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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칼럼 기고

낙동강하구를 람사지구로

by 이성근 2013. 6. 17.

 

월간 함께 사는  길  [2000/07]

 낙동강하구를 람사지구로

 

                                                                                                                                                                                                                   사진: 최민식

오늘날 부산을 대표하는 공간은 어디인가. 20년전 1980년대 초만하더라도 단연 낙동강하구 을숙도였다. 달리 특별한 편의시설이나 위락시설이 없었음에도 낙동강하구가 명소로 대접받았던 이유는 인간의 간섭이 배제된 천연의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방문자들은 금빛 또는 은빛, 그리고 연초록으로 일렁이는 광활한 갈대숲과 거기 깃들어 사는 철새들의 군무를 통해 하구와 교감하고 심신의 피로를 해소했다.

 

낙동강하구가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은 하구가 새들에게 있어 그만큼 안전한 보금자리였을 뿐만 아니라 먹이확보나 번식 및 월동지로서 최적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구둑이 축조되기 전인 197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은 하늘반 새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래톱을 거닐자면 온통 새알이요 게떼가 와글와글했다. 새떼가 물을 박차고 날아오를 때면 일시에 비상한 새들로 인해 하늘이 어두울 정도였다. 문학평론가인 김열규 선생은 “군무하는 자유, 흩어지는 해방”이라며 그 장관을 글로 남기기도 했다.

 

이같은 장관은 낙동강하구둑 건설을 계기로 사라졌다. 그리고 부산을 대표하는 공간으로서도 잊혀졌다. 하구둑이 건설된지 13년이 경과한 지금 낙동강하구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 모습은 거칠고 야위어 남루하기만 하다. 을숙도만 하더라도 그 이름이 말하듯 ‘새가 많은 아름다운 섬’(乙淑島)으로서의 위상을 잃고 말았다. 이미 쓰레기매립장이며 갈비집, 노래방, 공터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각종의 소음과 냄새는 하구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종 대규모 개발프로젝트가 만들게 될 생태적 아수라장을 미리 예고하고 있다.

 

철새가 밥먹여 준다

 

지난 4월, 하구 일대 어촌계 주민들로 구성된 <람사지구 지정 반대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대책위는 하구가 람사지구로 지정되면 어업 자체에 대한 박탈로 이어질 것으로 해석하고 결사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로 인해 6월5일 예정된 공청회가 무기연기됐다. 앞서 부산시가 어민들과의 간담회를 마련했지만 간담회조차 깨지고 말았다. 어민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철새가 밥먹여주냐’고 했다. 어민들은 ‘매번 제재만 가하면 어떻게 살란 것이냐? 새도 중요하지만 사람부터 살고봐야지 않느냐’며 격앙된 어투로 항변했다.

 

늦게나마 그리고 부족하나마 하구 보전을 위해 노력하던 부산시 환경국으로서는 허탈한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환경부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애써 소란을 만들 필요도 없거니와 이미 협약에 가입한 이상 급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환경부가 가진 정부 내 서열이나 위상은 반증하는 일처리라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지난 97년 7월 세계에서 1백1번째로 람사협약에 가입했으며, 5월11일 현재 1백19개국 1천23개소가 람사지구로 등록되어 있다. 낙동강하구는 매번 우선 순위로 추천되고 있지만 중앙부처와 지자체의 개발논리에 의해 정작 논의대상에서는 제외되어 왔다. 그것은 낙동강하구뿐만 아니라 서남해의 대규모 갯벌이나 하구습지 대부분에 해당되는 일이다.

 

과연 낙동강하구가 람사지구로 지정되면 어민들은 어업을 포기해야 하는가. 부산환경운동연합은 아니라고 말한다. 전제로 하는 사실은 하구가 제대로 관리·보전되고 효율적으로 이용되기 위해서라도 어민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5월 코스타리카에서 개최된 제7차 람사협약 비정부기구회의의 주제 ‘인간과 습지, 그 생명의 연대’는 ‘지역주민의 참여에 의한 습지의 효율적인 이용과 보전’을 모토로 하고 있다.

 

지역주민의 참여에 의한 습지의 보전, 그것은 일찍이 세계 곳곳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많은 좋은 습지가 지역주민보다 대자본이나 정부 일방으로 개입됨으로 인해 보전되기 보다 파괴되고 훼손된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낙동강하구의 경우 ‘하구관리기본계획’ 이나 ‘해양수산발전기본계획’ 등으로 인해 보전과 복원이 도모되고 있지만 ‘제2차 공유수면매립계획’은 이를 정면으로 뒤집고 있다. 이미 하구의 많은 지역이 지나친 개발과 매립으로 원형을 상실한 상태로서 이로 인해 철새의 서식환경과 어장 황폐화가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잘못된 개발사업에 대한 과오를 개발주체들이 시인한 마당에도 여전히 한편에서는 개발지상적인 사업들이 기획되고 있는 형편이다.

 

 

제2차 공유수면매립계획

지난 5월31일 부산환경연합은 시민단체·지역주민들과 함께 제2차 공유수면매립계획을 반대하는 집회를 가졌다. 앞서 5월29일에는 시장 관사를 기습적으로 방문하여 매립계획을 재검토하고 철회할 것을 주장하는 집회를 가졌다. 부산시는 91년부터 시작한 제1차 공유수면매립계획에 반영된 45개 지역 중 실시하지 못한 14곳과 재반영 3곳과 신규 3곳을 더하여 20개 지구 6백만평을 매립하는 안을 내놓았다.

 

이중에서 다대포 20만평과 가덕도 동북측 1백26만평은 낙동강하구와 직접적인 영향권으로 환경단체와 학계의 직접적인 반대 표적이 되고 있다. 특히나 다대포의 경우 새로이 만들어지고 있는 갯벌이나 몰운대의 뛰어난 경관을 기억하는 시민들에게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 두 지역 모두 문화재보호법이나 습지보전법 등에 의해 특별하게 관리되어지고 있는 민감한 생태보전지역이다. 그럼에도 부산시가 이러한 계획을 입안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인 행정인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계획은 지자체의 무분별한 연안개발을 예방, 수산자원의 보전과 쾌적한 친수환경의 조성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해양수산부의 ‘연안통합관리계획’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부산환경연합이 낙동강하구를 람사지구로 지정하고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하구 어민들에게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부산시가 원하는 진정한 발전을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낙동강하구의 보전은 국가의 대외 이미지 상승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

 

구체적으로 낙동강하구의 람사지구지정은 다음과 같은 근거로서 마땅히, 그리고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람사협약의 가입은 가입에 따른 의무가 요구된다. 그 핵심은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 습지는 보호하고 이외의 습지에 대해서도 현명한 이용(Wise use)을 촉진하기 위하여 국가 차원의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하여야 한다’는 규정에서 찾아진다. 제대로 된 습지의 관리와 보전은 습지를 토대로 살아가는 지역민의 생산활동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예컨대 낙동강하구가 람사지구로 지정되게 되면 정부와 지자체는 이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더이상의 개발을 자제해야 할 뿐 아니라 중상류 또는 부산시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차단하거나 제거해야 한다. 이로 인해 당장의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생물서식상황이 크게 개선될 것이고 하구의 어민들은 궁극적으로 이익증대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가능성을 낙동강하구는 가지고 있다. 이 가능성을 확대하기 위해 진행중이거나 계획중인 개발프로젝트를 전면 재검토하거나 포기하는 지자체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결단을 강제하는 시민의 강력한 의사표시가 있어야 한다.

 

 

표. 낙동강하구 보전지역 지구해제 및 매립현황

 

연번   해 제 지 역               면 적             해 제 일     해 제 사 유

1 엄궁·하단·신평·일웅도 1,804,488㎡(545,855평) 1983.4.1 하구둑 공사

2 녹산간척지 2,904,657㎡(878,660평) 1984.5.28 농경지 조성

3 진해 용원지구 137,048㎡(41,457평) 1985.9.13 군작전도로 개설 및 해안환경정비

4 사하구 공유수면 223,142㎡(67,500평) 1987.9.1 철새도래지 기능상실

5 장림·다대지구 1,322,284㎡(339,989평) 1988.7.12 하구둑 건설에 따른 준설토처리

6 신호동 일원 600,874㎡(181,764평) 1989.2.14 주거지 확보

7 명지지구 1,608,303㎡(486,509평) 1993.12.23 동남권 개발에 따른 주거지조성

8 녹산지구 6,794,630㎡(2,109,816평) 1993.12.23 동남권개발에 따른 공단부지조성

9 화전·신호동 일원 457,328㎡(138,342평) 1996.11.25 철새도래지 기능상실

총계 16,032,754㎡(4,849,892평)

 

 

 

보물창고 낙동강하구

낙동강하구의 가치는 지역 밖의 외부시각을 통해 더욱 확실히 드러난다. 90년대 중반 이후 부산환경연합은 하구의 가치를 알리고 홍보하기 위해 외국의 환경단체나 영향력 있는 환경전문가와의 교류를 활발히 하고 있다. 방문이나 초청을 통해 이루어지는 낙동강하구 방문 있어 참가 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보물창고’라는 말이다. 그들의 놀라움과 감탄, 특히 일본방문단의 자국 내 습지상황과 비교한 반응은 한마디로 ‘부럽다’는 것이다.

 

반면 이들이 지적하는 공통사항 역시 “왜? 이런 좋은 공간을 함부로 훼손하려 하는냐”는 것이다. 외국 방문객들은 낙동강하구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았고, 이 나라의 보물창고로 보았다. 때문에 을숙도 하단부 명지대교 건설 예정지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한결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명지주거단지나 신호·녹산공단의 건설현장을 보고서는 “미쳤다”는 극단적인 말로 상업의 어리석음을 비판했다.

 

우리를 미쳤다고 말하는 외국인들이 황금을 낳는 개발사업을 알아보지 못하는 우매한 이들인가, 아니면 우리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매한 이들인가. 낙동강하구의 미래는 미친 자들의 손에 맡겨 두어도 될 만큼 가치 없는 것인가. 미래의 생명보고를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한다. 낙동강하구를 람사지구로 지정하고 그 생태적 가치가 유전될 수 있도록 시민운동의 집중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대표적 습지인 낙동강하구는 아직도 람사지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