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까지만 해도 북적거린 금강공원
"나무 좋지, 계곡 좋지, 물 좋지. 놀기가 얼마나 좋았겠어요. 60~70년대만 해도 북 치고 장구치고, 부산 사람들이 흥을 내 즐기는 명소가 금강공원이었습니다. 하도 열심히 놀아 여자들이 치마 벗겨지는지도 몰랐다나요. 얄궂은 소리지만, 그만큼 부산 사람들에게 금강공원이 사랑받았다는 겁니다." 그런 이력을 지닌 금강공원이 지금은 매우? 초라하다.
금강공원(면적: 30만 6천 ㎡)이 위치한 금정산 능선 남쪽 끝은 산세의 수려함이 마치 작은 금강산 같다하여 신라 때부터 소금강이라 불렸으며 공원 아름도 여기서 유래한다. 또 신라시대 때부터 ‘온정(溫井)이란 이름으로 임금이 와서 피부병을 치료한 곳이기도 하다. 1940년부터 금강원이라 불리다가 1965년 공원으로 지정됐다.
노송과 자연석의 비율이 비슷할 정도로 자연석이 많으며, 자연석 사이에는 사스레피나무· 산철쭉·진달래· 때죽나무· 붉나무 등이 자생하고 있다. 산중턱 계곡에는 산벚나무·서어나무·굴피나무·참나무 등이 노송에 섞여 자라고 있다.
탐사단이 모처에서 발견한 고란초 군락, 생육상태가 양호 했다.
금강공원 탐방은 6월8일 공원아놀자 추진단 (자문위원) 중심의 선행 답사가 있었고 15일 달팽이탐사단이 투입되었다.
언제나 처럼 특강이 먼저 있었다. 부산대 김동필교수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특강이 이루어진 곳은 금정사에서 였다. 사전 답사 때 우연히 입법스님을 만나게 됨으로 장소 확보가 이루어 졌던 것이다. 금정사에 대한 자료는 다음까페 불(佛)씨회를 참고하면 될듯하다. 아마튼 기꺼이 장소를 제공해 준 금정사 현각 주지스님께 감사드린다. 원래 보제루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당일 예정에 없던 제가 생겨 금정선방에서 강의가 이루어 졌다. 아무튼 금정사는 창건은 백년 남짓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역사를 지닌 사찰이다.
금정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재단법인 선학원 소속이다.
금정사는 1924년 금우스님에 의해 기도처로 창건됐다. 구전에 이곳이 절골 이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그 오랜 옛날에는 사찰이 있었던 자리였으리라 짐작하지만 전해오는 문헌이나 기록은 전무하다. 지금으로부터 1백여 년전인 조선말기, 금정사가 자리한 이곳은 동래부의 사형 집행장이었다고 한다. 지금과 달리 인적도 드물고 산세도 험하던 시절이라 비만 오면 이곳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원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 인적은 더욱 드물게 되었다. 인적이 드물어지자 나병환자들이 모여들어 집성촌이 형성되는 바람에 아랫마을 사람들의 원성이 더욱 높아져 동래부사와 금우스님이 이곳에 토굴을 짓고 기도처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홀로 목탁을 치며 죽어간 원혼들을 달래주던 스님은 훗날 신도들이 하나둘 생겨나자 원력을 세워 사격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 뒤 금정사는 1954년 무렵부터 석주스님의 도움으로 중창을 거듭했으며 1993년 대대적인 중창 이후 참선수행도량으로 탈바꿈하게 됐다고 한다.
창건주 금우스님이 석주스님에게 절을 희사하자 전국에서 스님들이 모여들어 선방이 하나 둘 생겨나고 금정사는 이내 선원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그러하던 것이 해방을 맞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전국의 스님들이 부산으로 모여 들었고 이후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암, 효봉, 경봉, 성철, 석주스님 등 근대 한국불교계의 흔치않은 큰 거목들이 두루 주석하던 유서깊은 사찰로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이렇게 당대의 큰스님들이 한 절에 모인 예는 무척 드문 일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합천 해인사의 가야총림이 문을 닫고 스님들이 남하하게 되자 그해 겨울 효봉 방장스님은 금정선원, 그리고 그 제자 구산스님은 진주 응석사에 주석하시면서 이 일대의 선풍이 드날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다.
또한 금정사는 근대 최초의 방생지로 유명한 곳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전국에 걸쳐 많은 방생지가 있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유명무실해지자 2004년 입적한 칠보사 조실 석주스님이 이곳에 절 마당을 파고 방생지를 설립, 그물이나 낚시로 인해 또다시 화를 입는 물고기들을 위한 회향터를 이루었다고 한다.
김동필교수의 특강에 이어 박세익기자의 금강공원 개조'드림랜드'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고, 강영조 교수의 일대 문화 유적에 대한 덧붙임 이야기가 있었다.
강의가 끝난 다음 특별 게스트 손수조 문화유산해설사가 진행하는 현장 둘러보기가 이어졌다.
공원 안에는 부산민속예술관, 세계해양생물전시관, 동물원(2001년 폐쇄됨), 식물원, 각종 놀이시설, 체육공원 등이 있으며, 특히 부산민속예술관에서는 동래야류(중요무형문화재 18)와 동래지신밟기(부산무형문화재 4), 동래학춤(부산무형문화재 3) 등의 전통 민속놀이를 가르치고 공연도 한다. 망미루(부산유형문화재 4), 독진대아문(부산유형문화재 5), 임진동래의총(부산기념물 13), 내주축성비(부산기념물 16), 이섭교비(부산기념물 33) 등의 문화재가 전한다.
한편 일제가 금강공원을 조성하면서 그 내력을 적은 바위기념비 등 일제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으나, 자치단체는 예산난과 주민 반발을 이유로 정비를 외면하고 있다. 일제는 항일의식이 유별났던 동래읍성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일제가 시가지 정리계획을 추진하면서 동래읍성터에 있던 망미루, 독진대아문, 내주축성비, 이섭교비 등 각종 성문과 비석 등을 지금의 금강공원으로 옮겼다.
차철욱 부산대 교수는 "금강공원은 부산으로 건너와 담배장사로 큰돈을 번 일본인 자본가 히가시 바라(東原嘉次郞)의 개인 정원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1920년대 초반 금정산의 자연환경을 최대한 이용하여 정원을 꾸몄다. 계곡물을 이용해 '청룡담(靑龍潭)'이라는 일본식 연못을 만들고, 전망 좋은 언덕에 13층 높이의 '후락탑(後樂塔)'도 세워 일본인 자본가의 위세를 과시했다"고 한다. 그는 또한 개인 정원을 일반인 관람객들에게 개방했다. 온천장에서 목욕을 즐긴 관광객들이 금강원에 올라 금정산의 자연과 어울리는 것은 관광의 필수 코스였다. 공중목욕탕에서 온천욕을 하고, 금강원에서 소풍을 즐기면서 만족스러워하는 조선인의 모습은 엽서나 관광안내서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히가시 바라는 1940년 이 정원을 동래읍에 기증했다. 정원과 관련한 내용은 등산로 주변 바위를 깎아 만든 '금강원지(金剛園誌)'에 기록되어 전하고 있다.
사실 1910년 8월 일제에 의해 동래부가 부산부로 바뀌기 전까지 '동래'는 곧 부산이었다.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일제는 철저히 동래 문화를 파괴하려 했고, 그 결과 동래부라는 명칭은 사라졌지만 그전까지 동래는 2천여년 전 장산국(또는 거칠산국)으로, 신라 시대인 757년부터 조선시대까지는 동래군, 동래현, 동래부 등의 형태로 부산 대부분 지역을 관할해 왔다. 당시 동래부사는 곧 오늘날의 부산시장이었는데 동래부사가 머물렀던 곳이 동래읍성이며 동래부사가 사무를 봤던 곳이 읍성 안 동헌이었다.
옛 동래부 청사였던 동헌 앞(현 동래시장앞 사거리)에 있던 망미루와 망미루 뒤쪽(현 낙민동 농협앞)에 있던 독진대아문은 각각 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4, 5호. 독진대아문은 동래부의 군사권이 경주진영에서 동래로 이관됐음을 알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현판을 변박이 썼다. 이 문 양쪽 주련, '진변병마절제영'(鎭邊兵馬節制營)과 '교린연향선위사'(交隣宴餉宣慰司)는 대원군이 썼다고 하는데 전쟁과 교린이 겹쳐 있는 첨예한 경계 도시 부산을 말하고 있다. 즉 '교린연향선위사'(交隣宴餉宣慰司·대일외교와 사신을 접대하는 관청), '진변병마절제영'(鎭邊兵馬節制營·변방을 수호하는 병마절제사의 군영)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한쪽은 군사와 국방, 다른 한쪽은 외교에 관한 것인데, 상반된 두 화두가 조선시대 동래의 마인드임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의 공원조성비, ‘일본인들의 유람을 위해 소화6년(1930년) 부산 동래 히가시하라 카지료오군이 공원을 조성했다’는 ‘皇紀 二千六百年記念碑’ 철거 찬반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어느 달팽이가 "이런 것을 치우면 금강공원이 너무 허전하겠다"는 표현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역사는 지우면 지워져 버린다. 그러면 왜곡이 일어 난다.
1965년 금강공원 조성 이후 1966년 케이블카, 1967년 동물원, 1969년 식물원이 차례로 생기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만 해도 평일에도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이 일대에 사람들로 가득차 이동이 힘들었을 정도였다. 2013년6월8일 자문위원 답사에서 금강공원 입구 주 동선인 금강공원로 123길 주변의 상권은 한산했다. 금강공원로에서 20년 이상 영업중인 80대 노인의 표현에 의하면 이용인파의 수준을 ‘100/1’ 수준으로 표현했다.
금강공원 케이블카는 지난 2013년 1월20일 고장으로 멈추어 선 이후 운행이 되지 않고 있다. 금ㅂ강공원 케이블카 고장은 1980년2월. 1984년 5월, 1986년 3월 등 모두 네 차례 발생했다.
금강공원 내 놀이시설은 달팽이 탐사단이 방문하는 날 거의 다 철거된 수준이었다.
회전목마의 말들은 별도로 보관을해 두고 사후를 모색해봄도 좋지 않을까
금강공원은 2004년 7월1일부터 무료화 했다. 공원 내 사유지 소유자로부터 시의 부당이득금에 대한 잦은 소송제기로 말썽을 빚어온 데다 공원시설 낙후와 볼거리 부족에 따른 시민들의 불만이 높고 매표소 운영의 경영상 실익이 낮는 등 그동안 무료화요구가 제기돼 온 데 따른 것이다. 부산시설공단이 금강공원을 관리 한 것은 1998년 1월부터이다.
금강공원 내 매점은 지난 1974년 부산시가 공원 내에 흩어져 있던 노점상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국유지와 시유지 등에 5.28㎡에서 7.92㎡까지 54개소의 콘테이너형 상점 허가를 내 주며 들어서게 됐다. 시는 업주들과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며 해마다 5만 원 안팎의 점용료를 부과해왔다. 업주들은 보상 등 대안 제시 없이 일방적으로 영업을 그만두게 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공원 내에는 인근 주민을 위한 체육시설이 두 곳 있다. 체육시설 터는 원래 온천동 고분군터 였다.
공원 내에는 벤치와 쉼터 , 정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기존의 동선 외에 산자락 쪽에 별도의 걷기길도 열려 있다. 화단의 조성과 자연식생의 보전과 확대가 진지하게 이루어 져야 할 듯하다.
지난 2005년 성지곡동물원이 문을 닫은 이래 부산에 동물원이 전무하다. 공원 한쪽에 설치된 우리에 닭이며, 토끼, 심지어 개까지 사육되고 있는데..그나마 아이들은 신기해 하고 좋아한다. 씁슬한 현실이다.
금강공원에는 향파 이주홍의 문학비(1988) 외에도 부산의 옛 문인 이영도(1996), 최계락의 문학비(1971)를 비롯하여 , 사진작가 허종배의 추모비(1998)도 있다. 하단의 일제희생위령비는 1973년 세워졌다. 발품을 팔다보면 1978년 세워진 일붕 서경보의 선(禪)시비를 비롯하여 다양한 비들을 만날 수 있다. 문득 이 비들을 통해 프로그램을 세울 수도 있지 않을 까 싶다.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이 전문 인력부족으로 국내 최초의 해양자연사 전문박물관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전문적인 자료 수집과 전시, 교육, 연구 등 제대로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은 1985년부터 동래구 온천동 금강공원 내에서 민간이 운영하던 수족관을 부산시가 인수해 시설 리모델링을 거쳐 1994년 6월 세계해양생물전시관으로 개관, 운영에 들어갔다. 이후 2000년 현재의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 해양분야 전문 박물관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해양자연사 박물관 위에 자리한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는 지역에서 가장 긴 연륜을 자랑한다. 동래야류(중요무형문화재 18호) 동래학춤(부산시지정 무형문화재 3호) 동래지신밟기(〃4호), 동래고무(〃10호)와 발굴 종목인 동래한량춤을 보유하고 있다.
공원 입구 정면에 자리한 민속공예체험장도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금강공원 아래 동래별장 역시 일제시대 일본인이 조성한 정원이다. 동래별장은 일제강점기 부산 제일의 땅부자인 하자마(迫間房太郞)가 지은 박간별장(迫間別莊)으로 박간탕원(迫間湯源)이라 불렀다. 건물의 건축시기가
언제 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1924년 9월 10일 조선총독부 시정(始政) 20년을 기념 박람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는데, 그때 일천왕을
대신하여 왕족인 閑院宮이 부산에 와서 동래온천장에 숙박하게 되었다. 당시 부산의 일본인 대지주였던 하사마(迫間房太郞)는 그를 접대하였는데,
閑院宮은 박간별장에서 숙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로 보아 별장은 1920년대 초에 신축된 것으로 보인다.
하자마는 부산상공회의소 특별위원, 경상남도회부의장, 부산번영회장을 역임하고, 부산토지주식회사 사장, 부산상업은행과 조선저축은행 이사를 지내며 부산경제를 좌지우지하였다. 하자마는 1880년 5월 부산 개항 직후 우리나라에 건너왔다. 그는 1850년 일본 화가산현(和歌山縣) 출신으로 오사카시(大阪市) 오백정장(五白井長) 상점의 부산지점 지배인으로 부산에 왔다.
1899년 독립하여 5년후 부산에 본점을 두고 블라디보스토크·마산·청진 등에 지점을 설치하는 등 활동범위를 넓혀갔다. 1918년에는 부산부 동광동에 박간총본점겸 주택 2층짜리를 세우는 등 그는 특히 토지와 가옥 등을 수매, 굴지의 부동산업자가 되어 부산 제일의 재벌이 되었다. 그는 부산뿐만 아니라 1930년대에는 경남지역에도 780만평의 토지를 소유하여 도내 소작지의 3.5%를 차지할 정도였다.
1945년 8.15 광복과 함께 9월에는 미군이 부산에 진주하면서 박간별장(迫間別莊)에는 경상남도 양산·밀양·울산 등지를 관할하는 경상남도 제3지구 미군정청이 자리하면서 군정사무를 보게되었다. 인근에 있었던 지금의 농심호텔 자리에는 미군 G-2부대가 주둔하게 되었다. 한국전쟁 때에는 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동래별장”으로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담장이 높직한데 주변의 좋은 경치를 별장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의도이다. 별장을 둘러싸고 있는 역시 일본양식인데 지금도 남아 있다. 높은 담장 안에 나무를 심고
연못을 파서 금정산 계곡의 물을 끌어들여 이곳을 흐르게 하였다.
동래별장은 본관 목조 2층 건물의 200평 규모와 별채, 정자, 석탑, 석등, 부도 등을 세우고 마당에 모래를 깔아 인공장식을 만들었다. 연못 옆에는 높이 1.5m인 3층석탑이, 신관 앞에는 10m인 13층 일본식 양식의 석탑이 서있다. 이 석탑은 기단 하부가 3단으로 구성되고 옥개석이 13층으로 쌓아 올린 탑신을 세우고 상륜부는 일본형의 목발이 동서남북에 일장기를 연상시키는 원을 양각하고 그 위에 보주를 꽂아 놓았다. 기단부 아래에는 시멘트로 가려져 무슨 글자가 새겨져 있는지 알 수 없다.
또한 동래별장 입구 오른쪽과 왼쪽에는 일본형 석등 4기가 세워져 있으며, 석등의 몸체에 음각 된 무늬가 특이하고 지붕모양이 뽀족하여 마치 병사의 투구를 연상케 하며 일부는 일본식 지붕의 모양을 하고 있다.
동래별장은 1965년 고급요정으로 영업을 시작하한 이후 한국을 찾은 국빈급 인사는 물론 군사정부시절 부산에 온 대통령도 들렸을 만큼 관광 명소로 유명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온천장의 쇠락과 더불어 휴·폐업을 거듭 해오다가 1997년 11월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지 3년만인 2000년 10월 고급요정에서 전통 국악공연을 보면서 호텔급 수준의 전통 한정식을 제공하는 관광음식점으로 탈바꿈하여 다시 문을 열었다.(부산시 홈페이지에서)
동래읍성 4대문의 여닫는 시간을 북을 쳐서 알렸던 곳인 망미루는 '그리워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원래 수안치안센터 맞은편에 위치했다. 수안치안센터가 들어선 자리는 서문에서 망미루로 이어진 옛길 한가운데다. 망미루는 서문과 함께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그 길은 한양으로 가는 영남로와 연결되는 주요 간선로였다. 한양에서 취임한 부사가 동헌으로 오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따져보면 읍성의 옛길과 문루는 치밀하게 계산됐었다. 남문은 양정-부산진성과 연결됐고, 동문은 이섭교를 지나 좌수영성과 연결돼 있었다.
이섭교비(利涉橋碑)는 1694년 조선 숙종 20년 동래구 안락동과 연제구 연산동을 이어주기 위해 온천천에 돌다리인 이섭교를 놓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당시 축조에 참여한 사람의 직책과 성명이 기록되어 귀중한 향토사 연구 자료로 평가받아 왔다. 하지만 일제 때 금강원을 조성하면서 조경을 위해 금강공원 케이블카 탑승대 부근으로 옮겨졌다. 내주축성비(萊州築城碑)는 1731년 영조 7년 동래부사 정언섭이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동래읍성을 고치고 이를 기념해 동래읍성 남문 밖에 세웠다. 이후 여러 차례 성 안팎을 떠돌아다녔다.
독진대아문 바로 뒤쪽, 동래금강원비라는 커다란 자연석 옆에 가로로 길쭉한 시비가 있다. 흥선대원군의 총애를 받았던 동래부사 정현덕의 금강원 시비다. 태평하고 번성한 동래로 부임해 온 목민관의 소회를 유려한 글씨로 새겼다.
금강공원에는 ‘일본인들의 유람을 위해 소화6년(1930년) 부산 동래 히가시하라 카지료오군이 공원을 조성했다’는 ‘황기2600년 기념비(皇紀 二千六百年記念碑)라는 글이 새겨진 바위와 13층 석탑 석불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달팽이 탐사단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주변에 있는 사찰들
'임진동래의총(壬辰東萊義塚)'의 처지도 기구하다. 1731년 동래부사 정언섭이 동래읍성을 고쳐 쌓을 때 남문 근처에서 임진왜란 때 전사한 유해를 발견해 내성중학교 자리에 무덤을 만들었고, 복천박물관 내 영보단을 거쳐 금강공원으로 이장돼 온 것이다.
탐방을 마치고 다시 금정사 선방에 모였다.
조별 토론이 이어졌다. 여러분은 금강공원을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
탐사단이 제시한 해법은 "청소년 참여 마당 늘려 이용률 높여야"
"석탑 등 문화시설 연결한 루트 개발을"
역시 젊음이 품은 에너지와 잠재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도시공원 탐사가 두 번째로 접어들자 단원들은 눈빛부터 달라졌다.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공원 이곳저곳을 진지하게 관찰했다.
지난 15일 시민들이 외면하는 금강공원의 현실을 확인한 단원들은 놀랍게도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공원 안 금정사에서 가진 종합토론에서, 또 망미루 인근 오래된 식당에서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을 걸치며 뒤풀이를 하면서도 그랬다.
"공원에 유스호스텔도 있고, 주변에 학교나 해양자연사박물관 등이 있어 청소년 시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울림 페스티벌' 같은 청소년의 장을 많이 만들어 주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어르신들의 재능 기부로 두 세대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도 있고요. 결국 이용률을 높이는 것이 문제니까, 홍보 전담인력을 확보해서 주기적이고 구체적인 참여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알리면 어떨까요." '지아이'조 김도균 단원의 제안에 '처진달팽이'조 이슬기 조장이 힘을 보탠다.
"여기저기 연결된 길을 활용해 여러 테마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가족 단위로 즐길 장소도 더 만들고. 계단이 많고 경사가 심해 장애인들이 이용하기가 힘들 것 같았습니다. 입구에서 전동휠체어를 대여해 주고, 경사길을 더 많이 만들고요."
이 조장은 철거되는 놀이시설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폐공장을 공원으로 바꾼 독일처럼 시설을 재활용해 '테크노 파크' 같은 걸 만들면 되잖아요. 없앨 수밖에 없다면 돈 들고 사업성 없는 건물 짓지 말고 차라리 너른 녹색 광장을 조성하면 공원 문화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추억과 역사를 적극 끌어들이자는 대안도 귀를 솔깃하게 했다. '녹색이음'조 이슬 조장은 "모금이나 투자를 통해 옛 기억을 되살리는 공간, 자연스러운 수변공간을 더 만들어서 어린이나 노약자들이 쉴 곳을 더 채워 주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어른신들 경보대회 같은 것도 재미있겠다"며 "어린이 '숲 속 도서관'이나 공원 안 사찰을 연계한 템플스테이 같은 교육 가치가 있는 프로그램도 추진해 보면 좋겠다. 어쨌든 활성화되지 않는 시설보다는 먼저 시민 참여가 제대로 이뤄지는 공원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띠'조 천동재 조장은 "동래에 살면서 금강공원에 오늘 처음 와 봤는데, 이렇게 좋은 곳인 줄 몰랐다"고 고백했다. 그는 "루브르 박물관처럼 동래읍성에서 온 많은 역사 시설물이나 각종 문학비, 민속예술관 등 문화 시설을 연결하는 루트로 프로그램을 특화한 금강공원이면 매력적일 것 같다. 끊어진 주변과 잘 연결시킬 방법도 찾아보자"며 "사찰의 풍경 소리나 자연, 삶의 소리를 활용한 '소리 경관(Sound Scape)'도 도입해 볼 만하다"고 했다. (12.6.28 부산일보 박세익 기자 )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집으로 가는 길, 동명대 김교정 교수의 제안으로 산성말걸리에 동래파전을 곁드린 작은 뒷풀이가 있었다.
공원 후문에는 흔하게 보던 노점상들이 있다. 솜사탕이며, 번데기 등
동래구 금강공원 동래동물원은 지난 1964년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동물원. 전체 면적은 3만 1천600㎡(9천559평). 코끼리와 호랑이 등 140종 860여 마리가 북적였다. 휴일이면 동물원 입구에서부터 400m 떨어진 망미루까지 표를 사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동물원이었다. 개장 후 인기가 좋아 주말이면 부산과 인근 지역의 사람들이 찾아와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1982년에는 어린이대공원에 성지곡동물원이 개장하여 시내에 두 개의 동물원이 운영되기도 했다. 성지곡동물원은 동래동물원에 비해 규모는 작았지만 어린이대공원에 자리해 많은 사람이 즐겨 찾았다. 그러나 사회환경의 변화와 함께 지속적인 투자와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이들 동물원은 차례로 문을 닫았다. 동래동물원은 동물들을 대전동물원에 매각하고 2001년에, 성지곡동물원은 테마파크 형식의 새로운 동물원을 조성한다는 계획 아래 2005년 10월에 폐장하였다.
폐장된 동물원 터는 지역민의 텃밭화 되었다. 어느 구석에서 찾아낸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흔적, 1973년 5월23일 '박정희 대통령 각하 꽃사슴 하사' 기념비? 이다.
40년 전인 1969년 9월, 부산에 민간 식물원이 등장했다. 이 식물원은 19만4천여㎡에 이르는 막대한 면적과 2천300여 종의 풍부한 수종을 자랑했다. 우리나라 제1호 민간 식물원, 부산 금강식물원 이야기다. 향토기업인 성창기업지주의 설립자 고 정태성 회장이 만들었다. 인근의 금강공원 동물원이 문을 닫으면서부터는 입장객 수가 급감했다.
부산시설공단은 2008년부터 사업비 33억원을 들여 ‘금강공원 재정비 1단계 사업’을 마무리하면서 기존 산책로 300m를 재정비하고 데크로드, 전망데크, 휴게쉼터, 나무다리 등을 새로 만들었다. 송림계곡에는 민속미술관부터 소림사 주변까지 계곡 3000㎡를 정비하고 생태연못, 수변데크, 휴게쉼터 등을 새로 조성했다. 특히 밤에도 산책을 할 수 있도록 산책로 전 구간과 생태연못 주변에 야간조명등을 설치하였다.
부산시는 온천동 금강공원을 드림랜드(Dream Land)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30만 6천㎡의 면적에 시비 297억 원, 민자 655억 원을 투입한다. 우선 정비되는 것이 놀이시설이다. 기존 시설 부지매입과 영업보상 명목으로 30억 원을 내년 예산에 편성했다. 면적도 기존보다 3배 가까이(2천400㎡→6천400㎡) 는다. 부산시설공단은 내년까지 유희시설 정비 및 소방안전체험관, 미로공원(옛동물원 부지), 민속예술관, 어린이 직업체험관 조성 등 재정비 2단계 사업과 2015년까지 주차장·광장 조성, 박물관, 유스호스텔, 숲속어드벤처(짚라인), 힐링캠프 조성 등 3단계 사업을 단계별로 추진할 계획이다.
금강공원을 관리하는 부산시설관리공단이 금강공원에 대해 내세운 슬로건은 '삶의 여유와 휴식을 제공하는 시민의 쉼터'다. 진정한 삶의 여유와 휴식은 어떤 것일까? 예전 금강공원 입구에 내걸렸던 편액에 새겨진 '시민참여, 금강공원'이란 글이 작금의 드림랜드 계획을 자꾸만 뒤돌아 보게 한다.
부산지역 초등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유희시설은 놀이공원과 동물원으로 나타났다.
부산시의회 교육위원회 김정선 의원이 2011년 7월 부산시내 초등학생 39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부산에 생겼으면 하는 유희시설로 놀이공원(30.8%), 동물원(16.6%), 야영장(16.3%)을 꼽았다. 다음으로 수족관ㆍ돌고래쇼장(11.3%), 어린이 전용 놀이체험장(8.1%), 수목원(3.5%), 워터파크(1.2%) 등이었다.
주말에 가고 싶은 곳을 묻는 물음에도 응답자 69%가 놀이공원이라고 답했다. 놀이공원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는 부산의 놀이시설(65.9%)보다 시외에 있는 놀이시설(86.8%)의 만족도가 높았다. 초등학생들의 부산시내 유희시설 방문 경험(중복 응답)은 어린이대공원(74.4%),용두산공원(33.1%), 미월드(25.9%), 태종대유원지(17.9%), 금강공원(16.9%) 순으로 나타났다.
한편 부산지역에는 가족 단위의 '쉴 곳'이 없다는 조사도 있다. 등산로, 산책로 등 걷기 중심의 공원이 조성되다 보니 정작 가족들이 함께 머물 수 있는 공원은 찾기 어렵다는 것. 게다가 부산을 대표할 만한 대규모 공원도 없는 실정이다. 시민들의 공원에 대한 욕구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발전시민재단이 2010년 10월 부산 시민 62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가장 많은 29.2%가 부산의 도시 디자인 중 가장 큰 문제점으로 '주변에 없는 숲과 공원'을 꼽았다. 상지건축 부설연구소 홍순연 박사는 "울산의 경우 SK라는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대규모 공원을 조성하고 학교 대부분이 잔디밭으로 이뤄진 울산대학교는 시민들이 피크닉을 즐기는 중요한 공간으로써 역할을 하고 있다"며 "기업의 공개공지 개방, 대학교 활용 등 공익적 활용을 통해 곳곳에 공원과 공원에 맞는 콘텐츠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등산·산책로 중심, '공원 소외계층' 생겨=부산도 걷기 열풍에 맞게 공원이 곳곳에 만들어졌으나 '가로 공원' 성격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른들이 주로 이용하는 등산로나 산책로 중심으로 공원이 형성되면서 가족 단위로 자연을 즐길 만한 공원은 부족한 실정이다. 결국 공원 이용의 소외계층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운동할 곳을 찾는 성인들의 휴식 공간은 늘어난 반면,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주5일제 근무와 수업이 정착되고 가족 중심의 여가 문화가 확산되는 사회적 분위기와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부산의 기존 공원들은 관리가 잘 안 돼 활용되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강공원의 경우 공원 내 각종 편의시설 등이 낙후돼 재래공원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태종대유원지나 용두산공원 등도 명성에 비해 공원 내에서 즐길 만한 공원시설이나 특화된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가족 단위의 여가 욕구가 높아지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가족공원을 적극 조성하는 다른 지자체와도 대조적이다. 서울의 난지도 가족공원, 한강 테마가족공원, 안성 안성맞춤가족공원 등이 대표적이다.
공원이 지역과 같이 시민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될 때 예전의 영화는 회복되리라. 우장춘로는 금강공원을 격리시켰다. 이 역시 해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모든 것을 지우고 새로운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다.
탐방 후 7월16일 부산시가 보도자료를 냈다.
부산시, 금강공원 드림랜드 조성사업 본격 추진
◈ 부산시, 금강공원 드림랜드 조성사업 계획 확정
◈ 자연휴양존, 문화체험존, 키즈월드존으로 공간 구성 및 어린이직업체험관, 미로공원, 산림욕장, 녹차체험장 등 20여 개의 세부시설 조성 예정
부산시는 금강공원 드림랜드 조성 계획을 이번 달에 확정짓고 금강공원 드림랜드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
본 사업계획은 그동안 자문위원회의, 부산시 도시공원위원회 심의, 중앙 투․융자심사 승인 등의 행정절차를 거쳤으며, 다음 달 실시설계를 시작으로 내년 2월부터 각 단위 사업별로 착공, 사업이 진행 될 전망이다.
금강공원 드림랜드는 40만㎡에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고, 휴식 및 체험이 가능하도록 자연휴양존, 문화체험존, 키즈월드존으로 공간을 구성하며, 세부시설은 케이블카 현대화, 어린이직업체험관, 미로공원, 광장, 소방안전체험관, 산림욕장, 녹차체험장 등 20여개 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본 사업은 민간사업과 공공사업으로 시행하게 되며, 10여 년간 방치되어 오던 (구)동물원 부지소유자 등 토지소유자들이 어린이직업체험관, 유스호스텔 리모델링, X-게임장, 녹차체험장 등 10여개 사업을 시행한다.
또한, 공공사업은 그동안 공원 입구변에 설치된 옹벽으로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던 금강공원을 누구나 자연스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옹벽을 전면 철거하고, 가족들이 휴양하고 즐길 수 있는 진입광장, 캐스케이드, 미로공원, 어드벤처 놀이터, 주차장 등 10여개 사업을 2017년까지 순차적으로 시행할 계획으로 있다.
시는 드림랜드 사업의 가장 큰 걸림돌인 케이블카 현대화사업도 금년에 감정평가를 실시하여 보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전망대와 케이블카를 현대식으로 정비하면 부산의 명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와 별도로 20여개 시설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접근성과 편리를 위해 주차장(300면) 건설도 내년부터 조성할 계획이다
부산시 공원유원지재정비추진단 관계자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미래의 직업을 체험하고,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공원, 장년층과 노인들에게는 휴식과 힐링 할 수 있는 공원을 만들고 싶다.”라고 전했다
1. Chumbawamba - She's got all freinds 2. chumbawamba - pass it along 3. Chumbawamba - Amnesia 올드팝메니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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