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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는 이야기

강정마을에서 후배들을 만나다(11.11.9)

by 이성근 2013. 6. 9.

 

 제주 월드 트레일 컨프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강정으로 향했다.  출발은 7코스의 중간지점인 악근천에서부터 시작하였다,  7코스 시작점으로부터 8km지점이다.   그림은 강정천이다.  은어가 올라 오는 곳으로 원래는 강정천을 건너거나 우측 솔숲으로 하여 구름비바위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지금은 갈 수 없다. 풍림콘도를 돌아서자 말자 해군기지 건설 통곡의 벽과 만났다.

 

강정은 옛부터 물이 많아 큰내 江 물가 汀 이란 지명을 시용하는 곳이다.  섬 전체가 물이 귀한 사정임을 고려하면 사철 용천수가 솟아나는 강정은  제주의 거주 환경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것이다.  논과 밭이 있고, 어족자원이 풍부한 바다가 있는 강정은 경치까지 좋아 그만이다.  그리고 일대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존지역이다.  그외 생물권보전지역(제주특별자치도, 2002년 12월), 천연기념물 442호(문화재청, 2004년 12월), 생태계보전지역(환경부, 2002년 11월), 해양보호구역(해양수산부, 2002년 11월) 등이 있다.

MB정부는 강정마을 바닷가에 총 사업비 9770억을 투입해 16만평의 해군기지를 건설하려 하고 있다. 사업내용은  이지스함 등 군함 20여 척이 정박하고, 15만톤급 크루즈 두 척을 동시 계류시킬 수 있는 민간 크루즈항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해군은 99년부터 01년까지 제주해군기지 후보지로 화북항, 성산일출봉 근해, 신양리, 화순항, 형제도 지역, 모슬포 등 6개 지역을 후보지로 검토하여 그중 한곳에 선정을 들어갔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강정은 후보지로 들어있지도 않았다, 강정이 후보지로 등장한 것은 07년3월이었고 5월에 제주 도지사가 제주도 해군기지 자체가 무산돨까봐  다른 반대한 지역 대신 강정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정 자체부터가 잘못된 결정이었다.

2007년 8월, 강정마을 주민들은 마을의례회관에서 투표를 했다. 725명이 참석했다. 찬성 36표, 무효 9표, 반대 680표가 나왔다. 투표 불참자 300여명 모두 찬성표로 쳐도 반대자가 70%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오는 일을 주민 대다수가 반대했다.  지난 4년간 마을은 조용한 날이 없었다.

강정은 현재 전투경찰이 주둔하고 있다.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것은 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하는  전국 각지 각 단체의 입장을 담은 후원 현수막(농협: 178110-56-136171 김세리)들이다.  구름비(용암단괴)로 향하는 길은 차단되어 있다. 현재 공사장 부근에서는 그 어떤 집회도 차단된다. 

 

 강정의 문제는 국가권력이 어떻게 한 지역을 유린하는 지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1900여명의 주민 가운데 100도 안되는 사람들이 마을을 대표한 것처럼 개발을 용인했다고 한다.  그로인한 주민간의 반목과 불신은 상상을 초월한다. 

 방문하던 날 밤 환경운동연합 후배 세 명을 우연히 만났다.  한 친구는 돌고래 보호차원에서 파견왔다 아예 강정 지킴이가 되어 활동하고 있었고 두 녀석은 휴가를 반납하고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강정의 하늘은 시나브로 철책과 벽에 갇혀 맑은 하늘에서도 비가 내린다.

 주민들이 격고 있는 고통은 크게 두 가지다. 고향의 상실과 공권력의 무자비한 탄압이다.  후배는 그것이 가슴 아프다고 했다.  활동가들이야 자기들의 신념에 의해 들어와 반대의 명분을 쫒아 싸워서 이기기도 하고 싸움에 져서  좌절하기도 하지만 마을주민은 평생을 붙박이로 산다. 그리고 찢어진 가슴은 봉합돠지 못한다. 찬반으로 갈린 주민들은 마주치지 않는 것은 물론, 생활공간도 구분되어 있다.   정부든 민간자본이든  한 지역이 개발의 이름으로 희생될 때 늘 되풀이 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걸음이 무겁다.  7코스를 걷는 외지인들도 천차 만별이다.  제대로 된 정보, 객관적인 상황과 과정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보수관변언론이 유포한 내용을 곧이 곧대로 믿고 강정마을의 싸음을 불순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것을 옹호하는 글을 재생산시키기도 하여 퍼뜨린다.  그래서 기지의 정체며 논쟁의 본질은 비켜난다.  그 정점은 한결같다. 외부종북세력으로의 매도이다.  아니면 국가가 일아서 하는 일을 운운한다.  그런데 대관절 국가가 알아서 하는 일이 무엇이었든가.  

 사실 그렇다. 강정주민이 원하는 것은 그냥 그동안 살아왔던 것 처럼 사는 것이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개인땅 조차 강제수용당했다는 것이다.  이제 주민들이 맞닥뜨릴 최후의 절차는 주민 절대 다수의 반대를 무시하고 강제이주 당하는 것이다.    

 반대주민들은 해군을  해적이라 부른다.  해적은 형식적 후보지 선정 여론조사며, 졸속 사전환경성 검토와 영향평가, 문화재보호법을  위반했다고 한다.  그 처절하고도 구구한 사연은 이미 알려진 바다.  주민들은 국가가 추진하는 사업에 대해 반대함으로 국가구성원으로서의 자격도 잃었다.  그래서 민주적이고 평화적 의사표현이며 재산권은 행사는 받탈당했다. 여차하면 잡아들이는 것이 능사다,   

 지난 8월 해군이 공사를 재개하자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온몸에 쇠사슬을 감고 연좌 농성에 들어갔다. 마을회장과 시민단체 회원 등 5명이 경찰에 연행되는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 났다. 8시간의 대치가 있었다.  이와 관련 경찰청은 서귀포 경찰서 송양화 서장을 경질했다.  공권력이 무력화 됐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경질된 송 서장은 제주 출신이자 제주에서 경찰 경력 대부분을 보낸 제주통으로 최대한 충돌을 피하려 한 것으로 알려 졌다.  그리고 대검 공안이 이 일을 엄중하게 다루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팽팽한 긴장이 강정들과 마을 골목길에 드리웠다.

 이른바 접경부에 들어선 베이스 캠프 

 활동가 들이 문화제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논의 중이다.  

 

 삼나무 숲을 따라 이어진 강정의 구호들

 해군은 장벽을 만들고 평화는 길을 만든다는 주장이 유난히 눈에 들어 온다. 

 그리고 통곡의 벽

 해군기지 벽은 여기까지 이어진다. 벅어나면 강정포구다. 풍림리조트로부터 약 1.4km 지점이다.  

언론이 전하는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몇 개 퍼왔다.

 제주의 돌들로 외벽을 쌓은 포구 작업장 건물

 강정포구 옆 '원' 체험장이다. 일종의 독살인데 예전부터 주민들이 바닷가에서 오목하게 들어간 평평한 곳에 제방처름 담을 쌓고 밀물과 썰물을 이용하여 고기등을 잡기 위한 어장이다.  이 '원'은 개인 보다 마을의 어촌계 등에서 공동관리했다. 원래 이름은 '모살원'으로 제주말로 모살은 모래로 원에 모래가 많이 밀려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로부터 유입되는 소하천이 바로 바다와 만난다.  많은 생물들을 모이는 조건이 형성된 곳이다.

 서귀포쪽으로 범섬이 보인다.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이 풍경도, 원도 지워 질 것이다.

약 2.7km지점에 8코스 시작점인 월평이 나온다. 거기서 이어도로를 따라 중문단지 축구장을 거쳐 대포주상절리에 도착했다.  땡볕에 더위가 장난이 아니라 일부 구간은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이곳을 보기 위해선 2,0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망설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 싶어 입장료를 내고 대포해안의 주상절리를 감상했다.

 ICC제주앵커호텔 뒷편 올레8코스에서 만난 용설란들

 

 해안길에 눈에 띄는 것은 억새의 이식이다.  좀더 자연스러워 지려는 몸짓이다.

 지난 여름  태풍 무이파가 지나면서 남긴 생채기,  소나무들이 염해를 입었다. 

 그 길에 제주 전통가옥을 만났다.

 시방 제주는 주황빛으로 익어가는 귤밭이 인상적인 때다.  헌데 이 친구는 ?    

 

 

 중문의 옛마을, 올레는 저런 골목에서 시작된 것이다. 

 제주의 전통가옥, 초가는  남부나 서부 지방의 형태와 비슷한 一자형과 북부 지방의 田자형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지붕의 주재료는  억새풀의 일종인 새풀로 지붕을 이었으며, 강한 해풍을 막기 위해 지붕의 일자매기를 육지보다 촘촘히 매는 것이 특징이다.  돌담과 지붕선이 편하다.

 씨에스호텔 주차장에서 나와 좌측으로 꺽어지면 베릿내길로 하여 중문천을 건너 간다.

아님 국제평화센터쪽으로 중문관광로를 횡단하여 빠져도 된다.

 서귀포 주변 하천은 제주의 다른  지역과 달리 건천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각 하천은 저마다 폭포를 한 두개씩 지니고 있는데  시방 폭포는 인공폭포다.  하지만 감쪽같다.  이 인공푹포가 대한제국시대 만들어진 관개수로에서 흘리는 물일지도 모르겠다.  1908년 건립이 되었는데, 관계수로는  농업용수가 부족하여 논농사에 부적합한 제주도의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천제연 폭포의 낙수가 흐르도록 천연암반 지형을 파서 만든 2km의 장거리 관개수로이다. 이 농업용수 시설로 천제연 일대 231,000㎡의 불모지가 옥답(沃畓)으로 변모하였지만, 시공 과정에서 제주도민의 크나큰 희생이 따랐던, 제주도민의 생활상과 농업 환경을 전해주는 시설물이다.

 논병아리 두 마리가 여유 있다.

 

 진짜 중문천의 폭포인 天帝淵瀑布는  여미지 근처에 있다.  천제연 주변은 暖帶林 으로 천연기념물 제378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백나무·구실잣밤나무·산유자나무·보리밥나무를 비롯한 상록활엽수가 우거지고, 그 밑은 습기가 많기 때문에 더부살이고사리·도깨비고비, 기타 양치류가 무성하다. 숲 가장자리에는 키가 작은 된장풀·사스레피나무·자금우 등이 보인다.

폭포의 절벽 틈에는 우리나라에서는 희귀식물의 하나인 솔잎난이 자라고 있다. 절벽 앞의 연못가와 절벽 사이에 서 있는 담팔수나무는 천지연 폭포에서 자라는 담팔수나무(천연기념물 제163호)가 있다.  시간이 된다면 여미지식물원도 둘러 볼일이다. 1989년 동남아 열대식물을 보여주는 관광식물원으로 출발했다.

 다시 강정으로 돌아와  숙소인 풍림리조트에서 해군기지 건설 현장을 본다.

 풍림리조트는 제주에서 올레를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이라고 한다.

 이국적 풍광이 인상적이다.

 제주 흑돼지로 일행들과 잔을 나누며

 그리고 문화제가 열리는 강문마을로 향했다.  조성봉 감독의 진행으로  100명 미만의 사람들이 놀고 있었다.

 주민들의 노래와 그간의 과정에 대한 영상이 이어졌다. 동백아가씨를 부르는 마을주민, 진행자는 동백아가씨가 금지곡이 된 사연과 한일협정반대 당시의 영상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구속돤 강동균 마을회장이 단신으로 배전에서 싸우는 모습도 보였다.

 벽이 들어서는 순간, 강정마을은 고통을 강요당하기 시작했다.  그 고통을 나누고 해군기지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전국 각 단위의 활동가들이 몸을 움직였다.  후원도 이어졌다.  농협 351-0294-9968-13 (예금주: 강정마을회)  그런 마음들이 강정을 버티게 하는 것이다.   

 지나가는 객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이 양반은 술 기운을 빌어 노래를 자청했다.   난데없는 그의 등장은 주민들과 활동가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우리 일행 중의 한 사람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착찹했다.  평소 강정마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일행이 강정으로 가고자 했을 때 분위기상  마지못해 따라 나선길에 무슨 생각에서인지 예고 없이 대뜸 무대로 나가 마이크를 잡고 일방적으로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자기 마음대로라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   다행이 그런 행위를 긍정적으로 수용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이날 밤의 문화제가 강정주민들 만의 행사가 아니라면 그 또한 자연스럽지 아니한가 였지만 그건 아니올시다 라고 단호하게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튼 나 역시 그런 행동은 싫다.

 마지막으로 행사를 마치며 참석자 전원이 음악에 몸을 흔들며 원을 그리며 노는 율동이 있었다.  후배들은 그때 만났다.   

 다들 집으로 숙소로 돌아간 다음 마을을 돌아 리조트 주변에서 잔을 나누었다.  4년만의 만남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기 밤늦도록 있었다.  그들의 존재가 너무나 고마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때 지난가는 바람일지언 이렇듯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제주 강정의  평화를 원한다.

A Place In The Sun - Stevie Wonder


                                              흐르는 곡은  시방 강정에서 활동중인   Hwang Hyun Jin에게 들려주는 노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