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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오래된 미래

가덕 눌차의 노거수들

by 이성근 2015. 12. 7.

 

2010년  이후 다시 눌차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환경부 습지사업단과 더불어 정거마을을 생태마을로 만들어 보겠다며 주민들과 어울렸던 때가 2011년~2012년이었디ㅏ. 걷고싶은부산을 그만두면서 환경교육센터 후배가 2013년 말까지 뒤를 이어 했지만 이후로 중단되었다.  그리고 가끔씩 정거마을을 방문했다.  사실 정거보다는 외눌의 후배 배혜영으로 인해 90년대 초부터 이 마을을 출입했다.  

 

 http://blog.daum.net/dkfemsea/984     2011.11

 http://blog.daum.net/dkfemsea/1164    2012.1.8

 http://blog.daum.net/dkfemsea/1168    2014.1.14 等

 

아무튼 가덕 눌차는 내가 즐겨 찾는 부산의 몇 안되는 곳이다.  눌차는  눌차도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눌차도는 섬 모습이 매우 완만하고 누워 있는 모습이라 하여 지명이 유래되었다. ‘은 한 군데 오래 있어 지루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의 눌어붙다라는 뜻으로 해석되며, ‘는 누우려는 형세를 보이는 모습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灣 안쪽의 내눌과 외늘 그리고 외눌 고개 넘어 항월과 정거마을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다시 눌차를 찾게 된 것은 지난해부터 부산전역을 대상으로 노거수조사를 하면서 부터였다.  노거수 중에서도 기존의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가 아닌  수령 100년 이상된 마을터줏대감나무를 올해까지 조사를 하면서 였고, 올들어 부산은행, 부산일보와 더불어 마을터줏대감나무를 대상으로 한 녹색거점 나무사업을 수행하면서 외눌의 이팝나무와 금정구의 선두구동 석지못 상수리 나무 등 세 곳을 선별, 실험적으로 노거수 벤치사업을 하게 됨으로서 였다.  여기에 어울누리뜰 5호사업을 동시에  외눌에서 하게 되었고 지난 주말 어울누리뜰 사업 조성관계로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래 위성 지도는 일을 하는 틈틈 마을에서 눈여겨 봤던 나무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노거수 분포 지도다.  몇 곳의 후보나무가 더 있다. 추후 조사를 받드시 해 보리라 어쨌든 눌차는 이번 노거수 조사를 통해 다시금 매력적인 곳임을 확인했다.  

마을초입 굴피나무다.

 

인상적인 나무는 아래 팽나무다. 후배의 어머니가 시집올 때 있었던 나무였는데 약 50년생이다. 그런데 다른 곳의 50년생과 비교하면 너무 차이가 난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려 악착같이 살아 온 것이다.

가덕해안로 2번길 41 밭 뒤편의 해송

가슴둘레 2.5m 정도 수고는 5~6m 가량  수관폭은 동서 14m 남북 17m

 비탈에 있어 측정은 어려워 사진만 남겼다.

이팝나무 뒷편 팽나무로 지난 2014년 조사했다.  수령을 100년 정도로 보았다.  수고 8m 근원부 3m 수관폭 7m

근원부에서 1.2m 지점 동공이 생기고 있었다.

조릿대숲에 가려 있을 뿐 아니라 55번집과 57번 집 뒤울에 비탈이라 자세한 측정은 어려웠다.

그리고 현재 외눌을 상징하는 이팝나무 두 그루 

꽃이 필 때면 하얗게 빛이 날 정도로 마을이 환해 진다.

건너편 국수봉 자락 능선 우측 밭둑에 서 있는  463번지 팽나무

첫날은 아무런 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아 모습만 담았다.  나무 뒤로만 풀이 돋아 푸르다.  

그 너머 눌차만을 바라본다.

눌차분교 앞 해송 두그루

송악이 근원부부터 나무의 가슴까지 타고 올라 푸른 옷을 입혀 놨다.

두 그루 해송 사이 제법 큰 덩치일 둣한 나무를 보았다. 직감적으로 당산나무일 듯 했다.  

눌차분교 정문 앞 해송 역시 2014년 조사한 바 있다.  수고 13m에 가슴둘레2.5m 근원부 3.0m  수관폭 동서 17m 남북 25m

동선새바지길 648-10(9-48) 주택 뒤 언덕에 있는 팽나무

마을에서 올려다 본   463번지 팽나무

내눌마을 동선 해안길 586 앞의 팽나무

이 나무 또한 2014년 조사한 바 있다. 수고 10m  가슴둘레 3.2   근원부 4.5m  수관폭 동서 19.7m  남북  14m

이 나무 또한 뿌리내린 터가 열악한 조건이다.

뿌리들이 숫제 바위돌을 삼킨듯한 형태다

당시 최소 못되어도 수령 100년은 되고도 남아 보여 그렇게 기록했고 주민들도 백살이 넘는다고 했다.

그런데 이날 마을의 70중반 노인이 그렇게 안된다고 했다.  그렇게 말한 본인은 이곳에서 나서 자란 사람은 아니었다.  거주 한지 40년 쯤 됐다고 밝힌 노인은 현재 마을의 최고 고령인 90대 노인한테 올해초 그렇게 전해 들었다고 했다. 이럴 수가  ...아무튼 확인이 재차 필요할 듯하다. 글 머리에 외늘 50년생 팽나무를 언급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 길에  빨간 씨를 품은 노란 껍질의 노박덩굴이 인상깊이 다가왔다.

12월6일 2일차 작업하러 와서 잠시 짬을 내어 눌차 할배 당산쪽으로 가 보았다.

가덕해안로 2번가길 91번집과 눌차분교 사이 해송이다.

근원부 3.7m 허리둘레 2.95m  수관폭 동서 17.3m  남북 13m

이 나무는 선창에서 눌차 쪽을 보면 항월고개를 중심으로 우뚝솟아 있는 몇 그루의 나무 중에 하나다.  

5월경 이팝나무 꽃이 피었다.

 

 

91번집에서 약 50m 이동하면 학교 뒷편에 해당하는 곳, 완만한  사면지역에 최저 가슴둘레 2.5m 급 해송 7~8그루가 줄지어 서 있다.

 

거기서 100m 남짓한 곳의 해송 역시 비슷한 덩치를 가지고 있다. 이 나무 역사 멀리서 보변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할배당산  못미쳐 어느 밭둑에서 바라다 본 눌차만 정경

밭의 경계부에 무리지어 서 있는 팽나무들

정상부 근처에서 신항이 전혀 딴세상처럼 다가섰다.

정상부는 밭이 대부분이다. 

눌차 할배 당산 주변 무리지어 서 있는 팽나무들 

눌차에는 두 개의 당산이 있다. 할매당산은 닻거리[정거 마을]와 안모[내눌 마을] 사이에 위치한 국수봉 위에 있고, 할배 제당은 할매 제당으로부터 서쪽 약 800m 지점에 있는 산꼭대기[외눌 마을]과 목너미[항월 마을] 사이에 있다. 2003년 무렵 할매 당산제와 할배 당산제가 분리된 이후 제당도 마찬가지로 완전히 분리되어 관리되고 있다. 마을 통장이 관리하는 할매 제당은 표지판도 설치하는 등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반면, 1인에게 일임한 할배 제당은 노후한데다 관리가 안되고 있어 보였다.

할배제당은 대지가 7.5평쯤 된다.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당집 안에는 당산 할배도와 촛대 2, 향로 1, 메 그릇 2, 탕 그릇 2, 술잔 2, 수저 2벌과 긴 담뱃대 1개가 놓여 있고, 그리고 제단의 왼쪽에는 한복 한 벌이 놓여 있는데 할배의 옷이며, 제단의 오른편 아래에는 징과 북이 있다고 했다.

   

당산제는 음력 11일 새벽[할매 당산제]12일 자정[할배 당산제]에 행해지는데 목신제(木神祭), 벅수장군제, 골매기 할매제 등의 부속 제의는 중단된 상태이다. 제물의 종류와 제의 절차는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같되, 절편과 찰떡이 필수적이다. 과일은 세 가지 정도가 오르는데 배, 사과, 수박 등의 큰 과일이 기본이고 밤, 대추, 감 등이 추가된다. 생선은 대구[큰 것], 조기, 감성돔 등 세 가지가 기본이며, 그 외의 다른 생선이 추가되고, 마른 명태 큰 것이 오른다. 돼지고기는 갈비를 익히고, 나물은 원래 도라지, 고사리, 콩나물 등을 사용했으나 초라하다고 생각해 5가지 내지는 7가지를 쓴다. 시금치, 미역 등이 추가된다. 할배 당산제의 경우, 1980년 무렵부터 2009년까지는 성불암에서 음식을 했으나, 이옥림이 절을 처분하면서부터는 자신의 집에서 음식을 준비한다. 제물을 구입하러 갈 때는 도중에 만나는 사람과도 말을 하지 않는다. 제물은 소금부터 사는데, 제물을 구입할 때도 상인과의 대화를 꺼려 흥정하지 않고 제물 값을 부르는 대로 지불하며, 구입한 제물을 가지고 돌아올 때도 도중에 쉬지 않고 바로 온다. 제사를 지내기 전에는 3일 전부터 제사 음식을 하기 위해 대문 앞에 장대를 걸쳐 두어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다.

 

그믐날에는 마을 곳곳에 황토 흙을 세 무더기씩 놓는다. 주로 사거리 골목, 삼거리 골목 등 중요한 곳에 놓게 되는데, 만약 빠뜨린 곳이 생기면 그 인근 마을에서 야단이 난다. 그리고 황토와 함께 왼새끼를 꼬아 소나무와 대나무를 끼운 금줄을 친다. 제당 앞의 입구에도 마찬가지로 황토를 놓고 금줄을 친다. 제관은 제의날 밤 찬물에 목욕재계하고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제물을 가지고 제당에 가서 엄숙하게 제의를 올린다. 당산제를 지내러 올라갈 때는 집집마다 불을 밝히고 정성을 다한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러 올라갈 때나 내려올 때는 절대로 다른 사람과 마주쳐서는 안 된다. 예전에는 축문이 있었지만 1980년 무렵부터는 축문 없이 말로만 비는 이령수[()에게 말로 읊조리면서 소원을 비는 행위]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빌며, 마을 주민들의 사업과 관련해서도 재수를 빈다. “성바지[성의 종류]는 각각이요. 어짜든지 가정마다 사업자들, 사업이 잘 되고로 해 주이소.”라고 하며, 각각의 성바지들을 들먹이며 가정마다 소원 성취해 달라고 빈다.

 

예전에는 제의가 끝나고 음복을 했는데, 음복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보름 이상 금기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마을의 노인층만 주로 음복을 했다. 그러나 1980년 무렵 이옥림이 일임하고부터는 변하기 시작했다. 이옥림이 처음 맡았을 때에는 마을의 노인들이 제의에 참여하여 같이 음복을 했으나, 몇 해 지나면서부터는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2011년 현재는 할배 당산제의 경우 이옥림 외에 마을 사람들은 일절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원래 신목이라 할 수있는 당산나무인 소나무가 있다고 했는데  존재하지 않았다.  예전 태풍으로 인한 소나무의 피해를 우려하여 이 당산을 조사했던 이들이 가지를 칠 것을 권유한 적이 있었던 같은데 그 권고 때문인지 소나무는 없었다.   대신 네 그루의 팽나무가 당집을 바람막이 하듯 줄지어 서 있었다. 

그 중 당집 문 앞에 서있는 가장 큰 팽나무를 재어보았다.  허리둘레 3.4m 기부 1.7m 동서 17.2m 남북 18.9 m

당집 뒷편 밭에는 소나무 묘목을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 항월마을 쪽 사면에도 팽나무들이 머리며 어깨를 보이고 있다.  새삼 팽나무가 많다.

가덕해안로 2번 나길이 정거마을로 연결되어 있고 진우도가 보였다.  

조사한 나무들의 지번을 챙겨보았다.

주말 이틀 눌차에서 작업하면서 이 나무들과 만났다는 것이 또 다른 수확이다.  

조사된 나무들을 지도에 안히기 위한 작업 중에 어눌누리뜰 조성 때문에 눌차에 들어 왔는데 정리가 만만찬다.  아마도 올해 마지막 조사가 아닐까 싶다.  추가적으로 조사하고 확인해야 할 나무들이 있기 한데 시간이 없다.

다음을 기약할 나무들을 올 겨울 만나보리라  

 오후 작업을 어울누리뜰 조성 작업을 재개하고

이틀간 꼬박 달라 붙었는데 겨우 기초만 마무리 했다. 화단을 조성하는 것 외 몇 가지 작업이 추가된다.   귀가 는 완전히 어둠이 내려서야 가능했다.

그로부터 사흘 후 조성 된 어울누리뜰 5호  그 사이 또 비가 왔었다.

 

Rainy Day Lover - Tony Joe Wh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