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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근 .현대사 이야기23

버려진 빨치산 소년, 그를 키운 건 지하운동가와 스님이었다 버려진 빨치산 소년, 그를 키운 건 지하운동가와 스님이었다 [황광우의 역사산책27] 무호적으로 떠돌던 어린 소년이 원경 스님이 되기까지, 박병삼의 이야기 #1. 한 소년이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우한 소년. 태어난 해는 1941년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는 아이를 떠났다. 해방이 되어서야 소년은 아버지를 만났다. 투옥과 수배를 반복하던 아버지였는데, 미 군정청에게 또다시 쫒기는 몸이 되었다. 해방은 사이비 해방이었다. 1946년 가을, 아버지는 북으로 피신했다. 버려진 소년, 사고무친(四顧無親)의 고아가 되었다. #2. 한 스님이 있었다. 동경제대를 졸업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혁명가였다. 무슨 연유에서 승복을 입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해방 후 창건된 조선공산당의 지하운동가였다. 소년의 아버지가 .. 2024. 1. 11.
보도연맹 사건 지난 1949년 6월 전향 교육을 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국민보도연맹. 전쟁이 터지자 좌익 사상에 물들었다는 이유 등으로 보도연맹원들을 상대로 한 학살이 이뤄졌고 사망 피해자만 최대 20만 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당시 보도 연맹을 만든 인물인 고 선우종원 검사가 지난 2007년 10월 진실화해위원회에 한 증언이 최초로 공개됐습니다.선우 검사는 증언에서 당시 희생자 대부분이 좌익 활동과 무관한 민간인이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녹취 선우종원(보도연맹 기획 검사) : "(좌익 단체) 아무데도 안 들었다 하는 것이 보도연맹원으로서는 아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 의심없거든. (그때) 공산당이 뭔지 압니까." 또 집단 처형은 군이 주도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녹취 선우종원(보도연맹 기획 검사) : "(민간인 학.. 2024. 1. 8.
서울 빼고 거의 다 죽였다. 서울 빼고 거의 다 죽였다...이게 '인종청소'랑 뭐가 다른가 [길 위에서 읽는 한국전쟁 21] 이념대결이 저지른 잔혹한 학살, 국민보도연맹 사건 보도연맹 사건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에서부터 일제의 패망과 미소 강대국의 분할점령, 그리고 건국과 그 이후까지 지속돼 온 좌우갈등의 비극의 하나다. 임시정부 수립기에는 당장 독립운동의 방략이 서로 달라서 대립이 했지만, 새로 세우는 국가를 사회주의로 할 것인가 자본주의로 할 것인가를 두고 좌우가 대립했다. 반일세력을 한데 모아 대항하자는 유일당 운동도 좌우갈등으로 좌초됐다. 중국에서는 국민당인지 공산당인지에 따라 갈렸다. 일제가 패망하자 분할점령이 됐고, 미국이냐 소련이냐는 살벌한 진영논리에 따라 좌우갈등이 남북갈등으로 굳어갔다. 여기에 친일파를 어느 정도 용.. 2023. 12. 22.
길 위에서 읽는 한국전쟁-윤태옥 손가락질 하나로 총살 확정... 검사도 교장도 못 비켜간 잔혹한 죽음 '중앙선데이'에 실리지 못한 여순 10.19사건 원고... 75년만에 탄생한 여순 특별법 지난해 1월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제정됐다. 나는 특별법 소식을 듣고는 전남 순천행 티켓을 끊었다. 나에게 순천의 첫 인상은 밥상이었다. 학창시절 배낭여행을 하는데 순천에서 밑반찬이 떨어졌다. 식당에서 백반을 주문하고는 반찬을 싹 쓸어 반찬통에 담았더니 주인장이 웃으면서 다시 한 상을 넉넉하게 차려줬다. 두 번째 순천은 30여 년이 훌쩍 지난 2013년이었다. 순천만 넓은 갯벌의 풍광에 취해 그 이후 매년 대여섯 차례 순천만에 머물렀다. 내게는 제2의 홈그라운드가 됐다. 세 번째 순천.. 2023.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