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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공원녹지

달팽이 공원문화 탐사단 3. 성지곡 어린이대공원을 가다

by 이성근 2013. 6. 30.

 

어린이 대공원의 원래 이름은 성지곡(聖知谷)이다. 신라시대 성지(聖知)라는 지관이 이곳이 명당이라 해서 '성지곡(聖知谷)'이라 불렸다. 성지곡은 지난 1978년 세계 아동의 해를 맞아 어린이대공원으로 개칭됐다. 성지곡수원지는 집수수로를 통해 저수지에 물을 모으고, 침전지에서 토사 등을 침전해 얻은 맑은 물을 여과지로 운반하는 등 유기적인 시스템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전돼 있다. 저수량은 약 61만t이고, 제방 길이는 112m, 제방 높이는 27m, 수심은 22.5m이다. 1972년 낙동강 상수도 취수공사가 완공되면서 상수도를 공급하는 기능이 중단되자, 수원지 일대가 공원화돼 어린이대공원으로 편입됐다.

6월28일 달팽이 공원문화 탐사단이 대공원 입구 자유회관  1층 세미나실로 모였다. 달팽이들은  0/T를 포함해 4번째 모임이 되다 보니 한층 자연스러웠다. 모임은 보통 1시에 이루어 진다.  그리고 5~6시 사이 일정을 마감한다. 넉넉한 시간은 아니지만  그 눈길들은 점차 넓고 깊게 확대되고 있다.  

어린이대공원은 부산진구 초읍동에 있는 면적 5백6만여㎡의 근린공원이다. 이 중 93%가 임야이다. 지난 78년 성지곡시민공원에서 어린이대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어린이회관, 교통안전교육장, 학생교육문화회관 등 시설물과 함께 가족친수공간, 습지생태학습교육장, 수변공원, 산책길 등이 조성돼 있다. 한때 동물원도 있었으나 운영난으로 없어지고 현재 8만4784㎡의 부지에 내년 4월 개장을 목표로 새로운 동물원인 '더 파크'가 건설되고 있다.

먼저 시설공단 어린이 대공원 사업소 최재천 소장의 현황 브리핑이 있었다.  공단이 고민하고 있는 지점은 탐사단과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 틀린다. 무엇을 중심에 놓고 보는가의 차이다.    

 

                                                                                                                                                                                                사진 : 부산일보 강선배기자

이어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힉과 교수의 특강 1 이 있었다. 어린이대공원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현장과 해외 사례를 통한 다양한 시각을 제시했다.

이어 동아대 강영조 조경학과 교수의 특강 2,  수원지에 대한 고찰이 있었다. 

귀한 자료가 공개되었다. 성지곡수원지는 1905년 쿠라시게(咸重哲三)의 1차 보고서와 2차 보고서를 토대로 건설됐다. 총공사비 117만원으로 당시 인구 기준으로 40년 뒤 3만명 거주를 목표로 수립했다. 1905년 부산땅에는 13,559명의일본인이 살았다. 초량 왜관이 있던 중구와 서구, 동구를 중심으로 이들의 거주 영역은 점차 확대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수도 시설은  조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 거류민의 것이었다.

1906년 대한국 탁지부 상수도 국장 이건영과 부산(일본인)거류민장은 '부산상수도 공동계약'을 다음과 같이 체결한다. 부산상수도는 한국정부와 일본거류민단체가 공동으로 경영하기로 하고, 상수도 건설에 소요되는 총 예산 152만원 중 먼저 35만원을 대한국정부가 출자한다. 나머지는 부산에 거주하는 일본인거류민단에서 은행융자를 얻어 충당하는데 대한국정부는 보증을 서기로 한다. 이리하여 한국정부는 부산에 상수도 사무국을 설치하고 내무부 토목국 관리 아래 성지곡 댐 공사가 1907년 착공된다. 완공은 1909년. 수도 급수는 1910년. 1908년에 급수를 시작한 서울보다 2년 정도 뒤처진 일이다. 

성지곡 수원지의 건설은  토목이나 도시계획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난다.  일본 최초의 댐은 1900년에 건설되었고 그 현장은 국보로서 대접받고 있다. 

1915년 11월20자 부산일보에 보도된 사진에 의하면 주변 산지는 민둥산이었다. 이에 기념식수가 이루어졌다. 총 `122만 그루가  식재되었는데 소나무 93만본, 상수리 4만본, 아카시(그때 표기로는 아카시아)9만본이었다.

100년을 훌쩍 뛰어 넘어 성지곡 일원은 부산에서 인공조림지로 첫 손을 꼽는 지역이 되었다.  하여 '100년 숲'으로 소개하고 있다.  아무튼 성지곡수원지는 대한제국이 출연한 돈으로 만들었고, 최초 상수도시설이자 최초 콘크리트댐으로 근대 영국식 수도방식에 근대 일본 토목기술자의 작품이란 점에서 새롭게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본격적인 탐사에 들었다. 입구의 조형물에 대해선 다소 간의 말이 있다. 어른을 위한 것인지 어린이를 위한 것인지 모호하다. 때문인지 어린이보다는 방문객 열에 일곱은 어른들이고, 그들의 복장은 대부분 등산복 차림이다.

 공원입구로 부터 수원지 순환도로를 따라 일주하는 데 약 두시간 정도 걸린다.  그래도 어린이 대공원이란 이름표를 걸고 있었을 때 그나마 어린이들이 즐겨 찾았다. 그나마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예전에 놀이기구가 있던 터에서 노인 놀이지도사를 비롯하여 공연, 토요장터 등이 열린다.

달팽이들이 수상한 관 앞에 모였다. 

성지곡 수원지에는 두 개의 댐이 있다. 상류에 있는 것이 저수지 댐이며, 그 아래에 있는 것이 침전지 댐이다. 저수지에서 운반된 물은 침전지에서 부유물을 가라앉히고, 표층의 맑은 물은 땅 속에 수로를 파서, 지금의 입구 매점 왼쪽 경사면 위까지 끌고 와서 아래로 떨어뜨려 여과지로 보냈다. 강영조교수는 "12m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은 바위에 부딪쳐 흰 포말을 일으키도록 했는데 그것은 공기 중의 산소를 끌어들여 물을 정화하려는 의도였다."고 했다.

동천은 백양산에서 발원해 성지곡수원지를 지나 지금의 롯데백화점 롯데호텔 등 서면 일대를 거쳐 부전2동 제일제당 언저리에서 전포천과 합류한 뒤, 부산시민회관 뒤편을 흘러 남구 우암동의 부산항 7부두를 통해 바다로 들어간다. 부전천 당감천 전포천 가야천 호계천 등 지류를 거느린 부산의 대표적인 도심 하천 동천은 하천연장 4.85㎞, 복개연장 2.93㎞로 복개율이 60.4%에 달한다. 본류는 당감천이다. 아무튼 이 하천의 주 지류인 부전천과 전포천은 지난 70~80년대 교통 소통을 위해 대부분 복개도로로 변했다.

강동진 교수가 어린이대공원과 동천의 연계에 대해 비젼을 제시한다.  동천은 허남식 부산시장에게 있어서 큰 짐이었다. 시장 취임 직후 부터 시달렸다.  할려면 제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거의 10년이 경과한 지금 동천은 새로운 관점에서 논의가 거듭되며 상상력이 더 해지고 있다. "동천 재생 사업은 도심에 생기를 불어 넣는 일이다. 그 생기는 피폐해진 서면 일대를 문화적 경제적으로 재작동시킬 것이다. 생기를 일으키는 중심은 사람이다. 그 사람은 나와 가족, 우리 이웃, 부산시민 모두이며, 모든 방문자들이다. 동천 때문에 웃음이 피어나고, 일자리가 생기며, 함께 할 공유가치가 커지면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닌가."

어린이대공원은 2008년11월~2012년 5월 노후 시설의 대대적인 정비를 벌였다. ‘3색 산책 순환로, 어린이 위한 스토리텔링 테마펜스, 코코몽과 함께 사진 찍을 수 있는 캐릭터 포토존을 설치했는가 하면 백양교와 성지교에 야간조명 시설을 설치했다.

순환로를 따라 각양각색의 모양과 색상으로 어지럽게 설치되어 있던 펜스(1.6㎞)가 어린이대공원이란 명칭에 걸맞게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테마펜스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부산시설공단은 2010년 2월 어린이대공원 내 전체 2.1㎞의 순환도로 중 난코스였던 수원지 댐마루 옆 오솔길 510m 코스에 누구나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는 친환경 램프형 데크로드를 설치해 어린이와 노약자 및 휠체어, 유모차도 어려움 없이 순환도로를 일주할 수 있도록 했다. 데크로드 오솔길의 이름은 시민공모를 통해 푸르름과 수원지 위의 저수지(담) 사이의 길이라는 의미의 '녹담길'로 지었다.  이용에 따른 시민의 반응은 좋다. 허나 너무 가파르다. 그리고 녹담길 아래를 어떻게 해 볼 수는 없을까?

재미있는 장면을 만났다.  가지가 잘려나간 일본전나무에 굴참나무 씨 하나 날아들었다. 묘하게도 거기서 싹을 올렸다.  제대로만 자라준다면 또 다른 볼거리가 될듯하다.

댐 아래 계곡부에 모여든 시민들 , 황금 놀이터다.  성지곡수원지의 가능성은 여기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다양한 형태로 즐기고 있다.

탐사단은 녹담대로 향했다.

 

1972년 낙동강 상수도 취수공사가 완공되면서 상수도를 공급하는 기능이 중단되자, 수원지 일대가 공원화돼 어린이대공원으로 편입됐다. 성지곡수원지댐이 축조된 지 100년(2009)이 지났다. 부산의 상수도 시설 역사는 혁혁하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3차례에 걸쳐 상수도 공사를 했는데 1895년 제1기는 복병산배수지, 1902년 제2기는 고원견수원지, 1910년 제3기는 성지곡수원지로 각각 대표된다. 제1기와 제2기는 근대 최초의 상수도 공사이다. 고원견수원지는 고원견산(엄광산) 자락에 있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의 구덕수원지를 일컫는다.

 

원래 초량왜관(용두산공원 일대, 전관거류지)의 일본 사람들은 왜관 안 우물 두 곳의 물을 먹고 살았다. 그러다가 개항 이후인 1880년 물이 부족해지자 보수천에 죽관(竹管)과 목통(木桶)을 대 물을 끌어다 먹었다. 이도 모자라자 1895년 제1기 상수도 공사를 해 보수천에 물을 모으는 제언(堤堰)시설을 하고 그 물을 전관거류지의 높은 곳인 복병산배수지로 보내 거류지의 4천 명에게 배급했다. 이를 근대 최초의 수도시설이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 물도 부족하자 제2기 공사에 착수해 축조한 것이 고원견수원지다. 1902년 기존의 복병산배수지와 철관의 송수관 배수관으로 연결된 근대 최초의 명실상부한 상수도 시설이 설치돼 1만 명에게 물을 배급할 수 있었다.

 

1910년 고원견수원지는 구(舊)수도가 된다. 신(新)수도인 제3기의 성지곡수원지가 축조돼 5만 명에게 추가로 물을 공급하게 됐기 때문이다. 성지곡수원지의 물은, 이때 역시 확장한 복병산배수지로 보내져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전관거류지와 부산진, 고관, 초량 일대의 신시가지에 공급됐다. 재미있는 것은 성지곡수원지 공사 때 자재 운반을 위해 깔았던 레일이 부산~동래 경편철도 레일로 활용됐는데 수도시설의 확충이 도시교통의 확장으로 연결됐다는 점이다.

사각으로 자른 석재를 가지런히 줄을 지어 한층씩 쌓아올린 석축은 마치 중세 유럽 고성의 성벽같다.  팬스 주위로 각 시대별 흔적이 남아 있다.  

수면이 비친 건너편 수변이 그림같다.

그동안 숱하게 이곳을 왔지만, 댐 마루 아래 중앙부에서 건너편을 바라보기는 처음이었다.  

어린이대공원 관리사업고 직원의 도움을 받아 ... 하지만 자물통은 녹이 설어 모두들 담을 넘었다.

평소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곳이다.

 

거기서 발견한, 아니 이번 탐사를 통해 확인하게 된

모두들 흔치 않은 장면을 보거나 담기 위해 카메라에 스마트 폰을 꺼내든다.

댐과 관련한 나머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달팽이들  

 강영조교수의 주문 하나,  숲 속에서 눈여겨 볼 것이 있다. 얕은 산주름 사이 골짜기를 따라 마치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배수로가 그것이다. 여름 장마 때 백양산에 비가 내리면, 골 바닥에 정교하게 부설한 배수로 위로 흰 포말을 일으키며 하류로 내려가는 물줄기를 볼 수 있다. 아무렇게나 생긴 돌을 정교하게 이어 붙여 산주름이 휘어지는 곳은 땅모양에 순응하듯 아름다운 곡선으로 굽이지는 배수로는 정교한 공예품처럼 아름답다. 강교수는  숲을 온전히 자라도록 하고 또 맑은 물을 수원지에 모으는 이 배수로야말로 성지곡 수원지의 보배라고 했다. 과연

허다한 체육시설 중 유독 베트민트장만이 가장 숲속에 있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부산에선 ...

 

당시 적용했던 댐 축조 방식이다. 사각으로 자른 석재를 가지런히 줄을 지어 한층씩 쌓아올린 석축에다 돌쌓기 콘크리트로 축조했다.

댐의 꼭대기에 마련된 통로 입구에 작은 기둥에 음각된 글, '융희(隆熙) 3년'이라는 글자. 융희는 순종의 연호로 3년은 1909년이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기 한 해 전 대한제국정부가 이 시설을 완공한 것임을 말해준다.

석판 맨 위에 기재된 사람은  성지곡 수원지 건설에 기술 자문을 한 나카지마 에이지 박사. 도쿄대 토목과 교수로 일본 근대 수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그 다음이 사노 토지로. 이 수원지의 배치와 댐 설계를 담당한 설계자다. 그는 도쿄대 토목과를 졸업한 후 영국에서 2년간 댐 기술을 연마하고 1900년 일본으로 돌아와 고베에서 일본 최초 콘크리트 댐인 누노비키 댐을 설계한다.

그 아래가 공사 감독을 담당한 아사미 츄우지다. 누노비키 댐도 그가 시공했다. 1910년 복병산 배수지에서 거행된 통수식에서 공사보고를 한 것도 이 사람이다. 석판 맨 아래에 기재된 토모나가도 고베의 수도 관계자다. 이 댐에 어떤 식으로 관계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이 성지곡 댐은 고베에서 온 일본인 기술자들과 당시 한국인들이 만든 것이다. 강영조 교수가 특강에서 언급했던 부분이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전, 댐 수리를 그말로 땜질 처리한 흔적들 (붉은 원내) 

습기가 많다 보니 지의류의 서식에 좋은 터가 되기도 하지만 우측의 그림처럼 밀려나는 현상도 보인다.

댐마루에서 동남쪽 방향 여수로의 물길이 있는 성지교가 보인다.

성지곡 수원지의 시설 중에서 봐 두어야 하는 곳은 수원지 남쪽의 안부를 뚫은 여수로다. 비단잉어가 무리를 지어 있는 작은 아치교 아래가 저수지의 물이 흘러 나가는 부분인데 그 물은 급한 경사로 흘러내려 지금의 동물원 자리 앞을 거쳐 어린이 대공원 입구 부근에서 합류하고 있다.

대개 여수로는 제체(댐의 몸)에 붙어 있다. 장마 때 저수지 물이 댐을 월류하는 장관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성지곡 수원지에는 그 여수로를 따로 마련하고 있다. 그 당시 영국에서 유행하던 배치 방식이었다. 최원규의 연구에 따르면, 그 당시 성지곡 하류에는 30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수리권을 이유로 공사에 필요한 부지의 매각에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결국 논에 물이 필요한 시기에는 물을 풀어주기로 하고 공사를 시작했다. 여수로를 따로 마련한 것은 하류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농업에 필요한 안정적인 물 공급을 위해서다. 강영조 교수의 현장 설명은 여기까지 였다.

눈여겨 볼 것은 앞의 성지교가 아니라 뒷족의 아치 수로다. 100년의 것이다.  

수원지를 배경으로 하늘 향해 키를 올린 전나무들이 인상적이다.

댐 마루를 지나자 마자 만나는 매점들 모두 19개가 있다. 매점의 존재에 대해 불만도 많다.  예컨데 어린이대공원의 성격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혜영 부산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신문 기고를 통해 “특성없이 비슷비슷한 음식과 물건들을 팔고 있는 식당과 매점 등을 각국의 특성을 보여줄 수 있는 건물로 재단장해야 한다. 판매하는 음식은 각 식당별로 한 가지만이라도 국가별 대표적인 대중음식을 팔도록 할 수 있다. 식당 안에 간단하게라도 그 나라에 대한 설명이나 특산품, 그림, 지도 등을 전시하는 전시대를 구비할 수 있으며 음식을 파는 사람도 그 나라의 전통 의상을 입도록 할 수 있다. 찾아오는 다문화가족들이 공원 방문 감상을 기록할 수 있도록 지면을 마련할 수도 있다.”며 어린이대공원을 다문화가족공원으로 재창조할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앞서 답사에 동참했던 의원들도 이에대한 아이디어를 나눈 바 있다.

성지교 아래는 유난히 잉어가 많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뻥튀기며 스낵, 과자 부스러기 따위의 먹이 때문이다. 길들여 졌음이다.  아님 거기에 먹이가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현재 수변부에는 거위와 청등오리가 몇 마리 있다. 예전에는 어울리지 않게 인공 고니구조물을 수면 중간에 띄워 놓기도 했다. 수변이 넓어 보여도 야생이 깃들긴 너무나 노출되어 있어 깃들려고 해도 꺼리는 곳이다.  

한편 성지곡수원지는 백양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유입하천도 있어 비오톱으로서 높은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생물다양성은 상당히 낮다. 지금까지 조사된 결과를 보면 잉어 ,붕어, 밀어정도가 관찰되고 수생식물과 수서곤충은 찾아보기 어렵다. 유입하천과 저수지의 바닥이 콘크리트로 되어 있고 저수지는 수심이 깊기 때문에 유입하천에서 생물이 유입되더라도 저수지내에서 서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마침 제철을 만난 까치수염이 수변을 장식한다.

자문위원들의 안타까움이 무더기로 쏟아진 노면

그리고 전체 컨셉과 어울리지 않게 들어선 배 모양의 쉼터, 그리고 예전에 물길이었던 곳을 메우고 조성돤 베트민트장, 또 하나의 지적거리는 공원의 특정지점을 조성했노라고 들어선 기념비들,  기부는 중요하지만  본질을 벗어난 형태라고 입을 모았다.

한편 계곡부의 변형에 대한 의견은 달랐다.  자유 탐방에 들었던 달팽이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있다.

두 개의 나무 이름표 좌측은 얼마전 시설공단에서 일괄적으로 달았던 것이고 우측은 10년 전 부산환경운동연합에서 달았던 나무이름표다. 생각해보니 15년 전 쯤이다. 다 제거되고 딱 두개 남았다.  그때 설명글을 작성하며 주문한 뒤 진구회원들과 부착했다. 당시로선 꽤나 고급재질을 선택했고, 그런 재질에 대한 판단이 옳았음인지 큰 변색이나 마모없이  아직도 변함없다.  민간에서 만든  제대로 된 나무 이름표를 남겨둘 수는 없었을까. 그때 이름표를 만들기 위해 국립공원까지 답사했었다.    

수원지내 산재해 있던 각종  비석과 기념물을 이렇게 모아 두었다.  

어린이대공원이 '노인대공원'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고 있다. 어린이가 즐길 것은 거의 없이, 노인들이 쉬고 등산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오가는 곳일 뿐이다. 실제 어린이대공원 안에 정작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라고는 어린이회관과 숲체험학습센터(2005.4 구 환경홍보교육관) 정도다. 그마저도 어린이회관은 어른이 올라가기도 힘든 곳에 있고, 숲체험학습센터 전시물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상 어린이를 위한 시설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숲에 와서도 스마트폰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비, 음각된 글자는 모두 지워졌다. 궁금했다. 무슨 사연이길레...

철거된 동마놀이공원은 1만5천572㎡ 규모로 1989년 1월 민간유치사업(15년간 무상, 6년간 유상사용)으로 ㈜동마에서 바이킹, 88열차, 회전목마 같은 17종의 유희시설을 설치해 부산시에 기부채납했다. 연간 70만 명이 이용해 왔으며 2011년2월 3일 사용허가기간이 만료됐다. 지금은 미끄럼틀만 있다. 하긴 나는 그당시 놀이시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 탐탁치 않았다.  이른바 정적인것과 동적인 것이 뒤섞여 버림으로서 어느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시끄러움이 지역의 어린이들에게는 즐거움이었다는 것이 ...

성지곡 수원지 주변 식생은 모두 99종으로 풍부한 편이다. 조림수종인 편백과 삼나무가 우점종이다. 우리나라 난대수종인 가시나무 졸가시나무 및 온대의 극상수종인 서어나무 참나무가 함께 분포하고 있는 매우 안정된 산림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초본류는 91종이 있다. 숲이 우거져 생명력이 끈질긴 계요등, 쇠무릎, 쥐꼬리망초, 파리풀 등이 많이 서식한다.

숲체험 학습센터 주변에서 발견한 참나무류들, 굴참나무와 갈참 등이 묘하게 줄기를 나누고 있다.  1,2,3,4

사명대사 동상을 돌아 어린이회관으로 향하는 자문위원들

좌측 차재근 숨 대표, 강여조 동아대교수,  강동진 경성대 교수 , 이동민 팀장,  김교정 동명대 교수

어린이회관 못가서 옹벽 보강공사현장을 만났다.  다른 방식의 옹벽공사와 재질이 선명히 읽힌다.

마지막 탐방코스인 어린이회관, 고 육영수 여사가 먼저 떠오른다. 어린이회관 부지 : 34,554㎡  건물 : 8,964㎡  - 전시관 : 5,457㎡ (1,651평), 지하 1층, 지상 10층  - 식물원 : 305㎡  - 장영실관 : 1,446㎡ - 초등영재교육원 : 1,737㎡, 지하1층, 지상3층으로 이루어 져 있다.

설계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아담하지만 잘 만든 것 같다.

1974.09.07. 개관> 1975.05.13. 수영장 매입 인수> 1976.11.22. 운동장 체육시설 완공> 1977.11.23. 과학실험실 개설> 1977.12.29 ·고 육영수여사 흉상 제막 >1981.10.14. 어린이교통공원개설> 1983.03.11.해양과학실 개설> 1987.05.14. ·통일교육관 개관 >1988.02.09.우주과학실 천체돔 설치> 1997.12.30.수영장,과학지도계건물철거> 1999.01.01부산광역시어린이회관으로 개칭> 1999.05.05.동화의 거리 조성> 2002.02.10. · 학습정보실, 복합놀이시설 설치> 2002.02.10. 3,4층 휴게공간(카페테리아)설치> 2002.02.22.장영실관 및 부산어린이식물원 개관(보조온실 및 관리동 포함)> 2002.08.30. · 지진체험탐구코너 설치> 2002.11.19. ·민물고기생태관 조성> 2008.03.18. 전시실 안내데스크 설치(6실)> 2008.05.05. 수학체험학습실 및 어린이과학도서실 개관> 2012.04.25. 나비.곤충 생태체험실 개관에 이르는 연혁을 살피면 개관 이후 어린이들에 대한 어른의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전망대로 오르는 계단에 설치된 모빌

 현재 어린이회관에서 진행중인 프로그램들

연간 십수만명이 방문하고 있다.

어린이회관 전망대에서 바라본 주요 경관들, 학생회관이있던 자리는 원래 수영장이 있던 자리였고, 그전에는 수원지 정수장이었다.  

회관 동쪽편 동물원 '더파크'가 한창 공사중이다.  

성지곡동물원은 1982년 문을 열었고 더파크가 인수하면서 2005년 문을 닫았다. 남아 있던 동물 65종 320여 마리는 국내외 동물원으로 팔려갔다. 수컷 하마 코돌이는 평양동물원으로 갔다.

당시 시 내부에서는 시립동물원 설립을 두고 논란이 분분했다. 서울 대전 대구 등 주요 대도시는 공익성을 고려해 공영 동물원을 갖고 있었다. 동물원이 쉽게 흑자를 내기 힘든 도시 인프라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부산시는 지난 2000년 동래·성지곡 동물원 매입을 시도했고, 2004년에는 대규모 시립동물원을 추진했으나 모두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방향은 '민자사업'으로 쏠렸다. 부산시는 도시계획시설로 인가를 받은 더파크에 대해 여러 차례 개장을 연기해 줬다. 시공사가 세 차례나 바뀌는 등 사업은 수년째 표류했다. 우여곡절 끝에 새 시공사로 향토건설사 삼정기업을 선정하고 공사 중에 있다. 내년 4월 개장하더라도 교통체증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반쪽 개장'에 그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업자 측이 내년 개장 전까지 동물원 입구 공영주차장을 500면 증설하지만 성수기 방문객 수를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더 파크' 공사현장은 경비원 1명만이 드넓은 공사장을 지키고 있었고, 시멘트 골조만 올라간 건설 현장 곳곳에서 각종 자재가 방치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부산시가 사실상 공공시설인 동물원 건설을 민간에만 의존한 채 뒷짐만 진 것이 주원인이다. 부산롯데호텔에 있던 부산유일의 호랑이 벵골호랑이 세자르도 개장이 지체되면서 통도환타지아로 갔다. 동물원 하나 없는 도시 부산, 그 서글픈 현실에서 아이 키우는 우리 엄마, 아빠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광역시 최저 출산율, 청장년 인구 유출의 오명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게다.

 

동물원에 대한 원성이 너무도 높았음인지 시는 공사를 서두르고 있다. 부산시가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동물 123 428수가  반입된다고 한다. 부지 84,784m²에 도보 사파리를 비롯해, 맞이공간, 중앙광장, 키즈랜드, 포레스트존 등 5개 존으로 구성된다. , 동물사 11개 동, 동물병원 등이 건립된다. 토목공사가 10월 중 마무리되고, 진입광장, 중앙광장, 편의시설 등이 12월에 준공된다. 입구 진입로에는 폭이 넓고 완만한 데크로드(110m)가 설치된다. 아울러, 시는 국내·외에서 곰, 얼룩말 등 동물을 구입하고 있다. 동물은 연내에 들여오며, 시는 개장 전까지 시뮬레이션과 실제 운영 등을 통해 프로그램상의 문제점을 보완할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4백여종의 동물이 살기에는 좀 좁지 않나 싶다.  여기에 몰려들 인파를 생각한다면...

인공위성을 통해 어린이대공원을 살피는 위원들

회관 뒷편 장영실관을 비롯하여 로봇 태권V 등의 조형물이 있다.  처음엔 마징가제트인 줄 알았다  

곤충생태 체험 온실 안과 밖에서 만난 동물들, 부화 배추흰나비와 검은물잠자리가 날아다녔다.  그리고 태연작 포즈를 취해준 청설모  

계단을 내려 선다.

거기 고 육영수 여사가 부산 어린이들에게 준 글귀하나 비석 속에 살아 있다.  웃고 뛰놀자 / 그리고 하늘을 보며 생각하고/  푸른 내일의 꿈을 키우자   새삼스럽다.

 

1974년9월7일자 경향신문에 소개된 개관식 보도기사 "... 50만 부산어린이들의 꿈을 키워주고 건강한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세워진 이회관... 부산시내 각급학교 육성회 복지시설기금4억1천4백53만원과 교육비 특별회계 1억5천원만원 등 6억1천4백84만8천원으로 지난 72년 9월28일부터 7천6백평의 부지 위에 착공된 이 회관은 ... 특히 이 회관 건립에 고 육영수 여사의 도움이 커 이날 개관식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고능(陸)여사가 생전에 이 회관의 기공식에 참석하여 연설했던 녹음을 들으며 슬픔을 달랬다..."

어린이회관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다. 수원지 옆 산책로를 따라 오르는 비탈길과 순환도로를 타고 오르는 길 두 가지인데 최근 접근성에 대한 토론이 진행 중이다. 토론의 목적은 이용불편을 해소하고, 시설 이용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접근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ㅣ  예컨데 에스컬레이트나 모노레일, 경사형 엘리베이트, 셔틀버스 등을 개설하려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주관은  부산시 교육청이며 일부 시의원들이  의욕적으로 스포트 하는 것 같았다.  주진입로는  90m>142m   52m 표고차     경사도 7.7      폭 8~20m 완만한 경사도로로 이동하며  성지곡로에서는  105m > 140m    35m 표고차    경사도는 8.3 이다.

 

현재 연간 이용객은 주로 유치원생/ 초등학생들로서 이중 성인이영객은 평균 37%다.  이용객은 매년 증가 추세인데 2009-15만명 (1일 평균 430명) ,2010-29만(1일 880명),2011-33만(1일 900명),2012-40만 (1일 1100명)이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

 

보행약자를 배려하여 이동 수단이 뭐가 되든 깔아야 하는가?

펜스에 걸린 다양한 수필과 동시들 처음엔 아이들 작품인줄 알았다.  가만 보니 전업작가들이 쓴 것이라 반감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시선을 가지고 접근하고저 노력한 흔적은 보였다. 아쉬웠다.

2009~2013년 동화의 거리를 이렇게 정비했다.  재미난장면들이 보인다.

 

해태제과에서 기증한 해태상, 해태의 엉덩이가 저렇게 생겼는지 처음 알았다.  하긴 누구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상상의 동물이니  

회관으로 오르는 초입, 어린이회관 표지석이 있다. 고 박정희전대통령의 친필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자유회관으로 내려오며  일대의 관리 영역과 주체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시설공단, 부산시교육청, 그리고 민간기업들 ... 

공원 삼거리에서 길목 공연이 벌어지려 한다. 구경꾼들의  뒷모습을 본다.  발표를 앞 두고 위원은 위원대로 달팽이들은 달팽이들 대로 의견을 나누기에 바쁘다.   

기대치가 높았던 것일까. 무더운 날씨 속에 진행된 어린이대공원 탐방에서 달팽이 탐사단원들이 보인 애착은 사뭇 달랐다.

부산자유회관 강당에 모여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라며 조심스레 운을 떼는 단원들. 다섯 개 조별로 머리를 맞대더니 아이디어가 속속 터져 나온다.

'눈에 뻔히 보이는 문제를 대체 왜 그냥 두고 있을까' 싶었는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콩콩 치기도 했다.

분위기는 자연스레 진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지아이'조 이수빈 단원이 작정한 듯 쏟아냈다. "길 경사가 가팔라서 애들이 찡찡대는 걸 봤어요. 어르신들은 아예 공원 밑에서 쉬고 계시고요. 그렇다면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 맨 위 놀이터까지 셔틀버스 같은 걸 운행하면 어떨까요. '동화의 거리' 같은 걸 만들어서 아이들이 즐거워 할 콘텐츠도 더 채워야겠어요. 가는 길에 시각장애인을 목격했는데 시설이 부족해 고생하고 있었어요. 수변공간에선 아무 것도 할 게 없었고요. 가로등도 더 달아서 밤낮으로 안전한 공원을 만들었으면 해요. 특히 공원 안 동선이 복잡해서 신속하게 응급 처치를 할 공간이나 시스템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표지판이 부족해서 조금만 큰길에서 벗어나면 지도를 봐도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어요. 학생교육문화회관에 숙박 기능을 주고 공원과 연계해 다양한 어린이, 청소년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솔직히 어린이회관에 오르는 경사길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순환버스든 미니열차든, 어린이나 노약자와 보호자에 한해 이용하게 하면 좋겠어요. 매점이 많았지만 음식이 어른 위주고 낡은 편이었습니다. 키즈카페나 다양한 형태로 개선해 운영하면 어떨까요." '녹색이음'조 김승태 단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처진달팽이'조 오현주 단원은 '가족'에 방점을 뒀다. "가족 단위로 온 분들이 참 많았어요. 아빠 없이 엄마랑 아기만 오면 화장실이 산책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혼자 유모차를 두고 가기 힘들게 돼 있었습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이용하기가 힘들겠지요, 수유공간도 부족해 보였고요. 숲체험 학습장이랑 가기 힘든 어린이회관 말고도 시민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더 많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숲 속에서 자리만 깔고 앉아 있었어요."

'아띠'조 강창효 단원은 의미심장한 주제를 끄집어냈다. "어린이를 위해 성장이라는 테마로 공간을 재구성했으면 합니다. 영어로는 'Growth Park(성장 공원)' 정도겠죠. 공원 150만 평 가운데 93%가 녹지라니까 어린이들이 직접 나무를 심고 가꾼다든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고민해 봅시다. 아무리 관할 기관이 다르다지만, 어린이회관 쪽과 공원 전체를 모든 면에서 연계해야 마땅할 것 같아요." 부산일보 7월 12일 박세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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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음 블로그 홍이 아뜨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