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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스크랩 또는 퍼온글

Dan Price Story

by 이성근 2017. 5. 9.


                 Dan Price

gravity payments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이 심화된 사회는 위험하며 '불평등의 대가'를 필연적으로 치르게 된다고 언급했다. 또한 불평등이 사회에 해로운 이유는 단지 그것이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기 때문만이 아니라, 지나친 불평등은 경제 시스템에도 비효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아시아의 불평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소득 집중도)45%까지 늘어나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집계되었으며, 1995년 이래 상위 10% 소득 집중도의 상승률은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불평등해진 나라 중 하나다.

 

미국의 소득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뉴욕타임즈가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로버트 아이거 월트디즈니 CEO는 사원 대비 2238배의 연봉을 받았으며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사원 대비 2012배의 연봉을 받았다. 로렌스 엘리슨 오라클 CEO, 스티븐 몰렌코프 퀄컴 CEO,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CEO는 각각 1183, 1111, 1073배의 연봉을 받았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는 지난해 미국기업 CEO들의 직원 대비 연봉 비율이 196520배에서 2013295.9배로 크게 늘었다고 발표했다. 이렇듯 상위 1%의 소득이 전체 20%에 육박하는 대표적인 불평등 국가인 미국. 그런 미국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시애틀의 CEO 댄 프라이스는 110만 달러였던 자신의 연봉을 7만 달러로 하향하고 직원들의 연봉을 7만 달러로 인상하겠다는 파격적인 발표를 했다.

 

"저는 사회주의자가 아닙니다. 제 친구의 월세가 200달러 올랐는데 그녀는 그것을 감당하기 힘들어했습니다. 저는 매우 화가 났어요. 그녀의 고용주가 그녀에게 충분한 돈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문이죠. 하지만 동시에 제가 그녀의 고용주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 댄 프라이스, 그래비티 페이먼츠 CEO

 

댄 프라이스의 제안은 미국사회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2015413일 이었다. 미국 시애틀에 위치하고 있는 회사 그래비티 페이먼츠 (gravity payments). 2004년 형제가 창업한 신용카드 결제 대행사다. 자신의 연봉 110만 달러를 7만 달러로 줄이고, 직원들의 연봉을 올려버린 댄 프라이스 CEO. 1년이 넘는 동안 회사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2015년 그의 조치로 70의 직원들의 봉급이 오르고 특히 30명은 봉급이 배로 늘어나게 됐던 것. 당시 이 회사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48000달러였다.

 

한편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종업원과 CEO 평균 연봉 격차가 가장 큰 비율은 3001이다. 뉴욕타임스는 20일 프라이스 CEO가 직원들에게 7만 달러 연봉을 보장한 데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를 보도했다. 많은 임금은 직원을 나태하게 하고 자본주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보수 언론인 러시 림보는 프라이스 CEO의 시도는 완전한 사회주의라며 “MBA에서 이 사례를 연구해 사회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패트릭 로저스 노스캐롤라이나 A&T주립대 부교수는 프라이스가 단기적 행복을 키워도 생산성을 높이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이애나 퍼치고트-로스 맨해튼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직원은 받을만큼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라이스가 최저연봉을 7만 달러로 정한 것은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의 이론에 근거했다. 카너먼 교수는 연봉이 오를수록 직원들은 행복해지지만 연봉이 75천 달러를 넘으면 만족도 증가속도가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프라이스는 심각한 소득불균형 문제를 회사에서부터 바로잡기 위해 직원들의 연봉을 올리기로 했다며 이번 결정이 회사에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프라이스 CEO는 연봉을 많이 받는 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해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 했다. 그의 말대로 되었다.

 

당시 120명 정도 되던 직원들의 최저 연봉을 7만 달러 (우리 돈으로 거의 8천만 원에 가까운 금액)로 인상한 행위는 영웅으로 칭송을 받기도 했던 반면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사회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함께 회사를 세웠던 친형 루카스는 동생을 대상으로 소송까지 내기도 했다.

    

 

시간이 흘렀고, 회사는 긍정적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근본적인 회사 이윤이 증가했고, 고객 이탈률이 9%에서 5%로 줄어드는 성과를 가져왔다. 신입사원 지원에는 3만명이 몰렸고 매출은 35%나 올랐다. 성과 창출 이면에는 직원들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오른 연봉으로 얻게 된 삶의 윤택함이 일터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회사 근처로 거주하게 되고, 그 모든 것들이 회사 업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더불어 출산까지 증가했다.

 

댄 프라이스는 사내 최저 임금을 파격적으로 올린 것은 궁국적으로 회사 및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최저 임금의 파격적 인상이 이타적인 행동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이기적인 행동이며, 더 안정적인 이윤추구를 확보하기 위한 기업가정신의 발현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대기업, 중소기업, 정규직, 비정규직


    출처: SBS 스페셜] 수저와 사다리 2부 '닭 값과 달 값'  中  16.11.21


민주주의는 목소리다]2노동의 봄은 잠시재벌집착에 매몰된 노동 민주주의

2일터의 민주화는 왜 막혔나

 

오늘 밤 11시까지 할 수 있죠?”

오후 8. 경기 안산 반월공단의 스마트폰 터치스크린 생산 공장에서 30여명의 노동자들이 손을 바삐 놀리는 동안 반장은 이의가 없을 것이라는 듯 한마디 툭 내뱉고 사라지려 했다. “저는 못해요.” 김지수씨(32·가명)가 침묵을 깼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매일 12시간 동안 일하며 몸과 마음은 피폐해진 터였다. 자녀가 있는 또 다른 여성 노동자도 함께 9시 퇴근을 하겠다고 했다.

 

반장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김씨를 파견한 업체 담당자를 불렀다. 사무실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반장이 파견업체 담당자를 닦달하고 있었다. 결국 동료는 퇴근 준비를 하다 말고 다시 일하러 들어갔다. 김씨는 이날로 이 공장을 그만뒀고 임금은 딱 시간당 최저임금만큼만 계산돼 입금됐다.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은 거의 대부분 공장에서 보내야 했고 () 하다못해 잠자는 것조차도 내일 공장에 가기 위한 준비였다. () 우리들은 마치 돼지가 주인에게 자기 몸을 주기 위해 살을 찌우는 것과 같이 일하기 위해 밥을 먹고 일하기 위해 잠을 잤다.”(김경숙 외, <그러나 이제는 어제의 우리가 아니다>, 1986)

 

지금은 반월공단 내 다른 공장에서 일하는 김씨는 1980년대 노동자 수기를 접하고 이렇게 말했다. “마치 제 얘기 같은데요.” 1987년 한국 사회가 성취한 민주주의는 노동자들 삶에는 뿌리내리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다. 김씨에게 민주주의를 느낄 때가 있는지 물었다. “민주주의? . 멀다 멀어. 그 단어는 너무 멀게 느껴져요.”

 

민주화 30, 노동자의 삶

올해는 19877~9월 노동자대투쟁이 있은 지 30년 되는 해다. 민주화 30년이 지나는 동안 과연 민주주의는 노동자들 삶에 얼마만큼 기여했을까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1987년 이후 20년간의 노동자 삶의 변화를 분석해 펴낸 한국의 노동 2007’과 최근 발간한 한국의 노동 2016’, 장하성 교수의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의 통계를 토대로 살펴보자.

 

일단 실질임금은 민주화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기울기로 상승했다. 그러나 실질노동생산성(실질국내총생산/취업자 수)을 늘 밑도는 수준이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타격을 입은 1998년부터 실질임금과 실질노동생산성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현재 한국 노동자들의 임금상승률은 경제성장률 절반에 불과하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4.4%였지만 5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 실질임금인상률은 2.5%. 한국은행 국민통계에 의한 노동자 1인당 임금인상률은 1.4%.

 

지난 30년 동안 불안정 고용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규모는 극적으로 확대됐다. 사업체 규모에 따른 임금격차도 커졌다. 지난해 기준으로 300인 이상 사업체 정규직 노동자 평균 월급은 405만원이지만, 비정규직 노동자 월급은 247만원, 5인 미만 사업체 정규직 노동자 월급은 214만원, 이곳 비정규직 노동자 월급은 138만원이다.

 

19903월 검거된 단병호 당시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위원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612월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시위하는 노동자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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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이 보였던 노동 민주화

민주화 이후 노동자의 삶이 지속적으로 팍팍해졌던 것은 아니다. 경제성장과 맞물려 민주화의 성취가 빛나던 때도 있었다. 1987년부터 외환위기 직전까지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노동자들은 억눌려온 요구를 분출하면서 6%대의 실질임금인상률을 쟁취했다. 가혹한 장시간 노동을 쟁점화해 연간 노동시간을 2900시간(1980년대)에서 2113시간(2015)으로 끌어내린 것도 노동운동의 결실이었다. 다만 노동시간 감소세는 2013년 이후 정체했고 여전히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가장 오래 일하는 나라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불평등도 완화되고 있었다. 198425.9%에 이르던 저임금 노동자(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을 받는 노동자) 비율은 199021.7%까지 떨어졌다. 1990년대 중반까지 중산층의 두께는 두꺼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 시기를 지나면서 악화하기 시작했다.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200726%까지 올랐다가 201324.7%를 기록했다. 현재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는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많다. 5인 이상 사업체로만 따져도 임금 불평등은 OECD국가 중 4위다.

 

199810월 무료급식소를 찾은 실직자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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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 절감이라는 착취

잠시나마 피어나던 노동 민주주의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왜 실종됐을까.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이후 전면화된 신자유주의, 성장제일주의와 그에 따른 노동유연화”(김 선임연구위원)를 원인으로 꼽는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공교롭게도 민주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적극 받아들이면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신줏단지 모시듯 했다“(정부 정책에 힘입어) 기업은 사람을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보기는커녕 한푼이라도 줄여야 할 비용이나 한번 쓰고 버릴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전략으로 치달려 왔다고 말했다. 김 선임연구위원 분석에 따르면 현재 비정규직 규모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50%를 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건비 최소화와 경제성장에 따른 과실독점의 최정점에 재벌 대기업이 있다. 장하성 교수 분석에 따르면 국민총소득 중 기업이 가져간 소득은 199017%에서 201425.1%로 늘었다. 같은 기간 가계가 가져간 소득은 70.1%에서 61.9%로 줄었다. 그럼에도 재벌에 공정한 분배를 요구하는 압력은 사실상 실종됐다.

 

장 교수는 저서에서 대통령부터 정치권과 관료들까지 재벌 대기업 분배구조를 바꾸는 것을 외면하는이유를 재벌이 잘돼야 한국 경제가 잘된다혹은 재벌이 안되면 한국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증상, 재벌집착증·재벌공포증때문이라고 짚었다.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만들어진 노동자 착취 기반의 재벌집착망령이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20077월 농성하는 홈에버·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5년 검거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허약해진 노동자 세력의 힘

기업·국가의 노동 착취합작이 계속됐지만 노동자 세력은 이를 깨트릴 만큼의 힘을 갖고 있지 못했다. 민주화를 계기로 노조조직률은 198919.8%까지 올랐으나 점차 줄어 현재 1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OECD 34개국 중 31위다. 단체협약 적용률은 꼴찌다.

 

노동계는 김영삼 정부의 노동유연화 법안 날치기에 맞선 1996~1997년의 총파업 때까지만 해도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강력한 힘을 보여줬다. 하지만 노동시장 유연화로 노동자 세력은 정규직·비정규직 등으로 분화하면서 급속히 힘을 잃었다.

 

하와이대 구해근 교수는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통해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 등의) 새로운 기업전략들은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중대한 효과를 지녔다고 지적했다. 그는 “1980년대 말 노동 대공세가 획득한 전반적인 경제적 이익은 이들 (정규·비정규직 등으로 분화된) 두 부문에 불공평하게 분배됐고, 둘 사이 격차를 벌려놓았다. 그 결과로 인한 노동계급 분절은 노동계급연대를 약화시키고 협소한 기업노조주의로 나아가는 경향을 조장했다고 분석했다.

 

유성기업 사례와 같은 노조 파괴와 파업에 거액의 손해배상·가압류 철퇴를 가하는 반노동 행위를 정부가 사실상 방조한 점도 노동운동 힘을 크게 약화시켰다. 한신대 노중기 교수는 사회경제적 평등을 확대해 온 세력의 힘이 크게 약화된 데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집단 이기주의론 등을 퍼뜨린 정권들에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노동계가 노동유연화라는 이름의 착취에 대항해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다수의 전문가들 견해가 일치한다. 비정규직 노조가입률은 2%에 그친다. 노동자를 대변하는 민주노동당은 2004년 원내 진입에 성공했지만 그 바통을 이어받은 정의당은 아직 폭넓은 지지기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19876월항쟁으로 정치적 자유의 공간이 열리자 7~9월 노동자들은 노동자 삶의 개선이라는 민주주의 내용을 채우기 위해 분투했다. 그렇게 쌓아 올린 결실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2017년의 한국 사회가 마주해야 할 질문이다. 17.2.19 경향


청소·주차·이주노동자도 모두 정규직 매출 9배로 뛴 삼진어묵

 

전 직원 475명이 100% 정규직인 부산 영도의 중소기업 삼진어묵 본사에서 15일 박종수 사장(가운데)이직원 이정분(청소허경숙(생산강문구(매장관리김상철(주차)씨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니까 태어나서 처음 적금까지 들었다 아이가.”

16일 부산시 영도구에 있는 중소기업 삼진어묵 본사 매장에서 만난 주차관리원 김상철(57)씨는 매달 80만원씩 적금을 붓고 있다고 했다. 20148월 이 회사에 취업하기 전까지 시장에서 장사하면서는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다. “친구들이 번듯한 회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다니까 로또 맞았다고 엄청 부러워한데이. 생활이 안정되니까 마음도 편하고 손님들이 짜증 내도 전혀 화가 안 나. 몸이 허락할 때까지 이 회사에 계속 다닐라꼬.”

삼진어묵 본사 매장 근처에서 20여 년 동안 산 이정분(69·)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삼진어묵 청소근로자(미화원)로 일하고 있다. 생전 처음 갖게 된 직장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이씨는 그동안 일정한 수입이 없어 주변에서 일을 부탁하면 도와주고 몇 푼 받아 생활했다삼진어묵에 입사하고 매월 일정한 급여가 나오니 자식한테 손 안 벌리고 생활비 걱정 안 해 좋다며 만족해했다. 그는 하루 3000명가량의 손님이 찾는 이 매장을 청소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직장이 내 집같이 편안하다며 웃었다.


1953년 설립된 삼진어묵에 근무하는 직원 475명은 모두가 정규직이다. 주차관리원과 청소부는 물론 어묵 포장, 택배 접수, 택배 포장, 물류 분류, 물류 배송기사 등 단순노동 근로자도 포함된다.


유일한 이주노동자인 인도네시아 출신 이맘 압둘 컬리스 역시 마찬가지다. 20155월 이 회사에 입사한 컬리스는 그해 6월 결혼하고 한 달 동안 인도네시아에 머물렀다. 이전에 근무했던 금속 관련 업체는 비정규직이어서 한 달간의 휴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올해 10월 취업비자 만료로 인도네시아에 들어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면 회사에서 다시 받아 준다고 한다. 나에겐 꿈같은 직장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이슈로 떠오르는 가운데 창사 이래 단 한 명의 직원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은 지방 중소기업 삼진어묵이 주목받고 있다. 이 회사는 201312월 국내 업계 최초로 베이커리형 어묵을 선보이며 201382억원이던 매출액이 2016700억원으로 급증했다. 박종수(63) 사장의 아들인 박용준(35) 부사장이 고안한 베이커리형 어묵아이디어가 인기를 끌면서다. 롯데백화점 서울 잠실점에 팝업스토어로 선보였던 베이커리형 어묵 매장은 현재 서울·부산·대구·대전·천안 등지에 16개로 늘었다.


회사가 커지면서 201345명이던 직원은 36개월 만에 475명으로 늘었지만 새로 채용한 직원 중 한 명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았다. 박 사장은 직원은 식구니까 비정규직으로 뽑을 생각조차 안 해 봤다. 직원들이 책임감 있게 일하니 매출도 덩달아 올랐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직원을 비정규직으로 뽑으면 상여금·퇴직금 등을 주지 않아도 돼 1인당 연간 1000만원의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 게다가 어묵은 겨울 음식이어서 일손이 달리는 겨울철에 직원을 대거 뽑고 설날 이후 해고하는 관행이 어묵업계에 만연해 왔다. 박 사장은 베이커리형 매장으로 어묵시장이 고급화되고 확대되면서 여름철 매출이 크게 떨어지지 않아 정규직으로 직원을 뽑아도 아직까지는 크게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내친김에 미국·일본 등 해외 수출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박 사장은 우리 직원들에게 평생 먹거리를 찾아 주는 게 내 임무라고 강조했다.


삼진어묵은 신입사원 연봉이 2400만원으로 높지 않은데도 사람을 존중하는 중소기업이란 소문이 나면서 지난해 신입사원 공채 경쟁률이 대기업과 비슷한 1601을 기록했다. 신입사원 강문구(31)씨는 대기업은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에 떨면서 부속품처럼 일해야 하지만 삼진어묵은 안정적이고 발전 가능성이 크다. 내가 낸 아이디어가 회사 경영에 바로 반영되는 것을 보면서 일하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517 중앙





Early Morning Blues

Sung By  Savage Rose