그 길을 찾아가는 것은 당시 다양한 사람들이 경험한 현실을 '느끼고' 지금까지도 울리고 있는 학살의 메아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기도 하다.
목차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8
머리말 : 신오쿠보의 거리에서 11
연표 20
이 책에 나오는 사건의 현장 지도 26
1장 1923년 9월, 대량학살의 거리에서 29
1923년 9월 1일 토요일 오전 11시 58분 간토 지방
매그니튜드 7.9 30
1923년 9월 2일 일요일 새벽 시나가와 경찰서 앞
“조선인을 죽여라!” 36
1923년 9월 2일 일요일 오전 5시 아라카와·구 요쓰기바시 다리 부근 : 마치 장작더미처럼 41
1923년 9월 2일 일요일 낮 가구라자카시타
가구라자카, 한낮의 흉행 45
1923년 9월 2일 일요일 오후 경시청
경찰이 유언비어를 믿을 때 49
1923년 9월 2일 일요일 오후 2시 가메이도 역 부근
소요의 거리 55
1923년 9월 2일 일요일 오후 8시 지토세 가라스야마
모밀잣밤나무는 누구를 위한 걸까 59
1923년 9월 구 요쓰기바시 다리 부근
“아무것도 안 했어”라며 울고 있었다 66
1923년 9월 3일 월요일 오전 우에노 공원
줏대 없이 떠다니는 소시민 70
1923년 9월 3일 월요일 오후 3시 히가시오지마
중국인은 왜 살해당했을까 75
1923년 9월 3일 월요일 오후 4시 에이다이바시 다리 부근
애매함 속에 매장된 것은 …… 83
1923년 9월 4일 화요일 오전 2시 게이세이 선 아라카와 철교 위
몸에 남은 무수한 상처 88
1923년 9월 4일 화요일 아침 가메이도 경찰서
경찰서 안에서 92
1923년 9월 구 요쓰기바시 다리 부근
병사가 기관총으로 죽였다 97
2장 1923년 9월, 지방으로 확산되는 악몽 102
1923년 9월 간토 북부 지방
유언비어는 기차를 타고 103
1923년 9월 4일 화요일 밤 구마가야
‘만세’ 소리와 함께 108
1923년 9월 5일 수요일 4시 반 구 라칸지 부근
제물이 된 16명 116
1923년 9월 6일 목요일 오전 2시 요리이 경찰분서
어느 이웃의 죽음 122
1923년 9월 고엔지
고엔지의 ‘반달 할아버지’ 129
1923년 9월 9일 일요일 오전 이케부쿠로
저기 조선인이 간다! 133
1923년 9월 기헤이바시 다리
무사시노 숲 속에서 137
1923년 9월 12일 수요일 새벽 사카사이바시
왕희천, 칠십 년 동안의 ‘행방불명’ 144
3장 그 9월을 살아 낸 사람들 153
너무나 심한 광경이었다 154
논픽션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의 아버지가 살아 낸 인생
“선인들 머리통만 뒹굴고 있었습니다” 161
아이들이 본 조선인 학살
조선인으로 오인 받은 일본인 169
“센다 코레야”를 낳은 사건
75년 후 발굴된 유골 175
나라시노 수용소에서 살해된 사람들
“저 조선인들에게는 손가락 하나 못 댄다” 180
이웃을 지킨 마을 사람들
“화석이 되어라, 이 흉한 해골아!” 189
아키타 우자쿠의 ‘쓸쓸함’
“그대들은 누구를 죽였다고 믿는가” 196
오리구치 시노부가 본 일본인의 다른 면모
“하물며 살육을 기뻐하다니” 200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반어법
어느 ‘무소속 인간’의 분노 207
반골적인 제국 의회 의원 다부치 도요키치
조감도 I
학살은 왜 일어난 것인가? 214
조감도II
도대체 몇 명이 살해되었는가? 221
4장 90년 후의 ‘9월’ 226
추도하는 사람들 227
‘요쓰기바시’ 다리 옆에 세워진 비
증오하는 사람들 236
되살아나는 말, ‘조선인을 죽여라!’
2005년, 뉴올리언스의 거리에서 245
도쿄는 지금도, 90년 전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253
이시하라의 ‘삼국인’(三國人) 발언과 엘리트 패닉
‘비인간’화에 저항하다 260
지은이 후기 266
참고문헌 일람 269
간토대지진 조선인·중국인 학살에 대해 더 생각할 수 있는 책들 279
옮긴이 후기 281
인명 대조표 287
지명 대조표 289
출판사 리뷰
1. 이 책의 의미: 혐오 대 공감
“착한 조선인도 나쁜 조선인도 없다. 조선인은 모두 죽여라!”
“일본이 싫은 여자들아, 나와라. 목을 졸라 죽여 줄 테니, 나와라!”
“범죄 조선인을 모두 죽여라”
“코리아타운을 다 불태워 버리자!”
“일본 사회의 진드기, 쓰레기, 구더기, 재일조선인 구제 처분 담당입니다.”
“지금 바로 때려죽이러 왔습니다.”
이처럼 재특회와 혐한시위대가 한국인들을 바퀴벌레로 비인간화하고 ‘한국인을 몰살하라’고 외치면서 한인거리골목을 돌며 위협을 가하는 현실에서 『9월, 도쿄의 거리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인종차별주의의 이 득세를 극복할 방안인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저자는 이러한 비인간화의 분위기에 전 인류적 공감과 예술적 공감의 정치를 대안으로 내세운다.
1)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 간토대지진을 계기로 도쿄에서 있었던 조선인대학살에 대한 생생한 보고문학이다. 저자는 당시의 도쿄 거리를 답사하면서, 또 당시의 지도와 현재의 지도를 비교하면서 역사적 사건의 실상을 마치 지금 살아있는 상황인 것처럼 생생하게 되살려 낸다.
2) 증오담론과 증오범죄가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21세기 벽두의 현실에서 『9월, 도쿄의 거리에서』는 혐한시위, 뉴올리언스 흑인학살, 나치의 유태인학살, 간토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대학살이 사람들 사이의 공감을 학살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증오범죄라는 점에서 공통된다는 것을 밝힌다.
3) 『9월, 도쿄의 거리에서』는 학살된 사람의 숫자를 세는 것, 조선인이나 중국인, 일본인을 기호로서 취급하는 것 등, 추상화의 방법론은 공감을 저지하고 비인간화를 조장하는 인식방법이라고 비판하고 얼굴과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체험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또 그림으로써 역사를 체감시키고 이로써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4) 『9월, 도쿄의 거리에서』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과 중국인에 대한 학살은 3.1운동과 발흥하는 노동운동에서 나타난 저항력에 대한 공포대응임을 보여 주며 공포에 입각한 증오범죄가 당시 언론에 의해 유포되고 행정에 의해 조직되며 민중에 의해 집행되었음을 밝힌다. 아울러 최근 10년 이상 언론을 통해 유포되고 있는 혐한담론이 혐한행동에 대한 심리적 준비임을 암시한다. 인류를 조각내는 이 증오, 혐오의 감정을 공감의 감정을 통해 치유하자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5) 『9월, 도쿄의 거리에서』는 전후 세대 일본인에 의한 근대 일본의 파시즘과 인종주의에 대한 철저한 고발이자 자기비판이다. 이 책은 학살을 부정하는 것이 미래의 학살을 준비하는 것이며 학살당한 사실을 망각하는 것도 다시 학살당할 것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학살의 사실을 극적 방식으로 드러내고 조선인들에 연대했던 일본인의 행동을 통해 공감의 역사적 실례도 그려낸다.
2. 이 책의 특징과 구성
시대성을 가진 역사서
역사라는 말이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비롯한 여러 유럽 언어에서 이야기라는 뜻을 갖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어떤 사건을 언어를 통해 재현하는 행위, 즉 서사라는 점에서, 역사는 단지 특정 시대의 사건과 인물에 국한되어 고정되지 않고 근본적으로는 위태로운 성질을 가지게 된다. 철학적 고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 나아가 국가 혹은 민족 간의 갈등의 소지가 되는 것이다. 이는 최근 기만적인 역사 인식을 드러낸 아베 담화까지 귀결되어 오는, 70년이 지나도 제대로 풀리지 않은 일본의 침략과 지배에 대한 역사인식을 통해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가 함께 목도해 온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 『9월, 도쿄의 거리에서』는 2014년 3월 11일에 출간되어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만수천 부가 팔렸다. [2015년 기노쿠니야 인문대상]이라는, 대형서점이 주최한 독자 투표로 뽑는 인문서 베스트 30 경쟁에서 당당히 3위에 오르기도 했다. 또 신문, 잡지, TV에 많이 보도되어 화제가 되었으며, 그 모습은 다시금 한국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저자인 가토 나오키는 도쿄의 한인거리 신오쿠보에서 벌어진 인종주의자들의 시위에서 간토대지진 당시 외치던 증오 언설(hate speech)과 똑같은 표현을 듣고 충격을 받아 이에 진실을 알리는 블로그를 개설한다. 이 책은 그 블로그에 기록된 작업들을 바탕으로 글을 추가해 만들어졌으며, 따라서 매우 시대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감히 덧붙이자면 이 책은 유사한 주제를 다룬 인문학 책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몇몇 획기적인 특징들을 함께 가지고 있다.
“해야 하는 것은 치유가 아니라 상처를 받는 것이다.”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대량학살에 대한 독특한 고찰을 남긴 귄터 안더스(후설과 하이데거에게 철학을 배운 철학도이자 한나 아렌트의 첫 남편이자 발터 벤야민의 사촌)의 말이다. 1978년에 미국 NBC에 의해 제작된 텔레비전 영화 [홀로코스트]가 이듬해 독일에서 방송되었을 때 지식인들의 첫 반응은 냉담했다. 말할 수 없는 것, 표현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경제적인 배경이나 범죄 수행 체계 및 그 중심적인 책임자들의 존재에 초점을 두는 대신, 그저 감수성에 초점을 맞춘 대중적인 이야기를 창작함으로서 역사적 사건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더스의 반응은 달랐다. 이 영화가 어떤 통계나 총체적인 분석에서도 그 동안 독일인이 직시 못했던 것들, 즉 죽고 죽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반성하는 전후 독일인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때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해) 비록 알고는 있었지만, 문제를 직시하고 느끼는 것을 거부해 왔다. ‘나도 책임이 있다. 혹은 나도 그때 그 상황에 있었다면 그럴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안더스는 이렇게 말한다. “안다는 것은 관여의 형태 중에서 가장 약한 것이며, (거기서 멈춘다면)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안더스의 평론은 한 상업적인 미국영화가 독일 내 새로운 해석의 전기를 맞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일상의 풍경 속에서 역사를 기억한다
비유를 들어 이야기 했지만, 이 책은 실제 사건을 이야기로 재구성한 역사서로서 당시 사람들의 ‘얼굴’을 무려 사건이 일어난 지 90년이 지나 일본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느끼게 한 특별한 책이다. 총 네 장으로 된 책의 전반부(1장, 2장)는 역사적인 시공간의 재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진 발생으로부터 시시각각으로 일어난 재해에 따라 어떻게 이재민들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거나 “조선인이 반란을 일으켜 군대와 싸우고 있다” 등의 유언을 믿어 광기에 휩싸여 갔는지를 보여준다. 시간을 따라 며칠 몇 시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가 책의 구조를 통해 파악될 뿐만 아니라 맨 앞에 있는 연표를 통해서도 전체 사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책은 짜여 있다. 또 공간적으로도 사건마다 달려 있는 지도를 통해 어떤 곳에서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머릿속에 그려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그 곳을 실제로 탐방함으로서 그 현재의 모습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서일 뿐만 아니라 답사기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독자는 풍부한 배경 정보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누가 누구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를 마주하며, 당시 사람들의 분노와 공포를 고통스러울 정도로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학살 가해의 내면을 들여다 보다
후반부인 3장에서는 학살의 트라우마를 글이나 마음속에 간직한 유명한 사람들 혹은 무명의 사람들의 서술을 통해 좀 더 학살의 내면으로 다가간다. 학살을 목격한 어린 아이들, 조선인으로 오인되어 폭행당한 일본인, 선조들이 저지른 학살의 현장을 발굴한 지역민들의 서술이 있는가 하면, 문인과 정치인들의 성찰을 기록한 글들도 소개되어 있다. 전반부와 비교해 볼 때, 한 번 사람의 내적 기억을 경유한 후반부의 기술법은 잔인한 폭력 묘사의 서술에 의해 마비된 독자의 감수성이 다시 한번 성찰의 힘을 갖도록 인도한다.
안더스의 말을 빌리자면 엄청난 학살에 대해 우리는 “심리적으로 대응하는 어떠한 시도도 일단 실패할 수밖에 없다......살해 당한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할 수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애당초부터......진정으로 인식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다......지각능력은 작동을 멈춘다.” 저자 가토 나오키는 말한다. “인간으로서 받아들이고 생각해야만 하는 역사적 사실을, 몇 명이 죽었는가라는 식의, 감정을 억누른 숫자 논쟁으로 바꿔버리는 것 또한 귀를 틀어막고 공감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가토는 학살의 규모나 원인에 대한 고찰을 회피하는 것은 아니다.
90년 후의 잔향에 맞서 기억한다
마지막 4장에서 가토는 현재적인 관점에서 간토대지진이 갖는 의미를 추도와 증오라는 정반대의 감정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에 대해 고찰한다. 그리고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사례를 통해 인종주의에 의한 살육이 단지 군국주의 시절의 일본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이 아니며 민주주의를 표방한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시하라 신타로와 같은 극우정치가의 선동이 21세기 일본에서도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안더스는 “집단적 죄”라는 오래된 개념을 거절한다. 가장 오래된 그 개념의 용법은 예수의 살해에 대한 책임을 물었던 유럽의 반유태 인종주의의 역사였다. 그 대신 안더스가 우리가 집단적으로 가져야 하는 인식으로 제시하는 것은 어떻게든 “다시 반복하지 않을 책임”이다. 가토 또한 말하고 있다. ‘비인간’화가 진행된다면 언제든 우리 삶 속에 일상적인 공감이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된다고. “90년 전의 거리 또한 ‘비인간’화와 공감이 싸우는 현장이었음을......때로는 한 인간 안에서 그 싸움은 벌어졌다.”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도쿄의 거리는 그 싸움의 현장이었고 그렇게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죽여 버린 도시에 우리는 살고 있다고. 90년 전 9월은 존재했다. 우리는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추천사
“외국인 혐오의 심상치 않은 고양을 통해 ‘현재’를 읽어 내려고 하는 나와 달리 가토의 침착한 시선은 과거로 돌아간다. 과거의 풍경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참혹한 살육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현재 재일 한국인·조선인을 겨냥한 증오의 외침 속에서 가토는 90년 전에 도쿄의 거리에서 펼쳐진 대량학살의 ‘잔향’을 듣고 그 기억을 지금 우리의 눈앞으로 당겨 온 것이다.”
- 야스다 고이치, 저널리스트, 『거리로 나온 넷우익』 지은이
“읽어 나가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몇 번이나 책을 덮어 버리고 싶어졌다. 그래도 눈을 돌릴 수는 없었다. 독자는 피해자/가해자 사이에서 어느 편에 ‘나’를 두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몇 번이나 그 둘 사이를 오고 갔다.”
- 시게마쓰 기요시, 소설가, 『비타민 F』, 『유성 왜건』 지은이
“이 책은 절묘한 균형 감각으로 아이들의 그림, 작문, 회고록, 문학 작품 등 사람들이 남긴 여러가지 기록을 배치함으로써 독자의 오감을 그 당시 그 거리로 이끌어 간다. 그렇게 이 책은하나의 엄숙한 물음을 고스란히 되살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 버렸을까?’라는 물음. 이제 이 물음은 거꾸로 지금 여기, 현재를 찌르게 될 것이다.”
- 마루카와 데쓰시, 역사가, 『리저널리즘 : 동아시아의 문화지정학』, 『냉전문화론』 지은이
책속에서
1923년(다이쇼 12년)의 간토대지진은 1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대참사였지만, 이를 더욱 처참하게 만든 것은 ‘조선인이 방화를 하고 있다’거나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등의 헛소문을 진짜라고 받아들인 사람들이 칼이나 죽창 등을 쥐고 저지른 조선인(덧붙여 중국인)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었다. 행정 당국이나 군조차 이러한 유언비어를 사실로 받아들여 퍼뜨렸고, 때로는 학살에 가담하기까지 했다. 그 당시 도쿄는, 1990년대의 유고슬라비아나 르완다와 같은 대량학살의 도시였다.― 머리말 P. 13
지진이 다시 올 거래 … … 시나가와는 쓰나미에 당했다는군 … … 수상이 암살되었다나봐 … … 그중에서도 점점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조선인 폭동’이라는 유언비어였다. 조선인이 각지에서 방화를 하고 있다 … …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며 돌아다닌다 … … 조선인이 … … 조선인이 … … .― 매그니튜드 7.9 P. 34
간토대지진 당시의 중국인 학살에 관해 연구를 한 니키 후미코는 학살의 배경에 노동 브로커의 입김이 있었다고 말한다. … 일본인보다 20퍼센트나 싼 임금으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는 일본인 노동자에게는 물론 인부를 알선하고 임금의 일부를 착복하던 노동 브로커의 입장에서도 아니꼬운 존재였기에 그들을 배척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고 한다.
― 중국인은 왜 살해당했을까 P. 81
많은 증언자들이 공통적으로 “노동자들이 살해되었다. 우리는 유학생이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거기에는 체계적으로 일본어를 배우지 못한 노동자들의 경우 “검문을 당했을 때 그 자리를 모면하기가 더욱 어려웠다”는 이유도 있다. 일을 찾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아야 했던 터라 많은 경우 지역의 일본인과의 관계도 얕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고엔지의 ‘반달 할아버지’ P. 131
도쿄의 특수성. 우리는 인종주의에 기반해 많은 이웃을 학살한 그런 특수한 역사를 가진 도시에 살고 있다. 간토대지진의 기억은 재일 한국·조선인 사이에서 지금도 계속 끔찍한 악몽으로 상기되고 있다. 한편, 일본인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조선인 폭동’을 선명한 이미지로 만들고 그것을 거듭해서 의식의 밑바닥에서부터 불러내곤 했다. …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도쿄는 스스로가 여전히 90년 전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만 한다.
― 도쿄는 지금도, 90년 전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P.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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