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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by 이성근 2019. 5. 31.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저자 로버트 파우저|혜화1117 |2019.05

   

그는 각국 도시 생활자이며 탐구자다. 그에게 도시란 여행자로 스치는 장소가 아닌, 일상의 터전이며 삶의 기반이다. 어디에서나 경계 밖 이방 인으로 살지 않았으며 기꺼이 그 도시의 일원이 되었다. 얼핏 보이는 도시의 풍경보다 그뒤에 쌓인 시간과 도시를 이루는 수많은 입자야말로 그의 관심사다.

 

미국 앤아버에서 태어났으나 주로 이 도시 밖에서 살았다. 고교 시절 도쿄에 두 달여 다녀간 이후 여러 대륙의 수많은 도시에 머물렀다. 한국과 일본과의 인연은 여러모로 남다르다. 서울, 교토, 대전, 구마모토, 가고시마 등의 여러 학교에 재직하며 짧게는 1년 반, 길게는 13년여를 살았다. 서울과 교토 등에 살면서 한국과 일본의 여러 도시를 수시로 다녔으며 그 중에서도 전주와 대구 등과의 인연은 10여 년이 넘어간다. 이외에도 학업을 위해 살았던 더블린은 물론 런던과 뉴욕, 어 머니가 말년에 살았던 라스베이거스 역시 그에게는 늘 어제 본 듯 선한 도시다. 이밖에 미국과 유럽의 여러 도시에도 매우 익숙하다.

 

여러 언어 사용자이기도 한 그에게 사는 도시의 언어는 경계 안으로 들어가는 유용한 도구다. 언어학 전공자로서 모어인 영어 외에 한국어, 일본어,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몽골어를 공부했고, 한문과 라틴어, 북미 선주민 언어, 중세 한국어 등을 따로 익혔다. 최근에는 에스페란토어를 학습 중이다.

 

이밖에 사진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는 단순히 애호가의 수준을 넘어 지속적으로 촬영 작업을 해오고 있다. 2016년 교토에서 열린 국제사진전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고, 2017년과 2018년 인천과 홍천에서 마을공동체 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이후에도 다양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사진 역시 모두 그가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찍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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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출생. 미시간 대학교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응용언어학 석사 과정을,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과정을 밟음.

 

1988년부터 1992년까지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 객원 조교수, 한국과학기술대학(현재 카이스트) 교양 영어 초빙 조교수 등으로, 1995년부터 2008년까지 일본 리쓰메이칸 대학교, 교토 대학교 외국어 교육론 강좌 부교수, 구마모토가쿠엔 대학교 경제학부 부교수, 가고시마 대학교 교 육센터 교양 한국어 부교수 등으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부교수로 재직함.

 

2018외국어는 어디에서 어디로,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졌는가에 관한 책 외국어 전파담을 출간, 많은 독자의 호응을 받은 바 있음. 이밖에 주요 저서로, 서촌 홀릭, 미래시민의 조건, 서울의 재발견(공저), Hanok: The Korean House등이 있고, 한 국문학의 이해Understanding Korean Literature (김흥규 지음)를 영어로 옮긴 바 있음. 동아일보, 한국일보, 중앙선데이, 넥스트 데일리등 국내 지면 및 영자 신문 코리아헤럴드, 코리아타임스, 코리아중앙데일리등에 꾸준히 칼럼을 게재해왔음. 2012년 한국어 교육과 관련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장을 받음.

 

목차

책을 펴내며

01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

앤아버Ann Arbor 미국, 미시간 주

02 이 도시가 다시 반짝일 날은 언제인가

도쿄東京 일본, 도쿄 도

03 갈등과 마찰 안에 흐르는 희망의 거친 힘

서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04 각각의 개인들이 오늘을 살다

대전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05 추억은 사라지고, 남은 건 건조한 부자 동네뿐

더블린Baile Atha Cliath 아일랜드, 렌스터 주

06 이곳에서 국가와 도시의 관계를 생각하다

런던London 영국, 그레이터런던

07 변방에서 누리는 평화로운 일상

구마모토와 가고시마熊本 & 鹿?일본, 구마모토 현과 가고시마 현

08 환상 속 디즈니랜드 밖, 이제 무엇이 될 것인가

교토京都 일본, 교토 부

09 지금도 이곳은 꿈꾸는 자들의 도시

라스베이거스Las Vegas 미국, 네바다 주

10 진한 역사의 향기로 한국 도시사의 상징이 되다

전주와 대구 대한민국, 전라북도와 대구 광역시

11 “고향 없는 자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황금의 문 곁에서 나의 램프를 들어올릴 터이니

뉴욕New York 미국, 뉴욕 주

12 도시 재생을 둘러싼 고군분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프로비던스Providence 미국, 로드아일랜드

 

출판사 서평

우리에게 도시란 어떤 의미일까. 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이자 기반으로 삼는 곳이면서 동시에 도시에서의 삶이란 피곤하고 복잡한 일상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것뿐일까. 어떤 이들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곳이면서 또 어떤 이들에게는 선망의 공간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이 도시를 떠나 저 도시로의 이주를 꿈꾸기도 하고, 짧은 시간일지언정 다른 도시로의 여행을 계획하기도 한다.

 

미국인으로서 세계 곳곳의 수많은 도시를 경험하고 살아온 로버트 파우저에게도 도시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에서 태어난 그는 우연히 고등학교 시절 경험한 도쿄에서의 두 달 이후 오히려 미국보다 다른 대륙에서 거의 평생을 살았다. 그에게 도시는 곧 삶의 터전이자 기반이었으며, ‘도시에서의 삶이란 삶의 중추이기도 했다.

 

많은 이들에게 미국인으로서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했다는 눈에 띄는 이력으로 익숙한 로버트 파우저의 새 책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는 그가 태어난 곳부터 시작해서 도쿄, 서울, 대전, 더블린, 런던, 구마모토와 가고시마, 교토, 라스베이거스, 전주와 대구, 뉴욕을 거쳐 지금 현재 살고 있는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까지 지금껏 그와 각별한 인연을 맺은 여러 나라 열네 곳의 도시에 관해 쓴 것이다.

 

영어를 모어로 삼고 있으나 일찍부터 숱한 언어의 순례자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도시를 거쳐 살아온 그에게 도시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흥미로운 대상이었다. 그는 어떤 도시에서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그 이면에서 도시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현재 자신이 밟고 선 땅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를 주의 깊게 살펴왔다. 그가 주로 주안점을 두고 보는 것은 도시의 역사적 배경과 지향성,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였다.

 

이런 그의 관심사에 따라 그는 비록 피부색이 다르고 모어가 다를지언정 이방인이자 경계인으로 살기보다 도시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그 도시의 사람들과 더불어 생활자가 되었다. 언어는 새로운 도시 경계 안으로 들어가는 유용한 도구였다. 그 도시의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은 도시와의 각별한 관계를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짧게는 1년 반, 길게는 십수 년 동안 인연을 맺어온 많은 도시는 그와 함께 늙어가는 친구이기도 하고, 새로운 자극을 주는 스승이기도 하며, 오랜만에 찾아가도 늘 반가운 제2의 고향이 되기도 했다.

 

도시란 무엇인가’, ‘도시는 무엇을 향해 움직이는가를 되묻게 하는

도시 생활자, 로버트 파우저의 매우 복합적인 시선과 태도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는 그러나 도시에서의 삶을 반추하는 개인의 추억담이 아니다. 도시를 소개하거나 분석하는 책도 아니며, 여행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의 전달이 이 책의 목적도 아니다. 로버트 파우저에게 도시는 생활의 공간이자, 일종의 탐구의 대상이었다. 어떤 도시에 발을 내딛거나 살게 될 때 그는 이 도시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볼까보다 이 도시를 구성하는 역사적 배경은 무엇이며, 이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먼저 살폈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살필 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고, 눈에 보이는 것이 많을수록 관심사는 더욱 더 깊고 넓게 펼쳐졌다. 그에게 도시에서의 삶이란 삶의 이력과 족적이 동반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평생 관심사의 대상이기도 하다.

 

어떤 도시에서는 고교 시절 보았던 그 도시와 50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의 달라진 모습을 통해 그곳의 변화상을 좇기도 하고, 어떤 도시에서는 사람들과의 깊은 소통을 통해 도시가 품고 있는 문제의 해법을 함께 고민하기도 한다. 또한 어떤 도시에서는 한 발 떨어져 그야말로 관찰자의 시선으로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객관적인 제안을 제시하기도 하고, 또 어떤 도시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애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나의 도시에 대한 그의 태도와 시선은 매우 복합적이다. 오로지 애정의 대상이거나 서늘한 판단의 대상으로 하나의 도시를 규정하지 않는다. 하나의 도시일지언정 애정과 추억과 아쉬움과 비판, 이후의 제언이 개별 도시마다 빼곡하다. 이러한 특징은 도시를 바라보지 않고 도시와 함께 섞여 보낸 두터운 시간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그는 1983년 서울과의 첫 만남 이후 2014년에 걸쳐 서울에서 약 13여 년을 살았고, 도쿄와 인연을 맺은 것은 무려 40여 년 전부터다. 교토에서는 6~7여 년을 살았고, 대전과 구마모토, 가고시마 등에서도 몇 해를 살았다. 뉴욕과 런던은 숱하게 다녀온 터라 골목골목이 모두 익숙하고, 한국에 사는 동안 틈날 때마다 찾은 전주와 대구에는 언제나 찾아가면 반가운 얼굴들이 있다. 책에 실린 고향 앤아버와 현재 거주지인 프로비던스, 유학생으로 머문 더블린, 어머니가 살고 있던 라스베이거스 외에도 전 세계 숱한 도시들을 때로 주유하며 때로 거주하며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도시의 특징과 특성이 고스란히 몸과 마음에 축적되어 있다. 그런 그였기에 도시는 무조건적인 비판이나 분석의 대상일 수도 없었고, 동시에 단지 환상적이고 아름답기만 한 꿈과 추억의 공간일 수는 없었다.

 

도시에서의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보통의 도시인들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미래를 꿈꾸며 안정적인 삶을 추구한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의 이동을 거듭하며 살았던 그의 삶의 족적은 쉽게 볼 수 없는 유형이어서 어쩔 수 없이 매우 독특하다. 그런 그 덕분에 우리는 도시란 무엇인지’, ‘도시는 무엇을 향해 움직이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되묻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질문은 우리 스스로 삶의 터전으로서의 도시뿐만 아니라 여행지로 꿈꾸던 막연한 어떤 도시의 이미지를 다시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를 획득하게 하는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한다.

 

<외국어 전파담>에 이어 처음부터 끝까지 한글로 쓴 도시 탐구기

서울, 도쿄, 마드리드, 시드니, 프로비던스, 교토 그리고 다시 서울을 거쳐 완성한 한 권의 책

2018외국어는 어디에서 어디로,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졌는가를 주제 삼은 <외국어 전파담>을 통해 많은 독자의 관심과 주목을 받은 로버트 파우저는 이 책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한글로 집필했다. <외국어 전파담> 출간 이후 수많은 독자에게 어떻게 하면 외국어로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그는 이번 책에서 집필의 과정을 일부 밝히기도 했다. 여러 언어의 섭렵자인 그 역시 외국어로 글을 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1년여 전부터 이 책의 집필을 구상한 그는 수록할 도시의 목록을 정리하고, 각 도시마다 어떤 내용을 담을까에 대해 주제를 생각한 뒤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할 수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지 않은 상태로 글을 쓰는 것도 어렵지만,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외국어로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그는 매우 세부적이고 일목요연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와 해야 할 이야기를 정리한 뒤에 집필을 시작했고, 그 덕분에 오히려 이 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주제에 집중할 수 있었노라 이야기한다.

또한 이 책의 구상부터 마지막 저자 교정에 이르기까지 서울, 도쿄, 마드리드, 시드니, 프로비던스, 교토 등을 오가며 지낸 그의 지난 1년여의 족적은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도시를 거쳐온 삶의 과정을 압축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 도시를 보며, 한국의 도시재생을 예측한다

로버트 파우저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

서평 시리즈의 가장 처음에 다룰 책은, 언어학과 도시를 연구하는 로버트 파우저 선생이 새로 낸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과 아일란드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일본과 한국에서 대학교수로 활동하다가 뜻하는 바 있어 독립학자(independent scholar)가 되었다. 지금은 미국에 거점을 두고 정기적으로 한국과 그 밖의 여러 나라를 오가며 책을 쓰고 사진전을 열고 있다.

 

한국에서 로버트 파우저라는 이름은 주로 서울 사대문 안의 개량한옥 밀집 지역 '서촌'의 모습을 보존하자는 운동을 이른 시기부터 벌인 사람으로서 기억될 것 같다. 이 운동에 대해서는 그가 2016년에 펴낸 <서촌 홀릭 - 되새길수록 좋은 서울의 한옥마을 이야기>에 자세히 담겨 있다. 얼마 전 서울에 온 그에게 서촌 개량한옥 보존 운동 당시의 상황에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오늘날 서촌이 재개발·재건축으로 인해 사라지지 않고 이 정도라도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데 대해, 저는 막걸리 한 잔 얻어 마실 자격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촌 개량한옥촌의 역사와 그의 '투쟁'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20세기 전기에 형성된 서울 사대문 안 개량한옥촌과 연관되어 한국에서 기억되어 온 그가,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두 권의 한국어 책을 펴냈다. 2018년의 <외국어 전파담 - 외국어는 어디에서 어디로,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졌는가>, 그리고 얼마 전 나온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 각국 도시 생활자, 도시의 이면을 관찰하다>. 앞의 책은 그가 평생 연구한 외국어 학습에 대한 이야기고, 이번 책은 그가 평생 살고 드나든 미국·일본·영국·아일란드·한국의 도시들에 대한 이야기다. , 이제까지 자신이 연구한 것과 살아온 곳을 이 2년 사이에 이 두 권의 한국어 책을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 모두 털어낸 것이다.

 

특히 이번에 나온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를 읽으면서 확인한 것은, 그가 근대 이후 미국인 아시아학자의 제3세대라고 할 수 있을 궤적을 거쳤다는 사실이었다.

 

근대 이후 미국인 아시아학자, 특히 일본학 연구자의 제1세대는 메이지 유신을 전후해서 외교관으로서 일본에 온 윌리엄 애스턴이나 메이지 정부의 초청으로 와서 일본인들을 가르친 어니스트 사토, 바실 챔벌레인, 라프카디오 헌과 같은 인물들이었다. 2세대는 20세기 초에 태어나 중국과 일본, 나아가 한반도와 동남아시아를 연구하고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 맞서 싸운 존 페어뱅크나 에드윈 라이샤워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로버트 파우저 선생은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하여 일본을 점령한 미군이 사용할 건물시설을 설계하던 아버지가 교토에서 보낸 사진과 스케치를 보며 머나먼 이국에 눈떴고, 고등학교 때는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도쿄의 일본인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중에 어느 덧 일본연구자가 되었다. 그러한 그가 일본의 수도이자 세계적인 메갈로폴리스 도쿄에 대해 말한 대목을 들어보자.

 

"도쿄는 중심이면서 늘 변방이었다. 에도 시대의 수도로서 일본 권력의 정중앙을 차지했으나 일본 역사의 중심인 천왕과 귀족 문화의 수도는 언제나 교토였다. (중략) 메이지 유신 이후 도쿄는 명실상부 아시아의 선두 주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도쿄의 시선은 런던과 파리에 가 있었고, 이들 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도시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중략)

하지만 언제나 서양의 도시를 바라보고 있는 한 도쿄는 역시 또 서양 문명의 변방일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거품 경제가 가라앉고 디지털 혁명에 따라가지 못하면서 점차 중심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도쿄는 다시 예전의 지위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2011년 이후부터는 얼핏 포기한 것처럼도 보인다.

언제나 변방의 자리에서 중심을 향해 시선을 두고 그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던 도쿄는 중심에서 맞이한 새로운 문제의 해답을 스스로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73~75)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호황세를 누리고 있기는 하지만, 청년층과 노년층은 저임금과 충분치 않은 노후연금으로 불안한 미래를 맞이하고 있는 일본의 경제 상황. 숱한 스캔들을 잇따라 일으킨 아베 신조 총리 세력의 대안을 여권에서든 야권에서든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일본 정치권의 무력함.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이 군사·경제적으로 일본을 능가하고, 대한민국의 경제외교력이 일본에 육박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본 시민사회의 과거지향적 세계관. 그가 지적하는 도쿄의 폐색감은, 비단 도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전체가 보여주는 무기력함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그가 21세기 초 대한민국 시민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 역시 납득할 만하다. 20세기에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의 남쪽에 탄생한 대한민국과, 16~20세기에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섬의 남쪽에 탄생한 아일랜드 공화국을 비교하면서 피식민지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은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도 흔히 하던 바였다. 하지만 로버트 파우저 선생이 두 나라를 비교하는 관점은 이런 류와는 조금 다르고, 또 시의적절하다.

 

"민족을 강조하면서 독립을 요구하고 외세로 인한 분단 상황을 통일로 극복하겠다는 양국의 태도는 1990년대 말부터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한국은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결같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며 분단의 극복만이 '민족의 염원'이다.

아일랜드는 달랐다. 유럽연합의 등장 이후 약 25년여가 흐른 뒤 어느새 과거의 지배자인 영국보다 훨씬 부유해진 아일랜드는 오랜 세월 남아있던 영국에 대한 감정의 앙금을 털어버린 듯했다. 스스로 잘 사는 복지국가가 되었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이 충만해졌고, 북아일랜드와의 통일은 관심사 밖으로 밀려났다." (160)

 

유럽연합 덕분에 식민지 모국인 영국보다 더 잘살게 된 아일랜드 공화국의 시민들이 더 이상 북아일랜드와의 통일에 열정적이지 않게 되었다는 지적은, 조선민주주의공화국 즉 북한과의 통일에 무관심한 대한민국 즉 남한의 청년층과, 이들 청년층을 이해하지 못하고 타박하기만 하는 남한 기성세대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을 설명해줄 수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축에 속하던 시절에 태어나서 성장한 세대와, 한국이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군사·경제력을 지닌 나라인 시기에 태어나서 성장한 세대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이다. 아일랜드 공화국이 경제적으로 영국을 능가한 것과는 달리, 한국은 아직 일본의 경제력을 능가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두 나라의 경제력이 근접해지는 시점에서, 한국 사회의 반일 감정은 일본에 대한 너그러움 내지는 무관심으로 바뀔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이뿐이 아니다. 그가 현재 살고 있는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의 작은 도시 프로비던스가 최근 십 여 년 사이에 경험한 도시 재생의 실패 사례는, 바로 지금 한국 곳곳의 도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도시 재생 사업의 미래를 예측하게 한다. 로버트 파우저 선생에 따르면, 1990년대까지 물리적인 도시 재생을 성공시킨 프로비던스는, IT·미디어·디자인·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이른바 '창조 계급'을 도시 안으로 유입시키는 정책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의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장기 불황에 빠져버렸다고 한다.

 

프로비던스가 미래의 희망으로 떠받들던 이들 창조 계급은 프로비던스를 버리고 이웃한 더 큰 도시 보스턴으로 떠나버렸으며, 프로비던스는 변방의 도시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도시에 사는 시민 모두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눈에 띄는 몇몇 사람들에만 의존해서 도시를 재생하려던 프로비던스의 모습을, 현재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 중인 한국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 아닐 것 같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의 도시 프로비던스. 혜화1117

 

이처럼 납득할 수 있는 대목이 거의 전부인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에서 딱 한 군데,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서울에서 강북 특히 사대문 안에 가장 강한 애정을 드러내는 한편, 강남은 "여전히 서울이 아닌 '뉴서울'"이고, "서울대 인근은 경기도의 공장 지대와 강남의 경계라는 애매모호한 지역으로 어떤 특징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구절이다(102).

 

다른 분이 쓰신 책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서평하는 본인의 책을 언급하는 것은 참으로 송구스러운 일이지만, 나는 많은 한국 시민과 외국인들이 서울이라는 메갈로폴리스의 핵심을 강북 사대문 안에서 찾고, 그 바깥의 서울 특히 한강 이남 지역의 서울시 구역과 수도권에 대해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데에 반대하여 지난해에 <서울선언>이라는 책을 냈다.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본질이 강북 특히 사대문 안에 있다는 주장이, 사대문 안을 제외한 서울시와 수도권 동서남북에서 40여 년을 살아오면서 '넓은 의미의 서울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온 나와 수 많은 사대문 밖 시민들에 대한 부정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사대문 안을 서울의 행정정치경제문화 중심지로 만드는데 방해가 된다고 간주된 것들은 사대문 바깥으로 밀려났고, 서울시를 한국의 행정정치경제문화 중심지로 만드는데 방해가 된다고 간주된 것들은 서울시 경계 바깥으로 밀려났다. 나는 이렇게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시설들이야말로 서울의 가장 밑바닥을 떠받치고 있는 가장 서울적인 존재들이라고 생각하며 서울과 수도권의 경계를 걷고 책을 썼다.

 

이 한 대목을 제외한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의 나머지 모든 부분에는 동의할 수 있고 배울 점이 많았다. 또한 1980년대부터 그가 직접 찍어 온 서울대전전주대구의 모습은 내가 살아보지 못한 한국의 도시들에 대한 그리움을 주었다. 특히 아직 1993년 엑스포를 치르지 않았고 신도시도 들어서지 않은 1988년에 대전 삼익아파트에서 내려다 본 대전 시내의 모습은, 바로 오늘도 서울시와 수도권의 경계에서 만나게 되는 광경을 나에게 떠올리게 했다.

 

"특별한 랜드마크는 찾아보기" 어려운 대전은 바로 "그 평범함 때문에 인상적"이었다는 그의 회고. 나는 바로 그러한 "평범함 때문에 인상적"인 도시를 만날 수 있는 영등포를 걷고, 부평을 걷고 있다. 그와 나는 도시에 대해 어떤 부분에서는 완전히 같은 의견을 갖고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만날 수 없는 간극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 같다.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를 읽으면서 감탄과 슬픔을 동시에 느낀 이유다. /김시덕

 

서촌 홀릭 되새길수록 좋은 서울의 한옥마을 이야기 저자 로버트 파우저|살림 |2016.04

로버트 파우저는 1983년에 혜화동에서 한옥 생활을 시작하면서 한국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이웃과 가까이서 소통하는 한옥마을의 정취, 자연을 벗하며 일상에 휴식을 가져다주는 한옥에서의 삶, 한국의 정서, 문화를 사랑하게 된 그였지만, 한국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특히 전통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에서 한국이 지향하는 변화의 방향은 아주 특이했다.

 

[서촌 홀릭]19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이 어떻게 변해왔고,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그의 삶과 기억을 통해 생생하게 이야기한다. 서촌에 매료되어 1년간 서촌지킴이로 활발하게 활동한 어느 지식인의 눈으로 본 한국의 매력에 대한 비평도 담았다. 너무 익숙해서 의식하지 못하거나 간과한 한국의 독특한 정서와 장점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런 장점들을 국제 사회에서 어떻게 소개할 것인지를 제안한다.

 

목차

책머리에: 내가 사랑한 한국들을 기억하며

서촌지간

보존은 선이고 개발은 악일까?

일본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다

서울, 발전과 보존 사이에서

서촌과 교토에서 만난 살아 있는 문화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라고요?

1988년의 혜화동, 2012년의 체부동

한옥, 그리고 사계절의 미학

가능성을 보여준 두 도시

대중문화는 국가 브랜드가 될 수 없다

아파트 샤먼과 추는 춤

모든 언어에는 생동감이 있어야 한다

꼭 맞는 것은 따로 있다

북촌과 전주에 생긴 부티크 동네

변화에도 흐름이 있다

아름다움 안에서 생활하다

나를 감동시킨 익선동

옛날 한식 밥상을 그리워하며

나는 골목의 정취가 좋다

어락당을 뒤돌아보며

맺음말: 서촌에서 두 번째 인생을 꿈꾸며

 

내가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1982년이다. 서울은 매순간 엄청난 속도로 변해갔다. 서촌은 2000년이 지난 후에도 지금처럼 뜨는 동네는 아니었다. 단지 여전히 1980~90년대의 정취를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곳이었다. 나는 그런 서촌에 매료됐다. 그러다 서촌이 재개발로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촌지킴이로 나섰다. 작은 골목 사이사이에 숨은 한옥마을과 서울의 역사성이 바로 도시 재생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촌의 가치가 있다.”

 

그가 보기에 한국은 그동안 국제사회에 자신을 알리려고 노력할 때 외국인이 흥미 있어 할 만한 주제(한옥, 전통 문화, 미술, 음식 등)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중요하다는 논의(독도, 위안부 문제)만을 세계적으로 강조해왔다. 국가 브랜드로 응용하고 홍보할 수 있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한류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와 K-pop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업의 콘텐츠가 국가의 경쟁력으로 연결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문화를 이용하거나 시대에 맞추어 전통을 개발하지 않는 심리,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전통은 부끄럽거나 고루하다고 여기는 한국의 분위기는 그에게 답답함을 느끼게 했다.

 

특히 한옥마을이 그랬다. 무조건 옛 건축물을 없애고 새로 지으려고만 하는 한국인의 재개발을 지은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쉴 새 없이 모습을 바꾸며 서구화되는 서울의 모습과 한국의 문화를 지켜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러던 중 일본의 대학 강단에 서게 됐다. 15년 동안 일본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도 그는 꾸준히 한국을 방문했다. 한류의 유행을 지켜보면서도 가장 한국적인 것을 생각했다. 책에는 전통을 지켜나가는 일본의 방식과 한국의 개발병을 비교하며 한국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짚어낸다.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는 서울에서 서촌을 발견했다. 매일 빠르게 변하는 서울의 중심에 가장 변화가 느린 마을, 서촌이 존재한다는 것은 반가움이자 충격이었다. 그는 서촌의 정취에 단번에 매료됐다. 21세기에도 1980년대 끝자락의 정취를 뿜어내는 이 작은 한옥마을에는 남다른 힘이 있었다. 바로 전통성이었다.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맞게 한옥이 조금씩 수선됐지만 원형이 보존된 집이 많았다. 낮은 담벼락, 이웃간의 소통, 네트워크처럼 집과 집을 연결하는 골목길 등, 주거 문화도 도시의 옛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한국의 전통성이 시대에 맞추어 조금씩 변화된,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응집되어 있었다. 한옥마을에 대한 그의 사랑은 종로구 체부동에 있는 한옥을 대수선하여 어락당이라는 집을 짓고 생활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이 책은 19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이 어떻게 변해왔고,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그의 삶과 기억을 통해 생생하게 이야기한다. 서촌에 매료되어 1년간 서촌지킴이로 활발하게 활동한 어느 지식인의 눈으로 본 한국의 매력에 대한 비평도 담았다. 너무 익숙해서 의식하지 못하거나 간과한 한국의 독특한 정서와 장점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런 장점들을 국제 사회에서 어떻게 소개할 것인지를 제안한다.

 

로버트 파우저는 한국 사람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한국만의 정체성을 정립하기를 당부한다. 덧붙여 이 정체성은 수많은 선진국에서 본받을 것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없어지지 않고 살아 있는 한국 특유의 성향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재 정권과 군사 정권에서 벗어나 국민 스스로 민주화를 되찾는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본 지식인으로서의 소감을 말하며, 한국인이 더 나은 미래를 자국의 역사 안에서 찾아낼 것을 굳게 믿는 그의 문장은 한국인에게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전달한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

한국 문화와 한옥마을을 오랜 시간 탐구한 그가 한국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1990년대부터다. 한국의 전통가옥과 한국 특유의 정서에 매료된 그는, 한국에 머무는 외국인이 한국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돕는 영국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이사로 활동했다. 뿐만 아니라 서촌이 재개발 대상지가 됐을 때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서촌지킴이로 활동했을 만큼 서촌과 한옥마을에 대한 애정이 깊다. 한옥마을 순례자로서 서촌, 북촌, 익선동, 부산, 전라도, 대구, 인천 등을 방문하면서 느낀 오래된 도시의 아름다움을 기록한 그의 정성스런 사진과 글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지은이가 한옥마을 곳곳을 순례하며 깨달은, 한국의 전통성을 사랑하는 방법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실천 가능하다. 그 방법은 첫째, 한국의 정서를 일상에서 한껏 느끼는 것이다. 둘째, 서구화되는 것만이 밝은 미래를 안겨다줄 것이라고 맹신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 자국의 문화를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자부심을 갖는 것. 로버트 파우저는 80년대 경제 성장, 90년대 무한 발전, 그리고 스펙 쌓기로 이어지는 사회 흐름에 개인이 짓눌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영혼이 담기지 않은, 진실성 없는 변화는 어떤 가치도 만들어낼 수 없고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도 없다고 강조하며 한국의 개발병을 꼬집는다.

 

그는 세계 어디를 가든 한국인에게서 라틴적인 성향을 느껴왔다. 느긋함, 정다움으로 간추려볼 수 있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가 바로 한국의 전통성을 유지해주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서촌을 비롯한 한옥마을을 예로 든다. 변화의 속도에 저항하면서 현대인의 발걸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바로 한국의 정서가 살아 숨 쉬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한국의 매력을 일상에서 탐구하고 발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한 미래 가치의 씨앗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때로는 지식인의 냉철한 눈으로, 때로는 한동네에 사는 아저씨의 목소리로 독자들에게 다가서는 저자의 글에서 독자들은 한국 전통의 가치를 알아보는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우리가 그동안 몰라본 한국의 숨은 보물을 재발견하게 된다.

 

책속으로

물론 레트로가 무조건 좋을 수만은 없다. 나는 그 분위기의 어두운 면도 봤다. , 서촌이 가진 특유의 정취 때문에 나처럼 서촌에 빠지는 사람이 많고, 이것은 서촌이 상업화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서촌 고유 의 분위기는 지금 한국의 모습과 다르기 때문에 이곳의 정취를 반영한 카페, , 게스트하우스가 늘고 있다. 진짜 거주자가 조금씩 줄어든다는 것은 함께할 이웃이 떠나간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국 사람 사이가 없어지는 것이다. 사람이 없는 삭막한 서촌으로 변하고 있다. 서촌에 오랫동안 정을 붙인 사람으로서는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옛날을 모 르는 젊은 사람들이 서촌을 거닐면서 그 레트로적인 분위기를 소비하 는 모습도 아름답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이 좋아한다는 것도 반가운 일이기 때문에 이 지점이 늘 딜레마다. _서촌지간중에서

 

한국에서 역사적 경관을 보존할 때 중요하게 살펴야 하는 점이 있다. 한 지역에서 같은 시기에 지어진 건물들은 한 덩이로 보고 가치를 높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건물뿐만 아니라 동네의 옛 경관 전 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박물관이 된다. 한국은 20세기에 식 민지, 전쟁, 빈곤, 급속한 공업화라는 변화를 겪으면서 도시 경관도 급 격히 변했는데, 1930년대에 지은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익선동은 역사적으로 매우 귀한 곳임이 틀림없다. _나를 감동시킨 익선동중에서

 

한국을 떠난 뒤 나 스스로에게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교토에서든, 서 울에서든, 뉴욕에서든, 다른 세상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한국에서 나 고 자란 한국 사람처럼 음식을 통해 향수를 느꼈다는 것이다. _음식에서 한국의 향수를 느끼다중에서

 

, 사회 문제에 대한 해답을 위해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높이 기 위해서 도시에 다양한 경관이 필요하다. 다양한 생활 방식을 지원해 야 한다. 서촌처럼 곳곳에 골목이 있고 작은 집이 많은 동네는 전체 도 시 경관 중에 아주 작은 하나일 뿐이지만, 그곳이 존재함으로써 서울은 재생의 씨앗을 갖는다. 언젠가 도시 재생 대안을 서울이 멋지게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_나는 골목의 정취가 좋다중에서

 

서촌에서 주민 활동을 할 때도 그랬고 어락당을 지을 때도 그랬지 만, 나의 대외적 이미지는 한옥 지킴이였다. 언론 취재도 많았기 때문 에 미디어에도 자주 등장했다. 서울대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 어떤 학생 이 정말로 한옥에서 사람이 살 수 있어요?”라고 내게 질문했던 것이 내 언론 노출의 시발점이었다. 한옥이 주거 공간으로서의 얼마나 큰 가 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의 문화로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를 홍보해야겠다고 결심하는 데 큰 동기가 됐다. _서촌에서 두 번째 인생을 꿈꾸며중에서 __본문 중에서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한국 도시 재생, 클리브랜드 벤치마크가 필요

지난 주에 오하이오 주에 있는 클리브랜드 시에 다녀왔다.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올해부터 프런트 인터내셔널(FRONT International)이라는 국제 미술 전시회가 열려 관람차 가게 됐다. 특이하게도 시내 여러 곳에 작품들이 전시돼 있어 관람하면서 도시도 답사하게 됐다. 이처럼 한 도시 여러 곳에 전시하는 것은 독일 카셀 시에서 5년마다 열리는 도큐멘타(documenta) 전시회나 매년 교토에서 열리는 쿄토그래피(Kyotographie) 사진 전시회 등이 있다. 미국에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작품을 보러 다니면서 클리브랜드와 2018년 여름 미국의 현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 중에 가장 즐겁고 인상 깊었던 것은 주민들의 대화였다.

 

<프런트 인터내셔널 조각 작품>

 

<프런트 인터내셔널 전시장 지도>

 

클리브랜드는 어떤 도시일까? 19세기 초에 설립되어 19세기 말부터 빠른 공업화로 인해서 급부상한 도시이다. D. 록펠러는 클리브랜드에서 사업을 시작해 크게 성공했다. 클리브랜드는 한때 미국의 5번째 큰 도시로 부상했지만 20세기 후반에 다른 공업 도시와 마찬가지로 쇠퇴했다. 21세기 초부터 도시 재생 사업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다소 회복하고 있다. 프런트 인터내셔널 전시회는 도시 재생 사업 중 하나다.

 

주민들과 대화하다 보면 대부분 클리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알려진 병원, 관현악단 그리고 미술관과 같은 기관이 많이 있다. 프로 스포츠가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공연들이 행해지고 있다. 녹지가 많고 주변에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도 많다. 주민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적 장소와 풍부한 문화생활에 대해 자랑한다. 거기에 도시가 크지도 않으면서 물가도 비싸지 않아 살기에 편하고 좋다고 한다.

 

<클리브랜드 시내 시장>

 

한국을 생각하면서 필자는 클리브랜드의 도시 재생에 관심을 갖게 됐다. 미국의 공업화는 18세기 말 동북부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시작해 점차 중부로 확산됐다. 20세기에 남부로 확산되면서 미국은 도시 중심 공업 국가가 되었다.

 

한국의 도시화와 공업화는 미국보다 횔씬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클리브랜드가 19세기 말에 급부상했지만 한국의 지방 도시는 더 빠른 속도로 커졌다. 그러나 한국 지방 도시는 클리브랜드와 같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는 기관을 만들지는 못했다.

 

경제 구조의 변화에 따라 한 도시가 쇠퇴하기 시작하면 인구도 감소하기 시작한다. 인구 감소에 따라 지역 상권이 어려워지고 도시가 전체적으로 활기를 잃는다. 이러한 악순환에 빠지면 재생이 쉽지 않다. 재생하려면 새로운 경제 기반이 필요하고 앞으로 도시를 지킬 사람도 필요하다.

 

<클리브랜드 시내 상가>

 

클리브랜드를 보면 이러한 도시 재생의 원리를 알 수 있다. 20세기 후반에 철강과 같은 중공업 기반이 약해지면서 클리브랜드가 쇠퇴하기 시작했고 20세기 말 IT와 같은 새로운 산업이 클리브랜드가 아닌 실리콘밸리와 같은 날씨 좋은 지역에서 부상했다. 클리브랜드가 IT 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해도 실리콘밸리와 경쟁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클리브랜드가 할 수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는 기관을 재생의 씨앗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미술관과 관현악단그리고 1995년에 완공된 로큰롤 명예의 전당은 관광 상업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멀리서 오는 사람들이 숙박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루 여행 거리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면 클리브랜드에서 소비가 일어나 경제 활성에 도움이 된다. 프런트 인터네이셔널과 같은 행사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유명한 기관과 문화적 자산은 씨앗일뿐이다. 씨앗을 키우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인구가 반드시 증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 감소하면 도시가 폐허가 된다. 클리브랜드는 미국 도시 가운데 인구 감소가 심각한 도시 중 하나이다. 1950년에 인구가 915,000 명으로 최고점이었으나 2010년 최근 인구 조사에는 397,000 명이었다. 인구감소세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많은 인구가 교외로 빠져 나갔지만 인구 감소가 더 심화되면서 클리블랜과 인접 지역은 1980년대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클리브랜드는 인구 감소가 없어야 했고 도시의 활기를 되찾으려면 인구가 증가돼야 했다. 동네마다 빈 집이나 폐허가 많으면 주거 환경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인구 밀도가 어느 정도 있어야 지역 상업도 활발해진다.

 

2010년대에 들어오면서 클리브랜드 인구 감소가 거의 멈추었다. 시내 곳곳에 새로운 아파트도 생기고 있고 오래된 동네에 주택을 수리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지역 내에서 이사 온 사람은 대부분이지만 다른 지역에서 오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이사 오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집 값이 싸기 때문이다. 클리브랜드는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에 비해서 집 값이 싸다. 해변 도시는 집값이 인금 인상보다 높아지면서 점차 살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클리브랜드와 같은 중부 도시로 인구 이동이 늘고 있다.

 

클리브랜드의 재생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소들과 저렴한 주택 때문에 사람이 조금씩 클리브랜드로 모여들고 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재미와 활기는 적지만 집 가격은 훨씬 매력적이다.

 

<클리브랜드 시내>

 

최근에 한국에서 유행하는 도시 재생 사업이 클리브랜드에서 벤치마킹을 한다면 명성이 있는 기관과 값싼 주택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병원, 대학, 각종 문화 기관이 명성을 얻고 주택이 싸면 인구 감소와 상업 공동화 속에 재생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인센티브가 있어야만이 도시 재생이 될 수 있다. 한국 도시는 1950년을 조금 지난 클리브랜드와 비슷한 상황이지만 쇠퇴의 속도가 가속화하기 전에 미래의 경제와 인구 구조에 맞는 도시 재생 정책을 도입했으면 좋겠다./2018-08-28 Nextdaily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사라져가는 서점의 생존법

2010년대 초에 미국에서 서점이 사라질 위기에 빠졌다. 필자의 고향인 앤아버에서 개업한 버더스(Borders Books)이라는 큰 서점 체인이 폐업하면서 작은 동네 책방도 하나 둘 문을 닫았다. 그런데 2015년쯤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네 책방이 이벤트를 통해서 지역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지역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동시에 서점과 카페, 서점과 바 등 새로운 형태의 작은 책방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제 뜨는 동네는 한 작은 책방이 꼭 있어야 할 만큼 서점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필자가 사는 프로비던스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리프라프(Riffraff)’라는 새로운 동네 책방이 얼마 전에 문을 열었다. 인문학 신간을 파는 작은 매장에 칵테일 바를 운영하고 있다. 바에서 커피도 팔지만, 유행하는 수제 맥주집에서 구하기 어려운 칵테일은 사업의 중심이다. 디자이너를 고용해서 꾸며진 공간이라 색다른 것을 찾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공간이다.

 

이 책방 바의 웹사이트를 보면 주인은 2년 전에 이 지역에 책방을 열기 위해 뉴욕에서 이사 온 부부이다. 이 부부의 소개를 보면 남편은 뉴욕에 유명한 책방에서 일하고 출판사 편집일도 했다. 부인은 파리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고 프랑스어 문학을 영어로 번역하고 있다. 넓은 미국 지역 중에 왜 프로비던스를 선택했는 지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부인이 대학 시절을 프로비던스에서 보냈다.

 

<리프라프 웹사이트에 게시된 책 매장 전경>

 

웹사이트를 보면서 책방으로서는 그다지 관심을 끌만한 것 같지는 않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고 창업의 도전을 축하할 일이지만, 왜 관심도가 떨어졌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시대의 변화이다. 지금은 2018년이다. 미국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영향권에 있다. 겉으로 보면 서점이 활성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서점은 더 이상 서점이 아니다. 이벤트 중심으로 고객 사랑의 받는 서점은 이벤트 기획자나 지역 활동가의 성격을 갖게 되었고 카페나 술집을 운영하면서 책을 파는 서점은 음식점의 성격이 강하다. 이런 이유는 책만으로는 사업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책방바의 매출은 거의 술과 커피가 차지할 것이다.

 

<리프라프 카페 공간>

 

그렇게 보면 책만으로 매출이 올리는 서점은 오히려 계속 줄어 들고 있다. 인터넷 판매의 확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고 앞으로 그럴 것이다. 책이 브랜드 창출을 위한 장식물에 불과하게 된 씁쓸한 현실이다.

 

<여러 책에서 한 장을 뽑아서 화장실 벽지를 장식했다.>

 

예전에 큰 서점은 브랜드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로 선택의 범위와 고객 서비스에서 차별성을 만들어 소비자 사이에 브랜드를 형성했다. 예를 들면 오랫동안 종각 근처에 자리를 지켰던 종로서적은 크기와 위치 면에서 매력적이었지만, 더 큰 교보문고가 문을 열자 규모 면에서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브랜드의 핵심은 특정한 소비 계층의 주머니를 여는 것이므로 요새 뜨는 동네 서점은 소비자가 좋아하는 것을 중심으로 분위기를 만든다. 소비자가 흥미를 끌만한 것들이 없다면 책을 잘 선정해서 팔아야 한다. 이것은 미술계에서 하는 큐레이팅이라고 볼 수 있다. , 미술관이 소장품을 큐레이팅하듯이 책방은 판매하는 책을 큐레이팅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따라 책방을 큐레이팅해야 하는 것은 바로 두번째 측면이다. 리프라프를 검색하다 보면 이 책방바에 대한 평이 대개 두 개로 갈려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완전 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조건 5점으로 평가하지만 매장이 작고 선택 범위가 좁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3점정도를 준다. 그런데 평가 내용을 보면 3점을 준 사람은 주인 큐레이팅이 해 주겠다는 태도에 대한 거부감과 불편함을 느낀다.

 

직접 가봤더니 필자도 그렇다. 보통 서점에 가면 관심이 있는 책을 자유롭게 보고 싶지, 남의 큐레이팅으로 관리를 받고 싶지 않다.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은 올라오는 포스팅을 큐레이팅해 주고 구글은 검색 결과도 큐레이팅해 준다. 매일 뭘 하든 간에 큐레이팅과 부딪치기 때문에 서점에 가면 다양한 책을 볼 수 있는 자유를 원하고 호기심을 갖고 지식을 스스로 큐레이팅하고 싶다.

 

사람들은 큐레이팅의 지배가 심해질 수록 그것을 거부하는 자유를 더 찾게 될 것이다. 있어 보이지 않아도 되는 공간, 남의 정신적 구속을 받지 않은 공간은 앞으로 더욱 귀할 것이다. 서점이 그러한 자유를 제공하는 공간이 될 때 다시 살아 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한 책방바는 그냥 칵테일 라운지로 장사하면 된다./Nextdaily 2018-04-02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미국 대통령들의 도시관과 세계관에 미친 영향

올 가을은 미국은 중간 선거 때문에 바빴다. 이번 선거는 그간의 중간 선거와 달리 사람의 관심이 높았고 현직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전직 대통령 바락 오바마는 선거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선거 결과는 예상대로 민주당이 하원을 8년 만에 장악했고 공화당은 상원을 유지했다. 100년 동안 대공황시절1934년과 2001911일 테러 1년 후에 치른 2002년 중간 선거를 제외하고 대통령 소속당이 의석을 잃었기에 예상된 결과였다.  중간 선거가 끝나자 트럼프 대통령은 슬럼프에 빠지고 오바마 전 영부인 미셸 오바마는 첫 책 비커밍을 출간했다. 자서전이었지만 아주 짧은 문장의 트럼프 대통령에 비판이 화제가 됐다. 중간 선거 운동 중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거세게 비판했다. 비판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던 트럼프는 오바마 부부의 비판에 강하게 반박했다. 현직과 전직 대통령 사이에 불화는 암암리에 있었지만 공개적으로 표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와 오바마의 가문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역대 미국 대통령과 달리 두 가문은 미국 도시와 깊은 관계가 있고 서로 불화가 생긴 것도 각자의 도시관과 관련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시 퀸스에 사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퀸스와 브륵클린 지역에서 임대 아파트 투자와 관리하는 회사를 운영했고 트럼프는 어릴 때부터 부동산을 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동안 아버지 회사 직원으로 일하면서 월세를 받는 일을 했다. 이 때 임차인과 갈등이 많아 일이 힘들었다고 1987년에 출간한 책인 거래의 기술에 썼다. 아버지와 경쟁심이 있어서 서민이 많이 사는 뉴욕 외곽지역보다 뉴욕 부자가 밀집한 맨해튼에서 활동하고 싶었다. 이렇게 보면 도널드 트럼프는 젊을 때부터 서민보다 부자를 좋아했고 부는 본인의 노력으로 모인다고 믿었던 것이다.

 

1970년대 말 맨해튼에 진출할 기회가 생겼다. 맨해튼 한복판에 큰 호텔이 문을 닫게 되었는데 트럼프가 시에 재산세 면제 조건으로 그 호텔을 사서 리모델링하고 그랜드 하얏트 뉴욕으로 재생시켰다. 1980년대 또 다른 좋은 기회가 생겼다. 유명한 5번가의 가장 좋은 위치에 문을 닫은 백화점의 건물을 사서 철거하고 트럼프 타워를 지었다. 그 백화점 건물에서 역사적 가치 있는 부분을 보존했으면 좋겠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트럼프는 무시하고 지하 부분을 빼고 전면 철거했다. 비판을 받자 보존 작업이 진행됐고, 지하부분이 새 건물에 재활용 돼 보존됐다. 그 후 호텔과 아파트뿐만 아니라 골프장과 카지노를 많이 지어 부동산 대부가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건축 행위를 보면 젊을 때 형성했던 부자에 대한 애착이 보인다. 트럼프 타워의 대상 고객층은 부자였고 그 후에 지은 건물도 그렇다. 골프장도 마찬가지다. 트럼프에게는 도시의 주인은 경쟁에서 승리한 부자이기 때문에 건축 행위의 목표는 부자를 위해 도시 공간을 재개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뉴욕과 같은 복잡한 세상에서는 반발하는 의견도 많다. 도시 공간은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은 아니므로 트럼프도 여러 갈등에 직면했다. 이 때는 시에 새로운 건물로 인한 이익을 강조하면서 사업을 밀어 부쳤다. 그는 정치가는 귀찮은 존재이고 돈을 좋아하기 때문에 세게 나오면 자신의 뜻대로 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버락 오바마는 도널드 트럼프와는 정반대이다. 오바마는 하와이에 태어났고 인도네시아에 살다가 하와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부모가 이혼하고 케냐 출신 아버지가 본국에 돌아가 아버지 없이 자랐다. 로스엔젤레스 교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컬럼비아 대학교에 편입해 처음으로 뉴욕에 살았다. 트럼프와 달리 한 곳에 뿌리 내리지 않고 자주 이사하며 외로운 시절도 많았다.


오바마는 1980년대 전반에 뉴욕에 살았다. 오바마가 서민 동네에 살 때 트럼프는 5번가 입성을 꿈꾸고 있었다. 트럼프 타워가 완공된 1985년에 오바마는 시카고에 이사해 흑인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 가톨릭 복지 재단에서 공동체 활동가(community organizer)’로 활동했다. 담당한 일 중에 하나는 시카고 시가 운영하는 사회 주택의 임차인 권리 운동이었다. 이 때 오바마는 서민을 이해하고 활동하면서 주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신뢰를 쌓았다.

 

시카고에 3년 살다가 하버드 법대에 입학한 오마바는 시카코 출신 미셸을 만나 시카고와 인연이 깊어졌다. 졸업하고 시카고에 돌아가 미셸과 결혼했다. 시카고 대학교이 있는 하이드 파크이라는 지역에 뿌리를 내려 백악관으로 이사할 때까지 거기 살았다. 시카고는 흑인과 백인이 서로 밀집해 사는 도시로 유명하지만 하이드 파크는 여러 인종이 사는 다양한 지역이다. 시카고 대학교는 이 지역에 있고 화이트 컬러가 많이 살고 있는데 신혼 오바마 부부도 그랬다. 여기서 오바마는 시카고 정계에 네트워크를 만들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하이드 파크가 다양하고 안정된 동네이지만, 주변은 흑인이 밀집해 사는 남쪽’(South Side)이다. 이 상황에서 오바마 부부가 미국의 태생적 인종 차별 문제를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하이드 파크에 인종의 벽을 넘어서 같이 살 수 있는 가능성도 봤다. 오바마 부부의 인종 차별에 대한 고민과 그 해결에 대한 희망은 시카고라는 도시에서 공동체에 활발하게 참여하면서 형성되었다.


통계를 보면 미국의 도시 비율은 80%이며 처음 50% 넘은 것은 1920년이었다. 도시화 비율이 높지만, 많은 미국인은 도시를 꺼리고 큰 도시 주변 교외 지역에 살고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시카고 하이드 파크에서 백악관으로, 트럼프는 뉴욕 5번가에서 백악관으로 이사했지만, 예외적이다. 20세기 역대 대통령 중에 대부분은 전원 주택이나 목장으로 이사했다. 도시에 살아본 역대 대통령은 많지만, 도시가 세계관에 크게 미친 것은 오마바와 트럼프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도시는 승자의 놀이터라면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정의로운 세상 구축의 실험장이다. , ‘아메리칸 드림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경쟁하는 것은 미덕이다. 하지만 사회가 정의롭지 못한 부분이 많아 그 꿈을 이루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경쟁과 정의, 이 두 세계관은 트럼프와 오바마의 갈등이자 21세기 많은 도시가 처한 갈등이기도 하다./Nextdaily 2018-11-20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도시,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을 들어야

얼마 전 필자가 거주하는 프로비던스 지역의 뉴스를 검색했다. 프로비던스는 전통적으로 히스패닉계 이민자가 많이 사는 동네로 비영리 협동조합 형태 수퍼마켓을 위한 모금 운동에 대한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주유소가 있었던 오염된 빈터를 환경 기준에 맞게 정화하고 거기에 수퍼마켓용 새 건물을 지을 계획이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면서 지역 상업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는 사업이다. 이 계획을 주도하는 계층은 주로 10년 사이에 해당 지역에 새로 유입한 대졸 출신의 젊은 백인들로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이다.

 

그런데 지역에 도움이 될 만한 계획을 찬성하지 않는 진보 세력이 있다. 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하는 세력인데 현재 히스패닉계 이민자와 관련이 있다. 미국의 다른 도시 협동조합 수퍼는 일반 수퍼보다 비싸고 고객층은 주로 고학력 백인이다. 이 지역은 젊은 백인의 유입으로 주택 임대료가 많이 올랐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수퍼가 이 지역에 들어오면 백인의 유입이 가속화되고 임대료가 더 빠른 속도로 상승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협동조합 수퍼를 비판하는 사람은 시가 나서서 빈터에 저렴한 사회 주택을 짓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같은 날에 프로비던스에서 먼 덴버 시에 있는 한 카페는 젠트리피케이션 덕분에 동네가 좋아졌다는 간판 때문에 그 카페 앞에서 항의하는 시위까지 벌어졌다는 기사도 읽었다. 덴버에 가 본 적이 없어서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기사에 따르면 시내에서 가까운 히스패닉계 이민자가 많이 사는 지역에 최근 젊은 고학력 백인이 많이 들어와 임대료 상승은 물론 서민 주택을 철거하고 비싼 매매용 고층 아파트가 많이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그 지역에 거주했으나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주민들은 빠른 속도로 쫓겨나고 있다.

 

프로비던스와 덴버의 사례를 보면 미국에서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논쟁은 뿌리 깊은 사회적 갈등을 반영하는 것이다. 프로비던스의 오염된 빈터에 협동조합 수퍼를 짓는 계획이 일각에서는 찬성보다는 오히려 침투의 상징이 되어 반감을 사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협동조합 수퍼 찬반 논쟁은 같은 진보주의자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보수는 어떤 의견일지 궁금하다.

 

프로비던스 협동조합 수퍼에 대한 보수의 입장을 찾지 못했지만, 도시를 보는 보수의 일반적 입장을 보면 그 생각을 쉽게 알 수 있다. 보수는 지역의 공동체보다 부동산 프레임으로 본다. , 땅과 건물은 개인 것이고 법적 허용하는 범위 안에 개인이 알아서 활용하면 된다. 그리고 한 지역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정부가 개입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빈터를 수퍼의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환영할 것이고 그 수퍼가 상업적으로 성공하면 축하할 만한 일로 본다.

 

덴버의 카페에 대한 글은 보수적 경제신문인 더 월 스트리트 저널에서 찾았다. 이 기사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변화를 좋게 평가했다. 지역 인구가 많아지면서 사업도 활성화되었고 지역도 좋아졌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반대하는 사람은 경제를 모르면서 지역 현실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보는 세 가지 입장이 있다. 사회적 평등을 구축하려고 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고 공공의 역할 확대를 주장하는 그룹, 협동조합 수퍼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을 비판하면서 살기 좋은 동네를 주장하는 그룹,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부동산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는 그룹이다. 이 세 그룹 사이에 가장 큰 차이는 지역 변화에 대한 입장이다. 첫 번째 그룹은 지역 변화를 원하지 않다. 두 번째 그룹은 허락된 변화’, 즉 취향과 유행에 맞는 변화를 원하다. 세 번째 그룹은 변화가 발전이라고 생각하고 변화가 많은 지역은 발전하는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회적 논쟁이 그렇듯이 개인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른 문제이므로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에 참여해야 사회적 합의 속에서 바람직한 방안을 찾을 수 있다. 현재 미국을 보면 대부분의 지역 정부들이 변화가 발전이라는 생각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어 변화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정치의 근본적인 변화는 업적이 될 수 있어 정부 입장에서는 변화를 좋아한다. 반면에 많은 시민 단체는 지역 변화를 반대하면서 이미 개발의 편을 둔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지역 정부와 시민 단체 사이의 논쟁 속에서 주민은 여전히 생활하고 있고, 상점도 운영되고 있고 오염된 빈터도 존재하고 있다. 교육, 범죄, 교통 시설이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큰 변화는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역 정부를 믿지도 않고 시민 단체와는 정서적으로 거리가 있어 아예 논쟁을 피하는 침묵하는 다수가 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은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정치 제도가 변하지 않은 한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적다. 지역과 도시마다 조금 다르지만, 현대 일반 도시가 선거를 통해서 시장과 시의원을 뽑는다. 이 과정에서 개발을 원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가 크고 침묵하는 다수는 그대로 있다. 개발은 경제적 이익에 관계하는 문제라 영향력은 제일 크지만, 변화를 원하지 않은 사람은 결집을 잘하므로 무시하기 어렵다.

 

여기서 대안이 있다. 민주주의의 출생지 아테네는 추점을 통해 시민을 행정에 참여시켰다. 한 번에 몇 명을 뽑고 팀으로 일을 배우고 활동했다. 많은 시민 참여를 위해 재임은 할 수 없었다. 미국 법조계는 이미 배심제를 추첨을 통해 뽑아 의무적으로 참여시킨다. 현대 투표와 군 복무는 선택이지만, 배심제만 시민의 의무이다.

 

시 의회의 크기와 구성은 도시 마다 달라 작을 경우에 추첨을 통해 뽑은 시민 참여단의 대표 한 명은 시 의회에 참여하고 시민 참여단이 합의한 대로 결의에 투표할 수 있다. 의회가 클 경우 시민 참여단의 모든 사람은 의회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추첨을 통해 시민 대표를 뽑으면 건강 또는 다른 개인적인 이유로 못할 경우 다시 뽑으면 된다.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 배심제처럼 소정의 수고료를 줄 수 있고 자료와 교통편의 등을 돕는 제도를 마련하면 된다.

 

시민 참여단침묵하는 다수로 구성될 보장은 없지만 그 확률이 높다. 정치인과 시민 단체가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특정한 이익을 위해 보장한 이야기가 아닌 현실적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젠트리피케이션의 복잡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논의의 틀을 크게 넓힐 수 있다. 이것은 미국 도시에 해당하는 이야기만이 아니라 서울과 같이 시민 공동체 활동을 지원하는 한국 도시들도 생각할 만한 제도이다. 2018-01-03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이제 한국은 건축 외교가 필요하다

2012년 여름, 뉴욕을 방문한 적이 있다. 무더위도 피하고 멋진 작품도 감상할 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갔다. 미술관은 크고 볼 것이 많아서 하루 종일 있어도 시간가는 줄 몰랐다.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 내에 있는 한 카페에서 쉬고 있는데 창밖에 펼쳐진 센트럴 파크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초록이 펼쳐진 센트럴 파크에 멋진 한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필자는 서울 체부동에 있는 한옥을 수리할 계획이었고 조만간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라 한옥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미술관을 나섰다.

 

미술관을 나온 것은 늦은 오후였다. 센트럴 파크에 가고 싶어서 바로 지하철역으로 가지 않고 미술관 뒤쪽으로 걸었다. 걷는 도중에 한옥에 대한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센트럴 파크는 오래된 공원이라 나무들이 크고 멋지다. 공원의 언덕도 부드러워서 한옥을 잘 지을 수 있는 자리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부드러운 언덕 위해 멋진 누마루가 있는 한옥에서 거문고 연주를 들으면서 한국 차를 마시는 모습을 떠올리며 한 순간 젖어들었다.

 

그 후에 뉴욕에서 바쁜 일정을 보냈지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근처에 한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하게 됐다. 왜 그랬을까?

 

우선 한옥은 한국에서만 찾을 수 있는 독특한 집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특유한 건축양식이 적용된 한국의 대표적 문화 산물이다. 자국 문화를 외국에서 홍보하려면 특유한 문화 산물 중심으로 해야 다른 나라와 차별성이 생긴다. 차별성은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중요하다.

 

예를 들면 프랑스 샴페인이 유명한데 이는 샴페인이라는 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한정하기 때문에 그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예로 재즈를 들 수 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치열했던 1950-60년대에 미국 국무성은 미국 특유의 음악인 재즈의 해외 투어를 꾸준히 지원했다. 그 이유는 미국이 소련에 비해서 보다 자유롭다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다.

 

그런데 2012년 여름에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자 한국에서 K-pop을 내세우자는 논의가 활발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일반인들에게 한국은 싸이북한이라는 이미지만 떠오를 뿐 존재감이 약했다. 가수 싸이는 개인적으로는 독특하고 창의적 가수이지만 미국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는데 도움이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미국인의 세계관에서 보면 싸이는 좋아하는 가수 중의 하나이지 그가 한국인인 것에는 관심 갖지 않기 때문이다.

 

2012년 여름이 끝날 무렵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 체부동 한옥 수리 공사를 시작했다. 6개월 동안 거의 매일 공사를 지켜보면서 그 기간 내내 한옥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있었기에 2012년은 필자에게는 그래야 말로 한옥의 해였다. 2013년 초에 완공된 그 한옥의 이름을 어락당’(語樂堂)이라 짓고 이사했다.

 

밝고 따뜻한 봄날에 대청마루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센트럴 파크에서 떠올렸던 한옥이 생각났다. 필자가 한옥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어락당을 보러온 외국인 친구들은 모두 감동을 받고 돌아갔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한 때의 유행이었지만 한옥은 유행을 모르는 매력적인 문화 산물이자 유산이다. 물론 인구 밀도가 높은 대도시에서는 현실적 대안은 되지 못하지만 한옥은 미학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우수한 공간이다.

 

이렇게 매력적인 한옥을 센트럴 파크와 같은 눈에 띄는 장소에 짓게 되면 훨씬 의미가 커질 것이다. 짓겠다는 계획부터 지역에서 관심을 끌 수 있어 한국 문화에 대한 의식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장소가 되면 더 많은 관람객이 찾을 것이고 그들을 통해 더 많이 알려질 것이다. 바로 이것은 한국 문화에 대한 의식과 이미지를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일본 정원 찻집>

 

이런 점에서 한국의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은 미국에 전통 건축물과 정원을 많이 만들어 그들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접할 수 있게 했다.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에 소재한 피바디에섹스 박물관(Peabody Essex Museum)은 유길준(兪吉濬)의 유물로 유명하지만, 2001년에 18세기 중국의 지방 상류층 고택 한 채를 매입해서 미국으로 옮겼다. 음여당(蔭餘堂, Yin Yu Tang House)이라고 부르는 이 집은 이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 중 하나이다.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중국 고택 음여당>

 

또한 워싱턴에 있는 국립수목원에 국립 중국 정원2002년에 제안이 돼 드디어 2016년에 공사가 시작됐다. 이 정원 안에 누정(樓亭)과 같은 중국 전통 건축물들 몇 개 들어설 예정이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합의로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중국에서 예산을 주로 부담했다.

 

 

<워싱턴 국립 중국 정원 지도>

 

일본 정원은 몇 백 개가 있는데 이 중에 유명한 건축물이 있는 곳도 있다. 가장 오래 된 것은 189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원됐다. 일본 전통 건축물이 몇 개가 있고 일본 찻집’(Japanese Tea House)을 카페처럼 운영해 일본차와 과자를 즐길 수 있다. 1915년에 브루클린 식물원에 일본 정원이 개원됐는데 훌륭한 건축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일본 전통적 건물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쇼후소(松風荘, Shofuso)이다. 1876년에 미국 건국 100주년을 기념한 박람회의 일본 전시관이 있었던 자리에 지은 전통 가옥이다. 이 집은 1953년 나고야에서 지었고 미국과 일본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우호 관계를 상징하는 일본의 선물이었다. 일본 정부, 기업, 그리고 개인 기부자의 모금 운동으로 예산을 확보했다. 미국으로 보내 2년간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서 전시되었고 1958년에 필라델피아 현재 자리로 옮겼다. 뉴욕에서 전시하는 동안 관심을 많이 끌었고 전쟁 후에 일본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필라델피아 일본 전통 가옥 쇼후소>

 

그리고 또 다른 좋은 사례는 보스턴 어린이 박물관이다. 1979년에 보스턴과 교토 두 도시는 자매결연을 맺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교토 시가 100년이 된 교토의 전통 상가 주택인 마치야를 보스턴 시에 기증해 이 박물관 안에 옮겼다. 이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은 일본 전통 문화를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또한 역사적인 도시로서 인적 교류의 거점 중 하나가 됐다.

 

<보스턴 어린이박문관 교토 마치야>

 

이렇게 보면 전통적 건축과 정원을 활용한 건축 외교의 역사는 길다. 외국에서 자국 문화에 대한 의식과 이해를 높이면서 상대 나라와 우호 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필자는 더운 여름날 뉴욕 센트럴 파크에 있는 멋진 한옥 누마루에서 시원한 오미자차를 마시는 꿈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센트럴 파크가 아니라도 좋다. 워싱턴도 좋고 다른 장소도 좋다. 중요한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수하고 특유한 한옥에서 한국 문화를 즐기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면 좋겠다.

 

문화를 알리는 것은 일시적인 홍보나 전시, 행사 등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며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나 일본이 오래전부터 하고 있는 건축 외교는 한국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한옥의 멋진 모습과 그 속에 깃들인 철학은 분명 미국인, 아니 세계인들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2017-07-26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지하철의 사회학

서울에 오면 지하철을 많이 타게 된다. 서울처럼 지하철이 도시 생태에 깊이 들어간 도시가 그다지 많지 않다. 20세기에 런던, 뉴욕, 파리, 도쿄, 그리고 모스크바가 지하철 망이 많았지만,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서울, 베이징, 그리고 상하이에 넓은 지하철 망이 생겼다. 새로운 지하철 노선이 개통되면 도시가 점차 변해 시간이 지나면 지하철 도시가 된다.

 

지하철 도시는 긴 도로보다 지하철 역이 거점이 되며 역 근처에 주변 사는 사람을 위한 상업 시설이 들어온다. 도시의 지리를 지하철 역과 여러 노선 중심으로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서울은 지하철 전에 중심으로 생각했지만, 지하철 노선이 확대되면서 역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된다.

 

지하철 도시가 발달되면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지하철 문화가 형성된다. 예를 들면 도쿄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걷는 사람과 서는 사람들이 뚜렷하게 구별되고 걷는 쪽에 서면 시선이 엄격하다. 서울도 점차 그렇게 되고 있지만, 도쿄보다 아직은 느슨하다. 그리고 어떤 지하철에서는 간식을 먹어도 괜찮지만, 엄격하게 금지한 곳도 있다. 옛날 미국 수도인 워싱턴 지하철을 출근 시간에 탈 때 여성 화장하는 모습도 신기했다.

 

서울의 지하철을 이용하다보면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불편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필자는 지하철에서 80대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한 적이 있었다. 필자의 양 옆에는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은 휴대폰을 보고 앉아있었다. 할머니가 걷기 힘들 정도이어서 필자는 바로 자리를 양보했다. 그런데 몇 분 후에 근처에 있던 70대 중반의 할아버지가 젊은 여자 한 명에게 일어나라고 했다. 그 여자는 불쾌한 표정으로 일어났고 다른 차량으로 이동했다. 할아버지는 필자에게 앉으라고 했지만, 필자는 거절하고 할아버지가 앉았다.

 

이런 불편한 상황을 만드는 것은 간섭이다. 남에게 뭘 보여 주기 위해서 자리를 양보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고 필자와 할머니 사이의 일이었다. 주위 사람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개입하면서 일이 커지고 앉아 있었던 젊은 여자가 불쾌감을 가졌고 필자도 편안한 마음은 아니었다.

 

이 일에 대해서 한국 지인에게 설명했더니 비슷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세월호를 애도하는 노란 리본 때문에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폭언을 당한 지인이 있었고 노약자 석에는 아무도 없어서 노인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데도 앉지 않고 일반석에 앉아 있는 지인이 호통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들의 공통점은 간섭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간섭이 심한 것인가?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농촌 사회의 특성인 공동체 중심의 사회가 개인 중심의 도시화로 빠르게 변한 것이 큰 원인이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농촌 사회의 공동체 의식은 도시보다 몇 배 강하다. 같은 지역에서는 서로 많은 관심을 갖고 서로 돕는다. 농촌 사회는 독립된 개인이 모여서 필요에 따라 협력하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 의존하고 돕는 것이 생활화돼 있어 개인의식이 약하지만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그래서 농촌에서 다른 가족의 아이가 잘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야단을 치는 것은 간섭이 아니라 책임감과 애정의 표시이다.

 

현재 노인 중에 대부분은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지하철에서 젊은 사람에게 야단을 치는 것은 장유유서와 같은 옛 공동체의 윤리를 지켜야 된다는 생각에서다. 반면 젊은 세대는 도시에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개인의식이 강하고 간섭을 싫어한다. 좁은 도시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서 살기 때문에 간섭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행동을 관리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간섭이 공격으로 생각될 수 있어 종종 갈등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도시는 농촌과 달리 행동에 대한 제약이 많다. ‘금연표시가 대표적 사례이다.

 

이처럼 서울 지하철에서 자주 일어나는 세대 간의 갈등은 한국이 농촌 중심 생활에서 도시 중심 생활로 변한 것을 반영한다. 다른 선진국에서 그 과정은 100년이 걸렸지만, 한국은 30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으니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하철은 좁고 사람끼리 접촉이 많아서 바로 느낄 수 있고 식당과 같은 다른 공공장소에서도 비슷한 충돌을 종종 볼 수 있다.

 

지하철에서 표출이 되는 세대 간의 갈등에는 또 다른 원인이 있다. 지금의 노인들은 20세기 중반에 사회적 혼란기에 태어나고 자랐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물질적으로 어려운 생활 속에서 자랐다. 그들은 젊었던 시절 1960년대부터 경제 성장에 참여하면서 현재의 부유한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자부심을 느낀다.

 

반면에 젊은 세대는 물질적으로 풍요한 생활 속에서 자랐고 빈곤보다는 고용 불안과 같은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만큼 한국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윗세대들은 젊은 세대가 고마운 줄을 모르는 이기주의적으로 보이는 반면 젊은 세대는 윗세대의 사고는 화석화됐다고 보고 소통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옛날 세대와 젊은 세대는 생각이 다르고 생활 방식도 다르다. 농촌 사회는 은퇴의 개념이 약하다. 노인은 아이들과 같이 살면서 건강이 약해져 일할 수 없을 때까지 농사를 짓고 집안일에 참여한다. 그런데 도시는 집이 작고 생활이 바빠 부모를 모시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각자 살면서 노인들은 할 일이 없어서 경제적 어려움이 있고, 고독을 느끼는 등 점차 소외되고 있다.

 

급격한 도시화는 어쩔 수 없지만, 사회가 노인의 경제적 어려움과 소외감을 해결할 수 있다면 상황이 좋아질 수 있다. 언론에서 종종 오르내리는 한국의 노인 빈곤은 OECD 국가 중 최고이고 거의 50%에 이르는 놀라운 기록이다. 그 원인은 늦게 시작되고 빈약한 연금 제도에 있다. 연금은 노인 복지 정책 중 기본에 해당되는 것으로 연금을 강화하는 정책이 실시된다면 좀 더 사회가 나아질 것이다. 노인의 경제적 어려움이 완화되면 취미 생활 중심으로 새로운 할 일이 생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소외의 문제는 점차 해소될 것이다.

 

크게 보면 서울 지하철 문화 속에 종종 발생하는 세대 간의 갈등과 노인들에 대한 문제는 한국 사회의 태생적 불안을 반영하는 것이다. 공공이 약하기 때문에 복지가 약하다. 복지가 약하기 때문에 개인들은 자신들을 위해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하는데 경제 성장이 둔화한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이미 나이가 들어버린 노인들은 그마저 쉽지 않다. 이렇게 보면 지하철에서 서로 불쾌하게 생각하는 노인과 젊은이는 오히려 비슷한 처지이다. 서로 이해하고 더 안정된 미래를 위해서 개선을 요구하고 그 요구를 현실화시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지하철에서의 불편함과 불쾌감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암울한 지하철 문화가 아닌 서로 이해하는 밝고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Nextdaily 2017-04-05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미국이 김치에 관심을 갖는 이유

새로 이사한 로드아일랜드 주에 있는 프로비던스 시의 필자의 집 근처에는 오래된 벽돌 창고 건물이 있다. 이 건물에서는 매년 겨울 농부 시장이 열린다. 이 시장에서는 그 지역의 농부들이 모여 다양한 식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그 중에 눈에 띄는 가게가 하나 있다. 그 가게에서는 농부가 직접 가꾼 야채와 그 야채로 만든 파스타 소스, 독일식 발효 양배추, 그리고 배추김치를 판다. 오래간만에 김치가 먹고 싶어 김치 병을 덥석 집어들었다.

 

<농부 시장에서는 직접 재배하고 만든 식품을 만날 수 있다.>

 

김치가 맛있게 생겨 농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다 흥미로운 대화로 이어졌다. 그 농부는 한국인을 아는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 중에 한국과 인연이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대학에서 식품영양학과를 전공해서 이모저모 조리법을 참고하면서 스스로 김치 조리법을 개발했다. 그가 김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독특한 외국 식품이어서가 아니라 건강에 좋은 발효 식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한국에 살았다고 이야기했더니 식품에 대한 평을 부탁했다.

 

김치를 들고 집에 돌아와서 저녁에 먹어봤다. 싱싱하고 맵지도 싱겁지도 않은 맛이 좋았다. 병에 담기 위해서 한국에서 먹었던 김치보다 배추가 잘게 썰린 것 외에는 한국에서 먹었던 것과 다름없이 맛이 좋았다. 한국에서 먹었던 김치와 약간 차이가 있다면 생강 맛이 조금 더 강하고 국물 맛이 배추김치와 깍두기의 중간 맛이 난다는 점 정도였다.

 

그 다음 주에 농부 시장에서 김치를 팔았던 농부를 만나 김치 평을 해줬더니 반가워했다. 그 농부는 필자보다 10살 이상 젊어서 노력하는 젊은이들을 격려하는 보람도 느꼈다. 앞으로 김치를 계속 이 가게에서 살 생각이다.

 

필자는 시장에서 또 다른 김치를 발견했다. 부인은 베트남인이고 남편은 미국인인 한 부부가 만든 김치였다. 이 김치는 배추김치에 새우젓 혹은 다른 해물이 없는 비건(vegan) 배추김치이다. 비건은 동물성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음식을 말한다. 이 비건 김치는 새우젓 대신 된장을 사용하고 있었다. 시식 샘플을 먹어 봤더니 고소하고 맛있었다. 매년 가을에 김장을 담그는 행사를 하고 있다고 알려 주기도 했다. 인기가 있는 김치여서 그런지 손님이 많아서 길게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앞으로 김치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지역산 김치 홈피 사례>

 

미국에서 지역산 김치를 먹어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전에 미시간 주에 살 때 지역산 배추김치를 먹어봤다. 김치는 슈퍼에서만 판매하고 있어 실제 김치를 담근 사람과 대화할 수 없어 웹사이트를 살펴봤다. 웹사이트에서는 한국 또는 한국인과 인연이 있다는 설명은 없었다. 맛은 최근에 먹어본 김치보다 조금 맵고 생강 맛이 덜 강했지만, 충분히 먹을 만한 김치였다.

 

그렇다면 한국과 인연이 없는 미국의 농부나 업체가 왜 김치에 관심을 갖게 된 걸까? 미국에서 일어나는 김치 붐은 어떤 의미일까?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지만 201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에서는 발효 음식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미국에는 오래 전에 독일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독일식 발효 양배추를 먹었다. 이것은 주로 샌드위치나 핫도그와 같이 먹었지만 특별히 인기 있는 식품은 아니었다.

 

2010년대부터 발효 식품이 소화와 혈압에 도움이 되고 비타민이 풍부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비만이 심한 미국인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 중에 특히 인기를 끌었던 것은 일본에서 건너온 홍차버섯차인데 미국에서는 검부차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일본에서 건너온 두부처럼 건강식품을 취급하고 만드는 작은 업체들이 여기저기 생겨 지금은 전국적으로 거의 모든 슈퍼와 가게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의 판매도 활발하다.

 

<지역산 김치 판매 사례>

 

김치 붐은 한국 김치가 유명해서 한국 쪽에서 한국 음식을 세계화하려고 하는 노력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로드아일랜드 주에는 한국인이 많이 살지도 않고 한국에 대한 인지도도 낮다. 이곳처럼 한국인이 적고 인지도 낮은 지역에서 김치는 한국 음식보다 건강에 좋은 발효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때문에 건강식의 유행에 힘입어 로드아일랜드까지 보급이 된 것이다.

 

미국의 김치 붐은 일종의 문화적 전파라고 볼 수 있다. 역사상 다양한 방법으로 문화가 전파되었다. 김치의 경우 건강식품으로 전파가 되어 현대 미국 소비문화 속에 자리 잡은 수많은 상품 중 하나이다. 건강을 위한 발효 식품으로 마케팅이 되어 있지만, 소비자는 건강 이외 다양한 이유 때문에 김치를 즐기는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은 물론, 필자처럼 한국에 살거나 한국인을 아는 사람도 있을 테고 주변 사람에게 새로운 음식을 먹어봤다고 자랑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김치 붐은 발효 음식의 유행 이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김치는 한글과 나란히 한국의 대표적 문화 산물이다. 때문에 한국인들은 김치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물론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지나친 자부심은 자기 문화에 대한 심리적 소유감으로 흐를 수 있다. , 한국인이 만든 김치와 김치 요리법만이 최고이고 그 외의 방식은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 이러한 자문화에 대한 소유감은 세계화하는 데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자신들의 문화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은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자신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문화를 수용하고 변화시켜 가면 무언가 자신들의 문화가 변질되고 때로는 훼손당하는 듯한 모욕감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폐쇄적인 심리적 소유감은 실제로 세계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은 최근 한글이나 한국 음식과 문화 등의 세계화를 목표로 많은 분야에서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소유감을 기반으로 한 세계화는 우리주도하에 과 나누는 본심 때문에 이 그것을 받아드릴 의향이 있는 것인지, 있다면 의 어떤 점이 좋을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강한 소유감 때문에 한국의 대표적 문화 산물들의 수많은 세계화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났다. 반면 K-Pop과 한류의 경우 개인적인 스타가 중심이기 때문에 문화 산물만큼 소유감을 느끼지 못했다.

 

21세기에는 문화를 세계화하고 싶다면 심리적 소유감을 극복해야 한다. 인적 교류와 IT의 활용, 그리고 한국의 국제 위상 때문에 세계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 상황에서 많은 들이 그들의 방식대로 한국의 문화 산물을 발견하고 새로 해석할 것이다. 이것은 문화에 대한 훼손이나 도난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적 인지도를 높이는 고마운 가교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활발한 소통을 통해 한국 문화가 그들 속으로 스며들게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한국이 문화와 자부심을 함께 지켜가는 길이다.2017-01-24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희망의 도시로 회귀하자

도시 풍경의 참 멋은 다양성에 있다. 도시에서는 무엇이든 구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바로 그만큼 다양한 공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의 느낌은 활기찬 다양성으로 다가서곤 한다.

 

그런데 요즘 미국 도시 상업 지역을 걸으면 도시 풍경은 예전 같지 않다. 가장 큰 도시인 뉴욕은 2000년대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던 체인점이 더욱 더 많아지면서 한복판인 맨해튼에 있는 상업 지역은 다양성을 잃고 있다. 맨해튼 어디를 가든지 스타벅스가 즐비하다 그러나 맨해튼의 개성을 살려줬던 다양한 독립 카페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맨해튼 중심지 스타벅스 위치>

 

이런 현상은 체인점뿐만 아니다. 전국적으로 인터넷 쇼핑이 증가하면서 맨해튼에서 다양한 물건을 팔던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고 그 자리는 식당이나 술집들이 차지하고 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일까? 그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임대료 상승문제이다. 2010년대 미국 경제가 조금씩 좋아지면서 상업지역에서는 임대료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건물주가 바뀌면 임대료가 올라가는 경우가 많아 가게를 가지고 있다 해도 어느 정도 수익이 이를 받쳐주지 못하면 가게는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된다.

 

상가뿐만 아리나 주택의 임대료도 많이 올라가고 있다. 활기찬 도시 중심지에 있는 주택은 지역의 특성뿐만 아니라 수요가 많기 때문에 꾸준히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상가와 사무실이 주택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고 새 건물의 경우는 상업 면적을 축소하거나 아예 없애기도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세대의 변화에 있다. 미국 인구 구조를 보면 1946년에서 1964년까지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의 인구가 많은데 이 세대의 은퇴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이 세대의 상인들이 은퇴하면서 이 들이 활동했던 공간에 돈을 더 잘 사용하는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는 상업 공간들이 속속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젊은 밀레니얼 세대는 인터넷 쇼핑에 어릴 때부터 익숙해져 있고 물건보다 경험을 사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물건을 팔 수 있는 가게보다는 카페나 술집에 더 많이 모인다. 손님을 잃은 가게들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카페나 술집의 경우 경쟁 가게가 많아진다 해도 그만큼 손님이 많기 때문에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뉴욕만의 현상은 아니다. 보스턴, 필라델피아, 워싱턴,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전통적 중심지였던 대도시들이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대도시에 가깝고 젊은 소비자가 많은 대학 도시도 그렇다. 결국에는 임대료 상승, 도시 주택 수요, 인구 변화 때문에 미국 도시의 거리 풍경은 크게 변하고 있다.

 

필자가 사는 미시간 주에 있는 앤아버라는 대학 도시도 그렇다. 앤아버는 필자의 고향이기 때문에 옛날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다. 예전에는 미시간 대학교 근처에 서점이 많았고 다양한 가게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서점이 거의 다 사라졌고 카페, 식당, 그리고 술집이 많이 늘었고 체인점도 흔하다.

 

<미시간 대학교 근처에 음식점이 많다는 것을 빨간색 표시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의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어 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베이비 붐 세대와 그 다음 세대인 X세대가 추억을 간직했던 장소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카페와 수제 맥주 집을 좋아하지만, 주택 임대나 매입 가격 상승에 따라지 못해서 원하는 곳에 거주하지 못하고 보다 싼 주택을 찾아 이사를 자주해야 한다. 바로 이런 상황은 이 세대의 불만으로 쌓이고 이 불만은 올해 미국 대선에 폭발해 민주당 경선에 버니 샌더스 후보를 지지하는 결과로 나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미국 도시를 생각하면 소멸(사라짐)’비소유(가지지 못함)’의 비관적 관점이 지배적이다. 활발한 기운찬 곳, 다양하고 신기한 곳, 꿈이 실현되는 곳으로서의 도시가 아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만연한 장소의 대표로 도시가 돼버렸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이런 현상이 모든 도시에 해당하지 않고 일부 도시에 한한다. 상업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도시의 상업 지역은 텅 비었고 새로운 식당이나 가게가 들어오면 큰 뉴스가 된다. 이런 도시는 중심가의 상업 지역이라 해도 활발하지 못하고 빈 집도 많다. 사람들이 찾지 않으니 자연히 주택 가격도 오르지 않고 임대용 주택 주인은 유지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주택 상황이 열악하다.

 

가장 많이 알려진 사례가 2013년에 파산한 디트로이트이다. 이 후 디트로이트는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서 중심지에 투자가 늘어났다. 오래된 건물을 수리해서 사무실과 아파트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디트로이트는 아직 주거지 상황이 열악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1950년에 디트로이트의 인구가 1,850,000 명이었는데 지금은 680,000명이다. 이렇게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빈 집이 많이 생겼다. 어떤 동네에는 거의 모든 집이 사라지고 몇 몇 집 만 남아 있다. 사람이 없어지면 동네 상업도 감소하고 텅 빈 상가가 많아진다. 그래서 디트로이트에는 동네에 슈퍼마켓이 없어서 자동차가 없는 사람은 식용품을 구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것은 결국 또 다른 소멸비소유이다.

 

문명은 도시에서 발달했기 때문에 긴 역사를 보면 도시는 원래 희망의 장소이다. 19세기와 20세기에 산업의 발전에 따라 도시가 인간의 표준 거주 형태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2005년에 도시 인구가 농촌 인구를 초월했고 앞으로 도시화가 계속될 것이다. 도시에 일자리와 희망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간다. 한국의 경우도 1960년부터 1980년대까지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이촌향도를 겪었다.

 

그렇다면 지금 소멸비소유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 도시가 예외일 텐데, 한국 도시도 비슷한 상황이다. 서울은 뉴욕과 비슷하게 뜨는 동네는 임대료 상승으로 소멸현상이 심화되고 거의 모든 주거지에 임대료 상승으로 비소유도 만연하다. 반면에 지방 도시의 원도심은 디트로이트처럼 폐허가 되려고 한다.

 

해결책은 쉽지 않지만, 첫걸음은 이 시대의 현실을 인정하고 진정한 도시, ‘희망의 상징으로 회귀해야 함을 절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희망을 현실화하는 정책은 그 다음이다./Nextdaily 2016-10-19


도시를 채우는 존재는 사람이다

[대담] 로버트 파우저-김시덕의 도시 재생 이야기

"'넘버 투'라는 의식은 미시간 대학교만이 아니라 대학이 속해 있는 앤아버 전체로 확대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앤아버는 인구가 12만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다. 대도시가 갖는 흥미진진하고 역동적인 자극을 찾기는 어렵다. (...) 이 작고 변방에 있는 도시 앤아버를 언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었다. 평생 이 도시에서 살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그 어딘지 모를 '중심'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 중심을 향한 앤아버의 집착을 정확하게 발견한 것은 2014, 그러니까 이 도시를 떠난 지 약 29년 만에 다시 돌아와 살게 되면서부터였다. (...) 내가 떠났던 것처럼 학창시절 친구들 역시 대부분 자신들의 '중심'을 찾아 앤아버를 떠나 살고 있었다. (...) '변방'일수록, '서열'에 민감한 곳일수록 '명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한국에서 살 때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그만두고 난 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의 변화를 느끼곤 했다. (...) 결국 고향을 떠나 동생이 살고 있는 곳으로 이주를 결정했다. 이사를 결정하며 내 머리를 스친 것은 토머스 울프의 유명한 소설 제목이었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로버트 파우저, <도시 탐구기>)

 

도시를 채우는 존재는 사람이다. 허나 오늘날 사람은 결코 도시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개발을 앞세운 자본이 도시의 진정한 주인이기 때문이다. 서울이 젠트리피케이션에 허덕이는 이유, 한 때 호시절을 보내던 기업도시가 공장이 사라진 후 몰락의 길에 들어서는 이유, 농촌도시가 소멸을 향해 달려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도시는 한국 특유의 역사와 한국인의 특성을 응축해 보여주는 동시에, 오늘날 세계적 현상이 된 신자유주의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의 이 같은 모습은 현재 영국에서, 독일에서, 미국에서, 일본에서 조금씩 다른 얼굴로, 하지만 같은 현상으로 나타난다.

 

서울과 대전, 교토, 뉴욕을 비롯한 세계 14개 도시에서 지내온 독립학자 로버트 파우저(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박사는 <도시 탐구기>(혜화1117 펴냄)에서 그가 겪은 각 도시에서의 일화와 생각을 정리해 도시로 비춘 도시인의 삶을 이야기했다. 도시에 관한 인문교양서이자, 각 도시에 관한 간략한 역사서이자, 무엇보다 도시를 이루는 사람을 이야기한 이 책은 한편 쓸쓸한 기분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생생한 우리 모습을 비추는 거울로 읽을 수 있다. 파우저 박사는 오늘날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떠오른 개량한옥 밀집 지역 서촌 보존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책은 <프레시안>에 서평 시리즈 '김시덕의 직업적 책읽기'를 연재하는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가 연재의 첫 대상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미국 도시를 보며, 한국의 도시재생을 예측한다) 일본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문헌학자 김 교수는 직접 도시 곳곳을 걸어 쓴 <서울 선언>(열린책들 펴냄)에서 오직 사대문 안을 서울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우리 통념에 반기를 들고, 서울의 다양한 얼굴을 쪼개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 책의 다음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도시를 통해 인연을 맺은 두 저자가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혜화1117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한 사람은 오랜 기간 서울에 체류했고, 그밖의 여러 도시에서 생활한 이다. 한 사람은 일본과 한국의 대도시 경험을 한 이다. 두 사람은 도시에 관한 다양한 주제, 곧 젠트리피케이션부터 도시 재생, 도시 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중요한 주제는 도시 재생이었다. <도시 탐구기>에서도 언급된, 파우저 박사가 현재 거주하는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의 도시 재생 성공과 실패 사례를 시작으로 두 대담자는 한국의 도시 재생을 다양한 관점에서 비춰보았다. <프레시안>은 대담 흐름을 끊지 않는 차원에서 개입했다.

 

대담에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해 볼 법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민자를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건 도시 재생을 위해 중요하다. 결국 인구는 대도시로 밀집하기 마련이며, 이에 맞서는 도시 재생이 성공하기는 어렵다. 서울의 밀집도를 오히려 올리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서울 개발의 주도권은 민간이 아닌 공공이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시의 주인공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두 편에 나눠 연재한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혜화1117에서 로버트 파우저 박사와 김시덕 교수가 대담을 나눴다. 대담 장소인 출판사 혜화1117 '사옥'이자 이 일인출판사의 이현화 대표 거주지인 이곳은 1936년 지어진 고택이다. 이 대표가 거주지 목적으로 지난해 이 집을 구입 후, 리모델링해 일인출판사를 차렸다. 리모델링 당시 예전부터 이 대표와 인연이 있던 파우저 박사가 한국에 올 때마다 들러 이 대표에게 조언을 하기도 했다고. 이 집의 기와나 주요 기둥은 전부 옛것을 재활용했다. 파우저 박사는 서울 거주 당시 서촌에 '어락당(언어를 즐기는 집)'이라는 한옥을 지어 생활하기도 했다. 사진 왼쪽은 김시덕 교수, 오른쪽은 파우저 박사. 프레시안(최형락)

 

서울은 재생 대상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서울은 뉴타운 정책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전면 재개발로 신음했습니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서울에는 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하는 도시 재생, 마을 재생 사업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서울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죠. 하지만 도시 재생 역시 뉴타운과 다르지 않게 원주민을 쫓아내고 대자본의 이익만을 위한 사업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서울 창신동 등 재생 지역에서 꾸준히 나오는 소리죠. 두 분이 가진 도시 재생에 관한 생각을 시작으로 대담을 풀어가면 좋겠습니다.

 

로버트 파우저(이하 파우저): 도시 재생이 무엇이라고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도시 재생의 '재생'을 영어로 쓰자면 '리제너레이션(regeneration)'이 될 텐데, '(re)'라는 개념에 문제가 있어요. 도시를 재생한다는 건 해당 도시가 현재 '죽은 상태'라야만 성립합니다. 해당 도시를 죽은 상태로 규정한다면, 결국 그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은 가치 없는 존재라는 얘기가 되죠. 뜻 자체가 좋지 않습니다.

 

'재생'을 일본어로 '사이세(再生)'라고 합니다. 같은 한자에서 출발한 단어를 두 나라가 사용하죠. 그런데 한국에서 사용하는 '도시 재생'과 일본인이 사용하는 '토시 사이세'의 어감은 조금 달라요.

 

일본에서 도시 재생은 주로 빈 가게가 많은 죽은 상권을 활성화함을 뜻합니다. 이미 죽어있으니 살려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한국의 도시 재생 대상은 오랫동안 개발되지 않은 동네, 즉 낙후했지만 사람은 살고 있는 동네입니다. 분명 사람이 살고 있어서 죽은 곳이 아닌데도 살리겠다고 합니다.

 

김시덕: 지자체가 인위적으로 죽인 거죠. 서울 곳곳에 재개발하겠다고 정비구역으로 묶어두고는 방치한 지역이 많습니다.

 

박사님 말씀대로 일본의 경우 주로 일본철도(JR) 신칸센이 통과하지 않는 작은 역 부근지 등 명백히 상업 활동이 죽은 곳을 살리자는 게 재생의 목적입니다. 반면 한국의 도시 재생 대상은 원도심이고 구도심이고를 가리지 않습니다. 일본이 과거 버블 경제 절정기 대대적으로 추진한 지이키오코시(地域おこし, 마을 부흥) 사업을 보는 느낌이 듭니다. 정부 돈은 대규모로 쏟아 부었지만 크게 실패한 사업이죠. 유후인 정도가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사례입니다. (지이키오코시에 관한 일본 위키피디아 바로 보기)

 

한국의 큰 문제는 재개발과 도시 재생의 개념 차이가 명확하지 않다는 겁니다. 정부나 지자체는 신도심 개발을 이유로 핵심 기관은 그곳으로 이전해 원도심을 죽인(낙후화한) 다음, 뒤늦게 원도심 재생 사업한다고 돈을 뿌리고 있습니다. 병주고 약주는 격이죠. 그렇다고 그 돈이 원도심에 살던 주민에게 가는 것도 아닙니다. 건물주와 토지주가 써야 할 돈을 정부가 대신 써주는 격이죠. 그렇게 죽었던 도심이 활성화된 후엔 결국 전면적인 재개발이 일어나겠죠. 세금을 얼마나 낭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본 사례로 돌아가자면, 도쿄 23구의 경우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방식의 재생 사업이 이뤄진 적이 없습니다. 애초에 원도심을 한국식으로 죽이지 않으니까요. 서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은 죽은 적이 없는 도시입니다. 아현동도 을지로도 원래 살아있던 지역이에요. 공무원 같은 외부인들이 이곳 지저분하니 밀어야 한다고 해 저 꼴이 난 거죠.

 

-파우저 박사는 책에서 도시 재생의 실패 사례로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의 주도인 프로비던스(Providence) 시의 이야기를 소개하셨습니다. 몇몇 사람의 주도로 재생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결국은 주변부로 다시금 밀려났다고 하셨죠. 김시덕 교수는 유후인을 성공 사례로 드셨습니다. 왜 어떤 곳은 재생에 성공하고 어떤 곳은 실패할까요?

 

파우저: 부끄러운 미국의 역사를 말하게 됩니다만, 프로비던스시 재생사를 잠시 정리해보죠.

프로비던스시에 브라운 대학교가 있습니다. 이 학교 주변에 18세기경, 정조대왕 시절 지어진 오래된 집들이 많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지역이 슬럼화했죠. 오래된 집이니 난방시설도 부족하고, 살기도 좋지 않아 자연스럽게 그리 됐습니다. 도시 빈민이 모여들게 됐죠. , 흑인이 많이 사는 지역이 됐습니다.

 

1950년대,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대학과 시의 이해관계가 일치했습니다. 지역을 '정화'하자는 거였죠. 지역 오피니언 리더가 모여 이곳을 대규모로 매입하고, 개량해 되팔았습니다. 명분은 역사 보전입니다. 이곳에 거주하던 흑인 세입자 커뮤니티는 전부 쫓겨났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죠. 이 지역은 이후 시의 대표적 부촌으로 변했습니다. 프로비던스를 찾은 외지인이 가장 먼저 들르는 관광지가 됐습니다. 당시는 이 사업이 성공사례로 알려졌습니다. 시카고 대학 등도 (비록 실패했지만) 프로비던스 사례를 모방했죠.

 

김시덕: 박사께서 책에 언급한 이야기입니다만, 프로비던스는 그렇게 노력했으나 결국 보스턴에 밀려나 주변부로 다시 가라앉았죠. 사람은 밀도가 높은 대도시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파우저: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는 실패한 게 맞습니다. 제가 책에 썼듯, 1970년대 들어 프로비던스가 다시 가라앉자 새로운 재생 사업이 단행됐고 그 결과 2000년대 프로비던스는 되살아났습니다. 상권이 활성화하고 외지인이 유입됐죠. 그러나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도시는 다시 가라앉았습니다. 보스턴의 주변부 도시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죠.

 

다만 브라운 대학은 이득을 봤습니다. 캠퍼스 주변이 깨끗해지면서 사람이 바뀌고 학생 유치에도 도움이 됐으니까요. 말하자면, 브라운 대학의 이익을 위해 시 전체가 매달린 셈이죠.

 

프로비던스 사례는 한국으로 치자면 서울의 북촌, 전주 한옥마을과 비슷한 듯합니다. 제가 지금은 프로비던스 인근에 사는데, 외지인이 올 경우 데려갈 만한 곳이 브라운 대학 주변 정도입니다. 북촌이 현재 소비의 대상이 된 것과 비슷하죠.

 

프로비던스가 결국 보스턴의 주변부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지만, 대도시가 항상 사람에게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최근 2~3년 사이에 미국에서 주로 보이는 현상이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가 이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대도시의 집값을 이기지 못한 이들이 도시를 떠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 보스턴에서 프로비던스로 이주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보스턴과 프로비던스의 거리는 서울과 평택 정도(64.9)입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젊은 중산층이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에요. 젊은 부부가 삶을 꾸리기에 대도시는 너무 비싸죠.

 

미국 중부의 많은 도시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2년 사이 뉴욕시 인구가 줄어든 이유입니다.

 

프로비던스시 전경. 아래 강은 본래 도로였으나 1970년대 도시 재생 사업 때 복원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이곳을 찾기도 했다. 프로비던스는 관과 자본의 주도로 여러차례 재생에 나서 어느 정도 재생 효과를 누렸으나, 결국 중심부인 보스턴을 극복하지 못했다. flickr.com

 

도시를 채우는 건 사람

-<도시 탐구기>를 보면 박사께서는 특히 도시를 채우는 사람의 중요성을 크게 보시는 듯합니다. 결국 도시란 사람이 사는 곳이니만큼 도시 재생도 사람을 위해 이뤄져야 할 텐데, 지금 한국의 도시 재생은 주객이 전도됐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됩니다.

 

파우저: 저는 미시간주 (앤아버) 태생입니다. 미국 중부(미드웨스트) 사람이죠. 반면 프로비던스는 (최초의 식민 지역인 미 동북부) 뉴잉글랜드 지방 도시입니다. 지역색이 아주 강한 곳이죠.

 

어학적으로 미국을 보자면, 크게 동부 방언과 남부 방언이 있고, 나머지 대부분 지역은 소위 말하는 표준어(General American English) 지역입니다. 미국 TV를 보면 나오는 발음이죠. 제가 그 말투를 씁니다. 이런 언어권에서 생활하다 처음 프로비던스에 갔을 때 지역 방언이 무척 신기했죠. 뉴잉글랜드 방언과 뉴욕 방언을 섞은 듯하달까요.

 

대표적인 지역 말투가 '(you)'의 복수형으로 '유스(yous)'를 사용한다는 겁니다. 대규모 이민 시기 이탈리아 이민자 사회의 영향입니다. 이민자들이 영어를 배우기 어려우니, 모든 복수형에 에스(s)를 붙여 발음하던 흔적입니다. 따라서 프로비던스 노동계층 사람들은 일상적인 인사말을 사용할 때 "하우 아 유~즈 투데이(How are yous today)?"라고 합니다.

 

한국인들은 아마 흔히 미국은 거대한 대륙국이니 한국과 거리개념이 다르리라고 생각할 겁니다. 물론 중부의 거대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거리개념은 그렇습니다. 자동차로 1~2시간 거리의 슈퍼마켓에서 쇼핑하고 집에 돌아가는 게 이상하지 않죠. 하지만 프로비던스 사람들은 다릅니다.

 

프로비던스가 위치한 로드아일랜드주는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입니다. 제주도의 두 배 정도 크기입니다. 프로비던스 사람들은 (서울-평택 거리인) 보스턴도 매우 멀게 느낍니다. 저는 엄밀히 말해 프로비던스 바로 곁의 도시인 포투켓(Pawtucket)이란 곳에 삽니다. 프로비던스와 포투켓 거리는 우리가 인터뷰하고 있는 종로구와 마포구 정도 입니다. 그런데도 두 도시 토박이들은 상대 도시를 매우 먼 곳으로 인식합니다. 자기 마을을 향한 애착이 아주 강하죠.

 

이런 오래된 마을에서는 이웃 사람과 깊은 인연을 맺고 지내야 합니다. 저희 집 바로 앞에는 홀로 사시는 할머니가 계시고, 옆에는 40대 남성 프로그래머가 홀로 삽니다. 이 세 집이 자연스럽게 미시적 커뮤니티를 만들게 됩니다. 저의 경우 한국에 오는 동안 이웃집 아저씨에게 제 집을 봐달라고 부탁해뒀죠. 이런 자발적 마을 만들기는 정부가 주도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김시덕: 한국 정부, 한국 지자체는 자신들이, 공무원들이 마을 만들기를 주도하려 하죠.

일본의 대도시에도 마을 정체성이 조금은 남아 있습니다. 한국만큼 사람의 이동이 많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반면 한국의 도시인은, 특히 세입자라면 끝없이 이사해야만 합니다. 100년에 걸쳐서 전 국민이 여러 차례 이동했고, 지금도 이동 중이죠. 서울이나 부산과 같은 대도시에서 커뮤니티 문화, 마을 문화가 자연스럽게 해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도시 재개발이 오직 토지주, 건물주의 권리만 인정하고 세입자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한 이 같은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파우저: 일본 가고시마(鹿兒島)에 살 때가 생각나는군요. 당시 오래된 동네의 집을 빌려 살았는데, 이웃 할머니들이 젊은 사람이 왔다고 좋아하시더군요. 이미 40대였는데도요.(웃음) 지역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꾸려가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오래된 마을에는 미국과 비슷한 느낌이 있었어요.

 

김시덕: 이런 이웃 간의 교류 문화는 제인 제이콥스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자발적 감시 문화'입니다. 경찰이나 국가에 치안을 맡기기보다, 소통하는 이웃 주민 간 자발적인 감시 문화를 만드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이론이죠.

 

그런데 한국이라고 해서 마을이 모두 해체된 건 아닙니다. 서울 도심처럼 고도화한 도시에서나 그렇죠. 지역 소도시에서 마을 문화는 여전히 강하게 살아 있습니다. 이를 억지로 대도시에 이식하려는 게 최근 몇 년간의 마을 재생 사업이죠. 현재의 행정 담당자들은 '도시는 악하고 마을은 선하다'는 생각을 가진 듯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정부나 지자체가 주도하는 마을 만들기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일본 유학 시절, 일본 정부가 경제를 살리겠다며 전 국민에게 2만 엔씩 그냥 뿌린 적이 있습니다. 과거 억지 마을 부흥 사업이 실패하자, 저소득층은 일단 돈만 있으면 바로 소비하리라고 보고 정책을 튼 결과죠. 차라리 그게 낫습니다.

 

로버트 파우저 박사. 세계 여러 나라를 주유한 그는 한국과 일본에서 13년여를 살았다. 한국어에 능통해 서울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한 그는 한국어 책을 한글로 직접 쓴다. 영어와 한국어는 물론,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몽골어도 공부했다. 한국의 서촌 보전 운동에 큰 힘을 보탠 인물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서울은 '언젠가 개발될 도시'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이제 서울 사람들은 이웃과 소통하기보다 이웃과 자신을 차단하는 삶을 더 욕망하는 듯합니다. 도시와 아파트 단지를 분리하고, 단지 내에서도 소통을 분리하는 식으로 말이죠.

 

김시덕: 그렇게 단순화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 사람은 아파트 삶을 욕망하는 게 아니라, 아파트에 투자한 결과 발생하는 자산 상승을 욕망하죠. 서울만 해도 도심 바깥 지역으로 나가면 옛 마을의 분위기가 일부 남아 있습니다.

 

다시 제이콥스를 소환하자면, 서울도 쪼개서 봐야 합니다. 서울이라고 하나로 묶어서 보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강남 3구 같은 도심지와 나머지 구를 달리 봐야 합니다. 서울의 마을 재생은 강남 3구 같은 도심 지역의 외곽에 존재하는 커뮤니티를 살릴 목적으로 진행돼야지, 없는 마을을 억지로 만들겠다고 돈을 투자하는 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결국 현상 유지냐, 도시 재생이냐, 재개발이냐를 두고 주민 간 분열이 일어나 원래 있던 사람마저 흩어지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파우저: 도시 재생을 하면서 정부(지자체)가 투자해도 됩니다. 예를 들어 하수도관이 낙후한 지역의 하수도 개선을 위해 정부가 투자한다면 원주민 생활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이런 투자가 커뮤니티를 해체하진 않을 겁니다. 일본 교토가 정화조 공사를 하면서 이렇게 낡은 마을을 개선했습니다. 그런데 '하수도 개선만 하려면 너무 복잡하니, 이참에 마을 전체를 새로 만듭시다'라고 나오면 안 됩니다.

 

김시덕: 고장난 부분만 개선하면서 되살리는 것보다 대단지 아파트를 개발하는 게 더 큰 수익이 나니까요. 서울의 모든 원도심은 잠정적 재개발 대상지입니다.

 

파우저: 맞아요. 서울은 '언젠가 개발될 도시'입니다. 오래된 도시에 투자하지 않고, 대규모 재개발로 모든 걸 새로 만들어버리려는 욕망이 큽니다.

 

도쿄 우에노에 국립 서양 미술관이 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의 서양 미술관만큼 뛰어난 작품을 소장하진 않았지만, 지역 사람이 쉽게 서양미술 작품을 현지에서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예전 한 자리에서 한국에도 이처럼 시민 문화생활을 뒷받침할 공간을 낡은 도심에 만들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더니 "한국 사람은 그냥 비행기 타고 현지에 가서 봐요"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비행기를 쉽게 탈 수도 없을 텐데, 왜 이런 투자를 하지 않는지 저는 잘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지자체도 재개발을 선호하니 그런 것 아닐까요. 굳이 낡은 도심에 투자하는 것보다 민간이 주도하는 전면 재개발이 도시 입장에서 더 좋으니까요.

 

김시덕: 박정희 정권 이후 한국에 고착화한 개발 방식이죠. 공공이 투자하지 않아도 민간이 알아서 외관을 좋게 꾸미고, 이 과정에서 정부는 일부 땅을 기부체납 받아 이익을 얻고요. 박철수 교수가 쓴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집 펴냄)를 보면 박정희 정권 당시 자세한 이야기가 나와요. '정부 돈을 들이지 않고도 도시를 근대화할 수 있다'는 게 민간개발이 등장한 중요한 이유였죠. 결국, 오늘날 서울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근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중재 기능을 수행해야 할 정부는 빠지고 민간 이해관계자끼리 싸웁니다. 이들이 용역을 동원해서 불법을 자행하는데도 정부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도시 개발에 정부가, 지자체가 움직이고 돈을 써야 합니다.

 

파우저: 결국 공공이 해야 할 일을 민간이 한다는 게 한국의 문제예요. 그러니 도시에 공공성은 사라지고 민간의 욕망이 커질 수밖에 없죠.

 

지난 봄 서울에 왔을 때 어쩌다 보니 남부터미널 부근에서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인터뷰 후 역까지 걸어가 지하철을 타야 했는데, 지도를 보니 인터뷰 장소와 역 사이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더군요. 이를 바로 가로지르면 금방 역에 도착하는데, 단지가 외지인 출입을 막아 빙 둘러갈 수밖에 없었어요. 아파트 단지가 도심 한가운데에 성처럼, 군부대처럼 들어선 결과죠. 사람이 걷기 어렵고 교통여건도 나쁜, 좋지 않은 주거 형태입니다.

 

-미국에는 한국처럼 대규모로 도시를 개발한 사례가 없나요?

파우저: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어요. 전후 200만 명에 달하는 남성이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을 만들기 시작했으니, 주택 수요가 급증했죠. 그 해결책으로 나온 게 교외 단독주택단지 개발입니다. 오늘날 '미국'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주택 형태가 그때 만들어졌죠. 이를 상징하는 주택 형태가 1947년 등장한 레빗타운(Levittown, 조립식 주택단지)입니다. 연방정부가 부동산업자 윌리엄 레빗의 조립주택 대량 생산안을 받아들여 급속도로 도시 주위를 개발했죠. 사람을 대규모로 수용하기 위해 고속도로 건설도 이 시기 붐을 이뤘고요. 실은 냉전기 소련과의 대결 목적도 이 방안에 포함됩니다.

 

오늘날 보기에는 개성 없는 획일적 단지의 대표격으로 거론됩니다만, 레빗타운을 단순히 좋다, 나쁘다는 식으로 말하기 힘듭니다. 그저 그 시기의 현상이었다고 봐야겠죠.

 

김시덕: 한국의 레빗타운이라 할 만한 곳은 용인시입니다. 시 상당부분을 민간이 마구 개발해, 난개발에 따른 후유증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민간 건설업자들이 규제를 딱 피할 정도로만 공공도로를 남기고 주택 밀집도를 높인 바람에 거주 환경이 매우 안 좋아졌죠.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남양주도 이런 후유증을 겪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시 당국이나 시민이 난개발을 막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과연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그나마 정부가 강한 의지로 추진한 1기 신도시(일산, 분당 등)는 거주환경이 좋습니다. 1기 신도시 건설 당시는 집값 폭등으로 인해 '정부가 당장 주택 200만호를 짓지 않으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공포가 일던 시기였습니다. 공공이 투자해야만 거주민의 환경이 좋아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시민의 분노와 욕망을 아파트로 해소한 '아파트 공화국(발레리 줄레조 지음, 길혜연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이 탄생한 순간입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국에서는 파우저 박사가 말한 미국의 교외 이주 현상과는 정반대의, 도심 회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듯합니다. <도시의 승리>(에드워드 글레이저 지음, 이진원 옮김, 해냄 펴냄)<도시는 왜 불평등한가>(리처드 플로리다 지음, 안종희 옮김, 매일경제신문사 펴냄) 등의 저서가 제기하는 이슈이기도 합니다. 교외를 난개발하는 바람에 교통 체증이 발생하고, 도심은 밀집에 따른 매력이 커지면서 오히려 도심 회귀 현상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이 같은 문제의 배경에는 용인에서 볼 수 있듯 도시의 무차별 확장과 난개발이 있습니다.

 

전후 미국의 대표적 교외 대규모 개발지인 레빗타운의 일반적 형태. wikipedia

 

-도시계획은 결국 원주민/빈민을 밀어내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나요?

파우저: 미국은 그렇습니다. 뉴욕이 그렇고, 시카고도 그렇습니다. 시카고의 경우, 도시 남부가 20세기 이후 전통적으로 흑인 거주지였습니다. 지역이 점차 낙후하고 시카고 대학 부근이 슬럼화하자, 학교의 학생 유치가 어려워졌습니다. 이 때문에 한때 시카고 대학은 애리조나주로 이주하려고도 했죠.

 

이주의 대안으로 제시된 게 슬럼지역을 대규모 개발해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자는 거였습니다. 지금 시카고대 주변 동네를 걸으면 낡은 집들이 늘어서 있다가 갑자기 현대식 주택단지가 등장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도시계획이 남긴 흔적입니다.

 

다만 시카고대 인근 재생은 프로비던스 사례만큼 (어느 정도나마) 성공적이진 않았습니다. 인근 지역이 워낙 낙후한 데다, 흑백 인종 갈등 문제도 컸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은 기본적으로 인종 문제와 결부돼 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미국에서 일정 비율 이상의 흑인이 거주하는 지역을 성공적으로 재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외적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게 뉴욕 브롱크스 지역입니다. 흑인이 주로 거주하던 지역에 (백인이 아니라) 이민자들이 들어오면서 지역이 변화하기 시작했고, 변화 후 대자본이 들어와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죠. 이처럼 미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단순화하기 어렵습니다.

 

김시덕: 과연 지자체가 젠트리피케이션을 어떻게 보느냐를 물어봐야 할 때라고 봅니다. 한국의 지자체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좋아하는 듯합니다. 상업 지구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면 세금이 많이 걷혀 좋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활성화된 지역에 재건축, 재개발 바람이 불면 계급 교체가 일어나니 좋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 계급 변화를 유도합니다. 한국의 경우, 서울은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곳이니 인구가 끊임없이 유입됩니다. 젠트리피케이션 후 지방의 중산층이 서울의 빈민층을 밀어내는 구도가 만들어지죠.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은 계급 전쟁입니다.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어디로 흩어졌을까요. 아마 멀게는 원주, 천안, 안성과 같이 범 서울 생활권이라 할 수 있는 도시로 계속해서 밀려나고 있을 겁니다. 서울 인구는 줄고 경기도 인구가 늘어나는 이유겠죠.

 

파우저: 미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다만 모든 도시가 인구를 빨아들인다고 보기는 어렵고, 서울 정도로 사람을 흡수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하는 도시는 5~6개 정도 됩니다. 워싱턴이 특히 심하고, 뉴욕,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LA 정도가 그렇습니다.

 

미국의 도시는 여러 계층으로 나뉩니다. 땅이 넓고 도시도 많다보니 인구 밀집도가 낮은 도시에서는 재생 사례가 발견되더라도 사람이 밀려나진 않아요. 예를 들어 미국 한가운데에 캔자스시티라는 도시가 있는데, 이곳의 낙후한 공장 지대에도 힙스터들이 찾을 만한 가게가 생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도시의 힙스터 문화 소비가 가능한 계층은 한정됐고, 재생 지역에 거주하던 원주민은 없으니 밀려나는 사람도 없죠. 미국 중부의 여러 도시는 지금도 외곽에 계속 주거지를 짓고 있습니다. 이미 도시가 포화 상태에 달한 (뉴욕 등의) 대도시와는 다르죠. 포화도가 너무 높고 밀집도도 너무 높은 도시에서나 젠트리피케이션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김시덕: 도쿄에서는 한국만큼 젠트리피케이션이 심각하게 일어나진 않습니다.

일본의 도시는 기본적으로 넓게 퍼져나갑니다. 대지진 공포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층 주거지가 서울만큼 높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입니다. 내진 설계가 발달한 최근에서야 고층 주거지가 늘어나는 수준이죠. 도시가 넓게 퍼져나가다 보니, 그만큼 도시 내부에 빈틈도 많습니다(밀집도가 떨어집니다.). 그러니 빈민이 여전히 도시 곳곳에서 중산층과 함께 거주합니다.

 

지난 6월에 도쿄를 찾았을 때 산야(山谷)지구라는 유명한 빈민촌을 방문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주로 사는 곳입니다. 외국인이 주로 모여 사는 지역도 도쿄 곳곳에 있습니다. 인도인은 도쿄 동남쪽 끝인 에도가와구에 주로 살고, 쿠르드인은 도쿄에서 열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인 사이타마현 와라비시에 모여 삽니다. 그래서 와라비는 '와라비스탄'이라는 별칭까지 얻었죠.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모여 사는 한국의 마석, 안산, 군포 등과 비슷합니다.

 

파우저: 교토에서 생활했을 때를 돌이켜 보면, 일본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활발히 일어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살았던 지역의 경우 다양한 사람이 한 지역에 함께 어울려 살았습니다. 아주 작은 집 바로 옆에 새로 올린 5층짜리 집이 있는 식이었죠. 여러 계층의 사람이 한 곳에 어울려 사니 전면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이 어렵습니다. 제 생각엔 서울에도 이런 지역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성북동이 그렇죠. 이런 지역이 앞으로 도시의 다양성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고 봅니다. 2019.9.13 프레시안


서울과 지방보다, 서울과 뉴욕의 거리가 가까워진 시대

[대담·] 로버트 파우저-김시덕의 도시 재생 이야기

서울을 둘러싼 여러 주제는 결국 양극단으로 나뉘기 마련이다. 개발할 것이냐 말 것이냐, 보전하느냐 갈아엎느냐, 집값을 잡을 거냐 말 거냐는 식으로 말이다. 서울이 지금도 활발히 개발되는, 즉 돈이 몰리는 도시여서 그렇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이전에는 외계어와 같았던 단어가 어느새 뉴스 제목으로 나와도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된 배경이다.

 

로버트 파우저 박사와 김시덕 교수는 앞선 대담에서 도심의 집적도가 높을수록, 즉 도시가 고밀도화할수록 젠트리피케이션을 자극하게 되고, 그 결과 도시의 주인이어야 할 사람은 자본에 휩쓸리고 만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면 필연적으로 거주민의 구성 성분이 바뀌고, 그 결과 도시는 사람을 쫓아내게 된다는 점을 두 사람을 여러 사례를 들어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궁금증이 생긴다. 서울보다 더 고밀도화한 도시로 손꼽히는 홍콩, 뉴욕과 같은 도시에서는 어떻게 빈민이 살아갈 수 있는가. 더 근본적인 현 상황에 관한 고찰도 곁들여진다. 이제 지방도시의 소멸을 두려워해야 할 시대가 됐다. 세계화는 세계의 도시와 도시를 직접적으로 연결했다. 서울과 런던의 심리적 거리가, 서울과 도쿄의 심리적 거리가 서울과 농촌도시의 그것보다 더 가까운 시대다. 십 수년 전만 해도 서울 집중을 우려하던 기사를 쉽게 찾곤 했으나, 요즘 들어 그런 기사가 보이지 않는 까닭은 그 문제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보편적 현상이 됐기 때문이다. 도쿄-오사카-나고야의 경제권역이 상대적으로 고르게 발달했다는 일본만 하더라도 도쿄 집중화 현상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도쿄에 맞서던 오사카는 이제 도쿄로 인구를 가장 많이 실어보내는 위성도시로 전락했다.

 

대도시의 초고밀도화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 됐다면, 이를 새롭게 진단할 필요도 있다. 새롭게 진단하면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도 생긴다. 두 대담자는 차라리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초고밀도화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다만 전제가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개발에 개입하는 공공개발이 대안이라고 둘은 입을 모았다.

 

이같은 흐름에서 도시 재생도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두 사람은 강조했다. 대표적 대안으로 둘은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도시를 살려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파우저 박사와 김시덕 교수의 대담은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혜화1117에서 진행됐다.

 

서울 초고밀도화가 낫다

-초고밀도 도시가 젠트리피케이션을 자극한다는 이야기를 두 분께서 공통적으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서울은 홍콩, 상하이 등의 대도시에 비해서는 밀집도가 낮다는 이야기도 한편에서는 나옵니다. 오히려 서울의 용적률을 더 올리자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그렇다면 젠트리피케이션을 더 자극하지 않을까요?

 

김시덕: 저는 서울 도심의 용적률을 높이자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서울의 도심 밀도는 매우 낮습니다. 아마 저와 파우저 박사의 생각이 갈라지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 도심의 밀도를 높이지 말고 마을을 살리자는 식의 주장만 하는 건, 제가 보기엔 부자에게 낮은 밀도로 쾌적한 삶의 공간을 주자는 생각과 같습니다.

 

<서울 선언>(열린책들 펴냄)을 쓸 때 취지이기도 합니다만, 서울의 사대문 안과 바깥을 쪼개서 봐야 합니다. 사대문 안에는 역사지구가 많아서 개발 가능한 곳이 별로 없습니다. 사대문 바깥의 용적률을 더 올려야 합니다. 용적률을 높이지 못하는 지역은 다양한 계층이 모여 살 수 있게끔 공공이 적극 나서 개발하고요. 그렇게 해서 저소득층이 먼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힘들게 출퇴근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로버트 파우저(이하 파우저): 뉴욕 이스트사이드의 인구 밀도가 아주 높죠. 홍콩과 같이 초고층 빌딩이 줄줄이 들어서 있습니다. 아마 서울 도심보다 이곳 도심 밀도가 높을 거예요. 서울을 이스트사이드처럼 만들자는 이야기는 글쎄요... 서울은 뉴욕이 아닙니다. 서울 외곽의 도시를 더 잘 개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기존의 주거지역을 잘 지켜가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제가 예전에 종로구 체부동에 살았는데, 이곳은 개발이 활발히 일어나진 않았던 곳이죠. 하지만 요즘 찾아가니 주거지였던 곳이 하나하나 상가로 변화하더군요. 서울을 더 높이 올리는 것보다, 기존에 사람이 살던 도시를 주거지로 잘 보전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더구나 한국과 일본은 출산율도 낮은 국가이니만큼, 무턱대고 고밀도 주거지 개발을 하는 게 바람직할지 의문이에요.

 

김시덕: 출산율은 낮아지지만 사람들의 서울을 향한 욕망이 줄어 들지는 않았죠. 지금 서울 인구가 줄어드는 건 서울에 살고 싶어도 못 사는 사람이 밀려나서이지, 서울의 매력이 떨어져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을 더 수용할 수 있게끔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물론 서울 도심의 용적률을 올린다면 돈 있는 사람이 더 단물을 먹을 겁니다. 하지만, 도심 기능 자체가 떨어진 곳에는 투자를 해 도심으로서의 기능을 되살려야 합니다. 이런 혜택 사례를 막겠다고 인프라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더 나쁜 결과만 낳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똑같은 아파트 브랜드가 을지로3가와 압구정동에 들어왔다고 해 봅시다. 사람들이 어디를 선택할까요? 대부분 사람이 압구정동을 선택할 겁니다. 사대문 안에는 병원, 학교 등 생활 기반시설이 태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대문 안은 주거지 기능을 살려야 할 대상입니다. 반면 박원순 시장은 그 대안으로 서울 사대문 안을 관광지화하려는 것 같습니다. 차량 유입 막고, 예술가 지원하고, 자전거길만 만들고 있죠. 이는 서울 구도심을 박제화하자는 것뿐입니다. 서울 도심 곳곳의 특색을 잘 반영해 개발함으로써 더 다양한 사람을 더 많이 품을 수 있도록 해야죠.

 

파우저: 미국은 한국, 일본의 사례와 조금 다릅니다. 이민에 열린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정부 들어 국가 수준에서 이민에 배타적으로 변화했지만, 지역별로 보면 여전히 난민을 적극 환영하는 도시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시간주의 주도 랜싱(Lansing) 시입니다. 인구가 12만 명가량 되는 도시인데, 최근 시리아 난민 몇 천 명(매년 600명 수준)을 한 번에 받았죠.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사람이 늘어나야 도시의 소비력을 유지할 수 있고, 더 큰 공동체를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일종의 도시 재생입니다. 단순히 힙스터들이 찾을 관광지 만드는 게 도시 재생이 아닙니다. 한국은 민주주의, 인권의 차원을 넘어 도시 재생 차원에서, 문화 재생 차원에서도 난민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민자는 도시 재생에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김시덕: 대도시, 특히 서울 사람만 잘 모르지, 한국의 여러 지방도시, 농촌도시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의 농촌지역 지자체는 외국 이민자들이 없다면 당장 무너질 겁니다. 안산, 남양주, 군포와 같은 도시에서도 이민자가 원도심을 살렸죠. 굳이 지자체에 이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라고 권유할 필요도 없습니다. 차별만 안 한다면, 쫓아내지만 않으면 됩니다.

 

-여태 두 분의 말씀을 종합해 보니, 도시를 움직이는 건 결국 사람인데 도시 정책에서는 사람이 뒤로 빠지고 인프라 논리, 자본의 논리가 앞선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생각이 실패한 젠트리피케이션, 혹은 젠트리피케이션 부작용을 낳는 것 같고요.

 

김시덕: 말씀하신 바로 그 부분이, 에드워드 글레이저가 <도시의 승리>에서 지적한 많은 사람의 착각입니다. 건물을 잘 짓는다고 사람이 오지 않습니다.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의 도시 재생 사업 방식은 토목업자와 지주에게만 좋습니다.

 

뉴욕의 대표적 초고밀도 지역인 어퍼 이스트사이드. 20세기초부터 집중 개발이 진행된 뉴욕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초고밀도 도시다. wikipedia

 

이민자와 공존이 도시 재생

-파우저 박사께서 <도시 탐구기>에 쓰신 앤아버(Ann Arbor) 사례가 떠오르네요. 주민들이 복합 상가 건물과 공원 중 공원을 선택했죠. 복합 상가 건물이 빨리 들어서지 않는다고 지역 주민들이 시위한 한국 사례와 비교됐습니다.

 

파우저: 앤아버에서 주민들이 투표 결과 복합 상가 건물 대신 공원을 선택한 핵심적 이유는 시의 땅, 즉 공공의 땅을 판다는 건 시민의 손에서 땅이 떠남을 의미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앤아버는 본래가 조금 진보적인 도시입니다. 공공성을 높이 평가하는 도시 정체성이 강했죠.

 

결국 사람 이야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미국의 학교들은 지역사를 매우 중요하게 가르칩니다. 자연스럽게 지역민에게 지역 정체성이 생겨나죠. 유럽의 여러 도시 역시 이런 교육을 강하게 합니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요? 한국의 학교가 지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는지 의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서울 정체성이 생겨나겠어요. 서울의 사람들은 제각기 흩어져 있을 뿐인 듯합니다.

 

김시덕: 한국은 지난 100년의 역사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지역사를 가르치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그러니 조선시대 이야기만 다루게 되죠. 당장 서울역사박물관만 보더라도 옛 서울, 즉 사대문 안의 서울만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사대문 바깥은 그 대상이 아닙니다. 서울 정체성을 만들기 어려울 수밖에 없죠.

 

파우저: 한국의 다른 도시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제가 한국에 올 때마다 대구에 한 번씩 가는데, 대구에서는 지역 정체성이 조금 느껴졌습니다. 다시 이민자 이야기입니다. 미국이 이민자를 꾸준히 받았기에 정체성이 흐려지리라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랜싱시 사례에서, 랜싱을 찾아온 난민들은 미시간 사람, 랜싱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민자들은 그 지역 문물을 무의식적으로 흡수하기 마련입니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미국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로드아일랜드주에 갑자기 한국 사람이 확 늘어난다고 해서 로드아일랜드 문화가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이민자, 난민에 배타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김시덕: 일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에 혼혈아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질화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일본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한국의 지방 도시에서도 오래 전부터 이런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혼혈 자녀들이 장성해서 이제 사회로 진출할 때가 됐습니다. 그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시대에 한국이 어떤 문화를 가져갈 것이냐를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을 듯합니다. 저는 한국이 다민족 국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미국이 인구 감소를 걱정하지 않는 이유다. 이들이 모여 '미국적 가치'를 만들어가고, 도시를 살려간다. 유튜브 'The Daily Conversation' 채널에서 이미지 캡처

 

파우저: 트럼프 정부 들어 미국이 백인 우월주의로 확 경도된 것 같지만, 기실 그런 사람, 곧 트럼프 핵심 지지자는 미국인의 30% 수준입니다. 나머지 70%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 조카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경우 70%가 유색인입니다. 학교 행사 때 찾곤 하는데, 이상하지 않아요. 이민자들이 늘어난다고 해서 사회가 붕괴한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김시덕: 최근 유럽을 비롯한 세계에 부는 극우주의도 난민을 향한 증오라고 쉽게 이야기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의 문제에는 런던 대 비런던으로 나뉜 양극화가 있고, 독일 역시 (동서 갈등 차원에서) 비슷하죠. 미국으로 돌아가자면, 이민자를 향한 차별적 생각은 오바마 정부 때도 있었고, 그 전에도 존재했을 겁니다. 미국인이 가진 여러 불만 중 트럼프가 인종 문제를 끄집어내 사람들에게 던져줬을 뿐이죠.

 

파우저: 맞아요. 미국인의 잠재의식에 내재된 생각을 트럼프가 공론화한 거죠. 버클리대의 한 교수가 루이지애나주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을 인터뷰했는데, 그들이 가진 공포는 '다른 이가 나를 앞서가고 내가 뒤떨어진다'는 생각에서 왔다더군요. 어려운 상황에서 희생양을 찾는 이들의 심리를 트럼프가 잘 파고든 거죠. 독일, 이탈리아의 극우화 문제 역시 마찬가지라고 저는 봅니다.

 

하지만 앞선 랜싱의 사례에서 보셨듯, 온 나라가 같은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지난 12월 중순 독일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한 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탈리아에서도 관광 공해 문제 등이 있는데 이런 문제는 베네치아, 로마에서나 일어나죠. 다른 여러 도시는 각자의 다른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문제가 미국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죠.

 

-손혜원 의원의 목포 투자를 둘러싼 문제에서도 사람들의 생각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갈리더군요. 정부의 도시 재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손 의원을 응원하고, 도시 외곽의 사람들은 싫어하는 식으로요.

 

김시덕: 손 의원을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조선내화공장이 위치한 목포 서산·온금 주민이죠. 손 의원으로 인해 아파트 개발이 어려워진 사람들입니다. 손 의원은 자신이 보존 운동에 앞장선 조선내화공장을 철거하고 개발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는데, 저도 지난 연말에 현지를 답사하면서 그런 분위기를 확인했습니다.

 

앞서 서울 얘기를 주로 했지만, 한국의 모든 도시, 세계의 모든 도시는 그 안에서도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화해서 '서울은 어떻다' '목포는 어떻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골목길 자본론>(다산3.0 펴냄)을 쓴 모종린 교수는,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서울지하철 2호선 라인을 중심으로, 대개는 강북 지역에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지역은 전부 재개발이 완료됐거나 애초에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날 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거죠. 뒤집어 보자면,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오직 특정 지역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라는 소리입니다.

 

일본의 대표적 관광명소로 떠오른 가나자와시. 압축도시(콤팩트 시티)의 대표 사례이기도 하다. flickr.com

 

서울은 고밀도화, 비서울은 압축도시 중심으로 생존해야

-도시의 과밀화 문제는 세계 주요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듯합니다. 일본의 경우 정부와 지자체가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노년층과 청년층에게 대규모 지원을 하면서 지역에 정착시키려 했지만, 결국 생활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이들이 전부 도시로 회귀하는 일을 겪었습니다. 결국 도시의 밀집화는 어찌할 수 없는 현상인가요?

 

파우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린 문제 같아요. 저는 세계 여러 도시에서 살아봐서 그런지, 이제 대도시보다는 중규모 도시가 더 좋습니다. 만일 한국에 다시 장기 거주하게 된다면 대구에 살고 싶네요. 서울이 인재가 몰리고, 여러 편의시설이 밀집하는 큰 도시지만 삶의 질만 따지자면 대구가 더 낫죠. 당장 서울에서는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큰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이 문제는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뉴욕의 좁고 비싼 아파트에 살면서 고급 음악회를 즐기며 살 거냐, 한적한 곳에서 여유롭게 살 거냐의 문제죠. 마냥 큰 도시만이 경쟁력을 가진 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앞으로는 생활비가 저렴하면서도 인프라를 잘 갖춘 중규모 도시의 경쟁력이 더 올라가리라고 봅니다. 지역 중심도시라고 할까요. 앞서 말한 대구가 대표적이죠. 앞으로 미래의 도시에서 생활공간 크기는 중요한 연구 과제가 될 겁니다.

 

김시덕: 어느 사회에나 서울, 부산과 같은 선도도시가 있고,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하는 도시가 있죠. 모든 작은 도시를 다 살리기는 앞으로 어렵다는 게 마강래 교수가 <지방도시 살생부>(개마고원 펴냄)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인구 감소가 필연적이기 때문이죠.

 

한국보다 먼저 지방소멸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의 경우, 도시 생존 마지노선이 인구 40~50만 명 수준인 듯합니다. 가나자와가 대표격이죠. 이 정도 밀집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도시 주변 인구를 빨아들여 생존이 가능합니다. 압축도시 개념이죠. 한국으로 따지자면 군산과 같은 사례입니다. 군산이 GM 사태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졌지만, 인구는 늘어나고 있어요. 더 큰 도시로 떠나기에는 거리상 떨어져 있지만, 인근 주변에서는 가장 잘 밀집된 도시가 그렇습니다.

 

파우저: 모든 지역에 좋은 인프라를 갖추고 밀집화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미국이 꾸준한 이민자 수용으로 인해 지금도 인구가 늘어나는 나라이지만, 미국에서도 농촌의 경우 생활 인프라는 좋지 않습니다. 먹거리 쇼핑 한 번 하는데도 자동차로 두 시간을 나가야 하는 게 보통 미국 농촌의 생활 모습이죠. 미국에서도 작은 도시의 황폐화는 진행 중인 문제입니다. 대신 시애틀과 같은 중규모 도시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죠.

 

김시덕: 인구 감소 시대에 압축도시, 곧 인프라를 큰 도시나 도시 중심부에 밀집화하는 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문제인 듯합니다. 일본에 살 때 체감한 건, 도쿄 외곽 주택단지에서도 슈퍼마켓이 점차 사라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어차피 모든 지역에 인프라를 채우는 건 불가능하니, 사람들이 더 모여 살도록 하고 중심부에 인프라를 갖추는 게 피할 수 없는 도시의 전략이라는 겁니다. 도시가 사람을 더 빨아들이고 집중화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이 경기 불황 시대 민간 토건 자본의 주도로 인해 겪은 '다람쥐 도로(생활 인프라를 마구잡이로 짓던 당시 만들어진 신조어. 사용하는 이가 거의 없는 곳에 세금으로 도로를 만들었더니 다람쥐만 사용하더라는 비아냥이 담겼다. 토건에 매달린 일본의 인위적 경기 부양책은 유바리시 파산 사태 등으로 파국을 고했다.)' 사례와 같은 부작용을 우리도 겪게 될 겁니다.

 

아울러 도시 경제 생태계가 특정 산업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특정 기업이 빠진다면 그 도시는 곧바로 큰 위기를 맞게 되죠. 가깝게는 거제의 사례가 그렇고, 대표적으로는 미국 디트로이트의 사례도 있습니다. 제인 제이콥스가 강조한 것처럼, 도시에는 여러 계급과 여러 직종이 섞여야 합니다.

 

파우저: 독일의 도시 사례가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제조업 기반이 여전히 탄탄하면서도 직업적 다양성이 존중받으니 자연스럽게 여러 계층이 도시에 섞여 살게 되죠. 독일의 대학진학률은 여전히 25% 수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클린턴 정부 이후 사람들의 대학을 향한 욕망이 커지면서 현재는 대학진학률이 40% 수준까지 올라왔죠. 그만큼 사람들은 (학비로 인한) 융자금 부담을 더 크게 지게 됐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도시 집중화의 중요한 원인으로 계층 상승 욕구를 거론해야만 할 듯합니다. 오직 상위 5%의 사람만이 강남에 집을 구하고 대학 학비를 충당할 수 있을 텐데, 모두가 성공하기 위해 이 같은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나머지 95%의 사람이 어떻게 살 것인지에 관한 비전을 리더십이 이끌어내야 합니다. 미국은 이에 실패해, 밀레니얼 세대는 한국인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게 됐습니다. 좋은 대학 나와야 해, 좋은 동네에 집을 사야 해, 이런 욕구가 이전 세대에 비해 아주 강합니다.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서울로 인구가 몰려드는 흐름을 거스르려하기보다, 이들을 수용해 더 질 좋은 생활환경을 제공하도록 도심은 초고밀도화하되, 대신 개발에 공공이 적극 관여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프레시안(최형락)

 

결국 답은 공공개발...정부가 나설 때

-도시 집중화가 앞으로 생존을 위해 필연적이라는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도시 집중화가 이뤄진다면, 즉 민간 자본의 아파트 개발 주도만이 이뤄진다면 결국 도시에서 가난한 이는 모두 쫓겨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김시덕: 한국의 문제는 정부가 조정 기능을 수행하지 않고 나랏돈을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정부가 임대주택을 적극적으로 공급해야 합니다. 앞서도 강조했듯, 한국의 문제는 개발이 아니라, 공공 개발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적극적인 정부 주도 개발로 도시 밀도를 높여야 합니다. 저는 박 시장의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은 좋다고 봅니다.

요즘 임대주택 차별 문제로 사회가 또 시끄럽습니다만, 그럼에도 답은 임대주택 공급 확대뿐입니다. 되도록 자연에 가깝게, 넓은 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건 누구나 가진 꿈이겠지만, 이를 만족하면서 인프라까지 갖춰진 공간에 모두가 거주하는 건 현재로서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파우저: 임대주택 위주로 개발하고, 도시 밀도를 올리자는 김시덕 교수의 말에 동의합니다. 저는 물론 생활공간이 널찍한 삶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서울의 경우 특히 아파트 단지의 밀집도가 너무 낮습니다. 심지어 100% 사람이 사는 게 아닌데도 너무 단지를 넓게, 군부대처럼 짓습니다. 조금 더 콤팩트하고, 주차장은 심지어 없는 아파트도 많이 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홍콩이나 뉴욕과 같은 인구 과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아파트죠. 이처럼 주거단지는 콤팩트하게 올리되, 나머지 공간을 시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원으로 도시 곳곳에 만드는 게 시민 삶에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유럽의 여러 도시처럼 건물 사이사이에 작은 포켓공원을 많이 만드는 게 좋습니다.

 

김시덕: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서울숲 같이 시 외곽에 커다랗게 자리한 공원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공원이란 동네에서 바로 걸어서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산재해야 합니다. 정부가 민간주택 용적률을 올려주는 대신, 공공을 위한 공간을 내놓게 하면 한국도 가능합니다.

파우저: 이런 문제는 정치가가 리더십으로 밀어붙여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각 주민의 욕망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주민 자율에 맡긴다면 결국 자본 논리에 따라 문제가 휘둘리기 마련이니까요. 올바른 생각을 가진 정치가가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밀어붙여 공공을 위한 답을 내놓기를 바랍니다. 이대희 기자 허환주 기자 /프레시안

 



서유석 -우리마을에 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