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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길에서

기장 좌광천 30리 길 (기장 정관 병산에서 임랑바다까지)

by 이성근 2013. 11. 27.

 

 

 

부산은행 연재 부산의 길 2013년 신년호에 소개될 길이었으나, 은행측의 편집방침에 의해 실리지 못한 채 블로그에만 남은 길이다. 2012년 12월27일 다녀왔다.  그때로부터 일년이 거의 다 되어 간다.  어쨌든 일부 구간만 정비한 다면 부산길의 또 다른 보석이 될 수있는 코스라고 생각한다. 

 

봄날의 나들이가 아닌 삭풍에 손끝 시린 12월의 나들이라  화려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애초 중앙공원에서 임랑바다까지 10km를 설정했는데 막상 나서고 보니 욕심이 생겨 발원지 바로 아래 병산저수지를 기점으로 했다. 이곳을 처음 방문했던 때는 약 20년전 쯤이었다.  당시에는 정관에 신도시계획도 없었다.  이 병산 골짝 역시 수림이 울창한 곳으로 차 한대 농로를 타고 오르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병산로라는 도로명을 가진 공식적  길이 되었다.  현재 골짜기에 들어선 건물 대부분은 음식점들이다. 그리고 골짜기 상부에는  동부산골프장과 해운대골프장이 있다.  이후로 이곳으로의 발길을 끊었던 이유도 이들 골프장 때문이었다.

좌광천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정관면은 예전 동래로 출입하던 유일한 길목인 소두방재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소두방재는 정관의 주산인 망월산 을 말하며 그 옆에 백운산이 있다. 흔히 이곳 사람들은 소두방재를 정관령(鼎冠嶺)이라고 하였다. 소두방재에서 소두방의 의미는 솥뚜껑이라는 우리말의 이 곳의 방언이다. 하지만 그 이름의 유래가 되는 소두방의 의미는 솥뚜껑인데 아무리 봐도 솥뚜껑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와전된 것이다. '솟은 바위(聳岩)'가 솟은바우로 그리고 소든방우-->소두방이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솥뚜껑(鼎冠)으로 불려진다는 것은 또 다른 설을 불러 들인다. 예컨데 이 소두방의 모양이  뫼(山)처럼 생겼다고 하여서 뫼바위라고 한 것인데,  한문으로 매암(山岩) 또는 차음표기로 매암(梅岩)이라고 하였고  그 아래의 마을을 매곡(梅谷)이라고 하였다. 게다가 이 매바위의 옛 별칭이 소학대(巢鶴臺)로서 두루미가 날아 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옛 기장의 제1가람이었던 선여사 가 있었고 딸린 암자 중 일출로 유명한 망일암(望日庵)이 이야기가 전한다.

좌광천은 기장군의 백운산과 용천산·문래봉·함박산에서 각각 발원하여 정관면 침식분지에서 합류하고 동쪽으로 장안읍 좌천을 지나 독이포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상류는 하강구배가 급하고 하류는 비교적 완만한 것이 특징이다. 상류의 침식분지에는 좌광천의 퇴적작용으로 소선상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하류에는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좌광천의 원류는 병산리의 금동골이며, 널밭골계곡과 북쪽의 조가보계곡의 두 갈래 계곡이 병산리 아래에서 합류하여 병산 저수지로 유입되고 있다. 저수지에서 흘러 용수리를 통과하면서 백운산·망월산·문래봉·함박산의 계곡에서 내려오는 또다른 계곡이 합류하고, 용수·방곡·예림리의 북쪽계곡과 덕선리에서 좌광까지 내려오는 여섯 개의 계곡이 합류하여 좌광천을 이룬다. 좌천리 남쪽을 굽어 돌면서 임랑해수욕장으로 유입되고 있는데 그 하류를 차성가에서 "도하수 뛰는 궐어 임랑천에 천렵하고"라고 표현하고 있다.

 

들머리 병산은 이름 그대로 屛(병풍 병)에 山(뫼산)을 써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곳으로 골짜기가 수려하여 옛부터 비단골 금동(錦洞)으로도 불리워 졌다고 한다. 병산리는 그 수려한 산 아래의 마을이라 마을의 이름도 병산(屛山)으로 하였으며 마을의 형성은 일대가 대게 그러하듯 생각보다 오래됐다. 저수지의 축조(둑의 길이 110m, 높이 30m, 평균수심 15m, 최대 저수량 53만톤)는 1942년 이루어 졌다. 보다 앞서 이 못은 지싯골못(제석동제언 帝釋洞堤堰 1810~1811)으로 기장에서 가장에서 가장 오래된 못으로 용수리 일원에 용수를 공급했다.

저수지가 시작되는 지점으로부터 약 1.2km를  내려서면  모전리 좌광천 산책로와 연걸된다. 모전리의 유래는   띠(모:茅)가 많아 붙여진  띠밭이었다.  인접한 마을이

산막(山幕)마을로 예전에 제석보를 막고 큰 역사를 할 때 동원된 인부들의 임시 막사가 들어섰고, 그 유래를 따 마을 이름도 산막이 되었는데 근처에서 가장 큰 마을이 되었다.  실로 궁금한 일은 예전의 모습이었다. 

 

정관면 일대가 1997년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고시된 이후  2007년부터 본격적인  택지개발이 이루어져 그야말로 상전벽해의 땅이 되었다.  정관의 지세는  남으로 달음산과 함박산 서쪽 백운산과 망월산 북쪽 용천산에 둘러싸인  북남서고 동저형 분지인데, 그 분지에 있던 논과 밭 대신  고층아파트들로 들어선 도시가 만들어 지고 있다.  흡사 유령도시처럼 보였던 정관신도시가 하나 둘 골격을 갖추며 사람사는 곳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중심에  생명을 불어 넣고 있는 공간이 좌광천이다. 

 

차성가(車城歌)에 보면 일대의 풍광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노랫말이 있다. 작자 · 연대 미상의 가사문학으로 동래군 기장면에 해당하는 차성(車城)의 풍경을 묘사한 가사다.

 

하서면(下西)

 

半月城 돌아드니 新月이 그 아닌가         반월성 돌아드니 신월이 그 아닌가

斗田이 사닌 穀粟 富鳴이 種種하다         두전에 쌓인 곡속 부명이 종종하다

林谷斜陽 저문길에 立石에 말을 고      임곡사양 저문길에 입석에 말을 매고

우리 벗님 보 그 안니 送亭子가    우리벗님 보내는데 그 아니 송정자가

林基村에 푸였고 白雲山에 달온다    임기촌에 꽃 피웠고 백운산에 달 떠온다

仙余寺 긔푼골의 古蹟을 차자든니          선여사 깊은골에 고적을 찾아드니

隱隱 石磬소 望日庵이 分明다       은은한 석경소리 망일암이 분명하다

 

 

하북면( 下北)

 

巢鶴臺잠든 鶴은 초소나라나고        소학대 잠든 학은 자취소리 날아나고

鬱鬱蒼蒼 達陰山은 半空에 소사       울울창창 달음산은 반공에 솟았는데

數間茅屋 차저든니 그윽 茅田니요       수간모옥 찾아드니 그윽한 모전이요

八疊屛風 들넛던가 奇妙한 屛山니라       팔첩병풍 둘렀던가 기묘한 병산이라

上坪下坪 너른들의 平田에 밧틀갈고       상평하평 너른 들에 평전에 밭을 갈고

帶月荷鉏 저문길의 上谷을 올나온다       대월하서 저문 길에 상곡을 올라 온다

雪中에 가蹇驢 梅谷을 도라들고          설중에 가는 건려 매곡을 돌아들고

雨後에 叱牛聲은 大田에 撓亂다          우후에 질우성은 대전에 요란하다

蠶績 소 들리난니 그 안니 禮林인가     현종소리 들리나니 그아니 예림인가

佳木秀而 佳洞이요 芳草綠而 蒡谷이라    가목수이 가동이요 빙초녹이 방곡이라

博兎驅雀 나거동 鷲峯山이 소사닛고    박토구작 나는 거동 취봉산이 솟아있고

 

 

기장군은 병산저수지에서 좌광천을 거쳐 임랑해수욕장까지 생태하천으로 연결한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고,  천변 곳곳을 정비했다.  작년 11월에는 ‘제1회 정관 생태하천 학습문화축제’를 열기도 했다. 지역민을 위한 웰빙휴식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하겠다고 하지만 지나친 하천정비는 경계할 일이다.  그것은 생태에 대한 해석을 제대로 해야하고 시각과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그런 입장이 견지되지 못할 때 무늬만의 혹은 이름만의 생태하천으로 전락한다. 그런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다.

물이 살아 있고 물길이 살아 있는 상태 속에 생태하천은 그 이름에 답하기 때문이다.

현재 산막교에서 달음교 구간 약 3.8km는 시가화 구간으로 좌우 산책로를 깔고 여러가지 시설을 도입하여 주민의 편의를 도모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임랑바다까지의 약 8km 구간은 최대한 자연성을 유지했으면 한다.  좌광천 수변길의 매력이 피어나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용수리에는 평전당산이 있다. 일종의 산제당으로 수령 100년의 느티나무가 지키고 섰다.  용수교와 평전교 사이에 있다. 마보들 앞에 건설업체인 협성르네상스가 한창 아파트를 올리고 있다.  한때  마을의 공동체의 안녕을 갈구하던  신성한 장소가 주변에 거침없이 들어서는 고층아파트 숲에 의해 초라하게 보인다는 것이 안타깝다.   

300년된 당목은 10여년 전에 고사했다. 일대의 변화를 감지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일대의 마을로는  평전(平田),덕전(德田), 대전마을이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록 사방으로 도로가 나 보행의 단절이 있지만 수변길은 물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평전교로부터 달음교 까지 2.5km 머리 위로  무려 9개(평전교, 용산교, 형진교, 중안교, 덕산교, 구연교, 달산교, 강변교, 달음교 )의  다리가 지난다. 보행전용교 세 개를 포함하면 12개로 500m 당 다리가 있다는 것이다.  주민 입장에선 좋을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렇듯 많은 출구와 수변부 둔치 양안에 개설된 산책로는 생태적 간섭의 지표가 된 다는 것이다.   여기에 생태를 들먹인 습지며 시설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묻는다면 거의 제로에 가깝다 할 것이다.  물론 이곳은 철저히 인간 중심의 공간이다. 다만 그럼애도 새로운 도시가 추구하는 비젼은 제대로 된 자연공존이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정관 분지에 아파트의 산이 새로 들어 선 형국이다.

달산마을 지나 강변마을을 스친다.  덕곡마을, 묵은 터마을, 상리, 중리 마을이 있다. 주민들의 구전으로 전해지는 말은 신라시대때부터 월산(月山)으로 불리워졌으며 임진왜전때에 마을이 없어졌는데 허씨가 처음으로 정착하였으며 그 뒤에 밀양 박씨와 은진 송씨로 이어져 왔으며 일제 강점기때에 월산마을을 달산마을으로 고치고 월음산을 달음산으로 했다고 전해온다.  달음교에서 강변교 방향이다.

지난 2006년 어류조사에서 9종의 어류가 출현했고 이중 참몰개를 비롯하여 왕종개 등 한국특산이 서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연어새끼가 방류되기도 하였다.

예서부터는 사람의 손길을 덜탄 좌광천이 흐른다. 달음산 자락 쪽으로 정관산업단지가 입지해 있고  개간사들과 두란들 뒷쪽으로 정관농공단지가 들어서 있다.  

아랫들 보까지 병산으로부터  약 8km 지점이다.  새각단으로 불리는 강변마을과 예전에 옹기점방이 있었다 하여 유래항 독점마을을 스친다. 주민들의 구전으로는 이 마을은 달음산에 가려서 햇볕이 적은 탓으로 옛날에는 우씨가 정착하여 도기를 만들었다고 하여서 독점이라고 했다고 한다.

둑길을 딸 걷는 맛이 호젓하니 좋다. 늦봄이면 찔레꽃이 흐더러지게 필 것이다.  

인근 울산 태화강 보다야 못하지만 에서  이곳 도량못들이나 아랫들에서도  때까마귀들을 볼 수 있다.

갑자기 수변 버드나무 덤불 아래서 고라니 한 마리 제풀에 놀라 후다닥 달아 난다.

달음산 쪽은 아침 나절을 제외하고는 늘 응달이다. 그산 허리를 넘어 송전탑이 지난다.

아랫들에서 정관신도시쪽을 본다.

좌광천은 달음산의 줄기인 갈미산이 뻗어 내림으로써 아랫들에서 크게 방향을 꺽는다.  

수변길은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대신 정관 구도로를 따라 약 400m 이동하여 장자골로 빠져야 한다.  

아래 붉은 선은 길이 조성? 되었으면 하는 구간이다.

장자골로 내려서면 길은 전혀 다른 맛으로 펼쳐 진다.

깝작도요 한 마리 꼬리를 까딱까딱

맹금류 말똥가리  두 마리가 장자골을 하늘을 선회한다. 먹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럴 법도 하다. 비교적 일대는 사람의 간섭도 적거니와 작지만 농경지도 있어 이를 이용하는 생물의 분포가 맹금류의 서식을 뒷받침 할 것같다.

갈미산 자락이 만든 협곡이 펼쳐진다.  인적이 드물다.

 좌광천 더불어 걷는 길이다.

혹시나 싶어 수달의 흔적을 찾았다.  있을 것 같다.

바위의 모습이 수달같다. 구릉을 이룬 등짝이며 재미나게 생긴 눈과 코 그리고 입이

 안타깝게도 교량이 지나간다.  그 바람에 이곳의 풍광 한 귀퉁이가  손상당했다.  누구도 그런 안타까움을 말하지 않았다. 

 

 

 

 

교각을 지나며 올려다 본 철면피한 얼굴, 뻔뻔스럽다. 그 불쾌함을 좌광천 물소리가 지우고 묻어 간다. 수변 가장자리 퇴적된 모래밭에 목을 축이러 왔던 일대의 네발 짐승들이 흔적을 남겼다. 고라니며 너구리 등 흔뺨검둥오리들은 이 모습 확인하는 사람의 모습에 목을 세우고 긴장에 들었다. 서둘러 비켜난다.

 

 

 

장자골 중방들로 들어서자 달음산이 저녁햇살에 비켜 선다. 좌천초등학교를 지나 좌천역으로 향한다. 거리 곳곳에 나붙은 현수막들이 인근 고리 원자력에 대한 불신들로 가득하다. 새로운 에너지 정책으로의 전환을 전기가 만들어 지는 곳에서부터 요구하고 있다.

거대한 교각이 떠받들고 있는 부울고속도로는 보다 빠른 이동을 원하는 차량소유자들과 이를 조장해 이익을 남기고자 하는 자본의 합작이다. 그들에게 좌광천 하류부의 흐름과 경관적 가치는 안중에도 없는 일이다.

 

 

 

좌천역은 동해남부선 정차역으로 1935년생이다. 역사건물과 주변에 들어선 상가와 상호에서 정겨움이 묻어 난다. 그 정겨움이 더 하는 날은 좌천장이 설 때이다. 하지만 쇠락하여 파장분위기다.

 

 

 

 

 

 

 

 

강이 살고 역이 살아 장도 사는 날을 기원해보며 임랑로를 따라 좌광천 마지막 굽이를 돈다. 좌광천 레저유채꽃단지 구간이다. 차도 , 기차도, 사람도, 물길도 동시에 방향을 바꾼다.

 

 

 

 

강과 바다에 능히 온 계곡물이 모이는 것은 자신을 낮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위에 오르고자 하면 반드시 말을 낮추어야 하고, 백성들 앞에 나사면 반드시 자신을 물러세워야 한다 -도덕경 66장 중-  바다가 강의 왕이 되는 것은 강 보다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임랑바다가 지척이다. 약 13km 좌광천이 병산 골짜기로부터 정관신도시를 거쳐 인적 드문 장자골을 지나 이제 그 이름 버리고 동해가 된다. 임랑교 못미쳐 짠물이 몰려 온다. 바다가 된다는 것 그것은 낮춤이다. 2013년의 시작이다. 더욱 낮추어 볼일이다.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 Dee Dee Bridgewater올드 팝 매니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