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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오래된 미래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대연동의 나무들과 유엔기념공원

by 이성근 2015. 12. 13.

 

진짜 올해 마지막 조사라 작정하고 집을 나섰다.  동선은 대연동 > 암남공원 > 그리고 금요일 제대로 챙기기 못했던  어린이대공원 일본전나무를 확인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결과적으로 대연동만 했다.  유엔공원에서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기분이 상했기 때문이다.  그런 심적 상태에서 오후 일정으로 설정했던 서구의 앙남공원까지 간다는 것이 시들해졌다.  또 불편했기 때문이다.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내려서 오르락 내리락하는 일정이 가기도 전에 피곤을 야기했던 것이다  

글을 올리기 전에 다음 블로그 농바우에서 빌려 온 대연동과 관련된 옛사진을 먼저 깔아 본다.  사진은 1952년에 찍은 것으로 원출처는 당시 부산에 주둔했던  미군으로 추정되는데,  63년 전 사자바위와 황령산과 갈미봉을 배경으로 잡은  대연동 일원이다. 기가 막힌다.  저 비탈에 선 소나무들 중 생존해있는 나무가 있을 것인가에서 부터 옛모습 눈 씻고 찾을려해도 찾을 길 없는 현재의 모습과 너무도 대비되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굳이 올린 것은 대연초등학교를 설명하기 위해서고, 이 학교 정문에 뿌리내린 해송을 추적하기 위해서다.

1952년 못골 일원이다.

대연초등학교의 전신은 1928년 동래군 서면 용연 보통학교를 지으면서 였고 1932년 사립용연보통학교를 개교하면서부터다. 교목은 소나무다.

2014년 현장을 방문하긴 했지만, 아무런 측정 장비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사진 만 몇 컷 남겼을 뿐이다. 이후 틈을 노렸지만 좀체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수고 13m 근원부 1.75m  둘레 1.84m 수관 동서 8.9m  남북 12.3m

근원부로부터 약 1m 지점 크게 상처를 입었다 아문 흔적이 남아 있다.  보통 일정 정도 수령을 가진 소나무류의 경우  V형 상처는 일제말기(1932~1945) 자원부족에 따른  송진채취의 흔적이다.  아님 차량등의 출입에 따른  충격 상처일 수도 있는데 모두에 대연초등학교의 개교와 50년대 사진을 올린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현재 학교 정문을 기준으로 다섯 그루의 해송이 있는데  가장 몸집이 큰 나무는 정문 우측의 두번째 해송이다.

 

안타깝게도 팬스 담장이 너무 높아 어떻게 측정을 해 볼 수가 없었는데 흉고는 어림잡아 2.5m는 족히 되어 보였다.

유엔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으로 가기에 앞서 대연4동 사과나무학교 뒷편  760-11번지 당곡 문화마을의 해송을 만나러 갔다.

1년이 경과한 지금 당곡의 해송들은 재선충에 감염되어 훈증처리중이거나 베어져 없어졌다. 한 그루만 서 있었다. 

사라지기 전 당곡문화마을 쉼터와 소나무들  2014년10월20일의 모습이다.

세번째 대상목은 유엔공원 내 버들이다.  이 나무와의 인연은 제법 된다. 

고등학교 시절 한때 어울려 다녔던 박석수란 친구와 이 나무 아래서 기념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하마 30여 년 전이다,  그때도 이 나무는 이 정도의 덩치였던 것 같다.  그때는 벤치도 있었다.  비록 가지의 일부가 잘려나가긴 했지만 아직도 건재하다. 

수고 17.5m  근원부 3.05m 둘레 2.57m   수관 동서 10.2m 남북 10.6 m

중심을 이루는 가지들이 손상을 입지 않았다면 수고는 보다 더 높았을 것이다.

예전 기억으로 보면 가지가 치렁치렁 하여 수양버들이나 능수버들에 가까웠다. 일단 수양버들로 판단한다. 수양버들(垂楊 Salix babylonica L.)은 능수버들과 같으나 새 가지(소지)가 적갈색인 것을 수양버들이라 하며 가지는 바람에 약해 매우 부러지기 쉽다고 한다. 또한 줄기의 대부분이 잘 늘어지는 것은 수양버들, 그 해에 새로 자라난 줄기만 들어지는 것은 능수버들로 구분하는데 현재는 능수, 수양 두 나무를 구분하지 아니하며 학명 Salix babylonica 를 공통으로 사용한다. 중국 중남부가 원산지로 이땅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와 전국 곳곳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유엔묘지(기념공원)이 조성된 시기가 1951년임을 고려할 때 이 수양버들의 나이도 그에 견주면 될 듯한데 확정은 망설여 진다.

유엔기념공원 내 메타쉐퀘어 가로수길

수양버들은 이곳의 오래된 지형의 흔적이다. 동쪽 일부에 용버들도 자라고 있다.

공원내 남서쪽 평화공원과 경계지점에 있는 연못1  버들 군락지, 으뜸 수양버들로부터 약 250m남짓한 거리에 있다.

 여기서 다시 다음블로그 농바우에 실린 1952년의 유엔기념공원 사진을 올려 본다.  어쨌든 눈에 들어오는 큰키의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점처럼 보이는 그 나무들 중에 수양이 있다면 수령의 수정이 필요하다.

현재 공원의 전체면적은 약 43,600 여평(14만 4146㎡)이다. 이중 6만 6115.7㎡가 녹지 지역이다.  약 80여종의 나무와 초화류가 식재되어 있다. 

회화나무 장미 향나무 조선향나무 둥근향나무 비단삼나무 벚나무 칠엽수 배롱나무 오동나무 무과나무 복숭아 목련 쥐똥나무 편백 용버들 태산목 수양버들 회양목 플라타너스 동백 겹벚나무 무궁화 가이즈카 향나무 팔손이 석류 갈참나무 튤립나무 주목 곰솔 구골나무 수국 당종려나무 병꽃나무 소나무 흰말채나무 단풍나무 자귀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층층나무 매실나무 능수복숭아 측백나무 아그배나무 남천 꽃 아그배나무 리기다소나무 느릅나무 광나무 사철나무 은사시 명자나무 등나무 히말라야시다 반송 영산홍 꽝꽝나무 줄장미 오죽 철쭉(자산홍) 대나무 대왕철쭉 월계수 층층나무 홍매실나무 돈나무 목서 자두나무 자목련 산다화 철쭉 회양목 후박나무 주목 사사 살구나무 등이다.

연못 2에는 원래 연꽃이 있었고 작은 또랑에는 버들치 비슷한 것이 살기도 했다.  거위들이 한가로이 수면을 가로질러 오고 있는 풍경을 보며 뜬금없이 공원과 관련하여 지난 2013년 나왔던 책을 한권 소개해 본다. 공저로서 출판에 참가한 글쓴이들 대부분이 선배나 알고 지내는 지인들이다.  

유엔기념공원과 부산 저 : 민주주의사회연구소 출판사 : 선인 2013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한국전쟁의 근본 성격과 부산에 끼친 영향, 그리고 유엔의 탄생과 발전에 대한 역사학적 접근, 유엔기념공원의 입지 선정과 조성 경위에 대한 도시사적 접근, 공원의 공간적 구성에 대한 도시계획적, 건축학적 접근, 유엔공원의 조형물과 조형 공간에 대한 미학적 접근 등을 시도하였으며, 이 모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민주주의 거점 도시로서 부산을 새롭게 자리매김하면서 이에 걸맞은 대안적 동선을 구상해다고 밝히고 있다.  나아가 부산이 이 나라 제2의 도시로 알려져 있으면서도 지역 특유의 문화가 결여되어 있으며,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는 한 지역민이 주인이 되는 참된 민주주의의 실현은 불가능하다는 공감대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전진성/ 유엔기념공원을 부산 속에 재배치하기

 

1부 유엔기념공원의 성격

김선미/ 한국전쟁과 부산

김선미/ 재한 유엔기념공원의 조성 경위와 관리의 성격

박원용/ 냉전초기(1950년대~60년대) 유엔의 위상 변화

차성환/ 한국전쟁, 유엔군 그리고 유엔기념공원의 의미

 

2부 유엔기념공원의 체험

우신구/ 유엔기념공원의 형성 과정과 공간 구조

백영제/ 공원의 공간 구성 및 전시 조형물의 특성

하세봉/ 중국은 한국전쟁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항미원조기념관의 경우

 

에필로그

전진성, 김종세/ 민주주의 거점 도시 부산의 대안적 동선을 그리며

 

유엔기념공원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전사자 및 주둔군 군속의 시신이 묻혀 있는 공동묘지로, 현재 재한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CUNMCK)의 관리 하에 놓여있으며 2007년 이래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부산의 도심부에 속하는 지역에 널찍이 자리 잡고 있는 이 국제 시설은 부산의 자랑거리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부산 시민은 물론, 시 당국과도 무관한 시설이다. 이 시설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지금까지 늘 상위의 권력에 의해 '수호'되어 왔을 뿐 시민들과는 늘 유리되어 있었다. 이 시설은 '자유''평화'라는 명시적인 구호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상 많은 의문점을 안고 있다.

 

- 1950년 유엔 안보리 결의안 84호는 미국 주도 하의 통합군사령부(Unified Commander) 구성을 권고했으나, 이후 미국은 유엔과 협의 없이 725'유엔군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er)'가 수립되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유엔군'으로, '유엔군''유엔의 지지를 받는 다국적군'이며 '유엔의 군대'는 아니었다.

- 유엔 자체도 적어도 1950년대 전반기까지는 강대국의 입김에 여지없이 휘둘렸다.

- 유엔기념공원 안장자에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은 없다.

- 1959년 발효된 대한민국과 유엔과의 협정에 의해 '재한국제연합기념묘지'"영원히 무상으로" 유엔에 기증됨에 따라 대한민국은 이곳의 소유권을 완전히 상실했으며, 1973년 언커크 해체 이후 현재까지 이곳의 관리 주체인 국제관리위원회는 11개 참전국의 주한 대사들로 이루어져있을 뿐으로, 이 공원은 실제로 유엔과는 무관한 시설이다.

- 유엔기념공원에 적국의 시신이 지워지듯이 항미원조기념관에서는 한국과 유엔이 지워졌다.

 

이러한 점 등은 그저 안개에 가려있거나 애써 무시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일종의 엄숙주의 내지는 신비주의가 지배하는 가운데 느닷없이 '부산남구유엔평화문화특구(Busan Nam-gu Peace and Culture Zone for the United Nations)'가 지정된 것은 참으로 씁쓸한, 우리 사회에 만연된 비지성주의의 발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흥겨운 축제와 토건 사업의 요란함 속에 이 지역을 관광 포인트로 개발하려는 정치권의 시도는 신성불가침과 상업주의의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결합을 보여준다. 이곳에 묻힌 영령들을 진정으로 애도하고자 한다면, 그들의 죽음을 상위 권력에 이바지하는 거창한 이데올로기로 포장하거나 관광객에게 제공되는 수많은 '볼거리'의 하나로 치장해서야 되겠는가? 아무런 물음도 허용되지 않고 아무도 더 이상 묻지 않는 사회를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라고 일컫지 않는다.

 

재한유엔기념공원에 묻힌 고인들의 죽음이 갖는 의미를 진지하게 숙고하는 일은 그 죽음을 전후로 이 땅에서 삶과 죽음을 경험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일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서로 간에 동질성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이 땅과 인연을 맺었다. 각자의 운명 속에 저마다의 상이한 시간들이 이곳에서 교차되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우연이겠지만, 역사적으로는 필연적이다. 모두가 역사의 급물살에 휘말린 채 이곳에서 살고 떠나고 죽었고, 유엔기념공원은 그 흐름의 한 종착점에 해당한다. 일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고된 운명을 마감하고 이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유엔기념공원을 부산 속의 장소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일은 이 땅에 결부된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사회,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로 가는 길로 통한다고 할 수 있다.

 

과거를 정치적으로 도구화하는 관행이야말로 우리가 극복해야할 사안이다. 이 책은 부산 시민들이 부산과 인연을 맺은 다양한 사람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애도할 것인지, 그럼으로써 부산이 어떻게 진정한 민주주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의 모색이다.

 

2013727일은 한국전쟁 종전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민족상잔의 비극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만큼 지대하고 지속적이다. 따라서 종전 60주년을 맞이하여 이 불행한 전쟁의 근본 성격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물론, 전쟁이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제반 영역에 끼친 영향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이 요청된다. 이 책은 유엔기념공원을 매개로 한국전쟁이 대한민국 도시 부산에 가져온 시간과 공간의 새로운 양상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이 땅에서 전개된 초유의 현대전은 한 도시의 모습을 마치 화산 폭발 후 마그마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처럼 변형시켰다. 부산은 급격한 인구의 유입으로 체계적인 공간의 질서를 상실하고 누더기처럼 찢어졌으며 시민들의 기억은 전쟁의 쓰라린 아픔과 산업발전의 활기찬 구호 사이에서, 개인적 운명과 국가적 정체성 사이에서 극심한 모순을 빚게 되었다. 자유와 평화를 표방하면서도 정작 주민들의 피맺힌 이야기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 유엔기념공원은 바로 이러한 모순의 한가운데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남쪽 대숲에 깃든 소나무를 만났다. 대밭 가장자리에 뿌리내린 소나무를 만나게 되었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설 자리가 아닌 곳에 뿌리 내린 소나무는 힘겨운 버티기로 영역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그 자리에... 공존이 가능할까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비 쪽으로 이동하다  히말라야시다가 도열한 지점에서  중에 제일 굵은 친구가 보여 다가서려는데

관리인의 제지가 있었다. 출입 여부로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단호한 그의 태도에 알겠다 하고선 그가 오토바이를 몰고 사라진 다음 기어코 측정을 하고 현장을 벗어 났다.

수고 14m 근원부 3.75m  둘레 3.03m  수관 동서 9m 남북 10m 

젠장, 그의 업무에 대해 이해는 하면서도 마음이 언잖아졌다. 저리 꽉막혀서... 였다

밥때를 넘긴 점심시간, 배도 고프고 왠지 안남공원까지 갈길이 너무 여기까지만 하고 접기로 했다.  그렇다 올해는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자.  2015년 조사 본수는 약 100주 가량 된다. 이중 규격이나 수령을 고려하여 1차 정리를 한다면 약 70주 정도, 지난 2년간 부산 16개 구군에 이름없이 서 있는 100년 이상 노거수들이 최소한의 존재이유를 가질 것이다. 

 

조사를 통해 현재 3개 지역(강서구 외눌마을, 금정구 선두구동, 사상구 학장동 주례구치소 앞)에 녹색거점 사업이 진행중에 있고, 부발연 오동하 박사의 도움으로 부산노거수 지도가 조만간 만들어 질 것이다늘 지나고 나면 아쉽지만 아직도 숨어 있는 백년 노거수가 산재해 있다. 관련하여 노거수를 사랑하는 모임, 약칭 노사모를 조직할 계획이다. 어쨌든 부산의 노거수 문제를 부산그린트러스트가 전면화 시켰다, 그 결과로서 관련 조례의 개정이 이루어 졌고, 부산시의 노거수 보전관리 정책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다무엇보다 내가 행복했다.

한잔의 추억 - 투코리언스.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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