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의 마지막 날 밤 용담동 근처 해안가 Sea House Live 를 찾았다. 제주시인 정군칠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일러 다드림에서 제주에 관한 책을 보았다. 뭍으로 가면 역부러 사서 보지 않는 이상 읽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주인장에게 밤새워 읽고 돌려주겠노리며 빌려줄 것을 요청했는데 초면임에도 전화번호만 확인하고 쉽게 빌려주었다. '아름다운 제주석상 동자석'(김유정著) 이었다. 주인장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이날은 제주에서 가장 배불리 먹은 날이다. 회에다 토박이들만 찾는다는 게죽
방게를 믹서기에 곱게 갈아 만든 죽으로 안먹으면 후회한다. 주인장의 인심도 몸집만큼이나 후했다. 제주시 도두 1동에 있다. 용두암 해안도로에서 공활활주로 뒤ㅅ편에 있다.
영양식으로 그만인데다 맛도 뛰어나다.
암튼 그렇게 배를 채우고 찾은 Sea House Live 에서 강윤심시인을 만났다.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성격도 쾌할했다. 마음에 들었다.
바다의 물집
환한 빛을 따라 나섰네
지금은 달이 문질러 놓은 바다가 부풀어 오르는 시간
여에 부딪히는 포말들은
바다의 물ㅈ집이라 생각했네
부푸는 바다처럼 내 안의 물집도 부풀고
누군가 오래 서성이는 해변의 밤
온통 흰 꽃 핀 화엄의 바다 한켠
애기 업은 돌을 보았네
그 형상 더욱 또렸하였네
제 몸 밀어 내고 다른 몸을 품고서야 바다는
해변에 닿는다지
버릴 것 다 버린 바다의 화엄이
저 돌로 굳은 것일까
걸러내야 할 것들이 내게도 참 많았네
목이 쉬도록 섬을 돌았네
단지 섬을 돌았을 뿐인데 목이 쉬었네
파도의 청징淸澄한 칭얼거림이 자꾸만 들려왔네
깍지 낀 손 풀어 그 울음 잠재우고 싶었으나
달빛은 바다 위에서만 출렁거리고
나는 서늘한 어둠의 한켠에 오래
오래 머물지 못했네
정군칠시인은 1997 제1회 탐라문학상 시부문 당선 이후 1998 현대시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는 수목한계선과 물집이 있다.
모슬포
정군칠
모슬포에 부는 바람은 날마다 날을 세우더라. 밤새 산자락을 에돌던 바람이 마을 어귀에서 한숨 돌릴 때, 슬레이트 낡은 집들은 골마다 파도를 가두어 놓더라. 사람들의 눈가에 번진 물기들이 시계탑 아래 좌판으로 모여들어 고무대야 안은 항시 푸르게 일렁이더라. 시퍼렇게 눈 부릅뜬 날것들이 바람을 맞더라.
모슬포의 모든 길들은 굽어 있더라. 백조일손지묘(白祖一孫之墓) 지나 입도 2대조 내 할아비, 무지렁이 생이 지나간 뼈 묻힌 솔밭 길도 굽어 있더라. 휘어진 솔가지들이 산의 상처로 파인 암굴을 저 혼자 지키고 있더라. 구르고 구른 몽돌들은 입을 닫더라. 저마다 섬 하나씩 품고 있더라.
날마다 나를 세우는 모슬포 바람이 한겨울에도 피 마른자리 찾아 산자고를 피우더라. 모슬포의 모든 길들은 굽어 있더라. 그래야, 시절마다 다르게 불어오는 바람을 껴안을 수 있다더라. 그 길 위에서 그 바람을 들이며 내 등도 서서히 굽어 가더라.
별도봉 그 바닷가
가슴으로 바람을 맞는
소나무
이곳에도
함박눈이 빗금을 친다
아,
포말로 울지 못한 그리움
그 끈이 어느 만큼 가슴 아려
언덕배기 민들레
하얀 씨앗
물새 울음 젖는다
강윤심 시인의 시다. 그녀는 1985년 한라산문학동인 창립멤버로 시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1996년 해동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했다.
새벽두시까지 노래를 불렀다. 손님이라고 해 봐야 우리일행을 포함한 세 테이블 강시인은 오래도록 난간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우리를 배웅했다. 문득 그녀에게서 외로운 그림자를 얼핏 보았다.
빌려온 책을 기어이 다 읽고는 잠들었다. 눈을 뜨니 비가 내린다. 열어 둔 창문 넘어 북제주의 바다가 밀려왔다.
조금이라도 더 제주의 해안을 보기 위해 산책길에 나선 월요일 아침
나도 제주에 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제주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욕심이 잠시 스친다.
저 검은 돌이 제주다
용담어촌계
이곳은 해녀들의 쉼터로 불덕이라 부른다. 바람을 막기 위해 둥굴게 쌓은 돌담으로 제주 여성의 공론의 장이고 작업을 위한 탈의실과 작업도구들을 보관하는 등의 기능를 가지고 있다.
아담한 용담포구
머잖아 4.3이다. 유채꽃 사이 제주의 돌담 그 길고 긴 현무암의 덩어리들이 흑룡만리黑龍萬里 를 이루고 있다. 제주미의 또 다른 상징이다. 인위적이지만 결코 모남이없이 제주의 풍토에 기반하여 소박하고 검소한듯 절제된 아름다움이 참으로 자연스럽다.
그러나 제주의 도시화 역시 세월을 비켜가진 못하는 것 같다.
원래 제주의 삶은 반농반어의 생활이다. 돌과 바람이 많은 땅 이기에 밭농사 말고는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옛 문헌 탐라지 같은 곳에 이르기를 " 풍속은 별나고 군졸은 사나우며, 백성은 어리석어 기쁘면 사람같지만 서이나면 짐승같아서 다스리기가 어렵다" 면서 미개한 사람이 사는 곳으로 취급하고 있다. 어처구니 없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에서 온 목민관의 시각이란 것이 딱하다.
제주가 뭍의 식민화 되는 것을 경계한다. 해안가 그럴듯한 공간은 외지인의 소유가 많다, 그들은 여기서 제주를 찾아 온 사람들의 주머니를 노린다. 나는 그게 못마땅하다. 물론 토박이들도 그 대열에 있겠지만 ...
용두 해안에서 유일하게 남은 전통가옥, 모텔이며, 펜션 따위의 각종 숙박시설에 포위 당했다.
그럼에도 제주사람들은 웃고 있다.
출처: 다음 블로그 사진 속 세상구경
gonna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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