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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이름보다 오래된 -문선희

by 이성근 2023. 8. 6.

이름보다 오래된 문선희 지음·가망서사 2023.07

-문명과 야생의 경계에서 기록한 고라니의 초상

 

문선희-현대사회와 역사의 모순을 직시하는 사진작가. 2015년에 발굴 금지 기간이 해제된 구제역·조류 독감 매몰지 100여 곳을 기록한 연작 묻다로 주목받기 시작했다.(2019년책 출간) 2016년에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자신의 언니처럼 초등학생이었던 광주시민 80여명의 기억에 관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설치 작업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를 발표했다.(2016년 책 출간) 2019년에는 지난 15년간 고공농성이 일어났던 장소들을 담아낸 작업 거기서 뭐하세요를 발표했다. 신간 이름보다 오래된의 밑바탕이 된 고라니의 초상 사진 연작 널 사랑하지 않아2013년부터 10년간 진행해온 작업으로, 2022년에 처음으로 전시되었다.

2021년 제22회 광주신세계미술제 대상을 수상했으며 예술이 사회 현실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유의미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으며, 표면적으로는 정서적이고 감각적이지만, 그 내부에 파고든 사회 정서적 서사는 그 무엇보다도 신랄하고 날카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3년 제13회 일우사진상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단은 작가의 유려한 감성과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섬세한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목차

인트로_구조 요청

어린 고라니의 초상

 

마주치다

마음의 잔상

야생의 삶

봄의 탄생

너의 이름들

경계의 전쟁

사라지는 숫자들

자연의 균형추

고라니에게 인간은

 

마주하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틈새의 삶

여름의 어린 생명

연결된 시간들

비무장지대에서

드러나는 얼굴들

생사의 교차점

안녕을 위한 의식

 

어른 고라니의 초상

 

추천의 글

끝내 사랑하는 꿈, 눈이 찾는 빛_정혜윤

도착할 수 없는 편지는 사라지는가?_장혜령

세계와 연결되는 가장 인간적인 길_김산하

 

아우트로_생명의 편에서

책 속으로

고라니는 유해야생동물 구제사업으로 3분마다 한 마리씩 총에 맞아 죽는다.

2014년에 총에 맞은 고라니는 36,296원어치의 농작물을 먹어 치운 혐의로 목숨을 잃었다. 2018년에 총에 맞은 고라니는 14,869원어치의 농작물을 먹어 치운 혐의로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고라니 목에 내건 현상금은 3만 원인데, 2015년부터는 현상금으로 지급된 비용이 고라니로 인한 농작물 피해액보다 많았다. -‘경계의 전쟁p.63

 

모든 야생동물은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먹는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산을 허물고 도시를 넓히고 도로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고라니의 생태는 존중되지 않는다. 고라니는 인류가 등장하기 전부터 한반도에 살았다. 태곳적부터 살아온 자기의 영역을 침범당하고도 오히려 불청객으로 내몰린다. 인간의 허영은 고라니가 도로교통법을 준수하고, 농작물과 아닌 것을 구별하고, 인간에게 불필요한 것들만 먹기를 바란다.

생태계의 포식 행위는 균형 잡혀 있다. 육식동물들은 자신의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만큼만 사냥한다. 하지만 시스템은 다르다. 농민들이 화가 나서 달려가면 시스템은 가차 없이 작동한다. 징벌이 미진할 경우 농민들은 거듭 항의할 수 있지만, 징벌이 과도해도 고라니들은 항변할 수 없다.

고라니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간이란 무엇일까? 나직한 물음이 가슴께에 밀려들었다. -‘고라니에게 인간은p.70

 

초여름이 되면 그해 봄에 태어난 새끼들이 어미를 잃어 구조센터로 밀려든다. 구조된 아기 동물들은 개체를 식별할 수 있는 표식을 매달고 비슷한 종이 모여 있는 방으로 배정된다. 고라니와 노루는 같은 사슴과라서 한 방이다.

구조센터에 들어온 아기 사슴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숨긴다.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없으면 한데 뭉쳐 서로의 몸에 고개를 파묻는다. 고라니든 노루든 이질감 없이 섞여, 체온을 나누고 위험을 분산시킨다.

아기 사슴들은 인간의 손길을 두려워한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구조 상황 자체가 트라우마로 남기도 한다. 그러나 우유를 먹이는 일이 반복되면 그들은 차츰 상황에 적응해간다.

재활 관리사들이 따뜻하게 데운 젖병을 들고 들어오면 우유 냄새를 맡은 아기 사슴들이 모여든다. 신이 나서 깡충깡충 뛰는 녀석들도 있다. 직접 우유를 먹여보면, 젖병을 빠는 힘이 어찌나 좋은지 젖병을 들고 버티는 게 쉽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모두 같은 반응인 것은 아니다. 어떤 아기 사슴들은 유혹적인 우유 냄새와 시끌벅적한 소란에도 그대로 숨어 있었다. 끝까지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야생성을 간직한 아이들은 체구가 작다. 덜 먹기 때문이다. 재활 관리사들은 그런 개체들도 빠뜨리지 않고 우유를 먹인다. 겁에 질린 아기 고라니가 입을 닫은 채 계속해서 젖병을 밀어내면, 재활 관리사는 그 고라니를 살포시 품에 안고, 입을 살짝 벌려 입속으로 솜씨 좋게 젖병을 밀어 넣는다. 우유 맛을 본 아기 고라니는 그제야 입을 오물거리며 조금씩 젖병을 빤다. 인간의 관심과 정성으로 가녀린 생명이 이어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여름의 어린 생명p.76

 

초코는 사랑이 많은 아이였다. 애정 표현에 거침이 없었고, 그만큼 예쁨받고 싶어 했다. 하지만 언젠가 자연으로 되돌아가야 할 초코를 마음껏 쓰다듬을 수는 없었다. 나는 스킨십을 하는 대신 초코와 눈높이를 맞추는 것으로 마음을 대신했다.

몸을 낮추면 초코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내려다볼 때는 단춧구멍 같던 초코의 눈망울이 호수처럼 깊고 맑아 보였고, 턱밑을 감싼 솜털이 꽃받침 같아 한층 더 귀여웠다.

내가 바닥에 낮게 엎드리면 초코 쪽에서 내 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러면 우리는 한동안 서로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지만 같은 인간을 마주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마치 말갛게 영혼이 들여다보이는 것 같았다.

꼭 마주 보지 않더라도 초코의 일상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먹고 마시고 뛰노는 초코의 모습 위로 시간이 흐르는 느낌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눈이 번쩍 뜨였다. 이리도 당연한 이치를 그동안 왜 깨닫지 못했을까?

처음 고라니와 노루를 비교해서 볼 때는 고라니들이 모두 비슷해 보였다. 그런데 초코라는 기준이 생기자, 마치 베일이 벗겨진 듯 고라니들의 얼굴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연결된 시간들p. 80~81

 

고라니들의 얼굴에 오롯이 새겨진 고유성에 깊이 매료되었다. 모두가 이 세상에 단 하나의 존재로 초대받은 소중한 생명들이라는 것, 당신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를 부품처럼 갈아 끼울 수 없듯이 모든 생명은 대체 불가능하다는 명제가 생생하게 와 닿았다.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당연한 이치지만, 그것을 머리로 아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마치 은하수라는 단어를 아는 것과 은하수를 직접 보는 것이 차원이 다른 일인 것처럼. 고유성에 깃든 경이와 다양성에 깃든 장엄함을 생생하게 체험한 후, 나는 비로소 생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연결된 시간들p.81

 

서로를 의식할 때 흐르는 긴장감과 떨림 속에서 고라니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순간, 셔터를 눌렀다.

고라니의 얼굴 근육은 사람만큼 발달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개 무표정하게 보였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고라니의 전체적인 인상은 날씨를 느낄 때처럼 모든 감각을 통해 한꺼번에 다가왔다. 말로 표현하자면 복잡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단순한 일이었다.

그 겨울을 건너는 동안 고라니는 나에게 북극곰이나 앨버트로스 같은 이국의 생명들보다 애틋한 존재가 되었다. 고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송곳니와 무언가 한없는 것을 바라보는 듯 애수에 젖은 눈빛, 복숭앗빛 혀를 살짝 내밀며 메롱하는 버릇, 어디서 작은 기척이라도 들리면 흠칫 놀라 한쪽 발을 든 채로 얼어붙곤 하던 겁 많은 성격까지 좋아하게 되었다. -‘비무장지대에서p.92

 

다시 구조센터를 찾아갔을 때 마침내 보고야 말았다. 흰색 트럭 옆에 가지런히 주차하고 차에서 내렸는데 트럭 짐칸에 죽은 고라니 두 마리가 포개져 있었다. 텅 비어버린 눈과 빳빳하게 굳은 몸을 본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며 겨우 건너편 등나무 아래로 가서 앉았다. 부들대는 팔을 끌어안자 온몸이 떨려왔다. 하나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은 하나의 우주가 사라지는 일, 나는 두 개의 우주가 사라지는 현장의 마지막 목격자였다. 이곳이 어린 생명들을 구할 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싸늘한 주검의 숫자를 헤아리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라니들이 죽어간다. 고라니들의 입장에서 인간 중심의 세상은 마치 거대한 블랙홀 같지 않을까. 사방이 조여 오고 소용돌이에 한 번 휘말리면 결코 헤어날 수 없는 곳. 눈을 감으면 고라니들이 그 죽음의 시스템에 붙들려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광경이 떠오르곤 했다. -‘생사의 교차점p.104~105

 

끝끝내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던, 그래서 한 장의 사진조차 남기지 못했던 고라니들조차 내 마음속에 들어와 별처럼 총총히 빛나고 있다. 멀리서 보면 그저 흔한 사슴이겠지만, 모든 존재에게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이 있다. 몸을 낮추고 눈을 맞추는 일, 그 단순한 경험만으로도 우리는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의미와 무게를 실감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약간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낯설고 불가해한 존재들을 천천히 들여다볼 시간. -‘안녕을 위한 의식p.107

 

묻다 문선희 저자 책공장더불어 · 201903

 

살처분 매몰지를 2년 이상 추적하고 기록한 유일한 사람

사진과 이야기를 통해 살처분이 우리에게 남긴 상처와 치유를 전한다

살처분 현장을 보며 사람들은 생명을 함부로 하는 불경함, 생명의 가치보다 경제성이나 합리성이 우선시 되는 냉혹함을 목격하고 가슴 아파하고 두려워했다. 과연 지금의 대량 살처분 방식이 합당한지 의문도 가졌다. 이 책은 가축 전염병의 예방과 대처법, 살처분 방식에 대해서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했던 작가가 살처분 매몰지를 기록한 경험을 사진과 함께 이야기 방식으로 풀어낸다.

책은 매몰지를 찍은 사진을 사진전과 같은 형식으로 보여주고, 저자가 매몰지 촬영을 하면서 품었던 살처분 방식에 대한 의문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공유하고, 사진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살처분이 남긴 상처와 치유를 전한다. 작가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비슷한 것을 묻고, 함께 안타까워하고, 화내고, 고마워했다.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동물 매몰지를 기록한 작가 덕분에 그간 우리가 먹는 동물을 대하는 방식과 그들이 아플 때 대처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목차

그 해 겨울

물컹한 땅

비밀

수익

3년 후

내일의 문제

악몽

299

자연치유

예방적 차원

청정국

죽음 없는 무덤

공범

동물의 사정

다시, 구제역

비닐 아래

근면한 작물재배

부메랑

환삼덩굴

투고

묵묵부답

구토

메르스

묻다

그녀의 아버지

가격

제의

아이들

인큐베이터

행복의 조건

형벌

국가의 명령

마음들

1588

C-print_100x100cm_2014  ARTICLE03 | 문선희 (modoo.at)

 

책 속으로

전국 4,799 곳에 매몰지가 조성되었다. 피로 물든 지하수가 논과 하천으로 흘러나오고, 땅 속에 가득 찬 가스로 인해 썩다 만 사체들이 땅을 뚫고 솟아올랐다는 엽기적인 뉴스가 쏟아졌다. 3년 후, 전국 4,799 곳의 매몰지가 고스란히 사용 가능한 땅이 되었다.

어떤 매몰지는 물컹거렸고 어떤 매몰지는 단단했다. 어떤 매몰지는 잔뜩 부풀어 올라 있었고, 또 어떤 매몰지는 푹 꺼져있었다. 어떤 매몰지는 플라스틱 관이 몇 개 쯤 꽂혀 있었고, 어떤 매몰지는 그조차도 없었다. 그나마 설치된 플라스틱 관들은 터지거나 막혀 있기 일쑤였고, 지독한 악취를 뿜어댔다.

구제역은 사람에게 옮기지도 않으며 식품의 안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20세기 초만 해도 구제역에 걸렸다 회복된 소 중에서 고품질의 고기와 우유를 생산해 상을 받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모든 생명체는 태양과 땅, 물 그 외에 다른 생물들에게 빚을 진다. 자기가 쓸 에너지를 직접 만드는 건 식물뿐이다. 사슴을 잡아먹는다고 사자의 도덕성을 비난할 수는 없다. 육식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육식이 범죄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매몰지에서 불에 탄 것처럼 새까맣게 변해 죽은 풀을 처음 보았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아차리지?못했다. 다음 번 매몰지에서 끈적이는 액체를 토해내며 기이하게?죽은 풀을 보았다. 전문가에게?물으니 땅 속의 유독?물질에 풀의 뿌리가 닿았거나, 땅 밑에서 피어오른?유독 가스로 인한 변고 같다고 했다.?독을 내뿜는 땅,

매몰지 옆의 깨밭은 트럭이 밀고 지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밭 가운데의 깨들이 양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벼는 제대로 자라지 못하거나 눈에 띄게 웃자랐다. 논에서는 벼와 잡초가 마구잡이로 섞여 자랐다. 물이 찬 논에는 날벌레가 들끓었다. 겁이 날 정도로 엄청난 밀도였다.

매몰한 지 4년이 지났으니 대지가 회복 중일까?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머리카락이 백발로 변해버린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며칠 사이에 비닐 아래의 풀들은 새하얗고 투명하게 말라죽어버렸다. 아직 여기 동물이 있다. 대지는 삼킨 죽음을 토해내고 싶어 한다.

2014년 강력한 고병원성 조류 독감으로 1,396만 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 했다. 2016년에는 두 배에 달하는 3,781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 됐다.?이는 전체 사육 조류의?30퍼센트를 웃도는 숫자였다. 동일한 시기에 같은 바이러스로 조류독감이 발생한 독일, 프랑스, 덴마크는 100만 마리 이하의 동물을 살처분 했다.

햇빛이 차단되어 자외선 살균의 우려도 없고, 환기가 되지 않아 오랜 시간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으며, 감염시키기 용이한 숙주들이 옮겨 다니기 좋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 밀집사육 시설은 바이러스가 치명적으로 진화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인큐베이터였다.

누군가는 갓 태어난 새끼들까지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 일을 해야만 했다. 누군가는 살아 있는 동물들 위로 흙을 쏟아 붓고 땅을 다지는 일에 투입되었다. 동물들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을 직접 담당해야 했던 사람들. 무겁고도 무서운 기억에 짓눌려 잠 못 이루는 밤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지독한 형벌을 받고 있을까?

살처분에 동원된 공무원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자 2015년부터 정부는 용역업체에 살처분을 떠맡겼다. 이제 공무원을 대신해 가난한 청년과 외국인 근로자가 살처분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문선희 / 난다 20165

담벼락에 묻힌 5월 광주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5·18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이들 80명의 구술을 토대로 이루어진 작업이다. 정치적이라기보다 정서적인 기억들이기에 특정한 관점으로 구조화시키지 않고 인터뷰한 순서 그대로 배열하였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의 기억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구술 내용에 다소간의 불일치가 있더라도 그대로 수록하였다.

 

작가의 말

이 작업은 기록이 아닌, 기억에 관한 것이다

5·18 이야기가 나오면 으레 광주 사람이니 잘 아시겠죠라는 말이 붙는다. 그럴 때면 나는 그때 저 죽을 뻔했어요라고 농담처럼 답하곤 했다. 당시에도 나는 무등산 자락에서 살았다. 광주 시내가 봉쇄되는 바람에 우리는 우리대로 고립된 처지였다. 18개월 된 아기였던 나는 홍역에 걸렸고, 시내에 있는 병원에 가지 못해 죽을 고비를 겪었다고 한다. 물론,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나 초등학교에 입학했잖아.” 언니는 여덟 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언니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어쩌면 특별할 것도 없는 기억이 긴 바늘이 되어 푹, 하고 나를 찔렀다. 그때 국민학생이었던 언니와 오빠들은 지금 초등학생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이것은 5월 광주에 관한 작업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거대 담론에 대한 작업은 아니다. 이 작업을 위해 나는 중심이 아닌, 주변의 기억을 수집하기로 했다. 대상은 마흔을 갓 넘은 이들로, 당시 초등학생의 나이로 한정했다. 2년에 걸쳐 해당 연령의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어렵사리 그중 80명을 인터뷰할 수 있었다. 30년이 더 지난 일이다. 어떤 기억은 흐릿해졌고 어떤 기억은 덧대고 기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렬하게 남아 있는 어떤 인상들은 어제의 것처럼 생생했다. 그들의 기억은 어린아이들의 불완전한 기억으로 치부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어렸지만, 5·18에 대해 듣거나 읽은 게 아니라 직접 보고 겪었다. 그러니 아이들의 기억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한 부분을 보여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내가 어린이들에게 주목한 이유는 그들은 현장에 있었지만 누구도 도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존재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들의 증언 속에는 당시 시민들의 용기와 희생 같은 숭고한 꽃들뿐만 아니라 혼란, 불안, 공포, 분노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들까지 여과 없이 드러났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나는 증언 사이사이에 묻어난 그들의 철없는 아이다움에 한량없이 고마웠고, 그들의 이상하고 섬뜩한 어린 날의 파편에 속절없이 아파했다.

나는 여전히 잘 모른다. 이 비극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이 진실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게다가 경험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 아닌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타인의 경험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다. 그러니 완전히 전달할 수도 없을 터다. 그래서 노력했다.

나는 그들이 살았던 골목골목을 걷고 또 걸었다. 사라진 집들만큼이나 남아 있는 집들도 많았다. 그 엄혹한 열흘 밤낮 동안 누군가의 가족을 오롯이 품었을 집들, 오랜 시간을 견뎌내 저마다의 고유한 역사를 지닌 벽들. 시나브로 하나하나의 기억들이 내 안에서 용해되고 발효되었다. 그러자 골목 안의 벽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모자란 작업을 위해 기꺼이 기억을 꺼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목차

서문-이 작업은 기록이 아닌, 기억에 관한 것이다 8

일러두기 10

 

!13

01 최지연(1980, 8) 14

02 김은영(1980, 8) 15

간첩17

03 조승기(1980, 10) 18

04 이정록(1980, 10) 20

05 김용태(1980, 9) 21

!23

06 정제호(1980, 8) 24

07 김용선(1980, 12) 25

피가 모자랍니다27

08 정상욱(1980, 13) 28

09 정광훈(1980, 13) 29

10 OO (1980, 13) 30

아무것도 못 봤어요33

11 소영환(1980, 10) 34

12 나용호(1980, 10) 35

그 눈빛을 나는37

13 강신철(1980, 11) 38

14 문종선(1980, 10) 39

다 끝난 일41

15 노상수(1980, 13) 42

16 박종식(1980, 11) 43

17 최창호(1980, 9) 44

18 박수미(1980, 11) 45

학교는 쉽니다47

19 조호성(1980, 11) 48

20 윤일선(1980, 11) 49

오메오메51

21 정지선(1980, 11) 52

22 김건(1980, 11) 53

23 박지민(1980, 8) 54

24 김원(1980, 11) 55

내가 봤어57

25 홍성호(1980, 12) 58

26 정재운(1980, 12) 59

두근두근61

27 이장곤(1980, 10) 62

28 이승희(190, 10) 63

29 박현민(1980, 10) 64

30 나상선(1980, 10) 65

군인은 원래 우리 편인데67

31 정재명(1980, 10) 68

32 정명운(1980, 9) 70

33 박진홍(1980, 10) 71

나중에 괜찮을까?73

34 강성경(1980, 10) 74

35 김이강(1980, 12) 75

!77

36 강선아(1980, 12) 78

37 문영학(1980, 12) 79

38 강채민(1980, 12) 80

39 나진근(1980, 12) 81

잊혀지지가 않아83

40 곽은영(1980, 9) 84

41 송명재(1980, 11) 85

두두두두두두두87

42 김강미(1980, 11) 88

43 서상석(1980, 12) 89

44 한서희(1980, 12) 90

45 김선미(1980, 8) 91

유언비어93

46 차수진(1980, 13) 94

47 최혜경(1980, 13) 95

48 최혜원(1980, 8) 96

49 소유정(1980, 7) 97

우리나라, 만세99

50 염수인(1980, 8) 100

51 이형석(1980, 9) 101

어째서?103

52 정선화(1980, 8) 104

53 최귀성(1980, 9) 105

54 고성주(1980, 9) 106

55 O O (1980, 13) 107

6?25보다 더109

56 김현희(1980, 13) 110

57 정용재(1980, 11) 112

58 고정화(1980, 11) 113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115

59 김종원(1980, 12) 116

!119

60 김옥희(1980, 11) 120

61 강석(1980, 13) 122

62 김정중(1980, 13) 123

도망쳐!127

63 송민주(1980, 13) 128

64 주라영(1980, 8) 131

빨갱이, 새끼들133

65 강혜련(1980, 13) 134

66 김현대(1980, 12) 136

67 정영남(1980, 13) 137

어떡하지?139

68 정종민(1980, 13) 140

69 하형우(1980, 13) 141

70 문영란(1980, 13) 142

71 윤세영(1980, 8) 143

용기145

72 박국희(1980, 10) 146

73 박상순(1980, 8) 147

!149

74 김보수(1980, 11) 150

축제 아닌 축제153

75 오진하(1980, 11) 154

76 김동훈(1980, 11) 155

도와주세요159

77 차정섭(1980, 9) 160

78 배충환(1980, 12) 161

방탄솜이불163

79 임재환(1980, 12) 164

80 최환석(1980, 12) 166

 

5·18 상황 일지 167

해설-골목, 기억의 틈을 메우는 목소리 송수정(독립큐레이터) 173

 

 

출판사 서평

19805월 광주, 그날의 기억을 묻다.

20165월 광주, 그날의 기억은 이렇게도 묻을 수가 없다……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이 한 권의 책으로 우리는 5월 광주의 새로운 오감도를 갖게 되었다!”

 

또다시 5월입니다. 5월이라 하면 이런저런 기념의 날 참 많기도 하다지요.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을 지내고 스승의 날을 거쳐 성년의 날을 보낸 뒤 그 언저리에서 며칠을 더 머물면 애도의 심정으로 달력 속 숫자 하나에 오래 시선을 두게도 된다지요. 18이라는 숫자. 518민주화운동기념일이라는 붉은 글씨. 잊지 말라는 나름의 당부가 그 붉음이라 하겠지요.

 

그날로부터 36년이 흘렀습니다. 직접 겪은 이가 아니고서는 그때 그날들의 특별한 그 겪음에 대해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저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계만 쳐다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터, 여기 한 사람의 젊은 사진작가가 그날의 기억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감을 신고해드리려 합니다.

 

1978년생으로 사진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문선희. 광주 출신으로 무등산 자락에서 자란 그녀는 1980년에 18개월 된 아기였고, 홍역에 걸려 있었음에도 시내에 있는 병원에 가지 못해 죽을 고비 속에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스스로 떠올린 기억이 아니라 당시 초등학생이던 언니와 오빠들의 기억이 불러일으킨 사실이었다지요. 바로 이 부분을 힌트로 문선희 작가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5월 광주에 관한 작업이되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거대 담론에 의거한 중심이 아닌, ‘주변의 기억을 수집하기로 한 거지요.

 

특별히 내가 어린이들에게 주목한 이유는 그들은 현장에 있었지만 누구도 도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존재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들의 증언 속에는 당시 시민들의 용기와 희생 같은 숭고한 꽃들뿐만 아니라 혼란, 불안, 공포, 분노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들까지 여과 없이 드러났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나는 증언 사이사이에 묻어난 그들의 철없는 아이다움에 한량없이 고마웠고, 그들의 이상하고 섬뜩한 어린 날의 파편에 속절없이 아파했다.” -서문에서

 

문선희 작가는 2년에 걸쳐 당시 초등학생이던 이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80명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고, 그들이 직접 겪은 그 일에 대한 증언을 차곡차곡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작가는 그들이 살았던 골목골목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다행히 사라진 집들만큼이나 남아 있는 집들도 꽤 되었습니다. “그 엄혹한 열흘 밤낮 동안 누군가의 가족을 오롯이 품었을 집들, 오랜 시간을 견뎌내 저마다의 고유한 역사를 지닌 벽들.”

 

간첩〉 〈〉 〈방탄솜이불

 

오래 쳐다봐주고 오래 만져주는 만큼 벽들도 마음의 문을 여는 게 틀림없겠지요. 그래서 광주의 시인 임동확은 벽을 문으로라는 제목의 시를 일찌감치 피를 토하듯 써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문선희 작가는 80명의 증언에 30컷의 벽 사진을 한 묶음의 책 안에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그 벽 사진의 제목을 그들 증언에서 빌려오기도 하였고요.

 

이제는 사십대가 된 당시 초등학생들의 이야기는 언뜻 보기에는 비슷비슷한 듯해도 사사로이 다른데, 어린 기억에 의존해야 하는 이들의 불완전성은 사건을 미화하거나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투명하게 그 부조리함을 대변하기 때문에 보다 귀한 사료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예컨대 다음의 이야기만 보더라도 말이지요.

 

그때 YMCA 근처에 수협이 있었고, 그 앞에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어요. 아버지가 거기로 가서 보여주셨어요. ‘이게 총알자국이야라고.-김보수(1980, 11)

 

그리고 아침에 형이 세수를 하는데 갑자기 소리가 났어요. 보니까 밖에서 날아든 총알이 벽에 박혀 있었어요. 형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망정이지 고개를 들고 있었으면 형 머리에 맞을 뻔했어요.”-김용선(1980, 12)

 

그 길 사거리를 건너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따다다다, 하고 총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러더니 내 옆에 가던 형이 쓰러졌어요. 나는 어떤 사람의 손에 이끌려서 다시 후퇴를 했고요. 총을 맞은 형은 그 자리에서 툭, 쓰러져 죽었어요. 죽은 형은 총을 머리에 맞았는데, 얼굴 절반은 형태가 없었어요. 그 바로 옆에 제가 있었고요.”-최창호(1980, 9)

 

날이 더운데 할머니가 어디선가 솜이불을 해오셨어요. 총알이 솜이불을 못 뚫는다고요. 옛날 집들은 담이 낮아서 총알이 집안으로 쉽게 들어올 수 있었거든요.”-김이강(1980, 12)

 

공수부대는 개구리복을 입고 다니면서 학생들을 무조건 잡아갔어요. 대학생들이 주택가로 숨으면 무조건 찾아내서 질질 끌고 갔어요. 정말 무서웠어요. 공수부대원들은 돌도 안 피하고, 화염병도 안 피하더라고요.”-서상석(1980, 12)

 

그때는 어렸으니까, 탱크나 장갑차가 지나가도 아스팔트 바닥이 깨지지 않는 걸 보고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어요.”-문영학(1980, 12)

 

우리한테 빨갱이라고 하니까 그게 제일 이해가 안 됐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공산당은 머리에 뿔이 났다고 했는데, 우리한테 빨갱이라니 그게 제일 이해가 안 됐어요.”-강혜련(1980, 13)

 

우리 동네에 최미현이라고 나를 엄청 귀여워해주시던 분이 계셨어요. 남편은 인성고 교사였고, 그때 미현이 누나가 스물일곱인가 여덟인가 됐었는데 임신중이었어요. 남편을 기다린다고 밖에 나갔다가 총에 맞아서 죽어버렸어요. 그때 손수레에 누나를 실어서 집안으로 들어오고 식구들이 울고불고 하던 기억이 생생해요. 나중에 518 묘역에 가니까 미현이 누나 묘가 있더라고요.”-김동훈(1980, 11)

 

묻고, 묻지 못하는 이야기, 이 책의 탄생에는 역사 저편으로 잊혀가는 기억의 조각을 발굴하기 위해 좁은 골목들을 찾아다닌문선희 작가의 노고와 사랑에 힘입은 바도 크지만, ‘말함의 불가능성을 품은 채 최대한 정확히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려한 ‘80명 아해들의 용기도 큰 몫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들 모두 동일한 사건의 목격자임은 분명한 까닭에 그들의 목소리 가운데 교집합으로 묶이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다면 그것은 필시 사실 너머 진실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바로 새겨줘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805월 광주의 새로운 오감도로 불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 속으로

시체들을 많이 봤어요. 소방차 뒤에 시체를 실어가지고 왔다갔다하는 걸요.

그리고 옆집 살던 아저씨가 군대에서 기관총 사수였던가봐요. 트럭 위에 담요를 깔고 시

민군들에게 총을 쏘는 방법을 알려주셨어요. 증심사 올라가는 다리에서요. 평화맨션 앞 소태동 다리였어요.

밤에는 총소리가 엄청 났어요. 그래서 잘 때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잤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나가보면 총알들이 많이 떨어져 있었고요. 탄피 가지고 친구들이랑 따먹기 놀이도 많이 했어요. 그때는 길에 분해된 총기들도 많이 버려져 있었어요.

설월여고 자리가 원래 밤나무숲이었는데 거기서 시내가 잘 보이니까 교전하려고 수류탄 찬 사람들이 많이 오르내렸어요.

또 한번은 삼립 빵 차가 길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시민군들이 협조 좀 하라고 빵 차를 세워가지고 사람들에게 빵은 나눠주고, 그 차를 가져갔어요.

사람들이 버스에서 전두환 물러가라, 물러가라노랫소리를 했고, 어디선가 간첩이 나타났다!”고 소리가 들리면 동네 아이들이랑 막 쫓아다니기도 했어요.

어느 날은 옥상에서 놀고 있었는데 헬기가 갑자기 문을 열고 우리 쪽으로 기관총을 쐈어요. 무서워서 얼른 엎드렸는데 형이 공포탄이라고 내려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아침에 형이 세수를 하는데 갑자기 소리가 났어요. 보니까 밖에서 날아든 총알이 벽에 박혀 있었어요. 형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망정이지 고개를 들고 있었으면 형 머리에 맞을 뻔했어요. 그때는 정말 깜짝 놀랐죠.

_ p25 김용선 (1980, 12)전문

 

어머니가 솜이불을 꺼내서 벽을 다 덮으셨어요. 그리고 창문 바로 아래쪽에서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서 잤어요. 총알이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창문 바짝 아래서 잔 거죠. 밤에 총소리가 많이 났거든요. 그때 양옥집 2층에 살았는데 화장실이 1층에 있었어요. 화장실에 가려면 밖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가야 했는데, 밤에 화장실 갈 때 보면 빨간 불빛이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것이 보였어요. 그 빨간 불빛이 인상적이었죠. 당시엔 어렸으니까 불꽃놀이 같기도 하고.

_ p48 조호성 (1980, 11)에서

 

남자들은 다 잡아가서 죽인다는 소문이 나돌았어요. 그래서 밤마다 동네 남자들이 모두 우리집 지하실로 들어가 숨었어요. 우리집 지하실이 엄청 컸거든요. 남자들이 들어가면 여자들은 지하실 문을 닫고 문을 은폐하려고 그 위에 물건들을 쌓고 들어내지 못하게 하려고 엄청 큰 물통에 물을 받아서 올려놓기도 했어요. 그때 우리 오빠가 나보다 두 살 많았는데, 독자여서 우리 엄마는 오빠까지 지하실에 숨겼어요. 행여나 죽게 될까봐요._ p74 강성경 (1980, 10)에서

 

제일 무서웠던 기억은 우리집 바로 옆에 골목이 있었는데, 그 골목이 막다른 골목이었어요. 밖에서 보면 그렇게 안 보이는데 막상 들어가보면 길이 딱 끝나는 그런 골목이요. 밤에 도망치던 사람들이 거기가 뚫린 골목인 줄 알고 그 길로 들어가곤 했어요. 그 소리가 다 들렸어요. 막 도망치면서 조심해!”라고 말하는 소리까지. 그런데 막다른 길이니까 거기서 시끄러운 소리들이 났어요. 잡혀버린 거죠. 그 사람들의 고함, 비명 소리를 들었을 때는 정말 무서웠어요. 그 소리를 가족들이 전부 다 같이 들었는데 방에서 어쩔 줄 몰라 했던 기억이 나요. 전부 다 잡혀가는 소리가 들렸는데 정말 무서웠어요. 그런 일이 한두 번은 더 있었어요._ p84 곽은영 (1980, 9)전문

 

상처 입은 광주여, 코로나 앓는 인류여, 울지 말고 함께 꽃길을 걷자

의사들이 계엄군 막아서던 곳
옛 국군병원에 광주 작가들 모여
1980년 당시 기억 섬세히 가공
새로운 연대의 미학을 작품으로
2021 광주비엔날레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문선희 작가의 데이지꽃 설치작품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지금 광주의 미술은 마침내 1980년 5월을 넘어 진화를 시작했다.작가들은 5·18 민주화운동의 상처를 더는 아프다고 울부짖지 않고 잠잠한 눈길로 광주의 현재와 미래를 응시했다. 비극의 기억과 해원, 그리고 연대의 이미지들로 채운 그림과 설치작품들로 당시의 공간을 수놓았다. 지난 1일 개막해 5월9일까지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미술잔치인 제13회 광주비엔날레는 비로소 비엔날레의 주역으로 광주 미술이 우뚝 섰다는 낭보를 전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해를 넘겨가며 두차례나 연기되는 곡절을 겪었지만, 역대 처음 광주 작가들과 광주 미술 콘텐츠가 비엔날레의 중심으로 부각되는 성과를 이뤘다.
2021 광주비엔날레 본전시가 열리고 있는 비엔날레 전시관. 방호복을 입은 코로나 방역대원들이 방역작업을 마치고 건물을 나오고 있다.
김선정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의 총괄 아래 터키의 데프네 아야스, 인도의 나타샤 진발라 두 30~40대 여성 예술감독이 기획한 이번 행사는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Minds Rising, Spirits Tuning)을 주제로 공표했다.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진정한 지성의 원천이었던 샤머니즘과 무속 심령세계를 조명해온 40여개국 작가 69명의 작품을 크게 네 영역의 전시 형태로 내놓았다. 지난해 국제미술제 행사들이 사실상 대부분 중단된 상황이었던 터라 마음을 소재로 치유와 연대를 표방한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개막은 세계 미술계의 눈길을 모으는 이벤트로 떠올랐다. 그런데 뜻밖에도 비엔날레 주인공으로 지목된 건 본전시가 아닌 곁가지 전시에 출품한 광주의 작가들이었다.
 
“지구의 생명체계와 공동체 생존 방식을 활성화한다”는 두 감독의 발언 아래 ‘떠오르는 마음’이란 전시 주제를 샤머니즘의 전당 식으로 구현한 본전시관은 선전했지만, 이전처럼 집중적인 눈길을 받지 못했다. 행사가 개막되자 언론을 비롯한 관객 대부분의 관심은 옛 국군병원에서 열린 중견 소장 광주 작가들이 기억과 공감을 통해 이뤄낸 특별전 ‘메이투데이’에 단연 쏠렸다. 광주 작가들은 1980년 학살과 항쟁의 상처를 넘어 당시의 기억을 섬세하게 가다듬고 가공해 새로운 연대의 미학을 만들었다. 사상 최초로 비엔날레 작가들과 박물관의 남도 토기와 인골 유물 컬렉션이 만난 국립광주박물관의 전시는 또 다른 맥락의 광주 미학을 실험하는 자리가 됐다.
옛 국군병원 한 병실에 선보인 김설아 작가의 설치조형물 <불면의 읊조림 비명의 기억>. 피를 뽑는 채혈줄 다발로 이뤄진 작품이다.
■ 데이지꽃길과 채혈줄 다발로 떠올린 광주광주 화정동 옛 국군병원 공간에 광주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차린 프로젝트 전시 ‘메이투데이’는 유례없이 광주비엔날레 전시의 핵심이 됐다. 이 병원은 민주화운동 당시 부상자를 치료하고 사망자를 안치했던 곳이며, 계엄군이 부상한 시민들을 끌어가지 못하도록 의사들이 환자들을 결사적으로 지켰던 곳이다. 2007년 전남 함평으로 병원이 이전한 뒤 내년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 건립을 앞두고 여전히 폐허 상태인 과거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게 오히려 작가들의 상상력을 북돋웠다. 올해 광주비엔날레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문선희 작가의 데이지꽃밭 설치작품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는 병원의 이런 소슬한 분위기에 딱 맞는 작품이다. 병원 중환자실로 가는 계단 공간에 작가는 아리따운 데이지꽃밭을 펼쳐놓고 관객들이 이를 지나가게 했다. 관객은 예쁜 꽃들로 마음을 정화하고 치유의 내음을 맡게 된다.한 병실에 선보인 김설아 작가의 설치조형물 <불면의 읊조림 비명의 기억>은 피를 뽑는 채혈줄 다발로 이뤄진 작품이다. 작가는 당시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와 제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이들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 채혈줄 설치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작가 강운씨의 추상 유화 <마음산책―망자를 위한 진혼시>는 마치 병원 내 체육실 창가에 선 채로 말을 중얼거리는 듯한 큰 그림의 유령 같은 이미지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광주의 비극을 노래한 김준태 시인의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적은 글씨를 수없이 지우고 물감으로 덧칠한 흔적을 단색조의 화면에 표현했다.
고대 남도 사람들이 의례용기로 썼다고 짐작되는 새날개 모양 토기들. 국립광주박물관 1층 전시실에 펼쳐진 광주비엔날레 주제전에서 전시 중이다.
■ 새모양 토기와 인골에 깃든 고대 남도인의 삶과 죽음올해 비엔날레는 역대 최초로 박물관 유물들과 현대미술가의 협업을 성사시켰다. 그 무대는 본전시와 별개로 국립광주박물관 로비와 1층 기획전시실에 차려진 또다른 맥락의 주제전이다. 두 전시감독이 2년전 취임 초창기부터 고고학적 탐구를 통해 아득한 과거로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인류의 ‘마음 찾기’를 강조하면서 기획된 자리다.국립광주박물관 주제전은 들머리에 자리잡은 그리스 작가 크리산네 스타타코스의 <세개의 다키니 거울>로 시작된다. 티베트 비구니 승려와의 교류로 알게 된 만다라 도상에 그리스 신화의 삼발이 그릇과 꽃잎들을 뿌린 작품은 시간 변화에 따라 꽃잎이 시들고 작품의 변화가 감지되는 틀거지를 지닌다.남도 특유의 1700여년 전 원삼국시대 새모양 토기는 인도 자이나교의 우주론을 그림으로 풀어낸 삽화, 인간의 윤회를 다루는 불교신 야마의 그림과 함께 어우러진다. 새는 지상계와 천상계, 이승과 저승을 잇는 매개체다. 브이(V) 자 날개 모양의 강렬한 토기의 조형적 이미지가 새의 샤머니즘적 속성을 한껏 강조해 보여준다. 유성 잉크를 종이 위에 떨어뜨려 카오스적인 마블링 이미지를 만드는 미국 작가 갈라 포라스 킴의 추상 그림은 광주 신창리 저습지에서 나온 원삼국시대 인골 앞에 놓여, 종잡을 수 없는 우리의 인생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부추긴다. 인골은 정연하게 가로놓인 형태가 아니라 수장고에 들어가기 위해 솜과 중성지에 쌓인 수납 상태의 낯선 모습으로 나타나 관객에게 깊은 성찰을 일깨운다. 충청도 보석사에 망자들을 위안하기 위해 내걸렸던 대형 감로도와 감로도의 초본은 명부시왕을 그린 십대왕 그림, 바리공주 그림과 나란히 놓여 죽은 자들에 대한 심판과 삶과 죽음의 경계를 조용히 이야기한다. 전시장 안쪽에선 점치는 그림인 당사주와 각종 무속신상이 새겨진 설위설경의 모습이 눈앞에 다가오고, 그 위 천장에는 꼭두 상여 장식의 봉황새 두마리가 매달려 있다.
김상돈 작가의 움직이는 설치작품 <카트>.
■ 거대한 굿판? 샤머니즘으로 뒤덮인 본전시관광주 용봉동 비엔날레 본전시관과 국립광주박물관 등의 주제전에는 한국과 인도를 비롯한 제3세계의 무속화, 민화, 민간신앙 등을 소재로 한 현대미술 작품이 대거 등장해 팬데믹 시대의 정신적 치유 등에 초점을 맞춘 구도를 보여준다.전시 동선에서도 대부분의 전시장에서 가벽을 트고, 3전시실을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는 휘장을 치면서 시원하고 과감한 관람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샤머니즘 중심의 전시 명제나 작품 배치는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대두 이래 여러 비엔날레나 국제미술전에서 시도했던 것들이어서 참신하지는 않았고 작품들의 배열도 산만한 느낌을 줬다. 기존 비엔날레 틀거지를 벗어나지 못한 전시틀 자체보다는 참여한 국내 작가들의 농익은 노작들에 더욱 눈길이 갔다. 한반도의 근현대사와 광주의 공간사를 중심으로 치밀하게 삭히고 발효시킨, 차원이 다른 수작이 상당수 등장했다.
본전시관 1전시실에 나온 문경원 작가의 설치작품 <프로미스 파크, 광주>.
본전시관의 결정판은 2~5전시실의 내용을 압축한 1전시실이다. 한국인 특유의 신명과 한의 정서를 유명한 사진 연작 <충돌과 반동>으로 포착한 이갑철 작가의 ‘지랄 맞은’ 한국인들의 굿 사진으로 시작하는 이 전시에서 문경원 작가의 설치작품 <프로미스 파크, 광주>를 단연 주목할 만하다. 1950~60년대 옛 방적기술로 짠 카펫 위에 세월에 따른 광주 도시 풍경의 변화 양상을 추상적 문양으로 표현해 일종의 시간공원을 펼쳐놓았다. 이 작품은 국내 작가들의 광주 탐구가 이제 오랜 시간 사회학·인문학적 탐구를 통한 숙성과 숙고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유럽 사미족 출신 작가 오우티 피에스키의 설치작품 <함께 떠오르기>는 사미족 전통옷을 수놓은 술 모양의 천조각을 숱하게 엮어 종족의 정체성과 연대감을 드러냈다. 아일랜드 출신 작가 존 제라드가 아일랜드 전통 밀짚옷을 두른 소년들의 퍼포먼스를 담은 <옥수수 작업>도 색다른 구성과 작품 배경이 주목된다. 무속작업으로는 1전시실에 내걸린 1950년대 추정 국내 무속도(가회민화박물관 소장)가 단연 압권이었다. 예수·석가·공자가 함께 어울려 3대 무속신으로 등장하는 독특한 설정이 흥미롭다. 김상돈 작가의 움직이는 설치작품 <카트>는 한국인의 의식 속에 깊은 뿌리를 내린 샤머니즘 무속신앙과 현대의 과잉소비 문화 등을 카트 위에 올린 전통 상여와 꼭두 장식물 등을 통해 드러냈다.
본전시관 1전시실에 내걸린 1950년대 추정 국내 무속도. 예수, 석가, 공자가 함께 어울려 3대 무속신으로 등장하는 독특한 설정이 흥미롭다. 가회민화박물관 소장품이다.
2~5전시실에서는 반바지를 입힌 마네킹 엉덩이들을 탑처럼 쌓아 자본 탐욕에 찌든 현대인의 권태감을 표상한 파트리시아 도밍게스의 설치물, 제주 해녀가 떠오를 때 내는 숨비소리를 후두를 본뜬 조형물의 음통으로 들려준 네덜란드 작가 펨커 헤레흐라번의 신작 등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3전시실 들머리에 내걸린 이상호 작가의 집단초상화 <일제를 빛낸 사람들>도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은 신작이었다. 방응모, 김성수, 박정희 등 일제강점기 친일파 행적으로 오점을 찍은 인사 92명이 수갑을 찬 채 도열한 모습을 그린 대작으로 기발한 구도와 호소력이 돋보였다. 작가는 80년대 날선 반미투쟁도를 그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현장 미술운동가 출신이다. <일제를 빛낸 사람들>과 더불어 전통 불화 등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그의 90년대 구작 <권력해부도> <통일해원도> 등이 칠레 출신 여성작가 세실리아 비쿠냐의 사회 비판적 그림들과 나란히 마주보는 구도로 배치된 점이 흥미롭다. 해골과 동물, 전사와 정부군이 뒤얽힌 풍자적 그림으로 독재 정권을 꼬집은 비쿠냐의 출품작들은 이땅 전통회화의 전통에서 영감을 길어온 이상호 작가의 리얼리즘 작품과 독특한 조응을 보여줬다.전반적으로 전체 전시 기획은 훨씬 진일보했다. 난삽하고 무거운 현대미술 작품들을 끌어들여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급조하면서 무리한 진행으로 혹평을 받은 지난 비엔날레의 문제점을 인식한 기획진은 행사 연기에 따른 시간 여유까지 누리며 전시 구성과 기획에서 짜임새 있고 분명한 주제의식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구호와 정치적 메시지를 외치는 차원을 넘어 1980년을 체험하지 않은 후대 세대와 세계인들이 함께 마음으로 나누고 연대할 수 있는 광주 문화 정신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황석권 <월간미술> 편집장은 “이제 비로소 광주의 작가들이 미술이란 화두로 비엔날레를 주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 보여줬다”고 짚었다.■ 시내 곳곳에 갈라지고 흩어진 전시장들이번 비엔날레는 크게 네 개의 전시 영역으로 나뉘어지며, 관련 전시장들이 광주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주제 전만 해도 광주 용봉동 본전시관과 부근 국립광주박물관, 광주극장, 양림동 전시공간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에 각각 내용을 달리해 차려졌다. 화정동 옛 국군병원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광주문화재단에는 이불, 임민욱, 시오타 치하루 등 국내외 유명작가들이 5월 광주를 떠올리며 만든 근작들을 내놓는 지비(GB:광주비엔날레의 영문 약자)커미션 전이 진행되고 있다. 올해 비엔날레의 주목거리로 떠오른 광주 작가들의 5·18재조명 전 ‘메이투데이’는 지비커미션 전과 옛 국군병원을 전시 장소로 공유하고 성격도 비슷해 보이지만, 따로 구분되는 전시회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과 은암미술관에서는 역사, 기술, 소비 등을 화두로 대만과 스위스, 한국 작가들의 파빌리온 프로젝트가 열리는 중이다.광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