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제와 당산나무
경남 고성 양산리 느티나무
하늘이 베푸는 만큼만 먹고 살 수 있었던 농경문화 시절, 사람은 세상의 모든 소원을 하늘에 빌었다. 비를 내려달라고 빌었고, 햇살을 더 따스하게 쬐어달라고 또 빌었다. 사람의 생살여탈권이 온전히 하늘에 달렸다고 믿었던 시절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원을 빌었지만, 저 높은 하늘까지 사람의 소원이 닿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하릴없이 넋을 놓고 하늘만 바라보던 그 순간 하늘을 머리에 이고 서 있는 큰 생명체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였다.
사람들은 나무에 다가서서 소원을 빌었다. 사람보다 먼저 이 땅에 자리 잡고 사람의 마을에 서 있는 한 그루의 큰 나무는 사람들의 모든 소원을 다 담고도 남을 듯한 몸피를 하고,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나무를 향해 하늘까지 우리의 소원을 전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나무에게 소원을 전달하는 예를 정성 들여 치렀다. 해마다 빠짐없었다. 이 땅의 당산제는 그렇게 이어졌다. 사람의 소원을 하늘에 전달하는 이른바 영매 노릇을 하는 나무를 사람들은 ‘당산나무’라고 불렀다.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상당수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 당산제를 지내는 마을은 남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올리는 당산제는 사라졌다 해도 마을 한가운데에 서 있는 당산나무는 여전히 마을의 중심이자 상징으로 남아 있다. 사람살이가 고단할 때마다 나무를 찾아가 옛날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했던 것처럼 막걸리 한 사발을 올리고 소원을 비는 건 여전하다. 세월 지나며 나무에는 사람들의 한 많은 삶이 고스란히 배어들었다.
이 땅의 큰 나무는 우리 삶의 역사다. 일쑤 스쳐지났던 민초의 역사가 모두 나무에 담겨 있다. 권세가 중심의 기록에선 찾아볼 수 없는 사람살이의 역사다. 나무가 사람의 언어로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지, 나무 안에 담긴, 나무가 바라보고 함께 서러워하고, 사람의 소원을 하늘에 전하기 위해 애면글면했던 나무는 소중한 우리의 역사다. 격동기를 살아가는 지금 이 땅의 큰 나무를 한번 더 찾아보아야 할 까닭이다.
고규홍 천리포수목원 경향 2021.07.13.
도시에 살아남은 자연유산
한때 ‘보물 1호’ ‘천연기념물 1호’를 맞히는 건 퀴즈 프로그램의 단골 메뉴였다. 그러나 지정번호는 문화재 관리를 위한 것이지, 중요도를 가리키는 신호가 아니다. 문화재청은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모든 문화재의 지정번호를 없애기로 했다.
‘살아 있는 생명체에 국가가 부여하는 최고의 지위’인 천연기념물 가운데 지정번호 제1호를 부여받았던 건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이다. 대구 도동의 절벽에서 자라는 여러 그루의 측백나무를 묶어 지정한 것이다. 대구 외에 단양, 영양, 안동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측백나무 숲이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 땅에서 사람살이와 함께해 온 소중한 자연유산이라는 증거다. 같은 측백나무과에 속하는 향나무에 비해 측백나무는 덜 알려진 탓에 일반에게 다소 생경한 게 사실이다. 주변을 살펴보면 숲을 이룬 자란 측백나무 외에 홀로 긴 세월을 살아온 노거수도 적지 않다. 그 가운데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는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의 측백나무가 유일하다.
삼청동 측백나무 외에도 우리 문화의 배경을 이루며 살아온 크고 아름다운 측백나무는 곳곳에 살아 있다. 우리의 나무 문화를 더 널리 알리고 이어가기 위해서는 아직 채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측백나무를 찾아내 보호 대책을 세우고, 필요하다면 ‘천연기념물’ 지정도 검토해야 한다.
알려진 측백나무 가운데에 가장 크고 아름다운 것은 경기 부천시 여월동 측백나무(사진)다. 이 나무는 나이 500년, 높이 10m, 가슴높이 줄기둘레 3.42m, 나뭇가지 펼침폭 9m의 거목이다. 나무 줄기 몇 곳에 외과수술 흔적이 있기는 해도 여전히 생육 상태가 건강하고 수세도 왕성하다. 1980년대 초 나무 아래에 큰 불이 났지만 시민들이 꾸준히 관리한 결과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남았다.
시민들의 정성에 이어 이제는 나무의 관리 주체인 지자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수한 자연유산을 효율적으로 지키고 널리 알려, 자연자원에 대한 수준 높은 인식을 함양하기 위해 지자체의 적극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 2021.08.10.
민족의 삶을 지탱해 준 ‘참나무’
영양 송하리 졸참나무
참나무 종류의 하나인 졸참나무 한 그루의 천연기념물 지정이 예고됐다.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송하리 마을 숲의 중심이 되는 나무다. 졸참나무로서는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나무는 갈참나무·굴참나무·떡갈나무·신갈나무·상수리나무 등 참나뭇과에 속하는 나무 중 잎과 열매가 가장 작아서 ‘졸병’을 뜻하는 ‘졸’자를 넣어 졸참나무라고 부른다.
잎과 열매는 작다 해도 전체적으로는 크게 자라는 나무다. 영양 송하리 졸참나무는 마을 당산제를 지내는 당숲의 중심이 되어 사람살이의 안녕을 지켜온 큰 나무다. 250년쯤 된 이 나무는 높이 20m, 가슴높이 줄기 둘레 3.5m이고, 나뭇가지 펼침폭이 사방으로 18m에 이를 만큼 장대하다.
참나뭇과의 나무는 오랫동안 우리 민족 살림살이의 바탕이 되어왔다. 기후에 잘 맞아서 어디에서나 잘 자라고, 열매인 도토리는 먹을거리로 우리 살림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나무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 민족의 인문학적 가치와 의미를 가진 나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천연기념물과 같은 자연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하는 나무는 많지 않다. 천연기념물의 경우 굴참나무 3그루, 갈참나무 1그루인 게 전부다. 소나무 36건, 은행나무 24건, 느티나무 19건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황을 감안하면 참나무는 지나칠 정도로 적다.
사실 참나무 종류 가운데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만한 크고 오래된 나무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오랫동안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땔감이 필요한 백성들에게 소나무 대신 참나무 종류를 베어가도록 정책적으로 권장했던 결과다. 민족의 삶을 애면글면 이어갈 수 있게 한 생존의 바탕이었지만 크고 오래된 나무를 찾기 어려운 이유다. 그럼에도 참나무 종류는 우리 민중의 삶의 무늬를 품고 우리 곁에 살아 있는 민족의 큰 나무다.
땔감으로 사용되면서 수난을 당해 오래 살아남지 못한 참나무 종류의 나무 가운데 더 의미 있는 나무를 찾아 더 오래 보호할 채비를 갖추어야 할 때다. 영양 송하리 졸참나무의 천연기념물 지정이 그 첫걸음이 되기를 기원한다.
: 2021.08.24.
하늘을 맑게 지켜주는 느티나무
잘 자란 느티나무 한 그루에는 무려 500만장의 잎이 달린다고 한다. 대략 300년쯤, 큰 가지의 훼손 없이 건강하게 자란 느티나무의 경우다. 이 많은 잎들은 제가끔 기공(氣孔)이라 부르는 숨구멍을 가졌다. 기공은 대기 중의 미세먼지와 매연을 흡착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잎이 많으면 자연히 기공이 많아지고, 기공이 많으면 공기정화 효과가 높아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느티나무를 이야기할라치면 많은 사람들이 199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를 첫손에 꼽는 데 머뭇거리지 않는다. 세 그루의 나무가 한 건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 가운데 언덕 위쪽에 서 있어 상괴목(上槐木·사진)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나무가 특히 아름답다. 나무의 높이는 무려 30m에 이르고, 사람 가슴 높이에서 잰 줄기 둘레도 8m나 될 만큼 큰 나무다.
다른 두 그루도 높이가 20m, 15m나 되는 큰 나무이지만,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상괴목을 따르지 못한다. 언덕 아래에 있어 ‘하괴목’이라 부르는 나무는 마을의 당산나무이며, 다른 한 그루는 언덕 너머 도로 쪽 꼭대기에서 우령마을의 랜드마크가 됐다. 세 그루가 마을 어귀의 낮은 동산에 삼각형의 꼭짓점을 이루는 자리에 제가끔 서 있어 마을 사람들은 ‘느티나무 세 그루가 이룬 정자’라는 뜻에서 삼괴정(三槐亭)이라고도 부른다. 무려 800년이나 우리의 하늘을 지켜온 자랑스러운 자연유산이다. 삼괴정 느티나무는 각기 500만장이 넘는 잎을 가졌으니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모두 1500만장이 넘는 초록 잎이 마을 하늘을 떠도는 미세먼지를 쉴 새 없이 빨아들이는 셈이다. 우령마을의 하늘이 맑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오늘은 유엔에서 미세먼지와 대기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푸른 하늘을 위한 세계 청정 대기의 날’이다. 우리나라 주도로 제정된 최초의 유엔 기념일이기도 하다. 무려 500만장의 잎을 달고 수굿이 미세먼지를 빨아들이며 사람살이를 지켜주는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오래 바라보고, 감사 인사를 올려야 하는 날이다.
: 2021.09.07
아름다운 사람살이 품은 단풍나무
내장산을 대표할 만한 단풍나무 한 그루가 지난 8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내장사에서 계곡을 따라 남서쪽으로 300m쯤 떨어진 급경사의 너덜겅 지역에 서 있는 ‘정읍 내장산 단풍나무’는 정읍시의 치밀한 조사 끝에 내장산의 모든 단풍나무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로 밝혀졌다. 300년쯤 된 이 단풍나무는 높이가 17m에 이르고 가슴높이 줄기 둘레는 3m가 넘으며 나뭇가지 펼침폭은 사방으로 20m나 되는 큰 나무다. 우리나라의 모든 단풍나무를 통틀어 가장 큰 나무에 속한다. 생김새가 장엄한 건 물론이고, 생육 상태가 무척 건강하다는 것도 돋보인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가을 풍경을 꾸며온 단풍나무이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첫 나무라는 점에서 더 귀하게 보전해야 할 우리의 자연유산이다.
: 2021.09.28.
가장 자연스러운 게 가장 아름답다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제가끔 다르겠지만 누구나 공감하는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흔히 경험하지 못하는 대상에서 받는 경이로움의 느낌이 일쑤 아름다움으로 승화하기 십상이다. 또 사람들은 가장 자연스러운 걸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나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나무로 꼽는 데에 모두 공감하는 나무가 있다. 은행나무 가운데에는 단연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를 이 땅의 가장 아름다운 은행나무로 꼽는다. 수령 800년의 이 나무는 높이 32m, 줄기둘레 16m로 무척 크다. 나뭇가지를 펼친 품은 사방으로 30m에 이를 만큼 광활하다. 경이로움의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하는 나무다.
옛날에 한 스님이 기도처를 찾으며 유람하던 중 이 마을에 이르렀다. 스님은 다리쉼을 하며 물 긷는 처녀에게 물 한 두레박 얻어 마시고 마을 풍경을 내다보는데, 유난스레 마을이 평안해 보였다고 한다. 그때 스님은 언제든 다시 찾아오리라는 마음으로 자신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우물 곁에 꽂아 표시해두었는데, 그 지팡이가 자라서 지금의 큰 나무가 됐다고 한다. 나무는 평화로운 마을의 상징으로 긴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물론 전설이다. 나무에 얽힌 다른 이야기도 있다. 마을에 살던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심은 나무라는 이야기다. 두 가지 이야기 모두 기록으로 전하는 바가 없어 사실을 확인할 도리는 없다. 또 줄기 안에 천년 묵은 흰 뱀이 살고 있어서 사람이 가까이하지 못하는 신성한 나무로 여겨졌으며, 노란 단풍이 한꺼번에 올라오면 이듬해 농사에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는 이야기까지 함께 전하는 나무다.
마침 원주시에서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의 체계적 관리와 관광 자원화를 위해 도시계획시설을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경관 광장과 함께 자동차 135대를 수용할 주차장을 조성할 계획이란다. 원주시의 계획이 가장 자연스러워서 모두가 가장 아름답게 느낄 수 있었던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의 자연 풍광을 망치는 교각살우(矯角殺牛)가 아니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2021.10.12.
백성 구해낸 정치인이 찾은 나무
제주 산천단 곰솔
마흔다섯 살의 사내 이약동(李約東·1416~1493)이 사람살이를 보살필 사명으로 제주목사로 부임한 건 500년쯤 전이다. 재임 내내 백성의 삶을 평안하게 지키기 위해 헌신한 정치인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 말 채찍조차 남기고 떠난 청렴한 삶을 실천한 그는, 이긍익의 <연려실기술>과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청백리의 본보기로 기록돼 있다.
제주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이약동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한라산신제였다. 한라산신의 덕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한 제주 사람들은 음력 정월이면 제수용품을 이고 진 채 백록담에 올라 제를 올렸다. 그러나 사나운 날씨를 무릅쓰고 산길을 오르면서 사람들은 지쳐 쓰러지고, 일쑤 목숨을 잃었다.
이약동은 사람의 평안이 훼손당하는 현실을 바로잡겠다고 궁리했다. 그는 사람살이를 골고루 살피는 산신이라면 필경 사람의 마을에 내려오리라고 생각했다. 산신이 머무를 만한 터를 찾아 제주 곳곳을 헤집고 다닌 건 그래서였다. 긴 탐색 끝에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지금의 ‘제주 산천단 곰솔 숲’의 큰 나무들이었다. 이약동은 이곳에서 산신제를 올리기로 하고, 제단을 차린 뒤 ‘산천단’이라 이름했다. 이약동이 제주목사로 부임한 첫해, 조선 성종 원년인 1470년의 일이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백록담까지 오르는 무모한 산행을 하지 않아도 됐다. 산천단은 이약동 목사가 제주 백성을 위해 베푼 여러 선정(善政)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자취다. 지금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제주 산천단 곰솔 숲’은 8그루의 곰솔로 이루어졌다. 곰솔과 더불어 팽나무, 예덕나무, 머귀나무 등이 어우러진 숲의 정경은 싱그럽다. 8그루의 곰솔 가운데 가장 큰 나무는 높이가 무려 30m나 되고, 가슴높이의 줄기둘레도 4m가 넘어 우리나라의 모든 곰솔을 통틀어 가장 큰 나무에 속한다. 다른 7그루의 곰솔 또한 크고 아름다운 나무들이다.
숲 한편에는 이약동 목사의 선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덕비가 남아, 훌륭한 정치인의 자취를 기억하게 한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2022.01.18.
개혁의 미래 향한 결의의 상징
나주 송죽리 금사정 동백나무.
동백나무 꽃봉오리가 꿈틀거린다. 겨울에 피는 꽃이어서 겨울 동(冬)을 써서 동백이라고 했지만, 중부지방에서 동백꽃은 이달 중순이 되어야 볼 수 있다. 일부 남부 지방에서는 12월부터 개화와 낙화를 거쳤으나 선운사 동백을 비롯한 중부 지방의 동백나무들은 아직 꽃망울을 꼬무락거릴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 된 동백나무 한 그루인 ‘나주 송죽리 금사정 동백나무’도 좀 지나야 꽃을 보여주리라. 고요한 농촌 마을 안에 자리한 정자, 금사정 앞에 서 있는 이 나무는 독립노거수 동백나무로는 유일한 천연기념물이다. 나무 나이 500년, 높이 6m, 줄기 둘레 2.4m로 우리나라에 살아 있는 동백나무를 통틀어 크기나 연륜에서 단연 최고다. 게다가 사방으로 7m 넘게 펼친 나뭇가지는 가히 동백나무로서 궁극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나무는 500년 전, 기묘사화 때의 피바람을 피해 이 마을로 피신한 사림파 선비들이 심었다. 임붕, 나일손, 정문손 등 11명이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당장은 몸을 피했지만, 정치 개혁에 대한 꿈만큼은 버릴 수 없었던 기개 높은 선비들이었다.
훗날을 기약하며 그들은 개혁 철학을 내려놓지 않기로 맹세하며 결사 조직을 맺었다. 이른바 금강십일인계다. 선비들은 수시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모여서 세상 형편을 살폈다. 마침내 그들은 마을 안쪽의 공터에 정자를 지었다. 수시로 머리를 맞대고 혁명 전략을 세울 요량이었다. ‘금강결사’ 조직의 정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금사정(錦社亭)’이라 이름 붙였다.
그리고 그들은 허전한 정자 앞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동백나무였다. 하고한 나무 가운데 그들이 동백나무를 고른 것은 추울수록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는 계절이 바뀌어도 초록의 푸르름을 잃지 않는 절개의 나무여서, 자신들의 처지에 닿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때 그 선비들은 뜻을 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모두 떠났지만, 그들이 심은 한 그루의 나무는 개혁 정신의 기개로 살아남았다.
2022.03.08 /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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