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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풀과 나무

거무튀튀 하다 하여 느티나무

by 이성근 2014. 4. 19.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들 중 느티나무의 수가 가장 많다. 소나무는 500그루쯤이지만 느티나무는 무려 5,400그루나 된다. 그만큼  민족의 삶 속에서 늘 함께 해온 나무다.

 

Zelkova serrata MAKINO 느릅나무과 Elm-like Tree

한자어로는 괴목(槐木)·규목(槻木)·궤목(樻木)·거(欅)라고도 한다. 나무껍질 색이 누루스럼하고 거무튀튀해서 누튀나무로 불리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높이는 26m, 지름은 3m에 이르며, 가지가 고루 사방으로 자라서 수형이 둥글게 되는 경향이 강하고 수피는 비늘처럼 떨어진다. 잎은 어긋나게 달리고 긴 타원형 또는 난형이며, 잎 끝이 좁고 가장자리에 뚜렷한 톱니가 발달한다.

 

“...이 나무를 회화나무를 의미하는 한자인 괴(塊)와 혼용하고 있다. 한자 ‘괴’의 경우 중국에서는 회화나무를 의미하지만, 한국에서는 느티나무로 이해한다. 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이 나무의 누른 잎, 껍질이 회화나무와 닮아서 차용했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그래서 느티나무를 ‘버금회 화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때론 느티나무를 이 나무의 부모인 느릅나무와 관련해서 청유수(靑楡樹) 혹은 황유수(黃楡樹)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느티나무를 거()라 표기한다. 둥근느티나무는 규(槻)이다.

 

이처럼 중국에서 사용하는 느티나무의 한자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중국 사료에 등장하는 괴를 느티나무로 오역할 수 있다. 이러한 오역은 중국 측 자료의 한국어 번역본에서 종종 발견된다.느티나무는 한국인들에게 신령스러운 나무, 즉 신목(神木)이다.

 

이 세상에 어떤 나무인들 신령스럽지 않겠냐 만, 유독 특정 나무를 신령스러운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느티나무는 대부분 신령스러운 나무로 평가하는 나무들이 더디게 자라는 것과 달리 빨리 자라면서도 오래 사는 나무이다. 보통 빨리 자라면 오래 살지 못하는 게 한 존재의 특성이다. 그러나 느티나무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느티나무의 내공은 가히 짐작하기 어렵다....“ (강판권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꽃은 1가화로서 4~5월에 피는데,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그해에 나온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암꽃과 수꽃이 따로따로 핀다. 수꽃은 새 가지 아랫 부분에 모여 달리며 4∼6개로 갈라진 화피 열편과 수술이 있고, 암꽃은 새 가지의 윗 부분에 1개씩 달리며 퇴화된 수술과 1개의 암술이 있다.

 사진 출처: 다음 카페 수출오비모임

 

내게는 느티나무가 있다 2

                                                권혁웅

 

느티의 가계(家系)에도 내통이라는 게 있지

구석구석 푸른 구름을 거느리고 있지

이를테면 수화를 나누듯 잎을 뒤집을 때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이라고 발음하는 거지

그러면 구름이 말풍선처럼 부풀어 오르지

저 너머 선산에서 할머니가 걸어 나오지

느티는 내게 몸을 기대며 슬쩍 정을 통하지

가령 난장(亂場)의 무대에서 걸어 나와 관객을 향해

혼잣말하는 사람처럼

그와 나 사이엔 이심전심이 있지 아버지가 뒤엎은 밥상처럼

바람이 쏴쏴 밀려나오지

그가 나와 내통할 때

내 몸의 물관과 체관을 오르는 게 있지

몰래 옷 갈아입다 들킨 누나들처럼

숨겨둔 자의식이 달아오르지

겨울에도 옷을 벗는 거지 느티는

잎들이 아니라도 무성한 거지

가지를 사방으로 펼치는 성질이 있는 느티나무는 전형적인 양수 식물로서 군집으로 자라는 것을 싫어한다.  가지를 활짝 편 상태의 수관은 큰 그늘을 만든다.  해가림이 없는 마을 입구의 공터에 느티나무가  많은 것과 한국 정자나무의 80%를 차지하는 이유도 이 그늘 때문에 선택받은 나무가 된 것이다.   

 열매는 일그러진 편구형이며 뒷면에 능선이 있고 지름은 4㎜ 정도로서 10월에 익는다. 어릴 때의 성장이 빠르고 비옥한 땅에서 잘 자라며 햇볕을 좋아하는 양성의 나무이다. 온대·난대 등 따뜻한 곳에 분포하고 우리 나라·일본·대만·중국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마을에는 대개 큰 정자나무가 있었는데 정자나무로서 가장 뛰어난 기능을 발휘한 것이 느티나무였다. 그것은 수관(樹冠:나뭇가지나 잎이 무성함)이 크고, 고루 사방으로 퍼지고 짙은 녹음을 만들며, 병충해가 없고 가을에는 아름답게 단풍이 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선조들은억센 줄기에서 강인한 의지를, 고루 퍼진 가지는 조화된 질서를, 단정한 잎들은 예의를 나타낸다 하여 옛날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마을나무로 널리 심어온 나무 중 하나이다 이와 같은 정자나무는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경험을 전달하는 광장으로, 때로는 서당의 선생이 강학(講學)을 하는 민족의 애환이 집결된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밖에 느티나무의 목재는 결이 곱고 단단할 뿐 아니라 뒤틀리지 않고 무거우며 무늬와 광택이 아름답고, 잘 썩지 않으며 물에 잘 견디어 밥상·가구재 등으로 쓰였고, 불상을 조각하는 데에도 쓰였다. 목재의 재질로서는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흔히 소나무는 백성의 나무라 하여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어 무덤 속 관에 묻히기까지 소나무집과 소나무 가구, 소나무관으로 일관하지만 양반은 느티목으로 만든 집과 가구를 가지고 살다가 죽어서도 느티나무 관에 들어 간다고 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다만 느티나무의 색과 무늬가 아름다워 공부하는 선비들이 기거하는 방에는 이 나무로 만든 가구를 배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꾸 눈길을 끌어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주례 周禮≫에는 ‘동취괴단지화(冬取槐檀之火)’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겨울에는 느티나무와 박달나무를 비벼서 불씨를 취한다는 것이다. 변종으로는 속리산에 나는 둥근잎느티나무와 긴잎느티나무가 있다

 

잎이 나올 무렵 새싹을 따서 씻고 말린 다음에 멥쌀가루나 찹쌀가루에 섞어 시루에 안치고, 미리 껍질을 벗겨서 쪄놓은 팥을 뿌린 후 쪄낸다. 찹쌀을 많이 넣은 찰떡은 흔히 음력 4월 초파일에 만들어 먹는다

 1999년 12월 ‘밀레니엄 나무 선정위원회’를 통해 새천년 상징나무로서 국무회의에서 결정한 바 있다. 그 중 기장군 장안읍 1300년 느티나무도 포함되어 있다.  느티목으로서는  국내최고 인데 왜 그동안 몰랐을까 

 

여름에 잎말이발레가 생기기 쉽고 흰불나방의 침해도 심하다 5~10월까지 잎에 검은 반점이 생겨 점점 커져서 구멍이 뚫리는 백반병이 있다. 한편 느티나무 뿌리썩음병은 토양 다짐으로 인한 수세 약화로 발병된 것으로 확인됐는데 나무를 괴롭히는 해충으로는 느티나무알락진딧물, 느티나무외줄진딧물(느티나무외줄면충), 느티나무벼룩바구미, 느티나무비단벌레,느티나무굴깍지벌레(가칭),노린재류,매미류,느티나무가루깍지벌레(버들가루깍지벌레) 등이 있다.

 

 

 

더딘 느티나무

                                    신경림

 

할아버지는 두루마기에 지팡이를 짚고

훠이훠이 바람처럼 팔도를 도는 것이 꿈이었다.

집에서 장터까지 장터에서 집까지 비칠걸음을 치다가

느티나무 한그루를 심고 개울을 건너가 묻혔다.

할머니는 산을 넘어 대처로 나가 살겠노라 노래 삼았다.

가마솥을 장터까지 끌고 나가 틀 국수집을 하다가

느티나무가 다섯자쯤 자라자 할아버지 곁에 가 묻혔다.

아버지는 큰 돈을 잡겠다며 늘 허황했다.

광산으로 험한 장사로 노다지를 찿아 허둥댄 끝에

안양 비산리 산비알집에 중풍으로 쓰러져 앓다가

터덜대는 장의차에 실려 할아버지 발치에 가 누웠다.

그 사이 느티나무는 겨우 또 다섯자가 자랐다.

내 꿈은 좁아빠진 느티나무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엇다.

그래서 강을 건너 산을 넘어 한껏 내달려 스스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런 자신이 늘 대견하고 흐뭇했다.

하지만 나도 마침내 산을 넘어 강을건너 하릴없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아버지 발치에 가 묻힐때가 되었다.

나는 그것이 싫어 들입다 내 달리지만

느티나무는 참 더디게도 자란다.

 

-신경림 시집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中에서-

 

다시느티나무가

                              신경림

 

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터무니없이 작아 보이기 시작한 때가 있다.

그때까지는 보이거나 들리던 것들이

문득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나는 잠시 의아해하기는 했으나

내가 다 커서거니 여기면서,

이게 다 세상 사는 이치라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고향엘 갔더니,

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옛날처럼 커져 있다.

내가 늙고 병들었구나 이내 깨달았지만,

내 눈이 이미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진 것을,

나는 서러워하지 않았다.

다시 느티나무가 커진 눈에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다.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져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다웠다.

 

시집 사진관집이층(창비 2014)_

 

느티나무

                          시리

 

그가 외롭다는 것을

늘 아담한 마을의 배경이 될 때는

정말 몰랐지만

석양노을이 그의 배경이 되었을 때

정작 알았다

 

남의 그늘이 되어주기 위해서는

얼마나 외로워야 하는 건가

바람 부는 날은

반짝이는 수많은 손을 흔들어

애써 감추고 있지만

저녁 무렵엔

그 큰 몸집도 진저리 쳐

작은 새 한 마리도

품지 못하고

마을 밖을 서성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인가 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고독한 기다림인가 보다

 

쓸쓸히 마을 어귀에서

축 늘어진 그의 어깨 위로

노을이 얹혀지는 것을 보면

마을 입구를 들어설 때마다

마을을 가린 배경으로

그를 스쳐지나온 뒤

허전히 돌아섰을 그의 마음이

내 마음에 자꾸만 밟힌다

 

한번도 팔 뻗어 안아주지 못했던

안 된 내 마음이

노을처럼 붉게 전신을 훑고 지나간 사이

나를 향해 떨구던

길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지우며

어둠 속으로 얼굴을 숨기는 것을 보면

한 바탕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나보다

 

느티나무

                                     - 김영호

 

고향 보리미의 동구 밖, 느티나무는 늘 등이 굽었다.

눈빛은 언제나 반쯤 열린 한지문

구름이 비껴가는 이 나무 아래 나의 조부는

왕골밭 두꺼비에게 산해경 책장을 넘기게 하며

냇물 소리로 시를 쓰셨을 것이다.

 

머리가 반백인 느티나무

그의 귀밑머리 사이로

아버지를 태운 늙은 황소가

보리밭을 밟고 온다.

 

잎새마다엔 한오백년 가락이 출렁이고

건조장의 햇담배 익는 냄새를 좋아하며

밤화투 치는 오영감 사랑방으로 들어가

탁주 한 사발 얻어 마시고 나와

느티나무 가지에 누워 코를 골던 달이

바람에 흰 백발을 날리네.

 

 

 

출처: 다음 블록 홍이 아뜨리에

Ginny Come Lately - Albert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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