씽씽로드는 동구 범일동 어울누리뜰 조성을 위한 현지답사 과정에서 발견? 한 길이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이 길은 2012년 초 행정안전부가 공모한 '우리마을 녹색길' 조성 대상 중의 한 곳이다. 우습게도 그때 선정위원으로 참여했음에도 까막득히 잊고 있다. 그때 천가동 갈맷길을 비롯하여 해운대 십오굽이달맞이길, 북구 가락남조길 등을 선정위원 모두가 만장일치로 합의했던 기억이 난다. 구리고 2011년 역시 다섯곳을 선정했는데 해운대십오굽이달맞이길 일부와 영도 근대선창길, 동구씽씽테마로드, 사하구 다대동에서 을숙도 까지의 썬셋로드, 북구 만덕2동산길 등인데 국시비가 투입된 곳이다. 선정후 가덕 갈맷길의 경우 그 과정을 지켜 보아서 내용적으로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동구의 씽씽테마로드는 까마득히 잊고있다 새삼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들머리는 87번 버스 안창 버스 정류소로 한다. 성북고개 방향으로 100m남짓 내려와서 럭키마트에서 우회전하여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운주암 계단을 오르면 본격적 씽씽로드가 열린다. 진입로는 범상로 39번가 길이다.
씽씽로드는 범일4동 보광사 일대 1번 가로등을 시작으로 좌천4동 -수정5동과 2동,4동 -초량6동 금수사까지 150번까지의 가로등길이다. 조금 넓게 보자면 수정산과 구봉산의 숲 가장자리 마을과의 경계길이라 할 수 있다.
초반부터 조망점과 경관은 좋다.
들고남의 수정산 자락에서 범천2동 벚꽃단지가 시에에 들어 온다.
이 길의 매력은 산이나 숲으로 침범하지 않우면서도 숲의 맛과 산복도로의 다양한 그림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고, 가파르지 않아 걷기가 쉽다는 것이다.
비목나무 한 그루 곱게 단풍이 들었다.
수정산의 가장자리는 인공으로 조림한 숲이다. 숲 구성은 사스레피와 비목, 싸리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소나무가 우점한다.
유난히 절집이 많은 것도 씽씽로드의 특징이다. 길을 잘못들어 안창길 2-1번 길로 들었다 범천사에서 헤메기도 하였다. 시작점안 1번 가로등을 찾기 위해서였다.
보광사 아래 사거리 입구
나선 걸움에 보광사(普光寺)를 찾았다.
일대에 분포한 사찰이 그러하듯 보강사 역시 그리 오래된 절집은 아닌듯 했지만, 고즈넉 했고 작지만 기품이 있어 보였다.
현재 구간 내 사찰은 약 수무개 쯤 된다. 아쉬운 일은 어떤 내력을 지녔는지 알 수 없음이다. 답사후 관할 구청이며, 도서관을 뒤적였지만 알려진 몇 몇 사찰을 빼고는 정볼을 구할 수 없었다.
보광사를 나와 아란야사로 향하는 길, 고라니 한 마라와 마주쳤다. 사람의 존재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일대에 자주 출몰하는 듯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반가웠다.
고라니는 도심야산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포유동물이다. 암수가 모두 뿔이 없다. 위턱의 송곳니가 엄니 모양으로 발달하였는데, 수컷의 송곳니는 약 6㎝ 정도로 입 밖으로 나와 있으며, 번식기에 수컷끼리 싸울 때 쓰인다. 눈밑에 냄새를 분비하는 작은 샘이 있다. 갈대밭이나 관목이 우거진 곳에 서식하며, 건조한 곳을 좋아한다. 보통 2∼4마리씩 지내지만 드물게 무리를 이루어 지내기도 하는데 주로 단독생활을 한다. 대게 새벽과 해질녁 활동이 많다. 갈대나 거친 풀을 선호한다. 도심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에게는 불청객 대접을 받는다. 물을 좋아하며 수영을 잘한다. 고라니는 번식기 중 “또르륵 또르륵” 소리나 짖기, 휘파람소리 등 여러 가지 소리를 내나 소리를 만들어내는 기전은 알려져 있지 않다. 겨울철에 교미하고 봄에 평균 3~4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어쨌든 서식면적은 좁고, 먹을것은 많지 않아 이 순진무구하게 생긴 고라니도 이 도시에서 산다는 것이 그리 녹녹지만은 않다. 숲에 대한 간섭이 늘 열려 있는 곳이 도시 숲이다.
모퉁이를 넘어서자 증산공원이 성큼 다가서고 북항이 보이기 시작한다, 증산(甑山)은 그 생김새가 시루(甑)와 가마솥(釜)처럼 생긴데서 유래된 것으로 부산(釜山)의 지명도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동국여지승람(1486)산천조에 보면 "釜山은 동평현에 있으며 산이 가마꼴과 같으므로 이같이 이름하였는데 그 밑이 곧 부산포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증산에는 성이있는데 당초 부산진성(釜山鎭城)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무너지고 왜군이 머물면서 부산진성의 석재를 이용하여 다시 일본식 성을 쌓았다고 한다. 이 성을 범천의 증산 위에 있는 성이라는 뜻에서 범천증산성(凡川甑山城)이라 부른다.
그리고 다양한 빈터인 옥상모습이 재미있다.
뒤돌아 보니 범일동 산동네 원경이 멀리 황령산 자락과 어울려 그림을 이룬다. 현재의 범일4동에서 범일1동으로 내려오는 계곡의 중간을 흐르는 내를 범내라 불렀다. 옛날에는 이곳에 사람이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산림이 울창하고 이곳 냇가에 때때로 호랑이가 나타났기 때문에 오늘날은 범천이라 부르고 있는데, 이는 호랑이를 뜻하는 범이라는 음을 한자에서 빌려 표기하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범내골 시장통안에 있던 호천석교비(虎川石橋碑: 1711년-부산박물관 )는 범내가 호랑이내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근거가 되고 있다. 한편 범일동 산비탈을 '널박'이라 불렀는데 이는 주변에 민가가 밀집해 있어 인가가 널리 박혀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편 이웃한 동은 좌천동으로 좌천(佐川)은 동래부지에 나오는 좌자천(佐自川)이라는 이름의 약칭이다.
좌자천은 가야산 및 감고개(甘嶺)에서 발하여 지금의 수정동 중앙을 흘러 부산진 동쪽을 거쳐 바다로 들어가는 작은 개천을 말한다. 좌천동 해안은 조선말기에 개운포(開雲浦)라 하였다. 부산진성에서 수정초등학교 부근까지의 계곡을 수천골이라 하였는데 이 골짜기 아래에 자지내라는 마을이 있어 여기가 동네의 시초가 되었고 이 자지내가 한자로 표기되면서 좌자천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일대의 자연마을로는 널박마을, 노하마을, 대지막걸리마을, 범내골마을, 소고마을, 안창마을, 연동개마을 등이 있었다.
(虎川石橋碑)
씽씽로드 아래와 위는 별도의 옛길이 있다. 증산의 왼쪽 동구도서관이 보인다.
모퉁이를 돌면 아란야절이다. 산세는 크지 않지만 작은 골들이 무수히 있어 모퉁이를 도는 맛이 있다. 그때마다 그림이 바뀐다
옥상 위 정갈하게 가꾸어진 장독대와 물통을 잘라 만든 텃밭 넘어 북항이 보인다.
수정5동 아란야절, 내걸린 주련이 한글이라 반갑다. 옛 부터 토굴로 이어져 온 조그만 암자를 혜업(慧業)스님이 중건했다하는데, 혜업스님의 은사였던 동곡 일타스님이 일숙 한뒤 내린 명칭이...淸凉山 包月精舍 阿蘭若...였다나. 본래 아란야(araņya, 寂靜處)는 수행승려가 거처하는 암자나 작은 방. 또는 촌락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수행하기에 알맞은 조용한 곳으로 수행하기 좋은 절을 뜻한다고 한다. 혹 이글을 보고 아란야절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린다. 아니 이글에 이름 한번이라도 소개된 절집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아무튼 넓직한 마당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규모가 크지 않은 만큼 전각이며 탑 등도 단촐해서 좋았다. 부산하고 산만하지 않음이랄까
담장 너머로 본 산복도로, 여기서 수행하던 智隱스님은 "욕심이 없는자가 마땅히 이 절을 지키고 머무르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담장 너머로 본 산복도로를 비롯하여 중.동구 전역의 조망이 좋다. 지금 산복도로는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일명 ‘산복도로 르네상스’로 명명된 도시재생사업이다. 산복도로는 일제강점과 한국전쟁이 만들어낸 부산에만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한때 이 공간은 국가적 무관심과 부산시의 골칫거리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소중한 자산’으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어쩌면 이 모든 변화의 기저에는 도시팽창의 결과로 공동화 되고 있던 원도심에 대한 새로운 개발수요 창구로서 기능함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부산시는 산복도로 르네상스를 통해 모두 64개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민간의 마을만들기가 동행하면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아란야사를 나와 편백과 탱자나무울타리 길을 걷는다. 기점으로부터 불과 0.7km 이동했을 뿐인데, 시간은 한참이나 흘렀다. 그만큼 눈요기가 많다는 것이다
수정공원로 북 3번로 길로 내려선다.
수성아파트 뒷길,
아파트 끝이 수정어린이집이다. 아담한 구골나무 한그루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주고 있었다.
계곡은 초량천의 한 갈래인듯 싶다.
수정산자락과 구봉산 자락이 중첩되어 북항으로 향한다. 그 사이 골짜기에서 발원된 물은 부산천과 초량천의 이름을 달고 이 역시 부산항으로 유입된다.
주거지와 텃밭, 그리고 산지로 이어지는 이 축은 일대의 전형적인 토지이용형태다.
카메라 줌을 이용하여 능선들을 땡겨 본다.
텃밭을 따라 탱자나무 울타리와 키위가 식재되어 있다.
토질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닌듯하다.
연화사 뒷편 산을 찾는 이들이 즐겨이용하는 기인이네 커피숍이라고 있다. 동네 선술집같은 곳이지만 늘 손님이 있다.
커피숍을 돌아서면 복개된 하천을 따러 두개의 절집이 있다. 아니 커피숍 앞에도백운사라는 사찰이 일반 주택처럼 들어 앉아 있다.
원각사와 연화사 한 골목안에 세개의 다른 종단 소속의 절이 있다는것이 신기하다.
현제 부산지역 불교사찰은 조계종,천태종,태고종, 법화종, 진각종, 범연종 등 27개의 종단에 1천 여개의 절이 있다. 이중 2008년 기준 조계종147곳과 태고종 40여 곳이 공찰이고 나머지는 사설 사암이다. 동구지역만 따로 조사된 것만 열거한다면,
지 역 | 산 속 | 씽씽로드구간 | 주거지(망양로 윗편) |
범일4동 | 청룡사 | 운주암 보광사 아란야사 대법사 | 수덕사 |
수정5동 |
| 백운사 연화사 원광사 | 법성사 |
수정2동 |
| 천왕사(보장암) | 실상사 해광사 |
수정4동 |
|
| 수정사 덕명사 인봉사 묘심사 |
초량6동 | 보경사 해명사 장군암 | 화엄사 월봉사 금수사 | 자비사 구봉사 관음사 |
옛날의 수정동은 지금의 수정산 아래 외솔배기를 중심으로 좌우로 독수리의 날개처럼 뻗어 나간 구릉을 중심으로 동으로 좌천까지 서로는 부산천까지로 수정산 아래에서 바다까지 해당하는 마치 손 등성 같은 몇 개의 마을을 이르는 범위에 해당한다.
이 중에서 수정골마을은 지금의 수정산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이며 이로 인하여 수점마을이라고 하였으며 수정산 자락을 베개처럼 베고 왼쪽으로 비스듬히 산등성을 끼고 있는 마을이다. 수정골은 뒷산인 수정산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지금의 동구청 부근에서 수정 같이 맑은 샘물이 솟아 나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또는 그 정상에 작은 분지가 있는데 이곳에서 조금만 파고 크고 작은 수정이 나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현재의 수정산에는 청조, 참새미, 장수, 만수, 등의 약수터가 있어 맑고 깨끗하며 물 맛도 좋은 약수가 나오고 있어 아마도 수정 같은 샘물이 나온다는 기원설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들 한다. 토착민들의 구전으로 수정산을 물병산이란 별칭으로 부르는 경우도 많아서 이를 뒷 받침한다.
원래 씽씽로드는 체육공원 뒷편으로 나있다. 숲으로 난 길은 약200m 남짓 이동하면 '수정산 빈대떡'집을 지나게 된다. 일대 주민들이 줄겨 찾는 주막이라 할 수 있다.
때마침 막걸리 한병으로 목을 적신 아주머니 하 분 막 빈대떡 집을 나서 휘적휘적 귀가 중이다.
모퉁이를 돌면 협성파크맨션으로
어딜가나 체육공원이다, 보건의료학적 차원에서 운동량의 늘려 지역민의 비만도를 줄여보겠다는 발상이지만, 왠지 멋없고 재미없어 보인다.
아무튼 협성파크맨션 뒷길을 따라 씽씽로드는 이어진다.
사생활의 보호를 위해 벽면처리를 재미있게 했다.
수정2동 상부에서 3동에 이르는 비탈에 소막골이 있었다. 집집마다 소를 많이 길러 소막이 있었고 도살장이 있어 유래된 지명이다. 동구청에서는 도로명 부여사업의 일환으로 초량6동에 소막길이라는 도로명을 명명하여 옛 흔적을 살펴볼 수 있게 하였다.
구간 씽싱로드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밭고랑과 집들 너머 펼쳐진 산복도로와 부산항의 정경은 이곳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고있다.
감골(橄谷)마을은 현재의 수정 3동 협성파크와 남성맨션 사이의 평면지대 일대에 형성되었던 마을로서. 지금도 봄이면 새하얀 감꽃과 복사꽃이 만발하여 절경을 이룬다.수정3동 뒷골에서 부산진구 가야동의 동의대학교 뒷쪽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감고개라고 한다. 이 감고개에서 수정산 줄기가 아래로 뻗어 수정 4동 배수지가 있는 산등과 수정 3동 뒷등 사이에 상당히 큰 골짜기를 만들었는데 이 골짜기에 감골마을이 있었다.
이 감골에는 감나무가 많았으며 이로 인하여 감골을 지나가는 고개를 감고개 또는 감재라고 하였으며 한자로 감 시(枾)자를 쓰서 시령(枾嶺)이라고 하였다. 이 골짜기는 수정천의 발원지이며 사시사철 적당한 해풍이 불어 겨울에는 따스한 바람이,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감돌고 나가는 지형을 가졌고 남쪽을 제외한 3면이 산자락으로 둘러싸여 있다. 또한 수정산으로부터 지하 수맥이 흐르고 있어서 물을 구하기가 용이하여 감나무가 자라기에 좋은 조건이었기 때문에 옛부터 감나무가 많아서 가을이 되면 빨갛고 먹음직스러운 감나무 가지의 열매가 골짜기를 풍성하게 채웠으며 현재도 감나무는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또한 감나무 사이로 기름진 밭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감나무가 있는 골짜기 아래 일부 평지에는 벼를 모내기 할 수 있는 논도 있고 적당한 경사의 밭이 있는 약 30여호의 마을이 있었는데 이 마을을 자연스럽게 감골마을이라고 하였다.
특히 씽씽로드 100번 가로등에서 103번 가로등 까지의 길에는 오래된 팽나무 한그루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봄이면 오동나무가 피운 꽃향기 주변에 진동할 듯하다.
오동나무와 팽나무가 기억되는 이 구간의 새봄이 기다려 진다.
절묘하게 자리잡아 어디서나 어울린다. 그 보다는 나무의 수형 자체가 어느길에 두어도 태가 난다고나 할까
남성맨션 끝지점에서 계단을 오른다.
계단 끝 절집이 있다. 내걸린 현수막으론 천왕사인데, 현판은 보장암이라 되어 있다. 햇갈린다.
수정공원 상로를 따라 약 40m 이동후 체육공원 계단을 올라서면 배수지 옆으로 쌩쌩로드는 이어진다. 그리고 관리용 도로를 관통한 후 산길로 들어서면
씽씽로드 가로등 108번이 있다.
숲길을 3~4분 걷다보면 산불감시초소 옆 초량천 게곡으로 내려가는 테크가 있다.
초량천의 발원지가 있다. 허나 사방공사를 함으로 인해 하천고유의 경관은 사라졌다. 물론 하절기 집중호우 등으로 인해 범람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하천유지 수량도 적다. 그러나 그 처방이 너무 쉽게 결정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초량천의 복원을 위해 지난 2010년 초량천 생태복원을 위한 의견수렴 및 민·관 협력을 다지는 ‘민·관 공동 워크숍’이 열리기도 했다. 당시 국.시비 예산 300억을 투입, 2015년까지 동구 초량동 하나은행과 동일중앙초등학교 사이 720m구간의 하천 수질개선 및 생태·친수공간을 조성할 계획임을 밝힌바 있다. 하지만 그 개념이 좀 의심스럽다. 예컨데 상부지역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나머지 중하류 지역을 청계천처럼 만들겠다는 것인데, 생태하천을 잘못 해석하고 있음이다.
유로연장 2.3km의 초량천은 유역의 서편 구봉산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유하하면서 수정동 초량동을 경유하여 바다로 유입된다. 허나 앞서 언급한 대로 시가화 된 전 구간이 복개되었을 뿐아니라 하구역도 알 수가 없다.
초량천은 수정4동과 초량6동의 경계선이다. 다리를 건너자 조붓한 숲길이 열린다. 여기서 월봉사까지는 거의 0.7km 거리다. 시영아파트 옥상 넘어 초량6동으로 향하는 망향로의 꼬리가 보인다.
하늘을 가린 편백나무숲을 지나면서 구봉산 자락으로 접어든다.
편백숲을 벗어나면 초량천의 또 다른 줄기가 유입되는 계곡이 나온다
씽씽로드 127번 가로등이 길을 안내 한다. 건천화 된 계곡은 가늘게 그 이름을 연명하고 있다.
올려다 보니 구봉산과 수정산의 경계 계곡이다.
어둠이 내리는 가운데 단풍으로 물든 산자락이 정겹다. 그 아래 마을에서 불빛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대법륜사를 스친다.
여름이었으며 해 본다. 이 시각 해는 건재하고 빛도 넉넉하여 보다 선명한 그림을 얻을 수 있겠지만, 내가 가진 카메라는 어둠에 취약한데다 이미 어두워지고 있어 많은 장면을 놓쳤다.
비탈에 선 월봉사(月峰寺)에서 다리쉼도 할 겸 절집 구경에 든다.
경내 뒤편에 쌍용을 타고 앉은 해수관음상이 산 아래 산동네며 부산항을 굽어 본다,
탁월한 전망이다.
여기도 절이 많다. 사찰 앞 나즈막한 무덤 한 기 눈에 밟힌다. 여기에 묻힌자 누구인가.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절 구경을 위해 출구를 찾아 내려선다.
일주문을 대신한 호법문(護法門)과 사천왕을 대신한 금강역사 두기가 반긴다.
대웅전을 비롯한 4개의 전각이 다용도로 이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혹자는 작아도 있을 건 다있다고 ...
까치떼가 하루를 정리하고 있다.
월봉사 뒷편 비스듬히 오르다 다시 숲길로 든다. 씽씽로드 가로등 138번 지점인데 종점인 금수사로 가기 위함이다. 길은 구봉남길에서 갈라져 산자락 사면을 따라 벚나무와 단풍숲길로 빠진다.
산복도로 어디서나 마찮가지지만 참으로 조망점이 좋다. 그래서 부산시는 금수사에서부터 과학고 일대에 전망대를 세울려고 한다.
멀리 신선대와 북한재개발 현장도 훤하다.
그리고 영도의 봉래산 역시 지척이다. 북항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계획은 처음보다 변경되었다. 누군가의 이해를 우선했기 때문이다.
일대에는 벚나무가 많다.
그리고 단풍나무가 곳곳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0.6km의 짧은 구간이지만 ‘이런 숲길도 있었네’ 혼자서 흡족해 한다.
150번 마지막 가로등에서 4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금수사(金水寺)로 내려선다. 금수사는 1910년 동호스님(東湖)스님이 창건한 절이지만 그 연원은 사명대사의 임진왜란 후 왜국으로 잡혀간 포로의 귀국과 관련이 있다.
나아가 1919년 독립선언의 민족대표 33인을 비롯하여 안중근 의사 등 애국지사 55인의 위패를 봉안한 ‘호국영각이 있는 좀은 특별한 절이다.
사천왕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적다. 건물의 크기만큼이다.
어디서 왔는지 두루미 한 쌍 중앙공원을 넘는다.
한심한 보살 일대기는 공감가는 이야기다.
절문을 나서니 어둠이 자욱하다.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길, 차창 넘어 되짚어 보는 씽씽로드가 어둠속에서 빛난다.
노래출처: 다음 블로그 홍이 이뜨리에
Heartbeat /The Hol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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