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국립공원지정 위한 토론회 개최...금성동 주민들도 참여
부산대 부설 국립 특수학교 설립 공청회 개최...환경단체 '강력 반대'
잡초 취급받던 풀… 가치 깨달은 요리사들이 직접 찾아나섰다
베란다서 전기생산 ‘햇살아파트’ 늘린다
온난화 한 눈에 보여주는 7만5천일의 기온 관측 기록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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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하루에만 그린란드 빙하 40% 넘는 20억t 이상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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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국립공원지정 위한 토론회 개최...금성동 주민들도 참여
금정산의 국립공원 지정을 위한 부산시와 시민단체, 학계의 토론회가 열렸다.
부산지속가능발전협의회는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을 위한 현안 시민토론회’를 개최했다고 9일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는 부산연구원 여운상 선임연구위원과 부산대 김지현 교수의 주제 발표와 함께 시민단체의 토론이 이어졌다.
먼저 여 위원은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 추진의 타당성을 설명했다. 전국의 산악형 국립공원 14곳의 경제적 효과를 살펴본 여 위원은 이들 국립공원이 평균적으로 1276억 원의 경제유발효과와 1414명의 고용파급효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또 금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자연환경의 보전과 개선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금정산 전체 면적의 84.4%가 사유지라 공공적 활용가치가 큰 지역이나 훼손 위험이 높은 곳을 먼저 사들일 필요가 있고, 금정산의 자연생태계나 경관자원이 국립공원 지정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을 보완하기 위해 금정산의 생태 가치를 발굴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뒤이어 발표를 진행한 김 교수는 부산의 공원일몰제 현황을 짚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부산의 도시계획시설 중 공원은 총 4933㎡ 중 1528㎡(30.9%)만 집행됐다. 나머지 땅에 필요한 보상비와 사업비는 총 3조2577억 원으로 추정된다. 녹지와 유원지 또한 각각 6.3%와 15.1%만 집행됐다. 김 교수는 공원일몰제 시행이 약 1년 남은 기업의 공원 기부 활성화와 민관 협치에 의한 공원운영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국내 유일의 국가공원인 용산공원의 조성 특별법이 운영돼 다른 지역의 국가공원 지정을 원천 배제하고 있어, 특별법을 폐지한 뒤 국가공원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금정산 국립공원 반대 금성동 주민대책위원회(대책위) 또한 참여했다. 협의회가 주관한 토론회에 대책위가 참석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대책위는 “금정산 보존에 반대하지 않지만, 40년 동안 각종 규제로 많은 피해를 봤다. 시가 대화의 장을 만들어 국립공원 지정 과정을 명확히 설명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심범 기자mets@kookje.co.kr
부산대 부설 국립 특수학교 설립 공청회 개최...환경단체 '강력 반대'
▲ 부산대 부설 특수학교 설립 PPT 자료/부산대 (C) 배종태 기자
부산대는 부설 국립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공청회를 오는 10일 오전 10시 부산시의회 2층 대회의실에서 개최한다. 학교를 개발하기 위해 금정산 산림을 훼손할 수 없다는 환경단체의 강렬한 반대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부산대는 부설 특수학교를 2021년 9월에 개교 목표로 설립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부설 특수학교는 금정구 장전동 캠퍼스 대운동장과 체육관 뒷편 금정산 약 1만 6120㎡ 규모의 부지에 연면적 1만 2377㎡의 4층 건물, 21개 학급, 정원 138명의 전국 단위 장애학생이 교육받게 될 ‘숲속학교’ 형태의 예술 중.고등학교(중학교 9학급, 고등학교 12학급)가 설립될 예정이다.
부산대와 교육부는 사회적 교육 취약계층인 장애학생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지난해 12월 전국 최초로 설계비 13.6억 원을 확보하면서 국립대 부설 특수학교 설립을 추진 중에 있다.
▲ 부산대 부설특수학교 건립 부지 위치도PPT/부산대 (C) 배종태 기자
한편, 대학 측과 환경단체는 지난 2월 26일 '부산대 부설 국립 특수학교 설립 관련 환경단체 간담회'를 대학본관에서 비공개적으로 열고 협의를 했지만, 환경단체가 학교 개발을 위해 산림을 훼손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강력히 반발했고, 양측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결렬된 바 있다.
실제로 학교 건축과정에서 방대한 산림 훼손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지역 주민 및 많은 환경단체는 강렬하게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부산대 측은 친환경적인 토목.건축으로 숲의 가치를 높이는 학교를 건축하고, 예정 부지의 소나무 등 수목도 다른 장소에 이식해 활용하는 방법 등 자연훼손을 최소화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김재식 부산대 캠퍼스기획과장은 “특수학교를 건축하는 과정에서도 특수학교 교정 부지의 수목을 부산대 양산캠퍼스로 이식하여 양산캠퍼스에 도심 숲 조성에 도움을 주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부산대는 ‘숲속 특수학교’와 함께 ‘금정산 환경.생태 교육 센터’ 설립을 통해 지역주민과의 친환경 상생 방안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숲속 특수학교’를 통해 환경 보호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장애 유아와 비장애 유아.가족을 위한 숲 체험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한편, 금정산의 환경 가치 홍보와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교육하는 ‘금정산 환경.생태 교육 센터’를 설립해 금정산 탐방객을 위한 숲 해설.탐방, 금정산 생태 홍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breaknews
잡초 취급받던 풀… 가치 깨달은 요리사들이 직접 찾아나섰다
호흡 사이로 솔 내음이 훅 끼쳤다. 주재료인 고등어의 진득한 구수함이 입안에 엉겨 붙을 때쯤, 2㎜ 남짓한 작은 솔방울이 향을 터트리며 말끔한 선을 그었다. ‘미쉐린 가이드’ 별 하나를 가진 한남동의 레스토랑 ‘모수’의 기억이다. 별 둘인 논현동 ‘알라프리마’를 떠올리면 방아 향부터 뇌리에 맴돈다. 30여 가지 푸성귀가 한 그릇에 담긴 샐러드 요리였다. 치즈와 유청, 브라운 버터를 사용한 미온의 소스가 다양한 채소의 맛과 향을 어우르는 동안에, 방아 잎 향이 색다른 기억을 만들어냈다. 토마토에 대한 강렬한 기억도 있다. 한우 파인 다이닝 코스 중 하나로 나온, 고기 한 점 없는 채소 요리. 토마토와 바질이 자아내는 조화는 아삭한 식감과 쾌청한 전환으로 기억된다. 삼성동 ‘라이프’의 토마토 샐러드다.
서초동 ‘오프레’의 슈거스냅 껍질콩은 올봄을 모두 축약한 듯한 경험이었다. 물오른 봄의 생동이 연한 물성의 푸른 콩알과 수분 가득한 껍질에 다 담겼다. 곁들여진 옥살리스(사랑초)의 새콤함은 흐뭇한 덤이었다. 봄나물의 기억 또한 올해는 각별하다. 신사동 ‘임프레션’에서 본격적인 코스 시작 전에 내는 한 입 거리로 맛본 봄나물들이 특별하게 각인됐다.
이색 작물 재배하고 토종 재료 다시 보는 식재료 탐구 열풍
요즘 한국의 파인 다이닝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새로운 설명이 필요해졌다. ‘한국의 레스토랑은 이제 재료로 기억된다’. 지난 몇 해간, 한식 파인 다이닝 황금기를 지나오며 요리사들은 일제히 전통 장에 주목했고, 고조리서를 넘겨 보며 가장 한국적인 맛에 천착했다. 된장 아이스크림부터 막걸리 식초에 절인 생선 요리까지 한국 발효의 맛에 대한 세계관이 확립됐고,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기본양념인 장맛, 그리고 선조들의 조리 기술을 익히고선 그다음 단계로 자연스레 확장되어 이어진 것이 재료에 대한 관심이다.
이색 작물부터 토종 재료까지, 요리사들의 관심은 가리는 곳 없이 강산 곳곳에 닿았다. 더 희귀하고, 더 특별하게. 손꼽히는 요리사들이 일제히 지방의 오일장과 작은 어항, 농부의 밭과 들녘을 탐구하고 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추구”하는 교과서적 태도부터, “안 먹어본 맛을 닥치는 대로 맛보는” 먹보 본성의 기세 좋은 탐구자, “남들에게 없는 나만 쓰는 특별한 재료”를 발굴하려는 사냥꾼까지 기질도 다종다양하다. 세간에서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트러플과 푸아그라, 캐비아 같은 고가의 희귀한 재료보다도, 이제는 발에 밟히던 소박한 들풀 하나가 요리사의 이목을 끌고 한 편의 공연 예술이나 다름없는 파인 다이닝 접시 위에서 존재감을 뽐낸다.
모수 안성재 셰프의 솔방울은 갓 맺힌 아기 솔방울을 피클로 담아둔 것이다. 3월께 안성재 셰프와 요리사들이 산에 가서 한꺼번에 채집해 두고 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에도 광범위하게 관심을 두면 특별하게 기억되는 맛을 발견해 갈 수 있다”는 것이 안 셰프의 지론이다. 알라프리마 김진혁 셰프의 방아 잎은 가족의 텃밭에서 온 것. 그는 “30년 전에는 뻔하게 여겨졌던 재료가 현재엔 새로운 것일 수 있다. 계절마다 변화하는 재료에 대해 폭넓게 재발견하고 재해석하는 것은 요리사가 가질 수 있는 재미 중 하나”라고 말한다.
(왼쪽부터)알라프라마 김진혁 셰프. 알라프리마의 샐러드 요리에 사용되는 각양각색 채소들. 철마다 다른 재료를 조합해 맛을 낸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왼쪽부터)모수 안성재 셰프. 모수의 고등어 요리에 사용된 솔방울 피클. 깨알만 한 솔방울을 봄에 따 보존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왼쪽부터)라이프 김호윤 셰프. 라이프의 토마토 요리에 사용된 재료들. 김호윤 셰프가 동분서주하며 여러 곳에서 모아 오는 재료들이다. 맨 윗줄 오른쪽 끝이 사위질빵순이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해 10월 마르쉐@ '씨앗밥상' 팝업 런치를 준비하기 위해 농장을 둘러보는 셰프들과 농부. 왼쪽부터 신창호 셰프, 이장욱 농부, 이지원, 강민구 셰프. / 마르쉐@
라이프 김호윤 셰프와 오프레 이지원 셰프, 임프레션 서현민 셰프의 공통점은 이색 작물을 다품종소량생산 하는 근교농, ‘준혁이네 농장’에서 운영하는 ‘셰프스 팜(Chef’s farm)’에 구획을 분양받았다는 것이다. 밍글스 강민구, 주옥 신창호, 권숙수 권우중 셰프 등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들이 구획을 가진 셰프스 팜은 셰프가 원하는 작물을 농부의 도움을 받아 손수 재배하는 형태의 공유 텃밭이다. 경기도에 자리한 이 밭에 셰프들이 각각 주 2회꼴로 드나들며 밭일을 하고, 작물을 수확하고 있다. 김호윤 셰프의 토마토, 이지원 셰프의 껍질콩이 준혁이네 농장에서 왔다. 준혁이네 농장은 200여 종의 작물을 재배하는데, 해외에서 요리 경험을 쌓은 요리사들이 찾던 이국적인 재료, 파인 다이닝에서 즐겨 사용하는 마이크로 허브(다 자라지 않아 장식적으로 사용하기 편리한)와 잎사귀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맛과 향, 모양을 내는 꽃이 주된 작물이다. 요리사들을 위한 이색 작물을 재배하는 농장은 이 외에도 해오름농장, 청오팜, 미영농장 등 몇 군데가 더 있다. 서울에서 열리는 파머스 마켓(농부와 소비자가 직거래하는 도심 속 시장), ‘마르쉐@’ 역시 독특한 작물을 키우는 농가가 대거 출점하기에 요리사들이 즐겨 찾는다. 준혁이네 농장이 ‘마르쉐@’를 통해 요리사들과 관계를 맺게 된 대표적인 예다.
잊혀 가는 토종, 또는 야생 작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30년 전, 50년 전까지만 해도 일상의 식재료였던 것들이 요리사들의 미각적 호기심을 통해 재발굴되고 있다. 김호윤 셰프가 토마토 샐러드에 사용한 사위질빵순은 ‘마르쉐@’에 참가하는 ‘들풀 한아름’ 자매로부터 받아온 것이다. 단지 특이한 식재료가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전파된 것이 아니라, 그 털 많은 야생초에 얽힌 이야기까지 구전됐다는 것이 의미심장한 화두다. 김 셰프는 “사위가 무거운 지게를 지지 못하도록 장모가 잘 끊어지는 사위질빵순으로 끈을 묶었다는 이야기로부터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는 옛날이야기를 전해줬다. 옛날이야기를 통해 할머니에서 손자, 손녀로 이어지던 흔하고 미약한 식재료들의 명맥이 사실상 끊긴 이 시대에 요리사들의 탐구열을 통해 맛의 계보도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런 흐름은 전 세계적인 미식 트렌드와도 맞물려 있다. 저 멀리 북유럽에서 발원한 노르딕 퀴진은 해를 거듭해 가며 현재까지도 중요한 미식 키워드인데 지역 안에서 나는 제철 재료, 또는 손수 채집한 야생 재료를 이용하는 것이 주된 골자다. 가장 한국적인 맛이 가장 세계적인 맛이, 그리고 가장 세계적인 맛이 가장 한국적인 맛이 된 셈이다.
['농부시장 마르쉐' 토종 식재료 팔아]
자연친화적 농법으로 특화… 요리 전문가들이 즐겨 찾아
사단법인 농부시장마르쉐가 2012년 10월 처음 개최한 ‘농부시장 마르쉐@’는 서울을 대표하는 파머스 마켓으로 자리 잡았다. 매월 둘째 일요일마다 혜화동에서 열리는 ‘농부시장’(6월은 9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은 농부의 맛을 지지하는 열성 단골들과 나들이객으로 언제나 북새통. 독특하고 신선한 식재료를 구매할 수 있기에 열성팬이 유독 많다. ‘마르쉐@’는 올해 4월부터 첫째 토요일 성수동에서, 넷째 화요일 합정동에서 열리는 작은 규모의 ‘채소시장’도 새로이 시작했다.
지난 5월 28일 합정동 카페 ‘무대륙’. 평일이었음에도 채소시장은 호황이었다. 미식계 셀러브리티들도 인파 사이를 오갔다. 김호윤·손종원(회현동 레스케이프 호텔 ‘라망 시크레’), 최지형(서교동 ‘서교고메’), 옥동식(서교동 ‘옥동식’) 셰프 등 요리사 외에도 이보은, 김보선 요리연구가 등 익숙한 면면들이었다. 너나없이 양손 무겁게 종이봉투를 안고 농부가 재배한 작물을 잔뜩 챙겨 돌아갔다.
5월 28일 열린 마르쉐@ 채소 시장에 참가한 근교농 베짱이 농부의 판매대 앞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 마르쉐@
채소시장에 나온 농부들의 작물로만 차린 점심 식사 프로그램, ‘채소점심’에도 긴 줄이 늘어섰다. ‘뿌리온더플레이트’ 이윤서 셰프가 준비한 음식은 삽시간에 동나 예약을 놓친 이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마르쉐@’ 간판 농부들인 베짱이 농부와 꽃비원, 찬우물농장, 풀풀농장, 들풀 한아름 등 대부분의 농장들에서도 가져온 작물을 완판했다. 남은 작물은 ‘채소반’ 프로그램을 통해 요리해 먹는다.
자연친화적인 농법으로 키운 채소시장의 작물들은 맛과 향이 진하게 농축돼 있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희귀한 작물들도 ‘마르쉐@’ 농부시장과 채소시장에서 펼쳐지는 진풍경이다. 손종원 셰프는 “‘마르쉐@’에 나오면 다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한 식재료를 구매할 수 있기에 꼭 장을 보러 나온다”고 했다. ‘마르쉐@’의 모든 시장에 개근 중인 그의 장바구니에는 여러 농부에게서 구매한 적양배추 꽃, 개느삼 꽃, 돌나물 꽃, 고수 꽃이 가득 담겨 있었다.
현재 80여 농가가 참여 중인 마르쉐@를 통해 준혁이네 농장 외에도 베짱이 농부, 꽃비원, 찬우물 농장 등 소농들이 스타 농부가 되기도 했다. 이보은 ‘농부시장마르쉐@’ 대표는 생 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다품종소량생산 농부의 지속가능성을 증명하고 대량 유통 시대에 잊히기 쉬운 식재료의 힘을 존속시키는 것이 ‘마르쉐@’의 보람”이라고 말했다. 색다른 식재료와 농부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마르쉐@’는 다양한 식재료를 소비자에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맛과 세대 사이의 이야기까지 전래하는 매개로 활약 중이다./ 조선일보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베란다서 전기생산 ‘햇살아파트’ 늘린다
전주시는 2015년부터 아파트 베란다형 태양광 보급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전주시 제공
전북 전주시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전기를 자체 생산하는 ‘햇살아파트’에 대한 지원을 올해도 이어가기로 했다. 전주시는 올해 모두 사업비 1억4472만원을 투입해 공동주택 240가구에 태양광 설치를 지원하는 ‘베란다형 태양광(햇살아파트) 보급사업’을 추진한다고 10일 밝혔다. 이 사업은 에너지 절약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켜 에너지 자립도시 실현을 위한 것이다. 시는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가정에서 직접 전기를 생산하고 사용할 수 있는 소규모 태양광 설비를 갖추도록 공동주택에 설치비의 일부를 지원한다.
지원하는 태양광 모듈 용량 규모는 305~335W로, 가구당 60만3천원의 설치비용을 지원한다. 본인부담금은 제품에 따라 7만~10만원이다. 달마다 전기요금이 3만~6만원이 나오는 가정이 300W급 베란다형 태양광을 설치할 경우 연간 10만원 정도의 전기요금을 절약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청대상은 20가구 이상인 공동주택단지로, 아파트 관리주체의 동의를 얻어 시가 선정한 시공업체를 선택한 뒤 지원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전체가 300세대 이하인 아파트의 경우 10가구 이상이면 신청할 수 있다. 시는 이 사업을 통해 시민들이 에너지를 단순히 소비하는 데서 벗어나 스스로 만들어 쓰는 생산과정에 참여해 에너지 절약 분위기가 확산하고,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관심도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는 2015년부터 시범사업을 벌여 10가구를 지원하는 등 지금까지 6억638만원을 투자해 공동주택 1100가구에 베란다형 태양광을 설치했다. 전주시 에너지전환과 관계자는 “이 사업이 인기가 있으나 국·도비의 삭감으로 시자체 예산으로만 한계가 있어 증액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온난화 한 눈에 보여주는 7만5천일의 기온 관측 기록
18C말 옥스포드대 천문학 교수 기상관측
1813년 11월14일부터 기온 기록 지속돼
연평균기온 띠로 나타내면 온난화 뚜렷
1850년대 9.5~10도보다 현재 1도 높아
1813년부터 기록된 영국 옥스포드대 래드클리프천문대 지점의 기온으로 연평균 기온을 나타낸 ‘기후 띠’. 낮은 기온은 파란색, 높은 기온은 붉은 색으로 표시한 것으로, 최근으로 올수록 온난화가 심해지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옥스포드대 제공
영국 옥스포드대는 최근 <1767년 이래 옥스포드 기상과 기후>라는 제목의 신간을 오는 7월30일 출판한다고 예고했다. 영국 리딩대 기상학부 교수인 스티번 버트와 더럼대 명예교수인 팀 버트가 함께 쓴 이 책에는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80킬로 떨어진 옥스포드대 안 래드클리프천문대 자리에서 1813년부터 기록해온 기온 등 기상 관측 역사가 실려 있다. 이곳에서는 현재도 매일 아침 9시면 담당 학생들이 기온과 강수량을 직접 관측해 기록하고 있다. 한 지점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단절 없이 관측한 기록은 세계적으로도 찾기 어렵다.
래드클리프 기상관측의 역사는 1813년 훨씬 전, 선구자 토머스 혼스비(Thomas Hornsby) 교수에 닿아 있다. 옥스포드대 교수였던 혼스비는 1767년 래드클리프공익투자신탁에 시 북쪽의 우드스톡로드에 대형 천문대를 세워달라고 청원했다. 혼스비는 기상학자가 아닌 천문학자였다. 하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별들을 제대로 보려면 대기의 방해를 어떻게든 피해야 했고 날씨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혼스비는 이력의 황혼기에 우연한 발견으로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그가 남긴 위대한 업적은 1767년부터 기록을 남긴 월간 강우량이었다. 또한 1813년 11월14일 일요일에 시작된 기온 기록도 보존돼 있다. 2019년 6월10일 현재 7만5084일 동안의 대기록이다. 한국의 경우 조선시대 측우기 기록이 1777년부터 남아 있어 강우량 기록이 243년 동안 지속되고 있지만, 기온은 근대 관측이 시작된 1908년 이후 기록되고 있다
영국 옥스포드대 래드클리프천문대 옆 잔디밭에 설치된 백엽상을 열고 한 학생이 기온을 기록하고 있다. 옥스포드대 제공
당시 세워졌던 래드클리프천문대는 1934년 문을 닫고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기상 관측은 보존된 천문대 건물이 있는 지점에서 계속돼왔다. 다행스럽게도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들이 이른바 래드클리프기상관측소(RMS)의 유지를 위해 애를 쓴 덕이다. 두 버트가 이 역사를 기록한 책을 쓴 것이다. 둘은 아무 인척관계도 아니다. 두 사람은 가능한 모든 관련 자료들을 모으고 유실된 관측 자료를 찾아내기도 했다. 또 이들 자료를 디지털화했다.
토머스 혼스비 옥스포드대 교수가 기록한 래드클리프천문대 기온. 1776년 1월30일 기온이 영하 14.4도(화씨 6도)로 기록돼 있는데, 혼스비는 와인이 얼었다고 적어 놓았다. 옥스포드대 제공
스티번 버트는 <비비시>(BBC)와 인터뷰에서 “래드클리프는 기록이 한 지점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중요하다. 우리는 이 기록은 어느 시기에 기온과 강수, 기압과 햇볕이 무슨 일을 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올바른 관측 활동으로 장기간의 신뢰성 있는 기록들을 축적해 기후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알게 해준다”고 <비비시>(BBC)에 말했다.
래드클리프 기온 기록은 옥스포드 기온이 세계 평균의 1.6배임을 보여준다. 옥스포드대 제공
기록에 근거하면 옥스포드 지방의 1850년대 연평균 기온은 9.5~10도 정도였다. 오늘날에는 10.5~11도로 높아졌다. 이런 기온 상승은 연평균 기온을 파란색(저온)에서부터 붉은 색(고온)으로 표시한 옥스포드 ‘기후 띠’(Climate Stripe)에 잘 나타나 있다. 옥스포드 기온의 변화는 전지구 기온 변화보다 1.6배 크다. 옥스포드는 도심 환경에 의해서, 또 유럽 대륙과 인접해 있어서 기온 상승이 크기 때문이다. 설령 이런 점을 고려해 기록을 재조정하더라도 기온 상승 경향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리딩대의 에드 호킨스 교수는 “전지구를 대상으로 한 ‘기후 띠’는 옥스퍼드 기록의 색깔만 옅게 한 완화 버전이다. 우리는 하나의 지구에 살고 있지만 지구 온난화의 증거는 지역 규모로도 확인된다”고 말했다.
오는 7월30일 발간될 예정인 책 ‘1767년 이래 옥스포드 기상과 기후’ 표지. 옥스포드대 제공
자동화 시대에 누군가가 매일 아침 9시에 래드클리프의 스티븐슨 백엽상을 열고 온도계 눈금을 읽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일은 부분적으로는 전통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학칙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참여하는 학생들은 작업의 중요성과 자료의 쓰임새에서 큰 동기를 부여받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각) 옥스포드대 박사과정 학생 엠마 하워드는 7만5078일째 기록을 위해 나선 래드클리프천문대 옆 잔디밭에서 “래드클리프 기록에 기여하는 건 환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혹시 잘못될까, 멋진 일을 망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장기 기록을 한다는 사실과 ‘어느 시점 이후 사상 최고기록’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건 신나는 일이다”라고 <비비시>에 말했다.
전 래드클리프기상관측소장인 팀 버트 더럼대 명예교수는 “기록 행위는 계속돼야 한다. 기록 자료들은 기후변화 모델의 기둥이다. 컴퓨터 수치모델도 중요하지만 장기 데이터도 필요하다. 모델이 미래의 기후를 잘 예측하려면 같은 모델로 과거 환경을 시뮬레이션했을 때 과거를 재현하는지를 검증해봐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다
기후변화의 재앙, 건강 대책으론 어림없다
이제 겨우 6월 초인데도 더위가 심상치 않다. 곧 닥칠 본격적인 여름은 또 폭염이라니 벌써 숨이 막히는 것 같다. 기상예보다 폭염 대책이다 하는 준비가 이제 좀 익숙해졌지만, 그 정도로 충분할지는 모르겠다. 미봉책이라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생명과 안전이 달린 문제에 관계 당국이 충분히 대비해주기 바란다.(☞ 관련 기사 : 사람 잡는 폭염, 타깃은 따로 있다!)
폭염 대비와 더불어 우리의 임무는 다시 그 근본 원인, 기후변화를 상기하는 것이다. 여름 폭염은 한국에서 기후변화를 말할 거의 유일한 기회지만, 좀처럼 본격적인 논의로 발전하지 못한다. '서리풀 논평'에서도 여러 차례 기후변화를 말했지만, 관심은 그때뿐이다. 당장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데다 원인과 피해며 대책은 모두 우리 손을 떠나 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막연한 탓도 크다. 문제는 그사이에도 국제 환경이 달라지고 더 급박해지고 있다는 점. 우리는 여름마다 폭염 대책을 넘지 못하니 마음이 더 급하다.
먼저 정치. 지금 세계는 바야흐로 ‘기후변화의 정치’가 주류에 진입했다. 얼마 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기후변화 의제를 앞세운 녹색당이 약진했고, 선거가 끝난 후에 이에 자극을 받은 극우 정당들이 기후변화 의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지난달 있었던 호주 선거는 아예 '기후변화 총선'이라 불릴 정도였다.(☞ 관련 기사 : 유럽의회 선거, 유권자는 변화를 원했다) 미국도 변화하는 중이다.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트럼프에 맞서 이른바 '그린 뉴딜' 논쟁이 달아올랐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을 중심으로 민주당이 이 의제를 선점하면서 2020년 대선에서 피할 수 없는 논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영국 노동당도 그린 뉴딜에 합세한 모양새다(☞ 관련 기사 : At last, the Labour party is being led from the bottom up)
기후변화의 경제는 더 급하게 돌아간다(정치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 전체는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다들 그토록 주장하는 '먹고 사는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국제적 규범이 되었고, 이제 상황은 이렇다.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기업이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고 기업 신용등급을 결정한다. S&P는 지난 2년간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 점수로 신용등급을 바꾼 사례가 700건이 넘는다고 밝혔다. 이중 56%는 신용등급이 하락했다."(☞ 관련 기사 : <뉴스1> 5월 19일 자 [문답]"화석에너지로 만든 한국제품은 앞으로 수출도 못해"②)
"향후 일정 연도부터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만 쓰겠다고 선언해 RE100이라 불리는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현재까지 158개나 된다. (중략) 이들은 협력업체들에도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으로 부품을 만들도록 요구하고 나섰다. 우리나라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2017년 2.8%만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이었기에, 이대로 가다간 수출의존도 높은 우리 경제에 심각한 경고음이 울릴 수 있다."(☞ 관련 기사 : <경향신문> 2018년 12월 20일 자 [녹색세상]경제문제가 된 기후변화)
안을 돌아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일부러 눈을 감은 것인지 보고도 모르는 것인지, 한국 언론과 정치는 기후변화의 국제 정치경제를 역주행하는 중이다. 기후변화에 유리하다면서 핵발전소를 확대해야 한다는 왜곡도 서슴지 않으니(재생가능에너지가 핵심!),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할 수밖에. 아무리 이해관계가 달려도, 일부러 그러는 것이면 죄를 짓는 것이다.
문화와 사회 변화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기후변화는 급기야 새로운 생활양식과 사회적 조직 방식을 만들고 확산하기에 이르렀다. '환경 지킴이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촉발한 청소년 파업은 단순한 해외토픽이나 에피소드에 그치지 않는다.(☞ 관련 기사 : [글로벌 돋보기] 에펠탑 불이 꺼지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않고…기후변화에 대한 우려와 자성) 새로운 생활양식과 그런 세대가 나타났다는 것을 상징하는 사건이라 해야 한다.
새로운 생활로 여행과 교통이 달라진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 스웨덴에서는 탄소배출의 주범 항공편 이용을 줄이자면서 '비행기 여행은 수치(flight shame)'라는 운동이 벌어졌다. 비행기 탑승객은 7개월 이상 감소하고, 그 대신 기차 이용객이 크게 늘었다(☞ 관련 기사 : As 'Flying Shame' Grips Sweden, SAS Ups Stakes in Climate Battle)
누구도 피해갈 수 없으니, 과학자와 교수, 학생들에게 익숙한 '국제학술대회'도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다. 종이 자료집이 없는 정도는 이미 옛이야기. 학회 개최지를 선정할 때 탄소 발생량이 가장 적은 곳이 유리한 것도 오래되었고, 이제는 아예 사이버 학회로 이동 문제를 해결하자는 운동이 벌어질 정도다.(☞ 바로 보기 : The World's first zero carbon Climate Conference saved 71 819 tonnes CO2) '탄소 발생 제로' 학회를 조직하는 지침도 나와 있다.(☞ 바로 보기 : A NEARLY CARBON-NEUTRAL CONFERENCE MODEL)
"뭐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둔감하고 느린 것이 분명하다. 세계적인 노력에 동참하느니, 국제사회에 대한 도덕적 의무니, 꼭 그 정도가 아니어도 괜찮다. 당장 부품 수출이 막히고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받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이만해도 국제 사회의 흐름을 놓치고 10년, 20년을 허송세월했는지도 모른다.
경제, 그것도 국내 경제의 관점에서만 기후변화를 생각하는 것은 한참 모자란다. 이기와 자폐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로서의 기후변화'에서 딱 한 걸음만 더 나가도, 기후변화는 인류 모두에 도전하는 보편 철학이자 윤리로 급변한다.
인류가 생긴 이후 처음 맞는 종류의 위기. 고통과 대응 방법도 유례가 없었지만, 그 대응이야말로 개인과 지역, 국민국가의 가장 중요한 도덕적 의무라는 데에 더는 이론이 없다. 형편이 이렇다는 데야 돈벌이 대상이나 수출에 급급할 여유가 있을까.
"연구팀은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가뭄, 해수면 상승, 환경 파괴로 수십억명의 인구가 이주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뜨거운 지구(Hothouse Earth) 효과로 지구 면적의 35%, 전 세계 인구 55%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생활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뉴스1> 6월 5일 자 "기후변화로 30년 뒤 대부분의 인류문명 파멸")
"현재 추세로 저감 없이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경우(RCP 8.5 기준·이산화탄소 농도 940ppm) 2050년까지 폭염 등 기후변화로 인한 누적건강비용은 101조4000억원으로 추산됐다. 2020년까지 16조2000억원, 2030년까지 38조3000억원 수준이다."(☞ 관련 기사 : <머니투데이> 5월 29일 자 "폭염, 미세먼지보다 치명적…2050년까지 '의료비 100조원' 든다")
이젠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다. 경제학자 스티글리츠가 예상한 대로 제3차 세계대전의 진원이 될지도 모르는데,(☞ 관련 기사 : The climate crisis is our third world war. It needs a bold response) 그 옛적 언제처럼 또 이대로 뭉갤 것이지 답답하다.
객관적 조건과 환경보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않으려는 한국 사회의 하루살이 리더십이 더 절망적이다. 그토록 몰두하는 '경제'조차 한 세대 이상 지난 구닥다리 모델을 벗어나지 못하니, 인류와 국제와 미래의 일에서야 무엇을 더 기대하랴. 그런데도 기후변화의 정치를 더는 피할 수 없을 때,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정치·사회적으로 '전통적 리더(십)'가 그럴 능력과 의지가 없다면, 아니 감각과 인식조차 없으면, 곧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래로부터의 기후변화 정치는 무슨 방법이 있는가? 시민건강연구소 / 프레시안
희귀 개구리 ‘핫스폿’ 뉴기니, “마지막 피난처 지켜야”
코 세웠다 눕혔다 피노키오 개구리 신종 발견, 항아리곰팡이 아직 없어
긴 코를 세웠다 눕혔다 할 수 있는 피노키오 개구리. 3종이 각 1마리씩만 발견됐을 정도로 희귀하다. 뉴기니가 항아리곰팡이로 인한 멸종사태에서 종 다양성을 지킬 마지막 피난처로 주목받고 있다. 팀 라만, 내셔널 지오그래픽, 올리버 외 (2019) ‘주 택사’ 제공.
개구리는 ‘제6의 지구 대멸종’ 사태에서 가장 앞선 피해자이다. 세계 개구리의 40%가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 세계로 퍼져나간 항아리곰팡이다. 세계의 개구리 90여 종이 이 치명적 곰팡이로 인해 멸종했고, 수백종이 그럴 위기에 놓였다. 이제 과학자들의 눈길이 쏠리는 ‘항아리곰팡이 없는 개구리의 마지막 피난처’가 바로 뉴기니이다. 호주 북쪽에 있는 뉴기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열대 섬이자 세계 개구리 종의 6%인 450여 종이 사는 생물 다양성의 ‘핫스폿’이다. 지금도 새로운 개구리가 잇달아 발견되고 있다.
뉴기니의 위치도(붉은색). 오른쪽은 파푸아뉴기니, 왼쪽은 인도네시아령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양쪽 콧구멍 사이에 살점으로 된 기다란 돌기가 코처럼 솟아 ‘피노키오 개구리’로 불리는 리토리아 속 개구리가 그 예다. 폴 올리버 오스트레일리아 그리피스대 박사는 과학저널 ‘주 택사’ 14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피노키오 개구리 신종 2종을 추가로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2008년에 이어 인도네시아령 뉴기니 서쪽 포자 산맥의 원시 열대림에서 신종 개구리를 발견했다. 모두 3종이 된 피노키오 개구리는 각 종이 1마리씩만 발견됐을 정도로 희귀하다. 세웠다 눕혔다 하는 긴 코가 어떤 용도인지는 아직 수수께끼다.
올리버 박사는 “이처럼 보기 힘든 개구리는(실제로, 처음 발견한 피노키오 개구리는 현장 연구 캠프의 쌀자루 위에 올라앉은 것이어서, 개구리가 과학자를 발견한 셈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뉴기니에서 이뤄진 놀라운 발견의 일부일 뿐이며, 이 축축한 산악 섬이 개구리 다양성의 세계적 핫스폿(핵심 구역)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나뭇잎 위에 낳은 알을 지키는 습성이 있는 뉴기니 개구리. 항아리곰팡이에 매우 취약한 종이다. 스티픈 제이 리처드 제공.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한 국제 연구자 30명은 과학저널 ‘생태학 및 환경 최전선’ 최근호에 실린 논문 “기회의 섬: 뉴기니는 지구로 번져가는 병원체로부터 양서류를 보호할 수 있을까”를 통해 뉴기니 양서류 보전을 위한 긴급대책을 촉구했다. 데버러 바워 오스트레일리아 뉴잉글랜드대 과학자는 “보전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알아내 중단시킬 기회를 잡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항아리곰팡이는 애완동물의 국제거래를 통해 확산하고 있다. 개구리가 살기 적합한 뉴기니의 습한 기후는 곰팡이가 번성하기에도 최적이다.
올챙이를 거치지 않고 등에서 직접 깬 어린 새끼를 기르는 뉴기니 개구리. 스티픈 제이 리처드 제공.
사이먼 클루로 오스트레일리아 매콰리대 생물학자는 “많은 뉴기니 개구리가 이미 항아리곰팡이로 초토화된 호주의 것들과 가깝기 때문에 매우 취약하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그는 “올챙이를 거치지 않고 어미 등에 낳은 알에서 바로 개구리가 태어나는 뉴기니의 개구리들에 곰팡이가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 잘 모른다”고 덧붙였다.
연구자들은 이 섬의 개구리를 보전하기 위해 대비, 예방, 감지, 대응, 회복으로 이뤄진 ‘5단계 대응책’을 제시했다. 항아리곰팡이에 취약한 우선 보호대상 종을 정하고, 곰팡이의 전파를 늦추며, 개구리 집단의 변화를 더 잘 이해하는 것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aul M. Oliver et al, Zootaxa 2019; doi: 10.11646/zootaxa.4604.2.6
Deborah S Bower et al, Front Ecol Environ 2019; doi:10.1002/fee.2057
조선역사 산증인 ‘궁궐 노거수’가 사라진다
11일 서울 종로구 창덕궁 내부의 회화나무가 지지대에 얹혀 있다(위 사진). 2014년 7월 폭우로 뿌리째 쓰러진 나무를 다시 심었지만 이전 모습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것
아래 사진은 1993년과 2002년 같은 나무가 건강하던 시절이다. 신지후 기자ㆍ문화재청 제공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에 들어서자 허리가 90도 가까이 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지지대에 몸통을 누이고 있었다. 역사적 가치가 커 인근의 회화나무 7그루와 함께 천연기념물 472호로 지정된 수목으로, 추정 수령은 300~400년이다. 휜 모양 자체로도 조형미가 있는 덕에 관람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이 회화나무에는 아픈 사연이 깃들어 있다. 2014년 7월 폭우에 쓰려져 뿌리 채 뽑혔다가 다시 심긴 것. 나무는 5년 전까지 허리를 세우고 푸른 잎을 싹 틔웠으나, 요즘은 상태가 좋지 않다. 문화재청의 최근 생육 평가(‘매우 건강-보통 이상-보통-불량-수목 쇠약‘의 5단계)에서 가장 낮은 단계인 ‘수목 쇠약’ 판정을 받았다. 우기를 대비한 지반 강화, 지지대 설치 같은 예방 조치를 제 때 했더라면 회화나무는 여전히 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회화나무는 운이 좋은 편이다. 자연재해, 병충해 등에 노출됐다 적절한 보호 조치를 받지 못해 고사하는 궁궐 내 노거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노거수(老巨樹)는 수령이 많고 풍채가 거대해 보호할 가치가 있는 수목을 뜻한다. 나무 종류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통상 100년 이상이 된 나무를 노거수로 분류한다. 특히 궁궐에서 자란 노거수는 전통 조경 복원이나 고유식물종 연구 등에 중요한 자료로 쓰이는 만큼 보호ㆍ보전 필요성이 크다.
19세기 창덕궁과 창경궁의 전경을 그린 국보 동궐도. 문화재청 제공
창덕궁은 4대궁 중에서도 노거수가 많은 곳으로 꼽힌다. 2016년 기준 200년 이상 된 노거수가 34그루였고, 671년 된 느티나무와 355년 된 은행나무, 281년 된 향나무 등이 포함돼 있었다. 문제는 노거수가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1976년 문화재청 조사에서 노거수로 지정된 창덕궁 내 수목은 82그루였다. 1993년엔 73그루로 줄었고, 2002년엔 71그루, 2016년엔 65그루로 감소했다. 노거수가 죽은 이유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1976년부터 2016년 사이에 사라진 노거수 17그루 중 5그루는 자연 고사했고, 2그루는 자연 재해를 입었다. 9그루의 고사한 이유는 규명되지 않았다. 나머지 1그루는 제거됐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산학협력단은 2016년 문화재청 의뢰를 받아 정밀 조사를 거쳐 창덕궁 내 새 노거수 20그루를 지정했다. 그러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그루 중 상당수가 최근 생육 평가에서 ‘불량’ 혹은 ‘수목쇠약’ 판정을 받았다. 추적 조사라도 할 수 있는 창덕궁 노거수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창경궁(35그루), 덕수궁(33그루), 경복궁(28그루)의 노거수는 2016~2017년까지 면밀하게 조사 받지 못했다. 때문에 이들의 생육 상태 변화 등을 연구할 만한 자료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문화재청은 궁궐 안팎 관리를 체계화하겠다는 목표로 올해 2월 궁능유적본부를 별도 조직으로 출범시키고 ‘궁ㆍ능 조경관리’ 규정 등을 마련했다. 그러나 급격한 기후변화나 자연재해에 대응할 매뉴얼이나 전문가 지원 규정이 세세하게 제정되지 못해 한계가 크다는 평가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국립대 환경조경학과 교수는 “노거수는 예민한 사료임에도 불구하고 사적이나 유물처럼 보호해야 한다는 당국의 인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11일 찾은 서울 종로구 창덕궁 정원에 노거수의 그루터기만 남아 있다. 신지후 기자
정부는 노거수 유실에 대비해 후계목을 적극 양성하고 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겠다는 정책 방향은 마련했지만, 실질적 인력과 예산은 충분히 투입하지 않고 있다. 궁능유적본부는 천연기념물을 비롯한 노거수의 유전자(DNA)를 추출해 13만㎡ 크기의 경기도 양묘장에서 후계목을 키우고 있는데, 담당자는 3명에 불과하다. 4대 궁궐과 종묘의 조경을 총괄하는 인력도 6명뿐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궁궐 노거수 현황 파악을 5년에 한 번 정도 하자는 목표는 세웠지만, 여건 상 쉽지 않다”며 “담당 조직과 기능 강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간판 가린다고 30년 된 왕벚나무에 드릴 구멍 10개 뚫은 식당
음식점 간판가린다고 나무마다 구멍 뚫어
풍광 좋은 곳 가로수 농약으로 고사 시켜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한 사거리에 볼 수 있는 가지만 앙상한 왕벚나무 3그루.[사진 원주시]
고사하기 전 잎이 무성한 왕벚나무 3그루.[사진 다음 로드뷰]
“주변의 다른 왕벚나무는 잎이 다 푸릇푸릇한데 유독 3그루만 가지가 앙상한 게 이상했지요.”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한 사거리에 가면 가지만 앙상한 나무 3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나무마다 지름 1㎝ 크기의 구멍이 10~12개가 뚫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의 왕벚나무들은 수령이 20~30년 된 지름 30㎝, 높이 4~5m짜리 가로수용 나무다.
원주시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지난 11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지난달 28일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3그루만 고사 한 게 이상해 현장 조사를 했더니 나무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며 “누군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의적으로 나무를 죽인 것처럼 보였다”고 설명했다.
앞서 원주시는 지난 4일 현장조사를 마친 뒤 “나무를 고사시킨 범인을 잡아달라”며 원주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A씨가 자수했다. A씨는 “나무가 식당 간판을 가려 이 같은 일을 벌였다”고 진술했다.
인근 음식점 업주가 느티나무에 뚫어놓은 지름 1㎝ 크기의 구멍. [사진 원주시]
나무 고사는 간판이나 조망권 확보 때문
시름시름 앓다 고사하는 가로수가 전국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대전시 동구 대청호 일대 가로수 3그루가 지난해 7월 고사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동구청에는 “대청호에 있는 느티나무 3그루가 말라 죽어간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동구청 직원이 현장에 나가보니 40년 된 느티나무 3그루의 잎이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나무를 훼손한 것으로 판단한 동구청은 나무 주변의 흙 등 시료를 채취해 한국분석기술연구소에 성분검사를 의뢰했다. 검사 결과 시료에서는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동구청은 농약을 뿌린 범인을 찾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또 나무 주변에 목격자를 찾는 현수막도 설치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기소중지 상태다. 고사한 느티나무는 높이 15m, 뿌리 지름이 50㎝에 달하는 대형나무다. 바로 앞에 대청호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으며, 인근에는 상가가 자리 잡고 있다.
지난 7월 말라죽은 대청호 인근 느티나무 3그루. [연합뉴스]
작은 나무 심어 다시 키워야 하는 상황
동구청 관계자는 “느티나무가 전망대 주변에 그늘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토양 중화제와 수액 등을 공급해 살리려 했지만, 고사를 막지 못했다”며 “현재 어떤 나무를 심을지 주민 의견을 수렴 중인데 비슷한 크기의 나무를 옮겨 심는 건 불가능해 작은 나무를 심어 다시 키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로수가 고사하는 이유 중 상당수가 간판이나 조망권 확보 문제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원대 생태조경디자인학과 윤영조 교수는 “최근 가로수가 고사하는 사례가 많은데 상업지구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운전자들이 간판을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나무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또 “보행자 대부분은 나무로 인해 생기는 그늘과 쾌적한 경관 등을 선호하는 만큼 오히려 좋은 유인책이 될 수 있다”며 “내 가게 앞만은 안된다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가로수를 임의로 고사시키거나 베어내다 적발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원주=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박원순 “송현동 땅, 정부가 매입해야···공원·문화시설로”
서울 경복궁 옆 송현동 부지.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원순 서울시장이 17년째 공터로 방치된 종로구 송현동 땅을 정부가 매입해 공원·문화시설을 조성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박 시장은 12일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서 “이 부지의 시가를 5000억원 정도로 판단하는데 중앙정부가 이 부지를 매입해 종로구청이 말하는 것처럼 일부는 공원화하고, 일부는 우리 전통문화를 현양할 수 있는 시설이 들어오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복궁, 광화문광장 등과 인접한 3만6642㎡ 규모의 송현동 부지는 국방부 소유였으나, 2002년 6월 삼성생명으로 넘어간 후 공터로 남아있다. 대한항공이 2008년 6월 삼성생명으로부터 2900억원에 사들여 7성급 관광호텔과 다목적 공연장, 갤러리를 포함한 복합문화단지 개발을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연내 매각을 추진 중이다. 종로구는 숲이 있는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으며, 비용을 구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와 서울시가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시장은 “현대적인 것보다 전통적인 시설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며 송현동 부지에 들어설 시설물로 국립민속박물관을 꼽았다. 그는 “과거에도 이런 견해를 제출했는데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앞으로 정부와 계속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종로구 서울대병원의 창동 차량기지 이전에 대해선 “여러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박 시장은 “차량 기지가 조만간 이전하면 유휴부지가 나오는데 서울 동북부 일대의 경제 중심을 만들 절호의 기회”라며 “임기 중 이 부분에 대해 그림을 그려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논의가 진척된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온실가스 배출 최대 주범은 미 국방부”
미 브라운대 연구팀, ‘전쟁 프로젝트의 비용’
2001~2017년 미군 배출량 12억…세계 55위
단일조직으론 세계 최대 석유 소비자
항공기·항모 등 군사장비의 배출량 엄청나
화석연료 소비 절감의 장점 제시하기도
미국 해군 F-18 호네트 전투기가 엔진에서 불꽃을 내뿜으며 항공모함에서 이륙하고 있다. 출처 pxhere
세계 150여개국에 포진한 미군을 거느린 미국 국방부(펜타곤)를 온실가스 배출의 최대 주범으로 지목한 보고서가 나왔다. 미국 브라운대 왓슨연구소가 12일 공개한 <전쟁 프로젝트의 비용> 보고서를 보면, 2001년 테러와의 전쟁 개시 이후 2017년까지 미 국방부가 단일 조직으론 세계 최대의 석유 소비자이자 온실가스 배출 당사자였다. 이 기간에 미군은 최소 12억1200만 이산화탄소 환산톤(CO₂e)에 해당하는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논문의 공동저자인 네타 크로퍼드 보스턴대 교수(정치학)는 12일 다국적 비영리 학술 저널 <컨버세이션> 기고에서 “ 2017년 한해만도 약 5900만t의 이산화탄소 및 온실가스를 배출했다”며 “펜타곤을 하나의 국가로 계산하면 포르투갈(57위)과 스웨덴(65위)을 앞지르는 세계 55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미군은 11척의 항공모함을 비롯한 군함, 수천대의 군용기와 군용차량 등 군사장비, 200만명의 병력, 그리고 세계 전역에서 운용중인 56만개의 건물에서 온실가스를 뿜어내고 있다. 특히 군용기의 배출이 심각한데, 비(B)-2 스텔스 전략폭격기 한 대가 2만5600갤런의 제트유를 싣고 눈깜짝할 시간인 1마일 비행당 4.28갤런을 소비해 250 환산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미군의 B-2 스텔스 전략폭격기가 비행하는 모습. 이 폭격기는 2만5600갤런의 제트유를 싣고 눈깜짝할 시간인 1마일 비행당 4.28갤런을 소비해 250 환산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위키피디아
크로퍼드 교수는 “미군의 에너지 소비가 미국 정부 전체 에너지 소비의 77~80%를 차지한다”며 “국방부는 미국 최대의 에너지 소비자이며, 따라서 단일 조직으론 세계 최대의 석유 소비자”라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군의 연료 정책에 변화가 없다면 온실가스 다량 배출은 계속될 것이며, 이는 미국내 다른 부문이 배출과 결합해 많은 기후 과학자들이 가능성을 경고하는 악몽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는데 한몫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국가별 온실가스 배출 1위는 중국이며, 미국, 유럽연합, 인도, 러시아, 일본, 브라질 등이 뒤를 잇고 있다.
크로퍼드 교수는 미군의 온실가스 연간 배출량은 2004년 최고치를 찍은 이후 감소 추세라며, 이는 미군 당국이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려 신재생 에너지, 건물의 단열 기능화, 군용기의 엔진공회전 축소 등에 힘입은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미 국방부의 화석 연료 소비 절감을 권하며, 그 장점 4가지를 들었다. 첫째, 미국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 저감으로 기후변화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 둘째, 야전군의 석유 의존도를 줄여 정치·안보 측면에서 중요한 이익을 얻는다. 셋째, 중동 산유국에 대한 미군 의존도를 줄임으로써 걸프만 주둔 미군 규모의 적정성 및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재평가할 수 있다. 넷째, 연료비 절감 및 석유 자원 확보를 위한 군사작전을 줄여 군비 지출을 절감하고, 그 비용을 생산적 경제활동에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웅덩이 미스터리’…물고기는 어디서 왔을까
브라질 열대송사리 알, 고니 뱃속 30시간 거친 뒤 무사히 깨어나
남아메리카 고니가 먹이와 함께 삼킨 열대송사리의 알(아래)이 배설된 뒤 부화하는 실험이 성공해, 이 물고기의 장거리 이동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G 실바 외(2019) ‘생태학’ 제공.
다른 물줄기와 연결되지 않은 외딴 호수나 웅덩이 상당수에 물고기가 사는 까닭은 오랜 미스터리다. 흔히 일반인은 “물고기가 비와 함께 떨어진다”고 믿고, 전문가는 “새가 물고기 알을 옮긴다”고 설명한다.
물고기보다 알을 옮기는 쪽이 훨씬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그런 현상을 엄밀하게 증명한 연구는 이제까지 없었다(▶관련 기사: 외딴 호수 물고기 어떻게 살게 됐나). 새가 물고기 알을 옮긴다는 실증적인 연구가 처음으로 나왔다.
질리안드루 실바 브라질 발레 두 리우 도스 시뇨스 대 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생태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브라질에 서식하는 열대송사리의 알을 이 지역 고니가 멀리 떨어진 웅덩이나 늪으로 옮길 수 있음을 실험으로 증명했다고 밝혔다. 이제까지 물새의 다리나 깃털, 부리에 물고기 수정란이 붙어 이동할 것으로 추정됐으나, 이번 연구에서는 물고기 알이 새의 장관을 거쳐 배설되는 방식으로 퍼질 수 있음이 드러났다.
남미 고유종인 코스코로바 고니. 고니 가운데 가장 작은 종이다. 올라프 올리비에루,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브라질 남부의 습지 라고아 두 피시 등에서 새가 식물이나 무척추동물을 먹어 퍼뜨리는 현상을 조사하고 있었다. 남미 고유종 물새인 코스코로바 고니의 배설물에서 한해살이 열대송사리의 알 1개와 알껍데기 6개를 발견했다.
이 알엔 잘 발달한 배아가 자라고 있었지만, 시료를 냉동해 보관하느라 부화시키지는 못했다. 연구자들은 앞서 발견한 종과 같은 열대송사리 2종의 알 650개를 확보해 먹이와 섞어 고니들이 먹도록 한 뒤 배설물 시료 55개를 얻었다. 배설물 4개에서 살아있는 열대송사리의 알 5개를 회수할 수 있었다. 고니에 먹힌 알 가운데 약 1%가 산 채로 배설된 셈이다.
이 알은 고니의 장관에서 최고 30시간을 보냈지만 살아있었다. 5개의 알 가운데 3개에서 배아가 발생했고, 그중 하나에서 49일 뒤 어린 물고기가 태어났다. 연구자들은 “도중에 죽은 알은 모두 곰팡이 감염 때문”이라며 “소화관의 영향이 직접 사인은 아닌 것 같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열대송사리의 일종. 한해살이 물고기로 일시적으로 고인 웅덩이에서 잘 번식한다. 엘로이 시네이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번 실험의 대상인 열대송사리(아우스트롤레비아스 속)는 한해살이로 거칠고 변덕스러운 환경에 적응한 물고기다. 일시적으로 고인 웅덩이에서 재빨리 자라 알을 낳은 뒤 웅덩이가 마르면 두꺼운 껍질로 둘러싸인 알이 다음 홍수를 기다리며 휴면에 들어간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로 홍수가 지지 않는 고립된 웅덩이나 여러 해 동안 말라붙은 웅덩이에도 열대송사리가 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며 “열대송사리 이외의 다른 어종도 이런 방식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 지역에서 열대송사리의 번식기와 고니가 오는 시기는 일치한다. 고니는 수 킬로미터 떨어진 먹이터와 잠자리를 매일 오가며, 계절적으로는 훨씬 먼 거리를 이동한다. 연구자들은 “논스톱으로 이동한다면 고니는 열대송사리의 알을 2000㎞까지 옮길 수 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식물의 씨앗은 새나 포유동물의 위장관을 거치면서 멀리 확산하는 전략을 편다. 그러나 동물 가운데도 드물지만 이런 방식으로 이동하는 종이 있다. 대벌레와 달팽이가 직박구리에 먹혀 먼 거리를 이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관련 기사: 직박구리에 잡아먹혀 새끼 퍼뜨리는 ‘대벌레’).
고니(A)의 배설물 속에서 발견된 발생 중인 열대송사리의 수정란(B), 실험에 쓰인 두 종의 열대송사리(C, D), 실험에서 한 종의 수정란이 발생해 성체로 태어나는 과정(E, F, G, J), 다른 종의 발생 과정(H, I). G 실바 외(2019) ‘생태학’ 제공.
연구자들은 “송사리 수정란이 고니의 위장 속에서 어떻게 소화효소나 위산을 견뎠는지 등은 후속 연구과제”라고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Giliandro G. Silva et al, Killifish eggs can disperse via gut passage through waterfowl, Ecology (2019) doi: 10.1002/ecy.277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
가장 통통한 희귀 앵무새 카카포, 곰팡이 때문에 멸종 위기
뉴질랜드에 200여 마리만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희귀종 앵무새 '카카포'가 곰팡이 감염으로 또다시 멸종 위기에 처했다.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최근 뉴질랜드에서 카카포 7마리가 '아스페르길루스증'이라는 병으로 폐사했다. 아스페르길루스증은 통상 폐가 곰팡이에 감염돼 생기는 병이다. 날지 못하는 야행성 조류인 카카포는 뉴질랜드 토종으로 세상에서 가장 뚱뚱한 앵무새 종이다.
멸종 위기의 뉴질랜드 토종 앵무새 '카카포' [연합 이매진 자료사진]
현재 확인된 개체 수가 214마리에 불과한 멸종 위기종이다. 과거에는 뉴질랜드 전역에서 볼 수 있었던 카카포는 인간에 의한 서식지 파괴와 유해 해충 등의 영향으로 1990년대 중반 한때 개체 수가 50여 마리까지 줄었다. 이후 환경 당국의 지속적인 보존 노력 덕에 소폭이나마 개체 수가 늘기 시작했지만, 이번 감염병으로 다시 생존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카카포의 아스페르길루스증 발병 사실이 처음 확인된 것은 지난 4월 말이다. 이후 전체 개체 수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36마리가 진찰 및 치료를 위해 동물병원으로 보내졌다. 지난 11일에는 오클랜드 동물원에 서식하던 생후 100일 된 새끼 카카포가 숨을 거두기도 했다.
카카포[위키피디아 캡처=연합뉴스]
뉴질랜드에서는 과학자와 자연관리원, 자원봉사자 등 100여명이 팀을 구성해 카카포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클랜드 동물원의 수의과 책임자인 제임스 채터턴 박사는 "지금 살아 있는 카카포가 모두 죽을 수도 있다. 종 보존을 위해 한 마리 한 마리가 소중한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문제는 이 병에 걸린 카카포를 발견하고 치료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이다. 당국은 헬기까지 동원해 카카포를 남섬의 동물병원으로 옮겨 감염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 컴퓨터 단층 촬영(CT) 결과 감염이 확정되면 장기간 집중 치료가 불가피하다.
카카포가 또다시 멸종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에 전 세계에서 기부금도 쇄도하고 있다. 현재까지 10만 뉴질랜드 달러(약 7천800만원)가 모금됐는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해외에서 답지한 것이다. 유지니 세이지 뉴질랜드 환경 장관은 현지 온라인 매체 '스터프'와 인터뷰에서 "카카포가 숨을 거둘 때마다 우리 모두 슬픔에 빠질 것"이라며 카카포의 조속한 쾌유와 생존을 기원했다. lucho@yna.co.kr 연합뉴스
타이거 우즈형 로스트 볼 치면 안되요~,골프공 틈새로 먹이찾는 바다표범
US오픈이 열리는 페블비치 골프링크 인근 바다속을 가득 메운 골프공들로 인근 수생 생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이 공들은 골프장이 운영된 수십년 간 쌓인 이용객들과 선수들이 친 로스트볼들이다. [로이터=연합뉴스]
.타이거 우즈, 로리 매킬로이들 세계적인 골프 선수들이 총출동하는 US오픈을 앞두고, 대회가 열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 골프링크 인근 바닷속이 골프공으로 가득 찬 사진이 13일 공개됐다. 이날 공개된 사진 속에는 바다를 빼곡히 메운 골프공들 사이에서 먹이를 찾는 듯한 바다표범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12일(현지시간) 타이거 우즈가 US 오픈 시작을 앞두고 페블비치 골프링크에서 연습 스윙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 골프공들은 수 십년간 운영되어온 페블비치 골프링크에서 골프를 친 이용객들과 선수들이 사용한 로스트 볼들로 대략 200~500만개의 골프공이 바닷속에 잠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퍼블릭 코스 중 가장 아름다운 코스로 평가받는 페블비치 골프링크는 1919년에 개장해서 90년간 운영해온 골프장이다. 또한 US 오픈 등 메이저 골프 대회가 매년 개최되는 골프 코스이기도 하다.
해변과 인접한 페블비치 골프링크 10번 홀에서 한 US 오픈 참가 선수가 연습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 아름다운 골프장의 이면은 캘리포니아 카브릴로 대학에서 환경과학을 전공하는 알렉스 웨버에 의해 3년 전 처음으로 발견됐다. 해변에서 다이빙을 즐기던 중 바닷속에 가득한 골프공들을 발견한 그는 "시각적으로도 충분히 인지할 만큼의 골프공들이 주는 바다 생태 오염이 심각해 보였다며, 왜 아무도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 하지 않는지 의문스러웠다"고 발견 당시 소감을 밝혔다. 웨버는 이 각각의 골프공이 3개의 플라스틱 물병이나 7개의 비닐봉지와 같은 질량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양산한다고 밝히며, 바다표범이나 물고기들과 같은 수중 생물들이 골프공이 분해되면서 생기는 미세입자들을 먹이로 착각해 먹게 되면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또 이는 먹이사슬을 통해 고스란히 인간에게 돌아오게 된다고 경고했다.
웨버는 바닷속에 빠진 골프공들이 분해되면 7개의 비닐 봉지나 3개의 플라스틱 물병과 같은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생하게 된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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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웨버는 그와 인연이 있었던 미국 스탠퍼드 대학 연구원들과 이 문제를 함께 논의했고, 이러한 골프공의 해양 오염에 대한 논문을 발표해 사태의 심각성을 페블비치 골프장에 전달했다. 페블비치 골프장은 이를 중대하게 받아들였고, 골프장을 이용하는 선수들에게 골프공이 물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는 표지판을 설치했다. 또 바닷속 골프공을 회수하기 위해 잠수부들을 파견하는 등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또한 수중 환경의 "극적인 변화"가 보일 때까지 매년 골프공 수거작업을 이어가기로 약속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페블비치 골프링크 인근 바다에 수북히 쌓인 골프공들. [로이터=연합뉴스]. 우상조 기자 중앙일보
부산시, ‘보행권리장전’ 제정 위해 시민 의견 묻는다
부산시가 시민들이 보다 안전하고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거리를 만든다.
부산시는 보행권 회복을 위한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은 13일 오후 부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보행권을 찾아드립니다’ 시민 대토론회를 개최한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 1월 부산시 1호 정책으로 발표한 ‘사람중심 보행도시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그간 잃어버렸던 보행권을 회복하고 진정한 보행 권리를 보장받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동안 보행전문가와 교수·시의회·시민단체·장애인단체·걷기동호회 등 보행권 회복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이 모여 총 8차에 걸친 열띤 토론과 숙의과정을 통해 ‘부산시 보행권리장전’ 초안을 마련했다.
보행권리장전 초안은 다양한 시민의견 수렴과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5월 20일부터 지난 5일까지 17일간 시 홈페이지 시민설문조사방에 게시됐다. 설문참여자 407명 중 86%가 ‘보행권리장전 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날 토론회는 이성근 그린트러스트 상임이사의 ‘도심 보행길 무엇이 문제인가’ 발제에 이어박창희 스토리랩 수작 대표가 ‘부산시 보행권리장전 제정과 시대정신’을 발표하고 전문가 토론을 진행한다. 시민모임에서는 설문조사 결과와 이번 대토론회를 통해 나온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해 전국 광역단체 최초로 시민 주도의 부산시 보행권리장전 선포를 추진할 계획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보행권은 기본권이자 천부인권과도 같다. 보행도시는 시민 누구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걸을 수 있는 권리를 찾고 확인하는 데서 출발한다.”면서 “이번 부산시민 대토론회는 그간 차량과 속도 중심의 교통정책으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했던 보행자의 권리를 되찾아 진정한 사람중심의 보행도시로 성장해가는 큰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heraid@newsis.com
한화토탈 화학사고, 소름 돋는 치명적 장면들
화학사고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가 (상)
화학 안전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시민들은 불안하다. 지난 5월17일 한화토탈 대산공장 스티렌모노머 유출사고를 계기로 이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 주변 주민 모두가 불안에 떨고 있다. 2012년 구미 휴브글로벌 불산 유출 사고 이후에도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에서 유해화학물질이 누출돼 인명피해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아예 못 믿겠다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기업을 관리·감독하는 정부에 대해서도 신뢰를 하지 않고 있다. 사고가 나도 미봉에 그치는 이런 식의 화학물질 관리는 더는 안 된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화토탈 대산공장 사고는 물론 최근 일어난 화학물질 누출사고에 대한 종합점검과 이를 토대로 한 제대로 된 대책이 필요하다. 한화토탈 사고의 원인을 비롯한 전반적인 문제점과 최근 일어난 화학사고, 그리고 정부의 관리 실태의 문제점과 바람직한 대책 등을 차례로 살펴본다.
먼저 환경부, 고용노동부, 충남, 서산시, 한국환경공단, 산업안전보건공단, 시민참여단으로 구성된 관계 기관 합동조사단이 5월31일 발표한 중간발표와 회사 쪽이 지난 4일 밝힌 사고원인 및 대책을 중심으로 지난 5월17일과 18일 일어난 한화토탈 대산공장 스티렌모노머 유출 사고를 살펴보자.
5월17일 오전 11시 45분께 스티렌모노머(단량체) 제조 공정 가운데 공정에서 나오는 스티렌모노머가 섞인 남은 기름을 보일러 연료로 쓰기 위해 담아 두는 탱크 상부에서 하얀 유증기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증기가 나온다는 것은 탱크 내부가 뜨거워져 기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회사는 자체 소방차를 동원해 12시10분께부터 탱크 내부를 식히기 위해 외벽에 물을 뿌려댔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스티렌모노머는 상온에서도 중합반응이 일어난다. 온도가 증가할수록 더 빠르게 중합반응이 진행된다. 증기가 새어나오기 시작했을 때 이미 탱크 내부에 설치된 온도계의 눈금은 섭씨 56도를 가리켰다. 스티렌모노머 중합반응이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시점이었다.
탱크 내부 온도는 1시간여 만에 매우 빠른 속도로 100도를 향해 치솟고 있었다. 이는 온도가 65도 이상 올라갈 경우 스티렌모노머라는 물질의 특성 상 물을 뿌리는 등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막을 수 없는 폭주반응(run-away polymerization)이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탱크 부착 온도계는 100도까지만 잴 수 있어서 탱크 내부 온도가 최종 얼마까지 올라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탱크 폭발이 염려되는 급박한 순간이 왔다.
한화토탈, 119에 신고 않고 관계기관에도 알리지 않아
12시23분께 스티렌모노머와 남은 기름 성분이 탱크 상부 비상배출구를 통해 벌겋게 마구 뿜어져 나오는 1차 분출이 40초간 일어났다. 회사는 최초 유출에 이어 대규모 분출 때도 외부 어디에도 사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1차 대규모 분출이 있은 뒤 12분 뒤, 최초 유증기 누출로부터 50분 뒤에 비로소 서산소방서에 사고 사실을 알렸다. 회사 인근에 있는 서산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에는 알리지 않았다.
119에 신고하면 소방서와 방재센터 등 관련 모든 기관에 즉각 사고 사실이 전파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회사 사고대응 매뉴얼에도 화재·구조·구급 등 위급 상황 발생 시 119에 신고하게끔 나와 있는 것을 무시한 것이다. 대신 소방서에 개인유선으로 연락했다. 이 때문에 서산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산업안전팀은 12시50분께 회사로부터, 환경팀은 회사 노조 간부로부터 12시52분께, 서산시 환경지도팀은 12시53분께 회사로부터 각각 사고 내용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관계기관 담당자들은 2~4차 분출이 일어난 오후 1시5~11분께 또는 그 직후 현장에 도착했다. 대산읍 주민들은 대규모 4차 분출이 일어난 1시11분에서 17분이 더 지난 뒤 서산시가 알리는 마을 방송을 듣고 사고 소식을 알 수 있었다. 환경부 화학물질안전원 상황실은 충남소방본부가 내보낸 상황전파 메시지를 받은 1시25분에서야 사고 상황을 알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총체적 부실 경보와 알림이었다.
스티렌모노머 대부분 지나가고 난 뒤 간이 측정
서산방재센터 환경팀은 1시30분~50분께 사고지점과 부지경계선에서 스티렌모노머 농도를 휴대용간이측정기로 쟀다. 이미 대부분의 유해물질이 지나가고 난 뒤였다. 대산읍 마을 주민들에게 분출된 유해물질이 스티렌모노머라는 사실을 서산시가 마을주민방송을 통해 알린 때는 2시27분이었다. 그때서야 주민들은 정확한 유해물질의 종류를 알 수 있었다. 상황이 종료되어 갈 때쯤이었다.
이미 주민들은 상당량의 악취가 나는 스티렌모노머를 들이마셨다. 이날 오후부터 자정 넘어서까지 서산의료원은 한화토탈 노동자와 입주·협력업체 노동자, 그리고 주민들로 북적였다. 서산중앙병원에도 노출 환자들이 내원했다. 주민 1627명(일부 복수 방문)과 노동자 1011명 등 모두 2638명이 어지럼증과 구토, 두통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았다.
고용노동부 대산출장소는 오후 5시30분께 스티렌모노머 1 공정의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다. 17일 일어난 사고는 오후 2시40분께 스티렌모노머가 다량 함유된 유증기 발생을 막는데 성공하면서 끝났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 3시40분께 다시 사고 탱크에서 유해물질이 누출되는 2차 사고가 일어났다. 회사는 이를 외부로 알리지 않고 외벽에 물을 뿌리는 대응을 했다. 오전 5시41분께 소방 출동을 요청하지 않고 서산소방서에 상황만 알렸다. 오전 6시께 유해증기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방제거품제를 탱크내부에 집어넣었다. 오전 7시40분께 탱크온도가 내려가 더 이상 유해증기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회사는 밝혔다. 두 차례에 걸친 스티렌모노머 누출 사고는 이렇게 끝났다.
사고 원인과 사고 경과는 회사와 합동조사단의 조사로 어느 정도 파악됐다. 지금은 고용노동부가 노조 파업 중에 일어난 이번 사고와 관련해 사고가 발생하게 된 근본 원인과 사고 전후 노동자와 간부 등의 역할과 책임 소재, 그리고 노동 조건 등을 따지는 특별근로감독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7일부터 본격적으로 대산읍과 서산시청에서 피해자 신청을 접수받을 예정이다.
한화,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문화 구축 위해 노력 홍보해와
한화토탈은 삼성그룹이 투자부문 구조조정 과정에서 석유화학 부문에서 손을 떼면서 한화그룹이 인수, 삼성토탈이 이름을 바꾼 국내 대표적인 석유화학기업이다. 프랑스의 토탈그룹과 5대 5 합작한 이 회사는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 등의 폴리머(중합체) 생산과 에틸렌, 프로필렌, 파라자일렌, 스티렌모노머와 같은 기초 화학물질 생산, 그리고 연료유와 용제, 엘피지 등의 에너지 생산을 하고 있다. 스티렌모노머는 국내 생산의 40% 점유율을 보이는 1위 기업이다. 지난해 연 매출이 11조 원을 넘었고 영업이익도 연 1조 원을 웃돈다.
한화토탈은 케미칼과 에너지 부문에서 글로벌 리더를 자임한다. 특히 안전·보건·환경을 경영 활동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문화 구축을 위해 노력한다고 대내외에 적극 홍보해오고 있다. 국내 최초로 국제안전등급 심사에서 8등급이라는 우수 등급을 받았다고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어처구니없는 대형 유해물질 누출사고가 생기면서 이런 선전과 자부심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사고는 공장 점검과 정기 보수 등을 위해 가동을 멈추었던(3월27일~5월4일) 스티렌모노머 제조공정을 재가동해 운영하는 도중 일어났다. 평소 현장에서 이 공정을 다루었던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 폭 등을 둘러싸고 단체협약이 결렬돼 파업 중이었다.
노조, 사고 20여 일전 재가동 매우 위험 강조 기자회견
회사는 대체인력과 간부 엔지니어 등을 동원해 스티렌모노머 공정 2개 라인 가운데 1개 라인을 5월5일부터 재가동에 들어갔다. 노조 등은 4월25일 기자회견 등을 통해 숙련되지 않은 인력을 가지고 재가동을 할 경우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회사는 이를 무시했다.
노조의 경고처럼 공정 가운데 고순도 스티렌모노머를 정제·회수하는 마지막 탱크에서 이상반응으로 중합체가 많이 발생해 배관이 막혔다. 부득이 이 공정을 생략한 채 스티렌모노머의 함량이 매우 높은 물질을 잔사유를 보관하는 탱크로 보냈다.
이 스티렌모노머가 다량 들어 있는 잔사유를 제때 보일러용으로 사용해야 뒤탈이 없음에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6일씩이나 보관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스티렌모노머 폭주반응과 유해물질 누출은 그 뒤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대형 사고가 터진 뒤 노사 모두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임금협상을 마무리하고 파업을 풀었다.
회사는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스티렌모노머 중합반응이 생기는 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탱크에 스티렌모노머 함량이 평소보다 4배 이상 높은 40% 스티렌모노머 잔사유를 탱크로 보내놓고 온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중합반응 발생 가능성이 높은 내용물을 탱크로 흘려보냈으면 장기간 보관할 경우 중합반응이 일어나기 매우 좋은 조건이 형성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에 대한 관리를 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시인했다.
무리한 재가동은 임금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 때문?
마지막으로 제때 적절한 농도의 반응 억제제를 투입해야 했음에도 반응 억제제 분석과 농도 관리를 전혀 하지 못한 치명적 오류를 저질렀다고 덧붙였다. 세계 최고의 화학·에너지 기업을 지향하는 굴지의 대기업에서 기본을 갖추지 못한 아마추어 공정관리와 안전관리를 한 셈이다.
회사는 간접적인 사고 원인으로 고량의 스티렌모노머 성분이 정기 보수 후 재가동 중 스티렌모노머 회수탑(칼럼) 내부에 폴리머가 발생한 점을 꼽았다. 이 때문에 스티렌모노머 잔사유 가운데 스티렌모노머 함량이 평소에는 10% 이하였지만 사고 당시 비정상적으로 40%나 됐다는 것이다.
회사가 이처럼 정상 가동 능력이 안 되면서도 무리하게 스티렌모노머 제조 공정을 가동한 까닭이 대체 뭘까? 이에 대해서는 회사, 합동조사단 등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고 있다. 현장을 잘 아는 노조원이 없어도 정상가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노사협상에서 회사 쪽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회사의 이런 방침에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간부 어느 누구도 무리한 재가동을 반대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고 분석해볼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 내부고발이나 고용노동부의 철저한 조사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본다.
이번에 드러난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회사 쪽이 심각한 사고가 났고 이로 인해 주민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음에도 119에 연락조차 하지 않고 소방서와 방재센터 등에도 늑장 연락을 하거나 아예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회사 책임자는 재난 대응 매뉴얼이나 평소 교육을 통해 늦어도 15분 안에 사고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이번 사고 때 유증기 누출과 폭발을 막는데 집중하느라 신속 신고를 하지 못했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앞서 살펴본 충남 서산의 대산공단 한화토탈 스티렌모노머 유출사고의 경과와 원인, 그리고 대처는 한마디로 미숙과 부실로 점철되어 있다. 그나마 유독성이 약한 스티렌모노머란 물질이 유출되었기에 다행이다. 미량이라도 치명적인 물질이 유출되었더라면 돌이킬 수 없는 재난으로 기록될 뻔했다. 한화토탈 사고를 또 하나의 화학사고로 치부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교훈으로 새겨야 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
반복에도 반성 없는, 대한민국은 화학사고 공화국
화학사고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가?<중>
스티렌모노머 대량 유출 사고는 이번 한화토탈 대산공장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 8월23일 경기도 화성 한 사업장에서 지하저장고에 보관 중이던 스티렌모노머 증기가 벤트관을 통해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큰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6만 리터 저장고에 있던 스티렌모노머 5만 리터가 이상반응으로 외부로 누출됐다. 스티렌모노머 증기는 불티 등 점화원이 있을 경우 폭발성이 있어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당시 이 사고를 조사한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스티렌 열적 위험성 평가보고서’를 펴냈다. 공단에 딸린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조사팀은 이듬해 <화학공학의 이론과 응용>이란 학술지 제22권 제2호에 ‘열량계를 이용한 스티렌모노머 열안전성 평가’란 제목의 논문을 기고했다.
보고서와 논문을 보면 온도가 65도 이상으로 올라갈 경우 제어할 수 없는 폭주중합반응이 일어나며 중합이 시작되면 온도가 상승하고 고체상의 고분자가 통기관을 막을 경우 탱크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대목이 나온다.
또 52도에 이를 경우 중합억제제의 효과가 없어지기 때문에 온도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20도로 관리하더라도 가장 일반적인 중합억제제인 TBC와 산소농도가 감소하기 때문에 주기적인 검사가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폭주중합반응으로 스티렌모노머가 끓는점 이상으로 가열될 경우 스티렌모노머가 증발되어 폭발성 증기구름을 형성하고 점화원이 가까이 있으면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스티렌모노머의 열적 특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2015년 경기 화성에서 대규모 스티렌모노머 유출, 한화토탈은 몰라
하지만 2015년 화성에서 일어난 스티렌모노머 유출 사고와 안전보건공단의 보고서에 대해 한화토탈 쪽은 전혀 알지 못하고 ‘깜깜이’로 있다가 이번 사고 뒤 관련 자료 검색 과정에서 알게 됐다고 밝혔다. 만약 공단 쪽이 2015년 사고 사례를 관련 업계에 적극 전파하지 않았다면 그 자체를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설혹 공단의 적극적인 사례 전파 노력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스티렌모노머 국내 생산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한화토탈 쪽이 이 보고서와 논문을 알지 못했다는 것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한화토탈 쪽이 과거 스티렌모노머 대량 유출 사고 사례를 잘 알고 이를 깊이 새겨 회사 안전 관리에 적용했더라면 이번과 같은 사고는 예방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2012년 구미 휴브글로벌 불산 누출사고로 막대한 인명피해를 낸 뒤에도 화학물질 누출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스티렌모노머 대량 유출 사례처럼 과거 일어난 사건·사고에서 제대로 된 교훈을 마음 깊이 새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요 근래 발생한 대표적 화학물질 누출사고는 경북 구미 휴브글로벌 불산 누출 로 2012년 9월에 일어났다. 노동자 5명이 죽고 주민 등 3천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특히 농작물과 동물들의 피해가 매우 컸다. 이 사고 뒤 정부는 화학물질안전원과 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를 설립했다. 현재 화학방재센터는 울산, 여수, 구미, 익산, 서산, 시흥, 충주 등 화학산업단지 중심으로 전국 7곳에 있다.
▲구미 봉산리 한 농가에 걸린 '절대 식용금지' 플래카드 ⓒ 평화뉴스 정수근 객원기자
2012년 구미 불산 사고 이후 대기업 등에서 화학사고 잇따라
구미 불산 사고 뒤에도 대기업 등에서 벤젠, 불산과 염소 등 독성이 매우 강하거나 인체 발암성이 있는 화학물질이 잇따라 누출돼 많은 사망자가 나오는 등 인명 피해가 생겨 구미 사고의 교훈을 되새기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삼성과 엘지, 에스케이, 롯데, 한화 등 최고의 대기업에서 이런 화학물질 유출사고가 계속 일어나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구미에서는 2013년 3월 2일 반도체 부품공장인 LG실트론 구미공장에서 불산, 질산, 초산 등이 섞인 화학물질 용액이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어 사흘 뒤인 5일에는 경북 구미시 공단동 구미케미칼에서 탱크로리에 든 액체 상태의 염소를 밸브를 통해 옮기는 과정에서 송풍기가 고장 나 역류하는 바람에 염소가스가 누출돼 이 회사 직원 한 명과 인근 공장 노동자 10명 등 모두 11명이 호흡곤란 등을 호소하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구미 휴브글로벌 불산 누출 사고 발생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2013년 1월에는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1월 불산 누출 사고로 노동자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이 공장에서는 그 뒤 3개월 여 만에 안전점검을 소홀히 해 같은 장소에서 또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2015년 11월 16일 합성세제 제조업체인 이수화학 울산공장에서는 1톤가량의 불산이 누출돼 이웃 주민이 악취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 회사에서는 2014년 2월에도 100리터가량의 불산이 누출되는 사고를 일으켜 공장장 등이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구미 LG실트론, 삼성전자 화성공장, 울산 이수화학, 금산 램테크놀로지에서 불산 누출
2016년 6월 4일에는 충남 금산 램테크놀로지 공장에서 55% 불산 용액 이송 작업 중 압력을 견디는 디스크가 파열되면서 배관을 통해 하역장 집수조로 흘러들었고 집수조 내 이송펌프가 작동하지 않아 불산이 하역장 밖으로 7킬로그램가량 유출됐다. 주민 대피 요청은 사고 발생 1시간 넘게 지난 뒤 이루어졌다. 화학물질안전원과 금강유역환경청 관계자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사고 뒤 2시간 가까이 되어서다.
이 사고로 주민 3명과 공장 노동자 4명이 구토와 발열 증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 공장에서는 2015년 7월과 2016년 1월에도 불산이 외부로 유출됐다. 이로 인해 마을 하천에서 물고기 수천마리가 떼죽음을 당하는 등의 일이 계속 벌어지자 신변 안전에 위협을 느껴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공장 이전을 촉구한 바 있다.
불산과 함께 대표적인 유해 가스인 염소 누출 사고도 최근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5월 17일 울산 남구 여천동 한화케미칼 2공장 염소 하역장에서 탱크로리 차량에 실려 있던 액화 염소를 공장 자체 저장탱크로 옮겨 싣는 과정에서 호스가 파열돼 염소가스가 누출됐다. 이 사고로 인근에서 작업하던 노동자 27명이 유독성 염소 가스를 들이마셔 호흡 곤란과 메스꺼움, 어지러움 등을 호소하며 병원 치료를 받았다.
2018년 7월14일에는 대전 대덕구에 있는 한 제지업체에서 과산화수소가 다량 저장된 탱크에 수산화나트륨이 잘못 투입되어 강한 산화성을 띠는 과산화나트륨이 생성되는 반응으로 발열미스트가 급격히 발생해 상부 배관이 파손되면서 과산화수소 35입방톤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2018년 대산단지 내 롯데케미칼 발암물질 벤젠 다량 누출
인체발암물질인 벤젠이 누출되는 사고도 있었다. 벤젠은 미국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소(NIOSH)가 작업장 허용기준을 0.1ppm으로 정해 놓을 정도로 독성이 매우 강하다. 사고는 지난해 1월15일 한화토탈과 함께 대산석유화학단지에 있는 롯데케미칼 공장에서 배관에 금이 가 벤젠이 6톤가량이나 외부로 누출되면서 일어났다.
이 사고 뒤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고 했다가 사흘 뒤 공장 내 유수지에 사는 숭어가 집단 폐사한 것을 발견했다. 폐사한 어류와 유수지 물의 수질을 분석한 결과 벤젠에 오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벤젠 사고 뒤 주민들의 요구로 대산공단 입주기업들이 공동 부담해 인근 마을회관들에 유독가스 누출 시 개인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방독마스크를 지급해 비치하고 있다. 지금도 대산읍 곳곳에는 롯데케미칼을 나무라고 암을 걱정하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화학사고가 얼마나 잦고 심각한지는 통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고용노동부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 산업재해 발생 현황’을 보면 2014년부터 2018년 7월까지 4년 7개월간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에서 화학물질에 의한 폭발·파열·화재나 화학물질누출·접촉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100명, 부상자는 2169명에 이른다.
잇단 화학물질 누출 사고를 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례에서 노동자의 부주의와 회사의 노동자 안전 교육과 안전 부문 투자 미흡, 사고 숨기기, 늑장 신고, 솜방망이 처벌, 관계기관 간 공조 미흡, 당국의 늑장 대응과 허술한 누출 화학물질 측정 등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같은 공장에서 유사 사고가 반복해 일어나는 사례도 많다. 이를 면밀히 살펴 화학사고를 예방하고 사고 빈도를 낮추며 조기 대응해 피해를 줄이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는 것이 시급하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
화학 사고는 지진과도 같다
화학사고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가 <하>
왜 우리 사회에서는 화학사고가 끊이지 않고 계속될까? 잇단 사고에 화학단지가 입주해 있는 지역의 한 기초지자체 단체장은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는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면 지역 경제발전과 일자리 등 때문에 주민들이 환영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외려 건강과 안전 문제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에 이들 공장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화학사고가 잇따르게 되면 저도 그렇고 주민들이 늘 걱정거리를 달고 삽니다.”
대한민국을 안전사회로 가꾸어나가기 위해서 화학사고 예방과 조기 신속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한화토탈 스티렌모노머 증기 유출사고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안전사회를 목표로 한 우리 사회의 갈 길이 여전히 멀고 험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고쳐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석유화학공장을 비롯해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들이 노후화돼 배관과 설비 등이 잦은 고장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일어나는 화학사고도 상당히 많다. 중소기업들은 안전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대기업들은 엄청난 이익을 벌어들이면서도 탐욕 또는 안전을 뒷전으로 미루는 방침 때문에 안전 부문 투자를 소홀히 하고 있다. 정부가 중소기업의 안전 투자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기업에 대해서는 안전을 최우선하도록 행정지도 등을 통해 압박을 가해야 한다.
화학사고든, 그 어떤 부문의 사고든 사고는 현대 사회에서 피할 수 없다. 위험 내지 사고의 불가피성과 상존성은 현대 사회의 속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건이 생기면 그 사건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유사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그 내용을 전파해야 하며 제도 개선을 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만약 한화토탈 쪽이 밝힌 대로 2015년에 이미 스티렌모노머 폭주중합반응으로 경기도 화성에서 다량의 스티렌모노머 증기가 유출된 일을 몰랐다면 앞으로 정부 또는 산업안전보건공단, 환경공단 등이 화학사고가 발생할 경우 이 화학물질을 다루는 모든 사업장에 사고 내용을 효과적인 수단을 통해 자세하게 전파해야 한다. 관련 기업 담당자에 대한 별도의 특별교육도 해야 한다.
이번 한화토탈 사고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화학물질 유출사고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사실이 있다. 바로 미신고 내지는 늑장 신고다. 유출 사실을 인근 주민한테 제때 알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공장 노동자와 인근 다른 공장 노동자, 그리고 소방·구조당국과 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지자체에 신고하지 않거나 지각신고를 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화학사고는 지진과 같아서 조기 경보가 최우선
화학물질 사고는 신속 신고와 조기 대응이 중요하다. 두 가지 모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동시에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화토탈의 변명처럼 유출을 최소화하고 막는데 온 신경을 쓰느라 신고를 게을리 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유해 증기는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공장 내부와 인근 공장, 그리고 마을로 퍼져나기 때문에 분초를 다투는 문제다. 지진경보처럼 사고 발생 몇 초 내지 몇십 초 안에 노동자와 주민들에게 유출 사실과 대피·대처 요령을 전달하여야 한다. 20세기 최악의 화학 참사로 1984년 인도 보팔에서 일어났던 유니온카바이드 사의 메틸이소시안산염 유출의 경우에도 늑장 경보 사이렌과 잘못된 경보 발령으로 피해가 더 커졌다.
지금까지 일어난 화학물질 유출 사고의 경우 마을 방송이나 알림문자전송으로 주민들에게 알렸다. 공장 내부 노동자에게는 사내 방송으로 사고 발생 내지는 대피 명령을 내리고 있다. 스티렌모노머 증기를 비롯해 대부분의 유해화학물질 사고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상 긴급재난 문자발송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긴급재난문자가 주민들에게 발령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전향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화재, 홍수, 지진처럼 화학사고도 분초를 다투는 긴급 상황의 경우여서 재난문자 발송 대상으로 넣든지, 아니면 적어도 이에 준해 신속하게 피난 대상자에게 사고 사실과 대피 요령이 전달되어야 한다. 주민 안전을 가장 가까이서 책임지고 있는 지자체가 그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이번 한화토탈 사고를 계기로 전국 주요 화학산업단지와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에서는 문자알림과 함께 화학물질 누출 경보 사이렌을 울릴 수 있는 시설을 공장 내와 마을 곳곳에 설치해 공장 쪽이나 지자체 등이 버튼만 누르면 실시간으로 대피 사이렌이 울릴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경보시스템이 될 수 있다.
사고 발생 뒤 서산시가 오후 1시28분께부터 오후 6시23분께까지 세 차례에 걸쳐 마을방송을 했다. 또 오후 1시35분에는 재난안내문자를 주민들에게 보냈다. 한화토탈 쪽도 오후 1시31분께 주민들에게 안내방송을 했다. 이 안내문자와 방송에서 “SM공장 부생연료탱크에서 다량의 증기가 발생해 많은 악취가 발생하고 있다.” “악취가 많이 발생하니 가급적 외출을 삼가라.” “악취는 스티로폼 원료 성분이며 악취유발물질은 유해화학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유출된 주성분이 스티렌모노머라는 사실과 이 물질의 특성, 즉 노출될 경우 두통, 메스꺼움, 구토 등의 증상 유발 가능성은 그 어디에도 없다. 공장, 지자체 모두 스티렌모노머 유출에 대비한 안내 내용을 사전에 준비해두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주민들에게 신속하게 사고에 대비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효과적 개선 방안에 대해 검토해야 할 것이다.
늑장신고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늑장 신고는 실수 때문이라거나 비의도적이라기보다는 의도적으로 벌어지는 행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 은폐와 늑장 신고 등은 노동자와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이자 의도적인 불법 행위로 다루어야 한다. 당국의 고발로 거칠 것이 아니라 검경의 철저한 수사, 그리고 사법당국의 엄벌로 이어져야만 기업의 이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다.
방재센터 팀 간 협력 없고 현장측정버스 늑장 출동 다반사
한화토탈 사고로 드러난 사실 가운데 하나는 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화학구조팀, 산업안전팀, 환경팀, 가스안전팀, 지자체 팀이 신속한 정보 공유와 공동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고 당일 각 팀은 회사 쪽과 노조 등 서로 다른 기관과 다른 사람들한테서 각기 다른 시간에 사고 사실을 통보받았다. 소방서와 서산시 환경지도팀이 사고 사실을 통보받은 시간은 18분가량 차이가 난다.
화학방재센터에서 근무하는 각 팀은 센터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부처와 기관에서 파견 나와 있는 형식이어서 지휘계통이 단일화되어 있지는 않다. 다시 말해 각 팀이 독립적으로 활동한다. 하지만 같은 건물에 있고 환경팀이 간사 역할을 하기 때문에 화학사고 때 어느 누구가 사고를 통보받았을 때 출동 경보를 바로 울려 실시간으로 모든 팀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협력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각 방재센터에는 다양한 화학물질의 공기 중 농도를 정밀하게 현장에서 측정할 수 있는 분석 장비를 갖춘 특수버스가 한 대씩 있다. 10억 원 가량의 예산이 들어간 이 버스는 사고 발생 시 즉각 현장 출동해 누출 물질의 종류와 농도 등을 측정하기 위해 도입했다. 하지만 이번 한화토탈 사고 때도 그러했고 다른 사고 시에도 즉각 출동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화토탈 사고 때도 사고 발생 4시간 30분이 지난 뒤 현장측정분석버스가 대산읍 일대에서 측정 활동을 했다.
다른 화학사고 때도 몇 시간 뒤 또는 하루 지난 뒤 현장으로 가 공장 인근 오염도를 측정하곤 했다. 이는 버스 지나고 난 뒤 손 들기, 즉 오염물질이 완전히 또는 거의 대부분 사라지고 난 뒤 측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측정한 농도를 토대로 가장 심각했을 때의 농도를 추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방재센터 대응 매뉴얼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몰라도 앞으로 정부의 이런 늑장 대응이 더는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끝으로 화학사고를 비롯해 많은 인명피해를 내는 기업이나 상습적으로 유사 화학사고를 내는 기업에 대해서는 가중처벌 할 수 있는 법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이른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다. 산업재해는 주민 안전과 직결돼 있다. 공장의 안전이 곧 주민 안전이다.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다 심각한 피해를 노동자와 주민들에게 입혔다면 그에 상응하는 무거운 벌을 줄 수 있는 법제도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 /프레시안
그때 그 사고2 - 세계의 역대급 산재사고들]
인도 보팔 참사
1984년 12월 3일이 된지 얼마 안 된 한밤중이었다. 곤한 잠을 자던 사람들은 갑자기 뭔가가 눈과 코를 찌르는 느낌을 받고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할 새도 없이 피를 토하기 시작했고 배가 부풀어 올랐고 사지가 뒤틀린 채 픽픽 쓰러져 갔다. 안간힘을 다해 집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거리에 널브러진 사람들과 짐승들의 시신을 보고 경악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눈을 치뜨고 죽어간 사람들이 많았다. 그 밤 안으로 무려 3500명 (인도 정부 발표이지만 더 높게 잡는 통계도 있다)이 그렇게 죽었다.
이 떼죽음을 몰고 온 저승사자는 인도 중부 마디아 프라데시주의 보팔 시 외곽에 있던 미국 화학기업 유니언 카바이드의 농약 공장의 원료저장 탱크에서 새어나온 맹독성 물질인 메틸 이소시안염(MIC)이었다. “화학 물질의 히로시마” 보팔 참사가 터진 것이다. 그날 죽어간 3500명이 다가 아니었다.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가 1만 5천 여명으로 발표됐지만 (인도 정부 공식 발표) 환경운동가들은 사망자가 3만 3천여명에 달한다고 보고했고 약 50만 명의 인구가 가스에 노출됐으며 그 가운데 상당수가 결핵이나 실명, 피부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YTN 2004.12.8 보도)
2009년 보팔참사 25주년 환경운동연합 캠페인 (출처: 환경운동연합)
누출 사고의 원인은 저장탱크 속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밸브가 파열되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다국적 기업인 유니언 카바이드 사가 펴낸 보고서는 운전원의 실수 때문에 일어난 사고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밸브 파열에 대비한 안전장치가 되어 있지 않았고, 안전관리가 소홀하였던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사실은 외면했다. 공장은 한 마디로 엉망이었다.
참사로부터 2년 전 내부 가스 누출 사고로 사람이 죽었고 노동자들이 노조를 조직하여 안전한 작업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안전 장치 설치는 커녕, 해고의 칼을 휘두르는 것으로 맞섰고 비용 절감을 내세우며 노동자의 수를 반으로 줄여 버렸다. 안전교육은 6개월 과정에서 달랑 15일로 바뀌었다. 소량의 가스가 상시적으로 새어나오는 통에 경보기가 수시로 삑삑거리자 아예 무음으로 바꿔 버렸다는 얘기에 이르면 문제의 독가스가 지금 이 순간 내 코로 스며드는 느낌마저 든다.
사건은 어차피 터진 것이고 남은 문제는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책임자의 규명과 처벌일 것이다. 그런데 수만 명이 죽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영구 장애를 입고 사건 발발 20년이 넘도록 지하수에서는 유독물질들이 철철 넘쳐나는 이 끔찍한 사태의 법적 판결은 사건 발발 이후 26년 만에야 내려졌다. 2010년 보팔 지방 법원이 유니언 카바이드사의 회장이었던 워랜 앤더슨과 인도 지사 경영진에게 ‘과실치사’를 적용하여 징역 2년을 선고한 것이다. 사건을 질질 끌기로 세계적인 악명이 있는 인도 법원이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시간 끌기와 그보다 더 자심한 판결이었다. 피고인들은 그 처벌도 받지 못하겠다며 항소했고 인도 대법원에서 판결이 나고 처벌을 받을 때쯤이면 아마도 그들이 늙어 죽은 뒤가 될는지도 모른다.
유니언카바이드 보팔 공장 옆에 세워진 피해자 상,독가스에 죽어간 어머니는 자신의 눈을 가린 채 한 손으로 아이을 안고 있다.
출처: 환경보건시민센터
그럼 이런 미증유의 화학 물질 참사를 낸 기업 유니언 카바이드는 어느 정도의 보상을 했는가. 일단 유니언 카바이드는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기를 거부했고 공장 노동자를 죄다 해고한 뒤 수천 톤의 유독 물질을 방치한 채 떠나 버렸다. 지금도 이사 갈 여력조차 없는 빈민들은 그 죽음의 공장 주변에서 먹고 마시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86년 인도 정부는 유니언 카바이드와의 협상에서 보상금으로 4억 7천만 달러로 모든 것을 ‘퉁치고’ 더 이상 어떤 책임도 묻지 않기로 합의하는 대단한 결단을 내린다. 이는 피해자들이 직접 소송을 제기하면 3백억 달러에 달할 수 있는 보상금(인디펜던트 지 보도)을 껌값으로 막아 버린 처사였다.
인도 정부는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과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고, 부상자들에게 2만5천루피(60만원), 사망자 가족들은 10만루피(240만원)씩을 지급했으며, 그나마 꽤 많은 돈이 “지급대상자 불명”으로 처리돼 중앙은행 금고에서 잠자고 있다.
더 끔찍한 일은 유니언 카바이드사가 훌쩍 떠나버린 뒤에도 보팔시에는 수천 명의 죽음을 낳은 공장과 그 찌꺼기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 양은 자그마치 약 8천톤. 그 근처에서 사람들은 먹고 자고 숨쉬며 살아갔다. 아이들은 커서 기형아를 낳았고 그 모습 그대로 자신들의 터전을 떠나지 못했다. 이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것은 2012년에야 가능했다 인도 정부가 독일 독극물 폐기업체와 폐기물 처리 협정을 맺은 것이다. 독일인들은 보팔시의 해묵은 독극물들을 독일로 가져가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보팔의 상처는 쉬이 아물지 않을 것이다.
보팔 참사는 여러 의미로 참사였다. 가스 누출과 그 희생자의 규모에서도 대참사였지만 하나의 산업재해를 두고 한 기업과 국가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탐욕과 안전불감증과 무능과 우유부단함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보팔을 경험했던 모든 사람들은 그날 유독 심하게 불었던 북서풍에 실려온 죽음의 사신을 잊지 못할 것이다.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은 보팔 시의 북서쪽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가끔 불어올 그 북서풍을 맞으며 보팔에는 2백만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 https://blog.naver.com/koshablog/220144544069 2014. 10. 8.
성자 안젤이
보팔 참사(12.3)
보팔 참사는 1984년 오늘 일어났지만 보상과 수습은 여전히 끝날 기미가 없다. 사진은 2006년 시위 모습. 위키피디아
인도 5개 주 의원을 선출하는 지방선거가 지난 달 12일 시작돼 이달 7일 끝이 난다. 이번 선거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재선 여부를 결정할 내년 5월 총선의 판세를 읽을 수 있는 선거로 주목 받고 있다. 10월부터 선거 기간 내내 마드야프라데시(Madhya Pradesh) 주의 주도 보팔(Bhopal)시에서는 ‘보팔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후유증 피해자, 시민인권단체 회원들의 대규모 시위가 잇따랐다. 참가자들은 정의와 응분의 보상, “테러 기업가 워런 앤더슨(Warren Anderson)’’에 대한 처벌과 책임을 묻는 피켓을 들었다.
1984년 12월 3일 발생한 참사의 법적 책임과 보상은 34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사고 기업인 유니언카바이드의 자산은 2001년 다우케미컬 사에 인수됐지만, 다우케미컬은 보상 협의 및 사고지역 독성 정화에 필요한 지원을 거부하고 있고, 인도 정부와 의회 역시 적극 개입을 회피하고 있다. 인도와 미국 법정에 계류 중인 4건의 참사 관련 소송 역시 진행 전망이 불투명하다.
유니언카바이드 인도 공장은 1969년 설립됐다. 인도 정부의 외자 유치 요청과 선진국의 공해 공장 해외 이전이 활발하던 때였다. 인도 중부 작은 도시 보팔시 인구는 공장이 들어서면서 10여 년 새 80여 만 명으로 늘어났다. 사고는 12월 2일 자정 무렵 공장 C블럭 610번 메틸이소시안(MIC) 가스 저장탱크 밸브가 압력을 못 이겨 파열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현장에는 비상경보에 대응할 기술자도 보수 장비와 부품도 없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어지자 공장 측은 3일 새벽 0시 50분께 사이렌과 함께 노동자 대피명령을 내렸지만, 40여 톤의 독성가스는 순식간에 심야의 마을로 확산됐다. 사고 당일 숨진 3,787명을 포함, 2011년 기준 1만5,278명이 숨졌고, 55만 8000여 명이 호흡기 및 피부 질환을 앓고 있다. 지하수와 토질 오염은 이후 사실상 방치됐다.
인도 정부와 유니언카바이드 사는 1989년 4억 7,000만 달러의 보상에 잠정 합의했다. 유가족에겐 사망자 한 명당 10만 루피(240만원), 부상자는 2만 5,000루피가 지급됐다. 기나긴 공방과 지연 끝에 2010년 보팔 지방법원은 유니언카바이드 사 회장이던 워런 앤더슨과 인도 지사장을 과실치사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했고, 그들은 항소했다. 최윤필 기자
죽음 앞둔 이들 앞에 펼쳐놓은 ‘묘지 정원’… “행복했던 기억 떠올라요
호스피스 병원 포천 모현의료센터, 기념정원ㆍ감각정원ㆍ건천 등 조성
존엄한 죽음의 의미 깨닫게 해… 기업들 후원 없이 개인 기부로 탄생
호스피스 병원인 경기 포천 모현의료센터의 정원에서 한 환자가 침상에 누운 채 산책을 하고 있다. 모현의료센터 제공
한국에서 죽음은 금기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과정이 아니라 캄캄한 단절로 받아들여진다. 죽음을 다루는 공간에서조차 죽음은 홀대 받는다. 묘지, 납골당, 화장터 등은 ‘혐오 시설’로 분류돼 삶의 공간과 철저하게 격리돼 있다. 이 같은 태도는 죽음을 앞둔 이들로부터 존엄한 죽음을 준비할 기회를 빼앗는다. 죽음을 다시 보려는 노력을 조심스럽게 시작한 공간이 있다. 호스피스 병원인 경기 포천시 모현의료센터에 설치된 1,650㎡(500평) 크기의 작은 정원으로, 지난 달 완공됐다.
정원의 콘셉트는 ‘삶과 죽음의 연결’이다. 경기 가평 아침고요수목원, 제주허브동산 등을 설계한 이병철(52ㆍ서남해안기업도시개발 조경본부장) 정원사가 디자인했다. 지난해 10월 센터 봉사자인 신현자(55)씨가 이 정원사에게 정원 설계를 부탁했다. “삶의 끝을 마주한 사람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고 한다. 신씨는 9년째 센터에서 화초 봉사를 하고 있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들에게 행복한 정원을 만들어 달라”는 신씨의 부탁을 이 정원사는 곧바로 수락했다. 비용은 일절 받지 않기로 했다.
경기 포천시 모현의료센터 기념정원에 있는 묘지 위에 갖가지 꽃들이 심어져 있다. 강지원 기자
묘지 위에 꽃을 심어 정원처럼 꾸민 묘지공원은 외국에서는 흔하다. 사진은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굿의 한 묘지정원. 이병철씨 제공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연장…‘기념 정원’
센터는 1971년 가정방문 호스피스 활동을 시작한 천주교 수녀회 ‘마리아의작은자매회’가 만들었다. 2005년 개원한 센터에는 30~40명의 환자들이 잠시 머물다 떠난다. 입원한 환자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은 평균 20일에 불과하다.
최근 기자가 다녀온 정원은 평화롭고 안온한 공간이었다. 정원에 처음 들어서면 ‘기념 정원(Memorial Garden)’이 나온다. 가짜 묘지 세 개가 나란히 앉아 있는 아담한 공간이다. 봉분 없는 평묘 위에 마가렛, 아이리스, 블루세이지 등 심어져 있어 묘지보다는 꽃밭을 닮았다. 국내 최초의 묘지 정원이다. 묘지 정원은 ‘묘지를 화초로 아름답게 꾸민 정원’으로, 프랑스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마인츠 묘지ㆍ함부르크의 올스도르프 묘지 등이 대표적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산책하는 공간에 묘지라니, 아무래도 낯설다. 이 정원사의 설명은 이렇다. “외국에서는 아름답게 꾸민 묘지를 마을 안에 둬요. 사람들은 묘지를 공원처럼 즐겨 찾지요. 한국의 추모 공원은 이름만 공원이지 공원과는 거리가 멀잖아요. 더구나 기피 시설로 분류되다 보니 유가족 외에는 찾지 않는 곳이 됐어요.”(이 정원사)
이 정원사가 묘지를 다시 본 건 개인적 아픔도 때문이기도 하다. 이 정원사의 어머니는 암 투병 끝에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머니의 묘에 꽃을 심었다. 아름답게 추모하고 싶어서였다. “외국에서는 묘지에 꽃을 심거나 고인이 좋아했던 물건을 올려 놓고 추억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요. 한국에선 상상도 못할 불경스러운 일이죠. 죽음을 굉장히 엄숙하게 받아들이고 금기시하니까요. 묘지를 어떻게 꾸미고 관리할지에 대해선 준비할 겨를이 없어요. 그러다 보면 죽음은 영원한 상처로 남아요.”
경기 포천시 모현의료센터 내 자작나무 산책길과 연결되는 감각정원에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감 등을 일깨우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미소가득화초봉사단 제공
하얀 자작나무가 빼곡히 심어진 산책길 양 옆 돌담은 침상이나 휠체어를 탄 환자들이 손으로 쓰다듬을 수 있는 높이로 설계됐다. 모현의료센터 제공
◇행복한 생의 기억을 되살리는 ‘감각 정원’
기념 정원을 지나면 자작나무 202그루가 양쪽으로 빼곡하게 늘어서 있는 좁은 산책길이 나타난다. 턱 없는 황톳길을 환자들은 휠체어를 타거나 침상에 누운 채 천천히 오간다. 환자들이 병실 천장 혹은 TV만 보는 마지막 날들을 보내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다.
10m쯤 되는 산책길을 지나면 화려한 감각 정원이 펼쳐진다. 육체의 고통에 허물어져가는 환자들의 감각을 일깨우는 공간이다. 인동초, 장미, 산수국, 작약, 블루세이지, 백합, 아이리스, 작은꿩의비름, 채송화 등의 알록달록한 색은 시각을 자극한다. 초코민트, 로즈마리, 라벤더 등 향이 강한 허브는 후각을 기분 좋게 건드린다. 돌을 쌓아 만든 벽에서 콸콸 쏟아지는 물 소리, 숲으로 날아드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청각을 깨운다. 이 정원사는 “감각 정원은 환자들이 엄마 품을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성장한 청년기를 상징한다”며 “환자들이 삶의 기억과 경험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 위해 만든 곳”이라고 설명했다.
병원을 운영하는 막달레나 원장 수녀는 환자들이 정원에서 행복했던 기억에 빠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이 꽃 그 때 거기 놀러 가서 본 꽃이네. 그때 참 행복했는데.” “이 꽃은 우리집에서도 키웠어. 정말 예뻤지.” “여기는 애들이랑 여름에 놀러 갔던 공원이랑 비슷하네. 너무 재미있는 시절이었는데.” 막달레나 수녀는 “병실에 있으면 아픈 얘기만 하는 환자들이 정원에서는 즐거운 추억을 얘기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뭉클해진다”며 “죽음이 끝이 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기 포천시 모현의료센터 내 어머니의 자궁 모양을 닮은 ‘건천’은 은유적으로 삶의 탄생을 의미한다. 모기가 생길 수 있어 건천으로 설계했다. 미소가득 화초봉사단 제공
감각 정원을 돌아 나오면 건천이 나온다. 삶이 시작된 곳이자, 가장 안락한 공간이었던 어머니의 자궁 모양을 형상화했다. 정원이 역설적으로 삶이 탄생하는 곳에서 끝나는 셈이다. 이 정원사의 설명. “우리가 삶을 선택하지 못하듯, 돌아갈 때의 운명도 선택할 수 없어요. 태어날 때처럼 죽음도 준비해야 해요. 죽음은 아름답게 마무리해야 할 삶의 한 부분입니다.”
경기 포천시 모현의료센터의 정원은 침상과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도록 황톳길을 순환형으로 설계했다. 미소가득화초봉사단 제공
◇작은 기부가 모여 탄생한 ‘기적 정원’
센터의 정원은 ‘기적의 정원’이기도 하다. 신씨가 올해 초 공사기금 모금에 나선지 약 3개월만에 공사비 1억875만원이 모였다. 기업이나 단체 후원 없이 개인 487명이 모은 액수다. 정원 조성 취지에 공감한 센터 환자, 센터에서 가족을 떠나 보낸 유가족, 간병인, 동네 주민들이 십시일반 동참했다. 신씨는 그 마음들을 기적이라 불렀다. “수많은 사람들이 작지만 소중한 마음으로 정원을 함께 만들어줬어요. 이 아름다운 정원에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더 많답니다.”포천=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경기 포천시 모현의료센터 정원 조감도. 미소가득화초봉사단 제공
13일 하루에만 그린란드 빙하 40% 넘는 20억t 이상 사라져
지난 13일 하루 동안에만 그린란드 전체 빙하의 40%가 넘는 20억t 이상의 빙하가 녹아 사라졌다고 미 CNN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6월부터 8월 사이가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아 사라지는 시기이기는 하지만 빙하가 녹는 것은 대부분 7월에 이뤄지기 때문에 6월에 그것도 하루 동안에 이처럼 엄청난 빙하가 녹아 없어진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20억t의 빙하는 워싱턴 DC의 내셔널몰 공원 넓이에 높이는 워싱턴 기념탑(170m)의 8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지난 13일 하루 동안에만 그린란드 전체 빙하의 40%가 넘는 20억t 이상의 빙하가 녹아 사라졌다고 미 CNN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진은 그린란드의 모습. <사진 출처 : CNN> 2019.6.16
그린란드의 기후를 연구하는 조지아 대학의 토머스 모트는 "갑작스런 빙하의 용해가 극히 이례적이긴 하지만 선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2년 6월에도 기록적인 빙하 용해가 일어났었다"라고 말했다. 모트는 눈과 얼음은 태양열을 반사해 차가움을 유지하는데 이러한 반사율의 변화로 태양열을 많이 흡수하게 되면 급속한 빙하 용해가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엄청난 빙하가 용해돼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데 많은 전문가들이 이러한 그의 견해에 동조하고 있다. 앞서 지난 5월에도 덴마크 지리연구소의 제이슨 박스 연구원은 올해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기 시작한 시점이 지난 2012년보다도 3주나 앞당겨졌다며 그린란드의 빙하가 올해 사상 최대 규모로 녹아 사라질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모트는 한편 그린란드의 빙하 용해는 전세계 해수면 상승의 주요 요인이라며 그린란드의 빙하 용해가 계속되면 올해 전세계 해수면이 크게 상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dbtpwls@newsis.com
모기 잡으려다 사람까지 잡은 모기약
[이 물건, 언제 생겼지?] 모기약
1950년생 전쟁둥이인 이입분(70)씨는 두레박으로 퍼 올린 우물물부터 프랑스 산 '에비앙'생수까지 모두 맛본 세대다. 그가 온몸으로 통과한 현대생활사를 물건을 통해 되짚어보려 한다. 이입분씨는 내 엄마다. - 기자말
"에에엥~ 에엥~."
모깃소리에 자다 깼다. '웬 모기지?' 하고 생각하니 벌써 6월이다. 밤에 모기가 나타나면 웬만해선 잡고 자려고 한다. 나름 노하우가 있다. 이불을 목까지 뒤덮고서 고개만 내놓은 채 모기가 오길 기다린다. 모기가 얼굴 주변으로 바짝 가까이 왔다 싶으면 재빠르게 손으로 냅다 후려친다. 두세 번 하다 보면 정말 모기가 잡힌다. 다만 손에 맞은 얼굴이나 머리가 좀 아픈 게 부작용이다.
모기장을 꺼내야 할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텐트처럼 생긴 모기장을 사용한 건 3년도 안 되었다. 밤마다 잠을 설치는 것이 너무 괴로워서 산 것이었는데, 처음 사용한 날부터 잠을 푹 잤다. 모기장이 꿀잠 필수품이었다니, 그동안 나만 모르고 모기에게 당하고 산 것 같아 약이 올랐다.
▲ 모기향은 하얀 연기를 한 줄로 피우고 회색 재를 떨궜다. ⓒ Pixabay
모기장이 없었던 어린 시절엔 모기를 쫓기 위해 갖가지 약을 썼다. 엄마는 여름날 저녁이면 저녁상을 물린 뒤 온 방에 모기약을 뿌렸다. 식구들은 마당이나 대문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방 안의 모기가 약에 취해 죽기를 기다렸다.
주위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엄마는 먼저 집으로 들어가 창문을 모두 열고 환기를 시켰다. 충분히 약 냄새가 빠졌을 때 우리는 방에 들어갔다. 그러고도 엄마는 잠을 자기 전 문 앞에 불 붙인 모기향 접시를 놓아 두었다. 모기향은 하얀 연기를 한 줄로 피우고 회색 재를 떨궜다. 날마다 반복하는 일상이었다.
모기약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엄마가 어렸을 때도 모기약이 있었을까.
"그땐 약이 없었지. 모기도 얼마나 많았는지 말도 못 해. 다 시골이니까 풀이 많았잖아. 그런 데서 모기가 사는 거지. 모기가 연기를 싫어해. 방에 화로를 갖다 놓고 아래에 마른 나무를 좀 넣고 불을 붙이고 그 위에 풀을 베서 잔뜩 올려놔. 그럼 풀 때문에 연기가 엄청 많이 나거든. 방문을 닫고 마당에서 기다리는 거야. 방 안에 연기가 자욱해질 때까지. 그리고 또 마당에다 모깃불을 놔. 마른 나무에 불 붙인 다음에 풀을 올리는 거지. 화로나 모깃불이나 방법은 똑같아. 그리고 마루에 앉아서 부채 부치면서 해 질 때까지 기다리지. 한 시간쯤 방에 화로를 놔뒀다가 문을 확 열면 모기가 다 도망가. 그럴 때 빨리 들어가야 해. 방문은 미닫이문인데, 여름엔 창호지를 떼고 모기장을 발랐어. 실로 만든 모기장인데 시장에서 다 팔았어. 둘둘 말려 있는 걸 잘라서 풀을 쒀서 문에 붙이는 거지. 방에서 보면 모기장에 모기가 새카맣게 붙어 있어. 밤에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부채로 막 바람을 내서 모기를 문에서 떨어트려 놔야 해.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방 안팎으로 부채가 항상 여러 개 있었어."
어쩐지 모기를 쫓는 방법으론 그리 탐탁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 모기도 많이 물렸지. 근데 텐트처럼 생긴 모기장을 잠깐 사용하기도 했어. 뼈대는 없고 모기장 천 네 귀퉁이에 끈을 달아서 벽 못에다 붙잡아 매어 놓는 식이었어. 근데 많이는 안 썼어. 여럿이 좁은 방에서 자다 보면 모기장을 치면 불편하거든. 특히 가장자리에서 자는 사람은 모기장에 살이 닿게 되잖아. 그러면 그 부분에 모기가 달려들어서 다 뜯어 먹는 거야. 등잔불을 쓰던 때니까 잘못하면 모기장에 불이 붙기도 하고. 모기장 때문에 사람 죽었단 얘기도 많고 그랬어. 이래저래 불편하고 불안하니까 나중엔 안 쓰게 된 거지."
전쟁과 함께 들어온 모기장과 살충제
방 안에 치는 모기장은 6.25 전쟁 때 미군들이 들여온 것이다. 1960년대 중순부터 1970년대 초까지 모기장을 사용하는 집이 많았다.
# 2~3년 전에는 면으로 된 모기장이 대부분으로 올이 조밀하여 바람의 소통이 제대로 안 된 것이 시중에 많이 나돌았으나 최근 가느다란 나일론사로 만든 모기장이 면제품 대신으로 대체되어 시중에서 판매된다. (중략) 바람이나 잠결에 모기장이 옆으로 올라갈 경우가 있으므로 방바닥에서 40cm 높이에 끈을 달아 옆으로 벌려 날파리가 못 들어가게 하며 내부 스페이스를 좀 더 넓힐 수 있는 2중 효과를 가져온다. 끈을 옆으로 새로 부착시키려면 모기장천의 안팎으로 천을 받쳐 나일론의 올이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 1971.6.26. 매일경제
그러나 엄마 말처럼 이 모기장은 오랫동안 종종 안타까운 사고를 일으켰다. 성주군에선 등불이 넘어지면서 모기장에 불이 붙어 어린이 한 명이 숨지고 세 명이 중화상을 입었고(1958.6.30. 경향신문) 김해에선 역시 호롱불로 모기장이 타 두 자녀가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1975.7.28. 경향신문).
일본의 <대일본 제충국 주식회사>에서 생산한 '계관문향'이라는 모기향이 1930년대에 잠시 국내에 유통되기도 했다. 제충국은 국화과의 풀로 꽃에 피레트린이라는 물질이 들어있다. 피레트린은 냉혈동물인 곤충의 운동신경을 마비시키지만, 온혈동물에는 독성이 없어 가정용 살충제로 적당하다. 당시 일본은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이 제충국 종묘를 수입해 살충성분을 추출해내는 데 성공한 후 재배를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 최대의 제충국 생산, 수출국가가 되었다.
모기약을 어떻게 했으면 가장 오래 효과 있게 쓸 수 있느냐는 것을 누가 혹 연구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중략) 누구든지 생각하기를 모깃불을 오래 피워놓으면 모기가 잘 죽는 줄 알지마는 그런 것이 아니오. 모기는 비교적 단시간에 어지러트리는 것이니까 마루나 방바닥에 똑똑 떨어지거든 그만 꺼도 좋으니 이것이 귀찮거든 미리 모기약 끼우는 데다가 얼마 가량 할 것을 내놓고 끼워놓으면 낀 데까지 타고서 저절로 꺼지니까 편리합니다. 어지러트려 떨어진 모기는 즉석에서 없애버리지 않으면 다시 소생하는 것이니까 얼른 쓸어 치워야 합니다. - 1936.8.50 동아일보
6.25 전쟁을 겪으며, 전쟁터에서 모기퇴치용으로 사용하던 DDT라는 살충제가 유통돼 각 가정에서 살충과 소독용, 농약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맹독성인 탓에 DDT에 중독돼 사망하는 일이 잦아 '죽음의 특효약'이라 불리다가 1972년 전면 판매금지 되었다.
살충제의 대명사 '에프킬라' 등장
국내에서 판매한 최초의 모기약은 1963년 <삼성제약>이 일본에서 수입한 '에프킬라'였다. 액체를 분무하는 형식으로 "빈대, 벼룩, 파리, 모기가 순간에 전멸"한다는 광고로 주목을 받았으나 값이 비싸 부잣집에서나 사용할 정도였다(1995.6.18. 한겨레).
1960년대 후반 <삼성제약>은 <에프킬라>라는 이름으로 현재와 같은 에어졸 방식의 뿌리는 액체 모기약과 불을 붙여 연기를 내는 모기향을 출시했다. 모기향은 제천국을 주원료로 만든 것으로 액체 모기약에 비해 값이 저렴하고 사용이 편리했다.
사용상에 있어 장점으로는 첫째 가격 면에서 액체 모기약에 비해 경제적이라는 점인데 시트의 연소시간이 5~7시간 정도여서 한 갑이면 30여 시간은 능히 피울 수 있고 한번 살포하면 문을 닫아야 하는 액체 약과는 달리 야외에서도 마음 놓고 쓸 수 있어 캠핑, 낚시질 등에도 편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액체 모기약보다 결점으로 되어 있는 것은 화재의 위험성이 있고 타고 나면 재가 남아 불결해지기 쉽다는 점이다. - 1968.7.9. 매일경제
여름이면 거의 모든 집에서 모기와 파리로 골치를 앓았다. 특히 모기로 전염되는 뇌염에 감염돼 사망하는 어린이가 해마다 전국에서 발생했다. 1966년 서울시에서 발생한 뇌염 환자 수는 150명, 이 중 사망자는 57명이었다. 뇌염은 특효약도, 치료법도 없었고 후유증도 심해 뇌 기능이 저하되거나 언어장애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서 서울시에서는 6월부터 9월까지 뇌염 방역 대책 기간으로 정하고 연막차를 통해 곳곳에 방역작업을 했다. 각 집안에서는 특히 어린 아이들이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모기약은 나오자마자 인기를 끌었다. 특히 모기향은 모깃불과 비슷한 형태여서 대중에게 친숙하게 받아들여졌다.
사건 사고 많은 모기약
▲ 모기장이 없었던 어린 시절엔 모기를 쫓기 위해 갖가지 약을 썼다. ⓒ Pixabay
모기약이 각 가정의 필수품이 되고 보니 사건 사고도 많았다. 1978년엔 살충제가 뿌려진 과자를 사먹은 어린이 다섯 명이 심한 복통을 일으켜 네 명이 숨지고 한 명이 입원하는 사건이 일어났고(1978.7.21.경향신문) 1980년엔 강원도에서 어린 세 남매가 살충제를 음료수인 줄 잘못 알고 마신 뒤 두 시간 만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1980.1.26.경향신문).
특히 폭발력이 강한 프로판, 부탄가스를 충전제로 사용한 분무식 살충제는 여기저기서 폭발과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송인기씨 (인천시 남구 주안4동)는 지난 7월 새벽 4시경 송씨의 부인이 재래식 화장실에 파리와 모기가 많아 S제약의 에프킬라를 분사한 후 2시간 반쯤 지나 화장실에서 담배에 불을 붙인 뒤 불붙은 성냥을 변기에 넣자마자 불길이 치솟아 양쪽 허벅지와 팔 얼굴 등에 3도 이상의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 (중략) 또 박정은 부인(서울 강남구)은 지난 7월 어느날 저녁 준비를 하려고 가스레인지로 음식을 끓이던 중 벽 주위로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을 보고 T화학의 모노탄에프를 뿌렸는데 순간 살충제가 가스불에 인화, 가스레인지 주변 벽에 불이 옮겨붙어 큰불이 날 뻔했다고 소비자연맹에 고발했다. - 1985.9.2.동아일보
모기향의 화재 위험과 재를 치워야 하는 불편함, 액체 모기약의 냄새와 폭발 위험에 소비자들이 부담을 느끼자 업체는 이에 빠르게 대응했다. 전자모기향을 출시한 것이다. 전자모기향은 모기약을 고체로 만들어 훈증하는 방식으로, 약효가 다하면 파랗던 고체약이 하얗게 변해 교체 시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편리했다. 1979년 출시 직후엔 다른 제품에 비해 값이 비싸고 전기요금을 내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어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1980년대 중반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외환위기로 '에프킬라' '홈키파' 외국회사에 넘겨
1990년대 들어 대중은 모기약의 안전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1992년 소비자보호원에서는 "(가정용살충제) 제조업체들이 광고 등을 통해 안전하다는 점을 너무 부각시켜 소비자가 기본적인 주의마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잘못 유도하고 있다"며 "인체독성 등을 고려해 만든 성분이기는 하지만 모기의 신경계에 작용하듯 인체에도 다소 자극을 준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했다.(1992.6.16.동아일보)
이에 삼성물산은 1994년 "국내 최초로 인체에 무해한 천연살충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해 내년 5월부터 생산에 나설 계획"임을 발표했다. 이 제품은 야생국화 추출물을 사용했고 알레르기 유발 성분과 색소를 제거한 것이 특징이었다. 살충제 시장은 여전히 굳건했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는 모기약 업체들도 뒤흔들었다. 살충제의 대명사로 불리던 에프킬라로 독보적인 국내 1위 판매량을 지키던 삼성제약, 그 뒤를 뒤쫓던 '홈키파'의 동화약품이 자금난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1998년 삼성제약은 에프킬라 상표권과 성남공장을 미국 존슨에스시 사의 한국 지사인 한국존슨에 매각했고, 동화약품도 홈키파 상표권과 안산공장 등 살충제 사업 부문 전체 판권을 미국 회사에 팔았다.
어렸을 때 여름이 오기 전 낡은 모기장을 창문마다 새로 다는 일은 부모님의 연중행사였다. 엄마나 아빠가 나무 창틀에 파란 모기장을 못이나 압정으로 고정할 때, 옆에서 시중을 드는 건 내 몫이었다. 지금은 창문마다 금속으로 된 방충망이 달려있으니 딱히 신경 쓸 일이 없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한 번도 모기약을 사본 일이 없다.
모기장에 새카맣게 달라붙었다던 모기떼는 야외로 놀러 가서야 겨우 만날 수 있다. 편해진 건 분명하다. 그런데 가끔 가족들과 저녁 어스름 속에 한적하게 동네를 거닐던 장면이 떠오른다. 집안의 모기가 죽기를 기다리는 동안 동네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부모님 곁에서 하루살이 떼를 손으로 잡으려 펄쩍펄쩍 뛰던 내 모습도 생각난다. 나는 그 시절의 무엇을 그리워하는 걸까. 심혜진(sweetshim)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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