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을 떳다. 노천 목간에 1착으로 가기위해, 그리고 아무도 몸 담지 않은 노천탕에 명상에 들었다.
목욕을 끝내니 먼동이 터고 있었다. 간밤에 창문 넘어 고쿠라카이도 도로를 달리던 차량들이 신호대기선에 일제히 멈추을 유심히 지켜 보았다. 야심한 시간, 그들은 신호를 지키고 있었다, 인적이 끊긴 새벽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들이 지키지 못하는 것이 있다. 아니 외면하고 부정하다 못해 조작하기까지 한다. 역사 왜곡이다. 어처구니 없게도 관대하기까지 한 것이다. 물론 양심적 일본인과 시민단체 정치인이 없는것은 아니다,
같은 방을 사용했단 김해몽 처장과 해안을 걸었다. BGT의 현재와 향후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 애초 BGT에 나를 오게 한 건 김처장이었다. 그것의 이사로 활동하면 서 사무처까지 맡게 된 것이다. 예상했지만 쉽지 않은 행보였다, 그렇지만 일단 일은 시작했고, 이제 2년차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해 8월 들어와서 다양한 수업을 받았다. 민관협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했다. 활동가들의 역량도 신장시켜야 했다. 하지만 이 또한 뜻대로 되지 않는다. 활동가란 단련되고 다듬어진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현재 BGT활동가는 활동가란 지위 보다는 직원에 가깝다. 물론 맡은 바 자기 임무는 소화해 낸다. 하지만 그 이상을 바라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는 내가 잘 못 생각한 것일까.
벳부만에 해가 돋고 주변이 드러난다. 오이타(大分)현에 위치하는 벳부(別府)는 일본을 대표하는 온천의 도시로 이름 났다. 예전에도 몇 번 왔던 곳이지만 늘 이번처럼 1박의 장소였다. 보통 오후 늦게 이 도시로 들어 올때면 온천에서 솟아오른 수증기로 인해 공업지대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유후다케, 쓰루미다케를 중심으로 한 연산과 동쪽에는 세토 내해(벳푸 만)에 흘러드는 아사미 강, 하루키 강, 사카이가와 강 등의 하천에 의해 형성된 선상지와 하류부의 충적평야가 있다. 선상지의 북부 및 남부는 단층 활동에 의해 동서를 횡단하듯이 짧은 단층이 다수 분포하고 시가지는 그러한 단층에 끼어있는 움푹 팬 지형에 입지하고 있다
지도출처: 구굴
일본의 해안선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상처를 내고 덧내고, 처방하다 다시 상처가 생기는 식이다. 타산지석의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교훈임에도 꼭 닮으려 한다. 해안 산책로를 지나다 재미난 그림이 있어 담아 보았다. 개똥 치우라는 소리다.
방풍림 넘어 사빈은 중간중간 끊겨 있다. 이 해안에서 동행자들이 사진을 한장씩 찍었다.
사진출처: 김맹기 한국기술생태연구소
조용한 아침이었다. 야자수가 가로수로 심겨져 좀은 이국적인 풍이다.
오코분고로 가기 위해 동선을 잡다보니 벳부에서의 일박이 되었다.
산촌마을 중간에 쉬어갔던 휴게소, 인근마을에서 재배한 과채류가 판매되고 있었다.
오전 10시 넘어 오이타현의 분고오노시(豊後大野市) 기차역 JR아사지역(朝地駅)에 도착했다. 오코분고 올레의 시작점이다. 작고 앙증맞은 노란색 혹은 빨간색의 2칸짜리 기차가 다닌다.
우리 일행보다 앞서 '길과 문화'의 윤문기 처장이 인솔하는 한국인 탐방객이 한 차 가득 내려 주민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반가웠다.
이날 주민들은 떡과 기념품을 준비해 탐방객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사진출처: 녹색도시부산21
자 지도를 펼쳐 보겠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바지만 일본 내국인들의 복장을 보면 우리처럼 기능성 아웃도어 입은 사람이 없다. 그냥 평상복이다. 먼저 출발했던 우리나라 사람들 화려하다. 어디 고산준봉을 가는 것도 아닌데, 딱한 노릇이다.
두번째 반가운 사람은 보광사 근처 마을에 사는 kimiko Murakami 아줌마, 초기 개장식에 왔다니까 표정이 달라지며 갑절 친하게 대해 주었다.
사진출처: 김맹기 한국생태기술연구소
그 분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만든 손수건을 펼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사진출처: 녹색도시부산21
JR아사지역(JR朝地駅)→ 유자쿠공원(用作公園)(1.8km) → 후코지(普光寺)(4.0km) → 묘센지 절 밑 갈림길(明専寺の下分かれ道)(5.7km) → 소가와 주상절리(十川の柱状節理)(6.9km)→ 오카 산성터 후문(岡城下原門)(8.1km)
첫 방문지 유자쿠 공원으로 가는길
건너다 보이는 집 못가서 비탈로 오른다.
길섶에 핀 야생화에 마음을 빼앗겼다. 우리랑 크게 다를 바 없지만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것 외엔 조심스럽다
산형과 의 식물과 참취? 삽주, 엉겅퀴 종류인듯
여기도 감이 나는 모양이다. 곶감을 만들려고 달아 놓은
사진출처: 김맹기 한국생태기술연구소
전에 눈여겨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번 방문에서는 보였다. 그래도 한본 먼저 와 봤다고
이 골짜기에 나락 베기전에 한번 오고 싶다.
잎 지고 열매까지 걷어낸 감나무 한 그루, 우리처럼 까치밥 몇 개를 남겨두었다.
아사지 마을 지나 유자쿠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로서 마을과 마을의 경계다.
에도시대 오카번(다케다 시를 거점으로 하는 번(藩))의 가노(家老)의 별장지였던 곳을 공원으로 조성했는데 단풍이 유명하다.
일본 사찰이나 신사 입구에 수호신처럼 서 있는 동물들 한 놈은 입을 다물고 한 넘은 벌리고 있는데 일본어 히라가나에서 처음과 끝을 표현한 ‘아’와‘응’을 의미한다고 한다
가이드가 이런 곳에 와서는 하나라도 사 주고 가야 한다며 샀던 쑥떡, 쑥내가 진하게 났다. 큼지막 했고 고소했다.
단풍으로 유명한 곳인데 이른 것인지 지난 것인지 다소 색이 갔다
그래도 기념이라고 ...
사진출처: 녹색도시부산21
시간적 여율르 가지고 찬찬이 들여다 보았음 했지만, 거기다 유혹하는 길이 있기도했지만 주어진 시간은 20분
유자쿠 공원을 나와 제주 올레팀이 자랑했던 코스, 논은 이미 추수를 한 상태
그럼에도 일행의 표정은 밝다. 투덜거리던 최열교수도
이 지점에서는 일본 그룹과 같이 걸었다.
녹색도시 부산 21의 송부당,
길을 공유한다는 것은 평화다. 어디서든 마음놓고 자유롭게 걸 울 수 있다는 것은
코스는 산자락을 끼고 돌기도 하고 가로지르며 일대의 환경을 감상하도록 열었다.
일본의 기본적 사찰 배치가 궁금했다.
소국과 천남성, 그다음은 잘 모르겠다.
윤문기처장의 일행이 가방을 두고 저로 갔다. 예전에 이곳에서 주민들이 제공한 만두며 국수를 먹었는데, 예의 그 아지메가 진두 지휘했다.
후코지는 초여름 수국으로 전체가 빛난다.
일본의 절집 배치는 어떻게 될까. 우리네 절집의 배치는 신라와 백제의 산지가람에서 대부분 출발한다. 수직적 위계질서와 상징의 관념적 완결성에 그 원형을 두고 있다. 그 전까지는 수평적 구조가 대부분이다. 백제는 수평적 구조에 충실했다, 아무래도 일본 사찰은 백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 흔적은 대도시로 가야 한다, ㅇ;ㄹ테면 나라의 동대사같은 건물이랄까
암굴 옆 벽면에는 높이 11.3m의 거대한 부동명왕(염라대왕)조각이 있다. 마애석불이라 부르는, 여기에 토단 사람이 있다. 아무튼 유난히 음악을 아끼는 지금의 주지가 불당 안에 피아노를 놓고는 예불을 피아노 연주로하라는 안내문을 붙여 두었다.
콩짜개덩굴과 담배, 처음엔 뭐 이런 기 다 있노 싶었다.
김맹기 박사와 이진애교수의 표정이 재미있어 담아 보았다.
준비한 도시락이 선 찮아 보였지만 그런대로먹을 만 했다. 그리고선 분리수거를 하자 아지메가 미소짓는다. 유난히 일회용품이 많이 발생하기도하거니와 대부분 뒷처리를 하지않는다.
식후 잠깐의 휴식 시간
소가와 주상절리를 보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난다.
구절초와 송이풀류와 조밥나물 ?
소가와 주상절리 보러 가는길은 내리막길이라 편하다. 이곳역시 챙겨 볼거리가 많은데 시간 때문에 또 다음을 기약한다.
아니다 이 고개를 넘어서고서부터 내리막이다.
담배를 사면에 심었다는게 신기했다.
고개를 경계한 지점에서 만난 단풍, 유자쿠 공원에서의 부족분을 이 한 그루가 채워 주었다.
참 다양한 식생들이 있다. 남방계와 북방계가 뒤 섞여 있는 듯 했다.
강으로 내려가는 길이 다소 경사가 급하긴 하지만 눈여겨 볼 게 많다
일본의 산촌 풍경이 이럴까 . 일행들이 발길을 멈추고 건너다 본 풍경 한 점
폐가가 있어 들어가 보았다. 곤로와 그릇 몇 점 ..오래전에 사람이 떠난 집이었다.
평성 3년이면 1991년이다.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그 전에는 어떤 형태의 다리였울까 궁금했다.
올 여름 이곳에도 엄청나게 비가 왔다고 했다. 계곡에서 치고 내려온 물이 전신주 허리를 넘어 한동안 통제되기도 했다고 했다. 살펴보니 과연
사진출처: 녹색도시부산21
삼나무들의 속살이 저러했다.
먼저 떠났던 윤문기처장의 일행이 다리쉼하고 있었다.
축대가 보기 좋았다.
소와강 주상절리는 아소산의 분화 때 분출한 화쇄류가 굳어진 암반을 강이 지나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시라타키가와 이나바가와 두강이 합류하는데 옛날에는 이곳까지 배가 들어 왔다고
주상절리는 (柱狀節理 , columnar joint )마그마가 화구로부터 흘러나와 급격히 식을 때에는 부피가 수축하여 사이사이에 틈이 생기게 되는데, 오랜 시간 동안 풍화 작용을 받게 되면 굵은 틈이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절리인데, 주상 절리는 단면의 모양이 육각형이나 삼각형의 긴 기둥 모양을 이루는 절리를 말한다. 주로 화산 지대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화산암인 현무암에서 주상 절리가 많이 나타난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람의 발자국인지 절리 바닥 평평한 곳에 새겨진 흔적들
알고보니 물이 흐름이 만든 자연적인 구멍이다. 놀라운 일이다.
이 절리는 오커서을 만들때 그대로 떼어져 이용되었다.
산성으로 가는 초입, 발전소 옆에서 만난 연리지
오카성으로 가는 초입 소수력발전소가 있고 마자막 등성이를 오르는 지점이다.
다시 오르막이다. 쉬엄쉬엄 걷는다면 큰무리는 없을 것이나 다둘 시간에 쫒기다 보니 다소 힘들어 하는 구간이다.
성의 후문쪽
오카성은 해발 325m의 덴진산(山)에 세워진 산성이다. 1185년 오가타 집안이 세웠는데, 1331년 시가 사다토모 가문이 입성하여 성을 확장했고, 1594년 나카가와 히데시게가 들어온 뒤 높은 석벽을 이용한 근세 성곽으로 개축되었다고 한다. 혼마루(주성)를 중심으로 니노마루(둘째 성곽), 산노마루(셋째 성곽), 니시노마루(서쪽 성곽)가 위치하고 높은 석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혼마루에는 천수각을 대신하여 고산가이 성루가, 니시노마루에는 궁전이 있었다. 메이지 시대에 성의 건물은 모두 해체되었다
털머위가 성위에 보기좋게 피었다.
그리고 성 아래 까마득한 낭떨어지 옆에는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고목들이 운치있게 자리잡았다.
사진출처: 녹색도시부산21
사진출처: 녹색도시부산21
일본은 근세에 이르러 지방의 영주인 다이묘[大名] ·소묘[小名] 등의 무장이 자신의 거성으로 구축한 성곽이 각처에 잘 보존되어 있는 나라이다. 일본의 성이 언제부터 이루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삼국지》의 <위지(魏志)> 왜인전(倭人傳) 등을 보면 3세기 중엽에 이미 성책을 설치한 기록이 있으며 일본의 사서(史書)인 《고지키[古事記]》나 《니혼쇼키[日本書紀]》에는 기원전 수세기의 성이 기록되어 있으나 고고학적으로는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7세기 다이카노카이신[大化改新] 무렵, 한국의 산성 축성법이 전래되어 주로 대외적인 방어성책이 변경에서 이루어졌다. 북동지방에는 책(柵)과 성이 설치되고 남서지방에는 토루(土壘) ·석축(石築) 등을 갖춘 산성이 구축되었으며, 지금도 남서지방에 유적으로 남아 있는 고고이시[神護石]는 한국의 산성과 매우 흡사한 형태이다. 645년 고토쿠 천황[孝德天皇] 때 축조된 나니와도성[難波都城]은 중국 당나라의 장안성(長安城)을 모방한 일본 최초의 당식(唐式) 도성이었으며, 이러한 형식은 후지와라쿄[藤原京] ·헤이조쿄[平城京] ·헤이안쿄[平安京]로 전승되었다.
중세에 들어와 몽골군의 내습이 있었고 이를 방어하기 위하여 치쿠젠[築前:福岡縣] ·나가토[長門:山口縣] 해안에 구축한 석루(石壘)는 장성식(長城式)으로 일본에서는 그 유례가 없는 것이다. 근세에 이르러 성은 단순히 적을 막기 위한 것만이 아니고 그 지방의 정치경제의 중심을 겸한 다이묘들의 거성으로서 크게 발달하여 전국 각지에 성이 출현하고 그 외곽에는 백성들의 부락이 형성되었는데, 현재 일본의 대도시의 대부분은 이들이 발전된 것이다.
이와 같은 거성은 성곽의 지형에 따라 산성(山城) ·평산성(平山城) ·평성(平城) 등으로 구분된다. 산성의 예로는 다카하시성[高梁城:岡山縣] ·오카성[岡城:大分縣]이 있다. (네이브 지식백과)
정문 터
이렇듯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지은 오카성은 난공불락의 천연요새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성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운 백성이 희생되었을지
산성을 오르는 사람을 위해 준비해 둔 대나무 지팡이, 그리고 음료 가판대 위에 설치된 태양광 집열판이 인상적이다
우체통이 인상적이다. 상점 마을을 내려오며 본 뻐꾹나리
일행을 태우고 다닌 미니버스가 오른쪽 끝에 주차중이다. 처음 차를 탈때 이상한 소리가 많이나 한마디씩 했던 차인데, 기사는 아주 깔끔한 복장으로 전형적안 일본 소시민처럼 보였다.
종점부인 조카마치 마을은 에도시대 무사의 숙박시설로 번성한 곳이다. 여기서도 일본의 역사가 읽힌다. 가이드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기억하지를 못하겠다.
아쉽다. 마을을 돌아보지 못한 채 서둘러 후쿠오카로 떠남이 ..언제 다시 이길에 설 수 있을까 . 한번도 못 온 사람들에 비하면 두번이나 왔음에도 ...
노래출처:다음 블로그 아름다운 음악여행
Alone Again (Naturally) / Gilbert O`Sulliv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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