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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생태환경 뉴스

6.24~6.28 342만 명→ 268만 명… 부산 ‘인구 재앙’ 닥친다

by 이성근 2019. 6. 24.

부산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 추진일부 주민 반발

불법 공사에 파헤쳐진 금정산 산길금정구청은 뒷짐

어린이대공원 아우른 교육 중심 숲 동물원

시민과 교감하는 건강한 동물들, 공영동물원의 가치

동남아도 쓰레기 수입 거부‘70살 플라스틱지구 숨통 조인다

녹조 세포, 낙동강 3만개·금강 0왜일까?

[한강 사용설명서]한강공원 방문객 연간 3000만 명편리한 접근성과 인프라에 '워라밸' 문화 겹치며 급성장

규제 그물이냐, 안전망이냐대서양연어 양식논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할까?

"생태 보물 광릉숲에 산업단지 웬 말?"

하루 1.7, 사슴뿔 초고속 성장의 비밀은 암세포

동서고가도로 철거 논의] 배경과 전망

일상이 된 커피20년 뒤 사라진다

돌 먹고 통통하게 살찌는 수수께끼의 벌레 발견

불지옥이 온다때이른 폭염에 유럽 초비상

일상이 된 커피20년 뒤 사라진다

태초에 커피나무가 있었다!

생태와 진화 -‘메기 효과' 근거 없다포식자 공포가 사망률 늘려

새를 세는 일은 경보장치를 다듬는 일이다-미바튼 호수의 기적

과학시간에 창조론도 가르쳐야 할까?

공터에 잔디만 깔았을 뿐인데...주민 우울증 확 줄어

51800년 전 동물그림, 쇼베보다 6000년 빨라

산림청이 소개하는 국유림 명품숲’ 5

342만 명268만 명부산 인구 재앙닥친다




부산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 추진일부 주민 반발

 

금정산 서문 전경. [사진 부산시]

.“산이 많아 부산(釜山)인데 국립공원 하나 없는 게 말이 됩니까.”

부산시 환경부에 국립공원 지정 건의

전국 2번째로 탐방객 많아 훼손 심각

산성마을 주민 재산권 침해반발

환경단체 주민 상생 방안 논의하자

 

지난 20일 부산시 금정산 동문 입구에서 만난 박진규(46) 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금정산을 찾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경관이 뛰어나고 범어사, 금정산성 등 문화유산도 많아서 자주 찾는다“10년 전과 비교하면 훼손이 많이 돼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금정산 등산객은 연간 400~500만명에 이른다. 북한산 다음으로 많다.


부산시가 지난 18일 환경부에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을 건의했다. 부산시는 2020년 도시공원일몰제가 적용되기 전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산시 녹색도시과 관계자는 금정산은 주봉인 고당봉을 비롯해 대부분 사유지여서 공원일몰제 적용 이후 난개발이 우려된다금정산은 3개 지자체가 걸쳐 있어 일괄적인 관리가 안 된다며 국립공원 지정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도시공원일몰제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원 설립을 위해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한 뒤 20년이 넘도록 공원 조성을 하지 않았으면 도시공원에서 해제하는 제도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관리한다. 연간 100억원의 국비를 투입해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탐방로를 관리한다. 한국에는 지리산 국립공원 등 총 22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부산시는 금정산의 경관이 뛰어나고 문화유산이 많아 국립공원 지정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산시 녹색도시과 관계자는 멸종위기종인 하늘다람쥐, 담비를 비롯해 1795종에 달하는 생물 종이 서식하고 있다범어사와 금정산성 등 문화유산이 90여점으로 보존가치가 뛰어난 산이다고 말했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국립공원이 없는 곳은 부산이 유일하다. 이 관계자는 부산시 반경 100이내에 육상형 국립공원이 하나도 없다생물 종 다양성이 풍부한 금정산을 보호하기 위해 국립공원 지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부산시는 국립공원 지정까지 최소 2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금정산. [사진 부산시]

 

.주민 반응은 엇갈린다. 환경단체와 등산객은 국립공원 지정을 반기고 있다. 이성근 금정산 국립공원지정 범시민네트워크 공동집행위원장은 금정산의 상당 부분을 소유한 부산대와 에너지기업인 삼천리가 각종 개발을 추진하려 한다도시공원일몰제 시행 이전에 국립공원 지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금정산 산성마을 주민은 반대하고 나섰다. 재산권 침해를 우려해서다. 산성마을에는 1200여명이 살고 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영업을 못 하게 될까 봐 걱정된다부산시가 주민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금정산의 85%는 사유지다.


산성마을 주민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이정권 대책위원장은 이곳에는 주차장도 없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많은 등산객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도로를 확장하고 주차장을 만들고, 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한 뒤 국립공원 지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사유지 매입이나 주민 보상을 위한 예산을 한 푼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성근 위원장은 환경단체 회원이 금정산 땅을 1평씩 사고, 주민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다양한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불법 공사에 파헤쳐진 금정산 산길금정구청은 뒷짐

 

24일 부산 금정구 구서동 금정산 내 회룡정사로 올라가는 산길이 도로 공사로 파헤쳐진 채 방치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24일 오전 부산 금정구 구서동 금정산 내 회룡정사 입구. 이곳에서 회룡정사로 올라가는 400m 구간에는 깨진 돌덩이와 파헤쳐진 흙이 난잡하게 흩어져 있었다. 인위적으로 깎인 땅 사이로는 고목 뿌리가 훤히 모습을 드러냈다. 군데군데 찍힌 타이어 자국과 쌓인 콘크리트 포대 등 공사 흔적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등산객 김 모(64·금정구 구서동) 씨는 금정산을 오를 때 이곳을 자주 지나가는 데 올해 초부터 길이 파헤쳐져 엉망인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회룡정사 입구 앞 400m 구간

깨진 돌덩이에 군데군데 깎여

금정구 사찰서 불법 도로 공사

산림 훼손된 채 4개월째 방치

구청 콘크리트 제거명령만

환경단체 지자체 직무유기질타

 

금정산 내 시유지가 불법 도로 공사로 파헤쳐졌지만 지자체의 안일한 대응에 수개월 방치돼 금정산을 찾는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관할 구청이 공사 주체에게 원상 복구 명령이나 고발 등 적극적인 행정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정구청은 지난 2월 부산 금정구 소재 A사찰의 신도가 금정산 내에서 불법으로 도로 공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구청에 따르면 A사찰은 금정산 회룡정사 입구부터 회룡정사까지 이어진 400m 길이의 산책로를 넓히는 등 도로 공사를 시도했다. 산림에 도로를 내려면 산지 점용 허가 기준을 통과하는 등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함에도 A사찰은 이를 무시한 채 임의로 산림을 훼손한 것이다.

 

하지만 지자체의 안일한 대응 탓에 이곳은 돌과 흙이 헤집어진 채로 4개월 동안 방치됐다. 당시 금정구가 A사찰에 콘크리트를 제거하라는 시정 명령만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사 구간 중 일부는 부산시 소유의 토지였지만 별도의 고발 조치나 원상 복구 명령은 없었다. 이후 콘크리트는 대부분 제거됐지만 공사 여파로 파헤쳐진 길은 여전한 실정이다.

 

환경단체는 산림 훼손을 방치하고 있는 지자체를 강하게 비판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민은주 사무처장은 금정산 내 불법으로 도로 공사를 했는데도 지자체에서 제대로 된 감독과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엄연한 직무유기라며 공사 때문에 자연 파괴는 물론 흙이 흘러내리면서 산사태 위험까지 있기 때문에 금정구가 반드시 원상 복구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금정구청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지난 2월 시정 명령 이후 도로 건설을 하거나 산림 훼손한 부분이 있는지 현장 검사하겠다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고발이나 추가적인 시정 명령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어린이대공원 아우른 ‘교육 중심 숲 동물원’



부산시가 부산 유일 동물원인 더파크 인수에 본격 착수했다. 시립동물원이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찮다. 강원태 기자 wkang@


말 많고 탈 많았던 부산 유일의 동물원 더파크는‘시립동물원’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시립동물원이 된다면 부산은 최초의 공영동물원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남은 과제도 만만찮다.


■부산 유일 동물원인데 30만 명?
더파크는 부산 유일의 동물원이다. 원래 부산에는 두 개의 동물원이 있었다. 국내 최초의 민간 동물원으로 1964년 문을 연 동래동물원과 성지곡동물원이다. 동래동물원은 2002년 폐업했고 1982년 생긴 성지곡동물원은 더파크가 인수하면서 2005년 문을 닫았다.


연 방문객 33만~34만 명 수준
市 인수 땐 운영 변화 모색 절실
500억 원 이상 예산 투입 고려
공익성 우선한 입장료 인하 필요
생물종 보호 등 교육 성격 강화
대공원 포함 종합적 계획 검토를


우여곡절 끝에 2014년 문을 연 더파크는 10년 만에 들어선 동물원이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첫해 8개월 동안 49만 명이 방문해 그럭저럭 체면은 세웠지만 그 이후 연 방문객 수 33만~34만 수준을 유지하다 지난해 52만 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방문객 수가 는 것은 1~2월 주민등록번호에 2, 0, 1, 8이라는 숫자가 있으면 2018원에 판매하는 등 입장권 가격을 인하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성지곡동물원이 문을 닫으며 무료로 개방한 ‘아듀’ 행사를 진행했을 당시 하루 10만 명 가까이 다녀갔다는 점을 고려하면 초라한 성적임에는 분명하다.


2018년 5월 동아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더파크 방문객 3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2014년 개장 이후 동물원 방문 횟수에서는 ‘2회 방문’이 37.3%로 가장 높았고 ‘첫 방문’도 33.3%나 됐다. 한두 번 오고 말 동물원이라는 뜻이다. 부산시가 인수한다 하더라도 운영에 큰 변화가 없다면 이 같은 초라한 성적과 적자를 면치 못할 가능성은 크다.


방문이 꺼려지는 이유로는 ‘비싼 입장료’가 43%로 가장 높았다. 더파크의 입장료는 1만 9000원(성인 기준)으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서울대공원 5000원, 대전오월드 1만 2000원, 전주동물원 1300원, 광주 우치동물원은 무료다. 이들은 모두 100종 이상의 동물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가격에는 큰 차이가 난다. 부산경실련 도한영 사무국장은 “민간이 아니라 공공에서 운영을 한다면 시민들이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입장권 가격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익성 담보가 관건
동물원 운영으로 흑자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입장료를 낮추는 것이 부담이 되는 이유다. 그래서 서울, 대전, 대구 등 주요 대도시는 공익성을 고려해 공영동물원을 갖고 있다. 동물원은 도시 인프라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더파크는 도심지에 있다는 점에서 인프라의 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다. 동아대 양건석 조경학과 교수는 “전국 어디를 둘러봐도 대도시 한복판에 대규모 동물원이 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데 그만큼 도심 인프라로서 가치가 높다는 것”이라며 “시민에게 적자의 이유를 설명하고 대신 생물종 보호, 교육이라는 공익적인 측면을 강화한다면 시민의 사랑을 받는 동물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발표된 ‘더파크동물원 활성화 및 관리운영방안수립용역’ 결과에 따르면 더파크에는 동물이 130종 900마리가 있다. 이 가운데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포함돼 전략적으로 보존해야 할 종류는 슬로 로리스, 시베리아 호랑이, 흑표, 바바리양 등 모두 15종 90마리였다. 양 교수는 “더파크 안에 있는 동물의 종과 수는 나쁘지 않은 편이나 ‘교육 중심의 숲동물원’이 되기 위한 프로그램이 부족한 편이다”고 말했다.


공익성을 위한 어린이대공원과 연계도 필요하다. 부산시는 지난 5월 어린이대공원 전체 기본계획의 종합 검토를 통해 청소년체험숲과 더파크, 어린이교육회관, 키드키득파크 등 시설물을 정비하고 재배치하기로 한 상태다. 인접한 어린이대공원과 더파크의 연계성을 강화한다면 현재 동물원이 부족한 소프트웨어를 채울 가능성도 크다. 대전오월드의 경우 연간 100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데 이는 동물원 외에도 주변과 연계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500억 원이 끝?
여전히 돈 문제도 남아있다. 협약에 의해 동물원 매수에 최대 500억 원이 든다. 500억 원 미만일 경우 감정가대로 지급을 하면 되지만 공시지가 상승 등을 고려하면 최대치에 가까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부산시는 500억 원도 부담스럽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더파크에 딸린 주차장은 동물원 매수 비용 500억 원에 포함이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주차장 매입 비용에도 최소 50억 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또 동물원이 개장한지 5년이 넘어 개·보수할 것이 많은데 이 비용도 50억 원 정도가 투입되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100억 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이현(부산진구 4) 부산시의원은 “동물원 운영에 관해 다각도로 검토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부산시와 시민에게 전가될 것“이라며 “혈세가 들어가는 만큼 면밀히 검토를 해 공익적 성격이 강한 동물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시민과 교감하는 건강한 동물들, 공영동물원의 가치”
단순히 동물을 우리에 가두고 이를 바라보던 동물원의 시대는 끝났다. 전문가들은 더파크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공영동물원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서는 동물들이 자연과 가깝게 행동할 수 있도록 ‘풍부화(Enrichment)’ 작업이 필요하며, 시민들이 이러한 모습을 더욱 잘 관찰할 수 있도록 관람 구조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풍부화란 동물원·수족관과 같이 사육 상태에 있는 야생동물이 제한된 공간에서 보이는 무료함과 비정상적인 행동 패턴을 줄여 주고, 야생에서 보이는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이 나타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다양한 먹이, 놀이 제공 등을 이야기한다.


동물들, 생활 환경 전반에
‘행동 풍부화’ 작업 적용해야
시민의 흥미·몰입감 높여 줄
다각적·동물친화적 시설 필요

동물자유연대는 최근 호랑이와 코끼리가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는 등 상동증 증세가 보인다고 진단했다. 상동증이란 어떤 특정한 행위를 장시간에 걸쳐서 반복 지속하는 증세다. 코끼리는 지능이 높아 돌고래, 침팬지 등과 함께 ‘비인간 인격체’라고 불리는 동물 중 하나다. 특히 코끼리는 무리생활을 하는데 더파크에는 수컷 홀로 있는 터라 스트레스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동물단체의 주장이다.


동물자유연대 심인섭 팀장은 “코끼리를 위한 행동 풍부화 시설이 없는 만큼 코끼리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아예 코끼리를 다른 곳에 보내는 극단적인 선택도 고려해야 한다”며 “공영동물원이라면 최소한 동물들이 시민들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에버랜드도 북극곰 1마리를 면적·개체수 확보가 어렵자 과감하게 영국 북부의 북극곰 전용 동물원으로 보내기도 했다. 동물들의 행동풍부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동물들을 관람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더파크는 대부분 격벽 형식으로 조성돼 있고 관람은 눈높이에서밖에 볼 수 없는 관람 유리창 형태가 대부분이다. 또 동물의 배치는 지리적 혹은 생태적 분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최근 동물원의 트렌드지만 이와도 거리가 멀다.  동아대 조경학과 양건석 교수는 “행동풍부화를 통해 건강한 동물을 야외방사장, 내실, 수중 등 다양한 시점에서 볼 수 있게 함으로써 관람객의 흥미와 전시의 몰입감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장병진 기자


동남아도 쓰레기 수입 거부… ‘70살 플라스틱’ 지구 숨통 조인다



지난 3월 플라스틱 폐기물들이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인근 쿠알라랑앗 지역의 젠자롬 일대에 버려져 있다(왼쪽). 쿠알라랑앗 AFP 연합뉴스


지난해 초 중국이 폐플라스틱 수입을 금지한 이후 전 세계는 그야말로 ‘플라스틱 전쟁’ 중이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재활용 쓰레기의 절반 정도를 수입하던 중국은 2017년 세계무역기구(WTO)에 서한을 보내 환경 보호와 보건위생 개선을 위해 수입 쓰레기 제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하고 제한 품목을 점차 늘려 갔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세계 각국은 차선책으로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다.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가 함께 딸려 오며 수출입 국가 간 갈등을 빚고 있어서다. 플라스틱은 단순히 폐플라스틱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재활용이 되지 않는 플라스틱은 결국 바다로 흘러들어가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인류를 위협한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등은 오는 2021년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안까지 마련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70여년간 인류의 삶을 ‘편하게’ 해 주었던 플라스틱 사용을 극적으로 줄이려면 우리의 생활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신문



하루 1억 6300만장의 일회용 플라스틱 봉지를 사용하는 필리핀의 한 바다에서 게가 플라스틱 컵 속에 갇혀 있다. 필리핀 EPA 연합뉴스


중국 당국은 폐플라스틱 수입을 중단하며 “더러운 쓰레기와 심지어 위험한 쓰레기가 원료로 사용될 수 있는 쓰레기에 섞여 들어와 중국의 환경이 심하게 오염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중국은 2016년 한 해에만 730만t의 폐지와 금속, 폐플라스틱을 수입해 가공했는데 이는 전 세계 재활용 쓰레기의 절반에 달했다. 인도네시아 환경 단체인 발리포쿠스 설립자인 유윤 이스마와티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쓰레기 수출국들은 그간 자신들이 중국을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고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현재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플라스틱은 발생국에서 해결되기보다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나라로 흘러들었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규제가 강하지 않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표적이 된 것이다. 싱가포르 경제학자인 코르 유링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이후 월평균 2만 2000t에 불과하던 말레이시아의 폐플라스틱 수입량은 지난해 3월 이후 월평균 13만 9000t으로 6배가량 뛰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쓰레기는 각종 문제를 만들고 있다. 항구마다 쓰레기산이 형성되는가 하면 쓰레기를 소각하는 과정에서 환경 호르몬이 배출돼 인근 지역 주민들의 고통이 가중됐다. 무엇보다 재활용이 가능하지 않은 유해 폐기물들이 재활용할 수 있는 쓰레기에 뒤섞여 들어오면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당초 선진국에 비해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가능한 동남아 국가들이 쓰레기를 수입하는 이유는 이를 가공해 원료로 사용하거나 다른 나라에 수출하기 위해서지만 불법 폐기물로는 이러한 가공이 불가능하다.


결국 불법 쓰레기는 수출국과 수입국 간의 갈등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난달 28일 캐나다와 일본,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미국 등 10여개국에서 반입된 컨테이너에 실린 3000t 규모의 쓰레기를 수출국으로 되돌려 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여비인 말레이시아 환경장관은 이날 클랑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폐플라스틱 등 폐기물로 채워진 컨테이너를 공개하며 “앞쪽에는 합법적인 재활용 폐기물이 보이지만 그 뒤는 가정에서 나오는 생활쓰레기와 전자제품 등 재활용이 불가능한 불법폐기물로 채워져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도 폐기물 수입에 대한 규제를 마련하고 있다. 태국은 이미 지난해 여름 전자제품 폐기물에 대한 무기한 수입 금지안을 도입했고 베트남은 쓰레기 수입 관련 허가증에 대한 발급을 중단한 데 이어 2025년까지 폐플라스틱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필리핀은 나아가 몇 년째 방치되고 있던 불법 쓰레기를 가득 실은 컨테이너를 배출국인 캐나다로 되돌려 보내겠다고 압박했다. 캐나다 정부는 69개의 컨테이너를 가져가기로 합의했으나 말레이시아 정부의 요청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폐플라스틱에 대한 전면적인 수입 금지가 동남아 국가의 경제와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제대로 분류된 플라스틱 중에는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고품질의 원료로 가공할 수 있는 플라스틱도 있다. 분리수거율이 낮은 일부 동남아 국가들은 수입을 통해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을 들여올 수 있다. 그러나 규제 때문에 수입 길이 막히면 지역의 합법적인 재활용업자들의 이윤 창출에 적신호가 켜지며 사업 확장을 하지 않게 되고, 원료를 활용하는 기업 또한 타격을 받게 된다.


폐플라스틱을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에 들여와 시멘트 생산 연료로 사용하는 호주기업 리소스코 아시아의 전무이사 파벨 체흐는 “두 국가의 세관에서 100~150개의 선적 컨테이너가 막히면서 시멘트 회사들은 (폐플라스틱 대신) 석탄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화학물질·폐기물·대기 담당 코디네이터인 가쿠코 나가타니 요시다는 “폐기물을 적절하게 관리하는 올바른 수입업자들을 잃게 되면 향후 폐기물 관리 자체에 대한 선택권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면서 “어떤 정부든 더 많은 선택지를 가져야 할 권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발전과 지구 환경을 고려한다면 플라스틱의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상당수의 플라스틱은 재활용되지 않은 채 바다에 버려지거나 매립되며 미세 플라스틱의 형태로 우리 몸속에까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15년까지 인류는 83억t에 달하는 플라스틱을 생산했다. 그 사이 63억t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생했으며 이 가운데 재활용된 쓰레기는 단 9%에 불과하다. 12%는 소각됐으며 79%는 매립되거나 자연환경에 축적돼 있다. 연구진은 플라스틱 사용이 줄지 않는다면 2050년에는 약 120t의 플라스틱이 우리 주변에 버려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렇게 버려진 플라스틱은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 된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에 따르면 매년 800만t의 쓰레기가 바다로 쏟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매년 바다새 100만 마리 이상과 해양 포유류 10만 마리 이상이 목숨을 잃는다고 유네스코는 전했다. 인류도 플라스틱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12일 세계자연기금(WWF)과 호주 뉴캐슬대학이 발표한 ‘플라스틱의 인체섭취 평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 사람이 일주일간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의 양은 약 2000개로 신용카드 한 장의 무게에 달한다. 아직까지 미세플라스틱이 우리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독성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잠재적 위험 요소로 꼽힌다.


플라스틱이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되자 EU와 캐나다는 2021년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이어 사상 처음으로 국제적인 규칙도 만들어졌다. 지난 15일 일본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에너지·환경장관회의에서 참가국들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각국의 행동계획을 작성하고 이행 상황을 공유하기로 한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의장국인 일본은 폐플라스틱에 의한 해양오염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관련 데이터를 모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온난화 대책을 담은 파리 협정과는 달리 구속력이 없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민나리 기자 min1082@seoul.co.kr


녹조 세포, 낙동강 3만개·금강 0개…왜일까?
낙동강 8개 보 지점서 모두 녹조 발생
 가장 하류 위치 창녕함안보 3만cells/㎖
금강 세종보·공주보·백제보 0cells/㎖
환경단체 “보 개방이 녹조 문제 해결 방안”



왼쪽은 지난 21일 낙동강 창녕함안보 하류 계성천 합류부 지점의 모습. 이곳은 2회 연속 ㎖당 유해남조류 1천 세포수를 초과해 지난 20일 조류 경보 ‘관심’ 단계가 발령된 상태다. 오른쪽은 지난 21일 금강 세종보 하류 금강교 아래 강물을 투명잔에 담은 모습.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17일까지 금강 3개 보 모두 ㎖당 남조류 세포수 ‘0’을 기록했다. 환경운동연합 제공


4대강 보 개방이 올여름 낙동강과 금강의 운명을 가르고 있다. 무더위 시작과 함께 지난 20일 낙동강에서 올해 첫 조류경보가 발령됐지만, 금강에서는 녹조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3일 환경부 물환경정보시스템을 보면,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17일까지 낙동강 8개 보 모든 지점에서 녹조가 발생했다. 특히 지난 17일 기준, 상수원 구간인 창녕함안 지점에서 약 4㎞ 떨어진 창녕함안보 지점의 유해남조류 세포수(cells/㎖)는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3만개 훌쩍 넘겼다. 창녕함안보는 낙동강 가장 하류에 있는 보다. 같은 날 기준 낙동강 유해남조류 세포수는 구미보 657개, 칠곡보 3260개, 강정고령보 5909개, 달성보 4176개, 합천창녕보 2만4785개, 창녕함안보 3만7868개 등으로 하류 쪽으로 갈수록 조류도 대체로 뚜렷하게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 21일 낙동강 현장을 조사한 임희자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은 “식수를 취수하는 창녕함안 본포취수장 등을 포함해 우강리 배수장, 계성천 합류부 등 물 흐름이 정체된 낙동강 곳곳에서 녹조 알갱이가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기간 금강 세종보, 공주보, 백제보 등 3개 보의 유해남조류 세포수는 0개를 기록했다. 지난 21일 금강 현장에 나간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는 “6월 초 보다 탁도가 높아지긴 했지만 보 수문 개방 전에 ‘녹조라떼’라고 할 정도로 녹조가 창궐했던 것에 비하면 수질이 매우 양호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녹조 발생 원인으로는 보 설치 외에도 폭염과 집중호우에 따른 수온 상승도 주요하게 꼽힌다. 하지만 최근 이 두 지역에 집중호우는 없었고 수온도 비슷했다. 지난 10일 수온이 24℃를 기록한 낙동강 달성보, 합천창녕보의 유해남조류 세포수는 1만개를 넘어섰으나, 지난 17일 같은 수온을 기록한 금강 백제보에서는 녹조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환경단체에서는 보 개방이 금강의 녹조 개선에 주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안숙희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 활동가는 “보 개방 차이에 따라 녹조 발생에서 낙동강과 금강의 상황이 극명하게 갈렸다”며 “보 수문 개방이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빠르게 효과적으로 녹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금강 세종보와 공주보는 지난해 1, 3월 각각 전면 개방됐고, 현재 하류 백제보 수문만 닫힌 상태다. 낙동강 8개 보는 모두 개방하지 않은 채 물을 담아놓고 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4대강 보 수문 상시개방과 처리방안 마련을 지시했지만, 아직도 낙동강 보 개방과 관련한 계획은 세워지지 않은 상황이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저녁이 있는' 요즘 사람들, 한강으로 모인다 1번지' 한강공원, 얼마나 알고 계세요?

[한강 사용설명서]한강공원 방문객 연간 3000만 명편리한 접근성과 인프라에 '워라밸' 문화 겹치며 급성장

 

23일 서울 한강공원 뚝섬지구 인근 윈드서핑장에서 동호인들이 윈드서핑과 패들보트 등 수상스포츠를 즐기고 있다./사진=조성훈기자

 

#직장인 이모씨(27·)는 퇴근 후 한강을 자주 찾는다. 이곳에서 직장동료와 함께 '치맥'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거나 운동복을 입고 뛰곤한다. 주말에는 남자친구나 가족과 함께 인근 대여소에서 그늘막 텐트를 빌려 데이트를 하거나 함께 자전거를 탄다. 최근에는 한 유통업체가 주최한 '한강러닝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씨에게 한강은 빼놓을 수 없는 문화·레저 공간이자 휴식 공간이다.

 

1970년대 고도성장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한강이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며 '신문화 1번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일년 내내 축제와 이벤트가 이어지는 한강은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직장인들이 퇴근 뒤 휴식 공간이자 가족 나들이, 레저공간이 되고 있다. 2030 밀레니얼 세대의 새로운 문화현상인 '크루'(Crew) 활동도 활발하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서쪽 강서 한강공원부터 동쪽 광나루 한강공원까지 총 12개의 한강공원을 찾은 일반 이용객 수는 3027만 명으로 집계됐다. 국민 10명 중 6명이 한강 구경을 해본 셈이다. 러닝이나 자전거 라이딩 등을 위해 찾은 인원까지 합치면 무려 7097만 명이 한강을 찾았다.

 

한강은 '52시간제''워라밸' 등 우리 사회와 국민 삶의 변화가 투영된 공간이기도 하다. 평일 저녁 한강공원은 '저녁이 있는 삶'이 가장 잘 구현되는 장소로 꼽힌다.

 

저녁나절이 선선한 최근에는 해질녘이면 한강공원은 업무를 마친 직장인이나 가족단위 방문객들로 북적인다. 구두나 정장 등 다소 불편해 보이는 복장이 곳곳에서 눈에 띄고 애슬레저 룩으로 갈아입고 가벼운 산책과 운동을 하며 야경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특히 반포나 여의도 한강공원에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러닝이나 자전거, 스케이트보드 등을 함께 즐기는 커뮤니티인 '크루족'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주말 한강은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 바뀐다. 교외로 나가지 않아도 캠핑 등 자연 속 레저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캠핑 전용 공원인 난지 한강공원 외에도 가벼운 캠핑과 휴식을 위한 텐트를 찾기 쉽다. 반포 한강공원 세빛섬의 튜브스터나 수상스키, 웨이크보드를 경험할 수 있는 잠실한강공원 수상레저파크 등 한강에서 즐길 수 있는 수상 레저 스포츠가 다양해지면서 동호인들도 늘고있다.

 

'접근성''콘텐츠', 한강 붐 키워드

'밤도깨비 야시장'이나 '멍때리기 대회', 한강 여름축제 등 독특한 즐길거리도 한 몫 한다. 난지공원은 캠핑중심지로, 광나루 한강공원은 드론 비행장, 반포 한강공원은 무지개 분수와 푸드트럭 등으로 차별화를 꾀한다. 뚝섬 한강공원은 반경 1.5km에 치킨집이 103개에 달해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유명한 치맥성지다.

 

이처럼 한강이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 탈바꿈한 것은 넓은 수변공원 부지에다 서울을 관통하는 지리적 이점, 자전거길과 축구, 야구를 비롯한 구기종목 경기장 등 각종 레저 인프라가 다양하게 갖춰져서다. 12개 한강공원 모두 지하철역과 인접해 있어 접근성이 좋다. 아울러 한강공원은 자전거부터 텐트, 돗자리까지 쉽게 빌릴 수 있고 배달음식 주문까지 가능해 편의성이 높다.

 

이연택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생활방식의 변화와 함께 한강이 도심속 레저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지만 아직 관광산업 생태계로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는 못하고 있다""한강은 '장소 상품'으로서 잠재력이 높은 관광 콘텐츠인 만큼 상업, 문화시설을 추가로 확보해 내국인만의 레저 공간이 아닌 국제관광교류공간으로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불목' 한강은 '#러닝크루'가 접수한다

[한강 사용설명서]한강, 접근성 좋고 안전"함께 달리면 완주 기쁨 2"

 

아디다스가 운영하는 러닝 커뮤니티 '아디다스 러너스 서울'이 한강과 인접한 서울숲에서 달리기를 시작한 모습./사진제공=아디다스코리아

 

뉴발란스가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이랜드크루즈에서 마련한 '트램펄린 점핑 피트니스' 프로그램 모습./사진 제공=이랜드

 

#직장인 유태종씨(35)'불목'(불타는 목요일)은 특별하다. 맥주 한잔 하기 부담 없는 요일이라 각종 저녁약속이 몰리는 날이지만 태종씨는 매번 한강으로 간다. 스무명의 또래 직장인과 함께 달리기 위해서다. 그는 '성수러닝크루' 멤버로 활동 중인 9년차 러너(runner). 뚝섬한강공원에서 청담대교, 잠실대교를 지나 8를 달리고 돌아오면 한 주의 피로가 달아난다.

 

평일 저녁 강남역 11번 출구, 합정역 5번 출구에서 북적이던 2030 직장인들이 성수대교 북단, 여의도한강공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한강에 '크루'(crew) 문화가 꽃 피면서다. 무리, 집단을 뜻하는 '크루'는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통한다. 52시간 근무, 워라밸 시대에 한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크루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

 

가장 활발한 건 러닝 크루다. 그들은 왜 한강에서 달릴까. 러닝 트레이너 런소영(본명 임소영)은 한강이 러닝크루 집합소가 된 것을 접근성과 안전성으로 설명했다. 그는 9만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지닌 러닝 인플루언서이자 브룩스러닝 모델이다. 그는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한강은 (여의도, 압구정, 성수, 잠실 등) 어디서 출발해도 갈 수 있고, 어디로든 이어진다"고 말했다. "인도와 자전거길이 구분되고 신호등이 거의 없는 편"이라고 했다. 도심을 달리는 시티런과 달리 행인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파이팅' 등 구호를 힘차게 외쳐도 문제 없는 장점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한강에서 '함께' 달릴까. 혼자 달리다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3년 전부터 러닝크루 2곳에 몸담고 있는 문정혁씨(32·가명)"일단 재미가 있고 완주의 기쁨이 두배"라고 말했다. 직군에 상관 없이 러닝이란 공통 취미 하나로 모인 이들이다. 그는 "서로 '파이팅'을 외치고 격려하면서 달리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이른다""오며가며 만나는 다른 크루를 향해서도 보통 '파이팅', '힘내세요' 같은 인사를 건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러닝크루는 인스타그램 계정이나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사람을 모은다. 홍대, 잠실 등 지역별로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요즘은 특별히 지역을 구분하지 않는 추세다. 87년생 토끼띠끼리 '톢톢'(토끼토끼를 의미하는 말)을 결성하는 등 여러 종류의 크루가 생겨나고 있다. 2030 직장인이 주 활동층이지만 대학별로도 동아리 개념의 크루가 구성되는 분위기다. 2~3곳의 러닝크루가 함께 모여 달리는 콜라보레이션도 진행한다.

 

러닝크루가 활성화하면서 나이키, 아디다스 등 스포츠 브랜드들도 바빠졌다. 러닝 수업을 열거나 사물함, 샤워시설이 구비된 '런베이스'를 제공하면서 러닝크루 문화에 동참하고 있다. 나이키는 '나이키런클럽(NRC)'을 운영한다. 코칭 프로그램이자 러닝에 활용하는 앱 이름이기도 하다. 달린 시간과 거리, 동선이 표시된 NRC 앱 화면을 캡처해 인스타그램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인증 사진을 올리는 일은 유행을 넘어 러너들의 일상이 됐다.

 

아디다스는 20176월부터 러닝 커뮤니티 '아디다스 러너스 서울'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4월 기준 누적 참가자는 4만명을 넘어섰다. 기초, 중상급 등 수준별로 코칭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디다스는 또 서울숲 근처에 '런베이스'를 운영 중이다. 이용료 4000원을 내면 요가룸, 라커룸과 샤워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브룩스러닝도 러닝 프로그램 '런업'과 서울 가로수길, 상수동에 드레스·라커룸 '러닝 허브'를 운영하고 있다.

 

피트니스크루, 요가크루, 사이클크루도 생겨나고 있다. 뉴발란스는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이랜드크루즈에서 '트램펄린 점핑 피트니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50명의 참가자가 피트니스 강사들과 함께 트램펄린 위에서 뛰며 운동했다. 르꼬끄는 매월 정기적으로 라이딩을 함께 하는 사이클크루 '클럽드벨로'를 운영 중이다. 반포 한강공원엔 사이클 복합공간 '바운더리 반포'를 열었다.양성희 기자

 

[한강 사용설명서]한강 대표 먹거리 즉석조리라면 "끓인 맛이 다르다

"한강 수면 위에서 즐기는 노을 '시티 나이트 카약'

 

한강에서 카약을 타며 노을을 즐기는 '시티 나이트 카약' /사진제공=

 

1990년대 드라마에서 한강은 아픈 이별을 한 젊은이, 명예 퇴직하고 사업에 실패한 중년 남성들을 위로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서울 시내 불빛이 비추는 강물을 바라보며 '깡소주'를 마시는 모습이 익숙하다.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위로 받으려 모이는 곳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한강의 이미지도 변했다. 가족 단위 나들이 인파로 북적이고, 젊은이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한강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를 뽑으라고 하면 뭐니 해도 라면이다. 일반 봉지라면을 각진 호일그릇에 넣어 즉석 라면 제조기에 올려 끓이면 된다. 가격은 3000원으로 1000원대인 컵라면과 비교해 비싸지만, '끓인 맛이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실제 한강 주요 편의점 매출 순위를 살펴보면 봉지라면과 호일그릇을 한 세트로 묶어 판매하는 즉석조리라면이 1위다. 편의점 관계자는 "최근 수년 사이에 즉석조리라면이 매출 인기 품목으로 떠올랐다""TV 등 전파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강에서만 볼 수 있는 즉석조리라면은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대표 상품이다.

 

즉석조리라면 다음으로 잘 나가는 건 맥주다. 맥주는 한강 편의점 매출 2위를 차지하는 매출 효자 상품이다. 매출 순위로만 보면 즉석조리라면을 제외하고 맥주 상품이 매출 2~7위를 점령했다. 특히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500ml 캔 상품이 주를 이뤘다. 반면 소주는 무거운 병 대신 640ml 페트병이 인기다. 들고 다니기도 가볍고, 분리수거도 편해서다.

 

맥주에 곁들이는 안주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전에 한강에서 즐기는 안주가 배달 치킨과 피자 정도였다면 최근 다양한 가정간편식(HMR)과 배달 앱(애플리케이션)의 발달로 보쌈, 족발부터 회와 찌개, 파스타와 폭립까지 다양한 안주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주말이면 배달 음식을 주문한 사람들로 붐비다 보니 아예 배달존까지 생겼다. 한강에는 총 5곳의 배달존이 있는데 각각 뚝섬공원에 2, 여의도공원에 3곳이 마련돼 있다. 주문하고 해당 장소에서 기다리면 주문한 음식을 손쉽게 받아갈 수 있다.

 

먹거리 이외 새로운 놀거리도 많다. 최근 한강에서 카약을 타고 노을을 즐기는 '시티 나이트 카약'이 인기다. 액티비티 전문 앱 '프립'으로 예약하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뚝섬유원지 인근 서울요트클럽에서 진행하는 시티 나이트 카약은 뚝섬에서 시작해 청담대교 밑에서 노을을 바라보는 이벤트다. 간단한 지상 훈련만 받으면 누구나 손쉽게 즐길 수 있다.

 

한강 위를 둥둥 떠다니며 힐링하는 '튜브스터'도 인기다. 새빛섬에서 즐기는 튜브스터는 반포대표 인근 야경을 즐기면서 간단한 음료와 간식도 즐길 수 있다. 청담대교 인근에서는 서울에서 합법적으로 드론을 날릴 수 있는 '드론공원'도 만날 수 있다.

 

이밖로 과거 회사 야유회 단골 장소에서 젊은이들의 '잇플레이스'로 거듭난 '난지캠핑장'비 있다. 난지캠핑장은 별다른 캠핑 준비 없이도 간단히 바비큐를 즐길 수 있어 인기다./ 김태현 기자

 

한강, 365일 축제의 장

[한강 사용설명서]사계절 뚜렷한 한강 테마로 한 다양한 축제'멍때리기 대회', '밤도깨비 야시장' 등 이색 이벤트도

 

한강은 365일 즐길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계절마다 다양한 테마의 이벤트와 축제가 펼쳐지고 한강이 가진 콘텐츠로 차별화한 프로그램도 연중 진행된다. 어린 자녀와 부모가 함께하는 교육·생태 프로그램부터 연인·친구들이 웃으며 즐길 수 있는 나이트 페스티벌까지 '한강 이벤트'를 알아봤다.

 

, 날씨도 좋은데 멍 때려볼까= 따뜻해진 날씨에 춘곤증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4월이면 한강에선 '멍 때리기 대회'가 열린다. 강바람 부는 한강공원에서 바쁜 현대인의 뇌를 잠시나마 쉬게 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햇볕 따스한 한강에서 90분 동안 어떤 말도, 행동도 없이 멍한 상태로 있으면 된다. 2016'1회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서 유명 가수 크러쉬(본명 신효섭·27) 우승을 차지하며 화제를 일으켰다.

 

가수 크러쉬가 서울 용산구 이촌한강공원 청보리밭일대에서 열린 '2016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 참가해 우승을 차지한 모습. /사진=뉴스1

 

여름, 몽땅 즐겨보자= 무더위가 찾아오면 한강 공원은 가장 활발해진다. 7~8월 한 달간 11개 한강공원 전역에서 '한강몽땅 여름축제'가 진행된다. 시원한강, 감동한강, 함께한강 세 가지 테마와 함께 캠핑과 야외수영장, 수상스포츠를 서커스와 음악회, 영화제, 거리공연 등 젊은기운이 가득한 축제가 펼쳐진다.

 

가을, 문화예술의 한강= 사색의 계절 10월에는 '사각사각 가을축제'가 열린다. 잠실한강공원 사각사각 플레이스에 입주해 있는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축제다. 청년예술단체 공연, 문화예술체험 및 공작교실, 아트마켓 및 플리마켓 체험 등 다양한 예술경험과 볼거리를 제공한다.

 

겨울, 눈썰매 타러 가볼까= 매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뚝섬한강공원 야외수영장은 눈썰매장으로 변신한다. 대형, 소형 슬로프와 눈놀이동산, 빙어잡기체험, 놀이기구 등 5종의 어린이를 위한 겨울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서울 서초구 반포 한강공원에서 열린 '밤도깨비 야시장'. /사진=서울시 한강사업본부

 

이 밖에 즐길거리는?= 계절 테마의 축제 외에도 한강이 가진 차별화된 콘텐츠를 살린 연중 이벤트도 진행된다. 매년 3~11월까지 한강 및 인근 유적지를 전문 해설사와 탐방하는 '한강역사탐방'과 숲 가꾸기, 텃밭 생태교실 등 한강의 생태를 소재로 한 '생태프로그램'은 어린 자녀와 부모가 함께 즐기기 좋다.

 

'밤도깨비 야시장'은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나이트마켓으로 자리 잡았다. 남녀노소 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인기 높다. 4~10월 매주 금, 토요일에 반포 한강공원과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다. 푸드트럭과 핸드메이드 제품, 다양한 공연을 즐길 수 있어 연인, 친구들끼리 방문하기 좋다./유승목 기자

 

불꽃축제에 크루즈까지한강을 바꾸는 기업들

[한강 사용설명서]한화·롯데 불꽃축제로 공헌효성·이랜드·이마트24는 한강 관광콘텐츠화에 노력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에서 열린 '서울세계불꽃축제'에서 화려한 불꽃들이 밤 하늘을 수놓고 있다. 2018 서울세계불꽃축제는 '달을 보며 소원을 빌고 꿈꾸던 어린 아이가 어른이 돼가며 잊고 있던 꿈을 되찾는다'의 내용으로 진행됐다. 2018.10.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강이 1000만 서울시민의 휴식공간이자 레저문화의 장으로 자리잡는데는 기업들의 헌신과 노력도 적지 않았다. 한강의 대표적 이벤트로 꼽히는 서울 세계 불꽃축제를 주관하는 한화가 대표적인 기업이다. 불꽃축제는 매년 가을 서울 여의도 밤하늘을 수놓는 수만발의 불꽃이 장관을 이루며 100만명 이상의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국내 최대 규모 시민축제다.

 

한화가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2000년 처음 시작해 국가재난 상황이 있던 3개년을 제외하고 지난해까지 총 16차례 열렸다. 한화는 불꽃축제를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페스티벌로 육성한다는 방침에따라 2015년부터 다양한 특화 연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한화는 지난해에만 이 행사에 70억원을 투입하는 한편, 700여명의 계열사 임직원으로 구성된 한화봉사단을 통해 불꽃축제 안전관리에 나서는 등 전사적 역량을 모으고 있다.

 

롯데그룹 역시 2017년 잠실롯데월드타워 개장과 함께 불꽃축제를 3차례 진행하며 호평을 받고있다. 롯데가 개최하는 타워불꽃축제는 한화 여의도 세계불꽃축제가 시행하는 '타상불꽃'과 달리 '장치불꽃'으로 또다른 매력을 지닌다. 타상불꽃은 발사포 안에 추진화약을 넣어 쏘아올린 뒤 모양을 연출하는데 반해 장치불꽃은 초고층 건물에 발사포와 화약이 일체화된 구조물을 설치해 건물과 불꽃의 조화를 꾀한다. 지난달 열린 타워불꽃축제에는 100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롯데는 이 행사에 모두 60억원을 투입했으며 매년 봄철 한강을 대표하는 시민 축제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랜드가 운영하는 한강크루즈도 빼놓을 수 없는 한강의 핫스팟이다. 1986년 시작된 한강크루즈는 당초 크게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그러다 이랜드가 2012년 사업자인 C& 우방랜드를 인수한 이후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해 한강을 상징하는 관광콘텐츠로 탈바꿈시켰다. 이랜드는 유람선에 뷔페식당과 불꽃쇼, 음악공연, 한강스토리 등을 결합한 관광코스로 재개발했다. 지난해에만 60만명이 유람선을 이용했고 선착장 이용객까지 포함하면 150만명이 이를 체험했다. 특히 인기 한류드라마 '별에서온 그대'에 등장하면서 한류관광객들이 급증했다.

 

회사 관계자는 "한강의 빼어난 야경과 함께 문화 콘텐츠를 결합해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코스로 자리잡았다"면서 "사업성을 떠나 한강의 대표 콘텐츠라는 사명감을 갖고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이랜드크루즈가 운영하는 한강유람선 /사진=이랜드

 

효성이 운영하는 서울 반포 세빛섬도 한강의 야경 명소로 꼽힌다. 2014년 개장한 세빛섬은 세계 최초로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는 부체 위에 건물을 지은 플로팅 형태의 인공섬이다. 2011년 오세훈 시장시절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됐으나 예산낭비 논란에 이어 사업자 선정이 지연되면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다 효성이 인수해 개장한 이후 명소로 탈바꿈했다. 컨벤션홀과 레스토랑, 디저트 카페 등으로 시민과 관광객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매순간 색상이 바뀌는 LED조명이 황홀한 야경을 연출하며 반포한강공원 일대 푸드트럭, 버스킹 공연 등과 어우러져 한강을 대표하는 수변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이마트24가 지난해 오픈한 동작대교 구름/노을까페도 최근 가족단위 고객들이 자주 찾는다. 지난해 문을 연 이 까페는 한강다리 전망쉼터를 활용한 것으로 이마트24는 북큐레이션 서점과 버스킹 공연장 등 시민문화공간으로 활용한다.

조성훈 기자

 

세느·템즈강이 부러워하는 한강의 가치

[한강 사용설명서]평균 1km의 넓은 폭을 가진 거대한 강, 넓은 수변공간이 매력생태자연 공간 조성에 초점

 

한강몽땅 축제를 즐기고 있는 사진 / 사진=서울시

'런던 템즈강, 파리 세느강, 뮌헨 이자르강'

세계 주요 도시들은 대부분 강을 끼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선진국들은 치수(治水)라는 하천 본래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지역경관, 역사, 문화 등을 활용해 템즈강과 세느강을 자연생태 보존과 관광·편의시설을 아우르는 매력적인 관광 명소로 조성했다. 특히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연과 가장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곳이 강이라는 점에서 도심 강의 가치가 크다.

 

하지만 이들 주요 도시의 강은 규모 면에서는 한강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왜소하다. 템즈강은 평균 강폭이 약 265m이며, 세느강은 200m 수준이다. 이자르강의 경우엔 강폭은 40~50m에 불과하다.

 

반면 한강은 평균 1km의 넓은 폭을 가진 거대한 강이다. 더욱이 한강엔 여의도, 반포, 뚝섬, 난지한강공원 등 4대 특화공원과 더불어 12곳의 잘 정비된 수변공원이 자리 잡아 입지적 매력이 크다.

 

그동안 한강은 홍수 때문에 치수 위주로 관리돼온 측면이 컸다. 그러다 88올림픽을 계기로 정비가 시작됐고, 2000년대 들어 접근성이 개선되고 여가를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면서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휴식처이자 생활 공간으로 거듭났다. 최근엔 밤도깨비야시장이 열리면서 국내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싶은 명소로 꼽힌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강의 가치를 더욱 키우기 위해 생태적인 자연 공간 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30 한강 자연성 회복 기본계획'에 따르면 시는 한강 숲을 조성해 생태 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자연형 호안과 습지를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울창한 숲으로 바뀐 이촌과 여의도 샛강이 대표적 예다.

 

여의도 한강공원을 찾은 매튜(35·미국)씨는 "도시에 이런 큰 강과 아름다운 수변공원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며 "한강 공원에서 여가를 즐기는 서울 시민들이 부럽다"고 밝혔다.

 

파리에 거주하는 미셸(28·프랑스)씨도 "세느강과 달리 넓은 수변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긴 것은 최고의 경험"이라며 "다음 한국을 방문할 때에도 한강을 다시 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한강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한강 전문가로 꼽히는 진희선 서울시 행정2부시장은 "한강은 세계 어떤 도시를 가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수변공원을 갖춘 입지적으로 매우 뛰어난 곳"이라며 "한강숲 조성, 자연호안 복원, 생태거점 조성 등 '자연성 회복'을 위한 노력이 더해질 경우 더욱 매력적인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드리안 에반스 템즈강 축제 감독은 최근 '한강포럼'에서 "런던시는 '토탈리 템즈' 프로젝트로 많은 사람들이 템즈강을 찾도록 기회를 제공한다""템즈강 조수 간만의 차를 활용한 예술작품 설치, 콘서트 개최 등 다양한 문화 행사로 대중의 관심과 이해를 제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 대도시 강들은 문화 예술과 만나 축제의 장으로 변모했다"며 한강도 입지적 강점을 살려 문화적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것을 조언했다. 김경환 기자

 

시민들 휴식처 '한강', 쓰레기 몸살은 '여전'

[한강 사용설명서]방문자들 많아지면서 쓰레기, 개똥, 자전거 사고 등 다앙한 문제점도 나타나

 

'쓰레기 무단투기는 양심을 버리는 행위입니다'

한강공원 곳곳에 해마다 되풀이되는 쓰레기 문제해결을 위해 서울시가 내건 과태료 안내 게시물이다. 한강은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자 다양한 지방자치단체의 행사장으로 활용돼 관광객에게도 인기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방문자들이 많아지는 이 맘 때면 한강은 쓰레기와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다.

 

여기에 더해 개를 산책시키면서 치우지 않은 개똥, 과도한 음주로 인한 사고, 보행자의 자전거 사고 등에 이어 최근엔 텐트 이용자들의 과도한 애정행각 등이 한강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들로 지목된다.

 

24일 서울시에 따르면 한강공원을 찾는 이용자수는 20084000만명에서 20177500만명으로 약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한강공원이 서울시민의 휴식처이자 여가 공간으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방문자수와 맞물려 최근 3년간 한강공원의 쓰레기 발생량 역시 20153806, 20164265, 20174832톤 등 해마다 12% 이상 증가하고 있다.

 

서울시는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422일 한강공원 내 분리수거 등의 내용을 담은 '청소개선대책'을 마련했다. 이 대책은 공원 입주업체 대상 쓰레기봉투 실명제 실시 공원 내 각종 행사 시 청소가이드라인 필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한강공원 내 무분별하게 텐트를 설치해 쾌적한 한강 이용을 방해하는 행위와 녹지 훼손과 쓰레기 무단 투기 행위를 막기 위해 '그늘막 텐트 허용 구간'도 지정 운영키로 했다. 닫힌 텐트에서 부적절한 행위가 이뤄지는 것을 막기 위해 텐트 2면 이상을 반드시 개방하고 오후 7시 이후 철거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서울시의 이 같은 노력에도 최근 방문한 한강 공원은 여전히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특히 시민들이 즐기고 간 음식물 쓰레기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고 버려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쓰레기 무단투기 과태료가 3만원에 불과하다는 점도 쓰레기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행히 자전거와 보행자 사고는 감소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한강공원 내 자전거 이용자가 20121269만명, 2017년도 1675만명으로 증가하는 추세인데 한강변 자전거 사고 건수는 2012339건에서 2016166건으로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자전거도로와 보행로를 구분하고, 자전거 도로에 과속방지턱을 설치하는 등 서울시가 대책 마련에 나섰던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쓰레기나 주취 문제 등 해결을 위해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모든 한강 공원을 실시간으로 관리하기엔 무리가 있다""시민들의 자발적 협조와 보다 성숙한 시민 의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개똥 문제, 만취족, 과속 자전거의 시민 위협, 불법 주정차 과태료 징수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해서 계도 노력을 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세중 기자

 

규제 그물이냐, 안전망이냐대서양연어 양식논란

 

대서양 연어(Salmo salar)는 송어속에서 가장 큰 종으로 원산지는 북서대양이다. 몸 길이는 보통 38이며, 최대 150까지 자란다. 무게는 46.8에 평균 수명은 13년 정도이다. 어릴 때는 파랑과 보랏빛 반점이 있다가 다 크면 등쪽은 어두운 청색, 배쪽은 얼룩덜룩해지거나 검정색 반점이 생긴다. 주로 수생곤충, 연체동물, 갑각류 및 어려 등을 먹는다. | 환경부 제공

 

 

정부의 규제 그물일까, 생태계 파괴를 막는 안전망일까.

최근 아시아 최초로 양식에 성공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대서양연어에 대해 25일 환경부가 위해우려종으로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 확인해보니 양식 기술이 완숙하지도 못한데다 과거 배스블루길처럼 생태계에 미치는 위협이 클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언론에선 해양수산부 지원금을 받아 아시아 최초로 성공한 대서양연어양식이 환경부의 규제로 제동이 걸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연어양식업체인 동해STF’2016년 수온이 낮은 해저 수십m에 큰 가두리를 만들어 연어를 양식하는 기술을 확보했는데 환경부에서 대서양연어를 위해우려종으로 지정하면서 연어 양식이 막혔다며 규제 개선을 요청한 내용이었다. 생태계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위해우려종을 수입·반입할 때는 지방환경청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대서양연어는 흔히 노르웨이 등에서 수입돼 일반 마트에서 판매되는 연어다. 국내 수입 연어의 90%를 차지하며, 시장 규모는 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수요를 국내 양식으로 대체한다면 좋은 일이지만, 실제 사정은 복잡하다.

 

환경부가 대서양연어 양식 기술 개발 수준을 확인해보니 실제 바닷물에서 양식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육상 수조 내에서 수정란을 치어로 키우는 기술과 바닷물의 염도에 적응시키는 해수순치기술이 개발된 정도였다. 바다에서 양식 기술은 시도되지도 못한 수준이라 추가 기술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기술개발 수준을 떠나 생태계 위협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바다에서 키우도록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서양연어는 다른 어종에 비해 공격성이 높고, 사육시 스트레스가 증가해 질병에 취약하며 병을 옮길 수도 있다. 정윤화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사무관은 이미 미국 워싱턴주에서 양식 연어 5000마리가 대량 유출되면서 문제가 됐고, 노르웨이에서도 태풍으로 양식장에서 탈출한 연어가 야생 어류에 질병과 기생충을 퍼뜨리는 피해 사례가 보고됐다면서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큰 상황에서 위해우려종으로 관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애초에 대서양연어가 살던 지역도 아니라서 국내 생태계에 더 큰 피해도 우려된다. 해양 부화장에서 병이 퍼지면 원래 있던 태평양연어들이 감염될 수 있고, 양식장에서 자라는 연어들의 성장속도가 야생보다 빠르기 때문에 우점종이 될 가능성도 크다. 과거 배스, 블루길, 뉴트리아, 황소개구리 등 산업적인 목적만 고려해 수입했다가 자연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입힌 전철을 밟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윤화 사무관은 완숙한 양식시설을 구비하고, 유출시 대책을 마련해 제안을 해온다면 추가적인 검토가 있겠지만, 실제로는 업체에서 검토 제안도 들어오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현재로선 학술연구목적으로 제한적인 수입과 방출이 가능하지만, 바다에서 양식은 불가다는 것이 환경부의 입장이다. 이호중 환경부 자연보전정책관은 위해 외래생물이 국내에 유입돼 확산된 뒤에는 조치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외래생물에 대해선 사전에 검토해 2의 배스 사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밝혔다.

 

대서양연어 분포도. | 환경부 제공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할까?

 

에베레스트에서 수집 된 쓰레기 자루가 지난 527일 네팔 솔 룩부 부 지역의 남체 바자 르 (Namche Bajar)에 쌓여있다. [AP=연합뉴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AP통신은 등반가들이 등정 도중 버린 쓰레기와 배설물로 에베레스트가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다고 24일 보도했다. 통신은 에베레스트에서 가장 높은 캠프장(정상 등정을 위해 준비하는 공격 캠프장) 사우스 콜(8000m)에 버려진 텐트와 장비들이 널브러져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다와 스티븐 셰르파( Dawa Steven Sherpa가 제공한 이사진은 지난 521일 에베레스트 산에서 가장 높은 캠프장 사우스 콜의 생생한 모습이다. 에베레스트 등반가들이 버리고 간 텐트와 등산 장비가 캠프장에 가득하다. [AP=연합뉴스]

 

.이 텐트들과 장비들은 기상악화로 등반가들이 급히 피신하다 버린 것으로 보인다. 2008년부터 에베레스트에서 쓰레기를 치워온 다와 스티븐 셰르파는 "사우스 콜과 같은 높은 고도, 미끄러운 사면에서 갑자기 닥친 악천후로 인해 텐트 같은 무거운 물건을 챙기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와 셰르파는 "숨 막히고 메스꺼운 고산증세에 지친 등반가들은 무거운 텐트를 종종 버린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이래 에베레스트에서 약 2kg의 쓰레기를 치웠다. "얼어붙은 텐트를 파내는 데만 한 시간 걸렸다"는 다와 셰르파는 사우스 콜에 아직도 30여개의 버려진 텐트와 5,000kg의 쓰레기가 남아있다고 전했다. 쓰레기들은 눈이 녹을 때만 눈에 띄기 때문에 에베레스트 전역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버려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등반 시즌에만 약 8,000kg의 사람의 배설물을 산에 남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부 등반가는 임시 변기를 사용하지 않고 작은 크레바스나 눈구덩이에 배설물을 처리하고 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이들 배설물은 녹은 눈들과 함께 흘러내려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와 산 아래 지역까지 오염될 위험에 처해있다. 미국 웨스턴 워싱턴대학 환경 과학 교수 존 올(John All)"캠프 2에서 셰르파 10명 중 2명은 오염된 물로 위장병에 걸렸다"는 연구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에베레스트에서 배설물 처분에 관한 특별한 규제는 아직 없다.

 

지난 5 27 일 네팔 군인들이 남체 바자르 (Namche Bajar)에서 에베레스트 산에서 수집 한 쓰레기를 한 곳에 모으고 있다. [AP=연합뉴스]

 

.사람의 배설물을 분해하는 효소를 이용한 키트 사용을 권장하고 있지만, 비싼 가격이 문제다.

또한 식수 오염 문제뿐만 아니라 텐트 등 등반 도중 버려지는 장비 들은 이곳을 등반하는 산악인의 안전도 위협하고 있다. 눈 폭풍에 휩쓸린 이들 장비가 언제든 등반가들을 덮칠 수있기 때문이다. 해결책을 찾고 있는 네팔 정부는 등반가들의 모든 등반 장비를 스캔하는 계획을 준비 중이다. 네팔 정부는 등반객들이 등반 전 4,000$를 예치해야 하며, 생분해 키트를 구매, 처리하지 않으면 돈을 돌려받을 수 없도록 할 예정이다.

 

지난 527일 네팔 군인들이 에베레스트에 버려진 산소통을 옮기고 있다. [AP=연합뉴스]

 

.한편 더 큰 문제는 산을 'Sagamath', 또는 세계의 어머니로 여기는 네팔인에게 에베레스트가 쓰레기 더미로 더럽혀진다는 '신성 모독' 부분이다. 네팔 등반가 Nima Doma"에베레스트는 우리 신이며 우리 신을 너무 더럽혀서 매우 슬프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성스러운 곳에서 쓰레기를 버릴 수 있나"고 반문했다. 중앙 오종택 기자

 

"생태 보물 광릉숲에 산업단지 웬 말?"

남양주·의정부·포천, 광릉숲 일대일제히 개발 계획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광릉숲이 난개발 논란에 흔들리고 있다.

 

25일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5개 환경 단체는 공동 성명을 내 남양주시의 가구산업단지 추진을 거세게 비판했다. 단지 대상 지역이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산1-1번지 일대(56)로 광릉숲으로부터 1.5이내의 가까운 곳이라는 이유다.

 

광릉숲은 경기도 포천시와 남양주시, 의정부시에 면한 약 24465헥타르(여의도 면적 29)의 대규모 숲이다. 조선 7대 왕인 세조의 왕릉이 자리해 550여 년 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돼 자연환경이 보전된 곳으로, 단위면적당 국내 최대 생물종(6112)이 서식한다. 이 기간 대규모 산불을 비롯한 산림훼손이 없어 생태 가치, 환경 가치가 매우 크다. 국립수목원이 자리하기도 했다.

 

환경단체는 이곳 일대에 산단이 들어올 경우 숲이 오염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들은 "가구단지에서는 기본적으로 미세먼지, 소음, 진동, 불법 소각 매연, 병해충, 접착/도장용 유해화학물질 등 다양한 환경문제가 발생한다""생활하수와 폐수도 상당량 발생하고, 물류, 운송 과정에서의 교통문제도 심각해진다"고 지적했다. 숲 인근에 대규모 산단이 들어올 경우, 숲이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남양주시가 추진하는 가구산단의 규모는 마석가구단지(49.5)보다 넓다. 환경단체는 특히 "가구용 수입 원목 등에는 우리나라에는 천적이 없는 미생물, 곤충, 해충, 외래종들이 다량 묻어올 가능성이 크다""만에 하나 병해충이나 박테리아, 바이러스가 유입된다면 주변 생태계에 치명적"이라고 우려했다.

 

의정부시가 추진하는 쓰레기 소각장 이전 부지도 광릉숲 일대다. 현재 장암동에 위치한 소각장을 2023년까지 자일동 환경자원센터로 이전에 하루 220톤 처리 규모 시설을 갖춘다는 게 의정부시의 계획인데, 이곳은 광릉숲으로부터 5이내에 자리했다.

 

포천시 역시 소흘읍 고모리 산2번지 일대에 1452억 원을 들여 44규모의 섬유·가구 융복합단지를 2022년까지 완공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곳 역시 광릉숲 인근이다.

 

환경단체는 "광릉숲은 심신이 지치고 치유가 필요한 많은 국민의 마음의 안식처요, 건강의 보루"라며 "광릉숲은 남양주, 포천, 의정부만의 숲이 아니라 전 국민의 숲이고, 더 나아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등록된 지구촌을 대표하는 세계문화유산"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시의 행정적 필요성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 이전 대상지가 수백 년간 보전해 온 광릉숲 지역이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시민 사회에서도 광릉숲을 지키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5일에는 남양주 마석가구공단의 광릉숲 인근 이전을 중단해달라는 요구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2600여 명의 시민이 해당 청원에 동의 의사를 표했다.

 

광릉숲은 한국에서 생태 가치가 가장 큰 지역의 하나다. 광릉숲에 조성된 둘레길을 걷는 방문객의 모습. 한국관광공사/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하루 1.7, 사슴뿔 초고속 성장의 비밀은 암세포

뿔은 뼈암처럼 성장억제 유전자 덕에 사슴은 암에 덜 걸려

 

수컷 말사슴의 거대한 뿔. 봄부터 여름까지 폭풍 성장을 한 결과인데 암세포보다 빨리 자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사슴의 뿔은 당연하고 친숙한 존재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놀라운 진화의 결과다. 해마다 재생하는 사슴뿔의 빠른 성장은 암세포의 증식 방법을 채택했기 때문이란 사실이 밝혀졌다유왕 중국 북서 농림 대 생물학자 등 중국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21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반추동물의 유전체를 비교 분석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사슴뿔이 빠르게 자라면서도 암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억제하는 방식이 밝혀져, 사람과 다른 생물의 암 예방과 치료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여러 개의 위로 섬유질 먹이를 소화하는 반추동물은 모두 두개골에 부속물이 난 특징이 있다. 가지가 여럿인 사슴뿔을 비롯해 단단한 소의 뿔, 부드러운 기린 뿔, 뿔 대신 송곳니가 발달한 사향노루와 고라니 등 형태가 다양하다.

 

반추동물의 계통도. 뿔의 진화는 한 번 일어났으며, 사향노루(Moschdae)와 고라니(Hydropotes inermis)는 뿔 없는 상태로 독립적인 진화를 했음을 보여준다. 왕 외 (2019) ‘사이언스제공.

 

연구자들은 반추동물 44종의 유전체를 분석해 이런 다양한 뿔이 약 2000만년 전 일어난 단 한 번의 진화적 사건의 결과라고 밝혔다. 두개골에서 신경, , 피부 조직을 형성하는 일을 돕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뼈로 된 돌출물이 생겨났다. 사향노루와 고라니는 어떤 이유에선가 이 유전자의 작동이 멈추어 뿔이 자라지 않게 됐다. 연구자들은 특히 빠른 속도로 자라고 해마다 재생하는 사슴, 무스, 엘크 뿔의 유전적 기원에 주목했다. 수사슴은 짝짓기 경쟁을 위해 크고 멋진 뿔을 키우지만, 늦가을이나 이른봄 떨구고 번식기에 맞춰 새로운 뿔이 자란다. 일부 수사슴이 겨우내 거추장스러운 큰 뿔을 유지하는 이유는 포식자 늑대에 대항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진다(관련 기사: 번식기 끝난 수사슴, 큰 뿔 왜 달고 다니나).

 

북아메리카 엘크 수컷이 뿔로 겨루고 있다. 뿔은 겨우내 늑대를 막는데 요긴하지만, 빨리 떨궈야 짝짓기 때 더 크고 멋진 뿔이 돋는 딜레마에 놓인다. 야쿱 프리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봄부터 여름까지 짧은 기간 동안 수사슴은 완벽한 뿔을 만들어야 한다. 말사슴(백두산사슴)의 뿔은 이 기간 하루 평균 1.7씩 자라 번식기까지 뿔 무게만 30에 이르게 된다. 연구자들은 이런 뿔의 성장이 보통의 뼈라기보다는 암에 걸린 뼈와 비슷하게 자란다고 밝혔다. 보통 종양의 형성과 성장을 촉진하는 데 관여하는 8개의 유전자가 사슴의 유전체에 활성화돼 있었다.

놀랍게도 사슴은 뿔 성장에 암세포의 작동을 이용하면서도 동시에 세포의 성장을 엄격하게 조절하는 장치가 돼 있어 암 발현을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 사슴은 다른 동물보다 암에 덜 걸린다. 실제로 미국 필라델피아와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추정한 사슴의 암 발생률은 0.40.8%로 다른 포유류의 2.14.6%에 견줘 5분의 1 수준이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Yu Wang et al, Genetic basis of ruminant headgear and rapid antler regeneration, Science 364, eaav6335 (2019). DOI: 10.1126/science.aav633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


동서고가도로 철거 논의] 배경과 전망

경관 개선·엑스포 연계도시 가치 업그레이드기대

 

26일 부산 부산진구 개금동에서 진양삼거리 방향으로 바라본 동서고가로 모습. 1995년 준공된 이 도로는 부산 사상구 감전동에서 남구 우암동까지 전체 길이는 10.86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긴 교량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김경현 기자 view@

 

전국적으로 도시재생을 위한 고가도로 철거 사업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부산 동서고가도로(남해고속도로제2지선~감만사거리)도 철거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당초 사상~해운대 대심도 고속도로 건설과 중복되는 7구간이 대상이었던 동서고가도로 철거는 도시재생과 2030 등록엑스포 부지 활용 등의 문제로 전 구간으로 철거 논의 대상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부산시, 2017년 대심도 계획 발표 때

개통 맞춰 동서고가도로 철거밝혀

서울 청계고가 철거 뒤 청계천 복원

서울역·회현고가 등 성공 사례 많아

2030엑스포 개최지 우암부두 포함

전 구간 철거 사실상 불가피분석도

 

전 시장 시절부터 철거 논의

동서고가도로 철거 논의는 2017년 부산시가 김해신공항~해운대 대심도 고속도로민자사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부산시는 김해신공항 개항시점인 2026년에 맞춰 사상구 감전동에서 해운대구 송정동까지 22.8김해신공항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민간투자사업이 제안돼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부산시가 추진하는 사상~해운대 대심도 고속도로와 같은 내용으로 남해고속도로 제2지선 사상구 감전동에서 시작해 해운대구 송정동 부산울산고속도로까지 지하도로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부산시는 2017년 이 같은 계획을 발표하면서 대심도 고속도로 개통 시점에 맞춰 기존 사상~부산진구 일대까지 동서고가도로를 철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고가도로가 철거되면 하부의 평면도로(6~10차로)에 간선급행버스체계(BRT)를 도입해 버스 통행속도를 두 배 가까이 끌어올리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동서고가도로 철거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또다시 등장했다. 당시 자유한국당 서병수 후보는 동서고가도로 철거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서 후보는 고가도로 철거로 해당 지역은 층고와 용적률 등 규제가 완화되고 도시 가치가 재평가됨으로써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철거된 공간은 보행자 중심도시로 재편돼 사상구와 부산진구 주민들의 생활환경 개선과 상권부활도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고가도로 철거, 전국적 추세

도심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 철거는 전국적 추세다. 서울은 청계고가도로를 철거하면서 청계천 복원사업을 실시해 도심 랜드마크로 만들었고 서울역 고가도로도 철거해 공중정원으로 만들었다. 서울시는 2009년 회현고가를 시작으로 2014년 아현고가까지 5개 고가도로를 철거한 이후 주변 경관 개선과 상권 활성화 효과는 물론 차량통행속도도 증가해 교통체증 해소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산시도 동서고가도로 철거와 관련해 다양한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전 구간을 철거하더라도 서울처럼 일부 구간을 남겨 공중정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와 관련, 부산시 관계자는 고가도로 일부 구간을 공원으로 만드는 방안 등도 부산발전연구원에서 연구가 진행 중이라면서 구체적인 활용방법도 시민 여론수렴 등의 절차를 거친 이후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시는 사업추진 방식과 관련해선 사상~해운대 대심도 민자 고속도로 건설 사업을 동서고가도로 전체 철거와 연계해 실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자사업자가 사상~해운대 고속도로 건설사업으로 노선 중복 구간 고가를 철거하면서 남은 구간도 함께 철거 사업을 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별도의 철거사업비를 부산시가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예산 확보 문제가 숙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엑스포, 고가도로 철거 중요 변수

동서고가도로 철거는 2030엑스포 개최지에 우암부두가 포함되면서 당연한 수순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부산시는 최근 2030엑스포 관련 내부 회의에서 우암 ODCY(부두 밖 컨테이너 장치장)과 우암고가도로(동서고가도로의 동측 끝)에 대해 철거 방침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관계자는 부산시가 2030 엑스포 부지 정비를 위해 우암고가도로를 철거한다는 계획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우암고가도로 철거 필요성은 부산시가 LH(토지주택공사)와 함께 진행하는 항만배후부지 재생사업 연구용역에서도 지적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LH가 항만배후부지 재생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가운데 우암부두 주변 재생을 위해선 우암고가도로가 철거돼야 한다는 게 지역 정치권을 비롯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항 2단계 재개발 사업에서도 부산 북항 일대를 순환하는 원형 교통망을 구축하고, 원도심과 항만 지역을 단절시키는 고가도로들을 철거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어 우암고가도로 철거 가능성이 높다.

 

우암고가도로가 철거될 경우 동서고가도로는 서측과 동측이 모두 잘려 나가고 부산진구 일대 4~5남아 사실상 교통량 분산 기능을 상실하게 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동서고가도로 전 구간 철거가 사실상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

 

동서고가도로는 어떤 곳?

전국에서 두 번째로 긴 고가도로 25년간 서부산 교통난 해소 톡톡

 

1995228일에 준공돼 25년 가까이 서부산의 길목 역할을 해 온 동서고가도로. 동서고가도로는 부산 사상구 감전동에서 남구 우암동까지 전체 길이는 10.86에 이르고, 너비는 19.1~42.4m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긴 교량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김경현 기자 view@

 

25년 가까이 서부산 길목 역할을 해 온 동서고가도로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긴 교량이라는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동서고가도로는 1995228일에 준공됐다. 당시 부산항 부두에서 창원·마산 등지로 연결되는 동서 교통난이 심각해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됐다. 19884월부터 7년 가까이 진행된 공사에 현대건설 외 6개 사가 참여했으며 공사비만 26273600만 원이 들었다. 부산시 사상구 감전동에서 남구 우암동까지 전체 길이는 10.86에 이르고, 너비는 19.1~42.4m(왕복 4차로)이다.

 

1988년 착공 7년 뒤 19952월 개통

남구~사상구 관통 남해고속도로 연결

 

동서고가로의 진출입 램프는 사상, 감전, 학장, 주례, 진양, 범내골, 황령산, 문현, 7 부두, 감만 사거리 등 10개소이다. 완전 준공에 앞서 1992129일에는 학장 램프~문현 교차로 1단계 구간이 먼저 개통되기도 했다.

 

동서고가도로의 교량 형식은 상부가 ‘PSC박스거더교’, 하부는 구주식이며 허용통행하중은 43.2t이다. 개통과 함께 개금요금소를 설치해 요금을 징수했으나, 200981일부터 통행료를 전면 무료화했다.

 

국토교통부의 ‘2018년도 도로 교량 및 터널 현황조사서에 따르면 부산의 동서고가도로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긴 교량인 것으로 조사됐다. 1위는 11.86인 인천대교였고, 부산의 광안대교는 7.424위를 차지했다.

 

동서고가도로는 25년 가까이 부산 남구에서 부산진구, 사상구를 관통, 남해고속도로 제2지선까지 신속하게 연결해 서부산의 대표적인 길목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부산항의 컨테이너 물량 수송에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동서고가도로 주변 지역 주민들은 개통 이후 줄곧 소음과 분진 피해에 시달려 왔고, 고가도로가 도시 중심지를 단절시켜 주변 지역의 슬럼화를 가속시키는 등 도시 발전에 저해된다는 지적도 받아 왔다.

 

또 동서고가도로 시외방향은 곡선과 내리막길이 겹치면서 제동장치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화물차 사고가 빈발했고, 사고가 나면 교통정체가 자주 빚어졌다. 이 때문에 부산시가 올 5월부터 주례~학장 시외 방향 곡선부 구간(황령램프~감전램프)13000만 원을 들여 구간 단속 카메라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황석하 기자 hsh03@



일상이 된 커피20년 뒤 사라진다

앞으로 우리는 커피를 마실 수 없다

향긋한 원두 커피로 아침을 시작하고, 샷 추가한 아아로 식곤증을 물리치고, 휴일엔 친구와 새로운 카페를 찾아다니며, 시간이 부족한 연인과 24시간 커피점까지 찾는 당신. 커피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지만, 커피의 여정을 궁금해하지는 않는다. 커피에 대해 더 알아보자 외쳐도 어렵다며 한 발, ‘맛만 알면 되지 않냐며 두 발 물러설 뿐이다. 그러나 원산지와 재배자의 사정까지 알아야 하냐며 불평하기 이전에 커피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자각이 필요한 때다. 당신이 진정으로 커피를 좋아한다면 커피가 살아남기를 바랄 테니까.

 

내일부터 커피를 마실 수 없습니다

석유처럼 커피 보유량을 체크하며 국가적으로 커피 소비를 조절해야 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전 세계 하루 커피 소비량이 20억 잔이 넘고 매해 그 양은 늘어나는 추세인데다 기후 변화로 커피 수확량이 줄어 이미 커피 값이 비싸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1차적 문제다. 기후 변화엔 커피 씨를 말려 버릴 수 있는 위험성이 내포돼 있다. 2017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평균 지표온도가 2도 이상 높아진다면 중남미에서 생산되는 커피의 양이 최대 88%까지 줄어들고, 2040년에는 아라비카 커피종은 멸종할 것이라 예측했다. 호주 기후학회(The Climate Institute)의 경우 2080년에는 사실상 커피가 멸종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15~24도의 선선한 기후에 풍부한 강수량을 필요로 하며, 고온에서는 병충해를 입기 쉬워 고지대를 선호하는 예민한 작물이 바로 커피다. 브라질, 콜롬비아와 에티오피아, 베트남 등 적도 지역을 중심으로 커피가 자라는 일명, ‘커피 체인이 형성된 것도 바로 기후적 영향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온난화로 인해 평균 온도가 상승하고 가뭄과 폭우가 잦아지는 통에 커피 체인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2014년에 세계 최대 원두 생산국인 브라질이 극심한 가뭄을 겪으며 전세계 원두값과 커피값이 상승한 바 있다. 콜롬비아에서는 2008년 고온에서 활동하는 커피 전염병, 녹병(Rust Outbreak)이 발생해 커피 생산량이 2007년 대비 31%나 감소했다. 그로 인해 농부들은 커피 재배를 포기했고, 소규모 커피 농사 지역은 지역 사회 전체가 위기를 겪어야 했으며, 브라질은 200여년 만에 처음으로 생두를 수입하는 사태를 맞이했다 (이하 기사 생략)

 

HuffPostKorea Partner Studio

 

돌 먹고 통통하게 살찌는 수수께끼의 벌레 발견

필리핀 개울 석회암에 구멍 뚫고 서식10길이, 배좀벌레조개 일종

 

필리핀 보홀 섬 아바탄 강에서 석회암에 구멍을 뚫고 그 속에서 암석을 먹으며 사는 동물이 새로운 속의 배좀벌레조개로 밝혀졌다. 왼쪽 끝이 조개껍데기가 축소돼 드릴의 날처럼 바뀐 모습이다. 마빈 알타미아, 루벤 쉽웨이 제공.

 

좀벌레처럼 나무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사는 독특한 조개를 배좀벌레조개라 한다. 목선을 비롯해 양식용 막대기나 해안구조물, 어구 등에 무수히 많은 구멍을 내는 주인공이다. 세계적으로 연간 수십억 달러의 손해를 끼치는 배좀벌레조개는 모두 바다에 살고 하나같이 나무를 갉아먹는다. 그런데 민물에서, 나무 대신 돌을 갉아먹는 배좀벌레조개가 발견됐다.

 

배좀벌레조개가 피해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나무의 단단한 섬유질을 분해하고 물고기나 다른 무척추동물이 살 주택을 제공해 주는 생태계 기술자노릇도 한다. 필리핀에서 처음 발견된 돌 먹는 배좀벌레조개도 강바닥의 석회암 암반에 구멍을 뚫을 뿐 건물이나 구조물의 석재를 갉아먹는 벌레는 아니다. 오히려 희귀하고 생태적 가치를 위해 보전이 필요한 생물이다.

 

새로운 속의 배좀벌레조개가 발견된 필리핀 아바탄 강 서식지. 강바닥에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가 이 동물의 서식지이다. 마빈 알타미아, 루벤 쉽웨이 제공.

 

루벤 쉽웨이 미국 노스이스턴대 생물학자(현 앰허스트대) 등 미국과 필리핀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영국 왕립학회보 생물학최근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필리핀 아바탄 강에서 발견한 이 배좀벌레조개를 새로운 속 동물로 보고했다. 그는 이들은 석회암 암반에 정교한 터널을 뚫어 결과적으로 강의 흐름을 바꾸어 놓기도 하고 다른 수생 생물에게 풍부한 환경을 제공한다이 강이 우리가 아는 한 이 생물의 유일한 서식지라고 앰허스트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바다에 사는 배좀벌레조개는 나무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그 속에서 편안하게 섬유질을 갉아먹기 위해, 두 개의 패각으로 몸을 보호하는 조개의 전통적 몸 구조를 바꾸었다. 조개껍데기는 급격히 축소돼 몸 앞쪽 끄트머리에 배치돼, 섬유질을 갉아내는 드릴의 날처럼 쓴다.

 

연구자가 석회암을 망치로 깨어내 구멍을 뚫고 들어가 사는 배좀벌레조개를 채집하고 있다. 루벤 쉽웨이 제공.

 

새로 발견된 조개도 기본적으로 같은 얼개를 지녔다. 조개껍데기는 드릴의 날이 됐지만 갉아내는 대상이 목재보다 단단한 돌이어선지 톱니의 크기가 더 크다. 쉽웨이는 대개 배좀벌레조개는 손가락 크기에 비쩍 말랐지만, 돌을 먹는 조개는 통통하고 커서 아주 다르게 생겼다. 대체 어디서 필요한 영양분을 구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강바닥 여기저기엔 이 동물이 벌집처럼 구멍을 뚫어놓은 석회암이 놓여있다. 연구자가 해머로 단단한 석회암을 쪼개자 작은 터널 속에서 희고 통통한 벌레가 나온다. 연구자들은 10길이의 조개를 확인했다.

 

바위를 갉는 드릴의 날로 쓰이는 조개의 축소된 껍데기 전자현미경 사진. 루벤 쉽웨이 외 (2019) ‘영국 왕립학회보 생물학제공.

 

그렇다면 이 조개는 어떻게 돌을 갉아먹고 살 수 있을까. 바다에 사는 동료는 나뭇조각을 갉아 삼킨 뒤 특별한 주머니에 보관하고 그곳에 공생하는 세균이 분해한 영양분을 섭취한다연구자들이 주사전자현미경으로 확인한 결과 이 벌레의 위에서 암반과 같은 광물이 발견돼, 이 동물이 실제로 돌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지만 돌가루는 닭의 모래주머니처럼 다른 먹이를 분쇄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 자체에 영양분은 없다.

 

연구자들은 돌과 함께 섭취하는 조류, 세균, 식물체 등이 영양원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또 몸길이 만큼 긴 아가미와 그곳에서 사는 세균도 발견해 공생을 통한 먹이 섭취 가능성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동물이 무얼 먹고 사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분명한 건 이 동물이 생태계를 풍부하게 한다는 점이다. 석회암에 뚫어놓은 구멍에서 게, 새우, 다슬기 등 다양한 무척추동물이 발견됐다. 이런 구멍은 하천의 침식에도 영향을 끼쳐 장기적으로 강의 유로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

 

돌 먹는 배좀벌레조개로 인해 침식된 석회암 암반(a). 바위에 뚫은 구멍에 나와 있는 조개의 입수공과 출수공(b). 배좀벌레조개가 뚫어놓은 수많은 터널이 어지러운 석회암 암반. 침식을 통해 결국 하천 유로가 변경될 수도 있다(c). 루벤 쉽웨이 외 (2019) ‘영국 왕립학회보 생물학제공.

 

이번 발견은 고생물학에도 영향을 준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이제까지 화석이나 고고학 유적지에서 배좀벌레조개가 뚫어놓은 구멍들이 나오면 과거 바닷가 환경이었던 것으로 간주했지만, 이제부터는 담수환경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돌을 먹는 배좀벌레조개가 서식하는 곳이 이 강 일부 지점이 전부여서 보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돌을 갉아먹는 형질이 언젠가 생태계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유용할 가능성도 있다. 연구자들은 이 동물은 석회암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암석을 먹은 뒤 뱃속에 간직하다 미세한 돌 입자로 배출한다. 이런 전략은 우리가 아는 한 동물계에서 유일하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hipway JR, Altamia MA, Rosenberg G, Concepcion GP, Haygood MG, Distel DL. 2019 A rock-Boring and rockingesting freshwater bivalve (shipworm) from the Philippines. Proc. R. Soc. B 286: 20190434. http://dx.doi.org/10.1098/rspb.2019.043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불지옥이 온다”…때이른 폭염에 유럽 초비상
이번주 프랑스·스페인 최고기온 기록 갱신
 대서양 열대성 폭풍에 사하라 열기 덮쳐
2003년 폭염 7만명 사망 악몽 속 대책 분주
 유엔 “기후변화도 아파르트헤이트(차별)” 경고

“불지옥(inferno)이 닥쳐온다.”
스페인 공영 <라디오·티브이 방송공사>(RTVE)의 기상캐스터는 지난 24일 트위터로 주간예보를 전하면서 전국이 벌겋게 달아오른 기상도 위에 이렇게 썼다. “여름에 더운 건 당연하지만 이번처럼 집중적이고 강력한 열파는 정상이 아니”라고도 했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때이른 폭염이 유럽을 덮치고 있다. 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 등 일부 국가가 열파주의보를 발령하는 등 북유럽을 제외한 대다수 유럽 국가가 비상 태세에 돌입했다. 28일 금요일엔 스페인 북동부와 프랑스 남부 지역의 낮 최고기온이 섭씨 45도까지 치솟을 것이란 예보가 나왔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그렇게 되면 프랑스에서 역대 6월 최고 기록인 2003년 6월21일의 41.5도를 훨씬 웃돌 뿐 아니라, 그해 8월12일에 세워진 최고기온(44.1℃) 기록마저 경신하는 것이다.



유럽에 때이른 폭염이 닥친 25일,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근처 분수대에서 시민들이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파리/EPA 연합뉴스



스페인 <공영방송공사>(RTVE) 기상캐스터가 24일 트위터에 올린 주간예보. 전국이 벌겋게 달아오른 기상도 위에 “불지옥(inferno)이 닥쳐온다”고 썼다. 트위터 갈무리


기상학자들은 6월 마지막 주에 프랑스와 스페인 뿐 아니라 이탈리아·오스트리아·벨기에·체코·덴마크·독일·네덜란드·스위스 등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종전 최고기온 기록을 깰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의 한 기상학자는 트위터에 “1893년 연구소가 개설한 이래 관측해온 역대 6월 기온 기록이 (이번 주에) 2℃ 이상 높은 기온으로 갱신될 것”이라고 썼다.


유럽에서 6월에 이례적으로 높은 찜통더위가 닥친 것은 대서양 동쪽에 열대성 폭풍이 정체돼 있고 중·동부 유럽에는 고기압권이 버티고 있어 그 사이로 사하라사막에서 형성된 뜨거운 공기가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계절의 변화에 미처 적응하기 전인 초여름에 열파가 닥치는 것은 특히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럽은 2003년 폭염 때 프랑스에서만 1만5000명을 포함해 무려 7만명이 숨진 악몽이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사망자 대다수는 더위를 피하지 못했거나 냉방 대책이 없던 노약자와 빈곤층이었다.



25일 독일 베를린의 동물원에서 코끼리들이 몸에 물을 끼얹어 체온을 식히고 있다. 베를린/AFP 연합뉴스


각국 정부는 긴장하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프랑스 교육부는 이번주로 예정됐던 각급 학교 시험을 연기했으며, 교통부는 배기가스의 악영향을 우려해 오래된 자동차의 도심 운행을 금지했다. 파리시 당국은 밤 10시까지 대형 풀장 개방, 저소득층 지역에 임시 수영장 무료 개방, 대형 주차장 24시간 개방, 시청 특별 냉방실 운영, 거리 곳곳에 음용수대 확충, 노숙자들을 위한 샤워 시설 제공 등의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독일도 아스팔트 도로가 열기로 파손돼 교통사고를 유발할 것을 우려해 아우토반에 속도 제한을 도입했다.
한편 유엔 인권이사회의 필립 앨스턴 ‘극빈과 인권’ 특별보고관은 25일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세계가 기후 아파르트헤이트(차별)에 직면해 있다”며 각국 정부 차원의 대응을 촉구했다. 그는 “부유층은 폭염과 기아, 분쟁을 재력으로 회피하는 반면 세계의 나머지 인구가 고통을 떠안는 ‘기후 차별’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기후변화가 최근 50년간 이룬 경제발전과 공중보건, 빈곤 감소를 원점으로 돌릴 수 있으며, 2050년까지 개발도상국들에서 1억4000만명의 노숙자로 생겨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일상이 된 ‘커피’가 20년 뒤 사라진다
“앞으로 우리는 커피를 마실 수 없다”
향긋한 원두 커피로 아침을 시작하고, 샷 추가한 ‘아아’로 식곤증을 물리치고, 휴일엔 친구와 새로운 카페를 찾아다니며, 시간이 부족한 연인과 24시간 커피점까지 찾는 당신. 커피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지만, 커피의 여정을 궁금해하지는 않는다. 커피에 대해 더 알아보자 외쳐도 ‘어렵다’며 한 발, ‘맛만 알면 되지 않냐’며 두 발 물러설 뿐이다. 그러나 원산지와 재배자의 사정까지 알아야 하냐며 불평하기 이전에 커피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자각이 필요한 때다. 당신이 진정으로 커피를 좋아한다면 커피가 살아남기를 바랄 테니까.



“내일부터 커피를 마실 수 없습니다”
석유처럼 커피 보유량을 체크하며 국가적으로 커피 소비를 조절해야 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전 세계 하루 커피 소비량이 20억 잔이 넘고 매해 그 양은 늘어나는 추세인데다 기후 변화로 커피 수확량이 줄어 이미 커피 값이 비싸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1차적 문제다. 기후 변화엔 커피 씨를 말려 버릴 수 있는 위험성이 내포돼 있다. 2017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평균 지표온도가 2도 이상 높아진다면 중남미에서 생산되는 커피의 양이 최대 88%까지 줄어들고, 2040년에는 아라비카 커피종은 멸종할 것이라 예측했다. 호주 기후학회(The Climate Institute)의 경우 2080년에는 사실상 커피가 멸종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15~24도의 선선한 기후에 풍부한 강수량을 필요로 하며, 고온에서는 병충해를 입기 쉬워 고지대를 선호하는 예민한 작물이 바로 커피다. 브라질, 콜롬비아와 에티오피아, 베트남 등 적도 지역을 중심으로 커피가 자라는 일명, ‘커피 체인’이 형성된 것도 바로 기후적 영향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온난화로 인해 평균 온도가 상승하고 가뭄과 폭우가 잦아지는 통에 ‘커피 체인’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2014년에 세계 최대 원두 생산국인 ‘브라질’이 극심한 가뭄을 겪으며 전세계 원두값과 커피값이 상승한 바 있다. 콜롬비아에서는 2008년 고온에서 활동하는 커피 전염병, 녹병(Rust Outbreak)이 발생해 커피 생산량이 2007년 대비 31%나 감소했다. 그로 인해 농부들은 커피 재배를 포기했고, 소규모 커피 농사 지역은 지역 사회 전체가 위기를 겪어야 했으며, 브라질은 200여년 만에 처음으로 생두를 수입하는 사태를 맞이했다 (이하 기사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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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커피나무가 있었다!
인류는 커피를 정말 사랑한다. ‘세상에서 원유 다음으로 물동량이 많은 원자재’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한국인에게도 커피는 물처럼 많이 마시는 음료다. 성인 1인당 1년에 484잔을 마신다. 그런 커피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까. 커피가 주는 행복은 맛과 향뿐만이 아니다. 커피는 그 뛰어난 향미만큼이나 풍성한 이야기를 피워내는 묘한 마력을 지녔다.



세계 커피 생산량의 60~70%를 차지하는 아라비카 커피의 꽃과 열매. 원산지는 에티오피아다.

커피는 누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이를 두고 에티오피아와 예멘은 오래도록 경합을 벌였다. 아프리카(에티오피아)냐 아라비아 반도(예멘)냐, 그리스도 국가(에티오피아)냐, 이슬람 국가(예멘)냐의 자존심이 걸린 논쟁이기도 했다. 공방 끝에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유래했지만, 최초로 재배한 곳은 예멘”이라는 쪽으로 절충안이 나왔지만, 모를 일이다. 언제 어떤 숨은 이야기가 튀어나올지…. 기록된 역사가 반드시 진실이라곤 할 수 없다.

어떤 역사는 누군가가 꾸며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더욱이 기록하는 자가 사건의 당사자라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기록을 남기려는 유혹에 빠지리라.


칼디의 전설

에티오피아에선 지금도 전통 방식으로 커피 열매를 햇볕에 말린다. 수확한 열매가 땅에 닿아 썩지 않도록 ‘아프리카 베드’로 불리는 틀을 짜서 건조시킨다.

커피 입문자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재미난 이야기는 ‘염소지기 칼디(Kaldi)의 전설’일 것이다. 내용인즉 이렇다.

“아주 먼 옛날, 에티오피아의 계곡에 칼디라는 목동이 살았다. 염소를 계곡에 풀어놓았는데, 어느 날 늙은 염소가 힘이 솟구치는 듯 활발히 움직이며 젊은 염소들을 제압하는 게 아닌가. 가만히 살펴보니, 빨간 열매가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늙은 염소는 빨간 열매를 먹으면 기운차게 움직였다. 칼디는 그 이유가 궁금해 열매가 많이 달린 가지를 꺾어 마을의 지혜로운 사람(대체로 ‘수도승’으로 기록함)에게 가져다줬다.

칼디는 ‘어르신! 염소가 이 열매만 먹었다 하면 날뜁니다. 이유를 알려주세요’ 라고 청했다. 지혜로운 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거기에 두고 가거라’ 했다. 며칠이 지나 칼디가 지혜로운 자를 다시 찾았다. 그는 칼디를 보자마자 버선발로 뛰어나와 칼디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는 ‘열매를 더 갖다달라’고 애원했다. 그 열매를 먹고는 밤새 졸지 않고 기도를 잘 올렸다면서 마치 열매에 중독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칼디의 전설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우리네 구전동화 같은 이야기인데, 커피의 기원을 설명하는 정설처럼 굳어졌다. ‘칼디’라는 이름을 내건 카페나 원두 상표를 세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칼디가 어느 시대 사람이고, 언제부터 그들이 커피씨를 볶는 법을 깨우쳤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커피가 에티오피아에서 예멘으로 전해진 9세기보다 훨씬 이전이며, 어쩌면 기원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커피의 기원과 관련해 칼디나 에티오피아가 언급되면 그 시기를 구체적으로 적지 않고 ‘아주 먼 옛날’이라고만 한다.


칼디에 대해 말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기록으로 전해지면서 역사적 사실처럼 커피 애호가들을 매료시킨다. 비록 칼디가 우리를 관능적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커피의 향미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칼디의 존재 덕분에 커피 마시는 자리의 이야깃거리는 더욱 풍성해진다. ‘스토리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지만 여러 버전으로 전해지는 칼디 이야기의 허점을 파고 들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칼디를 양치기라고 해놓고는 커피 체리를 먹고 춤추는 염소를 봤다고 말하는 모순.  2~3세기의 일이라면서 칼디가 이슬람 수도승에게 커피를 전했다는 역사적 착각. 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한 것이 610년이니, 7세기 초 이전엔 이슬람 수도승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에티오피아 기원설



콜롬비아 명품 커피의 대명사인 안티오키아 커피 열매.

우리도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 1896년 아관파천 때라면서 고종황제에게 융드립한 커피를 제공하는 어느 영화 속 한 장면은 커피 애호가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커피를 필터링해 마시는 것은 그로부터 12년 뒤인 1908년 독일의 멜리타 여사가 도구를 만듦으로써 가능해졌다.

어쨌든 아랍의 적지 않은 역사학자가 자신들의 논문이나 저서에 칼디를 예멘의 목동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세계인을 열광시키는 커피가 ‘자랑스러운 이슬람의 문화’라는 논리를 완성하려면 커피의 기원 역시 이슬람 국가 어느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세월이 드러내주는 법. DNA 분석을 통해 커피나무의 기원이 아랍인들이 주장하듯 인류사에서 커피를 처음 경작한 자신들의 땅 예멘이 아니라 에티오피아 고원이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힘을 잃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에티오피아 고원에선 재래종 커피나무가 속속 발견된다. 커피의 기원지라고 말하려면 이처럼 원종(native variety)이 있어야 설득력을 지닌다.  에티오피아는 3000년 전 이스라엘의 솔로몬왕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메넬리크 1세가 초대 황제가 됐다는 건국신화를 가진 그리스도교 국가다. 지금도 크리스마스에 염소를 잡아 가족과 함께 나누며 축하하는 풍습이 있다.


에티오피아가 외세의 지배를 받은 것은 16세기 이슬람 교도에게 14년, 20세기 이탈리아에 5년뿐이다. 앞서 6세기쯤엔 당시 아비시니아(현재의 에티오피아)가 예멘을 포함한 아라비아 남부지역을 공격했다. 아마도 이때 예멘으로 커피가 전파됐을 것이란 게 에티오피아의 시각에서 본 커피의 역사다.

그렇다면 에티오피아인은 왜 커피의 기원에 대한 자신들의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걸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야기를 만들긴 했지만 퍼뜨리지 못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4대 커피 기원설(뒤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중 칼디, 오마르, 마호메트의 전설은 ‘커피의 각성효과’를 토대로 이슬람 쪽에서 만든 이야기라고 본다.

나머지 하나인 에티오피아 기원설은 각성효과가 아니라 ‘에너지 원천으로서의 커피’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로 흐른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유래설은 기록이 아니라 구전인 탓에 생명력을 지니기엔 부족했다. 커피의 기원에 대한 인류의 첫 기록은 이탈리아 로마대 언어학 교수인 안토니 파우스트 나이로니가 1671년에 쓴 ‘잠들지 않는 수도원’이다.


이 책에 “이슬람 수도승이 칼디가 준 커피 열매의 쓰임새를 몰라 불에 내던졌는데, 기분 좋은 향이 나자 볶은 콩을 갈아 따뜻한 물에 타서 먹었다”라고 적혀 있다. 칼디 때 이미 커피씨를 볶아 먹는 단계를 깨우쳤다는 말인데, 비약이 이 정도면 대단한 이야기꾼임에 분명하다.

이 이야기는 1922년 커피의 기원을 심도 있게 추적한 윌리엄 유커스의 ‘커피의 모든 것(All About Coffee)’에 인용되면서 정설처럼 됐다. 반면 에티오피아 기원설은 “커피나무 열매를 다른 곡류와 함께 갈아 식량으로 먹었다”는 기록 말고는 별 재미가 없다. 그렇다보니 칼디나 오마르, 심지어 지극히 종교적인 마호메트 기원설보다도 파급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기원설은 뿌리가 더 깊고 이야깃거리도 풍성하다.  커피 그 자체에 대한 첫 기록은 나이로니보다 700년 이상 앞선 서기 900년쯤 페르시아 의사 라제스가 남겼다. 그는 커피를 ‘번컴(Bunchum)’이라고 적었는데, ‘따뜻하면서도 독한, 그러나 위장에 유익한 음료’라고 표현했다.

이어 1000년경 무슬림 의사이자 철학자인 아비세나는 커피나무와 생두를 ‘분(Bunn)’, 그 음료를 ‘번컴’이라고 구별해 적으면서 약리효과도 기술했다. 두 사람의 기록은 커피의 기원지가 에티오피아임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지구상 어디를 뒤져도 커피를 ‘분나(Bunna)’ ‘부나(Buna)’ ‘분’ ‘번컴’이라고 부르는 곳은 에티오피아밖에 없다.

커피 원산지로 꼽히는 에티오피아의 카파(Kaffa)에선 지금도 커피를 지칭할 때 ‘c’나 ‘k’는 발음조차 하지 않는다. 에티오피아인들이 스토리텔링을 잘했다면 커피는 오늘날 번컴으로 불렸을지 모른다. 에티오피아인들 사이에 전해지는 커피 기원설도 꽤 흥미롭다. 사연은 이렇다.


승리의 상징  ‘커피 당구공’
에티오피아에 소를 키우며 사는 갈라(Galla)족이 있었다. 유목민인 이들은 자주 이동해야 했기에 간편하게 지니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것을 잘 만들었다. 그러던 중 체리처럼 빨간 열매를 씹으면 힘이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열매를 통째로 먹다가 그것의 에너지가 씨앗에 농축돼 있음을 깨닫고, 오랜 세월을 거쳐 열매를 동물성 기름과 섞어 볶아 당구공처럼 뭉쳐 가지고 다니며 힘을 써야 할 때 꺼내 먹었다.


이 방법은 여러 면에서 유용했다. 사냥을 하거나 새 주거지를 찾으려고 산속을 헤맬 때 ‘커피 당구공’은 비상식량으로 제격이었다. 입에 쏙 넣으면 곧 에너지가 불끈 솟아오르고 집중력도 바짝 높아지는 커피의 놀라운 능력은 다른 부족과의 전투를 앞뒀을 때 더욱 요긴했다.


칼디 시절에 에티오피아 부족들은 대부분 유목민이었다. 먹을 것이 떨어지면 주거지를 옮겨야 했기에 부족 간 마찰이 일었고 크고 작은 전투는 부족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했다. 목숨을 건 전투를 앞두고 각 부족은 커피의 각성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찾기에 골몰했다. 전투에 앞서 커피를 마시는 성스러운 의식(儀式)도 생겨났다. 의식은 커피 마시는 방법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들은 그 효과가 씨에 농축돼 있음을 깨닫고 씨만 골라내 볶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기분 좋은 향기는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키웠고 ‘톡톡’ 터지는 크랙 소리는 그들에게 승리를 약속하는 신의 응답이었다.


갈라족은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커피 당구공 식문화’를 퍼트린다. 갈라족보다 고지대에 살던 오로모족에게 커피가 전해지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커피나무는 해발고도가 높을수록 향미가 좋아진다. 오로모족이 더 좋은 커피 열매를 구하게 되면서 커피를 즐기는 문화는 급속히 퍼져나갔다. 에티오피아를 ‘커피의 고향’이라고 일컫는 것은 인류의 기원을 아프리카로 보는 관점과 비슷하다.


유전학적 측면에서 모계 유전하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역추적해 가계도를 거슬러 올라가보니 아프리카 대륙의 한 여성이 현 인류의 기원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미토콘드리아 이브(Mitochondria Eve)’라고 명명된 이 여성은 약 2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보다 오래된 물증은 화석인데, 에티오피아의 하다르 계곡에서 발견된 350만 년 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뼈 화석이 그것이다. 발굴단이 당시 비틀스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다이아몬드를 지닌 하늘의 루시)를 듣고 있다가 발견한 것이 인연이 돼 ‘루시’라는 이름을 얻은 이 화석의 주인공은 여성이었다. 현재까지 인류의 기원으로 대접받는다. 루시가 발굴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커피가 처음 발견된 지역으로 알려진 카파가 있다. 오늘날엔 짐마(Djimmah)라고 불린다. 


‘생명의 고향’ 에티오피아
45억 년인 지구 나이를 24시간으로 가정하면 루시를 선두로 인류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오후 11시 58분이다. 지구 역사 24시에서 인류가 등장한 것은 불과 2분 전의 일이다. 하물며 커피가 발견(6~7세기로 추정)된 지는 눈 깜짝할 사이보다 짧은 100분의 4초를 지나고 있을 뿐이다. 커피나무는 아마도 인류보다 훨씬 먼저 생명력을 얻어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험준한 산악지대로, 지금까지도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깊은 계곡이 많다. 식물학자들이 새로운 종자를 찾기 위해 몰려드는 곳이 에티오피아이고, 3000여 종의 종자가 그 유래를 에티오피아에 두고 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커피가 세계 각지로 퍼지면서 커피 품종의 다양성은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만 품종 개량이 이뤄진 탓이다. 품종의 획일화는 종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렇기에 야생 품종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 이것이 바로 커피의 기원지 에티오피아가 갖는 진정한 가치다.


압달 카디르가 1587년에 쓴 ‘커피의 합법성 논쟁과 관련한 무죄 주장’이란 문헌이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된 이 문헌에 칼디와 오마르(Omar)가 처음으로 언급된다. 칼디에 대해선 시기를 적지 않고 이집트 북부 또는 아비시니아 지방의 염소지기라고 소개하면서, 그에게서 열매를 받은 수도원 원장이 효능을 알게 된 후 수도사들에게 커피 열매 달인 즙을 마셔 밤새 기도하게 했다고 적었다. 


이슬람권에서 칼디의 전설은 ‘불면(不眠)의 수도원’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오마르에 대해선 1258년이라고 시기를 못 박으면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커피 열매를 달여 마신 사연을 적었다. 마호메트가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커피 열매를 알게 됐다는 이른바 ‘마호메트 기원설’은 그 출처를 알 수 없다. 무슬림들 사이에 구전돼 신화로 굳어진 듯하다.


마호메트의 커피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커피의 유래에 관한 에티오피아의 멋진 스토리텔링에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 기원설은 이슬람 문화권의 메카를 방문하는 ‘하지(Hajj)’라는 풍습에 무릎을 꿇고 만다. 당시 ‘커피를 몸속에 넣고 죽는 자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스토리가 만들어져 커피는 순식간에 전 세계 이슬람 국가에 퍼졌고, 결국 커피는 이슬람의 문화가 됐다. 그리스도 국가인 에티오피아가 커피의 원조이면서도 주도권을 잡지 못한 역사적 사실은 일면 “콘텐츠가 아무리 좋아도 유통(전파)이 약하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교훈을 준다.

커피가 마호메트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는 종교적이어서 커피 관련 교재에선 언급만 할 뿐 구체적으로 소개되지 않는다. 요지는 이렇다.


“마호메트가 동굴에서 수행을 하는데, 거의 죽을 지경이 됐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기력이 다해가는 상황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로 안내했다. 열매를 따먹은 마호메트는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2년간 가브리엘 천사가 꿈에 나타나 따라 읽으라며 이야기를 해주는데, 살아가는 데 매우 긴요한 것이었다고 한다. 마호메트는 꿈에서 깨면 천사가 해준 말을 잊지 않도록 양피에 적었다. 이것이 코란(Koran)이 됐다.” 


이슬람 국가에선 커피의 유래가 마호메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따라서 무슬림에게 커피는 아무리 일찍 잡아도 7세기를 넘지 못한다. 마호메트는 570년 4월 메카에서 이 지역을 지배하던 쿠라이시족의 하심(Hashim) 가문에서 태어났다. 유복자라 삼촌과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이 부족은 구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일의 자손이라고 주장한다. 아브라함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의 직계로 묘사되며, 따라서 마호메트는 하느님(무슬림에게는 알라)이 창조한 성스러운 아담의 핏줄이 된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 제단을 짓고 알라신에게 기도를 올렸는데, 노아의 방주를 거치면서 흔적이 사라졌다. 그것을 다시 찾아 신전으로 꾸민 인물이 아브라함이다. 다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위치를 잃어버린 신전을 되찾은 사람이 마호메트의 할아버지다. 마호메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 사망했기에 신전을 찾은 전설의 주인공은 할아버지가 됐다. 


신전은 찾아냈지만 다신교가 횡행하면서 메카의 신전은 온갖 잡신을 모아둔 공간으로 전락했다. 잡신을 모두 쫓아내고 유일신 알라만을 이곳에 모신 인물이 마호메트다. 그리고 이 신전이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카바(Kaaba) 신전이다.     5~6세기 아라비아 반도의 신앙 형태는 다신교였다. 애니미즘적 성격이 강한 원시 종교였다. 이에 앞서 서기 70년경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유대교인들이 아라비아 반도로 내려와 유일신의 맥락을 이어갔다.


최고급 커피 名所 된 예멘
6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사산왕조 간 전쟁으로 말미암아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왕래하던 대상들은 아라비아 반도를 지나는 것을 선호하게 됐다. 덕분에 메카는 교역의 중심이 됐다. 570년경 메카를 지배하던 부족이 마호메트가 속한 가문이었고, 마호메트는 25세 때 부유한 미망인 카디자에게 고용돼 사업을 크게 성공시켰다. 그는 40세 때 카디자와 결혼해 경제적 안정을 얻으면서 영향력 있는 지위를 얻었다.


610년쯤 그는 신들린 상태의 종교적 체험을 한다. 꿈에서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알라 이외엔 신이 없다는 유일신 사상을 갖게 되고, 이 사상을 주변에 전파해 종교적으로도 ‘성공’했다. 바로 이 대목에 커피 유래설이 끼어 있다. 무슬림은 마호메트에게 건강을 되찾게 해준 커피를 신성하게 여겼다. 커피를 몸에 담은 자는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팽배해져 무슬림이라면 모두 마셔야 하는 ‘이슬람의 음료’처럼 됐다.  


커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예멘은 아예 커피를 직접 재배하기에 이른다. 최우성 박사(감리교 태은교회 목사)에 따르면, 이와 관련해선 2가지 이론이 전해진다. 6세기 고대 에티오피아는 국력이 강해 홍해 건너 아라비아반도 서남부에 위치한 시바왕국(지금의 예멘지역)을 식민통치했는데 그때 자국의 야생 커피를 예멘 지역에 옮겨 심었다는 고대 에티오피아 식민지설, 1450년 에티오피아를 여행한 제말 에딘에 의해 커피 관목의 경작법과 음용법이 예멘에 전해졌다는 커피 경작법 유래설이다.

어느 이야기도 예멘을 커피나무의 고향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예멘의 토질과 기후가 커피 경작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기에 예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최고급 커피를 생산하는 명소로 찬사를 받게 된 것이 사실이다.


이 대목을 종교적 시각으로 살펴보면 더욱 흥미롭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공통 경전인 구약성경 창세기에 따르면 태초에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 신은 세상의 모든 동·식물을 만들었고, 땅엔 각종 씨 맺는 채소와 나무가 자라났다. 신은 세상을 창조한 후 에덴이라는 동산을 만들고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 동산을 다스리게 위임했다.

에덴동산엔 4개의 강이 흘렀는데 기혼, 비혼, 힛데겔, 유브라데다. 유브라데 강은 현재 이라크의 유프라테스 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혼 강은 구스온 땅에 두루 흐르고 있었는데, 그 곳은 아프리카 남부인 에티오피아 지역이다. ‘구스’는 에티오피아의 옛 이름이다. 이로 미뤄볼 때 에덴동산은 작은 지역을 의미하지 않고,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아프리카 남부까지를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커피나무 고향은 에덴동산
여기서 한 가지 가설이 성립된다. ‘커피나무의 고향은 에티오피아다. 에티오피아는 에덴의 강이 흐르던 곳이다. 그러므로 커피나무의 고향은 에덴동산이다.’ 구약성경의 구절을 추적해도 커피나무의 고향이 예멘이라는 주장은 에티오피아만큼 단단한 토대를 지니지 못한다.

이슬람도 구약성서를 믿는다. 더욱이 무슬림은 아담과 아브라함, 이스마일로 내려오는 혈통을 이어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에덴동산에 태초부터 커피나무가 있었다는 믿음은 설령 그곳이 자신들의 텃밭인 아라비아 반도가 아니라 그리스도 국가인 에티오피아라고 할지라도 그리 서운하게 받아들일 일은 아닐 성싶다.  
신동아 2016.6월호 박영순 바리스타,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생태와 진화 -메기 효과' 근거 없다포식자 공포가 사망률 늘려

토끼 실험서 사망률 증가 확인, 새끼까지 대물려 영향

 

겨울에 흰색으로 털 빛깔을 바꾸는 눈덧신토끼. 포식자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성체와 새끼의 사망률이 커졌다. 데날리 국립공원,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인터넷 뱅킹이나 넷플릭스 등 새롭게 등장한 강자가 시장에 끼치는 긍정적 영향을 흔히 메기 효과로 표현한다. 정치권이나 스포츠에서도 이 용어가 종종 쓰이지만, 정작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를 다루는 생태학에서 그런 효과의 근거는 전혀 없다.

 

포식자인 메기를 넣으면 피식자인 미꾸라지가 더욱 활기를 띤다는 얘기지만, 실제는 정반대로 포식자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먹잇감이 되는 동물은 스트레스에 쌓여 먹이 찾기와 짝짓기를 꺼리고 결국에는 사망률이 높아진다. 이를 다루는 공포의 생태학은 최근 학계의 큰 관심 분야이다.

 

잠자리 애벌레, 도마뱀, 메뚜기 등에서 그런 사례가 확인된다(관련 기사: '메기 효과', 그런 건 없어요). 나아가 포유동물을 대상으로 포식자 공포의 치명적 영향을 확인한 연구결과도 나왔다.

 

미꾸라지를 운반하거나 기르는 곳에 포식자인 메기를 넣으면,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활기를 띤다는 이른바 메기 효과는 생태학적으로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스트레스와 억압을 미화하는 부작용을 빚을 수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커스티 맥리오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생태학자 등 미국과 캐나다 연구자들은 지난해 과학저널 오이코스에 실린 논문에서 눈덧신토끼를 이용한 실험 결과 야생 포유류에서 처음으로 (직접 잡아먹히는 것이 아닌) 포식 위험만으로도 치명적 타격을 받는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눈덧신토끼는 북아메리카 북부에 널리 분포하는 동물로, 덧신을 신은 것 같은 커다란 뒷다리가 특징이다. 주요 포식자는 스라소니, 코요테, 올빼미, 매 등이다.

    

여우가 사냥한 눈덧신토끼의 머리를 물고 있다. 이제까지 생태학에서는 포식자에 의한 개체수 감소에만 관심이 있었지만 최근엔 직접 포식하지 않은 먹이동물의 공포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야생에서 포획한 눈덧신토끼를 은신이 가능한 우리에 넣은 뒤, 짖거나 토끼를 쫓고 물지 못하도록 훈련한 개에 노출하는 실험을 했다. 임신한 토끼에게 출산 전 보름 동안 이틀에 한 번씩 12분 동안 개를 우리에 들여보냈다. 개에 직접 물린 토끼는 없어도 공포의 효과는 뚜렷하게 드러났다. 포식자에 노출된 토끼는 다른 토끼보다 2배 이상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분비했다. 사망률도 증가했다. 개에 노출한 토끼 집단은 애초 20마리에서 6마리가 죽고, 태어난 새끼 가운데 젖을 뗄 때까지 2마리가 살아남아 16마리가 됐다. 개체수가 20% 감소한 셈이다.

 

포식자에 노출하지 않은 대조 집단은 성체 12마리가 19마리의 새끼를 낳아 모두 41마리가 됐다. 3배 이상 개체수가 불었다. 연구자들은 이 실험을 통해 포식자 공포에 노출된 성체의 생존율은 70% 줄었고, 새끼가 젖 뗄 때까지 살아남을 확률도 87% 감소했다고 밝혔다.

 

주목되는 건, 이번 연구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의 효과가 후대로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점이다. 어미뿐 아니라 새끼의 사망률이 높아졌고, 살아난 새끼는 스트레스에 더욱 민감한 성향이 됐다. 이전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스트레스를 받은 어미는 적은 수의 새끼를 낳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사망률이 높아진 까닭은 스트레스로 인한 직·간접 영향 때문이다. 새끼는 출생할 때 무게가 작았고, 어미는 젖 먹이는 횟수를 줄이거나 아예 젖 먹이기를 거부했다. 연구자들은 이런 스트레스의 영향은 사람이 전쟁이나 자연재해를 겪을 때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Kirsty J. MacLeod et al, Fear and lethality in snowshoe hares: the deadly effects of non-consumptive predation risk, Oikos, Volume 127, Issue 3 (2018) doi: 10.1111/oik.0489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새를 세는 일은 경보장치를 다듬는 일이다-미바튼 호수의 기적

2. 새를 세는 두가지 이유

 

미바튼 호수의 일몰과 새 무리.

 

행복한 이 피조물은 자기 스스로 만족하고 자기 힘으로 허공을 날아다닌다. 새는 자유의 상징이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 새란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이다. 봄이 되면 새가 돌아오고 허공을 기쁨과 노래로 가득 채운다.

어떤 새들은 가을이 되면 다시 떠나가지만 또다른 새들은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겨울을 지낸다. 우리는 새에 대해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 부러워하기도 한다. 우리는 날갯짓을 하며 허공을 날 순 없지만 새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들의 생태를 알아볼 수는 있다.

많은 새 관찰자들은 이 일을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목적에 맞게 새를 관찰하며 기록하고 새의 종류를 수집한다. 그들은 고급 망원경과 단망경, 전문서적과 기록노트를 갖추고 꼭두새벽에 일어나 새를 관찰하러 집을 나선다.

 

경보장치는 잘 작동하고 있는지

새의 개체 수 파악은 두 가지 기본적인 목적이 있다. 그 하나는 순수 학문적 목적이다. 개체 수를 파악함으로써 새의 개체군과 미바튼과 락사우에 있는 새의 숫자를 알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자연보호의 관점이다. 인간이 개입한 삶의 공간이 자연과 교감을 이루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를 세는 일은 일종의 경보장치와 같은 것이다.

 

새 무리

 

미바튼 자연연구소의 임무는 자연을 관찰하여 인간에게 다시 미칠 뜻하지 않은 변화가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물론 학문적, 그리고 자연보호적인 두 개의 관점은 서로 공통점을 지닌다. 미바튼 생태계의 보호는 현존하는 것을 기록할 뿐 아니라 이 삶의 공간이 왜 이렇고 어떠한가를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왕성한 활동이 벌어지는 봄에 새들을 관찰하는 일은 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그날 아침, 우리는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발길을 멈추고 한참 동안 한 쌍의 오리를 관찰하였다. 그 오리들은 우리 집 앞에 있는 못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수컷 오리들은 암컷들과 같이 무리를 지어 앉아 있었는데 암컷을 유혹하여 짝짓기 위한 것이 분명했다.

 

귀뿔논병아리

 

거기에서 좀 더 떨어진 곳에서는 귀뿔논병아리가 물 위에서 놀고 있었다. 수컷은 벌써 이미 화려한 깃털을 뽐내며 유유자적 헤엄을 치고, 암컷은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교만을 떨었다. 눈과 귀만 있으면 새를 관찰할 수 있다고 하지만 망원경이 있으면 새를 더 정확히 볼 수 있다. 좋은 망원경이 있으면 북방흰뺨오리의 녹색과 노란색의 독특한 눈도 볼 수 있다.

 

북방흰뺨오리

 

사람들은 북방흰뺨오리의 신기한 모습을 충분히 연구할 수 있고,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스포츠 스타와 수퍼모델처럼 폼을 내는 새의 모든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북방흰뺨오리는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물 위를 이리저리 뱅뱅 돌며 모기를 잡아먹는다. 이 새들은 봄이 오면 충분한 먹이를 먹고 알을 낳는 일에만 몰두하면서 자신의 몸무게와 맞먹을 정도의 알을 낳는다.

 

지느러미발도요

 

여기 사람들이 헤엄치는 병아리라고 부르는 지느러미발도요새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대여섯 마리가 호숫가에서 가까운 수면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 새들은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지느러미발도요새는 가장 신비로운 새로 여겨졌는데 봄이 되면 그들이 어디에서 날아오는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덧 그 비밀이 풀리게 되었다. 지느러미발도요새는 페루의 해안가에서 겨울을 난다. 이 새는 암수의 역할 분담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지느러미발도요새는 암컷이 더 크고 깃털이 화려하고 암컷이 짝짓기를 주도하면서 수컷을 놓고 암컷들이 싸운다. 그리고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부화를 시킨다.

 

나는 이상하고 예쁜 새로부터 눈길을 돌려 나의 새 개체 수 기록리스트를 들여다보았다. 그 기록노트는 고문서와 같은 노란색이었고 줄이 쳐진 것이었다. 각 페이지의 첫 줄에는 개체 수를 파악할 때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오리와 새 종류 이름의 처음 알파벳 세 개를 적어놓았다. 한 종류의 새를 세 개의 줄에 기록했다.

 

검은머리흰죽지오리

 

 

첫 줄에 한쌍의 새를 의미하는 P, 두 번째 줄에 수컷의 상징 , 그 아랫줄에는 암컷의 상징 을 표시했다.

새들이 출현하는 빈도에 따라 리스트도 만들었다. 댕기흰죽지오리, 검은머리흰죽지오리, 홍머리오리, 북방흰뺨오리, 바다비오리, 검둥오리, 긴꼬리오리, 청둥오리, 쇠오리, 알락오리, 고방오리, 흰줄박이오리, 귀뿔논병아리, 회색기러기.

 

기록노트의 맨 아래에는 비교적 개체 수가 적은 새의 종류를 적어놓았다. 분홍발기러기, 큰고니, 아비목오리, 비오리, 흑꼬리도요새, 아비오리, 큰까마귀. 그리고 우리는 검은가슴물떼새, 중부리도요새, 모든 참새들도 기록했다. 미처 알지 못하는 새나 아주 드문 새를 위해 빈칸을 마련해두었다. 하다못해 집오리까지 모든 새를 기록했다.

 

온 신경을 집중하는 일

조류학자는 삼각대를 세워놓고 그 위에 커다란 망원경을 설치한다. 그리고 새의 숫자를 세기 전에 그 지역을 어느 정도 관찰한다. 기록담당자는 땅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새의 기록노트가 끼워진 클립보드를 들고 연필을 꺼내든다. 그러고 나면 잘 듣고 정확히 기록하는 일만 남는다. 기록담당자는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새를 기록하고 세는 일은 인간이 자연과 잘 교감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렇게 아침이 지날 때까지 개체 수 세기는 계속되었다. 조류학자는 망원경을 통해 수면 위를 뚫어지게 관찰했다. 그는 거의 보이지 않는 호수 저 멀리에 점점이 떠 있는 새들의 종류를 확인하고 숫자를 불러주었다. 기록담당자는 기록노트에 올바르게 연필로 표시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기록노트에서 눈을 떼지 않고 정신을 집중해야만 했다.

춥지만 아름다운 이 아침은 앞날이 기대되는 순간이자 일 년 동안의 새의 개체 수를 파악하는 데 아주 좋은 출발이었다.

글 운누르 외쿨스도티르 <미바튼 호수의 기적> 저자, 번역 서경홍

사진 출판사 북레시피제공, 그림 아르니 에인아르손

 



                                 우포늪 주영학씨 2008년 뉴트리아 (중앙포토)



과학시간에 창조론도 가르쳐야 할까?

진화론은 과학이다라는 플래카드가 필요한 상황 


 

2012810일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한국 대 일본 3-4위전에서 승리 후 관중으로부터 받은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경기장을 달리고 있는 박종우 선수 <출처 : 연합뉴스>

 

2012810일 영국 밀레니엄스타디움의 올림픽 축구경기장 시상대에는 박종우 선수가 보이지 않았다. 경기가 끝나고 승리의 세리모니를 하던 그가 관중으로부터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받아들고 경기장을 뛰어다닌 것이 문제였다. IOC는 그의 행동이 경기장에서 정치적 활동을 금한다는 자체 규정을 위반한 사례로 보고 메달 박탈 등의 징계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장 구자철 선수는 골 이후에 독도 세리머니를 생각했었다니 더 큰 논란이 생길 뻔 했다. 그런데 왜 안 했다는 것인가? “하지만 생각해보니 할 필요가 없었어요. 원래 우리 땅이잖아요. 그래서 만세 세리머니를 했죠.”

 

맞다. 독도는 우리 땅이다. 당연한 사실이기에 떠들 필요도 없다. 하지만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플래카드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 또한 존재한다(박종우 선수의 행동이 적절했는지는 다른 문제다). 억지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는 무시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최선책이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단호하고 직접적인 대응도 필요하다.

 

과학의 세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과학자 사회는 진화론을 성숙한 과학 이론으로 받아들인 지 오래인데,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며 다른 입장도 가르치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진화론은 훌륭한 과학 이론이니 그들의 억지 주장을 그냥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때로는 진화론은 과학이라는 플래카드를 들어보여야 할 만큼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국, 창조론자들 요구에 항복하다”- 네이처

한 창조론 옹호 단체가 과학교과서에서 진화의 일부 사례를 삭제해달라는 청원을 교과부에 제출했습니다. 교과서 집필자들이 그것을 받아들였구요. 이 사건에 대해서 진화학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러니까 지난 5월 중순경이다. 모 일간지 기자가 이 사태에 대해 전화로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그땐 나도 교과서 저자들이 내리 두 건(시조새와 말의 진화 관련)이나 청원을 수용하기로 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한국의 창조과학 옹호 단체인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이하, 교진추)가 작년 12월과 올 4월에 각각 고등학교 과학교과서의 시조새 부분과 말의 진화 부분에 대해 삭제 및 수정을 요구하는 청원서들을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에 제출했다. 이에 교과서의 저자들이 올 1월과 5월에 청원서의 요구 사항대로 관련 내용을 삭제 또는 수정하겠다는 답변을 교과부를 통해 교진추 측에 전달했다.

 

[한국이 창조론자들의 요구에 항복하다]라는 제목의 <네이처> 기사 제목

 

이런 사실은 5월 중순에 일반에 알려졌다. 하지만 웬일인지 처음에 국내 언론과 학계는 이 문제에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다 67일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Nature>집중 취재코너에서 [한국이 창조론자들의 요구에 항복하다]라는 다소 선정적인 제목의 한 쪽짜리 기사를 내자 상황이 급하게 돌아갔다. 이 기사가 국내 언론과 여론은 물론 해외 네티즌들까지도 자극했기 때문이다. 곧 전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가 시작되었다. 관련 학계도 공식적인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첫 번째 대응은 관련 학계가 교진추 청원서에 대한 반박문을 작성하여 언론에 배포한 일이었고, 두 번째 대응은 교진추 청원서에 대한 기각 청원서를 교과부에 제출한 일이었다. 이 일에는 한국 고생물학회, 한국 진화학회 추진위원회, 한국생물과학협회 등 한국의 생물 관련 학계가 모두 나섰다.

 

물론 그동안 과학자들이 창조과학 옹호자들을 상대해주지 않았던 것은 무서워서가 아니다. 대응해주는 순간 그들을 과학의 링 위에 올려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이 면에서 독도 문제와 유사하다). 하지만 그들은 절차의 사각지대를 통해 이미 링 위에 올라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시 보다는 정확하고 분명한 응대가 더 필요한 일이었다.

시조새와 말의 진화 대한 반론은 억지에 불과하다


대체 교진추는 무슨 근거로 시조새와 말의 진화에 대한 과학교과서의 내용을 문제 삼았을까? 그 청원서를 입수하기 전에는 혹시 창의적 반론이 있지나 않을까 내심 기대도 했었다. 하지만 기대는 한숨으로 바뀌었다. 먼저 시조새(Archaeopteryx)의 계통학적 위치에 관한 교진추의 반론부터 간략하게 짚어보자. 그들은 학계가 시조새를 멸종된 조류 또는 깃털 달린 공룡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시조새가 공룡과 조류의 중간 종이라는 교과서의 기술은 삭제되거나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시조새는 공룡과 조류의 중간 종이 아니라는 것이다(교진추 개정청원위원회 2011).

 

미국 서모폴리스(Thermopolis) 와이오밍 공룡센터에 전시중인 시조새 화석. 10번째로 알려진 시조새 화석으로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것으로 평가된다. <출처 : (cc) Stephan Schulz>

 

물론 이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그들은 시조새가 중간 종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만, 전 세계 고생물학계의 한결같은 결론은 시조새가 수각류 공룡과 현생조류의 중간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멸종된 원시조류라는 것이다. 시조새는 현생조류와 달리 이빨이 있고 긴 꼬리뼈를 가졌으며 세 개의 앞발톱이 공룡처럼 발달해 있고 흉골이 매우 작다. 그래서 깃털을 제외한 골격학적 특성만으로는 수각류 공룡에 더 가깝다. 하지만 시조새는 수각류 공룡에서 현생조류로 이어지는 계통적 관계에서 그 중간 어딘가를 차지하는 멸종된 원시조류이다. 그리고 이런 원시조류들은 시조새 말고도 수십 종이 더 발견되었다(Chiappe & Witmer 2002; Zhou 2004). 고생물학계 내부의 실제 논쟁은 이 시조새가 그 수십 종들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계통학적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가에 관한 것일 뿐, 시조새가 중간 종인가 아닌가, 또는 진화의 사례인가 아닌가가 아니다(Plum 2003). 따라서 시조새는 공룡에서 조류로 이어지는 진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며, 이에 대해 기술한 현행 과학교과서의 내용에는 큰 문제가 없다.

 

시조새는 수각류 공룡에서 현생조류로 이어지는 계통적 관계에서 그 중간 어딘가를 차지하는 멸종된 원시조류이다.<출처 : Plum 2003 >

 

(horse)의 진화에 대한 교진추의 주장은 또 어떤가? 그들은 말이 몸집이 커지고 발가락 수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진화했다는 말의 화석 계열은 상상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교진추 개정청원위원회 2012). 하지만 말의 진화가 하이라코테리움(Hyracotherium)에서 현생 말(Equus)로 직선적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하는 현대 고생물학자는 없다. 또한 말의 몸집과 발가락 수가 어떤 추세(trend)를 보이며 진화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쯤은 모두 알고 있다. 왜냐하면 현생 말은 역사상 존재했던 여러 종의 멸절한 다른 말들과는 달리 정말 운 좋게 살아남은 종일뿐이기 때문이다(MacFadden 2005). 몸집이 커지고 발가락 수가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어야 할 본질적 특성은 없다는 이야기다.

 

다만 몇몇 교과서에 실린 말의 직선형진화 패턴은 학생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소지를 갖고 있다. 이는 교과서 집필진들이 진화론의 핵심 중 하나인 생명의 나무(tree of life)’ 개념을 명확히 표현하지 못했거나, 고생물학계의 새로운 연구 결과들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했기에 생긴 일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말의 진화를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결정이다. 진화의 패턴이 매우 복잡할 뿐 말도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말의 진화를 보여주는 생명의 나무현생 말(Equus)은 말의 조상 하이라코테리움(Hyracotherium)에서 복잡한 패턴의 진화를 거친 끝에 운 좋게, 그리고 유일하게 살아남았다.<출처 : MacFadden 2005 >

 

학계의 공식 반박과, 교진추 청원에 대한 기각 청원이 있은 후, 교과부는 전문협의기구를 통해 현행 과학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을 검토하고 학계의 지배적인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이에 따라 교과부는 과학계의 원로들이 모여있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 교과서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요청하게 되는데, 과학기술한림원은 이를 검토해 '진화론과 관련된 부분은 절대 삭제해서는 안 되며, 다만 일부 오해할 소지가 있는 부분은 최신 과학 연구 결과를 반영해 더욱 분명하게 서술해야 한다'는 결과를 내 놓았다. 또한, 과학기술한림원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진화론은 모든 학생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할 현대 과학의 핵심 이론"이라고 강조했다. , 교진추의 청원은 오히려 진화론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면서 마무리되었다. 이것이 지난 몇 달 사이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과학교과서 파문의 개요다.

 

그러나, 진화론을 믿지 않은 사람이 30%나 된다.

하지만 이상하게 뒷맛이 영 개운하지 않다. 2009EBS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 중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전 인구의 30% 정도이다. 더욱이 창조론을 진화론과 함께 가르치자는 쪽에 손을 든 사람은 무려 60% 정도나 된다. 더욱 황당한 것은 진화론을 믿지 않는 이유 중에서 진화론이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항목에 답한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는 사실이다(EBS 다큐팀 2009). 최근의 교과서 파문 때문에 학계와 언론이 한국의 반진화론 운동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이긴 하지만, 일반 국민의 의식 자체가 순식간에 크게 달라질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이 당혹스런 통계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물론 일선 고등학교의 과학 시간에 진화론 교육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게다가 대학에서의 진화론 교육은 더욱 실망스럽다. ‘일반생물학같은 수업을 듣게 되면 대개 이런 식이지 않았는가? “진화 부분은 여러분이 중고등학교 때 이미 다 배웠으니 시간도 없고 해서 그냥 넘어갑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진화가 과학적 사실이라는 점을 의심하는 시민들을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큰 책임은 진화학자, 생물교육학자, 교과서 집필자, 교사들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진화론은 원숭이가 우리의 조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데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진화론 교육의 불충분함이 진화론 불신의 한 이유다. 원숭이는 우리와 조상을 공유하고 있는 사촌종이다.

 

하지만 허술한 진화론 교육만이 문제일까? 나는 과학의 본성에 대한 오해도 진화론을 과학으로 인정하지 않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그 오해는 창조론도 과학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요인일 수 있다. 이번 파문에서 교진추 쪽 사람들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주장이 있다. 그것은 진화론은 과학이 아니라 신념일 뿐이며 기껏해야 가설에 불과하다는 발언이다. “창조론이 신념이라면 진화론도 신념일 뿐이라는 이른바 물귀신 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대체 과학을 무엇으로 보기에 이런 무모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로 진화론도 신념일 뿐일까? 과학적 진술과 일반적 신념 사이의 차이를 알아야 이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크게는 어떤 류의 활동이 과학인가’, ‘과학과 사이비과학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과학이론들은 어떻게 선택되는가?’와 같은 과학의 본성에 관한 물음들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는가도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진화론이 과학적이지 않다과학이 무엇이길래?

그런데 문제는 이 질문들에 제대로 답하려면 20세기 과학철학의 역사를 훑어봐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절대로 만만한 작업이 아니며 내용도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지난 한 세기 동안 과학의 본성에 대한 큰 논쟁을 이끌었던 대표적 과학철학자들이 과학의 본성과 창조론의 지위에 관해 어떤 입장인지를 검토해보는 식으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 학자로는 칼 포퍼(Karl R. Popper), 토마스 쿤(Thomas S. Kuhn), 임레 라카토슈(Imre Lakatos), 그리고 폴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 정도가 해당될 것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과학의 본성에 대해 포퍼는 반증주의 이론, 쿤은 패러다임 이론, 라카토슈는 연구 프로그램 이론, 파이어아벤트는 무정부주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들이 우리의 논의 주제들에 대해 어떻게 달리 대답하는지를 핵심적으로 정리해보자.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과학이란 무엇인가? 둘째, 창조론은 과학인가? 셋째, 창조론을 진화론과 함께 학교에서 가르칠 필요가 있는가?

 

과학이 무엇인가? 답은 44

그럼 첫 번째 질문부터 검토해보자. 대체 과학이란 무엇인가? 포퍼의 반증주의에 따르면, 반증이 가능해야 과학적 진술이라 할 수 있다. , 반박할 수 있는 경험적 내용이 없는 진술은 과학적 진술이라 할 수 없다. 과학자란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대담한 가설을 세우고 경험적으로 참인지 거짓인지를 혹독하게 시험해보는 사람들이다. 이 과정에서 반례가 발견되면 지체 없이 자신의 가설을 폐기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이 위대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 인류가 발명한 가장 비판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포퍼는 끊임없는 비판이 과학의 핵심이며 과학의 객관성과 합리성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쿤은 자신의 명저 [과학혁명의 구조](1962)에서 과학의 본성에 대해 매우 다른 입장을 제시한다. 그는 과학의 실제 역사와 과학자들의 실제 활동을 분석함으로써 과학은 비판적 작업임과 동시에 순응적 활동이라고 결론내렸다. 예컨대 과학자들은 반례가 나와도 자신들이 믿고 있는 이론을 금방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례를 무시한다. 그래서 언뜻 보면 매우 부정직한 집단 같이 보이기도 한다. 특히 반증주의자인 포퍼의 관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쿤은 과학에는 뚝심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 어떤 이론이 난제를 잘 해결했다고 한다면 그 이론에 힘을 실어 주는 게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뭔가 역량이 되는 이론일 것이기 때문이다. 반례가 나왔다고 해서 곧바로 이론을 문제 삼는 건 비판적인 태도일지는 몰라도 꼭 합리적인 태도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쿤은 과학에 비판만 있다면 거기에는 아무런 진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쿤은 포퍼와는 달리 과학을 이론을 시험하는 활동이라기보다는 이론에 기반한 활동으로 보았다. 이렇게 과학에서 도그마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을 그는 패러다임이라고 부른다.

 

다소 위험한 발상이지 않나? 과학에 어찌 도그마가 있단 말인가? 쿤의 패러다임 이론이 맞다면 양자역학과 점성술이 뭐가 다르겠는가? 점성술도 과학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반문에 대해 쿤처럼 과학의 역사성을 강조한 파이어아벤트는 쿤과는 달리 우회로를 찾지 않았다. 파이어아벤트에 따르면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며 점성술도 과학이랄 수 있다. 그는 과학의 역사를 직시하라고 말한다. 뉴턴, 갈릴레오 같이 위대한 과학자들은 포퍼의 반증주의도 쿤의 패러다임 이론이 제시하는 방법론도 따른 바 없다. 오히려 가능한 한 다양하고 참신한 가설들을 어떠한 제약도 없이 증식시키는 것이야말로 과학을 과학답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것이다. 파이어아벤트는 쿤이 과학자들의 일상적인 활동을 마치 깡패 집단의 활동처럼 그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쿤 식으로라면 과학자는 패러다임에게 순응하면서 이단적 생각은 꿈도 못 꾸기 때문이다. 파이어아벤트는 이것이야말로 상상력과 창의성을 말살하는 방법론이며 인류의 지성을 퇴보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너무 극단적이라고 느껴지는가?

 

한편 라카토슈는 포퍼, , 파이어아벤트의 사이에서 균형추를 찾으려 했다. 그는 쿤처럼 과학 활동에 독단적 요소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인정했다. 그것을 견고한 핵이라고 불렀다. 반례가 생겨도 당분간 이 핵은 끄떡없다. 대신 과학자들은 그 주변부의 소소한 가설들을 이리저리 수정해 본다. 그 반례가 해결될 때까지 말이다. 그래도 안 되면 그때서야 그 핵이 의심받기 시작하고 결국 혁명 비슷한 것이 일어날 조건이 된다. 하지만 보조 가설들로 위기를 막아낼 때 땜질하는 것만으로는 과학의 조건이 만족되지 않는다. 땜질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라카토슈는 이 정도의 잠재력을 가진 이론만을 과학이라고 부른다.

 

물론 포퍼는 과학에서 독단적 요소를 인정하는 라카토슈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파이어아벤트는 그것을 범죄 취급할 것이다. 지식의 자유 시장에서 보호 무역을 한다는 것은 반칙이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이론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판을 짜주는 것이 과학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보았다. 반면 쿤에게는 자유 경쟁이 절대선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군소 이론이 난립할 것이고 과학은 혼돈 그 자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과학이 인문사회학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라고 한다. 인문사회학 쪽은 군소 이론들만 난무할 뿐 자연과학에서 엄존하는 패러다임이랄 만한 게 없다. 쿤에 의하면 과학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과학자 사회가 어떤 시점이 되면 한 이론에 대해 매우 인상적인 합의에 이른다는 점이다. , 패러다임이 없는 활동은 과학이랄 수 없다는 것이다.

 
















창조론은 과학인가, 아니면 사이비 과학인가?

이쯤 되면 독자들은 참 난감해질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차이가 나니 말이다. 그러나 과학의 본성에 대해 이렇게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는 것은 진실이다. 이 진실을 받아들인 후에야 창조론이 과학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논의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창조론이 과학인지 아닌지에 대해 물을 때[여기서 창조론은 창조과학(creation science)’과 최근의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 theory)’을 모두 지칭한다], 대체 과학의 본성에 대한 어떤 입장에서 묻는지부터 명시해야 한다. 창조론은 과학인가, 아니면 사이비과학인가?

 

우선 급진주의자 파이어아벤트부터 살펴보자. 그는 과학에게만 있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 다양하고 참신한 가설들을 증식하는 것이 최선이라면 창조론도 충분히 과학의 배양접시에 올려질 수 있다. 특히, 과학 혁명이 기존 이론과 충돌하는 새 이론의 도전을 통해 이룩되었다고 했을 때, 창조론은 기존 진화론의 훌륭한 대항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자연세계가 초자연적 원인에 의해서도 변한다는 창조론자들의 생각을 아주 멋지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파이어아벤트는 과학의 문을 너무 활짝 열어줘서 누구든 과학의 극장에 들어오게 했다. 그에게 미신과 과학은 종이 한 장 차이도 아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떠받드는 참신성과 다양성은 그것 자체로 절대 가치가 될 수는 없다. 정작 기존 과학자 사회는 창조론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무정부주의적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과학자들이 기득권을 놓지 않아서가 아니다. 창조론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어도 줄 점수가 없기 때문이다.

 

창조론에 과학 클럽의 입장권을 주려는 시도에 대해 가장 큰 반대를 할 사람은 아마도 포퍼일 것이다. 사실, 지난 90년대부터 미국에서 급부상한 지적 설계론은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이론이다. 다윈 이전의 서양 사람들이 믿어온 자연관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포퍼는 틀림없이 이 이론이 반증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할 것이다. “자연계에는 너무 복잡해서 자연적 진화 과정으로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현상들이 있다는 가설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경험적 증거들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 증거가 실제로있고 없고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창조론은 기본적으로 반증가능하지 않단 말이다. ‘신이 설계했다는데 그걸 입증하거나 반증할만한 사례를 어디서 찾겠는가?

 

그렇다면 쿤도 창조론이 과학이 아니라는 점에 동의할까? 대답은 이지만, 그런 결론을 내리는 이유는 상당히 다를 것이다. 쿤에 의하면, 어떤 이론이 성숙한 과학이 되려면 아까 언급한 패러다임 같은 것이 있어야한다. , 매우 인상적인 문제 풀이 사례가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창조론에 그런 게 있는가? 우리는 진화론이 성숙한 과학이라는 데 동의한다.진화론은 다양하고 복잡한 자연계의 변화를 설명해줄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지난 150 여 년 동안 패러다임으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해왔다. 생명의 변화와 다양성에 대한 난제들을 매우 성공적으로 풀어왔고, 관련된 학회가 만들어졌고, 대학에서 학자들도 길러냈고, 관련 분야의 연구 논문과 도서가 쏟아졌으며, 지금도 연일 새로운 발견들이 나오고 있다. 패러다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문제는 창조론에서도 이와 비슷한 게 있느냐는 것이다. 쿤의 대답은 명확히 아니오.

 

 

창조론은 왜 진화론 패러다임을 뒤엎는 대안적 패러다임이 될 수 없단 말인가? 쿤에 따르면 옛 패러다임이 새 패러다임으로 교체되는 과학 혁명기에 과학자들은 옛 패러다임에 대한 엄청난 위기감을 갖는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는 불안감 말이다. 진화론 패러다임 속에 있는 과학자들이 과연 그런 종류의 위기감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물론 언제나 투덜이는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진화론은 아직 갈 때까지도 못간 이론’, 다시 말해, ‘아직도 탐구할 것들이 많이 남은 이론이라는 생각에 거의 동의한다. 이런 마당에 창조론자들이 지적 설계론이라는 새 브랜드를 들고 나와 혁명운운하는 것은 과학의 본성에 대한 무지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쿤이 창조론을 대안적 패러다임으로 고려하지 않는 이유는, 진화론에 대한 대안적 과학이 등장하기 위한 전제 조건부터가 아직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카토슈도 진화론의 기득권을 인정해 준다. 그의 기준으로 보면 진화론은 진보적인 연구 프로그램이다. 과학의 역사를 보면 진화론은 그동안 반례들을 잘 처리해왔고 새로운 예측들도 많이 해냈으며 그 중 많은 것들이 입증되기도 했다. 반면 그는 창조론을 비과학이나 저질과학을 넘어서 사이비과학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대체 무엇이 반례인지조차 알려주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예측이라고 내 놓을 수 있는 것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창조론자들의 주장처럼 너무 복잡해서 신의 설계로밖에는 설명될 수 없는 현상들이 많다고 해보자. 대체 이런 믿음에서 어떤 새로운 현상들이 예측된단 말인가? ‘기존의 진화론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는 비판은 선거 전략으로 치면 네거티브 캠페인일 뿐이고 흠집 내기 정도라 할 수 있다. 그것으로는 선거에서 이겨 과학이라는 정권을 잡을 수는 없다. 포지티브한 뭔가가 필요하다.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가?

지금까지 대표적 과학철학자들이 과학이란 무엇인가창조론은 과학인가라는 물음에 어떤 대답을 내놓았는지를 정리해보았다.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44색이었는데, 창조론이 과학인지 아닌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파이어아벤트만 입장이 달랐다. 이제 가장 현실적인 질문만이 남았다. 창조론도 진화론과 함께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 국민은 이 질문에 대해 60%이상이 찬성한다. 과학철학자들은 어떻게 답할까?

 

포퍼는 과학의 영역으로 불법이민 오려는 사이비과학을 몰아내기 위해 앞장서 온 사람이다. 마르크스 정치경제 이론과 프로이트의 심리 이론이 과학의 영역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부분적으로는 그의 이 같은 노력의 결과이다. 그에 따르면 이 이론들을 과학이론으로 가르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창조론도 마찬가지다. 창조론은 입장권도 구입하지 않고(반증주의적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고), 과학의 극장에 들어가려는 사이비과학의 전형이다. 사이비과학을 과학 교과서에 수록해 놓고 진화론과 동등하게 가르치는 것은 인간 지성의 퇴보를 가져올 뿐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마술을 허하라고 외치는 파이어아벤트의 입장에서는 창조론을 과학시간에 가르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다른 전제에서 출발한 다른 유형의 지식을 단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지식의 보고 속에 담지 않으려는 것이야 말로 퇴보다. 그의 입장에서 창조론은 인류의 상상력과 다양성 측면에서라도 과학 수업에 들어와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라카토슈라면, “그렇다면 지적 설계론도 가르치는 김에 아예 교과서에 지구에 소풍 나온 외계인이 빵 부스러기를 흘린 것이 생명의 기원이라는 이론도 끼워넣지 그러는가?”라고 할 것이다. '우리가 파이어아벤트보다 상상력이 부족해서 그런 이야기를 못 만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문제는 그런 무수한 이야기들 중에서 어떤 게 말이 되고 어떤 것이 허접쓰레기인지를 가리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 라카토슈의 생각이다. 파이어아벤트는 늘 상상력만 강조하지 어떤 것이 경험적으로 말이 되는 상상력인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라카토슈가 보기에는 과학자는 소설가가 아니다.

 

쿤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과학 교과서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에 의하면 어떤 이론을 교과서에 싣고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중요하다. 교과서를 통해 범례(exemplar)를 학습하기 때문이다. 쿤은 패러다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범례라는 것을 도입했다. 매우 전형적이고 인상적인 문제 풀이를 일컫는 용어이다. 수학으로 치면 필수예제에 해당된다. 우리들은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그 범례들을 학습하고 그러면서 응용력을 키운다. 가령, 자유 낙하하는 돌멩이의 운동이나 시계추의 운동이 결국은 동일한 법칙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범례 학습예제 풀기를 넘어선다. 세계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고 어떤 법칙들로 움직이며 어떤 관계들을 가지는가를 암암리에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격도 없는 것이 범례 행세를 하며 교과서에 등장해서는 안 된다. 창조론이 딱 거기에 해당된다. 쿤의 논리대로라면 창조론은 매우 인상적인 문제 풀이같은 것이 없는 무능한 이론이기에 교과서에서 등장해서는 안 된다. 반면 진화론은 범례가 있고 그 범례에서 파생된 또 다른 흥미로운 문제들로 가득 차 있다. 틀림없이 쿤은 다음과 같이 결론내릴 것이다. 창조론은 과학 시간에 가르쳐서도 안 되지만, 가르치려 해도 거기에는 가르칠 만한 내용이 없다!

 

교양을 진화시킨 엔진, 현대 진화론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과학의 본성에 대해 과학철학자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무정부주의적 과학관을 피력한 파이어아벤트를 제외한다면, 학자들 대부분은 창조론은 아직 과학의 극장에 입장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독자들도 이런 사실을 이해한다면 과학 시간에 창조론도 함께 가르치자라는 주장에 대해 나름의 판단의 기준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는 이 지면을 통해 빅 퀘스천을 던지고자 한다. 이 큰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배움이란 무엇인가’, ‘경쟁이란 무엇인가’, ‘도덕이란 무엇인가’, ‘가치란 무엇인가’,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공감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누가 감히 이에 대해 만족스러운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젠 이런 큰 질문은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플라톤이나 공자 정도나 묻고 답했던 것들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이 빅 퀘스천은 우리 삶의 근본에 관한 물음이며 영속적 가치를 지니는 것들이다.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없어지는 질문들이 아니다. 오히려 현대적 시각에서 다시 대답되어야 할 화두인 것이다.

 

물론 나는 어림도 없다. 하지만 현대 과학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놀랍게도 현대 과학(진화론, 유전학, 뇌과학, 심리학, 행동생태학 등)은 이 빅 퀘스천에 흥미로운 대답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교양을 진화시키는 것은 과학이다. 그리고 현대 진화론은 그 교양의 진화를 이끈 엔진이다. 진화가 오늘 첫 화두가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참고문헌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 개정청원위원회(2011), [2011학년도 고등학교용 <과학> 교과서 개정 청원서: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종이 아니다], 2011125.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 개정청원위원회(2012),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 개정 청원서: 말의 진화계열은 상상의 산물이다], 2012326. 신재식, 김윤성, 장대익(2009), [종교 전쟁], 사이언스북스. EBS 다큐팀(2009), [신과 다윈의 시대](2부작), EBS. 장대익(2008), [포퍼: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김영사. 한국 고생물학회, 한국 진화학회 추진위원회(2012), [교진추의 청원서에 대한 공식 반론문], 2012620. 한국생물과학협회(2012), [진화학 관련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 개정 청원에 대한 기각 청원서], 201275. Chiappe, L.M. and Witmer, L.M. 2002. Mesozoic birds: above the heads of dinosaur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ey and Los Angeles, 520p. Kuhn, T. S.(1962/1970),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The Chicago University Press: 김명자 옮김(2007), [과학혁명의 구조], 까치. MacFadden, B.J.. 2005. Fossil Horses Evidence of Evolution. Science 307:1729. Park, S. B.(2012), “South 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 Nature 486, 7 June, p.14. Prum, R. O.(2003), Dinosaurs take to the air, Nature 421, p.323. Zhou, Z. 2004. The origin and early evolution of birds: discoveries, disputes, and perspectives from fossil evidence. Naturwissenschaften 91:455-471. Zimmer, K. 2011. Evolution of feathers. National Geographic 2011(2):24-49.

 

생물산책 저자 장대익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공터에 잔디만 깔았을 뿐인데...주민 우울증 확 줄어

 

도심이나 주거지를 지나다 보면 위치나 크기가 애매해 버려진 공터가 자주 눈에 띈다. 범죄 우려 등 때문에 출입을 막는 경우가 많다 보니 관리가 되지 않아 잡초와 쓰레기만 무성한 곳으로 전락하기 쉽다. 그런데 이런 구역을 녹지로 바꾸면 주변 거주민들의 우울증 발생 위험을 극적으로 감소시키는 등 정신 건강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유지니아 사우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연구원팀은 필라델피아 내에서 110개 단지를 선정했다. 이 단지 안에 포함된 공터의 수는 모두 541곳이었다. 연구팀은 단지를 세 그룹을 나눴다. 첫 번째 단지에서는 쓰레기 청소를 하고 한 달에 한 번 잔디를 깎아줬고 두 번째 단지에서는 잔디와 나무를 심고 낮은 나무 울타리를 쳐서 정원처럼 만들었다. 마지막 그룹은 대조군으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 뒤 조사지역 부근에 거주하는 342명의 주민의 정신 건강을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추적 조사해 데이터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공터를 정원 형태로 녹화한 단지의 실험 참가자들에게서 우울감을 느낀다는 사람의 비율이 41.5%로 크게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51%,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의 수도 62.8% 줄어들었다.

 

실험에 이용된 정원녹지화() 및 청소 장면. 방치된 공터만 정비해도 주민의 정신 건강이 크게 개선됨이 밝혀졌다. 근데 연구가 아니더라도 딱 봐도 정비된 공간이 훨씬 덜 우울해 보인다. 연구를 통해 이 사실을 실증했다는 게 의의겠다. -사진 제공 JAMA 네트워크 오픈

 

연구팀은 특히 연간 소득이 25000달러(한화 약 2800만 원) 미만인 저소득층에게서 감소 폭이 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의 경우 저소득층에서는 발생률이 68.7% 감소했다. 연구팀은 적은 비용으로도 주민, 특히 저소득층 주민들의 정신 건강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정책 결정권자들은 황폐한 도시 공간을 재생하는 데 도시의 자원을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미국의학회지(JAMA) 네트워크오픈’ 20일자에 발표됐다.

동아사이언스 20180722일 윤신영 기자



51800년 전 동물그림, 쇼베보다 6000년 빨라        

페인트나 그림물감의 원료로 쓰이는 황토를 오커(ochre)라고 한다. 이 오커로 만든 가장 오래된 그림이 발견됐다.

 


8사이언스’, ‘가디언’, ‘BBC’ 등 주요 언론들은 51800년 전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오렌지 색 오커로 그린 그림들이 보르네오 섬 동쪽 칼리만탄 지역에 있는 루방 제리지 살레이 동굴(Lubang Jeriji Saléh cave)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벽화 안에는 동남아시아 들소 반텡(banteng) 등 야생 가축들이 그려져 있었다. 발굴 팀은 이 그림이 이전에 가장 오래된 벽화였던 인도네시아 동부 술라웨시(Sulawesi) 섬의 벽화보다 4000년 이상 앞선 것으로 보고 있다.

   


51800년 전에 그려진 동굴 벽화가 보르네오 섬 동쪽 칼리만탄 지역에 있는 루방 제리지 살레이 동굴에서 발견됐다. 이전의 프랑스 쇼베 동굴 벽화보다 6000년 이상 앞선 것이다. Luc-Henri Fage

 

인류 문화사 다시 재편할 최고(最古)의 벽화

수년 전까지만 해도 고고학, 인류학 등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동물이나 사람 등을 그린 구상화(figurative paintings)의 고향이 아시아가 아닌 프랑스 쇼베 동굴(Chauvet Cave)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쇼베 동굴에는 35000년 전에 그린 선사시대 코뿔소, 동굴 사자, 무소, , 들고양이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쇼베 동굴(Chauvet Cave)

 

그러다 지난 2014년 호주 그리피스 대학의 지구화학자 겸 고고학자인 맥심 오버트(Maxime Aubert) 교수가 이끄는 탐사팀이 인도네시아 술라웨시(Sulawesi) 섬에서 야생 돼지들이 그려져 있는 35400년 전 동굴 벽화를 발견했다. 그러나 이 벽화의 예술성에 대해 고고학자 등은 높은 평가를 내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발견은 다르다. 때문에 인류 최초의 예술적인 전통이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 함께 번성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8일 오버트 교수가 이끄는 인도네시아호주 공동연구팀은 51800 년 전에 그려진 야생 가축들의 형상이 그려진 벽화를 발견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이 벽화에는 4만 년 전 사람의 손바닥을 도장처럼 찍어 그린 자국도 같이 있었다.  루방 제리지 살레이 동굴벽화에 그려진 야생 가축 그림들, 손바닥 자국 모두 연대로 보면 세계 최고(最古)의 기록이다.  이번 탐사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본 호주국립대학의 고고학자 수 오코너(Sue O’Connor) 교수는 오베르 교수 탐사팀이 인류 문화사를 다시 되돌아볼 최고(最古)의 벽화이면서 수준 높은 벽화를 발견했다며 놀라움을 표명했다.

 

그는 이전까지 세계 최고(最古)의 그림이었던 술라웨시 벽화는 독특한 예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기보다 이전부터 내려온 거대한 예술적, 상징적인 전통을 답습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한 벽화는 독자적으로 예술적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생 인류의 이동경로와 문화사 재편 가능성

인도네시아 동부 칼리만탄 지역에는 많은 동굴들이 있다. 이번에 루방 제리지 살레이 동굴에서 발견한 벽화들은 각 시대를 반영하는 세 가지 유형의 동물과 사람 손바닥 벽화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중에는 21000년에서 2만 년 전 사이 그려진 복잡한 주제를 지닌 열정적인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신석기 시대 농부들에 의해 전수된 것으로 여겨지는 검은 숯(목탄)으로 그린 문양들이 포함돼 있었다.

 

탐사를 이끈 오버트 교수는 처음에 동물을 즐겨 그렸던 인류 조상들이 수천 년이 지나는 동안 사람을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런 변화는 유럽에서 발견된 동굴 벽화에서도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탐사팀은 벽화 표면에 축적돼 있는 돌출된 방해석(calcite) 안의 우라늄, 토륨 등을 측정하기 위해 첨단 기술을 동원했다. 그리고 65개 샘플을 채취해 방해석과 황토물감인 오커 등을 제외한 모든 오염물질을 구별해냈다.

 

오버트 교수는 이런 분류 과정을 거쳐 벽화가 그려질 당시 초기에 볼 수 있었던 생생한 그림을 복원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호주 대학의 고고학자 제인 발머(Jane Balme) 교수는 이번에 발견한 벽화가 인류 미술사를 주도하고 있는 상징적 표현(symbolic expression)의 전통을 지니고 있어 고고학계는 물론 미술사 연구자들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발머 교수는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유럽에서 발견한 동굴 벽화에서 인류 공통의 상징적 표현유형이라고 판단해왔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새로운 패턴의 상징적 표현이 가해진 동굴벽화가 발견되면서 인류 미술사에 대한 수정이 가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가장 오래된 동굴 벽화가 발견되면서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현생인류의 이동이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에 대해 추가 연구가 불가피해졌다  

이번 탐사에 참여한 프랑스 툴루즈 대학의 인류학자인 프랑스와 자비에 리코트(Francois-Xavier Ricaut)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벽화가 3세대를 반영하고 있다이를 통해 5만 년에 걸친 동굴벽화의 진화와 변화 과정을 재분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앞으로 유럽과 아시아 두 유형의 동굴벽화 분석을 통해 서로 다른 종족이 이질적인 문화전통을 전승했는지, 아니면 서로간의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밝혀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버트 교수는 향후 탐사 결과에 따라 동굴 벽화의 전통이 6만 년 전, 더 나아가 7만 년 전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러나 가장 큰 궁금증은 어떤 종족을 통해 이 동굴벽화가 그려졌는지 밝혀내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강봉 객원기자 ScienceTimes 2018.11.08.



산림청이 소개하는 국유림 명품숲’ 5

 

경남 함양군 함양읍 죽림리 삼봉산 금강소나무 숲. 산림청 제공

 

숲에서 하는 활동들은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 피톤치드가 가득한 숲을 걸으면 면역력도 높일 수 있고 천식에도 도움이 된다. 이번 여름 휴가를 숲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산림청은 숲의 경관과 생태적 가치가 우수해 여행하기 좋은 국유림 명품숲을 선정해 27일 발표했다. 이번에 새롭게 선정된 곳은 강원 고성 장신리 설악산 향로봉, 강원 횡성 상안리 낙엽송 숲, 경북 김천 증산면 수도산 숲, 충북 보은 장안면 장재리 속리산 말티재 숲, 경남 함양군 함양읍 죽림리 삼봉산 금강소나무 숲 등 5곳이다. 설악산 향로봉은 생물 다양성과 멸종위기식물 등이 분포하고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지정되는 등 보존·연구가치가 뛰어난 곳이라고 산림청은 소개했다.

 

강원 고성 장신리 설악산 향로봉. 산림청 제공

 

상안리 낙엽송 숲은 1938년부터 낙엽송을 심어 숲을 일군 곳이다. 천연 소나무들의 건강 상태가 좋고 숲 도로(임도)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고 한다. 수도산 숲에는 자작나무숲과 보존용 낙엽솔숲, 경관 조성 목적으로 가꾼 경관숲, 수도산 단지봉을 중심으로 목재나 임산물을 이용할 목적으로 조성된 경제림 단지 등 다양한 숲이 있다. 주변 수도계곡, 장전폭포, 수도암 같은 곳도 둘러볼 수 있다. 속리산 말티재 숲은 천연 숲과 인공 숲이 어우러져 생태적 건강성을 유지하는 곳으로 소개됐다. 국립공원공단에서 운영하는 자연휴양림이 있고, 장재저수지, 한옥공원, 솔향공원의 스카이바이크 같은 곳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삼봉산 금강소나무 숲은 1963강송’, ‘금강송으로 불리는 강원도 소나무를 접목한 시험 조림으로 조성된 곳이다. 소나무 생육 환경이 뛰어난 것이 강점이다.

 

충북 보은 장안면 장재리 속리산 말티재 숲. 산림청 제공

 

산림청은 이번에 선정된 명품숲을 산림관광명소로 키울 계획이다. 숲 안내판 등 편의시설을 늘리고 지역 관광자원과 연계한 산촌 활성화 프로그램도 개발한다. 2016년부터 산림청이 선정해온 명품숲은 이날 발표한 5곳을 포함해 모두 35곳이다. 서울 동대문 홍릉숲, 경기 포천 광릉숲, 제주 사려니숲이 포함돼 있다. 산림청은 2022년까지 이런 숲을 전국적으로 50곳까지 발굴·육성할 방침이다. /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342만 명268만 명부산 인구 재앙닥친다

 

텅 비어 있는 아파트 단지 놀이터. 부산일보 DB

 

부산의 인구가 30년 뒤에는 74만 명이나 줄어들고 특히 15~64세생산연령인구는 114만 명이 감소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우리나라 전체가 고령화되고 젊은 층은 줄어들게 되지만 부산은 특히 고령화 속도가 다른 시·도에 비해 너무 빠르고 젊은 층 인구는 가파르게 감소해 특단의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 한 고령화 도시를 넘어 도시가 아예 소멸단계에 접어들 수 있다는 진단이다. 앞으로 부산시정의 최우선 목표는 인구감소를 막고 저출산을 해결하는 데 둬야 하며 이를 풀지 못하면 부산이 추진하는 모든 정책이 무의미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30년 뒤 인구수 74만 명 줄고

생산연령인구 114만 명 감소 예상

고령화 속도 타 시·도보다 빠르고

젊은 층 인구 가파르게 줄어들어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2047년 장래인구특별추계에 따르면 20175136만 명이던 전국 총인구는 30년 뒤인 2047년에는 4891만 명으로 245만 명이 감소할 전망이다. 부산만 따로 떼놓고 보면, 부산 인구는 342만 명에서 268만 명으로 감소하고 특히 생산연령인구(15~64)249만 명에서 136만 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 기간에 인구감소율은 21.7%로 전국 17개 시·도 중에서 가장 높으며 전국 평균(-4.8%)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높다. 생산연령인구는 45.6%나 감소하는데 이 역시 전국 1위다. 저출산 현상과 더불어 수도권 인구 집중이 더해진 결과다. 반면 이 기간 수도권 인구는 0.9% 감소에 그친다.

 

특히 생산연령인구는 불과 6년 후인 2025년에도 지금보다 36만 명이 사라져 부산 경제에 적지 않은 타격을 미칠 전망이다. 또 통계청은 25~49세 인구를 주요 경제활동인구로 잡았는데 부산은 이 역시 121만 명에서 61만 명으로 절반이나 감소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는 사이 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부산의 중위연령은 44.3세에서 58.5세로 높아진다. 중위연령이란 부산 사람의 나이를 일렬로 쭉 나열했을 때 정확히 한가운데 위치하는 나이를 말한다.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54만 명에서 110만 명으로 증가하는데 7개 특·광역시 중에서 부산이 유일하게 고령인구 비율이 40%가 넘어 41.0%에 달하게 된다. 85세 이상 인구도 38000명에서 231000으로 급증한다.

 

반면 6~21세 학령인구는 부산이 52만 명에서 27만 명으로 47.9%가 감소하면서 전북(48.0%)에 이어 가장 높은 감소율을 보일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따라 부산에서 많은 학교가 사라지고 학원도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대 도시공학과 정주철 교수는 부산지역의 인구소멸 문제는 이미 심각한 상황에 놓였지만, 지자체는 오히려 계획인구를 자꾸만 상향해서 잡는 등 현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지금이라도 부산시는 인구소멸 문제가 그 어떤 의제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획기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김덕준·안준영 기자 casiopea@busan.com

 


지자체 환경관리실태 평가...경기·전 등 16'우수'

47천개 대기·수질 배출사업장에 대한 지자체별 관리실태 평가

 

이번 평가에서 선정된 우수 지자체의 경우 경기도는 적발(위반), 대전광역시는 전년 대비 적발(위반)율 증가 부문에서 다른 지자체에 비해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환경부는 전국 17개 시도, 228개 시군구를 대상으로 지난해 지자체 배출업소 환경관리실태를 평가해 광역 2, 기초 14곳을 '우수' 지자체로 선정했다.

 

우수 지자체로 뽑힌 광역 2곳은 경기도와 대전광역시다. 우수 기초 지자체 14곳은 김포시, 수원시, 안양시, 포천시, 화성시, 창령군, 대전 서구, 부산 사하구, 서울 강남구, 서울 노원구, 서울 송파구, 인천 서구, 익산시, 당진시 등이다.

 

이번 평가에서 선정된 우수 지자체의 경우 경기도는 적발(위반), 대전광역시는 전년 대비 적발(위반)율 증가 부문에서 다른 지자체에 비해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이번 평가는 배출사업장에 대한 환경관리업무가 환경부에서 지자체로 위임된 이후 2003년부터 지자체의 선의의 경쟁을 통한 자율적인 배출업소 환경관리를 이끌기 위해 매년 실시하고 있다.

 

전국의 대기 및 수질 분야의 오염물질 배출 사업장은 약 11만개이며 지난해 통합지도·점검규정에 따라 지자체가 관리하는 47000(전체 사업장의 43%) 사업장을 대상으로 점검율, 적발(위반)율 등 9개 지표 중심으로 평가가 이루어졌다.

Time Is Tight - Booker T & The M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